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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구운 책] 열네살 소녀들의 실종, 사랑과 집착 사이…샤를로테 링크의 ‘수사’

수사(Die Suche) | 샤를로테 링크 지음 | 강명순 옮김(사진제공=밝은세상)영국 북부 해안도시 스카보로, 1년 전 실종된 열네살 소녀 사스키아 모리스가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연달아 소녀들이 실종된다.‘스릴러의 여왕’이라고 일컫는 독일 작가 샤를로테 링크의 신작 소설 ‘수사’(Die Suche)는 ‘고원지대살인마’로 인해 공포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발현되는 인간의 욕망과 집착, 불안과 혼란, 의심과 시기, 절망과 분노 등에 대한 이야기다.4년 전 한나 캐스웰 실종 사건에 이어 사스키아 살해사건 그리고 연달아 사라지는 소녀들. 스카보로경찰서 강력반장 케일럽 헤일과 고향인 스카보로에 머물던 런던경찰국 소속 형사 케이트 린빌의 비공식 수사가 펼쳐진다.전작 ‘속임수’에 등장했던 형사 콤비는 때로 협력하고 또 때로는 견제하며 사건을 풀어간다.샤를로테 링크는 범인의 정체보다는 사건 발생의 근본적 원인과 배경을 분석하고 사회와 시스템의 문제를 짚어내는가 하면 인간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심리적 요소들을 섬세하고도 다양하게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이는 작가다.‘수사’ 역시 욕망과 집착을 사랑이라 믿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속내를 치밀하게도 파고든다. 인간의 이기와 욕망, 무관심과 몰이해, 소외집단의 상처와 증오 등이 얽히고설켜 만들어 내는 심리전과 반전이 읽는 재미를 더한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0-06-06 22:45 허미선 기자

[갓 구운 책] 상처와 방황, 고독 그리고 추억…저마다의 이야기를 교환하는 ‘환환상점’

환환상점 | 교환 어쩌면 기묘한 여행과 같은 것 | 저우야오핑 지음 | 류희정 옮김(사진제공=다림)누군가의 물건에는 저마다의 상처와 슬픔, 외로움과 기쁨, 방황과 추억 등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만의 아동문학가이자 동화번역가 저우야오핑의 신간 ‘환환상점’은 물건과 물건, 저마다의 사연을 교환하는 가게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저루이가 자전거 산책을 하다 만난 골목의 낡은 환환상점은 실제로 대만에 존재하는 작은 가게를 모티프로 한다.첫 장은 그 작은 상점에서 빌려온 책에서 오래 전 독일 전통 방식의 집수리 현장에서 만났던 소녀의 이야기를 읽은 저루이가 그녀와의 재회를 꿈꾸며 적어 넣는 자신의 이야기다.그렇게 시작된 책은 자전거 페달을 밟아야만 전기를 쓸 수 있는 민박집에서 새삼 깨달은 당당의 가족애, 치매걸린 할머니와 치치의 추억, 낯선 아빠와 하오위의 자전거여행 등을 거쳐 되는 일이라고는 없다고 생각했던 아카가 환환상점에서 만난 할아버지 이야기까지 이어지며 푸근함을 전한다.“나한테 쓸모 없어진 쓰레기를 가져다가 내가 필요한 보물로 바꾸는 곳”인 ‘환환상점’은 마지막 이야기 속 아카의 별명 ‘아카펠라’로 책의 메시지를 전한다.중국어로 ‘비참한 아카’라는 뜻의 ‘아카펠라’를 동명의 음악 장르인 무반주 합창곡으로 바꾸겠다는 아카의 결심은 결국 모든 것은 스스로에게 달렸음을 일깨운다. 만약 실제로 ‘환환상점’이 있다면 어떤 물건을 가져다 주고 가져올 것인지, 어떤 이야기를 적어넣을지 등을 고민하는 재미는 덤이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0-06-06 20:00 허미선 기자

[人더컬처] 황석영 #철도원삼대 #노동자 #염상섭 #철학동화 #포스트코로나 “더 나은 세상을 위해”

5년만에 새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를 출간한 황석영(사진제공=창작과비평)소설의 첫 장면은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잠자리에서 되도록 먼 곳에 정해둔 용변 장소, 떨어지지 않게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어 버텨야하는 난간, 플라스틱 죽 그릇, 한정된 공간을 감도는 지독한 냄새…. 얼마 전 철탑 고공농성을 해제한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씨가 떠오르는가 하면 입주민의 폭력과 폭언에 극단적 선택을 한 후에야 열악한 근무환경이 알려진 아파트 경비원의 고통이 연상되기도 한다.대하소설 ‘장길산’ ‘객지’ ‘삼국지’ 등의 황석영 작가가 5년 만에 내놓은 새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는 여전히 나아지지 않은 노동자들의 지난한 100년 역사를 꿰뚫는다.“어디 그들뿐이겠어요. (노동자인) 그들에게 어필할 방법은 (높은 곳에 오르는) 그것뿐입니다. 그 동안 전국적으로 많았고 지금도 누군가는 올라가 있을 거예요. 언론도, 사람들 심정도 1년은 있어야 ‘꽤 오래 있네’ 하면서 돌아보지 3, 4개월은 주목도 못 받고 문제 해결도 어렵죠. 사람을 그런 데다 올려놓고 400일을 보내게 두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나아진 건 그대로 두고 본다는 거예요. 예전에는 강제집행해 체포하고 추락사로 내몰기도 했으니까요.”이은 “제 20대와 30대의 한국사회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달라졌었다. 더 좋아져야 한다”는 그의 바람은 책 첫장에 손글씨로 직접 적은 “길고 긴 시간 속에서 우리는 한줌 먼지에 지나지 않지만 세상은 조금씩 나아질 것입니다”라는 문구에 고스란히 담겼다.◇1989년부터 오래도록…4대로 이어지는 노동자 이야기  황석영의 새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사진제공=창작과비평)“사실 ‘철도원 삼대’는 일제강점기부터 전쟁 때까지가 큰 줄거리입니다. 그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사람은 4대째 후손인 ‘이재오’라는 노동자죠. 굴뚝 위에서 농성을 하고 있어요.”2일 서울 마포구 소재의 창비서교빌딩에서 기자들을 만난 황석영 작가는 새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그의 전언처럼 “(2015년) ‘해질 무렵’ 이후 5년 만에 끝마친 2400매 정도의 장편소설”로 이백만, 이일철, 이지산으로 이어지는 ‘철도원 삼대’는 “민담 형식을 차용한 작품”이기도 하다.황 작가는 “전반기 문학이 사실주의에 입각해 굉장히 엄정한 문장으로 썼다면 방북과 투옥 이후에 쓴 후반기 문학들은 리얼리즘의 세계를 확장해 형식 실험을 하게 됐다”며 “무속, 주술, 판소리, 설화, 민담 등을 채용하는 방식”이라고 밝혔다.이어 “이번 소설 역시 민담으로 쓰려고 노력했다. 당시의 사실적 자료가 많다 보니 민담적 상상력을 방해하는 점도 있다. 그럼에도 역사이고 오래된 얘기다 보니 조금씩만 얘기조로 풀어 가도 자연스럽게 민담화된다는 걸 발견했다”고 말을 보탰다.“굴뚝이라는 공간은 참 재밌어요. 땅도 아니고 하늘도 아닌 중간지점이잖아요. 일상이 멈춰 있으니 얼마든지 상상을 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죠. 그 공간과 증조할아버지부터 아버지까지 3대의 이야기를 4대 후손이 들락날락하면서 회상합니다. 자연스럽게 과거 한국 노동자들의 삶, 한반도가 처한 정치적 현실 등이 형태는 달라졌지만 본질 그대로 현재에도 작용하고 있다는 이야기죠.”그리곤 “이를테면 IMF 이후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내세워 비정규직화되고 자본의 힘이 더 강력해졌고 자본이 국경을 넘어 세계화되면서 노동자의 조건은 더 열악해졌다. 사회 외관에 방치된 채로 사고도 많이 당하고 있다”며 “전체 사회가 같이 좋은 일터, 노동조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을 보탰다.◇염상섭 ‘삼대’의 뒤를 잇는 ‘철도원 삼대’ 2일 서울 마포구 소재의 창비서교빌딩에서는 황석영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렸다(사진제공=창작과비평)“대하소설 ‘장길산’을 쓰는 동안에는 19번이나 집핍실을 옮겨 다녔어요. 이번에도 보따리를 싸들고 나와 하루 8~10시간을 앉아서 작품을 썼어요. 확실히 기운도 딸리고 기억력도 떨어져서 이름들도 혼동되고 해서 고생 좀 했죠.”작품 집필 과정에 대해 이렇게 토로한 황석영 작가는 “원래 제목은 (일제 중엽부터 운행되다 전쟁 중 폭파된 산악형 기관차 마터 2형 10호를 일컫는) ‘마터-10’이었다. 분단의 화석과도 같은 한국 기차의 제작번호”라고 설명했다.‘철도원 삼대’는 1989년 북한 방문 당시 만난 평양백화점 부지배인의 이야기에서 시작됐다. 황 작가가 유년시절을 보내기도 한 서울 영등포, 평양에서 만난 그곳 출신의 부지배인에게서 일제강점기에 철도 기관수로 대륙을 넘나들며 겪었던 이야기를 듣고 ‘철도원 삼대’를 구상했다.노동자의 삶을 다룬 데 대해 “식민지, 근대화를 통해 엄청난 산업사회로 진입한 이래 1000만 노동자의 시대”라며 “공장 노동자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노동자인데 한국문학에서 노동자를 정면으로 다룬 장편 소설이 없다는 데 놀랐다. 한국문학사의 그 빈자리를 채워 넣겠다는 생각이었다”고 집필의도를 털어놓기도 했다.5년만에 새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를 출간한 황석영(사진제공=창작과비평)“(한국문학사에 노동자를 다룬 장편소설이 없는) 그 이유를 피상적으로만 생각했었는데 (‘철도원 삼대’를) 쓰면서 보니 식민지 시대에 막 산업화가 되면서 노동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더라고요. 계급 운동의 성격도 있지만 ‘개방’과 ‘항일 운동’의 성격을 띠다 보니 이념적으로는 사회주의적 배경을 가지고 있죠.”이렇게 설명한 황석영 작가는 “그렇게 금기시된 후 전쟁을 겪었고 근대화 30년은 군사정부의 개발 독재기간이었다”며 “노동운동 뿐 아니라 (문학화하는) 움직임 자체가 불온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왜 ‘철도 노동자였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철도, 강철, 광산 등은 이를 테면 근대산업사회를 상징하는 중공업이다. ‘노동자들의 핵’이기도 한 철도 노동자를 근대 산업사회의 중심이라고 본 것”이라고 답했다. “식민지 근대문학의 시작을 염상섭부터라고 생각합니다. 근대의 출발점을 3.1운동으로 본다면 염상섭이 개화기부터 그 무렵까지를 다뤘죠. 염상섭은 ‘삼대’를 통해 근대를 조명했으니 저는 그 뒤를 이은 셈이에요. 염상섭이 식민지 부르주아를 다뤘다면 저는 산업노동자를 다뤘죠. 한국 문학사에서는 그렇게 연결돼 얘기되어질 겁니다.”◇차기작 철학동화 그리고 굉장한 화두 ‘포스트 코로나’ 5년만에 새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를 출간한 황석영(사진제공=창작과비평)“2016년 말인가 2017년 초 ‘수인’이라는 자전을 출판했어요. 그걸 쓰고 나니 간이나 쓸개나 내장에서 떨어져나간 것 같더라고요. ‘이젠 할 만큼 했구나’ 생각이 들면서 막막해졌죠.”이렇게 토로한 황석영 작가는 “글을 안 쓰는 노년 시간이 길어지면 굉장히 힘들다”며 헤밍웨이, 로맹 가리, 미시마 유키오, 톨스토이 등의 마지막을 예로 들며 “작가에게는 은퇴기간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죽을 때까지 써야한다. 그것이 세상에 가지는 작가의 책무다. 마구 쓰는 게 아니라 죽을 때까지 계속 새로운 정신으로 새로운 길을 가고 써내야 한다” 전했다.“이 작품을 쓰면서도 다음 작품을 구상했어요. 일단 시작은 어른, 아이가 함께 보는 철학동화를 쓰려고 합니다. 마침 있는 곳이 원불교가 발생한 장소라 (원불교의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 어린 성자가 사물에 대해 깨달아가는 과정을 쓸까 합니다.”차기작에 대해 전한 황석영 작가는 노벨상, 남북문제 그리고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노벨상에 대해 “다 낡은 얘기 같다”며 “우리도 상 하나를 만들자 그러고 있다”고 전했다.“냉전 이후 없어졌고 노무현 정부 때 전주에서 부분 복원해 아시아·아프리카 작가대회를 한 적이 있는 알라(AALA,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작가회의), 이곳에서 주최했던 노벨상 버금가는 로터스상을 복원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희망사항으로는 2, 3년 안에 (복원)하면 좋겠어요.”현재 남북 관계에 대해서는 “현재 분단 체제가 흐트러진 것만은 사실”이라면서도 “북미대화 시작했고 한반도를 둘러싼 화두는 이미 다 나왔다. 그것만으로도 큰 진전이다. 코로나 정국이 좀 안정되면 다시 대화도, 협상도 시작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고 바람을 전했다.5년만에 새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를 출간한 황석영(사진제공=창작과비평)“재밌게도 코로나바이러스가 전세계에 퍼지면서 자연스레 여러 가지가 변화하고 있어요. ‘포스트 코로나’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변화를 감지하고 있죠. 코로나 사태가 자본주의 체계, 현재 이 모양대로의 문명 등이 잘 해온 건가, 잘 온 길인가를 우리에게 질문한 것 같아요.”  시대의 변화에 발 맞춰온 황 작가는 이를 “말년에 만난 굉장히 중요한 화두”라고 표현했다. 그는 “(코로나 사태가 던진) 그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서 작품 활동과 공부를 좀 더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젊어서 ‘장길산’을 통해 미륵사상을 깊이 공부한 적이 있는데 다시 시작할까 해요. 우리 근대의 싹이 18세기 영·정조에서 시작해 19세기 반동적 시대를 거쳐 제국주의 세력이 들어와 한반도가 변화를 맞으면서 과거와 단절이 됐죠.”이어 “그때 아마 자생적으로 준비한 게 근대사상인 것 같다. 세상이 개벽돼야 한다는 생각들은 이미 미륵사상에 있던 것들이고 유교적 발현이 동학, 선교적 발현이 증산도, 불교적 발현이 원불교다. 토속종교 3형제가 굉장히 의미심장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코로나19 이후 세계는 탈 인간중심주의, 전 지구상의 무생물과 생물, 우주까지도 포함하는 포괄적인 사상, 철학 등이 대단히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0-06-03 01:30 허미선 기자

[비바100] 식탁을 지배한 종교와 음식 이야기 ‘성스러운 한끼’

