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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더 뚜렷해진 개인 취향… 쉿! 조용한 사람들 뜬다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매년 이맘때가 되면 다음 연도 트렌드를 조망하는 서적들이 대거 쏟아져 나온다. 그런 서적들 가운데 매년 압도적인 인기를 끄는 책이 두 권 있다. 하나는 서울대 김난도 교수팀이 매년 정기적으로 발간하는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 다른 하나는 트렌드 분석가 김용섭의 라이프 트렌드 시리즈다. 둘 모두 트렌디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매우 의미 있고 유익한 전망을 내놓는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2025 트렌드 코리아|김난도 외|미래의창◇ 김난도 외 2025 트렌드 코리아 … 경계와 고정관념이 무너진다매년 영어로 된 합성 신조어로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예측해 온 서울대 트렌드 코리아 팀은 내년 ‘뱀의 해’ 2025년의 10대 소비 트렌드 키워드를 ‘SNAKE SENSE’로 잡았다. 남다른 감각으로 먹이를 잡아채는 뱀의 놀라운 능력을 의미한다.S는 ‘Savoring a Bit of Everything’이다. 저자들은 옴니보어(Omnivores) 소비, 즉 ‘잡식성 소비’가 새 트렌드가 될 것이라 예측했다. 소비의 전형성 대신 나이와 성별, 소득에 따른 경계와 구분 없이 완전히 새로운 개인별 소비시장이 구축될 것이라 전망했다. 모든 과거의 선입견과 고정관념은 폐기되고, 개인의 취향이 더욱 뚜렷해지는 ‘옴니보어’ 소비자가 뜰 것이란 전망이다.N은 ‘Nothing Out of the Ordinary: Very Ordinary Day’다. 여기서 ‘아주 보통의 하루’를 뜻하는 ‘아보하’가 나온다. 위험한 세상 속에서 작지만 위로가 되어 주는 무언가를 찾는다. 푸바오나 은우·정우 형제들이 대표적이다. 불행한 것도 싫지만 너무 행복한 것도 바라지 않는 삶을 추구한다.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것에 감사하고, 내일도 오늘 같기를 바라는 평온한 일상이 중시된다.A는 ‘All About the Toppings’, 이른바 ‘토핑경제’다. 본질보다 추가적·부수적 요소들이 더욱 주목받아 새로운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게 된다. 같은 도우라도 토핑이 다르면 이름과 가격이 달라지듯이, 같은 제품이라도 무엇으로 어떻게 꾸미느냐에 따라 ‘나만의 것’이 된다. ‘최고의 상품’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최적의 상품’이 추구된다. 그만큼 소비자의 ‘창의성’이 기대된다.K는 ‘Keeping It Human: Face Tech’, 즉 ‘페이스테크’다. 첫 인상이 중요한 만큼, 앞으로는 기계에 표정을 입히고, 사람의 얼굴과 표정을 정확하게 읽어내며, 사용자마다 각자의 얼굴을 만들어주는 ‘페이스테크’가 뜰 것이라고 한다. 특히 이제 사람의 감정을 읽고 대응력까지 갖춘, ‘인간에 가까운’ 기업과 상품이 선택을 받게 될 것이므로 이 기술이 필수가 될 것이라 전망했다.E는 무해력(無害力, Embracing Harmlessness)이다. 내게 해 끼치지 않고 자극이나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작고 귀엽고 순수한 것들이 사랑받는다. 무해한 힘이 진짜 힘 된다. 스스로를 ‘긁힌 세대’라고 자조하는 젊은이들에게 이런 무해한 존재들이 희망이 된다. 푸바오나 미니어처 열풍, 대충 그린 이모티콘 등이 그런 무해력을 가진 것 들이다.S는 ‘Shifting Gradation of Korean Culture’로, ‘그라데이션K’로 지칭된다. 정말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유연하고 열린 담론’이다. 더 이상 우리는 단일민족·단일문화가 아니라 ‘다문화 국가’다. 저자들은 “K-팝, K-푸드, K-드라마 열풍 속에서, 진정으로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그라데이션(단계적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한다.이미지= 클립아트코리아. *기사 및 보도와 연관없음E는 ‘Experiencing the Physical: the Appeal of Materiality’로 ‘물성매력’을 뜻한다. 디지털 만능 속에서도 여전히 사람들은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희구한다. 스크린에서만 존재하던 애니메이션과 드라마의 세계가 오프라인에서 구현되어 소비자들에게 체험, 체감할 기회를 준다. 기업의 마케팅 포인트도 그 방향으로 변화한다.N은 기후감수성(Need for Climate Sensitivity)이다. 역대급 기상이변과 기후변화는 이제 ‘현존하는 최대 위험’이 되었다. 이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하는 기후감수성이 소비와 비즈니스, 공공 영역에서 두루 중시된다. ‘레이니룩’이 대세가 되고 날씨보험까지 등장한 현실 속에서 이제 기후 감수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 덕목이다.S는 공진화 전략(Strategy of Coevolution)이다. 상호연결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상황에서 비즈니스 주체들이 긴밀한 연계를 통한 공동성장을 모색해야만 ‘상생’과 ‘생존’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적응하는 자만이 살아남고 진화할 수 있다. 경쟁은 하되 생존과 상생을 위해선 적과도 과감하게 손 잡을 수 있는 열린 마인드가 필요한 시대다.E는 ‘Everyone Has Their Own Strengths’로 이른바 ‘원 포인트 업(One-Point-Up)’이다. 무작정 성공한 사람을 롤 모델로 삼기 보다는 자신이 도전해 도달할 수 있는 ‘손에 잡히는 목표’를 설정해 실천하며 조금씩 성취감을 쌓는 것이다. ‘나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놀라운 성장보다는 소소하지만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작은 성공이 포인트다.라이프 트렌드 2025|김용섭|부키◇ 김용섭 라이프 트렌드 2025… 조용함이 대세가 되는 세상저자는 2025년의 대표 라이프 트렌드로 ‘조용함(Quiet Silent)’을 들었다. 조용한 사람들의 조용한 행동, 조용한 욕망이 힘을 얻어 더욱 강력한 물결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요란스럽고 복잡하고 갈등으로 점철된 사회에 지친 현대인들이 이제는 소음과 과잉 연결, 타인과의 관계와 교류에서 벗어나 혼자 활동하고 자기 자신에 더욱 집중하는 삶을 희구하게 될 것이라도 내다본다.드러나지 않는 럭셔리 패션에서부터 조용한 휴가와 여행, 조용한 걷기, 스텔스 가전과 캠핑, 음소거 챌린지, 멍때리기, 심지어 조용한 사직과 해고가 일상이 된다. 인공지능(AI)과 로봇, 스마트 폰 등이 개인도구화하면서 이제 사람의 성격도 외향적인 것 보다는 조용하고 차분한 쪽이 더 평가받으면서 ‘조용함’은 새해에 더욱 전방위적인 트렌드 코드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했다.저자는 “소음을 걷어내면 진짜 들어야 할 소리가 들린다”며 이렇게 불필요한 것을 들어내고 조용하지만 강력한 무언가를 찾는 새로운 노력들이 경주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이른바 ‘내향성 경제(Introvert Economy)’가 증폭될 것이란 전망도 했다. 집 밖 사회 활동이나 모임, 야외 활동 대신 집 안에서의 SNS 콘텐츠 소비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회식보다 혼술, 외식보다 배달 음식이 선호된다.저자는 “이제 개인주의적인 사람들, 조용한 사람들을 주류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조용함을 활용해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드는 기획자나 마케터, 내향형 리더, AI로봇을 적극 활용해 자신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솔로프러너, 운동중독자, 운동과 자기관리에 적극적인 싱글 등에 주목할 것을 조언했다. 그들의 조용한 욕망과 조용한 행동이 강력한 힘으로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얘기다.이미지= 클립아트코리아. *기사 및 보도와 연관없음저자는 2025년 라이프 트렌드를 주도할 키워드로 ‘조용함’과 ‘조용한 사람들’을 포함해 12가지를 제시했다. 먼저, Z세대를 새로운 욕망과 트렌드가 되고 있는 텍스트힙(TextHip)을 말한다. 손 안의 스마트 폰이 일상화된 디지털 네이티브들 사이에서 책은 이제 지적 탐구의 수단이 아니며 독서가 섹시하고 힙하고 멋진 차별화의 수단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1인 기업가를 뜻하는 ‘솔로프러너(Solopreneur)’는 생성형 AI가 만든 증강 인류 덕분에 더욱 힘을 얻고 있다. 누구나 ‘유니콘’을 꿈꿀 수 있을 만큼, 역사상 가장 강력한 ‘개인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최근의 쇼펜하우어 열풍 속에서 저자는 ‘자발적 고립주의자’가 강력한 트랜드로 부상했다고 말한다. 1인 가구와 비혼주의 증가,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더욱 만연할 것이라고 전망한다.‘비만 치료제’는 전 세계 의약산업과 패션, 뷰티, 스포츠, 식품 산업은 물론 우리의 욕망과 라이프 스타일까지 뒤흔들고 있다. 저자는 이것이 우리의 의식주 트렌드를 가장 극적으로 바꾸는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전세계적으로 전쟁 위험이 고조되는 가운데 ‘밀리터리 룩’도 강력한 패션 트랜드가 되기에 적당한 타이밍이 되고 있다고 전망했다.코로나로 주춤했던 여행이 다시 예전처럼 의식주 만큼이나 큰 욕망으로 ‘리셋’되고 있다. 저자는 이탈과 새로운 경험에 대한 욕망이 호텔과 항공, 외식, 레저, 쇼핑 산업 등에 전방위로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술이나 게임 같은 전통적인 중독이 퇴조하는 대신에 최근에는 ‘운동중독’이 확산하고 있다. 건강이 곧 부(富)”라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다.잘 죽는 것, ‘웰다잉(Well-Dying)’을 디자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장례식 디자인은 물론 무덤 친구, 죽음 명상, 종활 산업이 뜬다. 자신이 직접 죽음을 준비하는 트렌드가 보편화하고 있다. 저자는 또 기후와 인플레이션의 합성어인 ‘기후플레이션’을 언급하며, 기후 위기가 초래하는 먹거리 변화에 주목할 것을 조언했다.이 밖에 과거에는 누가 얼마 짜리 집에 사는 지를 궁금해 했던 중산층들이 이제는 의자 등 고급 가구에 눈을 뜨기 시작해 새로운 욕망으로 급부상하고 있으며, 인공지능이 초래한 경제·산업적 변화에 발 맞춰서 ‘일하는 방식’을 바꿔주는 ‘AI at Work’와 ‘하이브리드 워크’가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며 새해의 견고한 트렌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2024-10-12 07:00 조진래 기자

[비바 2080] 100세 시대 신간… 후나세 슌스케 <속을 비우는 것이 최고의 약이다>

‘의사의 선조’ 히포크라테스는 “속을 비우는 것이 병을 고치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이 책은 이른바 ‘간헐적 단식’에 대한 과학적 고찰서다. 야생동물들이 질병에 걸렸을 때 굶어서 낫는 것처럼 인간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극단적으로 ‘약은 독’이라고 얘기한다. 적게 먹는 것이 건강은 물론 노화를 늦출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저자는 일본의 세계적인 생태 운동가다. 그는 병원에 가지 않고도 병을 치유할 수 있는 다섯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 소식(단식)이다. 병에 걸렸을 때 먹지 않고 움직이지 않고 잘 자면 해독력이 상승해 몸이 점점 좋아진다고 강조한다. 둘째, 웃음이다. 웃으면 암과 싸우는 NK세포라는 것이 6배나 증가해 암조차 치유될 수 있다고 말한다.셋째는 감사다. “고마워”라는 한 마디가 만병통치약이라고 말한다. 넷째는 긴 호흡이다. 숨을 잘 쉬기만 해도 부교감 신경이 활성화되고 혈액 순환이 촉진되어 병이 낫는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근력운동이다. 근육량이 감소하면 질병과 노화가 온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가운데 특히 “공복이 최고의 약”이라며 3일 단식법을 시작으로 절반만 먹고도 더 오래 사는 법을 일러준다.그는 단식의 10가지 효능도 제시해 준다. 체질을 바꿔주고, 기억력이 상승하게 만들어 준다. 에너지를 올바르게 사용하게 되며, 숙변을 배출하고 환경독소까지 배출하게 해 준다. 혈관이 젊어지고, 유전자가 활성화된다. 스태미나가 강화되고, 면역력도 높아진다. 아울러 활성산소를 줄여준다. 극단적으로 그는 “80%를 먹으면 의사가 필요없고, 60%를 먹으면 늙지 않는다”고 말한다.우리는 하루 세끼 식사가 상식이라고 생각하며 살아 왔다. 하지만 저자는 삼시 세끼가 우리의 건강을 지켜줄 것인지에 대해 “NO”라고 단언한다. 사실은 그런 식습관 속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면서, 그런 에너지를 치유와 면역, 해독에 쓸 수 있다면 우리는 더욱 건강하고 오래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자연의 메커니즘’을 우리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저자는 “적게 먹어야 만병이 낫는다”고 거듭 강조한다. 간헐적 단식으로 암과 동맥경화, 심장병, 당뇨병도 나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다만, 그렇게 하려면 그 질환의 증상이나 질병에 맞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간헐적 단식부터 1일 1식 혹은 3일 단식, 일주일 단식 가운데 본인에게 맞는 단식 방법을 선택하면 된다고 말한다.그렇다고 무작정 속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과학이 숨어있다고 말한다. 암 같은 중병에는 21일 단식을, 고혈압 같은 질환에는 3일 단식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얘기한다. 이렇게 질환에 맞는 올바른 단식 요법을 잘 따라하면 혈관벽도 건강해지고 심지어 당뇨병도 약 복용 없이 단식과 식이요법만으로도 완치될 수 있다고 말한다.저자는 단식 요법과 함께 긴 호흡법과 근육 단련도 병행할 것을 권한다. 그렇게 하면 효과가 배가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안티에이징’, 천천히 나이 들려면 평소 호흡법을 고쳐, 더 뱃속에서 최대한 숨을 깊고 길게 들어마시고 내뱉는 호흡을 할 것을 권했다. 이런 호흡법으로 바꾸면, 폐의 움직임이 호흡근을 강하게 수축해 내장을 마사지하므로 혈행이 자연스럽게 개선되어 건강을 되찾게 된다고 확언했다.근육 단련도 하루 5초만 투자하면 된다고 말한다. 무리하게 무거운 도구를 활용해 어깨나 무릎 등에 무리를 주기 보다는 짧은 시간이라도 집중력 있게 다양한 자세로 근력을 키우는 운동을 하면, 병을 치유하는 마이오카인 호르몬이 배출되어 질병 개선을 도울 것이라고 말한다. 불로장생까지 기대하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남들보다 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조진래 기자 jjr895488@viva100.com

2024-10-08 07:11 조진래 기자

[비바100] 뜨거워지는 지구… 무너지는 수력문명… 신유목 시대 오나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유럽우주국(ESA)은 2021년에 ‘플래닛 아쿠아(Planet Aqua)’라는 용어를 공식화했다. 지구는 ‘물의 행성’이라는 의미다. 이 책은 지구의 수권(水圈)에 관한 종합 보고서다. 저자는 지구 수권에 문제가 생겨, 지금 인류는 여섯 번째 멸종의 초기단계에 와 있다고 경고한다. 물에 대한 전향적인 사고의 전환 없이는 뜨거워지는 지구를 감당할 수 없다며, 물이 지배하는 새로운 미래를 진심으로 대비하자고 촉구한다.플래닛 아쿠아|제러미 리프킨|민음사◇ 물 자원을 잘못 다룬 혹독한 대가 지난 6000년 동안 인류는 수자원을 포획해 댐으로 가두고, 운하로 밀어 넣고, 방향을 바꾸고, 사유화해 이익을 얻고, 고갈시키고, 오염시키며 문명을 발달시켜 왔다. 그 결과, 오늘날 야생으로 남은 곳은 지구의 19%를 넘지 못한다. 그 과정에서 귀중한 물이 손실되고 야생동물도 함께 사라졌다. 지하 암석권까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온실가스 배출로 지구 온도가 1℃ 올라갈 때마다 지상과 바다의 물 증발속도는 빨라진다. 강력한 대기천(수증기가 대규모 기류를 이루며 좁고 길게 흐르는 기상 현상), 초대형 폭설과 겨울 강추위, 대규모 봄 홍수와 긴 여름 가뭄, 치명적인 폭염과 산불, 파괴적인 가을 허리케인과 태풍 등이 지구 생태계를 황폐화시키고 인간과 생물의 생명을 빼앗아 가고 있다.오늘 날 26억 명이 극심한 물 부족을 경험하고 있지만 2050년에는 35억 명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 10년 동안 물 관련 분쟁과 폭력사건이 270%나 증가했다. 2050년까지 대규모 ‘기후 이주’가 불가피하다. 50℃에 육박하는 폭염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난다. 19개 국가가 해수면 상승 위험에 처해 있고 향후 30년 내 중국과 인도, 태국은 물론 알렉산드리아와 헤이그, 오사카도 위험해 진다.모두가 화석연료 기반의 물-에너지-식량 넥서스(상호 연계성 결합)가 불러온 결과다. 저자는 “우리가 ‘플래닛 아쿠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답은 간명하다”며 “수권이 지구 생명체의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기후 온난화로 인한 물 부족으로 ‘신 유목 시대’가 도래하고, 인류는 기존의 고밀도 서식지를 버리고 대규모 이주에 나설 수 밖에 없다고 내다보았다.◇ 임박한 수력문명 붕괴… ‘수(水) 생태주의’ 전환 시급(이미지=클립아트코리아. *기사 및 보도와 연관없음)역사의 모든 주요 ‘수력 문명’은 노동력과 동물을 수송하고, 상거래와 무역을 하기 위해 정교한 도로 시스템과 수로를 건설했다. 이렇게 ‘수권’을 굴복시키자 잉여 식량이 엄청나게 증가했고,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어 문명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렇게 6000년 동안 인류는 물을 길들여 왔다. 수자원 인프라의 부침은 전체 문명의 흥망성쇠를 상징했다.전 세계 주요 강 유역에는 3만 622개의 댐이 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급격한 기후 온난화로 인해 곳곳의 이런 수자원 인프라가 무력화되고 있다. 수권이 ‘야생’으로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지구의 담수는 빠르게 줄어들고, 댐과 인공 저수지는 사라지고 있다. 지구상에 남은 담수의 70%가 ‘관개’에 쓰인다는 사실은 현실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저자는 “6000년에 걸친 인류의 수자원 탈취와 조작, 상품화와 사유화가 지난 200년 동안 화석연료 기반의 산업 문명, 즉 물-에너지-식량 넥서스와 긴밀하게 얽히면서 우리 생명은 더욱 위협받고 있다”고 말한다. 프랑스 남부 등지에서는 기후변화로 여름철에 물이 너무 뜨거워져 발전소 냉각수를 끌어오지 못해 가동 축소나 중단 사태까지 발생하곤 한다.앞으로는 모든 공동체와 지역사회가 비가 올 때까지 가능한 많은 물을 저장하고 필요 시 공유하게 될 전망이다. 저자는 “물-에너지-식량 넥서스가 우리 종과 생물을 한계로 몰아가고 있다”며 이 넥서스 해체가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이 보급되면서 물-화석연료-원자력의 넥서스가 해체되고 있어 그나마 고무적이라고 했다.저자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자본주의에서 벗어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며 ‘수 생태주의’로의 전환을 강조했다. 그는 자본주의가 ‘생산성’을 추구하는 반면 수 생태주의는 ‘재생성’을 촉진하며, 특히 자연을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원천으로 여긴다고 했다. 나아가 자본주의는 국내총생산(GDP)으로 경제적 성공을 측정하지만, 수 생태주의는 ‘삶의 질 지수’로 행복을 측정한다고 강조했다.◇ 온난화가 가속화하는 지구에서… (이미지=클립아트코리아. *기사 및 보도와 연관없음)나트륨이 축적되어 토양이 ‘불(不) 투수성’으로 변하는 것은 지구의 영구적인 난제다. 온난화로 강과 호수, 하천이 고갈되어 곳곳에 마른 수층이 남는 것도 문제다. 세계기상기구(WMO)는 “향후 75년 동안 세계의 수자원 인프라가 모두 파괴되고, 세계 곳곳의 도시와 지역이 유실될 위험에 처해질 것”이라며 글로벌 에너지 시스템의 완전한 전환 필요성을 강조했다.WMO는 모든 나라가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옮겨가고 옥수수와 밀·쌀·보리 같은 ‘물 집약적’ 작물을 감자와 참마·당근·카사바·비트 같은 ‘물 절약적’ 작물로 바꾸는 방대한 전환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오랫동안 묻혀 있던 강과 하천, 습지를 되살리고 분산된 수조와 물 마이크로그리드에 빗물을 저장하는 고도로 분산된 다양한 물 수확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최근 EU와 중국, 미국 등에서 태양광과 풍력 에너지가 화석연료를 대체해 가고 있다. 하지만 기타 지역에서는 아직 미미하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는 “2050년에 이르러야 전기의 9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사이에 담수의 양은 계속 줄고 있다. 1인당 사용 가능한 물이 50년 만에 무려 절반으로 줄었다.현재 1만 7000개에 달하는 담수화 플랜트 대부분은 화석연료로 바닷물을 데우고 소금과 미네랄 등을 배출하는 열 공정에 의존한다. 담수화에 쓰이는 재생에너지는 고작 1%다. 농축된 소금물 처리도 난제다. 지역 갈등은 이런 해결 노력을 가로막는다. 저자는 “이제 고통 속에서 혼자서 버틸 수 있는 나라는 없다”며 공동의 생태지역 거버넌스를 위한 전향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플래닛 아쿠아’에 산다(이미지=클립아트코리아. *기사 및 보도와 연관없음)유엔은 2023년에 해양의 30%를 보존한다는 목표 아래, 대규모 해양 보호구역 설정을 위한 조약을 공표했다. 저자는 “물을 우리 종에 맞추지 않고, 우리가 물에 적응하는 식으로 수권과의 관계를 재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권에 대한 ‘관리’에서 이제는 ‘책임’으로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물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찾도록 내버려두는 것이야말로 인류에게 최상의 길”이라고 거듭 강조했다.그는 중국 도시건축학자인 유쿵젠이 고안한 ‘스펀지 도시’를 하나의 대안으로 소개했다. 물의 흐름을 늦춰 토양으로 스며들게 하거나 도시 밑 지하 저수조나 지하수 탱크에 빗물 등을 저장한 후 필요할 때 사용함으로써 홍수를 방지하자는 것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사헬을 위한 100만 수조 계획’도 주목을 끈다. 세네갈 등 아프리카 7개 나라에 물 수확 및 저장 시스템을 설치하는 프로젝트다.저자는 기후 온난화에 따른 대규모 이주로 ‘임시 도시’가 출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엔 재단도 “2050년까지 세계 식량 생산량이 30%까지 줄어 대규모 기아와 기근, 사망이 발생하고 역사적인 인구 대이동이 촉발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콜로라도강은 4분의 3이 비었고, 미드호는 일부가 말라 4000만 명의 미국 서부가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대량 이주가 임박한 상황이다.하지만 놀랍게도 유엔은 이런 ‘기후 난민’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종교 종파나 소수 민족, 정당에 대한 정부의 박해 같은 인권 침해 사안만 보호를 제공할 뿐, 지구 온난화를 피해 고향을 떠나는 수백 만 난민에 대한 보호 조치는 없다. 아열대 지방과 중위도의 많은 지역에서 대이동이 이미 시작되었음에도 이른바 ‘기후 여권’은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 인공지능 미래 사회의 또 다른 위험(이미지=클립아트코리아. *기사 및 보도와 연관없음)인공지능과 가상현실로 대표되는 미래 역시 걱정이 많다. 데이터센터의 인공지능 서버는 ‘에너지 먹는 하마’다. 벌써 전 세계 전력 사용량의 2% 이상을 차지한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물이 소요된다는 사실은 자주 간과된다. 구글의 데이터센터는 2020년에 250억 리터의 물을 취수해 현장 냉각에 거의 200억 리터에 달하는 1등급 물을 소비했다. 그 대부분이 식수였다.칩 하나를 만드는데 거의 30ℓ의 물이 들어간다. 챗GPT가 채팅 대화로 10~50건의 응답을 할 때마다 500㎖의 물이 소비된다. ‘가상 세계’가 마냥 장미 빛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저자는 “가상 세계를 ‘전부’로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물을 ‘상업적 자원’이 아닌 지구상의 ‘생명의 원천’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 법적 지위도 제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강과 호수, 바다까지 법적 인격체로서 인간의 간섭 없이 생존할 권리를 법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풀뿌리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에콰도르는 2008년에 처음으로 자연의 권리를 헌법에 포함시켰다. 방글라데시와 호주, 뉴질랜드도 강의 법적 권리를 더욱 강화했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사실이다.조진래 기자 jjr895488@viva100.com

2024-09-28 07:00 조진래 기자

[비바100] ‘여행을 대신해 드립니다’ 이 세 마디로 충분하다!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왔어요, 어서 와!”

