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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설] 세컨드 홈 정책, 실효성 확보 쉽지 않다

비(非)인구감소지역 1주택자가 인구감소지역 주택 1채를 취득해도 1주택 특례를 적용하는 것이 정부가 내놓은 인구감소지역 부활 3종 프로젝트다. 4억 원 이하의 두 번째 집(세컨드 홈)을 사면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 재산세 등의 세제 특례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월 1회, 하루 3시간 이상 체류하는 생활인구 유입에 방점이 찍힌 것이 특징이다. 특례 대상 지역은 ‘최대한’이라 해도 될 만큼 범위가 넓다. 인구감소지역 89곳 중 부산 동구·서구·영도구와 대구 남구·서구, 경기 가평군을 제외한 83곳이 해당된다. 지정 요건과 절차를 간소화한 소규모 관광단지 등 관광산업과 연계할 계획도 들어 있다. 다만 불균형을 해소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는 정책 목표를 모두 담기엔 좀 거대해 보인다. 다주택자 딱지를 안 붙여 지방 경제의 숨통을 트려는 시도에 머무르면 안 되는 이유다.단순 도식으로는 생활인구로 지역경제를 살리고 또 정주인구로 전환한다는 밑그림이 그려진다. 인구 개념이 아니라도 반영구적 주민 유지는 될 테지만 아직은 가능성의 차원이다. 소비 인구 유입이 불안정하고 농촌 지역경제와의 융합은 순조롭지 않을 수 있다. 인구에 기인한 문제를 ‘머무르고 싶은 지역’과 같은 추상적인 슬로건으로는 해결이 잘 안 된다. 우리가 익히 경험한 사실이다. 재정적으로 여유 있는 중년층 네트워크 형성으로 지역 커뮤니티 쇠퇴를 막고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는 것을 포함해 지방소멸의 대안으로 자리하려면 갈 길이 멀어 보인다.이 프로젝트는 달리 설명하면 지방에 별장을 갖게 하겠다는 것과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한시적·계절적인 사용 특성에 따른 세컨드 홈의 부정적 영향에도 주목해야 한다.안전과 교통, 의료시설, 상하수도, 공공서비스 등 지역 인프라가 채워져야 하는 문제도 있다. 출생률 등 근본적인 대안과도 연결성을 갖는다. 생활인구, 방문인구는 물론 지역 산업인력과 정주인구가 확대되는 것이 결국은 중요하다.인구 유입과 지역 부동산이라는 두 마리 토끼 중 주택시장 부양 효과만 있어서는 안 된다. 투기 수요 방지 차원도 생각해둬야 한다. 수도권에 몰린 인구를 인구감소지역으로 분산하겠다지만 83곳의 수요가 고르지 않고 일부 지역에 편중될 수 있다.입법과 정책이 세밀하게 뒷받침돼야 정책 실효성이 확보된다. 무주택자가 많은 현실에서 야당이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등의 입법에 협조할지 여부까지 주요 대응 포인트다.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의 인구 유입 촉진을 위한 이 정책도 총선 후폭풍을 비켜가기 어렵게 됐다.

2024-04-16 14:47 사설 기자

[사설] 커지는 중동 리스크… 공급망·유가 선제 대응해야

이란의 이스라엘 본토 공격을 앞둔 시점부터 국제유가는 6개월 만의 최고치로 치솟았다. 공습 이후, 이번 주 초반을 오일쇼크 공포가 글로벌 경제를 덮치고 있다. 시리아 내 이란 영사관 공격에 대한 보복의 악순환 속에서 국제유가 배럴당 100달러는 초읽기에 들어갔다. 유가나 환율은 경제를 직격한다. 글로벌 경제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졌다고 보고 대처해야 하겠다. 기업과 경제에 영향이 제한적이길 바란다. 하지만 중동 전역이 전쟁에 휘말릴지 여부는 우리 희망대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가장 경계해야 할 변수가 있다. 유가 상승과 공급망 불안이 겹치는 경우다. 원유의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 수출을 넘어 국내 산업 전반은 가시적 타격권에 들어간다. 원유 생산량 면에서 이란은 석유수출국기구(OPEC) 세 번째다. 전 세계 원유 생산의 3분의 1을 중동이 떠맡는다. 재보복과 응징을 자제하지 않으면 올해 1월 미국과 후티 반군의 군사충돌로 비상이 걸렸을 당시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 전개된다. 이스라엘 대응 수위에 따라 물류 운송망 차질 및 비용 증가 그 이상의 호된 된서리가 기다린다고 보면 된다.이란이 이스라엘 본토를 직접 공격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중동 리스크에서 다시 보듯이 글로벌 안보와 경제는 두 개의 수레바퀴다. 유가 상승은 무엇보다 인플레이션 요인이다. 그리고 원자재발(發) 물가급등을 부른다. 기준금리 인하는 뒤로 밀릴 수 있다. 미국의 유가 방어력은 예전 같지 않다. 국내 금융과 외환 시장에 미칠 변동성에 잘 대응해야 한다.글로벌 정치·경제 환경의 복잡성에 휩쓸리는 대로 국익을 내맡길 순 없다. 한편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쿠웨이트, 오만,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등 걸프협력회의(GCC)와의 자유무역협정 체결 속도가 늦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모든 쟁점 사항을 준비해둘 필요가 있다.여야 각당은 총선 성적표를 내려놓고 승패를 떠나 글로벌 경제 환경과 물가, 금리, 환율 등 민생 3중고에 눈을 돌릴 때다. 정부 비상 대응반에 힘을 실어주면서 국정 운영 공백에서 탈피해야 한다.국내 내수 경기는 구조적 리스크가 겹쳐 회복 여부가 불투명하다. 금융시장 충격 가능성마저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제5차 중동전쟁 확전과 1973년 오일 쇼크 같은 상황 전개일 것이다. 경제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공급망과 유가에 선제 대응해야 한다.커진 중동 위기 앞에서 수출·경제·물가 모두 비상사태다. 식품물가 안정에 대해서는 특히 가능한 정책 수단을 총동원해야 할 것이다.

