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회수율’ 낮은 것도 금융사고 증가 원인이다

고객이 맡긴 금융자산을 관리하는 금융기관에 대한 불신, 더 나아가 신용사회의 불안을 조장하는 것이 금융사고다. 최근 3년간 금융사고 규모는 매년 1000억원대를 상회하고 있다. 금융업권별로는 60%를 넘나드는 은행권이 건수나 액수 면에서 압도적으로 높다. 사회적 지탄의 대상인 횡령·유용과 업무상 배임이 끊이지 않는다. 국정감사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내부통제시스템 실행에 구멍이 뻥 뚫린 것과 같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거액의 금전적 범죄행위가 터질 때마다 고삐를 조인다는 재발 방지책은 허구 아니었나 싶다. 은행권에 한정하면 사고금액 회수율이 고작 9.1%였다. 윤리강령마저 휴지조각이 다 됐다. 내부의 준법감시조직 개편 등도 아직 믿음이 가지는 않는다. 고객 입장에선 예금자보호한도조차 못 미더워 내 돈이 증발하지 않을까 불안할 만도 하다. 은행을 믿을 수 없다는 지탄이 향할 곳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 ‘시스템’이다.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않으면 책무구조도, 디지털 책무정보나 책무관리 방안까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과거엔 불법대출이나 도난·피탈 등 외부 요인이 걱정이었다면 지금은 다르다. 내부 직원에 의한 굵직한 횡령 등이 주류를 이루다시피 한다. 내부 통제와 관련해 관리자의 책무를 질타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적 지상주의 영업 방식, 지배구조와 변화관리, 인사 문제 등 뜯어고칠 데가 많다. 숫자로 계량화 안 되는 비재무적 요소까지 제어할 관리·감독 방안이라야 한다. 저하된 신뢰도를 어떻게 회복할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일련의 금융사고는 문란해진 금융질서를 바로잡고 내부통제의 실효성을 높이라는 강력한 경고음이다. 상대적 고임금에 성과급 파티를 벌이며 금융 관련 범죄에 발을 담그는 행태는 내부와 외부 통제 시스템을 정비해 꼭 뿌리뽑아야 한다. 그런 수단에 기대지 않고도 이상징후를 포착해 금융사고의 개연성을 미리 차단한다면 더 좋을 것이다. 카드·캐피탈 등 여신전문금융회사와 상호금융권 등에 수신 기능이 없다고 해서 금융당국의 직접 제재가 어렵다는 것은 모순이다. 역시 손봐야 한다. 거미줄처럼 꼼꼼하게 짜여진 내부 통제 시스템을 갖춘 외국계 은행들은 금융사고도 적다. 사후 조치지만 금융사고 금액을 전액 환수 가능한 법·제도 장치가 있으면 사고율도 줄일 수 있다. 사후 제재나 뒷수습보다 중요한 건 사전 방지다. 그런 장치 없이 안심하고 돈을 맡기라고 할 수 있겠나. 금융사고를 막기 위해 금융권 조직문화까지 들여다보는 것과 간섭은 구분해야 한다. 또 다른 칼을 준비하는 금융당국이 참고할 일이다.

2024-10-14 14:50 사설

[사설] 가계부채는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

가계부채와 관련된 잠재 리스크는 늘 거시경제와의 관계 속에서 분석해야 한다. 주택매매가격, 국민총소득(GNI), 주가, 물가나 소비자 기대지수와 더불어 금리는 주요 변수가 된다. 역대 최장 기간의 기준금리(정책금리) 동결은 어렵사리 풀렸다. 한국은행의 시간이 임박하면서 가장 신경 썼던 항목이 대출 감소세 여부였다. 가계부채는 금리 인하 시점에 영향을 미쳤듯이 이후 어느 선까지 금리 인하를 할 수 있을지도 좌우할 것이다. 통화정책 기조를 긴축에서 완화로 전환한 이후의 상황 역시 가계부채에 매일 수밖에 없다.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물가안정목표인 2%대로 내려왔으나 부동산 시장 움직임을 비롯해 금융 불안 유발의 불씨는 가시지 않았다. 금리 하락이 부동산 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동하는지를 봐야 한다. 환율이 다소 안정화했음에도 1350원대다. 예상보다 더딘 회복을 보이며 성장의 발목을 잡는 내수, 그리고 경기 흐름 개선을 통한 성장을 위해 선제 대응하는 것도 긴요한 과제다.금리 인하는 물론 적절했다. 그런데 조금 둔화했을 뿐인 집값은 강남3구와 수도권을 중심으로 꿈틀거린다. 부동산 부문에 대한 자극은 통화정책 전환 이후 주된 경계 대상이다. 높은 주택 가격 대비 노동시장의 가치 하락은 자산 불평등 격차도 더 벌리게 마련이다. 가계부채 오름세가 잡혀야 하는 시점은 정작 지금부터다. 은행 주택담보대출이 2004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 규모로 급증한 것이 지난 8월이었다. 기준금리 조정의 파급 시차를 감안하면서 가계대출 증가세를 견인하지 않은지 잘 살펴야 한다. 금리 수준이 여전히 만만찮은 데 가계대출이 안 꺾일 때는 경제 환경 및 정책 요인까지 두루 살피는 게 맞다.피벗(통화정책 전환)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던 당국이 할 일이 있다. 금리 인하의 거시건전성 정책 효과를 지켜보며 경기 부양에 나서라는 것이다. 산술적으로 전망하면 1년 안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3번 인하하면 가계부채 이자 부담이 4조5300억원 감소할 수는 있다. 이 경우도 문제는 가계부채 증가다. 경제 성숙기, 지금 같은 낮은 경제성장 시기에는 가계부채 증가는 ‘독’이다. 민간소비 위축과 직결되는 게 빚이다.민간부채 부실은 이미 위험 수준이다. 연속 금리 인하를 단행하려면 성장 흐름과 기준금리 조정에 따른 금융안정 리스크를 함께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과의 적절한 정책조합이 더욱 필요해지고 있다. 추가적인 기준금리 인하 시기와 폭 또한 오랫동안 기준금리 인하를 주저하게 만들던 주택가격과 가계부채 증가세에 다시 달려 있다.

