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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설] 해외 광물 확보에 이차전지 미래 달렸다

전쟁에 비유할 만큼 핵심광물을 둘러싼 경쟁 열기가 달아오른다. 주요국들은 이차전지(배터리) 원료 확보에 안간힘이다. 인공지능(AI)까지 활용해 신규 광산을 탐사할 정도로 극성스럽다. 부존자원이 결핍된 우리에게 니켈, 흑연 등 해외 광산개발 투자에 관심을 쏟는 것은 대안 없는 선택지다. 칠레 등 핵심광물 매장 부유국들은 석유수출국기구(OPEC)과 유사한 연합체를 추진한다. 자원을 무기화하겠다는 흐름까지 잘 읽어내야 할 것 같다. 광물 공급망 구축은 그야말로 초미의 현안이 됐다. LX인터내셔널이 인도네시아 니켈 광산 인수 작업을 끝냈고 삼성SDI가 캐나다 광산 개발기업 지분 인수 계약을 맺었다. 직접 투자의 물꼬를 튼 것은 피할 수 없는 정공법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도 마다가스카르, 탄자니아 광산에 투자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등은 칠레, 호주 현지의 공급망 다변화에 거침이 없다. 현지생산 의무가 없으면서 차세대 전기차 시장인 동남아시아에 대해서는 공세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자원빈국의 무기가 무엇이겠는가. 매우 치밀한 전략과 전술이다. 한국배터리산업협회(KBIA)가 17일 니켈 매장량 1위인 인도네시아 측과 전기차 배터리 생계계 조성 협력을 논의한 것이 그러한 본보기다. 공급망 압박을 수시로 구사하는 중국도 잘 경계해야 한다. 북미, 유럽, 중국 다음의 전기차 선점 경쟁 지역이 될 동남아 지역은 이미 한·중 배터리업계의 격전장이 됐다. 중장기적으로는 제련·가공 과정에서도 강점을 보여야 미래가 있다.우리가 말끝마다 공급망 다변화를 외쳐 왔으나 음극재 생산에 필수적인 천연흑연의 중국 의존도는 96%를 넘는다. 이산화망간은 73.1%다. 전략무기화 대상인 광물은 배터리사나 소재사들과 함께 민관 협력을 잘해야 한다.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가 세계 광물자원의 중심점을 자처하는 것 역시 지나치면 안 될 ‘트렌드’다. 경제 다각화를 내세우며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의 투자를 유치할 움직임에 합류할 기회를 포착해야 할 것이다.국산화 또는 대체재 개발에도 좀더 공을 들여야 한다. 포스코그룹 계열사 포스코퓨처엠이 인조흑연 음극재를 국산화한 것은 고무적이다. 탄산리튬을 수입해 수산화리튬으로 전환시킨 에코프로 자회사 에코프로이노베이션의 경우도 있다. 우리는 미국처럼 대중국 수출통제라는 강력한 패를 쥔 것도 아니다. 리튬, 니켈과 같은 광물을 공급받거나 업무협약(MOU)을 확대하는 등 이차전지 광물 확보에 능동적이어야 하는 이유다. 해외 광산 투자를 비롯해 핵심광물 생산국을 향한 도전을 멈출 수 없다.

2024-01-17 14:01 사설 기자

[사설] ‘민생’ 택해도 물가·경제 불안 살펴야 한다

설 명절을 앞두고 정부가 16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내놓은 민생안정대책은 유동성 공급에 ‘역대급’ 비중을 뒀다.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39조원의 자금을 공급하는 내용이다. 840억원을 투입해 농산물 할인을 확대해 ‘설 특수’를 체감시키겠다는 목표도 추가했다. 물가안정, 민생 지원 및 격차 해소 등은 명절이 아니어도 늘 시행해야 할 정책 과제다. 정치의 구실, 정당의 역할이 민생을 챙기고 올바른 정책을 펴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민생 없는 민생 담론에 그치고 만다. 대내외 경제 불안, 고물가 위험에도 이 같은 대책을 발표한 것은 다소 부담이다. 물가에서는 진심인 것 같던 정부가 재정이 수반되는 지원에 나서니 더 생소하다. 더딘 내수 경기 속에서 지체된 민생 여건을 돌보겠다는 의지는 나쁘지 않다. 소상공인 이자부담 완화를 위한 정책 자금 공급, 하도급 대금 조기 지급 등은 명절이 아니라도 필요한 정책이었다. 하지만 자금 유동성을 키우는 것이 경기 부양에 어떤 도움이 될지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당정이 경제 회복에 정책 우선순위를 두려면 야당과의 협치 없이 가능한 정책만 시행해서는 안 된다. 야당 또한 민생경제 회복에 힘을 보태야 한다. 정치 회복은 민생을 살리는 좋은 수단이다.누구든 ‘민생 걱정은 덜고 활력을 더하는 설 명절’ 정책 목표에 반대할 근거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바보야, 문제는 민생경제 살리기야’라는 총선 슬로건처럼 진행되면 문제다. 민생경제 여건이 쉽다는 게 아니다. 중동 사태로 세계경제 회복이 지연되고 보호무역주의 확산, 내수 회복세 둔화에 가계부채, 구조조정 등 내부 취약 요인에 대해 효과 있는 정책도 제시해야 한다. ‘두더지 때리듯이’라도 물가를 잡아야 할 판에 튀어나온 대책 아닌가. 불가피한 재정 투입이라 설명하지만 불안하게 보이는 이유다. 서민과 취약계층 소득기반 약화의 근원을 똑바로 응시해야 한다.민생이 어려워지는 본질은 사실 따로 있다. 내부 부진, 장기적인 성장전략 부재, 일관성 없는 경제 정책 등에 대한 근원 치료에도 나서야 한다. 취약계층과 영세 소상공인 등의 민생 어려움을 가중하는 진짜 원인을 모른 척하지 않아야 한다. 정부 재정 지출의 비효율성 부분 또한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임 정부에 대해 “매표에 가까운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취지로 비판한 바 있다. 4년 전 문재인 정부 때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명절 자금 지원과 관련해 불거진 총선용 포퓰리즘 시비가 다시 나온다. 물가 변동성에도 유념해야 한다. 민심을 잡기 위한 선택이 아닌 경제를 살리는 선택을 해야 진정한 민생경제다.