여행을 대신해 드립니다|하라다 마하(사진제공=빈페이지)“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왔어요” “어서 와, 잘 다녀왔어” 이 세 마디면 충분하다. 자신을 응원해주는 사람들과 여행. 연예인으로는 처절하게 실패했지만 이 두 가지를 타고난 오카 에리카, 애칭 ‘오카에리’(잘 다녀오셨어요, 어서 오세요) 이야기는 그래서 눈물겹고 위안을 전한다. 큐레이터 출신의 작가 하라다 마하의 ‘여행을 대신해 드립니다’는 연애도, 여행도, 결혼도, 육아도, 이혼도, 솔로 탈출도, 재혼도, 창업도, 성묘도 TV나 간접경험을 통해 ‘대리만족’하는, 직접 경험 보다는 타인을 보며 안전함과 만족을 추구하는 시대에 어울리는 소설이다.아이돌에서 아이돌 출신 배우로, 안팔리는 배우로 내리막길을 걷더니 급기야 유일했던 TV방송 프로그램 ‘소소 여행’마저 폐지돼 버렸다. 에리카는 단 하나 뿐이던 프로그램 스폰서 명을 라이벌 브랜드로 잘못 말하는 통에 유일했던 일자리를 잃었고 ‘노출’ 화보를 제안받는 처지가 돼버렸다.홋카이도 최북단의 레분섬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려서부터 여행을 꿈꿨다. 바다 너머 세상을 여행하고 싶었던 에리카의 꿈은 도쿄 수학여행에서 섬 메신저로 활약하는 자리에서 시작됐다. 그렇게 요로즈야 엔터 사장의 제안으로 아이돌 멤버로 연예계에 발을 들였지만 그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여행을 대신해 드립니다|하라다 마하(사진제공=빈페이지)엄마는 “성공하기 전에는 돌아오지 말라”고 했다. 막장으로 한 발짝씩 다가서는, 자꾸만 잦아지는 고난을 마주할 때면 사장은 “이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을래?”라고 묻는다. 어쩐 일인지 사장 역시 “고향으로는 못돌아가. 비겁한 어른이 돼 버렸어”라고 자책이다. 하지만 높은 시청률은 아니었지만 5년 장수 프로그램의 저력은 에리카를 다시 여행하게 한다. 근위축성측색경화증(ALS, 루게릭)으로 움직일 수 없는 딸 마요를 위해 대신 여행을 해달라는 엄마 우노씨의 의뢰를 받고서다. 화도(花道)로 유명한 우도 가문 사람들의 ‘대리 여행’ 의뢰는 인공호흡기를 거부하는 마요의 목숨 그리고 어긋나버린 아버지와의 관계가 걸린 절체절명의 것이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으로 유명한 아키타 현 가쿠노다테, 우도 가의 마지막 가족여행지였다. 폭우로 아버지를 실망시키고 뉴욕행 꿈마저 멈춰버린 곳.예보에도 없던 폭우, 4월에 어울리지 않는 함박눈 등 고난이 끊이지 않지만 그곳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 그들이 마요에게 진심으로 전하는 “꼭 놀러 오세요!”라는 말들로 이야기는 온기를 더한다. 그렇게 에리카의 첫 ‘대리 여행’은 우여곡절 끝에 마요의 삶의 의지 부활,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 그리고 “내년에는 함께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겠다”는 꿈으로 이어진다. ‘소소 여행’의 유일한 스폰서였던 에다 소스의 에츠코 에다 회장, 집안이 어려웠던 시절 먼 친척집 양자로 보내진 막내 여동생 미에코, 그의 유일한 혈육이자 ‘덴가와 마리’라는 이름으로 아이돌 활동을 했던 마리코 그리고 요로즈야 엔터 사장이 얽힌 사연까지.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에히메 현 우치코츠 시코쿠에 홀로 사는 마리코와 이 대리 여행의 의뢰 시점부터 행방불명돼 버린 사장, ‘소소 여행’의 사활을 건 미션에 에리카는 여행을 통해 사람들 마음의 문을 두드리며 성장하고 진짜 여행자가 돼간다.저마다의 상처와 슬픔을 품은 이들은 추억들에 손을 흔들어 인사할 때, 도무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를 때, 딸을 잃고 사랑하는 부인에게 버림받은 자포자기의 순간, 꿈으로 빛나던 때 그리고 오래도록 존재조차 몰랐던 하나 뿐인 조카의 ‘여행하지 않으실래요?’라는 메시지에 여행을 떠난다.그렇게 손짓하는 이들이 있고 에도 회장과 에리카처럼 양자로 떠나는 미에코와 사라져 버린 사장에게 “돌아오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왔어요” “어서 와!”라고 말할 상대와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무의미한 여행은 없다.”유준상, 공승연, 김재영 주연으로 드라마화돼 편성을 기다리고 있는 ‘여행을 대신해 드립니다’는 ‘삶이 곧 여행’임을 각인시킨다.“성공하기 전에는 돌아오지 말라”던 엄마와의 통화는 공감대이자 힐링 포인트다. 더불어 구로이시의 국물야키소바, 가쿠노다테의 다자와 호 옆 눈 내리는 4월의 노천온천과 꿀 가게, 히나이 토종닭 요리, 나마모로코시, 이치코 명물 도미밥과 단풍 등 쏠쏠한 여행지 정보와 시골 작은 마을 아낙네들 수다 속에 등장하는 ‘이병헌’에 대한 반가움 등은 덤이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9-25 18:33 허미선 기자

[비바100] 10대에게 스마트폰의 자유를 불허하라!

(일러스트=김용수 기자 kys404@viva100.com)요즘 아이들은 스마트 폰과 SNS 등 디지털 기기에 일상을 점령당했다. 이 책은 디지털 세계가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병들게 하고, 어른들은 상황이 이렇게 되도록 어떻게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지를 고발한다. 저자는 “부모들이 현실 세계에서는 자녀를 과잉보호하는 반면 가상세계에서는 과소 보호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 해결하려면 일정 연령대까지는 스마트 폰이나 소셜 미디어 사용을 금지하고, 감독받지 않는 놀이와 독립적 행동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불안 세대|조너선 하이트|웅진지식하우스◇ ‘놀이 기반’에서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로저자는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많은 나라에서 Z세대 10대의 정신질환이 늘고 청소년 불안과 우울증이 공통적으로 나타났다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2007년에 출시된 애플의 아이폰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된 스마트폰 시대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2012년 또는 2013년 즈음부터 대다수 가정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10대들의 정신건강이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저자는 “이 시기에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가 탄생하면서 반대로 ‘놀이 기반 아동기’가 완전히 종말을 고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0년부터 2015년을 ‘아동기 대재편의 시기’라고 정의했다. 불과 5년 사이에 청소년의 사회적 패턴과 롤 모델, 감정과 신체활동, 심지어 수면 패턴까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마당에서 뛰어 노는 것보다 더 새롭고 흥미진진한 가상 활동이 폭증한 결과였다.주변 사람들과 온전히 함께 하는 능력을 잃어버리면서 이 시기에는 불안과 우울증, 자해가 급증했다. 여자아이들, 특히 사춘기 직전의 여자아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저자는 “1990년대 후반에 태어난 아이들은 가상 세계에서 사춘기를 보낸 역사상 최초의 세대”라며 “2020년대 초에 그들에게 스마트폰을 준 것은, 아이들을 역사상 최대 규모의 통제 불능 상태 실험으로 몰아 넣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 불안 세대가 된 Z세대(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저자는 “Z 세대는 포털을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면서 사춘기를 보내는 역사상 최초의 세대”라고 말했다. Z세대는 급진적인 새로운 성장 방식, 즉 인류가 진화한 소규모 공동체의 현실 세계 상호 작용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에서 성장하는 방식을 시험하는 대상이 되었다. 이것을 저자는 ‘아동기 대재편’이라고 불렀다. 기술변화에만 원인이 있는 게 아니라, 과잉보호와 자율성 제약이 주 원인이라고 지적했다.저자는 밀레니얼 세대(1981~1995년생) 다음 세대인 1996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 이른바 Z세대를 ‘불안 세대’라고 정의했다. Z세대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2009년 경에 사춘기가 시작되었는데, 그 무렵은 여러 가지 기술 트렌드가 수렴되던 시기였다. 2000년대에는 고속 데이터 통신망이 급속하게 확산되었고 2007년에는 아이폰이 출시되었으며, 소셜 미디어가 매우 빠르게 퍼져나가는 새 시대가 열렸다.그 가운데서도 2009년 ‘좋아요’와 ‘리트윗(혹은 공유)’ 버튼과 함께 시작된 디지털 시대가 온라인 세계의 사회적 역학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들이 ‘불안세대’가 된 주요 원인으로 ‘현실세계의 과잉보호, 가상세계의 과소보호’로 제시했다. 이를 극복하려면 네 가지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첫째, 고등학생이 되기 전에는 스마트폰을 금지한다. 둘째, 16세가 되기 전에는 소셜 미디어도 금지한다. 셋째, 학교에서 휴대폰 사용을 금지한다. 마지막으로, 감독하지 않는 놀이와 독립적 행동을 더 많이 보장하라. 저자는 이 네 가지 개혁을 모두 동시에 추진한다면, 2년 안에 청소년의 정신 건강이 상당히 개선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아동기 대재편’과 Z세대의 황폐화저자는 청소년들이 스마트폰으로 옮겨가면서 나타난 대표적인 결과로 사회적 박탈, 수면 박탈, 주의 분산, 그리고 중독을 들었다. 우선, 친구와의 대면활동 시간이 급감했다. 2012년에 하루 122분이던 것이 2019년에는 67분으로 줄었다. 아동기 대재편은 Z세대를 세상의 모든 사람과 연결하면서 대신 주변 사람들과의 연결을 차단함으로써 그들의 사회생활을 황폐하게 만들었다.스마트폰 기반의 아동기에 전 세계 청소년들의 수면의 양과 질은 모두 떨어졌다. 10대는 하루 최소 8~9시간을 자야 한다. 그런데 밤 늦게까지 스마트폰 화면을 보면, 수면에 악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저자는 “화면으로 인한 수면 감소가 2010년대 초반에 많은 나라를 휩쓴 청소년 정신질환 해일의 주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밤에 겨우 7시간 밖에 자지 않는 평균적인 10대는 깨어 있는 동안 한 시간에 약 11개의 알람 신호를 받는다고 한다. 3분당 1개 꼴이다. 집중력 성숙 과정이 방해받을 수 밖에 없는 환경인 것이다. 저자는 대다수 10대가 소셜 미디어에 중독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의 욕망은 해킹되고 행동은 조정될 수 밖에 없게 된다고 말했다.◇ 소셜 미디어 피해의 남녀 차이(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여자 아이들이 소셜 미디어에 더 큰 피해를 받는 이유를 저자는 네 가지를 들었다. 시각적 비교에 더 민감하고, 다른 여자아이의 관계와 평판을 해치려는 시도로 공격성이 표출되는 경우가 많고, 남자들에 비해 감정을 더 쉽게 나누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남성이 접근하거나 나쁜 행동을 하기가 훨씬 쉬워졌다는 점도 이유로 들었다. 저자는 “소셜 미디어는 여자아이가 더 많이 걸려드는 덫”이라고 말했다.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초반에 전 세계적으로 우울증과 불안, 자해, 자살 비율이 증가하기 시작했고, 일본의 히키코모리 같은 은둔형 청년들의 비중도 덩달아 증가했다. 여자아이들과 달리 남자아이들은 좀 더 긴 시간에 걸쳐 피해 원인이 분산 전개되었다. 이들의 고통을 초래한 주요 원인으로 한 가지 특정 기술을 꼬집어 지적하기 어려웠다.저자는 남자아이들이 특히 2000년대 후반에 온라인 멀티플레이어 비디오 게임, 그리고 2010년대 초반에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대규모 심리적 붕괴 징후가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특히 남자아이들을 집어삼키는 가상 세계로 포르노와 비디오 게임을 지목했다. 저자는 어린이들이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 계정을 갖는 시기를 늦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 건강한 아동기를 위한 정부·테크 기업·학교의 역할(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저자는 자신의 제품을 사용해 줄 충성도 높은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어린 사용자들을 필요로 하는 테크 기업들에게 “2020년 6월에 영국에서 제정된 ‘연령적합설계규약(AADC,Age Appropriate Design Code)’처럼, 아동의 최대이익을 위해 보호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연방법에 1998년부터 13세인 ‘인터넷 성인 나이’를 16세로 높이고, 나이 확인 과정을 쉽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에 대해서는 자녀에게 현실 세계의 자유를 누리게 했다는 이유로 부모를 처벌하는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또 학교에서 더 많은 놀이를 장려하는 것은 물론, 공공장소를 설계하고 구획할 때 어린이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직업 교육과 수습과정, 청소년 개발 프로그램을 늘리면서 관련 투자를 계속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학교에 대해서는 ‘휴대폰 없는 학교’부터 만들라고 강조했다. 수업 시간은 물론 학교에 있는 시간 내내 금지할 것을 권고했다. 더불어 ‘놀이가 많은 학교’를 만들라고 강조했다. 어른의 간섭이 거의 없는 쉬는 시간을 늘리고, 일과 시작 30분 전에 운동장을 개방해 놀 시간을 주고, ‘플레이 클럽’ 결성을 지원하라고 조언했다. 쉬는 시간을 더 많이 주고, 더 나은 운동장을 제공하고, 규칙을 줄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부모의 역할(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부모가 해야 할 일을 저자는 연령대별로 제시했다. 공통적으로는 현실세계에서 더 많은 경험을 쌓게 하고, 더 적은(하지만 더 나은) 화면 경험을 하게 할 것을 권고했다.생후 18개월까지는 어른과의 영상통화, 18~24개월은 보호자와 함께 보는 교육 프로그램 시청으로 제한하라고 했다. 2~5세 아동은 교육 목적이 아닌 화면 사용을 주중에는 하루 약 1시간, 주말에는 3시간으로 제한할 것을 권고했다. 특히 아이들을 달래거나 돌보거나 짜증을 멈추게 할 목적으로 화면을 사용하는 것을 지양하고, 잠자기 30~60분 전에는 화면을 끄고 기기를 침실에서 치우라고 독려했다.6~13세 초·중학생 자녀의 부모들에게는 디지털 기기의 자녀보호 기능과 콘텐츠 필터 사용법을 배우라고 권했다. 분명한 기기 제한 시간을 정하고, 특정 시간과 장소를 기기 사용 불가 구간으로 설정하라고 했다. 특히 문제가 있는 사용이나 중독의 징후가 없는 지 유심히 살필 것을 강조했다.하지만 그에 앞서 아이들이 함께 모여 밤 새워 노는 것을 장려하고, 친구들과 함께 학교까지 걸어가도록 하고, 방과 후 자유놀이나 캠핑을 자주 즐기게 하라고 말했다. 16세가 될 때까지 소셜 미디어 계정 개설을 가능한 늦추고, 10대 초반의 자녀와 위험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자녀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라고 조언했다.13~18세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는 자녀의 이동성이 높아지도록 제3의 장소에서 기간을 보내도록 권장하고, 집에서도 요리나 청소, 심부름 등 그들에게 의존하는 일을 늘려줄 것을 권고했다. 스스로 돈을 버는 파트 타임 일을 권장하고, 자신보다 더 어린 아이를 양육하고 이끌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도록 하라고 조언했다. 자연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라고 했다.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2024-09-21 07:00 조진래 기자

[비바 2080] 긴 추석 연휴… 이런 책 한 두권 읽어보세요

‘예스 24’가 추천하는 서적들.문화체육관광부의 지난해 국민 독서 통계에 따르면 국내 성인의 43%가 1년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다. 소득이 적을수록 독서량이 낮아지는 경향이 뚜렷한 가운데 이런 ‘독서 외면’ 추세는 매년 강화되고 있다. 14일부터 오랜 만에 긴 추석 연휴를 맞았다. 귀향·귀성일이나 여행길에서는 물론 긴 연휴 기간에 집 안에서 모처럼 독서 삼매경에 빠져 ‘마음 건강’을 살 찌울 좋은 기회다. 도서 전문 플랫폼들이 추천한 ‘추석 연휴 권장 도서’들을 소개한다. 당장 연휴 때 읽을 책들을 챙겨보자.◇ ‘예스 24’ 추천 서적들문화콘텐츠 플랫폼 예스24이 긴 추석 연휴를 맞아, 마음에 위로가 되고 가족과의 시간을 즐겁게 채워줄 책들을 추천했다. 특히 담당 PD들이 휴일을 풍성하게 채워줄 신작들을 대거 소개해 주목을 끈다.김유리 소설 PD는 국내외 신작 소설들을 추천했다. 김애란 작가의 13년 만의 장편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비정한 현실을 용기 있게 헤쳐 가는 세 친구의 거짓말을 다뤘다. 정유정 작가의 영원한 천국은 스릴러와 SF를 동시에 원하는 독자들에게 딱이다. 6년 만에 다시 국내에 선보인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의 우연을 비켜 가지 않는다은 우연을 가장한 운명의 아이러니를 엮어낸 걸작으로 평가된다.오다은 자기계발 PD는 국내 대표 멘토 이하영 작가가 꿈과 성공에 대해 기술한 나는 나의 스무 살을 가장 존중한다를 추천했다. 이주은 에세이 PD는 늘 불안과 우울 사이를 넘나드는 젊은 청춘들을 위한 에세이 흐릿한 나를 견디는 법을 권했다. 김현주 어린이 PD는 사라질 위기의 죽집의 감동을 선사하는 언제나 다정 죽집을, 손민규 인문 PD는 환경 문제를 다룬 소비하는 인간, 요구하는 인간을 추천했다.건강 관련 서적으로는 내 몸 혁명이 추천되었다. 몸무게만 줄이는 다이어트가 아닌, 근본적인 건강 관리법을 제시한다. 13권 짜리 액션 판타지 만화 괴수 8호는 귀성길 가족들에게 안성맞춤이다. 46억 년 지구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기발한 상상의 과학 도서 찬란한 멸종도 가족 공통의 독서 목록으로 이름을 올렸다.◇ ‘밀리의 서재’ 추천 서적들 밀리의서재가 추천하는 추석 연휴 독서 콘텐츠국내 최대 독서 플랫폼 ‘밀리의서재’도 추석 연휴를 맞아 ’삼색(三色) 독서 상차림‘을 선보였다. 자기계발과 스릴러, 철학 등 세 가지 카테고리에서 엄선한 10권의 도서를 엄선했다.심리 스릴러의 대가 정유정 작가의 소설 종의 기원은 어머니를 살해한 이를 찾아 나서며 벌어지는 섬뜩한 이야기다. 성우가 읽어주는 오디오 북도 겸한다. 같은 작가의 또 다른 소설 7년의 밤은 독일 차이트(Zeit)지 선정 ’2016년 올해의 추리소설‘ 베스트 9위‘에 올랐던 장편 스릴러다. 킬에이저는 국내 대표 여성 프로파일러 강해수가 아들의 학교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추리 소설이다.철학 입문서 만화로 보는 3분 철학은 어렵게 느껴지는 철학을 만화로 상쇄해 깊이를 더했다.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인 행복 심리학자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은 우리가 느끼는 ‘행복’의 본질에 관해 의미 있는 질문에 답을 전한다. 쇼펜하우어의 소품집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 역시 과하게 행복을 추구하느라 오히려 불행해지는 현대인의 모습을 날카롭게 파헤친다.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부조리와 용기냄 사이에서 고민하는 가장의 이야기를 담았다. 배우 정우의 목소리로 오디오 북을 들을 수도 있다. 쓴소리 챌린지 오디오북도 추천되었다. 쓴소리 전문가들이 명절 잔소리와는 다른 실질적이고 유용한 ‘유쾌한 잔소리’를 전한다.이의현 기자 yhlee@viva2080.com

