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트럼프노믹스’에 지금 대비해야 할 이유 있다

미국 대선일(11월 15일)까지는 특정 후보의 당선을 미리 전제하고 나중에 ‘타당한 논증’이 아닐 수도 있는 시간이 남아 있다. 전제가 참이면 결론이 참이어야 하는데 당선 가능성만으로 말하기엔 성급한 시점이다. 당선 여부를 떠나 주요 경제 정책을 살펴 대비할 수는 있다. 굵직한 경제 공약만 간추려도 한국 경제에 영향을 줄 만한 정책이 넘치는 쪽은 아무래도 트럼프 공약이다. 보복성 관세 법제화의 길을 트는 ‘트럼프 상호호혜무역법’이 대표적이다. 모든 수입품에 보편적 기본관세 10% 부과, 전기차 활성화 정책 폐기라든지 자동차 연비 규제에는 공통점이 있다. 일관되게 한국 경제에 타격이 크다는 점이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나 신재생에너지 정책 폐기의 파장 또한 작을 수가 없다. 국내 증시 등락이 단기에 그칠지는 모르되 하방 압박이 불가피한 업종이 많다. 미국 경제 기조는 기존 거시경제 패러다임을 어느 정도 따를 테지만 예측 불가성에는 대비해야 한다.충분하지 않으나 총알 탄 대세론이 출렁일 시간은 물론 남아 있다. 보호주의 조치 강화나 최소한 기존 조치 유지는 바이든 재선 때도 계속되지만 ‘급’은 다르다. 트럼프 1기에서 맛본 보호무역 정책은 극단적으로 무장을 갖출 것이다. 보호무역은 채권금리 상승을 부추기며 강달러가 지속될 요건인 점에 유의해야 한다. 무역장벽이 높아져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면 연준 기준금리 인하가 늦춰질 가능성조차 없지 않다. 그 반대도 있다. 연준 금리 인하를 압박할 경우의 수까지 간파하지 않으면 된다.트럼프 대통령 2기를 맞아도 한국 기업이 어려워지지 않는다는 견해가 없는 건 아니다. 미국통으로 꼽히는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의 지론이 그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미국에서 더 자유롭게 기업활동을 할 거라는 시각이다. 그런 측면은 있지만 미국 무역 적자 원인으로 지목되는 한국 자동차와 부품, 반도체가 직격탄을 맞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국내 반도체 기업 등에 추가 투자를 요구할 개연성도 상존한다.트럼트가 복귀한다면 무엇보다 미국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작업이 가속화한다. 그의 공약 ‘폭탄 관세’를 피하려는 각국의 물밑 로비 활동을 우리라고 구경만 할 수는 없다. 정치·군사적 대미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선 안보에까지 경제(비용)를 앞세우는 트럼프의 경제 정책, 트럼프노믹스는 확실히 난해한 숙제다. ‘방탄 영웅’처럼 흘러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나쁜 쪽 재집권 변수를 방지할 ‘트럼프 프루프(Trump-proof)’ 같은 것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2024-07-15 13:55 사설 기자

[사설] 금리 인하 ‘신호’ 제대로 주면서 만반의 준비해야

기준금리는 다시 묶였지만 가능성의 끈에는 조심스럽게 손이 가고 있는 상태다. 소수의견 없이 금융통화위원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연 3.5%로 유지시킨 한국은행의 분위기를 이렇게 표현하면 어떨까 싶다. 방향 전환(피벗) 검토를 거론하며 ‘3개월 후 인하’ 전망 쪽으로 무게추가 조금 더 실리고 있다. ‘시기상조’라고 선을 긋던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의 말을 빌리면 “금리 인하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된 것은 사실이다. 2%대 후반에서 중반으로 향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그중 하나다. 장을 보는 소비자가 물가 안정을 체감할 단계에는 이르지 않았어도 긍정적인 지표다. 인플레이션 목표치만 놓고 보면 이대로 안정되면 금리를 낮출 수 있다. 어느 정도의 확신이 우리에게도 있다. 그런데 가계부채와 원·달러 환율 1400선에 다가서는 외환시장 등 변수들이 걸림돌이다. 수도권 부동산 등 다른 불안 요인도 챙겨봐야 한다. 13번째 기록 경신까지 가지 않고 끝내는 게 좋고 하반기 인하론이 대세라 하더라도 그 이전에 할 일이 있다.인플레이션만 타깃으로 하는 중앙은행이 아니라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제롬 파월 의장의 말은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물론 우리가 통화정책에 부담을 갖는 게 꼭 글로벌 고금리 현상을 이끌던 미국이 기축통화국이어서는 아니다. 유럽중앙은행(ECB)을 비롯한 유럽·남미 지역 은행들은 기준금리를 하나둘씩 내리기 시작했다. 다음 금통위가 열리는 내달 22일까지 가면 기준금리 3.5%는 1년 7개월 넘게 유지된다. 고금리, 고강도 긴축이 소비 여력을 고갈시키고 기업 투자 심리를 꺾은 부분을 깊이 들여다보고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출 때가 됐다.4분기의 10월이든 11월이든, 아니면 예상을 깬 8월이든 금리는 내려갈 방향밖에 없다. 여기에 동의한다면 경제 여건을 종합 검토하면서 일관된 정책을 펴야 한다. 차선을 바꿀지의 고민은 끝낼 시간이다. 금리가 곧 떨어진다는 전망이 시장을 휩쓴 지 올 들어 벌써 몇 차례인가. 다만 금리 인하 분위기만 믿고 진로를 바꾸려는 지점이 되기 전에 미리 켠 차선 변경(금리 인하) 깜빡이가 기대감이 과도한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줘서는 안 된다.경제 상황의 지배를 받는 것이 금리다. 그럼에도 금리가 너무 높기 때문에 낮추는 것이 지금은 ‘금리 정상화’(interest rate normalization)다. 금리 문제는 통화정책 여력에 따라야 한다. 이런 원칙으로 시장 과열을 경계하면서 신속한 정책 대응을 해야 할 시점이다.

2024-07-14 13:48 사설 기자

[사설] AI·기후변화가 키운 전력 수요, ‘원전 재부상’에 답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11일 최남호 2차관 주재로 관련 기관·기업 관계자들과 원전 생태계 복원 정책 성과를 점검하는 회의를 열었다. ‘원전 생태계 완전 정상화 추진상황 점검회의’란 타이틀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원자력발전소를 확대하는 법안에 갓 서명한 것과 비교할 때 과대포장된 느낌도 받는다. 미국에서 초당적 지지를 받는 원전 배치 가속화법(Advance Act)과 같은 원전 정책의 큰 줄기에 청신호가 켜지려면 우린 좀 멀었다. 언감생심(焉敢生心), 그런 마음을 품는 것조차 불온한 분위기다. 사실이 그렇다. 미국이 택한 원전 확대는 현실의 길이다. 전력 먹는 하마로 통하는 생성형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 확충에 따른 발전 수요, 그리고 기후변화와 석탄발전 감축이라는 대명제를 놓고 내린 결단이다. 주요 7개국(G7)의 2035년 석탄화력발전 전면 중단 로드맵과 중국 원전 굴기 앞에서의 에너지 안보 등 다목적 계산이 깔려 있다. 이럴 때 우리가 할 일은 세계 최고 수준이던 원전 산업 경쟁력의 포석을 다시 까는 일이다. 소형모듈원전(SMR)도 익숙하다. 특히 대량의 냉각수가 불필요해 AI 시대에 유용한 발전 시스템이다.태양광과 풍력 에너지로 AI 열풍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검증은 이미 끝났다. 생성형AI 챗GPT는 구글 검색보다 10배 가까운 2.9Wh의 전력이 소모된다. 우리는 더구나 전체 발전량에서 32.5%(2022년 기준)를 점유하는 석탄발전 상위국이다. 6년 앞인 2030년까지 석탄 비중을 20% 이상으로 줄인다는 목표를 어찌 실현할지 막막하다. 일본(29%)은 물론 독일(25%), 미국(16%)보다 많다. 이탈리아(4.9%), 영국(1.1%), 프랑스(1% 미만) 등과는 비교 대상이 아니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우리는 재부상하는 원전에서 AI 전력 수요와 석탄화력발전 감축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는 답을 얻는다.탈(脫)원전-친(親)원전 국가의 이분법에서 우선 벗어나자. 무탄소 전력 생산과 관련 산업에서 경쟁력을 되찾기 위해서다. 미국 대선을 넉 달 앞둔 시점에 민주당은 청정 에너지원 전환에 속도를 내고 공화당은 일자리 창출과 에너지 패권을 원한다. 우리 정당과 다른 그 지점이 바로 미국 정치가 부러운 대목이다. 이념에 갇힌 우리 정치권에는 원자력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공감대가 부족하다. 원전 배치 가속화법으로 뭉친 미국에 얻고 갈 교훈이 있다. 정권 변화 영향을 덜 받는 원전 정책의 지속성까지도 부러워하며 배울 점이다. 확고한 에너지 리더십을 갖고 기후 위기,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는 데는 여야가 없다.

