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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설] HBM 시장 압도하려면 정부 지원이 절대적 요소다

차세대 게임 체인저로 불리는 HBM(고대역폭 메모리) 시장이 뜨겁다. 현존 최고 성능인 5세대 HBM3E 시장 그 너머에서 HBM4 주도권 경쟁에 불이 붙고 있다.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중국 반도체 업체가 HBM 생산에 뛰어들고 대만 TSMC도 야심을 숨기지 않는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은유적 화법처럼 ‘봄’이 오더라도 아주 치열한 봄이 될 듯싶다. 인공지능(AI) 기기 전쟁을 보면 앞당겨 양산해야 할 만큼 시간표가 긴박하다. 공급 과잉보다 수요 증가에 주목해야 할 때다. D램을 여러 층 쌓아 올리는 고난도 기술에서 현재까지는 대한민국이 압도적 1위다. 4세대(HBM3) 제품까지는 2년 단위이던 것이 5세대(HBM3E) 제품 이후로는 1년 주기로 단축되고 있음을 눈여겨봐야 한다. 뒤로 갈수록 이 주기는 당겨질지 모른다.획기적인 처리 속도와 저전력으로 인공지능 칩셋에 필수인 이 분야 시장을 놓고 벌이는 반도체 패권 전쟁은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띤다. HBM 시장점유율 60%를 넘어선 SK하이닉스, 파운드리와 메모리를 보유한 종합반도체회사이면서 30년간 세계 1위 메모리 솔루션 기업 왕좌를 지킨 삼성전자에도 정교한 전략이 중요해졌다. 중국 화웨이는 HBM2 칩 생산을 목표로 다른 기업들과 나섰다. 미국 제재로 EUV(극자외선)를 잘 못 쓰고 전통의 메모리 영역에서 기술력이 부족하다 해서 낮잡아볼 일은 아니다.메모리까지 먹겠다고 덤벼드는 파운드리 강자인 대만의 TSMC에 특히 밀리지 않아야 한다. 파운드리 최강자가 벽을 타고 넘어오는데 언제까지 미국의 보조금만 바라볼 수는 없다. HBM4 12단, 16단 개발도 진행 중이지만 선두기업이든 추격자든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초격차 유지다. 야당 등 정치권은 ‘대기업 특혜’니 하는 신소리 그만하고 반도체 산업에 인센티브와 기금을 동원해 경쟁국 지원에 대응할 수준, 아니 그 이상으로 전폭 지원해야 한다.반도체 경계가 무너지면서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기업)·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기업)·메모리 반도체 기업 사이 주도권 싸움은 선명해진다. 정부와 정치권이 호흡을 맞춰야 할 종합 지원책엔 변칙 플레이에 능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대선에서 당선될 경우까지 계산해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 미국이 반도체 지원법(칩스법)으로 반도체 생산시설을 대거 유치하면서 세계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꿈꾸는 사실까지 챙기자는 것이다. 초기 단계에서 한국이 HBM 시장을 장악한 현실만 믿고 느긋하다면 다시 맞을 반도체의 ‘봄’은 메타포(은유)로만 남아 있을 수도 있다.

2024-05-19 14:31 사설 기자

[사설] 관세폭탄에 보복 예고, 미·중 2차 무역전쟁 주시해야

미국이 관세폭탄을 투하하면서 중국과의 관세전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전기차와 배터리, 반도체 등 첨단 공급망 관련 품목, 의료용품과 크레인 등 중국 의존도가 높은 분야가 대상이다. 문제는 2~4배, 100%까지 높인 관세가 수입 금지에 가깝게 과격한 조치라는 점이다. 외형만 보면 미국의 중국 때리기다. 중국의 강제 기술 이전, 지식재산 절취 등 불공정 관행을 이유로 들자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역법 301조 규정은 미국의 무역에 제약이 생기면 광범위한 영역의 보복을 허용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보다 앞선 것이 11월 대선 득표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다. 트럼프식 고율 관세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인플레이션 등을 고려해 조정하겠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모습은 간 데 없다. 표심 확보와 미국 시장에 진입하는 전략 산업에 대한 선제적 대비를 모두 겨냥했다. 한 측면도 놓치지 않고 주시해야 한다.고율 관세의 대상은 미국의 전체 중국산 수입액(4270억달러) 중 4.2% 수준으로 규모가 작다. 작년 기준에서 국내 산업에 미칠 여파가 크지 않다고 해석하는 근거인 것 같다. 기본적으로 중국을 핵심 표적으로 삼으면 우리로선 일부 어부지리의 기회가 생기고 저가 전기차 시장 전환에 시간을 조금 벌게 될지 모른다. 그런데 미국이 자동차 관련 부품 관세를 확대하면 한국 전기차에도 악재다. 글로벌 공급망 구조는 복잡하게 얽혀 든다. 리튬, 흑연, 니켈 등 공급망 불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기업에 그렇게 불리하지 않다는 전망은 절반만 맞는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반도체, 배터리 등에 대한 관세를 둘러싼 나쁜 피드백이 만드는 나비효과를 주시해야 한다. 전략적으로 신중하게 타깃을 맞춘다고 하지만 중국 기업의 미국 시장 진입을 차단하려는 의도도 숨어 있다. 25~100%의 인상폭은 무역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강렬한 의지다. 미국, 중국과 교역 1·2위 무역 파트너인 한국의 운신 폭은 좁다. 바이든과 트럼프 진영의 중국 때리기 경쟁은 대선이 임박할수록 가열될 것이다. 누가 당선되든 보호무역주의와 자국우선주의라는 미국 통상정책 기조는 비슷하게 흘러가기 마련이다.2차 무역전쟁의 포문은 어차피 열렸다. 한국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올라가는 우호적 환경이 나중엔 글로벌 불확실성으로 대체될 수 있다. 중국의 보복 대응으로 거대한 무역장벽을 세우고 또 각국이 편승했을 때, 교역 시장 충격과 인플레이션 자극은 불가피하다. 공급망 불안으로 우리 산업계에 튈 불똥과 치명상을 조심할 시기가 온다. 국내 완성차·전기차 업계의 단기적 반사이익까지도 더 좋은 국면으로 만들 준비까지 해둬야 한다.