2024-09-14 14:38 이의현 기자

[비바100] 두 얼굴의 트럼프… 그의 입만 보지 말고 당당히 '한국우선주의' 말하라

트럼프는 ‘최고 질서 파괴자’로 불릴 정도로 ‘파격’ 자체다. 그가 다시 화려하게 공화당 후보로 부활한 것을 저자는 ‘신의 개입(Divine Intervention)’이라고 표현했다. 온갖 곤경과 시련, 모욕에도 오히려 더 강인해지는 그에게서 설명하기 힘든 ‘신의 역사’를 떠올린 것이다. 저자는 그러나 트럼프가 내년 1월 백악관의 새 주인이 된다면, 혁명적 변화가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그의 재림을 ‘악몽’이 아닌 ‘축복’으로 만들 방안을 일러준다. 카멜라 해리스라는 강력한 변수가 돌출된 상황에서 향후 미 대선의 향방이 주목된다. 신의 개입|송의달|나남◇ 인간 트럼프저자는 트럼프 2기를 한국이 주도하려면 트럼프 개인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학습이 필수라고 말한다. 감당 못할 예측 불가능성, 의도성 있는 잦은 실수와 변화무쌍함, 야비하고 잔인한 이미지의 이면에 있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반드시 이기려는 무한한 열정과 의지를 제대로 읽어내야 한다는 것이다.트럼프는 정치를 포함한 일상사에서 ‘공포’라는 인간의 취약한 심리를 최대한 활용한다. 진정한 힘이 공포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얼마나 진지한 노력과 훈련, 그리고 철저한 사전검토와 준비를 해 왔는지 여러 저서에서 밝히고 있다. 대단히 돌발적일 것이라 여겨지지만, 치밀한 준비와 전략이라는 얘기다.그는 균형감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 3시간의 독서와 묵상을 한다면서,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69세 나이에 생애 첫 대통령 도전을 결행할 수 있었다고 했다.저자는 아베 전 일본 총리의 성공담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베는 식사와 골프비로만 4억 달러 넘게 지출했다. 트럼프팀을 만들어 치밀하게 그를 연구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촘촘하게 관리했다. 무엇보다 끈기 있게 상대했다. 저자는 “아베가 부드러움과 겸손함으로 트럼프의 강함과 독단을 4년 가까이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다스렸다”고 말했다.◇ 진짜 트럼프의 모습트럼프 후보가 피격 직후 계속 연설을 강행하려는 모습. 스트롱맨의 이미지를 다시한번 각인시켜 주었다. (AP=연합)트럼프는 ‘위험천만의 정치인’으로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2023년 7월에 ‘최근 40년 동안 가장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한 대통령’을 묻는 설문에서 그는 19%의 지지를 얻어 오바마(32%), 레이건(23%)에 이어 당당히 3위에 올랐다. 2020년 12월 갤럽 여론조사에서는 ‘가장 존경받는 미국인 남성’ 1위에 올랐다. 지식인 엘리트 층의 냉소와는 다른 결과다.트럼프는 자신의 승리가 먼저다. 싸우면 무조건 이겨 살아남아야 한다. 늘 거칠고 상스러운 막말을 달고 산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이 힘을 발휘한다고 경험적으로 확신한다. 자신의 패를 잘 보여주지 않고 상대방에게 초조와 공포심을 유발케 해 뒤흔든다. 그는 “거짓말조차도 비밀스런 소스”라고 말한다.저자는 대중이 트럼프에 열광하는 것은 그가 ‘금수저’가 아니라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모습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초호화 이미지지만 블루칼라 노동자와 중산층 시민과 잘 어울리고 그들을 대변하는 발언들이 그를 추종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평범한 미국인들과의 친숙함이 그의 정치적 밑거름이라는 평가다.◇ ‘트럼피즘’이 낳은 미국 사회구조의 변화 미국 우선주의를 기초로 ‘매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를 내건 트럼피즘은 21세기 미국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하지만 저자는 트럼프가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약화시키고 고립주의로 회귀하려 한다는 평가는 잘못된 것이라고 단언한다. 트럼프는 미국의 ‘실익’을 극대화하려 외교정책을 재조정하고 재협상했으며, 적과 동맹을 구분하지 않고 압박할 뿐이라는 것이다.저자는 “이미 반 세계화는 대세이며, 미국 역시 세계화보다 자국의 이익을 훨씬 더 중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30여 년 동안 지속된 세계화의 후유증으로 미국은 이제 세계에 대한 관심과 개입을 줄이고 있다. 미국의 이익을 먼저 챙겨야 한다는 국민들이 늘고 있다. 이런 달라진 세계관이 트럼피즘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백인의 나라로 만들려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2024년 대선은 민주당 대 공화당 싸움이 아니라 흑백 인종 간의 싸움, 우파와 좌파의 첨예한 갈등이 되고 있다. 수세에 처한 백인들이 트럼프를 중심으로 뭉치고, 흑인들이 반격하는 모양새다. 해리스 부통령의 만주당 대선 후보 낙점 이후 이런 갈등은 더욱 첨예화하는 모양새다.◇ 트럼프 2기의 정책 구상과 비전카멜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현재 여론조사 결과는 박빙이다. (AP=연합)트럼프는 재집권 시 가장 먼저 손을 볼 집단으로 글로벌리스트와 딥스테이터(자기 이익을 위해 비밀 활동을 하는 조직의 일원)을 꼽는다. 그는 미국이 직면한 최대 위협은 ‘내부의 파벌과 혼란’이라며 말썽 많은 고위관료에 대한 대통령의 해임권을 보장하고, 예산 억제를 위한 지출 거부권 부여 및 공무원 해고 활성화 등을 적극 추진할 심산이다.중국 경제 의존도를 대폭 낮출 방안도 찾고 있다. 최혜국 대우를 폐지하고 중국에 대한 관세를 60%대로 높이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중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최대 200%까지 부과하겠다는 지침도 만지고 있다.상대국과 동일한 비율의 관세 부과를 골자로 하는 ‘트럼프 상호무역법’ 제정도 계획하고 있다. 대신 미국 노동자와 기업에는 세금을 대폭 깎아줄 요량이다. 바이든 정부의 그린 뉴딜 정책은 폐지하고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 개발에 다시 나서고, 원전을 풀 가동해 풍부하고 값싼 에너지를 미국 기업들에게 대량 공급해 주겠다고 공언한다.트럼프는 특히 ‘힘을 통한 평화’ 전략을 더욱 공공히 할 방침이다. ‘환상적인’ 차세대 미사일 방어체계를 구축하고 ‘강력한 미국 군대’라는 전통을 복원하겠다고 벼른다. 그 차원에서 한반도는 물론 대만에도 방어 비용을 청구해, 중국 견제를 위한 전방위 포석을 완성하겠다는 생각이다.◇ 트럼프 2기 한반도 정책은?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9년 2월 베트남 회담에서 처음 악수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트럼프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고, 새로운 핵무기 개발 동결을 대가로 제재 완화와 경제·재정적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김정은과의 직접 담판으로 성사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10% 보편적 기본관세 부과, 탈 중국화 강화, 인플레이션감축법 등 친환경 정책 축소도 예견되는 정책들이다.미국이 한국산 제품에 10%의 보편적 기본관세를 부과할 경우, 한국의 대미 수출액은 연간 152억 달러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산 중간재 수입 추정치가 연간 47억~67억 달러 수준이니, 전체적으로 한국의 대미 수출액 감소규모가 연간 200억 달러 안팎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한국이 북한을 상대로 재래식 방어를 주도케 할 것이란 전망도 점쳐진다. 군축 협상 등 미국과 북한의 직접 대화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심지어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 허용 가능성까지 부상하고 있다. 한미, 한일 동맹을 넘어 한미일 3국 협력체제 구축이 강조될 것이 확실시된다.◇ 해답은 자주국방과 안미경미(安美經美)?우리의 주한미군 분담금은 2023년 기준 1조 3000억 원 안팎이다. 우리 정부 총예산의 0.2% 수준이다. 저자는 분담금 이슈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미국을 상대로 매년 최대 60조 원의 무역흑자를 내는 한국이 1억~2억 달러의 분담금 중액을 망설이다 소탐대실할 수 있다고 말한다.트럼프가 재임 때 이미 “주한미군 철수를 두 번째 임기의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고 공언했던 점도 상기시킨다. 한반도 방어의 책임을 우리에게 넘기려는 마당에, 안보는 물론 경제도 미국에 더 의존하는 ‘안미경미’ 전략이 우리 중장기 이익에 더 부합할 것이라고 말한다. 어설픈 양다리 전략은 대단히 위험하다며, 오히려 중국의 강점과 약점을 더 깊이 연구하고 확실한 우위 요소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한다.독자적 핵무장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우리에게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국의 핵은 미국의 핵 억제 부담을 덜어주고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핵개발 로드맵 등을 미리 준비하고, 일본과의 군사협력 및 공동 핵개발, 핵 프로그램 분업 같은 카드도 갖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저자는 끝으로 세 가지를 각별히 강조했다. 첫째, 트럼프가 파괴적이고 예측불허의 위험한 인물이라는 ‘허상’에서 벗어나, 그의 많은 행동과 언사가 고도로 계산된 행위이거나 최소한 오랫동안 벼려온 신념과 계획 임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두 번째는, 설사 트럼프가 낙선한다 해도 트럼피즘을 계승한 후보들이 계속 껄끄럽고 사나운 청구서를 들이밀 것이란 것이다. 세 번째는, 누구든 그는 미국편에 설 것을 요구할 것이라는 얘기다. 해리스가 당선되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저자는 우리가 스스로의 운명에 비관하지 않고 한계를 넘어서는 노력을 벌여갈 때, 트럼프 2기는 우리에게 축복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의 정치와 정치인들도 과거에 매몰되어 후진적 퇴행을 거듭하지 말고, 한국우선주의(Korea First)를 당당하고 논리 있게 설파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4-09-14 07:00 조진래 기자

[B그라운드] ‘귀신들의 방’ ‘67번째 천산갑’ 천쓰홍 “모두가 즐겁게 자신이 되기를, 맘껏 울 수 있기를!”

‘귀신들의 땅’ ‘67번째 천산갑’의 천쓰홍 작가(사진제공=민음사)“성 소수자로서 많이 고통스럽고 슬펐고 죽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성장하면서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독자들을 만나면 이제는 큰소리로 ‘저는 대만에서 온 게이’라고 밝히죠. 사람들이 즐겁게 자기 자신이 되기를, 자신만의 모습으로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2019년 대만에서 출간돼 한국어를 비롯한 12개 언어로 번역된 ‘귀신들의 땅’(鬼地方) 그리고 한국에서 최근작 ‘67번째 천산갑’(第六十七隻穿山甲)을 출간한 천쓰홍(陳思宏) 작가는 이렇게 밝혔다. 지난 6일 개막한 서울국제작가축제(9월 11일까지 JCC아트센터) 초청으로 내한해 9일 한국기자들을 만난 그는 “소설은 충돌하는 예술”이라고 강조했다.천쓰홍 작가의 ‘귀신들의 땅’(사진제공=민음사)“소설을 통해 부딪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공격을 받을 수도 있죠. 하지만 이제는 괜찮습니다. 공격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알게 됐거든요. 무엇을 쓰든 그 속에 진짜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저 스스로에게 늘 각인시키죠.”누나 7명과 한명의 형을 가진 스스로를 대입시켜 7남매의 막내 천텐동이라는 주인공을 내세운 ‘귀신들의 땅’은 대가족을 통해 대만의 근대 역사를 아우른다면 지난해 10월 출간한 ‘67번째 천산갑’은 개인에 대한 이야기다.“사실 출판사에서는 ‘귀신들의 땅’ 흥행에 대해서는 비관적이었어요. 하지만 놀랍게도 잘 돼서 미국에도, 폴란드에도 갔고 한국에도 올 수 있었죠. SNS를 통해 한국 독자들, 성소수자들의 피드백을 볼 수 있었는데요. 대만 소설이고 대만의 농촌에서 벌어진 일임에도 그 속에 담겨 있는 고통이 사실 나의 고통이었음을 느꼈다는 평이 많았죠.”이어 그는 “이 소설은 실패자에 대한 이야기”라며 “한국과 비교해 동성혼이 법제화된 대만은 좀 나을 거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여전히 도시 외 지역에서 성소수자들의 생존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부연했다.“중국어로 ‘귀신들의 땅’은 환경이 열악한 지역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아주 작은 농촌에서 태어나 자랐어요. 대학을 타이베이로 가고 싶었는데 집에서, 부모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타이베이는 충분히 멀지 않았어요. 훨씬 더 먼 곳으로 도망을 가야만 자유를 얻을 수 있겠다 싶었고 베를린에 기자로 가게 됐죠.”그렇게 처음 발 디딘 베를린에서 그는 “정말 철저하게 혼자가 됐음을 느꼈고 자유로웠다”며 “그 외로움이 너무 좋다”고 고백했다.‘귀신들의 땅’ ‘67번째 천산갑’의 천쓰홍 작가(사진제공=민음사)“사실 저는 실패한 작가이고 실패한 소설을 썼어요. 기술이 발전하는 시대에 문과이고 대기업에 취직한 사람도 아니니까요. 그걸 실패한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었어요. 이 책을 통해 그들이 조금 더 자유롭게 지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67번째 천상갑’은 어린 시절의 인연으로 잠동무가 된 게이인 그와 헤테로인 그녀의 이야기다. 중국어 표현으로 그와 그녀는 표기(他, 她)만 다를 뿐 발음도, 성조도 같은, 어쩌면 최근 한국에서도 이슈가 되고 있는 성인지, 성평등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도 하다.연인을 잃고 파리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던 게이인 그와 유명 정치인의 아내로 편안한 삶을 영위 중이지만 어쩐지 잠을 잘 수 없는 그녀가 어린 시절 동반 출연한 영화가 4K로 복원돼 낭트 영화제에 초대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프랑스 낭트로 가는 과정은 실제로 작가가 프랑스 낭트로 여행 중 사고를 당했던 상황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이야기다.천쓰홍 작가의 신작 ‘67번째 천산갑’(사진제공=민음사)“천산갑이라는 존재로 남자 주인공인 그를 은유했는데요. 천산갑은 멸종위기의 동물로 부끄러움이 많아요. 대만에서 몇 번이나 천산갑을 봤는데 한 마리인 경우가 많았어요. 매우 고독하죠. 사실 천산갑이 처한 환경은 되게 힘듭니다. 중의학에서는 약재로 사용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이고 비늘을 벗기거든요. 심지어 고기를 먹기도 하죠. 떠돌이 유기견들에게 공격을 당하기도 합니다. 부끄러움이 정말 많아서 사실상 사람들이 키울 수 없는 동물이기도 해요. 그런 천산갑의 특징을 기반으로 소설 속 그를 이야기했죠.”천쓰홍은 “대만의 천산갑은 독일을 비롯한 유럽으로 많이 보내졌는데 나 역시 대만에서 도망가고 싶었다”며 “너무나 큰 욕망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그 역시 개들의 공격에 웅크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천산갑과도 같던 때가 있었다.“어려서는 자살충동을 느끼기도 했어요. 수학 책에 시를 쓴 적이 있는데 그걸 친구가 발견했어요. 그 친구가 다른 친구들에게 ‘천쓰홍은 게이’라고 공개하면서 공격을 많이 받았죠. 그 후로 생존을 위해 많은 에너지를 써서 제 모습이 부각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숨겨야 했습니다. 그게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저는 저만의 색도 많은 편이고 목소리도 높이는 편이거든요. 그걸 감추는 게 되게 어려웠죠.”그렇게 혼자 세계문학을 읽으면서 그는 “다른 세상의 존재”를 깨달았고 영화를 좋아하는 누나의 손을 잡고 자주 가던 영화관의 스크린을 보면서 “각양각색의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다른 세계로 가는 창문이라고 생각했다.”고등학교 시절 제43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거머쥔 이안 감독의 ‘결혼피로연’을 보며 베를린을 동경하던 그는 그렇게 대만을 떠나 독일의 베를린에 터를 잡고 지금까지 활동 중이다.‘귀신들의 땅’ ‘67번째 천산갑’의 천쓰홍 작가(사진제공=민음사)세월이 흘러 베를린영화제 통역을 하면서 그 영화 속에서 사이먼을 연기했던 배우 자오원쉬안(趙文瑄)을 만났던 그는 무작정 “사이먼 고마워요”라고 마음을 표현했다. 그는 “그렇게 제 청춘의 시기에 구원을 줬던 사이먼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할 수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고 당시의 기쁨을 전했다.“보수적인 사회일수록 영화나 문학은 확실히 청춘을 구원하죠. 사실 ‘67번째 천산갑’은 되게 슬픈, 슬픔에 대한 소설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기쁜 상황을 맞아 웃는 모습을 인터넷상에 많이 공유하죠. 울거나 슬퍼하는 모습은 올리지 않아요. 그런 모습이 너무 이상하다는 생각에 슬픔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눈물과 슬픔의 힘을 믿어요. 울고 싶으면 크게 울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울음은 되게 중요해요. 절대 창피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울고 싶으면 크게 울라’고 말하는 소설이죠.”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9-09 18:00 허미선 기자