2024-04-15 14:17 사설 기자

[사설] 총선 끝났다고 ‘밸류업’ 프로그램 흔들려서야

제22대 총선 여파로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등 증시 부양정책이 흔들린다. 강화된 여소야대 구도가 형성되자 밸류업·저PBR(주가순자산비율)주부터 김이 빠진 분위기다. 금융당국도 부산하다. 15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국내 주요 대기업 CEO를 대상으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나선다. 행동주의 펀드들까지 만날 계획이라 한다. 약화된 밸류업 동력을 어떻게 살릴지 부담이 더해진다. 밸류업 프로그램 관련 주주 입장에서 주된 관심사는 저PBR 테마와 배당이다. 안 그래도 밸류업 발표에 주식 시장은 미지근한 편이었다. 저평가 해소 의지 표명 말고는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들었다. 그래서 총선 이후가 더 걱정이다. 실효성 면에서는 법 개정이 필수인 법인세나 배당소득세를 완화해야 청신호로 바뀐다. PBR 운운하기조차 부끄러운 금융주 등 주요 밸류업 수혜주를 비롯해 국내 증시의 변동성을 키우지 않을 방도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여의도가 관심 갖지 않으면 관료의 움직임이 느려진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기존 발표 프로그램에는 보완할 점이 있었다. 기업의 주식 가치가 순자산에 비해 몇 배에 거래되는지를 나타내는 PBR, 그리고 ROE(주가수익비율) 등 주요 지표 공시를 기업 자율에 맡긴 것도 그렇다. 투명성만 있고 상장사의 실적과 성장성이 없다면 그런 자율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지금 보는 것이 기업 자율의 결과 아닌가. 11일 이후 대형 투자자들의 얼어붙은 분위기가 단기적 영향이고 밸류업이 중장기적으로 유효할지라도 당국이 깜짝 대책을 쏟아낼 힘은 일단 소진된 상태다. 필요 이상의 걱정은 떨쳐버리고 초당파적 합의로 추진력을 얻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밸류업=상속세 폐지’란 공식과 함께 지배구조 개선 논의도 피해갈 수는 없다.실질적 세제 혜택 없이는 자발적인 참여 유도에 한계가 있다. 정책적 신뢰나 실효성은 말할 것이 없다. PBR만이 아니라 PER(주가수익비율), ROE, 배당성향, 현금흐름 전체를 고려한 코리아 밸류업 지수도 필요하다. 다음달 밸류업 가이드라인 발표 전까지 기업 요구사항을 잘 수렴해봐야 한다. 증시 부양정책이 힘받기 어려운 정치지형 변화를 중시하는 투자자들은 국회의 지지에 민감하게 대응한다. 여소야대 결과가 다시 나온 직후인 만큼 주가 하방 압력 차단에 중요한 건 야당의 동조와 협조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현상) 해소를 위한 프로그램이 급제동을 받거나 좌초되지 않길 바란다. 여야를 떠나 1400만명에 이르는 개인투자자도 바라봐야 한다.

2024-04-14 13:40 사설 기자

[사설] 여당 총선 완패로 갈 곳 잃은 부동산 정책

개헌 저지선(101석) 초과 의석에 만족할 지경인 집권여당 총선 참패로 국정기조와 정책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여야 모두 당 내부 조율이 안 된 공수표 같은 공약은 어차피 거론할 가치조차 없다. 하지만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하는 정책은 폐기하거나 대폭 수정할 운명에 처했다. 부동산 분야의 전방위적 규제 완화 약속은 상당 부분 접고 가야 한다. 규제가 아닌 지원 모드로 바꾸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약속은 갈 곳을 잃었다. 정책적 혼선이나 시장 혼란이 심히 우려스럽다. 아무리 빼어난 부동산 규제 완화안도 입법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현실성 제로’가 된다. 부동산 관련 세금 등 주요 정책을 더불어민주당이 쉽게 동의해주길 기대할 수는 없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등 주요 정책들은 목련이 필 때, 하고 싶을 때 하는 일이 아니다. 공시가격 정상화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서민 주거 안정을 오히려 저해하는 임대차법의 기본 틀도 유지된다. 1·10 부동산 대책에서 법·시행령 개정이 필수인 세부 추진 과제가 46개나 된다. 역시 관건은 법 개정 사안이다.기본적으로 총선 후 부동산 시장에서 큰 변동은 보기 힘들 것 같다. 입법에 막힌 규제 완화 한계는 이전과 다름이 없다. 비슷한 구도 같으면서 민주당이 세졌고 과격한 조국혁신당이 현실정치 무대에 섰다. 민생고를 고리로 심판론을 불붙인 22대 총선이 냉엄한 중간평가인 것은 맞다. 하지만 건축 규제와 세금, 대출 제한 등의 부동산 문턱을 완만하게 낮추는 데 무조건 반대만 하는 것 또한 압도적 단독 과반이 된 제1당의 덕목은 아니다.여당도 국정기조를 전환해야 하지만 현 정부 추진 정책과 관련해서는 민주당도 참회록을 써야 할 대목이 있다. 각도를 달리하면 문재인 정부 때의 집값 급등에 따른 규제 빗장을 풀고 시장 정상화를 하겠다는 것이다. 건설 수주, 인·허가, 착공과 분양 등 건설투자 선행지표까지 좋지 않다. 건설경기 회복을 위해 내놓은 대책들에도 전향적이고 유연한 자세를 가졌으면 한다.중장기적으로 입주 물량 급감은 집값과 전셋값 급등으로 귀결된다. 세제 개편안은 0순위에 올려 추진해야 한다. 공정시장가액 비율이니 양도세 중과 유예니 하며 변죽만 울릴 수는 없다. 22대 국회에서 야당이 또 입법권을 움켜쥐고 직권상정 권한 있는 국회의장 자리를 꿰찬 지형은 국민이 만들었다. 바로 그 국민을 진정 섬기는 정치를 해야 한다. 민감한 시장을 생각해서도 부동산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2024-04-11 14:06 사설 기자

[사설] 의대 ‘집단 유급’ 사태 피하는 일도 급하다

경제적·사회적인 과제를 잔뜩 쌓아두고 열전 레이스의 막이 내렸다. 모든 정책과 이슈를 압도하면서 야당심판론과 격렬하게 충돌한 정권심판론, 그 구성 요소 하나에 의정 갈등이 있다. 의대성 휴학 사태는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하며 부수된 집단행동이지만 이 또한 선후를 다툴 수 없는 중대 현안이 됐다. 의대생들의 휴학과 수업 거부는 한시바삐 끝내야 한다. 전국 의대 40곳 중 현재 수업을 재개한 곳이 많다. 지난달부터 시작한 곳도 있고, 나머지 대학도 이달 중 수업을 재개한다. 4월 중순이 지나면 1학기 학사일정을 제대로 소화하기 힘든 상황에서 의대생 복귀 움직임이 미미해 우려스럽다. 정부와 의대 교수들의 설득 노력이 절실하다. 수업 재개는 의대생 수업 거부의 방향을 전환하는 의미도 있다.그런데 계속 평행선만 긋는다면 수업시수를 압축해 시간표를 다시 짜고 종강일을 조정하는 등의 임시방편도 무용하게 만들 것이다. 사정에 따라 온라인 비대면 수업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온라인 강의는 수업 복귀 의향이 있는 학생에 대한 배려 성격도 있다. 다만 이 경우, 출석 인정에만 의미를 둔다면 부실 논란이 고개를 들 것이다. 다수 학생이 휴학계를 제출한 상태에서 수업거부 중인 것이 역시 큰 부담이다. 심지어 의대생 학부모 간에 유급해도 괜찮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어 더욱 문제다.달리 설명하면 유급을 충분히 감내하겠다는 의사표시가 되기 때문이다. 대면, 실시간 온라인 수업, 동영상 강의 등을 혼합해도 집단 유급 가능성은 상존한다. 법정 수업 일수를 채우려면 더 이상의 학사 일정 조정은 불가능하다. 본과 3~4학년의 실습수업 중단 또는 연기로 임상실습 등 대면 수업이 필수인 과목은 더 불안하다. 1학기 학사일정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한 백방의 노력이 아쉬운 시점이다. 자칫 잘못해 8월 시작하는 2학기 학사일정까지 차질이 생기는 일은 빚어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집단 유급 발생 시점을 늦추는 게 지금 급선무다. 이대로 가면 대량 유급 사태는 피할 수 없다. 그러면 전문의 수급에 연쇄적으로 차질이 빚어진다. 의대 정원 재조정이 있더라도 최소한 내년도 입시 모집요강 확정 전까지는 끝내야 한다. 삐거덕거리던 의료개혁을 본궤도에 올려놓는데 정부·여당은 물론 야당도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 총선은 끝났고 의료개혁의 마지노선 앞에 서 있다. 집단 유급 발생 시점을 늦추기 위한 고육책이 아닌 진짜 문제 해결이 급하다. 수업 거부 이후까지 생각하면서 의대생 복귀가 전공의 복귀의 분수령이 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2024-04-10 14:08 사설 기자

