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더컬처] 황석영 #철도원삼대 #노동자 #염상섭 #철학동화 #포스트코로나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허미선 기자
입력일 2020-06-03 01:30 수정일 2020-06-03 17:09 발행일 2020-06-03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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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5년만에 새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를 출간한 황석영(사진제공=창작과비평)

소설의 첫 장면은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잠자리에서 되도록 먼 곳에 정해둔 용변 장소, 떨어지지 않게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어 버텨야하는 난간, 플라스틱 죽 그릇, 한정된 공간을 감도는 지독한 냄새….

얼마 전 철탑 고공농성을 해제한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씨가 떠오르는가 하면 입주민의 폭력과 폭언에 극단적 선택을 한 후에야 열악한 근무환경이 알려진 아파트 경비원의 고통이 연상되기도 한다.

대하소설 ‘장길산’ ‘객지’ ‘삼국지’ 등의 황석영 작가가 5년 만에 내놓은 새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는 여전히 나아지지 않은 노동자들의 지난한 100년 역사를 꿰뚫는다.

“어디 그들뿐이겠어요. (노동자인) 그들에게 어필할 방법은 (높은 곳에 오르는) 그것뿐입니다. 그 동안 전국적으로 많았고 지금도 누군가는 올라가 있을 거예요. 언론도, 사람들 심정도 1년은 있어야 ‘꽤 오래 있네’ 하면서 돌아보지 3, 4개월은 주목도 못 받고 문제 해결도 어렵죠. 사람을 그런 데다 올려놓고 400일을 보내게 두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나아진 건 그대로 두고 본다는 거예요. 예전에는 강제집행해 체포하고 추락사로 내몰기도 했으니까요.”

이은 “제 20대와 30대의 한국사회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달라졌었다. 더 좋아져야 한다”는 그의 바람은 책 첫장에 손글씨로 직접 적은 “길고 긴 시간 속에서 우리는 한줌 먼지에 지나지 않지만 세상은 조금씩 나아질 것입니다”라는 문구에 고스란히 담겼다.

◇1989년부터 오래도록…4대로 이어지는 노동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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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새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사진제공=창작과비평)

“사실 ‘철도원 삼대’는 일제강점기부터 전쟁 때까지가 큰 줄거리입니다. 그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사람은 4대째 후손인 ‘이재오’라는 노동자죠. 굴뚝 위에서 농성을 하고 있어요.”

2일 서울 마포구 소재의 창비서교빌딩에서 기자들을 만난 황석영 작가는 새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의 전언처럼 “(2015년) ‘해질 무렵’ 이후 5년 만에 끝마친 2400매 정도의 장편소설”로 이백만, 이일철, 이지산으로 이어지는 ‘철도원 삼대’는 “민담 형식을 차용한 작품”이기도 하다.

황 작가는 “전반기 문학이 사실주의에 입각해 굉장히 엄정한 문장으로 썼다면 방북과 투옥 이후에 쓴 후반기 문학들은 리얼리즘의 세계를 확장해 형식 실험을 하게 됐다”며 “무속, 주술, 판소리, 설화, 민담 등을 채용하는 방식”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소설 역시 민담으로 쓰려고 노력했다. 당시의 사실적 자료가 많다 보니 민담적 상상력을 방해하는 점도 있다. 그럼에도 역사이고 오래된 얘기다 보니 조금씩만 얘기조로 풀어 가도 자연스럽게 민담화된다는 걸 발견했다”고 말을 보탰다.

“굴뚝이라는 공간은 참 재밌어요. 땅도 아니고 하늘도 아닌 중간지점이잖아요. 일상이 멈춰 있으니 얼마든지 상상을 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죠. 그 공간과 증조할아버지부터 아버지까지 3대의 이야기를 4대 후손이 들락날락하면서 회상합니다. 자연스럽게 과거 한국 노동자들의 삶, 한반도가 처한 정치적 현실 등이 형태는 달라졌지만 본질 그대로 현재에도 작용하고 있다는 이야기죠.”

그리곤 “이를테면 IMF 이후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내세워 비정규직화되고 자본의 힘이 더 강력해졌고 자본이 국경을 넘어 세계화되면서 노동자의 조건은 더 열악해졌다. 사회 외관에 방치된 채로 사고도 많이 당하고 있다”며 “전체 사회가 같이 좋은 일터, 노동조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을 보탰다.

◇염상섭 ‘삼대’의 뒤를 잇는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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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서울 마포구 소재의 창비서교빌딩에서는 황석영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렸다(사진제공=창작과비평)

“대하소설 ‘장길산’을 쓰는 동안에는 19번이나 집핍실을 옮겨 다녔어요. 이번에도 보따리를 싸들고 나와 하루 8~10시간을 앉아서 작품을 썼어요. 확실히 기운도 딸리고 기억력도 떨어져서 이름들도 혼동되고 해서 고생 좀 했죠.”

작품 집필 과정에 대해 이렇게 토로한 황석영 작가는 “원래 제목은 (일제 중엽부터 운행되다 전쟁 중 폭파된 산악형 기관차 마터 2형 10호를 일컫는) ‘마터-10’이었다. 분단의 화석과도 같은 한국 기차의 제작번호”라고 설명했다.

‘철도원 삼대’는 1989년 북한 방문 당시 만난 평양백화점 부지배인의 이야기에서 시작됐다. 황 작가가 유년시절을 보내기도 한 서울 영등포, 평양에서 만난 그곳 출신의 부지배인에게서 일제강점기에 철도 기관수로 대륙을 넘나들며 겪었던 이야기를 듣고 ‘철도원 삼대’를 구상했다.

