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저출산과 지역소멸, ‘기업’에서 해법 찾았다

저출산(저출생)과 지역소멸(지방소멸) 위기 대응 방안이 다각도로 모색되고 있다. 공통된 근원은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저출산에 기인한다. 극복의 열쇠말은 ‘기업’이다. 브릿지경제 창간 10주년 기념으로 10일 서울 전국은행연합회 국제회의장에서 개최한 ‘브릿지포럼 2024’의 답은 명료했다. 지역소멸 해법은 국토의 88% 이상을 차지하는 지방, 즉 비수도권이 코앞에 닥친 위기를 푸는 일이다. 달리 표현하면 4차 산업혁명의 최첨단에 서 있으면서 저출산·고령화가 겹친 경제성장의 정체기란 매듭을 푸는 일이기도 하다. 일자리 부족은 거의 모든 문제를 연쇄적으로 파생하고 양산한다.그 결과로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유출되는 인구의 79%는 청년층이다. 지방은 기존 중소기업조차 심각한 생산 인력 감소를 겪고 상품과 서비스 수요가 줄어드는 악순환을 거듭한다. 전국 기업 분포를 보면 인구 분포와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 기업 편중이 인구의 편중으로 이어진다는 면에서는 경제산업 구조의 영역이다. 지역산업 육성의 큰 방향이 사실 여기에 있다.기업은 지역소멸과 상호작용을 한다. 산업·일자리 기반 위축이 지역소멸을 앞당기지만 그 역방향의 순환도 성립한다. 저출산의 미래는 지방에 겨우 남은 생산 기지 기능마저 위협할 것이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 노동 공급과 경제 생산성이 감소해 경제성장률이 저하하는 흐름을 끊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노동 여건과 인프라 개선이 동반돼야 한다. 생존 갈림길에 놓인 지역끼리 인구 쟁탈전을 벌여봐야 소용없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으로는 안 된다.첨단기업의 수도권 집중도는 61% 이상이다. 지역 기반의 신생기업 육성, 일자리 생산성과 부가가치 실현, 지속적인 투자환경 조성이 그래서 중요하다. 지방 벤처 플랫폼의 성공 모델로 소개된 포항 체인지업 그라운드는 좋은 표본이 된다. 지역소멸 및 국가소멸 위기론에서 자유롭기 위해 발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인 공간적 ‘마태효과’, 즉 지역격차를 줄이라는 해법까지 도출한다.이번 포럼 내용은 인프라 확대, 인구, 일자리 정책의 연계성 강화를 위한 국가 차원의 전략적 방향 전환에 쓰일 가치가 있다고 자부한다. 지역소멸의 공포는 농산어촌과 중소도시, 심지어 대도시를 뒤덮는다. ‘기업이 해법이다.’ 조언을 받아들여 중앙정부와 지자체, 산·학·연이 뭉치고 창업 생태계를 짜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알맹이를 얻게 된다. 한국경제의 선순환은 물론이고 빨라진 대한민국 소멸시계를 늦추고 결국엔 멈추는 묘안이 되길 바란다.

2024-09-10 14:02 사설 기자

[사설] 반덤핑 피소 세계 2위, 정부가 더 강하게 대응해야

반덤핑 제소와 상계관세는 공정경쟁을 유지하고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다. 물품을 정상가격 이하로 싸게 팔거나 보조금이나 장려금을 받았다며 부과되는 사례가 줄지 않고 있다. 한국이 반덤핑관세 피소 2위, 상계관세 피소 4위의 오명을 쓴 것은 불공정무역이란 이름의 무역보복 성격이 짙다. 수십 년째 집중 견제를 받고 있다. 한국 기업, 상품에 대한 수입을 차단하려고 덤핑방지관세나 상계관세를 남발하는 경향이 강한 것도 특징이다. 각국이 자국 우선의 산업 및 보호무역 정책을 고수하면서 규제는 거세지고 있다. 해당 국가의 정책을 꿰뚫고 통상 전문성을 키워야 하는 이유다. 반덤핑 제소국 2위에서 보듯이 주로 미국이 시비하는 행태도 변하지 않는다. 원산지 규정 강화와 두 제도, 그리고 세이프가드를 휘두르는 미국의 의도가 엿보인다. 국내 기업들은 세액공제 적용을 받기 위해 대미 수출 물량을 북미에서 생산하는 방향을 찾기도 한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시작으로 문을 굳게 닫는 미국은 더 이상 다자주의와 자유무역의 상징 자격이 없다.특히 철강금속이 수입규제의 절반(100건)을 차지한 것은 다소간 의도적이다. 최근에는 값싼 전기요금을 철강업계 보조금이라며 전기요금 인상 유보까지 현대제철과 동국제강 대상의 통상 문제로 비화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EU는 역외보조금과 탄소국경조정제도 등 우리 기업에 타격을 줄 말한 규정을 계속 변경 중이다. 유럽판 IRA로 보면 된다. 점유율을 높이는 한국 업체들에 대한 본격적인 견제 성격이 있다. 무역 규제의 겉과 속을 잘 분간하며 우리가 영리하게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한국이 반덤핑 피소 건수가 중국에 이어 2위인 것은 20년 전에도 그랬다. 상계관세 피소 건수도 3위 등 선두권 그대로다. 그 이후로도 반덤핑 제소를 세계에서 많이 당하는 불명예스러운 국가군에 속했다. 경제규모가 커졌고 무역의존도가 높기도 하지만 무역수지 흑자국인 한국이 보호주의 먹잇감이 됐다는 의미 또한 내포한다. 우리나라가 외국 통상 정책이 불합리하다고 문제 삼은 건수로도 10위쯤 되지만 대처를 잘한 것만은 아니다.미국 정부 등에 한국 정부가 제출한 의견을 적극 고려해 달라고 더 강하게 요청해야 한다. 기업은 자체 대응력을 길러야 한다. 세계무역기구(WT0) 협정에 합치하지 않은 부분은 그냥 넘어가지 않아야 한다. 무역구제제도의 선을 벗어난 반덤핑 수입 규제를 저지하기 위한 국제 공조가 요구된다. 세계 주요국이 너도나도 빗장을 걸어 잠그는데 어물쩍 대처하다간 수출 길이 막힐 수 있다.

