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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설] 중국 이커머스 ‘습격’, 유통정책 개선으로 막아내야

글로벌 전자상거래(이커머스) 기업들의 국내 진출이 매섭도록 공격적이다. 눈여겨볼 것은 글로벌 이커머스 플랫폼의 국내 유통업 진출 확대와 한국의 해외전자상거래 적자폭 확대다. 중국 이커머스 빅3사의 시장 성장률은 17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의 5년간 글로벌 이커머스 시장 현황 분석 결과에 잘 나타난다.한국 이커머스 시장에서 중국 업체 영향력이 커진 1차 요인은 가격 경쟁력 차이다. 이것이 중국 이커머스 주요 3사의 최근 5년간 연평균 성장률 41%의 탄탄한 밑천이다. 중간 유통을 없애고 소비자에게 직접 전달되는 C2M 유통방식의 강점을 왜 중국 기업이 월등히 높게 누리는지는 숙고해볼 일이다. 저가와 획기적인 배송 시간 단축, 여기에 품질과 기술력까지 제대로 장착하고 한국 시장을 난타했을 경우까지 대비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 이미 그럴 단계에 왔다.한국 시장이 물류 인프라가 탄탄하고 정보기술과 친숙한 성향은 글로벌 업체들에게 매력 요인이다. 소비자 후생 측면에선 값이 싸기 때문만은 아니고 전격적인 한국화 전략의 효과라고 봐야 한다.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면서 유통산업발전법은 경쟁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고치는 게 맞다. 한경협이 지적하듯이 영업시간 제한이나 온라인 구매 배송에 대한 규제가 중국 플랫폼 영향력 증대에 일조한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중국 이커머스 급성장에는 기술력 축적과 물류 경쟁력 제고, 원가 절감 등 우리가 약한 강점이 있음을 아울러 인정해야 한다. 진입장벽은 갈수록 낮아진다.국내 유통·제조업 위기에는 규제 완화로 풀 수 있는 부분이 찾아보면 많다. 자체브랜드(PB) 상품을 부당하게 우선 노출했다는 쿠팡과 관련한 제재도 그러한 사례일 수 있다. 제품 진열 방식을 제한하면 산업을 위축시키고 가성비를 찾는 소비자를 외면하는 결과가 된다. 중국 이커머스 습격에 따른 국내 이커머스 업계의 타격은 납품하는 중소 제조업체의 기반까지 흔들게 된다. 중국 이커머스의 약점을 적절히 구사하는 전략도 필요하다.5년 만에 2배 성장한 글로벌 이커머스 시장이다. 향후 5년은 그 속도가 더 빨라진다. 국내 이커머스 빅3 쿠팡과 G마켓, 11번가 등의 뒤를 쫓는 이커머스 업체를 따돌릴 K-커머스 생존전략을 찾아 나설 때다. 미국은 아마존을 밀어주고 중국은 알리, 테무 등을 밀어주는데 우리는 규제에 진심 아닌가. 한국의 해외 전자 상거래는 지난해 적자폭이 5조1000억 원에 이른다. 국내 업체에 절실한 건 규제 완화와 지원·진흥이다. 아무리 못해도 유통 경쟁력을 위축시키는 역차별은 없게 정책을 펴야 하지 않을까.

2024-06-17 13:40 사설 기자

[사설] 현대차 인도 IPO 신청, 현지화 전략 기대 크다

현대자동차 인도법인이 인도 증권거래위원회에 기업공개(Initial Public Offering, IPO) 신청서를 제출했다. 올해를 인도 전기차 공략의 원년으로 삼는 현대차그룹의 성장에 있어서 하나의 분기점이다. 인도 시장의 특수성, 그보다 친환경차 중심으로 재편되는 인도시장에 대한 현지화 전략과 관련해서 중요한 ‘신의 한 수’가 될지 주목된다. 상장 가능성은 크다. 성사가 되면 국내 최대 완성차업체의 해외 진출에 날개를 다는 격이다. 수익성 면에서도 1분기 매출 2조7675억원, 당기순이익 2673억원을 기록한 현대차 인도법인(HMI)은 현대차 미국법인(HMA) 다음의 순이익을 낸 곳이다. 인도는 중국과 미국에 이은 세계 세 번째 자동차 시장에 오르기도 했다. 이제부터는 인도 국민의 차급 구조 변화에 맞는 전략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 경형·소형을 완전히 놓지 않으면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 고부가가치 차종 비중을 높이는 전략을 섞는 방향이 좋을 것 같다.기업공개 신청은 인도를 중시하는 평소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강조한 신념과 다르지 않다. 다만 언제까지나 저렴한 인건비와 규모의 경제를 통한 원가 절감에만 기댈 수는 없다. 중국의 BYD, 볼보 등 완성차 업체들이 즐비한 현실에서 현대차그룹의 인도 현지 위상을 높이는 건 중요한 시금석이다. 인도 증시 상장은 현대차가 자체 조달로 생산라인 증설과 전동화 전환 투자를 하기 위한 필수 코스로 여겨진다.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글로벌 수출 허브 육성의 분기점으로도 삼아야 한다.현대차가 인도를 핵심 사업장으로 낙점한 제일의 이유는 인도 시장이 갖는 성장성 때문일 것이다. 현대차는 인도에 생산 공장을 세우고 27년 동안 해마다 기록을 고쳐 쓰고 있다. 경제성장과 주당순이익 증가로 성장 전망도 긍정적이다. 인도 현지에 동반 진출한 한국 부품사들까지 덩달아 호실적이다. 전기차 현지화 기업에 지원을 내놓고 있는 것은 인도 정부라고 예외가 아니다. 수혜를 넘어 현지화 전략은 글로벌 위상 강화의 다른 말이다.현대차는 인도 증시 입성을 통해 인도 전역에 투자를 늘릴 뿐 아니라 그룹 전체의 글로벌 위상을 더 키워야 한다. 인도 증시 진입의 또 다른 의미는 국내 기업이 해외 업체를 인수해 상장한 사례가 아닌 지분 100%를 확보한 해외법인이라는 점에서다. 국내 다른 기업에 좋은 모델이 되리라 믿는다. 현대차 인도 법인이 인도 증시 기업공개 절차를 예상대로 무난히 거쳐 꼭 입성하기를 기대한다.

