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육아 도움 안 되는 육아휴직 사후지급금 손봐야 한다

한국 사회의 최대 난제인 초저출생 해소를 위해 일과 양육, 일과 가정을 병행할 수 있는 지원이 요즘처럼 강조되는 시절도 없었다. 육아휴직이 늘어났다지만 기업별 격차는 좁혀지지 않는다. 전체 근로자의 80%인 중소기업 종사자의 육아휴직 비율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 필요한 사람이 모두 사용 가능한 육아휴직 활용이 제대로 안 된다는 얘기다. 생계 걱정 없이 육아휴직을 쓰게 하는 것, 소득대체율의 현실화 문제를 손보는 게 핵심이다. 육아휴직 기간 중의 소득 감소는 휴직을 가로막는 결정적 사유가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가족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한국의 육아휴직 기간 소득대체율은 44.6%에 그친다. 부모 각자에게 통상임금의 100%를 지급하는 6+6 부모 육아휴직제보다 진일보한 제도가 아쉽다. 육아휴직 급여액 상한에 막혀 기존의 통상임금 대비 쪼그라든 급여를 받는다. 게다가 급여 일부(25%)는 복직 후 6개월 이상 계속 근로한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야 받는다. 급여 감소 타격을 완화하기 위해 조정이 시급한 현안이다. 육아 대책으로서는 합리적이지 않다.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내놓은 저출생 관련 공약 가운데는 재원 마련이나 관리 대책이 아예 빠진 단발성 정책이 많다. 부모육아휴직제 확대 개편과 휴직기간 육아휴직 급여 100% 지급이 목표가 돼야 한다. 사후지급은 육아휴직 종료 후 퇴사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장치다. 직업선택의 자유까지 침해하는 일종의 ‘볼모’ 성격까지 있다. 대표 정책인 육아휴직제도를 업그레이드하면서 꼭 손봐야 한다.상반기 중 육아휴직 사후지급금 제도 개선을 위한 연구용역이 나오는 대로 예산과 세제 지원 우선순위를 조정해 꼼꼼한 저출산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휴직 기간에 받는 월급이 적으면 육아휴직 자체를 망설이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기업 규모와 무관하게 육아휴직을 갈 수 있는 친가족 구조가 형성돼야 할 것이다. 육아휴직 기간을 승진 소요 기간에 산입하지 않는 문제 등 함께 보정해야 할 정책이 적지 않다.재원 마련 관련 논의를 충분히 검토하면서 육아휴직 급여 상한을 인상하는 것이 좋겠다. 육아휴직과 출산휴가 등을 제대로 보장하고자 한다면 사후지급과 같은 위헌적인 요소는 제거해야 한다. 아이를 키울 수 있고 부부 맞돌봄이 자리잡을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이보다 좋은 정책은 드물다. 육아휴직 활성화 등 일·가정 양립 지원제도의 기능을 실효적으로 높이는 일 아닌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육아휴직 빈부 격차’ 해소도 정부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다.

2024-03-18 14:01 사설 기자

[사설] 의대 교수마저 집단사직하면 환자는 누굴 믿나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의 사직 행렬 동참으로 의료 공백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전공의에 이어 의대 교수들이 25일부터 의료 현장을 떠나기로 결의함으로써 사태 해결에서 한참 더 멀어졌다. 어느 대형병원 편액에 담긴 ‘선애치환(先愛治患)’의 지고한 정신은 어딜 갔나. 그처럼, 먼저 사랑으로 환자를 살피지 않는 집단행동의 종점은 의료 대란, 의료 재앙이다. ‘의료 공백으로 인한 국민 불편 최소화’를 되뇌는 정부도 보기에 딱하다. 지난 주말(15일) 의대 교수들은 사직서를 내기로 결정하면서 사직 결정의 변을 내놓았다. “필수의료를 살리고 더 좋은 의료를 위해 ‘대화와 토론의 장’을 만들기 위한 전문가들의 고육지책”이라는 것이다.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의 손을 끝까지 놓지 않고 집단행동 예고를 거둬들여야 한다. 대신, 의료 현장의 현실적인 핵심 인력인 전공의들이 돌아오도록 설득해야 한다. 지금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제자들에게 참 의술을 전파하는 본분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의사의 길이고 스승의 길이다.방재승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장(서울대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원장)의 입을 통해 의대 교수들은 말한다. “환자를 버리는 것이 아니고 현재 사태의 해결할 방법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가진 것을 다 거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의료 현장을 벗어나는 순간, 환자를 버리는 게 된다. 진료와 학문의 정상화를 위해서도 교수들이 의료 현장을 떠나서는 안 된다. 2020년 의대 증원 추진 때 집단행동으로 정부 스텝을 꼬이게 했던 ‘효능감’을 행여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의대 교수마저 무책임하게 사직을 결행한다면 환자는 누굴 믿고 사나. 직업윤리를 망각한 직업이기주의로 해석되기를 기어이 바라는가.의대 증원 찬반을 떠나 대한민국은 ‘의사 부족국가’다. 지역의료체계는 곳곳에서 붕괴되고 있다. 현장을 이탈하지 말고 구체적 데이터를 놓고 어떻게 늘릴지 머리 맞대야 한다. 정부에는 진정성, 합리성 있는 의사 결정의 장을 만들 책임이 있다. 의대 교수들까지 학교와 병원을 떠난다고 밝힌 이상, 사태를 빨리 종결하는 것만큼 중한 것은 없다.전공의가 병원 밖으로 뛰쳐나온 이후 보여준 교수들을 포함한 병원 의료진의 희생과 헌신을 헛되게 하지 않길 바란다. 환자와 국민은 심정적으로 업무복귀명령, 집단행동 및 집단행동 교사 금지 명령을 내린다. 환자의 고통 해소, 건강권과 국민 눈높이라는 최고 기준으로 집단 사직을 예고한 의대 교수들의 자중자애(自重自愛)를 간곡히 촉구한다. 그보다 더한 가치가 무엇인가.

2024-03-17 13:58 사설 기자

[사설] 해외 온라인 플랫폼 규제 어디까지 통할까

지난해 국내 소비자의 해외직구 금액은 6조8000억원에 이른다. 해외업체의 유통시장 장악 속도가 그만큼 빠르다. 비례해서 부작용도 커지고 있다. 위해 식·의약품, 짝퉁으로 불리는 가품(假品), 불법 성인용품이 판을 친다. 개인정보 침해 대응은 먼 얘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소비자 보호 차원에선 필수적인 것들이다.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 등 ‘알테쉬’에 정부가 칼을 빼든 것은 늦은 감마저 있다. 관리의 핵심은 감시 강화다. 규제할 법이 꼭 없어서는 아니다. 있어도 사실상 무용하다. 약사법과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이 있다. 이 법이 ‘시력 교정용 안경’, ‘남성 성적 쾌락 알약’ 등 정체불명 상품과 ‘얼굴 주름 지우개 크림’ 등 허위·과장 광고, 조작된 사용자 후기까지 일일이 미친다는 건 불가능하다. 품질이 조악하고 반품과 환불이 안 되는 부분에는 소비자의 현명한 주의도 필요하다. 파격적 초저가 대가는 크다. 대형 플랫폼 외에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와 SNS에서 가품의 99%가 거래된다. 적나라한 상술 앞에 강제성을 결여한 규제는 설자리를 잃게 된다.먼저 중국 직구 업체 대응에 실효적이지 않은 부분부터 손봐야 한다. 아쉽게도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전자상거래법 개정은 차기 국회 원 구성 이후에나 가능하다. 해외 직구는 과일, 채소, 수산물 등 신선식품으로 계속 영역을 넓히고 있다. 무제한 광고비와 수수료 제로 정책으로 한국 시장이 통째로 뒤흔들리는 문제이기도 하다. 천문학적 자금력을 앞세운 ‘쩐해전술’에 대비하기란 고난도의 차원이다. 중국 이커머스가 이보다 구색을 넓히기 전에 대응하지 못하면 국내 유통업체들은 가격경쟁에서 존립하지 못할 것이다. 부처간 칸막이 없는 종합 점검과 대응은 공격적 마케팅에도 필요하다. 국내 업체는 부담하는 관세에서 자유로운 것 또한 역차별이다.해외 사업자의 국내 대리인 지정 법정화만으로는 실효성이 적다. 이미 국내 법인(대리인)을 갖춘 곳도 있다. 다시 상기하지만 상대는 글로벌 이커머스 시가총액 2위 알리바바의 ‘알리 익스프레스’, 3위 핀둬둬 홀딩스 ‘테무’, 중국 패션 공룡 ‘쉬인’ 등이다. 국내 카테고리를 확장한 거대 플랫폼과 자율협약을 맺어 얼마나 효과를 볼는지 의문이 든다.가품과 위해상품 판매 근절만 해도 성과를 낸다고 하겠지만 이것마저 첩첩산중이다. 정부의 해외직구 종합대응 태스크포스(TF)를 믿어보는 수밖에 없다. 이럴수록 엄정 집행할 법 체계부터 완비해야 한다. 해외 직구 플랫폼 관리의 또다른 핵심은 적극성을 띠어야 한다는 점이다.