2024-07-11 13:58 사설 기자

[사설] 기업 입장도 반영해 10차 최임위 협상 마무리하길

최저임금 협상에서 팽팽한 노사 간 힘겨루기는 불변의 ‘정석’이다. 오늘(11일)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 전원회의도 수정안인 노동계 1만1200원과 경영계 9870원의 격차 1330원을 놓고 진통을 겪을 전망이다. 대폭 인상과 동결 간 거리는 늘 아득하다. 노동자의 실질임금과 사업주 지불 능력 차이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동결이나 삭감안과 인상안을 놓고 다투는 협상의 최대 고충이다. 그래도 불미한 갈등을 봉합하고 제10차 전원회의를 열어 일단 다행스럽다. 회의에선 경영 여건에 비해 인건비가 과중한 중소기업·소상공인의 입장을 보다 잘 반영했으면 한다. 소상공인 98.5%는 최저임금 인하 또는 동결을 바라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 조사 결과다. 1000명 중 878명은 업종별 구분에 공감한다. 최저임금 인상 때는 신규채용 축소, 기존 인력 감원, 근로시간 단축 등 고용 감축이 벌써 예고된다. 사용자위원 아닌 근로자위원과 공익위원도 이 점은 이해해야 한다.단일 최저임금은 힘든 시기를 보내는 사업주의 입장에서 큰 실책이다. 최저임금 수용 능력이 열악한 업종들의 존재가 차등 적용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있다. 음식업 세부업종 3개 구분 제안조차 거부된 것은 최임위 스스로의 한계다. 낙인효과 발생, 통계 데이터 부족 등은 합당한 부결 사유로선 빈약하다. 고금리와 임대료, 최저임금의 3중고를 감당하기 힘든 업종과 함께 지역별 차등 적용은 꼭 필요하다. 내후년도 최저임금 결정 때부터는 아예 업종별 구분 적용 시행을 전제로 논의를 시작하길 기대한다. 최저임금 적용 첫 해인 1988년 단 한 번 차등 적용하고 이후로는 전무했다.소규모 자영업자 등의 입장을 별로 헤아리지 않고 판단해 왔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다. 최저임금 고시 시한을 맞추는 일은 해마다 힘겨울 수밖에 없다. 노·사·공 합의가 어렵고 퇴장과 기권으로 점철된 최저임금 결정 체계는 개편할 때가 왔다. 노동시장 실태에 정통한 전문가그룹이 객관적 경제 지표로 최저임금 인상 구간을 설정하면 노사 대표 등이 최종 결정하는 이원화 구조 등을 대안으로서 검토할 가치가 있다. 업종별 구분에서도 일부 지역이나 산업의 최저임금을 올리는 방식으로 차등 적용 효과를 얻는 것도 유용한 방법의 하나다. 제도 개선 논의가 곧 뒤따라야 한다.이번 협상에서는 최초요구안보다 노동계가 1400원 낮췄고 경영계가 10원 올렸다. 가급적이면 수정안을 내지 않고 오늘 최임위에서 내년도 최저임금 협상을 끝내야 바람직하다. 무리한 기대이긴 하지만 의지만 강하면 타결 못할 것도 없다.

2024-07-10 14:07 사설 기자

[사설] 삼성전자 노조, 반도체 반등 기회 막을 파업 그만하라

오늘(10일)까지 사흘간 계속하기로 했던 삼성전자 ‘무임금 무노동’ 총파업을 보는 시선은 편치 않다. 세간의 이목은 1969년 창사 이래 처음이라는 ‘신기성(新奇性)’에 과도하게 쏠린 듯하다. 사측과의 교섭,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의 조정 중지 결정, 조합원 찬반투표 등을 거친 쟁의권 확보와 같은 파업에 이르는 과정이 헌법상 보장된 권리인 건 맞다. 그런데 절차적 정당성만 정당성은 아니다.다른 무엇보다 파업이라는 퇴로 없는 마지막 카드가 모처럼 훈풍이 감도는 삼성 반도체 부문에 끼칠 악영향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인력 조정 등을 통해 생산에 문제가 없도록 조치하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행이나 전체 직원의 4분의 1가량(24.5%)이 가입한 사내 최대 노조의 파업이다. 반도체 생산에 대한 잠재적 또는 실질적 부담이 없을 수는 없다. 조합원 사기에 더해 “삼성전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노조의 주장이 마치 형용모순처럼 들린다.그도 그럴 것이 노조가 겨냥하는 전략이 안타깝게도 ‘생산 차질 달성’이다. 설비·제조·개발 공정 종사자가 주류를 이루는 조합원들이 참여해 “총파업으로 생산 차질이 있을 것”이라고 의기양양하게 밝히고 있다. DS(디바이스 솔루션) 부문 직원이 거의 7만 명이고 반도체 생산 라인이 24시간 3교대로 돌아가면 당장은 모르되 2차 파업까지 돌입하면 실제 생산 차질은 불가피하다. 상반기 목표 달성 장려금을 지급받은 날, 파업에 돌입해 “회사를 발전시키기 위한 파업”이라 했다. 논리적인 이치에도 어긋나는 외침이다.중노위의 사후 조정안을 걷어차고 노조가 우리도 힘 있다는 메시지를 대내외에 전파해서 얻을 것보다 잃을 게 너무 많다. 대외적 공신력을 저해한다는 생각도 해봐야 한다. 전 조합원에 대한 높은 임금 인상률 적용, 경제적 부가가치(EVA) 기준으로 지급하는 초과이익성과급 기준 개선, 파업으로 발생하는 임금 손실 등에 대한 요구도 국민 눈높이에선 공감대가 약하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올라타고 반도체 업턴(상승 반전)에 그야말로 초집중할 시기다. 노조가 단합해 도달할 것은 파업 말고도 많다.무기한 파업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다고 밝힌 노조가 설마 삼성전자의 수주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는 상황을 바라진 않으리라 믿는다. 한낱 결속력 확보를 위한 명분 없는 파업은 멈춰야 한다.총파업이 회사 발목을 잡는다는 좀 상투적인 말이 들어맞는 경우가 자칫하면 지금일 것 같다.

