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일자리 ‘불일치’ 해결책 못 찾는 이유 있다

석 달 만에 30만명을 넘긴 취업자 수만 놓고 보면 지난달은 고용 호조세인 것처럼 인식된다. 통계청 발표로는 실업률도 석 달 연속 증가세다. 구직활동이 늘어나면 실업자로 분류되니 그렇다고 일반화할 수 없는 측면이 강하다. 고용 허리층인 30대의 ‘쉬었음’ 증가율이 연령 중 유일하게 늘어난 점은 특이사항으로 나타난다. 꼭 ‘이유 없이’ 구직활동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일자리 미스매치(mismatch)는 1월 고용 동향이 남긴 변함없는 숙제다. 구직자는 선호하는 일자리를 못 찾고 기업은 인력난을 호소하는 불일치의 원인을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것부터 문제라고 본다. 3명 중 1명(29.9%)이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 구직활동을 쉰 것은 결정적이다. 한편으로는 주력산업의 인력난이 최근 5년 새 최대를 기록한다. 좋은 일자리 만들기와 별개로 소프트웨어, 전자, 화학, 기계를 비롯한 12대 주력산업 부족인원 비중은 최고도로 높아진 수준이다. 과도한 임금격차 등 여러 면에서 기대 수준에 맞지 않기도 하겠지만 숙련되고 경험을 갖춘 구직자가 부족하다는 것이 기업으로선 적잖은 애로사항이다. 중소기업 인력난은 심각함을 넘어 한계에 직면해 있다.기업 입장에서는 현장에서 요구하는 인재가 부족하다는 뜻도 된다. 맞춤형 취업 대상자 양성을 위한 교육 인프라 확충이 시급함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산업경쟁력과 경제 활력을 담보할 첨단 인재를 확보하지 못하면 좋은 일자리가 늘어도 엇박자가 계속된다. 기업에만 이를 해소하기 위한 경쟁력을 갖추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단순히 일자리와 구직자의 불일치를 메우기보다 융복합 전문 인력을 키워 혁신과 성장이 가능하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노사정이 머리 맞대고 돌파할 부분도 있다. 기업의 질 좋은 일자리 창출 의지를 높이는 건 세제와 인프라 지원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실효성 없는 정부 정책도 일자리 미스매치 원인이다.표면만 읽으면 지난 2년간 실업자가 상당수 감소한 데 따른 기저효과도 1월 실업률 증가로 나타났을 법하다. 선호하는 고품질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도 전문 인력이 모자라면 엇박자는 계속된다. 취업연계형 특성화 학사·석사 과정 구성 등으로 기업이 원하는 인재 양성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외국인력 쿼터 늘리기를 ‘쉬었음’과 ‘원하는 일자리 찾기 어려움’의 대증요법으로 언제까지 쓸 수는 없다. 일할 능력이 있는데 취업자도 실업자도 아닌 사례를 줄여야 한다.

2024-02-18 15:00 사설 기자

[사설] 법 개정 전에도 ‘선량한 소상공인‘ 보호받아야 한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술이나 담배 등을 판매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된다. 청소년에 속아 술·담배를 팔다가 영업정지를 당하는 현장의 소상공인이 비일비재하다. 7개 중앙부처와 17개 광역자치단체가 ‘선량한 소상공인 보호 관계기관 협의회’를 통해 머리를 맞댄 것은 억울한 사례를 막자는 취지다. 청소년 보호법과 식품위생법 규정에 가린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선량과 불량을 잘 가려내는 게 관건일 것 같다. 15일 정부가 밝힌 협의회 개최와 정책화 추진은 민생 회복 과제이기도 하다. 청소년이 신분증을 위조하거나 도용해 술·담배를 구매했을 때 과징금 부과를 유예하는 방안은 몇 차례 논의된 일이 있었다. 하지만 고의성 없이 선의의 피해를 봤다면 짐을 지우지 않아야 한다는 원론에 그친 수준이었다. 별다른 실익은 없었다. 적극적인 기망행위라면 행정처분 면제나 구제가 근원적이고 폭넓게 이뤄지는 게 맞다. 배경 상황과 맥락만으로 피해가 누적되지 않게 법령 개정을 당연히 검토해야 한다.17개 광역단체 집계를 보면 청소년에게 주류를 판매해 적발된 사례가 하루 평균 6.4건 정도 된다. 청소년이 주류 구매를 시도하면 67.2%가 술을 살 수 있다는 통계치가 있다. 신분증 위·변조나 도용으로 마음만 먹으면 구입한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알고도 대놓고 파는 경우가 아닌 통상적인 주의를 기울였다면 면책이 타당하다. 미성년자로 의심돼 신분증을 확인한 사실이 입증되면 행정처분을 피해야 안심하고 영업활동을 할 수 있다. 불이익 처분은 막아야 할 것이다. ‘신고하면 영업정지’라며 행정처분을 악용하는 청소년들로부터도 소상공인은 보호받아야 한다. 소관 법령의 청소년 신분 확인 관련 규제 조문을 손질하는 게 핵심이다.법령 개정은 면책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여기엔 반사회적 법률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따른다. 청소년의 구매와 소지에 대한 제약은 늘 따라다닌다. 청소년 대상 주류 판매에 대한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판매자를 속여 술과 담배를 사는 ‘나쁜’ 청소년에 대한 벌칙도 필요하다. 소상공인을 잠재적 범법자로 만드는 행정처분이나 고발은 엄격한 기준을 거치고 신중해야 한다.소상공인의 선량함에는 충실한 또는 성실한 청소년 보호 의무가 내포된다. 청소년 음주 문제도 심각하다. 주류 판매 전 미성년 여부를 철저히 가리는 건 기본이다. 절충점을 찾을 부분이다. 법 개정 전이라도 ‘선량한 소상공인 보호법’에 준하는 행정처분 면제 조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2024-02-15 14:09 사설 기자

[사설] 중대재해법 유예 호소, 지금이라도 들어야 한다

중소기업계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유예를 촉구하는 릴레이 집회를 열고 있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법안이 2주 넘게 발효 중이지만 엎질러진 물을 영영 주워 담을 수 없는 ‘반수불수(反水不收)’ 상황은 아니다. 그런 믿음으로 중소기업단체협의회와 중소건설단체가 14일 수원에 모였다. 대통령도, 고용노동부와 중소벤처기업부도 시간을 더 주자고 했지만 국회는 요지부동이었다. 중처법 유예는 마음만 먹으면 양해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조차 안중에 없다. 협상을 재개하려면 마지막 유예 요청까지 걷어찬 야당의 태도 변화가 절실하다. 지난달 31일에도 국회 본관 앞에 중소기업인 3500여명이 모여 유예 법안 처리를 촉구했지만 열린 귀, 듣는 귀는 없었다. 시민과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이 법 제1조의 목적에 공감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실제로 처벌이 목적인 법이 될까 염려해서다. 확대 시행 이후 영세사업장의 사고 처리 과정에서도 보면 사업주가 처벌 대상인지 여부에 집중되는 양상이다.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치중해 만든 법의 태생적 한계다.그에 비하면 예방은 뒷전인 것도 이 법이 뒤틀어져 있다는 하나의 표징이다. 법적 규제로 노동문제를 규율하고 기업인 처벌이라는 사후약방문 같은 입법 방향 탓이었다. 영세사업장 83만 7000곳의 안전관리 역량은 취약하다. 재해 예방 효과 면에서 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할 시간을 주는 것이 그래서 합리적이다. 법 개정 열쇠를 쥔 야당의 오만함이 중소기업인들로 하여금 피켓을 들게 했다.결의대회에서 중소기업계는 열악한 인력과 예산 등 사업 현장의 애로를 호소했다. 소규모 사업장의 생명과 안전이 중요치 않다는 논리가 역시 아니었다. 식당이나 카페 등 개인 사업주라도 상시 근로자 5명을 넘으면 법 적용을 받고 처벌 위주로 갈 때의 부작용을 간과해선 안 된다. 영업, 생산, 품질 및 안전관리 업무를 총괄하는 사업주의 구속은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멈추는 것과 다르지 않다. 형사처벌에 따른 폐업 공포는 근로자를 돕는 일도 아니다.중대재해처벌법은 이발지시(已發之示), 즉 이미 쏘아놓은 화살과 같다. 하지만 만시지탄을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구축할 말미를 좀 달라며 외치는 소리를 들어주면 된다. 더 실효성 있는 기업 컨설팅과 중대재해 취약 분야 지원을 강화한다는 전제에서 폐기 아닌 유예다. 그것을 요청하고 있다. 총선에 여념이 없는 여야지만 합의점을 찾을 시간은 꼭 내야 한다.