2024-01-16 14:19 사설 기자

[사설] 리모델링 아파트도 재건축과 균형 맞출 필요 있다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쏠림 현상에 리모델링 추진 단지들이 고민에 휩싸여 있다. 30년 지난 아파트의 안전진단 면제라는 엄청난 ‘대못’만 빠지면 리모델링 사업은 매력이 줄어들기 마련이다.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발의 과정에서부터 감지되던 사안이다. 지금은 출발선이 완전히 달라져 혼선의 도가 더하다. 사업을 철회하거나 재건축으로 선회하는 리모델링 단지도 많아질 움직임을 보인다. 정책 방향이 재건축 지원에만 집중돼 생긴 일이다. 아파트 기본 골조는 남겨두고 내부와 시설을 새로 건설하는 리모델링 사업은 재건축·재개발과 함께 정비사업의 주요 축이다. 이런 인식에서 보면 형평에도 맞지 않다. 균형 잃은 정책 수혜 효과로 한쪽은 속도를 내지만 리모델링 쪽은 한 풀 꺾이는 분위기다. 윤석열 대통령이 “아주 ‘확’ 풀어버리겠다”는 규제 완화의 햇살이 리모델링에도 비쳐야 한다. 출발선부터 불리해지니 상대적인 불이익이나 역차별 둘 중 하나가 된다. 결과는 보나마나 사업 추진 동력의 상실이다. 공급 대책이라 한다면 리모델링도 포함하는 게 맞다. 적어도 전국 260개 단지, 줄잡아 40만여 가구가 리모델링을 추진 중이란 점을 고려했어야 한다.정부의 리모델링 단지 챙기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리모델링으로 늘릴 수 있는 가구 수를 최대 20% 안팎까지 높인다고도 했다. 특별법이 재건축 중심으로 되면서 용적률이 낮은 1기 신도시 내 리모델링 단지 등의 반발이 거세지자 진화 차원에서 내놓긴 했다. 그러나 줄곧 희망고문이 계속되던 차였다. 도시정비법만 적용받는 재건축에 비해 주택법,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건축법 등의 영향을 두루 받는 것이 리모델링이다. 리모델링 추진 단지에 대해서도 시간은 줄이고 사업성은 올리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자금, 세제 등 다양한 지원 방안도 찾아봐야 한다.문재인 정부 시절 5년간보다 벌써 두 배가 넘게 안전진단을 통과했다. 그런데 리모델링은 또 다르다. 수평 증축 리모델링도 2차 진단까지 받게 했다. 거꾸로 규제가 강화되고 있었다. 균형이 깨지면서 재건축보다 빠른 속도로 사업을 진행한다는 장점마저 사라졌다. 인기 하락으로 재건축 대비 리모델링 추진 동력이 약화되면 안 된다. 늦어진 김에 재건축으로 선회하자는 단지들이 늘어난다. 청사진만 던져 놓지 말고 리모델링 추진 단지들을 안정시켜야 한다. 그저 불만 해소 차원이 아닌 원활한 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 공급이 목적이라면 말이다. 정비사업의 한 축인 리모델링 활성화를 위한 신속하고 실효성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2024-01-15 14:21 사설 기자

[사설] ‘홍해 리스크’ 따른 글로벌 공급망 차질 최소화해야

전국 주유소 기름값이 14주 연속 하락세지만 중동 불안으로 국제유가 전망은 다시 미궁 속에 빠져들고 있다. 하마스를 지지하는 예멘 반군 후티가 홍해를 지나는 유조선과 컨테이너선을 공격한 이후 수에즈 운하의 관문이 막혔다. 항로가 살얼음판이 되면서 경제의 핵심 공급망이 위협받는다. 이란이 미국 유조선을 나포한 호르무즈해협까지 위험도가 급상승 중이다. 우리 국적 선박들은 홍해 대신 아프리카 항로로 우회하는 바람에 해상운임이 두 배 이상 치솟기도 한다. 납기가 급한 일부 중소 선사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수에즈 운하를 직통할 경우의 안전까지 챙겨야 할 상황이다. 국제 유가와 무역망 파장이 우려스럽다. 글로벌 물류의 동맥 두 곳이 위협받으니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중동 분쟁의 한복판으로 휘말린 세계 경제에 주름살이 예고된다. 우선, 세계 10대 컨테이너 선사들이 홍해 항로에서 잇따라 철수하면서 생산과 운송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수송로가 막히자 한 달 가까이 독일 공장을 멈춰 세운 테슬라를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는 없다. 한국 수출을 견인하는 자동차, 배터리 등 핵심 산업에 타격이 예상된다. 자동차는 주력시장이 미국 쪽이라 영향을 덜 받는다는 식의 사고는 안일하다. 지난해 연간 수출액의 10.8%를 유럽연합(EU)이 점유해 역대 최고였다. 기계와 철강 수출 등을 중심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네옴시티 효과가 빛이 가리는 등 파장이 다각적으로 전개되지 않게 해야 한다.홍해 항로 정상화까지 최소 2개월이라고 본다. 사태가 장기화하면 글로벌 인플레이션 완화 흐름은 반전된다. 국제유가 반등은 전 세계 경제를 고유가와 고물가, 저성장의 스태그플레이션 속에 몰아넣는다.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면 국내 수입의 약 70%를 차지하는 원유와 천연가스 가격 인상이 뒤따르는 건 필연이다. 현재의 에너지 도입이 정상적이라 해도 일련의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때를 봐야 한다. 여러 정황상 중동을 둘러싼 긴장은 단기간 내 가라앉지는 않을 것 같다. 정부 비상대책반회의를 통해 잠재적인 영향에 대해 다양한 시나리오별로 대응해야 한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0.5%p 상승 전망은 호들갑이 아니다.수출 선적과 에너지 도입에 당장 큰 지장이 없다 할지라도 사태가 더 나빠질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하늘길을 택하는 수요가 늘면 항공운임도 뛴다. 반도체는 항공기를 주로 이용하기 때문에 괜찮다는 식의 대응은 안 된다. 수출 상승 흐름세인 한국의 핵심 공급망이 위협받는 중대 사안이다. 중동발 공급망 혼란과 에너지 가격 인상의 겹악재가 우리 경제를 덮치지 않도록 철저히 대처해야 한다.

2024-01-14 13:32 사설 기자

[사설] ‘신용사면’ 취지·명분만 좋아선 안 된다

서민과 소상공인의 대출 연체기록 삭제는 긍정적인 면이 많다. 직격탄이나 다름없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영업규제 등을 감안할 때 민생 회복 차원에서 유용하다. 소액 채무를 연체했지만 전액 상환한 취약계층이 대상인 점에서 공감이 가는 조치다. 특별사면과는 성격이나 효력이 다른 개념이지만 신용사면이라 일컫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국신용정보원이 보존하고 금융기관과 신용평가회사가 공유하는 연체 기록 말소는 당사자들에겐 희망을 줘 용기백배해질 기회도 될 수 있겠다. 이러한 신용회복 지원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대출 기한을 불가피하게 못 지켰지만 다 갚은 경우에 한정한다. 그 기준으로 굳이 말하면 ‘옥석’을 나름대로 가려 카드 사용이나 대출 이용 등 금융 거래 불편과 불이익을 덜자는 것이다. 경제적 취약계층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에 조기 복귀할 방안으로 기능을 잘했을 때의 이야기다. 금융 취약계층의 재기를 도와 부작용 없이 추진될 때는 대상자 개개인의 사기를 북돋울 수도 있다. 그래만 주면 선의로 가득한 제도다.조건 내에서 연체 이력 삭제는 금융소외계층을 품는 일이다. 대상자 수를 보면 금융 대(大)사면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그런 만큼 부실차주와 우량차주를 가르는 최소한의 구분은 있어야 한다. 무분별한 대출이 분출돼 금융시장이 혼란스럽거나 가계부채가 부실해지지 않아야 해서다. 대출 만기 영장과 상환 유예로 모자라 신용불량 구제까지 하느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취약 고리인 다중채무자 양산에 유의하면서 신용 회복지원 협약 등을 거쳐 디테일을 다듬을 필요는 있다. 신용정보원 기록 지우기가 끝은 아니다.정부 기대처럼 금융거래 접근성이 높아져 신용점수 상승으로 대환대출까지 가능하려면 이른바 ‘상생금융’의 측면이 보강돼야 할 것이다. 과거 정부에서 269만명 신용사면, 322만명 빚 탕감 등의 결말과 문재인 정부 때 코로나19 사태를 앞세워 연체 기록 삭제를 시행한 이력도 좀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 검증이 불가능한 점, 그로 인해 모럴해저드와 리스크 관리 비용이 일반 고객의 대출금리 상승 등으로 전가될 개연성이 있다.금융 거래 제한을 풀겠다는 한 가지에만 천착하지 않아야 한다. 불특정 다수의 채무를 늘려 연체 악순환의 늪에 빠지지 않게 관리하는 일이 중요해졌다. 신용사면을 해도 신용이 금융의 생명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연체 기록 삭제의 취지와 명분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신용시스템의 뿌리를 흔들거나 금융 현실을 무시해 금융권에 부담 가는 무리수를 두는 것에까지 지지를 보내지는 않는다.

