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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아! 잔혹한 인간" 동물들의 SOS

(사진출처=게티이미지)프랑스의 유명 생태운동가인 저자가 동물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오해와 진실’을 바로잡기 위해 쓴 책이다. 저자는 동물에 대한 우리의 편견이나 우월감을 바로잡고, 그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생물 다양성의 붕괴와 기후 위기 앞에서 동물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행위의 심각성을 깨닫는 것은 ‘윤리’의 문제이자 우리 모두의 ‘생존’의 문제라고 말한다.토끼는 당근을 먹지 않는다|위고 클레망|구름서재◇ 잘못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들우리는 ‘토끼’ 하면 ‘당근’을 떠올린다. 하지만 놀랍게도 토끼는 풀을 먹고 살지, 당근을 먹지 않는다. 누군가 토끼가 땅속에서 튀어나온 당근의 푸른 잎을 먹는 걸 보고 생겨난 오해일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1938년에 시작된 애니메이션 시리즈 벅스 버니에서 토끼가 내내 당근을 갉아먹고 있는 장면이 나왔던 까닭에 그런 오해가 진실로 둔갑한 부분도 있을 수 있다. 이렇게 우리가 동물에 대해 갖는 이미지는 현실과 거의 일치 않는 경우가 많다. 습관적으로 우리는 인간이 아닌 모든 것을 우리보다 열등한 것으로 간주하기 일쑤다. 자연에 대한 인식과 현실 사이에 스스로 ‘거리’를 만들어 간다. 이런 왜곡된 인식은 동물에 대한 무시와 혐오, 부당한 착취와 폭력, 학대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 일쑤다.◇ 인간도 동물이다인간은 자신이 동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유일한 존재다. 그들과 다르고 특별하며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고는 다른 생명체들을 착취하고 파괴하는 행동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저자는 “종의 계층에서 우리가 절대 최상위에 위치할 순 없다”면서 “실제로 우리의 지능이 다른 종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할 근거도 박약하다”고 꼬집는다.동물행동학자 엠마뉘엘 푸이데바는 인간만이 도구를 사용할 줄 안다는 굳은 믿음에 의문을 제기한다. 충격적인 예로 ‘까마귀’를 든다. 까마귀는 자동차가 빨간 신호에 멈추면 물고 있던 딱딱한 견과류를 도로에 떨어트린다.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어 자동차가 지나가면 견과류가 부숴지고, 까마귀는 그제야 기다렸다는 듯이 내려와 잘게 부숴진 먹이를 주워 먹는다.저자는 인간이 ‘본능’을 지배할 수 있기에 동물을 넘어섰다는 믿음에도 메스를 가한다. 동물들 역시 공동이익이나 타 개체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줄 안다고 강조한다. 흡혈박쥐는 굶은 동료에게 삼킨 것의 일부를 토해내 나눠주고, 몽구스는 동료 구출 구조 작전까지 펼친다. 사하라 사막의 개미는 걸음 수를 셀 수 있고 서식지로 돌아가기 위한 궤도를 계산하고 지름길까지 찾는다.인간만이 언어를 사용하고 동료 말을 알아듣는 유일한 동물도 아니다. 니콜라 마테봉은 “모든 동물이 고유한 발성 특성을 가지고 있다”며 “종마다 가진 고유한 의사소통 방식을 모두 ‘언어’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심지어 범고래에게는 고유한 지역 방언도 있다고 한다. 저자는 “우리의 지능으로 다른 지능들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사진출처=게티이미지)◇ 야생동물에게 피난처가 있을까전 세계적으로 하루 2억 마리의 동물이 도축된다. 닭-돼지-양-소의 순이다. 한국에서도 2022년에 분당 2000마리 꼴로 소와 돼지, 닭이 도축되었다. 대부분 몸이 묶인 채 거의 산 채로 죽음을 맞는다. 잔혹하고 허점 투성이인 도살 규정이 문제다. 목 베인 소가 의식을 되찾는 장면들이 목격되고, 살아있는 동물이 죽은 동물을 못 보게 하는 규정도 지켜지지 않는다.