2024-02-14 14:15 사설 기자

[사설] 삼성 리스크 또 만드는 검찰의 잘못된 항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트레이드 마크인 설 연휴 ‘명절 경영’은 말레이시아 스름반 공장을 찾아 배터리 사업을 점검하는 일이었다. 대외적으로 도전과 응전에 직면해 갈 길 바쁜데 검찰은 기어이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부당 합병·회계 부정 사건 1심에서 기소 대상 전부가 사실상 완패인데도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있다. 증거판단 등에서 견해 차이가 크다는 항소 이유지만 공연히 건드려 화(禍)를 자초하는 이유는 납득하기 어렵다. 검찰의 무작정 항소 관행의 폐해를 여기서 보게 된다. 항소심과 대법원까지 재판의 시간은 기업의 명운을 좌우하고 남을 아까운 시간이다. 2020년 9월 기소 이래 이어졌던 기업 총수에 대한 과도한 사법 족쇄는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의 수사 중단, 불기소 권고를 수용했으면 크게 줄일 수 있었다. 그걸로 모자라 뉴삼성을 향한 글로벌 경영 행보 위축과 투자 제약을 겁내야 한다면 안 될 말이다. 검찰의 실익이 있건 없건 기업의 이익, 나아가 국익을 외면하는 처사는 비판받아 마땅할 것이다. 단순히 한 기업인의 법적 문제가 아닌 까닭이다.공소사실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다며 무죄 선고한 사건이면 잘못된 기소를 낮은 자세로 돌아봐야 순리다. 그런데도 거꾸로 기업인 대상의 검찰 항소권 남용은 계속된다. 구형량의 일정 기준 이하로 나오면 일단 항소부터 하고 보는 관행부터 버려야 한다. 경영에 부담이 되는 기업 적폐 몰이와 반(反)기업 풍조의 고리도 끊어내야 할 것이다. 다음달 주주총회를 앞두고 이 회장의 등기 임원 복귀는 더 요원해졌다. 무죄 선고가 바뀔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검찰은 넘어야 할 산을 또 만들었다.검찰 공소 사실의 기본 토대부터 1심에서 무너졌다. 검찰이 법정 공방 2라운드에서도 뒤집기는 힘들다. 그런데도 무리한 항소가 진행된다. 항소권 남용, 기계적 항소의 문제점을 스스로 밝혀주는 사례다. 항소심 모든 재판에 출석해야 하는데, 2심 판결이 나오려면 아무리 빨라야 6개월에서 1년은 걸린다. 상황에 따라 최대 2~3년 이상 소요될지도 지금 예단할 수 없다.검찰의 과잉 수사와 기소의 덫에 걸린 사이, 미국 애플과 대만 TSMC 등은 삼성의 시장을 공격적 투자로 침범했다. 파운드리 업계의 초미세 경쟁이 불붙었는데 검찰의 자의적 판단으로 리스크가 생성된다니 매우 끔찍한 일이다. 검찰 항소권이 없는 국가의 사례까지도 들춰봐야 할 시점인 듯하다. 그 서슬 시퍼런 칼에 삼성의 경영 활동이 위축되고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생존력과 존재감이 잠식당한다면 국가적으로도 손실이다.

2024-02-13 14:02 사설 기자

[사설] 자영업 부담 완화 이상의 고강도 대책 필요하다

설 민생안정 대책의 키워드처럼 된 것이 자영업자 부담 완화였다. 전기요금이나 대출 이자 측면의 혜택에 방점이 찍혀 있다. 매출 및 소득 변화와 결정 요인 분석 등을 심층적으로 분석한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임금근로자의 소득에 비해 자영업자의 상대소득이 하락한 것, 매출 대비 순이익이 줄어든 부분, 특히 자영업 내의 빈익빈 부익부 등 소득 양극화 현상을 두루 살펴볼 시점이다. 연휴 밥상머리 민심이 정치권에 박한 평가를 내리는 거야 더 이상 새로운 풍경은 아니다. 공교롭게도 이 기간에 우리나라 근로소득자 상위 0.1%의 평균 연봉이 9억8800만원이라는 보도가 나와 연휴를 보내는 근로소득자와 자영업자의 입맛을 잃게 했다. 치솟는 물가를 관리하지 못해 민생경제가 힘들다는 점이 부각된 명절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우리 경제와 안보의 근간이라고 했던 중소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상실감은 더 컸다.자영업자 비중이 25%를 넘어 OECD 평균 15.5%보다 훨씬 비중이 높은 나라에서 자영업자는 우리 경제의 큰 축을 이룬다. 자영업자, 소상공인의 경제적 자립도를 높이는 일은 그만큼 중요하다. 법률 개정 없이 대통령령으로 할 수 있는 최대치로 이자 부담을 줄이려는 분기별 환급은 이런 차원에서 이해된다. 여야를 막론하고 고금리, 고물가 등으로 허덕이는 자영업자의 숨통을 트이겠다는 자체에 나무랄 데는 없다.하지만 눈앞의 단기 대책만 내놓지 말라는 것이다. 자영업 시장 과포화에 대한 대책도 나와야 한다. 소득 불평등 분석에서 소득 격차가 가장 심한 연령대인 60대 이상 고령의 자영업자 상당수가 레드오션에 진입한 상태다. 종합소득 격차 1위인 서울의 상위 20%와 하위 20% 간 소득 격차가 65배라는 결정적 아킬레스건을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격차를 일반화하는 데서 끝내서는 안 된다. 규모의 경제, 소득 격차 해소와 사회이동성을 제고하는 개선책이 가장 절실한 곳이 자영업 부문이라는 함의까지 얻어야 고강도 대책이 나올 수 있다.고소득층인 5분위 계층의 소득이 자영업 전체 소득의 절반을 차지하는 등의 불평등도에 맞게 지원 방향도 설정해야 한다. 일시적 자금난에 빠지지 않게 하면서 보기보다 수입을 못 내는 자영업자를 위해 한계 생산 비용과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까지 고심해야 하는 이유다. 재정과 조세정책과 함께 자영업계를 살리는 길은 민간 소비 활성화다. 자영업 위기에 짓눌린 내수경제는 부실 뇌관이 제거된 상태다. 자영업자를 다독여 바닥 민심을 잡겠다는 득표 전략이 아닌 상권 침체와 자영업 환경 악화의 근원을 봐야 설 민심을 잘 읽은 것이다.