[사설] PF 쇼크 잘 막아내면 4·5월 위기설 안 나온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만기가 이달에 집중된 것이 시장에서 불거지는 ‘4월 위기설’의 진원지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문제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출 만기가 비교적 고르게 분산돼 있다는 지적이 전혀 틀리지는 않다. 그런데도 4월 대출 미상환 건설사의 줄도산 우려는 상존한다. PF 부실이 업계 전반의 도미노 현상이나 전체 실물경제 전이가 되지 않게 틀어막는 것이 지금 할 일이다. 부동산·건설 경기의 경착륙에 한시름 놓았다는 정부 진단은 일단 반갑다. 건설경기 회복과 금융 지원에 대한 의지도 상황 호전과 사업 재구조화에 도움이 된다. 8일 국토부가 관련 설명회를 개최했지만 리츠를 활용한 PF 사업 지원 방안도 위기 수습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브리지 단계 사업장은 공공지원민간임대리츠로, 미분양 주택은 기업구조조정(CR)리츠를 활용해 지원하는 방안이다.금융권에 연체율을 감내할 웬만한 체력은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지난해 말 기준 135조6000억원의 PF 대출 잔액을 보면 지구력까지 갖춰야 한다. 지역 건설사에선 하루가 멀다고 파산과 부도 소식이 들려온다. 또 다른 부도와 톱니처럼 물려 있는 지역 건설사의 취약성은 결이 다르다. 저축은행의 PF 사업장은 대부분 지방에 소재해 위기에 약하다. 급격한 충격 가능성은 줄여 관리 가능한 범위 내에 둬야 할 것이다. 만기 집중과 연체율 상승에는 ‘경제 정상화 과정’으로 단순화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브리지론으로 충당되는 PF 차입금의 만기 구조가 단기화된 점도 부실을 재촉하는 요인이 된다. 시행사의 초기 자본금이 과소한 자금 조달 구조는 서서히 바꾸면서 건설사 자체도 업황 부진에 대비해 유동성 대응력을 기를 필요가 있다. 기술적인 자기자본 강화를 유도하면서 사업성 여부를 판단하는 건설사의 자체 수주심의위원회를 내실화해야 한다. 공장, 산업단지 등 특수목적 부동산 사업장에도 브리지론이나 PF 관련 자금 지원이 아쉽다. 브리지론은 또한 본 PF로 가기 위한 튼실한 다리가 돼야 한다.리츠 활용 PF 사업 지원으로 ‘정상 사업장’을 지원해도 결국 건설경기가 회복되지 않으면 시장 불안감은 언제든 키워진다. 집값 급등기에 생긴 규제도 감기가 완치된 뒤 약을 끊듯 과단성 있게 끊어야 한다. 대출 만기가 좀 다변화돼 있고 연체율이 역사적 고점 대비로 안정적이라는 건 너무 믿을 게 못 된다. 4월 총선 이후 터진다는 일각의 위기설을 정책적으로 완전히 진화하지 못 한다면 다시 5월 위기설로 발화될 수밖에 없다.

2024-04-08 14:06 사설 기자

[사설] ‘기준금리 인하’ 되든 안 되든 불안 요인 대처해야

현재 연 3.50%인 국내 기준금리 조정 여부와 관련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이목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연준 간부들이 정책금리(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면서다. ‘필요할 경우’라거나 ‘가능성이 크지는 않지만’ 인상 가능하다는 식이다. 그렇지만 인하 시점이 아니라거나 연내 인하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도 팽팽하다. 지난 3월 베이비스텝을 밟으면서 연내 기준금리 인하는 없다고 공언하던 때와는 분위기가 약간 달라졌다고 이해하고 대처하면 좋을 듯싶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동결한 가운데 스위스 중앙은행 등 일부는 금리 인하를 단행하기도 했다. 우리 여건은 아직 호락호락하지 않다. 선거 국면에서 ‘대파 논란’이 보여줬지만 소비자물가 상승과 내수 위축이 4월에도 이어진다. 9회째 같은 수준에 정체 중인 금리에는 진퇴양난의 경제 사정이 담겨 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의 고민은 깊을 수밖에 없다. 물론 통화정책은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을 고려해 결정하는 것이 맞다.인하 시점을 다시 늦춰 상반기까지는 현재 금리를 유지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 이후라고 해서 인하를 기정사실화할 여건은 도래하지 않았다. 이번 주 금통위에서 만장일치를 벗어나 ‘인하 검토’ 소수의견은 나올 수 있으나 결정 자체는 ‘동결’일 것으로 관측된다. 인하 가능성을 서둘러 열기보다 금리 인하가 당분간 어려운 현실을 정확히 알리는 게 경제 상황에는 더 적절하다. 이자 비용은 늘었지만 하반기 중 금리 인하를 하더라도 1100조 원을 넘어선 가계부채 누증을 완화할 의지도 여기에 포함돼야 할 것이다. 다만 부동산 경기가 회복되지 않고 있는 점과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도입 등의 부작용은 살펴야 한다.금리 결정의 최우선 고려 사항은 물가 상승이다. 인플레이션 상방 위험까지 의식해야 한다. 국제 유가 상승과 과일값 급등세가 하향 안정되지 않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정체되면 금리 인하는 원점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 총선이 끝나면 억제된 유류세나 전기요금 등 인상 요인이 고개를 들 것이다. 경제를 연착륙시켜야 한다는 자신감이 반영된 결정을 보고 싶다.금리 인하 여부 혹은 첫 기준금리 인하 시점에 무게를 싣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정부와 통화당국이 금융시장 변동성과 대내외 위험 요인을 선제적으로 살피는 일이다. 금융시스템 안정을 지켜낼 금리의 적정선 찾기는 끝없는 숙제와 같다. 한·미 금리 차에 기인한 불안과 금리 불확실성이 안 나타난다고 방심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2024-04-07 13:31 사설 기자

[사설] 한경협이 또 강조한 ‘초격차 기술’에 답이 있다

첨단기술 경쟁은 총성 없는 전쟁이라 한다. 수사적 비유가 아닌 그대로의 현실이다. 기술패권의 전장에 참전한 우리로선 확실한 기술 우위와 기술 보호가 승전의 길이다. 4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의 글로벌 경제 현안 대응 임원협의회에서 주문한 초격차 기술 확보에 답이 있다. 연구개발(RD) 역량 증대와 개발된 기술의 보호 강화라는 정책 현안이다. 4차 산업의 쌀인 K-반도체를 실례로 들자. 선도적 지위를 유지하려는 미국은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에 혈안이다. 기술 자립을 꿈꾸며 이에 맞서는 중국의 자원 무기화도 위협이 된다. 우리 대응 수단은 자나 깨나 기술 우위 확보다. 중국에서 단기간 기술 자립이 힘든 최첨단 D램에선 역설적이지만 기술 격차가 더 절실하다. 기술 우위는 경제 측면만이 아니고 국가안보 이슈다. 차세대 ‘니어(Near) 메모리’에도 주목하면서 전략기술 지정을 확대해 과감하게 지원하자는 조언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혁신기술과 관련해서는 고전학파 경제학의 가정, 즉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Supply creates its own demand)는 ‘세(세이)의 법칙(Say’s Law)’까지 소환하는 과감성이 요구된다. 반도체 생산 기지는 지난 50년간의 석유 매장지와 다름없다. 지정학적 패권을 결정짓는다. 동시에, 이날 발제자가 거론한 지정학적 불안전성에 대한 해법이다. 그리고 첨단의 길을 가려면 협력의 차원까지 달라져야 한다. 대만, 일본, 인도 등과 핵심기술 연구·표준·보호를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중국과의 협력도 필수적이다. 미국 중심의 기술 네트워크는 결코 떠나선 안 된다.반도체 분야만 그런 것은 아니다. 전기차, 차세대 배터리, 바이오, 인공지능(AI) 등 변화의 물결 앞에서 다 그렇다. 기술 개발 못지않은 게 기술 보호다. 기업의 각성과 함께 범정부적으로 기술 무단도용이나 인재 유출에 튼실한 보호막을 쳐야 한다. 대법원이 양형기준을 징역 18년까지 상향했지만 완벽하지 않다. 기업 손해를 넘어 매국적 범죄 행위인 핵심인력의 기술 범죄를 아예 시도조차 못 하게 차단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지금은 기술 패러다임의 전환기다. 미국이 화웨이를 매섭게 공격하는 데서 보았듯이 미국 대선 결과와 무관하게 미·중 기술 전쟁은 끝까지 간다. 그렇게 보고 공급망 다변화 전략을 짜야 할 것이다. 첨단 소부장(소재·부품·장비)에서도 경제안보 증진과 첨단산업 보호 방안은 똑같이 적용된다. 새로운 가치 네트워크를 쌓는 파괴적 기술에 우리 경제 발전, 저성장과 복합위기의 효험 있는 처방전이 들어 있다.