2024-01-11 14:07 사설 기자

[사설] 기업에 ‘모래주머니’ 언제까지 무겁게 채워둘 텐가

규제 혁신을 서두를 시점에 기업활동을 방해하는 불필요한 규제가 새로 생기고 있다. ‘모래주머니론’을 내세운 정부의 킬러 규제 혁파 의지도 제1 다수당에 맥없이 꺾인다. 노동 규제, 환경 규제, 인증 규제, 금융 및 세제 관련 규제 중 해소할 것들이 수두룩하다. 이 가운데 중소제조업체가 대표적 규제로 지목한 것이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다. 국회는 상정조차 안 했고 50인 미만 중소사업장에 대한 적용 2년 재유예는 일단 무산됐다. 중소기업중앙회와 경제6단체는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라는 반응을 내놓았다. 경제 활성화를 내건 그 많은 호소와 설득은 민생 외면에 이골이 난 국회에는 ‘소 귀에 경 읽기’였다. 킬러 규제 1호로 지목된 6개 법안 중 외국인고용법, 산업입지법, 환경영향평가법 개정안 등 주요 경제·민생 법안은 뒷전에 밀린다. 실거주 의무 폐지 법안은 폐기 수순이다. 인공지능(AI) 산업 생태계를 비롯한 신산업 발전이 목적인 규제 합리화는 머나먼 여정을 남겨뒀다. 기업들이 글로벌 빅테크와 같은 속도로 달리도록 짐을 가볍게 해주는 게 타당하다. 화학물질등록평가법과 화학물질관리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그렇게 다행일 수가 없다. 산업현장에서 실제 도움이 되려면 하위법령인 시행규칙 개정 등 조속한 후속 조치가 요청된다.입법 취지만 좋아선 안 된다. 규제 강도가 너무 세면 관련 산업 발전을 저해한다. 환경 보호와 안전 강화 자체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노동계의 ‘당연한 결과’가 경영계에 ‘민생을 외면한 처사’가 되기도 하는 것이 규제다. 1월 27일까지 그대로 둬서 예정대로 사업장에 적용해서 안 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소규모 사업장의 예방투자 여력이 현실적으로 부족해서다. 보완할 시간, 즉 형사처벌보다 준비할 시간을 주는 데 초점을 맞춰보라. 정부·재계와 노동계의 대립각을 형성할 것도 없다.엄격한 과잉 규제는 기업 활동에 족쇄로 작용한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환경이 바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요건이다. 법 전면시행 전까지 어떻게든 개정안을 논의하고 신속한 입법 처리를 해야 한다.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데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안이 충분하지 않다며 걷어찼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논의의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았을 때 적용 유예 논의를 계속 시도해야 할 것이다. 의원발 규제입법 탓에 기업들이 더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달고 있다. 1월 임시국회 본회의가 25일로 잡혔다. 그때는 꼭 처리해 영세 중소기업의 현실적인 부하를 덜어줘야 한다. 합리적인 규제로 전환하는 노력은 국회가 계속할 의무다.

2024-01-10 14:17 사설 기자

[사설] ‘CES 2024’, AI 중심의 미래 트렌드 확실히 읽어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9일(현지시간) 개막된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2024’는 역시 달랐다. 세계 최대 규모의 가전·IT제품 전시회다운 면모가 한층 세졌다. 여기서 발견한 것은 인공지능(AI) 없이는 기술업체가 아니라는 놀라운 사실이다. AI는 화두이면서 시장을 지배하는 트렌드였다. 전통 가전 분야와 정보기술(IT), 자동차를 넘어 건설과 기계, 화장품, 유통 부문 등으로 영역을 넓힌 산업군이 모이니 더 명료해진 결론이다. 우리가 투시할 것은 개개 전시물의 집합체가 아닌 글로벌 기술기업들의 사업전략, 기술 혁신과 미래 비전이다. 국내 벤처·창업기업 116개가 CES 혁신상에 빛나는 올해는 혁신이 전 산업을 지배하는 모습이 확실히 드러난다. 삼성전자 ‘온디바이스 AI’ 기술이라든지 현대자동차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기술 등의 전시도 돋보였다. 하드웨어와 사물인터넷(IoT) 단계를 넘어선 비전을 가져야 세계 시장을 이끈다는 각성을 스스로 강화할 때인 것 같다.AI와 모빌리티, 푸드·애그테크, 헬스·웰니스테크, 지속가능성과 인간안보 등의 테마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 또한 인공지능이다. AI가 전 산업을 지배하리라는 ‘예언’을 그 주인공이 된 우리 기업들이 보여줘 뿌듯하다. AI 분야 혁신상 28개 중 16개를 한국 스타트업이 휩쓸어 기술 경쟁력을 입증했다. 다만 영국 데이터 분석 업체가 평가한 글로벌 AI지수에서는 62개국 중 6위를 차지한다. 낮지는 않지만 만족할 수 없다. 글로벌 인공지능 시장 규모는 2030년에 2경 원을 상회할 것이다. 평판이나 평가에 우쭐하지 말고 비즈니스 모델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AI 기술 주도국이 되지 않으면 종속국이 된다. AI 반도체의 해외 의존도를 낮추는 일도 시급하다.150여개국 4000여 참가 업체가 보여준 것은 AI 융합이 대세란 점이다. 누구의 전유물도 아니다. 모든 기업이 주저 없이 인공지능의 흐름에 합류해 3차원적 융합의 선두에 서야 한다. 기술 혁명이 있을 때마다 구글, 애플 등 떠오르는 별과 야후, 노키아 등 신화만 남기고 지는 별들이 있었다. 화장품 업체도 증강현실 메이크업 체험 등 뷰티테크를 소개했다. 유통 기업은 전략적으로 인공지능 기술과 접목한다. 산업과 기술의 구분을 허무는 경계의 전환, 이른바 빅블러(Big Blur) 시대에 맞춰 연구개발(RD)에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 CES 참가 기업이 아니라도 AI가 바꾸는 미래상을 읽는다면 큰 소득이겠다. AI 혁신 기업이 시장을 주도하는 제4의 도도한 물결 앞에서 우리가 참관객이 될 수는 없다.