2024-03-14 14:01 사설 기자

[사설] 비트코인 ETF 거래, 제도 정비 손놓고 있을 수 없다

다시 부는 코인 광풍에 ‘비트코인 백만장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가상화폐 대장주인 비트코인 거래가격이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던 1억원을 돌파하면서 국내 가상화폐 관련주들도 들썩인다. 투자로 돈 버는 흐름에서 소외된다는 두려움, 즉 포모(Fear of Missing Out·FOMO) 심리가 반영된 상승세가 어디까지 갈지 주목된다. 투자에 허들을 느끼던 중장년층까지 막차 타겠다며 덤벼드는 모습도 보인다. ‘가상자산 공포 및 탐욕 지수’가 90을 넘어 100으로 향한다니 걱정이 없지 않다. 그런데 지금의 광풍에는 합리성도 있다. 음지에 머물던 가상화폐의 제도권 내 주류 금융시장 편입을 우선 꼽을 수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거래소 상장과 거래 승인을 한 것은 결정적이었다. 공급이 절반으로 주는 ‘4월 반감기’ 기대감이 겹쳐 거래량과 신규 유입자 수가 급증하는 분위기를 타는 중이다. 개인투자자들이 주도하던 비트코인 상승장의 양상이 몰라보게 달라져 있다.무엇보다 전문 투자기관이 ETF로 자유롭게 비트코인을 매수할 수 있게 됐다. 자산시장이 커진 만큼 안정적인 상향이 가능해진다. 이 같은 가상화폐 가치변동에 따라 투자할 여건을 긍정적으로 살려야 한다. 고공행진 속 과열되는 코인시장에 대해서는 물론 투자자들의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단기 투기성 자금에 대해선 경계해야 한다. 다만 이것이 관련 금융상품 승인을 검토하지 않을 사유가 될 수는 없게 됐다.비트코인 현물 ETF의 국내 거래 불허 입장을 무조건 고수할 상황은 벌써 지났다. 모든 것이 총선과 통하는 길이고 뭘 해도 개미 투자자 표심을 고려했다고 보일 법한 시기지만 정책 선회는 필요하다. 국내 자본의 해외 유출이나 시장 고립도 생각해볼 현안이다. 투자자 보호 조치와 함께 제도 시장 내 금융거래라는 안전장치를 달아줄 시점이 도래한 듯하다.여기에는 새 자산시장 시대에 대비한다는 차원도 있다. 가상자산 현물 금융상품 승인 이전에 가상자산을 관리하고 운영할 시스템은 충분히 정비해야 할 것이다. 여야 정치권이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 중재와 투자를 허용하는 방안을 공약으로 제시하는 거야 나쁘지 않다. 자상자산의 범위와 유통, 산업 육성 등을 포괄하는 관련법 제정에 손놓고 있을 수는 없다. 그래도 제도권 시장 편입을 비롯한 어떤 사안이든 금융당국과 사전 협의하는 게 맞다. 비트코인 질주에 편승해 가상화폐 투자자 표심만 노린 공약을 마구 쏟아낼 궁리는 안 하는 게 좋다. 법정화폐의 근간이 흔들려서도 안 된다.

2024-03-13 14:12 사설 기자

[사설] TBT 기술규제 극복해야 수출 경쟁력 살아난다

한국 수출길을 험난하게 하는 것 하나가 무역기술장벽(TBT, Technical Bar riers to Trade)이다. TBT 4097건으로 사상 최고치를 찍더니 올해 1분기엔 그 기록마저 깼다. WTO 출범 이래 최다 기록이다. 전기전자 및 탄소중립 분야에서 벽을 높게 쌓는 미국과 유럽연합(EU), 생활용품 등에서 장벽을 만드는 개발도상국 아프리카 대륙을 가리지 않는다. 12일 한국은행 ‘BOK 경제연구’에서 본 것처럼 수출의 내·외연적 한계로 작용하는 기술 규제 강화에 대한 대처가 중요해졌다. 분야별로는 식의약품, 화학세라믹, 농수산품 등으로 범위를 넓히고 있다. 수출 비중이 80%가 넘는 10대 수출국과 5대 신흥국을 일컫는 15대 중점국들의 기술규정, 표준, 시험인증절차 등 기술규제는 늘어만 간다. 양적인 증가뿐 아니라 내용 면에서 점점 정교해지지는 대표적인 비관세장벽이다. 배터리를 예로 들면 화학물질을 대상으로 하면서 배터리 재활용 의무화로 확장하고 있다. 신산업·신통상 정책의 대세로 굳어지는 추세인 것이다.이처럼 규제의 망을 치는 목적을 분명히 봐야 한다. 자국산업 보호와 공급망 확보, 경제안보 제고라는 큰 그림까지 이해해야 한다. 20년도 안 돼 무려 4배 이상 급증했다. 규제를 신설하거나 강화한다는 뜻이다. 우간다, 탄자니아, 르완다, 케냐, 브룬디 등 동아프리카공동체(EAC)에서 600건 가까운 기술규제를 제·개정했다. 이 역시 무역기술장벽의 미래를 암시한다.장벽(Barriers)이란 무역에 장애가 발생하는 것을 포괄적으로 일컫는다. 기업에는 그 자체가 ‘애로(隘路)’다. 국가기술표준원에만 떠맡기지 말고 국가 차원에서 제거해줘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규제의 복잡성과 기술발전에 따른 동태적 특성으로 정보 파악조차 어렵다. 기술집약이 높은 산업일수록 생산성과 경쟁력 저하에 따른 부정적 효과를 더 현저하게 받기 마련이다. 주요 교역 상대국에서 탄소국경제도 시행 등 환경정책과 함께 보호무역주의 강화 수단으로 전용될 수 있다.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우리가 가다듬을 것은 능동적인 전략이다. 국가 간 서로 다른 기술규정과 표준으로 생긴 장벽이므로 다자체제, 자유무역협정(FTA) 등 지역협정을 통한 기술장벽 극복 노력도 여기에 포함된다. 무역 1조달러 클럽을 넘어 1.5조달러로 향하는 국가답게 다자·양자 협상과 해외 시험인증기관 협력을 지속하면서 국제표준 조화 원칙을 유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면서 경제안보 최전선의 기업이 선제적 대응 능력을 갖추도록 지원해야 한다.