2024-05-16 14:02 사설 기자

[사설] 중기부 딥테크 ‘창업-BuS’가 가야 할 방향

기존 방식을 넘어선 혁신기술과 초격차는 딥테크(기반 기술) 분야의 생명과 같다. 지역 혁신 스타트업 지원을 통한 딥테크 스케일업의 중요성도 여기에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각 지역 창조경제혁신센터(창경센터)를 중심으로 딥테크 연구 성과를 키울 혁신 역량과 인프라 창업·사업화를 견인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디어 검증과 초기 제품 개발 단계인 시드(seed),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고 시장 진입을 준비할 무렵의 시리즈 A 등 투자 단계별 지원에 성패가 달려 있다. 이 분야는 2010년대 후반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런 미국을 넘으려는 유럽은 거의 혈안이 되어 있다. 1·2차 산업혁명으로 글로벌 혁신 성장을 주도한 유럽이 치열하게 집중한 사실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 반도체,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로켓 등 우리가 세계 무대에 도전장을 내민 분야를 비롯해 특정 기술(Tech)을 깊이(Deep) 파고드는 딥테크에서 적당한 선, 적당한 만족이란 없다.양적인 면에서는 민간 벤처투자의 5%에 딥테크 비중을 늘려야 한다. 작년 말 기준, 국내 딥테크 관련 기업은 488개에 불과하다. 미국이 2만2910개, 중국이 9935개인 데 비해 크게 대조가 된다. 일본도 1718개다. 딥테크 스타트업 발굴을 위해 아이디어 단계나 초기 개발 단계의 프리 시드 단계에도 지원 범위를 넓히는 게 좋겠다. 첨단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의 연구개발(RD)에는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든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지역 창경센터도 민간 벤처투자사의 패턴과 다른 특성을 잘 이해해야 제대로 지원할 수 있다.중소기업벤처부가 15일 내놓은 시드 투자부터 후속 투자까지 일괄 지원하는 창업-BuS(Build up Strategy for Startups) 프로그램은 그런 점에서 ‘혁신적’이다. 실제로 새로운 혁신 성장 동력시장이 되려면 기업이 성장하고 성공을 입증할 단계인 시리즈 B, 추가 성장과 확장이 요구되는 시리즈 C에도 관심이 지속돼야 한다. 기술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팍스테크니카(Pax Technica·기술패권) 시대는 스스로 열리지 않는다.올해 시범 운영하는 경기와 인천, 광주, 울산, 충북 등 5개 센터에서 기술 경쟁력만으로도 글로벌 성장 동력을 찾는 매력적인 기회를 잡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죽음의 계곡’, 창업 3~5년차 겪는 일반 기업의 데스밸리보다 딥테크 기업의 그것이 더 길고 깊다.이런 특성까지 감안하면서 각 창경센터 창업-Bus 프로그램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율하며 투자 네트워크를 구축하길 기대해본다.

2024-05-15 14:30 사설 기자

[사설] 22대 국회, 중소기업 입법 과제 처리할 의지 있나

중소기업기본법에 따른 법정 중소기업 주간을 맞아 13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 입법 과제 대토론회는 다분히 입법부를 향한 성토 자리의 성격도 띠었다. 중소기업계가 국회 입법 지원과 킬러규제 개선을 그토록 바랐던 데 비해 21대 국회 4년간 성과는 초라했던 까닭이다. 토론회에서 거론된 과제는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를 앞둔 것들이 다수인 데서도 알 수 있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의 절반 가까운 규제 완화 법안은 국회에 막혀 있다. 기업 시설 투자세액공제 확대, 임시투자세액공제 1년 연장,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법안은 자동 폐기 운명에 놓여 있다.29일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1호 규제혁신법안으로 추진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도 국회 문턱 넘기가 버겁다. 경제단체들이 공동성명까지 내고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던 산업입지법과 외국인고용법 등도 다르지 않다. 야당이 단독으로 직회부한 양곡관리법, 가맹사업거래공정화법 개정안 등만 29일 21대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가 유력해졌다.계속 이런 식이면 희망은 없다. 차기 22대 국회가 개원해도 중소기업인의 민생입법 기대감은 높지 않을 것이다. 여소야대 지형이 같고 중소기업 입법 과제를 처리할 의지 부족은 그대로다. 13일 제시된 과제를 포함해 민생·경제입법 외면의 책임론을 파고들면 입법권을 틀어쥐고 독주한 거대 야당에만 있지는 않다. 내수 침체 장기화의 늪에서 중소기업 경영 활력에 대한 기여도를 따지면 여당도 오십보백보다. 납품단가 연동제나 기업승계 상속, 증여세 한도 확대, 법인세 인하 등 비교적 잘한 중소기업 입법도 있다. 하지만 21대 국회 임기가 보름밖에 안 남겨둔 시점에서 혹평을 미뤄둘 수 없다. 중소기업에 관한 한 여야 막론하고 원내 사령탑부터 강력한 의지가 4년 내내 부족했다.구체적인 책임 의무보다 형벌만 높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2년 재유예하는 개정안은 폐기 수순이다. 22대 국회에서는 이렇지 않아야 한다. 13일 토론회 내용을 중심으로 제대로 중소기업 법안을 챙기는 입법 활동을 강력히 주문한다.다양한 현안 가운데 중소기업 고용 및 근로자 지원, 근로시간 유연화 등 노동개혁, 기업승계 활성화, 외국인 근로자 제도 개선, 최저임금 지역별·업종별 차등적용 등 입법 과제부터 여야가 머리 맞대고 풀기 바란다.올해 중소기업 주간 주제인 ‘혁신하는 중소기업, 도약하는 한국 경제’를 위해 중소기업과 적극 소통하는 국회의원상을 보고 싶다.

2024-05-13 14:30 사설 기자

[사설] 우리 안방 침투한 중국 게임, 상호주의도 필요하다

등가(等價)인 것을 국가 간 교환할 때 동일한 행동을 취하는 원리는 게임업계에도 어느 정도 통용돼야 할 것 같다.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에서 꼬박꼬박 게임서비스 허가증 격인 ‘판호’를 발급받는 우리와 한국 게임물관리위원회를 통해 일정 수수료만 내면 등급분류를 받은 중국은 불공정한 ‘게임’을 하고 있다. 한국 게임은 중국 정착이 어렵고 중국은 한국 시장을 쉽게 파고든다. 체제가 다르고 게임 규제도 달라 신중해야 하면서도 정부 개입이나 지원이 필요한 지점은 분명히 있다. 이 같은 논란은 ‘라스트 워’, ‘버섯커 키우기’ 등 국내에서 한국 게임보다 강세를 보이는 중국 게임들이 더 키웠다. 지난달 양대 마켓 매출 순위 상위 5개 중 3개가 중국 게임이었을 정도다. 다만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한국 게임보다 관심받는 상황이 확률형 아이템 규제 등 정부의 개입 여부에만 달린 건 아니다. 중국 모바일 게임이 간단한 조작이 특징인 ‘하이브리드 캐주얼’ 장르 등 방향성이 주효했다. 이런 점에서는 국내 업계의 자성도 요구된다.우리가 공략할 것 하나는 중국이 기존 출시작과 유사한 게임을 내고 있는 한계에도 국내 시장을 빠르게 침투한다는 점이다. 잘 나가는 게임을 표절하고 공격적으로 마케팅하는 것이 게이머에게 먹힌다는 얘기다. 이런 문제에 정부가 대응하면서 빗장을 풀기 힘든 한국 게임의 중국 진출을 지원해야 한다. 한국에서 직접 서비스하면서 수익을 다 챙겨 가는 중국 게임사와 달리 한국 게임사는 중국 내에서 각종 고강도 규제를 받는다. 중국 현지 게임사에 80~90%의 높은 수수료를 뺏기는 것은 누가 보호하는가. 동북공정, 허위·선정적 광고 등 사건·사고에 대해서는 게임산업법을 개정해 국회가 해결해야 하는데 21대 국회가 다 가도록 부지하세월이다. 게임산업도 미래 먹거리라는 거시적인 관점과 인식이 부족하니 이런 것이다.지식재산권을 활용한 게임과 캐주얼 게임 등 장르 다양화와 사업 다각화로 개발과 실적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그건 국내 게임사들이 안고 있는 과제지만 정부도 게임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세계 진출 지원책에 더욱 적극적이어야 한다. 셧다운제 도입이나 게임중독 관련 법안만큼만 대처가 빨랐으면 지금쯤 K-게임의 판도는 확 달라졌다.한국 안방을 파고든 중국 게임에 대해서는 득실을 따지면 꼭 상호주의로 갈 수 없는 현실적인 제약은 있다. 하지만 중국은 우리나라에 마음껏 진출하는 반면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면 시정하는 것이 맞다. 국내 게임사를 마구 베껴도 되는 저작권 문제만은 정부가 확실하게 해결해줘야 한다.