사육 공장부터 처참하다. 더 이상 생산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날까지 강제수정이 되풀이된다. 기업형 양계장에서 닭의 생존 기간은 길어야 40일이다. 모두 일찍 죽도록 프로그램 되어 학대받는다. 짧은 주기로 수정을 하니, 어미 돼지는 제 자식인지도 모르고 잡아먹으려는 경우도 생긴다. 항생제 투여는 일상이다. 거의 모든 식용용 가축들이 평생을 갇혀 지내다 생을 마감한다.문제는 현재의 육류 소비량이 동물 친화적 축산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이다. 육류 생산량을 줄이기 전에는 해결되지 못할 문제다. 여기서 이른바 ‘동물 착취의 역설’이 언급된다. ‘진지한 무지’와 ‘인지 부조화’에 더해 ‘나 혼자 육식을 끊는다고 뭐가 달라지나’ 하는 생각에 여전히 동물 도축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모두가 행복한 쇼는 없다서커스 동물들은 생애의 대부분을 폐쇄된 곳에서 비참하게 살아간다. 좁은 공간에 갇힌 동물들은 의미 없는 반복행동을 자주 하는데 전문가들은 이것이 ‘스테레오타이피(상동증)’라고 부른다. 조직적인 동물 학대로 인해 이들은 잡혀온 직후부터 심리적 파괴 과정을 거친다. 인간(사육사)에게 복종 않으면 처벌과 고통이 따른다는 사실을 이해할 때까지 이 과정은 반복된다. 사람들은 동물원 동물들이 행복하다 생각하지만 저자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동물원이 멸종위기의 종을 보호해 준다는 주장도 반박한다. 동물원은 자유를 박탈당한 야생동물을 전시해 돈 버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곳이라며, 사실상 이 가운데 80%는 자연에서 사라질 위험이 없는 것 들이라고 말한다. 근친교배된 ‘백호’ 같은 동물은 이제 야생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사진출처=게티이미지)◇ 총소리를 멈춰라 생계용 식량을 얻기 위해 야생동물을 죽여야 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부유한 나라에서 사냥은 여가 활동일 뿐이다. 여전히 멸종 위기 동물들이 재미로, 합법적으로 사냥당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보호동물에게 총을 쏠 수 없지만 이를 위반해도 징역형·벌금형 같은 유죄판결은 손에 꼽을 정도여서 매년 수천 마리의 동물이 죽은 채로 발견되거나 야생동물 보호센터로 보내진다.통합 보호지역에서도 노루나 사슴, 맷돼지 개체 수 조절을 핑계로 사실상 도살 행위가 허용되고 있다. 매년 사냥꾼들이 죽이는 동물의 80%는 ‘새’인데, 90% 가량이 양식장에서 사육되다가 사냥을 목적으로 풀려난다고 한다. 저자는 “이렇게 풀려난 동물이 야생동물과 접촉하면 잡종 교배로 이어져 자연 개체군을 약화시키고 질병을 확산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베너리 사냥’이라는 것이 있다. 끝없는 추격 끝에 사살된 동물은 사냥개에게 먹이로 주어진다. 사슴은 머리와 뿔을 트로피로 만들어 전시된다. 옛 귀족들처럼 시대 의상을 차려 입은 참가자들에게는 ‘즐거움 지속’만이 유일한 규칙이다. 사냥당하는 동물 수가 많지 않으니 ‘조절’이라는 명분도 말이 안된다. 근처 농가에서는 소음에 고통받거나 인명 살상 피해까지 입는다. ◇ 모두를 위한 안식처를 찾아서지구 생태계의 75%가 인간의 활동으로 파괴되었다. 몇 십 년 안에 100만 종에 가까운 동식물이 사라질 위기다. 야생 지역이 경작지나 도시로 변해, 세계 야생 척추동물의 개체수는 1970년에서 2014년 사이에 60%나 감소했다. 육상 생물의 10~15%가 서식하는  아마존도 위기다. 2000년부터 2018년까지 프랑스 본토 면적이 사라질 만큼 빠른 속도로 삼림벌채가 진행되고 있다.살충제로 인해 지난 30년 동안 유럽에서 곤충 개체수는 75%나 줄었다. 조류 감소의 가장 큰 원인도 살충제다. 경관의 획일화도 서식지 파괴의 한 요인이다. 생물 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해 울타리와 휴경지 같은 다양한 서식지를 늘리지 않으면 농업 생산량은 줄 수 밖에 없다. 해결책은 농약 사용을 줄이고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재건하고, 특히 육류 소비를 대폭 줄이는 것이다.