2024-03-12 14:03 사설 기자

[사설] 전고체 배터리 개발, 정부와 원팀 이뤄 앞당기길

꿈의 배터리라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양산 준비 로드맵은 지난주 ‘인터베터리 2024’에서 잘 확인됐다. 첫 번째 프로토타입의 샘플을 OEM(자동차 제조사)에 공급해 현재 평가 작업을 진행한다는 사실도 공개됐다. 주요국들은 이차전지 산업을 경제 안보 관점으로까지 접근하고 있다. 획기적 신기술을 위해 민관이 함께 뛰는 전략적인 원팀 구성이 필요한 이유다. 승부처는 액체 전해질 대신 고체를 사용한 전고체 배터리(全固體, solid-state battery)에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이차전지 기술력을 보유하고도 지난해 배터리 관련 수출액은 1년 전보다 1.6% 줄었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성장 둔화 때문이지만 그 너머에 중국의 가격 경쟁력이 있다. 중국은 값싼 리튬인산철(LFP)배터리 분야에서 기술 급진전을 이뤘다. 우리를 에워싼 환경을 뛰어넘자면 독보적인 초격차 말고 답은 없다.작년 하반기부터 전기차 수요 둔화로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정체기) 위기감이 있지만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 주춤거려선 안 된다. 완성차 업체들이 전동화 투자 속도를 조절할 때 도리어 시간을 벌면서 초고성능 제품을 앞세워 치고 나갈 준비를 해둬야 한다. 중국 CATL은 안방 호랑이를 넘어서 배터리 점유율이 국내 3사를 합친 것보다 많은 게 현실이다. 막대한 자국 정부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등에 업은 중국 이외에 일본의 전고체 분야 진격도 배터리 종주국 회복을 노린다 할 만큼 거세다. 완성도와 속도, 즉 제대로 개발하는 것과 일정을 앞당겨 선점하는 것 모두 필연적으로 중요하게 됐다.배터리 원자재 수급은 지속적인 과제가 될 것이다. 호주, 남미 등 광산·제련기업과 계약을 맺었지만 패권경쟁을 헤쳐나가기가 쉽지는 않다. 광물 발굴부터 제련, 공급까지 정부가 함께하고 핵심광물 확보엔 금융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11일 정부와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배터리 3사의 민관 합동 배터리 얼라이언스 회의에서 전고체 배터리 개발 설비 및 연구개발 투자와 리튬메탈, 리튬황 배터리 개발 계획을 나란히 밝힌 것은 시의적절했다.부피와 무게를 획기적으로 줄인 리튬메탈과 리튬황 배터리도 전고체처럼 유망한 미래 배터리로 주목받는다. 공격적인 연구개발 투자와 전폭적인 정부 지원이 절실한 분야다. 차세대 배터리 연구 인력 양성 예산도 확대하고 규제완화를 지원하는 등 경쟁에서 불리한 구도를 돌파해야 한다. 이차전지 시장 점유율 2030년 40%로 세계 1위에 끌어올릴 때까지 정부와 배터리 업계가 끈끈한 원팀을 유지하기 바란다.

2024-03-11 14:01 사설 기자

[사설] K-바이오 연구 성과에 정부 육성 의지 더해져야

바이오 혹한기를 맞던 한국 바이오업계에 희망적인 메시지가 줄을 잇고 있다. 파이프라인 확대와 시장 선점 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하다. 지난 주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는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산학연 전문가들이 모여 바이오파운드리 인프라와 활용 기반 구축 방안을 논의했다. 최악의 자금난과 적자가 겹쳐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과 연구개발(RD) 장비까지 내다 파는 기업이 나오기도 했지만 곳곳에서 반전 분위기다.봄기운과 함께 밝은 전망들이 이어진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다음달 미국 암학회(AACR 2024)를 앞두고 보폭 넓히기에 한창이다. 유한양행, 신라젠, GC셀, 레고켐바이오, 와이바이오로직스, 지놈앤컴퍼니 등이 참가를 확정했다. 고형암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 3세대 항암제로 불리는 면역항암제나 ‘유도미사일’ 항암제 관련 성과 알리기에 나선다. 의료 인공지능(AI) 기업 루닛과의 공동 연구도 포함돼 세계 10대 바이오 강국의 입지를 다진다. 바이오헬스 6대 강국 진입의 밑거름이 되는 호응을 얻고 오길 기대한다.개인투자자들의 자금 유입이 활발하고 시장 반응도 좋다. 국내 헤지펀드 운용사가 최신 출시한 ‘K바이오 액티브’가 상장 EFT(상장지수펀드) 중 수익률 3위로 두각을 나타낸 것도 그러한 사례다. 다만 신약 개발 역량을 높여야 하는 것은 이견 없는 과제다. 바이오 소부장(소재·부품·장비)으로 바이오 소재인 배지와 레진의 외국산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바이오 시장 규모는 반도체의 3배다. 반도체·자동차의 글로벌 강자 등극 배경에는 소부장의 뒷받침이 있었다. 꼭 기억해야 할 일이다.주춤했던 K-바이오를 다시 살려 선순환 구조를 이루려면 가팔라지는 자금 절벽을 해소해야 한다. 그래야 차기 파이프라인 투자도 가능하다. 바이오산업은 고위험 고수익 특성을 갖는다. 세계 1위 보스턴바이오클러스터도 미국 정부 노력과 지원 없이는 불가능했다. 세계 상위 10개 제약사 최고과학책임자(CSO)의 70%가 의사과학자다. 의사과학자를 시급히 늘려야 한다. 연구와 교육이 후순위로 밀려 돈 되는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에 몰리는 현실이 됐다. 정부 지원책 없이는 의대 정원을 늘려도 임상의만 늘어날 수 있다.출범만 시켜 놓은 바이오헬스혁신위원회의 기능이 그래서 강조된다. 규제 혁파로 혁신적 신약 개발의 길을 터줘야 한다. IT, NT와의 융합 가속화에서도 정부 육성 의지는 거의 절대 요건이다. AACR 2024에서 항암 신약 개발 연구 성과를 소개하는 것과 같은 선진 연구기관 대상의 인적·기술적 교류도 물론 중요하다.

2024-03-10 13:58 사설 기자

[사설] 새 청약제도, ‘청약통장 무용론’ 나오지 않게 하라

부동산 정책의 핵심 중 하나인 청약제도가 이달 말 개편되면서 무엇이 변경되는지에 수요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달라지는 시스템 반영을 위해 4일부터 22일까지 한국부동산원 청약홈 시스템이 문을 닫아 현재 모집공고가 새로 올라오지 않는다. 1분기 분양을 계획한 사업자들이 2월까지 서둘러 청약을 진행하면서 3월 물량은 상대적으로 크게 줄었다. 다음달 시장에는 대변화가 예고된다. 그동안 무수히 뜯어고쳤지만 어떻게 고치든 부작용이 끊이지 않았다. 시장 환경을 잘 반영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도 된다. 도시주택이 절대 부족했던 1970~1980년대만큼은 아니라도 무주택자들의 내 집 마련에 기여하는 제도로 만들어야 한다. 이번 개편으로 민간공공주택에서 다자녀 특별공급 기준이 3자녀 이상에서 2자녀 이상으로 완화된다. 신혼부부나 신생아 출생 가구에 유리하게 특공 청약 장벽이 낮아지지만 전반적인 청약 수요 확대 여부에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청약 자격 완화로 당첨 문턱이 낮춰져 수요자 선택권이 넓어졌을지라도 특별공급 비중을 키우다 보니 일반공급 기준 개선에는 빈약할 수 있는 것이 이번 개편이다.출산가구에 대한 주거 지원이나 혼인에 따른 불이익을 없애는 것 등은 정책적으로 잘 변경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이명박 정부 때는 주택가격 급등 저지 목적으로, 문재인 정부에선 수요 분산을 위해 시행했던 사전청약도 유명무실화하지 않도록 보완이 불가피하다.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로 사전청약 포기 사례들이 속출해 이 또한 보정할 때가 됐다. 복잡해진 청약제도를 이해하지 못해 부적격 처리되는 등 청약자에게 책임이 전가되는 시스템 자체가 사실은 개편 대상이다. 정교함을 넘어선 공급규칙의 잦은 변화로 정부 실무자들조차 헷갈린다고 한다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변화’든 ‘진화’든 제도 시행 이후 공급규칙이 연평균 3.6회인 160차례 안팎의 잦은 개정도 문제였다. 잘못 손질해 미봉책이 될 때가 수도 없었다. 때가 때인지라 이번 개편에 대해 집값 폭등으로 돌아선 젊은층 표심을 잡을 의도라는 좀 다른 시선이 없지 않다. 토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해 필요한 사람에게 우선 공급하기 위해 정부가 주택공급에 적극 개입한다. 부동산 대책을 내놓을 때면 청약제도 개편이 따라붙는 이유를 곱씹어봐야 할 것이다. 공급 확대라는 근본책은 놔두고 제도만 복잡해져선 안 된다. 집 장만의 필수품으로 여기지 않고 기피한다면 청약통장 무용론이 쏙 들어갈 리 없다. 이달 25일 이후 ‘청포족’(주택 청약을 포기하는 사람)이 다시 내 집 마련 꿈을 꾸기 시작했으면 좋겠다.