노동자의 삶을 다룬 데 대해 “식민지, 근대화를 통해 엄청난 산업사회로 진입한 이래 1000만 노동자의 시대”라며 “공장 노동자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노동자인데 한국문학에서 노동자를 정면으로 다룬 장편 소설이 없다는 데 놀랐다. 한국문학사의 그 빈자리를 채워 넣겠다는 생각이었다”고 집필의도를 털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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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만에 새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를 출간한 황석영(사진제공=창작과비평)
“(한국문학사에 노동자를 다룬 장편소설이 없는) 그 이유를 피상적으로만 생각했었는데 (‘철도원 삼대’를) 쓰면서 보니 식민지 시대에 막 산업화가 되면서 노동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더라고요. 계급 운동의 성격도 있지만 ‘개방’과 ‘항일 운동’의 성격을 띠다 보니 이념적으로는 사회주의적 배경을 가지고 있죠.”

이렇게 설명한 황석영 작가는 “그렇게 금기시된 후 전쟁을 겪었고 근대화 30년은 군사정부의 개발 독재기간이었다”며 “노동운동 뿐 아니라 (문학화하는) 움직임 자체가 불온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왜 ‘철도 노동자였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철도, 강철, 광산 등은 이를 테면 근대산업사회를 상징하는 중공업이다. ‘노동자들의 핵’이기도 한 철도 노동자를 근대 산업사회의 중심이라고 본 것”이라고 답했다.

 “식민지 근대문학의 시작을 염상섭부터라고 생각합니다. 근대의 출발점을 3.1운동으로 본다면 염상섭이 개화기부터 그 무렵까지를 다뤘죠. 염상섭은 ‘삼대’를 통해 근대를 조명했으니 저는 그 뒤를 이은 셈이에요. 염상섭이 식민지 부르주아를 다뤘다면 저는 산업노동자를 다뤘죠. 한국 문학사에서는 그렇게 연결돼 얘기되어질 겁니다.” ◇차기작 철학동화 그리고 굉장한 화두 ‘포스트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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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만에 새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를 출간한 황석영(사진제공=창작과비평)

“2016년 말인가 2017년 초 ‘수인’이라는 자전을 출판했어요. 그걸 쓰고 나니 간이나 쓸개나 내장에서 떨어져나간 것 같더라고요. ‘이젠 할 만큼 했구나’ 생각이 들면서 막막해졌죠.”

이렇게 토로한 황석영 작가는 “글을 안 쓰는 노년 시간이 길어지면 굉장히 힘들다”며 헤밍웨이, 로맹 가리, 미시마 유키오, 톨스토이 등의 마지막을 예로 들며 “작가에게는 은퇴기간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죽을 때까지 써야한다. 그것이 세상에 가지는 작가의 책무다. 마구 쓰는 게 아니라 죽을 때까지 계속 새로운 정신으로 새로운 길을 가고 써내야 한다” 전했다.

“이 작품을 쓰면서도 다음 작품을 구상했어요. 일단 시작은 어른, 아이가 함께 보는 철학동화를 쓰려고 합니다. 마침 있는 곳이 원불교가 발생한 장소라 (원불교의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 어린 성자가 사물에 대해 깨달아가는 과정을 쓸까 합니다.”

차기작에 대해 전한 황석영 작가는 노벨상, 남북문제 그리고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노벨상에 대해 “다 낡은 얘기 같다”며 “우리도 상 하나를 만들자 그러고 있다”고 전했다.

“냉전 이후 없어졌고 노무현 정부 때 전주에서 부분 복원해 아시아·아프리카 작가대회를 한 적이 있는 알라(AALA,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작가회의), 이곳에서 주최했던 노벨상 버금가는 로터스상을 복원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희망사항으로는 2, 3년 안에 (복원)하면 좋겠어요.”

현재 남북 관계에 대해서는 “현재 분단 체제가 흐트러진 것만은 사실”이라면서도 “북미대화 시작했고 한반도를 둘러싼 화두는 이미 다 나왔다. 그것만으로도 큰 진전이다. 코로나 정국이 좀 안정되면 다시 대화도, 협상도 시작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고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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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만에 새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를 출간한 황석영(사진제공=창작과비평)

“재밌게도 코로나바이러스가 전세계에 퍼지면서 자연스레 여러 가지가 변화하고 있어요. ‘포스트 코로나’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변화를 감지하고 있죠. 코로나 사태가 자본주의 체계, 현재 이 모양대로의 문명 등이 잘 해온 건가, 잘 온 길인가를 우리에게 질문한 것 같아요.”  

시대의 변화에 발 맞춰온 황 작가는 이를 “말년에 만난 굉장히 중요한 화두”라고 표현했다. 그는 “(코로나 사태가 던진) 그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서 작품 활동과 공부를 좀 더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젊어서 ‘장길산’을 통해 미륵사상을 깊이 공부한 적이 있는데 다시 시작할까 해요. 우리 근대의 싹이 18세기 영·정조에서 시작해 19세기 반동적 시대를 거쳐 제국주의 세력이 들어와 한반도가 변화를 맞으면서 과거와 단절이 됐죠.”

이어 “그때 아마 자생적으로 준비한 게 근대사상인 것 같다. 세상이 개벽돼야 한다는 생각들은 이미 미륵사상에 있던 것들이고 유교적 발현이 동학, 선교적 발현이 증산도, 불교적 발현이 원불교다. 토속종교 3형제가 굉장히 의미심장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이후 세계는 탈 인간중심주의, 전 지구상의 무생물과 생물, 우주까지도 포함하는 포괄적인 사상, 철학 등이 대단히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