2024-04-04 14:00 사설 기자

[사설] ‘사과 안심 프로젝트’로 과일물가 안착할까

통계로도 사과가 ‘금사과’임이 확인됐다. 정부는 사과 안심 프로젝트를 내세워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할인 지원에 역대 최대 수준을 투입하지만 사과·배 가격 상승률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3월 사과는 전년 동월 대비 88.2%, 배는 87.8% 올랐다. 각각 1980년, 1975년 통계 발표 이후 최고치다. 지금의 요지부동 고물가 사태 뒤에는 생산량 감소와 직결된 기상이변이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수급난으로도 볼 수 있다. 2%대 소비자물가 상승률,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농산물·석유류 제외)에 집착한 나머지 시간을 놓친 측면이 있다. 3월이면 과일 수급 여건이 나아진다는 기대 때문이기도 했다. 그보다 먼저, 농산물 가격이 전체 물가 안정 흐름과 정반대 양상을 보일 때 선제적으로 대비했어야 한다.지금도 마찬가지다. 햇과일이 나오면 평년 수준의 가격표를 보게 된다는 막연한 희망은 접는 게 좋다. 사과·배 등 과일물가 안정은 낙관하기 어렵다. 특단의 조치가 맥을 못 출 정도로 농산물 물가 상승 폭이 커져 있다. ‘체감할 수 있는 회복’을 위해 과일 가격이 안정세에 접어들 때까지 물가 지원을 하겠다는 의지는 평가해야 한다. 다만 인위적 방식의 물가 관리는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다. 상품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주는 게 상례인데 정부 대책이 가격 탄력성을 제한할지 모른다. 가격할인 정책이 중장기 해법이 아닌 점은 분명해 보인다.생산 측면의 대비도 필요하다. 생산성이 높은 스마트 과수원 특화단지 조성 등의 대안이 그것이다. 긴 안목으로 신규단지 육성, 내재해성 식품 보급 등 다양한 대책을 곁들여야 한다. 당장의 사과 작황 관리와 수급 불안 해소는 기본이다. 물가를 조속히 회복하려면 유통구조의 비효율도 제거해야 한다. 긴급 농축수산물 가격안정자금의 무제한 투입은 상황의 심각성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최적의 대안은 아니다. 1500억 원 규모의 긴급가격안정자금 투입이 효과 있기를 바라지만, 대형마트 중심에서 중소형 전통시장으로 적용 대상을 확산하면 정책효과가 나타난다는 믿음은 좀 순진한 물가 동향 분석이다.때가 때인 만큼 경제정책이 유권자 표심에 조준되고 물가와 민생은 정치공방으로 변질돼 있다. 총선이 끝나면 인상을 미뤘던 공공요금까지 줄줄이 오를 수 있다. 할인율 유지와 상품권 환급행사 등에 의존해 전체 상황을 정리할 수는 없다. 할인 지원으로 목표 수준에 안착해 장바구니 시름을 달래기엔 역부족이다. 근본 처방이 아닌 보여주기식 물가정책 경쟁은 끝내야 한다.

2024-04-03 13:46 사설 기자

[사설] 총선 D-7, 여야 부동산 공약 지킬 수 있겠나

제22대 총선을 일주일, 사전투표일(5~6일)을 이틀 앞두고 부동산 변수가 부상하고 있다. 후보의 부동산 리스크 이상으로 유권자 자신의 부동산에 쏠리는 관심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지지율이 집값과 비례한다는 지역이 있을 정도다. 주거 안정화와 집값은 중대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이런 유권자 심리에 맞춘 각종 개발 정책과 부동산 공약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정치 구호나 막연한 선언처럼 튀어나오고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부동산 이슈는 지난 대통령 선거와 그해 지방선거에서 적잖이 파급력을 발휘했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위력을 떨친 전력이 있다. 4·10 총선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거점 역세권 고밀 개발로 얻은 용적률 일부를 청년·신혼·출산 가구에 공공분양한다는 공약을 내놓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전가의 보도처럼 기본주택 100만 가구를 꺼내 주거복합 플랫폼 구상을 덧붙인다. 다자녀 출산 신혼부부에게 분양전환 공공임대 제공도 빠지지 않는다. 역세권 등에서 상업구역을 배제하고 주거지로만 활용하려는지 전제부터 균형을 잃은 듯하다.재건축에선 해법은 다르지만 여야 모두 족쇄가 풀린 점은 같다. ‘압·여·목·성’(압구정동과 여의도동 아파트지구, 목동 택지개발지구, 성수동 전략정비구역에서 특히 공약 대결이 불꽃을 튄다. 부동산 불안 요인은 간과하면서 조율 안 된 나홀로 약속이 자주 출현한다. 투기수요 억제, 주택수급 균형 등의 조항은 거의 사문서가 된다. 공급을 늘려 집값 잡는다는 구실을 앞세워 실현 가능성은 점검조차 하지 않는다. 국회 통과가 쉽지 않은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폐지 주장까지 종횡무진이다. 부동산과 밀접한 철도 지하화 등 지방에서 하기 어려운 메가급 공약은 어찌 감당할지 모르겠다. 녹색정의당, 진보당, 새로운미래 등의 몇몇 공약도 실현 가능성이 낮긴 마찬가지다.임대차 시장 안정에 대한 공약은 결이 상당히 다르다. 국민의힘은 임대차 2법 폐지 추진을 내세우고 민주당은 임차인등록제 도입과 같은 투명성 제고 방안에 매달린다. 전세사기의 빌미가 된 임대차 2법은 폐지하든지 폐지에 가깝게 손질하는 게 답이다. 민생과 미래를 위한 개발은 당해 정책의 효과와 입법 방향이나 재원 마련 방법부터 제시해야 한다. 아무 대책 없이 가령 고도제한을 풀겠다는 식이면 묻지마 공약이 되는 것이다. 탄소 배출이나 난개발 소지가 큰 공약까지 선거판을 뒤덮고 있다. 선거 전략상 부동산 공약에 심혈을 기울이는 걸 나무랄 순 없다. 하지만 총선용 막 던지기 공약은 이제라도 자제해야 한다.