2024-01-09 14:14 사설 기자

[사설] 실거주 의무 폐지, 법안소위 마지막 기회 살리길

부동산 시장 정상화를 위해 추진한 분양 아파트 ‘실거주 의무 폐지’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고 말하기에도 늦었다. 딱 한 달 전인 지난해 정기국회 마지막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을 때 했어야 더 어울릴 말이다. 1년 전의 정부 발표를 믿고 분양가 상한제 적용 주택의 청약에 당첨된 수분양자(입주예정자)들은 피가 마르는 상황에 비유된다. 부동산 시장 정상화를 바라는 정부와 건설업계도 애가 타긴 마찬가지다. 주택법 개정안의 운명이 경각에 달려 있다. 국회 통과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런데도 최초 입주일로부터 2~5년 실거주 의무 법안의 폐기를 끝까지 막아낼 이유가 있다. 반쪽 짜리 규제 완화가 시장 대혼란에 빠지는 걸 방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1년 넘게 국회 문턱을 못 넘기면서 이렇게 불확실성을 키운 건 시장 상황과 무관한 여야 대치와 정치적인 논리였다. 실거주 의무가 사라지면 갭투자를 부추길 수 있다며 법 개정을 미루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처사다. 서울 전세가율이 2017년 이후 최저 수준이어서 그럴 우려는 크지 않다. 그런데도 투기 수요를 차단하고 실수요자 위주로 공급해야 한다는 형식적 근거에만 매달리니 현실을 놓치는 것이다.주택가격이 최고점에 도달했던 2021년에 실거주 의무가 도입된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는 듯하다. 분양가 상한제 혜택이 사라진 마당에 해당 66개 단지의 현재 주변시세는 당시 분양가 수준이거나 이를 밑돌기도 한다. 분양받은 이들 대부분은 투기성 수요 아닌 무주택 실수요자들이다. 자녀 전학 문제나 자금 부족 등 입주자들의 사정은 각양각생이다. 법률이 아닌 시행령으로 일일이 구제하기에는 매우 비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법 개정이 무산되면 시행령에서 조건부 예외를 허용해서라도 구제해야 할 만큼 절박하다.주택법 개정안을 논의한 마지막 데드라인이 오늘(9일)이다. 워낙 큰 여야 입장 차이를 좁히는 쪽으로 더불어민주당이 내부 입장을 정리하는 게 관건이다. 국회 본회의 이전에 국토위 법안소위 일정을 잡으면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셈이고, 불발돼 정치권이 총선 모드에 돌입하면 폐기 수순이라고 봐야 한다. 실거주 의무 폐지가 어렵다면 보유 기간 중 거주 의무를 채우는 절충안이라도 처리해야 할 것이다. 기존 전셋집 계약이 끝나지 않을 경우 실거주 시기를 늦추는 등의 예외 규정이라도 둬야 한다. 실거주 의무 적용 아파트 청약 당첨자들의 혼란을 막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아직도 주택법 개정안의 시급한 처리다. 그렇게 되도록 끝까지 포기하지 않길 당부한다.

2024-01-08 14:20 사설 기자

[사설] ‘세컨드 홈’ 정책을 넘어 ‘다주택’ 개념 바꿀 때 됐다

효과는 아직 미미하지만 인구감소지역에 대해 디지털 관광주민증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생활인구를 늘려서라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유도한다는 전략이다. 정부가 인구감소지역에서 취득한 주택 1가구를 주택 수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내놓은 것은 낙후지역을 살리려는 생활거점화 의도다. 기존 1주택자가 전국 89곳의 인구감소지역에서 집 한 채를 신규 취득해도 1주택자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일본식으로 표현해 ‘2지역 거주’가 우리에게 더 가깝게 다가올지 주목된다. 1세대 1주택 특례는 보유·거래 인센티브라는 부동산적 관점을 넘어 주거문화와도 연관이 깊은 정책이다. 도시와 농촌에 옮겨 다니며 살고 싶은 멀티해비테이션(multihabitation) 성향과 연결하면 ‘세컨드 홈 활성화 대책’의 효과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가액이나 구체적 요건 등 더 가다듬은 세부안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따른 인구감소지역의 지도를 놓고 보면 사실상 비수도권 전체에 대한 규제완화나 별반 다름없다. 물론 수도권에서도 경기 가평군, 인천 강화군과 옹진군 등은 포함된다. 지방 주택 1채와 서울 핵심 지역 주택 1채로 ‘등가’로 보는 기존 정책에도 일대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소멸위기지역’이라고 콕 집어 지칭하지 않더라도 지방은 아프다. 빈집이 늘어 매매가 끊긴 지역까지 적용되는 다주택 규제는 그래서 합리적이지 않다. 이번 정책으로 미분양 물량 등으로 고전하는 지방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 어려울 뿐 아니라, 주로 여가나 관광, 은퇴 수요가 있는 특정 지역에만 수혜가 몰릴 거라는 점은 문제다. 다양한 정책적 지원으로 보강해 나갈 부분이다. 예를 들면 고가주택일지라도 인구감소지역이면 매입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 지방소멸이 가시화되는데 다주택 규제의 옷을 입혀 정책이 거꾸로 가면 안 된다. 그리고 세컨드 홈 활성화는 어느 수준의 정주여건 개선 없이는 불가능하다.집이 2채 이상이면 투기를 억누를 명분으로 일단 투기 수요로 간주하는 기준까지도 전반적으로 손댈 필요가 있다. 정책 효과는 달성하지 못하고 똘똘한 1채 보유에 따른 부작용만 키웠다. 최소 22회에 걸쳐 때로는 징벌적 과세를 섞어 다주택 규제 완화와 강화를 반복한 것이 효과가 있었던가. 도시와 농촌을 오가는 생활인구 개념을 도입하려 한다면 ‘멀티화’ 자체에만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 정책은 결과 면에서 다주택자 기준의 단계적 완화와 같다. 이제 낙후지역 생활인구를 늘리기 위한 다주택자 기준 완화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3주택 이상’ 등으로 다주택 개념에도 변화가 요구된다.

2024-01-07 14:31 사설 기자

[사설] 중대재해법 2년 유예, 민주당도 호응해야 한다

국민의힘과 정부가 지난해 섣달 27일 ‘중대재해 처벌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적용 2년 유예를 결정했다. 50인(공사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한 달을 남긴 시점이었다. 그 이후로 중대재해처벌법 유예는 한 발짝도 진도를 못 나가고 있다. 이대로 두면 꼼짝없이 이달 27일 전면 시행된다. 준비가 덜 된 중소기업에 처벌이 집중되고 자칫하면 폐업과 근로자 실직 등 부작용까지 떠안고 가야 하는 상황이다. 지금의 논란은 다분히 쟁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사실 이 법은 처벌이 예방과 재발방지의 특효약인 양 잘못 틀지워진 법이다.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 대한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너무 치중돼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다. 법적 규제만으로 노동문제를 규율하려는 입법 방향이 앞서다 보니 중대재해를 막는다는 선의(善意), 그러한 입법 취지는 오히려 뒷전이다. 안전관리 역량이 취약한 중소기업에 처벌까지 유예하면 경각심이 해이해진다는 사고에 젖어 있다. 재해 예방 효과를 봐야 하고 처벌이 합리적인가도 봐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다. 그러니 호응을 안 하는 것이다. 기업인 처벌이라는 사후약방문에 초점이 맞춰진 중대재해법에 내재된 근원적인 문제다. 기존 시행하는 50인 이상 사업장의 처벌 수준도 지나치게 높다.강한 처벌 위주의 시행에 따른 부작용을 이제라도 살필 때다. 중대재해 예방이 주목적이라면 절박한 기업 현장 목소리를 듣는 게 현명하다. 기업 활동 포기법, 실업자 양산법이라는 주장에 고스란히 동의할 수는 없지만 기업 대표 실형 가능성은 큰 법이다. 소규모 기업 특성상 경영 타격과 폐업으로 인한 근로자 피해 부분은 중시해야 한다. 헌법상 노동권을 2년 더 무력화하는 해방구를 만들자는 요구가 아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된 중대재해법 유예 개정안을 중심으로 논의를 지금 서두르기 바란다. 그 사이에 중대재해 안전관리 역량 수준을 갖춰야 한다. 더 실효성 있는 기업 컨설팅과 중대재해 취약 분야 지원 등 보완장치도 함께 손질하면 된다.당정의 적용 유예 원칙 결정으로 공은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넘어가 있다. 국민 71%가 원한다고 주장하는 노동계와 해당 기업의 94%가 준비가 안 됐다는 경영계의 대립으로 몰아가선 안 될 일이다. 유예기간 연장을 위한 연장이 아니다. 2년 뒤에 똑같은 사정을 마주하지 않도록 준비해야 보다 합리적이란 거다. 중소기업단체협의회와 경제6단체도 2년 연장 뒤에는 추가 유예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야당이 즉시 화답할 차례다.