2024-10-13 13:54 사설 기자

[사설] ‘공매도 재개’는 피할 수 없는 숙제다

채권 선진국 클럽이 된 한국이 짊어진 다음 과제는 공매도 재개다. 한국 주식시장이 선진시장에서 관찰대상국으로 강등될 뻔한 위기를 모면했고 몇 달간의 시간은 벌었다. 세계적인 주가지수 제공업체인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스톡익스체인지(FTSE) 러셀이 한국에 요청한 메시지는 뚜렷하다. 공매도의 신속한 재개였다. 외국계 대규모 자금 이탈의 고비를 넘기면서 일종의 경고장을 받아든 셈이다. 자본시장 선진화의 길은 이처럼 멀다. 주가가 내릴 걸로 예상되면 보유하지 않은 주식을 빌려서 파는 형식인 이 제도는 장단점을 모두 갖추고 있다. 시장 변동성을 키우기도 하지만 차입 메커니즘의 효율성을 살린다면 주식의 적정가 발견에 도움을 준다. 주식시장의 거품을 제거하기도 한다. 개인투자자에 불평등한 제도가 될 수 있는 반면 불법 투기 세력의 시장 조작도 차단 가능하다.뭐니 뭐니 해도 중시할 것이 있다. 선진시장 진입은 채권이 그러했듯 증시에서 피할 수 없는 숙제가 된 사실이다. FTSE 러셀의 입장을 재해석하면 공매도 금지는 선진국답지 않은 처사라는 것이다. 금융투자업계 숙원사업인 한국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DM·Develop ed Market) 지수 편입의 발목을 잡은 요인 역시 따지고 보면 공매도 금지였다.신흥시장(EM)이나 관찰대상국 언저리를 언제나 맴돌고 있을 수는 없다. 선진국지수 추종자금 규모는 신흥국지수 추종자금의 5~6배에 이른다. 무리한 정책으로 시장 접근성을 제한해 한국 증시에 들어올 대규모 해외 자본의 통로를 좁히지 않는 게 현명하다. 계속 적발되는 불법 공매도까지 허용하라는 이야기는 당연히 아니다. 공매도 금지가 국제사회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다는 엄연한 사실은 재개 여부와 시점을 논의할 때 숙고해볼 ‘고언’이다. 안정적인 외국인 투자 자금의 순유입으로 주가 상승과 변동성을 완화하면 그렇게 바라던 ‘밸류업’에도 도움이 된다.금융 선진국 격상의 선택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개인투자자들의 우려를 해소하면서 차질 없는 공매도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이번에 관찰대상국에 포함시키지 않은 건 공매도를 재개하겠다는 정부를 일단 지켜본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타당하다. FTSE 러셀의 다음 정례시장 분류가 예정된 내년 4월 8일 이전, 늦어도 내년 3월 30일까지는 국내 증시가 공매도 금지 규제에 발 묶인 상황을 제거해야 한다. 한국의 공매도 금지 조처를 한시적이라고 본 것은 우리로선 다행이다. 공매도 재개 여부가 시장 분류에 절대적인 영향력과 상관성을 갖는다는 예시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2024-10-10 14:01 사설 기자

[사설] 세계국채지수 편입, ‘원화채 저평가’ 해소할 기회다

한국이 그렇게 고대하던 세계국채지수(WGBI, World Government Bond Index)에 추가돼 국채 위상을 높이게 됐다. 9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스톡익스체인지(FTSE) 러셀이 정례 시장분류에서 희소식을 전해왔다. 한국은 내년 11월부터 편입 예정이다. 2년 전 관찰대상국(워치 리스트) 등재 후 네 번째 도전 끝의 결실이다.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온 시장 접근성 기준 때문에 등급 조정이 더 늦춰질 걸로도 한때 관측돼 촉각을 세웠으나 결국 단계를 올렸다. 지수 편입의 의미는 매우 크다. 다른 것도 아닌 미국, 영국, 일본 등 24개 주요국의 국채가 포함된 선진국 국채클럽 아닌가.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0대 국가이면서 여기에 들지 못했던 것은 국채 위상이 낮았다는 뜻이다. 금융시장에서 이 지수를 좇아 투자를 결정하는 자금 규모가 2조5000억달러(약 3370조원) 규모라는 한 가지 사실로도 기대감은 커진다. 최소 70조원에서 최대 90조원(또는 50조원에서 80조원)가량의 해외 자금이 국내로 유입된다고 상정할 때 국채 발행 금리가 내려가 재정 운용에 여유가 생기는 기대감도 생긴다. 채권가격 상승에 따른 금리 인하로 절감되는 이자비용 또한 적지 않다.지금까지 원화채는 시장에서 너무 저평가되고 있었다. 전 세계 투자자들이 믿고 따르는 세계 3대 채권지수에 편입된 것을 국채 시장이 선진 대열에 합류하는 신호탄으로 간주해도 되는 이유다. 외국계 자금 유입으로 국채의 시장 가치와 신뢰도를 높일 둘도 없는 기회다. 미국 40%, 일본 12%의 고지를 바라보며 우리 국채 비중을 전체 2.0~2.5% 이상으로 높이는 것을 목표 삼아야 한다. 편입 가능성을 키운 외국인 투자자 등록제도 폐기, 외환거래시장 연장 등 해외 투자자가 채권 거래를 쉽게 할 방안은 부단히 유지해야 할 것이다.국제중앙예탁결제기구와의 연결성 강화, 원화에 대한 제3자 외환거래 허용 등의 조치도 이번에 돋보였다. 최종 편입으로 만족하지 말고 더 진전된 시도로 성과를 극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1400원까지 치솟기도 하는 원·달러 환율의 하락 효과도 가져와 외환시장 안정화의 버팀목이 돼야 함은 물론이다.정치외교적인 영향력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한·일 관계 개선은 세계국채지수 영향력이 센 일본 투자자에게 우호적 신호를 줄 것이다. WGBI 추가 이후에도 시장 규모, 국가신용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한 시장 접근성을 제고하는 등 국제 투자 커뮤니티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노력은 계속해야 한다.

2024-10-09 13:33 사설 기자

[사설] 반도체 등 첨단산업 보조금 우리도 ‘직접 지원’하자

주요국들이 공급망 재편과 산업 육성 정책 지원으로 다양한 형태의 경제안보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반도체,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등 대표기업들에 대해 직접 보조금 지원을 늘리고 있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주요 국가가 첨단산업에 수십조원 지원하는데 한국은 0원이다.’ 막대한 보조금보다 세제 혜택 등 간접적인 정책에 집중하는 국가적 지원을 이렇게 에둘러 표현할 수 있겠다. 정부가 지난 5월 반도체 산업에 대한 금융 지원책을 기존 발표보다 2배 이상 확대했으나 간접 지원책은 그대로다. 산업 생태계 활성화를 말하기엔 여전히 미진하다. 반도체 산업에 국가안보에 달려 있다고 확신하는 미국은 다르다. 한국경제인협회 보고서에서 지적하듯이 반도체지원법을 통해 수십조원을 쏟아 붓는다. 보조금을 주고 세액공제를 하고 저리 대출까지 얹는 것이 미국식 지원의 특징이다. 중국을 비롯해 유럽연합, 인도 등도 대규모 반도체 보조금을 풀어 반도체 기업이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있다. 우린 어떠한가. 국가첨단산업에 대한 의지는 있고 직접 보조금 지급을 꺼린다.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보조금 지급 정책과 무관하지 않은 사례는 많다. 한국의 이차전지 생산 3사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2021년 30.2%에서 2023년 23.1%로 7.1%포인트 급락했다. 그 사이 중국은 전고체 배터리 등으로 보조금 지급 범위를 넓혔다.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한국은 LCD에 이어 OLED까지 위협받는다. 이 역시 중국 정부의 4억2000만 달러 보조금 지급과 연계하지 않을 수 없다. 토지·건물 무상 제공은 제외하고도 원가 경쟁력과 신성장산업을 키우는 강력한 ‘실탄’의 위력을 보게 된다.전부는 아니지만 기술력 추격을 허용하는 유력한 배경에 대규모 보조금과 투자가 있다고 보는 근거는 많다. 이걸 아는 경쟁국가들은 자국 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투여하는 것이다. ‘선점효과’와 ‘승자독식’ 양상을 띠는 첨단산업이기에 더 공격적인 대처가 요구된다. 업계에서 직접 보조금 지원을 몇 번이고 요청한 이유다. 경쟁력 우위를 위해서다.우리 정부가 반도체 산업 지원에 26조원을 투입한다고 공언하지만 직접환급(Direct Pay)으로 기업 현금 유동성을 즉각 제공하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미국식 보조금처럼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게 법·제도로 뒷받침하는 것 이상은 없다. 부분적으로 직접 투자 효과가 나도록 조합하는 방법이 있지만 간접 지원책을 고수하는 방식은 지양할 때가 됐다. 보조금, 즉 재정 직접 지원으로 이제라도 선회할 필요가 있다.