2024-06-16 14:21 사설 기자

[사설] 의사만 믿는 환자 봐서라도 의협 휴진 철회해야

의료 공백 사태가 더 악성으로 치닫고 있다. 개원의 중심의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선언한 18일 전면 휴진과 총궐기 대회 개최를 앞두고 누구보다 환자와 그 가족들이 걱정이다. 동네 의원인 1차 의료기관부터 대학병원인 3차 의료기관에 이르기까지 대규모 ‘셧다운’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빅5 병원을 비롯해 고대의료원 등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이 집단 진료거부에 힘을 싣고 있어 큰 부담이다. 고소, 고발이 “의사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환자들에게 더 나쁜 결과를 부를까봐” 주저하던 환자단체들조차 의대 교수를 향한 법적 검토를 시사하고 있다. 정부는 면허정지 행정처분 중단 등 의대 증원 빼고는 사실상 양보 가능한 카드를 다 꺼냈다. 어찌 됐든 법과 원칙이란 기존 원칙을 후퇴시키며 해결하려 했다. 2월 20일부터 지속된 이 사태에 의사들이 결단해 출구를 찾을 차례다. 그 판단 기준은 의사만 믿는 환자여야 한다.보건의료노조 여론조사 결과로는 국민 86%가 전공의와 의대 교수들이 환자 곁으로 돌아오라는 호소를 지지한다. 어느 병원에 걸린 대자보 ‘히포크라테스의 통곡’ 내용대로 “휴진으로 고통받는 이는 예약된 환자와 동료뿐”이다. 의사제국(醫師帝國)이란 표현이 왜 등장하는지 자숙해볼 일이다. 향후 인구 감소 시 정원 감축 약속, 전공의 근무조건 개선 등의 반대급부를 챙길 기회를 덩달아 놓치고 있다. 환자 권리를 배반하지 않으면서 의료계의 묵은 문제들이 뒤로 밀려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래야 정당성을 얻는다.2월 20일을 기점으로 시작된 의정 갈등으로 병동 통폐합, 무급 휴가, 업무 과부하에 내몰린 병원 노동자들 역시 집단행동 중단을 촉구하며 “환자들이 치료 적기를 놓쳐 생명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을 우려했다. 의사는 공공적 책무를 포기해도 용인받는 계층이 아니다. 전면 휴진에 대응해 전국 개원의 대상의 진료명령 및 휴진신고명령은 꼭 지켜져야 한다. 군의관과 공보의 등 비상진료 체계는 한계에 달하며 정부가 쓸 대안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런 식이면 필수의료 위기, 의료 전달체계의 왜곡, 지역의료의 제반 문제를 앞으로 의정이 함께 풀어 가기 어려울 수 있다. 파국을 막는 데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전체 현원의 90% 이상 전공의가 수련병원에서 뛰쳐나온 마당에 의협이 대정부 투쟁을 하며 의료대란을 키우는 건 온당하지 않다. 의정이 함께 바라봐야 할 대상은 정점을 향하는 환자들의 불안과 초조, 분노와 반발의 시선이다. 규모가 얼마가 되건 집단휴진 계획을 일단 철회해야 한다. 의료계가 ‘파트너십’으로 가야 할 또 다른 진정한 대상은 환자들이다.

2024-06-13 14:00 사설 기자

[사설] 5월 고용률에서 더 비중 있게 봐야 할 ‘청년 고용’

15~64세 인구의 70%가 취업한 상태를 뜻하는 ‘고용률 70% 로드맵’이 ‘국민행복시대’ 달성의 한 지표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이와 관련해 박근혜 정부 초기에는 고용창출시스템의 중심축을 여성창조경제(서비스업, 중소기업)로 이동시킨다는 계획을 내놓았었다. 국내총생산(GDP) 3만 달러의 벽을 고용률 70% 달성으로 돌파할 수 있다고 믿기도 했다. 이번 5월 14~64세 고용률이 바로 70%다. 비율로든 규모로든 고용 호조세를 반영한 것이지만 안정적 경제 구조란 의미의 해석을 붙이기엔 좀 힘들 성싶다. 12일 발표된 고용동향에 따르면 물론 역대 최고 수준이다. 10명 중 7명은 취업자인 셈이니 그 자체로 대단하다. 그런데 고용 증가세와 달리 올해 1~2월 30만 명대를 유지하며 최고치를 경신하던 증가폭은 8만 명 수준의 둔화세로 바뀐다. 연간 취업자 수 증가폭 전망치를 상향시킬 정도였는데 이젠 달라졌다. 실업률과 고용률 등 양적 지표만이 아니라 기업 규모나 고용안정성, 실질임금 등 질적인 청년 고용 이슈로 한정하면 장밋빛 전망이 무색해진다.사실은 고용률 증가세를 은퇴 후 노동 현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노년층 취업자가 이끌었다. 5월엔 60세 이상에서 26만5000명 증가한 반면, 사회 초년생 주기에 해당하는 20대의 취업자는 16만8000명이나 줄었다. 정부가 20대 후반 고용률이 역대 최고라고 자평한 지 한 달이 채 안 된 시점이다. 산업별로 서비스업이 완만한 회복세가 이어지지만 택배·배달 등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결과 등이 반영된 측면이 있다. 눈만 높아 일자리를 걷어찬다고 힐난하기 전에 청년 일자리 질 저하를 더 비중 있게 봐야 할 것이다. 입법 권력을 쥔 민주당도 국정 책임을 공유한다는 자세로 핵심에 함께 접근해야 한다.원하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그냥 쉬었다”는 청년 실망실업자가 지금도 늘고 있다. 비수도권 산업도시에서조차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다고 지역을 떠나는 현상이 지속된다. 견조한 고용 흐름이라는 자만에 빠지는 대신, 청년고용대책 프로그램부터 개선해야 한다. 청년 실업으로 생산성 감소, 사회적 고립, 부모세대 부양 부담 등이 파생된다. 청년 취업자 수 감소에도 청년 고용률이 오르는 것은 취업자 수 감소폭보다 청년 인구가 더 빨리 줄어든 탓이 크다. 고용률 70%란 통계 앞에서 노동시장 정체와 같은 각종 문제점들이 풀리는 지점이라는 함의는 찾기 어려워 아쉽다. 저출생·고령화 여파를 청년 고용지표가 나아진 걸로 보는 착시도 늘 조심할 점이다.

2024-06-12 14:00 사설 기자

[사설] 유통업계 연합전선 구축, ‘윈윈’으로 가야 한다

서로 연합하는 합종설과 각각 연맹을 체결하는 연횡책은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경제계의 화두로 자주 거론된다. 기업에 닥친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를 이끌 신기술을 공유하며 경쟁력을 확보하는 차원이다. 유통업계가 전국시대 생존 전략과 다르면서도 같은 합종연횡(合從連衡)에 골몰하고 있다. 뭉쳐야 산다는 의지로 어려움을 이겨내고 우뚝 서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도미노 물가 인상과 인건비, 물류비 상승 속에서 유통업계의 체감경기가 크게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5월 가정의 달과 7월 휴가철 사이에 낀 6월은 경향상 소비자가 지갑을 걸어 닫는 시기다. 쇼핑 비수기에 겹쳐 경영 악화 요인인 온라인 유통채널 등과의 경쟁 심화도 중요 이슈다. 그 중심에 독주하는 신흥 강자가 있다. 이럴 때 ‘범삼성가’인 신세계그룹과 CJ그룹의 협업 관계가 유통 경쟁력에 어떤 도움을 줄지 관심사로 떠오른다.오프라인 유통 1위인 신세계그룹이 택배 1위업체인 CJ대한통운을 가진 CJ그룹과 손잡은 것에 유통가가 집중하고 있다.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業)의 핵심인 직접 물류를 내주고 외주를 주는 형식에서 나아가 멤버십과 상품 협업도 가능한 단계로 가야 한다. 이커머스 합종연횡은 비용을 절감하고 상품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각사 본업에 집중한다는 이점이 있다. 빠른 배송 서비스가 생명이지만 차이나 커머스 플랫폼의 공략에 맞서려면 품질을 놓쳐서는 안 된다. 온라인 후발주자인 신세계와 CJ의 물류 동맹에서도 예외가 아니다.로켓배송을 앞세운 이커머스 강자인 쿠팡 역시 국내 유통업계 최초로 유튜브와 손잡고 고객 접점 확대에 나서고 있다. 가장 많이 쓰는 앱인 유튜브가 새 수익원으로 쇼핑 프로그램을 런칭하면서 쿠팡을 파트너로 선택한 셈이다. 현대백화점이 BGF리테일과 손잡고 펼치는 프로모션도 주목할 만하다. 고객 편의를 높이고 물류 비용을 절감하는 수준을 넘어 장기전을 치를 시장 구도에서 ‘윈윈’의 포석이 돼야 한다. 유통업도 효율성과 고객 만족도를 향상시켜야 하는 단계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유통업체 협업으로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긴 싸움에 대비할 지향점도 여기에 있다. 알리, 테무 등의 저가격 상품과 공격적 마케팅은 유통업계를 위협하고 국내 업체 간 경쟁을 심화시킨다. 서비스와 품질 경쟁력에서 처지지 않아야 더 도전적 환경에 직면해도 유통산업 생태계가 흔들리지 않는다. 물류 간 협업에서 물꼬를 튼 상생 네트워크화가 산업 생산성 향상으로도 이어지길 바란다. 사업 제휴, 쇼핑 제휴 프로그램에 기대를 걸어본다.