2024-01-04 14:53 사설 기자

[사설] 새해 소상공인 지원, ‘생태계’까지 키울 준비 됐나

소상공인과 시장 상인들에게 쉽지 않은 2024년이 될 것 같다. 그래선지 국민의힘과 정부가 3일 새해 경제정책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나온 대책들은 체감형 지원에 더 신경 쓴 느낌이다. 영세 소상공인 126만명 대상의 전기요금 감면이나 전통시장 소득공제율 상향은 각종 지원이나 세법개정안 등을 통해 익히 봐온 것이긴 하다. 불확실한 경제 환경 대처와 내수 활성화에 선순환이 된다면 그런 건 문제시되지 않는다. 전기료 문제도 그렇다. ‘정치 요금’처럼 되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은 되지만 골목상권과 지역시장에 도움이 된다면 ‘총선용’ 굴레를 씌울 건 없다. 소상공인이 빚더미에 짓눌리면 경제의 허리가 부실해지는 것이다. 당정이 인식하듯이 올 상반기는 민생경제 회복의 주요 고비다. 그리고 한국 경제의 갈림길이다. 정부의 경영 부담 완화 의지는 중소벤처기업부의 2024년 소상공인 지원사업 통합공고에도 들어 있다. 소상공인의 자구책만으로 아킬레스건 같은 금융 부실을 메우긴 힘들다. 이자 부담을 덜어주는 상생금융 재정 지원이 가뭄에 단비처럼 된다는 전제에서다. 사업이 잘되게 해 대출원리금을 갚게 해주는 것, 생태계를 키우는 방법이 당연히 가장 좋다.윤석열 대통령도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을 근간으로 하는 서민경제를 부쩍 강조한다.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는 소상공인·자영업자 금융 부담을 덜어주는 지원 약속을 내놓았다. 제도권 금융 이용이 어려운 부분 등을 정책 현안으로 삼는 것은 좋다. 인터넷은행들조차 중금리 대출공급이라는 구실을 잘 못하고 있다. 이래저래 다수 소상공인들이 대출 상환 부담과 인건비 등 운영비 상승 압박에 시달린다. 다만 상생의 이름으로 금융권이 나서는 데는 한계가 있다. 어떤 지원 방안이든 경제를 옥죈 선한 정책들의 목록에 포함되어서도 안 된다.금융안전망 강화는 악순환에 빠진 소상공인들이 간절히 원하는 사안이다. 빚으로 연명할 정도로 경영을 힘들게 하는 악재들은 개선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옥석을 가리지 않는 정책 금융 지원이 소상공업계 생태계를 왜곡시키는 경우는 없어야 할 것이다. 은행으로서는 대출 부실 예방을 위해 부채 관리를 체계적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전기료 감면이나 자금 지원은 필요하지만 영세 소상공인의 안정된 경영 환경을 충분히 보장하지는 않는다. 경쟁력 자체를 길러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경기 둔화에서 벗어나 국내 소비 기반을 강화하는 정책적 노력을 반드시 병행해야 하는 이유다. 표심에 휘둘리거나 선언적 다짐에 머물지 않아야 소상공인을 실제로 살릴 수 있다.

2024-01-03 14:01 사설 기자

[사설] 2024년 성장 견인할 경제 토대 지금 쌓아야

우리 경제가 회복세에 접어들지만 그 속도는 매우 느리다. 2024년 경제 전망은 짧게 한 줄로 줄여진다. 국책연구기관과 민간연구소, 국제기구 등이 연간 2%대의 실질 국내총생산 증가와 완만한 회복세를 내다보는 올해의 덕목은 만성적 경제위기론도, 지나친 낙관과 자만도 아니다. 저성장 기저효과까지 곁들인 더딘 성장률이다. 물가상승률 전망치도 권고치인 2%대 유지다. 그래도 구름 밖의 푸른 하늘이 보이는 ‘운외창천(雲外蒼天)’의 희망을 가져볼 수 있는 새해다. 그렇지만 또 다른 키워드 하나는 불확실성이다. 이걸 넘어선 ‘초불확실성’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책은 탄탄한 경제 토대를 쌓는 것이다. 미·중 반도체 갈등 여파에 따른 것,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관련한 것이 대표적이다. 미국·중국 등의 성장률 하락과 유로 지역 등 주요 선진국의 경기 둔화 징후가 뚜렷하다. 지정학적 갈등과 대립 속에 에너지 가격의 변동성과 기후변화에 기인한 농축수산물 수급 불안정 등 물가 위험 요인은 그대로 상존한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체감경기도 좋지 않다. 소득기반 부실화와 폭증한 가계부채도 걸림돌이다. 민간부채 부실화가 2%대 낮은 성장률마저 어렵게 할 수 있다. 경제 침체 늪으로 가지 않도록 연초부터 경기 연착륙의 파란불을 켜야 한다.올해는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 현상도 완화될 것이다. 하지만 성장을 떠받치는 한 축인 내수 회복 시점은 글로벌 고금리 영향력이 실질적으로 종료되는 하반기 이후가 될 것이다. 주요 교역국들의 어려워진 경제 상황도 2% 성장 달성에는 장애 요인이다. 민간소비나 설비투자 등 내수 성장이 미약하고 건설 투자는 침체를 면치 못하는 수준이다. 제조업과 건설업 경기 부진은 고용시장 전반을 악화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윤석열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민생 회복, 경제 회복 및 재도약, 흔들림 없는 개혁, 튼튼한 안보를 4대 키워드로 제시했다. 대내외 척박한 경제 환경에 맞서 싸우는 기업인들의 사기를 끌어올릴 법적·제도적 지원은 많을수록 좋다. 우리에겐 4·10 총선이 다가온다. 정치 과정을 통해 추진되는 경제 정책을 생각할 때 정치도 엄연한 경제의 변수다. 미국 대선을 비롯해 대만 총통 선거, 인도네시아와 멕시코 대선, 러시아 대선 등 43개국 선거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올해 성장률을 2%대 초반 아닌 1%대로 전망하는 전문가도 상당수다. 저성장이 고착화하는 중장기 저성장을 조심해야 한다. 패권경쟁을 선도할 초격차 기술을 선점하는 것도 주요 과제다. 갑진년 ‘경제 역전’을 이루려면 우리가 선택할 길은 여전히 ‘도전’이다.