2024-09-09 14:00 사설 기자

[사설] 연속되는 국제유가 하락, 정유업계 ‘고민’도 살피길

국제유가가 ‘자유낙하’ 중이다. 10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2023년 6월 12일 이후 최저치다. 전국 주유소 기름값은 6주 연속 하락했고 추석 연휴까지 내림세가 일단 전망된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 8일 평균 유가는 리터당 전국 1645.27원, 서울 1698.32원을 기록했다. 유가 급락의 큰 측면은 공급 리스크 해소다. 리비아 석유 생산 차질 조기 해결이나 이스라엘과 레바논 친이란 무장 정파 헤즈볼라 간 충돌이 악화하지 않은 점이 그것이다. 먼저 살필 부분은 글로벌 제조업과 물류활동 회복이 약세인 점이다. 물론 유가 하락은 물가와 소비 심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추세대로 추석 무렵까지 국내 기름값이 떨어지면 소비자물가 안정엔 도움이 된다. 유가 하락에 따른 실적 개선 기대감은 살려야 한다. 그러면서도 석유 소비에 대한 전망은 보수적일 만큼 신중해야 한다.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로서 원유 도입선 다변화, 비축량 확대는 유가 하락 국면에도 변하지 않는다.고민이 가장 큰 쪽은 정유업계다. 2분기에 수익성이 빠르게 악화했고 3분기 수요 부진 여파가 겹쳐서다. 고유가로 들인 원유가 반 토막이 난 10년 전 악몽엔 못 미치지만 미리 사둔 원유의 재고평가가치가 떨어져 손해에 직면한 상황인 건 맞다. 1분기 호실적 때 횡재세(초과이윤세)를 둘러싸고 동네북처럼 정치권 압박을 받던 정유업계에 대해서도 배려해야 한다. 1% 사용 의무화라는 지속가능항공유(SAF) 확산 전략의 경우, 정유업계 투자 결정에 확신을 주려면 투자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SAF 생산 원가가 뛰지 않도록 국가전략기술 지정과 투자세액 공제 확대는 필요하다고 본다.지금의 유가 급락의 원인이 시장경제이론에 따른 수요와 공급에 기인한 자연스러운 현상만은 아니어서 추이를 잘 지켜봐야 한다. 경제적으로는 미국 경기 지표 불안과 침체와 같은 찜찜한 변수도 있다. 물가 안정에 집착한 나머지 저유가가 글로벌 경제 불황을 초래하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만큼 경기 연착륙과 제조업 경기 반등의 계기로 작용해야 한다는 뜻이다.2025년 글로벌 석유 수요 전망을 낮게 보는 것 역시 예상보다 느린 경제 회복 탓이다. 국제유가 인하에는 중동 갈등으로 전쟁까지는 나지 않는다는 일종의 안도감이 작용했다. 긴장을 풀어선 안 된다. 역으로 지정학적 위기가 발화되면 유가 및 물가 상승 압력이 언제라도 커질 지점이라 조심스럽다.

2024-09-08 14:04 사설 기자

[사설] 정치권은 ‘열린 귀’로 산업계 목소리 들었나

경제계와 정계의 소통 행보가 모처럼 주목을 받는다. 산업계 입장을 전하는 창구 역할을 자임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이 5일 국회를 찾아 여야 대표들과 잇따라 간담회를 가졌다. 기업활동 규제 완화를 비롯해 논의 또는 건의된 경제 현안은 입법과 정책으로 최대한 반영해야 할 것이다. 정치권이 경제계 목소리 수렴에 충분치 않으면 글로벌 시대의 경제 활로는 잘 열릴 수 없다.여야 대표의 취임 축하를 곁들인 이번 회동에 쏠리는 관심은 경제 현안을 놓고 재계와의 접점 늘리기 노력이 희귀했다는 뜻도 된다. 최 회장이 9월 정기국회 시작에 즈음해 전달한 산업계 요청을 내쳐서는 안 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특히 ‘먹사니즘’을 주제어로 제시하려면 기존 일방통행 노선은 과감히 수정할 필요가 있다. 다음주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과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과의 회동에서도 현장에서 전해지는 목소리를 가감 없이 ‘열린 귀’로 들어야 한다.대외적으로는 재계 리더들의 국가 간 유대 강화 노력에도 관심을 갖고 지원할 때다. 4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일 경제대화(TED)에서도 부각된 경제 협력은 비즈니스 기회 창출과 글로벌 금융 안정에 도움이 된다. 한화오션의 미국 해군 함정 MRO(유지·정비·보수) 사업 수주는 국가 간 경제 밀착 이상의 의미까지 띤다. 경제는 종종 외교·전략적 관계도 공고히 하는 매개가 될 수 있다.어떤 면에서든 국민경제, 국가경제와 직결된 기업활동을 뒷받침하는 일은 정치권의 지당한 책무다.최근 일련의 회동에 나타난 기업들의 행보는 정기국회에 맞춰진다. 쟁점 법안들에 대해선 기업 고충을 반영하고 경기 활성화를 위한 법안 발의와 이행에 정성을 쏟으면 된다. 규제 완화와 혁신 지원, 노동시장 유연화 등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현안을 외면할 수 없다. 제22대 국회의원 환영 리셉션에서 외친 대로 한국 기업을 ‘세계 1등으로’ 만들려면 기업과 정치의 협력은 필수다.지금 국회 지형으로는 협치 없이는 불가능하다. 경제계가 바라는 킬러규제 혁신은 말할 것이 없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연설에서 강조한 여야 협의체는 연금 개혁 등의 성패를 가르는 중대한 시험대다. 기업이 체감하는 경제 상황과 규제개혁 필요성을 아무리 역설해도 정치가 사라진 국회에선 소귀에 경 읽기나 같다. 대화 정치를 복원한 다음, 청취된 산업계의 문제에 대해 정치 논리를 뒤로 하고 경제 논리로 풀어야 진정한 의미의 소통이다. 경기 회복이 시급한데 기업인의 의욕을 꺾는 일은 없기 바란다.

2024-09-05 14:09 사설 기자

[사설] 유주택자 대출 제한, 실수요자 어려움 없앨 자신 있나

금융당국의 고강도 압박에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 취급 제한에 나서고 있다. 민간 은행권에서 유주택자 전세대출을 제한하는 이례적인 일까지 생겼다. 우리은행은 9일부터 집이 한 채라도 있는 경우 서울 등 수도권에서 추가 주택 구매를 위한 대출을 해주지 않기로 했다. 예외는 뒀지만 대출 창구가 사실상 무주택자에게만 열리고 있다. 기존 주택 처분 확약서를 쓰고 전세대출을 받는 일도 속출하게 됐다. 이 같은 초강수 카드는 현 정부의 8·16대책에서 8·8 대책 사이의 기조를 되짚어보면 상당히 낯설다. 이전 정부의 수요억제(대출규제) 정책이 부작용만 키웠으니 하나둘씩 정상화한다며 공급확대, 규제완화에 방점을 둔 정책을 펼쳐 오지 않았나.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까지 동원한 대출규제는 돌변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정부가 쓸 카드가 없다는 얘기도 되지만 역효과가 걱정이다. 가계대출 급증은 집값 폭등의 결과다. 그 원인이 아님을 다시 상기해볼 일이다. 일시적 집값 안정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클 거라는 예견은 어쩔 수 없다.현재 분위기로만 보면 금융권 전반이 우리은행 수준의 규제 카드를 내놓을 공산이 커졌다. 유주택 주담대·전세대출을 중단한 일이 언제 있었던가. 금리 인상, 한도 축소, 다주택자 대출 제한 강화 등 백방이 안 듣는 가계부채를 누르는 취지는 알지만 지나치다. 전세를 끼고 주택을 구입하는 갭투자를 막는 자체는 좋다. 그러나 1주택자까지 투기꾼 취급해 대출을 틀어막는 건 온당하지 않다. 누구보다 실수요자의 어려움이 있어선 안 된다.이사를 계획 중인 전세·매매 수요자들은 대출이 안 나올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은행별로 대출 금리와 주담대 제한 정책의 시기나 기준이 다른 부분도 시장 혼란을 가중시킨다. 주택 구입과 이사 등에 차질을 빚는 금융소비자가 늘지 않게 해야 한다. 추가 규제 카드가 줄줄이 나올 가능성이 제기되는데,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총량 규제의 쓴맛은 2021년 대출중단 사태에서 벌써 맛본 적이 있다.그때는 자금 수요보다 대출 공급이 줄어 은행이 차주를 고르는 신용할당 상황도 빚어졌다. 정책대출 지원 대상에서 비껴난 중저소득 실수요 계층 피해가 특히 더 예상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대출 절벽 해소를 언급해서 쉽게 풀릴 사안도 아닐 듯싶다. 정책 일관성 부재와 너무 급한 정책 스탠스 선회로 시장은 아수라장이 될 판이다. 은행 창구 뺑뺑이에 나선 ‘대출 유목민’의 아우성을 들어보기 바란다.