[비바100] 과거와 현재를 잇다… 고고학은 시간 여행

서울 종로구 광화문 앞에서 월대 복원 및 주변부 정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연합)고고학(考古學)에 관한 입문서다. 고고학자인 저자가 고고학이라는 학문이 가진 매력과 숨은 의미를 함께 나누고 싶어 썼다. 저자는 고고학의 본질이 ‘시간 여행’이라고 말한다. 유물 속에 숨겨진 인간의 모습을 밝히고, 그들이 어떻게 기후와 환경에 적응해 치열하게 살아왔는지를 찾아보는 과정이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고고학은 언제나 그 끝을 모르는 여행과 같다고 말한다.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강인욱|김영사◇ 고고학, 익숙하지만 낯선 세계신라시대 생활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천마총 내부.(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저자는 고고학을 ‘유물을 발굴해 잃어버린 과거 사람들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한다. 유물의 화려함이나 값어치 보다는, 과거에 대한 인간의 ‘관심’이 고고학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역사학일 수도, 인류학 혹은 민족학이 될 수도 있다고 얘기한다. 중세 암흑기가 끝나기 즈음에,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품을 수집 품평하던 모임 ‘딜레탕티즘(Dilettantism)’이 근대 고고학의 시초였다.고고학의 시작은 ‘지표 조사’다. 유적이 있을 법한 지역을 다니며 땅 위에서 유적의 징후를 찾는 것이다. 주로 찾는 것은 토기 조각이다. 유물이나 유적 흔적이 없다고 해도 일단 시굴 해서 땅 속에 유물이 없음을 완벽히 확인해야 한다. 땅을 파고 살았던 곳은 색깔이나 토질에서 유기물질이 잘 자라, 주변보다 검고 습기가 풍부해 경험적으로 찾아낸다.저자는 “땅 속에 그대로 두는 것이 유물을 가장 잘 보존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대로 두었다간 곧 파괴되기에 빨리 발굴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북극권의 ‘영구동결대’가 그렇다. 얼음이 얼기 전에 지구물리탐사 등을 통해 그 속에서 태고의 흔적을 찾아내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가속화하는 지구온난화가 문제다. 시간과의 전쟁에서 고고학자들이 이길 가능성은 많지 않다.저자는 “고고학의 진정한 역할은 발굴 직후부터”라고 말한다. 최대한 손상 없이 보존해 다음 세대에 넘겨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 보존과학적 지식이 필수다. 현장에서 긴급하고 완벽하게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발굴된 것이 천마총의 ‘천마도’다. 덕분에 지금은 공적개발원조 사업을 통해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개도국에 발굴 및 보존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있다.연구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유물들은 실측 그림으로 증거를 남긴다. 최근에는 3D 스캔으로 간편하게 처리한다. 이후 보고서를 만들고, 유물을 국가에 귀속시켜 수장고에 넣는다. 모든 발굴 유물은 자동으로 국가에 귀속되어 국가가 지정한 국공립 박물관에서 관리된다. 요즘은 일제 때 철도 연결차 건설되었던 폐 터널을 활용한 ‘예담고’라는 수장고가 항온항습 효과 덕에 널리 활용되고 있다.◇ 깨진 유물로 맞추는 그림자 찾기폼페이 유적 발굴 현장 모습.원폭 개발 ‘맨하튼 프로젝트’의 일원이던 물리학자 윌러드 리비는 1960년대에 목탄과 사람 뼈로 과거 연대를 측정하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덕분에 ‘반감기’를 활용한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이 나오면서 “4대 문명에서 세계의 모든 문명이 확산되었다”는 주장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변방으로 치부됐던 지역들이 가치를 인정받게 된 것이다.1970년대 후반에 연천 전곡리에서 동아시아 최초로 출토된 주먹토기는 ‘동아시아는 발달된 석기를 만들 수 없다’던 서구의 주장을 뒤엎은 쾌거였다. 약 6000년 전에 등장한 청동기는 철기와 조화를 이루며 삼국시대 탄생의 배경이 되었다. 숭실대가 소장한 국보 ‘다뉴세문경’은 손바닥 만한 크기의 청동물이지만 표면에 0.2㎜의 미세 선이 1만 3000개나 있을 정도로 정밀해 ‘장인의 명품’으로 평가받는다.사람 뼈에는 나이와 성별, 키, 질병 및 영양상태, 사인, 시신 처리 방법 등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해골을 숭배했던 아즈텍 문명에서는 해골에 화려한 보석과 황금을 붙여 예술품으로 승화시켰다. 서양 중세 땐 교회마다 성인(聖人)의 유골을 훔치느라 소동을 빚기도 했다. 베네치아도 828년 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마르코 성인의 유골을 훔쳐 온 덕에 국제적 도시로 흥성했다는 얘기가 있다. 인골(人骨) 연구는 최근 DNA 기술과 결합되어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무덤은 뼈 뿐만 아니라 시신이 놓인 방향과 방법까지 모두 주요한 자료의 보물창고다. 어느 시대든 전통과 풍습에 따라 무덤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무덤을 썼다는 것은 죽음 이후 내세를 믿었음을 의미한다. 시신을 옆으로 눕힌 경우가 많은데, 이는 죽음이 다시 태어남을 의미해 자궁 속 태아의 모습을 갖춘 것으로 해석된다. ◇ 경제와 역설을 넘어 ‘발굴의 역설’장릉에서 바라본 김포지역 아파트 단지.(연합)197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천마총과 황남대총을 조사했을 때, 엄청난 국보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그 옆에는 더 많은 고분이 있었다. 하지만 고고학자들은 발굴을 포기했다. ‘가장 좋은 고고학자는 발굴을 하지 않는다’는 역설이다. 일본이 식민지 한반도 곳곳을 파헤쳐 금관총, 금령총 등 수많은 신라의 고분을 마구 도굴한 것도, 결국 일본 왕의 묘를 파헤치지 못했던 반대급부였다.최근에는 발굴을 아예 않는 조사기법도 다수 개발되고 있다. 소형 로봇을 무덤 안으로 넣어 확인하거나, 수 ㎞의 거대 고분을 드론이나 구글 맵으로 살피기도 한다. ‘탐침’으로 땅 속에 전류를 흘려 파악하는 방법도 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건설업계와 고고학자간 갈등은 첨예할 수 밖에 없다. 저자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치 사이에서 가장 합리적인 접점을 찾는 것이 솔로몬의 선택”이라고 말한다.조선 인조의 양친인 원종과 인헌왕후를 모신 김포의 장릉은 정작 아파트가 건설될 때부터 논란거리였다. 문화재청이 별도 관리하지 않았고, 관할 지자체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문화재 관리 주체가 전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해 사단이 난 것이다. 2022년 김해 구산동 고인돌 유적 발굴 때처럼, 고고학자의 참여 없이 지자체가 사업을 주도하면서 유적을 훼손하는 사건도 일어났다.신안 앞바다 보물선 인양 모습.(사진제공=신안군)물 속도 땅 속 다음으로 유물 조사가 많은 곳이다. 하지만 2022년까지 고작 29건의 수중문화재가 발굴 조사되어 한 해 1800건이 넘는 육상 문화재와 대조를 이룬다. 1976년 신안 앞바다 도자기가 그 시작이었다. 워낙 비용과 인력이 많이 들어 수중문화재 발굴은 강대국의 상징이 되었다. 스웨덴이 1962년에 ‘바사호’를 인양하는데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 부었으나 지금은 이 나라 대표 관광상품이다.◇ 가짜와 진짜, 고고학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고고학적 유적과 유물을 고대 외계인이 남겼다는 주장이 있다. UFO에 고도로 집착했던 1960~1980년대에 외계인설이 극심했다. 저자는 “신기하게도 모든 사람의 손에 고성능 카메라가 달린 스마트 폰이 들리면서 UFO 얘기가 사라졌다”며 일축했다. 아라라트산에서 발견되었다는 노아의 방주나 마야 문명의 팔렝케 유적에서 발견된 석관을 외계인의 흔적으로 보는데, 고고학적으로는 정식으로 조사된 바가 없다.미스터리와 저주, 음모론도 유적과 불가분의 관계다. 1993년 시베리아 알타이 초원의 여성 샤먼(사제) 무덤에서 발견된 미라 ‘알타이의 공주’가 대표적이다. MRI 조사를 통해 고고학은 그녀가 일반인이며 골수염을 앓았고 유방암 4기였음을 밝혀냈다. 그런데도 후손들은 조상인 얼음공주의 안식을 방해했으니 큰 화가 닥칠 것이라며 재매장을 촉구했다. 지금도 미라만 나오면 수많은 음모론과 저주가 등장한다.저자는 “상징적인 연대와 실제 역사를 구분 못하는 것은 고고학의 큰 걸림돌”이라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반 만년 역사’라고 하지만 그 근거는 매우 희박하다고 말한다. 삼국유사의 단군신화를 기원전 2333년으로 간주해 민족의 기원을 본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한번 잘못 형성된 과거에 대한 인식을 교정하려면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요구된다.저자는 또 “가짜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정교한 복제는 유물의 느낌을 모두에게 전하는 동시에 유물을 제대로 보전하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복제품이 진품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는 고구려 벽화들이 그렇다. 무작정 돌문을 열었다가 원형이 크게 훼손되었으나 화가들이 그린 복제 모사화가 대신한다. 저자는 “복제품은 부득이한 상황에서 진품을 대신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고고학, 미래를 꿈꾸다경주 한 유적 발굴현장 모습.(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인공지능이 고고학에 새 바람을 예고하고 있다. 유물의 기록, 분류, 실측, 보관 같은 1차적인 현장작업의 상당수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수 있다. 실측 과정을 통해 일일이 유물과 유적을 그리는 대신 3D 스캔이 해결책을 준다. 보존이 어려운 벽화나 오래된 유물은 3D프린터로 발굴 당시의 가장 정확한 정보를 기준으로 복제품을 쉽게 만들어낼 수도 있다.비슷한 유물을 같이 묶어서 배열하는 형식학도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고, 발굴 보고서 작성도 인공지능이 맡게 될 전망이다. 발굴 때 정밀 촬영 및 분석을 통해 그 유물의 시대와 용도를 추정해낼 수도 있을 전망이다. 기존 발굴 자료를 유추해 전체 유적의 정보를 추정해, 미 발굴 유적의 현황도 예측할 수 있다. 고고학이 인공지능을 비롯한 수많은 새 기술에 ‘열린 자세’여야 하는 이유다.미래 고고학자에게 또 다른 도전은 21세기 디지털 자산의 보존이다. 빠르게 쌓여가는 디지털 데이터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가 큰 현안이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 중인 백남준의 1988년 작품 다다익선은 이제 브라운관 수명이 다했다, 새 모니터로 바꿔야 할 지, 폐기해야 할 지 기로에 서 있다. 저자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디지털 시대에 쌓여가는 유물의 보존과 관리에 대한 예언”이라고 말했다.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2024-08-31 07:00 조진래 기자

[비바100] 덜 믿는 당신! 더 묻는 당신!… 사기꾼이 당신을 싫어합니다

세상에는 ‘속이려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들은 우리 마음이 움직이는 방식을 악용해 우리를 속인다. 이 책은 보이지 않는 고릴라의 저자들이 똑똑한 우리가 왜 거듭 사기를 당하는지, 어떻게 하면 피할 수 있는지를 상세하게 일러준다. 사기와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시대에 속임수에 쉽게 말려들지 않는 법을 제시해 준다. 저자들은 때때로 불리하게 이용될 수 있는 인간의 4가지 인지 습관(집중, 예측, 전념, 효율)과 사기꾼들이 거짓을 진실처럼 보이게끔 사용하는 4가지 후크(일관성, 친숙함, 정밀성, 효능)에 주목한다.◇ 누구나 가끔은 속는다, 습관 때문에…저자들은 사람들이 속는 경우를 크게 네 가지로 나눈다. 눈 앞의 관심 있는 것에만 집중할 때, 기대하는 바대로 자동적으로 예측할 때, 강한 신념에 전념할 때, 그리고 경험을 통해 효율을 추구할 때이다. 사고와 판단, 추론을 할 때 도움 되지만 우리에게 불리하게 이용될 수도 있는 습관들이다. 저자들은 우리의 기본 상태는 ‘신뢰’라고 말한다. 좋은 이야기에 끌리고 설득당하는 것이 우리의 본능이라는 것이다.이런 경향을 사기꾼들은 십분 이용한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정보에도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스스로 “놓친 것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수시로 던져야 한다. 정말로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자문해야 한다. 예의를 차리느라 정말 중요한 질문을 빼먹으면 속게 된다. ‘실패 이력서’ 쓰기도 한 방법이다. 간신히 나쁜 결과는 모면했지만, 운이 나빴던 일이나 실행을 고려했다가 지나쳤던 것까지 추적할 수 있다.우리는 경험과 예측이 맞아떨어지면 문제를 제기 않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예측이 실현되게 만드는 사람들에게 속기 일쑤다. 우리는 부정확한 예측의 폐해를 잘 몰라, 때로는 확증편향에 빠진다. 거짓말은 진실보다 훨씬 그럴 듯하며, 이성에 호소하는 경우도 많다. 거짓말쟁이는 듣기를 바라거나 기대하는 것을 따라하는 능력이 출중하다. 이 때 자신이 반대의 결과를 기대한 것처럼 생각해 보면 도움이 된다.여섯 명의 사진작가에게 중년 남성을 찍게 했다. 사전에 그가 재소자, 심령술사, 알코올 중독자라는 각기 다른 정보를 주었다. 같은 사람을 같은 스튜디오에서 찍었지만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사진작가들은 그 남성에게서 발견한 ‘정수’를 포착하려 시도했다. 이처럼 우리는 기대에 따라 해석하고 ‘예측’한다. 보는 것이 자신의 기대에 부합할 때, 우리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거나 깊이 파고들지 않는다.기대로 인해 눈이 어두워진다. 추론 능력이 나은 사람들이 신념을 정당화하려는 의욕 때문에 더 쉽게 속는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그래서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을 대화에 포함시키는 것은 대단히 효과적이다. 정당한 데이터가 우리를 속이기도 한다. 축적된 경험이 너무 일관적이어서 강력한 가정으로 변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우리를 속이려는 이들은 오히려 그런 신념을 강화한다.세상을 이해하는 데는 때론 의심 없는 가정이 필요하지만, 속지 않으려면 의문을 제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속지 않으려면 “내가 가정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지?”라고 자문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선택했는지 몰라도 그 선택을 고수하는 경향이 짙다. 이를 ‘선택맹(choice blindness)’이라고 한다. 더 깊이 확인해 보지 않고 정보를 받아들이면 누구나 속임수에 취약해질 수 밖에 없다.우리를 속이려는 사람들은 효율성을 추구하는 우리의 습관을 자주 이용한다. 유명 미술관들에 위작들이 많은 이유다. 모든 박물관 그림의 20~50%가 위작이며, 경매 작품 중 상당수가 가품이라고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겉으로 괜찮아 보이는 경우 우리는 직관적으로 ‘효율’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투자 제안서의 아주 작은 글자들도 그런 유형의 하나다.저자들은 효율적인 행동을 선호하는 이런 타고난 습관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 알아봐야 하는 것은 뭘까” 하는 단 하나의 질문만 던지면 된다고 말한다. 가장 유용한 질문은 그 상황 특유의 질문, 숨겨져 있던 더 많은 문제들을 드러내는 질문이다. 이 때 우리는 일반적인 비 응답, 즉 사람들이 추가 질문을 차단하기 위해 사용하는 상투적인 답변을 찾아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무가치한 답을 진짜 답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그런 답을 더 많은 정보를 독촉해야 할 신호로 여겨야 한다. “상당한 주위 의무를 다했다”, “검증·인증되었다”, “원본이 분실되었다” 같은 답변을 특히 주의해야 한다. 대답이 없거나 지나치게 회피하는 느낌이 들면 자리를 떠날 용기도 필요하다. “더 말씀하실 것은 없나요”, “더 좋은 조건은 없나요” 같은 질문이 좋은 효과를 낸다.◇ 우리를 옭아매는 ‘후크’저자들은 사기꾼들이 진실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도록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네 가지 ‘후크’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예외가 없는 일관성, 어디서 보고 들은 것 같은 친숙함, 숫자로 표기되는 정밀성, 그리고 작은 원인이 큰 결과를 부르는 효능 등이다. 대부분의 속임수에는 이런 후크가 하나 이상은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다.우리는 일관성을 진짜라는 신호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진짜 데이터에는 거의 항상 가짜처럼 보이는 가변성, 즉 노이즈가 녹아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현실적인 수준의 임의성과 변화를 찾는다면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일관성은 사기꾼들만 이용하는 도구가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일관성을 맹신한다는 사실을 이용하는 합법적인 조직들이 수두룩하다고 말한다.저자들은 노이즈 평가의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첫째, 진짜 인간의 성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노이즈가 많은 것이 대부분이다. 둘째, 일관성을 알아차리려면 거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셋째, 의심되는 성과의 일관성이, 이와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다른 사람들의 성과의 일관성보다 강한 지 확인해야 한다.친숙함도 경계 대상이다. 우리는 친숙함을 진실과 정당성으로 이해하지만, 저자들은 그것이 진짜와 비슷할 뿐이지 진짜가 아니며 누군가가 우리를 속이고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친숙함과 유사성을 활용해 브랜드에 대한 대중의 인지도를 높이려는 광고도 수 없이 많다. 친숙함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불어넣음으로써 제품이나 권유를 믿을 만하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이 같은 ‘착각적 진실’의 효과는 매우 즉각적이다. 정치권에서도 친숙함을 정직성과 혼동시키는 경우가 많다. 사회공학적 피싱이 성공하는 것도 친숙함 때문에 사람들이 방심하기 때문이다.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친숙한 외양의 메시지가 보이는 것과 다르지 않은 지 자문하는 것이다. 무언가가 친숙하게 느껴지면 “왜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을까”라고 자문해 봐야 한다.처음 접하는 것인데도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정밀하게 보일 때 특히 그렇다. 하지만 가짜는 대개 진짜보다 더 상세하고 구체적이다. 부정적인 감정 경험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 경험의 비율이 2.9013을 초과하면 번성하지만 그 보다 낮다면 힘든 삶을 산다는 연구 보고서가 있었다. 저자들은 소수점 네 자리에 이를 정도로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인간 행동은 거의 없다며 부정한다.숫자는 정밀할수록 설득력이 커진다. 37만 달러 주택보다 36만 7500달러 주택이 결국에는 더 비싼 값에 팔린다. 협상의 여지가 많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들은 정밀하다는 주장이 자칫 정확하다는 그릇된 인상을 줄 수 있다고 꼬집는다. 그런 점에서 여론조사를 너무 맹신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부적절한 정밀성 때문에 모델을 잘못 해석하고 사용하는 경우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기적적인 효능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기성 또는 기만적인 제품을 ‘스네이크 오일’이라고 한다. 이런 경우를 접할 때는 당연히 “유효 성분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뒤따라야 한다. 과장된 과학적·의학적 주장을 경계하고 견지하라는 것이다. 저자들은 ‘나비효과’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그런 경우는 생각보다 훨씬 드물며, 대부분 우리의 삶을 바꾸지 못한다고 말한다.◇ 덜 받아들이고 더 확인하라저자들은 “의심을 보편화한다면 절대 사기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 면서도 “극단적인 회의주의는 비생산적”이라고 조언한다. 사람은 누구나 속을 수 있다. 일단 받아들이고 확인은 나중에 하려는, 그마저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인간의 기본 성향은 사기 피해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전제조건이다. 하지만 적절한 시기에 질문을 던지는 법을 배우면 속아 넘어갈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직관에 더 많이 의존하고 분석적 사고에 숙련되지 않은 사람일수록 참도 거짓도 아닌 말도 안되는 진술에 깊은 인상을 받는 경향이 있다. 저자들은 그럴수록 추상적이고 복잡한 단어들을 단순하고 구체적인 단어들로 대체해, 이해하기 힘든 주장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주장으로 전환시켜 보라고 권한다. 또 전문지식은 눈에 보이는 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을 막을 수 있는 최고의 방어책이라고 강조한다.저자들은 아무리 제의가 매력적이라도 잠시 멈춰서 속임수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되는 세 가지 질문을 던지라고 조언한다. 첫째는 “왜 나인가”이다. 둘째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지”라고 자문해 보는 것이다. 셋째는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라는 질문이다. 자신이 속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나 장소에 있는지 평가해 보라는 얘기다.여기에 ‘실수 확인’ 과정을 거치면 상황을 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수용’과 ‘확인’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잡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결국.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속을 수 있다. 문제는 더 확인해야 할 때가 언제이고 어떻게 확인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4-08-24 07:00 조진래 기자

[비바100] 뚜벅뚜벅 조선으로 시간여행

서울에는 볼 만한 유적 공간이 많다. 하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몰라 무심코 지나치거나 겉보기에 그치기 일쑤다. 이 책은 부제 ‘지식 가이드와 떠나는 한국사 600년 시간 여행’에서 보듯이, 문화유산 해설 전문여행사인 ‘트래블리이블’이 풍부한 자료 연구와 현장 답사를 기초로 독자들이 편하고 의미 있게 조선시대를 시간여행할 수 있게 돕는다.◇ 국립고궁박물관조선시대부터 대한제국까지 왕실의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2층에는 임금이 앉던 붉은색 ‘어좌(御座)’가 있다. 뒤로는 해와 달, 5개 산봉우리가 그려진 ‘일월오봉도’가 자리한다. 이 병풍은 임금이 궁 바깥 행차를 할 때마다 함께 했고, 임금이 승하하면 함께 묻혔다. 임금의 초상 ‘어진(御眞)’은 후대를 위해 하나도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린 초상화다. 어진을 가장 많이 남긴 왕은 태조 이성계다. 과학문화전시실에서는 ‘천상열차분야지도’가 눈길을 끈다. 295개 별자리와 1467개 별을 밝기에 따라 크기가 다르게 표시되어 있다. ‘측우기’도 있다. 1639년 이탈리아의 ‘우량계’보다 200년 앞선 발명품이다. 처음 발명한 세종 23년 음력 4월 29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5월 19일이 발명의 날이다. 세종과 장영실이 의기투합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 알람 시계 ‘자격루’도 이곳에서 위용을 자랑 한다.◇ 경복궁1395년 조선 최초의 ‘법궁(法宮)’을 창건할 때 정도전은 ‘크나 큰 복을 누리라’는 의미로 경복(景福)이라 지었다. 하지만 궁의 규모는 의외로 소박했다. ‘근정문’은 임금의 즉위식이 거행된 자리며, 그 앞 마당인 ‘조정’에 직급별 품계석이 세워졌다. 세종 때부터는 천인(賤人)을 포함해 80세 넘는 노인들을 위한 축하연도 열렸다. 90세 이상이면 관직을 수여했고, 100세가 넘은 천인은 면천(免賤)까지 해 주었다.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 천장에는 두 마리 용이 새겨져 있다. 경복궁에서 왕이 평상시 거처하며 신하들과 업무를 보던 편전이 ‘사정전’이다. 근정전 바로 뒤 편이다. 근정전보다는 작고 낮은 어좌가 놓여 있어, 수평적 눈 높이로 토론이 이뤄졌다. 신하들과 가장 경연을 많이 한 임금은 세종과 성종이었다. 세종은 무려 2011건에 달해, 조선왕조실록 전체에 기록된 경연 건수의 7분의 1에 달했다.◇ 창덕궁개성으로 도읍을 옮겼던 정종을 제치고 왕위에 오른 태종 이방원이 다시 한양 천도를 단행하면서 새로 지은 궁이다. 가장 아름다운 조선의 궁궐로 칭송받는다. 조선조 5개 궁궐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창덕’은 선한 것은 성스러운 것이니 왕실은 백성에게 성스러운 덕을 끼쳐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전인 ‘인정전’에서 즉위한 왕이 ‘연산군’이라는 점은 아이러니다.창덕궁에서 고종은 일본의 협박으로 순종에게 강제로 왕위를 물려주었다. 일본은 궁의 내부를 근대식 궁의 형색으로 갖추게 했다. 대표 전각인 ‘희정당’은 샹들리에와 각종 서양식 가구가 화려하다. 왕비의 침전 ‘대조전’은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승하한 곳이다. 대조전 동쪽의 ‘흥복헌’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려 이완용 등이 순종에게 한일합병조약 문서에 강제로 옥쇄를 찍게 한 망국의 장소다.◇종묘한양을 도읍으로 정한 태조 이성계는 법궁인 경복궁을 짓기도 전에, 선대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실 ‘종묘’ 건설부터 명했다. 그리고는 고조부부터 아버지에 해당하는 목조와 익조, 도조, 환조의 신주를 모셨다. 종묘의 정전은 길이 101m로 단일 건물로는 국내 건축물 중 가장 길다. 가장 왼편 방에 이성계와 2명이 부인이 있고, 그 옆으로 18개 방에 후대 왕과 왕비들이 모셔져 있다.  조선의 역대 왕 27명 가운데 종묘에 모신 왕은 19명이다. 다른 왕들은 종묘 뒤편의 ‘영녕전’에 모셔져 있다. 장소의 협소함 탓에, 정전에 모신지 5대가 지나면 신주를 영녕전으로 옮긴다는 기준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나라를 세운 태조 이성계를 비롯해 태종, 세종, 세조, 성종, 중종, 선조, 인조, 효종, 현종, 숙종, 영조, 정조 13명은 왕조에 미친 영향이 워낙 커 절대 정전에서 빼지 못하게 했다.◇ 창경궁성대할 창(昌)에 경사 경(慶)을 쓴 궁궐이지만, 가장 어두운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일제가 한 때 동물원 ‘창경원’으로 폄하했던 곳이다. 왕실의 주거용으로 지어져 공간도 적고 화려함도 덜했다. 정전인 ‘명정전’도 조정보다 작았다. 궁궐은 남향이 원칙이었으나 창경궁은 자연 지세에 맞춰 동향으로 지어졌다. 명전전 왼편의 ‘문정전’은 1762년 7월 4일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임오화변’이 일어난 곳이다.현재 창경궁은 10채의 전각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1908년에 일제가 순종 위로를 명목으로 위락 시설을 지으면서 60여 채 전각이 뜯겨 나가고 동·식물원이 들어섰다. 조선왕실의 질서를 상징하는 조정 마당의 박석들까지 다 뜯겨나가고 꽃밭이 들어섰다. 그리고는 신분이 낮은 사람들도 누구나 출입할 수 있도록 ‘궁’을 ‘원’으로 격하시켰다. 경술국치 후에는 아예 창경궁과 종묘 사잇길까지 끊어버렸다.◇덕수궁본래 이름은 ‘경사가 구름처럼 몰린다’는 뜻의 경운궁(慶雲宮)이었다. 고종이 1897년에 대한제국의 법궁으로 선택한 후 1907년에 덕수궁으로 바뀌었다. 덕수궁의 정전 ‘중화전’은 다른 궁에서는 볼 수 없는 황금색이 찬연하다. 당시 황금색은 중국 황제들만 사용할 수 있었다. 고종 스스로 황제임을 과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중화전 내부 천장의 용(龍)도 발톱이 5개인 ‘오조룡’으로 황제궁의 상징이다. 고종의 염원이 가장 많이 담긴 공간이 ‘석조전’이다. ‘돌로 만든’ 그 자체가 ‘근대’를 상징했다. 석조전 서관은 당시에도 전시를 목적으로 했으나 일제가 ‘이왕가(李王家) 미술관’이라며 격을 낮춰 버렸다. 덕수궁 바깥 쪽에는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중명전’과 순종이 즉위식을 가진 돈덕전이 있다. 고종의 침전인 ‘함녕전’은 두루 평온하다는 뜻이었지만, 고종은 1919년 이곳에서 원인 모를 죽음을 맞았다.◇서대문형무소역사관1908년 경성감옥으로 시작된 서대문형무소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감옥이다. 청나라 사신과 무역상들을 맞던 번화가 ‘의주로’에 형무소를 세운 것 자체가 조선인을 통제할 목적임을 드러낸 것이었다. 1987년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할 때까지 수 많은 독립운동가와 민주화 인사들이 투옥되었다. 최대 수용인원이 500명이었으나 3.1 만세운동 때는 3000명을 넘겼다고 한다.정면의 보안과 청사 2층에는 무수한 붉은 점이 찍힌 한반도 지도 ‘전국 의병 전쟁 거의도’가 걸려 있다. 동대문 밖 30리까지 진격했던 의병부대의 총대장 허위 의병장은 서대문형무소의 1호 사형수다. 세 방향의 옥사를 모두 감시할 수 있는 ‘판옵티콘’ 방식의 설계가 눈길을 끈다. 1918년에는 사형선고 받은 여성 독립운동가 수감을 위해 여자 옥사가 지어졌다. 이곳 8호 감방에 유관순 열사가 수감되어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동관 1층 중·근세관 조선실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외규장각 의궤’다. 1866년 강화도에서 병인양요를 일으킨 프랑스 군대가 276권의 의궤를 포함해 359점의 유물을 훔쳐간 것을 1975년 고 박병선 박사가 프랑스 국립도서관 폐 서고에서 발견했다. 정부가 테제베 고속철을 도입하는 조건으로 2011년에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소유권자는 여전히 프랑스라 ‘반환’이 아닌 ‘영구 대여’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전시관 1층에는 13.5m 높이의 국보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이 있다. 일본으로 밀 반출될 것을 외신기자들이 폭로해 막았다. 지상 3층의 건물 중앙에 층을 모두 비워 설치했다. 삼국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2개의 국보 반가사유상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가 수집했다는 고려청자들도 전시되어 있다. 1936년 제11회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선수가 부상으로 받았던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도 비치되어 있다.◇ 성북동과 북촌성북동은 한양 도성 북쪽 동네라는 뜻이다. 복숭아 나무가 많아 ‘도화동’으로도 불리었다. 이곳에는 미술 수집가 간송 전형필이 1938년에 건립한 국내 최초의 근대식 사립미술관 ‘간송미술관’이 있다. 김홍도와 신윤복·정선의 화첩, 고려청자, 금동불상 등 6세기부터 20세기 초반에 걸친 국보급이 수두룩하다. 그가 안동에서 찾은 ‘훈민정음 해례본’은 전형필의 ‘문화보국’ 정신을 그대로 보여준다.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북촌의 도시형 한옥들은 ‘건축왕’ 정세권의 작품이다. 그의 목표는 일본인 땅이 많던 가회동과 익선동, 계동 등 북촌에 많은 도시형 한옥을 지어 조선인에게 분양하는 것이었다. 일본인들이 남촌에서 점점 북상하는 것을 막고자 연부·월부 판매까지 도입해 싸게 공급했다. 익선동을 시작으로 안국동, 삼청동 등에도 한옥 단지가 만들어져 그가 지은 한옥 수가 6000여 채에 달했다고 한다.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2024-08-16 07:00 조진래 기자