음식을 주제로 한 책은 TV의 먹방 예능이나 ‘먹방 유튜버’ 만큼 자주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각 종교의 특성에서 유래한 음식을 다루는 콘텐츠는 흔치 않다. 동서양의 음식 문화는 각 나라의 종교가 입맛을 지배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독교는 중동에서 탄생했지만 오랜 세월동안 서구 식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고 한중일의 불교문화는 각 나라의 역사적 상황과 맞물려 독특한 음식문화로 발전해왔다. 이외에도 세계 곳곳에서 종교를 통해 식문화가 태동하고 성장해왔다.신간 ‘성스러운 한끼’는 이처럼 종교에 얽힌 39편의 이야기를 한권의 책에 정성스럽게 차려냈다. 현직 일간지 기자인 저자가 직접 발로 뛰고 맛보고 찾아낸 자료가 담백한 필체로 펼쳐진다.기독교 문화는 중세 서구사회 뿐 아니라 미국과 나아가 동아시아의 식문화까지 영향을 끼쳤다. 이를테면 한국 천주교 신자들은 성찬식 때 포도주를 마시지만 개신교에서는 포도즙으로 대체한다. 저자는 이러한 차이를 한국에 처음 천주교, 개신교가 전파되던 시기, 대상 등 역사를 통해 분석한다.‘성스러운 한 끼’| 박경은 지음 | 서해문집 | 1만6,000원 |사진제공=서해문집한국에 처음 전파된 천주교는 양반 대상이었지만 구한말, 조선 땅에 도착한 감리교 선교사는 비교적 청교도 정신이 엄격한데다 당시 조선의 서민들이 아편을 제외한 모든 유흥을 즐기는 모습에 ‘금주’를 강조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국인도 즐겨먹는 일본의 튀김요리 ‘덴푸라’ 역시 기독교 문화의 산물이다. 포르투갈 선교사가 일본에 가톨릭을 전하던 16세기는 ‘금육’하는 가톨릭의 ‘사계재일’ 전통이 지켜지던 시기다. 이 기간 고기를 먹지 못한 선교사가 생선을 튀겨먹으면서 이같은 관습이 일본 가톨릭 신도들에게 전달됐다.하지만 포르투갈식 튀김이 두꺼운 튀김옷을 입히는 것과 달리 덴푸라는 속이 보일만큼 얇게 튀김옷을 입혀 바삭바삭한 예술작품으로 변형돼 지금까지 세계인의 입을 즐겁게 만들어주고 있다.현대인의 아침식사로 널리 알려진 콘플레이크는 미국 청교도들이 금욕을 강조하다 탄생한 음식이다. 19세기 미국 뉴저지의 장로교 목사인 그레이엄이 건강에 좋으면서 성욕 등 육체적 욕구를 억제하기 위해 만든 음식인 ‘그레이엄 크래커’가 시초다. 이는 그레이엄 목사를 신봉한 의학박사 존 켈로그가 건강요양원을 운영하면서 만든 ‘콘플레이크’로 발전했고 존의 동생 윌이 대중도 즐겨먹을 수 있는 가공 식품으로 발전시키면서 시리얼의 대명사가 됐다.저자가 직접 체험한 이국의 음식문화는 침을 삼키게 한다. 일반적으로 무슬림들은 라마단 기간 금식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몰 뒤에는 성대한 만찬인 이프타르를 즐길 수 있다. 두바이에서는 아예 ‘이프타르 뷔페’가 관광상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저자는 터키문화원을 통해 직접 이프타르를 체험하며 프랑스, 중국과 함께 세계 3대 요리로 꼽히는 터키 정찬을 맛봤다. 사브르, 차지키, 훈카르 베엔 등 이름조차 낯선 음식들이 직접 찍은 사진과 세밀한 묘사로 펼쳐지며 절로 침이 고이게 만든다. 한국의 유대교 랍비 가정에서 체험한 유대인의 식문화 ‘코셰르’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코셰르 식품은 유대인의 율법에 기인한 카슈르트에 따라 만들어지는 음식이다. 저자가 직접 찾은 랍비 가정은 안식일의 전통 빵 할라, 감자전과 비슷한 레비바 등과 함께 ‘코셰르 김치’를 내놓았다. 이는 제조나 생산과정에서 랍비 혹은 그에 준하는 엄격한 인증절차를 걸쳐 만들어진다. 엄격히 그들만의 율법을 지키는 랍비 가정이 한국인의 김치를 즐기는 모습은 생경한 풍경이다.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에 출연 중인 정관스님(사진=화면캡처)한국이 낳은 가장 유명한 셰프는 누구일까. 정답은 백양사 천진암 주지인 정관스님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을 통해 세계적인 셰프 반열에 오른 정관스님을 보기 위해 전 세계의 요리인들이 백양사를 찾는다. 백양사에서 직접 정관스님과 푸른 눈의 요리제자들을 만난 저자는 “속세에서 날고 뛰는 요리사들도 특별한 계량법 없이 그때 그때 자연의 이치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지정스님의 요리를 통해 비법이 아닌 요리인의 자세를 배워간다”고 적었다. 저자가 직접 만난 지정환 신부와의 인연도 각별하다. 취재를 통해 지정환 신부를 만났던 저자는 신부 선종 한달 전, 자신을 언급했다는 이야기에 한달음에 임실로 내려갔다. 저자는 인터뷰 당시 “지난 60년간 언제가 가장 좋았냐”고 묻자 “지금 이순간”이라고 답했던 지정환 신부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며 “‘오늘만 날이냐’고 살았던 지난 날을 반성한다”고 고백했다.저자는 머리말에서 “숭고한 음식이 때로 배척과 혐오를 낳는 낯섦의 대상이 되는 상황에서 서로의 낯섦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라는 낯선 질병으로 세계 곳곳에서 혐오와 오해가 짙어지는 지금, 이 책이 낯선 문화권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위한 작은 발판이 되길 바라는 저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조은별 기자 mulgae@viva100.com

2020-06-02 17:00 조은별 기자

[브릿지경제의 ‘신간(新奸) 베껴읽기’] <코로나 사피엔스> 최재천 장하준 외

코로나19 사태가 확산일로에 있던 지난 4월에 CBS 라디오의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프로그램에서 특별기획했던 방송 내용을 다시 정리해 내놓은 책이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 최재붕 성균관대 서비스융합디자인학과 교수, 홍기빈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연구원장, 김누리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등 6명의 석학들에게서 듣는 ‘포스트 코로나’ 대담집이다. 저자들은 코로나 19 이후 우리 인류는 이제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라며 우리 스스로를 이제 코로나 사피엔스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단순히 바이러스와 맞설 대응책에 급급하기 보다는 ‘완전히 달라질 미래’에 대한 원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점점 짧아지는 바이러스 창궐 주기 - 세균이 독자적인 증식이 가능한 생물인 반면 바이러스는 본색을 숨긴 채 남의 유전체에 올라타 빠르게 증식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엄청난 속도로 폐 뿐만아니라 다른 장기로 진입한다. 이제까지 그 어느 바이러스보다 전파력이 강력하다. 최재천 교수는 바이러스 창궐 주기가 5년에서 3년 정도로 점점 짧아지는 이유에 대해 “우리가 전례없이 야생동물을 건드리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사람들이 동물의 서식지에 들어가 들쑤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객들에게 희귀한 음식을 먹이기 위해 정글을 파헤치고 동굴로 들어가 야생동물을 잡아오는 과정에서 동물들에 붙어있던 기생동물들이 인간에 들어붙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최 교수는 지구 온난화로 온대 지방에서 전염병 질병의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만큼 바이러스와 세균을 옮기는 매개동물들의 분포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는 얘기다. 주기가 지금이 3년 보다 훨씬 더 짧아 1년이 될 수도 있다고 그는 우려한다.* 화학백신 보다 더 좋은 행동백신과 생태백신 - 백신은 독성을 약화시켰거나 죽인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병원체로 만들거나, 병원체를 둘러싼 표면 단백질 혹은 독소를 추출해 만든다. 하지만 실제 치료에 적용하기 까지는 1년 이상 걸린다. 바이러스의 빠른 증식력을 감안하면 너무 늦다. 만능백신을 개발하지 못하는 한, 화학백신은 정답이 아닌 셈이다. 최재천 교수는 이에 “‘행동백신’과 ‘생태백신’이 이런 ‘화학백신’보다 더 좋다”고 말한다. 행동백신은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것이다. 옮겨가지 못하게만 하면 바이러스는 아무 힘이 없다는 것이다. 생태백신은 숲속에서 우리에게 바이러스가 건너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최 교수는 코로나 잠복기가 대략 2주 정도이니 이 참에 딱 2주만 모든 것을 멈추고 나라를 한번 멈춰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도 한다. 적어도 그 동안만은 확실하게 전염을 막을 수 있지 않느냐는 얘기다.* ‘호모사피엔스’ 학명 박탈 당할 수도 - 최재천 교수는 “이제 새로운 옛날로 돌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세계관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는 코로나를 계기로 이제 생태를 경제활동의 중심에 두는 ‘생태중심적 기업’이 생겨나고, 소비자는 그런 기업만 선택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에 “이제부터 자연과 좀 절제된 접촉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최 교수는 “코로나 사태를 겪고도 우리가 자연과 지나치게 접촉을 하다간 감당하기 어려운 낭패를 볼 수 밖에 없음을 알아채지 못한다면, ‘현명한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학명을 박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1929년 대공황보다 더한 위기 우려 - 장하준 교수는 코로나 사태를 ‘준 전시 상태’라고 표현한다. 백신이 빨리 개발되지 않아 경제 마비가 계속된다면, 2008년 금융위기는 물론 1929년 대공황 때보다도 더한 위기가 올 수 있다고 진단한다. 후진국까지 퍼질 경우 그 파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장 교수는 최악의 사태를 막으려면 지금은 돈을 푸는 방법 밖에 없다면서도 “문제는 어떻게 푸느냐”라고 강조한다. 그는 유럽 대부분의 나라가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에 임금의 80%까지 지원해주고 자영업자에게도 그만큼의 지원을 약속한 것들을 잘 보라고 말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정부가 막대한 돈을 풀었지만 그 돈이 금융기관에만 유입됐고 실물경제로 흘러가지 않았다는 점도 상기시켰다. 그는 “진짜 돈이 필요한 곳에 돈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자영업자·서비스업 지원부터 - OECD 평균 자영업자 비율이 15% 정도이고 미국도 7%에 못미친다. 반면 우리는 25%에 이른다. 장하준 교수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진행되는 정부 대책을 보면 소액의 재난지원금만 주는 방식”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한국에서는 자영업자 보호가 곧 코로나 방역 정책의 일부”라고 강조한다. 더불어 그는 서비스업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제조업의 경우 기계화가 많이 되어 있기 때문에 아주 노동집약적인 의류와 식품가공 등 몇 분야를 빼고는 타격이 그렇게 크지 않겠지만 여행 항공 등에는 영향이 클 것이라며 이번 기회에 주요 산업에 많은 구조변화가 올 것이 틀림없다고 전망한다.* 코로나 사태를 ‘가치 재정립의 기회’로 삼아야 - 코로나 사태를 보면서 장 교수는 “한국은 기본적인 복지를 확대해야 될 것이고, 미국은 의료보험을 더 갖춰야 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지난 몇 십년동안 우리는 주객이 전도된 시스템으로 살았다고 지적한다. 경제발전이라는 것은 수단이고, 우리 목표는 복지와 안전 건강이라는 사실을 이번 기회에 확실히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장 교수는 앞으로 더 안전한 사회, 다 같이 잘사는 사회, 더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려면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며, 그런 방향으로의 사회적 대화가 지속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소상공인 보호 명복의 규제 일변도 정책 “NO!” - 최재붕 교수는 “한국에서는 기존 일자리에 위협이 되면 일단 규제 대상이 된다”고 비판한다. 그는 “이렇게 규제로만 지키기엔 세계 문명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면서 “보호가 도태로 이어져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소상공인을 보호한다고 자꾸 규제를 만들지 말고, 이들이 디지털 스토어를 차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부 차원의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권한다. 계속 규제만 할 것이 아니라 세금을 잘 모아 그들이 디지털 문명으로 갈 수 있도록 교육도 시키고 지원도 해야 맞다고 강조한다.* 디지털 세상에선 생각의 표준이 바뀐다 - 우리 국민 1000명 중 저녁 7시에 어떤 매체를 보는지 설문조사 했더니 압도적인 1위가 유튜브(56.7%)였다. 지상파가 18%, 그 다음이 케이블로 9%였다. TV를 본다는 사람은 대부분 50대 이상이었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모바일 뱅킹을 이용하는 사람이 60% 정도라며, 이 정도면 표준이 되었다고 봐야 하는데 정부는 아직도 데이터나 개인정보 같은 것들을 더 막아놓는다고 비판한다. 그는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평균 55.5세라며, 이들이 우리나라에는 아직 디지털 문명이 오지 않았다고 판단하니까 규제를 하는 것이라고 일갈한다.* 없어지는 일자리 걱정보다 새 일자리 창출을 - 최 교수는 아머지가 운영하던 막걸리 회사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자 SNS 마케팅으로 매출을 100배나 불려 회생시킨 사례를 언급하며 “없어지는 일자리를 걱정할 것이 아니라, 지금은 새로운 문명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계속 만들어야 수급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미국에 아주 멋진 플랫폼 사업이 있어 한국시장에 진출하려 해도 지금은 불법일 수 밖에 없다며, 이러다간 결국 20년 공백을 겪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코로나를 부추긴 지구화 도시화 금융화 - 홍기빈 교수는 “지난 40년 동안 현 체제를 지탱해 온 4개의 기본구조가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치 사슬로 엮인 ‘산업의 지구화’, 도시 의존성을 키운 ‘생활의 도시화’, 무엇이든 돈이 최고라는 ‘가치의 금융화’가 결국 코로나 사태를 부추겼다고 말한다. 그리고 네번째 요소가 환경의 시장화, 즉 생태위기라고 강조한다. 앞의 세가지는 모두 생태적 환경에 대한 무한적인 착취를 전제로 했을 때만이 가능한 일이며, 그 결과 지금 우리가 전대미문의 생태계 위기를 겪고 있다고 홍 교수는 지적한다.* 미국에선 ‘고용보장제’ 검토 논의 중 - 경제활동 조직을 시장경제에만 맡겨야 한다는 도그마에서 이제 풀려나야 한다고 홍 교수는 말한다. 그는 실업률이 20%에 육박하는 미국에서는 이미 고용보장제 같은 제도를 논의하고 있다고 전한다. 당분간 노동시장에서 20%를 소화하지 못한다면 제도 도입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한다. 미국의 경우 전체 GDP의 3%, 약 30조~40조 정도의 돈을 써서 일자리를 원하는 실업자를 국가에서 고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가 보여준 ‘총체적 미국화’의 민낯 - 김누리 교수는 한국사회가 총체적으로 미국화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교육제도, 대학제도, 대학의 높은 경쟁과 높은 등록금을 비롯해 한국의 거의 모든 제도가 미국식이라고 지적한다. 1인당 국민소득 대비 가장 높은 등록금을 내는 나라가 한국 임을 강조한다. 미국이 글로벌 스탠다드인 줄 알고 따랐는데 이번 코로나로 국민들은 그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시해 왔던 세계가 당연한 게 아니라 견고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코로나19 사태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라고 강조한다.* 자본주의의 치명적 결함 ‘둘’ - 김 교수는 자본주의가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경쟁해 이겼다는 사실, 자본주의가 인간의 욕망을 더 효과적이고 합리적으로 충족시켜 주는 체제라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치명적인 두 가지 결합을 갖고 있다고 강조한다. 먼저, 자본주의는 그냥 풀어놓으면 인간을 잡아먹는다는 것이다. 즉, 야수 자본주의다. 다음은 무계획성이다. 이미 과잉 생산 단계로 넘어섰음에도, 수요가 없음에도 무작정 무한히 계속 생산한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생산은 자연을 변형하거나 파괴하고 훼손한다고 말한다. 그는 “자본주의를 폐기하거나, 자본주의를 인간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3가지 - 김 교수는 우선,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거대한 인식의 전환, 즉 패러다임의 전환 시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사회를 지배해 온 ‘수월성(meritocracy)’ 사고는 이제 ‘존엄성(dignocracy)’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 보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둘째로, 우리의 코로나 대응 모델을 사회 개혁과 한반도 평화 문제에도 적극 적용해 창조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재난 자본주의의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언제나 사회적 자연적 재난 상황이 자본지배를 강화하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되어 왔다는 점을 인식하라고 지적한다.* ‘경쟁’보다는 ‘공존’이 역사를 지속하는 힘 - 김경일 교수는 “이제는 경쟁이 아니라 공존”이라고 강조한다. 경쟁력보다 공존력이 더 강력한 역량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 역사를 돌이켜 보면, 경쟁에서 남을 이기려는 능력을 가진 자보다 공존하고 포용하면서 윈윈하는 역량을 가진 사람이나 문화가 오래 살아남았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이번 코로나 사태가 강자중심주의나 패권이기주의에서 벗어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 본다.* 지혜로운 만족감을 추구하는 사회로 - 김 교수는 앞으로 우리는 지혜로운 만족감을 추구하는 사회로 갈 것이라고 확언한다. 그는 인간을 멈추게 만드는 가장 안전한 장치가 ‘만족감’이라면서 그 동안 사회가 만들어낸 원트(want)의 시대가 가고 라이크(like)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단언한다. 자기만의 라이크를 만들어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 것이란 얘기다. 지혜로운 만족감을 추구하는 사회로 간다는 것은, 그렇지 못할 경우 불행해 진다는 의미이므로 사회 전반적으로 사람들이 지혜로운 만족감을 추구하며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김 교수는 전망한다. 그는 느슨한 관계에서도 적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지혜롭고 효율적인 삶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한다.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2020-06-02 07:00 조진래 기자