2024-05-12 13:20 사설 기자

[사설] 윤 대통령 남은 3년은 경제 회복에 전념할 시간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민생의 어려움은 쉬 풀리지 않아 마음이 무겁고 송구스럽다”고 밝혔다. 지난 2년간 가장 잘못하는 분야를 지목하면 경제다. 앞으로의 국정은 국민의 부정 평가 사유가 ‘경제·민생·물가’라는 사실을 반추하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등 돌렸던 지지층을 회복하는 것, 그보다 국민적 지지를 얻는 가시적인 성과도 경제 성적표 개선에서 출발하길 권한다. 이날 회견에서 강조한 3대 개혁과 의료 개혁, 저출산 해결 등 국가적 과제에 대해 실제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 순방마다 경제사절단을 대동하고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하면서 정상 세일즈 외교를 했지만 전체 경제 정책 기조를 제대로 보여주진 못했다. 그것이 성장 동력을 되살리려는 크고 작은 성과마저 덮은 측면은 있다.중요한 것은 4·10 총선 민의가 사실상 불신임 경고라는 점이다. 참패의 가장 큰 원인은 경제 심판론으로 수렴한다. 희화화된 ‘875원 대파’는 경제 무능과 무관심의 상징어일 뿐이다. 남은 임기 5분의 3은 더 많은 숙제를 남겨두고 있다. 단지 소통 부족의 이미지를 불식하기 위한 회견이었다면 불통을 확인하는 것일 뿐이다. 국면 전환을 위해서는 국정 쇄신 방향이 올바르게 가야 하며, 그런 토대 위에서 경제 회복과 글로벌 중추 국가로의 도약도 가능할 것이다.경제 지표가 총체적으로 좋지 않다. 성장률과 무역수지, 재정, 실질소득과 가계수지, 가계·기업부채 등 멀쩡한 분야가 없다 할 정도다. 원칙과 방향성을 잃은 경제정책 속에서 국내총생산은 세계 14위로 밀렸다. 그렇게 탓을 돌리던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해보다 3단계나 떨어지고 경제성장률은 2년 연속 세계 평균을 밑돈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이라는 비우호적인 거시 환경 등 외부 탓만은 아니다. 남 탓 그만하고 국정 운영 스타일 개선에 온몸으로 나서야 한다. 일 잘하는 정부가 국민에게 뺨 맞은 적은 없었다.단기적인 경기 대응, 긴 안목의 체제적 대응 둘 다 긴박한 구조적 위기 국면이다. 어떤 국정 운영과 주요 현안에서든 지난 2년간 거야(巨野)의 벽이란 정치적 지형 한계도 돌파하는 수밖에 없다. 야당 협력을 끌어내고 물가와 부동산 시장 정상화를 비롯한 현안에 전력투구해야 한다. 국정 운영의 성찰을 담기엔 아쉬움이 있으나 “국민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더욱 세심하게 민생을 챙기겠다”는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의 다짐은 꼭 지키기 바란다. 남은 3년, 꼭 해야 할 일을 다시 꼽으면 ‘경제’와 ‘민생’으로 집약된다.

2024-05-09 14:05 사설 기자

[사설] 중국 C커머스 개인정보 유출,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중국 전자상거래(e커머스, C커머스)의 한국 시장에 대한 무차별 염가 공세를 틈타 소비자 개인정보도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이건 사소한 오류나 실수가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을 상대로 개인정보 침해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고 개인정보보호위원회도 수집·처리에 대해 실태조사를 하는 중이다. 개인정보 약관 직권 조사를 포함해 유통시장을 똑바로 세울 신속하고 엄정한 대응이 요구된다. 기업과 소비자 간 협업형 커뮤니케이션 성격도 띠는 C커머스를 개인정보 빼내기 수단으로 악용했다면 전자상거래법, 표시광고법, 약관법 등 법 위반 이전에 상도덕의 문제다. 소비자 개인정보의 과도한 수집이 용인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공급자와 소비자 간 직접 연결, 즉 다이렉트 마케팅은 신뢰가 기반이어야 한다. 중국 관영매체가 자국 온라인 쇼핑·게임 업체와 협력해 해외 이용자 데이터를 수집한다는 호주전략정책연구소의 정보도 진위가 가려져야 할 일이다. 수집 정보가 제3국으로 이전된다면 더 막중한 국가적 피해로도 이어질 중대 사안이다.개인정보에 관해서라면 중국 플랫폼뿐 아니라 국내 C커머스 업체에도 물론 같은 기준이 필요하다. ‘광고’ 표시 없는 휴대전화 메시지나 앱 푸시 등의 마케팅 행위도 차단해야 한다. 앱 접근 권한 고지부터 허술하다. 국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때 직전 3년간 평균 매출액 3% 이하 수준으로 매길 수 있는 과징금 규정을 보다 엄격히 적용하는 방법도 있다. 중국에서 과잉생산된 초저가 완제품 수출을 위한 극단적 초저가 전략, 이에 따라붙는 개인정보 침해와 유출을 그냥 보고 넘길 수 없다. 소비자에게 불리한 불공정 약관은 당연히 손봐야 한다.1분기 우리 국민의 중국 직구액은 전체 온라인 해외 직구의 57%를 점했다. 국내 기업 경쟁력은 떨어졌고 소상공인은 생존 위협과 맞닥뜨렸다. 소비자에게 절대 불리한 현행 기준에서 보면 시정명령, 중국 업체와의 협약, 그것도 자율에 기반한 협약이 얼마나 실효적일지 의문시된다. 미국 의회가 틱톡 금지법을 제정하고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중국 플랫폼을 규제 대상으로 정한 이유가 짐작이 가고 남음이 있다.이달 내놓을 국무조정실 산하 ‘해외직구 종합대책 태스크포스(TF)’의 해외직구 종합대책에는 개인정보 보호는 물론 세계 무역시장까지 흔드는 차이나 덤핑 부분도 중시해서 다루길 바란다.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 대책이 있다(上有政策 下有對策)’는 중국식 회피 전략이 국내에서 통해선 안 된다.