2024-06-11 14:10 사설 기자

[사설] 전셋값 상승 못 막으면 주택시장 안정은 없다

서울 기준으로 55주 연속 오른 장기 상승 국면에 진입하고도 전세 가격 상승 추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수급 측면에서 물량이 적어 공급자 우위 시장이 굳어져 불안하다. 최저 연 1%대 금리의 신생아 특례 전세대출 등 저리의 정책자금 지원도 상승세의 불씨가 된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전세가격 상승 원인으로 신생아 특례대출과 전세사기, 임대차 2법 등을 꼽았는데 틀리지는 않다. 이 같은 비정상적이고 추세적인 상승 배경에서 제외해서는 안 되는 것이 수요 증가다. 대규모 전세사기 여파로 빌라나 오피스텔 대신 중소형 아파트를 찾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어서다. 역세권과 대단지, 소형 규모 위주로 대기 수요가 꾸준히 유지된다. 일부 수요자들이 매매로 시선을 돌리기도 하지만 반면에 시장 관망세로 매매 수요가 전세 수요로 이동하기도 한다.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이 전셋값 상승에 미친 영향 역시 작지는 않다. 2년 거주 후 2년의 계약갱신청구권으로 묶여 있던 재계약 만기가 곧 도래한다. 밀린 상승분 반영에 대해서는 4년 전에도 우리가 부단히 예측성 경고를 했다. 임대차 2법처럼 시장을 왜곡하고 주거 불안을 야기하는 규제를 바로잡자는 주장도 처음 아니다. 원인을 알면서 야당 측이 까딱 않는다고 무기력하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부·여당은 폐지 스탠스를 구체화할 방도를 생각해야 할 때다.가장 중시할 것은 전세 물량 부족으로 공급자 우위 시장이 굳어지는 부분이다. 지난 2년간 서울의 아파트 인허가는 직전 2년보다 45%나 줄었다. 신축 아파트 공급이 지연되면서 신축 입주 물량이 감소했다. 그 영향을 늦게라도 만회하는 데는 임대주택 공급에 속도를 내고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하는 처방이 유효하다. 전세 제도가 수명을 다했다고 정부가 먼저 말하기 전에 다주택자 규제를 푸는 등의 세밀한 해법을 구사해야 한다. 전세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하다는 간단한 원리를 비껴가서는 안 된다.주택 공급이 필요한 지역에 공급이 충분치 않다. 이게 핵심이다. 총량 면에서 55주간의 상승폭 5.4%를 그 전 68주간의 계속 하락폭 19%와 비교하면서 상승세 고착을 간과한다면 주택시장 안정을 얼마나 더 유보해야 할지 모른다. 재계약을 앞둔 기존 임차인이나 신규 수요자를 가리지 않고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올해 서울의 아파트 입주 물량이 전년보다 21% 감소한다. 아파트 전세 쏠림 등 수급 불균형을 과소평가할 수 없게 됐다. 수요가 많은 지방에서도 전셋값이 상승하는 곳이 늘었다. 임대차 2법보다 훨씬 근본적인 공급 부족 문제를 풀어야 한다.

2024-06-10 14:01 사설 기자

[사설] 글로벌 시장 판도를 거슬러 가는 ‘노조 리스크’

자동차 강국 프랑스가 세계 4위에서 10위권 밖으로 추락한 분수령이 된 것은 비뚤어진 노사관계였다. 19세기에 설립된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 피아트 본사의 미국 이전설이 한때 나돈 것도 노사 갈등이 빌미였다. 그런가 하면 노사가 손잡은 업체들이 잘 나가는 정면교사의 선례는 많다. 전동화 전환 등 지금 같은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 전환기에 걸어야 할 선명한 길도 분명히 있다. 그 길에서 멀어지게 하는 나쁜 행태가 노조만의 이익 챙기기다. 실적 호조 등을 이유로 무리한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협상안을 제시하는 것도 그 가운데 든다. 상여금 900% 인상과 같은 요구, 주 4.5일제나 정년연장 같은 깊은 단계의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는 사안까지도 거침이 없다. 현대차그룹 노조, 기아, 현대모비스 등 계열사 노조가 무분규 타결의 좋은 길을 밟아 가길 바란다.세계 자동차 시장 판도가 심하게 출렁이고 있다. 중국의 전기차 굴기에 맞서 미국과 유럽은 관세 장벽을 높인다. 일본은 아세안과 손잡고 중국 견제에 나선다. 한국 자동차업계도 구도 변화에 맞게 시장 대응을 해야 한다. EV9의 미국 현지 생산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현지 조립, 현지 부품 장착 등 조건을 충족시킨다. 가격 경쟁력을 강화할 기회를 차버리지 않아야 한다. 단협 위반이라며 가로막는 기아 노조의 처사는 역주행이며 일종의 자해행위일 수 있다.노조 강경 행보에 정치 세력화 움직임을 보이는 삼성전자로 눈을 돌려도 답답하긴 매일반이다. 이건희 선대회장의 신경영 선언 31주년이 되는 날, 일부 노조 조합원들이 첫 파업에 나섰다. 생산 차질은 없었다지만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조합원 대부분이 24시간 공장이 돌아가야 하는 반도체(DS) 사업 부문 소속이다. 반도체 패권을 둘러싸고 회사가 초비상인데 이른바 뉴진스님(개그맨 윤성호)을 불러 집회를 여는 삼성 노조의 모습을 보는 시선은 편치 않다. 지난해 14조 8800억원 규모 적자를 기록하고 고대역폭 메모리(HBM) 경쟁에서 밀리는 등의 위기는 의식조차 하지 않는다.자동차 산업이나 반도체나 글로벌 패권을 위한 투자 확대의 시급성 하나만 감안할 때도 임금·단체 교섭에는 자중이 필요하다. 고액의 복지관 건립 요구에서 보는 하늘 끝 복지 경쟁이 아닌 업무 성과와 효율성을 높이는 긍정적인 바른 길을 보여줘야 한다. 노조 리스크가 생기지 않는 방법이다. ‘그들만의 복지’ 경쟁을 멈추고 바닥을 기는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길을 가야 한다. 노사가 대립해 위기를 극복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그 반대의 경우는 많다.