2024-02-12 14:17 사설 기자

[사설] H지수 ELS 손실 사태, 설 이후 제대로 풀어야

반토막이 난 홍콩 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Equity Linked Security) 원금 손실 사태가 설 연휴 직후 풀어야 할 무거운 숙제로 떠올랐다. 지수 활황 시기인 2021~2022년에 판매가 집중돼 양상이 매우 복잡하다. 그 상품들의 만기가 돌아오면 날린 투자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다. 상반기 투자자 손실을 6조원으로 어림잡는다면 개인투자자를 넘어 사회문제라고 봐야 한다. 지수가 가입 당시의 70%, 못해도 65% 수준은 돼야 원금손실을 피하는데 그도 아니다. 1만2000선까지 솟구친 지수 활황으로 국민 재테크로 여겼던 상품이 5000선 안팎에서 거래되는 것이다. 개별 주식의 가격이나 특정 주가지수 변동에 연계되는 구조여서 손해액 대비 손실 배상 비율을 정하기도 녹록하지 않다. 성격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과거 독일 국채 금리 연계 DLF(파생결합펀드) 사태에 준할 수만은 없다. DLF 사태가 만든 금융소비자보호법으로 오히려 최고 배상 비율이 낮아질 가능성까지 있다.워낙 고위험 고수익 상품인 데다 합법과 비합법의 경계 또한 모호하다. 불완전 판매인지, 개인투자자가 상품을 완벽하지 이해했는지 등을 식별하긴 어렵다. 과거 ELS 투자 경험이 있는 투자자도 많다. 상품 자체에 사기성이 없다는 점에서 이전의 사모펀드 손실 때와는 달라진다. 그리고 홍콩 주가와 연계된 정상적인 증권 상품이다. 원금 자체가 보장 안 되는 부분에서는 예·적금 자체와도 다르다.2008년, 2015년, 2020년 등 수차례 원금 손실 공포를 안긴 경험이 있으나 똑같지는 않다. 불법 아닌데 만기손실액이 크다고 해서 금융권 자율 배상을 밀어붙이면 금융 시장을 왜곡할 소지가 있다. 해당 상품을 판매한 금융사는 주주·채권자 등 제3자로부터 배임 이슈가 불거질지 모른다. 뒤늦은 감독에 나선 당국이지만 소비자 보호와 투자자 자기 책임 원칙 사이의 경중을 지금부터는 제대로 헤아리고 대처해야 한다.지난해 11월 기준 홍콩 H지수 기초 총판매잔액은 19조3000억원이다. 금융감독원이 설 명절 이후 2차 현장조사를 통해 주요 판매사인 은행과 증권사의 불완전 판매 여부를 가리는 일은 사태 해결의 기본이다. 홍콩 H지수 연계 ELS의 판매 잔액 가운데 79.6%인 15조4000억원이 올해가 만기인 상품이다. 대규모 원금 손실 사태는 쓰나미의 서곡에 불과하다. 아울러 다른 금융상품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 같다. 국내 기업 연계 종목형 ELS에서도 원금 손실이 확산되는 모양새다.

2024-02-07 14:11 사설 기자

[사설] ‘재판의 시간’ 대신 ‘도약의 시간’ 기다리는 삼성

법원의 무죄 판결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 활동에 추동력을 얻게 돼 다행이다. 삼성그룹의 지주회사인 삼성물산의 주가 향방이나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배당 확대나 주주환원 확대 정책 등의 관심사 때문만은 아니다. 검찰 측 항소·상고 여부와 관계없이 집행유예도 아닌 무죄는 매우 의미 있는 판결이다. 이 회장의 완벽한 승리로 봐도 무방하다. 끈덕지게 발목을 잡던 사법 리스크가 깨끗이 사라지길 기대한다. 이번 판결을 몇 번이고 반기는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이 회장 운신의 폭이 넓어졌으며 커진 구심적 역할로 ‘뉴삼성’을 선보이게 됐다는 점이다. 결심공판 최후진술로 보여준 사업 선택과 집중, 신사업과 신기술 투자, MA를 통한 보완을 실제 본격화할 때다. 2027년 세계 최초 1.4나노 양산 등 초격차 기술 구현은 필수 과제다. 우리가 보려는 것은 글로벌 선두를 위한 시설 투자와 기술 개발 등에서 적극적이고 과감해질 모습의 삼성이다. 반도체, 바이오, 신성장 정보기술 등은 대한민국 미래 먹거리 분야이기도 하다.합리적인 경영 판단이라면 오히려 법으로 보호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재계 1위 기업의 수장을 처벌하기 위한 ‘재벌 적대적’ 수사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 2016년 국정농단 재판까지 소급하진 않기로 한다. 다만 2020년 9월 공소장이 접수된 이후 “공소사실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다”는 판단을 얻기까지 3년 5개월이 걸렸다.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없다는 데도 발목이 붙들린 동안 초격차 키워드는 무색해졌다. 그 사이, 인텔에 빼앗긴 세계 반도체 1위 기업 타이틀은 되찾아와야 한다. 대한민국 간판기업 삼성이 “온전히 앞으로 나아가는 데만” 집중하면 할 수 있다.그렇게 하도록 ‘정부와 기업은 원팀’ 국정 기조에 맞게 정부가 글로벌 경영 의지를 적극 뒷받침해야 한다. 이 회장은 그동안 106차례 재판에서 대통령 순방 동행 등 일정을 제외하고 95차례나 법정에 출석했다. 재판부 허가 없이는 해외 출장도 마음대로 못 가는 처지였다. 이것만으로 파운드리 고객사 확보, 초격차 투자 등 경영 행보에 막대한 손실이 있었다.삼성이 전장 사업 강화를 목적으로 하만을 인수한 이후 한동안 멈춰선 대형 MA에도 동력을 실어야 한다. 책임 경영과 컨트롤타워 강화 차원에서 이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도 서둘렀으면 한다. 사법 족쇄론으로 반쪽짜리였던 이 회장의 경영은 비로소 온전히 출발선에 섰다. 글로벌 기업을 압도할 탁월한 경영 계획을 펼치기 바란다. 삼성과 대한민국의 재도약의 시간을 위해 총수 ‘재판의 시간’은 여기서 끝내야 한다.

2024-02-06 13:44 사설 기자

[사설] 사망자 명의 금융계좌 개설 차단 못하나

죽은 사람에게도 군포를 징수하는 조선 후기의 백골징포(白骨徵布)는 조세제도가 지배층의 수탈도구로 전락했던 역사적 사실이다. 요즘도 사망한 사람에게 통신요금과 가산금이 붙는 허수회선이 발생하지만 대개는 데이터 불일치 등에 의한 ‘실수’다. 이번 금융감독원 검사 결과는 성격이 다르다. 삼정의 문란에 비유하는 건 억지스럽다. 하지만 죽은 사람이 은행에서 금융거래가 일어난다면 금융질서 문란 행위다. 사망자 명의 계좌가 그것이다. 금융권과 소비자 어느 한쪽 이상의 고의성이 짙다. 최근 5년간(2018년 8월~2023년 7월) 국내은행 17곳을 전수조사했더니 세상을 떠난 사람 명의로 개설된 계좌가 1065건이나 된다. 실제 거래가 이뤄지고 비대면 대출 실행도 49건이 있다. 계좌·인증서 비밀번호 변경 등 제신고 거래는 6698건에 이른다. 은행을 방문해 사망확인서를 내거나 상속인 금융거래조회 서비스에 접속해 지급정지 신청을 해야 사망자로 간주하는 제도의 허점을 요리조리 파고든 것이다. 금감원이 들여다본 사망자 명의 예금 인출액은 7000억원에 육박한다. 실명 확인 및 관리 방안이 이렇게 허술하다.소정의 절차가 선행돼도 계좌에서 돈이 나가는 것만 막히는 부분도 보완해야 한다. 은행의 비대면 실명 인증 절차로는 정확하게 본인을 확인하지 못한다. 탐욕에 의한 것이거나 부주의이거나 적법한 위임절차 없이 죽은 자의 이름만 빌려 이용하는 불법은 용인할 수 없다. 은행원의 실적 쌓기용 유인책으로 사망자 명의를 만들어주는 추가 사례가 없도록 은행은 자체 점검을 강화하고 적법 위임 절차를 안 거쳤으면 합당한 제재를 받게 해야 한다. 특히 사망일 이후의 계좌 개설은 철저히 막아야 할 것이다.모바일뱅킹 이용 때 사망자의 신분증 사본을 활용하면 명의자 본인 여부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은행 안면인식 시스템 도입 등 사망자 명의의 금융 거래 차단을 위한 제도적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 사망자의 계좌가 활성 중인 것은 어떻게든 가족이 이용하거나 대포통장 등 금융범죄에도 악용된 것으로도 의심해볼 수 있다. 제3자가 적법한 위임절차 없이 예금을 찾거나 계좌를 금융사기 등에 이용하는 사례는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처벌할 형법, 전자금융거래법 등 관련 법령이 없는 것도 아니다. 비과세 혜택을 노리고 사망자 명의로 예금계좌를 개설하는 것이든 범죄 목적 악용이든 효과적으로 차단할 대책은 찾아야 한다. 금감원의 관리 감독 강화는 기본이다. 계좌 개설, 대출 등 사망자 명의의 금융계좌 사용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야 한다. 그게 금융 거래 질서에도 부합한다.