2024-05-08 14:04 사설 기자

[사설] K-배터리 중국산 흑연 탈피, 풀어야 할 숙제다

전기차 배터리 음극재의 핵심 소재인 흑연은 K-배터리의 약점이다. 수입 의존도 90%에 달하는 중국산 흑연이 이를 말해준다. 천연흑연만으로 치면 전체 97%에 달할 만큼 의존도는 절대적이다. 중국산 흑연이 들어간 전기차도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게 된 것에 ‘숨통이 트였다’고 표현하는 이유다. 한국 전기차·배터리 기업이 미국 시장에서 일단 한시름 놓았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2년간의 시한부다. 그만한 숙제 풀 시간은 벌었다. 외국 우려 기업(FEOC)인 중국 측의 흑연을 조달해도 2026년 말까지는 보조금을 받기 때문이다. 이 보조금에 너무 안도해서도 안 된다.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전기차 전환 시간표를 재조정하는 지금이 중요하다. 기술선도국 지위를 놓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배터리 산업은 전기차 수요 혹한기를 맞는다 해서 주춤거려선 안 될 핵심 성장동력이다.시야를 미국 쪽에 더 맞춰보면 미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 전기차 43종 가운데 31종(72%)이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 제품을 탑재한 것이다. 지난 1·4분기 3사 합산 영업실적이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할 정도의 급격한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이지만 흔들리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여기 숨어 있다. 미국의 중국산 흑연 제재 완화 국면을 전기차 신차 라인업 확대 등에 오히려 잘 활용할 방도를 찾아내야 한다.원산지 추적이 사실상 불가능한(impr acticable-to-trace) 배터리 소재로 미국이 규정한 중국산 흑연은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서 지배적인 지위를 점유하고 있다. 세액 공제를 통해 전기차 보급을 늘린다는 미국의 정책 의미와 의지가 퇴색할 수도 있는 지점이다. 이뿐 아니다. 2031년까지 배터리에 일정비율 이상의 재생원료(순환원료)를 사용케 한 유럽연합(EU) 환경 규제에도 맞추지 않으면 수출이 어려워진다. 우리 기업의 EU내 시장 지위가 흔들릴 가능성이 작을지라도 재활용 시장 등 순환경제에 대한 관심도는 높여야 한다.배터리는 D램, 낸드플래시, OLED 등 주력산업들처럼 승자독식에 익숙한 장치산업이다. 우리 업계가 생산한 배터리 10개 중 8개 이상을 해외에 파는 우리로서는 미국 대선, IRA 세부 조항 변경 가능성 등 불확실성에 유의하면서 핵심광물 공급망 확보를 위해 기업과 정부가 손을 잡아야 한다. 대체품으로 실리콘 음극재가 주목받지만 개발과 양산에 시간이 걸린다. 비싼 가격도 숙제다. 어렵지만 미국이 문제 삼지 않을 내후년 말까지가 중국 탈피를 완결해야 할 시간이다.

2024-05-07 14:01 사설 기자

[사설] AI기본법도 통과 못 시키면서 ‘AI G3’만들겠나

국회에 계류 중인 민생 및 산업계 관련 쟁점 법안들이 일괄 폐기 위기에 놓였다. 이달 29일로 21대 국회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있어서다. 인공지능(AI) 기본법으로 불리는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은 정책 일관성 면에서도 시급성을 요한다. 더구나 우리는 AI산업의 체계적 육성을 위한 컨트롤타워가 정비되지 않았다. 저작권 이슈 등 규제를 아우를 법과 제도, 정책도 부실하다. 입법 미비 때문에 인공지능 기술 분야에서 주요 3개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AI 반도체 이니셔티브’ 등 성장을 뒷받침할 정부 비전은 힘을 못 받는다. AI 특허 수가 미국, 일본보다 많고 AI 인재 집중도가 이스라엘, 싱가포르 다음이란 미국 스탠퍼드대 집계에 우쭐할 처지는 아닌 듯하다. AI 강국은 멀다. 냉철한 눈으로 살피면 실질적인 생성형 AI 기반 기술인 파운데이션모델 하나도 개발하지 못 하는 현실이다.여야 갈등 여파로 장기 표류 중인 AI 기본법은 2021년 7월 이후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7건의 관련 법안이 병합된 것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법안 소위를 통과한 지는 1년 3개월이 다 된다. 불확실성이 산업 성장을 가로막는 데도 여야는 개의치 않는다. AI 산업의 헌법 구실을 할 법안 처리, 그것도 비쟁점 법안 처리를 제쳐둔 국회는 특검법에 오로지 사활을 걸고 있다. 미래산업의 무게중심이 쏠리는 AI 신기술 관련 법안은 야당의 단독 처리 강행과 여당의 국회 의사일정 비협조 ‘공식’도 불필요한 분야 아니던가.국회는 산업계의 AI 규제 ‘시계 제로’ 호소를 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가 가진 소프트웨어와 반도체 기술력, 첨단 네트워크 등 AI 가치사슬 전반의 경쟁력마저 퇴행시킬 것이다. 인재와 기술을 지금처럼 해외에 뺏기기 딱 좋은 환경을 만들면 미국, 중국과 나란히 ‘AI G3’가 되겠단 목표는 접어야 하는 순간이 올 수 있다. 국회에서 통과되고 시행령 등 하위법령 마련과 시행까지 앞으로 얼마나 더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데 답답하다.AI 산업은 방향성과 속도 모두 중요하다. 우리 기업을 규제할 유럽연합(EU) 인공지능법이나 미국의 행정명령 및 가이드라인에 대한 분석과 대응도 제대로 해야 한다. 입법 없이는 정부 정책은 대부분 무용한 것이 된다. 발이 하늘에 떠 있는 것 같다는 AI 업계의 하소연을 제발 좀 듣기 바란다. 이번 국회 임기 종료 이전에 AI 기본법 처리를 꼭 매듭지어야 한다. 법·제도 공백을 메워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최소한 알게 해야 할 것 아닌가.

2024-05-06 13:35 사설 기자

[사설] 한전·가스공사 재무 구조 개선은 언제 하나

총선 이후 정치적 부담을 내려놓고 에너지 요금을 올릴 거라는 관측은 일단 빗나갔다. 고물가 현상이 지속되면서 6월까지 적용될 전기요금이 지난해 3분기부터 총 4개 분기 연속 동결 수순을 밟는다. 원가보상률이 80%에 못 미치는 가스요금은 지난해 5월 이후로 인상의 칼을 빼들지 못했다. 상업용인 업무난방용과 수송용과 산업용을 조금 올렸고 냉난방공조용은 시기에 따라 조정하긴 했다. 하지만 민수용인 주택용과 일반용은 보류해 현행 수준을 이어간다. 한국전력공사와 가스공사의 재무 개선은 그만큼 요원해졌다. 가격 인상 요인은 있는데 2분기 전기·가스요금이 묶였다. 오를 대로 오른 물가를 더 꿈틀대게 한다고 지목해서 내린 결정이다. 3%대 상승률을 이어가는 소비자물가에다 농산물 작황 부진, 중동 지정학적 위기 등 각각의 변수보다 요금 인상 후 생길 파급효과에 주목한 결과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당장 반길 일일지 모르지만 엄청난 적자를 감수하면서 상반기 공공요금 동결 기조를 가져가는 것은 미래에 불씨를 남기고 있다. 누적 적자 해소는 물가, 특히 장바구니 물가 안정을 위해 시한부로 연기된 셈이다.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 전기요금이 차지하는 가중치는 전체 1000 중 15.5다. 전기요금이 25%포인트 오르면 소비자물가가 0.4%포인트 높아진다는 것도 인상 제한의 명분이다. 하지만 한전과 가스공사의 재무 상황은 오직 한 가지에만 머무르지 않게 한다. 전기요금은 지난 4분기에 산업용 일부 전기요금만 ㎾h당 10.6원 인상했을 뿐, 1년 이상 멈춰 있다. 국제유가 등 에너지 가격을 전기·가스요금에 반영하지 못하는 게 근원인 데도 문재인 정부가 키운 적자의 골을 윤석열 정부가 깊게 파고 있다. 필요할 때 필요한 인상을 하지 않았다. 이는 최선의 선택지가 아니다.물가 상승 압박을 견뎌내며 에너지 기업 부채를 터는 것은 국민 이자 부담을 덜어주는 일이기도 하다. 국가 전체로는 이득이다. 국제 에너지 가격은 급등하고 한전과 가스공사의 경영난은 지속 불가능한 수준이다. 전기를 비싸게 사서 싸게 파는 역마진 구조도 손볼 대상이다. 전기요금과 전력시장 구조의 정상화 모두 늦출 수 없다.국민의 물가 고통은 어떻게든 덜어내야 한다. 에너지를 많이 쓰지 않는 계층에 에너지 요금 고통이 가중되는 속성이 있다. 그렇다고 당장의 고통이 언제까지 유예되지는 않는다. 재무 개선을 위한 구조적 효율화는 단기간에 불가능하다. 전기요금부터 현실화해 적자 누적을 막는 것이 지금으로선 급한 일이다.