2024-09-04 14:33 사설 기자

[사설] 응급실 군의관 배치, ‘일부 어려움’에서 그치길

4일부터 군의관 15명을 응급실에 배치한다. 9일부터는 군의관과 공중 보건 의사 235명을 파견한다는 정부 방침이다. 의료 현장이 안 좋아질 여건은 더 있다. 일부 병원에선 처리를 보류해오던 전공의의 사직서를 이제야 수리했다. 하반기 전공의 모집 때 지원자가 전무한 곳도 있다. 분만이 안 되는 대학병원, 주치의 구실을 하던 전공의 부재로 응급진료를 못 받는 필수 과목도 있다. 이런 사정이 단지 ‘일부 어려움’이고 응급실 위기 아니라고 부인해봤자 무익하다. 응급실을 찾으려는 환자의 절반을 돌려보낸다면 붕괴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 징후는 보인 것이다. 전공의가 병원 떠난 지 6개월이 넘는데 끝 모를 공백이 계속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대학병원 응급실 대부분은 기능을 축소했고 흉부대동맥 수술 등이 불완전한 곳이 많다. 일부 응급실 의사는 대통령실에 구급차를 한번 타 보라고 권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한다. 수년간 누적된 결과일지라도 한계를 넘은 상황이다. 이미 진행형인데 심각성을 낮게 판단해서 얻을 건 없다.주관적 인식과 객관적 팩트(사실) 사이의 차이는 인정된다. 분명한 것은 언제까지 문은 열고 환자는 안 받는 식으로 응급실 운영이 가능하겠느냐는 점이다. 대통령과 집권 여당 대표의 갈등 재점화는 사태를 해결하는 리더십은 아니다. 의과대학 정원 확대는 맞지만 완고한 입장만 갖고는 안 풀린다. 의대 2000명 증원을 못박은 윤석열 대통령을 움직일 ‘출구’는 물론 의정(의사-정부) 간 중재자 역할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응급실 배후 인력 확보는 초를 다툰다. 그나마 간호사 파업이 철회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의료진의 피로도가 극심해지고 있다. 할 말을 하려면 의료 현장으로 복귀한 뒤 하길 의사들에게도 권한다.응급 의료관리가 가능한지 여부는 정상화를 가름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119 구급대원들의 응급실 뺑뺑이는 지역의료 붕괴에 대한 우려가 특히 맞닿아 있다. 이대로 가면 추석 연휴기간 필수 의료 서비스를 비상 체제 구축으로 감당할지가 걱정이다. 배후 진료에 대한 지원을 병행하면서 의료정책이 출구를 찾아야 한다. 의료개혁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의정(의사-정부) 갈등의 근원부터 매듭짓는 게 순서다. 일일 브리핑 이전에 응급실을 야간과 주말에 폐쇄하는 등 제대로 진료하지 못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군의관과 공중 보건 의사 긴급 배치는 어쨌든 의료 인력 부족으로 정상 운영에 차질을 빚자 나온 대책 아닌가. 응급실이 어렵지만 진료 유지는 가능하다고 에둘러 말할 때는 아니다. ‘어려움’은 이쯤에서 그쳐야 한다.

2024-09-03 14:28 사설 기자

[사설] 전기차 배터리 대책에 정부·업계 같이 가야

정부가 잇따른 전기자동차 화재와 관련한 안전관리 강화 방안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근거 없는 포비아(공포)도 화재만큼 위험하다. 전기차 기피가 지속되는 현상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전기차 지하 주차장 주차 금지, 충전기 지상 설치 전면화, 주차구역 설계 보완 어느 것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전기차 보급 확대에 열을 올렸던 것처럼 안전 대책에 관심을 쏟는 수밖에 없다. ‘헛발’ 대책이 되지 않게 더 고심해야 한다. 예를 하나 들면 제조사가 출고할 때 90%까지만 충전할 수 있는 충전제한 인증서 도입 등은 다소 비현실적이다. 배터리 충전량이 안전성의 절대 기준이 아니란 반론은 많다. 현대차·기아는 전기차 배터리를 100% 완전 충전해도 안전하다며 첨단 BMS(배터리관리시스템) 역할을 공개했다. 심지어 ‘영업 비밀’ 공개가 될 수 있는 부분까지 감수하면서 그렇게 했다.화재는 막되 기술의 하향 평준화를 불러오지 않는 게 중요하다. 불은 충전 중(18.7%)이거나 주차 중(25.8%)이나 운행 중(48.9%)에도 발생한다. 충전 제한으로 주행거리가 짧아지면 자동차 상품성 저하와 직결된다. 내부 분리막을 튼튼하게 해서 열폭주를 막고, 답을 더 말하면 반고체나 전고체 배터리로의 전환은 필수적이다. 전기차의 미래가치 면에서 안전성과 성능 둘 다 잡는 방향이 맞다는 뜻이다.전기차 산업의 안전에 대한 대중 신뢰 회복은 포기해선 안 된다. 내연차가 이산화탄소의 25%를 발생한다고 보면 전기차 시대가 자동차 산업의 지향점인 건 거의 필연이다. 꾸준한 연구개발과 안전 없는 성장은 한계가 있다. 정부와 업계가 제각각인 백가쟁명의 대책에 신중해야 한다. 사태 본질을 모르거나 잘못 짚은 처방을 반복할 때 안전과 산업을 함께 망친다.철저한 실증 연구와 분석으로 과거에 갇힌 규제가 아닌 미래를 내다보는 규제를 해야 하는 이유다. 영국에서 시작된 자동차 산업이 31년간 지속된 적기조례로 독일과 미국에 주도권을 빼앗긴 역사를 한번 반추해볼 일이다. 국회도 주차장법을 고치려면 동시에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을 가다듬는 게 올바른 자세다.늘 잊지 않을 것은 이차전지 산업이 글로벌 신수출 성장동력인 점이다. 전기차 세상으로 가는 길목의 장애물인 화재로 주춤거리지 않게 정부가 탄탄히 뒷받침해야 한다. 전기차 화재 종합대책도 대증 요법이 아닌 실효성 있는 근본 요법이 나오길 기대한다.

2024-09-02 13:42 사설 기자

[사설] ‘스트레스 DSR 2’, 2금융권 풍선효과 조심해야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규제가 시작됐다. 은행과 2금융권 대출 금리에 가산금리를 높여 대출한도를 옥죄는 방식이다. 시행을 앞두고 막판 대출 수요가 몰린 것은 예견됐던 일이다. 인터넷은행의 대출 오픈런 현상이 심해졌고 높아진 은행 대출 문턱에 2금융권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례가 많았다. 일반적으로 이자율이 높아 대출에 불리하다고 보는 업권으로의 풍선효과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신호다. 농협과 신협 등 상호금융권과 새마을금고, 보험업권의 가계대출에도 금융당국은 주시해야 한다. 가계대출 증감과 선행지표인 대출 신청 건수를 하루 단위로 점검하는 데 빈틈이 없어야 할 듯하다. 보험사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5대 시중은행보다 낮아진 초유의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대출 수요가 몰린 데다 당국이 가계부채 관리를 주문하면서 보험사들이 뒤늦게 대출금리 인상에 나서긴 했다. 그런데 2금융권에 대출 쏠림은 없다는 상황 인식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미 보험사 하루 평균 접수 건수의 두 배 가까이 폭증한 뒤다. 대출 수요를 후행하는 대출 잔액을 간과한 것 역시 사실이다.수도권 주택에 가산금리 1.2%를 적용해 은행 문턱이 높아졌지만 보험업권은 가산금리 0.75%p만 반영한다. 한쪽이 금리나 한도 등 면에서 유리하다면, 서울 아파트 기준으로 은행과 보험사의 주담대 한도가 최대 수억 원 이상 차이 난다면 다른 쪽으로 대출 수요가 몰릴 것은 정한 이치다. DSR 50%가 적용되는 2금융권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 1금융권(40%)보다 대출 한도가 더 많다. 5대 시중은행에서 최근 20차례 넘게 금리를 인상하면서 보험사 주담대보다 상·하단 모두 높은 시장 왜곡에다 ‘관치(官治) 금리’의 부작용은 늘 유의할 필요가 있다.과거에도 가계부채 급증기엔 그랬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이 한창이던 2021년 7월 2금융권의 가계대출 잔액이 한 달 새 5조6000억원 급증한 실례를 모르진 않을 것이다. 이번에도 한도를 꽉 채우려는 영끌족 수요가 2금융권으로 얼마가 가느냐가 관건이다. 일부 시중은행이 수도권 소재 주택을 중심으로 주담대 최장 만기를 50년에서 2금융권 만기와 같은 30년으로 줄인 것 역시 부담이다.풍선효과는 지방으로도 향한다. 시중은행 대출금리 상승과 총량 규제로 서울에서 지방은행을 찾아 대출 원정까지 나선다.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고 낙관하다간 대출 수요가 옮겨붙어 상반되는 모습을 여지가 있다. 2금융권과 함께 지방은행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대출 메리트가 정책 유효성을 떨어뜨리지 않게 일일 점검에 나서야 한다.