2024-07-09 14:07 사설 기자

[사설] 나흘 만에 2조 부풀어오른 가계대출 괜찮나

6월에만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 규모는 전월 대비 5조원 이상(5조3415억원) 불어났다. 2년 11개월 만의 최대 폭이었다. 7월 첫 4일간 이 기록을 깨려는 듯 2조원 넘게 가파르게 불어났다. 가계대출 잔액은 710조원대로 들어섰다. 소폭(2143억원) 감소하나 했던 신용대출도 큰 폭(1조879억원) 늘었다. 나흘 만에 6월 한 달간 가계대출 증가액의 40%가량이 증가했다. 심상하게 무시하고 넘어갈 사안은 아니다. 금융시장 동향이 예사롭지 않다. 주택매매가 살아나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은행권 가계대출이 늘어난다고 담백하게 분석할 상황은 넘어섰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연 2%대까지 낮추며 대출 영업에 은행들이 팔을 걷어붙인 것, 가계 빚이 팽창하자 금융 당국이 제동을 걸고 은행권이 대출 조이기에 나서지만 가계대출 관련 정책의 일관성 부족을 메우기엔 역부족이다. 가계부채가 부실화하면 은행 부문 전반의 위기로 확산될 수 있다. 그런 위험은 관심밖에 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7월 초에 몰리는 대출보다 더 이례적인 현상은 속도다. 4월부터 가계대출이 매달 4조~5조원씩 증가하다가 더 빨라진 흐름을 잘 읽어야 할 것 같다.피벗(통화정책 완화)을 확신하고 한발 앞서 움직인다 해도 보폭이 너무 빠르다.서울 인기지역 집값이 예전 최고점 수준으로 오르며 들썩이는 것과도 물론 무관하지 않다. 가장 좋지 않은 영향은 부동산 등 자산시장의 ‘빚투’(빚내서 투자)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수요다. 큰 외부충격이 발생하기 전에는 가계부채가 대규모 부실화하거나 실물경제가 타격 입을 수준은 아닐지 모른다. 그것을 너무 믿고 있어서도 안 된다.가계대출 증가 폭이 이렇게 기준금리 인상 국면 이전 수준으로 돌아간다. 이건 적잖은 문제다. 9월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실행, 정책자금 대출 증가 등이 중첩돼 있다. 갈지자 행보인 금융 정책이 이자부담 증가 전 대출 수요를 늘린 건 확실하다. 가계 빚 증가의 한 원인인 금융 정책 엇박자를 되돌리는 실효적 대책이 아쉽다. DSR 규제의 사각지대를 줄이면서 일관된 금융 규제 스탠스를 찾아가는 게 맞다.좀 보수적 시각에서 가계부채가 위험한 수준에 와 있는지 점검해봐야 한다. 은행 관리 범위를 벗어난 버팀목(전세)이나 디딤돌(주택구입) 등 정책대출의 급증까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가계부채 수준이 거시경제 및 금융 안정을 저해할 수준에 이를 만큼 과도하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2024-07-08 14:05 사설 기자

[사설] ‘3종 세제 혜택’도 야당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기업 밸류업(가치 제고)을 위해 내건 상속세, 배당소득세,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등 세제 혜택에는 시장 참여자들이 요구해 온 조치가 많이 반영돼 있다. 배당소득세 분리과세, 상속세 최대주주 할증 평가, 법인세 세액 공제 등은 자발적 참여를 자극할 좋은 유인이다. 7월 말 나올 추가 세제 지원 방안도 이목을 끈다. 하지만 높은 관심도에 불구하고 얼마나 실현될지 지켜봐야 한다. 요며칠간의 지배적인 정서도 그랬다. 아마 밸류업 프로그램 가속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할 동력이 부족하다는 인식 때문인 듯하다. 오너가 지배하는 기업이 대부분인 한국적 현실에서 기업 참여를 유도할 당근책으로선 현실성이 결여된 부분이 없지 않다. 상속세, 금투세 폐지를 부자 감세라고 비판하며 각을 세우는 야당의 입장도 달라지지 않았다. 자본시장 선진화의 길이 가깝지 않은 데는 더 원천적인 고민이 있다.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과 역동경제 로드맵 구현에는 국회 동의가 필수인 사안이 대부분이다. 국회가 어깃장을 놓지 않는 게 관건이란 뜻이다. 김병환 새 금융위원장 내정자는 기재부 1차관을 맡으면서 밸류업 세제 지원 방안 설계를 총괄해 프로그램 이해도가 누구보다 높겠지만 이 같은 높은 벽을 넘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2년 4개월여 만에 내놓은 경제철학이 담긴 개편안이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된다.그렇다고 내년 이후 중장기 과제로 미뤄둘 수는 없다. 밸류업 원조 격인 일본이 기업 가치를 올리는 데 도합 10년은 걸렸다고 해서 우리가 그렇게 따라갈 수는 없다. 밸류업처럼 다수 부처가 얽힌 정책을 풀려면 꾸준한 정책적 뒷받침을 할 사령탑이 절대적이다. 우린 지금 그것이 없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국민자산소득 2배 증가’ 구호를 내걸고 경제 체질을 개선하면서 ‘자산운용입국(資産運用立國)’을 폈다. 그런 정책 그립감이 우리 대통령실이나 금융위원회에는 보이지 않는다.무엇보다 밸류업 불씨를 살리는 데 야당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상속세, 금투세, 배당세 등 자본시장 선진화 과제가 국내 정치에 함몰되면 안 된다. 조세특례제한법과 소득세법, 상속세 및 증여세법 입법화가 가시밭길이라고 판명되면 호재로 반영되기 어렵다. 국내 주식투자 인구가 1400만 명이 넘는다. 정부가 공언한 정책이 국회만 가면 없던 일이 되는 얄궂은 운명을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겪지 않아야 한다. 주식시장 활성화의 대명제에 야당이 동참하도록 공감 정부·여당도 총력전을 펼쳐야 할 것이다.

2024-07-07 14:49 사설 기자

[사설] ‘요일제 공휴일’, 기업 입장 잘 듣고 판단할 사안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제1 주제어처럼 간주되던 ‘역동경제’란 용어가 공휴일 제도에 곁들여 모처럼 떠오른다. 내재된 역동성을 끌어올린다는 정부 하반기 ‘역동경제 로드맵’에서 국민 일반의 귀에 쏙 들어오는 대목이 있었다. 특정 날짜가 아닌 요일제로 공휴일을 지정하는 ‘요일제 공휴일’ 방식이 그것이다. 추진 배경인 충분한 휴식을 통한 재충전 기회 보장은 나무랄 데 없는 취지다. 경제성까지 갖추려면 생산성이 좋아지고 소비가 진작돼야 할 것이다. 내수 활성화 명분의 임시공휴일에 고속도로가 몸살을 앓고 쇼핑몰에 인파가 몰려본 경험은 우리에게도 있었다. 다만 공휴일은 임의로 마구 정한 게 아니다. 10월 9일 한글날은 훈민정음의 ‘정통(正統) 11년 9월 상한(上澣)’ 기록에 따라 양력으로 환산한 날짜다. 8월 15일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날이고 설날, 추석은 대대전승된 우리 민족 보편의 휴일이다. 날짜 중심의 공휴일이 갖는 상징성과 본질은 건드리면 안 된다.국민 편익 측면에서 징검다리 연휴 등에 비효율적으로 쉬지 않게 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신정 같은 경우라면 요일제 구상과 별도로 대체공휴일로 추가 지정해도 된다. 요일제 공휴일을 검토는 하되 역사성이나 국민적 기념일 색채가 바래지 않아야 한다. 미국의 월요일 공휴일법이나 중국의 황금연휴제도는 배경부터 다소 다르다. 현행 체제 아래에서 공휴일을 예측 가능하게 하는 방법도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다. ‘몇째 주 몇 요일’ 공휴일이 일반화된 미국의 11월 네 번째 목요일 추수감사절 등은 독특한 내력이 있다. 공공기관과 공기업, 사기업들이 추수감사절 다음 금요일을 휴일로 정하는 것은 재량껏 정착된 그들 식 관례다. 구약성서 초막절에서 발원한 추수감사절이 매년 날짜가 달라져도 절기 개념이 강해서 어색하지 않다. 미국도 휴일이 원래 쉬는 날이면 다음날 ‘준수’하는 대체공휴일 개념을 도입한다.만인이 누려야 할 휴식권과 워라밸 정책의 일환이라면 기업 규모와 무관하게 쉬는 시스템 정착이 더 요긴할 것 같다. 근로시간 단축과 휴일 확대가 기업엔 업무 공백이며 생산성 급락을 의미한다. 요일제 휴일을 할지, 대체공휴일을 늘릴지의 연구 용역 이전에 경제계 의견을 경청해 판단했으면 한다. 하반기 경제정책으로 내놨다면 비용은 기업이 내고 정부가 생색만 낼 일은 아니다. 휴일제 개선 방안이 경제를 힘차고 활발히 움직이게 하는 역동경제 구상으로 나왔으면 경제주체 시각에서 볼 수 있어야 정상이다. 관점상 가장 큰 반대 의견은 경제적 이유에서 나온다.

