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경제의 ‘신간(新刊) 베껴읽기’]<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로날드 D. 게르슈테

조진래 기자
입력일 2020-05-19 07:00 수정일 2020-05-29 10:43 발행일 2020-05-17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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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전염병을 극복해온 인류… 코로나 바이러스도 이겨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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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고대로부터 질병과의 고된 싸움을 이어왔다. 질병 극복의 역사라 할 만큼 인류는 질병과의 전쟁에서 고비를 겪고 결국 살아남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의사이자 역사학자인 저자는 인류가 경험한 질병, 그리고 그 질병으로 인해 고초를 겪었거나 유명을 달리 한 권력자들의 이야기를 묶었다. 만일 권력자들이 그 질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우리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는 호기심에서 시작된 작업이었다. 코로나19가 창궐하고 있는 이 즈음에, 아직 정체를 찾지 못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바꾸고 있는 ‘언텍트’의 현실을 지켜보면서 인류의 미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 알렉산드로 대왕의 죽음과 로마제국의 탄생 - 저자는 알렉산드로스가 전쟁터에서 요절하지 않았다면 헬레니즘 문명을 이어받은 로마 제국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의문을 제기한다. 아마도 대도시에 끼어 그렇고 그런 도시쯤으로 전락했을 것이라고 저자는 전망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사망원인으로는 독살설이 가장 많이 언급된다. 지나친 음주로 십이지장이나 위 같은 내장기관에 궤양이 생겼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과음이 잦았던데다 상복부에 갑작스런 통증을 호소했다는 기록으로 봐, 급성 췌장염이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 병은 오늘날에도 약 20%의 사망률을 보일 정도로 위험한 질병이다. 안타까운 점은 대왕 사망 후 후계자 중의 한명이던 프롤레마이오스 장군이 그의 시신을 자신의 영토인 이집트로 모셔 갔다가 4세기 무렵 페스트와 쓰나마가 겹치면서 대왕의 묘가 쓸려나가 흔적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 정신병 등 중병에 시달렸던 로마제국 황제들 - 로마 황제들 가운데 편집증, 정신증, 조현병을 앓았던 대표적 인물로 네로, 엘라가발루스, 카라칼라 황제가 있다. 네로를 제외하곤 대부분 권좌에 오래 앉지 못하고 자살 또는 암살로 생을 마감했다. 네로는 54년부터 68년까지 14년 동안 로마제국을 지배했다. 의학적 관점에서 로마 문화를 고찰할 때 흥미로운 부분은 ‘공중위생의’ 발달이다. 당시 로마 화장실은 수도 시설과 연결되어 물로 배설물을 흘러내려 보내는 시스템이었다고 한다. 뒤처리가 여전히 비위생적이긴 했으나 청결과 위생을 추구했던 것 만은 사실이라고 저자는 전한다.

* 로마제국의 5현자 - 로마제국의 번영을 이끈 5명의 황제를 ‘5현자’라고 부른다. 로마 제국 영토를 사상 최대로 확장한 트라야누스를 비롯해 네르바(96~98), 하드리아누스(117~138), 안토니누스 피우스(138~16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61~180)등이다. 유럽 강대국들은 그러나 이들보다 카이사르의 통치 방식과 그의 권력을 본받고 싶어했다. 로마 공화정을 1인 독재체제로 만든 점을 부러워한 것이다. 러시아 황제를 위미하는 차르(tsar), 독일 황제를 칭하는 카이저(Kaiser)등의 명칭 모두 카이사르(Caeser)에서 유래한 것이다.

* 유럽의 역사를 바꾼 흑사병 ‘페스트’ - 크림반도 동쪽 끝자락의 ‘카파’라는 도시는 제노바 상인들이 활동하던 교역의 요충지였다. 1346년 여름부터 타타르인(몽골족)이 이곳으로 쳐들어왔다가 실패하고 돌아갔는데, 이 때 역병에 사망한 시신을 투석기에 매달아 카파 성벽 안으로 던져넣음으로써 페스트가 발발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1347년 가을 크림반도에서 출발한 배들이 시칠리아에 도착해 페스트를 퍼트렸고 급속히 확산되었다고 한다. 페스트는 사실 기록상으로는 고대 말기 무렵인 6세기경에 지중해 지역에 상륙했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페스트는 선폐스트, 폐페스트, 패혈성 페스트 세 가지로 구분되는데 폐 페스트의 사망률이 특히 심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페스트인 선페스트 환자들의 신체 부위가 괴사되면서 멍이 든 것처럼 까맣게 변한다 해서 ‘흑사병’이라고 불렀다. 페스트로 인한 사망자 수는 대략 18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는 당시 유럽 전체 인구의 30%에 이르는 규모다. 쥐벼룩이 페스트의 매개라는 주장은 스위스 의사 알렉상드르 예르상에 의해 1894년에 제기되었다. 이후 페스트균은 그의 이름을 따 ‘예르시나 페스티스’라는 학명을 지니게 된다.