인간은 자연을 소유물로 생각하고, 공간을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고 여긴다. 경제적 이익이 생태계의 건강보다 먼저라고 보고  모든 환경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생물 다양성의 파괴를 부추긴다. 저자는 “다른 생명체를 위해 약간의 공간을 남겨두는 것으로도 충분히 재앙을 피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과학자들도 지구 표면의 30% 정도는 보호되어야 한다고 말한다.프랑스에서는 국가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토지를 대신 매입해 야생동물들을 위한 평화구역으로 바꾸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아스파스(Aspas)’라는 곳이 있다. 덕분에 ’베르코르 야생보호지역‘이 빛을 볼 수 있었다. 이 단체는 프랑스 영토의 10%에서 자유로운 진화가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이 비율은 1% 미만이다.2020년 현재 내륙과 해안 수생태계의 16.64%, 연안 및 해양의 7.74%가 보호지역에 속해 있다. 하지만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20만 개가 넘는 보호지역 중 0.1%도 안되는 약 60개 지역만이 ‘그린 리스트’에 포함된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특정 지역 보호는 보호받지 않는 인접 지역에까지 긍정적인 확산 효과를 준다”고 말한다. 자치단체와 지방의회 행정에 적극 참여하는 것도, 적어도 해로운 개발계획을 막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한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4-01-06 07:00 조진래 기자

[비바100] 현재 인구로는 '강원도' 아니라 '원춘도'가 맞아

옛 사회과 부도를 보는 느낌이다. 이른바 ‘데이터 지리학’을 연구하는 학계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책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지리·공간 정보 커뮤니케이터들이라고 부른다. 이 책은 21세기에 최적화된 대한민국 대표 지리부도라 해도 모자라지 않아 보인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과연 어떤 곳인지, 모두가 궁금해 하는 정보들을 소상하게 알려준다.지도로 읽는 대한민국 트렌드|장은미, 홍선희 외 3명|바른북스◇ ‘강원도’는 ‘원춘도’, 충청도는 ‘청충도’?1413년 조선 태종은 전국을 8개 도로 나눴다. 동부권 대표지였던 강릉과 원주의 앞 글자를 따 ‘강원도’가 탄생했다. 그런데 원주는 수도권에 가깝고 기업·혁신도시가 들어선 덕분에 인구가 속증한 반면 강릉은 계속 인구가 줄었다. 이제 강원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는 원주와 춘천이다. 강원도를 ‘원춘도’로 불러야 할 판이다.충주와 청주가 만난 ‘충청도’에서도 현재는 청주의 한 구가 충주 전체보다 인구가 많아져 ‘청충도’라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전주와 나주의 ‘전라도’도 이제 순천과 여수가 나주를 추월했다. ‘전순도’나 ‘전여도’라 불러야 할 지경이다.◇ 결혼은 영등포구, 이혼은 울릉군혼인율이 가장 높은 곳은 서울 영등포구다. 이어 화천군-평택시-하남시 순이다. 혼인율 최저는 순창군과 군위군이다. 평균 초혼 연령은 남자 33.4세, 여성 31.1세로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서울 남자의 평균 초혼연령은 33.9세, 여자는 31.9세다.2022년 이혼율은 2.0으로 혼인율(1.8)과 별 차이가 없다. 울릉군(3.5)이 가장 높고 이어 옹진군(3.1), 정선군(3.0) 순이다. 이혼율이 가장 낮은 곳은 봉화군(1.1)이다. 혼인율과 이혼율 차가 큰 곳은 영등포구, 과천과 수원, 하남 순이다. 전북 장수군과 임실군, 경북 영덕군은 혼인비율보다 이혼비율이 더 높았다.◇ 출산율 최고 지역은 영광·임실합계출산율 추이. 