2024-03-07 14:08 사설 기자

[사설] 조선업 수주 ‘훈풍’, K조선산업 대전환으로 이어가자

국내 조선업계가 순풍에 돛 단 듯 선박 수주 풍년을 맞고 있다. 3년치 일감이 쌓였고 10년 만의 호황기라 할 정도다. 밀려드는 선박 건조 주문에다 선박 가격의 상승세로 불황의 파고를 보란 듯이 넘어섰다. 작년 말 잠시 품었던 글로벌 신조선 발주량 감소에 따른 조선업 피크아웃(고점 통과) 걱정을 덜게 한다. 주력 선종인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암모니아 에탄 등 차세대 가스선 등이 수주 행진을 떠받치고 있어 듬직하다. 작년 상반기 HD한국조선해양에 비해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이 다소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든 것과 비교해도 올해 조선 빅3 호황은 역대급이다. 연초 두 달 만에 HD한국조선해양이 53.3%, 삼성중공업이 39.2%의 수주 목표에 다가갔으니 이례적이다. 한화오션을 포함해 수주 쾌속항진이라 불릴 만하다. LNG 운반선과 암모니아 운반선, 에탄 운송선, 원유운반선 등을 가리지 않고 선전했다. 암모니아 운반선 건조 문의도 줄을 이을 걸로 전망된다. 올해는 3사 모두 흑자 전환으로 조선업 슈퍼사이클(초호황기)을 구가했으면 한다. 적자에서 못 벗어난 일부 조선소까지 영업손실을 줄이고 흑자 대열에 합류하리라 기대해본다.간략하게 총평하자면 지난 두 달 간의 성적표는 친환경 규제 강화에 따른 가스 캐리어들의 수요에 잘 부응한 결과였다.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에서 실적 개선 흐름을 잘 타는 게 왜 중요한지가 입증됐다. 좀 뜸했던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수요 증가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조선업계가 초격차 확보에 사활을 걸고 ‘K조선 차세대 이니셔티브’를 5일 발족시킨 정부가 적극 밀어줘야 한다. 중국의 추격은 최대 복병이 될 것이다. K조선산업의 대전환은 소소한 생산기술 우세만 갖고는 안 된다. 자율운항선박 등 미래 사업 전환을 비롯해 상단 기술에서의 절대 격차로 따돌려야 K조선산업의 미래가 있다.역대 최고가 수주 행진에 대해서는 일단 유리한 업황이 조성됐다고 자평해도 좋다. 이러한 ‘훈풍’ 같은 수주 잔고를 보유해도, 또 초격차 확보에 5년간 9조원을 투자하더라도 지금은 인력 확충이 발등의 불이다. 조선업계가 작년 한 해 10% 이상의 인력을 확보하고도 현장에서는 인력난 때문에 아우성이다. 외국인 채용 증가뿐 아니라 국내 노동자 유입과 조선소 스마트화 추진 방안도 긴급한 현안이다. 이니셔티브 상례화로 조선산업 수출·투자 애로 해결에 나서주는 일 역시 정부 몫이다. 가격 경쟁력이 중요한 제품인 탱커(유조선) 수주전에서 중국이 저가로 쓸어가는 부분 등에도 대응하면서 전반적인 ‘상승 랠리’ 국면을 잘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2024-03-06 14:28 사설 기자

[사설] 시장 상황 안 맞는 토지거래허가제 풀 때 됐다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만료를 앞두고 어느 때보다 해제에 대한 주민 기대감이 높다. 그만큼 불편을 감수했고 마지막 큰 걸림돌을 빼야 한다는 인식도 강해졌다. 지난해에는 집값 하락과 매매거래량 급감, 공시가격 하락에도 시기상조라는 판단이 작용했을 테지만 이번은 다르다. 아직도 5~6년간 장기 급등한 주택가격을 낮추자는 기조라면 시장 과열방지 기조를 1년쯤 더 유지하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시장 상황을 보면 그렇지 않다. 토지거래허가제(토허제)가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과도한 재산권 침해라는 주장에 귀를 세워야 할 듯하다. 압구정·여의도 아파트지구, 목동택지개발지구, 성수전략정비구역 등 주요 지역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내년 4월 26일까지 추가로 묶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5월 19일이 지정 만료일인 이촌동·한강로1~3가·용산동3가, 6월 22일 만료되는 ‘잠삼대청’(잠실동·삼성동·청담동·대치동)도 다르지 않다. 토허제의 주요 타깃인 개발호재로 집값이 급등할 정도는 아니다. 해당 지역은 특히 1·3 부동산 대책이나 재건축 규제 완화의 후속 조치에서도 예외로 묶인 곳이다.부동산 과열 가능성 때문에 지정한 토허제로 다른 지역보다 집값이 더 많이 내린 부분도 참작해야 한다. 거래가 줄고 집값이 안정되는 수순과 거꾸로 가는 곳이 있다. 서울 강남권 고가주택 중심 또는 재건축이 가시화된 일부 지역에선 집값은 못 잡고 재산권만 침해한 것 또한 사실이다. 실효성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강남·서초·송파·용산을 제외한 전국이 규제지역 해제가 된 상황에서 이중규제 성격을 띠기도 한다. 시장 불안 요인이나 지역 부동산 가격의 급등을 관리할 목적보다는 주택 공급이 제한돼 주택가격 상승을 유발한 측면마저 있었다.투기적 거래의 방지와 국민 주거 안정은 좋은 정책 명분이다. 다만 건전한 거래를 유도한다는 고려가 지나칠 때는 문제가 된다. 부동산 시장 안정도 시장경제를 왜곡하지 않으며 재산권과 거주 이전의 자유를 제약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토지거래허가제는 성격상 주택거래허가제처럼 변질됐다. 주택시장 경착륙을 막는다고 대출·세제·청약을 죄다 풀면서 토지거래허가제만 남겨둔다면 엇박자 정책이다.서울 초특급 핵심지역이어서 집값을 자극한다는 이유, “집값은 낮을수록 좋다”는 보다 단일한 이유에만 매달리지 말고 원활한 부동산 흐름을 위해서도 풀 건 푸는 게 합리적이다. 시장에 대한 인식과 시장안정 여부에 대한 판단을 흐리지 않길 바란다. 주택 거래까지 위축시키는 ‘대못 규제’가 굳이 지금 꼭 필요한가.