2024-10-07 14:06 사설 기자

[사설] 인구활력펀드 부처 간 협업 성과 나와야 한다

인구문제는 ‘국가비상사태’다. 인구감소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지원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때 정부가 부처 간 벽을 허물어야 하는 건 기본이다. 중소벤처기업부와 법무부, 행정안전부, 농림축산식품부 등이 연고산업육성 협업프로젝트 모집에서도 지방소멸 위기 대응에 맞손을 잡았다. 중소벤처기업부와 행정안전부가 6일 내놓은 연내 200억원 규모의 인구활력펀드 조성 계획도 같은 맥락이다. 인구감소지역 중소·벤처기업 투자에 내실이 기대된다. 중기부와 행안부는 2024년도 지역혁신 공모사업 모집 공동 추진에서도 기존의 손발이 다소 안 맞았던 부분을 해소하면서 협업의 선례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엔 중기부 모태펀드에서 95억원, 행안부 지방소멸대응기금에서 45억원을 각각 출자하고 민간투자를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경제 활력이 떨어진 지역의 창업기업과 벤처기업의 성장을 돕고 기업 유치를 촉진하기 위해서다. 공동 대응하면서도 부처 역할과 권한을 뚜렷하게 설정해야 한다.현 정부 들어 두드러진 것은 부처 간 ‘분업’을 통한 묶음 지원이다. 중기부는 기술 애로 해소라든지 실증 및 인증과 사업화를 지원하고 행안부가 기업 활동 인프라를 조성하는 식이다. 농식품부는 농촌기업 전후방 지원시설을 확충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특화형비자로 외국인 공급을 지원하는 일은 법무부 몫이다. 주거차원 지원 방안인 지역 맞춤형 주거복합단지인 지역활력타운 조성에서도 분업 여지는 많다. 앞으로 인구부가 신설되더라도 상생협력과 지속 발전을 위한 부처 간 조율과 조력은 더욱 필요하다. 산업과 일자리 창출, 정주여건 개선, 문화·관광 등 협업 대상은 많다.활력펀드로 중소·벤처기업이 지역 경제의 재도약을 이끄는 데도 출자에 그치지 말고 각 부처가 긴밀히 협조해야 한다. 창업 육성, 기술개발 보조금, 투자 지원, 유니콘 프로젝트 등 지방 기업을 우대하는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까지 활용해야 한다. 인구감소는 지역의 활력 저하뿐 아니라 경제, 사회, 안보 등 여러 면에서 총체적 위기에 직면하게 한다. 효과적인 지방소멸대응 전략이 되려면 펀드 성과를 극대화해야 함은 물론이다.펀드 금액의 60% 이상을 해당 지역 기업에 투자 후 본점을 이전하거나 지점, 연구소, 공장을 설립하는 기업에 투자한다는 방침은 특히 잘 유지·실천해 나갔으면 한다. 지역에서는 사실상 지방소멸 협력 대응 성과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1달러에 팔려가는 조선소 크레인을 보며 눈물짓던 스웨덴 말뫼가 유럽 최고의 스타트업 도시가 된 것과 같은 ‘말뫼의 기적’을 대한민국의 인구감소지역 및 관심지역에도 볼 수 있어야 한다.

2024-10-06 13:56 사설 기자

[사설] ‘선진’ 벤처투자 16조 시장 도약 가능하려면

벤처투자 생태계 조성을 위해 정부가 국내 벤처투자 시장 규모를 2027년까지 16조원(2030년까지 20조원) 규모로 성장시킨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지난해 8월 발표한 ‘스타트업 코리아 종합대책’의 비전으로선 좀 늦어지긴 했지만 ‘선진 벤처투자 시장 도약 방안’은 글로벌 투자자의 관심도를 높일 내용들이다. 새로운 도약이 절실한 상황에서 벤처·스타트업(창업기업) 글로벌화의 ‘구원투수’가 되게 해야 한다. 글로벌 투자 유치 규모를 10배 혹은 5배 늘린다는 계획을 뒤집어보면 작년의 빈약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범위를 넓혀 작년 이전의 15년간(2008~2023년)을 통산할 땐 연평균 16% 성장했다. 전세계 성장률 13%에 뒤지지 않는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유동성 확대로 호황기를 구가하기도 했다. 고위험 투자라는 인식이 없지 않지만 벤처투자조합 제도화 이후 청산된 펀드는 연평균 9%의 고수익을 거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완연히 달라져 유유자적할 수 없다. 벤처투자법 제정 등으로 정부가 힘쓰고 산업 전망이 밝은 것이 전부는 아니다. 확실한 지표 없이는 관망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벤처투자자의 생리이기도 하다. 미국, 중국, 영국, 인도 다음으로 벤처투자가 있다고 해서 벤처투자 강국처럼 자만해서는 안 된다. 2차 벤처 붐이 왔다며 반기던 3년 전을 회고해 보자. 작년 11조원인 국내 벤처투자시장 규모 중 전체 생태계를 보면 인공지능과 로봇 관련 스타트업 등 유망산업에만 투자금이 몰리는 현상 또한 극복할 과제다. 벤처투자 비수기가 따로 없는 것이 최근 추세라고 봐야 한다. 급감하는 대형 투자를 봐서는 벤처투자 심리 위축을 깨는 일이 급선무일 것 같다. 투자 참여 주체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큰 줄기는 규제 완화다. 싱가포르 등에 설립하기로 한 글로벌 투자유치 모펀드(K-VCC)는 유인책으로서 괜찮은 방안이다. 다만 정부 모태펀드 등 소수 투자자 중심의 한계는 딛고 일어서야 한다. 올 상반기 투자 금액 75%가 수도권 기업일 정도의 극심한 편중도 국내 벤처 투자 시장에는 벽이 아닐 수 없다. 2027년까지 비수도권 전용 벤처펀드 1조원 추가 조성 계획에 지방이 그만큼 주시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가시지 않은 데다 중동 분쟁도 투자 심리 위축 요인으로 가세한다. 쉽지 않지만 벤처투자 시장 도약 방안이 민간 투자에 급반전을 이뤄 제3의 벤처 붐을 일으키는 기점이 돼야 할 것이다. 시장 불확실성으로 투자 시점을 저울질하는 투자자의 확실한 관심을 끄는 게 언제나 중요하다.