2024-09-01 13:10 사설 기자

[사설] ‘멈춤 없는’ 4+1 개혁, 이대로 할 수 있겠나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올 들어 두 번째 국정브리핑에서 안타까움을 표한 ‘체감 민생’은 장바구니 물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요 주제인 4+1(연금·의료·교육·노동과 저출생 대응)에 국가적 고민이 응축돼 있다. 어느 분야든 공히 개혁 추진 성과를 자랑할 수준에 도달한 건 없다.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할 단계는 상당히 지나 있다. 한마디로 지금까지의 성과가 미미했다. 집권 초기의 ‘3대’ 개혁으로 분류됐던 연금 개혁에서 ‘더 내고 덜 받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사안 하나 갖고도 상응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청년·중장년 차등 지급에서는 세대 간 갈등을 줄이고 노후 소득 다층적 보장은 노인 빈곤율이 높은 현실까지 반영해야 한다. 기초·퇴직연금의 구조적 프레임까지 새로 설정할 과제다. 소득대체율 1~2% 차이로 불발시킨 여야 정치권도 이제부턴 대오각성할 때다.윤 대통령은 이날 고용률 연속 최고와 실업률 최저 수준을 내세웠다. 그런데 방향과 동력을 잃고 손도 못 대는 게 노동 개혁 현주소다. 노는 대졸자와 장수 취업생 증가가 말해주듯 교육은 노동 개혁과 긴밀하다. 최저임금 유연화와 특정 업종의 근로시간 유연성도 길을 잃었다. 생산성 고도화, 기업 생태계 조성을 한 묶음으로 하려면 갈 길이 바쁘다. 의료 시스템 붕괴를 막을 출구 찾기와 구조 전환도 서둘러야 한다. 의대 정원이 의료 개혁의 핵심이라면서 이를 위해 어떤 최선을 다했는지 자문해볼 일이다. 대통령실과 집권여당의 자중지란은 정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권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지름길일 뿐이다.효과 없는 대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더라도 단일한 대안으로 해결된다는 태만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각 개혁은 상호 연관돼 있다. 예컨대 늘봄학교 등 국가가 책임지는 교육·돌봄은 출생률 반등과 무관하지 않다. 지역과 대학의 벽을 허무는 동반성장 생태계 구축 역시 지방소멸 해법임은 물론이다. 저출생 대응에서도 인구전략기획부 신설이 유용하지만 해법의 전부는 아니다. 학교를 바꾸고 싶으면 학교를 둘러싼 환경도 바꿔야 한다. 멈춤 없는 개혁을 하려면 야당과 국민 이해를 구하는 소통의 리더십, 설득의 리더십이 윤 대통령에겐 필요하다.개혁은 고난이도 시험과 같다. 근본적인 개혁은 그 앞에 ‘초(超)’가 붙을 만큼 더 어렵다. 유보통합은 남북통일보다 어렵다는 말까지 나온다. 모두 여의치 않다. 여야가 정례화된 대화를 이어가면서 갈등을 증폭시키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번에 개혁하지 못하면 무너진다는 현실적 절박감으로 무장해야 한다. 4+1 중 미뤄도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2024-08-29 14:03 사설 기자

[사설] 가계대출 관리, ‘문턱 높이기’로 효과 있을까

은행들의 올해 대출이 많으면 내년 한도를 줄인다. 금융감독원이 27일 오후 내놓은 향후 가계부채 관리 대응 방안은 한 줄로 이렇게 요약된다. 가계부채 증가폭이 관리 수준을 넘어 통제 불능 상태라고 본 것이다. 연간 경영계획을 초과해 대출해준 은행에는 내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관리계획을 더 낮게 세우도록 한다. ‘DSR 차등화 카드’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 이해는 된다. 올해 2분기 정부·가계 빚이 3000조원을 넘어선 것도 세수 펑크, 그리고 부동산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는) 투자와 ‘빚투’(빚내서 투자) 영향이 크다. 현 단계에서 가계대출 연간 목표치의 70~80%가 적정한데 주요 시중은행은 약 1.5배, 심지어 4배 가까운 대출이 이미 실행되기도 했다. 사회·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서도 6월부터 더 가팔라진 상승세를 꺾을 이유는 충분했다. 방치하면 경기 회복도 더뎌진다.다만 윤석열 정부에서 폐지한 총량 규제의 부활처럼 되지 않아야 한다. 계획 수준과 대출 한도의 연계는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율을 5~6%로 강력 제한한 총량 관리와 다르지만 유사한 일면이 있다. 그럼에도 적정선의 시중은행 대출영업 개입이 불가피할 만큼 상황 관리가 급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로 따져 우리가 4년째 전 세계 선진·신흥시장 34개국 중 1위다. 대내외 충격 발생에 대비해서도 관리 가능한 수준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은행 간 금리 경쟁을 부추기며 대환 대출을 장려하던 당국의 기조를 떠올려보면 오락가락 행보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올해 초 각 은행의 가계부채 관리 계획을 제출받을 때와는 달리 대출 영업에 제약을 가하는 페널티까지 정해졌다. 관치의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면서 정책을 실행해야 할 것 같다. 정책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가계부채 증가 원인 제거다. 가계부채 급증이 아파트값 상승을 부추기기도 한다. 그 반대로 주택가격을 안정시키지 않고는 빚을 못 줄인다. 대출 문턱만 높이지 말고 일자리 늘리기 등 생계형 가계부채를 줄이는 노력도 해야 한다.곧 기준금리가 인하될 것이 확실해 근본 해법에 어떤 제동이 걸릴지 모른다. 2단계 스트레스 DSR 적용을 앞둔 막판 수요 급증에 수도권 집값 과열,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 등 여러 요인이 혼재한다. 다른 업권으로의 풍선 효과 등 부작용도 조심하면서 이사 계획만 세워둔 ‘그레이존’ 실수요자의 대출 절벽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이번 ‘대응 방안’이 금융 소비자 입장에서 예측 가능성만 떨어뜨려 백약이 무효인 우회로가 되지 않기 바란다.