2024-03-05 14:18 사설 기자

[사설] 전공의 이탈 끝내고 병원으로 복귀해야 한다

상급종합병원을 비롯한 수련병원에서 전공의들이 이탈한 지 5일로 보름을 맞는다. 삼일절 연휴가 끝나자 정부는 집단 사직서 제출 후 근무지를 이탈하고 미복귀한 전공의에 대한 행정·사법 절차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구제 없다’는 입장이다. 강경과 강경만이 대치한다. 의료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중단하지 않아야 한다. ‘히포크라테스’ 이전에 의료법이 명시한 법적 의무다. 복귀하지 않으면 법적 책임을 지우는 것은 당연하다. 증원 반대 논리부터 우선 공감하기 어렵다. 2000년 감축된 인원만 늘리라고 한다면 협의 거부나 같은 얘기다. 우리 의사들이 국제 평균의 3배나 일을 해서 공급이 부족하지 않다는 반박은 억지처럼 들린다. 물러설 곳 없는 낭떠러지를 왜 자처하는가. 처벌을 본격화하면 전공의와 전문의를 배출하지 않겠다는 의협의 태도 역시 국민적 지지를 구하긴 힘들 것이다.미복귀한 전공의는 법과 원칙에 따라 조치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개인의 중대한 진로(進路) 문제까지 거론하지만 의료계는 이전의 경험을 너무 믿는 듯하다. 박근혜 정부의 원격진료, 문재인 정부 때의 400명 증원 추진을 무산시킨 동력은 환자를 볼모 삼는 것이었다. 환자 생명을 지키자고 다짐하던 초심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의사국가고시 응시와 관련해서도 의료법 시행령까지 개정해주며 추가 시험 응시 기회를 부여했었다. 정부가 면허정지 처분을 하면 의료공백을 메울 방법이 없다는 그때의 ‘승리’ 경험을 너무 믿는 것 같다.다 제쳐두고 30년 전인 1994년보다 의대 정원이 적은 건 어찌 설명해야 하는가. 정원 확대 결정에 앞서 의사협회 등과도 상의하라고 주장하지만 공급을 결정하면서 공급자인 의사의 양해를 받는 모양새가 타당한지 의문이다.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는 것은 ‘SKY’ 위 대학이 더 생긴 데 비유될 만큼 파격이더라도 말이다. 정부가 4일을 마감일로 정한 의과대학 증원 수요 조사에 응하지 말라고 의대에 요구하는 처사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불법 집단행동으로 겪는 환자의 큰 고통을 직시해야 한다. 의료인력 확대는 돌이킬 수 없는 사회적 요구다. 또 의료개혁의 시발점이다. 기본적으로 협상이나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이번 주는 전공의에 더해 계약 종료된 전임의 이탈까지 가시화되지 않을지 우려된다. 전공의, 의대생, 의사들이 집단 진료 중단 행위를 멈추고 환자 곁으로 돌아가길 간곡히 권고한다. 의료개혁이 왜 필요한지 의료인 스스로 보여주는 역설적인 상황, 최후 수단을 동원해 풀어야 하는 문제적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

2024-03-04 14:16 사설 기자

[사설] ‘삼삼데이’ 좋지만 양돈산업 발전에 더 힘쓰길

이른바 삼삼데이(삼겹살데이)를 겨냥한 돼기고기 할인 행사가 ‘한돈위크 ’ 마케팅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형마트부터 백화점, 편의점, 이커머스까지 나서 판매 총력전을 펼친다. 축산 제품에 채소, 과일, 육가공 등 상품군을 곁들인 것은 올해의 특징이다. 농림축산식품부도 할인행사를 연장하며 한돈 판매 촉진 및 수요 활성화에 팔을 걷었다. 한돈은 쌀 다음으로 많이 먹는 주요 식품으로 식량 안보 면에서 비중이 크다. 지난해 돼지·소·닭고기 등 3대 육류 소비량이 1인당 60.6㎏으로 쌀(56.4㎏) 소비량을 웃돌았다. 이 중 소비자가 가장 선호하는 부위는 단연 삼겹살(62.3%)로 집중된다. 삼겹살 지방 두께 매뉴얼까지 만들게 한 ‘비계 삼겹살’ 논란을 어서 불식시켜야 한다. 도축 이후 축산물 가공·유통 과정의 품질 관리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삼겹살 과지방 문제부터 이번에 꼭 매듭을 짓고 가야 한다. 일부 유통업체의 얄팍한 상술이 업계 전체의 속성처럼 확대 재생산된 부분이 있다. 전체 한돈에 비계 삼겹살 오명을 씌우는 것은 잘못이다. 이와는 별개로 전국 도축장 70여 군데에 소분할 업체가 5만 개가 넘지만 품질 관리에도 소홀할 수는 없다. 소비자 선호도 면에서 획일적인 지방 함량 기준 설정이 어려운 점은 있다. 지방을 과도하게 줄이는 사육 방식은 일부 수입산과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는 측면도 없지는 않다.육류 소비로 양돈 농가를 돕는 삼삼데이에 사룟값도 못 건진다는 양돈업계의 고충을 함께 들어줘야 한다. 유통업체가 초저가와 품질을 내세운 이면에는 수지 타산 맞추기에 고심하는 업계의 눈물이 있다. 생산비의 차액을 90%까지 보조해주는 일본의 축산물가격안정법 같은 입법은 경영 안정과 소득 보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한돈 품질을 개선해 ‘가심비’를 높이는 건 농가 몫이지만 노력만으로 안 되는 부분은 지원해야 한다. 한돈산업은 가치 있는 농업 분야의 하나라는 인식이 부족하다.한돈농가는 지금 돼지고기 수입 증가와 생산비 상승, 소모성 질병 창궐, 환경적 요인 등 겹겹의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한돈산업의 지속 발전과 육성, 후계 한돈인 및 청년한돈인 우대 지원 등이 절실하다. 국회도 지역구에 축산 농가를 둔 일부 의원을 빼고는 축산업의 육성·발전에 손을 놓다시피 한다. 준비만 하다가 2년을 허송하고 차기 국회를 기약해야 하는 한돈육성법은 제정이 시급하다. 국내산 돼지고기 판매 총력전이 3월 3일에만 반짝 해서는 안 된다. 멀리 내다보는 안목으로 축산의 지속성장과 한돈산업 안정화에 힘쓰길 당부한다.