2024-10-03 17:17 사설

[사설] ‘선진’ 벤처투자 16조(20조) 시장 도약 가능하려면

벤처투자 생태계 조성을 위해 정부가 국내 벤처투자 시장 규모를 2027년까지 16조원(2030년까지 20조원) 규모로 성장시킨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지난해 8월 발표한 ‘스타트업 코리아 종합대책’의 비전으로선 좀 늦어지긴 했지만 ‘선진 벤처투자 시장 도약 방안’은 글로벌 투자자의 관심도를 높일 내용들이다. 새로운 도약이 절실한 상황에서 벤처·스타트업(창업기업) 글로벌화의 ‘구원투수’가 되게 해야 한다. 글로벌 투자 유치 규모를 10배 혹은 5배 늘린다는 계획을 뒤집어보면 작년의 빈약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범위를 넓혀 작년 이전의 15년간(2008~2023년)을 통산할 땐 연평균 16% 성장했다. 전세계 성장률 13%에 뒤지지 않는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유동성 확대로 호황기를 구가하기도 했다. 고위험 투자라는 인식이 없지 않지만 벤처투자조합 제도화 이후 청산된 펀드는 연평균 9%의 고수익을 거둔 것도 사실이다.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완연히 달라져 유유자적할 수 없다. 벤처투자법 제정 등으로 정부가 힘쓰고 산업 전망이 밝은 것이 전부는 아니다. 확실한 지표 없이는 관망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벤처투자자의 생리이기도 하다. 미국, 중국, 영국, 인도 다음으로 벤처투자가 있다고 해서 벤처투자 강국처럼 자만해서는 안 된다. 2차 벤처 붐이 왔다며 반기던 3년 전을 회고해 보자.작년 11조원인 국내 벤처투자시장 규모 중 전체 생태계를 보면 인공지능과 로봇 관련 스타트업 등 유망산업에만 투자금이 몰리는 현상 또한 극복할 과제다. 벤처투자 비수기가 따로 없는 것이 최근 추세라고 봐야 한다. 급감하는 대형 투자를 봐서는 벤처투자 심리 위축을 깨는 일이 급선무일 것 같다. 투자 참여 주체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큰 줄기는 규제 완화다. 싱가포르 등에 설립하기로 한 글로벌 투자유치 모펀드(K-VCC)는 유인책으로서 괜찮은 방안이다. 다만 정부 모태펀드 등 소수 투자자 중심의 한계는 딛고 일어서야 한다.올 상반기 투자 금액 75%가 수도권 기업일 정도의 극심한 편중도 국내 벤처 투자 시장에는 벽이 아닐 수 없다. 2027년까지 비수도권 전용 벤처펀드 1조원 추가 조성 계획에 지방이 그만큼 주시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가시지 않은 데다 중동 분쟁도 투자 심리 위축 요인으로 가세한다. 쉽지 않지만 벤처투자 시장 도약 방안이 민간 투자에 급반전을 이뤄 제3의 벤처 붐을 일으키는 기점이 돼야 할 것이다. 시장 불확실성으로 투자 시점을 저울질하는 투자자의 확실한 관심을 끄는 게 언제나 중요하다.

2024-10-03 13:22 사설 기자

[사설]MBK vs. 영풍, 고려아연 지배력 '초미의 관심사'

고려아연에 대한 공개매수 마감일이 10월 4일로 다가왔다. 물러설 곳 없는 한판 승부가 되고 있다. 2일이나 4일 개장 전까지 대항 공개매수 여부 등 영풍과 사모펀드 운용사인 MBK파트너스에 맞선 마지막 카드가 초미의 관심사다. 재계를 뜨겁게 달군 고려아연의 지배력을 누가 가질지 ‘한 지붕 두 가족’ 싸움으로 태평하게 바라보기 힘든 측면이 많다. 동업의 균열로 외부 세력 공격을 부른 현 사태가 매우 안타깝다. 국회가 7일부터 시작하는 국정감사 증인으로 고려아연, MBK파트너스, 영풍그룹 등 경영권 분쟁 관련 기업인들이 줄줄이 나와 이유와 명분을 소명한다고 하자. 그때는 어쩌면 사후약방문이 돼 있을 시점이다. 외부 세력까지 얽힌 대규모 전면전에서 기업을 장악하는 1인 대주주가 없는 지배구조의 불안정한 단면이나 표본을 보는 듯하다. 실제로 사모펀드 본연의 사업영역을 이탈해 공개 매수를 통한 경영권 인수 시도가 드러나 보인다. 시장 독점과 과열 경쟁도 문제려니와 법적 테두리 일탈로 투자자 오판을 유도하는 사례도 없어야 한다. 공개매수 과정에서의 위법행위 등에 엄정히 감독해야 하는 것은 물론 당국의 몫이다. 가장 첨예하게 볼 것은 글로벌 공급망에 위협이 될 요소다. MBK가 고려아연 지배력을 갖기 위한 적대적 인수 시도를 통해 경영권 인수에 성공한다면 중국 변수는 거대한 위협이다. 고려아연과 관계사의 점유율이나 시장 환경 등을 고려하면 중국으로의 매각이나 핵심 자원의 훼손은 결코 무리한 전망이 아니다. 블라인드 펀드 등 중국계 자본 혹은 중국의 대형 국부펀드가 개입할 여지를 경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에 하나 사모펀드까지 동원해 경영권을 빼앗는다면 시장 자율에 맡길 건전한 경영권 경쟁이라고 보긴 어렵다. 자본시장법 등 법이 정한 게임의 룰에만 맡기고 구경만 할 수는 없게 됐다. 현금 유입을 바라는 집안 측과 사업 다각화를 바라는 집안 간 싸움처럼 보이기도 하는 ‘막장 드라마’가 잘 끝나야 하는 이유다. 영풍과 손을 잡고 선관주의 의무를 말하는 MBK의 공개 매수 결과에 따라 경영권이 완전히 뒤집힐지 모를 상황이다. 경영이나 정치 논리를 쏙 빼고 생각해도 국부 유출 그 이상이 될 ‘경우의 수’다. 기업 내부 갈등을 틈탄 시장질서 교란이나 75년 동업 경영을 한 장씨와 최씨 두 가문의 사적인 영역일 수 없다. 극한 갈등의 종착지는 글로벌 비철금속 시장에서 시장 지배자적 누려온 고려아연의 위상이 타격을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름다운 이별’이 완전히 틀어진 지금 이후를 그래서 걱정해야 한다. esahn44@viva100.com

2024-10-01 17:04 안의식 기자

[사설] 고려아연 공개매수, ‘중국 변수’ 경계해야 한다

고려아연에 대한 공개매수 마감일이 10월 4일로 다가왔다. 물러설 곳 없는 한판 승부가 되고 있다. 2일이나 4일 개장 전까지 대항 공개매수 여부 등 영풍과 사모펀드 운용사인 MBK파트너스에 맞선 마지막 카드가 초미의 관심사다. 재계를 뜨겁게 달군 고려아연의 지배력을 누가 가질지 ‘한 지붕 두 가족’ 싸움으로 태평하게 바라보기 힘든 측면이 많다. 동업의 균열로 외부 세력 공격을 부른 현 사태가 매우 안타깝다. 국회가 7일부터 시작하는 국정감사 증인으로 고려아연, MBK파트너스, 영풍그룹 등 경영권 분쟁 관련 기업인들이 줄줄이 나와 이유와 명분을 소명한다고 하자. 그때는 어쩌면 사후약방문이 돼 있을 시점이다. 외부 세력까지 얽힌 대규모 전면전에서 기업을 장악하는 1인 대주주가 없는 지배구조의 불안정한 단면이나 표본을 보는 듯하다. 실제로 사모펀드 본연의 사업영역을 이탈해 공개 매수를 통한 경영권 인수 시도가 드러나 보인다. 시장 독점과 과열 경쟁도 문제려니와 법적 테두리 일탈로 투자자 오판을 유도하는 사례도 없어야 한다. 공개매수 과정에서의 위법행위 등에 엄정히 감독해야 하는 것은 물론 당국의 몫이다.가장 첨예하게 볼 것은 글로벌 공급망에 위협이 될 요소다. MBK가 고려아연 지배력을 갖기 위한 적대적 인수 시도를 통해 경영권 인수에 성공한다면 중국 변수는 거대한 위협이다. 고려아연과 관계사의 점유율이나 시장 환경 등을 고려하면 중국으로의 매각이나 핵심 자원의 훼손은 결코 무리한 전망이 아니다. 블라인드 펀드 등 중국계 자본 혹은 중국의 대형 국부펀드가 개입할 여지를 경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에 하나 사모펀드까지 동원해 경영권을 빼앗는다면 시장 자율에 맡길 건전한 경영권 경쟁이라고 보긴 어렵다. 자본시장법 등 법이 정한 게임의 룰에만 맡기고 구경만 할 수는 없게 됐다.현금 유입을 바라는 집안 측과 사업 다각화를 바라는 집안 간 싸움처럼 보이기도 하는 ‘막장 드라마’가 잘 끝나야 하는 이유다. 영풍과 손을 잡고 선관주의 의무를 말하는 MBK의 공개 매수 결과에 따라 경영권이 완전히 뒤집힐지 모를 상황이다. 경영이나 정치 논리를 쏙 빼고 생각해도 국부 유출 그 이상이 될 ‘경우의 수’다. 기업 내부 갈등을 틈탄 시장질서 교란이나 75년 동업 경영을 한 장씨와 최씨 두 가문의 사적인 영역일 수 없다. 극한 갈등의 종착지는 글로벌 비철금속 시장에서 시장 지배자적 누려온 고려아연의 위상이 타격을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름다운 이별’이 완전히 틀어진 지금 이후를 그래서 걱정해야 한다.