2024-08-28 14:02 사설 기자

[사설] 해마까지 불러들이는 기업의 바다 생태계 살리기

친환경 경영을 지속가능경영의 필수 요건으로 삼는 국내 기업들이 늘고 있다. 2050년 탄소중립을 통해 글로벌 기후위기 극복에 동참하는 삼성전자의 신(新)환경경영전략, 슬래그, 슬러지, 더스트 등 철강 생산 부산물 재활용에 팔을 걷어붙인 포스코의 순환경제 구현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산과 해양을 대상으로 한 기업의 활동은 멈추지 않는다. 산불로 서식지를 잃은 멸종위기 동식물의 생존 터전 복원에 나선 한화그룹의 ‘한화 태양의 숲’ 조성도 눈부시다. LG는 그룹 차원의 ‘LG 넷제로 특별 보고서’로 탄소중립 추진에 가속을 붙였다. 바다에선 황폐한 바다를 살리려고 잘피 서식지 복원 프로젝트에 나선 LG화학의 활약상이 돋보인다. 여수 앞바다에 가꾼 5만 주의 잘피 군락지에 생태계 복원 지표종인 해마가 돌아온다는 27일 모니터링 결과는 반갑다. 잘피를 올해 2만 주 더 심는 등의 사업으로 2026년 축구장 14개 크기로 늘릴 계획도 무난하길 기대해본다. 탄소 저장 능력이 뛰어난 잘피는 식물성 바이오 마스크나 다름없다. 국가적으로 탄소중립의 새 전략에 쓸 만한 생태적 가치가 있다.경제적·환경적 이득이 있는 해양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에 현대자동차도 뛰어들었다. 현대차를 비롯해 KB금융지주, 신세계, 롯데 등 기업들이 잘피 심기 사업에 동참하고 있다. SK그룹의 생물다양성 정책 개정 후 활발해진 SK이노베이션의 맹그로브 숲 복원 사업도 성과가 있길 바란다. 잘피, 맹그로브 숲, 염습지는 3대 블루카본이다. 기상현상이 바다와 대기의 상호작용으로 일어나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진로가 보일 것이다. 기업 가치를 높이는 녹색경영이 기업 잠재력, 미래 경쟁력을 키우는 값진 투자라는 인식이 요구된다.자연 관리 거버넌스 구축도 우리 환경이 기댈 구석이다. 삼성바이로직스 등 몇몇 기업은 LEAP(지역 식별, 의존도·영향 평가, 위험·기회 측정, 공시 준비) 접근법을 적용해 생물다양성 관련 전략을 내놓는다. 기업 본사와 공급업체의 자연 의존성과 리스크까지 공개하며 생물다양성을 지키려는 진정성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해양생물 다양성의 체계적 보전에서도 기업의 가시적인 성과가 기다려진다.해양 생태계 회복의 자연친화적 전략인 LG화학 등의 해양식물 심기는 새로운 환경 트렌드가 될 것으로 믿는다. 생태계 유지·증진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는 생태계서비스지불제(PES)와 같은 지원에서도 해양이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아야 한다. 이는 정부(지자체)가 주도적으로 챙길 일이다.

2024-08-27 13:59 사설 기자

[사설] 금융권 책무구조도 도입 머뭇거릴 이유 없다

새로 시행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이하 지배구조법)’의 핵심은 ‘책무구조도 도입의 구체화’다. 횡령·배임 같은 금융사고나 심각한 불완전 판매가 발생했다고 하자. 이때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최고재무책임자(CFO), 최고고객책임자(CCO) 등 C레벨 임원들과 준법감시인·위험관리책임자 등이 지는 법적 책임에는 이론(異論)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사건·사고들을 보면 기준이 달라진다. 책무구조도 도입 의무 명시는 불가피한 면이 있다. 이렇게까지 해야 내부 통제의 예측가능성과 투명성 제고가 된다고 믿을 정도로 금융권이 불신의 늪에 빠졌다. 대출 사기 횡령사고, 특혜성 부당 대출이 적발된 경우나 명의를 도용한 허위 대출은 단순한 여심심사 소홀 차원을 넘어선다. 직원 일탈에만 국한되고 내부통제 시스템 관리 책임이 부재한 것은 책무구조도 조기 도입 명분을 더 키웠다. 시스템상으로는 어떠하다고 항변하든 금융사 임원 개개인의 업무와 책임 범위를 굳이 왜 도식화해야 하는지 대변해준 꼴이었다.지나간 한때 금융 지주회사 회장들이 ‘4대 천왕’으로 불렸을 때 이들을 견제하기 위한 만든 조치들이 나왔었다. 지금 보듯이 그게 작동하지 않고 있다. 내부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갔으면 회장 친인척에게 특혜가 진행됐을 리 없다. 금융지주 회장이나 은행장 같은 최고경영자도 법적 책임을 지고 금융 당국의 제재를 받게 해야 한다. 처벌 무풍지대란 있을 수 없다. 회삿돈이 시스템으로 보호받지 못해 범죄에 노출되는 일이 없게 차단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지배구조법대로 책무구조도에 인센티브까지 내걸고 시범운영을 하지만 은행권에서 다소 머뭇거리는 것처럼도 보인다. 연말 조직 조직개편 등의 고충과 시범운영 기간에 수정할 사항이 있을 때 새로 이사회 의결을 거치는 등의 실무적 불편함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제출 시기에 업권별 차등을 둔 가운데 금융지주회사와 은행은 올해 10월 말까지 책무구조도를 제출하면 면피 조항도 적용받는다. 다만 부실한 내부 관리뿐 아니라 외적인 요인도 많다. 금융산업정책이 금융감독정책을 압도하는 듯한 기능성의 문제가 그것이다. 감독체계에도 손을 댈 때가 왔다고 본다.책무구조도 의무화로 찾아야 할 것은 금융시장과 금융회사의 공공성이다. 땅에 떨어진 금융권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 제도가 금융회사의 혁신을 가로막지 않게 운영하는 것도 중요하다. 책무구조도가 지배구조 개선 취지에 맞게 안정적으로 금융권에 정착하길 바란다.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처럼 운영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다.

2024-08-26 14:08 사설 기자

[사설] 서울-지방 집값 양극화에 대책이 있기는 한가

서울을 중심으로 아파트 가격이 펄펄 끓는 것과 달리 지방 부동산 시장은 거래 부진으로 냉기가 감돈다. 입주 후에도 빈집 상태인 악성 미분양(준공후 미분양) 물량이 11개월 연속 늘어나는 경기 불황 장기화가 진행 중이다. 8월 둘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은 0.32% 올랐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18년 9월 둘째 주(0.45%) 이후 가장 큰 상승 폭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7월 매매가격지수는 인천을 제외한 5개 광역시에서 -0.30%로 내려갔다. 수도권은 매수심리가 확대되는 반면 비수도권 지방은 미분양이 넘쳐나며 다음 달에도 하락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세종시는 -0.58%로 하락폭이 더욱 크다. 강원과 전북 정도가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한다. 비수도권에서 대단지 입주 미분양 소화 부족이 겹쳐 집값이 떨어지는 것으로 거칠게 분석할 수 있지만 거래량 회복률이 더딘 이유는 더 다층적이다. 수도권 아파트 입주물량이 줄어드는 가운데 8·8 부동산 공급 대책까지 부동산 양극화를 부추기는 원인으로 가세했다. 당장 현실화는 안 되지만 서울 인근 그린벨트를 해제해서라도 주택 공급을 늘린다고 하니 실수요와 투자수요에 매수 심리만 더 쏠리는 것 아닌가. 무엇보다 수도권과 지방의 부동산 격차를 좁히는 정책은 전혀 되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의 수도권 일극주의 심화 정책이 되지 않게 할 대안은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국민평형으로 불리는 전용면적 84㎡가 50억원에 매매 거래가 성사될 만큼 과열되는데 지방은 침체 신호가 완연한 실체를 제대로 봐야 한다. 고분양가도 뚫고 올 1~7월 148대 1인 서울 평균 청약경쟁률에서 나타난 분양시장 수요 집중, 매수 심리의 수도권 집중을 막는 최소한의 정책이라도 있어야 했다. 거의 유일한 지방 미분양 대책인 CR 리츠, 즉 기업구조조정 리츠는 효과가 의심된다. 투자자 자금으로 미분양 주택을 사들여 경기 좋을 때 분양하는 이 방식마저 지방 수요 위축으로 사업성 확보가 어렵다. 종합부동산세 혜택 정도로는 메리트가 적다.지방 부동산에 한해서는 미분양 주택을 살 때 양도소득세와 취득세 감면, 다주택자 취득세 중과세 완화 등의 실수요자 유인책도 주효할 것이다. 지방의 미분양 물량 증가는 시공사와 시행사, 협력업체의 유동성 위기를 불러오면서 금융권 부실의 위험한 잠복 요인이 된다.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이 적용돼도 근본적인 양극화 해소와는 무관하다고 볼 수 있다. 부동산 양극화가 더 벌어지지 않게 특단의 대처와 관리가 필요하다.