2024-02-05 14:32 사설 기자

[사설] 설 이후 2%대 물가 안착 가능해야 한다

반년 만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로 내려갔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2.8% 상승했다. 이전 추석 명절 무렵의 3.7~3.8%대에 단순 비교하면 괜찮은 성적이다. 정부가 1분기 전기요금을 동결한 데다 석유제품과 외식 등 서비스 가격 상승폭이 완화된 것이 결정적 요인이라고 본다. 하지만 제일 문제는 급등세를 보이는 사과와 배 등 과일 물가가 쉽게 안 잡히는 점이다. 중동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오름세를 보이는 것도 변수다. 자칫하면 2%대 물가 안착이 불가능할 수 있다. 설을 앞두고 시름이 커진 장바구니 물가를 보면 2%대란 사실이 얼른 믿어지지 않는다. 체감으로는 사과와 배 가격이 각각 56.8%, 41.2% 급등했다는 통계청 발표 그 이상일 것 같다. 귤, 딸기 등도 폭등이라 할 만큼 올랐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농산물·석유류 제외)만 중요한 게 아니다. 전체 물가를 떨어뜨린 근원물가와 별개로 서민들은 숫자상의 안정 기조와는 정반대의 양상으로 느끼기도 한다. 체감도가 높은 외식 물가도 그렇다. 장바구니 물가가 고공행진 중인 상황을 끝내는 게 그래서 중요하다.15.4%나 올라 두 달 연속 15%대로 치솟은 농산물이 둔화되지 않는 한 물가 안정을 장담할 수는 없다. 신선식품지수는 지난해 1월보다 14.4%나 올랐다. 워낙 뛴 물가가 6개월 만의 2%를 반신반의하게 하는 것이다. 겨울철 난방비 급등을 막은 게 그나마 다행일 정도다. 과일 가격의 강세 지속을 멈춰세워야 한다. 1년에 한 번 수확하는 과일이라 가격 하락이 쉽지 않지만 팔짱 낄 일이 아니다. 사이드 음식 등 물가지수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플레이션까지 겹쳐 있다. 부문별 온도 차가 아니라 회복과는 실제 거리가 있다. 겨울철 이상기후도 물가 불확실성을 가중시키는 중이다. 상반기 물가 안정에 대한 기대감과 전망이 엇갈리는 지금 잘해야 한다.국제유가가 더 오르면 설 이후 물가는 언제 3%대로 뛸지 모를 상황이다. 원자재 중심의 인플레이션 상방 압력도 주시해야 한다. 물가 통계의 비교 대상인 지난해 상반기에는 3~5%대의 고물가가 유지됐다. 기저효과로 보자면 물가가 안정됐다고 확신하는 건 성급하다. 2%대 물가의 조속하고 확실한 안착에 느슨해서는 안 된다.국민이 더 체감하는 것은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보다 단기 가격 변동성이 큰 부분의 물가다. 장바구니 물가로 불리는 농산물 가격 잡기에 보다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회복세를 예단하기 어렵다. 물가가 민생의 최전방인 현실을 환기해볼 때다.

2024-02-04 14:59 사설 기자

[사설] 포스코 차기 회장에 그룹 미래 달려 있다

차기 회장 선임을 앞두고 후보군 선발을 마친 포스코를 둘러싼 분위기가 복잡미묘하다. 기대감과 걱정이 교차한다고만 이원화할 수 없는 측면이 다분하다. 포스코홀딩스 CEO 후보추천위원회(후추위)가 6배수로 압축한 파이널리스트(최종 후보군)의 절반은 외부 ‘깜짝 인물’들이다. 내부 5명, 외부 7명이던 숏리스트(2차 후보군) 때나 내부 6명, 외부 12명의 롱리스트(1차 후보군) 때와 달리 숫자 조합이 동일해 기계적 균형에 맞춘 느낌마저 든다. 유력한 내부 주자가 다수 탈락하고 비(非)철강 출신이 포진된 것은 이례적이다. 이름을 올린 전·현직 포스코맨 3인과 외부인 3인은 나름대로 명망 있는 면면들이다. 그간 최종 후보자 명단에서는 포스코그룹 내부 출신이 압도적이었다. 아무래도 ‘호화 해외 이사회’ 건과 맞물린 사법 리스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최정우(현 회장) 라인’이 배제됐다는 시각이 틀리지는 않는다. 심사와 수사를 동시에 받게 되는 상황은 어쨌든 미덥지 않다. 미래 도약을 위한 전문성과 리더십 역량이라는 후추위의 결정 기준을 믿고 싶다.포스코로서는 예고된 일정대로 선임 절차를 완주해야 한다. 그게 더 낫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다만 이제까지의 과정과 심층 면접을 포함한 앞으로의 절차에서 공정성 시비가 격화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내부 출신 선발은 소유분산기업의 낙하산 인사 논란을 피하는 데도 일정 몫을 했다. 경기침체 직격탄에다 해외 철강재 유입량이 늘면서 그룹 정체성인 철강 사업 수익성이 악화한 것도 사실이다. 주주가치 훼손 우려까지 나온다. 단순히 전통이 깨진다기보다 회사의 뿌리인 철강을 포함해 회사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차원에서다.이번엔 순혈주의가 깨졌다는 시각이 최소 절반은 맞는다. 사상 두 번째의 외부 출신 회장 탄생을 미리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배터리와 무역 부문의 매출액이 성장한 포스코지만 철강은 주력 사업이다. 산업의 쌀인 철강의 경쟁력은 국가적으로 중요하다. 연구개발과 혁신에 강하고 미래 신산업에 관한 이해나 전문성까지 겸비한다면 당연히 좋다. 포스코그룹 CEO는 신사업으로 수익성 개선이 가능하고 철강 DNA를 가진 사람이 이끌어야 유리하다는 건 일반론이다.그룹 미래뿐 아니라 신사업 등 포트폴리오 확보 역시 철강이 중심에 설 때 안정적이다. 그러면서 공명정대함과 투명성 확보가 관건임을 거듭 강조한다. 내·외부인을 떠나 실적 악화 극복은 차기 회장이 헤쳐갈 지상과제와 같다. 다음주 심층면접과 3월 21일 주주총회에 국민적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2024-02-01 14:58 사설 기자