* 페스트의 희생양이 된 유대인들 - 흑사병이 급속도로 확산되자 사람들은 앞다퉈 희생양 찾기에 나섰다. 이들 광신도의 목표가 된 이들이 이번에도 유대인들이었다. 많은 역사가들은 그 시기에 자행된 범죄의 규모가 나치 정권이 유대인들을 계획적으로 말살하기 전까지 중세 유대인 사회가 맞이한 가장 큰 참사라고 말한다. 

* 페스트가 불러온 전화위복의 기회 - 흑사병이 엄청난 인명피해를 불러왔지만, 생존자들은 사회적 경제적 성황이 호전되는 이점을 누릴수 있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망해 모든 분야에서 노동력이 부족해졌던 덕분이다. 서유럽과 북유럽을 비롯해 유럽 전역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이 상승하고 농노 구하기도 힘들어져 노예 부릴 기회가 더 이상 주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1352년 이후 인구 수가 급감하면서 살아남은 이들은 이제 제한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수확량이 적은 토지들은 목초지로 전환시켰고, 기술 혁신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애정의 어두운 그림자 ‘매독’ - 이 질병 전파의 주역은 프랑스 샤를8세의 군대로 알려져 있다. 나폴리 방어군이 윤락녀들을 프랑스군 쪽으로 몰아낸 결과라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이 질병을 ‘나폴리 질병’이라고 부르고 이탈리아나 독일 등에선 ‘프랑스 질병’이라고 했다. 적대적인 인접 국가에 모든 책임을 돌리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프랑스 예술가들 가운데 유독 매독 의심환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샤를 보들레르, 기 드 모파상, 에두아르 모네, 폴 고갱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외에 베토벤, 슈베르트 같은 유명 음악가들도 같은 증상을 보였거나 이로인해 사망한 경우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도착 이전부터 원주민들 사이에 매독이 유행병처럼 번져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매독은 유럽에서 ‘왕의 천연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고위 성직자나 귀족사이에서 창궐했다고 한다. 

* 매독 예방하느라 탄생한 ‘콘돔’ - 매독 치료법으로 꽤 오랫동안 중금속의 일종인 수은이 사용되다 20세기 초반에 들어서야 폐지되었다. 수은의 독성을 몰랐거나 과소평가했던 것이다. 가브리엘레 팔로피오는 1564년 발간한 <프랑스 질병>이라는 책에서 매독의 증상과 당시 처치법, 그리고 예방법까지 소개했다. 그는 1100명이 넘는 표본집단에게 성관계를 가질 때 천으로 만든 작은 덮개를 사용하도록 하고, 그것이 매독 감염을 막을 수 있음을 주장했다. 이 실험 덕분에 팔로피오는 콘돔의 창시자가 되었다.

* 기원전 1100년대에서 있었던 천연두 - 천연두는 기원전 1157년 사망한 파라오 람세스5세의 미라 얼굴에서 천연두가 관찰되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진 질병이었다 주로 아시아에서 발생해 아라비아 반도를 거쳐 아프리카 북부로 전파되었다. 1500년을 즈음해 유럽의 탐험가와 정복가들이 천연두를 신대륙으로 옮기면서 눈덩이처럼 피해가 커졌다. 대두창 바이러스의 경우 저승사자라 부를 정도로 치사율이 최대 50%에 달했다. 1980년 5월8일에 세계보건기구(WHO)가 완전 퇴치되었음을 선언하면서 완전히 박멸되었다. 괴테와 모자라트가 흉터를 남겼고 조지 워싱턴 미국 초대 대통령도 경미하지만 경험했다. 러시아의 표도르2세와 프랑스 루이 15세는 천연두에 걸려 사망한 국왕들이다.