[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혼자여서 완벽한 사람들> 한정연

* 비혼자와 미혼자 ‘비미족’ - 비혼과 미혼을 합해 비미족이라고 처음 사용한 이가 저자다. 그는 비혼과 미혼이 오직 개인의 선택이라는 것은 사회적으로 무책임한 해석이라고 말한다. 이들의 선택은 경제적인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혼을 선택하는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30대와 40대를 통째로 갈아서 만든 작은 집 한 채(그곳도 운이 좋아서), 그리고 느닷없이 준비없이 소리도 없이 다가오는 소득 절벽와 노년기라고 일갈한다. 노후 대비 저축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비판한다. “어쩌면 소확행을 추구한다기 보다는 사회의 경제 시스템으로부터 그 정도에 만족하라고 강요받는 삶인지 모른다”고 안타까와 한다.* 한국 출산율 저하는 사회구조 탓 - 부모 도움 없이 살아가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연예는 버겁고 결혼은 사실상 사치다. 미혼율 관련 보고서를 보면, 25~29세 남성의 미혼율은 2015년 90%로 1995년의 65%를 훌쩍 웃돌았다. 같은 나이대 여성 미혼율도 30%에서 77%로 두 배 이상 올랐다. 가장 큰 변화는 35~39세다. 여성은 3%에서 19%로, 남성은 7%에서 33%로 껑충 뛰었다. 지금은 소득이 높을수록 결혼율이 증가하고 이혼율은 낮아진다. 여기에 더해, 직업이 아무리 좋고 노동소득이 아무리 높아도, 증여와 상속을 통해 이뤄지는 경제적 대물림의 산물인 경제력 즉 ‘자산’을 뛰어넘지는 못하는 게 현실이다. 결국 직장인들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늘 불안하다는 것이다.* 여성 경제활동 증대와 임금 인상이 ‘저출산 해법’ - 결혼에 대한 긍정적 생각들이 점점 약화되고 있다. 결혼의 장점이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남성은 전 연령대에 걸쳐 있는 반면 여성은 한창 직장생활을 해야하는 나이에 몰려있다는 것이 문제다. 저자는 배우자의 희생을 원하면서 자신의 일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남자들의 숫자와 직장 내 여성의 압박감은 줄여주고, 여성의 경제활동과 임금을 늘려 가구 소득을 높이는 것이 저출산의 궁극적인 해결책이라고 강조한다.* 사실상 ‘독신세’를 내고 있는 한국의 비미족들 - 한 중견그룹 계열사의 2017년 연말정산 대상자 중 소득세를 추가 추징받은 직원이 7%였는데, 이들 중 23%가 미혼1인 가구 즉 독신가구였다고 한다. 독신가구라는 이유만으로 0.35%포인트, 자녀가 없다는 죄로 1.30%포인트 더 높은 세율을 적용받고 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우리나라 소득세 공제제도 자체가 가족 중심으로 인적 공제나 특별공제를 설계해 놓았다. 특히 출산장려금 등 기혼가구 공제가 확대되고 있어 상대적으로 세 부담이 높을 수 밖에 없다. 현 제도상 독신가구에 실질적인 독신세가 부과되고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리고 이는 조세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반려동물 키우기도 버거운 1인가구 -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 따르면 현재 반려동물을 키우는 1인 가구는 전체의 10.6%다. 앞으로 키우고 싶다는 비율은 41.5%에 달한다. 전체 가구 중에는 25.1%가 개(75.3%)나 고양이(31.1%) 등을 키우고 있다. 반려동물 양육 가구의 85.6%가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특히 60대 이상은 89.1%가 이에 동의한다. 연령대가 높일수록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는 경향이 높다는 얘기다. 하지만 1인가구에게 막대한 비용은 현실적인 장애물이다. 반려동물 양육 가구가 고정적으로 소비 지출하는 금액은 반려견의 경우 월 10만3000원, 반려묘는 7만8000원에 이른다.* ‘독립서점’에서 위안을 얻다 - 지금의 비미족은 스스로 결정한 삶이라는 점에서 과거의 비미족과 다르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들은 자신과 같은 주제에 관심을 가진 이들과의 연대를 꿈꾼다. 저자는 최근에 독립서점이 늘고 있는 것에 주목한다. 2017년 7월 현재 전국 독립서점이 모두 277개로, 6개월 동안 무려 31곳이 새로 문을 열었다고 한다. 독립서점의 강점은 커뮤니티 기반의 각종 문화활동이다. 저자와의 대화나 토론회 등이다. 책방 주인과의 대화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라고 한다. 하지만 경영은 모두 힘들다.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인터넷 서점이 10% 할인을 하기 때문에 경쟁이 안된다고 한다. 사람들도 대형서점애서 공짜로 책을 보던 습관 탓에 책을 잘 사지 않는다고 한다.* ‘학원족’으로 바뀌는 비미족들 - 업무와 퇴사, 창업에 인생까지 학원에서 배우려는 비미족이 늘고 있다. 덕분에 성인 대상의 교육시장 규모가 약 2조원대로 늘었다고 한다. 2010년 이후 2017년까지 성인 대상의 직업기술 강의 학원이 3192에서 4244개로 늘었고, 인문학 학원도 543곳에서 606곳으로 늘었다. 성인의 직무 관련 평생학습 참여율은 2012년 15.4%에서 3년 만인 2015년에 이미 27.7%로 급등했다. 저자는 최근 성인 대상 교육시장의 공통적인 특징으로 대상자 니즈를 고려한 맞춤형 강의, 고가의 자비부담에도 불구 높은 재수강율, 그리고 수강생 간 혹은 강사와의 활발한 네트워킹을 들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의 말을 빌어 “젊은 세대 직장인들의 일에 대한 두려움, 경쟁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불안감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활성화되어야 할 ‘메이커 운동’ - 선진국에서는 이른바 ‘메이커(maker)’들이 풀뿌리 제조업 역할을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매우 척박한 실정이다. 유명 메이커들도 아이디어 도용을 우려해 쉽게 창업에 나서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이는 한국의 대기업 제조업체가 자체 공장, 하청 구조를 갖추면서 전문 제조업체가 설 것을 잃은 탓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덩달아 비미족 창업자들도 제조업의 나라 한국에서 제조압 창업을 하기가 힘들다.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고전하는 것도 소품종 소량 주문 및 생산을 맡길 전문 공장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양민양 카이스트 교수의 말을 빌어 “이처럼 양산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하드웨어 스타트업을 선별 지원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메이커에서 하드웨어 스타트업으로, 제조업 혁신에서 새로운 가치 창출 이라는 새 제조 생태계로 가기 위해 메이커 운동의 저변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메이커가 제조업체로 발전하는 것을 막는 진입장벽으로 하드웨어, 한국, 여성, 표준화된 입시교육, 그리고 이공계의 여성 소외현상 등을 들었다.* 해외취업에서 길을 찾자 - 일본은 국내에 유학 온 외국인 학생의 현지 취업을 크게 늘리는 정책을 펴고 있다. 2017년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한 외국인 유학생 중 일본 취업을 위해 체류자격을 변경한 인원이 2만2419명으로, 아베 총리가 집권한 2012년 1만969명에서 크게 늘었다고 한다. 덕분에 한국 미혼 청년들의 일본 취업도 늘고 있다. 2017년 10월 기준으로 한국 국적의 일본 취업자 수는 5만5926명으로 전체 외국인 취업자의 4.4%에 이른다. 수적으로는 적지만, 전체 인원의 44.2%인 2만4694명이 전문 기술분야의 양질 일자리를 찾았다. 일본 유학의 장점은 저렴한 학비, 잘 정비된 장학제도다.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 임금이 80%로 우리의 55%에 비해 크게 높다. 신입직원의 경우 90%에 육박한다.* 혼자가는 혼행, 혼자 하는 크로스핏 - 혼행은 비미족을 대표하는 단어다. 여행상품을 혼자 예약한 비중이나 1인 항공권 에매비율이 높아지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취향 따라 여행지를 선택하고 일정을 짜는 자유여행객도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익스피디아 조사에 따르면 83.6%가 혼행보다는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여행을 더 원하지만, 일정 맞추기 등의 어려움 때문에 혼행이 대세라고 한다. 최근들어선 군대식의 ‘부트 캠프’가 하나의 독립된 피트니스 프로그램으로 자리잡고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 중에 개인 운동을 선호하는 비율은 23.8%지만 1970년대생인 X세대는 34.4%, 1990년대생인 밀레니얼 세대는 42.4%, 그리고 최근의 Z세대는 45.8%로 젊을수록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비미족 취향을 고려한 ‘퍼즐주택’ - “비미족에게 ‘취향’은 모든 선택의 첫번째”라고 저자는 말한다. 삼후주택이 시작한 퍼즐 주택은 모두 다른 집들을 퍼즐처럼 끼워서 한 동의 건물을 만든다는 데서 이름이 붙여졌다. 부지 선정부터 입주자와 함께 결정하고, 입주 전 자신의 취향에 맞는 설계대로 집을 지울 수 있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2년간 전세로 살아보고 구매를 결정할 수 있게 한 것도 매력적이다. 산이나 강, 공원 등 자연과 가까운 곳이라 친환경적이다.* ‘퇴사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 - 우리 사회에선 이제 퇴사를 꿈꾸고, 퇴사를 가르치고, 퇴사자의 용기에 박수를 쳐 준다. 1인가구 비율 40%가 예고되는 상황에서 곧 “언제든 그만둘 수 있어 좋겠다”는 비아냥을 듣고 있는 비혼족이 직장 내에서 주류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우려한다. 특히 “언젠가부터 우리 직장인들은 끝없이 서로를 ‘조금만 더 버티자’는 말로 위로해 주고 있다”며 안타까와 한다.* 조기 은퇴를 꿈꾸는 ‘파이어족’ - 최근 미국에서는 조기 은퇴가 꿈인 파이어(FIRE)족이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파이어족은 경제적 자립(Financial Independence)으로 자발적 조기은퇴(Retire Early)을 꿈꾸는 사람들을 말한다. 40대 초반에 퇴직해 은행 빚이나 직장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게 이들의 목표다. 하지만 한국에서 최근 몇 년간 익숙한 단어는 번 아웃(Burnout), 즉 심리적 탈진이다. 저자는 “그저 따뜻하게 한번 쳐다봐 주면 될 것을, 우리는 ‘너를 위해서야’라는 명분으로 다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고 되묻는다.* 경제문제보다 외로움이 1인가구의 최대 걱정거리 - 우리나라에서 외로움은 종종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2019 한국 1인 가구 보고서’에 따르면 혼자 사는 남성이 미혼의 여성보다 외로움을 더 큰 문제로 느낀다고 한다. 30대 이상 남성들이 모두 외로움이 가장 큰 걱정거리라고 답했다. 하지만 여성은 20대 이후 전 연령층에서 경제문제를 가장 큰 걱정거리로 꼽았다. 외로움은 30대에서만 2위였다. 1인가구는 가구별로 가장 경제력으로 취약한 계층임에도 남성들 대부분이 경제문제보다 외로움을 더 큰 걱정거리로 느낀다는 점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시급한 ‘소비의 재구성’ - 저자는 1인가구의 재테크는 일단 목표 금액을 낮추거나 없애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권한다. 비미족 재테크의 첫 시작은 투자 포트폴리오의 재구성이 아니라 소비생활의 재구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큰 투자는 자기 자신을 위한 투자’라든가, ‘10억원, 30억원 모으기’ 같은 이상한 신화에 매달리지 말 것을 권한다. 일자리와 일할 시간은 줄어들고 임금 인상율은 제자리걸음이고 은행 금리는 2%도 안되는 사회에서 목을 맬 목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소비 줄이기 뿐”이라고 확언한다. 이를 인정하고 마음을 편하게 갖는 것이 비미족 재테크의 제1원칙이라고 말한다.* 부동산 집착에서 벗어나야 - 적어도 한국에서 모든 재테크의 첫 목표는 ‘내집마련’이다. 저자는 ‘집은 사는 곳이고, 노년에 주택연금으로 활용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을 바꿀 수 만 있다면 1인가구의 행복도는 상당히 올라갈 것이라고 단언한다. 1인가구의 재테크는 집에 드는 비용을 최소화해 이를 현재의 소비로 돌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국민연금 외에 퇴직연금 가입 등 노후자금을 일찍부터 준비할 것을 권한다. 노후 자금 확보와 현재 가용자금의 최대화가 핵심이라는 것이다.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2020-05-30 07:00 조진래 기자

[갓 구운 책] 낯선 새 동네, 나만의 지도로 정겨워진 ‘내 마음이 보일지도 몰라’

내 마음이 보일지도 몰라 | 그림지도로 엮은 나의 마을 탐험기 | 김경화 지음 | 이화정 그림(사진제공=다림)“살아 있는 동안 내가 사는 곳도 다 알지 못하고 떠난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한국종합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출신의 김경화 작, 창작공동체A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화정 그림으로 엮은 책 ‘내 마음이 보일지도 몰라’가 출간됐다.부산에서 살게 된 서울내기 모자의 동네 탐험기이자 정을 붙이기 위해 자신만의 그림지도를 만드는 과정을 담고 있다.‘조금 낯설지도 몰라’ ‘탐험을 떠날지도 몰라’ ‘한눈에 보일지도 몰라’ ‘조금 으스스할지도 몰라’ ‘돋보일지도 몰라’ ‘마음이 통할지도 몰라’ ‘새롭게 보일지도 몰라’ 8개장에 새로 이사온 범일동의 산꼭대기 마을 도서관부터 길 잃은 갈매기를 위한 지도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이 담겼다.작은 텃밭과 창고로 변신한 파란 물통에 매료돼 마을탐험에 나선 ‘나’는 계단길, 그 오름길에서 만나 친구가 된 덩치 큰 개, 색 고운 집들 등을 거닐며 나만의 기호로 표시된 그림지도를 만든다.동네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해 ‘숨은 비석 찾기 지도’로, 무지개아파트·둘레둘레 산복도로 버스 등을 품은 ‘우리 마을 이야기 지도’, 시장에서 찾은 ‘아주 특별한 신발 지도’, ‘길 잃은 갈매기를 위한 지도’로 범위를 넓혀가며 정을 들이는 과정이 정겹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0-05-29 22:20 허미선 기자