[사설] 국회 연금개혁 공론화위, 모수·구조개혁안 도출해야

국민연금을 ‘얼마나 더 내고 얼마를 받을지’가 안 들어간 ‘맹탕’ 개혁안을 내놓은 지 4개월째다. 1년여 간 치열한 논의를 거쳤다는 최종 방안이 그러했다. 연금 개혁 의지가 의심스러운 건 필연이었다. 방향성은 물론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목표치는 제시했어야 한다. 핵심 쟁점이 빠졌으니 팥소 없는 찐빵이나 다름없다. 3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출범식을 열고 공식 활동에 들어간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가 중점을 둘 일이 그만큼 선명해진다. 노동, 교육에 더해 ‘3개 개혁’으로 내세운 국민연금 개혁은 경제를 보듬는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짜는 일이다. 국회 연금개혁 공론화위가 공론화 결과 발표를 할 때는 내는 돈(보험료율)과 받는 돈(소득대체율)을 구체화한 윤곽이 나와야 한다. 느슨해진 개혁의 고삐를 다잡고 모수·구조개혁안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근로자, 사용자, 지역가입자로 구성된 의제 숙의단과 시민대표단의 공론 형성 과정을 주목하고자 한다.예민한 숫자는 빼고 ‘공론화’의 이름으로 국회에 넘겨져 할 일이 적지 않다. 연금 정책에 왜 변화가 있어야 하는지는 여러 경로로 입증되는 사안이다. 현행 연금 제도가 유지된다면 50여년 뒤 정부 부채 규모가 GDP의 2배 수준에 달한다는 국제통화기금(IMF) 경고도 그중 하나다. 가족 내 노인부양의 원리를 사회적으로 넓힌 것이라고 치환하면 답이 명료해진다. 돈 받을 인구는 급증하고 돈을 낼 경제활동인구는 급감한다. 할지 말지를 택할 여지는 없다. 개혁의 부담도 나눠 가져야 경제 체질도 바꿀 수 있다. 재정을 안정되게 끌고 갈 공정한 룰을 지금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공론화 의제에서 모수 개혁,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관계 재설정은 기본이다. 고갈된 부족분을 국민 세금으로 충당하는 공무원·군인연금, 그리고 사학연금 등 직역연금조정 구조개혁도 담겨야 할 내용이다. 정부가 하기엔 힘이 부칠 수 있는 부분이어서 갈래를 잘 타야 한다.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가 지난해 제시했던 두 가지 모수개혁안을 포함해 폭넓게 논의의 장으로 끌어내야 할 것이다.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 5월 말 이전에 합의안 도출 시간표를 여야가 지켜야 한다.4·10 총선거 결과에 따라 연금개혁 동력이 붙거나 떨어질 수는 있다. 고통 분담을 수반하는 민감한 문제라고 피해갈 수는 없다. 실현가능성과 지속가능성을 모두 담보할 대안에 드라이브를 거는 것이 국회 연금 공론화위의 임무다. 구체적 선택지가 전무하다며 다시 맹탕을 만들거나 설익은 구조개혁안만 일단 던지고 보자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2024-01-31 14:02 사설 기자

[사설] 새 보금자리론도 가계부채 늘리면 섣부른 정책 된다

30일 보금자리론이 하루 전(29일) 종료된 특례보금자리론의 자리를 대신해 출시됐다. 특례보금자리론 이전의 보금자리론 수준을 적용하면서도 개편된 형태다. 신혼부부와 다자녀에 완화된 요건을 적용하고 전세사기 피해자는 연 최저 3.20%로 이용 가능하다. 특례보금자리론과 비교할 때 공급 규모를 줄인 것도 이번 보금자리론의 특징이다. 정책 효과와 부동산 시장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정책 모기지(주택담보대출)가 나올 때마다 신경 써야 할 첫째 항목은 가계대출 관리목표다. 특례보금자리론을 비롯한 정책자금대출이 주택담보대출 증가의 요인 중 하나였다. 이번 역시 하루 간격으로 출시된 신생아 특례 대출과 나란히 가계부채 관리의 위험수위를 끌어올릴 요인이 있다. 고금리 경기침체 시기에 부동산 투기처럼 변질될까 두렵기도 하다. 금융당국과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등 유관부처가 운영하는 주택정책금융 협의체에서 공급속도를 잘 조절해야 한다. 꾸준한 모니터링은 필수다.멀리 갈 것 없이 무주택자들의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어 당초 계획을 훌쩍 넘긴 특례보금자리론은 지금 반면교사가 된다. 서민과 실수요층을 챙기려면 어느 때보다 균형 있는 접근이 중요하다. 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영끌’에 지금 안 사면 못 산다는 패닉 바잉 열풍(panic buying)을 부채질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고금리 정책도 3년째 이어진다. 개편은 했으나 특례보금자리론 출시 이전 수준과 본질 면에서 다르지는 않다. 새 보금자리론도 섣불리 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국제통화기금(IMF)도 가계 빚 증가 원인으로 주택 관련 정책금융 확대를 지목하고 있다.그 결과를 거꾸로 적용하면 답이 유추된다. 연간 10조원(최대 15조원) 규모의 보금자리론과 총 27조원의 신생아특례대출 등 주택자금 공급을 늘린 것이 불씨를 키우지 않아야 한다. 여기에 청년주택드림대출까지 있다. 경험으로 미뤄 GDP 증가율 범위 이내 또는 가계대출 증가율 1.5~2% 등 일정 수준으로 관리하겠다는 목표를 지키기 쉽지 않다. 특례보금자리론의 실책을 보면 지나친 자신감에서 비롯된 측면이 눈에 띈다.금융당국은 대출 수요를 자극하지 않게 공급속도를 조절한다는 입장이다. ‘부동산은 지금이 바닥’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시장에 보내는 일도 없어야 한다. 고소득층을 포함한 국민 다수가 아닌 서민층 중심의 주택금융 제공이지만 위험성은 여전하다. 본의와 달리, 집값은 정부가 떠받칠 테니 ‘빚내서 집 사라’의 부동산 기조가 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가계대출 관리의 새로운 변수라는 점을 경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2024-01-30 14:18 사설 기자

[사설] 중견기업 ‘피터팬 증후군’ 유예기간으론 부족하다

중견기업특별법(‘중견기업 성장 촉진 및 경쟁력 강화에 관한 특별법’)이 한시법의 꼬리표를 떼고 상시법으로 제도화했다. 중소기업 지위 유지 기간을 연장하는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최종 통과한 것도 다행스럽다. 바뀐 중소기업기본법을 토대로 중소기업의 중견기업 진입 유예기간은 기존 3년에서 5년으로 늘어난다. 그 기간만큼 중소기업 수준의 혜택을 더 받는다. 중견기업이 됐을 때 예상치 못한 피해를 줄여주기 위해서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중소기업으로 돌아가기를 검토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중소기업으로 회귀한 중견기업 수는 2017년 40개사에서 2021년 92개사로 증가했다. 실제로 세금상 혜택 등 중견기업이 더 크게 성장하기 위한 실효적인 지원 면에서는 허약하기 이를 데 없다. 기준이 달라졌다고 지원이 갑자기 줄면 기업은 일종의 ‘피터팬 증후군’을 앓을 수밖에 없다. 현장의 필요에 부응해 관련 정책을 전환하고 다른 법과 맞지 않는 부분은 과감히 조율해야 한다.매출액 1500억원 혹은 자산 5000억원 초과라는 기준에 따라 중견기업이 되면 그때부터 불리해지는 건 세제 지원만이 아니다. 하루아침에 공공조달 시장 참여, 인력 지원 등이 중단된다. 그러면서 규제는 강화된다. 2022년 중견기업에서 벗어난 432개 기업 중에는 대기업으로 성장한 곳도 있지만 중소기업으로 회귀한 곳도 많다. 다양한 원인을 요약하면, 신생 중견기업의 안정적인 성장을 잘 받쳐주기 못해 생긴 일이다.제조업 비제조업을 통틀어 528개 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신규 진입했다. 중견 상용소프트웨어 기업에 다수공급자계약 제도 적용을 앞두고 중소기업에 머무르려는 것이 그러한 예다. 기업이 성장 제한을 고민하지 않도록 가점 부여 등 인위적인 지원이 아쉬운 대목이다. 기업 지위 간 차등을 두는 목적이 기업을 어렵게 만들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중견기업을 법적 카테고리에 담은 것으로 만족하지 않기 바란다. 매출액 기준을 완화해 중소기업 범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온다.중견기업들은 조세 혜택, 금융 지원에 가장 목말라 하고 있다. 사회·경제적 위상을 키우고 혁신성장이 가능하며 각 전문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도록 키우는 방법이 무엇이겠나. 중소기업 지위를 유지할 기간을 늘려주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대기업·중소기업 사이 샌드위치 같은 신세가 아닌, 전체 기업의 등뼈 같은 존재로 키워내야 한다. 중견기업이 다운그레이드를 검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매출 1조원 이상 우량 중견기업으로, 그리고 대기업으로 업그레이드가 가능하게 해야 한다.