2024-04-02 14:01 사설 기자

[사설] ‘2000명 고수’ 밝힌 윤 대통령, 의료개혁 가능할까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의료개혁과 관련한 대국민 담화에서 의과대학 증원 2000명이 주먹구구가 아님을 강조했다. 증원 규모에 변화를 주는 메시지 대신, ‘고수’ 의지를 밝혔다. 현 상황 돌파용 대안보다는 주로 기존 입장을 강화하는 형식이었다. 불편을 조속히 해결한다는 다짐으로 전공의 이탈의 실마리가 안 보이는 강경 대치 상황을 풀 수 있을지 주목된다. 윤 대통령의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 아니어도 정부 의료개혁 청사진은 여러 차례 공개됐다. 필수의료 지원을 위한 재정 중점투자 계획은 며칠 전 밝혔다. 의사 수 부족도 그렇거니와 특정 의료 분야에 쏠리는 왜곡된 시스템을 손보려면 의대 증원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어떤 처방을 내놓건 의사 수 증원 찬반으로 회귀한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이 앞서 언급한 ‘유연한 처리’마저 쉽지 않은 환경이다. 4대 의료개혁 패키지에 의료계가 주장한 과제가 담겨 있다는 설명으로 달랠 수 없게 됐다.‘국민께 드리는 말씀’의 지향점이 아니라도 의료개혁은 큰 틀에서 원칙대로 완수하는 것이 맞다. “집단행동이 아니라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통일된 안을 정부에 제안해야 마땅하다”는 이날 윤 대통령 발언에 공감한다. 다만 정부가 꼼꼼하게 산출한 ‘최소 증원 규모’라 하더라도 의료 전문가인 의사들의 제언은 경청해야 한다. 의료계는 또한 증원 자체에 반대하는 입장부터 철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공의 면허 정지 대상이 이제 수천 명 단위로 쌓이게 된다. 모두의 책임이다.이날 윤 대통령 담화가 여당의 열세 상황을 반영한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정치 논리로만 봐서는 안 된다. 증원 숫자에 변화를 주든 안 주든 의료체계 정상화에 집중해야 하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정원 확대에 반대하면 대화가 성립되지 않는다. ‘정권은 짧으나 의료 붕괴의 여파는 영원하다’는 식으로 정치 투쟁화하면 의정 대화는 산으로 갈 뿐이다.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 해도 대표성 있는 대화 창구는 만들어야 한다.증원 결정은 현재의 의료 수요에 비해 의사가 1만~1만5000명 부족하다는 결론에서 시작된 것이다. 전공의 없이는 돌아가지 않은 의료 시스템이 사태를 키운 부분까지도 개혁의 대상이다. 의대 교수들은 집단사직을 철회하고 전공의들은 병원으로 복귀해야 한다. 교수 진료 시간 축소에 이어 1일부터 주 40시간 진료 단축 투쟁에 나선 개원의들의 자제도 필요하다. 의료계가 정부에 ‘연전연승’하며 오랫동안 끌어온 의대 증원을 이번에 꼭 관철시키는 것이 의료개혁의 출발점이다.

2024-04-01 14:16 사설 기자

[사설] 최저임금 차등적용, 법 취지에 맞고 현실에도 적합하다

내년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기 위한 심의 절차가 공식적으로 개시된다. 사상 첫 1만원 돌파, 그리고 제도 도입 첫해인 1988년 시행 이후 맥이 끊긴 업종별 차등적용 여부가 최대 관심사다. 2024년 시간급이 9860원으로 1만원 도달까지 140원 남았다. 최저임금 구분 적용은 어느 때보다 수용성 높은 현안이다. 그러면서도 입장이 다른 경영계(사용자위원)와 노동계(근로자위원) 간 이견은 첨예할 것으로 관측된다. 노동계의 기본 인식은 두 가지다. 작년의 낮은 최저임금 인상률(전년도보다 2.5%, 240원) 책정과 작년 3.6%인 소비자 물가상승률이다. 1만원 자체가 뜨거운 감자인데 이를 근거로 1만원을 훌쩍 넘는 안을 제시할 수 있다. 작년에 못 넘은 1만원 문턱은 약 1.4%인 140원만 올라도 넘게 된다. 최저임금 감당이 어려운 일부 업종은 사업 종류별로 구분해 배려해야 한다. 법적으로 가능하지만 사문화되다시피 한 최저임금법 제4조 1의 규정을 잘 활용할 때가 왔다. 이전에 격론 끝에 부결된 점과 경영 여건을 감안해 결정하는 게 적합하다.한국은행의 돌봄 서비스 업종 관련 제안은 오히려 폭을 넓혀 담을 가치가 있다. 물론 외국인력을 염두에 두다가 내국인 돌봄 인력의 처우가 나빠지는 결과 등에는 유의해야 한다. 시간당 최저임금은 2000년 1600원에서 지금까지 연평균 8% 내외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선진 7개국인 G7의 평균 인상률에 비해 두 배 이상이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긍정적인 협상 룰과 대화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캐스팅 보트를 쥔 공익위원 비중이 더 중요해졌다.최저임금의 목적이나 취지만 앞세운 나머지 경영 부담이나 기업의 지불 능력이 간과된다면 올바른 논의가 아니다. 지난해를 뺀 이전 5년간 최저임금의 수직상승 여파로 법정 최저임금을 못 받는 근로자가 많다. 일자리 취약계층과 영세업체는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매출 규모나 영업이익뿐 아니라 단위노동비용 증가로 임금발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측면까지 살펴야 한다. 업종별 또는 지역별로 차등적용할 사유 중 일부다.업종별 구분 적용이 낙인효과를 낳는다는 주장도 부분적인 일리는 있다. 그러나 영세 사업주의 지불능력을 반영하지 못한 제도가 바람직한 제도일 수는 없다. 1만원 돌파의 상징성에 너무 매달릴 일은 아니다. 그러기에는 문재인 정부 5년간 소득주도성장정책의 산물인 최저임금 과속 인상에 따른 그늘이 너무 짙다. 입장 차와 인식 차를 좁혀 법적으로 가능하면서 현장 적용성을 높이는 차등적용을 이번엔 꼭 현실화해야 한다.