2024-01-02 14:14 사설 기자

[사설] 태영건설 PF 위기 막기가 새해 첫 과제다

새해 민생경제 회복과 역동경제 구현과 함께 잠재 리스크 관리가 경제계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경제 부진과 불확실성 속에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로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을 신청한 태영건설을 둘러싼 난제 풀기가 갑진년 경제의 첫 번째 열쇠다. 건설업 줄도산은 금융업을 비롯한 경제 전반의 위기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후폭풍을 최소화해 시장 우려를 잠재우는 것이 우선과제인 이유다. 워크아웃 개시를 위한 3일 설명회와 11일 태영건설 채권 금융회사 제1차 협의회가 분수령이 될 테지만, 그 많은 채권단의 금융 지원 방식에 이견이 없긴 힘들다. 수용할 만한 대주주 자구책이 관건이 될 듯하다. 부동산 PF 우발채무가 현실화될 때의 유동성 위기는 연쇄적이다. 자본조달 시장을 더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 많은 건설업계가 몇 년째 부동산 경기악화에 따른 분양시장 침체와 거래 위축의 악재를 근근이 버티는 처지다. 적절한 조정과 정리, 자구노력, 손실부담 등의 전제가 불가피한 면은 있다. 부동산시장 전체에 악재로 작용하지 않는 정책 구사가 더 중요해진다.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만기 연장 불발에 따른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 이후 금융시장이 생각처럼 많이 출렁이지는 않았다. 레고랜드 사태와 구분되는 점이다. 어느 정도 알려졌던 사안과 돌출된 이벤트와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다. 금융시장에 이미 상당 부분 반영돼 있고 PF 충격을 정부가 저지할 거라는 기대감까지 혼입돼 있긴 하다. 하지만 기대가 무너질 때는 걷잡을 수 없게 될 지경이다. 레고랜드 사태의 자금 조달 애로를 겪은 여파가 오래 미쳐 폐업의 길로 속속 들어서는 부분도 봐야 한다. 금융 부문에서 다양하게 규제를 완화한 것 같지만 현실의 온도는 다르다. 태영건설 사태가 부동산 PF 규모에서 출발했지만 업계 전반의 위기는 시장에서 외면받으며 눈덩이처럼 커진 측면 또한 부인할 수 없다.PF 먹구름이 갑진년 새해 건설업계에 짙게 드리워지는 중이다. 부동산 PF 대출 금리가 뛰면서 수익성 악화로 유동성 악화에 어려움을 겪는 업계를 방관만 할 수는 없다. 지난해 전국 건설사 폐업 신고건수(변경·정정·철회 포함)는 거의 3000건에 이른다. 실행력 없이 시장의 PF 불안 요소 인지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자금을 빌려준 금융권, 다른 건설사들로 위기가 전이돼 2011년 저축은행 PF부도 사태 때처럼 되면 안 된다. 시장 더듬기식이 아닌 시장 안정화를 위한 금융당국의 진중한 대처가 매우 요긴해졌다. 새해 성장동력 확보는 부동산 PF발(發) 위기 현실화를 선제적으로 막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2024-01-01 14:17 사설 기자

[사설] IRA 청정수소 잠정 가이던스 주목할 때다

각국의 탄소배출 규제 강화로 청정수소가 친환경 에너지로 급부상한다. 미 전역에 7개의 청정수소 허브를 선정한 미국의 발걸음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 맥가이버 칼로 불리는 ‘스위스 군용 칼’에 청정수소가 비유되기도 한다.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다목적, 다용도란 의미일 것이다. 그런 의지를 담아 청정수소 생산에 세액공제(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기준을 발표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청정수소 생산세액공제 잠정 가이던스(하위규정)에서도 그러한 계획을 숨기지 않는다. 가이던스에서 수명 주기 온실가스 배출량을 정의한 것에 밑줄을 그어져 있다. 생산 방식이나 과정이 기준이 아니란 얘기다. 그린수소(신재생에너지 이용)는 물론 블루수소(탄소포집 기술 활용), 핑크수소(원자력발전 이용 생산)도 청정수소 기준에 든다. 이에 비해 탄소를 다량 배출하며 만든 브라운수소나 그레이수소는 인정받기 힘들 수 있다. 생산 단계에서 탄소 배출의 많고 적음 여부를 준거점으로 삼은 점과 세액공제 부여 너머의 흐름까지도 잘 읽고 대처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 업계의 의견이 잘 반영된 미국 가이던스 확정안이 나오길 기대해본다.얼마나 깨끗해야 청정수소인지는 우리 기업의 미국 내 청정수소 프로젝트 활성화에서 눈여겨볼 대목이다. 현재 미국 내 청정수소 허브 7곳 중 순수하게 태양광이나 풍력 등 그린수소 요건에 부합한 곳이 2곳을 제외하면 천연가스, 원전, 신재생을 조합한 방식으로 생산한다고 보면 된다. 원자력 청정수소 생산기술은 미국이 제일 앞서며 우리와는 2~3년 기술 차이가 난다. 유념해야 할 사실이다. 생산 전력 청정에너지화는 기본 과제다. 그린수소 생산에 필요한 고온 수전해 기술 상용화 등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삼성물산이 경북 김천에 구축하려는 그린수소 생산시설은 좋은 모델이 될 것 같다.탄소중립 목표에 맞추려면 국내 청정수소 수요도 충당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세액공제 제도는 국내 기업의 미국 현지 생산 증가와 국내 도입 증가를 동시에 의미한다. 청정수소는 가정용 난방에서 항공기 연료까지 두루 쓰는 미래 에너지원이 될 것이다. 엑손모빌 등 석유화학 기업부터 청정수소 허브에는 아마존과 같은 정보기술(IT)도 뛰어들었다. 경쟁에 뒤지지 않으면서 생산단가를 낮춰 경제성 있는 청정수소 생산 기반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국내적으로는 수소 공급망에 대한 민관 투자로 수소 산업을 안정화·본격화할 때다. 유럽연합(EU)의 역내 수소 생산에 대한 보조금 또한 관심을 기울일 대상이다. 우리 자신의 인센티브 제도와 청정 인증제 확정에도 손을 놓고 있을 시간이 없다.

2023-12-28 13:58 사설 기자

[사설] 중소기업 가업승계 활성화 계속돼야 한다

가업상속공제와 증여세 과세특례는 올해 상당 수준의 성과가 있었다. 부모의 가업 영위 기간에 따라 증여특례를 적용받거나 가업승계 특례제도의 사후관리 기간이 5년으로 축소되는 것 등은 눈에 띄는 변화였다. 부의 대물림이라는 이념적 기준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는 징후인 점도 반갑다. 가장 잘한 중소기업 정책의 하나로 가업승계 활성화가 선정됐던 사실만 봐도 기업엔 숙원이나 같다. 세제 지원 강화는 기업 규제 완화 성격도 있다. 그런데 여전히 막대한 조세 부담이 승계의 걸림돌이라는 점에서는 많은 입법 과제를 남겨뒀다.중소기업중앙회가 조사한 가업승계 실태에서 창업 경영자 1세대가 승계 과정에 예상되는 최고 어려움으로 조세부담 우려(76.3%)를 꼽았을 정도다. 누진세율이 적용되는 일반승계와 달리 가업승계의 장점은 낮은 세율 적용이다. 원활한 부의 이전을 위한 가업승계에서 최소한의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 포인트다. 세금 부담 때문에 가업승계를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상속세 절세라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 국내 사업체 수의 99.9%를 차지하는 기업의 영속성 유지라는 시각에서 보면 좋을 일이다.증여특례나 납부유예, 기업 현황에 맞는 사후관리 등에 관한 교육·컨설팅은 후계교육·경영교육 측면에서도 앞으로 강화할 부분이다. 가업승계를 위한 주가 관리와 상속 소요 재원 마련 등 어려움도 있다. 최고세율 50%로 일본(55%)에 이어 OECD 회원국 중 두번째로 높은 상속세 개편은 더욱이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세금 부담을 이유로 다른 기업에 매각하거나 인수·합병(MA) 시장으로 눈을 돌리기도 한다. 경영자 고령화가 심한 기업이 많아 가업승계는 더 절실하다. 기업 성장이나 유지 성과는 고용 창출과 신규 투자 촉진으로 이어진다. 기업의 계속성이 사라지거나 승계가 재무 리스크가 되지 않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이 같은 기준에서 증여세 완화 기준과 증여세율 적용 과세구간을 정해야 할 것이다. 중소기업벤처부의 노력이 더해져 사업승계 대상 확대, 상속공제 한도 상향, 증여세 특례 한도 증액, 증여세 저율 과세 확대가 이뤄진 것은 성과다. 저율과세 구간 추가상향이나 연부연납 기간 확대는 거듭 거론하지만 중소기업 입장에서 처리하면 된다. 승계할 후임 대표를 못 찾아 멀쩡한 흑자기업이 폐업하는 사례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 증여세 특례제도가 분명히 개선됐지만 제도 정비는 끝이 아니다. 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세제 지원을 강화하는 노력이 내년에도 계속되길 기대한다.