[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200세 시대가 온다> 토마스 슐츠

저자는 독일의 대표 시사지인 ‘슈피겔’의 실리콘밸리 지사 편집장이자 미국 수석 특파원이다. 구글의 미래라는 저서로 이미 유명한 인물이다. 이 책은 제목이 다소 과장스럽다는 느낌이지만, 책을 읽다보면 정말 그렇게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실리콘밸리의 개척자인 피터 틸은 생명 연장과 재생의학을 연구하는 기업들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면서 궁극적으로 인간이 200세까지 살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실리콘밸리의 사상 초유 인체혁명 프로젝트’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암과 알츠하이머 등 인류의 질병 정복을 위한 기업과 연구소들의 노력과 그 미래, 그리고 궁극적으로 개인 맞춤형 디지털 의학의 시대를 예고한다. 저자의 깊은 통찰력과 광범위한 취재력에 경외감을 느낀다.* ‘유전자를 정복하라“- 게놈을 원하는 대로 재단해 주는 유전자 가위, 즉 크리스퍼 기술을 발견한 제니퍼 다우나는 “우리는 진화를 통제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공언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소장은 “기술 발전이 의학의 새 시대를 열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기술의 진보 덕분에 ‘의학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의학에도 화학과 물리학 물질과학 로봇공학 등 모든 영역의 신기술이 하나로 융합되고 있다. 과학자들의 최대 과제는 이제 ‘유전자’를 정복하는 것이다. 인간이 창조주가 되어 진화의 다음 단계를 직접 통제할 날이 올 것이란 얘기다.* 개별 맞춤 디지털 의학시대를 맞다 -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미래 의학의 열쇠는 데이터가 쥐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 의사는 단순한 치료자이자 처방전 발급자가 아니라 건강 코칭이자 건강 데이터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고 전망한다. 미래 의학은 더 정확해야 하고 개인별 특성에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언제일지는 정확히 예단하기 어렵지만) 인간의 수명이 200세, 심지어 500세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수혜는 아무래도 고학력 엘리트, 일부 부자들, 일부 미국 대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다만, 개인맞춤형 유전자 치료제는 ‘비싼 가격’이 걸림돌이다. 개인맞춤형 유전자 치료제 시대가 열리려면, 양산 라인이 필요한데 이것이 여의치 않다. 2017년 최초로 승인된 대형 제약사 노바르티스의 세포 기반 암치료제인 ‘킴리아’는 환자 1인당 치료비가 무려 50만 달러에 이른다.* 정복 가능성 높아지는 알츠하이머 - 인간의 수명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연령이 높을수록 뇌에서 마모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신경퇴행성 질환인 알츠하이머병은 고령화되어가는 서양사회를 위협하는 천벌로 여겨졌으나, 최근 유전자 분석 기술의 급속 발전에 힘입어 치료 및 예방의 길이 열리고 있다. 특히 컴퓨터공학의 발전에 힘입어 이제 뇌를 들여다 보고, 빠른 속도로 게놈을 분석하고, 엄청난 양이 데이터들을 분류하는 신기술 발달의 기반이 구축되고 있다. 의학계와 IT전문 기업들의 협업 덕분이다.* 세포의 자가포식 ‘오토파지(autophagy)’ - 전문가들은 알츠하이머를 비롯한 신경퇴행성 질환을 예방하려면 많이 움직이라고 권한다. 기능이 중단된 세포 구성요소가 제거되어 뇌 손상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토파지, 즉 자가포식이다. 그리스어로 스스로라는 뜻의 오토와 먹는다는 의미의 파지가 합쳐진 말이다. 세포 내부의 물질이 스스로에 의해 제거되기 때문에 붙여졌다. 세포질의 노폐물이나 퇴행성 단백질, 수명이 다한 세포 소기관들이 자가포식에 의해 제거된다는 것이다.* ‘뇌 보호 메커니즘’이 알츠하이머 치료의 큰 벽 - 혈액을 통해 뇌로 전달되는 물질은 이동이 원활하지 못하면 장벽에 갇힌다. 이것이 우리 뇌의 보호 메카니즘이다. 지금까지 치매 치료가 실패했던 것도 이 메커니즘 때문이다. “뇌까지 도달할 약품을 개발하는 것이 신경퇴행성 질환 치료의 가장 큰 숙제”라고 저자는 말한다.* 생명공학과 제약업의 융합모델 ‘바이오파마(Biopharma)’ - 디지털 기술에 기반한 의학이 탄생하면서 생명공학이 제약 시스템의 역할을 점점 대체하고 있다. 생명공학 기업은 생물학에 기반한 치료법을 개발하는 반면 제약 기업은 화학에 기반한 치료법을 개발한다. 하지만 이제 두 기업의 경계는 점점 모호해 지고 있다. 두 산업이 결합되어 바이오파마라는 새로운 유형의 혼합기업이 속속 탄생하고 있다.* 피부암 인식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다 - 세바스찬 스런은 구글의 비밀 연구조직인 구글X의 설립자이자 총괄 책임자다. 그는 자율주행차를 개발해 자동차산업의 새 시대를 열기도 했다. 그가 스탠퍼드대학에 마련한 개인 연구조직인 ‘스런랩’은 피부암을 인식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피부암의 특징을 인식하도록 12만9450개의 임상사진으로 컴퓨터를 학습시켰다. 피부암은 1기에 흑색종이 발견된 환자의 경우 5년 이상 생존할 확률이 97%이기 때문에 조기 발견이 특히 중요하다. 손쉽게 암을 진단해줄 조기 경고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것이 그의 목적이다.* 인공지능에 기반한 정밀의학을 꿈꾸는 사람들 - 컴퓨터공학자 위르겐 슈미트후버는 뉴욕타임즈가 ‘인공지능이 성장하면 그를 아빠라고 부를 것’이라고 극찬한 독일 과학자다. 그는 ‘인공 일반지능’을 만들려 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과제를 습득해 점점 더 많은 영역에 투입되어 보편적인 문제를 처리해 주는 기계다. 스탠포드대학 연구팀은 의사보다 정확하게 부정맥을 인식하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아동의 자폐증 여부를 진단해 주는 기계도 나와 생후 6개월된 아기들의 뇌 사진을 보고 자폐증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인공지능은 희귀 유전질환도 진단한다. 현재도 진단율을 최대 85%까지 높일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구글의 의학 자회사 베릴리(Verily) - 구글의 의학연구를 독립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구글의 자회사다. 생물학 의학 화학 재료과학 컴퓨터공학 등 각 분야 스타급 학자들이 망라되어 있다. 바이오센서 의학로봇 당뇨병 암 우울증 외 50개 새로운 아이디어를 연구하고 있다. ‘기술, 데이터 과학, 건강의 인터페이스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모토다. 베일리의 사명은 전 세계 건강 데이터를 유용하게 활용해 인류가 더욱 건강한 삶을 누리게 하자는 것이다. 새로운 의학 플랫폼을 구축하고 디지털 건강 세계를 위한 인프라를 마련하는 것이 목표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의 데이터를 활용한 다양한 질병과 정신 장애 치유법을 찾고 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건강 시장을 노리는 대기업들 - 애플의 팀 쿡 CEO는 2017년 포천과의 인터뷰에서 “건강은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이고, 두번째로 큰 시장”이라고 말했다. 현재 애플 워치로 당뇨병 환자의 혈당 수치를 확인할수 있으며, 파킨슨병이나 자폐증 증상을 확인 또는 의심스러운 반점을 검시하는 앱을 만들었다. 아마존도 ‘코드명1492’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의사를 검색하거나 의료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저장 평가하는 서비스를 테스트중이다. 의약품 사업 진출도 노리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나 워드, 엑셀보다 암과 줄기세포, 치료와 의약품 사업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헬스케어넥스라는 새로운 의학사업부를 만들어 “보건 시스템에 변혁을 일으키는 것이 목표”라고 공언했다. 헬스볼트라는 온라인 앱을 만들어 모든 민감한 의학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저장하고 있다.* 속속 의학시장에 진출하는 실리콘밸리의 선구자들 - 페이팔의 창업주로 억만장자 투자가인 피터 틸은 생물학 분야의 혁명적 연구에 집중하는 이른바 ‘딥사이언스 컴퍼니’들에 수백만 달러를 투자해 마이크로비옴, 유전자, 암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페이스북 CEO이자 냅스터 창업자인 숀 파커도 자신의 이름을 딴 암 면역 치료 연구소를 설립했다. 최초의 인터넷 브라우저 넷스케이프의 공동 개발자였던 마크 앤드리슨은 앤드리슨호로비츠를 통해 수억 달러를 생명공학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인간세포지도 구축사업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6억 달러가 투입된 연구센터는 특히 인간의 모든 신체를 지도화해 신약 개발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21세기 중에 전세계 질병을 정복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의학시장 주도할 IT 대기업들 -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은 2016년 연구에만 140억 달러를 투자했다. 아마존은 그보다 많은 160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애플과 페이스북도 결코 뒤지지 않는 규모다. 실리콘밸리는 인터넷 기술을 독점한 데 이어 이제 인공지능에서도 같은 현상을 노리고 있다. 이들이 새로운 혁명에서 선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막대한 투자금뿐만 아니라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혁신에 대한 열망, 반드시 성취하고 말겠다는 혁신에 대한 투자도 한몫했다는 평가다.* 죽기 전에 자신의 게놈을 분석 의뢰한 스티브 잡스 - 인간은 최대 2만3000개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한다. 이 모든 유전자 정보를 합쳐 놓은 것이 ‘게놈’이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인간의 게놈을 완벽하게 매핑하고 약 30억개의 염기 서열을 분석하겠다는 목표로 시도되어 1990년 성공을 거두었다, 췌장암으로 죽기 직전 스티브 잡스은 실낱 같은 희망으로 자신의 게놈과 종양에 대한 분석을 의뢰했다. 10만 달러를 지불한 이 프로젝트에 하버드 스탠포드 MIT 출신의 유전학 전문가들이 매달렸다. 잡스는 “저는 기술의 도움으로 암을 국복하는 최초의 인간이 되거나, 기술 적용에 실패해 죽는 최초의 인간이 될 것”이라며 비장한 각오를 다졌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는 세계 최초로 자신의 악성 종양 유전자의 정상적인 DNA에 대한 분석을 의롸한 인물로 기억된다.* 속속 성공하는 유전자 치료제 - 인간 게놈의 염기서열이 분석되면서 학계와 생명공학계는 전무후무한 엄청난 자원을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유전정보를 의도적으로 조작할 가능성까지 열린 것이다. 2013년 미국에서 설립된 생명공학 스타트업 스파크테라퓨틱스가 두 종류의 유전자 치료제를 승인받았다. 하나는 완치가 불가능했던 실명의 원인을 치료하기 위한 치료제이고, 두번째는 혈우병 치료제였다. 보훔대학병원은 피부가 완전히 손상된 한 소년을 유전자 치료로 살려내기도 했다.* 혁명적 기술 ‘크리스퍼 캐스9(Crisper-Cas9)’ - 보통 ‘유전자 가위’라고 불린다. 유전자를 잘라낼 뿐만아니라 유전자를 삽입하고 활성화 혹은 비활성화하고 프로그램을 수정할 수 있다. 미국 버클리대학과 하버드대학 연구실에서 처음 고안되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가능하지만 의학 분야에서 가장 획기적인 변화가 기대된다. 단순히 DNA를 잘라내 질병의 원인을 아예 제거해 버림으로써 기존 유전자 치료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의 코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이 기술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지를 결정하는 일이 인류에게 가장 중대한 도전 과제가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혹자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크리스퍼를 활용한 의료계 진화 - 크리스퍼를 연구하지 않는 의과나 제약사는 각종 질병을 고치고 신약을 개발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하버드대학은 크리스퍼를 이용해 레트로바이러스가 없는 돼지를 처음으로 탄생시켰다. 인간에게 장기 기증을 할 수 있는 이 유일한 동물에게서 이식 부작용까지 제거했다. 이제 최초로 사람이 돼지의 간 혹은 심장을 이식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2017년 미국 포틀랜드 연구팀은 실험실에서 탄생시킨 배아에서 치명적인 심장 질환을 유발하는 유전자 결함을 치료하는데 성공했다. 관련업계의 목표는 ‘질병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치료하는 것’이다. 이제 각 나라별로 20명의 아인슈타인, 20명의 스티브 잡스가 배출될 수 있을 지 모른다.* 인류의 꿈 ‘암 정복’ - 2017년 5월 면역관문억제제가 ‘키트루다’라는 이름으로 처음 출시되었다. 모든 종양을 치료할 수 있는 최초의 암 치료제다. 약 20%의 환자에게서 치료 효과가 나타날 만큼 탁월했다. 살아있는 세포를 활용한 이른바 2세대 면역치료는 2010년부터 시작되었다. CAR-T라 불리는 키메라항원수용체 T세포는 염기 서열과 유전자 치료, 빅 데이터, 생물정보학이 한 데 모인 디지털 의학의 결정체였다. 실험실에서 인간의 손으로 유전자를 조작해 킬러 세포를 만들어낸 것이다. 부작용도 발생했지만 특히 혈액암에 대한 치료효과가 매우 탁월했다. 특정 유형의 백혈병 환자 90%가 치료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실리콘밸리 업체들은 이미 혈액검사를 통한 암 진단법을 개발했다. 스타트업 ‘그레일’은 액체생검이라는 방식으로 암 위험 신호를 확인해 준다.* 바이오프린팅 시대 열리다 - 3D 프린터로 제작한 대체 장기를 공급하는 것이 바이오프린팅이다. 이제 실험실에서 인공 조직, 인공 피부, 합성 기관을 만들 수 있다. ‘오가노보’라는 선도 기업은 폐 심장 신장의 일부를 합성하고, 살아있는 간 조직을 배양하며, 인간의 생물학적 체계와 거의 흡사한 기관을 제작한다. 정상적인 기능을 갖추고 한 달 간 생존할 수 있는 간 조직을 프린팅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바이오프린팅은 실리콘이나 플라스틱이 아닌, 살아있는 세포로 구성된 특수한 젤이 쓰인다는 점이 다르다. 로레알 연구소는 사람의 피부와 흡사한 합성 피부를 생산하고 있다. 프랑스의 스타트업 푸아티와 공동으로 인공 모근도 개발 중이다.* ‘미니장기’ 오르가노이드(Organoid) - 합성생물학에서 가장 혁명적인 기술로 받아들여 진다. 실험실에서 배양한 아주 작은 세포 덩어리로, 형성 초기단계의 장기처럼 보인다. 실제 장기와 똑같이 가능한다. 이제 학자들은 오르가노이드를 크게 키워 인간에게 이식할 방법을 연구 중이다. 줄기세포를 프로그래밍해 미니 장기를 배양할 수 있다면, 이론적으로는 정자와 난자까지도 배양할 수 있을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노화의 비밀을 쥔 텔로미어(telomere) -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의 호주 출신 의사 엘리자베스 블랙번은 염색체 말단의 유전자를 보호해 주는 독특한 구조를 발견했다. 이 구조는 나이가 들수록 서서히 수축된다. 즉, 텔로미어가 사라지면 세포는 더 이상 분열하지 않는다. 이 메커니즘이 밝혀져 노화 프로세스를 억제할 수 있는 날이 곧 올 것이란 기대가 높다. 다만 이 효소는 대부분의 암세포에서도 과잉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확인되어 좀더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우리의 미래 주치의는 AI(인공지능) - 미래의 의학은 개인 맞춤 의학이 되고, 맞춤식 예방과 진단 치료가 현실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유전자 지식의 발달로 개인 맞춤 의학의 첫 걸음을 떼게 되었다. 특히 DNA 분석은 여전히 개인맞춤의학의 주춧돌 역할을 하고 있다. 디지털 의학의 세계에서 이제 의사는 인공지능의 도움을 십분 받을 수 밖에 없으며, 이제 단순한 진단자나 치료자의 차원을 넘어 건강 코치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새로운 키워드 ‘멀티오닉스(multionics)’ - 2010년 초반부터 의학자들은 게놈 외에 아직 연구되지 않았던 신체의 다른 정보원에 집중했다. 체내 모든 단백질의 집합체인 프로테옴, 유전자와 관련된 화학 프로세스의 집합체 에피게놈 등이다. 이 모든 영역을 하나로 묶는 상위 개념이 최근 의학계의 키워드인 ‘멀티오닉스’이다. 장 유명한 분야가 마이크로비옴인데, 인체 특히 장에서 나타나는 단세포생물들 주로 박테리아와 그 유전자들이다. 최근에는 동식물 및 바다에서 서식하는 미생물이 중점 연구 분야로 부각되고 있다. 우리 인체에는 약 100조개의 미생물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세포의 3배에 이르는 수치다. 한 스푼의 미생물에는 한 트럭에 실린 DVD 분량의 데이터가 담겨 있다고 한다. 미생물과 인체 간의 상호작용 메커니즘을 찾는 것이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 맞먹는 규모에 최초의 염기서열 분석 만큼이나 중요하고 까다로운 작업이라고 한다.* 계층 간 격차를 줄여줄 미래 의학 기대 - 현재 의학은 기하급수적 속도와 수준으로 발달하고 있는 반면,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계층 간의 격차도 그만큼 벌어지고 있다. ‘가난하면 일찍 죽는다’는 극단적 주장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저자는 “미래의 의학은 공정한 연대적 관점의 건강 서비스를 기반으로 해야만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한다.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2020-05-29 07:00 조진래 기자

[비바100] 포스트 코로나, 7인의 전문가가 제시하는 한국형 2020 팬데믹 솔루션

(사진출처=게티이미지)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하 코로나19)이 화마(火魔)처럼 세계를 뒤덮었다. 처음 코로나19 뉴스를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전염병과의 싸움에서 승기를 잡은 인류’의 위대함이었다. 하지만 중국 외 지역의 확진자, 사망자가 빠르게 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이동 금지 명령이 떨어진 미국을 포함해 유럽 주요국의 경제가 멈춰 섰고 세계 경제는 대공황 이래 최대 불황을 눈앞에 두고 있다. ◇네버엔딩 스토리, 위기는 패러다임을 바꾼다. 포스트 코로나 (우리는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임승규, 장두석 외 3명 저 | 1만8000원.(사진제공=한빛비즈 )‘포스트 코로나’의 부제는 ‘우리는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다. 저자는 경제, 부동산, 사회, 의료, 정치, 교육 분야에서 활동 중인 7명. 이들은 국제정세 연구원과 언론인, 한국교육행정학, 일본연구소, 경제학자 등 다양한 현장에서 활동한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마이크 타이슨이 말한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자’는 애초의 계획이 일그러졌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첫 장부터 강조한다. 아무리 철두철미하게 세워 놓은 계획도 전혀 예상치 못한 주먹 한방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 달라진 상황을 인정하고 기존 전략을 유연하게 수정하고 이 변화의 깊이와 속도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넷플릭스의 드라마 ‘웰컴 투 오자크’, 국내에서 성공한 바이러스 소재의 영화 ‘감기’ 등을 예로 들며 가독성을 더한다.‘웰컴 투 오자크’가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불법 자금을 세탁해주는 주인공을 통해 ‘생존하기 위한 변화된 기술’을 강조한다면 ‘감기’는 ‘국가적 재난에 대응하는 방법’에 대한 정권의 무모함, 개인의 희생 등을 다룬다. 이들은 “지금은 그동안 우리가 너무나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살피고 기존의 모든 정보와 가설을 다시 평가하는 혁명의 순간”이라고 강조한다. 보통 이 과정은 낡은 체계를 지키려는 이들의 격렬한 저항과 새로운 체계의 주도권을 쥐려는 이들의 공격이 맞물리며 혼돈으로 치닫는다. ‘하나의 패러다임을 기각하겠다’와 ‘다른 패러다임을 수용하겠다’, 두 결정은 언제나 동시에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점에 ‘코로나19 이후’를 염두에 둔 질문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새로운 세기의 전환을 대비한다고 해도 우리는 언제나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우리 삶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 가운데 하나인 공간에 대한 개념을 이미 바꿔 놓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는 학생이 되고 직장이라는 공간에서는 회사원이 된다. 내가 발을 딛고 선, 그 자체의 고유한 규칙과 리듬을 통해 작동하는 공간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식해 온 것이다. 코로나19로 학교에 나가지 않는 학생, 직장에 출근하지 않는 직장인들이 인터넷으로 연결된 네트워크 속에서 공부를 하고 업무를 처리한다면 이들이 스스로를 자각하는 방식부터 달라지게 된다. 일과 주거의 구분이 없어지면서 부동산 가격 계산 공식이 달라지는 것은 기본이다. 수많은 노동자가 책상도, 노동권도, 고용 안정도 없이 초경쟁에 직면하는 사회가 도래하는 것은 어쩌면 시간문제다. 코로나19가 초래한 위기를 극복한다는 명분 하에 사회 전반의 기술 혁신 수용도가 극적으로 제고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되는 부분이다. 온 사회가 이미 우리 곁에 대기하고 있던 신기술을 압축적으로 학습하는 과정에 서 있다. 법적·문화적 규범부터 교육과 경영, 행정, 정치 등 모든 분야에 연쇄적인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미래를 예측하고 기획하자, 애초의 계획이 일그러졌음을 인정하는 일그렇게 우리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미래는 모두에게 자비롭지 않을지도 모른다. 자크 아탈리가  발간한 ‘21세기 사전’에서 기술한 것처럼 코로나19 이후의 미래 역시 ‘찬란하고, 환희에 차 있으며, 야만스럽고, 행복하고, 기상천외하며, 기괴하고, 도저히 살 수 없고, 인간을 해방시키며, 끔찍하고, 종교적이면서도 종교 중립적인 사회’일지 모른다.디지털 사회로의 진입, 4차 산업혁명으로 일어나는 제조업의 고도화는 코로나19 사태로 가속도가 붙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은행들은 인터넷 혹은 온라인 은행이 이처럼 활성화될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비대면 금융창구가 일반화되면서 우리는 시대의 변화를 몸소 겪고 있다. 이미 글로벌 기업들이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미래에는 기업들이 사회를 바라보는 태도 혹은 가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메르스 사태 이후 병원 문화가 개선된 것도 주목할만 하다. 정부는 국가지정격리병상을 체계화하고 감염전문병원을 도입했다. 하지만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엔 이야기가 다르다. 한국은 출산율은 낮고 고령화는 점차 빨라지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요양병원 현실화 대책이 강구될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교류와 협력을 통해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 ‘코로나19’의 사태를 견디는 우리의 자세일 것이다. 앞서 예로든 아탈리의 질문도 여전히 반복된다.“모든 인간을 먹여 살릴 수 있을 것인가? 빈곤을 퇴치할 수 있을 것인가? 모두에게 일자리가 주어질 것인가? 어떤 지역으로 부가 집중될 것인가? 과학이 인간의 생활 양식, 인간과 고통, 인간과 죽음의 관계, 교육, 오락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어떤 기업이 살아남을 것인가? 사람들은 어떤 야망과 어떤 모험에 인생을 걸 것인가? 어떤 기업이 살아남을 것인가? 사람들은 어떤 야망과 어떤 모험에 인생을 걸 것인가? 전쟁과 환경 재난이 인간을 위협할 것인가? 자유와 연대, 이동과 정착 사이의 대립을 어떻게 조절해 나갈 것인가? 종교인과 정치인의 위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어떠한 관습이 용인될 것인가? 서양 문명이 여전히 지배적인 문명일 것인가? 미국은 지정학적 패권을 유지할 것인가? 무엇보다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21세기가 열린 지 20여년이 흐른 지금, 우리가 같은 질문에 봉착해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아이러니다. 그동안 너무도 당연시 여겨 왔던 삶의 양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티핑포인트’(Tipping Point)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코로나19 확산 과정에서 드러난 서구 국가들의 무기력증은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왔던 ‘서구 선진국’ 내러티브를 제고하게 만들었다.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연대’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를 가능성도 있지만 서구 선진국의 퇴조가 자국중심주의로 채워갈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가뜩이나 무역분쟁으로 살얼음판 위에 있던 미국과 중국 관계가 근본부터 재고될 가능성도 꽤 높아보인다. ‘포스트 코로나’의 생존전략을 개인의 문제로 보기엔 이미 그 위험수위에 온 듯하다. 양국의 기술, 경제패권 경쟁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과 무관하게 더욱 노골적으로 펼쳐질 것임을, 한국도 그 싸움의 중심에 있음을 책은 일목요연하게 제시한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0-05-26 18:00 이희승 기자