2024-03-31 14:23 사설 기자

[사설] 부담금 완화, 실효성·재원 확보해야 좋은 정책

정부가 ‘그림자 세금’으로 불리는 부담금을 확 줄이기로 했다. 법정 부담금 32개를 폐지 또는 감면한다. 91개 중 40%에 달하는 비율로만 볼 때는 부담금의 구조조정이라 해도 될 파격이다. 내는 사람조차 미처 모르고 내던 영화상영관 입장권, 항공권, 전기료 등의 돈 ‘커팅’이 사라진다. 한 예로 영화표 가액의 3%를 관람객에게 부과해 영화발전기금으로 귀속시키는 부담금이 사라진다. 총선용이란 의혹의 눈길을 거두면 합리적인 면이 나타난다. 부담금 완화의 실효성을 보완한다면 괜찮은 정책이 되겠다. 위축된 민생을 실효적으로 못 살린다 해도 제도의 현실성을 높인 것은 사실이다. 중견기업계(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28일 논평을 내고 유의미한 시그널이라며 반긴 것은 그러한 반응의 일부다. 환경개선 부담금, 폐기물 처분 부담금, 특정물질 제조·수입 부담금 등을 완화하면 기업 활력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학교용지부담금 등 18개 부담금을 폐지하고 전력산업기반기금부담금 등 14개 부담금을 감면하는 정비 방향은 나쁘지 않다. 고금리와 건축비 상승에 과도한 부과요율이 버거웠던 건설업계 반응도 긍정적이다.국민과 기업에게 부담을 주는 부담금, 불편을 주는 불필요한 제약을 걷어내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원론적으로 생각할 부분이 있다. 법정부담금은 특정한 공익사업 수행을 위해 공공 주체가 부과하는 조세 외의 금전적 의무다. 원인자, 수익자, 유도성 부담금 중엔 공익 목적상 존치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처음엔 그래서 만들었다. 정작 중요한 걸림돌은 긴축재정과 감세를 추구하는 정부에게 부담금 2조 원 축소가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세수 펑크를 메워 재정 부실을 막을 별도 재원안이 없다는 게 여기서 또 문제시된다. 편의적으로 납부를 강제해온 부담금이라는 ‘스텔스 세금’을 조세에 흡수하는 대안도 필요해 보인다.이번 조치는 ‘부담금 정비’인 동시에 ‘관리체계 강화 방안’이 된다. 폐지되지 않은 부담금, 감면하고 남은 부담금이 쌈짓돈처럼 쓰이는 사례는 막아야 한다. 각종 부담금은 원래 목적대로 써야 한다. 과감하고 획기적이면서 기업에 비해 국민 부담 경감은 구색 갖추기처럼 비치는 건 한계다. 일반 가정에서 전력산업기반기금부담금 요율 인하로 누릴 혜택은 연간 8000원선이다. 뿌리업종 중소기업에 돌아가는 혜택은 그리 크지 않다. 22년 만의 대대적 부담금 손질이라지만 1만5000원의 영화 티켓값 중 500원 깎이는 수준으로 효과를 얼마나 실감할까. 소비자 체감과 못 걷은 돈 2조 원의 대체 재원을 해결해야 의미 있는 개선책이 될 것이다.

2024-03-28 14:15 사설 기자

[사설] 건설경기 부양 의지 강하면 ‘위기설’ 사라진다

4월을 며칠 앞두고 정부가 건설 관련 규제의 합리적 완화에 팔을 걷어붙인 것은 바람직하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의 “4월에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단언으로 ‘설(說)’이 정리될 성질은 아니기 때문이다. 건설업계 불황의 늪은 깊다. 올 들어 벌써 886건을 넘어선 건설업 폐업 신고 건수가 이를 말해준다. 10년 만의 최대치다. 확대해석을 안 해도 업계 안팎의 ‘4월 위기설’이 전적으로 ‘아니 땐 굴뚝’의 연기라고 확언하긴 어렵다. 시장이 얼어붙으니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악재에 미분양이 가중된다. 올해는 입주 물량 35만 가구에 지난해 밀린 물량까지 합쳐 44만여 가구가 공급된다. 건설사가 지급보증한 본PF가 리스크로 전이될 개연성이 높다. 원가 상승, 원자재 수급 차질, 분양률 저하 등으로 PF 사업장 정리의 후유증이 커질 시점이 돌아오는 4월이다. 정부의 부양 의지가 그래서 중요하다.금리 환경이 개선된다고는 하나 뒤로 미뤄진 부실이 많아 문제다. 부동산 PF 만기 연장 이후에도 잘 안 풀려 5월 위기설이 반짝 고개를 쳐든 지난해 상황과 엇비슷하다. 그보다 한 달 전에는 부동산 PF의 ‘큰손’ 새마을금고발 7월 위기설이 나돌기도 했다. 좀 거슬러 올라가 2010년의 11월 위기설 때 역시 PF 부실화 가능성은 꼭 빠지지 않았다. 현재까지 연체율은 생각보다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금융기법’을 통한 착시도 포함돼 있다.당국의 4월 위기설 일축에도 일부 건설사는 실제로 어렵다. 상위 주요 건설사가 아닌 중견·중소 건설사의 경우엔 특히 불을 땠으니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것이다. 건설업계 부진이 경제위기로 연결되지 않는 것 못지않게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부가가치가 15%에 이르는 건설업 자체도 중요하다. 건설사 생존력은 자금 조달 능력과 대개 일치한다. 4월 위기설은 좀 과한 표현이지만 건설업계가 지금 어렵고 향후 더 어려워진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총선 이후에는 더 그럴 전망이다.PF 연체율 수치가 과거 위기 시절보다 낫다는 것이 위안일망정 처방은 될 수 없다. 주택 공급 확대와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의 속도감 있는 추진은 당연히 필요하다. 업계에선 부동산 PF뿐 아니라 공사비 현실화, 미분양 문제에서도 구체적인 대안을 기다린다. 정부 의지가 약하면 물불 안 가리는 ‘x월 위기설’은 또 제기된다. 늘 그렇듯이 위기설에는 객관적 사실에서 나오지 않은 프레임도 섞여 있다. 실체가 무엇이건 ‘4월 위기설’의 조기 진정에 총력을 기울이는 게 지금 할 일이다.

2024-03-27 14:15 사설 기자

[사설] 총선만 보는 퍼주기 공약 경쟁, 실현 가능성 있을까

4·10 총선이 2주 앞으로 다가오면서 여야가 선심성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재원 계획도 밝히지 않은 공약으로 표를 사들이는 것, 예산으로 지지를 얻는 복지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지역개발이 곧 표라는 계산뿐이다. 수조 원에서 수십조 원이 드는 총선용 정책엔 한도가 없다. 지지세가 강한 혹은 약한 연령층이 좋아할 공약을 내놓으면 그만인 것 같다. 내가 하면 민생 공약, 네가 하면 선심 공약이란 얄팍한 논리만 보인다. 사안의 시급성도 올바른 기준(名)으로 분별(分)할 때 정당화된다. 철도 지하화도 좋고 소상공인 지원은 필요하다. 저출생 고령화는 대한민국 지속가능성과 연관된 초대형 현안이다. 그런데 구체적 재원안이 안 따라주면 아무것도 아니다. 3자녀 가구 대학 등록금 전액 면제 약속도, 전 국민 25만원 민생지원금도 타당성부터 갖춰야 한다. 예산편성권 유무가 핵심은 아니다. 무대책 총선용 쇼나 퍼주기 퍼포먼스로 돈만 풀다가 물가를 자극할지 모른다. 경제를 마치 심폐소생술처럼 인식하는 졸속 공약도 문제다. 공약을 요식행위로 보니 벌어지는 현상이다.여야의 선심 공약에 대한 검증 수단이 없어 설익은 약속, ‘안 될 약속’이 넘쳐난다. 표만 주면 지킬 약속인지는 차치하고라도 반드시 이행하라고 재촉할 만한 미래 성장 공약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철도를 지하로 내리고 빈 윗부분을 미래형 도시 공간으로 만드는 구상 자체야 이상적이지만 실현 가능성이 결여돼 있다.공약에는 저작권 침해도 통용된다. 서로 다른 듯 같게 한술 더 뜬 붕어빵 공약으로 서로 우려먹지만 제지할 방법이 마땅찮다. 실버 표심을 겨냥한 주 5일 경로당 점심 제공 공약에 매일 무료 점심 공약으로 맞불을 놓은 식은 차라리 애교 수준이다. 나라 곳간으로는 뒷감당이 안 되는 퍼주기 공약을 그만 남발해야 한다. 지난해 세수 결손액 56조 원은 벌써 잊었는가.정당한 명분(Just Cause) 하나만 갖고 본질을 직시했다고 할 수는 없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맡든 다른 데서 맡든 ‘묻지마 재원’을 추계할 기본적인 시스템은 갖추는 게 맞다. 유권자가 실현 가능성에 대해, 포퓰리즘 공약인지 아닌지에 대해 예견하고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추계만 하지 말고 재원 마련 방안을 꼭 첨부하게 해야 할 것이다. 최소한의 검증마저 선거가 끝나면 끝이다. 민간자본 중심으로 개발하면 비싼 인프라 사용료는 온전히 국민 몫 아닌가. 남은 2주만이라도 다른 취약계층과의 형평성 등 진지한 고민 없는 돈 풀기 경쟁을 멈추기 바란다.