[B그라운드] 문학은 ‘입자와 파동’이 되어 새로운 물길을 낼 수 있을까? 제13회 서울국제작가축제

오형엽 기획위원장이 제13회 서울국제작가축제 대주제인 ‘입자와 파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제공=한국문학번역원)“현대 물리학의 ‘빛은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라는 정의에서 기인한 대주제 ‘입자와 파동’(ParticlesWave)은 물리학, 자연과학 뿐 아니라 문학·예술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정했습니다.”올해로 13번째를 맞는 서울국제작가축제(9월 6~11일 혜화동 JCC아트센터)의 기획위원장인 오형엽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이자 한국문학평론가협회장은 대주제에 대해 “그 취지는 대립적인 모순이 공존하거나 충돌하면서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작은 것이 큰 것을 만든다, 이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밝혔다.“그 예로 문학은 정치성과 윤리성을 포기할 수 없는 동시에 위악성과 예술성을 포기할 수 없는, 모순되고 대립적으로 보이는 두 가지가 공존하거나 충돌하면서 관계돼 있습니다. 또 하나는 나비 효과 같은 것인데요.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태풍을 만들 수 있듯 빛의 작은 입자가 파동을 일으킬 때 큰 영향력을 끼치고 큰 것을 만들 수 있죠.”그리곤 “문학에서도 아주 특수한 것이 보편성을 만들어 내고 또 사소하고 작은 어떤 사건이 주제를 도출하기도 한다”며 “이에 두 가지를 함께 포함하고 있는 ‘입자와 파동’을 대주제로 정했다”고 밝혔다.2024 서울국제작가축제 포스터(사진제공=한국문학번역원)“지역, 국가, 민족, 인종, 젠더, 세대 등 다양한 층위에서 한국 문학뿐 아니라 세계문학이 함께,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사회적 문제의식 그리고 예술적 가치들을 함께 생각하고 토론하고 공유하기 위한 대주제죠. 이를 통해 서울국제작가축제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모순적인 대립 등을 아우르면서 그 관계성을 사유하고 새로운 물길을 내는 문학의 입자성과 파동성을 함께 체험하는 장을 준비하고자 했습니다.”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학번역원이 주최하는 서울국제작가축제는 2006년부터 13년째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이 교유하는 장을 제공하고 있다. 이번 축제에서는 ‘오베라는 남자’ 등의 스웨덴 프레드릭 배크만(Fredrik Backman), 튀르키예 쥴퓌 리바넬리(Zulfu Livaneli), 대만 천쓰홍(Kevin Chen, 陳思宏),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선두주자 클라우디아 피녜이로(Claudia Pineiro) 등 해외작가 10명과 ‘저주토끼’ 등의 정보라를 비롯한 김기태, 백수린, 이장욱, 황인찬 등 14명의 국내작가가 만난다.이들은 JTBC 슈퍼밴드 우승자인 첼리스트 홍진호와 피아니스트 최문석의 공연 그리고 정보라와 클라우디아 피녜이로의 대담으로 문을 여는 서울국제작가축제에서 ‘작가, 마주보다’ ‘작가들의 수다’ 등과 융복합 프로그램을 통해 소통하고 대화를 나누며 공감대를 형성한다.‘작가, 마주보다’에서는 이기호 작가와 튀르티예의 소설가이자 시인 쥴퓌 리바넬리. 이희주와 일본의 우사미 린(Rin Usami, 宇佐見りん), 황인찬과 모델 출신의 영국 시인 이르사 데일리워드(Yrsa Daley-Ward), 백수린과 미국의 미셸 자우너(Michelle Zauner), 최은미와 스페인의 엘레나 메델(Elena Medel)이 각각 ‘반복, 기록, 각인’ ‘죽도록 사랑해’ ‘뼈와 살의 포옹’ ‘보이지 않는 끈’ ‘별개의 질서’를 주제로 대담을 나눈다.‘작가들의 수다’에서는 남승원 사회로 김기태, 정영수, 스웨덴의 프레드릭 배크만이 ‘농담의 온도’, 김근, 황유원, 아이슬란드 숀(Sjon)이 ‘고요와 술렁거림’을 주제로 토론을 나눈다. 사회자 한소범, 이장욱, 손보미, 대만 천쓰홍이 그리고 사회 오은교, 이미상, 김이설, 콜롬비아의 필라르 킨타나(Pilar Quintana)가 각각 ‘어두움 밤들의 세계’ ‘사랑의 다른 얼굴’이라는 주제로 토론을 이어간다.지난해와 동일한 대담·토론 프로그램과는 달리 융복합 프로그램은 “작가들의 작품을 기반으로 한 판소리, 음악 공연 등을 선사하던 지난해와는 달리 관객들이 좀더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융복합 프로그램을 마련 중”이다.‘작가와 함께 하는 낭독극장’에서는 손보미 작가와 뮤지컬 배우 김성현이, ‘시와 노래’에서는 황유원 작가와 가수 이랑이 원작 소설과 시를 낭독과 노래로 만들어 보는 독자참여형 프로그램을 진행한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8-13 18:00 허미선 기자

[비바100] 위대하거나, 위험하거나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문명의 이기(利器)’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인류가 발명해낸 많은 창조물들은 우리 삶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불편한 진실’도 적지 않다. 이 책의 부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던져야 할 질문’인 이유다. 저자는 정말로 멋져 보이는 문명의 이기들에게서 발견되는, 우리가 한 번쯤은 꼭 생각해 봐야 할 문제점들을 짚어낸다.세상 멋져 보이는 것들의 사회학|오찬호|북트리거◇ 편리하지만 끔찍한 ‘플라스틱’(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우리는 ‘플라스틱 중독 세상’에 살고 있다. 주변이 온통 플라스틱 투성이다. 처음에는 ‘신의 선물’이었다. ‘생각한 대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의 그리스 어원 ‘플라스티코스’ 그대로 였다. 그런데 이제는 ‘플라스틱의 역습’이 이뤄지고 있다. 미세 플라스틱은 에베레스트 정상에서도, 남극 눈 속에서도 발견된다. 태평양 한 가운데 거대한 쓰레기섬 GPGP에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1조 8000억 개나 있다고 한다.분리수거가 한 방법이라고 하지만 전 세계 플라스틱 쓰레기 중 재활용 비율은 고작 1.7%에 불과하다. 그것도 2060년 예상치다. 재활용 과정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발생해 환경 문제도 야기된다. 생산량 자체를 줄이는 것이 최대 이슈다. 저자는 “이제 누구나 ‘환경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경우에 따라선 자본주의의 미덕인 ‘소비’도 자제 혹은 절제해야 할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고 강조한다.◇ 간편함 뒤의 찝찝함 ‘수세식 변기’(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전 세계에서 제대로 된 화장실을 이용 못하는 인구가 15억 명이다. 우리도 집에 수세식 화장실 없는 인구가 2022년 기준 2.5%(130만 명)에 달한다. 수세식 변기는 백신, 항생제와 함께 인류 건강을 지킨 대표 발명품이다. 문제는 이걸 한 번 내리는데 10리터 이상의 물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하루에 생수통 100여 개가 오물 치우는데 사용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최악의 발명품’이라는 악평도 받는다.2020년부터 6리터 이하 변기 제조를 의무화했지만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수도법 시행규칙에 ‘변기 막힘 해소’를 위한 경우는 예외로 한다는 조항 때문이다. 그래서 4리터 이하 1등급, 5리터 이하 2등급, 6리터 이하 3등급 식으로 절수 등급 표시 의무화로 바뀌었다. 저자는 “우리는 오물을 물로 흘려보내면 그만이라는 듯 살고 있다”면서 “그 간편함 탓에 다른 것을 상상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병 주고 약 주는 ‘진통제’(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마약성 진통제인 ‘오피오이드’는 ‘아편’에서 유래한 단어다. 병원에 가는 순간 우리는 이 마약성 진통제에 노출된다. 이제 길거리 마약보다 의사들이 처방해 주는 약이 더 큰 문제다. ‘오피오이드 에피데믹’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의사처방이라는 합법적 경로로 전염병처럼 퍼져 나간다. 이러니 음지에서는 모르핀보다 안전하다며 불법 약물 ‘헤로인’ 공급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기적의 진통제’가 ‘사람 죽이는 진통제’가 되고 있다. 2021년에 미국에서 11만 명이 약물 오남용으로 사망했는데, 75%가 오피오이드 관련 사망자였다. 제약회사들은 ‘중독성 있음’이라는 문구만 붙이고는 부지런히 합성 마약을 만들어 낸다. 한국 역시 남용 우려가 크다. 절망의 죽음과 자본주의의 미래를 쓴 앵거스 디턴은 “한국의 높은 자살률과 미국의 절망사가 배경이 비슷하다”며 깊은 우려를 내보였다.◇ ‘피임약’, 여성은 해방시켜 주었지만…(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전 세계 임신 중 의도치 않은 임신이 48%에 이르고, 이 중 임신중절로 이어지는 비율이 61%에 이른다는 유엔인구기금의 통계가 있다. 미국의 산아제한 운동가 마가릿 생어는 피임 방법을 알려주는 클리닉을 만들어 이런 의도치 않은 임신을 막는데 기여했다. 가난하고 무지해서 피임을 몰라, 가족 모두가 가난해지는 악순환을 깨려 했다. 그의 어머니도 19번의 임신과 11번의 출산으로 49세에 요절했다.계속되는 임신과 출산을 ‘엄마’라는 이유로 받아들이라는 것은 ‘강요된 모성’이다. 피임약은 그렇게 여성을 구원했다. 가능한 만큼만 출산해 ‘자발적 모성’이 가능해졌고, 임신의 두려움에서 벗어난 여성들은 인생을 ‘계획’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저자는 “임신을 초래한 남성은 여전히 고려되지 않고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여성들이 피임약을 먹는 것도 그런 불안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스마트하지만 스마트하지 않은 ‘스마트 폰’(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스마트하다는 기계가 전혀 스마트하지 않다. 엉터리, 가짜 뉴스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보의 풍성함이 주는 놀라움에 취해 그것을 꼼꼼하게 살펴보지 않는 나쁜 습관이 생겼고 결국 중독이 되어 버렸다. 끊임없이 찾고, 고민하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생각도 줄어들었다. 무엇을 빨리 찾는 게 스마트해 보여서, 자신이 얼마나 스마트하지 않은 지를 모르게 되었다고 저자는 꼬집는다.휴대전화가 없으면 불안해 죽는 ‘노모포비아(Nomophobia)’의 시대다. 여기에 챗GTP는 사람들의 귀찮음과 번거로움을 단번에 해결해 준다. 예전에는 종일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보는 게 ‘성장’이라고 여겼지만, 이제는 비효율을 넘어 한심하다고 까지 느껴진다. 스마트 폰이 신체 일부가 되어 버린 ‘포노 사피엔스’가 넘치는 세상이 되었다. 저자는 “스마트 폰이 ‘기계’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찍혀서 안심되지만 불안한 ‘CC TV’(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폐쇄형’ CC TV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로켓 시험 발사대 부근을 특별감시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 최초였다고 한다. 지금 CC TV는 ‘양 날의 검’이 되었다. 안전을 담보해 주는 유용한 도구일 수도 있지만, 불필요한 감시의 도구로 약용될 여지도 많다. 탁월한 범죄 해결에 대한 신뢰 덕분에 “없었으면 큰 일 날 뻔 했다”는 만족감도 크지만 “왜 여기에 CC TV가 있냐”는 불만도 가득하다.한국에서 공공형 CC TV는 2008년 15만 7000대에서 2022년 160만 7000대로 폭증했다. 민간 CC TV는 그 10배로 추정된다. 카페에서 노트북을 두고 화장실에 갈 수 있는 이유다. 문제는 찍히는 대상이 준 범죄자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촬영되는 순간,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저자는 “폐쇄회로의 ‘폐쇄’는 기계를 제한적으로 사용한다는 뜻인데, 실제로는 사람의 삶이 매우 제한되어 버렸다”고 꼬집는다.◇ 동네를 점령한 ‘프랜차이즈’(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편의점에는 없는 것이 없다. 심지어 집과 차도 판다. 전국적으로 5만 곳이 넘는다. 1989년에 지금 형태의 편의점이 나타나면서 라이프 스타일이 변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가 발달하면서 동네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동네 빵집 대신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이 자리를 차지했다. 피아노 학원도 프랜차이즈화되었다. 그 고급스러움과 깨끗함이 주는 안락함에 동네 자영업자들은 살 길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프랜차이즈도 적지 않은 문제점이 노출된다. 가맹비와 교육비, 광고비 등이 크게 발생한다. 창업 비용도 주인이 스스로 조절할 수 없고, 매장 넓이도 최소 기준이 정해져 있다. 점포 사장은 위험 부담을 줄여준다는 대가로, 어떤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가게 주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저자는 “기업의 비용 절감, 이윤 증가’ 법칙이 우리네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무시하지 말자”고 호소한다.◇ 가장 효율적이지만 가장 위험한 ‘원자력 발전’(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핀란드와 스웨덴, 프랑스만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장 부지를 선정했을 뿐, 대부분 나라가 핵폐기물을 발전소 내부에 임시 보관 중이다.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할 수도 있지만 너무 비싸다. 그 과정에서 플루토늄이 추출되어 핵확산금지조약(NPT)이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나라들만 가능하다. 핵 폐기물을 로켓에 실어 우주에 버리는 방법도 있지만, 실패해서 공중폭발이라도 하면 인류는 멸망한다.우리는 2015년 경주에 중저준위 방폐장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 원전에서는 매년 평균 700여 톤의 사용후핵연료가 발생해 누적된 양이 2만 톤에 달한다. 원전 내부의 임시저장소는 2030년부터 순차적으로 포화 상태에 이른다. 저자는 “재생에너지 수준이 높아져 원전에 의존하는 비중을 줄여 위험도를 낮추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는 시원해지고 우리는 뜨거워지는 ‘에어컨’(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에어컨은 분명 20세기 공학이 성취한 가장 위대한 업적 가운데 하나다. 에어컨이 가동된 수술실에서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죽을 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그 쾌적함을 추구하는 속도가 기후변화보다 너무 빠르다. 에어컨 냉매제인 CFC(염화불화탄소)가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1987년 ‘몬트리올 의정서’에서 통제 방침이 확정되었지만, 2010년이 되어서야 지구 전체에 금지되었다.급한 불은 끄기는 했지만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CFC의 대체제로 선택된 HCPC(수소염화불화탄소)는 여전히 오존층을 파괴했고, HPC(수소불화탄소)도 이산화탄소 1000배 수준의 온실가스를 내뿜었다. 저자는 “에어컨을 파괴하자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인 쾌락함이 주는 말초적 감각에 경도되지 말고 미래 세대를 위해 반드시 던져야 할 책임 있는 질문이 사라지는 것을 경계하자는 것”이라고 말한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4-08-10 07:00 조진래 기자