[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디즈니만이 하는 것> 로버트 아이거

디즈니 왕국을 15년째 이끌고 있는 로버트 아이거(애칭 밥 아이거) 회장의 자서전이다. 그는 픽사와 마블, 루카스필름, 그리고 21세기 폭스까지 엄청난 인수합병을 성사시켜, 몰락해 가던 디즈니 왕국을 되살려낸 인물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이 진두지휘한 흥미진진한 협상 과정을 소상히 소개하고, 그 속에서 배운 리더십에 관해 담담하게 토로한다. 협상 상공의 키 워드로 그는 ‘신뢰’를 꼽는다. 약육강식의 정글과도 같은 무한경쟁의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그 어려운 일들을 해낸 저자의 진솔한 마음 속 이야기들이 예사롭지 않다.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그는 거의 모든 의사결정에서 대단히 품위있는 승리를 거머쥐었다”고 극찬했을 만큼, 그렇게 까탈스럽던 스티브 잡스가 “믿을 만한 친구”라고 부인에게 털어놓았을 정도로 그의 ‘신뢰경영’은 울림이 크다.* 밥 아이거는 누구? - 로버트 아이거는 월트디즈니컴퍼니의 회장이다. ABC TV의 말단 직원으로 시작해 굴지의 글로벌 기업을 이끈, 그것도 디즈니를 완전히 창의력 덩어리로 변신시킨 성공한 기업인으로 평가된다. ABC가 1995년에 디즈니에 합병된 것을 계기로. 2005년부터 2020년초까지 15년 동안 CEO를 역임했다. 2012년부터는 회장으로 있다. 무려 45년을 같은 회사에서 근무한 셈이다.* 아이거의 리더십 10대원칙 - 첫째는 낙관주의다. 비관론에 굴복하지 않는, 달성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실용적인 열정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둘째는 용기다. 의사결정에 있어 용기는 필수라며,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늘 창의성을 피괴한다고 말한다. 셋째는 명확한 초점이다. 우선순위를 자주, 명확하게 알리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한다. 넷째는 결단력이다. 리더가 우유부단하면 조직의 사기도 크게 저하된다. 다섯째, 호기심이다. 혁신의 길은 지속적인 호기심에서 나온다. 여섯째는 공정성이다. 사람을 공정하고 품위 있게 대하는 태도가 진정한 리더십 발휘를 가능케 한다. 일곱째, 사려깊음이다. 의견을 주장할 때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견해를 개발하고 숙고해 다듬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덟째는 진정성이다. 진실과 진정성이 존증과 신뢰를 낳는다. 아홉째는 완벽주의다. 완벽을 추구하라는 뜻이 아니라 평범함을 거부하라는 뜻이다. 열째는 고결함이다. 품질과 고결함은 구성원과 제품 모두에 해당한다.* ‘일생의 멘토’ 룬 얼리지를 만나다 - 저자는 ABC TV 스튜디오의 스태프로 첫 발을 내딛은 후 상사와의 갈등으로 나와 ABC스포츠로 옮기게 된다. 이곳 운영 관리자로 일하면서 TV 스포츠의 왕으로 군림하던 룬 얼리지을 만나 ‘가차없는 완벽주의’와 ‘열정’을 배우게 된다. 그는 프랭크 사니트라 공연이나 밀레니엄 생중계 때 엄청난 하모니 능력을 보여주었다. 저자는 “룬이 업무 수행 방식을 혁신하기 위해 역각도 카메라와 슬로우모셥 재생, 위선 생중계 등 기술 진보를 받아들인 첫번째 인물”이라고 극찬한다. 그러면서 그는 무슨 일에도 굴하지 않는 혁신가였지만, 주변에 자신만큼 유능한 사람들을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모든 사람을 공감하는 자세로 공정하게 대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었다고 회고한다.* 리스크를 감수할 용기를 준 캡시티즈의 톰 머피와 댄 버크 - ABC스포츠 부사장으로 재직중이던 1985년에 ABC는 자기보다 작은 회사인 캐피털시티즈커뮤니케이션즈에 회사 전체를 매각키로 결정했다. 캡시티즈는 ABC보다 규모가 1/4에 불과했으나 워렌 버핏으로부터 35억 달러를 지원받아 거래를 성시시켰다. 이 회사의 두 창업자 톰 머피와 댄 버크는 현란함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일에만 초점을 맞추며 허튼 일은 하지 않는 비즈니스맨들이었다. 그들 덕분에 아이거는 ABC엔터테인먼트의 사장이 되었고 이를 계기로 디즈니 경영의 한 축을 맡을 기회를 갖게 된다. 엔터 업계 출신이 아닌 사람이 대표에 오르기는 그가 처음이었다. “댄과 톰의 신뢰 덕분에 큰 리스크를 감수할 용기를 얻었다”고 저자는 회고한다. 특히 창작자들에게 최선을 다해 기회를 잡으라고 독려하고, 그들이 실패를 딛고 일어서도록 돕는 능력을 갖게 되었음을 감사해 했다.* 5년간 남기를 원한 월트디즈니의 전임 CEO 마이클 아이즈너 - 아이거가 캐피털시티즈/ABC의 사장 겸 최고운용책임자가 된 직후인 1995년 봄, 월트디즈니의 마이클 아이즈너 CEO가 캡시티즈/ABC의 인수를 추진한다. 이때 아이즈너는 저자가 합병되는 회사에 합류해 5년 간 근무하는 조항에 동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이즈너는 ABC가 디즈니에 합류하기 전까지 비범한 능력을 보여 주었다. 테마파크와 리조트를 적극 확장하고 수익성 부문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축적된 지적자산을 활용해 디즈니의 고전영화들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등 디즈니를 현대판 엔터테인먼트 거인으로 바꾸어 놓았다며 저자는 “마이클이 월트의 디즈니를 재창업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ABC 인수 이후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특히 픽사와의 거래에서 스티브 잡스의 마음을 얻지 못해 나중에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마이클 아이즈너와 스티브 잡스의 갈등 - 1990년대 중반, 디즈니는 픽사와 5편의 영화를 공동으로 제작 마케팅 배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토이 스토리의 대박을 시작으로 벅스 라이프, 몬스터 주식회사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성공을 이끌었다. 하지만 두 CEO는 재계약을 두고 극단으로 틀어졌다. 잡스는 당초 계약 자체가 불평등했다며 대대적인 수정을 요구했지만, 마이클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사업은 주춤할 수 밖에 없었고, 마이클의 리더십에 대한 우려가 싹 트게 되었다. 결국 스티브는 디즈니가 단순 배급사 역할만 해야 한다는 내용의, 도저히 디즈니가 받아들일 수 없는 계약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사실상 결렬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1인자와 2인자의 처신법 - CEO와 2인자 사이의 역학은 종종 긴장에 휩싸이는게 사실이다. 누구나 자신이 ‘대체불가능한’ 사람이길 원하기 때문이다. 2인자로서 둘이 조화를 이루는 비결은 자신이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집착하지 않는 수준의 자의식을 갖추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본질적으로 훌륭한 리더십은 대체불가능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리더의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준비를 갖추도록 아랫사람들을 지원하는데 있다고 강조한다. 아이거는 1인자인 아이즈너에 대해 충성심을 보였지만 자신을 계속 견제하다 결국 사장 겸 COO와 디즈니 이사회 자리를 제안한 아이즈너에게 “지금까지 당신이 얼마나 일관성 없게 저를 대하셨는지 알고 계십니까”라고 말 할 만큼 속앓이도 많이 했다.* 마이클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 주주 가운데 43%가 마이클 아이즈너에 대한 지지를 보류함으로써 그는 CEO 직위는 남기되 이사회 의장직은 박탈된다. 디즈니 내부에서는 유일한 후보자로 아이거의 이름이 오르내리게 된다. 하지만 5년 동안 마이클을 보좌해 온 아이거에 대한 비판론도 거셌다. 특히 제프리 카첸버그는 “당신 평판은 이미 더렵혀졌어요”라며 노골적으로 회장직 포기를 종용했다. 마이클을 희생양 삼아 자신을 돋보이게 만드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기에 저자는 과거보다 미래를 보자며 맞서게 된다. 그는 CEO가 될 경우 펼칠 경영 방침을 세 가지로 밝혔다. 고품질의 브랜드 콘텐츠를 창출하는데 회사가 보유한 시간과 자본의 대부분을 쏟아 부어야 한다, 가능한 최대 범위까지 신기술을 수용해야 한다, 그리고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변모해야 한다 등이었다. 궁극적인 목표는 디즈니를 전 세계가 가장 선망하는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베이 CEO인 메그 휘트먼이라는 거물급 경쟁자를 제치고 마침내 아이거는 수개월의 검증과정을 거쳐 이사회에서 정식으로 회장 취임을 추인받게 된다.* 회장 선임 후 해야했던 세가지 과제 - 첫째는 창업주 일가인 로이 디즈니와의 화해였다. 창업자 가족과의 불화가 회사 이미지에 도움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스티브 잡스와의 관계회복이었다. 픽사가 애니메이션 업계를 주도하게 된 마당이라 어떤 식으로든 협력관계 복원이 시급했다. 마지막은 디즈니의 의사결정 방식을 뜯어고치는 것이었다. 무소불위의 중앙집권적 권력으로 회사를 관료화한 전략기획실의 대대적인 축소였다.* 회장직 확정 후 첫 비즈니스 통화 상대 스티브 잡스 - 아이거는 부모님와 두 딸에게 소식을 전하고 댄 버크와 톰 머피와 통화한 후 스티브 잡스에게 전화를 한다. 언젠가 픽사와의 관계를 회복할 기회가 있을 지 모르지만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다. 아이거는 스티브와의 만남에서 아이팟을 통한 디즈니 컨텐츠 동영상 보기라는 제안으로 그의 마음을 얻게 된다. 거래하는 방식도 대폭 간소화해 빠른 결정이 이뤄질 수 있음을 보여주어, 마이클과의 지루한 거래에 염증을 느끼던 스티브를 움직였다. 특히 업무진행의 편의성과 속도는 애플과 애플 제품에 대한 존중을 표현했다는 사실과 결합되어 스티브의 마음을 흔들었다. 스티브 잡스는 “엔터업계에서 자사의 비즈니스 모델을 파괴할 수도 있는 무언가를 그렇게 기꺼이 시도하고자 했던 사람은 여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픽사 인수를 전격 제안하다 - 잡스와 협업을 논의하다 아이거는 픽사의 인수를 전격 제안한다. 디즈니는 당시 더 이상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애니매이션을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스튜디오의 고위 간부들이 회전문 인사로 번갈아 자리를 차지한 결과였다. 문제는 상장사인 픽사의 시가총액이 이미 60억 달러가 넘었고, 잡스가 절반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아이거는 픽사를 인수할 경우 잡스를 포함해 존 래시터라는 걸출한 애니매이션 창작자와 디지털의 미래에 관해 선경지명이 있는 리더 에드 캣멀을 영입할 수 있다는 데 큰 매력을 느꼈다. “황당한 제안을 하겠다”며 건 전화에 의외로 스티브는 “글쎄요, 세상에서 가장 황당한 아이디어는 아닌 것 같군요”라며 반응을 보였다.* 픽사를 통해 디즈니를 개혁하려 한 아이거 - 저자는 픽사 인수로 디즈니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디즈니 이사회에 잡스까지 안겨줄 것이라며 이사회를 설득했다. 픽사가 보유한 탁월한 조직문화와 그들의 넘치는 의욕이 바람직한 방식으로 디즈니 조직 전반에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확신했다. 픽사 내부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아이거는 존 래스터와 에드 캣멀에게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부활을 책임져 달라고 부탁했다. 결국 74억 달러라는 가격에 합의가 이뤄졌고, 픽사의 조직문화를 유지한다는 내용의 별도 2페이지짜리 사회계약서까지 안겨 주었다. 인수 사실이 알려지자 모두가 반대했지만 나중에 잡스는 “우리가 두 회사 모두를 살렸다”며 만족해 했다.* 인수 발표 직전에 암 재발 소식 알린 스티브 잡스 - 인수 발표를 30여분 앞두고 잡스는 아이거에게 ‘아내와 주치의만 아는’ 비밀을 털어놓았다. 자신의 암이 재발했다는 고백이었다. 픽사 인수를 번복할 마지막 기회를 주고자 했다고 잡스는 설명했다. 거래를 취소해도 좋다는 그의 제안을 아이거는 거부했다. 이 인수거래의 핵심은 스티브 잡스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아이거가 기억하는 잡스 - 디즈니의 많은 결정에 잡스는 부정적이었다. 그의 우월의식 탓이 컸다. 하지만 아이거는 스티브가 자신이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도록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고 때문에 적지않게 의견 충돌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거는 몇몇 사례를 제외하고는 휼륭하고 관대한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현명한 조언자였다고 기억한다. 마블 인수 때도 잡스는 마블의 CEO인 아이크에게 전화를 해 주어 큰 도움을 주었다. 잡스는 아이크에게 “그는 자신이 한 말을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잡스의 장례식에서 그의 부인 로렌은 아이거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제가 스티브에게 당신을 믿을 수 있는지 물었어요. 그랬더니 그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응, 아주 맘에 드는 친구야’.”* 은둔의 경영자, 마블의 아이크 펄머터를 만나다 - 픽사 인수에 성공한 아이거는 마블을 다음 타깃으로 정했다. 스파이더맨을 비롯한 많은 마블의 캐릭터가 이미 저작권 혹은 배급권이 다른 곳으로 넘어가 건질 것이 거의 없다며 주변의 반대가 극심했다. 그러나 아이거는 마블이 갖고 있는 ‘캐릭터 광맥’이 여전히 깊고 풍부하다고 확신했다.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디즈니에서 나온 마블 영화들은 평균 10억 달러 이상의 총 홍행수익을 올렸다. 특히 흑인이 주인공인 슈퍼 히어로 영화까지 만드는 등 혁신적인 도전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스타워즈’의 창시자 루카스를 설득하다 - 아이거는 “내가 죽으면 내 부고기사는 ‘스타워즈의 창시자 조지 루카스…라는 말로 시작될 거요”라며 대단한 자부심을 가졌던 루카스를 만나 루카스필름의 인수를 제안했다. 루카스는 픽사와 같은 조건의 인수를 제안했으나 디즈니는 35억~37억5000만 달러 정도를 예상했다. 결국 마블보다는 높은 40억 5000만 달러에 인수가 결정되었다. 조지가 가지고 있던 스타워즈 전설에 대한 통제권을 양도하는 조건까지 포함했다. 디즈니의 요청이 있을 경우에 한해 자문을 제공하는 조건에도 합의했다. 조지 루카스가 만들지 않은 스타워즈는 이후 지속적인 성공 신화를 써나갔다.* 모든 인수협상 성공의 키 ’신뢰‘ - 픽사와 마블, 루카스필름 인수의 공통점은 그 회사들 덕분에 디즈니의 혁신이 가능했다는 점 외에도 각각의 협상이 단 한명의 지배적 존재와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과정이었다고 아이거는 회고한다. 결국 최종적인 계약의 성사 여부는 매번 인간적인 요소에 좌우되었다는 것이다.* 트위터 인수는 직전에 발을 빼다 - 플랫폼 기업 인수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디즈니는 스냅챗, 스포티파이, 트위터를 대상으로 검토하다 트워터 인수를 결정한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유통 플랫폼을 통해 영화와 TV 프로그램, 스포츠 중계, 뉴스를 배급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디즈니와 트위터 모두 거래를 허락해 최종 인수 결정만 남은 상태에서 아이거는 갑자기 인수 계획을 백지화한다. 헤이트 스피치(선동 발언) 관리 문제 등 디즈니가 감당하기 어려운 난제들을 버겁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21세기 폭스마저 품에 안다 - 아이거는 픽사와 마블, 루카스필름을 모두 합친 것보다 훨신 규모가 큰 인수작업에 도전한다. 루퍼트 머독과의 만남에서 매각 의사를 읽은 후 과감한 인수 적업에 나섰다. 하지만 주당 28달러 수준으로 책정했던 디즈니와 달리 인수 경쟁사인 컴케스트는 35달러를 제시하며 공격적으로 나섰다. 아이거는 컴케스트가 여러 법률적 규제의 한계를 갖고 있다는 점을 파고 들어 결국 주당 38달러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폭스사 인수에 성공했다.* 밥 아이거 어록 - “혁신이 아니면 죽음이다.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면 혁신은 불가능하다”. “경험보다 능력을 중시하라. 사람들이 스스로 지녔다고 아는 수준보다 높은 역량을 요하는 역할을 맡겨라”. “부정적으로 시작하지 말고, 작게 시작하지도 말라”. “안전제일주의를 경계하라”. “위대함을 창출할 수 있는 사업에 뛰어들라”. “야심이 기회를 앞서 달리게 하지 마라. 야심은 자칫 생산성 저하라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어떤 조직에서든 한 사람이 너무 오래 권력을 잡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당신의 목소리가 방 안 다른 모든 사람의 목소리보다 크게 울리는 것을 당신 자신은 깨닫지 못한다”.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2020-05-26 07:00 조진래 기자