자료=통계청출산율은 가임기(15~49세) 여성이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 수, 출생률은 인구 1000명 당 출생아 수다. 출산율이 최저인 서울은 출생률이 평균보다 높고, 출생률 최저인 전라북도는 출산율이 평균보다 높다. 출산율은 영광군과 임실군이 1.8을 살짝 웃돌며 최고다. 부산 중구와 서울 관악구, 대구 서구는 0.5 미만이다. 출생률 최고지역은 세종시(1.27)다.전라북도와 경상북도는 합계출산율이 전국 평균보다 높지만 출생률은 그에 못 미친다. 반면 부산과 대구는 서울처럼 두 가지 모두 낮다. 세종은 출산율(1.27)과 출생률(9.26)이 모두 전국 최고다. 하지만 이 역시도 OECD 평균 출산율 1.3명에는 못 미친다.◇ 1인 가구 가장 많은 곳은 관악구시군구 중 2020년 현재 1인 가구 최다 지역은 서울 관악구다. 20대와 30대 1인 가구가 가장 많다. 40대 1인 가구 최다 지역은 화성시와 부천시, 50대 이상은 부천시다. 대전 유성구와 동·서구는 20세 미만 1인 가구가 많다. 서울과 대전, 세종의 1인 가구 중 50%는 30대 이하인 반면 전라남도는 1인 가구 절반이 60대 이상이다. 전북과 경북, 경남, 강원은 60대 이상이 40%를 넘었다.전체 가구 대비 1인 가구 비중이 최고인 곳은 대전(36.3%)이다. 이어 강원도(35.0%), 서울(34.9%), 충북(34.8%), 충남(34.2%) 순이었다. 반대로 과천시는 1인 가구 비율이 가장 낮았다. 가족이 아닌 남남끼리 사는 5인 이하 ‘비 친족가구’는 화성시가 9257가구로 가장 많았다. 울릉군과 옹진군, 인천 중구는 그 비율이 5% 이하다.◇ 대단지 아파트는 남양주 다산동에2022년 말 현재 전국에서 1000세대 이상 대단지 아파트가 가장 많은 남양주시 다산동.2022년 말 현재 전국 1000세대 이상 대단지 아파트는 2414곳이다. 남양주시 다산동에 20곳,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에 18곳, 인천시 연수구 송도동에 16곳이 있다. 150세대 이하 ‘나홀로 아파트 단지’는 839곳이다. 서울 서초동이 15개 단지로 가장 많고 방배동에 9개, 목동과 자양동, 삼성동에 8곳씩 있다. 오피스텔은 전체의 70.1%가 수도권에 있다. 서울에 29.9%, 경기와 인천에 29.5%, 10.8%가 위치한다. 44%가 도시철도 역 직선 거리 500m 이내에, 78%가 매출액 1000대 기업 본사와 직선거리 3km 이내에 있다. 70% 이상이 1인 가구다. 오피스텔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고양시 일산동구(17.1%), 가구 수가 가장 많은 곳은 서울 강서구(2만 8270가구)였다.◇ 수입차·친환경차 메카는?2023년 1월 현재 국내 등록차량은 2546만 6066대, 그 가운데 자가용이 2027만 8381대다. 운전면허가 가능한 만 18세 이상 기준으로 2.17명 당 차 1대 꼴이다. 수입차는 320만 671대로, 전체의 17% 정도다. 수입차 최다 등록 지역은 서울 강남구로 9만 7384대에 이른다.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부산 중구로 1.95명 당 1대 꼴이다.친환경 자동차는 2023년 1월 현재 전체 등록 차량의 6.4% 수준이다. 전기차(23.7%)보다는 하이브리드차(69.3%)가 많다. 비율은 제주도가 10.7% 정도로 가장 높다. 전기차 비율이 가장 높은 상위 세 지역은 제주(10.7%)와 인천(8.5%), 세종(8.3%)이다.◇ 바뀌는 과일 먹거리 주산지기후변화 탓에 감귤의 주산지가 머지 않아 진주나 고흥으로 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다.우리나라 최대 곡창지대는 호남평야였다. 쌀 경지면적이 2021년 기준으로 7만 ha가 넘어, 전라북도 전체 논 면적의 57.4%를 차지했고 이 땅의 74%에서 쌀이 생산되었다. 하지만 이제 쌀 생산량은 전라남도-충청남도-전라북도 순이다. 귤은 제주, 사과는 영천, 포도는 김천이라고 했다. 하지만 기온 상승 탓에 국내 6대 과수 작물(사과 배 복숭아 포도 단감 감귤) 주산지가 충북·강원 등으로 북상 중이다. 사과와 복숭아, 포도 재배지역은 주는 반면 감귤과 단감 재배지역은 확대일로다. 이제 제주감귤이 진주·고흥 감귤이 되고, 영천사과가 대관령 사과가 될 판이다.◇ 전라남도 폐교 수 전국 최다학교용지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연세대·이화여대가 있는 서울 서대문구(12%)다. 