2024-08-25 13:40 사설 기자

[사설] 2단계 스트레스 DSR, ‘규제의 역설’ 없어야 한다

정부가 꺼내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강화 카드는 가계부채 폭탄이 터질 수 있으니 강력하게 대응한다는 의도다. 그런데 은행권에 규제 시행 전 대출 승인을 받으려는 수요 문의가 빗발친다. 막차 효과인 것이다. 8월 31일까지 전산 접수해 한 번 더 추가되지 않은 스트레스 DSR을 적용받으려는 움직임 때문이다. 수도권 주택담보대출(주담대)에 대해 대출 한도를 더 조이는 2단계 정책 의미가 반감되는 기류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미래 금리 변동성 리스크를 반영해 금리를 붙이는 이유, 특히 수도권 주담대에 스트레스 금리를 1.2%p 가산해 관리하는 것은 가계 빚 폭증세를 지방보다 꺾기 힘들어서다. 한도가 줄기 전의 대출 막차 수요는 경과 조치 자체보다 사실 해결책 미비에서 비롯된 것이다. DSR과 같은 거시건전성 규제를 활용한 정책도 적절히 구사할 필요는 있다. 다만 대출 규제 확대는 부동산 경기 악화와 직결되는 측면이 강하다. 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영끌 대출이나 영끌 투자, 투기 목적을 제외하고는 시장경계에 맡기는 편이 나을 때가 많다. 게다가 지방 집값은 대부분 약세를 면치 못한다.스트레스 DSR 2단계는 대출 접수 후 승인, 시행까지의 소요 기간으로 인해 효과가 더디게 나타날지 모른다. 가계부채 타이밍을 놓쳤다는 실기론이 그래서 오래 가선 안 된다. 집값이 오르는 데는 상승 기대감에 서울 도심의 공급 부족 심화 불안감이 교차해 작용한다. 혼합·주기형 신규 주담대 비중이 높은 것 역시 수요 억제 효과를 저하시킨다. 정책대출 공급도 여기에 포함하거나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 집값 상승 기대감이 너무 커질 경우, 주담대 상승세가 가라앉지 않는 문제도 있다.일단은 8월 안에 대출 실행하는 차주에 대한 스트레스 1단계 금리(0.38%p) 적용이 도입 분위기를 흐리지 않았으면 한다. 좋은 의도의 대출총량 억제 정책이 부작용과 폐단을 키우는 규제의 역설로 흘러선 안 된다. 1980년대 후반의 일본에 나쁜 선례가 있다. 부동산 대출 총량규제로 대출은 조금 억제됐으나 버블 붕괴와 장기불황을 앞당긴 사실이 그것이다. 은행 주담대 차주에 대한 스트레스 DSR이 처음인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도 될 부분이다.득보다 실이 많아선 안 된다. 가계대출 증가세를 약간 진정시키는 정도로는 실효성이 작은 것이 이 제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 금리, 즉 가산금리보다 공급 이슈로 풀 문제란 점이다. 대출 한도 조이기가 아닌 주택 공급을 통한 집값 안정이 근본 해결책임을 한시도 잊지 않기 바란다.

2024-08-22 14:10 사설 기자

[사설] 시행 하루 전 미룬 택시월급제, 현실에 맞는 대안 찾아야

현실을 반영하고 담는 그릇이 법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택시발전법) 개정안이 통과한 것은 실정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없애기 위해서라고 이해하고 싶다. 원래 20일이던 택시월급제 전국 전면 확대 시행일을 하루 앞두고 촉박하게 이뤄져 무리는 있었다. 하지만 여건에는 부합한 조치였다. 택시노동자 근로시간을 주 40시간 이상으로 간주해 월급을 책정하도록 하는 법을 시행하기에는 준비가 상당히 덜 돼 있다. 전국 확대 시점을 2년간 늦춘 배경은 현장 목소리였다. 그 대상인 지방에는 주 40시간 이상 근무로 월급을 줄 수 있는 회사, 받을 수 있는 택시 기사가 현격히 적다. 5년 전 월 200만원이 넘는 고정 급여 설계를 민주당이 주도하고 여야 합의로 입법화할 때는 이런 사정은 거의 무시됐다. 사납금제가 생존권과 노동권을 위협한다는 이슈에 너무 골몰해 있었다. 이제 시행이 유예되지만 ‘택시운수노동자 소정근로시간 산정특례’(법 제11조의 2)의 의미는 버리지 않아야 한다. 적정한 수준의 월급을 주고 초과 운송수입의 일부를 인센티브로 더 주는 취지 자체가 나쁘지는 않다.과거 입법 당시에도 경영난에 따른 택시업 공멸과 지방 택시 대란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없었던 건 아니다. 업계 사정보다는 ‘타다’ 등에 반발한 법인 택시 기사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릴 의도가 너무 앞섰을 뿐이다. 이번엔 대부분의 택시노조까지 택시산업이 붕괴된 현실을 거론하며 법 개정을 강하게 압박한 것은 아이러니하다. 택시 업계와 기사의 고충은 그대로인데 업계와 노사 모두 반대하는 모양새 아닌가. 이러니 현장을 모르는 탁상 입법이라고 비판받아도 싸다. 국토교통부가 택시 업계가 처한 문제들을 연구하고 대책과 대안을 내기로 했다니 지켜보겠다.‘연구’ 대상에는 택시 양대노조(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과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의 택시월급제 폐지 요구도 포함해야 한다. 실질소득이 감소하는 고성과자들이 배달업·택배법으로 이탈하는 문제, 고성과자 임금이 저성과자에 분배된다는 전국택시운동사업조합연합회 측의 월급제 우려까지 담아내야 한다. 노사 합의나 노조가 원할 경우라도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거나 불리해서는 안 된다.3년간 월급제를 시행해본 서울이라고 부작용이 없지는 않다. 현실적 경영상 어려움으로 사납금제를 고수하는 곳이 여전히 많다. 이런 부분을 포함해 시행 유예 기간은 택시 산업 전반의 발전 방안과 대책을 재설계하는 시간이 돼야 할 것이다. 합리적 대안을 취해야 법이 현장에 잘 적용되고 규범력을 얻게 된다.