2023-12-27 14:01 사설 기자

[사설] 새해 예산 조기 집행, 경제활력 제고 효과 극대화해야

‘민생’을 전면에 내세운 정부가 예산 조기집행 방안을 내놓았다.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올해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세출예산의 75%를 상반기에 조기 배정하기로 했다. 올해에 이어 역대 최대 수준으로 예산을 앞당겨 사용한다는 정부 예산배정계획이 조속한 집행에만 방점이 찍히지 않아야 할 것이다. 확정된 예산 지출 시간표가 내수경기 부양 등 경제 활성화에 실질적인 도움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상반기 재정 집행에서 최우선할 것은 재정정책의 유효성이다. 시기적으로 지금은 금융위기나 코로나19와 같은 비상상황은 아니다. 경제활력 제고 명분은 차고 넘칠 테지만 문제는 재정 조기집행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느냐에 있다. 내년 전체 세출예산(일반회계+특별회계) 550조원 중 412조5000억원 규모를 상반기에 배정해 경제 활력을 일찍 불어넣는다는 포석 자체가 나쁘지는 않다. 상반기 집행 비중을 크게 하는 과감하고 선제적인 예산 조기 집행이 GDP에 미치는 효과가 크다는 실증적인 사례도 물론 있다.하지만 2002년 이후 한두 번 빼고 매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된 단골 메뉴인 신속·조기 집행은 효과가 미미할 때가 많았다. 박근혜 정부 4년간 조기 집행률은 평균 59.5%에 달한다. 2014년 당시의 예를 들면 재정 조기집행의 당해연도 총수요 유발효과는 GDP의 0.04%에 불과했다. 최근 몇 년간 경기를 살리겠다며 꾸준히 70% 이상을 유지했다. 조기 지출 독려로 사업에 속도만 내다간 과속이 될 수 있다. 경제체질의 근본 개선 없이 조기 지출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예산 집행이 부실해지지 않아야 한다. 정부지출 증가로 민간부문의 소비 및 투자가 위축되는, 즉 민간투자의 구축(驅逐, crowding-out)으로 재정지출의 경제 효과가 떨어지는 경우도 없어야 한다.원칙적으로 재정집행계획은 평시에는 균등지출을 해야 좋다. 그게 일반론이다. 속전속결 기조는 부작용과 역효과도 따른다. 집행 안전성 측면에서는 부실한 사업집행 우려가 없지 않다. 중복에 따른 낭비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재정 조기 집행 때 지자체의 이자 부담이 늘어난다는 문제점도 제기될 수 있다. 총선을 4개월여 남긴 시점이라 정치가 경제를 망치는 ‘폴리코노미’가 되지 않을지가 또한 걱정이다. 이왕 하는 거라면 제 효과를 내고 실제 성장률을 견인하도록 사전 준비를 잘해야 한다. 2년 연속 상반기 지출 극대화가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격이 되면 안 된다. 최대 규모의 조기집행 예산은 부진한 집행, 무리한 신속 집행 모두 해(害)가 될 수 있다는 점을 환기하고 싶다.

2023-12-26 14:16 사설 기자

[사설] 총선 앞둔 ‘정치 테마주’ 투자 유의할 때다

증권가에 유력 정치인 관련주가 기승을 부리는 계절이다. 학연·혈연·지연 등 티끌만 한 인연이라도 일단 엮이면 이렇다 할 호재 없이 크게 올랐다가 재료를 상실하면 꺼지는 경우는 지금도 재연된다.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는다는 소식에 한동훈 테마주가 줄하락한 것이 그러한 예다. 19대 대선과 4년 전 21대 총선 때 황교안 테마주, 이낙연 테마주, 안철수 테마주 등으로 들썩거리던 테마주들도 유사한 증거들이다. 유명인과 갈비탕을 먹었고 그 유명인이 특정기업 인사와 연인 관계라 해서 주식이 올랐다면 급등 배경 자체가 비이성적이다. 상한가를 치던 주식이 비대위원장을 수락하기 전날 폭락한 것은 전형적인 양상이다. 지나치게 뜨거운 관심을 받는 테마주는 투자경고종목이나 투자위험종목으로 지정을 강화해 과도한 열기를 식혀야 한다. 게다가 내년 6월까지의 공매도 거래 규제 국면에서 주가 거품을 키울 위험까지 겹쳐 있다. 투자에 유의하라는 권고부터 꺼내지 않을 수 없다.특정 테마에 따라 급등했다면 똑같이 급락할 가능성도 내포한다. 투자 위험도가 높은 만큼 신중히 검토하고 손실 위험을 감수할 여력이 있을 때만 해야 한다. 대선 때 파평 윤씨라는 이유로 윤석열 테마주로 묶인 전례는 비합리성이 투명된 풍속도다. 정경유착의 어두운 과거 유산까지 떠올리게 해 씁쓸하다. 별것 아닌 테마로 확인돼 이전 주가 수준으로 회귀했던 테마주가 이번 선거에서 테마주로 재탕되기도 한다. 이준석 관련주가 두 차례의 총선과 그 사이의 재보궐선거에 모두 낙선하면서 어찌 되었던가. 투자자에게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내공이 필요하다. 초단타 수익 기대감만 믿고 불나방처럼 달려들면 그 끝은 낭패다. 테마주의 방향성을 읽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다시 말해 주가의 단기 변동성이 높고 예측이 어렵다. 본인만 수익 얻고 빠져나오면 그만이라는 심리가 반영돼 있다. 정치인 테마주의 면면은 특히 기업 실적이나 미래 성장 가능성과 무관한 경우가 많다. 호재성이든 악재성이든 정보 비대칭성에 따른 손실 위험도 크다. 기업의 사업 모델, 증시 모멘텀, 재무 상태, 경쟁력 등을 고려하고 전략을 세워 하는 게 투자의 정석이다. 테마 주식을 이용해 주가를 인위적으로 부풀리거나 떨어뜨려 시세차익을 얻거나 투자자 심리를 조종하는 작전 세력에 대해서는 옥석을 철저히 가려내야 할 것이다. 총선을 4개월 남짓 앞둔 지금은 총선 테마주 집중 제보와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불공정 거래 행위에 총력 대응할 때다.

2023-12-25 14:18 사설 기자

[사설] 중소기업은 금리 부담 완화를 원한다

고금리와 고물가, 고환율의 난관은 체력 약한 중소기업에서 클 수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은행 자금 조달에서의 금리 부담은 최고의 애로 요인이 됐다. 중소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물었더니 10곳 중 6곳이 높은 금리를 꼽을 정도다. 21일 발표한 중소기업중앙회 실태 조사로는 지난해와 비슷하다(56.3%)는 응답이 많지만 악화됐다(31.7%)는 반응도 예상을 상회한다. 12.0%만이 호전됐다고 본 것에서 자금난이 그대로 읽힌다. 자금 수요나 자금 조달 앞에서 중소기업은 상시적으로 돈가뭄에 시달린다. 자금 사정의 곤란 원인이 판매 부진이나 인건비 상승, 원부자재 가격 상승인 점도 몇 년간 지속되고 있다. 은행을 통한 자금 조달의 애로사항으로 높은 대출금리(58.6%)를 꼽은 것도, 대출금리 인하(75.0%)를 요구한 것도 충분히 공감이 간다. 무역협회가 수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해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중소기업 절반은 대출 이자 비용이 영업이익과 같거나 더 많은 실정이다. 대출 연체율을 줄이는 해법과 함께 취약업종이나 쓰러질 위기에 처한 한계기업에 대한 별도의 대책이 시급하다.21일 은행권이 내놓은 자영업자·소상공인 등 취약계층 대상의 ‘2조원+α’ 민생금융 지원 방안은 괄목할 만하다. 금리 부담을 일정 수준 낮춰 체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다고 한다. 중소기업 전반의 자금난을 해소할 대책도 매우 긴요하다. 고금리 문제를 둘러싼 더 강도 높은 해결은 기준금리 동결 상황이 종식되는 내년부터나 가능할 것이다. 자금 조달 사정이 나아지더라도 업종별로 불균등 회복 양상이 나타나는 것은 중소기업이 떠안고 있는 고민이다. 중소기업 다수가 자금난 원인으로 지적한 판매 부진(47.4%)에 더해 원부자재 가격 상승으로 기업 채산성이 악화돼 있다. 생산재 가격은 천정부지다. 중소기업이 절박하게 금융지원 과제로 꼽는 금리부담 완화 정책 확대에 추가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통화긴축 기조를 펼치지만 생산 및 투자활동을 위한 자금수요 증가는 불가피하다. 금융권의 상생금융에 대한 낮은 인지도를 높이는 방안도 필요할 것 같다. 시간이 이만큼 지나고도 잘 모르겠다는 응답이 83%나 된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취약 업종에 대한 리스크와 자산건전성 관리를 강화함과 동시에 금융 이용에 대한 이번 지원 요청 사항을 대폭 수용해야 할 것이다. 신용대출 확대(47.3%)나 장기거래 우대금리 적용(41.7%) 등도 간절히 원하고 있다. 자금 조달과 관련한 정책 지원 의존도가 한층 높아진 중소기업의 호소를 외면하지 않길 바란다.