2024-07-04 14:26 사설 기자

[사설] 노동조합법 개정안 입법 중단하고 경제 챙기길

대통령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로 폐기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22대 국회 ‘뜨거운 감자’로 재등장했다. 국회 공청회와 입법청문회는 한 치도 변하지 않은 각 주체들의 입장차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이미 경험했고 예견은 됐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선 여야 간 날선 공방만 오갔다. 노사 간 힘의 균형 맞추기보다는 갈등 요소 키우기가 되다 보니 빚어진 일이다. 노란 봉투법으로 불리는 법안의 근본적인 한계다. 사용자 개념 확대나 파업 때의 손해배상 또는 개별적 손해배상 청구 등 평행선을 긋는 핵심 쟁점이 있는 한 같은 과정은 재연될 것이다. 파업 참여와 손해배상의 제한을 폭넓게 인정하더라도 기업으로서 수용 가능한 범위여야 한다. 근로 조건의 결정이든 근로조건 자체에 관한 것이든 노동 현장의 혼란을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와서는 안 된다. 경제 6단체는 개정 반대 공동성명에서 “노사관계 파탄을 넘어 국가경제를 위태롭게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를 챙기는 법이 아니라는 우려의 목소리다.입법 중단 근거로 내놓은 근로자·사용자·노동조합 범위의 무분별한 확대는 무리가 있다. 근로자 아닌데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가입하면 근로자로 추정한다면 상시적인 노사 분규의 불씨가 그 안에 있다. 노동관계 상대방의 지위로 사용자 범위를 넓힌 것도 문제다. 노동할 권리를 개선한다면서 노사관계 근간인 법률체계를 흔들면 안 된다. 불법 쟁의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가 사실상 봉쇄되면 불법 파업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기 마련이다.이것은 손배소가 노조탄압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보완해 나가는 것과 별개 사안이다. 경제 챙기기와 거리가 먼 편파적인 법은 만들지 않아야 한다. 우리나라가 국제노동기구(ILO) 의장국이 됐다는 것이 노동조합법 개정안에 찬성할 이유는 아니다. 강성노조의 폭력과 사업장 점거가 노동자의 폭넓은 권리일 수도 없다. 노동관계의 공정한 조정, 산업평화 유지와 국민경제 발전도 노동조합법 제1조에서 명시한 법의 목적 아니던가.더욱이 수위가 더 높아진 22대 발의안이다. 21대에서 거론되다 빠진 손해배상 청구 제한 부분까지 강화돼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단체교섭·쟁의행위로 손해를 입어도 손해배상을 못 청구한다면 헌법상 재산권 침해로 회귀될 여지가 있다. 노조법 개정안은 기업 현장에 간절한 정책 입법과 비교할 때는 긴급성과 불가피성이 결여된 법이다. 거대 야당은 단독 처리하고 대통령이 비토하며 권력 투쟁의 재료로 소진하려는가. 그런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과정의 반복에 제동을 거는 게 맞다.

2024-07-03 13:27 사설 기자

[사설] ‘백년소상공인’ 더 체계화된 지원 필요하다

2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소상공인법) 시행령에 따라 장기간 사업을 운영하는 소상공인들이 다소 힘을 받게 됐다. 2018년 제도 시행 이후 부족함으로 남아 있던 육성책이 개선된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료 지원 대상 구체화와 같은 도움이 가능하게 된다. 지정 요건 등 세부 내용도 보완됐다. 법적 근거가 강화된 만큼 소상공인 성공 모델 발굴·확산 사업이 보다 탄력을 받기를 기대한다. 소상공인법이 시행령에 위임한 필요사항을 정하는 후속조치는 백년가게의 질적 고도화 방안이 돼야 할 것이다. 1369개의 백년가게, 956개사의 백년소공인 등 이전에 지정된 2325개의 백년소상공인은 창업 30년이 넘은 소상공인 가운데 장수할 만한 가게가 대상이다. 100년을 지향하며 축적한 혁신 역량, 제품·서비스 차별화 기법이 다른 소상공인에게도 귀감이 되도록 제도를 운영해야 함은 물론이다.기존의 보증우대 혜택이나 정책자금 금리 우대에 새로 추가된 산업재해보상보험료 일부 지원 등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돕는 실질적인 지원이 돼야 한다. 일본에서 3만 곳을 헤아리는 진짜 백년가게가 우리에게 100곳이 채 안 되는 것은 창업·폐업의 악순환을 겪는 사업 환경과 직접 관련이 있다. 교토에는 1000년 넘은 찹쌀떡 노포(老鋪, 시니세)를 25대째 운영하는 곳도 있다. 소상공인법 개정안에 사업 승계 때의 동일 유지 판단 기준을 이제야 마련한 우리로선 좀 부럽기도 하다.만 6년이 지난 이 프로젝트 시행 후 백년가계마저 폐업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치솟는 물가와 인건비 상승 등 경영여건 악화 앞에서는 장수가게라고 해서 버텨낼 재간이 없다. 업력이 높은 가게의 생존율을 높이려면 동일 상가에서 오래 영업할 수 있게 계약갱신청구권 관련 특례를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후대에 물려주고 싶지 않거나 가족 중 승계 대상자가 없어 불투명할 경우에 대한 처리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기업가형 백년소상공인 육성을 위해 백년가게 제품의 해외 판로 개척 등 진출을 모색해볼 단계다. 중소기업 성장에 내수시장으로 한계가 있는 것과 유사한 이치가 소상공업계에도 작용한다. 소상공인과 긴밀히 소통해 ‘100년 이상 존속’ 가능한 K-국가대표가 되도록 보다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할 것이다. 소상공인 생태계 여건이 좋지 않다. 이상을 말하면, 백년소상공인 현판 부착이 많은 소상공인의 ‘로망’이 된다면 좋지 않을까. 모든 소상공인을 백년가게, 백년소공인을 만든다는 신념까지 필요한 일이다.