2024-10-01 14:10 사설 기자

[사설] 기업 경쟁력 해치는 상법 개정안 논의 중단해야

더불어민주당이 상법 개정안 논의에 탄력을 얻고 있는 분위기다.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정책의 일환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 쪽으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지배구조를 개혁해 자본시장을 선진화하고 주식시장을 활성화한다는 구실은 그럴싸하다. 그러나 절실함보다는 폐해가 커 보인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가 ‘코리아 프리미엄’이 될 것 같지도 않고 ‘글로벌 스탠더드’에도 안 맞는다. 이사가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할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하는 안은 자주 봐 왔다. 21대 국회에서는 이른바 재벌 저격수 의원들이 개정안을 냈고 22대 국회에서도 관련 개정안이 대표 발의돼 있다. 재벌 중심의 기업지배구조와 투자자에게 덜 친화적인 자본시장을 바꾸자는 논리, 여기에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와 관련해 증시 부양이 동반돼야 한다는 논리를 실었다. 민주당 내의 금투세 시행론과 유예론 사이의 대립각을 옮겨볼 심산도 있는 것 같다.자본시장 선진화의 본류처럼 인식하는 정치권 일각의 바람대로 된다고 치자. 법 체계 훼손으로 경영 일선에 혼란이 닥칠 것이다. 자본 조달이나 일상적 경영판단을 위축하고 소송 남발과 시장 혼란을 가속화할 수 있어서다. ‘삼라만상’을 다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는 형법상 배임죄를 폐지해 해결될 사안은 아니다. 회사와 주주 이익이 충돌하면 이사의 의사결정 자체가 어려워진다. 그러면 회사와 이사의 위임관계가 근간인 회사법 체계는 뒤틀릴 것이다.지배주주의 권한 남용을 견제할 민사적 수단이 미흡하다고 보지 않는다. 이사는 물론 전체로서의 주주의 이익에 걸맞게도 행동해야 한다. 이사가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위하는 것은 선량한 관리자로서 할 일이지만 잘못하다간 행동주의 펀드의 위협 앞에 경영권 보호수단이 없게 된다. ‘회사 이익=주주 이익’ 등식화는 일반론적 수사에 가깝다. 주식회사의 기본 원리인 자본 다수결 원칙도 존중돼야 한다.회사법에 이미 소수주주 보호조항이 있는데 회사법의 근간을 훼손할 이유는 없다. 기업 경영에 부정적이라고 보는 상법 전공 교수도 65.7%로 다수다. 시장에서 특수한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 입법 사유는 안 된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전체 주주로 확대하지 않아도 현행법으로 주주이익 보호가 가능하다. 투자자 보호 효과는 크지 않고 경영권 공격 세력에 유리해 기업 경쟁력을 저해한다면 논의 자체를 멈춰야 한다. 거대 야당이 벼르는 상법 개정 움직임은 황금알 낳는 거위 배를 가르자는 얘기와 통하는 일면이 있다.

2024-09-29 14:09 사설 기자

[사설] 이공계 활성화, 제대로 된 전략 내놓을 자신 있나

곧 발표 예정인 이공계 대책과 관련한 의견 수렴이 한창이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26일 당정협의회에서 지속가능한 과학기술 인재 육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이대로 가면 2050년쯤엔 이공계 랩을 운영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심각성도 공유했다. 이공계열 학생들이 미래 과학기술 연구자가 될 준비보다 의대 입시를 다시 준비하는 게 실상이다. ‘인재 육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원론에 머무를 수 없게 됐다. 당정이 활성화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이공계는 지금 전례 없는 위기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이날 과학인재들의 글로벌 과학 저널 기여도로 유출과 유입 인재 성과를 비교했지만 그보다 중시할 것이 있다. 과학기술 경쟁력에서 가장 핵심 역할을 수행할 시간에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파격적인 손짓에 인재가 떠난다는 점이다. 예상치 못하게 확 열린 의대 증원과 함께 배태된 문제는 기존의 의대 쏠림 현상이 더 돌출된 것뿐이다. 인재 불균형이라는 재앙적 사태를 치유해야 제대로 된 전략이다. 아직까지 그것이 없다.그러다 보니 현재와 미래 먹거리인 반도체나 이차전지, 인공지능(AI) 쪽에서 일할 사람이 모자란다. 2031년에는 반도체 산업 인력이 5만여 명 부족하다고 전망되고 배터리 인력 부족으로 현재도 업계가 버거워하고 있다. 2025년 대학 수시 입시 접수에서 주요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의 경쟁률이 약간 호조여서 다행스러워 보이지만 내년부터 이공계에 진입할 절대 숫자 자체가 줄게 돼 있다. 경쟁력의 근간인 고급인재 유출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인공지능 인력은 세계 인재의 0.5%에 불과한데 그마저 밖으로 향한다. 저출생에 해외 유출로 인력난 우려가 이중삼중 겹쳐 있다. 뚜렷한 지원 없는 대대적인 인재 확보는 통하지 않을 구도다.고무줄식 예산 조정으로 이공계 흔들기를 가속하는 것부터 멈춰야 한다. 25일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적한 ‘청년과학기술인으뜸적금’ 상품 운영이 지난해 돌연 중단된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안정적 예산 확보 없이는 이공계 학생 육성, 이공계 일자리 및 근무 환경 개선, 이공계 처우 개선 등에서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 또 전개된다.지속적인 과학기술 투자, 유학생의 대규모 귀국, 공격적 인재 영입 어느 한 부분에서라도 우리가 적극적이었던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찬밥 신세인 과학기술을 분리하는 일도 시급하긴 마찬가지다. 위기에 대한 현실 인식이 여전히 안이하다. 당정협의회에서 나온 ‘새 환경에 맞는 새 전략’, 치밀하고 적확한 전략을 짜지 않으면 안 된다.