2024-01-29 14:22 사설 기자

[사설] K-반도체 '장밋빛 전망'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

글로벌 경기 침체 때보다 골이 깊었던 반도체 시장 침체를 뚫고 훈풍이 감지된다. 메모리 반도체 제품인 D램과 낸드플래시 모두 1년 내내 평균판매가격을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이를 뒷받침한다. 메모리 반도체 업황도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올해 근거 있는 전망의 핵심 모멘텀은 ‘AI 붐’일 것이다. 더블 데이터 레이트(DDR)5,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고부가 제품의 수요 급증에 더해 가격 상승만큼 호재는 없다. 작년 4분기에 5분기만의 흑자 전환에 성공한 SK하이닉스가 이를 선제적으로 보여줬다.올해 인공지능(AI) 전방 산업이 본격 꽃을 피울 것은 확실시된다. 그럴수록 우리와 반도체 시장 주도권을 다투는 주요국 동태도 잘 살펴야 한다. 막대한 정부지원금으로 내수시장을 키우는 중국, 여기에 반도체 규제를 내놓고 견제에 나서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커지면 공급망 압박이 거세진다.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를 굳히려는 대만은 연초부터 최첨단 1㎚(나노미터·10억분의 1m) 웨이퍼 생산공장 추가 건설 의지를 밝히고 있다. 이 같은 글로벌 반도체 기술 패권의 선공만 허용하면 안 될 입장이다.인공지능 반도체에 햇빛이 들지만 PC, 스마트폰 등 기타 반도체의 현재는 밝지 않다. 3~4년 전 서버 출하량에 실적 반등을 맡기던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사방에 반도체 생태계 중심국 부상을 꿈꾸는 유럽연합(EU) 등 쟁쟁한 경쟁국들이다. 30년 전의 영광은 사라졌지만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이라는 확실한 무기가 있는 일본도 올해 반도체 강국으로 완벽한 부활을 꿈꾼다. 역시 얕봐서는 안 된다.다시 ‘장밋빛’ 섞인 전망을 하면,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작년 4분기부터 전 분기 대비 15% 이상 상승했다. 올 1분기에도 모바일 D램을 중심으로 20%가량 상승 여력이 있다. D램과 낸드 모두 2분기에는 오르리라 전망되며 그다음은 전통적인 성수기인 3분기다. 그렇지만 낙관은 금물이다. 메모리 반도체 수요 증가에도 반도체 회복 사이클이 조금 늦어질 수는 있다. 우려가 아직 덜 가신 상태다.올해는 특히 생산량 조절 전략, 즉 감산 정책을 적절히 구사하면서 AI 시장 확대에 따른 공급 부족에 대비해야 한다. 일어날 확률은 낮지만 일단 발생하면 큰 충격을 가져오는 블랙 스완이 도처에 있다. 충분히 예상되지만 간과하기 쉬운 회색 코뿔소에도 대비해야 할 한 해다. 실적 풍향계 역할을 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의 좋은 성적표를 고대해본다. 기술 초격차부터 시장 선점까지 우리가 앞서야 한다.

2024-01-28 13:11 사설 기자

[사설] 상업용 부동산 공실률 해소 시급하다

지난해 상업용(오피스·상가) 부동산 임대료가 오피스는 상승했고 상가는 하락했다. 25일 발표한 한국부동산원 분석에서 관심 가져야 할 부분은 공실률이다. 중대형 상가 13.5%, 소규모 상가 7.3%, 집합상가 9.9% 등 공실률은 경기 침체의 바로미터가 된다. 공실률 상승은 상권 침체 등 여러 여건을 반영하며 부동산 가치도 떨어뜨린다. 같은 서울이라도 여의도권이나 강남권과 도심권역이 다르다. 도산대로, 광화문, 용산역 일대의 중심업무지구 임차 수요가 높을 건 당연하다. 상가 임대료는 대체로 하락했다. 투자수익률 면에서 중대형 상가는 경기와 대전이 높고 소규모 상가는 충남이 높지만 도심과 외곽지역의 결은 다르다. 지방으로 갈수록 자연 공실률에서 멀어진다. 신도시의 경우 상권 쇠락보다 애초에 수요와 공급을 예측하지 못한 도시계획에도 기인한다. 잘못된 도시의 확장 방식에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세종시의 1인당 상가 면적이 위례신도시나 미사신도시의 두 배 가까운 것은 상업기능 허용 용지를 적정하게 계획하지 못한 사례에 넣을 수 있다. 전문업체가 아무리 좋은 점포를 갖춰도 주변 상권이 성숙하지 않으면 비어 있을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상권이 아닌 까닭이다. 부동산원의 분석을 토대로 지방자치단체별로 빈 가게가 늘어나는 지역의 특성을 일원화하지 말고 다각적으로 분석했으면 한다. 쉽지는 않지만 최고의 해결책은 상권 활성화다.부동산이라고 다 같은 부동산이 아니라 하듯이 공실률도, 투자수익도 천차만별이다. 전국 상업용 부동산의 연간 투자수익률 하락에는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자산가치 하락이 작용한다. 필요하다면 특정 상가들을 집적해 쇼핑객을 모을 수 있는 상품 구성과 통합 관리에 준하는 지원까지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모든 유형의 상가 공실률이 나빠진 원인을 공급이 증대돼 수요를 초과한 데서만 찾으면 안 된다. 공실률 증가는 경제활동이 줄고 시장 불확실성이 증가한 것으로 치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상업용 부동산 공실률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불황이다. 상업용 중 오피스의 전국 평균 공실률이 전년 대비 0.6%포인트 낮아졌지만, 그래도 8.8%다. 주요 상권에 입지하고도 공실이 발생하는 오피스나 상가라면 그 해소를 위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공실 상태가 오래 지속된다면 용도변경이나 상권 조성 등 적극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번 발표에서 다시 볼 것은 상권 침체와 지역경제 악화의 부작용이다. 공실이 몰리는 지역이 따로 있는 ‘평균의 이면’을 특히 더 유념해서 봐야 한다.