2024-08-21 14:10 사설 기자

[사설] 곧 이사철인데 ‘고공행진’ 수도권 전셋값 어찌하나

집값이 들썩이고 전셋값이 흔들린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 상승세는 1년째 이어지며 상승폭을 확대하고 있다. 서울 광진구 자양동 더샵스타시티가 5억7000만원 상승한 16억원에,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 대치팰리스가 5억원 오른 22억원에 신규 전세계약을 맺기도 했다. 수도권 내에서도 양극화가 세분화되고는 있지만 곳곳의 자치구에서 단기간에 전세보증금이 올라 신고가를 경신하는 사례가 자주 목격된다. 서울·수도권 전셋값 상승거래 소식 뒤를 잇는 전세대란이 걱정되는 심상치 않은 모습이다. 지금의 전세 상승장에서 첫 번째로 주시할 것이 시행 4년이 경과한 임대차 2법이다.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만기 매물, 최대 5%로 제한된 전월세상한제가 풀린 매물 상승분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오름세가 지속한다고 보고 대처해야 한다. 지금 보듯이 재계약 시점까지 미리 계산하는 바람에 신규 계약과 갱신 계약 전셋값이 4억원까지 벌어지기도 한다. 전세 수요가 몰리는 이사철이란 시기적 요소는 상승세 주도의 결정판이다.‘가을 전세 대란’은 4년 전(7월 31일) 졸속 처리된 임대차 3법을 시행하고부터 곧바로 현실이 됐다. 세입자를 보호한다며 전월세 기간을 사실상 4년으로 늘리고 임대료 인상률을 5%로 묶어 화근이 됐다.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책임의식을 통감할 부분이기도 하다. 적정한 입주 물량 부족에 따른 수요와 공급 불균형이 물론 큰 원인이지만 여건이 겹겹으로 좋지 않다.서울 아파트 매매 대비 전세가 비율은 표본 개편이 있던 2022년 11월 이래 가장 높아진 상태다. 전세를 끼고 집을 매수하는 갭투자 수요 등으로 전세사기 먹잇감이 되지 않도록 이럴 땐 더욱 조심해야 한다. 부동산 활황기와 다르지만 전세사기 우려는 아파트 쏠림 현상을 키운다. 그것이 다시 수도권의 상승세를 견인하고 있음에 유념해야 한다.전세 안정화 대책에 총력 대응하느냐도 전셋값 고공행진을 멈추는 데 중요한 관건이다. 집값 때문에 전세가 오르기도 하고 전세 가격이 원인이 돼 집값이 오르는 건 거의 부동산 시장 철칙과 같다. 한국부동산원의 서울 아파트 전세 실거래 가격지수도 최고 수준이다. 수요는 늘고 매물과 공급은 품귀에 가까울 만큼 한정돼 있다.이게 한계지만 실제로, 행동으로 줄줄이 얽힌 불안 요소들을 돌파해 나가야 한다. 수도권 아파트 전셋값 오름세는 한동안 더 갈 수 있다. 말로만 지속적으로 관리하겠다거나 필요한 경우 수요를 관리하는 대책도 검토하겠다는 식으로 얼버무리지 않아야 할 때다.

2024-08-20 14:01 사설 기자

[사설] ‘비(非)아파트 시장 정상화’, 계획대로 가고 있나

21주 연속 상승세를 탄 서울 아파트값이 수도권 비(非)아파트에도 전이되는 분위기다. 서울 주택 공급의 절반을 차지하다가 전세사기 여파로 무너진 빌라, 연립·다세대, 주거용 오피스텔 등 비아파트 시장을 살리는 것은 아파트 쏠림을 막는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뛰는 아파트값에 실제로 비아파트가 대체재로 떠올라 거래량이 늘어난다면 여러모로 눈이 번쩍 뜨일 현상이다. 전세사기와 역전세로 홍역을 치르며 집값을 끌어올린 부분을 상쇄할 열쇠 하나가 여기에 있다. 투자 수요를 일으키고 공급을 촉진해 비아파트 역할을 복원하는 일은 주거 안정, 집값 안정과 무관치 않다. 세제 혜택과 무주택 인정 범위를 늘리면서 정부가 비아파트를 살리려는 의도는 그런 면에서 공감이 간다.그렇지만 무주택자의 비아파트 구입, 그리고 1주택자의 비아파트 추가 구입 환경을 만드는 대책이 제대로 먹히는지 여부는 보다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매물 가격이 오르고 추격 매수세가 지속되는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세, 특히 주거 선호 단지 중심으로 불붙는 수요를 분산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신축 빌라 등 비아파트 11만호 수도권 공급 정책이 믿음을 줘야 기류를 돌려놓을 수 있다. 현재로서는 주택 공급 부족 현상을 완화할 강력한 대안으로 밀고 나간다는 확신이 부족해서 더 문제다.수요를 분산시킬 대책이라고 하지만 집값의 방향성을 돌리기엔 한계가 있다. 단기간에 공급이 느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 메시지가 10년 뒤 막연한 얘기로 받아들여질 때는 조금 살아난 비아파트 매수세가 이어질지 미지수다. 빌라, 오피스텔 등 아파트 대체재 공급에 속도를 내려면 집값 상승 장기화와 부동산 양극화에 대한 시장의 불안감도 해소해야 한다. 비아파트 관련 정부 정책이 일부 실수요 매수세 또는 수요자 불안 심리를 진정시킬 정도에서 끝나선 안 되는 이유다. 국회의 협조가 절대적이다. 비아파트 가격을 정부가 떠받쳐주는 부작용도 잘 피해야 한다.비아파트가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해주는 건 바람직하다. 하지만 아파트로 가기 위한 단순한 급행 티켓으로나 보인다면 시장 정상화에서 멀어지기 마련이다. 투자 수요를 높이기엔 여전히 침체 국면인 것이 비아파트다. 세금 계산 때 빼주는 정도의 세재 혜택 만으로는 약하다. 비아파트 수요와 공급을 끌어올려 아파트 쏠림 현상을 완화한다는 계획이 아무리 좋은들 공급 속도가 멸실 속도보다 더 빠르면 무슨 소용인가. 서울 아파트 가격 안정화를 꾀하기엔 미흡한 정책이라는 지적에도 귀를 활짝 열어두고 공급 확대를 추진력 있게 이어가기 바란다.

2024-08-19 14:44 사설 기자

[사설] 이커머스, ‘계획된 적자’보다 더 중한 건 재무 건전성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투자자들에게 20년 정도 적자를 볼 거라고 말한다. ‘아마존: 더 비기닝’의 ‘계획된 적자’를 설명하는 영화 장면이다. 아마존닷컴이 성공하자 세상은 그것을 ‘혁신’이라 불러줬다. 몸집 불리려고 계획된 적자를 자초하는 이 같은 이커머스(전자상거래) 플랫폼의 성장 공식이 흔들리고 재무 건전성과 신뢰도 등 내실 다지기로 눈높이가 향하고 있다. 현재 자구안을 내놓고 새로운 투자자 유치에 공을 들이는 티메프(티몬·위메프)의 정산 지연 사태도 아마존식 전략이 실물경제를 덮치는 폭탄으로 돌변함을 보여준 사례다. 국내 이커머스 업계의 영업손실을 보더라도 비용 효율화로 대내외 경영환경 불확실성을 돌파하는 체질 개선이 급하다. 금융감독원의 전자금융업자 경영지도 기준을 채우는 정도로는 안 된다. 적정한 부채 비율, 유동 비율, 채무 상환 능력의 지표인 이자 보상 비율 등 재무제표의 균형추를 잘 맞추는 건 기본이다.판매자(셀러) 유치가 곧 경쟁력인데 셀러들이 티메프 사태의 후폭풍을 걱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 흑자 전환을 자신한 쿠팡은 그래도 해냈다. 신선식품이나 가전제품 등으로 판매 영역을 확대하면서 1400만 회원의 지출 규모를 키워 창사 이후 처음 ‘돈 못 버는 성장’을 끝냈다. 전반적으로는 계획된 적자에 대한 의구심이 부풀려져 있는 상태다. 한동안 용인된 적자 경영 행태가 티메프 사태라는 새 국면과 함께 혁신으로 대접받는 시대는 흘러갔다. 부실이 대규모 채무 불이행으로 이어지는 결과가 들통나면서 믿을 만한 플랫폼으로 거래하려는 경향이 굳어지고 있다.주요 이커머스 플랫폼들이 계획된 적자를 입증하는 방법 역시 쿠팡처럼 흑자전환을 하는 수밖에 없다. 티몬·위메프 사태로 마음만 먹으면 개선할 정도의 수익성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 과정에서 순위 경쟁은 치열해지고 안전하게 거래할 플랫폼 위주로 세대 교체도 이뤄질 것이다. 국내 시장을 교란하는 알리, 테무 등뿐 아니라 제조사 및 특정 카테고리에 집중된 버티컬 커머스와도 경쟁은 가중된다.당장 할인을 줄이면 흑자 전환이 가능하지만 시장 점유율이 하락하는 지금 구조로는 글로벌 경쟁력에서 지속가능하지 않다. 플랫폼 기업의 재무 상태, 경영 건전성이 결국은 한국판 아마존이 될지 만년 적자기업이 될지를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다. 자본력을 갖춘 기업 중심의 시장 재편 대비는 무엇보다 중한 일이다. 사이즈만 커져 수익 내는 플랫폼이 희귀한 K-커머스 생태계에 효험 있는 치료는 대증요법이 아닌 원인요법이다.