[비바100] "피로야 두통아 가라!"… 코카콜라는 원래 강장제였다

(일러스트=김용수 기자 kys404@viva100.com)‘세렌디피티(Serendipity)는 무언가를 찾다가 실수로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탈리아의 사업가이자 작가인 저자는 이 책에서 ‘우연한 실수’로 생긴 ‘위대한 발명’에 관해 소개한다. 코카콜라, 커피, 샴페인 등 ‘우연’이 창조해 낸 48가지 성공 스토리가 흥미롭다. 특히 당초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만들어낸, 발명인들 특유의 집중력과 혜안, 창의력이 놀랍다.세렌디피티|오스카 파리네티|레몬한스푼 ◇ 약에서 천상의 음료로 ‘코카콜라’(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코카콜라는 원래 두통과 피로 치료에 탁월한 시럽으로 개발되었다. 애틀랜타의 약사였던 존 스티스 펨버턴이 1886년 5월 8일에 ‘와인 코카’ 제조법을 완성했다. 효과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맛이 있었다. 한 잔에 5센트를 받고 팔기 시작했다. 알코올을 못 받아들이는 이들을 위해 건강에 좋다고 알려진 코카 잎과 콜라 너트 추출물에 탄산을 첨가한 것이 ‘신의 한 수’ 였다.그의 회계 담당자가 두 재료의 이름을 합치고 두 단어의 첫 자를 따 두 개의 C를 대문자로 표기해 오늘날의 상표가 만들어졌다. 팸버턴은 1888년 죽기 직전에 코카콜라 제조법과 상표 등을 2300 달러에 한 사업가에게 팔았고, 이후 다른 세 명의 사업가가 코카콜라 병입 및 판매의 독점권을 단돈 1달러에 사 지금 모양의 코카콜라가 탄생하게 되었다.◇ 악마의 검은 물로 배척받던 ‘커피’(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에티오피아 남서쪽 고지대 ‘카파’ 고원에서 염소를 방목하던 ‘칼디’라는 양치기가 있었다. 그는 ‘우연히’ 염소들이 붉은 베리를 먹는 것을 보고는, 이를 갈아 가루로 만든 뒤 뜨거운 물과 섞어 먹어보았다. 이것이 전설로 전해오는 역사상 첫 커피다. 이후 1300년대에 아시아와 페르시아,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예맨에 도착한 이후 전 세계로 확산되는 분수령을 맞는다.처음 이슬람 권에서 커피는 ‘선지자의 검은 와인’이라 불렸다. 예맨의 항구도시 ‘모카’는 최초이자 최고의 커피 생산지이자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는 ‘아라비카’의 주 생산지이자 커피의 수출기지가 된다. 유럽에선 ‘무슬림의 사악한 검은 물’이라며 한 때 배척당했으나 16세기 후반에 교황이 커피 맛과 향에 매료되면서 유럽 각지로 퍼져가게 된다.◇ 몽골인 죽이려다 역효과낸 ‘요거트’(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요거트는 발효에서 파생되어 우연히 탄생한 특별한 제품이다. 오랫동안 이를 즐겨 먹어 온 몽골의 전설에서 유래했다. 칭기스칸의 병사 중 한 명이 긴 사막을 횡단하다 지쳐 한 마을에 들렀다가 적군을 만났다. 적군은 병사의 물병에 우유를 채워주며 친구인 척 위기를 넘기려 했다. 그는 더운 날씨에 우유가 상해 병사가 중독될 것을 기대한 것이었다.하지만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우유가 발효되기 시작했고, 병사는 원시적인 형태의 이 요거트 덕분에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를 계기로 징기스칸은 요거트의 힘을 확신하게 되었고 직접 모든 병사들에게 요거트를 먹으라고 독려했다고 한다. 몽골 사람들은 요거트가 힘뿐만 아니라 아름다움까지 준다고 믿었다.◇ 손님 골탕 먹이려다 대박 낸 ‘감자튀김’(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이탈리아에서 ‘파타티네 프리페’는 프랜치 프라이 혹은 감자 칩이나 감자 크리스프를 의미한다. 감자는 유럽에 도입된 후로도 18세기까지는 애용되지 않았다. 익히면 별미인 감자를 생으로 먹었기 때문이다. 감자 칩이 처음 등장한 것은 1700년대 중반이었다. 노점상 중에 누군가 감자 슬라이스를 끓는 통에 넣어 익힐 생각을 한 것이다.감자를 엷게 저며서 튀겨 포장한 감자 크리스프는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조지 크럼이라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요리사가 감자튀김을 맛 없다고 계속 되돌려 보내는 손님을 골탕먹이기 위해, 감자를 아주 얇게 썰어 튀김기에 넣고 소금을 듬뿍 뿌려 갖다 준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대박을 쳤다. 감자 칩의 탄생 배경이다.◇ 부자의 전유물서 빈자들의 향신료로 바뀐 ‘고추’(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고추는 원래 가난한 사람들의 향신료였다. 9000여 년전 멕시코와 페루에서 시작해 5000년 전부터 재배가 시작되었다. 아즈텍과 잉카, 마야 사람들에게 고추는 신성한 식물이었다. 화폐로 사용되기까지 했다. 1492년에 콜롬버스가 맛에 반해 스페인으로 가져간 특산품 중 하나가 고추였다. 유럽의 상류층 귀족들은 즉각 고추의 마력에 빠졌다.하지만 그들은 이내 화분에 씨앗 몇 개만 심어도 고추가 번성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런 쉬운 식물을 비싸게 대량 수입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자존심 강한 일부 부유층은 아예 부엌에서 고추를 금지시키기도 했다. 이후 고추는 가난한 사람들의 식재료가 되었고, 지금은 그 종류만 3000종에 이를 만큼 소금 다음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조미료가 되었다.◇ 사회적 평등의 상징 ‘콘·막대 아이스크림’(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수 세기 전 로마제국 귀족들은 눈과 꿀, 과일을 사용해 ‘젤라또’를 만들어 먹었다. 이후 피렌체 귀족들이 우유·버터와 달걀을 추가했고, 파리에서 초콜릿 아이스크림이 만들어진다. 당시엔 부자들의 특식이었다. 하지마 19세기 말에 작은 핫프레이트에 구워낸 웨이퍼가 출현하면서 큰 전기를 맞는다. 누군가가 이를 원통형으로 만들 생각을 했고, 아이스크림 콘이 탄생했다.막대 아이스크림은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 살던 프랭크 에퍼슨이라는 11세 소년이 만들었다. 1905년 겨울에 컵에 든 물과 소다를 작은 막대로 젓다가 깜박 잊고 있다가 순식간에 막대 아이스크림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이동하면서 먹을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그는 이 발명품을 1923년에 특허출원하면서 ‘팝시클’이라고 이름 붙였다.◇ 끓인 과일과 식초의 만남 ‘발사믹’(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발사믹’은 과일을 끓여서 얻은 시럽 ‘사바(saba)’가 자연발효해 만들어진다. 과일을 끓이는 것은 수 천년이 되었지만 사바와 식초를 섞으면 달콤 소스는 물론 훌륭한 보존재가 된다는 사실은 유연히 발견되었다. 훌륭한 발사믹 식초를 만들려면 온도가 최고 50도까지 올라야 하고, 오랜 시간동안 점점 줄어드는 용량에 맞춰 다양한 크기의 통들이 필요했다.‘발사믹’ 식초의 역사에는 나폴레옹이 등장한다. 그는 1805년 모데나에서 공작들의 웅장한 식초 저장고를 철거케 하고 지역의 부유한 가문들에게 팔게 했다. 보다 낮은 사회계층으로 발사믹이 확산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이어 150여 년 전에 제조법이 한 발사믹 전문가의 편지를 통해 처음 밝혀지면서 대중화 시대를 맞게 된다.◇ 옥수수 스프 실패로 탄생한 ‘켈로그 콘플레이크’(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1894년 미시간주 한 요양소의 의사 겸 관리자였던 존 켈로그는 동생인 윌과 함께 환자들을 위한 옥수수 스프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실수로 옥수수가 딱딱해져 버렸고, 부서진 다량의 익힌 옥수수 조각들만 남게 되었다. 형제는 이를 불에 구워보았고, 이 ‘플레이크’를 따뜻한 우유가 담긴 큰 컵에 넣어 환자들에게 먹여 보았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동생은 이 제품의 미래를 확신했다. 당장 형에게 특허를 내고 대량판매하자고 설득했다. 하지만 형은 반대했고, 윌은 콘플레이크를 만드는 ‘켈로그’라는 회사를 만들고, 설탕을 추가한 제품으로 특허출원을 했다. 형에게는 50%의 회사 지분을 제안했지만, 형은 이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 갔다. 결국 동생의 승리로 소송은 끝났고, 형제는 죽을 때 까지 화해하지 않았다.◇ 와인의 치명적 결함에서 탄생한 ‘샴페인’(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샴페인도 일련의 사고들이 탄생했다. 프랑스 최북단의 상파뉴는 ‘테루아(terroir)’ 지역이다. 토양과 기후, 노하우 등 좋은 와인의 삼박자를 갖춘 곳이다. 4000만 년에서 8000만 년 전 해양 생물이 퇴적하면서 형성된 백색 석회암이 와인에 독특한 성격을 부여한다. 해양과 대륙의 경계에서 여름이 짧고 뜨거워 포도가 늦게 익고 수확도 늦어진다.그런데 당시 와인에는 해동되자마자 또 한번 발효를 일으킬 수 있는 잔류 설탕과 효모가 종증 들어 있었다. 오래된 17세기 지하 저장소의 통에서 부분적으로 발효된 와인이 봄이나 여름에 온도 상승과 함께 이중 발효가 이뤄졌다. 이중 발효는 수 백년 동안 ‘결함’으로 간주되었지만 병 안에서 일어난 거품의 결과물은 ‘샴페인’이라는 이름으로 큰 인기를 끌게 된다.◇ 불탄 맥아로 대히트를 친 ‘기네스’(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아일랜드의 명물 기네스는 흑맥주로, 가벼운 크림 거품과 강렬한 맛이 특징이다. 설립자이자 양조 장인이던 아서 기네스가 1759년에 더블린에서 양조장을 만들었는데, 그의 창고 중 한 곳에서 화재가 발생해 보관중이던 맥아의 일부가 불에 타버렸다. 의도치 않게 로스팅 된 맥아를 이용해 즉흥적으로 만들어 본 것이 기네스의 시작이었다.찰스 2세가 불에 칸 맥아로 만든 맥주를 항만 노동자들에게 공짜로 제공하라고 명령하면서 기네스는 대중의 맥주가 된다. 기네스는 1941년에 세계 최대의 양조장을 확보했고, 오늘날에는 연간 20억 파인트의 맥주를 판매한다. 현재 기네스 그룹은 전 세계에 약 50개의 공장을 보유중이다.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2024-08-03 07:00 조진래 기자

[비바100] 노동력 고갈사회 온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일도 안하고 구직 활동도 않는 대졸자가 400만 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통계청 발표가 있었다. 지구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지 모르는 나라 대한민국. 한국의 인구 문제는 당장 노동시장에도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의 미래를 위협하는 심각한 위기에 우리는 직면해 있는 셈이다. 저자는 오랜 연구 경험을 토대로 극심한 인구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처방을 제시한다. ◇ 너무 빠른 인구 감소와 고령화 속도대한민국 인구는 2020년부터 줄기 시작했다. 2050년 경부터 더 빨라지다가 2072년이면 현재의 70%인 3600만 명, 최악의 경우 50%인 3000만 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보다 빨리 인구가 줄 나라는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 둘 뿐이다. 현재 추세라면 65세 이상 인구가 2072년까지 두 배 이상으로 늘어 전체 인구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게 된다. 반면 유소년과 청년은 약 40%로 줄어든다. 인구 고령화는 결국 노동인구 감소로 이어지고 평균적인 생산성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직종 혹은 산업 간 노동수급 불균형을 불러올 수도 있다. 인구 고령화로 수요가 급증할 의료서비스와 돌봄 서비스 분야는 심각한 인력난을 겪을 것으로 우려된다. 현재 한국의 15~64세 경제활동인구의 3분의 2가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OECD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다. 특히 여성과 장년(50~64세)의 참가율이 낮다. 이들이 더 일하면 인구감소로 인한 노동력 감소를 완화할 수 있다. 노동생산성을 두 배로 높이면 노동력이 절반으로 줄어도 크게 우려 안해도 된다. 새 기술로 노동력을 대체하거나 생산성을 높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인구변화, ‘노동인구 절벽’으로 이어질까2023년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현재 3674만 명인 한국의 생산연령인구는 2072년이면 1658만 명으로 절반이나 줄어든다. 경제활동인구는 2938만 명에서 1635만 명으로 더 크게 줄 전망이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고령층 경제활동인구의 증가다. 65세 이상이 373만 명에서 465만 명으로 늘어 전체 비중도 13%에서 28%까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노동인구의 고학력화도 빨라질 수 밖에 없다. 2022년 현재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약 48%인 대졸자가 2072년에는 67%로 높아질 것으로 예측된다.저자는 “노동인구의 고령화로 생산성이 저하되겠지만, 그것보다는 노동인구의 고학력화로 생산성이 개선되는 효과가 더 클 수 있다”고 나름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그는 생산연령인구는 2022년 수준 대비 2047년에 70%, 2072년에 45%로 감소하겠지만 경제활동인구는 각각 83%와 56%로 유지될 것으로 내다보면서 “이런 속도로는 ‘노동인구 절벽’ 정도는 아닐 것이라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경제활동참여율과 생산성이 유지된다면 향후 20년까지는 현재의 90% 수준이 유지되다가 이후부터 빨라질 것이라 예측했다.◇ 일할 사람이 부족해질까한국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은 북유럽 국가들에 비해 20~30% 포인트 가량 낮고 일본에 비해서도 10% 포인트 낮다. 50~54세의 경우 일본이 90%를 살짝 웃도는 반면 우리는 80% 수준이다. 장년층 남성의 경제활동 참여율도 낮다. 50~54세 때 일본이 95% 수준인데 우리는 85% 안팎이다. 문제는 50대 중반을 넘기면서 노동생산성이 빠르게 감소한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된 일자리’를 떠나기 때문이다. 다른 일자리로 전직할 경우 거의 절반이 더 낮아진 임금을 받고, 4명 중 1명이 20% 이상의 임금 감소를 경험한다.이동성이 낮은 경직된 노동시장도 문제다. 일자리 미스매치가 생산성을 떨어트리는 요인이 된다. 저자는 “여성과 장년의 경제활동참가율이 2022년 일본 수준으로 높아진다면, 노동 투입은 2047년까지도 2022년의 93%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여성과 장년의 경제활동참가율과 생산성이 모두 개선되더라도 2072년의 노동 투입은 2022년의 72%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기술변화가 고용에 미치는 효과는 연령층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인구변화로 노동시장에 어떤 불균형 발생할까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2031년까지 노동공급이 가장 많이 줄어들 산업은 육상운송 및 파이프라인운송업이다. 무려 30만 명을 웃돌 것으로 추정했다. 소매업에서는 20만 명 이상, 음식점 및 주점업과 농림업에서는 10만 명 이상 감소를 예상했다. 반면 부동산업, 공공행정·국방·사회보장·국제기관·외국기관·사회복지서비스업·교육서비스업 등에서는 10만 명 이상 늘 것이라 예상했다. 그는 또 고졸 이하 노동인구가 빠르게 감소하면서 대다수 산업에서 저학력 취업자 수가 급감할 것으로 관측했다.고학력 노동 공급이 가장 많이 줄어들 산업은 연구개발업으로, 3만 명 가량이 줄어들 것으로 분석했다. 고학력 노동공급이 가장 많이 늘어날 산업으로는 부동산업, 도매 및 상품 중개업, 교육서비스업, 공동행정 등을 들었다. 저자는 가장 심각한 노동력 부족이 예상되는 산업으로 사회복지서비스업을 들었다. 2031년까지 약 37만 명이 추가 부족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음식점 및 주점업도 준 전문직을 중심으로 18만 명 이상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했다.◇ 누가 우리를 치료하고 돌볼 것인가저자는 2031년까지 보건업(의료서비스 포함)에서 13만 명 이상의 노동력 부족을 예측했다. 현재 의사 업무량을 유지하려면 2050년까지 2.5만에서 3만 명 의사가 더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의대 정원을 매년 4500명 정도로 늘려야 막을 수 있는 수치다. 소아청소년과는 2040년부터 지망생이 줄며 의사가 부족해지는 반면 고령·만성질환을 다루는 신경(외)과, 외과 등은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했다. 2048년까지 신경과 1270명, 신경외과 1730명, 흉부외과 1080명, 외과 6960명의 의사가 더 필요할 것이라고 추산했다.고령자 돌봄 수요는 2030년대 중반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해 2021년 인구 대비 12.2% 수준이던 것이 2035년까지는 23.4%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영유아 돌봄 규모도 2036년에는 2021년 대비 9% 가량 증가할 것이라 전망했다. 저자는 사회복지서비스 분야에서 2031년까지 약 37만 명의 인력이 부족할 것이라며, 돌봄 종사자들의 처우 개선과 함께 양질의 인력이 충분히 공급될 제도적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터에서 젊은이들이 사라진다저자는 출산율에 반전이 일어나지 않는 한, 25년 안에 35세 미만 경제활동인구가 현재의 절반 아래로, 50년 내에는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 전망했다. 청년 인력 감소로 노동시장에서 세대간 불균형 문제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청년 인력 비중의 급격한 감소는 해당 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에도 부정적이다. 혁신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저자는 “일자리의 질과 성장 잠재력이 더 높은 부문에서 청년 인력 감소가 상대적으로 더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커 경제적 충격이 상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저자는 이런 충격에서 벗어나고 청년들이 전 생애에 걸쳐 최대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하려면 먼저, 교육 제도 개혁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노동시장 수요에 잘 부합하는 인재를 양성해 현재 약 60만 명의 청년이 맡고 있는 역할을 그 절반이나 3분의 1이 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동시장 유연화 개혁도 주문한다. 청년 인력의 공백을 메울 다른 인구집단의 고용확대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노인을 위한 나라, 노인이 없는 사회65세 이상 고령인구는 2070년까지 전체 인구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게 된다. 이들이 노동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거의 30% 수준까지 높아질 전망이다. 앞으로 50년 후에는 대학을 졸업한 55세 이상 장년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하지마 이들 고학력 ‘파워 시니어’의 고용률은 아직 다른 나라들보다 낮다. 고령 노동시장의 경직성 탓이다. 해고와 채용이 자유롭지 못하고 고용방식과 조건이 획일적이라, 기존 일자리를 떠난 장년 인력이 자신에 맞는 일자리를 찾아 재취업하기가 어렵다.저자는 정년 연장의 효과에 고개를 젓는다. 15~20년은 큰 노동력 부족이 예상되지 않는데다, 사회복지서비스 등 극심한 노동력 부족 예상업종 대부분 정년의 의미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청년 인력이 급감하는 부문과 정년 연장으로 장년층 고용이 확대될 산업이 겹치지 않는데다 정년 연장 혜택이 소수 ‘있는 자’에 국한될 수 있으며, 오히려 고령자 간 불평등을 확대할 우려도 있다고 판단한다. 그는 굳이 정년 연장을 추진하려면 취약 계층에 더 집중하고, 고령친화적 환경과 노동조건을 갖춘 좋은 일자리 만들기에 더 애써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인구변화의 미래를 위해저자는 장·단기 노동시장 수급 불균형을 완화하려면 여성과 장년 인력의 경제활동참가율과 생산성 제고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교육과 훈련 시스템을 혁신해 청년 인구의 급격한 감소가 초래할 부문 및 유형 간 노동수급 불균형을 완화시켜 가야 한다고 했다. 노동 시장의 유연화와 노동의 이동성 확대도 강조했다. 국내 노동시장 수요에 맞는 외국인력을 잘 선별해 도입하는 정책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그는 인구변화의 충격을 완화할 노동시장의 변화를 만들어 내려면 ‘사람을 보는 사회, 사람에게 맞추는 사회, 기회를 주는 사회, 그리고 사람을 보호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구 변화에 대한 대응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에 가깝다”며 진정으로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과 국민의 삶을 어렵게 만들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4-07-27 07:00 조진래 기자

[비바100] 한국경제 배 가르는 '상속세'