[갓 구운 책] 그 시절 패션 피플들이 전하는 100년사 ‘패션 플래닛’

패션 플래닛 | 그림으로 보는 지구별 패션 100년사 I 나타샤 슬리 지음 | 전하림 옮김 | 신시아 키틀러 그림(사진제공=보물창고)패션은 한 사람의 삶, 개성, 가치관, 정체성 등과 사회, 시대의 변화 그리고 역사를 담고 있다. 그 패션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그림책 ‘패션 플래닛’이 출간됐다.패션 역사의 축을 이룬 전세계 스물다섯 곳의 현장을 그림으로 소개하는 책은 그 시대와 상황에 어울리는 차림으로 함께 할 한쌍의 남녀를 등장시킨다.왈츠 음악에 춤추는 영국 사교계와 제2차 세계대전 중인 영국, 프랑스의 러시아 발레단 공연장 풍경, 여성을 위한 새로운 시대로 접어든 20세기와 할렘 르네상스가 꽃피는 미국, 인파로 북적이는 중국 상하이의 거리 한복판, 미국 할리우드의 레드 카펫 위, 프리다 칼로의 멕시코, 인도 발리우드, 전쟁 중인 베트남 사이공, 헐렁한 코알라 스웨터가 돋보이는 호주의 소풍, 서독의 사치스러운 파티, 일본 하라주쿠 등 화려한 패션 현장들이 일러스트로 펼쳐진다.각 장은 현장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시기, 장소, 주요 디자이너, 실루엣, 밑단, 소매 부문의 패션 스타일을 요약한다. 더불어 당시 유행을 따른 다양한 패션 피플들 옆에는 보다 구체적인 설명들을 곁들였다.유행하던 패션이나 스타일 뿐 아니다. 패션에 깃든 자유의지, 저항, 유행음악과 문화, 인종차별, 빈부격차 등의 불평등 현상 등도 흥미롭다. 25개의 패션 현장 뒤에는 패션과 시대별 실루엣, 신발, 모자, 가방 등 패션 아이템의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연대표가 배치돼 이해를 돕는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0-05-23 22:10 허미선 기자

[갓 구운 책] 허덕이는 일에서 벗어나 진짜 ‘내 일’을 완성하기 위한 ‘빅 워크’

빅 워크 | 매일 쳐내는 일에서 벗어나 진짜 내 일을 완성하는 법 | 찰리 길키 지음 | 김지혜 옮김(사진제공=위즈덤하우스)하고 싶은 일은 번번이 마감, 주어진 일, 생계, 책임 등 눈앞에 놓인 일에 밀리고 만다.찰리 길키(Charlie Gilkey)의 ‘빅 워크’는 꿈, 하고 싶은 일 그리고 스스로에 대해 믿음 보다는 불안감이 드는 이들에게 ‘진짜 내 일을 완성하는 법’에 대해 조언하는 책이다.시간 관리, 자기계발, 리더십 전략도구를 제공하는 웹기업 ‘생산적 번영’의 설립자인 찰리 길키는 ‘빅 워크를 위한 책상 정리’ ‘프로젝트 계획하기’ ‘계획 실천하기’ 3개부, 10개장에 두루뭉술한 생각을 구체적인 단어로, 막연한 꿈을 실행 가능한 프로젝트로 변환시키는 방법을 나눠 담았다.저자가 말하는 ‘빅 워크’는 꿈을 이루기 위해 확실하게 이뤄야할 ‘진짜 중요한 일’이자 ‘인생의 핵심 과제’다.꼭 이루고 싶은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 골라내기, 그 아이디어를 단순한 단어로 표현해 목표 구체적으로 설정하기, 목표를 작은 프로젝트로 나누고 연결하고 배열해 실행하기 등 인생의 판과 틀을 바꿔나가는 빅 워크 실행법이 흥미롭다.아무리 좋은 방법과 조언도 반복적으로 미루거나 스스로 의지를 다지기와 실천을 하지 않으면 내 것이 되지 않는다. 저자의 조언처럼 지금이 바로 ‘그때’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0-05-23 20:00 허미선 기자

[갓 구운 책] 오롯이 독자들이 평가하고 추천하는 맛집 ‘블루리본서베이 전국의 맛집 2020’

블루리본서베이 전국의 맛집(2020) | BR미디어 편집부 지음(사진제공=BR미디어)2005년부터 발행된 맛집 평가 및 소개서 ‘블루리본서베이 전국의 맛집’ 2020년판도 출간됐다.‘한국판 미쉐린가이드’로 평가받는 ‘블루리본서베이’는 전문가와 2만여명의 독자들의 평가를 바탕으로 서울을 제외한 지역의 맛집 소개서다. 올해 소개되는 맛집은 3281개로 지난해(3249개)에 비해 32곳이 늘었다.독자들의 1차 평가 결과 리본 2개 맛집 중 전문가들로 꾸린 ‘블루리본 기사단’ 평가로 리본 3개 맛집을 선정하던 지금까지의 평가방식에서 벗어나 오롯이 독자들의 평가결과로만 선정했다.리본 1개는 다시 방문하고 싶은 곳이며 2개는 추천 맛집, 3개는 해당 분야에서 최고의 솜씨를 보이는 곳이다.2020년의 리본 3개짜리 맛집은 세종시 프랑스식 레스토랑 시옷.레스토랑서승호가 유일하다. 2017년부터 4년 연속 리본 3개를 받은 시옷.레스토랑서승호는 국내 프렌치 오너 셰프 1세대인 서승호 셰프가 20여년 간 정통 프랑스 요리를 선보이는 곳이다.리본 2개 맛집은 146개로 지난해에 비해 7곳 늘었고 리본 1개짜리 맛집은 1191개로 전년대비 22개 줄었다. 책은 부산광역시부터 충청북도 충주시까지 지역별, 가나다순으로 정리돼 있으며 맨 앞 목차는 일반한식, 가금류, 면류, 민물어패류, 어패류, 육류, 탕/국/찌개로 분류한 ‘한식’과 ‘중식’ ‘일식’ ‘이탈리아식’ ‘프랑스식’ ‘기타’ 그리고 ‘디저트/차/베이커리’로 정리했다.3281개의 맛집 정보 뒤에는 음식종류별, 가나다순으로 정리된 ‘찾아보기’로 편의성을 더했다. ‘전국의 맛집’에 이어 하반기에는 ‘서울의 맛집’이 출간될 예정이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0-05-23 19:00 허미선 기자

[갓 구운 책] 새로운 시대, 가장 압도적인 경쟁력! 나만의 ‘시그니처’

시그니처 | 자기다움을 만드는 7가지 심리 자산 | 이항심 지음(사진제공=다산북스)소문난 맛집에는 ‘시그니처’ 메뉴가 있다. 각종 브랜드나 상품 역시 그 정체성을 대표하는 ‘시그니처’들이 있다. 오롯이 나로 서기, 진정한 나 찾기, 나 자신 사랑하기(Love Yourself) 등에 집중하고 있는 요즘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저마다가 가진 시그니처의 가치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아직은 찾지 못했지만 혹은 찾았어도 어떤 ‘이유’로 외면하고 있는 ‘시그니처’의 가치를 일깨우는 책이 출간됐다. 저자는 진로심리학 및 긍정심리학 전문가 이항심 건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상담심리 전공 부교수다.책은 인공지능(AI)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 불확실의 시대 등의 미래 성장동력이자 희망을 “우리 안의 보석같은 시그니처”라고 규정한다.‘새로운 일의 시대가 온다’ ‘시그니처를 키우는 심리자산이란’ ‘심리자산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시그니처를 확장하기 위한 마인드셋, A.I. 하라’ 4개부에 ‘나 다움’을 만드는 7가지 심리자산에 대한 모든 것을 담았다.책은 토스의 이승건 대표, 스타일셰어 윤자영 대표, 글로우 레시피 사라 리 대표, 옐로독 제현주 대표, 크래프톤 장병규 의장, 레드테이블 도해영 대표 등 시그니처 프로젝트에 참여한 12인의 사례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나만의 시그니처로 성공한 사람들의 7가지 비밀을 7개장에 나눠 설명하고 있는 2부는 장마다 ‘심리 자산 키우기 훈련’을 할 수 있는 페이지를 마련하고 있다.AI로 인해 급변하는 일에 대한 패러다임, 보이지 않는 가치, 나를 드러내는 용기 등의 시대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압도적인 경쟁력은 결국 ‘나만의 시그니처’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0-05-23 18:00 허미선 기자

[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 <이광형 카이스트의 시간> 심재율

카이스트 이사장을 역임했던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은 “이광형 교수는 내 사부이고 가정교사였다"면서 "이 교수 덕분에 멋지게 은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혹자는 “이광형은 미래를 위한 씨앗을 심는 사람”이라고 극찬한다. 그가 배출한 많은 벤처 사업가 제자들이 증거다. 그의 사무실에 걸린 ‘거꾸로 걸린 TV’와 ‘거꾸로 붙여놓은 카이스트 조직도’가 그의 학문적 가치관나 평생의 삶의 원칙을 그대로 보여준다. 모든 것을 뒤집어 생각해 보고, 섬겨야 할 사람을 성심으로 섬겨야 한다는 마음가짐이다. 그는 올해 정년이다. 그의 마지막 꿈은 은퇴 전에 카이스트에 미술관을 선물하고 떠나는 것, 그리고 ‘포스트 AI연구소’를 설립하는 것이라고 한다. 일간지 기자 출신으로 오랫동안 이광형 교수를 지켜봐 온 저자가, 괴짜지만 미래 혜안이 남달랐고 특히 제자 사랑이 각별했던 참스승의 한 모델을 담담하게 소개한다.* 정문술의 515억 기부 -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은 2001년에 300억원, 2014년에 215억원 등 모두 515억원을 카이스트에 기부했다. 그 때마다 그는 이례적으로 이광형 교수가 반드시 이 금액을 집행해야 한다고 전제조건을 달았다. 첫 기부금은 대한민국에 융합교육의 씨앗을 뿌리는 바이오및뇌공학과 설립에 쓰였다. 정문술 회장은 자신이 기부한 돈으로 세워진 건물의 기공식과 준공식에도 참석하지 않고 모든 것을 이 교수와 카이스트에 일임했다.* 정치권과 거리 둔 정문술 회장 - 정 회장은 미래산업 은퇴 후에도 7% 가량의 지분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안철수가 2012년 대통령 선거 후보로 거론되면서, 그가 카이스트 정문술석좌교수였다는 한가지 이유만으로 미래산업의 주가가 덩달아 뛰었다.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 정 회장은 주식을 모두 처분하면서 미래산업과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최후의 수단을 쓸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정 회장이 정치 테마주를 이용해 폭리를 취했다고 비난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작전세력이 더 이상 장난을 치지 못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정문술과 이광형의 인연 - 두 사람의 인연은 1996년 이 교수가 석사박사 과정 학생 7~8명을 데리고 천안의 미래산업 본사를 방문하면서 시작됐다. 자식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기술사관학교의 주인이 누구인지 보고 싶어서 였다. 이 때 주 사람은 바이오와 정보통신의 융합에 의기투합했고, 정 회장은 이 교수를 미래산업의 석좌교수로 영입하려 했다. 이것이 여의치 않자 카이스트에 거액의 기부를 결정하게 된다.* 인공지능 퍼지 전문가 이광형 - 컴퓨터가 인간처럼 생각하려면 애매한 단어를 배워야 하는데, 퍼지 이론은 컴퓨터에 이간처럼 불확실하고 애매한 정보를 다룰 수 있게 해 주는 기술이다. LG산전이 여러 대의 엘리베이트를 통합 관리하는 그룹 컨트롤 엘리베이터를 개발할 때 퍼지 기술을 사용하면서 이광형 교수가 참여했다. 포스코와 광양제철소에서 음료수 캔 용 0.2mm 철판을 국산화할 때도 그의 퍼지 이론이 활용되었다. 그는 프랑스 중부 도시 리옹의 인사(INSA)에서 인공지능에 관한 페트리 네트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가르치는 교수 - 이광형은 항상 다른 사람과 다르게 하고 싶어하고 어제와 다르게 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는 존재하지 않는 ‘미존(未存) 수업’을 진행한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논하는 수업이다. 화성에 건축하는 기술, 로봇 노동조합 규약 만들어 오기 등이 과제다. 그는 도표를 만들 때 현재 시간을 2021년으로 1년 앞서게 표시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현재를 하나 앞서 살기 위해, 현재를 항상 1년 후로 생각하고 삽니다.”* 이광형의 리더십 9원칙 - 하나, 꿈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라. 둘, 사심을 버리고 대의를 쫒아라. 셋, 눈 앞의 이익보다 신의를 우선시하라. 넷,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 다섯, 항상 정도를 지켜라. 여섯, 본질을 타협하지 말라. 일곱, 사람의 장점을 보라. 여덟, 30초만 본능을 참아라. 아홉, 상대에게 이로운 존재가 되어라.* 이광형의 마음 속의 책 -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에디슨전기를 읽고 과학자의 길을 택했다. 예일대 교수인 에이미 추아가 쓴 제국의 미래를 읽고는 제국으로 발전한 국가의 성공요인이 ‘관용’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시바 료타로가 쓴 료마가 간다에서는 공적인 일을 하면 영원히 남는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고 말한다.*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바이오및뇌과학공학과 - 정문술 회장의 기부금이 들어오자 카이스트 내에서는 이 기금을 나눠 쓰자는 압박이 엄청났다. 하지만 이 교수는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生 必生卽死)이라는 글이 적힌 액자와 출사표(出師表)라고 쓰인 한 장의 부채를 사무실에 걸어놓고 보면서 “한 푼도 허트루 쓰이지 않도록 하겠다”고 이를 악물었다고 한다. 정 회장도 이 기부금을 탐내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단 1원이라도 다른 학과에서 가져가면 기부금을 전부 회수하겠다”고 엄포를 놓아 무마시켰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광형 교수 포함 세명의 교수진으로 바이오시스템학과로 출범했다가 추후 이름을 뇌과학공학과로 바꾸고 지원생도 급증했다고 한다. 현재는 교수 26명으로 늘어 대한민국에서 교수 숫자가 가장 빨리 늘어난 학과가 되었다. 삼성이나 LG도 결국 바이오를 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해 밀어붙였던 것이다.* ‘융합’을 무시했던 카이스트 첫 외국인 총장 러플린 - 이론물리학으로 노벨상을 받은 이력 덕분에 카이스트 첫 외국인 총장에 선임된 로버트 러플린은 이 교수가 유치한 정 회장의 기부금 300억원의 집행권을 가져가려 했다. 그는 바이오와 정보통신의 융합 자체를 전면 불신했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가 이슈가 되자 황우석 팀을 데려오는데 이 돈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연임이 무산되면서 학과 해체 위기도 넘기게 되었다. 무엇보다 행정 경험이 없고 한국 대학 교육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당시 교수들이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저자는 전한다.* 세계 일류대학을 만들기 위한 세가지 조건 - 이광형 교수는 첫째, 총장 임기를 5+5로 늘려 연속성을 갖게 해애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 MIT는 150여년의 역사에서 총장이 10여명에 불과했고 하버드대학도 20년 총장이 여럿 있었다는 것이다. 둘째, 자율권을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교육 당국의 전문성과 함께 대학에 일관적인 정책과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셋째, 국제 경기에 나가 싸울 자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MIT의 교수 대 학생 비율이 1대7인데 반해 카이스트는 1대17 정도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카이스트의 개혁 - 서남표 총장은 테뉴어(정년 보장 교수) 심사를 강화해 재임용을 어렵게 하는 개혁을 추진했다. 대신 MIT의 3분위 1 수준이던 교수 인력을 400명에서 600명 수준으로 대폭 늘렸다. 입학사정관제를 제일 먼저 도입하는 대가로 정부로부터 증원 허가를 받았다. “이공계 대학은 좋은 사람만 뽑으면 부도 안납니다”라며 적극적으로 우수 교수 채용에 나섰다. 요즘도 카이스트는 한 해에 40~50명의 교수를 뽑는다. 매년 30명 정도가 은퇴하니 전체 교수 수 증가는 크지 않다고 한다. 서 총장은 또 강력한 교수 평가 제도를 마련했다. 이광형이 고무처장으로 실무를 담당했다.* 한국과학영재고를 카이스트 부설로 - 교무처장으로 재직하던 2006년에 대학 본부에서 이광형에게 영재교육원장 겸임을 요청했다. 영재교육연구원은 과학기술부가 지정해 카이스트가 운영하고 있었다. 당시 직원은 4명이었고 부산의 한국과학연재학교에 10여명의 교수를 파견하고 있었다. 이광형은 이 학교 운영을 국가로 넘기려는 의도를 알고. 각고의 설득 끝에 이 학교를 카이스트 부설로 만들었다. 지금은 매년 20~30명의 카이스트 교수들이 강의를 하고, 3학년 학생 30명은 2학기부터 대전 카이스트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연구생활을 시작한다. 이제 이 학교는 전 세계 30~40개 과학영재학교 가운데 싱가포르, 러시아와 함께 ‘빅3’에 꼽힌다고 한다.* 벤처창업의 요람 카이스트 전산학과 - 김택진과 김창주 송재경은 서울대학교 학부 시절 같이 공부한 친구들이다. 이들을 게임업계 3인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나와 송재경과 김정주가 카이스트 전산학과로 진학하면서 기숙사에서 같이 지냈다. 전산학과에서 김정부와 이해진이 룸메이트였고, 송재경과 김영달은 옆방이었다. 이해진은 나중에 네이버를 설립했고, 김영달은 세계적인 보안카메라 회사 아이디스를 세웠다. 이런 인연으로 후에 김정주와 송재경은 의기투합해 넥슨을 만들었다. 송재경은 졸업 후 김정주와 헤어져 김택진과 엔씨소프트를 만들었다.* 해킹 천재 김창범과 김병학 - 해킹의 선구자였던 두 사람은 인터넷을 통한 해킹 시도를 막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인젠’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지도교수였던 이광형도 이 회사에 투자했다. 그런데 회사가 번창하자 임시로 앉혀놓은 사장이 말썽을 부렸고, 이에 두 사람은 회사를 포기하고 나와 ‘해커스랩’을 세운다. 김병학은 현재 카카오에서 AI 담당 부사장으로 있다. 김창범은 김영달과 함께 카드에 인쇄해주는 산업용 프린터 생산 기업을 운영중이다. 운전면허증이나 신용카드에 글자를 인쇄하는 기계다.* 겉돌던 김정주를 바로세워준 이광형 - 넥슨의 창업주 김정주는 카이스트 학창시절에 첫번째로 들어간 연구실에서 적응을 하지 못했다. 머리를 수시로 염색하고 신발 끈을 다른 색깔로 매고 다니는 등 통제와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다. 다행히 이광형 교수실로 옮기면서 하고 싶었던 게임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고 게임회사까지 차릴 수 있었다. 이광형 특유의 ‘방해않기’ 교습법 덕분이었다. 비교적 자유방임형으로 학생들을 다루니 마음껏 자신의 기량을 펼칠 수 있었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시장을 상상하며 인터넷 게임을 만들었던 그였기에, 정작 인터넷이 깔리게 되었을 때 당연히 선두주자가 될 수 있었다. 김정주의 특성에 대해 이광형은 돌발성, 창발성을 들었다. 김정주는 회사를 사장에게 맡기고 자신이 지은 새 사옥의 준공식에도 참석않는 등 정문술과 닮은 행보를 펼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김정주는 아이템 준비를 위해 3분의 1 시간을 해외에서 보낸다고 한다.* 제조업으로 성공한 김영달 - 많은 카이스트 전산학과 학생들이 검색 포털 게임 등의 분야로 흩어졌지만 김영달은 예외적으로 제조업으로 시작했다. 재학 시절 이광형의 배려로 글로벌 기업이나 연구소에서 다양한 인턴 경험을 쌓았다. 덕분에 프로젝트 수행의 성과로 얻은 종자돈으로 훗날 아이디스를 설립할 수 있었다. 그는 특히 이광형 교수가 안식년 차 스탠퍼드연구소에 있을 때 제자들을 몇 개월씩 인턴으로 불러온 덕분에 실리콘밸리를 경험할 수 있었다. 다양한 분야를 섭렵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망라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이 아이디스의 독보적 기술력의 원천이 되었다.* 대학에 특허권 부여해야 - 저자는 기술을 대학이 보유하고 각 기업에게 무상으로 실시권을 주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미국에서는 기업이 비용을 대고 대학교에서 연구하면 특허권을 대학이 갖는다고 한다. 비용을 댄 기업은 특허권을 무상으로 사용하는 권리를 갖는다. 미국 출신의 서남표 총장은 기업과 하는 모든 연구의 특허권은 카이스트가 갖고, 기업에는 무상 실시권을 주도록 했다. 이후 카이스트는 기업과 연구계약을 할 때 가장 먼저 지적재산권을 챙긴다.* 지식재산대학원 설립 - 이광형 교수는 지식재산대학원 프로그램(MIP)을 커이스트에 설립한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는 미래에 지식재산이 국가의 핵심 자산이 되려면 이 분야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믿었다. 미국의 일류 법학전문대학원 노스웨스턴 로스쿨(NLaw)와 복수학위 과정도 만들어 냈다. 그는 특허청이 2010년부터 5년간 매년 6억원을 지원해 주기로 한 것도 3년째부터는 받지 않았다. 대학원 자립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이유에서다. 이 수업에 많은 유능한 인재들이 모여 연구한 덕분에 인텔 등과의 저작권 소송에서 이길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미래학을 개척하다 - 이광형 교수의 주도로 카이스트에 미래전략대학원이 설립되었다. 이를 계기로 2016년에는 사단법인 미래학회도 출범했다. 이광형 교수는 동료 임춘택 교수와 함께 STEPPER 미래예측법을 제시했다. STEPPER는 Science Technology Environment Population Politics Ecinomy Resource의 약자로, 미래를 변화시키는 7대 동인을 뜻한다. 즉, 미래예측을 위한 핵심동인 추출 방법이다. 우리 사회를 바꾸는 요소 가운데 주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찾아 그 요소를 중심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방식이다. 그는 정년 퇴임 전에 해야 할 일로 미래 세상을 연구할 ‘포스트 AI연구소’ 설립을 꼽는다.* 이광형의 창의력 개발법 - 창의력 개발법이란 문제의 답을 구하기 위해 어떻게 질문하느냐를 다루는 방법론이기도 하다. 창의력을 개발하려면 질문을 잘해야 한다. 이 교수의 창의력 개발법은 무슨 주제이든 세가지 요소를 물어보라고 요구한다. 시간에 대한 질문, 공간에 대한 질문, 분야에 대한 질문이다. 이를 잘 훈련하면 누구나 어렵게 느껴지던 미래예측이 10분만에 전체적인 구도가 드러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교수는 이밖에도 ‘상품에서 배운다’는 개념의 RSP(Reverse Science from Product) 교육 등 과학교육의 흥미를 돋우는 독창적인 교육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은퇴 후에 이 RSP 교육을 기업들과 함께 키워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교육을 확장시키고 ‘빅 사이언스 히스토리’를 연구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은퇴 후 꿈이다.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2020-05-23 07:00 조진래 기자