2024-06-09 13:19 사설 기자

[사설] ‘대왕고래 사냥’, 그래도 봐야 할 건 경제적 가치다

액트지오(Act-Geo) 비토르 아브레우 박사의 7일 정부세종청사 기자회견에 눈과 귀가 모이고 있다. 포항 영일만 심해 석유가스 매장량 추정과 사업성 분석을 둘러싼 궁금증과 의혹을 해소할지 주목된다. 미국 업체 액트지오 분석 결과대로 정부가 발표했으니 석유 및 가스 대규모 매장 가능성에 대해 과학적 근거와 기준으로 풀 수 있었으면 한다. ‘대왕고래’라고 이름 붙인 영일만 인근 해역 유전의 경제성이 높고 과거와 나온 분석과 왜 다른지 여부가 초점이 될 것 같다. 새 데이터가 있었지만 말 못했던 부분까지 간담회에서 짚어줘야 한다. 국민이 듣고자 하는 말은 생산 규모에 경제성이 달려 있다는 원론에 치우친 답변은 아니다. 실제 매장된 양과 그중에서 얼마를 뽑아 쓸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매장 가능성이 제기된 배타적 경제수역(EEZ) 안의 8광구, 6-1광구는 액트지오 이전에도 탐사 시추가 이뤄졌던 곳이다. 이 회사가 제대로 된 전문 업체냐에 관한 의구심도 함께 해명해야 하는 이유다.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한국은 1998년 울산 앞바다에서 막대한 가스 매장량을 예상했던 것과 달리 2021년 상업 생산을 마친 이력도 있다. 개발 성공률 20%라는 것은 실패율 80%라는 얘기 또한 될 수 있다. 매장 가치가 삼성전자 시가총액 5배 정도라는 등의 분석은 다소 성급했다.우리나라가 산유국 대열에 선 것을 액트지오가 설령 입증하더라도 축포를 터뜨리기엔 상당히 이르다. 반신반의하는 국내 석유·가스 기업들이라고 그 정도는 모르지 않는다.하나 더 중요한 사항은 ‘대왕고래 사냥’으로 얻을 정확한 매장량과 상업화는 실제 시추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원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자는 신념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발표하며 과하게 기대감을 키운 부분은 그래서 아쉽다. 호주 석유개발회사 우드사이드가 지난해 영일만 일대는 “더 이상 유망하다고 볼 수 없다”며 내린 결론도 함께 살아 있다.그렇게 봐야 타당하다. 자료 재해석을 담당한 액트지오가 내린 다른 결론이 효율적인 시추 작업을 통해 입증될 때까지 신중함은 유지해야 한다. 유가만 바라보는 천수답 경제 신세에서 벗어나길 열망하지만 몇몇 사례와 경험으로 경제적 가치에 관계된 전체 속성을 단정·판단하는 것은 무리다.사업 전반, 그리고 액트지오에 대한 신뢰성 의문이 풀릴지라도 부당한 일반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조심하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된다.

2024-06-06 13:37 사설 기자

[사설] 종부세 폐지 등 세제 개편엔 지금이 ‘적기’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가 정권 바뀔 때마다 흔들리는 이유는 그 취지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말고는 꿀릴 것 없다”고 호언하던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 가운데 오랜 논란에 휩싸인 것이 종부세였다. 시작부터 1% 고가 및 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부유세 성격이 강했다. 종부세율과 공시가격, 공정시장가액비율 등이 높아졌고 집값 안정과 실수요자 보호란 입법 목적은 옅어졌다. 과거 9·13 혹은 12·15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에서 투기를 잡겠단 명분은 빛바래고 형해만 남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납부 대상을 넓힌 종부세에 대해 지난 주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부동산 가격 안정 도모라는 명분을 들어 과잉금지원칙 위반에 면죄부를 준 듯 보여도 위에서 적시한 실상은 변하지 않는다. 재건축 아파트와 판교발 아파트 값 상승이 멈추지 않자 “우리 다 나라에 죄짓는 거다”라며 종부세 결정판인 8·31 대책을 꺼내지 않았던가. 중과세가 정책적 목적 달성에 적합한 수단이라고 해석했지만 그와 외떨어져 현존한다는 게 본질이다.부유층보다 중산층에 과도하게 부과하는 징벌적 과세 체계인 점도 제도 개편의 필요성을 증명한다. 종부세의 부당성에 대해 전에 없던 정치적 공감대가 형성된다. 여야 간에 입장차는 있다. 부동산 세제 전반의 손질이 세수 결손을 의미한다는 부분 등에서 이견이 크다. 정치적 수싸움이 개입하면 세법 전쟁으로 번질 여지마저 있다. 종부세가 진보 정권 부동산 정책의 상징처럼 여겨진 측면까지 이해해야 한다.야당 일각에서 1 주택자에 대해 종부세를 폐지하자는 안을 선호하는 데는 이런 배경도 있다고 봐야 한다. ‘똘똘한 한 채’ 현상을 유발한다며 선을 긋는 여당 입장과의 차이점이다. 야당발(發) 종부세 완화론으로 부자 감세 기조에 완전히 균열이 간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기업 밸류업 정책과도 맞물린 상속세와 함께 시대와 불화하는 세금, 갈라파고스 세제를 꼭 털고 갈 기회가 왔다.부동산 보유에 세금을 물리는 종부세·재산세는 동일한 세원에 대한 이중과세다. 헌재 판단은 내려졌지만 재산세와 별도로 걷는 종부세의 인정에는 위헌성이 다분하다. 부자 감세 프레임에서 벗어나면 종부세 폐지론이나 종부세·재산세 통합안은 다루기가 한결 수월할 것이다. 세율을 낮춰가며 폐지하는 등 여러 방안이 있겠으나 완전 폐지 쪽으로 매듭짓는 해법을 우리는 지지한다. 고쳐도 기형적이 될 바에 종부세를 재산세로 단일화하는 쪽이 합리적이다. 모처럼 맞는 종부세 폐지의 최고 적기를 걷어차지 않고 올해 세법 개정안에 반영하길 기대한다.

2024-06-04 14:02 사설 기자

[사설] K-배터리 특허, 산업기술보호법 처리가 먼저다

특허 기술 도용은 수익성 악화와 함께 배터리 업계가 겪는 이중고다. 핵심 기술을 보호하고 특허 침해를 구제할 법적·정책적 장치는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 ‘산업기술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은 21대 국회에서 본회의 문턱을 못 넘고 버려졌다. 기술 유출 피해 규모가 커지는데 정말 필요한 법들은 건너뛰기를 하기 일쑤다. 이러는 사이,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의 지적재산권은 무차별적으로 침탈당한다. 특허관리 전문업체와의 계약 등 자구책 만으로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배터리 관련 기술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됐다고 해서 특허 분쟁 지원에 바로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지식재산권을 중국 등 해외 경쟁사에 빼앗겨도 선전포고하는 듯한 기업 자체 대응이 전부여선 안 된다. 기존 산업기술보호법과 국가첨단전략산업법의 구조 면에서 특허는 너무 쉽게 사각지대에 놓인다. 산업기술보호법을 개정해야 하는 이유다.그나마 희미하게 규정된 기존 산업기술보호법의 운용에도 문제가 있었다. 2021년 이 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1심 사건 중 무죄와 집행유예가 87.8%에 달하는 솜방망이 처벌이 이를 증명해준다. 특허 보호의 장벽이 이렇게 낮으니 ‘걸려도 남는 장사’라는 그릇된 생각을 갖기도 한다. 유출 침해 행위에 대한 관리체계를 강화하려면 다른 기술유출 범죄처럼 처벌 양형 기준부터 높여야 할 것이다.가열되는 배터리 시장에서 후발주자나 선두기업을 가리지 않고 특허 무임승차를 일삼는다. 해외 경쟁사의 표적이 되고 있는데 지원 조항이 모호하면 사실상 법의 부재나 마찬가지다. 유출되면 나라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준다. 업무 제휴, 기술협력에 의한 유출, 사이버 해킹 등 각 경로의 침해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불법 유출로부터 핵심기술 보호를 위해서는 기업 자율성 침해 등을 좀 감수해야 할 때가 있다. 이럴 때도 물론 신중해야 한다.폐지된 개정안에는 문제적 조항이 없지 않았다. 해외사업 추진 과정에서 특히 의무적 사전 승인처럼 된 것이 대표적이다. 공동투자에 걸림돌이 되는 ‘디테일(세부사항)의 악마’는 조심할 일이다. 지난 국회 막바지에서 법제사법위원회가 열리기 전까지 변변한 공청회 등 의견 수렴이 없었던 점도 여기서 지적한다. 속수무책으로 특허 침해를 당하는 지금이야말로 국제적인 수준의 특허 보안이 절실할 때다. 전 세계가 기술 및 특허 보호 전쟁 중이고 파이는 줄며 경쟁은 커지고 있다. 과도한 규제가 안 되게 유의하면서 새 국회에서 산업기술보호법 등 법적 장치를 완비하기 바란다.