2024-01-25 13:36 사설 기자

[사설] 메타버스 ‘규제 리스크 ’숲을 보는 자세로 풀자

초현실 가상세계를 일컫는 메타버스(Metaverse)가 새로운 기술동향으로 주목받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미래 성장동력이라는 평가에 힘입은 것이다. 전망과 달리 뚜렷한 우하향 그래프를 그리면서 연초부터 분위기가 급전직하로 떨어진다. 업황 악화와 실적 부진으로 메타버스 자회사의 전사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한 곳까지 있다. 너무 빨리 관심권에서 멀어져 간다. 그럼에도 ‘아마도’ 거의 모든 산업이 메타버스와 융합해 가치를 창출할 거라는 기대는 아직 유효하다. 한때 주가 급등의 재료였던 메타버스 관련 회사의 주가가 떨어지면서 거품 논란과 함께 사업 타당성이 의심받는 건 어느 정도 사실이다. 여하튼 차세대 산업으로 주목받는 메타버스를 당장의 먹거리에만 매달리느라 애물단지로 전락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이 순간에도 애플의 ‘비전 프로’ 출시로 XR(확장현실) 시장 경쟁도 본격화할 기세다. 시야를 넓혀 글로벌 빅테크 간 경쟁을 보면 짐작이 가는 일이다.이러한 때 메타버스 콘텐츠에 대한 게임산업법 적용 논의는 찬물을 확 끼얹는 구실을 한다. 게임 요소(gamification)가 있는 메타버스, 즉 메타버스에 게임을 얹으면 등급 분류에서 예외를 두지 않는다는 뜻을 헤아리지 못할 바는 아니다. 게임적 성격이 강한데 신산업이라고 규제에서 제외할 수 없다는 논리도 일리는 있다. 그런데 게임법 적용을 받는 순간 달라진다. 산업적 성장에 발목 잡힐 것이 훤하게 내다보인다. 이는 곧 해외 진출과 투자받을 기회의 상실을 앞당긴다. 안 그래도 실체 없이 투기자금만 몰린다는 비판이 있다. 게임산업법 규제 적용은 매우 곤혹스러운 처지를 만들 것이다.이동통신 3사의 경우, 메타버스 플랫폼에 미니게임을 장착한 것은 다분히 고객 유입 전략이다. 흥미 유발을 위해 게임 요소를 가미한 융복합 콘텐츠라는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메타버스는 코로나19 엔데믹과 상관없이 비대면 서비스를 발전을 이끌 주요 기술이다. 확신을 가져볼 때다. 메타버스 산업 발전과 협력을 촉진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찾으면서 메타버스 얼라이언스에 공들여야 한다.게임산업법이 적용되면 본인 인증, 과몰입 방지, 등급 분류 같은 규제가 따를 것이다. 그러면 해외 이용자 유입이 어렵고 미래 먹거리로서는 불리해진다. 메타버스 내 게임을 게임법 틀에 가둘지, 신산업발전을 고려해 기존 게임 규제에서 뺄지 갈래를 타는 기준이 꼭 고민스럽지만은 않다. 메타버스 산업을 진흥하려면 개방형 혁신(오픈 이노베이션)이 필요하다. 이러한 ‘숲’을 보는 자세가 있다면 말이다. 나무와 숲을 같이 못 보는 규제는 사업 축소로 가는 길이다.

2024-01-24 14:00 사설 기자

[사설] 실효도 후생도 없는 ‘단통법’, 폐지 방향은 옳다

시행 10년째를 맞는 ‘이동통신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의 폐지가 추진된다. 시장 경쟁을 촉진해 휴대전화 구매 비용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단말기 유통과 보조금 지급을 투명하게 해 소비자가 차별받지 않도록 하자는 2014년 단통법 개정 때의 취지가 반복 재생된다. 시행과 폐지가 묘하게 비슷한 논리다. ‘개선법’이 개선에 기여하지 못한 까닭이다. 단말기 유통법의 제일 큰 실책은 서비스 및 요금 경쟁을 잘못된 방향으로 유도한 것이다. 처음 시행 당시엔 불법 보조금이 횡행하던 단말기 유통시장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 방법은 유용하지 못했다. 구입 지원금 한도를 설정함으로써 비싼 휴대전화 가격을 조장했다. 판매점 추가지원금을 통신사 공시지원금의 15%로 제한해 과열 마케팅을 줄인 건 부인할 수 없다. 누구는 공짜 단말기를 사고 누구는 호갱(호구+고객)이 되는 소모적 보조금 경쟁은 사라졌다. 하지만 비싼 출고가는 가계 통신비에 안 좋은 영향을 미쳤다. 차별적인 보조금 지급금지와 보조금 상한제로 소비자 후생이 줄었다. ‘평등하게 비싼 가격’으로 단말기를 사는 결과를 낳은 게 문제였다.정부의 단통법 폐지 추진 발표가 다섯 번째 생활규제 개혁 관련 민생토론회의 결과물인 데서 보듯이 단말기 유통구조는 부단히 개혁 과제였다. 시장경제의 기본 원칙인 자율경쟁을 막는 일률 규제법은 규제혁파를 외치던 와중인 박근혜 정부 시절 만들어졌다.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될 때는 유통시장 건전화라는 가치판단으로 잔뜩 포장됐다. 그 이후, 통신사업자는 혼자 배 불리는 걸로 오인받고 소비자는 공짜폰의 추억으로 늘 손해 보는 기분이 들었다. 쏠림 현상이 심한 시장에서 불리한 조건을 달아 실질적 경쟁을 유도하는 유효경쟁 면에서도 실패했다. 규제가 아닌 시장 경쟁과 자율적 선택이 소비자에게 진정 도움 된다는 교훈 하나쯤 챙기고 폐지 수순으로 가는 게 옳은 방향이다.단통법이 전면 폐지돼도 이동통신사의 마케팅 비용 부담은 그렇게 큰 폭으로 늘지 않을 수 있다. 단말기 시장 경쟁이 상당히 안정화돼 있어서다. 단통법 폐지 추진 역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과점시장인 단말기 제조업이나 이동통신서비스 시장의 출혈경쟁의 소지를 남기지 않아야 폐지 실익이 있다. 21대 국회가 얼마 남지 않아 유동적이지만 ‘공정한 시장경쟁’을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법 개정작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은 이번에도 같다. 정부 기대와 전혀 달리 최소 9년 이상 ‘당초 예상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폐지 사유로는 부족함이 없다.

2024-01-23 14:06 사설 기자

[사설] 수출 비중 30% 육박… ‘경공업 2.0’을 대하는 자세

제조업에서 경공업 제품군의 비중은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 중심으로 산업이 개편된 이래 꾸준히 감소하고 있었다. 이러한 기조에 변화가 생겼다. 화장품과 식품 등 소비재 수출이 굳건한 성장세를 이어가는 것은 특기할 만하다. 한국무역협회 K-stat 통계로는 지난해 경공업 제품 수출 비중은 29.8%를 기록했다. 30%에 육박한다. 1993년(30.0%) 이후 30년 만의 최고치다.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 시장 등으로 뻗어나가는 한류와 K-콘텐츠에 힘입은 바 크다. 시장 개척의 동인으로 잘 살려야 할 ‘열풍’이다. 그러면서도 마냥 즐거워할 수만은 없는 측면이 있다. 한때 32%까지 이르던 정보기술(IT) 제품 수출이 지난해 20%를 밑돌았다. 30년 만의 최저 수준이다. 1990년대 이래의 주력 산업 성장, 2000년대 이후 IT·첨단산업 수출 전선, 무엇보다 IT 강국 대한민국 위상에는 적잖이 금이 가는 일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경기에 민감한 중간재의 수요 부진이 일시적이길 바라는 이유다.지금의 ‘반전’이 머리카락과 다람쥐, 은행잎까지 모아 저가로 팔던 시절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북미, 유럽 등 선진국 주류 사회에서의 한국 뷰티 제품의 인기는 고품질에 기인한다. 그에 비할 때 전체 수출의 약 5분의 1을 차지해온 핵심 수출품 반도체의 부진은 뼈아프다. 미국, 중국, 일본, 독일, 대만 등은 산업 수출 중 6대 산업의 비중이 늘어나는데 우리가 줄어드는 게 더욱 문제다. IT 제품, 중공업, 중국 시장이 트렌드였던 우리 산업 구조의 대변화나 제품 생산지의 해외 이전 등 요인들을 물론 감안해야 한다. 어떻든 수출시장에서 반도체, 이차전지, 미래차 등 6대 국가 첨단전략산업 점유율이 2018년 8.4%에서 2022년 6.5%로 밀리는 점은 심각성이 있다. 수출 지형 변화와 구분해 대응할 문제다.소비재가 다시 주력 수출품에 합류해 주목받는 경공업, 뿐만 아니라 중화학공업. 중공업, 첨단산업은 모두 소중하다. 뷰티업계가 해외 진출의 날개를 달고 경공업 제품 수출을 늘려 반갑다. 경공업 2.0 시대로 일컬어도 좋을 성과다. 그것이 주력산업 몰락과 신성장산업 실종의 반사적인 결과물로 흘러서는 안 된다. 폴란드에서 방산 수출 수주 잭팟을 터뜨리고도 국회 입법 지연으로 2차 수출 계약에 발목이 잡혀 쩔쩔매고 있으니 안타깝다. 첨단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경제 혁신이 정말 절실하다. 22일 관세청 집계로는 올해 20일간 교역량이 저조하다. 이제 시작이다.경공업과 IT 및 중화학공업이 쌍끌이 전략으로 가는 수출 플러스 기조를 기대해본다.