2024-05-02 14:01 사설 기자

[사설] 정유사 ‘횡재세 도입’ 압박 타당하지 않다

올해 1분기 실적 반등을 이룬 국내 정유사가 횡재세 도입 논란에 직면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다시 제안하면서 또 군불을 피운다. 에너지 가격 급등에 힘입어 정유사들이 이익을 누리고 있다. 그러니 민생 어려움을 돌보는 실질적인 조치로 고통을 분담하자는 게 압박의 요지다. 국내 정유업계가 1분기 실적 회복세를 보인 것은 사실이다. 중동 정세 악화로 국제유가가 상승하면서 정유사가 보유하는 석유제품 재고 가치가 상승했다. 봄 성수기 효과까지 더해졌다. 국제유가와 최종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료비를 뺀 정제 마진이 커진 덕도 톡톡히 보고 있다. 이렇게 국내 정유사들이 1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하거나 영업이익이 신장된 것이 정책 변화에 따른 요행의 결과는 아니다. 일정 기준 이상의 이익 초과분이더라도 말 그대로의 ‘횡재(橫財)’가 아님은 물론이다.정치권에서 재작년과 작년에 이어 거의 연례적으로 재점화된 횡재세 논의는 일면 그럴싸하다. 하지만 적자 땐 나 몰라라 하더니 흑자를 내니 알은체를 하며 이른바 횡재세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상황은 문제가 있다. 그러려면 유가가 하락하거나 정제마진이 줄면 보상해줘야 할 것이다. 비근한 예로 작년 실적 부진과 손실에는 왜 침묵했나. 상생기금 등 업계 팔을 비트는 것보다 나을 게 없는 방식이다. 2중, 3중 구조의 중과세에 한 가지 세금을 더 얹겠다는 발상을 뒷받침할 초과이윤의 근거가 약하다. 재정조달 목적의 부담금 부과는 위헌적 요소마저 있다. 고유가 시대에 국민 부담을 낮춘다며 선악의 개념처럼 접근할 일은 아니다.일시적 외부 요인으로 이익이 급등했다고 해서, 혹은 천재지변으로 반사이익을 얻었다 해서, 아니면 수익의 우연성 기준에서 과세하기 시작하면 이런 논란은 한정이 없을 것이다. 일부 유럽 국가에 도입 선례가 있다 해도 원유 시추 사업을 벌이는 기업이 주로 부과 대상이다. 사업 구조가 다르다. 원유를 직접 생산해 이럴 때 가만히 앉아 큰 수익을 내는 해외 사례와의 수평 비교는 타당하지 않다.기업에 일방적인 책임이라도 있는 듯, 다수당의 힘으로 협박이라도 하는 모양새로 밀어붙일 일은 아니란 뜻이다. 무엇보다 사회적 자원의 재분배와 경제 균형을 맞추는 고도의 설계 없이 불쑥 던져졌다. 자본은 과도한 이윤에 탐닉하는 악당이고 정치가 마치 정의의 사도인 양 설정하는 그림이 횡재세 도입의 본질이 되면 안 된다. 에너지 산업이 역대급 실적을 낼 때마다 세금이나 부담금을 걷어 쓰자는 한국형 횡재론에 기본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2024-05-01 14:48 사설 기자

[사설] 일본의 ‘라인’ 지분 매각 압박, 정부가 좌시해선 안 된다

일본 국민 메신저로 성장한 ‘라인’이 일본 정부로부터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공들여 글로벌 소셜플랫폼을 키운 네이버에게 경영권을 사실상 포기하라는 몰상식을 또 자행한다. 일본 총무성이 현지법인 라인야후에 네이버와 자본 관계를 재검토하라는 행정지도 조치를 한 배경부터 석연치 않다. 소프트뱅크에 대한 자본 관여를 강화하라는 요구는 네이버 보유 지분을 추가로 사들여 일본 기업으로 만들라는 주문과 다르지 않다. 표면적인 이유는 작년 11월 발생한 해킹이다. 개인정보 51만여 건 유출 사고 책임이 한국 측 네이버 클라우드(가상서버)에 있으니 공동 경영 체제를 바꾸라는 것이다. 네이버와 소프트뱅크 측이 출자한 지주회사가 공동 경영해 온 지분 관계를 정리하라는 요구다. 해킹 사고는 ‘울고 싶은데 뺨 때린다’는 속담을 연상시킨다. 경영권을 자국 소프트뱅크에 넘기라는 일본 측 의도가 선명히 드러난다.고객정보 관리의 잘못은 일본 정부가 보완 강화 조치를 요구하든지 벌금 등 페널티를 부과하면 될 일이다. 시스템 위탁 규모 축소를 비롯한 재발방지책을 안 내놓은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봐도 라인야후 지분 64.5%를 보유한 A홀딩스의 주식을 추가 취득하면 경영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해킹 사고 이전에도 소프트뱅크가 라인야후의 경영권 장악을 시도해 온 이력이 있다. 네이버 지분 매각을 요청한 것은 그들만의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대응법 아닌지 의심된다. 사이버 안보 이슈는 구실에 불과하다.일본이 이 기회에 정리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점유율 83%인 모바일 메신저의 절반을 한국 기업이 소유하는 상황을 바꾸려는 것이다. 드러난 겉마음(다테마에)을 행정지도의 형식을 빌려 위장했다. 빼앗는 것이 직설적인 속마음(혼네)이다. 일본이 자유시장경제 체제임을 믿기 어렵게 하는 처사다. 타국 민간 기업에 대한 지나친 개입, 특히 과도한 네이버 의존을 문제 삼는 자체가 반기업적 발상이다. 일본의 반도체 3대 품목 수출규제로 양국관계를 파탄 낸 5년 전 전례까지 돌이켜보게 된다.보안 이슈는 사이버 보안을 강화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망 분리도 아닌 지분 정리를 요구한다.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한·일 기업이 절반씩 소유한 메신저 앱 라인의 경영권 탈취 의도를 좌시해선 안 된다. 한국 지분 매각 압박은 양국 간 산업협력에도 찬물을 끼얹는 처사다. 외교 문제로 비화하기 전에 일본이 얼토당토않은 행정지도 처분을 거둬들이는 게 순리다. 정부 차원에서 우리 기업에 대한 차별적 조치에 강력 대응해야 한다.