2024-07-02 14:08 사설 기자

[사설] ‘AI 시장’ 선점 위한 글로벌 행보 뒷받침해야

‘첫째도 둘째도 인공지능(AI)’. 요즘 삼성, SK, LG 그룹 회장의 연이은 미국 출장 성격은 이렇게 규정할 수도 있겠다. 미래 산업 환경이 인공지능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음을 실감한다. AI 시장 선점은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룹 회장들의 대미 행보가 관심을 끌 수밖에 없는 이유다. 메타, 아마존, 퀄컴 등 빅테크 CEO와 연쇄 회동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삼성의 강점을 삼성답게 살린다는 강한 의욕을 내비친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인공지능 밸류체인을 살피면서 협력 관계를 다졌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실리콘밸리를 찾아 글로벌 성장동력을 점검했다. 엔디비아에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공급 중이고 6세대 HBM4부터 TSMC의 로직 선단 공정을 활용할 계획이어서 방문 의미가 상당하다. SK하이닉스가 2028년까지 103조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한 것과 맞물려 더욱 주목된다.공통점이 추출되는 출장길이었다. 기업 총수들이 마주한 것은 전략적 협업 체계의 긍정적인 일면만이 아니었다. 레드오션처럼 된 치열한 경쟁을 생생하게 목도했다. 인공지능을 빼고는 논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른 글로벌 산업의 흐름이 그것이다. 전례 없는 기회가 잡힐 듯하면서도 영원히 도태될지 모르는 것이 AI 생태계다. SK 최 회장의 “미국에서는 AI 말고는 할 얘기가 없다 할 정도”라는 전언에서 현지의 도도한 물줄기를 절감하게 된다.인공지능 시대로 그만큼 빠르게 바뀌는 변곡점이다. 한국은 AI 혁명이 스스로의 실력으로 진행 중인 몇 안 되는 나라로 꼽히긴 하지만 AI 민간투자는 이스라엘은 3위인데 비해 한국은 18위에 머문다. AI 3대 강국이 되려면 해외 빅테크와의 확연한 체급 차이도 극복할 과제다. 선택과 집중을 통한 내실 있는 경영은 어느 기업에나 절실한 명제이기도 하다.정부는 내년 1조1000원의 연구개발(RD) 예산을 투입해 인공지능 기술 선점에 나선다고 했다. 그 기술이 대체불가능하려면 속수무책으로 이뤄지는 AI 인재의 해외 유출부터 막아야 할 것이다. AI 기본법은 21대 국회에서 폐기됐다. 설자리를 못 찾고 기업이 알아서 뛴다는 식이면 초격차 기술 개발은 어떻게 뒷받침하는가. AI 선도국이냐 주변국 전략이냐의 싸움은 기업만의, 그룹 총수만의 고군분투일 수는 없다.‘밀리면 끝장’이란 위기의식이 있는 승부수다. 3사 3색(三色) 행보를 보이는 삼성, SK, LG의 미래 투자와 질적 성장을 정부와 정치권이 전심전력으로 지원해야 한다. 대한민국 미래 먹거리를 위한 일인 데다 미래와 AI는 분리가 되지 않는다.

2024-07-01 14:39 사설 기자

[사설] ‘밸류업 공시’, 7월 세법 개정을 주시한다

7월 세법 개정에 지금 주시하는 것은 기업 가치제고(밸류업)와 관련해서다. 나흘 전까지 전체 코스피·코스닥 시장 상장사 2682곳 중 7곳의 상장사만 참여했다. 한 달간 공시 시행 실적이 이렇듯 기대에 못 미친다. 지난 주 편집인포럼에 참석한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참여 기업에 대한 법인세 경감 추진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반응은 시큰둥하다. 상장사들이 서두르지 않는 건 그럴 이유를 못 느끼기 때문이다. 밸류업 공시를 하려면 재무 지표를 바탕으로 경영 목표를 수립해야 한다. 세제 개편 방향성을 보고 판단하려는 분위기도 작용하는 듯하다. 게다가 밸류업 공시 계획을 밝힌 상장사들의 주가 흐름조차 엇갈린다. 주가가 뒷걸음친 곳도 있다. 밸류업 공시를 활성화할 피부에 와 닿는 조치가 있지 않고서는 하반기 참여율 또한 높지 않을 수 있다. 주주에 분리과세 혜택을 부여해 소득세율을 낮추는 방안, 상장사에 배당 증가분만큼의 세액공제 혜택 부여와 같은 다양한 당근책이 필요해 보인다.2분기 실적이 확정되는 하반기엔 아무리 못해도 지난 한 달보다는 밸류업 공시 참여가 활발해질 것이다. 기업가치 제고는 기업 스스로의 계획과 투명성에 대한 의지에 달린 부분이 많다. 여기에 코리아 밸류업 지수나 상장지수펀드를 만들어 투자를 유인하는 등 정부의 실재적인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밸류업 공시가 마치 규제처럼 비치거나 모범 납세자 선정 수준에 그치면 실효는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수 있다.금융권이 자사주 소각을 통한 주주 환원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 제거에 나서는 것은 긍정적이다. 장기적으로는 기업 경영권 보호와 미래 투자 여력을 해치지 않게 해야 한다. 방어 수단을 해할 정도여서도 안 된다. 우리가 벤치마킹한 일본 증시의 활황 배경을 자세히 보자. 기록적 엔저와 상장사의 탄탄한 실적임이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처럼 상장사 42%가 벌어서 이자도 못 내는 좀비기업 수준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기업 경쟁력의 걸림돌을 제거해줘야 정부도 기업 자율을 말할 자격이 있다. 차등의결권, 적대적 인수합병(MA) 때 기존 주주가 지분을 싸게 매입하도록 하는 포이즌 필 도입도 과감히 단행해야 할 것이다. 주주 이익을 돌려준 상장사의 법인세는 깎고 배당소득세는 줄여줘야 한다. 상장사들은 경영권 악화나 승계 불안을 완화할 상속세 인하 등 7월 이후 발표될 세제 개편 방향을 예리하게 지켜보고 있다. 한국 증시에 머물 당위를 안 만들고 ‘국산품 애용’ 캠페인을 시끌벅적 벌여봐야 무슨 소용인가.