얼마 전 효성그룹 상속인이 전 재산을 사회환원하겠다고 해 화제를 모았다. 그 이유가 거액의 상속세 때문일 것이란 보도가 뒤를 이어 더욱 주목을 끌었다. 그 만큼 상속세는 부자들에게는 엄청난 부담이다. 상속세폐지 범국민운동본부의 대표인 저자는 상속세가 ‘세금’이기 이전에 ‘형벌’이라 독설을 서슴치 않는다. 상속세는 또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범이라고 비판한다. 낡고 빛바랜 ‘평등’에 대한 막연한 고정관념과 편견이 한국경제를 상속세의 저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고 일갈한다.◇ 상속세는 ‘상속차단세’인가우리나라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다. OECD 회원국 가운데 55%인 일본에 이어 2위다. 그런데 우리는 ‘최대주주 할증제’가 있어 실질 최고세율이 60%로 세계 최고다. 상속세에 가산세를 붙이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그래서 저자는 “한국의 상속세는 ‘상속을 차단하기 위한 형벌’에 가깝다”고 비판한다. 망자의 경제적 성과물을 국가가 합법적으로 약탈하는 ‘상속 차단세’라고 꼬집는다.이보다 더 큰 문제는 상속세 과세표준을 계산하는 방식이라고 지적한다. 일본은 상속받는 사람이 받는 만큼만 부담하는 ‘유산취득세’ 방식인데 반해 우리는 죽은 사람의 재산 전체에 과세하는 ‘유산세’ 방식이라고 비판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유족이 약 12조 원의 상속세를 낸 이유다.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의 유족이 낸 3조 4000억 원에 비해 3배가 넘는다.‘현물’로 상속받고 ‘현금’으로 세금을 내게 하는 상속세 정산 방식도 문제 삼는다. 어디 가서 현금을 구해오거나 주식 또는 집을 팔아야 하니 유족들에겐 엄청난 부담이다. 물납 제도가 있지만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 부동산과 유가증권 가액이 전체 상속재산가액의 50%를 넘어야 하고, 상속세 납부세액이 상속재산가액 중 금융자산 가액을 웃돌아야 한다. 물납 대상에 상장주식이 배제되니 실효성도 적다.저자는 상속세 설계 자체가 처음부터 잘못되었다고 비판한다. 상속받는 재산은 자기 노력 없이 부모 잘 만나 공짜로 얻는 불로소득이니 국가가 좀 뜯어가도 상관없다는 그릇된 인식이 이런 ‘공적 약탈’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공제한도가 약 300억 원에 이르고 공익재단을 통한 기업 승계를 허용하는 미국 등과 달리 우리는 상속과 경영권 승계 자체를 막으려는 취지가 분명하다고 성토한다.◇ 상속세는 결국 징벌세저자는 “상속세는 결국 부와 성공을 일궈낸 사람에게 주어지는 생애 마지막 징벌”이라고 말한다. 평생 열심히 일해 무언가를 남긴 사람이 마지막 가는 길목에서, 국가가 그의 유산을 약탈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상속세 부담을 이기지 못해 홍콩계 사모펀드에 매각된 ‘락앤락’ 등을 예로 들면서 “상속세가 갖는 이런 특유의 폭력성 때문에 국가의 미래가 걱정된다”고 일갈한다.저자는 우리 소득세 최고 구간이 현재 45%인 것을 언급하며 “생전에 45%를 꾸준히 뺏어가던 국가가 죽은 뒤에 60%를 추가로 뺏어가는 셈”이라고 비판한다. 소득세율과 상속세율을 단순 합계한 ‘합산세율’을 따져봐도, 한국의 합산 최고세율은 105%로 일본(100%)보다 높다고 지적한다. 명백한 ‘약탈적 이중과세’라는 것이다.저자는 “상속세는 가정파괴세”라는 독설도 마다 않는다. 가족을 위해 뼈빠지게 일할 동기를 빼앗는 것은 물론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던 세대간 경제력 계승을 가로막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결국 약탈적 상속세는 경제행위 주체들에게 ‘번 돈을 한 푼도 남기지 말고 죽기 전에 다 써버려라’, ‘생전에 쓸 수 있는 돈 이상의 자본축적은 아예 생각도 말라’는 의미”라고 성토한다.저자는 “근대 자본주의의 거대한 기초는 ‘사적 소유’”였다며, 상속세가 그런 소유권의 본질을 위협하고 억압하는 제도라고 날을 세운다. 상속세가 경제행위의 실체인 가족 내부의 경제력 이동을 방해하고, 약탈적인 세율로 유족들이 미실현 자산소득을 현금으로 부담케 함으로써 결국 ‘나누는 세금’이 아니라 ‘빼앗는 세금’이 되어 버렸다고 비판한다.◇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것인가저자는 “상속세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행위”라며 성토한다. 가만히 놓아두면 법인세와 직원들의 소득세, 그리고 경제활동 과정의 부가가치세를 모두 지속적으로 부담해 줄 국가경제의 주요 기반을, 세금 조금 더 걷겠다고 국가가 스스로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위의 배를 가르기 보다는 거위가 낳는 알을 영속적으로 받는 것이 훨씬 현명한 조치라는 주장이다.저자는 기업들의 다양한 상속세 회피 전략이 매우 불가피하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평생 일궈낸 재산의 60%를 갑자기 국가가 가져간다면, 누구나 전력을 다해 세금을 줄이려 다양한 방법을 모색할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얘기다. 그는 “만약 기업가들이 상속 전략에 정신을 팔지 않고 사업 확장에 더 매진했다면, 한국 기업들은 더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저자는 “우리 기업 회장들은 아무 때나 죽을 수도 없는 운명”이라고 꼬집었다. 갑자기 죽으면 경영권이 뿌리째 흔들리기 때문이다. 국내 1위 종자기술 보유기업 ‘농우바이오’는 대주주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1000억 원이 넘는 상속세를 부과받아 결국 회사 매각결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고령의 대주주가 혼자 많은 지분을 가진 회사는 자칫 상속세를 무느라 국가소유가 될 것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문제는 힘 없는 중소기업, 특히 비상장 중소기업이 덤터기를 쓴다는 사실이다. 사전에 승계 전략을 준비 못했다가 대주주 사망으로 경영권을 정부에 빼앗길 수 밖에 없다. 저자는 국가는 상속세를 폐지하고 기업은 옥상옥 지배구조를 청산하는 ‘사회적 대합의’를 제안했다. 이를 통해 보다 투명한 기업 지배구조를 건설하고, 본격적인 밸류 업 시대를 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대간 부의 이전을 막는 또 다른 악법 ‘증여세’저자는 “노노상속이 경제를 망친다”고 일갈한다. 노노상속은 자식 세대가 50~60대가 되서야 노부모에게서 재산을 상속받는 것으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초래한 원인으로 꼽힌다. 민간 재원이 고령층 안에만 머물러 소비 등을 통해 돈이 돌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도 최근 상속 받는 자녀 가운데 50대와 60대가 다수가 되고 있다.저자는 이런 악순환을 끊으려면 생전 증여를 촉진하는 수 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소비성향이 높은 젊은 세대로 소득이전을 강력히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도 증여 장려 정책을 적극 펼쳤다. 2013년부터 교육비에 대해 증여세 비과세 혜택을 부여했고, 2015년부터는 주택 구입이나 결혼출산육아 비용 등에 대해서도 증여세 비과세를 실시 중이다.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증여세 역시 상속세를 회피하는 우회로를 차단하기 위해 만든 차단규제가 되고 있다. 증여세율이 상속세율과 동일하니, 생전에 자식 대로 구매력을 이전하려고 해도 할 수 없다. 민간자본의 대부분을 60대 이상이 소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증여세라는 또 다른 악법이 자본의 세대 간 이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상속세 70%였던 스웨덴의 상속세 폐지 이유기업 오너들은 주가 상승을 바라지 않는다. 상속 국면에서 경영권 승계에 치명적인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상장주식은 대주주 사망일 기준으로 직전 2개월과 직후 2개월의 종가 평균을 기준으로 주식 가액이 산정된다. 주가가 높을수록 상속세 부담이 커지니 악착같이 주가를 끌어내랄 수 밖에 없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한 원인이 상속세에도 있다는 얘기다.대주주들은 많은 배당도 원치 않는다. 주가가 오를 위험이 커 오히려 불리하기 때문이다. 배당을 포함한 금융소득이 연간 2000만 원을 넘으면 금융소득종합과세까지 부과되고, 대주주의 배당 소득에는 49.5%의 고율 세금이 부과된다. 저자는 상속세가 결국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야기해 우리 국민 전체가 손해를 본다고 말한다. 상속세가 폐지되어야 진정한 밸류 업도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한다.저자는 스웨덴 상속세 폐지의 교훈을 강조한다. 1984년까지 스웨덴의 상속세율은 70%로 세계 최고였다. 아스트라 설립자의 부인 사망을 계기로 그녀 소유 부동산과 주식이 매각될 것이란 소문에 주가가 폭락했고, 결국 자녀들은 파산을 선언했다. 이에 유족은 물론 다른 창업주 가문들의 국외 탈출 러시가 이뤄졌다. 결국 스웨덴은 2005년에 상속세와 증여세를 폐지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상속세 폐지운동의 방향스웨덴은 상속세 폐지 당시 이미 30%까지 상속세율이 낮아진 상태였다. 그런데도 스웨덴 국민들이 상속세 완전 폐지를 택한 것도, 세율 인하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는 강력한 국민적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스웨덴은 대신 양도소득세와 다를 바 없는 ‘자본이득세’를 도입했다. 해당 유산을 양도해 소득이 발생할 때마다 건 별로 소득 규모에 맞춰 세금을 내도록 한 것이다.저자는 상속세 폐지에 앞서 증여세부터 먼저 폐지하자고 제안한다. 상속세 폐지 대신 소득세 혹은 법인세의 최고 세율을 1%포인트 정도 올리는 방안도 제시한다. 일각에서는 스웨덴처럼 양도소득세로 전환할 경우 예·적금이나 현금 등이 과세대상에서 누락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현금 과세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측면도 있고, 누락 규모가 전체 상속자산의 5% 이내라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저자는 상속세 폐지를 위한 자발적 국민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상속세 폐지는 ‘진격의 코스피’를 만들 수 있으며 대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해충돌 구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기업가 정신을 만발하게 만들 수도 있고, 내수를 진작시켜 경제성장을 부추길 수 있을 것이라고 확언한다. 상속세 폐지는 한국경제의 ‘린치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2024-07-20 07:00 조진래 기자

[비바100] 이 모든 게 정말 기후변화 탓일까

난민.(AFP=연합)기후위기를 둘러싼 종말론적 관점이 팽배하다. 곧 지구가 어떻게 될 것 같은 공포감이 만연하다. 이른바 ‘기후주의(Climatism)’가 지구와 인류에게 늘 부정적인 메시지를 준다. 기후주의는 기후변화가 더 많은 가뭄과 기근, 집단이주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이런 양상은 앞으로도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 준다. 기후변화로 인해 전쟁과 이주, 인종차별을 넘어 다른 형태의 ‘파괴’가 잇따를 것이란 암울한 미래상을 던져 준다. 온갖 부정적인 사고의 원인을 기후변화 때문으로 모는 경향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저자는 그러나 기후주의 이론이 100% 맞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기후위기 종말론적 관점에서 벗어나, 보다 긍정적인 미래를 바라보자고 말한다.기후변화가 전부는 아니다|마이크 흄|풀빛◇ ‘기후’에서 ‘기후주의’로저자는 ‘기후주의’를 ‘사회적 경제적 생태학적 현상에 대한 지배적인 설명이 곧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라는 확고한 신념’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이런 신념은 자칫 사회 정의와 정치적 자유, 미래의 번영에 상당한 위험을 초래한다고 경고한다. 그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인간의 이동성과 갈등, 도시 디자인과 교통 계획, 관광, 인구 출신율 등의 문제들이 모두 ‘기후화’로 귀결되었다고 지적했다.실제로 열대 저기압 때문에 생긴 홍수가 단순히 기후변화의 결과로 설명되거나, 방글라데시 일부 해안에서 일어난 바닷물 범람이나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산불도 기후변화 탓으로 단순화되곤 한다. 재난의 지배적인 원인은 ‘자연적인’ 기상 위험 요소인데, 기후주의자들에게 거의 모든 기상 재난은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의 결과로 판독된다.저자는 “신의 행위가 이제 사람의 행위로 대체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앞으로 30년 이상에 걸쳐 기후변화 속도를 제한하는 것은 분명 바람직한 장기 목표지만, 그것을 전쟁을 예방하거나 인종차별주의를 완화하거나 홍수를 억제하기 위한 개입으로 오해해선 안된다”고 강조한다. 모든 것을 기후변화 탓으로 돌리고 싶은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는 기후변화가 유일하고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도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 때로는 ‘진짜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어떤 일을 하는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고 주장한다.폭염.(AFP=연합)◇ ‘지구 온도’라는 숭배물 GDP(국내총생산)가 경제 건전성을 정의하는 지표로 20세기 후반 동안 급부상한 것처럼, ‘지구 온도’는 비교적 최근에 세계 기후의 건전성을 정의하는 지표로 빠르게 자리잡았다. 저자는 그러나 지난 40년 동안 기후변화에 관한 과학연구와 사회과학 연구에서 일어난 수 많은 변화를 설명하면서, 우리가 기후와 기후변화에 책임을 돌리는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인식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저자는 그러면서 어느 새 지구 온도 수치 자체가 ‘숭배물’이 되어 버렸다고 꼬집는다. 마치 기후가 인간의 미래를 결정하는 유일한 조건인 것처럼, 미래를 기후과학 예측을 통해서만 상상하는 이른바 ‘기후 환원주의’ 사고 방식이 팽배해 졌다며, 그 결함과 위험성을 제대로 인식할 것을 당부했다.그는 “기후변화가 어느 새 완전한 이념으로 변신해 ‘기후주의’를 만들어 냈다”고 비판하면서 “이것은 이제 인종차별주의 만큼이나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경고했다.홍수.(AFP=연합)◇ 왜 과학마저 기후주의에 빠지나저자는 “사실상 금융 부문을 포함해 모든 분야에서 비현실적인 배출 시나리오가 제도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면서 “이것이 기후주의 이념이 쉽게 빠지는 위험”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지난 10년 간 많은 시나리오들이 미래 기후 변화 가능성을 과대평가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그동안 연구자들이 널리 활용해 온 RCP(대표농도경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이 기준에 따르면 가장 보수적인 시나리오는 미래 지구 온도가 섭씨 2도(RCP 2.6) 이래로 상승한다는 것이고, 최악의 시나리오는 석탄 연소가 거의 줄지 않아 21세기 말경 섭씨 4도 또는 5도(RCP 8.5) 수준으로 더 온난화해 지는 것이다. 저자는 현재 무의식적으로 RCP 8.5가 기준사례로 적용되고 있다며 “실제 이런 시나리오가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단언한다.저자는 기후 과학이 미래 기후 영향을 과도하게 높게 예측하는 편향을 보이면서 의도치 않게 기후주의 이데올로기를 지탱하는 도구가 되고, 결국 잠재적으로 기후 정책을 잘못 이끄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한다. 과학자들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극적인 결과를 제시하고 대부분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기후변화의 영향 가운데 부정적인 것 들만 강조해선 안된다는 주장이다.가장 위험한 사례는 ‘손 쓸 수 없는 시점까지 겨우 ( )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식의 왜곡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는 “기후과학이 기후주의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려면, 대중의 도전과 정밀 조사, 관리감독에 대한 열린 태도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기후주의가 표현하는 ‘종말’은 허리케인, 산불, 홍수. 가뭄, 얼음 폭풍과 같은 극적이고 강력한 서사의 기후재난 요소들로 설명되기에 더더욱 사람들을 이끌리게 만든다. 그래서 저자는 “기후주의는 우리가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방식에 색을 입히는 색안경과 같다”면서 “기후주의 이념 때문에 기후과학이 왜곡되어선 안될 것”이라고 강조한다.산불.(EPA=연합)◇ 기후주의의 다섯 가지 위험 저자는 ‘기후주의가 위험한 다섯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첫째, 기후주의는 항상 ‘환경결정론’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태의 원인을 지나치게 단순화함으로써 수 많은 다른 요인들이 배제된다는 얘기다. 둘째, 추상적인 특정 수치 목표가 언제까지는 달성되어야 한다는 주장 탓에, 위험천만한 ‘시간 부족 담론’이 만들어 진다. 시간이 없다니 서둘러야 하고 결국 단기적 사고가 팽배해질 수 밖에 없다.셋째, 기후변화의 비 정치화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켜 자유와 평등, 다원주의 같은 중요한 정치적 가치를 공공 정치의 바깥으로 밀어낼 수 있다. 넷째, 기후주의 안에 도사리고 있는 비 자유적, 반 민주적 충동을 부채질할 위험이 있다. 마지막으로, 기후주의의 근시안적인 세계관 때문에 비뚤어진 결과를 초래하는 일이 잦아질 수 있다.저자는 “좁은 시야로 만든 기후 관련 정책 목표들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일이 그릇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과학과 사회과학이 무비판적으로 기후주의에 빠져 들어선 안될 것”이라고 거듭 경고했다.가뭄.(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기후주의의 대안은 무엇인가저자는 “기후변화를 막는다는 하나의 정책 목표에 집착하는 바람에, 기후주의 이념은 더 광범위하고 다양한 복지 목표와 윤리적 의무를 주목하는데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2015년 12월 채택된 파리기후협약에 대해서도 “특정 수치 범위 내로 지구 온도를 조절하겠다는 목표가 광범위한 복지에 대한 열망을 억누르는 결과를 낳았다”며 아쉬워했다.저자는 이에 기후주의의 극단적 과잉을 해독할 방안들을 제시한다. 과학적 불확실성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시한부주의를 완화하고, 겸손의 기술을 장려하고, 가치의 다원성을 인정하고, 다원적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주의가 가진 ‘과한 자신감’과 특정 숫자에 대한 ‘맹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후변화의 상상 속에 자리한 ‘벼랑 끝’에서 추락할 것이란 두려움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그는 “미래의 모든 복합적인 돌발 상황을 관리할 전략적 기획 능력에 한계가 존재한다”면서 사회생태적 복지 성과를 나타내는 전 세계를 범위로 한 지표를 통제하려 애쓰기 보다는, 그런 복지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정책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기후주의의 문제는 지구 온도를 다른 모든 목표보다 우선시하는 까닭에 절충안을 찾는 일이 방해받는다는 사실”이라고 꼬집었다.저자는 심지어 그런 절충안을 논하는 것조차 패배주의적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잘못된 환경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기후주의의 추진력이 바뀌어야 한다”면서 “‘지속가능 발전목표’ 들을 달성하는 것을 최고 목표로 하면서, 그것이 ‘지구온난화’라는 맥락을 인식하는 가운데 추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저출산.(연합)◇ 그래도 계속되는 비판들저자는 여전히 기후주의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논거들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기후과학이 헛된 공포를 조장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 “과학적 주장을 신중하게 판독하고 비판적으로 따져야 하며 오로지 잠정적으로만 수긍해야 한다”고 맞섰다. 기후변화는 실존적 위험이라는 주장에 대해선 “기후변화로 생기는 위기는 심각하지만, 기후변화가 인간 생명을 싹 쓸어버리지는 않을 것이며 지구상 모든 생명은 말 할 것도 없다”고 맞받았다.저자는 “기후변화를 막는 일이 ‘최우선 과제’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자”고 독려했다. 빈곤 퇴치와 기아 근절, 양질의 교육, 저렴하고 깨끗한 에너지 확보, 양질의 일자리와 경제 성장 같은 ‘지속가능한’ 발전목표에 좀더 집중하자는 것이다. 특히 기후주의 이념을 자본주의 이념의 대척점으로 놓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경고했다.저자는 “과학이 정치적인 이념의 무기로 전락해서도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우리가 어떤 주장을 한 사람이 기후 공포조장주의자나 기후 반대파 또는 그 밖의 무엇이 되었든, 어떤 딱지가 붙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입장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끝을 맺었다.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2024-07-13 07:00 조진래 기자

[비바100] 성찰 모르는 대한민국, 60년간 무얼 쌓았나

김진표 전 국회의장이 박정희 정권부터 윤석열 정권까지 10개 정권의 공과를 분석 평가한 책이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의 의혹 제기 내용이 담겨, 최근 큰 주목을 끌고 있다. 하지만 그 이슈에 묻혀 저자가 정작 강조하려 했던 ‘축적이 필요한 대한민국’, ‘팬덤보다 진정한 정치가 필요한 대한민국’에 관한 관심도가 많이 떨어져 보여 아쉽다. 저자는 “지금 이 나라는 무엇을 축적해 왔는지 깊이 성찰할 때”라고 말한다대한민국은 무엇을 축적해왔는가|김진표|사이드웨이 ◇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준 박정희1961년 군사 쿠테타가 없었더라도 지금 같은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을까? 저자는 3선 개헌, 인권 유린, 부정부패 같은 과(過)에도 불구하고, 척박했던 시기에 국민들에게 더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 준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이라고 말했다. ‘확인사살 행정’과 ‘군대식 신상필벌’ 조직관리도 높게 평가했다. 특히 해외에서 경제·과학 인재들을 조국으로 불러들여 경제를 재건한 것을 높이 샀다.실정(失政)으로는 교육과 주택문제를 들었다. 거의 완전히 시장에 맡긴 탓이라고 했다. 중학 입시를 없앴지만 고교·대학 입시를 그대로 둬 사교육비 수요만 늘렸다고 혹평했다. 공공임대주택을 포함해 수급 상황을 안 따지고 분양 위주로 부동산 정책을 추진해 ‘투기판’을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우국충정에 쿠테타를 일으켰으나, 어느 순간 스스로를 국가 자체로 일체화한 것이 몰락을 불렀다고 평가했다.1987년 민정당 대통령후보 지명대회에서 선출된 노태우 후보지명자와 전두환 당시 대통령. (사진=연합)◇ ‘테크노크라트 시대’를 연 전두환저자는 전두환 대통령이 뛰어난 경제관료들에게 전권을 맡겨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은 “Single is beautiful”이라며 물가와 금리를 한 자릿수로 잡았고, 금융실명제를 건의하고, 공정거래제도와 중소·벤처기업 육성 정책을 펼쳤다. 저자는 “현재 대한민국 경제정책의 밑바탕은 그의 손에서 다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 국민연금 도입도 사공일 경제수석의 진언이 받아들여져 노태우 정권부터 실시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이렇게 ‘일이 되게 만드는’ 관료나 정치인이 사라지고 있다”고 개탄했다. 통치자에도 진언하고 욕먹을 각오로 나라를 위해 일하는 이들은 어디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지금은 역사의식을 가진 유능한 테크노크라트가 필요한데, 사회에서는 이들에 대한 반감이 주류적 정서가 되어 있다”며 아쉬워했다.◇ 정치적으로 가장 저평가된 노태우저자가 역대 국회의장들에게 ‘최고의 의회주의자’를 물었다. 1위가 김대중, 2위가 노태우였다. 노 대통령의 최대 업적은 ‘국민통합’이었다. 실제로 그는 야당과 끊임없이 대화했다. 자신의 역할이 ‘민주사회로의 안정적인 이양’임을 잘 이해했다. 저자는 “‘전부’가 아니면 ‘전무’의 정치가 판치는 요즘 여의도에서, 정치인의 책무가 무엇인지를 알려준 대통령이었다”고 말했다.노 정권은 ‘가장 진보적인 경제정책을 추진한 보수정권’이라는 평도 듣는다. 토지공개념 3법(토지초과이득세, 택지소유상한제, 개발부담금제)과 함께 의료보험제도 전 국민 확대, 지역인재 의무채용에 최저임금제도 신설했다. 그래서 ‘가장 저평가된 대통령’이란 평가가 나온다. 저자는 “어쩌면 우리는 노태우를 거치면서 비로소 이해관계자들이 타협·양보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야당 정치 지도자 시절의 김대중(왼쪽)·김영삼 전 대통령.◇ 개혁… 하지만 기득권을 못 깬 김영삼저자는 김영삼 대통령이 ‘단순하고 명쾌한, 큰 승부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취임 첫해부터 군대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척결하고, 고위공직자 재산공개와 금융실명제 단행 등 굵직한 개혁을 이끌었다. 금융실명제의 경우, 제도 도입 과정에서 저자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 철저한 보안이 요구되었던 탓에 안양 일대에서 큰 부자로 손꼽히던 장인도 실명제로 인해 큰 손해를 입었다고 했다.저자는 다만, 삼당 합당 과정에서 보여준 행보는 어딘가 미진하고 아쉬움 점이 있다고 토로했다. 금융실명제로 궁극적으로 달성하려고 했던 기업과 금융의 유착 단절, 부실 대기업 구조조정, 재벌과 경제의 개혁 등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것에도 많은 아쉬움을 내보였다. 기존의 기득권을 깨기에는 대통령의 의지와 역량, 비전이 여전히 미흡했었다고 총평했다. 그렇게 IMF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김대중… 가장 존경하는, 준비된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은 후보시절에 IMF와의 재협상을 요구했다. 멀쩡한 기업들이 고금리에 쓰러지고 서민들 고통이 극심할 것을 예견했다. 집권 후 재협상은 이뤄졌고, 이후 그는 4대 개혁을 밀어 부쳤다. 자유 경쟁과 책임 경영의 원칙 아래 금융과 기업에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금융권 회생을 위해 공적자금을 지원했고, 재벌의 지배구조 개혁을 다그쳤다. 가장 고통스러운 노동개혁도 이뤄냈다.그는 적재적소 실용인사로 이런 위기와 난제들을 극복해 갔다. 유·불리가 아니라 옳고 그름이 기준이었다.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으로 국민보다 반 보 앞서 간다’는 원칙을 실천했다. 저자는 김대중을 ‘멀리 크게 보면서도 세세한 것까지 챙기는’ 원모심려(遠謀深慮)의 리더십이라고 평가했다. “우리가 가져본 대통령 중 최고였다”며 가장 준비된, 가장 특별한 대통령이었다고 극찬했다.집권 당시 청와대 집무실에서 노무현 대통령(왼쪽)과 문재인 비서실장이 함께 기념촬영한 모습.◇ 반대편 생각도 수용한 ‘탈 권위’ 노무현저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장점을 ‘반대 생각까지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라고 말했다. 청와대 안에서도 수평적 소통이 주를 이뤘고, 상명하복 대신 토론과 논쟁이 활발했다고 전했다. 수평적 탈 권위의 리더십, 토론의 리더십을 제대로 실천한 사람은 우리 정치사에 노무현이 유일하다고 단언했다. ‘존경받는 김대중’의 리더십과 ‘사랑받는 노무현’의 리더십이 조화되는 대통령을 아쉬워했다. 저자는 ‘참여정부는 실패한 정부’라든가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했다’는 세간의 평가를 부정했다. 시장과 경제에 대한 무지한 시각이라고 꼬집었다. 다만, ‘기자실 대못’으로 대표되는 언론과의 전쟁, 수급을 통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던 부동산 정책은 아쉽다고 토로했다. 세금으로 단박에 부동산 문제를 풀려했던 당시 정부에 공급 위주 정책의 필요성을 더 강하게 주장하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말했다.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최고의 공무원’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전 국회의장 김진표. 최근 이 책의 극히 일부인 윤석열 대통령의 이태원 참사만 부각되는 느낌.◇ 정치인의 결단이 아쉬웠던 문재인저자는 문재인 정권의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을 맡아 ‘국민이 주인인 정부’, ‘더불어 잘사는 경제’ 등 5대 국정 목표를 제시했다. 이후 많은 정책이 로드맵대로 시행됐지만, 보육과 교육 분야에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방대학 경쟁력 이슈가 여전하고 어린이집 대란은 계속 되풀이되고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원전 폐기 정책도 “신재생 에너지 20% 달성을 전제로 한 것인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전했다.저자는 문 정부가 문화적 성취나 코로나 방역 등에서 성과를 냈지만, 피아를 구별하는 정치라는 ‘치명적 실수’를 했다고 비판했다. 조국 사태처럼 양보 없는 대결로 ‘통합의 정치’에 실패했다며 아쉬워했다. 부동산 정책 역시 너무 이념적으로 접근한데다 공급정책에서 실기(失期)해 집값을 폭등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법조인의 원칙이 아닌 정치인의 결단을 내렸다면 어땠을까”라고 물었다.(연합)◇ 사전 검증의 필요성을 일깨워준 이명박·박근혜 이명박 대통령이 정동영 후보를 압도하고 대통령이 된 것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도 작용했다. 하지만 시대는 이미 그 때와 한참 달라져 있었다. 정치적인 것에 매달리기 보다는 철저히 실용적, 실리적인 것에 몰입했던 이명박은 그래서 무리하게 정책을 강요하는 일도 잦았다고 저자는 회고했다. 다만, 그런 실리적인 정권 운영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한 것은, 그의 실리주의가 ‘공익’ 보다는 ‘사익’에 치중되었다는 협의가 짙었기 때문이라고 했다.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와 ‘탄핵’이라는 큰 화두를 남겼다. 저자는 심각한 부와 기회의 불평등 속에서 ‘경제민주화’는 매우 훌륭한 정책적 기획이었으나 “빚내서 집사라”는 ‘초이노믹스’는 가계부채 급증을 부른 실패한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여야 모두 당 대표 일극의 권력구도로, 오로지 ‘오너’의 의중과 심기에 맞춰 행동하는 우리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했다. 그러면서 “촛불민주주의 같은 직접민주주의의 효능감이 권력에 대한 올바른 감시가 아니라 ‘팬덤’으로 옮겨가고, 그 팬덤이 의회를 좌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연합)◇ “NO”하는 측근이 없는 윤석열저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를 ‘비토의 정치’로 규정했다. 초기에는 개헌과 중대선거구제로의 전환에 긍정적이라 기대가 컸으나 아직 진전이 없다며 의지와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 발생 직후 만난 자리에서 “특정 세력에 의해 유도되고 조작된 사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에 당혹했음을 술회했다. 그러면서 “주변에서 강력하게 ‘NO’라고 진언할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저자는 “의회주의의 본령은, 주어진 제약 조건 아래서 끌어낼 수 있는 최대의 합의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정치’가 사라진 것이 아닌가”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사태를 초래한 가장 큰 원인은 극렬한 진영 갈등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일관성 있는 저출생 대책을 추진하기 위한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출산·보육·주거는 나라가 책임지겠다고 헌법에 못을 박아야 한다고 했다.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2024-07-06 07:00 조진래 기자