2024-03-03 14:36 사설 기자

[사설] 홍해 사태로 중국과의 EU 점유율 격차 벌어지나

한국은 교역의 99%를 해운에 의존한다. 그리고 전체 무역 물동량의 16%는 홍해를 통과한다. 무역 의존도 75%인 한국 경제에서 홍해가 친(親)이란 예멘 후티 반군 때문에 막히는 건 유럽 수출 차질을 의미한다. 운송 기간 연장과 천정부지의 운송비로 인해 국내 기업들은 전례 없는 위기 상황을 맞는다. 신경 쓰이는 것 하나는 유럽연합(EU) 시장에서 벌어질 중국과의 점유율 격차다. 홍해 예멘 사태에 관한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보고서에 나온 그대로다. 사태를 방관하면 전반적인 수출 경쟁력, 유럽시장에서 중국을 대신한 공급망 허브의 잠재력에 대한 우호적인 환경마저 위축시킨다. 지난해 중국의 EU 수입시장 점유율은 7.91%로 1.13%인 우리의 약 7배다.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중국 셈법에 말려들면 격차는 커질 수밖에 없다. 중국도 수출기업 타격은 있지만 내륙 운송로 확보가 가능한 점에서도 우리와 다르다.국제통화기금(IMF)은 운송비 50% 증가가 4분기 내에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0.2%포인트 상승시킨다고 봤다. 올해 1~2월 글로벌 컨테이너선 운임은 전년 동기 대비 2배 내외로 급등했다. 2월 EU 해상운임은 넉 달 전보다 250.1%나 치솟았다. 해상운송 의존도가 높은 품목에 대해서는 철도와 항공 또는 해운과 항공을 연계한 운송 등 다각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 세계 10대 컨테이너 선사 다수가 홍해 항로에서 완전 또는 대부분 철수했다. 중국은 이란 설득 등 ‘중대한 지렛대’ 역할을 시도하지 않은 채 홍해를 통과하기도 한다.후티 반군은 심지어 중국에 안전한 항로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홍해 사태 민감도 면에서 우리와 중국은 같지 않다. 홍해 문제 해결에 최소 6개월에서 최대 1년이 걸린다고 보고 잘 대처해야 한다.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하는 니어쇼어링 형태의 대안이 있지만 신중할 필요는 있다. 수출 길목과 원유 동맥이 끊겨 운송비 인상과 선박 부족 현상이 최소 3분기까지는 지속된다고 볼 때 점유율 경쟁에서 중국과 격차가 더 벌어지면 만회하기 힘들어진다. 수출 거래선 유지와 수출 거래선 다변화가 동시에 필요해 보인다.우리도 좀 전략적이어야 한다. 아울러 EU의 아시아 밖 지역으로의 수입선 다변화에도 촉각을 세우며 다양한 변수에 선제 대응해야 할 처지다. 한국 원유 수입의 72%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도 위험하다. 물류사태에 직면한 국내 피해기업을 돕기 위한 긴급 지원이 절실하다. 중국이 공급망 차질화의 틈을 노리고 있다. 홍해발 물류 공급망 위기가 별다른 영향 없다고 큰소리칠 때는 지났다.

2024-02-28 14:01 사설 기자

[사설] 군사보호구역 해제, 투기 자극 안 할 수 있겠나

부동산을 안정적인 투자 수단으로 보는 믿음이 강할 때 투기가 유발된다. 대중심리의 비합리성에 정책 부작용이 첨가되면 투기 심리는 붙이 붙는다. 기우이길 바라지만 여의도 면적 117배의 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를 보는 시각에는 걱정이 앞선다. 며칠 전(21일)의 그린벨트 ‘837배’보다 체감 강도가 세다. 2007년 관련법(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 시행 이래 최대 규모여서만은 아닐 것이다. 정치권의 한심스러움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대규모 보호구역 해제를 보고도 4·10 총선에 미칠 득실에만 관심이 쏠린 듯하다. 안보에 지장을 안 주는 범위라 하지만 6년 전 여의도 116배에 달하는 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 때와 비교된다. 김포·연천·고양이 포함됐던 그때는 북한 김정은 위원장 연내 답방안이 나올 정도로 남북관계 완화라는 대의명분적인 면이라도 있었다.국민권익 증진도 물론 명분은 된다. 군사적 목적과의 합리적 절충안을 찾는 걸 나쁘게만 해석할 수는 없다. 성남비행장(서울공항) 등 공군 비행장 주변의 보호구역을 필요 최소 범위로 줄여도 되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재산권 행사의 빗장을 과감히 풀면 시장 변화로 땅 투기 세력들이 활갯짓하는 경우는 숱하게 보아왔다. 고도 제한이 풀리는 지점 대부분이 군 비행장 주변이면 안전성과 소음 문제도 비중 있게 검토하는 게 사리에 맞다.땅값은 작년 3월 이후 11개월째 상승 중이다. 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로 땅값이 들썩거리지 않을 수 없다. 다른 곳 아닌 서울 강남 3구·수도권 금싸라기 땅도 들어 있다. 대치동과 개포동, 일원동, 잠실동, 삼전동, 송파동 등 땅값 비싼 동네들이 줄줄이 이름을 올렸다. 분당 등 성남 일대와 하남·과천·평택까지 뻗친다. 억눌린 개발 압력이 커지고 부동산 가격을 자극할 건 불문가지다. 고금리와 공사비 급등, 금융시장 불안으로 그럴 여지가 적다고 한다면 좀 짧은 시각이다. 군사보호구역 해제지역 등에 합동조사반을 투입했던 과거 전례를 짚어보면 투기우려지역으로 간주해야 오히려 옳다.지방에서는 기존 물량도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의 해제가능총량을 분석해보면 수도권조차도 풀어 쓸 땅이 아직 남아 있다. 1년 정도 검토하고 조정했다고 하나 총선용 ‘도돌이표 정책’이란 인상은 지워지지 않는다. 시장이 규제를 이긴 것이 대한민국 부동산 역사였다. 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 이후 가격이 폭발하는 투기 시장이 전개될 수도 있다. 난개발이나 부동산 투기 등 후유증을 잘 관리할 능력이 정부에 있는지부터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2024-02-27 14:05 사설 기자

[사설] 이 정도 ‘기업 밸류업’으로 증시 저평가 해소되나

26일 발표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증권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기에는 너무 원론적이다. 최대 관심사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 방안이 실제 저PBR(주가순자산비율) 업종 주가에 미칠 영향이다. 도입 예고 이후 증시에서 발견된 긍정적 조짐이 지속돼 가치 제고가 이뤄지길 기대하지만 너무 만성적이라는 게 걸림돌이다. 만년 저평가의 늪은 크고 깊다. 여기서 건져낼 기업가치 제고 계획이 주주환원 정책에 비중을 두는 등 주식공급자의 특성에 치중하고 있다. 틀린 처방은 아니지만 단기투자에 치중하면서 펀더멘털에 입각해 투자하는 주식수요자(투자자) 측면이 경시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주주의식 부족,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관계 불일치는 무시할 수 없는 ‘늪’의 일부분이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함께 저평가 이면의 구조적 저성장과 기업실적 부진 요인을 같이 봐야 한다. 자본주의의 꽃인 증시에 대한 시장 기대치는 어느 일방으로 단순하지는 않다.높은 위험 프리미엄 해소에 기업의 자발성에 기초한 가치 제고는 당연히 중요하다. 낮은 주주환원율이 디스카운트의 핵심 요인임은 부인할 수 없다. 성장 가능성에다 자산가치가 확실하고 주주환원 여력을 갖추면 관심을 받기 마련이다. PBR 1배 미만인 기업들의 가치를 끌어올리려면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다. 상장기업 해외 투자설명회(IR) 기회를 부여하는 등 우리가 소홀했던 부분도 많다.기업가치만큼 주가를 유지해야 증시에서는 일단 좋은 기업이다. 그런데 국내 증시 저평가는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면서 재부각됐다. 기업 저평가를 단번에 해결할 처방은 존재하지 않는다. 배당과 자사주 소각과 같은 주주환원 정책으로 자기자본이익률(return on equity, ROE)을 높이는 것은 경영권 위협 요소가 되는 양면성이 있다. 상장사 배당여력을 넘어 무리해서는 안 된다. 기업이 창출할 미래 기대이익이 가격에 잘 반영되지 않은 상태로 거래되는 부분까지 들춰봐야 바른 답이 나온다. 비슷한 다른 국가들과 신흥개발도상국 유사기업에 비교해서도 제대로 못 평가받는 우리 기업 가치다. 기업 밸류업 지원 방안은 여기에 좀 미흡했다.기업 구조는 개선하고 향상해야 할 대상이다. 그렇다고 ‘기업 지배구조 디스카운트론(論)’에만 매달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이 프로그램을 모방한 일본과 달리 자본시장 구조변화에 대응할 방어수단이 많지 않아서다. 밸류업 프로그램 취지는 좋으나 과도한 눈높이는 조정해야 할 것 같다. 한국 증시를 키울 마지막 기회처럼 생각하고 후속 입법 등 구체성 보완에 나설 차례다.