2024-01-22 14:15 사설 기자

[사설] ‘육아휴직 빈부격차’부터 없애야 한다

육아휴직자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육아휴직을 한 아빠가 5만명을 넘어선 것은 남성 육아휴직 활성화의 상당한 진전이다. 그런데 기업 5곳 중 1곳(20.4%)은 육아휴직 활용이 불가능하다. 유무형의 불이익이나 동료 눈치 등에 발목 잡힌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로 보면 사업장 규모에 따른 격차는 여전히 크다. 육아휴직이 필요할 때 모두 사용 가능한 사업체는 전체의 절반(52.5%)을 겨우 넘어선다. 육아휴직을 누구나 쓸 수 있는 사업체의 비율이 계속 증가해도 기업 규모별로 격차가 뚜렷한 것이 문제다. 2022년 기준으로 중소기업 육아휴직 비율은 절반에 못 미친다. 전체 근로자의 80%를 차지하는 종사자 수를 생각할 때 정책적 중점을 둬야 할 부분이다. 여성의 출산 전후 휴가, 배우자 출산휴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등 모든 제도에서 그렇다. 일과 양육을 병행할 정부 지원에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육아휴직 빈부격차’가 심하다. 이제 ‘사내 복지’ 차원 이상으로 격상시켜야 할 것 같다.개선됐을 것 같으면서도 전과 다름없는 제도의 벽은 그대로 버티고 있다. 3+3 부모 육아휴직제를 6+6으로 확대하고 통상임금을 지급해도 제도를 못 따라가면 결과는 늘 미미하다.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승진이 늦어지는 기업이 전체의 절반 가까이 된다. 육아로 쉬는 기간의 전체 또는 일부를 산입하지 않아 불이익을 주는 것은 엄연히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이다. 이때의 휴직 기간을 근속시간에 포함할 뿐 아니라 우회적인 승진기회 차단도 막아야 한다. 육아휴직을 쓴 만큼의 승진 지체나 소득 감소는 휴직을 막는 결정적인 사유가 된다. 휴직이나 급여액이 절대적인 출산 장려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더라도 자유롭게 사용하고 승진 등에 영향이 없게 해야 한다. 볼모처럼 된 육아휴직 사후지급제도는 폐지하는 게 타당하다.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여야 모두 공약 대결에 시동을 걸고 있다. 육아휴직급여액 인상이 출산율에 단기적인 효과만 미쳐선 안 된다. 저출산 극복 예산을 지금까지 주거 지원에 썼지만 이렇다 할 효과는 없었다. 임신과 출산 결정에는 복잡한 메커니즘이 있다. 심지어 부성휴가가 출산율을 낮춘다는 복지선진국들의 사례도 나온다. 고비용 교육, 부동산 가격 등 출산을 미루는 요인은 다양하다.합계 출산율이 0.78명인 초저출산 시대 종식을 위한 노력이 다각적이어야 하는 이유다. 부모 맞돌봄 문화 확산은 기본이다. 육아휴직 양극화를 없애면서 일과 육아의 양립 지원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2024-01-21 14:13 사설 기자

[사설] ISA 비과세 한도 대폭 상향해도 괜찮은가

서로 공존하며 살아가는 것이 ‘상생(相生)’이다. 상생금융을 내세운 ‘민생’ 내용 중엔 걱정스러운 부분도 있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의 비과세 한도 대폭 상향이 그중 하나다. 배당이나 이자소득 비과세 범위를 현행 200만원(서민형 연 400만원)에서 500만원(서민형 연 1000만원)으로 2.5배 확대한다. 납입 한도는 연 4000만원(총 2억원)으로 2배 늘어난다. ‘상생의 금융, 기회의 사다리 확대’라는 테마에 ‘자본시장 활성화’ 명분까지 곁들인 정책이다. 국내 투자형 ISA, 즉 국내주식과 펀드에만 투자하는 상품도 별도 신설한다. 재산 형성을 돕는다는 취지는 알겠는데 서민 목돈 마련과 직장인 세(稅)테크에 활용되는 대표적 절세형 투자상품을 꼭 이래야 하는지, 분리과세만 적용하더라도 금융소득종합과세자 가입을 허용하는 확대 방향이 바람직할지 의문이다. 한 달도 안 돼 쏟아진 20여건의 감세와 현금성 지원 등의 연장선에서 문제점이 짚어지는 건 사실이다.그럴싸하게 포장해도 선심성 부자감세, 총선용 포퓰리즘 대책이라는 시각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금융투자소득세의 경우도 그렇다. 부과 대상은 전체 투자자의 1%도 안 되는데 세수는 1조원 이상 줄어든다. 시중은행 상생금융도 뒤집어보면 실적 타격을 동반한다. 8년 전 ‘이사(ISA)할 고객’이 많을지 반신반의하며 도입된 ISA에는 그래도 488만명 이상이 가입했다. 주식, 리츠, 펀드, ELS(주가연계증권), RP(환매조건부채권) 등 여러 상품을 계좌에 담는 이점에 투자금액이 23조원을 넘어섰다. 손댈 일 있다면 순기능을 잘 살리도록 보완하면 된다.중장기적 자본 선진화 방안 대신, 반짝 눈길을 끄는 졸속 대책으로 경제난을 돌파할 수 없다. 이번을 포함해 한 달 새 발표된 대책들의 소요 재원은 분석된 것만 10조원 이상에 이른다. 재정 적자에도 펴는 감세 정책은 조세 원칙 훼손, 또 다른 코리아 디스카운트 유발 요인이 될 수 있다. 제도 개편 또는 개혁의 이름으로 ISA 세제 혜택까지 늘리면 세수 감소 폭은 더 커진다. 혹시라도 4월 총선만 잘 치르면 끝이 다 좋다는 허상은 버려야 한다.실현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ISA 혜택 확대를 포함해 최근 발표 대책의 절반 이상은 국회에서 관련법 개정을 거쳐야 한다. 실효성은 그만두고 현실적 입법 여건에서 속도 내기 어려운 구도다. 총선 3개월을 안 남긴 시점의 무원칙한 감세 정책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더 밀어내지 않은지 생각해볼 문제다. ‘상생’이 만능열쇠는 아니기 때문이다.

2024-01-18 14:08 사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