2024-04-29 14:25 사설 기자

[사설] ‘전 국민 25만원’보다 더 건설적인 성과 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영수회담을 갖는다. 대선 후보 시절(2021년 11월 10일) 첫 만남 때 ‘(성남) 법정에서 자주 봤다’, ‘기억 없다’며 서로 다른 기억법으로 부딪치던 때가 있었다. 그때보다 주목받는 첫 회담인 것 같다. 의제에 제한을 두지 않아 더 많은 의제를 떠안았지만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고 논의의 물꼬를 튼 점은 다행이다. 민생 현안을 위한 협치, 아니면 낮은 수준의 협력이더라도 지금까지의 2년과는 다른 3년을 위해 차 한 잔 마신 것 이상의 회담이어야 한다. 그게 정상화로 가는 길이다. 거론된 의제 중 채상병 특검이나 김건희 여사 특검 등 민감한 현안까지 마주해야 한다. 사안마다 국정 운영 기조 전환을 조감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이 대표가 금과옥조처럼 믿는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도 합리적으로 꼭 털고 가야 한다. 그렇다고 영원히 아르헨티나처럼 될지 모를 현금살포 정책이라고 과도하게 예각을 세울 일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손실을 부를 부정 요인, 물가, 국가재정 등 다각적인 변수를 헤아린 연후에 판단했으면 한다. 지금은 그런 보편적 지원보다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는 재정 역할에 기여하는 쪽이라야 더 적절하다.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경제 위기 대응 방식이 다를 수는 있다. 해외에서 굳이 찾는다면 싱가포르의 올해 가구당 우리 돈 약 80만원 상당의 전자상품권 지급의 사례가 없지는 않다. 코로나19 사태 때 경험했듯이 경제 창출 효과가 생각보다는 작았다. 불과 26만~36만원의 추가 소비로 이어졌다는 것이 정책 효과 분석의 결론이다. 양면성도 뚜렷하다. 지난해 나라살림 적자 규모는 87조원(관리재정수지 기준)이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사상 처음으로 50%에 진입했다. 별로 건설적이지 않은 민생지원금에 지지를 보내기 힘든 이유가 또 여기에 있다. 특히 고소득 계층의 소비 변화 폭이 크지 않다. 정책 효과가 적은 계층에까지 돈풀기를 하는 방식은 효과를 극대화하는 지원이 될 수 없다. 윤 대통령이 25만원 지원 요구를 쏙 들어가게 할 민생 대안을 갖고 나올 것으로 믿는다. 민생 회복 긴급조치가 필요할지라도 무차별 현금 지원은 경제 활성화 면에서 지속성이 약하다. 의료개혁, 소상공인 대책 등 민생지원금보다 화급한 경제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만남 자체가 메시지’라는 의미 부여로는 부족하다. 그 정도라면 이후 정국이 더 얼어붙을지 모른다. 영수회담 이후를 생각할 때도 실제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

2024-04-28 13:37 사설 기자

[사설] 의대 교수가 병원 떠나면 의료붕괴 누가 막나

의대 교수들이 병원을 떠나겠다고 하면서 의정 갈등이 설상가상(雪上加霜)의 상황으로 빠져든다. 정부 정책에 항의하며 지난달 25일부터 사직서를 냈던 의과대학 교수들은 25일부터 순차적으로 병원을 이탈한다. 효력이 발생하건 안 하건, 병원을 떠날 생각이 실제 있건 없건 더 나쁜 국면에 진입한 건 틀림없다. 대학병원들은 주 1회 수술·진료를 중단하는 ‘셧다운’에 속속 나서고 있다. 뜸을 들이던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도 주요 의사단체가 불참해 반쪽짜리로 열렸다.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는 총체적 난국이다. 빅5 병원에 이어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 차원에서도 주 1회 휴진에 동참하게 되면 주요 대형 병원으로의 확산은 시간문제다. 과거 사례가 어떻든지 교수가 대거 병원을 이탈해 진료가 마비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는 낙관론은 애초에 접는 게 좋다. 의사 사직서를 대학본부에 전달하지 않고 보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본질은 효력의 다툼이 아니다. 의료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가지 않도록 어떻게든 막는 게 초미의 사안이다.휴학 신청 및 수업·실습 거부에 따른 집단유급 방지와 의학교육의 정상 운영에서도 의대 교수의 역할은 막중하다. 의대 증원의 당위성에 몇 번이고 공감하지만 정원 조정은 없다는 입장 고수엔 동의하기 힘들다. 대학별 정원 배정 이후 상수처럼 여겨지는 ‘2000명 증원’을 유연하게 푸는 것이 만능 키는 아니지만 남아 있는 좋은 변수가 없다는 현실론을 갈아엎은 중대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원칙론만 갖고는 접점을 못 찾는다.“5월에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의료대란을 경험”할 거라는 엄포를 되돌릴 주체는 바로 의료계다. 의학교육은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된다는 식의 절대불가침적 사고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의대 교수와 전공의의 길드(동업조합)적 연대라든지 카르텔적 구조가 지적되기도 한다. 그런 게 있다 한다면 그마저 지금은 대정부 압박 수위 높이기가 아닌 의료 붕괴 억제, 의정 갈등 해소에 써야 할 판이다. 의대 교수의 사직과 관련한 작금의 집단행동은 전공의 복귀를 더 멀어지게 할 뿐이다.환자 곁으로 돌아오라는 간절한 호소에 눈감고 의사가 환자를 돌보지 않겠다는 처신이 어찌 ‘환자를 위해서’일까. 언어도단이다. 교수 사직 여파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정부 믿음의 근거는 또 뭔가. 누가 이기고 지느냐가 결론이 될 수 없다. 의료개혁특위도 당장은 눈앞의 파국을 막는데 가장 먼저 전력을 다해야 한다. 정부와 전공의 간 대화를 트는 중재자 역할을 다해야 할 의대 교수들의 사직 행렬이 거듭 실망스럽다.

2024-04-25 14:13 사설 기자

[사설] 영수회담에서 입법독재 안 하겠단 ‘선언’이라도 하라

문재인 정부 때 당시 거대 여당(더불어민주당)의 기업규제 3법 등 각종 기업 부담 입법 강행에 맞서 “어느 정부에서도 이런 식의 입법독재는 없었다”며 경제계가 배수진을 친 적이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거여(巨與)에서 거야(巨野)로 바뀌어 반기업 입법 폭주는 계속됐다. 고사 직전에 몰린 기업의 항변은 우이독경식으로 묻히기 일쑤였다. 3연속 거대 정당이 된 민주당의 입법 독재가 더 걱정이다. 22대 국회 회기 전부터 거침없이 다음 단계로 향하고 있어서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독주를 재연하는 민주당은 의석수와 ‘총선 민심’을 앞세운다. 그렇게 가맹사업법(‘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야권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했다. 본사와 점주 간 갈등은 그렇다 치고 사업주인 가맹점주에게 사실상 노동조합 권한인 단체교섭권을 준다면 타당하지 않다. 전세사기 특별법, 양곡관리법, 농수산물유통가격안정법 등과 함께 21대 마지막 임시국회에서 밀어붙일 태세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일방 처리가 총선 민의가 될 수는 없다.조금이라도 4·10 총선에 나타난 결과를 ‘협치(協治)’로 해석한다면 이래선 안 된다. 집권 3년차인 윤석열 대통령도 야당을 직접 설득하고 국민과의 소통을 늘리며 성과를 내는 방법 외엔 뚜렷한 선택지가 없다.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한 상황에서 주요 국정과제가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럼에도 집권 3년차의 총선에서 국민은 ‘정부 힘싣기’를 선택하지 않았다.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이 구도가 숫자만 믿고 2028년까지 12년간 양보 없는 힘 대결을 연장하라는 국민 명령은 아닐 것이다.입법권력을 쥔 야당을 설득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야당 독주’를 막는 거의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기대하기 힘든 희망 차원이지만 영수회담에서 입법독재를 안 하겠다는 선언이라도 하면 좋겠다. 야당이 앞으로 더 강성이 될 지금 상황에서 윤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 사이에 처음 갖는 영수회담에서 국정 대전환의 의미 있는 ‘물꼬’를 터야 한다.가맹사업법뿐 아니라 불법파업 조장법이나 다름없는 노란봉투법 등의 입법을 강행하지 않는 것, 흔들림 없는 의료·교육·노동·연금 4대 개혁에 여야가 협조하는 것은 정치 복원의 중요한 시금석이다. 퇴장과 불참을 일삼는 국민의힘도 민생을 최우선에 두고 야당과 마주보고 앉아야 할 시간이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보이콧만 외치지 말고 제어할 능력과 견제할 의지를 가져야 한다. 의석수와 상관없이 그것이 여당다운 자세임을 조언하고 싶다.