서울 동대문구(9%)와 부산 영도구(7%)가 다음이다. 300가구 이상 주택에는 적정 학교부지 확보가 의무화한 탓에 서울과 서울 근처 신도시, 지방 광역시에서 비율이 높다.최근 저출산이 심화하면서 관련 규정이 완화되는 추세지만 다른 한편에선 학령 인구 감소로 인해 폐교되는 학교가 늘고 있다. 2022년 3월 기준 전국 폐교 수는 3896개에 달했다. 작은 농촌 학교가 많았던 전남이 839개로 최대다. 이어 경북(735개), 경남(582개), 강원(469개) 순이다.◇ 갈수록 줄어드는 소아과‘소아과 오픈 런’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전국에서 동네 병원은 물론 대학병원에서도 소아과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1000명 당 1세 전 사망자 비율이 ‘영아사망률’이다. 2021년 기준 2.4%로 낮은 편이지만 지역별 차이가 크다. 충북과 전남, 강원, 대구가 높고 충남과 경기, 서울, 세종이 낮다. 전남은 2019년 대비 2021년 영아사망률 증가 1위의 불명예도 안았다. 인구 증가율이 높고 일자리가 많은 지역의 영아사망률이 낮다.‘소아과 오픈 런’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소아과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229개 시군구 중 소아과 전문의가 없는 곳이 문경시 등 34곳에 이른다. 반면 서울 강남구(160명)와 송파구(134명), 경기도 화성시(128명)는 소아과 전문의 ‘톱 3’ 지역이다.◇ 노년의 불청객, 치매와 고독사 2022년 4월 현재 남녀 60세 이상 치매 유병률 최고 지역은 곡성군(11.4%)이다. 이어 보성군(11.3%) 고흥군(11.0%) 순이다. 전국에는 치매안심센터가 본소 256개, 분소 217개 운영되고 있다. 중앙치매센터의 ‘치매 오늘은’ 사이트에는 전국 치매환자 유병 현황이 성별·연령별·중증도별로 제공된다.2022년 고독사 실태보고서를 보면, 고독사 발견 장소는 경기도가 1위, 서울이 2위, 부산이 3위다. 최근 5년간 고독사 비중은 매년 1% 내외다. 연평균 증가율은 제주가 38.4%로 가장 높았다. 이어 대전이 23.0%, 강원이 13.2%, 전남이 12.7%를 기록했다.◇ ‘골초 천국’ 강원·충북2021년 시도별로 강원도와 충북이 똑같이 21%의 최고 흡연율을 보였다. 충북은 청소년 흡연율도 7.3%로 가장 높았다. 강원의 청소년 흡연율은 6.1%였다. 흡연율이 가장 낮은 곳은 세종시(15.1%)였다. 전남도 외에는 광역시가 훨씬 낮은 흡연율을 보였다.국내 알코올 중독증 환자는 1만 9000명 안팎이다. 2021년 기준으로 고위험 음주율은 강원도 영월군이 19.6%로 가장 높았고 이어 강원도(14.4%), 인천(12.2%) 순이었다. 세종과 대전은 7.7%, 7.9%로 현저히 낮았다. 서울 강북구와 금천구가 13.3%, 13.2%에 달한 반면 광주광역시는 전혀 술을 안마시는 비율이 31%로 가장 높았다. 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3-12-30 07:00 조진래 기자

[비바100] 쉼표까지 읽게 만드는 랭보의 마력, 마지막 산문시집 ‘일뤼미나시옹’

일뤼미나시옹|아르튀르 랭보|페르낭 레제 그림(사진제공=문예출판사)“환각적 이미지로 가득한, 관능적이고 재미있으면서 어둡기도 한 작품이며 인간사를 거울처럼 온전히 담고 있는 작품.”지난 11월 세종솔로이스츠가 주최하는 제6회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나선 역사학자이자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Ian Bostridge)는 아르튀르 랭보(Jean Nicolas Arthur Rimbaud)의 9개 연가시에 음악을 붙인 벤자민 브리튼(Benjamin Britten)의 ‘일뤼미나시옹’(Les Illuminations)에 대해 이렇게 소개했다.그의 무대에 감동 받아, 때마침 2023년의 마지막 달 랭보의 탄생 170주년을 맞아 출간된 마지막 미완성 산문시집 ‘일뤼미나시옹’을 받아들고는 꽤나 열심히 읽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의 문학세계를 이해해보겠다는 시도 자체가 오만이었을지도 모른다.‘일뤼미나시옹’의 시들은 저주받은 천재였고 당시에는 그 누구에게도 온전히 인정받지도 이해받지도 못했던, 그럼에도 삶의 의지가 견고했던 아르튀르 랭보가 연인이었던 시인 폴 베를렌(Paul-Marie Verlaine)과 영국에 머물던 때의 것들이 대부분이다. 