2024-03-26 14:05 사설 기자

[사설] 조선업 원·하청 상생협약 이행 속도 더 내야 한다

지난해 2월 27일 조선업 원청·하청 간 상생협약을 맺으면서 역점을 둔 것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이었다. 이 기준으로만 보면 좀 회의적이다. 원청이 협력업체에 지급하는 기성금을 인상하고 협력업체 노동자의 임금 인상률을 높이거나 재하도급을 줄이는 등의 과제 해결에 1년은 짧았다. 상생 모델 구축 성과가 아직 모자란다. 실제로 조선업계가 모여 있는 경남 거제 등지에서 대규모 임금체불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 그 반증의 일부다. 하청업체 노동자 월급을 전용 계좌로 입금하는 에스크로(결제대금예치·escrow) 계좌 등 긍정적 시도는 허점을 드러낸다. 원청이 적정 기성금을 주지 않아 해소하지 못한 문제일 수는 있다. 아무튼 상생협약 이행 속도를 왜 내야 하는지 여실히 보여준 현상들이다.정부가 상생협약을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려는 것은 좋은 정책 의지다. 하지만 과제 발굴에 그쳐서는 안 된다. 작년에는 석유화학업계, 자동차 업계에서도 상생 대열에 가세했다. 올해 2월에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항공우주업계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이 힘을 합치고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형태도 괜찮은 시도다. 뒤를 이어 정부와 대상, 협력업체인 삼진푸드, 충북도가 식품제조업으로 상생의 영역을 넓혔다. 다섯 번째 상생협력 모델에서 본 것처럼 소규모 사업장 비율이 높은 분야로도 협약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협력사 수요조사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분야에 따라서는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없어 실태조사 진행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조선 5사에 대해 상생협약과 관련한 강제성이 없는 것을 문제 삼기도 한다. 그런데 상생이나 연대와 강제성은 원래 서로 안 어울리는 개념이다. 구조적인 측면을 더 들여다봐야 한다. 조선업계의 임금체불이 근절되지 않는 배경에는 꼬리를 무는 하도급도 원인이다. 공사 기일을 맞추기 위해 물량팀과 재하청 계약을 하면서 하청업체가 감당할 여력이 부족할 때 임금체불 사례가 발생한다. ‘상생’을 내걸지만 ‘원청의 선의’와 ‘정부의 재정사업’ 비중에 기댄다. 이것이 진솔한 실상이다.완벽한 제도는 없다. 그래서 보완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에스크로 제도를 보더라도 인건비를 떼이지 않게 하는 데는 일정 부분 기여했다. 동시에 임금체불의 근본 해결책이 아니란 한계가 1년 만에 확인된다. 25일 조선업계 상생협력 1주년 보고회에서도 거론된 재하도급의 최소화나 기성금을 투명하게 집행하는 방법 등은 앞으로 집중할 가치가 있다. 노동, 공정거래, 산업을 포괄하는 이중구조 해소에는 속도가 요구된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점검해봐야 한다.

2024-03-25 14:02 사설 기자

[사설] 외국인력 ‘빈 일자리’ 넘어 산업경쟁력 확보해야

산업현장과 농촌을 가리지 않고 외국인력은 일상 속 필수인력이 됐다. 올해 16만5000명의 외국인력 도입을 결정했지만 충분치 않다는 게 현장 목소리다. 재입국 기간 완화나 고용허용인원이나 고용허가 확대는 기본이고 생산성 향상, 정주(定住) 여건 개선 등 지속성 있는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정책의 초점은 어차피 취업 기피와 인구 감소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도입 규모와 고용 인원을 늘리는 데 지향점을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도 울산시 인구(110만명)보다 많은 외국인력이 산업 현장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그러고도 여전히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즉 비전문 외국인력(E-9 비자) 도입 규모는 넉넉하지 않다. 기업 절반 이상이 실제 그렇다고 답한다.빈 일자리가 추가 발생해도 고용허용인원 법정 한도에 걸린다. 수급이 순조롭지 않다. 통계청 조사로는 체류 기간 만료 후 더 머무르길 원하는 외국인이 89.6%에 이르는 데도 말이다. 고용허가제 허용 업종을 확대해야 한다. 외국인 근로자의 사업장 변경도 남용된다 할 만큼 현장에선 흔하다. 단순히 내국인 인력을 대체하는 차원을 벗어나도록 정책 방향을 다시 잡아나가야 한다.중소 제조업체는 극심한 젊은 일손 가뭄에 시달린다. 반면, 외국인력 비중은 젊은층이 높다. 재고용 때 출국 없는 체류연장과 같은 보완책과 함께 외국인 근로자의 낮은 생산성을 높이는 일은 새로운 현안이다. 직무에 적합한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은 기업의 생산성과 바로 연결된다. 입국 전 직업훈련을 강화하고 고숙련보다 비숙련에 치우친 부분에 대해서는 우수인력 입국 허가를 낮출 여지가 있다. 해외수주가 늘면서 인력 부족을 겪는 항공제조산업 등에도 적용할 필요가 생겨났다. 현지에서 검증 시스템을 마련해 전문외국인력 고용이 불가한 애로점은 개선해야 할 것이다. 전문외국인력인 숙련기능인력(E-7비자)을 확보하는 방안도 병행해야 한다.E-9, E-7를 막론하고 인력 유치 후에는 장기간 거주할 수 있는 정주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산업인력 부족뿐 아니다. 저출생과 고령화에 따른 인구·지역소멸의 대안까지 구해야 할 형편이 됐다. 외국인 근로자 이동 제한을 위해 일정 권역과 업종 내에서만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게 할 땐 역시 정주 여건이 강조된다. 외국인 기술인력 양성과 숙련 기능인력의 연간 쿼터 확대 등 더 능동적 대안이 따라야 할 것이 국내 정착 지원이다. 부족한 일손을 채우는 임시방편 이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외국인력을 글로벌 산업경쟁력 확보에 활용할 방안까지 찾아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본다.