2024-06-30 13:37 사설 기자

[사설] 미래 먹거리 양자기술, 글로벌 경쟁력 못 갖추나

27일까지 사흘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퀀텀코리아 2024’는 글로벌 양자 생태계 혁신 흐름을 조망해볼 좋은 기회였다. 국내외 양자과학기술 전문가 및 관련기업들을 통해 꿈의 기술로 불리는 양자기술에서의 치열한 주도권 경쟁을 가늠할 수 있었다. 양자컴퓨팅, 양자암호, 양자통신 트렌드를 읽은 것, 국가별 전략을 통해 우리 양자 전략을 가다듬은 것은 작지 않은 소득이다. 사실 이 분야라면 반성부터 필요하다. 실제로 국내 양자컴퓨터, 양자통신, 양자센서 기술이 미국, 중국, 독일, 호주, 이탈리아 등 주요 12국에 비해 최하위로 자체 평가됐다. 양자컴퓨터나 양자센서에서 낮은 기술 수준 점수, 무엇보다 양자통신 분야에서 미국 84.8, 중국 82.5점과 비교한 2.9점은 충격적이다. 인공위성과 베이징, 상하이까지 이어진 백본망으로 양자암호망을 깔고 서비스하는 중국과 차이가 이만큼이다. 일본도 양자통신, 암호 하드웨어에서 독보적 수준이다. 심기일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다른 조사에서는 양자기술 분야 연구 규모는 세계 16위였다. 우리가 20큐비트(퀀텀비트) 양자컴퓨터를 시연할 때 미국은 1000큐비트급을 내놓을 정도다. 관심과 투자가 늦어 비교 대상국들과 벌어진 기술 격차를 만회해야 한다. 미래산업의 핵심인 양자 분야에서 후발 주자임을 인정하고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차세대 키워드로 부상한 양자컴퓨팅 기술도 선점해야 한다. MS, IBM, 구글 등 빅테크 기업은 양자기술에서 저만치 앞서간다. 양자 큐비트 생성과 얽힘전송 등 기초기술력 차이는 상당하다. 지배적 기술이 세계 무대에 출현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삼고 양자 생태계 확장 가능성을 현실로 구현해야 한다. 한국은 제조업, 반도체 부품 소자, ICT 강국이다. 저력을 살리면 글로벌 경쟁력이 손에 잡힐 수 있다.퀀텀 코리아 행사에서 체험한 그대로 드론, 카메라, 보안망 등 상용화 서비스로 실생활에 접목되기 시작했다. 이미 초기 상용 단계다. 생명과학, 제약산업, 인공지능, 금융 등에서도 원천기술과 응용 서비스 기술 개발에 나서야 한다. 확실한 건 양자기술 상용화가 1차 산업혁명 충격과 맞먹고 그 상용화 시계가 빨라진다는 점이다.미국과 중국과의 28~29배 점수 차이는 아픈 손가락이지만 그것을 접고 기초연구에서 양자통신 산업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시점을 놓쳐선 안 된다. ‘경쟁 열위’인 기술 경쟁력을 높여 양자역학의 ‘퀀텀 점프(Quantum Jump)’ 개념처럼 최고 궤도로 도약해 글로벌 기술패권을 움켜잡아야 할 때다.

2024-06-27 14:10 사설 기자

[사설] 인위적인 전세 폐지, 지금 타당한 대안일까

서울 신촌 대학가 등에서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청년 등 절망적인 소식은 현재진행형이다. 폐해만 집합하고 보면 전세는 ‘없어져야 할’, ‘수명이 다한’ 제도처럼 치부돼야 마땅하다. 전세 존폐 여부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건 무리가 아니다. 전셋값이 고꾸라지면 고의든 비고의적이든 사고는 발생할 수 있다. 보증금을 후속 임차인에게 전가하는 한 끊이지 않을 화근과도 같다. 왜 그렇겠나. 집주인의 주택가격 상승 기대와 세입자의 이해관계로 지탱되는 전세가 부작용이 부각되는 쪽으로 작용해서다. 전세사기 여파로 월세가 늘었지만 임차인 다수는 전세로 산다. 빌라보다 아파트를 선호하는 건 위험의 강도 차이에서 비롯됐지 전세에 대한 전면 부정은 아니다. 전세를 없애면 골칫거리가 일거에 해결된다는 예단 또한 과도한 믿음이다. 제도 자체의 결함은 아니다.전세 폐지론이 수면 위로 오른 실제적 이유는 전세사기, 역전세난 심화 때문이다. 전세제도가 위축되면 연세, 월세 등의 계약이 보편화되겠으나 무주택 서민의 부담이 증가할 우려는 커진다. 준비할 것이 그래서 만만찮다. 전세의 월세 전환은 초기 비용이나 이자 부담을 줄이면서 내 집 마련이 가능한 제도를 만들면서 순차적으로 유도해야 한다. 그 전에는 중개인 책임을 강화하고 전세금 보호 보험을 강화하는 것이 대안으로 더 바람직할 수 있다. 전세의 문제는 일관된 부동산 세제나 정책의 부재 탓이기도 하다.성급함은 좀 자제해야 한다. 모기지(주택담보대출) 형태 등 선진형 주택금융 체계로 전환하자 해도 다소의 시간을 요한다. 뿌리 깊은 한계점은 묻어두고 인위적으로 없애면 시장 혼란만 부추긴다. 폐지론은 주로 전세사기에서 발원한 것이니 답도 여기서 찾아야 한다.정부가 나서서 폐지를 전제로 통제하다가 매매의 지렛대와 주거 사다리 구실을 하는 전세 생태계가 일시에 흔들릴지 모른다. 제도 자체를 없애기 전에 무자본 갭투자를 막는 게 더 빠르다. 전세 보증금을 매매가 70% 이하 등으로 못박는 상한제, 보증금을 입주 시점까지 예치했다가 나중에 집주인에게 이체하는 에스크로 계좌(escrow account)와 같은 취약한 시스템에 대한 보완책을 제시할 수도 있겠다.거론되는 기업형 장기임대주택(20년 이상)과 민간임대주택은 타당성은 있으나 엄밀히 보면 몇 년 후에나 가능한 대책이다. 전세권 설정 의무화와 더불어 문제점을 보완해 시장에서 잘 기능을 하도록 해야 지금 현실에는 더 잘 맞는다. 제도 자체를 없애는 폐지론은 이를 대체할 강력한 새 제도를 만든 다음 외쳐도 늦지 않다.

2024-06-26 14:03 사설 기자

[사설] ‘이사 충실 의무’ 확대, 기업 밸류업에 도움 안 된다

22대 국회가 개원하자 다시 불거진 상법 제383조의3(이사의 충실 의무) 개정 논란이 뜨겁다. 이사가 직무를 수행할 때 ‘회사’를 위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법조문을 ‘회사와 주주’로 변경하는 것이 골자다. 경영권 위협을 우려한 경제단체들은 25일 상법 개정에 반대하는 공동건의서를 정부와 국회에 제출했다. 해당 조항에 총주주 또는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추가하면 소액주주 보호에 도움 되는 부분이 없지는 않다.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 나머지 주주의 이익을 희생해도 회사에 손해만 없으면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문제를 정의의 차원에서 바로잡는다고 여길지 모른다. 그런데 이사와 주주 사이 사이에 위임 계약이 없는데 대리인 관계만 형성되는 개정안이 법 체계에 맞는지부터 근본적으로 살펴볼 대상이다.이사회의 결정으로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상법 개정 목소리가 불거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로 개정되면 ‘본인(주인)-대리인 문제’ 이론이나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둘러싼 법리 다툼을 떠나 기존 법체계를 흔들게 된다. 일부 주주들의 소송 남발은 불을 보듯 뻔하지만 소액주주 보호 효과를 거둔다고 보기는 어렵다. 반면, 기업의 신속한 경영 판단이 힘들고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 등 경영권 공격세력에 휘둘릴 때의 손실은 막대하다. 과도한 ‘경영 판단 원칙’은 사후적인 사법 리스크 증가를 의미한다.등기이사가 배임죄 혐의로 구속될 가능성이 높아지는지 여부가 사안의 본질은 아니다. 해당 입법과 1대 1 교환으로 배임제 폐지론까지 거론되는 것 역시 부적절하다. 상법 개정 없이 형법상 배임죄 규정을 대주주 견제 장치로 쓰는 방안이 차라리 합리적이다. 경제단체 공동건의서에 적시된 대로 물적 분할 때 반대 주주에 대한 주식매수청구권 부여 등을 활용하는 편이 낫다. 주주 이익 보호가 목적이면 현행 법제 아래서 얼마든 가능하다.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한 투자자 이익을 보호할 기업 구조 개선이 꼭 이 방법일지 의문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수사 경험이 작용했을 수도 있겠다. 중요한 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식 저평가) 해소에 실효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마음만 먹으면 기업 경영에 개입하는 스튜어드십 코드(적극적인 의결권 행사 지침) 전례보다 더 안 좋은 요소를 내포한다. 자칫하면 한국 증시 밸류업 프로젝트와 거꾸로 갈 소지마저 있다. 상법 개정 없이 주주 이익을 보호하는 방안을 찾길 바라는 이유다. 기업 경영 활동을 저해하고 위축시키면서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인 ‘주인’이 누구냐는 질문을 던져봤자 무의미하다.