2024-06-03 13:52 사설 기자

[사설] 플랫폼법 재추진 자체를 원점 재검토해야 한다

22대 국회 임기가 시작되면서 더 세진 야당의 입법 강공 드라이브가 ‘거야(巨野) 시즌 2’를 예고한다. 백지화되나 싶던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플랫폼법) 제정에 공정거래위원회와 국회가 맞손을 잡을 태세다. 야당은 시장 규율 입법에 적극적인 본색 그대로고 여기에 강성인 의원들이 국회에 합류했다. 강도 높은 규제의 법제화에 대한 우려가 21대 때보다 더 고조됐다. 플랫폼법은 두 얼굴을 하고 있다.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방지는 당연히 중시할 시장 질서다. 독점력을 가진 핵심 플랫폼 사업자를 지정해 관리하면 플랫폼 독과점 규율에 효과적일 수 있다. 자사 우대나 끼워 팔기, 거래 상대방과 경쟁사업자 간 거래를 방해하는 멀티 호밍 제한, 최혜 대우 강제 등 반칙 행위의 금지는 자유로운 경쟁 환경에 도움이 된다. 금지 행위를 정해 감시를 강화하는 내용에는 순기능이 분명히 있다.공정한 경쟁은 강조되고 강화돼야 한다. 그런데 혁신 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다른 얼굴도 감춘 게 문제다.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 지정이나 모호한 규제가 토종 플랫폼만 잡거나 중소기업 성장까지 막게 된다. 무엇이 더 소비자 선택권을 보장하느냐는 신중히 따져볼 일이다. 기업 가치가 1000조원 가까운 글로벌 플랫폼의 국내 시장 잠식을 돕는 결과가 될 위험성이 상존한다. 글로벌 경쟁에서 이기는 데 불리하다. 해외 플랫폼이 물밀듯 쳐들어오는 현실에서 국내 플랫폼 기업에 역차별 우려가 있다. 이건 결정적인 단점이다.글로벌 경쟁력이 약화되는 방안이 되면 안 된다. 독소 조항은 그렇다 치고 해외 플랫폼 사업자들에 대해 법 집행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다. 구글, 애플, 메타 등과 알리, 테무, 쉬인 등 C(중국) 커머스의 국내 시장 잠식 위기를 타개할 해법이 아님은 물론이다. 기존 공정거래법으로 처분 가능하고 국내 산업 생태계에 유리하다면 자율 규제 모델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업계의 반발 지점을 잘 살핀다면 원점 재검토할 것은 플랫폼법 재추진이다.미국, 유럽연합, 영국, 일본, 독일 등 해외에서 사전지정제를 포함해 플랫폼 관련 규제 입법에 속도를 내는 것은 맞다. 하지만 철저하게 자국 이익에 플랫폼 규제의 초점을 맞추려 드는 것도 사실이다. 유력한 자국 플랫폼이 없는 유럽은 글로벌 빅테크를 견제해 자국 플랫폼을 육성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플랫폼 독과점 제한이 국내 플랫폼 손발만 묶는 전혀 다른 얼굴을 띨지 모른다. 반칙행위 감시 강화가 주된 목적이라면 과도한 시장경제 개입이 아닌 다른 대안을 내놓는 편이 훨씬 낫다.

2024-06-02 13:31 사설 기자

[사설] 삼성 첫 ‘파업 브레이크’, 하필 이럴 때 밟으려 하나

삼성전자 서초 사옥 건너편의 파업버스 연좌 농성이 낯설게 다가오는 아침이다. 6월 7일 조합원 단체 연차 사용이라는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 1호 지침은 당혹스럽다. 무노조 경영의 대명사였고 삼성 역사상 처음이라는 사실이 여기서 꼭 중요하지는 않다. 한국사회와 국제사회에서 삼성 영향력이 매우 큰데 왜 이러느냐는 일반론도 뒤로 미룬다. 우리가 품는 의문은 성장 낙관론만 펼 수 없게 됐고 빠르게 도전해 시간 경영의 합일된 힘을 노사가 보여야 할 하필 이럴 때인가 하는 것이다. 그런 부분에선 시기나 명분 모두 그르쳤다. 올 연초부터 하루가 멀다 하고 파업 얘기가 불거질 때마다 설마 했던 것은 이 두 초점이 안 맞는다 봤기 때문이었다. 단체행동은 단결권, 단체교섭권과 나란히 헌법 제33조 1항의 노동3권으로 보장하는 권리다. 이 범주 내에서 “사측이 교섭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아 즉각 파업에 임한다”는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을 무조건 비판할 수만은 없다. 다만 분초를 다투며 국가 대항전으로 펼쳐지는 반도체 전쟁 중인 이런 틈을 노리지 않아야 한다. 회사를 넘어 국가적으로도 막중한 파업 리스크 먼저 생각했으면 한다. 경제계 전반에서 삼성 경쟁력이 흔들릴까 우려하고 있다.목표 대비 성과(EVA·경제적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잡아 성과급을 주지 않으려 한다는 삼성 노조의 주장에 많은 직장인들은 부러움과 의아함의 시선으로 대한다. 파운드리(위탁생산) 부문에서 대만 TSMC의 높은 장벽을 넘어서는 일마저 벅찬 일임을 알면 더 놀란다. 반도체 기업의 가치를 쥐락펴락하는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에서도 희비가 갈리는 와중이다. 비상 경영에 돌입해야 할 만큼의 경영 불확실성을 국내 최대 기업의 최고 대우 샐러리맨들이 나 몰라라 한다면 안 될 말이다. 외부 세력을 끌어들여 노노 갈등이나 조장할 땐 리더십과 경영 부담으로 돌아온다.일한 만큼 보상받는다는 건 노동자 입장에서 기분 좋은 일이다. 전삼노의 요구가 하찮다는 뜻은 아니다. 반도체 불황을 넘어서야 하는 삼성 앞에 임금 교섭이나 성과급 체계라는 보상 구조가 걸림돌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 반도체 리더십이 흔들려선 안 되는 삼성의 바쁜 발길을 생각하면 빠른 타결은 필수다. 각국이 주도하는 긴박한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노사관계에 발목 잡혀 상생의 길을 못 찾고 헛걸음한다면 시간은 삼성 편이 아닐 수 있다. 회사의 도약 기회에 브레이크를 걸지 않길 노조(전삼노)에 당부한다. 글로벌 반도체 경쟁력 한 가지만 생각해도 삼성으로선 노조 리스크나 경영상 리스크 없이 달려야 할 시간이다.

2024-05-30 14:12 사설 기자

[사설] 한·중 FTA 2단계 협상, ‘관광’에도 잘 활용해야

9년 만에 재개될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2단계 협상에 관광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6월 초 화상회의 실무협상에서 서비스 분야, 특히 문화, 관광, 법률 쪽의 교류·개방 확대 방안이 담기기 때문이다. 상품교역 분야가 아닌 관광은 시장 개방 수준이 미미했다. 온도 차이는 있으나 면세·여행·호텔업계에도 볕이 들까 고대하는 분위기가 감돈다. 김칫국부터 마셔서는 안 되지만 중국과 2단계 협상이 타결될 경우, 한류 문화콘텐츠와 관광의 중국 진출은 탄력을 받을 것이다. 전체 155개 서비스 분야 중 아예 개방하지 않은 65개 분야에도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처음이면서 2년째 이어지는 무역수지 적자 기조를 흑자로 전환시킬 키워드는 문화와 관광이다. 올해 역시 2월을 빼고는 4월까지 대(對)중국 적자 행진을 이어오고 있다.다양한 이유를 들지 않더라도 한류 금지령, 한한령(限韓令)으로 중단된 문화콘텐츠의 중국 수출 길은 이 기회에 터야 한다. 대중 수출액을 보면 통계 작성 이후 최소로 감소하고 있다. 대중 수출기업은 줄고 수입 기업은 늘어간다. 경제·통합 협력을 심화하는 FTA 협상 속도를 높여야 할 당위성은 이처럼 많다. 시장 개방 약속을 어떻게 어디까지 하느냐에 달려 있긴 하지만 상호 호혜적인 FAT 실현에서 우리 이익만 추구할 수는 없다. 2차 협상에선 1차보다 더 어려운 경우가 종종 생긴다.그나마 나아진 환경을 꼽으라면 작년 8월의 한국 단체관광 재개다. 그 덕인지 중국 방한관광 시장은 올해 1분기에 100만 명을 돌파해 2분기엔 200만 명을 넘을 전망이다. 완전한 회복은 여전히 더딘 상황이고 중국 내수경기와 고환율은 큰 걸림돌이다. 취향에 따른 소량 구매로 소비 행태가 바뀐 중국 관광객의 확연히 달라진 트렌드도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일본 관광산업의 빠른 회복세는 아베 정부 시절부터의 가성비 높은 지역관광 개발 덕이다. 우리가 여행수지 만년 적자국에서 탈피하기 위한 중요한 힌트가 된다.중국과의 관광, 또 관련된 FTA를 위해서도 필수적인 것이 양국 관계 개선과 인적 교류다. 관광 측면의 협력 강화에는 적어도 공급망 분야 대화 수준의 소통 창구가 필요하다. 한국의 FTA 정책은 최우수라는 대외의 평가를 가끔 듣는다. 2015년 협정에서 소홀했고 그해 12월 발효 뒤로는 쭉 부진했던 관광 분야의 자유무역에서 2000년 이후 한 차례도 못 낸 관광수지 흑자의 열쇠를 찾아야 한다. 거대경제권을 포함해 총 59개국과 21건의 FTA 네트워크를 구축한 경험을 정말 잘 살려볼 차례다.