2024-09-26 14:09 사설 기자

[사설] 첫 밸류업 지수, 기업가치 위한 공통 과제로 풀어야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정책의 핵심 방안인 ‘코리아 밸류업 지수’가 베일을 벗어 궁금증은 어느 정도 해소됐다. 코스피 상장사 67곳과 코스닥 기업 33곳 등 100개 기업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신한지주, 셀트리온 등 업종 대표 종목들이 들어갔다. 한국거래소가 시장 대표성, 수익성, 주주 환원, 시장 평가, 자본 효율성 등 절차를 작동시킨 결과지만 한동안 저울질하던 편입 예상 종목 상당수가 빠졌다. 합당한 기업가치 지표일지 의문부호도 남기고 있다. 밸류업 수혜주로 간주되던 KB금융과 하나금융지주가 편입되지 않으면서 4대금융주가 반타작에 그친 게 대표적이다. 특정 산업군 편중을 피한 상대평가 방식이지만 부자연스럽다. 2차전지 대표주인 LG에너지솔루션과 에코프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로 힘을 받던 에프엔가이드 같은 종목들도 빠져 있다. 주요 석유화학 4개사 중 실적이 견조한 금호석화마저 명단에 들지 못했다. 수익성이 밸류업보다 다급하긴 해도 업계를 ‘우울’하게 한다. 주주 환원에 적극적이던 통신사도 보이지 않는다. 밸류업 지수에 들면 우수기업과 유망기업으로 일단 평가받는 점에서 상대적 박탈감이 들 만한 대목이다.30일부터 실시간 지수 산출로 더 확실해질 테지만 지수 발표만으로 대폭적인 증시 부양 효과에 한계가 있다. 이번 지수는 기업들이 밸류업을 성실히 공시하고 실행하는지의 ‘활동’에 그치지 않는다. 기업 지배구조의 선진화를 내세운 지수가 기업 가치 우수 기업의 투자 유도를 위해 개발된 사실을 환기하면 특히 그렇다. 100곳의 구성 종목에 들었는지에 따른 ‘일희일비’가 전부일 수 없다. 선정 기준의 명료한 틀만 고수하지 말고 보완할 게 많다. 세법 개정도 K-밸류업에 보탤 노력의 일부분이다.지수에 포함 안 된 기업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 기업 보고서 발간, 공동 IR(Investor Relations), 공시 우수법인, 코스닥 대상 가점 등의 지원책과 더불어 다양한 후속 지수를 개발해야 한다. 밸류업 지수 관련 선물과 상장지수펀드(ETF), 기관투자자의 패시브 자금(특정 주가지수를 추종하는 투자자금) 유도 여부는 주시해볼 공통 과제다.투자자 신뢰를 회복하고 자본시장 경쟁력을 강화하는 측면을 잘 살리는 것 또한 관건이다. 주주 가치 제고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고 증시 부양의 선순환에 기여해야 한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목적이 이것이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고 믿던 종목들이 대거 제외된 점은 첫 출시 지표로서의 한계임을 꼭 지적하고 싶다.

2024-09-25 13:49 사설 기자

[사설] 두코바니 원전 굳히기, ‘팀코리아’ 자세 필요하다

체코 두코바니 원전의 최종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한 원전 세일즈 외교 활동이 치열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체코 공식 방문으로 수주 건설에 한발 다가서면서 국내 건설사들도 유럽 원전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체코와 함께 이른바 ‘팀 체코리아(체코-코리아)’를 통한 원전 전주기 협력의 길을 터둔 것도 전략상 유의미했다. 배터리 등 첨단 산업과 고속철도 협력을 포함한 업무협약 56건의 많은 부분도 ‘원전’ 수주가 시금석이다. 수주전에 뛰어들었던 프랑스전력공사는 방만한 경영으로 기술이나 가격 면에서 밀려나고 있다. 가격 경쟁력으로도 볼 수 있는 우리 강점을 덤핑 수주나 수조 원대의 손실 등으로 비하한다면 원전 훼방처럼 보일 수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돈 달라고 징징대는 웨스팅하우스다. 파산 이후 지식재산권을 무기로 또다시 괴롭히는 웨스팅하우스와의 분쟁은 뒤탈 없이 수습하면 된다. 미국과는 외교 마찰을 빚을 일도 아니다.최소한 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수출 때만큼은 잘 해결해야 한다. 다만 미국과의 원전 협력과 관련해 ‘지식재산권 상호 존중’ 내용을 추가해 그때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한·미가 주춤하는 사이에 중국과 러시아가 원전 시장을 잠식해가는 부분에 대해서는 미국과 이익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 원전에 대한 제재와 중국 업체의 발이 반쯤 묶여 있을 때 우리 원전 경쟁력을 키워 놓아야 할 것이다. 약속한 시간과 시기에 준공한다는 한국의 강점을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이라는 국정 과제를 이루는 데 체코는 교두보와 같다.범야권에도 계약 협상과 국익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경제 분야 성과에 대해 ‘돈 주고 지어주는 셈’이라며 정치적 공세만 취할 게 아니라 열린 자세로 흔쾌히 ‘팀코리아’의 일원이 되길 바란다.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이 윤 대통령에서 추가 원전 사업과 유럽 시장 공동 진출을 희망한 것은 일단 좋은 신호 아닌가. 24조원 규모의 체코 원전 수주전 자체가 어렵게 얻은 기회다. 정말 ‘근거 없는 낭설’은 삼가야 한다.협상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전될 수밖에 없다. 기술·경제·안보 측면의 기대이익을 잘 담아내야 한다. 최종 계약 가능성이 한층 높아지면서 두산에너빌리티와 대우건설 등이 유럽 원전 시장 진출을 꿈꾸고 있다. 원전 협력 강화 분위기가 무르익고 ‘한국 외 다른 대안’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야말로 체코 두코바니 원전 굳히기에 나설 시간이다. 내년 3월 원전 최종 계약 실현에 끝까지 총력을 기울이는 일만 우리에게 주어졌다.

2024-09-24 15:58 사설 기자

[사설] 공공과 민간 집값 통계, 이렇게 달라도 되나

아파트 가격 상승률을 두고 집계가 달라 혼선이 빚어지는 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공공과 민간 부문의 조사 방식 차이라고 당연시하고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 있다. 8월 서울 아파트 가격의 전월 대비 상승률이 그런 예다. 정부 공공기관인 한국부동산원과 민간기관인 한국공인중개사협회의 통계는 거의 상반된다. 집값은 시장의 실제 상황을 보여줘야 한다. 한쪽은 상승이고 다른 한쪽은 하락이라니 당혹스럽다. 단순히 부동산원 방식과 협회 방식 때문이라고 보고 지나가기 어려울 듯싶다. 지금 같은 때는 더욱이 8·8 부동산 대책과 가산금리(스트레스 금리)까지 부과하는 대출 규제의 향방을 잘 알아야 한다. 그런데 5년 11개월 만의 월간 기준 최대 상승과 서울 기준 4.5% 하락의 편차는 심하다. 현실에 맞지 않는 통계이거나 표본 수, 구성, 조사 방식, 반영·분석 중 무엇이 잘못됐건 이만하면 정책 신뢰도에 타격을 줄 만하다. 정부 정책의 기초 근거이기도 하지만 민간의 부동산 경기 판단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단점을 굳이 말하면 국토교통부 부동산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하는 부동산원 방식은 상대적으로 속도 면에서는 느리다. 공인중개사협회는 분양과 직거래 등 중개사를 통하지 않는 거래를 반영하기 어렵다. 부동산원과 공인중개사협회의 집값 동향 조사에서 통계 방식으로 인한 차이는 인정될 수밖에 없더라도 각기 정확해야 한다. 정부와 민간의 입주 물량 전망치 등이 상이할 땐 다양한 부정확의 함정이 발생한다. 공급 ‘부족이다’, ‘부족이 아니다’란 해석 영역이 본의 아니게 통계 왜곡이 될 소지가 있다. 집값 급등의 근본 원인은 공급 부족이라고 보면 더 말할 여지가 없다.수도권을 중심으로 출렁이는 집값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면 정책적 신뢰부터 얻어야 한다. 집값 오류는 정부 정책결정뿐 아니라 실수요자나 투자자의 잘못된 의사결정의 근거가 된다. 보정을 통한 통계 변화 통제에도 신중해야 한다. 부동산원 통계는 이 분야 최고의 신뢰성이 보증돼야 할 국가승인통계다. 미국 기준금리 인하로 한국은행 금리 인하까지 유력한 상황이다. 집값 동향을 정확히 파악할 이유에 대해 중언부언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시장에서 실제 거래되는 가격과의 체감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한 대책이 약발이 먹히는지 파악하는 데도 이것은 중요하다. 공공과 민간 집값 통계 엇박자는 시장 혼란을 부른다. 민간 통계보다 못 미더우면 주간 통계를 폐지하거나 공인 통계로 쓰자는 주장이 고개를 또 쳐들지 모른다. 통계 방식에 의한 집값 차이는 극복의 대상이다.