* 젖짜는 소녀 보고 천연두 예방법 찾은 제너 -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는 당시 소젖을 짜는 소녀들의 외모가 출중하다는 얘기를 듣고 관찰한 결과 이들이 천연두에 걸리지 않아 얼굴에 곰보 자국이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이를 의학적으로 파고들어 젖짜는 소녀들이 우두에 많이 걸린다는 사실 알아내고, 우두에 걸려 손에 수포가 생긴 한 소녀에게서 수포액을 체취해 낸 덕분에 예방법이 나왔다. 

* 돌팔이 의사 때문에 사망한 바흐와 헨델 - 바흐의 눈 수술을 맡았던 의사 존 테일러는 의학사가들이 첫손 꼽는 유명 돌팔이 의사였다. 스스로 스위스에서만 몇백명을 실명케 만들었다고 실토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혼탁해진 수정체를 꼬챙이 같은 것으로 투명한 젤 속으로 밀어넣는 공막천공 기법을 활용했는데, 이런 수술이 합병증과 부작용이 컸다고 한다. 영국 왕 조지2세의 궁정의사로 임명되는 등 당시에는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당시 증인들은 바흐가 극심한 고열을 앓다 숨졌는데 이 원인이 테일러의 수술로 인한 감염이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수술 합병증으로 당뇨병도 극심했다고 한다. 테일러는 헨델까지 눈 수술을 해 주었는데 그 역시 공막천공 수술을 받은 몇 달 뒤 숨을 거두었다.

* 부자들의 병 ‘통풍’ - ‘통풍은 신사들이 걸리는 병이고, 류머티즘은 마차를 끄는 마부가 걸리는 병’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통풍은 부자 병으로 알려져 있다. 의학의 아버지라는 히포크라테스 때도 통풍이 많았다. 그는 엄청난 포도주 소비량과 통풍 사이에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 의심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와 스페인의 카를로스5세는 통풍과 더불어 매독까지 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와 벤저민 프랭클린도 통풍을 심하게 앓았다고 한다. 요산과 통풍의 상관관계가 밝혀진 것은 18세기 후반에 와서다.

* 세기적 전염병 콜레라 - 존 스노우는 세계 최초의 질병지도를 만들어 콜레라가 더러운 물을 통해 감염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1854년 제3차 콜레라가 영국을 덮쳤을 당시만 해도 악취나 나쁜 공기가 전염병의 원인이라는 ‘장기설(miasma theory)이 유력했으나, 스노우가 식수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면서 예방과 치료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되었다. 이후 런던은 인근의 테임즈 강이 아닌 시골지역의 템스강 지류에서 식수원을 조달키로 결정하는 등 유럽 전역의 식수원 변화에 촉매 역할을 했다.

* 뇌졸중을 숨기고 대리집무시킨 우드로 윌슨 - 프린스턴대학 총장으로 재직하다 정치권으로 들어와 미국 대통령에 올랐던 우드로 윌슨은 대통령 집무 전부터 건강이 좋지 못했다. 뇌졸중은 그간 누적된 병들이 집약적으로 표출된 것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뇌졸중으로 직무 불능 상황이 왔으나 그의 최측근이었던 수석보좌관 조지프 터멀티, 개인주치의 캐리 그레이슨, 그리고 아내 에디스 3명이 비밀에 부치고 문병이나 면회를 철저히 관리하며 숨겼다. 그리곤 윌슨으로 하여금 억지로 서명을 하게 했다. 이 기간 1차 세계대전이 터졌으나 미국은 큰 탈 없이 지냈다. 하지만 국제연맹 가입을 미루는 등 국제사회에서 지켜야 할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

* 죽음의 인플루엔자 '독감' - 1918년 봄부터 1920년까지 전세계를 강타했다. 당시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가 2500만에서 1억명에 달했다. 당시 전 세계 인구의 최대 5%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이른바 스페인 독감이었다. 이렇게 사망한 사람이 1914~1918년 1차 세계대전 사망자보다 더 많았다. 첫 환자는 1918년 3월 미국에서 나온 것으로 기록된다. 1918년 8월에 2차 독감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는데 이 때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도 매우 심각한 상황을 겪었다.

* 레닌의 굳어버린 뇌 - 소비에트 연맹의 창립자인 레닌은 동맥경화증으로 사망했다. 죽기 전 몇 달 동안 몇 차례 뇌졸중이 일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부검에 참가했던 두 명의 병리학자들은 당시 레닌의 뇌가 전형적인 신경매독증 환자의 뇌처럼 보였다고 증언했다. 물론 공식 부검서에는 이런 내용이 빠졌다. 레닌의 동맥경화증은 가족력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부친과 형제 가운데 같은 질병으로 사망한 사람들이 다수라고 한다. 