2024-05-29 14:08 사설 기자

[사설] 28일 시작된 ‘잔술’ 판매, 미비점 더 개선·보완해야

‘주류 면허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이 관보에 게재, 공포돼 28일부터 식당에서 모든 주종의 소분 판매가 가능해졌다. 면허 취소의 예외로 단순가공·조작 범위에 명시한 이른바 ‘잔술’은 모호한 주세법 체계를 바로잡은 규제 완화로 평가할 수 있겠다. 소비자의 반응은 엇갈리지만 술을 병째로 팔든 한 잔씩 팔든 소비자 선택권을 넓혀 허용한 점은 개선된 방향이다. 해석상으로는 시행령 적용 이전에도 잔술 판매가 불법이었던 건 아니다. 국세청 주세법 기본통칙에 규정한 지난해부터 적어도 그러한 처벌 위험성의 소지는 사라졌다. 모든 잔술 판매를 술의 가공·조작 행위로 보지 않겠다는 내용은 이미 들어 있었다. 그렇지만 이날을 기점으로 법과 현실의 차이, 즉 법리와 실제 주류 판매 문화 간 괴리 해소를 한층 명료화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잔 단위 유통에 대해서는 식당가 의견이 분분하지만 새로운 타깃이 생겨 매출 발생이 가능한 부분은 인정해야 할 듯하다. 병째로 마시기가 부담스러워 음주를 안 하는 손님도 있었던 만큼, 법적으로 허용된 부분을 추가 매출로 잘 활용할 수 있겠다. 비알코올 또는 무알코올 음료 허용도 마찬가지다. 소비자 눈높이에선 술 한 병 시키기가 부담스럽거나 1인 가구, 주량 적은 혼술족 등, 또 문자 그대로 ‘딱 한 잔’만 마시고 싶은 경우에도 반가울 수 있다.재사용에 대한 위생 측면의 우려는 불식시켜야 한다. 주류에 탄산, 채소, 과일 등을 즉석에서 섞어 팔 때는 위생뿐 아니라 품질 변수가 떠오를지 모른다. 업주의 자율적이고 양심적인 관리와 소비자의 믿음에만 온전히 맡기기 어려워 시행령이나 주세법 기본통칙을 다시 손대는 일은 없기 바란다. 잔술의 세대교체 등 주류 시장에 미칠 좋은 영향은 전적으로 업주와 손님의 상호 신뢰가 바탕에 깔려야 한다. 소비자가 술잔과 술 자체를 못 믿는다면 제도 안착은 성립되지 않는다.병에서 잔으로 옮기는 가공이나 조작, 재사용 과정에서 새로운 불법 여지를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 허용된 물리적·화학적 작용을 가하는 방식에 불법 첨가물을 넣었던 가짜 양주의 기억이 겹쳐서도, 축제 현장의 생수병 소주 바가지요금과 같은 논란거리를 재생시켜서도 안 된다. 잔으로 술을 판매하는 데 운영상 미비점이 나타난다면 더 보완해 위생문제가 잔술 판매의 위험 요소이며 단점으로 제기되지 않게 해야 한다. 소비자 호응과 시장 안착은 ‘남은 술’에 대한 일말의 불신이 깨끗이 사라지는 데 있다. 주류면허법 시행령 성패도 여기에 달린 것으로 정리된다.

2024-05-28 14:07 사설 기자

[사설] 청년 나이 ‘39세’ 등 상향 추진, 문제는 없겠나

청년기본법(제3조)은 청년을 ‘19세 이상 34세 이하인 사람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재 기준으로 보면 생일 지난 2005년생부터 생일 안 지난 1989년생까지가 청년이다. 최근 전국 광역·기초단체별로 기준을 상향하는 추세다. 정부 일각에서 국정검사 처리 결과를 통해 청년 나이를 39세로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원론 수준이지만 정책상, 보다 구체적으로 혼인율이나 인구 증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면 청년 연령 범위 확대를 추진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고려해봐야 할 사안이 많다. 19세와 39세를 청년으로 한데 묶기엔 가치관과 사회 경험, 정책 이해도에 차이가 나타난다. 국회 정무위 검토보고서 표현을 빌리면 ‘대상 집단 내 연령대 간 다른 특징이 존재해 단일 정책의 효과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서울 내에서는 도봉구가 조례 개정으로 청년 연령을 45까지 높였더니 청년 수가 8만여 명에서 10만여 명으로 늘어난 ‘효과’가 있었다. 전북 장수군은 49세까지 상한을 옮겼다. 그러다 보니 45세 또는 49세 아버지와 19세 아들이 같은 청년으로 묶이는 ‘문제’도 생긴다.평균수명도 높아졌고 사업별 청년 대상자 범위를 확대 적용하는 사유가 지방소멸 대응이라면 나무랄 일은 아니다. 고령화가 심한 농어촌을 예로 들면 40대 중·후반도 청년농업인이 될 수 있는 이점을 무시하지 못하겠지만 너무 자율적이란 게 한계다. 노인 등 다른 기준과도 균형을 맞춰야 한다. 지금은 자의적 조정보다는 부처별 정책에서 ‘고무줄’인 것과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높여 천차만별인 청년 나이를 조정하는 일이 시급할 것 같다. ‘다른 법령과 조례에서 청년에 대한 연령을 다르게 적용하는 경우에는 그에 따를 수 있다’는 유동적인 청년기본법 단서 조항부터 손볼 대상이 아닌가 한다.세계로 범위를 넓혀보면 청년을 30대까지 보는 사례는 생각보다 흔치 않다. UN, OECD, ILO에서는 청년 통계에서 15~24세로 잡는다. 해외 ‘유스(Youth)’ 정책에서는 청년을 20대까지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부 제2차 청년정책 기본계획(2026~2030년) 등에서 기준 나이를 상향할 때는 연령뿐 아니라 청년발전과 청년지원, 청년정책 등의 목표와 취지가 퇴색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청년층은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거대담론과 깊이 얽힌 세대인 동시에 인구 이동이 제일 활발한 계층이다. 동전의 양면 같은 측면까지 살피면서 39세, 45세, 49세 등 제각각의 나이 상향에 따른 혼선을 없앤다면 좋겠다.