2023-12-21 14:21 사설 기자

[사설] 사전 규제 플랫폼법, 혁신 ‘싹 자르기’ 아니어야 한다

정부가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플랫폼법)을 추진하고 있다. 경쟁을 촉진해 ‘온라인 공룡’의 독과점 구조를 깨겠다는 취지다. 독점력 남용으로 경쟁을 제약하고 소비자 후생을 저해하는 대형 플랫폼 갑질 행위를 사전 규제하자는 것이다. 현행법 체계로는 자사 우대, 끼워 팔기, 멀티호밍(다른 플랫폼 이용) 제한, 최혜 대우 등 시장권력의 신종 갑질을 잡기에 한계가 있었다. 반칙행위에 뒷북 제재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플랫폼 독과점의 폐해를 차단하겠다는 인식이 작용한다. 플랫폼 기업에 온전히 주도권을 주는 규제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플랫폼 자율규제를 강조했던 부분을 더 뚜렷하게 기억하는 업계의 입장은 다르다. 3년 전부터 발의돼 무려 20개가 계류 중인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정에 탄력이 붙을 전망인 점도 혼란을 더한다. 갑을관계와 상생관계가 다르듯이 사전규제와 자율규제의 엄청난 차이 때문이다. 국내 기업을 역차별하는 이중규제가 된다는 걱정이 가장 큰 듯하다.공정거래법으로는 전통산업과 달리 플랫폼 업계의 위법 행위를 규율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과도한 이익 수취와 불공정한 거래조건 강요 등은 당연히 바로잡아야 한다. 소규모 기업들의 시장 진입 기회가 박탈당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시장 여건은 복합적이다. 중국계 플랫폼이 국내 1위 쇼핑애플리케이션으로 치고 들어온 상황과 같은 시장 여건까지 심층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플랫폼 민간기구나 자율규제위원회 등의 활성화를 더 유도한 다음에 자율규제와 상반되는 입법을 추진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국정과제에서도 강조된 플랫폼 분야 거래 질서 공정화는 필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를 통해 이뤄지는 게 맞다. 공정성이란 이름의 옥상옥(屋上屋) 중복으로 혁신의 싹을 자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다.플랫폼법이나 온플법이 혁신의 발목을 잡는 또 다른 규제가 되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다. 국내 규제를 피해간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먹잇감으로 내던져지는 구조에 대한 업계 우려는 정당하다. 제2, 제3의 네이버나 카카오를 만들려는 그 자리에 글로벌 공룡 플랫폼이 안방 차지를 할 수도 있다. 토종 플랫폼 규제가 미국의 플랫폼 기업 규제 방식과 같아서는 안 된다. 시장 환경이 상이한 유럽식 규제를 도입한다면 정말 모순이다. EU의 디지털시장법(DMA)은 해외 빅테크를 견제해 독점을 막으려고 제정된 ‘해외용’이다. 시장 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독과점 규제가 됐건 갑을관계 규제가 됐건 국내 디지털산업 생태계 침해가 안 되게 할 필요가 있다. 한국 업체만 잡게 되면 국익에도 위배된다.

2023-12-20 14:01 사설 기자

[사설] 대형마트 의무휴업 평일 전환, 실효성 더 살펴봐야

서울 서초구가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변경하기 위해 20일 주요 대형마트와 상생협약식을 맺는다. 행정예고와 고시 등 절차를 감안하면 내년 1월 말을 전후해 시행될 움직임이다. 그보다는 과연 매월 첫째·넷째 주 일요일에서 월 또는 수요일로 바뀌면 제도로서의 실익이 있을지 여부가 우선이다. 서초구 내 롯데마트, 이마트, 킴스클럽 등 대형마트 3곳과 준대형마트 32곳이 적용되는데 파급효과를 알기에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언급한 평일 변경 ‘독려’는 그때 해도 늦지 않다. 비수도권에서는 앞서 올해 대구(2월)에 이어 청주(5월)가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한 사례가 있다. 특·광역시 단위로는 처음으로 시행한 대구에서 골목상권 매출이 올랐다는 6개월간의 자체 분석이 나오긴 했다. 그런데 해당일의 전통시장 매출액이 전체기간 증가율보다 2.4% 높게 나타난 것이 유의미한 증가폭일지는 의문이다. 슈퍼마켓이 전년보다 19.8% 늘고 대형마트가 6.6% 증가한 것과 휴업일의 연관성은 좀 심도 있는 분석을 요한다. 긍정 평가도 있지만 소비자 쇼핑 만족도와의 인과관계를 확증하긴 힘들다. 지역상권에는 자체 경쟁력 부재의 대안도 아니다.‘쉬는 날 옮기기’보다 오히려 유용해 보이는 게 사실 서초구 상생협약안에 있다. 대형마트 상품을 지역 중소유통에 공급하고 기업형 슈퍼마켓(SSM) 전환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의무휴업의 근거법인 유통산업발전법이 시행되는 동안, 소비 패턴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는 변화를 겪었다.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모두 소매시장 점유 비중이 줄었다. 글로벌 기업인 월마트와 까르푸의 철수 사례에서 보듯이 소비자들이 대형마트를 찾는 시스템 전반은 복합적이다. 휴업일 제도가 골목상권을 활성화하고 시장경제의 균형에 도움을 줄 확률은 갈수록 낮아진다. 실효성을 갑론을박하기 전에 유통 현실을 봐야 한다.서초구의 경우, 서울 자치구의 효시가 된다는 ‘시범성’으로 더 관심을 받는다. 대형마트가 쉬면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을 방문한다는 단순 도식은 온라인 성장을 키우는 요인도 된다. 대형마트를 주로 (대형)할인마트라고 부르던 시절에 발효된 이 제도는 시효가 다했을 수도 있다. 소비자 쇼핑 패턴을 보면 대형마트 규제는 시장과 마트를 다 놓치게 할 여지가 있다. 근본적으로 대형마트 이용과 냉장고 대형화를 법으로 못 막는 이치와 같다. 동대문구에서도 ‘진도’가 나가는 중이지만 휴업일 평일 전환을 두고 다른 자치구에서 눈치 살필 일은 아니라고 본다. 시행 10년이 넘은 휴업제가 규제 당시와 달리 유통기한이 다했는지 숙고해볼 시점이기 때문이다.

2023-12-19 14:00 사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