* ’왕의 안수‘로 치료하려 했던 결핵 - 폐병으로 불리는 폐결핵은 심한 기침과 피를 토하는 증상을 수반한다. 중세에 획기적인 치료법이 등장했는데, 프랑크 왕국의 왕 클로비스가 496년에 시행했다고 해 ’왕의 안수(按手)‘로 불리었다. 신으로부터 기름부음(축복) 받은 왕이나 여왕이 환자의 몸을 잠깐 스치기만 해도 병세가 호전되거나 치유된다는 믿음에 근거한 치료법이었다. 찰스2세는 재위 기간 동안 9만2000여명의 환자에게 안수를 해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하루 기준으로는 프랑스의 루이16세가 1775년에 무려 2400여명을 안수해 준 것으로 전해진다. 빅토리아시대에 폐결핵은 ‘아름다운 질병’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환자들의 외모가 창백해졌는데 새하얀 피부를 선호했던 당시 미인상과 일치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 히틀러, 죽음에 대한 공포로 전쟁을 일으켰다? - 히틀러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포함해 자신과 가까운 이들이 줄줄이 사망하는 것을 보고 자란 탓에 결국 자신도 오래 살지 못할 것이란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1939년에 굳이 전쟁을 시작하려고 고집을 피운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일 수 있다고 저자는 관측한다. 특히 히틀러는 성장기에 심각한 폐질환을 앓았다고 진술한 바 있어 이런 추측에 무게를 더해준다. 서부전선을 지키는 동안 히틀러가 각종 전염에 대한 극심한 공포증을 갖게 되었고, 이런 공포증 때문에 감기에 걸린 사람은 절대 면담을 않고 반드시 손을 씻은 후 자신을 만나도록 의무화했다고 한다. 히틀러는 특히 파킨슨병을 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주치의에 따르면 히틀러는 강장제 비타민 등 각종 약물 주사를 주기적으로 맞았다고 한다.

* 대통령 임기를 8년으로 헌법에 담게 한 루즈벨트 -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은 4+4년 연임이던 전통을 깨고 네번이나 대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하지만 마지막 출마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로 추대되었음에도 기력이 쇠약해져 러닝메이트 부통령 지명도 못했을 정도로 건강이 크게 악화된 상태였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얄타회담을 위해 장거리 여행을 하고, 11일이나 회의가 지속되면서 기력은 완전히 바닥이 났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건강 상태를 국민에게 속였다. 저자는 그의 대국민 사기극이 미국 헌법에 영향을 미쳤다고 단언한다. 실제로 루즈벨트 대통령이 고혈압에 뇌동맥 파열로 사망한 후 2년이 채 가기도 전인 1947년 3월에 미 의회는 대통령의 최대 임기를 8년으로 제한하는 수정헌법 제22조를 통과시켰다. 루즈벨트의 소속 정당인 민주당 의원들도 대거 찬성표를 던졌다.

* '전쟁영웅' 칭호에 질병 숨긴 케네디 - 젊음의 활력의 상징으로 꼽히던 케네디 대통령은 사실은 10대 시절에 많은 질병에 고생했다고 한다. 1943년 태평양에서 일본 구축함에 의해 미국 어뢰정이 두동강 나 침몰할 때 중위로 근무중이었던 그는 당시 부상당한 승조원들을 구출하면서 전쟁영웅으로 칭송받았고 이를 토대로 정계에 입문해 대통령까지 거머쥐었다. 케네디의 건강에 관한 소문이 나올 때마다 예의 전쟁에서 입은 부상의 여파라고 둘러댔지만 정작 그는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충분히 분비되지 않는 애디슨병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이 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척추에 골다공증이 발생했고 이후 지속적으로 약물 치료를 받느라 건강이 말이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 면역결핍증 에이즈 - 유엔에이즈계획(UNAIDS)에 따르면 에이즈를 유발하는 바이러스인 HIV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이 2017년 기준으로 약 3700만명에 이르고, 신규 감염자가 매년 180만명씩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 2017년 한 해 사망자만 94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유명인 가운데 허리우드 스타인 록 허드슨, 테니스계의 전설 아서 애쉬, 농구 스타 매직 존슨 등이 있다. 신규 감염자의 95%가 동구권이나 중앙아시아, 중동, 북아프리카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 바이러스가 침팬지들의 면역을 약화시키는 바이러스에서 발전된 것이라는 추정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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