2024-05-27 14:02 사설 기자

[사설] ‘연금 개혁’, 21대 마지막 본회의에서 처리하라

국민연금 개혁은 시간의 싸움이다. 28일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선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 특별검사법’ 재의결 표결과 함께 연금 개혁 안건 처리의 귀추가 주목된다. 쟁점 중의 쟁점이다. 이번 국회가 조만간 문을 닫지만 여야 간 1% 차이든 2% 차이든 합의 불발 사유가 되기엔 너무 아깝다. 미래 세대에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정말 대타협을 요하는 안건이다. 이렇게 촌각을 다투는데 연금 개혁 사기라며 한바탕 진실 공방이나 주고받으며 허망하게 마감할 수는 없다. 민주당이 ‘좋다, 받겠다’며 양보 제스처를 취하는 지금이 어떻든 천금 같은 기회다. 사실과 본질을 왜곡한 정치적 압박으로 설령 보일지언정 44% 안을 수용하겠다는 전격적인 제안에 대한 결단에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국민 입장에선 그것이 구체적인 성과를 못 내고 평행선만 달리느니보다 훨씬 낫다. 1988년 이후 9%에 묶인 보험료율(내는 돈)을 13% 인상한다는 합의만도 거대한 산을 뛰어넘은 격이다. 절충 과정에서 1%포인트 차로 좁혀진 소득대체율(받는 돈)에 합의하면 마지막 매듭이 풀려 본회의 처리는 가능하다. 반드시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연금 개혁 드라이브로 정국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와는 비할 데 없는 민생 현안이기 때문이다.대통령실은 연금 개혁을 쫓기듯 타결하지 말고 22대 국회에서 대타협하자고도 했다. 하지만 이번 국회에서 연금 관련 안건이 통과한다고 구조 개혁이 끝난 건 아니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통합, 직역연금과 국민연금 문제, 기업과 개인연금 활성화, 그리고 중층 구조 논의는 차후에 논의해볼 사안이다. 연금 통합·분리 같은 구조 개혁을 한꺼번에 다 처리할 할 수는 없다. 내는 돈 13%, 받는 돈 44% 안 수용은 큰 진전이다. 보험료율과 명목 소득대체율의 모수(숫자) 개혁안에 대한 엄청난 의견 접근 아닌가. 26년 만의 보험료율 인상, 하향되기만 했던 소득대체율 상향으로 이미 첫 단추는 훌륭히 꿴 것이다.44%, 45% 시비 끝에 다시 공론화 과정을 거쳐 개혁안을 만들려면 1년 이상이 걸릴 수 있다. 다음 국회에서 새로 논의를 시작하려면 연금특위부터 다시 구성해야 한다. 그때는 2026년 지방선거를 의식해야 하는 데다 2027년 대선이 다가온다. 여야 양측 의견 차이가 가장 좁혀진 지금 처리하는 게 최선인 이유다. 차기 국회로 넘어가면 연금 개혁은 더 어려워진다. 보험료율을 올리는 데 자그마치 26년이 걸렸다. 내는 돈, 받는 돈 개혁부터 먼저 하고 22대 때 구조 개혁을 이어가면 된다.

2024-05-26 14:34 사설 기자

[사설] 1기 신도시 선도지구, 정부·여야 ‘같이 가야’ 한다

1기 신도시 선도지구 규모와 선정 기준 발표로 노후계획도시 정비에 급물살을 타게 되지만 현실성 면에서 회의적인 시각도 상당하다. 오는 11월 최종 결정될 구체적인 첫 선도지구 단지는 전체 정비대상 주택의 10~15% 수준이다. 시간표와 배점표로 미뤄 선정 작업부터 호락호락하지 않아 뵌다. 1990년대 초에 건설된 1기 신도시는 개선 시급성이 있다. 갈아엎고 새로 짓되 사업 초기 단계부터 광역교통망 계획을 비롯한 도시 기능도 ‘레벨 업’ 시켜야 한다. 150%로 용적률 상향(제3종 일반주거지역 기준 300%→ 450%)을 한다면 그만한 기존 도시기반 시설이 확충돼야 하는 문제도 생긴다. 고밀도 개발에 따른 인구 집중으로 생활의 질이 저하되지 않으면서 부동산 시장 안정에도 기여하는 방향으로 추진되길 기대한다.선도지구를 시작점으로 건축 기간 동안의 대규모 주민 이주 대책은 막중한 과제다. 전·월세 시장에 부정적 영향이 안 가게 정비 시기를 순차적으로 분산해야 한다. 수급량과 이주 시기 조절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 지자체보다 더 정부 차원의 대안이 절실한 부분이다. 이주대책을 상위권에 둬야 사회적 비용을 치르지 않는다. 공급 확대 과정에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의 이주단지 활용 등 특혜를 또 다른 특혜로 푸는 결과엔 물론 유의해야 한다. 선도지구가 되면 안전진단 면제, 용도지역 변경, 용적률 상향 등 이미 혜택을 보는 셈이다.재건축 사업의 성패는 단지의 경쟁력, ‘기승전-사업성’이라 해도 과언 아니다. 초과이익환수제까지 있다. 그런데 공사비와 분담금은 천정부지로 올라 있고 공사 중 계속 오를 것이다. 시장 전체로 볼 때는 공급 예고 지표인 주택 착공 건수나 주택 인허가 건수가 줄어 세밀한 대책이 요구된다. 2033년까지 핵심 입지에서 매년 수만 가구의 정비사업 물량이 쏟아지는 사업이다. 시중 자금과 관심이 그쪽에만 쏠려 수도권 외곽과 비수도권 재건축 사업 동력이 약화되지 않아야 한다.정비사업 절차가 대폭 생략돼도 착공까지의 시간, 추가 분담금 규모 등으로 사업이 물 흐르듯 진행되지 않을지 모른다. 정비사업 착수부터 입주까지 통상 10년이 소요된다. 지구 지정에서 첫 입주까지 6년 안에 끝내는 입주 계획은 다소간 무리일 수 있다. 선도지구 결정 이후에도 매년 일정 물량을 선정해 지속 추진해야 할 사업이다. 근거법인 1기 신도시 특별법은 여야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같이 가야 한다. 시장 과열 등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며 ‘질서 있는 재건축’ 사업이 되게 할 책임은 정부와 여야 모두에 있다.