2024-04-24 14:09 사설 기자

[사설] ‘애 낳으면 1억원’ 효과, 더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오는 26일까지 국민신문고(epeople.go.kr)에서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한 국민 생각을 듣는다. ‘아이 출산·양육비 1억원 지원 방안’에 던지는 질문은 출산율 급락의 심각성과 백약이 무효였던 기존 정책을 아울러 각성하게 한다. 파격적 현금 지원이 아이를 적극적으로 낳는 동기부여가 될지, 엄청난 규모의 재정을 투입해도 좋을지 등 가시적인 효과를 점검하겠다는 것이다. 인구 문제가 이렇게 절박하다. 출생아 수가 매년, 매달 역대 최저를 갈아치우며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울 지경에 처했다. 지방소멸과 국가소멸을 부를 인구 구조와 경제의 붕괴까지 걱정이다. 출산·양육을 정책 최우선에 둬야 하는 건 맞다. 그런데 예산과 대책이 없어 출산 기피 추세를 못 바꾼 것은 아니었다. 개별 기업이 부담을 떠맡는 부영그룹 방식과 같이 복지를 제도화할 역량은 제한돼 있다. 기업의 출산장려금 관련 세금을 면제해주는 정도로 유인책이 되긴 힘들다.권익위 설문은 실제로 저출생 극복에 앞장서는 부영그룹의 출산지원금 1억원 지급 사례를 모델로 한다. 이런 국내 초유의 방식을 현재에 대입하면 연간 22조4000억원(23조원) 정도의 예산이 든다. 그동안 온갖 정책에 예산을 쏟아넣고 효과를 못 냈다. 그래서 육아휴직, 유연근무 확대 등의 간접 지원을 한 방에 보낼 비책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14세기 중세 유럽의 흑사병에 빗대기도 하는 암울한 현실을 타개할 선택지의 하나로 보는 편이 낫겠다. 모든 저출생 예산은 지출 효율화가 요구된다.취지에 맞게 쓰이지 않는다면 한꺼번에 거액을 안겨주는 무책임한 정책이 될 개연성이 있다. 또한 이 때문에 출산·육아휴직 제도 개선이 경시되면 안 된다. 총선 과정에서 가구당 1억원 출산지원금을 거론한 야당도 기본적으로 공감할 것이다. 초저출산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면 2050년 총인구가 4000만명을 밑돌게 된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추계로 그땐 경제성장률 0% 이하의 추락이 기다린다. 저출생 해결에 여야가 인식을 공유할 지점이다.저출생 대응 정책 방향이 꼭 현금 직접 지원이란 의미는 아닐 것으로 믿는다. 육아 부담 개선뿐 아니라 좋은 일자리가 좋은 저출산 대책인 점에도 눈을 떼면 안 된다. 현금 지원 정책을 넘어서는 대전환으로 가는 방향성을 잃지 않길 당부한다. 자산·소득과 무관한 거액의 정책 수혜자 직접 지원 방식이 출산 의지를 얼마만큼 ‘가성비’ 있고 지속가능하게 끌어올릴 것인가. 설문조사 이상의 철저한 검증이 필요해 보인다.

2024-04-23 14:05 사설 기자

[사설] 21대 국회가 연금 개혁 마무리할 각오로 임하라

공론화의 마당으로 나온 국민연금 개혁 초침이 빨라진다. 네 차례(13·14·20·21일) 시민대표단 숙의토론회를 마치고 논의를 종합한 설문 결과가 22일 발표됐다. 오랫동안 갑론을박만 분분하다 모처럼 의견 수렴을 이뤄낸 셈이다. ‘더 내고(보험료율) 그대로 받자(소득대체율)’와 ‘더 내고 더 받자’, 크게 보면 재정 안정파와 소득 보장파의 줄다리기처럼 보였다. 어찌 됐든 급여 수준과 연금 재정 안정의 간격이 이렇게 좁힌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 ‘이대로 내고 이대로 받자’로 가다간 2055년이면 기금이 고갈된다. 연금 개혁의 당위성은 기존 연금 설계가 미래세대에 큰 부담이라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숙의 과정에서 확인됐듯이 큰 줄기인 소득대체율과 연금보험료율 조정이 역시 난제다. 구조개혁보다 보험료율을 손보는 모수 개혁은 민감한 이슈다. 보험료율이 OECD 평균치보다 월등히 낮고 소득대체율이 비슷하다는 데 출발점과 종착점이 있다. 방향성만 제시하고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등 알맹이는 뺀 채 개혁안을 국회에 떠넘긴 정부도 숙의토론회 이후부터라도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더 재고 말고 할 시간은 없다.모처럼 연금개혁의 기본 논의 조건을 갖추고 근사치에 가까운 답도 냈다. 가입 연령과 수급 시기도 정했다. 그런데 모범답안에 아직 이르지 못했다. 의무가입 상한 연령을 연금 수령 시점에 맞춰 64세까지 연장하는 내용은 유지하더라도 가다듬을 부분이 있다. 토론회는 끝났지만 한국개발연구원(KDI) 방안인 ‘신(新)연금’ 도입은 심도 있게 논의할 가치가 있다. 신·구세대의 연금을 분리하는 ‘기대수익비 1’의 완전적립식 개혁안은 세대 간 감정이 실리지 않는다면 재정 안정과 노후 소득 보장의 빈틈을 메울 강점을 갖췄다. ‘크레바스’(은퇴부터 연금 수령기 사이의 간극)를 없애면서 세대별 형평성을 고려한 연령별 보험료율 차등도 고려할 만하다.연금개혁에서 정말 중시할 것은 미래세대 희생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각 세대가 자신들이 조성한 적립금으로 국민연금을 받는 방식은 저출생 고령화 시대에 친화적이라고 본다. 같은 기조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관계를 재설정할 수 있다.이 핑계 저 핑계로 우유부단하게 멈칫거리는 사이, 70대 이상 인구가 20대 인구를 지난해 처음 추월했다. 물리적으로 쉽지 않더라도 5월 29일까지인 21대 국회 내에 마무리한다는 각오로 여·야·정이 혁신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연금 개혁이 인기 없는 정치적 의제라 해서 최적 모델을 찾아 입법화하는 과정을 후퇴시켜서는 안 된다.