2024-06-25 14:09 사설 기자

[사설] 주담대 2%대 금리… 집값·가계대출 불안 요인 줄여야

서울 아파트 가격이 연속 상승하면서 집값 반등론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가 6개월 이상 내리면서 집값이 아직 바닥은 아니라던 작년 연말에 비해 눈에 띄게 달라진 흐름이다. 정책금융 확대와 주담대 금리 하락에 따른 유동성 공급은 집값을 상승시킨다. 상환 부담이 낮아지면서 매매 쪽 심리가 뜨거워진 것이다. 가계대출 수요의 대부분인 주담대의 이자 부담이 줄어든 것도 여기서 큰 몫을 한다. 시중은행의 주담대 금리는 최저 2%대까지 하락했다. 혼합형(고정) 주택담보대출 최저 금리가 3.90%를 기록한 2022년 5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물가 상승률이 한풀 꺾이면서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은 부풀려졌고 분양가 급등 여파로 기존 주택 거래 수요가 늘었다. 내년 입주 물량 감소나 피벗(통화정책 전환) 등 주택 가격을 들썩거리게 할 불안한 변수들을 눈여겨봐야 한다.금리가 내리더라도 핵심 지역 위주로 집값 양극화가 심화할 수 있다. 서울 강남 3구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등 한강벨트 지역은 2년 전 고점 수준을 거의 회복했으나 서울 안에서도 온도차는 뚜렷하게 나타난다. 일부를 제외한 지방은 매수 심리가 살아나지 않아 분절된 집값 구조의 또다른 극점에 있다. 서울 주요 지역, 선호 단지 위주의 집값 이원화 현상에 주목하면서 관련 대책을 점검해야 할 것이다.집값과 가계대출은 무엇보다 상관성이 높다. 집값이 잡혀야 가계대출이 줄어든다. 집값 상승 기대감이 커지면 대출 문턱이 높아도 대출 수요가 계속 늘어나는 부분에 유의해야 한다. 5월의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전달보다 6조 원 늘어난 최대 규모였다. 금리 하락이 주택가격 상승 기대를 자극하고 다시 가계 대출이 불붙는 문제로 비화한다. 잘못 관리하면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2단계 대출 규제에 따른 하방 압력마저 힘을 잃게 된다. 주택 매입 문턱이 높아져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투자는 재연될 수 있다.시장금리 하락이 집값 불쏘시개가 되지 않도록 정책 역량을 모을 때다. 일부 은행의 가산금리 조정, 대통령실의 금리 인하 필요성 언급까지도 금리를 낮추는 데 영향을 미쳤다. 섣부른 금리 인하는 가계부채와 부동산 불씨를 되살린다. 불과 20일 만에 5대 은행의 가계 대출이 4조 원 이상 증가한 것은 이를 미리 보여준 신호일 수 있다. 대출을 인위적으로 조이는 것 역시 가계대출 감소의 중장기 해법은 아니다. 부동산 시장 불안과 가계대출 억제를 위해 정부가 실기해선 안 될 중요한 시기다.

2024-06-24 14:00 사설 기자

[사설] 최저임금 결정 과정 개편할 때 아닌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22일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특수고용직과 플랫폼 종사자 등에게도 최저임금을 확대 적용하자고 주장했다. 내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심의 법정 시한일이 27일로 다가오지만 경영계와 노동계가 각각 인상하자, 동결하자로 맞서고 있다. 법정시한을 이틀 앞둔 25일 제5차 전원회의에서 업종별 구분 적용과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지금 가늠해볼 수 있는 건 올해도 법정시한 준수가 힘들다는 정도다. 최저 시급 논의는 본격적으로 시작조차 못한 셈이다. 핵심 쟁점 하나는 ‘업종별 구분 적용’이다. 주말 노동자대회에서 노동계는 사회갈등을 유발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경영계에는 차등 적용이 일할 기회를 제공하고 인건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편이다. 현실적으로는 임금 지급 주체의 지불 능력이 낮은 취약 사용자 집단의 목소리를 비중 있게 들어야 한다. 노동시장 밖 외부시장의 취업 기회까지 고려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지난주 열린 기자회견에서 소상공인연합회는 주휴수당 폐지까지 촉구했다. 노동 생산성에 비해 최저임금(2024년 9860원)이 너무 높다는 주장이다. 매출 증대를 위한 정책 지원이 어려우면 더 절실한 것이 최저임금이나 금융 지원 같은 정책이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사업장 1000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98.5%가 최저임금을 인하 또는 유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최저임금의 본질적 취지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지불능력 차이를 정당화해야 한다.이를 위해 1988년 이래의 최저임금제 결정 구조를 전면 검토해볼 때 아닌가. 노사 간 견해차가 커진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들러리처럼 되고 공익위원이 캐스팅보트가 되는 제도 자체가 화근이다. 표준안 제시에 사용하는 최저임금 결정 산식을 고도화해야 한다. 경제성장률과 소비자물가상승률뿐 아니라 고용, 투자 등 거시경제의 다양한 변수가 반영돼야 할 것이다. 잘못된 방식을 언제까지 답습할 수는 없다.파행이 반복되는 이유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상충하는 노동계와 경영계가 합의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해관계자에서 자유로운 독립기구를 마련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설득력 있는 최저임금 표준안을 만드는 게 합리적인 대안이다. 최종 도구를 이해관계자의 결정 아닌 자문 역할로 바꾸는 건 어떨까. 고용노동부 장관이 심의를 요청한 뒤 90일이 며칠 후 도래하는 지금까지 한 일이 뭐 있나. 소모적 논쟁과 극심한 노사 갈등을 해마다 반복시키는 현행 최저임금 결정체는 이제 개편해 나가자.

2024-06-23 15:34 사설 기자

[사설] 예산 쓸 곳에 잘 써야 저출생 추세 반전 이룬다

300개를 헤아리던 저출생 대책을 60개로 집중해 줄여도 나열식 정책이라고 지적한다. 윤석열 정부 집권 2년이 지나 작심하고 내놓은 저출생 대책에서도 피할 수 없는 반응이다. 출산율 0.7이 무너진 이 시점에서는 정책이 많아서가 아닌 실효성 있는 정책이 적은 탓을 해야 할 것 같다. 예산집행비율이 부적절하고 재정효율성이 저하된 데서도 저출생 대응법의 부실 근원을 찾아 보강해야 할 때다. 과대 계산된 면은 있으나 17년 동안 수백조 원의 예산을 들였다. 그러고도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고개 끄덕이는 젊은층은 보기 드물다. 저출생과 무관한 부처별, 지자체별 정책만 난무한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아빠 절반을 육아휴직 보내고 육아휴직 급여를 월 최대 250만으로 올려서 초저출생 문제를 다 극복한다는 발상 자체가 오산이다. 사업주에게 월 120만 원의 육아휴직 대체 인력 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도 했다. 이러한 예산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사회 분위기 정착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현금성 지원만 확대하는 방안으로 흐르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난해 저출생 예산으로 쓴 47조 원(142개 과제) 중 절반은 저출생과 직접 관련 없는 과제에 투입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이다. 학교 단열 성능 개선이나 청소년 스마트폰 중독 예방사업이 저출생과 대체 무슨 상관인가. 높은 주택가격은 청년층의 결혼 포기 요인이 될 수 있다. 아이 낳으면 아파트 특별공급 기회를 줄 뿐 아니라 민간임대주택시장도 확대해야 한다.출산 최대 주체인 직장인 신혼부부 등을 위한 정책의 현실적 반영이 아직 부족하다. 현재 일·가정 양립 분야에 8.5%(2조 원)의 예산이 할당되는데, 그 비중을 높여야 한다. 정치권도 ‘모성보호 3법’ 등의 입법으로 뒷받침해야 할 것이다. 특수고용자나 플랫폼 노동자, 자영업자 등에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아야 한다. 생업 현실과의 온도차를 줄이면서 예산을 써야 할 곳에 잘 써야 추세적으로 변화를 볼 수 있다.국가 존망이 걸린 사안이라 해도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젊은층의 생각을 바꾸지 못한다면 정책을 통한 저출생 모드 반전은 없다. 비상사태를 맞아 범국가적 총력 대응이라며 이것저것 남발하고 책임 안 지는 행태는 고쳐야 한다. 예산 효율성을 위해 아이를 갖지 않으려는 경향성과 출산율 수직낙하의 근본 원인부터 잘 되짚어본 다음 집행해도 늦지 않다. 출산율이 높은 지자체에 보통교부세를 더 주는 방안의 경우, 자칫하면 지자체 간 제로섬 게임처럼 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2024-06-20 14:09 사설 기자