2024-09-23 14:07 사설 기자

[사설] 전세사기 피해 늘리는 불법 건축물 근절 못하나

전세사기 지원 대책의 사각지대는 주택 유형의 특수성 때문에도 발생한다. 다가구·다세대 공동담보 피해, 신탁사기와 함께 피해자를 울리는 것이 불법 건축물이다. 국토교통부 자료에서는 올해 7월 기준 전세사기 피해주택 1만8789가구 중 불법 건축물이 1389가구에 이른다. 불법 개조하거나 용도 변경 건물이 피해주택의 7.4% 수준이다. 전세사기로 드러난 것만 이렇다면 불법의 보편화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편법과 불·탈법을 오가는 법과 제도의 부실로 생긴 일이다. 상층부에는 다세대·다가구 주택을 배치하고 저층부에 근린생활시설을 배치한 뒤 주거용으로 임대하는 ‘근생빌라’가 대표적이다. 등록만 근린생활시설로 하고 주거용 불법 개조가 활갯짓해도 손을 못 대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로 인한 피해자로 확인돼도 은행으로부터 건축물 유형상 대출 제한을 받는다. 무단 증축에 방 쪼개기를 해서 세입자를 들이는 행위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피해주택 7채 중 6채가 다가구주택이고 7채 중 4채는 불법건축물이란 사례도 나와 있다.작정하고 속이면 이길 수 없는 제도 자체를 방치해서 이런 것이다. 그렇다 보니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경매에 넘어가도 피해자들은 발만 구르기 일쑤였다. 피해자가 매입 후 이행강제금을 내거나 원상복구를 하기는 거의 불능의 영역이다. 제도의 허점으로 발생한 피해를 피해자가 온전히 감당하는 구조는 잘못됐다.불법 건축물이기에 경·공매나 한국토지공사(LH) 매입이 어려웠던 부분은 결정적인 난점이었다. 다행히 11월 개정 전세사기특별법 시행으로 피해주택을 매수하고 경매 차익으로 피해자를 지원할 근거는 마련됐다. 신탁 전세사기 주택에 대해서도 LH 매수가 가능한 특례를 둔 것은 현실을 반영한 조치로 이해된다. 하지만 양성화 조치가 불법의 합법화 전례가 되지 않도록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불법 건축물을 임대하는 행위가 불법이 돼야 불법 건축물을 양산하지 않는다. 이행강제금 정도가 아닌 강제철거(행정 대집행) 등으로 응징했다면 이 지경으로 무분별한 불법 건축과 증축이 판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로 인한 건축물 안전 문제도 심각하다.전세사기는 기본적으로 제도 공백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임대인이 의도적으로 불법 건축물임을 숨기면 임차인이 알아채기 어려운 구조부터 깨야 하는 이유다. 더 강력한 의지를 갖는다면 악성 부동산 및 임대인 관련 규정에는 아직 손질한 것이 남아 있다. 방심하면 불법 건축물과 전세사기는 언제라도 어깨를 나란히 한다.

2024-09-22 14:13 사설 기자

[사설] 미 연준 ‘빅 컷’, 우리 금리 인하 시점이 문제다

‘빅 컷’(0.50% 인하)이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선택의 지침은 19일(현지시간 18일) 드디어 기준금리(정책금리) 인하로 향했다. 미국의 금리 인하 동참은 전 세계에 다양한 파급효과를 유발시킨다. 국내 금융변수와는 매우 밀접하다. 4년 6개월 만인 데다 25베이시스포인트(bp=0.01%) 아닌 50bp 인하의 의미는 더 크다. 금융 경로와 실물 경로를 통해 국내에 미칠 영향을 시시각각 분석하는 게 우선이다. 가장 먼저 금융 안정 리스크부터 봐야 한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12일 올 들어 두 번째 예금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캐나다 등에서 잇따라 금리를 내렸고 스위스 등 주요국도 추가 금리 인하를 만지작거린다. 우리 여건은 다층적이다. 다행히 국내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한국은행 물가안정목표인 2%대에 수렴한다. 환율 수준도 하향 조정되고 있다. 정책금리를 올해 두 차례 올리며 마이너스 금리를 벗어난 일본과도 결이 다르다.확실한 것은 이제야 종료된 미국 금리 인상 여정이 통화 정책 전환의 주요 신호탄이란 점이다. 다만 미국 금리에 맞춰 당연히 내릴 것 같던 분위기에 일부 변화가 감지되는 건 사실이다. 아무래도 집값 상승세와 연계된 가계부채가 인하 시점을 좌우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낮은 성장기의 가계부채 급증은 경제성장 저해 요인이기도 하다. 10월 11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 인하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고금리가 고물가, 자본시장 변동성 확대와 함께 가져올 ‘복합충격’을 감안하면 우리도 합류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부동산 관리와 가계부채 억제를 지켜보며 금리 조정의 시기와 폭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은 모범답안이다. 다만 금리 조정에 따른 금융 불안을 유발할 여건, 과도한 유동성을 공급해 집값이나 가계부채를 부추기는 방향은 극도로 조심할 사안이다. 금융 불균형 심화 속의 민간소비 위축을 이대로 두면 성장은 발목 잡힐 수 있다. 너무 더디게 회복되는 내수경기 진작이라는 목표도 바라보고 결론을 내려야 할 듯하다.가계부채 부담에 수도권 부동산 가격 급등 등 금융 안정 위협 요인에만 과도하게 매달린 나머지 경기 하강 신호까지 앞당길지 모른다. 2022년 1월 1.25%에서 2년 만에 3.5%까지 오른 다음, 1년 9개월 동안 동결된 상황에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 긴축 기조 장기화는 좋지 않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거시건전성 규제와의 정책조합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경기 흐름을 봐가며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금리 인하 가능성을 닫지 않았으면 한다.

2024-09-19 14:07 사설 기자

[사설] 이제부터 연금 개혁 논의에 집중할 시간이다

추석 연휴가 끝나자 정치권에는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첫발도 못 뗀 국민연금 개혁의 사회적 논의를 본격화하는 것도 초미의 과제다. 청년·미래 세대를 위한 빅스텝이라며 특위를 구성하자는 여당,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논의하자는 야당 의견을 확인한 것 외에는 없다. 변변한 논의 기구 하나 만들지 못하고 있다.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2%’ 등을 담은 정부안에 대해 온도차만 드러낸 것이 전부다. 같은 사안을 두고 한쪽은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다른 한쪽은 ‘국민 갈라치기를 하는 나쁜 방안’이라고 규정한다. 여기서부터 난항을 예고한다. 그래도 정부안은 논의의 출발점이다. 논의 주체를 국회 연금특위로 해서 각 부처의 입장을 종합해 다루는 방식이 합리적일 수 있다. 지난 국회 연금특위에서 성과가 없었다 해서 충분한 협의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 연금개혁 협상에서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의도를 누그러뜨려야 통합적 대화는 시작된다.급여 수준에는 접점이 없는 게 아니다. 소득대체율에 관해서도 여당이 미는 정부 안(42%)과 민주당 안(45%) 사이에는 절충할 지점이 있다. 연금 삭감 장치라는 비판을 받는 자동조정장치 방안과 관련해서도 당리당략을 내려놓고 숙의해야 한다. 빠른 저출생 고령화 속도로 실질 연금가치가 줄어든다는 우려까지 담아내고 노인빈곤 예방 장치로서의 기능도 살리면서 청년과 중장년세대 갈라치기가 아님을 입증해낼 필요가 있다. 노후 보장성이 떨어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국민·기초·퇴직·개인연금을 동시에 놓고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모수 개혁을 넘어 구조 개혁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더 절박하다.연금 지급액이 지금 추세로 늘어난다면 정부 재정추계로는 2056년에 기금이 고갈된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고갈 시기로 잡은 2053년과는 3년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소득 보장론과 재정안정론은 둘 다 중요하다. 쉽지 않은 만큼 집중이 필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초반이 아닌 데다 국정지지도는 바닥을 헤매고 있다. 비유하자면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혁신이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로 꼽은 ‘강력한 적과 미온적인 동지’에 둘러싸인 형국이다. 어떤 유형의 개혁이든 만만치 않다.여야 공감대 속에 협치하지 않으면 연금 개혁은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할 게 뻔한 상황이다. 특위 구성과 소관 상임위 샅바 싸움을 빨리 끝내기 바란다. 여야가 심도 있는 논의를 시작할 단계를 지나고 있다. 소득 없는 탐색전은 그만하고 진통이 예상되더라도 본경기를 벌여야 한다. 지체할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