[갓 구운 책] ‘노력’을 ‘성공’으로 이끄는 3단짜리 변화의 사다리! ‘래더’

래더 실패, 한계, 슬럼프라는 벽을 뛰어넘는 변화의 사다리 | 벤 티글러 지음 | 김유미 옮김(사진제공=중앙북스)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혹은 노력은 성공의 어머니라고도 했다. 하지만 노력은 늘 배신하고 성공 보다는 실패로 보답하곤 한다.독일·영국·네덜란드 등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비즈니스 코치이자 변화와 리더십 분야의 가장 주목 받는 연구자 벤 티글러의 신간 ‘래더’는 “노력만으로 바뀔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라고 꼬집는다.저자는 30년 동안 공들인 행동변화에 대한 연구성과를 비롯해 글로벌 기업 CEO 컨설팅 노하우를 접목해 변화를 이끄는 그리고 ‘노력’을 ‘성공’으로 바꾸는 3단짜리 변화의 사다리를 제시한다.그 변화의 사다리는 성공과 변화를 위한 ‘행동 계획’(Action Plan)을 단순화한 것으로 ‘목표 설정’ ‘행동 결정’ ‘지지대 점검’ 3단으로 구성된다.저자는 ‘노력만 하는 인생은 위험하다’ ‘우리는 왜 스스로를 바꾸는 데 서툰 걸까?’ ‘변화의 사다리는 어떻게 노력을 성공으로 이끄는가?’ ‘실패할 계획을 세우지 말고 성공할 계획을 세워라’ ‘단순하고 쉬운 행동으로 성취하는 즐거움을 느껴라’ ‘행동 지원 방법을 최소 3가지 이상 찾아라’ ‘매번 포기하는 사람에서 결국 이기는 사람으로’ 등 7개 챕터에서 직관적으로 묻고 답을 제시한다.170년 투쟁의 역사를 가진 ‘손 씻기’, 기본을 지키는 것에 대한 가치, 자신에 대한 평가와 문제점 진단, 행동을 결정짓는 3가지, 3단짜리 변화의 사다리를 위한 1-1-3 법칙 등이 상세하게 담겼다. 더불어 각 챕터 마지막에 배치한 ‘삶을 변화시키는 질문 노트’와 ‘누구나 실전에 적용 가능한 행동변화 체크리스트 82개를 담은 부록 등도 유용하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0-05-23 00:08 허미선 기자

[갓 구운 책] 까다롭지만 오랜 벗이 될 만한 ‘버번 위스키의 모든 것’

버번 위스키의 모든 것 술꾼의 술, 버번을 알면 인생이 즐겁다 | 조승원 지음(사진제공=싱긋)천혜의 환경, 대를 이어온 장인들, 그들의 철학과 경험이 담긴 증류소, 제조법과 역사…. 스물한살부터 죽을 때까지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술의 역사와 만들어지는 과정, 대표 증류소탐방기를 담은 ‘버번 위스키의 모든 것’이 출간됐다.저자는 술이 너무 좋아 국가공인 자격증인 조주기능사를 취득한MBC 보도국 디지털뉴스제작팀장이자 ‘탐사기획-스트레이트’ 진행자 조승원 기자다. 그는 MBC 창사 50주년 다큐멘터리 ‘술에 대하여’를 제작·연출하기도 했다.   오아시스, 밥 딜런, 이글스 등 뮤지션들의 작품과 그들이 사랑하는 술을 다룬 ‘열정적 위로, 우아한 탐닉’과 소설가 하루키 작품에 등장하는 술을 분석하고 그의 단골가게를 탐방한 ‘하루키를 읽다가 술집을’에 이은 조 기자의 세 번째 책이다.책은 ‘켄터키 바즈타운 주변’ ‘켄터키 루이빌 주변’ ‘켄터키 프랭크포츠, 로렌스버그, 렉싱턴 주변’ ‘테네시 주변’ 등 지역별로 분류된 메이커스 마크, 짐 빔, 버팔로 트레이스, 잭 다니엘스 등 증류소 17곳 탐방기를 4개장에 나눠 담았다.버번 위스키의 역사, 만들어지는 과정, 각 증류소의 특징과 철학과 더불어 버번에 어울리는 컨트리·블루스·록 등 음악과 관련 명언 그리고 뉴올리언스 술집 탐방기 등 알찬 정보들이 부록으로 담겼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0-05-22 23:40 허미선 기자

[비바100] '인류세'이자 '자본세'가 맞은 절체절명의 위기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저비용 고수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저렴한 것을 찾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저렴한 노동력, 저렴한 자원, 저렴한 에너지, 저렴한 화폐, 저렴한 물건, 저렴한 식량 등을 좇으면서 환경은 파괴되고 식민역사가 만들어지며 극단적인 불평등 사회가 구축된다. 부단히 국경을 넘나들면서 전염병이 창궐하고 화폐 가치는 곤두박질치고 주기적으로 금융위기에 직면한다.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는 그 자본주의 역사를 통해 현재의 위기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책이다. ‘경제학의 배신’(The Value of Nothing), ‘식량전쟁’(Stuffed and Starved), ‘먹거리 반란’(Food Rebellions!) 등의 라즈 파텔(Raj Patel)과 ‘생명망 속 자본주의’(Capitalism in the Web of Life), ‘인류세인가? 자본세인가?-자연, 역사 그리고 자본주의의 위기’(Anthropocene or Capitalocene? Nature, History, and the Crisis of Capitalism) 등의 제이슨 무어(Jason W. Moore)가 함께 꾸린 책이다.경제학, 개발사회학, 역사지리학, 정치생태학의 대가들은 현재의 세상은 문명이 발생한 신생대 제4기의 마지막 시기를 일컫는 홀로세(Holocene Epoch)도, 인류의 자연환경 파괴로 지구 환경체계가 급격한 변화를 맞은 인류세(Anthropocene)도 아닌 ‘자본세’라고 주장한다. 자본주의에서 기인한 발전과 위기로 빚어낸 세상이라는 의미다. 더불어 원제 ‘A History of the World in Seven Cheap Things-A Guide to Capitalism, Nature, and the Future of the Planet’에 명시돼 있는 7가지 저렴한 것들의 역사를 통해 현재 위기의 기원을 찾아 진단하고 처방한다.“결혼 전에는 욕실에 물때가 끼는 법이 없었어요.” 갓 결혼한 부부는 이렇게 하소연하곤 한다.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결혼 전의 욕실 물때는 어머니, 때때로 아버지가 보이지 않게 처리하거나 예방해 왔던 일들 중 하나였을 터다. 인류학적으로는 ‘희생’ 혹은 ‘배려’하는, 자본주의 개념으로는 ‘착취’ 당하는 누군가가 있었다는 의미다.소풍 때 혹은 부유한 가정에서나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특별하고 귀했던 바나나는 현재 가장 싸고 흔한 과일이 됐다. 혹은 누구나 그런 경험들이 있다. 분명 제대로 계획을 짜 비용을 책정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선가 돌연 튀어나오는 지출들에 당황하기 일쑤다.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라즈 파텔 , 제이슨 W. 무어 , 홍기빈 (해제) 지음 | 백우진 , 이경숙 옮김(사진제공=북돋움)책은 ‘자본주의’의 본격화를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이 아닌 1419년 포루투갈 선원들에 의해 발견된 섬 ‘일리야 다 마데이라’에서 시작된 설탕까지 거슬러 오른다. 유럽 궁정에서 시작해 부자들이나 소비하던 설탕을 좀 더 많이, 싸게 생산하기 위해 식민지가 생겨났고 노동착취가 발생했으며 설탕 생산을 위한 연료로 쓰인 나무들은 몽땅 베어졌다.급기야 1530년에 이르러서는 “위풍당당한 나무로 빽빽이 들어차 빈 곳이 없었던” 숲의 섬이라는 뜻의 섬 마데이라 어디서도 나무를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설탕은 현재 매우 싼 조미료가 됐다. 닭은 어떤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유전자 변이를 통해 부풀려지고 무한생산되면서 저렴한 식재료가 됐다. ‘자본주의’의 본격화를 600년 전이라고 주장하는 저자들은 지금의 세계를 “자본주의가 무한 축적이라는 힘에 추동돼 프런티어를 지구 전역으로 확장한 생태계”라고 정의한다.그 생태계 속에서 “세계를 싸구려로 만듦으로서 작동해온”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저렴한’ 7가지로 인류가 봉착한 지금의 위기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한다. ‘자연’ ‘돈’ ‘노동’ ‘돌봄’ ‘식량’ ‘에너지’ ‘생명’. 이 7가지를 저렴하게 하기 위해 더 넓은 생명망을 통제하는 총체적인 전략을 구사해야 하고 누군가는 희생 혹은 착취당하며 불평등의 피해자로 남는다. 지금의 여성, 유색인종, 가난, 무자비하게 파괴된 자연 등이 그 비극의 결과물들이다. 그렇게 책은 어쩌면 자본주의에서는 당연한, ‘저렴함’을 추구하는 전략이 현재의 금융위기, 환경문제, 극단적 불평등 등을 불렀다고 주장한다. 7개장에 나눠 담긴 ‘저렴해진’ 7가지의 역사를 읽다 보면 결국 자본주의는 인류에 의해 진화돼 현재에 이르렀음을 깨닫게 된다.어려운 경제학, 지질학 용어는 배제해도 좋다. 7개 저렴한 것들이 지금에 이른 과정을 현재 가장 두드러진 위기 중 하나에 대입만 해봐도 이해는 빨라진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팬데믹으로 전세계가 신음하고 있는 현재의 세상 역시 저렴한 7가지를 좇는 자본주의에서 기인한다.저렴한 노동, 자연, 돈, 에너지 등을 추구하는 기업들은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를 무한양산했다. 한때 불가능에 가까운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이 살아보기 챌린지가 큰 화젯거리가 될 정도로 중국산 제품은 세상을 지배했다. 중국 우한발(發) 코로나19는 그간 인류가 ‘저렴함’을 추구하면서 외면했던, 생명을 돌보기 위한 의료체계의 빈틈에 무차별 공격을 가하고 있다. 그렇게 돌봄도, 생명도 저렴해지며 그 가치를 잃어버리고 있는 중이다. 저자들의 주장처럼 “모든 것을 싸구려로 만들며 자본주의가 감춰온 비용이 지금 우리에게 청구서로 날아든” 셈이다.예측하지도 못했던 비용의 청구서같은 지금의 위기는 사실 늘 존재해 왔던 것들을 감추고 외면한 데서 불거진 결과다. 현재 위기의 기원, 진짜 원인을 찾아 거슬러 오르면 자본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그렇게 저자들은 지금을 ‘자본세’라고 정의내렸다. 하지만 그 자본주의 역시 인간에 의해 진화되고 왜곡되며 현재에 이르렀다. 결국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은 지금은 ‘인류세’이자 ‘자본세’인 셈이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0-05-19 20:11 허미선 기자

[갓 구운 책] 집 밥도 이정현의 손끝에서 '예술'로 탄생!