2024-02-26 14:11 사설 기자

[사설] 게임업계 ‘대표 IP’ 분쟁 뚫고 성장 씨앗 뿌리길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국내 게임 업체들이 지식재산권(IP)을 둘러싼 법적 공방으로 몸살을 앓는다. 지난해의 영업이익률 추락을 생각하면 사실은 효율성과 생산성 등 체질 개선에 나설 시간이다. 장르와 변화 과정에 최적의 적응을 해야 할 게임산업이다. 소모적 분쟁으로 성장 가능성 높은 게임사들의 도전 의지를 꺾지 않는 결과가 나오길 기대한다. 강력한 IP 파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게임 지식재산권의 국내외 영향력 확대와 신작, 신사업은 생존력을 갈라놓는다. 불황의 돌파구도 여기에 있다. 리니지 라이크(like·같은) 게임을 둘러싼 표절, 특히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의 장르적 유사성과 핵심시스템 모방에 대한 대응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 IP 보호를 위한 실력행사는 새로 출시될 게임에 대한 경고성도 내재된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법정 공방은 빈발할 테지만 게임업계의 신경전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다.게임 콘셉트나 주요 콘텐츠, 아트, 사용자 인터페이스, 연출의 아이디어와 표현 모방이 허용되는지의 기준은 어차피 정립해야 한다. 이와 함께 중국 게임사들의 배짱 영업 차단책도 시급하다. 명나라 의상인 한푸(漢服)라는 억지 주장에 한국 서버를 일방적으로 폐쇄하는 먹튀 운영 사례는 실로 불유쾌한 기억이다. 국내 대리인 제도 도입만으로 규제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없다. 실효성을 갖춰야 한다. 한국 지사를 둔 중국 게임사의 페이퍼컴퍼니 의혹도 있다. 게임 이용자 권익 향상을 위한 생태계 조성이 취약하다는 얘기일 것이다.불법 콘텐츠에 대응하는 전략도 가다듬어야 한다. 현행 게임법상 경품 관련 제도가 너무 엄격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e스포츠 활성화와 연계된 입법 조치도 필요하다. 시장 현실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등급 분류, 플랫폼 자율규제나 사후규제 기조와 별도로 저작권 보호에 힘써야 한다. K-콘텐츠 위상이 높아질수록 대표 지식재산권 침해 문제는 심각해질 것이다. 비온 뒤에 땅이 단단히 굳듯이 우리 게임업계가 더 강해지는 경쟁력 강화와 성과 극대화를 위한 성장의 씨앗을 뿌려 움틔워야 한다.분쟁과 소송 상황이 조기에 종식되기 바라지만 이번 기회에 지식재산권 표절과 유출에 대한 전반적인 기준이 마련되면 좋겠다. 콘텐츠나 이용자 인터페이스(UI) 등 게임을 이루는 요소가 고유한 창작물인지, 동일 장르에서 통상 쓰이는 것인지, 또 게임의 시스템이나 문법의 모방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가리는 일은 중요하다. 분쟁에 휘말려 리스크를 최소화할 우수 IP 확보에 소홀해지는 일도 당연히 없어야 한다.

2024-02-25 14:04 사설 기자

[사설] 비수도권 그린벨트 해제, 난개발 없어야 좋은 정책이다

20년 만의 최고 수준인 비수도권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 소식에 부산·울산·창원·대전·대구·광주 등 6개 권역과 그 주변이 들썩인다. 향후 계획에 따라 구체적인 윤곽이 잡히겠지만 규모 면에서 여의도 면적의 837배(2429㎢)일 정도로 방대하다. 대거 해제에 따른 수혜 기대만큼 부작용 우려도 비례한다. 이때 꼭 따라다니는 2종 세트가 부동산 투기와 난개발 차단이다. 두고두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숙제로 삼는 수밖에 없다. 규제 혁신 차원에서 접근하면 정부 조치는 합리적이다. 지역 주도의 지역전략산업이 해제 총량에 묶인다든지 절대농지라 하여 농사 이외 목적에 못 쓰게 하는 등의 규제를 푸는 방안이 특히 그렇다. 해제총량 예외 인정의 폭을 넓히는 방향 역시 옳다. 대체부지 지정 조건이 붙었긴 하나 환경평가 1·2등급지까지 포함된다. 지역 산업 경쟁력을 키우고 지방소멸에 대응하겠다는 기조 자체는 나무랄 데 없다. 수도권 쏠림을 완화하고 국토균형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실리도 물론 챙겨야 한다. 성공의 키는 토지 이용 규제를 풀고 산업용지 조성을 촉진해 지역경제를 살린다는 취지에 얼마나 충실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전체를 보는 시각도 필요하다. 지역전략산업을 키우더라도 특정구역만 발전하고 원도심은 더 침체하는 결과를 야기하진 않아야 할 것이다. 지역경제만이 아닌 국가 경제·산업에 미칠 영향까지 균형 있게 살펴야 한다.투자가 일어나게 ‘혁신’한다고 해도 우려가 없는 건 아니다. 잠재적 호재건 심리적 호재건 실질적 또는 제한적 가치 상승을 기대하는 수요가 있으면 개발지 인근의 토지 가격은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부동산 투기 소지를 차단하면서 개발이익의 공공환수 방안까지 생각해둬야 한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김대중 정부 때의 7대 중소도시권 그린벨트 전면 해제와 같은 전례들까지 잘 찾아보기 바란다.지방경제를 활성화함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현안이다. 다만 그린벨트 제도의 목적인 무절제한 도시 팽창을 막고 주변 녹지 환경을 보전하는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 편하게 쓸 것, 미래세대를 보고 갈무리해둘 것은 구분해야 한다. 환경적 보전 가치가 높은 1·2등급지 규제를 없애다 보니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그린벨트 해제 및 토지이용규제 완화가 생태·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국토를 포기하는 조치일 수는 없다. 현실적 수요에 부응하면서도 중앙·지방정부의 철저한 기준이 필요하다. 활용 못지않게 투기와 난개발 억제는 내년쯤 해제 지역이 구체화되고 사업이 시작되기 전 구비해야 할 새로운 기준이다.