2024-05-23 14:07 사설 기자

[사설] 네이버 글로벌 사업까지 넘보는 ‘라인’ 사태, 왜 가만있나

일본 정부의 자본 관계 재검토 주문에서 촉발된 라인야후 사태가 더 꼬이고 있다. 라인야후 측은 대만이나 태국 등 해외 사업을 라인플러스가 총괄하겠다고 밝혔다. 네이버의 아시아 등 글로벌 시장 확대 전략에 제동을 건 도발적인 입장이다. 일본의 국민 메신저 라인을 개발해 운영해 온 네이버에 대한 경영권 포기 압력의 제2탄이다. 네이버·소프트뱅크, A홀딩스, 라인야후, Z인터미디어트글로벌 등 모회사에서 자회사를 오가는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의 문제는 아니다. 그게 어떻든지 일본 사업을 접고 아시아 등의 해외 라인 사업을 분리해 이어갈 거라는 일각의 관측마저 무색하게 한다. 일본과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2억 명 이상 이용자를 보유한 글로벌 메신저를 통으로 먹으려는 야심을 드러낸 것으로도 해석된다.22일 상황을 종합하면 ‘라인’의 한국 측 지분 매각을 압박하는 일본 정부 태도와도 맥락이 다르지 않다. 라인야후 사태에서 한국이 전략물자 통제 규범을 어겼을 가능성이 있다는 궤변에서 시작된 수출 규제를 보는 듯한 기시감까지 든다. 네이버, 국민연금, 우리 정부가 직시할 것은 보안 등 시스템 운영 및 관리 업무를 위탁한 반쪽 한국계 메신저를 온전한 일본 메신저로 만들고 싶은 저의다.일본 이외 해외 시장 사업마저 네이버에 넘기지 않겠다는 라인야후의 시각 역시 네이버를 업무 위탁처이자 대주주 정도로 보려는 일본 총무성 입장과 차이 없음이 드러났다. 라인플러스 사업권 등 지분 협상을 논의할 네이버 측에는 모든 가능성 중 상당 부분이 이렇듯 닫혀 있다. 지난해 자국 대표 통신사업자 NTT니시일본의 개인정보 928만 건 유출 사고 당시와 너무 다르다. 위탁업체 관리감독 및 재발방지책 수용에 그친 그때와 달리, 한·일 호혜 관계마저 깨려고 덤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어긋나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사고에서 ‘사이버 안보’는 구실이며 핑계다.결과나 과정에서 라인 지분을 갖고 있는 한국 기업의 글로벌 사업까지 넘보며 쫓아내려 한다면 한일투자협정의 정면 위배다. 네이버의 중장기 사업 전략이 어떠하든 지분 매각 압력으로 인식되는 차별적 조치로 라인 경영권이 위태롭다. 일본 측 의도가 노골화한 마당에 대주주 국민연금은 네이버 기업가치 하락을 생각해서도 의견을 내는 게 옳다. 동남아 사업도 네이버에 안 주고 다 갖겠다고 호언하는 바로 지금 같을 때 우리 정부가 단호하게 전면에 나서야 한다. “필요시 일본 측과 소통하겠다”는 그 ‘필요시’가 바로 지금이다. 라인플러스도 알고 보면 11년 전 네이버가 한국에서 설립한 회사다.

2024-05-22 14:10 사설 기자

[사설] AI 정상회의 열면서 AI 기본법 표류시키다니

인공지능(AI) 기술에 대한 도전적 투자와 정책 추진을 하려면 글로벌 리더십 선점도 중요하다. 주요국 정상과 국제기구 수장, 빅테크 최고경영자(CEO)들이 참여해 21일부터 열리고 있는 AI(인공지능) 서울 정상회의와 AI 글로벌 포럼이 갖는 더 큰 의미다. 두 번의 빙하기(AI winter)를 완전히 끝낸 인공지능 기술의 진전 속에 글로벌 인공지능 거버넌스 구축을 논의하는 정상회의는 꼭 필요했다. 한편에서는 AI 주도국들을 불러 이 행사까지 주도하는 나라답지 않은 경우를 목도하고 있다. 작년 초 발의한 AI 기본법(‘AI 산업 육성 및 신뢰 기반 조성에 관한 법률안’)이 21대 국회 임기와 함께 폐기 수순을 밟는다는 점이 그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인공지능 기술은 비약하는데 규제가 먼저니 산업 육성이 먼저니 옥신각신 시비하다가 아무 일도 못했다.AI 분야의 전반적 기술수준이 가장 높은 미국에서 국가 AI 이니셔티브법을 만든 지 벌써 4년 전이다. 중국은 AI 윤리 거버넌스 표준화 지침을 만들고 유럽의회는 포괄적 규제법으로 대처한다. 우리는 어떤가. 산업 각 부문에서 제도 공백의 피해가 현실화하고 있다. AI 정상회의에서 강조한 글로벌 경쟁과 협력을 위해서도 규제와 산업이 동시에 가능한 합의점이 절실한데 말이다. AI 기술 도입과 활용 지원, AI 기술 개발과 산업 육성, AI 신뢰성 확보, 고위험 영역 AI 고지 의무 부과 등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그런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 등이 일정상 어렵다는 것이다. 최소한 21대 국회 임기 종료 때까지 방치하겠다는 얘기나 같다. 전 세계의 학습·저작물 분쟁, 윤리 이슈만 봐도 그렇고,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언급한 AI를 이용한 딥보이스 스미싱 사고 등 부작용 억제를 생각할 때도 법안 통과는 시급하다. 여당인 국민의힘조차 다수 야당에 화살을 돌리는 ‘루틴’을 반복하며 정부와 보조를 못 맞춘다. 기업이 적극 투자할 가이드라인 정비도 못 하면서 ‘초거대 인공지능 경쟁력’을 말하는 현실은 조화스럽지 않다.인공지능 기술의 글로벌 주도권과 관련된 큰 그림이 담긴 법안이 표류하는 사이, 정부부처마다 규제를 쏟아내며 각자 ‘플레이’를 하는 모양새다. 진흥과 규제의 균형을 이룰 기준이 될 AI 기본법의 공을 22대 국회로 넘기고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과 협력을 국제사회에 제시하고 있어 안타깝다. AI 산업 발전의 기본 제도라 할 기본법조차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은 정상회의에서 강조하는 혁신·포용 같은 AI 비전에도 정말 안 어울린다.

2024-05-21 14:02 사설 기자

[사설] ‘직구’ 소비자 혼란만 키운 정책 시행착오 돌아보길

국가인증통합마크(KC) 미인증 제품에 대한 국외 직접구매(직구) 금지는 정부의 아마추어성이 드러난 사태였다. 국내 안전인증을 받지 않은 80개 품목의 직구 규제 논란에서 우왕좌왕하는 국정의 민낯을 사흘간 들여다봤다. 소비자 선택권 침해 이전에 소비자 혼란을 키운 잘못은 가볍지 않다. 소비자 편익이나 권익에 대한 문제 인식이나 문제해결 방식이 모두 어설펐다. 현실을 모르는 설익은 정책이라는 여론이 들끓을 만하다. 발암물질 범벅인 제품이나 직구를 통해 유입되는 짝퉁(지식재산권 위반)이 제약 없이 국내에 반입돼도 묵과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KC 인증을 거칠 필요가 없는 것도 직접 구입의 한 가지 특징이다. 그런데 적용 범위가 모호하고 국내 인증의 효용성을 잘 챙겨보지 않았다. 역풍을 맞게 한 정책 시행착오다.KC 인증에는 품목별로 많은 비용이 들고 이는 소비자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저가 상품 판매자는 직구 플랫폼 판매를 포기하고 소비자는 선택권이 제약될 수 있다. 전자상거래 통관 물량은 2023년 1억3144만 건이다. 그야말로 물밀 듯이 들어온다. 물리적으로 완벽한 통관 플랫폼을 갖춘다는 건 비현실적일 만큼 어렵다. 인공지능(AI) 가품 단속 알고리즘 개발 등 가능한 방법을 보강해야 한다. KC 인증 아닌 다른 방식의 대안을 생각해야 이 같은 사단이 생기지 않는다.직접 구입은 정식 수입 절차를 거친 제품과 달리 관세·부가세가 면제된다.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국내 생산 소액물품과 대조가 된다. 그런데 인증을 하거나 면세 한도를 낮추면 소비자 부담으로 전이가 된다. 발표된 80개 품목에 대해 저가에 직접 구입한 소비자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다. 정식 수입품보다 저렴하고 소비자 잉여가 생겨 고물가 시대의 최적화된 구매 행위로 확신하는 국내 소비자들의 반응도 신중하게 살펴야 했다. 직구를 부르는 고물가 상황 해소까지도 국가의 기본 책무임을 여기서 지적해두고 싶다.약탈적 가격(초저가)에 가까운 직구 시장의 상황은 국내 기업 경쟁력 강화와 소비자 보호 면에서도 문제적이다. 정부의 시장 개입이라는 보이는 손(visible hand)에 의한 자원 배분에 따르는 정부실패 위험을 간과한 측면도 있다. 국내 사업자와의 역차별 등 외국 사례도 봐가며 흐트러진 유통 질서를 바로잡는 것은 여전히 정부 몫이다. 일은 제대로 하면서 직구에 익숙한 소비자가 혼란스럽지 않아야 한다. 정부 일처리가 미숙하고 허술하니 이번처럼 덧나는 게 아닌가.

2024-05-20 14:01 사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