이정현의 집밥 레스토랑|저자 이정현|1만9800원.(사진제공=서사원)배우이자 가수로 활발히 활동중인 이정현이 요리책을 내놨다.‘이정현의 집밥레스토랑’은 누군가의 아내이자 친구로서 주변을 기쁘게 해줬던 ‘순간’들을 101가지 레시피로 묶은 책이다.최근 예능을 통해 화제가 된 만능 간장부터 바질 페스토, 닭볶음 감자 크로켓, 달걀장, 에그노그 커피까지 은근 하기 어려운 요리를 따라하기 쉽게 정리해놨다.기본 육수와 양념장만 있으면 10분 안에 집 반찬이며, 국, 찌개, 김치등 한식과 더불어 다양한 나라의 요리를 넘나든다.저자는 “어린 나이에 데뷔해서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마음의 병이 오기도 했다. 그때마다 스트레스와 기분 좋은 긴장감 속에 힐링할 수 있는 요리를 접했다”면서 “식당에서 맛본 요리도 집에 와서 금세 따라 만들 만큼 제법 실력이 붙고 나서는 가족, 친구들과 음식을 나누는 기쁨을 누렸다. 이제는 독자들과 그 순간을 나누고 싶다“라며 출간한 계기를 밝혔다페이지마다 직접 메뉴를 고르고, 재료를 따진 흔적이 역력하다. 추억을 되살리는 간식과 호텔식 조식 만들기 목차도 이정현의 요리 내공을 가늠하게 만든다. 단순히 보여주기 요리가 아닌 직접 손맛을 들인 티가 목차마다 가득하다. 1인 가구의 증가를 겨냥해 혼밥 메뉴부터 디너 모임에 적합한 한 상까지 다양한 메뉴가 준비돼 있다.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0-05-19 17:52 이희승 기자

[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로날드 D. 게르슈테

인류는 고대로부터 질병과의 고된 싸움을 이어왔다. 질병 극복의 역사라 할 만큼 인류는 질병과의 전쟁에서 고비를 겪고 결국 살아남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의사이자 역사학자인 저자는 인류가 경험한 질병, 그리고 그 질병으로 인해 고초를 겪었거나 유명을 달리 한 권력자들의 이야기를 묶었다. 만일 권력자들이 그 질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우리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는 호기심에서 시작된 작업이었다. 코로나19가 창궐하고 있는 이 즈음에, 아직 정체를 찾지 못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바꾸고 있는 ‘언텍트’의 현실을 지켜보면서 인류의 미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알렉산드로 대왕의 죽음과 로마제국의 탄생 - 저자는 알렉산드로스가 전쟁터에서 요절하지 않았다면 헬레니즘 문명을 이어받은 로마 제국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의문을 제기한다. 아마도 대도시에 끼어 그렇고 그런 도시쯤으로 전락했을 것이라고 저자는 전망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사망원인으로는 독살설이 가장 많이 언급된다. 지나친 음주로 십이지장이나 위 같은 내장기관에 궤양이 생겼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과음이 잦았던데다 상복부에 갑작스런 통증을 호소했다는 기록으로 봐, 급성 췌장염이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 병은 오늘날에도 약 20%의 사망률을 보일 정도로 위험한 질병이다. 안타까운 점은 대왕 사망 후 후계자 중의 한명이던 프롤레마이오스 장군이 그의 시신을 자신의 영토인 이집트로 모셔 갔다가 4세기 무렵 페스트와 쓰나마가 겹치면서 대왕의 묘가 쓸려나가 흔적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신병 등 중병에 시달렸던 로마제국 황제들 - 로마 황제들 가운데 편집증, 정신증, 조현병을 앓았던 대표적 인물로 네로, 엘라가발루스, 카라칼라 황제가 있다. 네로를 제외하곤 대부분 권좌에 오래 앉지 못하고 자살 또는 암살로 생을 마감했다. 네로는 54년부터 68년까지 14년 동안 로마제국을 지배했다. 의학적 관점에서 로마 문화를 고찰할 때 흥미로운 부분은 ‘공중위생의’ 발달이다. 당시 로마 화장실은 수도 시설과 연결되어 물로 배설물을 흘러내려 보내는 시스템이었다고 한다. 뒤처리가 여전히 비위생적이긴 했으나 청결과 위생을 추구했던 것 만은 사실이라고 저자는 전한다.* 로마제국의 5현자 - 로마제국의 번영을 이끈 5명의 황제를 ‘5현자’라고 부른다. 로마 제국 영토를 사상 최대로 확장한 트라야누스를 비롯해 네르바(96~98), 하드리아누스(117~138), 안토니누스 피우스(138~16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61~180)등이다. 유럽 강대국들은 그러나 이들보다 카이사르의 통치 방식과 그의 권력을 본받고 싶어했다. 로마 공화정을 1인 독재체제로 만든 점을 부러워한 것이다. 러시아 황제를 위미하는 차르(tsar), 독일 황제를 칭하는 카이저(Kaiser)등의 명칭 모두 카이사르(Caeser)에서 유래한 것이다.* 유럽의 역사를 바꾼 흑사병 ‘페스트’ - 크림반도 동쪽 끝자락의 ‘카파’라는 도시는 제노바 상인들이 활동하던 교역의 요충지였다. 1346년 여름부터 타타르인(몽골족)이 이곳으로 쳐들어왔다가 실패하고 돌아갔는데, 이 때 역병에 사망한 시신을 투석기에 매달아 카파 성벽 안으로 던져넣음으로써 페스트가 발발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1347년 가을 크림반도에서 출발한 배들이 시칠리아에 도착해 페스트를 퍼트렸고 급속히 확산되었다고 한다. 페스트는 사실 기록상으로는 고대 말기 무렵인 6세기경에 지중해 지역에 상륙했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페스트는 선폐스트, 폐페스트, 패혈성 페스트 세 가지로 구분되는데 폐 페스트의 사망률이 특히 심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페스트인 선페스트 환자들의 신체 부위가 괴사되면서 멍이 든 것처럼 까맣게 변한다 해서 ‘흑사병’이라고 불렀다. 페스트로 인한 사망자 수는 대략 18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는 당시 유럽 전체 인구의 30%에 이르는 규모다. 쥐벼룩이 페스트의 매개라는 주장은 스위스 의사 알렉상드르 예르상에 의해 1894년에 제기되었다. 이후 페스트균은 그의 이름을 따 ‘예르시나 페스티스’라는 학명을 지니게 된다.* 페스트의 희생양이 된 유대인들 - 흑사병이 급속도로 확산되자 사람들은 앞다퉈 희생양 찾기에 나섰다. 이들 광신도의 목표가 된 이들이 이번에도 유대인들이었다. 많은 역사가들은 그 시기에 자행된 범죄의 규모가 나치 정권이 유대인들을 계획적으로 말살하기 전까지 중세 유대인 사회가 맞이한 가장 큰 참사라고 말한다. * 페스트가 불러온 전화위복의 기회 - 흑사병이 엄청난 인명피해를 불러왔지만, 생존자들은 사회적 경제적 성황이 호전되는 이점을 누릴수 있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망해 모든 분야에서 노동력이 부족해졌던 덕분이다. 서유럽과 북유럽을 비롯해 유럽 전역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이 상승하고 농노 구하기도 힘들어져 노예 부릴 기회가 더 이상 주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1352년 이후 인구 수가 급감하면서 살아남은 이들은 이제 제한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수확량이 적은 토지들은 목초지로 전환시켰고, 기술 혁신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애정의 어두운 그림자 ‘매독’ - 이 질병 전파의 주역은 프랑스 샤를8세의 군대로 알려져 있다. 나폴리 방어군이 윤락녀들을 프랑스군 쪽으로 몰아낸 결과라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이 질병을 ‘나폴리 질병’이라고 부르고 이탈리아나 독일 등에선 ‘프랑스 질병’이라고 했다. 적대적인 인접 국가에 모든 책임을 돌리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프랑스 예술가들 가운데 유독 매독 의심환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샤를 보들레르, 기 드 모파상, 에두아르 모네, 폴 고갱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외에 베토벤, 슈베르트 같은 유명 음악가들도 같은 증상을 보였거나 이로인해 사망한 경우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도착 이전부터 원주민들 사이에 매독이 유행병처럼 번져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매독은 유럽에서 ‘왕의 천연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고위 성직자나 귀족사이에서 창궐했다고 한다. * 매독 예방하느라 탄생한 ‘콘돔’ - 매독 치료법으로 꽤 오랫동안 중금속의 일종인 수은이 사용되다 20세기 초반에 들어서야 폐지되었다. 수은의 독성을 몰랐거나 과소평가했던 것이다. 가브리엘레 팔로피오는 1564년 발간한 프랑스 질병이라는 책에서 매독의 증상과 당시 처치법, 그리고 예방법까지 소개했다. 그는 1100명이 넘는 표본집단에게 성관계를 가질 때 천으로 만든 작은 덮개를 사용하도록 하고, 그것이 매독 감염을 막을 수 있음을 주장했다. 이 실험 덕분에 팔로피오는 콘돔의 창시자가 되었다.* 기원전 1100년대에서 있었던 천연두 - 천연두는 기원전 1157년 사망한 파라오 람세스5세의 미라 얼굴에서 천연두가 관찰되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진 질병이었다 주로 아시아에서 발생해 아라비아 반도를 거쳐 아프리카 북부로 전파되었다. 1500년을 즈음해 유럽의 탐험가와 정복가들이 천연두를 신대륙으로 옮기면서 눈덩이처럼 피해가 커졌다. 대두창 바이러스의 경우 저승사자라 부를 정도로 치사율이 최대 50%에 달했다. 1980년 5월8일에 세계보건기구(WHO)가 완전 퇴치되었음을 선언하면서 완전히 박멸되었다. 괴테와 모자라트가 흉터를 남겼고 조지 워싱턴 미국 초대 대통령도 경미하지만 경험했다. 러시아의 표도르2세와 프랑스 루이 15세는 천연두에 걸려 사망한 국왕들이다.* 젖짜는 소녀 보고 천연두 예방법 찾은 제너 -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는 당시 소젖을 짜는 소녀들의 외모가 출중하다는 얘기를 듣고 관찰한 결과 이들이 천연두에 걸리지 않아 얼굴에 곰보 자국이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를 의학적으로 파고들어 젖짜는 소녀들이 우두에 많이 걸린다는 사실 알아내고, 우두에 걸려 손에 수포가 생긴 한 소녀에게서 수포액을 체취해 낸 덕분에 예방법이 나왔다. * 돌팔이 의사 때문에 사망한 바흐와 헨델 - 바흐의 눈 수술을 맡았던 의사 존 테일러는 의학사가들이 첫손 꼽는 유명 돌팔이 의사였다. 스스로 스위스에서만 몇백명을 실명케 만들었다고 실토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혼탁해진 수정체를 꼬챙이 같은 것으로 투명한 젤 속으로 밀어넣는 공막천공 기법을 활용했는데, 이런 수술이 합병증과 부작용이 컸다고 한다. 영국 왕 조지2세의 궁정의사로 임명되는 등 당시에는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당시 증인들은 바흐가 극심한 고열을 앓다 숨졌는데 이 원인이 테일러의 수술로 인한 감염이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수술 합병증으로 당뇨병도 극심했다고 한다. 테일러는 헨델까지 눈 수술을 해 주었는데 그 역시 공막천공 수술을 받은 몇 달 뒤 숨을 거두었다.* 부자들의 병 ‘통풍’ - ‘통풍은 신사들이 걸리는 병이고, 류머티즘은 마차를 끄는 마부가 걸리는 병’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통풍은 부자 병으로 알려져 있다. 의학의 아버지라는 히포크라테스 때도 통풍이 많았다. 그는 엄청난 포도주 소비량과 통풍 사이에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 의심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와 스페인의 카를로스5세는 통풍과 더불어 매독까지 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와 벤저민 프랭클린도 통풍을 심하게 앓았다고 한다. 요산과 통풍의 상관관계가 밝혀진 것은 18세기 후반에 와서다.* 세기적 전염병 콜레라 - 존 스노우는 세계 최초의 질병지도를 만들어 콜레라가 더러운 물을 통해 감염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1854년 제3차 콜레라가 영국을 덮쳤을 당시만 해도 악취나 나쁜 공기가 전염병의 원인이라는 ‘장기설(miasma theory)이 유력했으나, 스노우가 식수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면서 예방과 치료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되었다. 이후 런던은 인근의 테임즈 강이 아닌 시골지역의 템스강 지류에서 식수원을 조달키로 결정하는 등 유럽 전역의 식수원 변화에 촉매 역할을 했다.* 뇌졸중을 숨기고 대리집무시킨 우드로 윌슨 - 프린스턴대학 총장으로 재직하다 정치권으로 들어와 미국 대통령에 올랐던 우드로 윌슨은 대통령 집무 전부터 건강이 좋지 못했다. 뇌졸중은 그간 누적된 병들이 집약적으로 표출된 것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뇌졸중으로 직무 불능 상황이 왔으나 그의 최측근이었던 수석보좌관 조지프 터멀티, 개인주치의 캐리 그레이슨, 그리고 아내 에디스 3명이 비밀에 부치고 문병이나 면회를 철저히 관리하며 숨겼다. 그리곤 윌슨으로 하여금 억지로 서명을 하게 했다. 이 기간 1차 세계대전이 터졌으나 미국은 큰 탈 없이 지냈다. 하지만 국제연맹 가입을 미루는 등 국제사회에서 지켜야 할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 죽음의 인플루엔자 '독감' - 1918년 봄부터 1920년까지 전세계를 강타했다. 당시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가 2500만에서 1억명에 달했다. 당시 전 세계 인구의 최대 5%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이른바 스페인 독감이었다. 이렇게 사망한 사람이 1914~1918년 1차 세계대전 사망자보다 더 많았다. 첫 환자는 1918년 3월 미국에서 나온 것으로 기록된다. 1918년 8월에 2차 독감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는데 이 때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도 매우 심각한 상황을 겪었다.* 레닌의 굳어버린 뇌 - 소비에트 연맹의 창립자인 레닌은 동맥경화증으로 사망했다. 죽기 전 몇 달 동안 몇 차례 뇌졸중이 일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부검에 참가했던 두 명의 병리학자들은 당시 레닌의 뇌가 전형적인 신경매독증 환자의 뇌처럼 보였다고 증언했다. 물론 공식 부검서에는 이런 내용이 빠졌다. 레닌의 동맥경화증은 가족력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부친과 형제 가운데 같은 질병으로 사망한 사람들이 다수라고 한다. * ’왕의 안수‘로 치료하려 했던 결핵 - 폐병으로 불리는 폐결핵은 심한 기침과 피를 토하는 증상을 수반한다. 중세에 획기적인 치료법이 등장했는데, 프랑크 왕국의 왕 클로비스가 496년에 시행했다고 해 ’왕의 안수(按手)‘로 불리었다. 신으로부터 기름부음(축복) 받은 왕이나 여왕이 환자의 몸을 잠깐 스치기만 해도 병세가 호전되거나 치유된다는 믿음에 근거한 치료법이었다. 찰스2세는 재위 기간 동안 9만2000여명의 환자에게 안수를 해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하루 기준으로는 프랑스의 루이16세가 1775년에 무려 2400여명을 안수해 준 것으로 전해진다. 빅토리아시대에 폐결핵은 ‘아름다운 질병’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환자들의 외모가 창백해졌는데 새하얀 피부를 선호했던 당시 미인상과 일치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히틀러, 죽음에 대한 공포로 전쟁을 일으켰다? - 히틀러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포함해 자신과 가까운 이들이 줄줄이 사망하는 것을 보고 자란 탓에 결국 자신도 오래 살지 못할 것이란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1939년에 굳이 전쟁을 시작하려고 고집을 피운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일 수 있다고 저자는 관측한다. 특히 히틀러는 성장기에 심각한 폐질환을 앓았다고 진술한 바 있어 이런 추측에 무게를 더해준다. 서부전선을 지키는 동안 히틀러가 각종 전염에 대한 극심한 공포증을 갖게 되었고, 이런 공포증 때문에 감기에 걸린 사람은 절대 면담을 않고 반드시 손을 씻은 후 자신을 만나도록 의무화했다고 한다. 히틀러는 특히 파킨슨병을 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주치의에 따르면 히틀러는 강장제 비타민 등 각종 약물 주사를 주기적으로 맞았다고 한다.* 대통령 임기를 8년으로 헌법에 담게 한 루즈벨트 -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은 4+4년 연임이던 전통을 깨고 네번이나 대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하지만 마지막 출마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로 추대되었음에도 기력이 쇠약해져 러닝메이트 부통령 지명도 못했을 정도로 건강이 크게 악화된 상태였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얄타회담을 위해 장거리 여행을 하고, 11일이나 회의가 지속되면서 기력은 완전히 바닥이 났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건강 상태를 국민에게 속였다. 저자는 그의 대국민 사기극이 미국 헌법에 영향을 미쳤다고 단언한다. 실제로 루즈벨트 대통령이 고혈압에 뇌동맥 파열로 사망한 후 2년이 채 가기도 전인 1947년 3월에 미 의회는 대통령의 최대 임기를 8년으로 제한하는 수정헌법 제22조를 통과시켰다. 루즈벨트의 소속 정당인 민주당 의원들도 대거 찬성표를 던졌다.* '전쟁영웅' 칭호에 질병 숨긴 케네디 - 젊음의 활력의 상징으로 꼽히던 케네디 대통령은 사실은 10대 시절에 많은 질병에 고생했다고 한다. 1943년 태평양에서 일본 구축함에 의해 미국 어뢰정이 두동강 나 침몰할 때 중위로 근무중이었던 그는 당시 부상당한 승조원들을 구출하면서 전쟁영웅으로 칭송받았고 이를 토대로 정계에 입문해 대통령까지 거머쥐었다. 케네디의 건강에 관한 소문이 나올 때마다 예의 전쟁에서 입은 부상의 여파라고 둘러댔지만 정작 그는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충분히 분비되지 않는 애디슨병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이 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척추에 골다공증이 발생했고 이후 지속적으로 약물 치료를 받느라 건강이 말이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면역결핍증 에이즈 - 유엔에이즈계획(UNAIDS)에 따르면 에이즈를 유발하는 바이러스인 HIV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이 2017년 기준으로 약 3700만명에 이르고, 신규 감염자가 매년 180만명씩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 2017년 한 해 사망자만 94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유명인 가운데 허리우드 스타인 록 허드슨, 테니스계의 전설 아서 애쉬, 농구 스타 매직 존슨 등이 있다. 신규 감염자의 95%가 동구권이나 중앙아시아, 중동, 북아프리카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 바이러스가 침팬지들의 면역을 약화시키는 바이러스에서 발전된 것이라는 추정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2020-05-19 07:00 조진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