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신용사면’ 취지·명분만 좋아선 안 된다

사설 기자
입력일 2024-01-11 14:07 수정일 2024-01-11 14:08 발행일 2024-01-1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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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과 소상공인의 대출 연체기록 삭제는 긍정적인 면이 많다. 직격탄이나 다름없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영업규제 등을 감안할 때 민생 회복 차원에서 유용하다. 소액 채무를 연체했지만 전액 상환한 취약계층이 대상인 점에서 공감이 가는 조치다. 특별사면과는 성격이나 효력이 다른 개념이지만 신용사면이라 일컫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국신용정보원이 보존하고 금융기관과 신용평가회사가 공유하는 연체 기록 말소는 당사자들에겐 희망을 줘 용기백배해질 기회도 될 수 있겠다.

이러한 신용회복 지원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대출 기한을 불가피하게 못 지켰지만 다 갚은 경우에 한정한다. 그 기준으로 굳이 말하면 ‘옥석’을 나름대로 가려 카드 사용이나 대출 이용 등 금융 거래 불편과 불이익을 덜자는 것이다. 경제적 취약계층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에 조기 복귀할 방안으로 기능을 잘했을 때의 이야기다. 금융 취약계층의 재기를 도와 부작용 없이 추진될 때는 대상자 개개인의 사기를 북돋울 수도 있다. 그래만 주면 선의로 가득한 제도다.

조건 내에서 연체 이력 삭제는 금융소외계층을 품는 일이다. 대상자 수를 보면 금융 대(大)사면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그런 만큼 부실차주와 우량차주를 가르는 최소한의 구분은 있어야 한다. 무분별한 대출이 분출돼 금융시장이 혼란스럽거나 가계부채가 부실해지지 않아야 해서다. 대출 만기 영장과 상환 유예로 모자라 신용불량 구제까지 하느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취약 고리인 다중채무자 양산에 유의하면서 신용 회복지원 협약 등을 거쳐 디테일을 다듬을 필요는 있다. 신용정보원 기록 지우기가 끝은 아니다.

정부 기대처럼 금융거래 접근성이 높아져 신용점수 상승으로 대환대출까지 가능하려면 이른바 ‘상생금융’의 측면이 보강돼야 할 것이다. 과거 정부에서 269만명 신용사면, 322만명 빚 탕감 등의 결말과 문재인 정부 때 코로나19 사태를 앞세워 연체 기록 삭제를 시행한 이력도 좀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 검증이 불가능한 점, 그로 인해 모럴해저드와 리스크 관리 비용이 일반 고객의 대출금리 상승 등으로 전가될 개연성이 있다.

금융 거래 제한을 풀겠다는 한 가지에만 천착하지 않아야 한다. 불특정 다수의 채무를 늘려 연체 악순환의 늪에 빠지지 않게 관리하는 일이 중요해졌다. 신용사면을 해도 신용이 금융의 생명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연체 기록 삭제의 취지와 명분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신용시스템의 뿌리를 흔들거나 금융 현실을 무시해 금융권에 부담 가는 무리수를 두는 것에까지 지지를 보내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