[비바100] '은둔형 인싸' 미국은 왜 한일 화해에 목매나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요즘 미국이 많이 흔들린다. 부동의 ‘원 탑’ 국가에서 중국과 러시아, 심지어는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에 흔들리는 모양새다. 이 책은 기자인 저자가 현실의 미국을 이해하기 위한 18가지 질문을 토대로, 미국의 실상을 파헤친 책이다. 저자는 “미국은 알면 알수록 신기한, 이상한 정상국가”라고 표현한다. 고립주의와 관여주의를 오가는 냉탕·온탕 외교 속에서도 강대국 패권을 늘 움켜쥐고 있는 미국의 숨겨진 힘과 치부를 들여다 보자.미국은 왜|이성대|부키◇ ‘정치적 관용’과 ‘표현의 자유’의 전통한국은 정치가 너무 첨예하고 날카롭기에 드라마 등에서 직접적인 묘사가 어렵다. 정당 이름조차 실명을 쓰지 못하니 서사의 현실성도 한참 뒤떨어진다. 하지만 미국은 현실 정치 드라마의 천국이다. 정당 이름은 물론 대놓고 비판하기 일쑤다. 워싱턴의 야구장에서는 역대 대통령의 가면을 씌워 달리기 이벤트까지 열린다. 1등은 늘 초대 대통령 워싱턴이다.워싱턴이 지금까지 추앙을 받는 것은 권력의 정점에서 스스로 물러난 덕분이다. 대통령제라는 최신 제도를 도입하고도 장기독재를 우려해 ‘4년씩 두 번, 최대 8년’이라는 대통령 임기의 전통을 만들어 냄으로써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졌다. 덕분에 미국에서는 민주당 혹은 공화당 지지자들이 상대의 정치 성향을 인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정치적 관용과 표현의 자유 전통이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미국의 특이한 선거 제도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투표에서 이기고도 정작 개표에서 지는 일이 흔하다. 일반 유권자가 뽑은 선거인단이 따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간선제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제 국가 중 유일하게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지 않는다. 개별 주에선 주지사부터 대법관, 검사장까지 모두 직접 뽑는 것과 대조적이다. 가장 민주적인 국가인 동시에 가장 비효율적·비민주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건국 초기엔 기술적 문제 탓도 있었지만, 지금은 제도를 바꿀 의지가 거의 없다. 간선제와 승자독식제가 결합된 복잡한 구조에서, 자칫 인구가 적은 주의 주권이 불이익을 당해선 안된다는 정신이 더 강하다. 때문에 대선 기간 중 50개 주 전체를 도는 게 아니라, 자당의 텃밭인 몇 주만 집중 공략하는 게 흔하다. 다만, 우편 투표에 관한 찬반 논란은 여전하다. ◇ 10달러 지폐 주인공이 ‘해밀턴’인 이유뮤지컬 ‘해밀턴’ 공연장면. (사진출처=해밀턴 홈페이지)미국에는 1달러부터 100달러까지 일곱 종류의 지폐가 있는데, 대통령이 아닌 사람이 딱 두 명 인쇄돼 있다. 100달러의 벤저민 프랭클린과 10달러의 알렉산더 해밀턴이다. 프랭클린은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사상가·정치인이자 피뢰침을 발명한 과학자로 ‘최초의 미국인’이라 추앙하는 인물이다. 해밀턴은 3대 대통령 제퍼슨의 재무장관일 뿐이지만, 미국 경제력을 키운 8할의 공로자라는 평가를 받는다.해밀턴은 농업국가가 될 뻔 했던 미국을 자본주의 나라로 돌린 장본인이다. 관세를 도입해 재정을 튼실하게 했고, 필라델피아에 중앙은행을 설립했으며, 달러 화폐 도입을 이끌어냈다. 이후 미국은 엄청난 압축성장 속에 ‘자급자족의 나라’가 되었다. 2015년 한 때 흑인 인권 운동가를 10달러 지폐에 넣는 계획이 추진되었지만, 뮤지컬 등에서 엄청난 그의 공적이 재 조명되면서 백지화되기도 했다.◇ ‘앤드루 잭슨’이 되고픈 트럼프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9일(현지시간)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선셋 파크에서 유세하고 있다.(EPA=연합)오바마가 만든 ‘부자 대 노동자’의 계급 구도를 트럼프는 ‘이민자 대 노동자’로 바꿔 집권에 성공했다. 트럼프는 엘리트 정치를 끝내고 서민 민주주의 시대를 연 인물로 평가받는 제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과 자신을 자주 비교한다. 잭슨은 좋은 집안과 귀족 계급, 학벌 등을 깨뜨린 새로운 전형의 정치인으로, 기득권 정치에 도전했던 최초의 포퓰리스트로 평가받는 인물이다.그는 고집스럽고 거침없는 언사로 ‘올드 히코리(불의를 못 참거나 굽힐 줄 모르는 사람)’라는 별명을 얻었다. 8년 내내 인기절정이었고, 20달러 지폐의 주인공까지 꿰찼다. 트럼프가 백악관 집무실에 그의 초상화를 건 이유다. 잭슨의 ‘인디언 추방법’처럼, 트럼프는 멕시칸의 이주를 막았다. 트럼프는 소수 극렬 지지층에 의존한 독특한 정치로 대통령이 됐고 이제 재선을 노리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배신할 줄 몰랐다?한 때 미국은 ‘차이메리카’라는 장밋빛 신세계를 꿈꾸었다. 중국을 포용해 자유주의 질서 안으로 편입시키려는 ‘팍스 아메리카나’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중국이 동화될 것이란 근거 없는 자신감에 미국이 부풀어 있을 때, 중국은 가열차게 미국을 따라잡는 ‘중국몽’을 꾸고 있었다. 중국 견제를 게을리 하고, 천안문 사태까지 눈 감아 준 결과가 지금의 ‘막강 중국’이고, 중국의 ‘도광양회’ 결과였다.저자는 “미국이 직면한 (중국에 대한) 모욕감은 자업자득”이라고 말한다. 오마바 정부 때 뒤늦게 아시아로의 유턴을 선언했지만 너무 늦었다. 중국에 요란하게 선전포고만 했지, 정작 실질적인 압박 조치도 없었다. 중국의 빗장을 열었던 닉슨 전 대통령이 말년에 “우리가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고 했고, 트럼프 때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결국 “우리가 중국이라는 크랑켄슈타인을 낳았다”고 개탄했다.◇ 툭하면 ‘고립’ 유혹에 빠지는 미국2차 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 외교는 ‘은둔형’에 가까왔다.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불가근 불가원’을 강조한 탓도 있지만, 1941년 진주만 습격 전까지 미국은 가능한 외부 개입을 삼갔다. 이후론 ‘고립’과 ‘관여’를 반복했다. 더 이상 세계가 안전하지 않다 싶을 때만 나섰다. 미국이 ‘반장’ 역할을 주저하는 사이에 세계는 힘의 진공 상태를 맞았다. 독일의 파시즘과 일본의 군국주의가 그렇게 탄생했다.고립주의의 한계를 깨달은 미국은 이후 적극적인 관여정책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언젠가 위험이 될 리스크를 미리 제거하는 데 주력했다. 저자는 “미국이 1차 대전 직후 고립주의를 포기했다면 2차 대전도 일어나지 않았고, 러시아가 아직 소련이 되기 전 미국이 관여 기조로 돌았다면 냉전은 탄생하지 않았을 지 모른다”고 말한다.◇ 중동에서 갈팡질팡한 미국의 결과중동의 앙숙,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가 2023년 3월 10일 중국의 중재로 관계 정상화에 전격 합의했다. (사진=연합)2023년 3월 10일, 이슬람 패권을 놓고 꾸준히 대립해 온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의 맹주 이란이 중국의 중재로 베이징에서 관계 정상화에 깜짝 합의했다. 이처럼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는 게 현실의 중동이다. 이 곳에서 ‘큰 형님’ 역할을 하던 미국이 떠나면서 생긴 일이다. 1979년 동맹이던 이란이 이슬람 혁명으로 하루아침에 반미 국가로 돌변한 게 그 시작이었다.미국은 이란 견제를 위해 후세인의 이라크를 지원했고 이후 걸프전, 9·11 테러, 아프가니스탄 전쟁, IS의 출현까지 복잡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전통의 친미국가 사우디도 홀로 서기로 미국과 멀어지고 있다. 심지어 중국과 석유대금을 위안화로 결제하기로 합의해 미국을 애태우고 있다. 위기감을 느낀 미국은 결국 중동으로 다시 러브 콜을 보내고 있지만 한번 틀어진 관계를 정성화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 때문에 파국 위기 ‘나토(NATO)’지난해 4월 베이징에서 회동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악수하고 있는 모습.(연합)나토는 북대서양조약기구라는 이름 때문에 지역적 한계가 분명했다. 그런데 미-소 냉전이 끝나자 러시아가 있는 동쪽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나토의 동진을 러시아 푸틴은 자신에 대한 직접적인 안보 위협이자 새로운 포위 전략으로 간주했다.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동유럽에서 영구적으로 영향력을 박탈하려는 시도로 해석한 것이다.나토는 내심 ‘북대서양’ 대신 ‘북태평양’을 꿈꾸었다. 2022년 6월 스페인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는 그 신호탄이었다. 중국을 러시아와 함께 분명한 도전세력으로 규정했다. 중국도 그런 기운을 간파하고 과거의 적, 러시아와 손을 잡았다. 여기에 미국은 계속 나토에 분담금 증액을 압박하고 있다. 저자는 “나토의 꿈은 러시아나 중국이 아니라 정작 미국 때문에 금이 갈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미국이 ‘한미일 매직’에 꽂힌 이유한미일 3가 공조의 주역들. 윤석열 한국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연합)미국은 중국을 저지할 마지노선 남중국해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한미일 3국 중심의 블록화는 필수다. 과거에는 한일, 한미 관계로 족했지만 이제는 역내 동맹국들의 군사력 통합이 절실하다. 그 솔루션이 ‘격자형’ 안보 틀이다. 일부 거점 동맹국 중심에서 탈피해 ‘쿼드’와 미국-영국-호주 안보동맹 ‘오커스’, 그리고 한·미·일, 미·일·필리핀 3국 회의 등 소그룹별로 중국을 더 촘촘히 견제하는 방식이다.하지만 저자는 한미일 3각 구도로 재편될 경우 미국과 일본의 이익은 분명한 반면 한국의 이익은 불분명하다고 지적한다. 기존의 한미동맹체제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3국 안보협력의 실익은 약한 반면 자칫 우리 의사와 무관하게 미중 갈등에 휘말려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반도에서 한미일은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과거사 문제에 우리 편을 들지 않는 이유지난해 7월 미국 글렌데일에서 열린 소녀상 건립 10주년 기념식. 글렌데일은 해외에서 일본군 위안부 역사를 상징하는 소녀상이 건립된 첫 도시이다.(연합)미국은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일 과거사 문제를 인권문제이자 미국식 자유주의 가치로 접근하면서 우리 입장을 지지했다. 일본과는 거리를 두려는 경향이 뚜렷했다. 그런데 2015년을 전후로 변하기 시작했다. 한일 과거 갈등을 제대로 해결하기 보다는 빠르게 해결하는 데 더 집중했다. 누구 잘못을 따지기 보다 서둘러 화해시키는 데 주력했다. 오바마-바이든 정권에서 한일 문제는 이제 안보 이슈의 하위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다. 중국 견제라는 큰 목표에 몰두한 나머지 이제는 한일을 어떻게든 빨리 화해시켜 아시아 안보의 틀을 서둘러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다. 미국이 오락가락 하는 사이에 가장 손해를 본 것은 바로 일본 옆에 있는 한국이다.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2024-06-29 07:00 조진래 기자

[비바100] 2024서울국제도서전, ‘걸리버 여행기’ 속 완벽한 유토피아 후이늠을 꿈꾸며

2024 서울국제도서전 포스터(사진제공=서울국제도서전)“개최 장소가 지난해까지와 다르다 보니 규모가 줄었나 보다 하는데 물리적인 행사장 면적은 같은 규모입니다. 예산 문제로 저작권 펠로십 같은 프로그램 운영을 못하게 되고 저작권 거래 규모를 늘려잡지 못해 부스나 참가 수가 좀 줄기는 했지만 오히려 관람객들 숫자는 늘었습니다. 걱정이라면 3층에서는 처음이라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가는 적지 않은 관람객들 입장 줄을 어떻게 잘 관리할까죠.”주일우 서울국제도서전 대표의 전언처럼 제66회 서울국제도서전(6월 26~30일 코엑스 C D1 홀) 사전예매 관람객만도 4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현재는 줄어든 예산에 맞춰 줄일 수 있는 데서는 줄이되 관객들을 만나는 일이나 행사는 줄이지 않고 진행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올해는 긴축해 수입을 늘려 가능한 적자를 내지 않는 데 집중하고 있죠. 내년부터는 실제로 부스를 차리지 못하더라도 저작권 거래를 할 수 있는 것들을 훨씬 더 늘려보려고 합니다. 한국 콘텐츠가 가진 매력들을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외국에서 사람들이 올 수 있게 하는 등 대책을 강구 중이죠. ”2024 서울국제도서전 포스터(사진제공=서울국제도서전)다양한 축제를 비롯한 문화이벤트의 지속가능성은 늘 무언가에 발목이 잡히곤 하고 생존의 고민은 깊어진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주최하고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이 후원하는 서울국제도서전 역시 수익금 정산과 관련해 지난해부터 문화체육관광부와 갈등을 빚어오고 있다. 결국 문체부 지원이 일절 없는 도서전을 개최하게 된 데 대해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장도 “걱정한 것에 비해 아직은 순조롭다”고 밝혔다.국내외 출판인들과 작가, 독자 등이 한데 모여 드는 국내 최대 도서 축제에는 19개국 452개사(국내 330, 해외 122)가 참가하고 185명(국내 151, 해외 34)의 작가 및 연사가 참여해 450개 프로그램을 꾸린다.올해 도서전 주제는 ‘후이늠’(Houyhnhnm)이다. 영국작가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의 1726년작 ‘걸리버 여행기’ 제4편에 등장하는 말 종족이다. 걸리버가 네 번째 여행지에서 만난 후이늠은 “질서정연하고 합리적이고 현명하며 정확하게 말하고 공정하게 행동하는”, 거짓말, 불신, 전쟁, 침략, 약탈, 살인, 심술, 무지, 고집, 야비, 잔인, 사악, 교활 등 인간의 부정적인 측면이 전혀 없는 종족이다.주일우 대표는 “우크라이나에서도, 중동에서도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2, 3년씩 이어지고 있고 전쟁을 비롯해 이 사회에 존재하는 위기들을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는 의미에서 ‘걸리버 여행기’의 네 번째 나라를 끌고 왔다”고 밝혔다.“1700년대에 조너선 스위프트가 이성적인 어떤 생물들이 사는 네 번째 나라라면 좀 다른 해법을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하면서 고민했던 데서 착안했습니다. 후이늠의 세상을 만들면 전쟁을 그칠 수 있을까? 유능한 인공지능은 우리 미래에 후이늠이 되어 줄 것인가? 후이늠의 세계가 해법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떤 미래를 그려야 할까? 등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고 싶었습니다.”김연수 작가가 새로 쓴 ‘걸리버 유람기’ 표지(사진제공=서울국제도서전)책을 통해 ‘세계의 비참’을 줄이고 ‘미래의 행복’을 찾는 여정을 떠나고자 하는 의지를 담은 주제에 따른 주제도서는 김연수 작가가 새로 쓰고 강혜숙 작가가 그린 ‘걸리버 유람기’다. 1909년 육당 최남선이 한국 현실에 맞게 쓴 1, 2부 소인국과 거인국 이야기에 3, 4부를 붙여 완성했다.김연수 작가는 “이번 도서전에서 소개하는 ‘걸리버 유람기’는 원작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기 보다는 2024년 한국의 시점에서 다시 쓴 여행기”라며 “걸리버와 홍길동이 만난다는 상상을 했다. 홍길동이 염원하던 이상사회가 ‘걸리버 여행기’의 마지막 부분을 새롭게 바꿀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2024 서울국제도서전 포스터(사진제공=서울국제도서전)“300년이 지난 시점이지만 ‘걸리버 여행기’에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인류의 문제를 보고 있으면 지금의 문제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굉장히 문제적으로 다가왔죠. 지금도 이대로라면 우리 시대에서 세상이 끝날 것이라고 말들을 합니다. 300년 전 조너선 스위프트도 그랬지만 그 절망을 이겨내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세상은 존재하고 있음을 보고 오히려 희망 같은 게 생겼습니다. 우리에게 절망을 이겨내는 힘이 있구나 깨달았죠. 책이라는 존재가 인간이 경험할 수 없는 긴 시간을 경험하게 해줌으로서 협소한 시공간에 갇힌 우리의 시간을 좀 넓게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후이늠’을 주제로 한 ‘걸리버 유람기’, 리미티드 에디션 ‘후이늠-검은 인화지에 남긴 흰 그림자’ 출간을 비롯해 주제 전시 및 강연, 세미나를 진행한다. 더불어 주빈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스포트라이트 컨트리 오만·노르웨이 문화 프로그램 및 강연, 모리 카오루 특별전 ‘신부이야기’, 일러스트레이터스 월 ‘여름의 드로잉’ 그리고 매년 진행하는 ‘BBK 한국에서 가장 좋은 책’과 출판사에서 직접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이 즐비하다 .그렇게 2024 서울국제도서전은 완벽한 절제와 조화 속에 살고 있는 ‘걸리버 여행기’ 속 유토피아 후이늠을 통해 전쟁과 불평등이 지속되고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는 지금에 질문과 고민할 거리를 던진다. 인간인 우리가 한계를 극복하고 좀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이런 존재인 인간의 모습으로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사회·나라·미래를 만들 수 있을까, 좀 덜 바꾸고 더 많이 이해하면서 긴 평화와 생존을 향해 갈 수 있을까…300년 전 조너선 스위프트가 그리고 걸리버가 괴로워하며 고민했던 물음들이 지금 우리 앞에 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6-24 18:30 허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