[사설] 22대 국회로 넘어온 ‘단통법 폐지’, 처리 시급하다

단말기 보조금 지급을 투명하게 해 이용자 편익을 증진하자는 취지에서 10년 전 만든 법이 ‘이동통신 단말 장치 유통 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말기 유통법, 단통법)이다. 보조금 상한을 제한한 것이 핵심이다. 차별적 지원금으로 제값 주고 단말기를 사면 ‘호갱(호구+고객)’이라고 불리던 일은 사라진 듯 보였다. 하지만 입법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낳았다. 지원금이 대폭 축소돼 가계 통신비 부담이 늘어난 것이다. 이용차 차별 방지보다 이용자 후생 저하라는 더 큰 부작용으로 작용했다. 법 개정 요구는 2014년 법 시행 직후부터 부단히 따라다녔다. 이제는 단말기 구매 부담 등 단통법 운용 과정의 문제점 때문에라도 입법이 시급해졌다.총선 표심까지 겨냥해 폐지 법안이 발의됐지만 21대 국회에서 휴지조각이 됐다가 20대 국회의 논의 테이블에 올라왔다. 시행령까지 황급히 고쳐 통신사를 전환하면 할인을 추가해 주는 전환지원금 제도를 만들었다. 정부 장담과는 달리 시작만 요란했지 제자리걸음 중이다. 유용한 정책 카드가 아니었다. 평등하게 비싼 단말기를 제공하는 단통법 폐지에 재차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단통법 시행 10년 뒤의 통신업계는 붕어들만 사는 평화로운 어항에 비유된다. 지난해는 영업이익 4조 원에 이를 정도였다. 3사 과점 구도를 깨는 일종의 메기로 제4이통사를 낙점했지만 재정능력이 없어 초기자본금의 일부조차 못 채우고는 좌초됐다. 알뜰폰 시장을 키우는 데는 한계가 여전하다. 그래도 유효한 대안은 글로벌 기준에 안 맞는 단통법의 폐지다. 소비자 보호를 위해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단말기 유통 시장을 혼탁하게 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다.유의할 것은 국내 통신업계는 단통법 하나로 움직일 시장이 아니란 점이다. 단통법이 폐지돼도 포화 상태인 이동통신 시장에서 보조금 경쟁이 불붙지 않을 수도 있다. 단말기 가격 인하의 해법은 단일하지 않다. 제조사가 이통사에 단말기를 공급하면 알아서 팔아주는 구조부터 개선해야 하는지 모른다. 이통사를 단말기 유통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완전자급제도 검토해볼 수 있겠다.정부가 시장가격에 일정 부분 개입하는 대신에 업계 간 경쟁을 유발하는 방식은 소비자 부담을 낮추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본다. 휴대폰 유통 시장의 경쟁을 유도하면서 공정하고 투명한 가격을 제공해 소비자 편익을 돕는 방향이면 현재로선 이상적인 그림이다. 오래 우왕좌왕하면 통신업계도 혼란스럽다. 미디어 주도권을 놓고 여야 신경전이 한창이지만 단말기 유통법 폐지는 신속히 종결해야 한다.

2024-06-19 14:15 사설 기자

[사설] 세수 확충 방안 내놓고 종부세·상속세 고쳐야

대통령실과 여당이 종합부동산세(종부세)와 상속세 개편을 공식화하며 판을 키우고 있다. 아무런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하나는 사실상 폐지, 다른 하나는 인하 추진 쪽의 흐름이다. 국내 상속세율은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과도하다. 기존 과세표준과 세율 아래서는 아파트 1채만 가진 중산층에도 종부세는 부담스럽다. 그러니 손질해야 한다며 개편 의지를 보인 여당은 재정·세제개편특별위원회를 가동하며 대통령실과 동조하는 모습이다. “정해진 바 없다”며 신중한 자세를 취하는 정부는 각론과 방법론이 다를 것임을 예고한다. 조율을 거쳐 역할 분담을 하더라도 개편의 목적지는 뚜렷해야 한다. 상속세 최고세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26.1%에 근접하게 낮추는 일은 과도한 상속세가 가업승계를 가로막고 있는 것 하나만 봐도 불가피하다. 불합리한 부분을 현실화한다는 접근법이 무엇보다 기본이다.누가 불씨를 댕겼건 종부세 개편 논의가 여야 정책 경쟁의 핵심 의제로 떠오르는 자체는 비판받을 일이 아니다. 정책 주도권을 쥐고 정국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포석이 꼭 나쁘지는 않다. 감세 드라이브가 정치적 공세용이 아니면 된다. 1주택자에게만 종부세를 면제하면 똘똘한 한 채 현상으로 특정 지역 집값이 뛴다는 주장도 일리가 없지 않다. 그런 것보다 단순한 부자세 아닌 조세평등의 개념으로 접근해 재산에 일부 흡수하면서 풀어갈 문제라고 본다. 부의 대물림이 걱정이라는 상속세 인하 카드에서도 경쟁력 있는 기업의 가업승계를 막는 부분을 중시해야 한다. 사업 단절과 일자리, 투자 감소 등 여러 부작용까지 아우르면 확실히 개편이 필요한 시기다.다만 감세는 조심스럽다. 안 그래도 관리재정지수가 좋지 않다. 종부세를 사실상 폐지하고 상속세 최고세율을 대폭 인하한다면 정부 재정에 뚫린 구멍은 커진다. 지난해 종부세 결정세액이 4조1951억 원 수준이었다. 이걸 봐도 특히 지방 재원 감소를 보완할 정책은 정교해야 한다. 어떤 의미로는 세수 증대가 세제 개편의 한 목표여야 할 듯싶다. 상속세의 경우라면 인하를 넘어 자본이득세 전환 등 장기 로드맵까지 구상해야 할 것이다.신중한 접근으로 지지층을 겨냥한 정책 선점에 매몰되지 않는 냉철한 자세가 요청된다. 종부세, 상속세 보정은 세수 펑크를 메울 방안, 근본적으로는 납세 순응도를 높이면서 세수 확보를 통한 세제 개편 방식을 찾는 일과도 통한다. 어느 경우에나 ‘재정건전성’은 포기해선 안 될 지침이다. 종부세 폐지, 상속세 인하를 넘어 전반적인 세금 개편 논의를 한다면 여야 간에도 심도 있는 논의를 건너뛰지 않아야 한다.

2024-06-18 14:11 사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