2024-09-18 14:12 사설 기자

[사설] “K-전성시대, K-산업 혁신과제와 함께하겠다”

한류라는 소프트 파워의 시작점은 드라마와 대중음악이었다. K-팝, K-드라마 등 한류 콘텐츠의 글로벌 인지도가 상승하면서 코리아의 ‘K’가 한국 주력산업을 지칭하는 두문자로 보편화됐다. 브릿지경제 창간기획에서 심층적으로 짚어본 대로 K-산업의 봇물이 전 세계로 흘러들게 한 힘은 물론 산업적인 우수성, 탁월성이었다. 위탁개발생산(CDMO)과 바이오시밀러 시장에서 K-바이오의 활약상은 눈부시다. 다만 추격자 아닌 선도자 위치를 굳히려면 연구개발(RD) 역량 강화는 부동의 과제다. 방산시장의 새로운 강자인 K-방산은 유럽연합(EU) 견제를 넘고 방산에 필수인 금융 지원 정책을 손봐야 한다. K-원전은 슬로베니아 국민투표 결과 등을 주시하면서 지속가능성에 쐐기를 박을 차례다. 미래 수소 운반선 시장 등에서 주도권을 놓치지 않아야 할 K-조선, 글로벌 존재감을 키우는 K-금융 등도 혁신 없이 말할 수 없다. 보험사, 여신업계, 증권사 모두 혁신 기업이 돼야 기회를 잡는다.뷰티테크 시대를 맞은 K-뷰티의 활약상 또한 눈부시다. RD 분야 지원, 국내 화장품 인증 기준을 국제기준과 통일하는 등 시행착오를 줄이는 노력이 절실하다. 하나의 문화산업처럼 순항하는 K-푸드는 해외 생산기지 확대와 현지화로 공세적 수출 확대 전략을 이어가야 한다. 한바탕 홍역을 치른 K-플랫폼에선 순기능에 집중하는 선순환이 시급해진다. 레드오션이 예고되기도 하는 K-배터리의 경우, 높은 효율과 안전성에 가격 경쟁력까지 3합이 잘 맞아야 한다. 건설 기술력의 역사를 새로 쓰는 K-건설 역시 정부가 산업적인 위축을 외면하지 않을 때 강력한 성장 엔진이 된다.수출 국가와 품목 다변화는 어느 분야에서나 해당되는 사안이다. 정부가 비관세 장벽 대응과 한류 마케팅 지원을 확대하는 건 기본이다. 관련 선진국의 견제도 해결하면서 콘텐츠 파급력을 연관산업으로 확장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불필요한 걸림돌은 걷어내야 한다. K-반도체의 팔을 꺾는 규제를 풀 특별법이 더 지연되면 초격차 기회를 잃는다. 후(後) 공정이라 불리는 반도체 패키징에 소홀하다간 산업 경쟁력까지 망칠 수 있다.이 모든 혁신과업에 브릿지경제가 같이 갈 것이다. K-전성시대에 걸맞은 한국성(韓國性), 한국다움에 더해 초격차 유지를 못한다면 대표 콘텐츠의 ‘롱런’은 기약하기 어렵다. AI를 품어야 K-산업의 미래가 밝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대체불가 기술을 확보할 시점이다.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 역할이나 위상도 중요하다는 점, K-무역 전반이 탈세계화의 기로에 직면해 있는 현실까지 아울러 환기해 둘 일이다.

2024-09-12 14:17 사설 기자

[사설] 기술 훔쳐 중국에 공장 설립, 막을 방법 없나

산업기술 유출이 극에 달하고 있다. 중국이 한국 CDMA(코드분할 다중접속) 통신장비 업체를 매입하고 휴대폰 제조업체의 단말 RD 부문을 인수한 과거 사례는 순진하고 합법적인 편이다. 이 과정에서 CDMA 기술이 유출됐다. 작년에만 국가핵심기술 23건이 밖으로 샜다. LG디스플레이 중국 공장 기술 유출로 떠들썩한 게 얼마 전이다. 이제는 삼성전자 독자개발 기술을 통째로 훔쳐 중국에 공장까지 차린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 전직 임원의 몹쓸 소행으로 국내 반도체는 산업기술 해외 유출의 핵심 표적임이 수십 차례를 거듭하며 밝혀졌다. 30나노 이하급 D램 기술 등의 국가핵심기술 지정이 무색할 지경이다. 이런데도 ‘외국에서 사용할 목적’, 즉 목적범임을 입증해야 처벌되도록 놔둔다면 개탄할 노릇이다. 지금도 국회에서 미적거리는 불합리한 규정부터 당장 바꿔야 한다.유출된 기술은 20나노급 D램 메모리 반도체의 공정 단계별 핵심 기술이다. 이를 기반으로 중국 쓰촨성 청두시 지방정부가 출자한 현지 반도체 생산회사를 설립했다. 지분을 나누고 국내 인력 유치까지 하는 대담함이 놀랍다. 반도체 분야 해외 기술 유출 건수 중 중국 비중이 압도적인 사실은 이미 실증돼 있다. 600단계 이상의 공정설계가 보호장치 없이 고스란히 넘어갔다니 기가 막히다. 기술 격차 폭을 줄이려는 모든 시도를 철저한 보안 인프라 구축으로 지켜야 한다. 프로젝트 책임자를 제외하고는 모델별로 개별 프로세스를 관리하는 등의 보완책도 검토해볼 시점이다.우리에겐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기전자, 조선, 원자력 등 지켜야 할 기술이 너무 많다. 방산 생태계의 재편을 계기로 방산협력은 하되 핵심기술과 정보유출 방지에는 신경 써야 한다. 위장 취업과 함께 외국 기업이 국내에 기업을 설립하고 인력을 고용해 기술 유출을 하는 수법도 경계 대상이다. 외국인 심사 투자 대상에 비지배적 투자를 포함하고, 국가안보 관련 분야는 사전 신고 의무를 부과해 경제적 가치와 전략적 중요성을 지켜야 한다.산업기술 유출 범죄의 양형 기준도 이대로 놔둬선 안 된다. 미국이 징역 20년을 때릴 때 우리는 고작 집행유예인 식의 솜방망이 처벌은 사라져야 한다. 자체 생산 능력 없이 수입에 의존하던 시절엔 미국 D램 기술을 훔치던 중국이 20나노급 D램 등 우리가 산업 우위를 차지하는 분야를 호시탐탐 노린다. 삼성 핵심기술로 공장을 짓는 행태에 국제 규범과 규칙은 어디에도 없다. 기술 확보 못지않게 기술 관리 전략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다.

2024-09-11 14:22 사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