2024-08-18 13:27 사설 기자

[사설] 광복절 메시지까지 덮어버린 ‘두 동강’ 경축식

1946년 8월 15일 광복 1주년 기념식 영상을 본다. 행사에 나란히 참석한 ‘이승만 박사’와 ‘김구 선생’의 모습이 눈에 띈다. 모스크바 3상회의 이후 찬탁과 반탁 대립이 극에 달하던 1주년 그 시기에서 78년이 지난 오늘이 그때보다 갈등이 덜하다고 할 수 있을까, 반문하고 싶다. 광복절 기념사에 담긴 대일 메시지나 윤석열표 통일 독트린보다 두 갈래로 나뉜 광복절 경축식 자체가 이슈가 됐다. 껍데기 경축식이 아니었길 바랄 뿐이다. 경제적으로는 농지개혁과 귀속재산의 불하로 식민지 경제구조를 청산하고 국민경제의 구조적 기반을 마련해야 했을 그 무렵과 광복 79주년은 상전벽해와 같다. 아쉽게도 의식은 그만큼 진전하지 못했다. 기록물들을 다시 보면 서울역에서 종로, 광화문 구간을 비롯해 전국에서 치러지는 거리 행진엔 들뜸이 있고 진영을 떠나 건져올려진 어떤 공감대가 엿보인다. 뉴라이트 독립기념관장 논란과 정부 역사관을 둘러싼 공방으로 여야가 각기 따로 광복을 기념한 지금은 최소한의 일치점마저 사라진 듯 보인다.‘윤석열 정부’ 주최 광복절 경축식에 나타난 분열상만 기준으로 하면 보수 중심의 반쪽짜리 행사가 되고 말았다. 광복회를 중심으로 독립운동가 단체가 별도의 기념식을 강행한 것, 독립기념관이 개관 37년 만에 최대 행사인 8·15 광복절 경축식을 취소하는 기이한 모습까지 처음 본다. 두 동강이 난 빈자리에 지자체가 나선 것 역시 생소한 풍경이다.지금 벌어진 일들이 역사를 바로세우는 진통이라고 하기엔 너무 지리멸렬하다. 국사편찬위원회 등 역사기관 요직을 차지한 인사들이 일본 우익의 식민지배 합법화 흐름에 부화뇌동하며 역사 수정 움직임으로 회귀한다면 물론 용납될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내세우던 ‘이념전’이 역사 정체성을 뿌리째 뒤흔드는 건 절대 아니길 믿는다. 광복절 행사 논란에 올라타 국가 지도자를 일제 앞잡이로 비하하는 막말 선동 역시 용납돼서도 안 된다. 이보다 더한 분열 사회가 펼쳐진다면 끔찍스럽다.케케묵은 얘기 같지만 그래도 비교할 건 경제다. 1959년 1인당 국민총소득(GNI) 81달러, 1961년 82달러이던 나라가 작년 GNI 3만6194달러로 일본을 넘고 G7 수준을 넘보고 있다. 그때와 또 달라진 거라면 순국선열 희생을 되새기는 대승적 결단도, 국민 통합을 다짐하는 광복절다운 행보도 없었다는 점이다. 지극히 뜻깊은 날의 의미가 퇴색된, 이렇게 당혹스러운 광복절은 국민도 처음 봤을 것이다. 내년이 광복 80주년이다.

2024-08-15 13:36 사설 기자

[사설] 14일 시행 보험사기방지법, 문제는 ‘실효성’에 있다

14일부터 개정된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이하 보험사기방지법)이 시행된다. 8년 전 법을 만들고도 보험사기의 지속적 증가세는 꺾이지 않았다. 건전한 보험거래 질서와 보험사기 예방은 등식 관계가 성립한다 해도 과언 아니다. 금융감독원은 이날부터 온라인상 보험사기로 의심되는 광고 신고자에 대해 커피쿠폰까지 내걸고 집중 홍보하고 있다. 폐기는 됐지만 20대 국회에서 8건, 21대 국회에서 17건의 개정안이 발의됐다. 건수만으로도 공공연하게 만연된 보험사기 폐해가 가늠이 된다. 개정안에 따르면 보험사기의 알선·유인·권유·광고를 엄중 처벌하고 금융당국의 보험사기 조사 권한이 강화된다. 현행법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고 규정한다. 문제는 규모와 피해를 못 따라가는 처벌 수위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13일 기존 사기범죄 양형기준을 설정하면서 보험사기 범죄를 함께 다뤘는데 그나마 진일보한 것이다. 보험사기도 일반 사기범죄와 본질 면에서 다르지는 않지만 내년 3월 최종 의결할 때는 별도 양형기준이 반영됐으면 한다.여전히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은 보험사기가 고도화, 지능화, 조직화된다는 사실이다. 얼마나 호구처럼 보였으면 외국인 불법체류자까지 범죄에 가담할 지경이 됐겠는가. 작년 생명·손해보험사 보험사기 적발금액은 1조1164억원이었다. 손해보험 이용 사기가 전체 금액의 96%에 이른다. 이런 누수 금액은 정직한 보험 가입자들에게 전가된다. 건강보험 재정 악화와 상해 등에 따른 사회불안 조성도 심각하다. 적발 인원은 11만 명에 육박한다. 들키지 않은 사례도 많다. 민생침해 5대 금융악(惡)에 보험사기를 넣는 게 타당하다는 설명이 가능한 대목이다. 보험사기를 슬기로운 소비생활처럼 여기는 잘못된 생각부터 뜯어고칠 대상이다.정부와 금융당국의 전방위적 노력으로 사고내용 조작, 허위 사고와 고의 사고 등이 발붙일 틈을 주지 않아야 한다. 의료기관이 연루된 보험사기나 은밀한 알선과 유인은 신고 등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가려내기 용이하지 않다. 입원적정성 심사 기준만 확립해도 멀쩡한 환자를 양산하는 전문 브로커들은 활개를 덜 칠 것이다. 징역형 선고 비중은 더 높여야 할 것 같다.개정안이 시행되고도 또다시 실효성과 역부족 사이에서 분투할 일은 남아 있다. 유관기관과의 공조 시스템이 실효성 있게 작동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사기 근절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2016년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이 처음 만들어졌지만 보험사기가 지속적으로 증가한 전례를 답습하지 않기 바란다.

2024-08-13 14:07 사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