2024-04-22 14:06 사설 기자

[사설] R&D 예산 이렇게 삭감한 채 국가 미래 말할 수 없다

연구개발(RD) 예산 감축으로 연구현장 황폐화가 현실화하고 있다. 내년도 예산이 복원된다는 약속도, 어쩌면 역대 최대 규모를 넘을 거라는 전망도 바닥에 떨어진 사기를 달래기엔 역부족이다. 2025년도 정부 예산안 편성 지침을 보고도 과학계는 반신반의한다. 20일 한국천문연구원을 시작으로 주말 개방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정부 출연연구소도 잔뜩 침체돼 있다. 과학의 날(21일)이 과학기술로 희망찬 미래를 그리는 국민 축제의 날이 되기엔 아직 멀었다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어두운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편에서는 우리나라가 아시아 최초로 호라이즌 유럽 가입을 목전에 두면서 글로벌 과학 위상이 한층 올라갈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유럽연합(EU)이 2027년까지 955억 유로(약 138조 원)를 지원하는 다자 간 연구혁신 프로그램에 공동 연구 추진 기반을 확보하게 된다. RD 기획·선정·평가 시스템을 내년부터 학습할 수 있다는 것도 가외의 성과다. 이렇게 글로벌 협력 RD에 무게 중심을 두면서 정작 국내 과학기술 분야의 RD 예산의 숨통을 끊은 처사는 연구현장 파괴행위나 마찬가지다.독자적인 선진 모형을 구축한 과학기술은 경제성장의 토대이며 전략물자이고 주권을 지키는 핵심적 자산이 된다. 이걸 포기하는 입으로 과학입국을 재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연구비 보릿고개’로 연구과제 지원서류를 새로 쓰느라 분주한 것이 연구원들의 현실이다. 한국에서 연구하기 힘들다고 판단될 때 우수 이공계 인력의 해외 유출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의대 증원 이슈와도 맞물려 탈이공계는 심화할 상황이다. 장기 연구가 필요한 프로젝트는 전반적인 차질이 생겨 연구 현장이 혼란스럽다. 앞 정권 정책 뒤집기, 33년 만의 대폭 삭감 뒤 역대 최고 증액과 같은 고무줄 예산으로 국가 미래는 없다.명확한 근거도 없이 카르텔 혁파와 예산 비효율 제거만 외치다가 방향성을 잃은 것이 지금의 허망한 모습이다. 정치와 과학 간 관계부터 재정립해야 한다. 한 과학기술인은 “(자녀에게) 아빠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과학자가 되지 말라는 게 지금의 분위기”라고 전했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 기고문에는 과학의 날을 하루 앞두고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한계(final straw)’라는 표현이 쓰였다. 연구원 자신이 하던 연구 자체가 의미 없는 것 아니냐는 자조가 섞이는 과학의 날은 두 번 다시 없어야 할 것이다. 2023년 기준 연구개발 예산을 ‘원상복구’ 수준 이상으로 전환해 RD다운 RD를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2024-04-21 14:42 사설 기자

[사설] 환율 ‘구두 개입’, 신중하게 대처하면 된다

경제적·비경제적 요인이 교차하면서 통화 가치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 대비 원화값이 17개월 만에 장중 1400원대를 기록하자 당국이 구두 개입에 나서기도 했다. “시장 기초에 의해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보다 약간 떨어졌다는 견해에는 동의한다. 물론 외환 변동성 완화를 팔짱 끼며 기다릴 수는 없다. 외부 요인이든 아니든 환율 변동성이 투자자, 수출입 기업, 일반 소비자 등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막강하다. 일부 식품기업은 사업계획 조정을 검토 중이다. 수입 원자재 가격과 식품물가가 더 오를 것이 걱정된다. 이보다 과도하다 싶을 때는 시장 안정화 조치에 나서는 것이 맞다. 중동 정세와 미국 금리 인하 금리 전망 등이 겹친 달러화 강세에 대적하기는 만만치 않다. 게다가 묻지 마 매수 심리,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작동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환율의 급변동성이 절대 없다고 단정하거나 섣불리 경계심을 푸는 건 좋지 않다.기본적으로 글로벌 ‘킹달러’(강달러) 때문이고, 특히 2000년대 들어 환율의 변동성과 수준이 증가한 측면도 있다. 지금은 원화 환율이 숨 고르기를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장관과 만나 이례적으로 공동 구두 개입성 발언을 한 것은 적절했다. 직설적 발언이 단기 혼란을 부추긴다는 분위기에 유의한다면 최소한 미세 조정 중간목표 달성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기업 입장에선 결제시기의 조정, 거래상호 조정 등도 곁들일 수 있는 방법이겠다. 환율 움직임, 외환 수급 등에 대해 꼭 필요하다면 신중함을 전제로 직접 개입도 불사해야 한다. 성장과 물가를 모두 고려한 환율 안정화가 환율 정책의 기본 목표이기 때문이다.장점이 있다고 그것만 오롯이 취할 수는 없다. 높은 순대외금융자산, 낮은 단기외채비중 등은 우리가 믿는 구석이다. 원·달러 환율을 안정시킬 재원과 수단을 우리가 보유하고 있긴 하다. 강조하지만 대외의존도가 높은 경제에서 환율 변화는 성장과 소비, 투자, 수출에 파급력이 적지 않다. 제품 원가 압박에 따른 물가, 기업 경쟁력, 고용에까지 영향력을 미친다. 원화 약세가 아시아 다른 통화에 비해 두드러진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대외 건전성이 양호하니 괜찮다는 확신보다 신중한 접근 자세가 요구된다. 과도한 불안심리는 잠재워야 한다. 외환 유동성 위기를 피하고 고환율 상황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구두 개입이나 직접 개입 등 환율 개입의 바탕은 정책당국의 신뢰라는 점도 잊지 않아야 할 사항이다.

2024-04-18 14:02 사설 기자

[사설] IPEF 공급망협정, 더 많은 대안 찾아야 한다

경제적 요인뿐 아니라 비경제적 요인이 끊임없는 공급망 문제를 낳고 있다. ‘국가 간 무력 충돌’은 세계경제포럼(WEF) 2024년 보고서도 꼽았듯이 글로벌 공급망과 경제적 안정성을 뒤흔든다. 원재료의 조달에서부터 완제품의 최종 소비에 이르기까지 연결망을 더 단단히 조일 필요가 있다. 유념할 것은 공급망 위기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란 점이다. 최근 3~4년간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상시화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 조사에서도 국내 기업들은 글로벌 공급망 문제 심화(23%)를 올해 최대 이슈로 지목했다. 주요국 대응을 구경이나 할 처지가 아니다. 정부가 총선 패배 후유증을 빨리 극복하고 공급망 외교에 나설 때다. 인도네시아나 중남미 등의 자원 국유화 흐름도 살피면서 불확실성과 변동성을 줄일 최적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공급망 다변화는 대중국 의존도의 다른 말처럼 쓰일 정도다. 양극재 96%, 음극재 93% 등 배터리 소재를 최대 경쟁국인 중국에 의존하는 구조는 매우 문제적이다. 운송업계, 건설과 철강 주요 주요 산업에 파장을 미친 중국발 요소수 대란 때 뼈저리게 선행학습한 사항이다. 중국이 독식하는 중간산업인 제련 및 소재화 기술의 틈새시장도 공략 대상이 될 수 있다. 핵심광물 생산국인 호주, 칠레, 콩고 등은 광물 전량을 중국에 보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원료 소재 생산품을 우리가 받는 조건으로 핵심기술을 공유하는 방법이다. 국가 간 분업으로 포장된 공급사슬을 끊고 글로벌 공급망의 중심에 선다는 인식의 변화가 요구된다. 요소수 사태 때 임시 편성된 기획재정부 경제안보공급망기획단을 살려야 한다. 정규조직으로 편성해 공급망 교란에 대비하는 것이 맞다.17일 정식 발효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공급망 협정은 공급망 위기 때 미국과 호주 등 14개 국가에서 도움을 받는다는 구상이다. 구속력은 약하지만 공급망 관련 다자간 국제협정이란 의미가 있다. 미국 주도의 중국발 공급망 위기 대응용 협정인 점은 한계다. 즉각 폐기를 공언해 온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선하면 IPEF가 파기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11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글로벌 통상 질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전운 등 사방이 공급망 리스크 요인이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는 최악은 피해야 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도 국내 산업 전반에 충격을 주는 글로벌 공급망 위기는 일상화된다. 산업 정책과 수출 전략에서 공급망 재편과 기후변화 두 가지는 이제 상수가 됐다.

2024-04-17 14:29 사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