2024-02-22 15:14 사설 기자

[사설] ‘메타버스 진흥법’, 메타버스 얼마나 진흥할 수 있나

거센 바람처럼 휘몰아칠 듯하던 메타버스(Metaverse) 산업 발전이 시들해 보이는 이유가 있다. 전도유망함에 비해 신산업으로 만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가상공간과 현실공간이 상호작용하는 혁신기술 연결의 흐름은 완만했다. 그래도 각 부문 활용도가 급증한 것은 사실이다. 경제활동 영역을 확장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서비스로서는 가치와 기대를 못 키운 게 한계였다. 초현실 가상세계를 다루는 기술 동향쯤으로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데도 문제는 있었다. 메타버스 시장은 이미 글로벌 유망 산업이다. 지난해 957억달러에서 2030년 1조5000억달러가 된다는 규모 전망에도 잘 나타난다. 사실상 전 산업이 메타버스와 융합해 경제·사회·문화적 가치를 만드는 새로운 전제에서 재출발해야 한다. 디지털 기반 기술 자체에 대한 집중에서 다른 기술과의 융합 쪽으로도 고개를 더 돌려야 할 것이다. ‘메타버스’만 붙이면 투자하는 시대는 벌써 지나갔다.시장 관심도 하락으로 사업에서 철수하는 기업도 늘었다. 챗GPT 출시 이후 생성형 AI 분야가 메타버스 열풍을 식힌 측면은 있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인기만 믿고 애물단지를 만든 예가 한둘 아니다. 진주성 메타버스에 하루 1명꼴로 접속했다는 것이 가까운 예다. 메타버스 선도국이 되려면 공공부문이 솔선해야 하지만 뒷감당 못할 걸 무작정 시도하라는 뜻은 아니다. 민간의 다양한 사업에 융합하는 정책 지원도 콘텐츠가 실하지 않으면 한낱 예산 소모다. 메타버스 산업 육성 정책과는 거리가 있다.왜 ‘디지털 신대륙’이겠는가. 메타버스는 산업이 형성되는 초기 단계다. 관련 산업 육성을 위한 과제 발굴과 혁신 발전을 위한 행동계획이 요구된다. 메타버스 서비스는 전시장에 가야 제대로 경험할 수 있다. 설득력 있는 활용 사례를 만들려면 기민한 대응에 미숙해서는 안 된다. 국회 발의 후 2년이 걸린 메타버스 진흥법안은 법안명 논의나 하다가 1년 다 되도록 심사를 멈춘 일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올 8월 말 시행된다. 법적 환경 조성의 첫걸음을 뗐을 뿐 아닌가.국가 차원의 체계적 정책 추진 기반 마련, 투자와 인력 개발 없이 우물쭈물해선 안 된다. 전 세계 GDP의 1.8%라는 고성장이 예고되지만 지금은 투자 대비 수익성이 낮다. 신사업적인 가치와 기대가 움츠러들어 있다. 메타버스 진흥의 추진 체계, 기술·서비스 개발과 사업화, 선제적 규제 혁신, 건전한 생태계 등 과제가 쌓여 있다. ‘어떻게’에 소홀하면 ‘세계 최초’라는 메타버스 진흥법 통과 의미는 언제든 퇴색할 수 있다.

2024-02-21 14:35 사설 기자

[사설] 전공의 집단행동 멈추고 의료 현장 지켜야

전공의(인턴·레지던트) 없는 의료대란이 20일을 기점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정부가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000명 증원하겠다고 발표한 지 2주 만이다. 의료 현장 핵심인력인 ‘빅5 병원’ 전공의들의 근무 중단이 의료 공백의 치명적 시발점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의료 현실과 환자를 우선하는 마음에서 개업의와 전공의의 자중자애를 촉구한다. 긴급회의에서 동맹휴학을 결의한 의대생들도 부화뇌동은 안 된다. 국민 다수가 공감하듯이 의대 증원을 저지하기 위한 의료 파행의 명분은 크지 않다. 집단이기심의 발로라고 보기 때문이다. 환자의 불편과 생명 위협에 대한 책임과 맞바꾼 집단사직, 집단행동이 전국으로 확산하지 않아야 한다. 진료를 거부한 전공의 개인에 내려진 업무개시명령, 수련병원에 내려진 집단사직서 수리 금지 및 필수의료 유지 명령, 또 의사단체에 내려진 집단행동 및 집단행동 교사 금지 명령은 반드시 준수돼야 할 것이다. 파업을 지금 멈추고 의료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직역이기주의나 특권의식에 물든 한낱 시위밖에는 안 된다.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 현장을 떠나지 않는 것은 의사로서 으뜸가는 직업윤리다. 설령 필수의료 패키지, 지역의료 격차 해소안이 불완전하다고 해도 증원을 폐기한 채 대화할 수는 없다. 4년 전 문재인 정부 의료대란 때의 의대 증원 등 동일한 이슈를 무산시킨 경험이나 효능감을 과신하지 않길 바란다. 코로나19 사태의 긴박성을 등에 업고 집단행동 사태가 일단락된 2년 전과는 국민도 달라졌다. 3058명에 묶인 의과대학 정원을 푼다고 벌이는 집단행동은 지지받기 힘들다. 정부가 설득에 나서 ‘강대강’ 대치를 막아야 할 또다른 이유다. 의료계의 집단행동에 두 손 든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다.우린 ‘의사 공급 부족국가’다. 의대 증원은 필수의료 보강, 지역 간 불균형 해소, 폭넓은 보건의료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불가결하다. 정부는 전체 수련병원 전공의를 대상으로 한 진료유지명령을 잘 지켜야 한다. 밥그릇 크기를 염려하는 잘못된 집단 대응은 성공하지 못한다는 전례를 만들 때다.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가동되는 비상진료체계가 버틸 기간은 2~3주 정도로 보고 있다.대체인력을 투입해도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이내 한계에 다다른다. 가슴 졸이는 환자와 가족의 얼굴,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하는 ‘민심’을 거스르지 않아야 할 것이다. 환자 곁에서 본분을 다하지 않고 지킬 명분과 실리가 얼마나 있겠는가. 국민 건강권과 눈높이에서 이번 사태를 조기에 매듭짓는 것 외의 선택지는 없다.

2024-02-20 14:03 사설 기자

[사설] 불안한 전세시장, 주거 사다리 흔들리면 안 된다

전세사기 여진에 전셋값 오름세로 임대차 시장이 불안하다. 전셋값 하락세가 주춤하면서 매매 시장 연착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는 이전 전망은 수정해야 할 듯하다. 전세 매물 부족과 매수심리 약화로 전세 수요가 늘어난 데다 다음달 개학까지 앞두고 있다. 봄 이사철이 겹쳐 서울 아파트 전셋값 오름세는 완연하다. 임차인의 주거비 부담이 우려된다. 신혼부부 등 새롭게 전셋집을 구해야 하는 수요자들의 고충은 말할 것도 없다. 전셋값 상승세의 바탕에는 신축 입주 물량이 지난해보다 절반 이상 줄어든 매물의 절대 부족이 크게 자리한다. 매매시장 불확실성으로 매수대기자가 전세수요로 전환한 것, 전세사기와 역전세난으로 빌라(다세대·연립) 수요가 줄며 빌라 공급이 급감한 것도 가세했다. 월세 시장까지 불안해진다. 전세난으로 인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고려한 전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일부에는 역전세 우려도 남아 있다. 부산, 대구, 대전, 울산 등 지역별 온도차는 있으나 전세가 흔들리지 않아야 할 주거 사다리인 점은 같다. 유명 학군지나 학원가, 역세권 등 쏠림 현상 있는 선호 단지와 결이 다를 수는 있다.속성상 가수요가 반영되지 않는 전셋값의 강세 장기화는 주거 상황 악화를 의미한다. 서울의 아파트 신축 입주 물량은 예년 입주 물량이 3만~5만 가구라는 측면에서 거의 ‘실종’ 상태로 보면 된다. 도입 4년차를 맞는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이 전셋값 상승의 기폭제가 되지 않을지도 살필 일이다. 언제든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갱신계약해지권에는 조심할 부분이 있다. 시장에 뿌리내려도 걱정, 안 내려도 걱정인 양날의 검이다. 부작용을 빚는 조항부터라도 우선 손질해야 한다. 2020년과 같은 전세대란 내지 입주절벽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전문가의 전망을 빌리지 않더라도 3월 이후 전세 비수기가 되면 전셋값 강세가 다소 완화될 수는 있다. 경계할 것은 매매시장의 불확실성이다. 이로 인해 전셋값이 급등한 전례가 재연되지 않아야 한다. 집값 하락 전망이 우세하면 주택 수요자들이 전세 쪽으로 발길을 돌릴 것이다. 전세가가 더 뛰면 매매 수요 증가로 집값을 자극할 요인으로도 잠재한다.올봄, 눈앞의 전세시장만이 아니다. 좀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건설시장 위축과 입주 물량 감소, 공사비 인상 등의 여파로 전셋값 상승세가 오래 끌 수 있다고 보고 대비해야 한다.곧 현재가 될 미래다. 아파트 인허가 급감의 효과가 가시화하는 내년~내후년 전세난까지 미리 내다보고 대처해야 정책적으로 옳다.

2024-02-19 14:44 사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