2024-03-24 14:06 사설 기자

[사설] ‘장인화호(號)’ 포스코그룹에 거는 기대 크다

21일 본격 출범한 포스코그룹 장인화호(號)에 국민적 시선이 쏠린다.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장인화 회장 체제에 찬성 의견을 냈고 의결권 자문사 대부분이 그렇게 권고했었지만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소액주주 지분이 많아 특정 주주 영향력이 구조상 절대적이지 않긴 하나 회장 선임 방식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국가대표 공기업에서 민영화를 거친 사실상의 주인 없는 거대 재벌기업이란 위상도 새롭게 보였다. 장 신임 회장이 이날 내놓은 미래 청사진에는 밑줄을 그을 만한 내용이 적지 않다. 설계도 그대로 ‘키’를 잡고 쾌속항진하길 바라지만 항로엔 지속가능한 장밋빛으로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철강, 소재 등 주요사업에서의 사업경쟁력 확보라는 묵직한 과제부터 바로 앞에 기다린다. 유럽의 완성차 업체를 중심으로 저탄소·무탄소 철강제품 확보에 안간힘을 쓰는 흐름도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차전지, 리튬·니켈, 수소, 에너지, 건축·인프라, 식량 등 핵심사업에서 미래 기회를 추출해내야 한다. 포스코의 본원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는데, 그 길은 거대한 파고를 넘는 데 비견될 것이다. 새로운 물결 앞의 장 회장은 여러 면에서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그런 포스코에 더욱 필요한 것은 융합의 정신이다. ‘좋은 게 좋다’ 주의(主義), 포스코 ‘식구’만 감싸는 순혈주의도 상생경영에는 걸림돌이다.장 회장이 누구보다 익히 알 것이다. 외부 환경도 이를 뒷받침해줘야 한다. 정권이 교체되면 회장이 교체되는 역대의 관습 아닌 관습은 이제 마침표를 찍을 때가 됐다. 초호화 해외 이사회 같은 구설은 훌훌 털어버려야 한다. 갈 길이 바쁘고 먼 데 외풍에 대응하느라 과도한 에너지를 소모해서는 안 된다. 포스코 흔들기는 당장 그만두는 게 좋다. 총선 등 갖가지 정치적 변수에도 요지부동이어야 함은 물론이다.이날 취임 일성이나 기자간담회를 종합해보면 안심은 된다. 철강 전문가여서 전임 회장 체제가 중시된 이차전지 소재 산업 등이 약화될 거라는 분석은 당분간 안 해도 될 듯싶다. 빠른 기술개발과 투자로 수소환원제철 같은 환경적 가치를 키우는 미래 먹거리 투자를 재점검해야 한다.특히 장 회장이 구현해야 할 철의 새로운 가치 창조에 우리는 주목하기로 한다. ‘장인화 3년’간 포스코가 순항하면 고용 등 나라 경제와 지방경제 전반의 밑거름이 된다. 포스코그룹 장인화호의 순항을 굳게 믿어본다.

2024-03-21 14:18 사설 기자

[사설] 기업형 장기임대주택, 전세제도 대체할 수 있겠나

의무 임대 기간이 긴 기업형 장기임대주택 도입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전세는 전셋값과 대출 금리 상승으로 월세에 비교해 이점이 사라졌다. 대부분 개인이 임대업자이다 보니 임대료 상승, 계약기간 불안 등을 야기한다. 전세 사기 등 허점이 있어 변화가 요구된다. 전세를 대체할 새 장기 임대주택을 준비하는 논리는 이렇게 정리될 것 같다. 역전세 등으로 ‘위험한 제도’가 된 전세 제도의 대안이란 게 핵심이다. 정책으로서 성공하려면 전세를 대체할 만한 확실한 메리트는 필수다. 박근혜 정부 시절엔 비슷한 제도를 내놓았지만 공급을 위한 법안 통과와 택지 마련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공급 입지 면에서 수요와 불일치가 있어선 안 된다. 내 집처럼 주거 안정성을 높이고 임대료나 유지보수의 표준 관행 정착으로 임대산업을 선진화해야 한다. 잡아야 할 ‘두 마리 토끼’다.산업적인 측면에서는 리츠 투자를 넘어 임대주택 전문 기업이 생겨나야 할 것이다. ‘뒷돈’이 ‘앞돈’을 못 메워줘 발생하는 역전세나 전세사기만이 아니라 부동산 시장 장기침체나 전월세난 등에도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주거서비스와 지속적인 임대 운영 활성화가 주택시장의 변화 흐름에는 맞는다. 하지만 그 때문에 수요자들의 관심이 기업형 임대아파트로 향할 거라는 분석은 좀 막연하다. 소유에서 거주로, 자가(自家)에서 차가(借家)로 인식이 바뀌기까지는 시간이 좀더 걸린다고 봐야 한다.‘선진화’의 진짜 관건은 공급에 있다. 매각을 전제하지 않고 지속적인 임대 운영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월세가격 상승으로 가계 부담이 커진다면 전세난 완화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임대료 책정에 제약을 두거나 각종 규제로 활성화에 어려움을 겪은 경험은 축적돼 있다.적절한 인센티브가 주어지지 않을 때는 임대주택 공급 측면에서 매력을 잃게 된다. 선의를 내세운 과잉 규제도 문제다. 기업형 장기임대에서도 걸림돌이 될 건 뻔하다.기업형 장기임대주택제도는 시장 수요에 맞춰 자생한 주택공급 방식은 아니다. 우리 고유의 임대방식을 인위적으로 바꾸는 일이란 뜻이다. 주택 공급의 룰인 공공과 민간의 조화가 여기서도 필요하다고 본다. ‘공급’은 다른 무엇보다 절대적인 요소다. 그런데 공급이 되더라도 공급 기간이 차이 나면 임대시장의 근본적인 안정은 어렵다. 물량 확대만큼이나 적기 공급, 세제 지원, 그리고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취임 일성으로 밝혔던 “시장논리를 넘어서지 않는 정책”을 만드는 것도 빼놓아선 안 된다.

2024-03-20 14:14 사설 기자

[사설] 제약사 문화예술 ESG, 아름다운 동행 계속되길

의약품 사업 본연의 역할을 넘어 신진 작가 지원 등 예술활동으로 감미로운 소통을 이어가는 제약사들이 있다. 미담을 넘어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브랜드 가치, 고객 가치, 사회 가치, 이미지 가치 등 다방면의 기업 가치를 향상시킨다. 마로니에 여성 백일장이 잘 알려진 동아쏘시아그룹의 디스타일 워킹이라는 걸음 기부 캠페인, GC(녹십자홀딩스)의 벽화 그리기 활동을 통한 지역 맞춤형 사회·환경 정화 프로그램 등 일일이 꼽을 수 없을 만큼 광폭 행보다. 제약사들의 기업 가치를 극대화하는 사회 공헌이 돋보인다. 신진 미술 작가 지원은 최근의 신경향처럼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에 확산하고 있다. 경제적인 도움으로 창작 활동 반경을 넓히고 문화예술로 소비자와의 접점을 늘려가는 것이 특징이다. 12년 관록을 자랑하는 종근당홀딩스의 ‘종근당 예술지상’이나 안국문화재단(안국약품)의 AG 신진 작가 대상 공모전 등이 그것이다. 비영리 문화전시관인 갤러리 AG가 신진들의 작품을 무료전시해온 점도 특기할 수 있다. JW그룹의 공익재단인 중외학술복지재단의 장애인 미술공모전 JW 아트 어워즈도 장애 예술인들에게 꿈의 무대로 자리했다. 지원도 다각적이다.그러면서 메세나(기업의 문화 후원)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로 영역을 키워간다. 제약사들이 문화예술 장려와 애호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자체도 의미가 있다. 기업의 예술단체 지원에 비례해 정부 문예진흥기금을 추가 지원하는 예술 지원 매칭펀드, 기업과 예술단체 간 파트너십과 결연 등으로 뻗어나가길 기대한다. 문화예술 현장의 체감도가 아직 높지 않지만 흔쾌히 지원의 손을 잡았다. 그것이 참여 제약사의 차별화된 경쟁력이 될 수 있겠다. 제약산업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거론된 제약사들의 활동은 일회성이 아니었다. 경제와 예술의 균형 발전 측면까지 인식될 정도로 적극적이다. 인프라, 클래식 음악 등 특정 장르, 특정 예술단체에 쏠린 지원활동의 지평을 확장한 데 있다. 사회환원에만 초점을 맞춘 일방적 지원보다는 제약사와 문화예술계의 연대로까지 발전하면 좋겠다.제약사마다 추구하는 가치는 상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신진 작가 지원 등의 기여가 친근한 기업 이미지를 구축하는 점은 같다. 예술 분야에 대한 투자가 고부가가치 사회공헌인 점에서도 다르지 않다. 특히 상위 제약사들이 문화예술 가치의 영역을 늘려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길 바라며 아름다운 동행을 응원한다.

2024-03-19 14:17 사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