더불어 1973~1875년 레딩, 샤르빌과 슈튜트가르트 등 유럽전역을 여행하면서 쓰여진 시들도 수록돼 있다.시인으로서의 명성, 아내와 자식들 등을 뒤로 한 채 랭보와 여행길에 올랐던 베를렌은 다툼 끝에 그에게 총을 쏴 2년 동안 수감됐다. 랭보가 감옥에서 2년여를 보내고 출소한 베를렌에게 ‘일뤼미나시옹’ 원고들을 맡기면서 1886년 5월 파리의 문학평론지 ‘라 보그’(La Vogue)에 처음 실렸고 그해 10월 책으로 출판됐다.이번에 출간된 ‘일뤼미나시옹’은 랭보 시의 원형은 물론 베를렌이 쓴 초판의 서문을 그대로 살리는 동시에 심도 깊은 각주, 입체주의 회화의 거장 페르낭 레제(Fernand Leger)가 ‘일뤼미나시옹’만을 위해 그린 그림 20점이 함께 수록됐다.베를렌이 쓴 초판 서문에 따르면 ‘일뤼미나시옹’은 “랭보가 자기 원고에 붙인 부제‘로 “영어의 ‘Illuminations’라는 영어에서 온 말로 즉 Coloured Plates라고 할 수 있다.” 연인인 동시에 동료 시인이었던 베를렌의 평처럼 170년이 흐른 지금에 봐도 세련되고 매력적인 시들이다. 하지만 어쩌면 어원이나 그 진화과정까지를 알아야만 이해가능할지도 모를 형용사의 사용, 오페라 작품이나 신화 속에서 그대로 가져오거나 응용하거나 연상시키는 적지 않은 고유명사, 하나하나 의미를 가진 듯한 무수히 많은 쉼표와 비약, 감히 그 뜻을 가늠하기 어려운 생략과 은유 등으로 꽉 들어차 있다.베를렌이 서문에 적은 것처럼 “의도적인 파격의 운문으로 된 짧은 작품들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 핵심 주제는 없거나 아니면 적어도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느껴지는 건 대홍수 뒤의 풍경을 ‘보석들은 땅 속 깊이 몸을 감추고 꽃들은 피어버렸다!’로 표현할 줄 아는 랭보의 남다른 감성과 전혀 이해할 수 없음에도 마음을 움직이는 시어들의 향연이다.간혹 시의 길이보다 번역자의 각주가 많은 아이러니 또한 지독히도 랭보다운 시집이다. 더불어 쉼표 하나에도 뭐가 들었을까를 집요하게 고민하게 하는 힘을 지닌 언어들이 꽤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는 글들이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3-12-25 18:00 허미선 기자

[비바100] 기다려주는 日, 25명… 못 기다리는 韓, 0명

일본은 2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그 중 25명이 자연과학 분야에서 나왔다. 이 책은 일본 기초과학의 ‘힘의 원천’을 추적 탐구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과학기술 부국(富國)’이 되려면 정부의 리더십과 고도 인재, 기업을 통한 기술력이 절대적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일관된 정책’과 ‘기다려주기’가 필수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실패는 능력부족 보다는 지속성 부족에서 오는 것”이라며 “지금까지 ‘따라가는’ 과학이었다면, 이제는 ‘앞서가는 기초과학 강국’이 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일본 과학기술 발전의 원동력저자는 일본이 1945년 패전 이후 선진기술을 적극 도입하면서 모방과 흡수, 개량과 창조의 과정을 거쳐 과학 선진국이 되었고 그 덕분에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쏟아낼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초중고 교과부터 과학기술을 가르치고 보급시키기로 일찌감치 결정했고, 일관된 정책추진에 과학기술 강국으로 자리매김 했다고 말한다. 일본 정부는 산-학-연 민간 실무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하는 각종 심의자문기구를 만들어 정치권이나 공무원들의 독주를 견제했다. 일관되고 지속적인 정책 추진이 최우선 목표였다.과학기술청은 정부-기업 간 긴밀한 협조를 위한 리더십을 발휘했고, 2001년에 총리직속으로 만든 종합과학기술회의(CSTP)도 지대한 역할을 했다. 여기에 자본력, 그리고 일본사회의 ‘기술자 우대 분위기’가 더해졌다. 1995년에 제정된 과학기술기본법도 5년에 한 번씩 과학기술 기본계획을 수립케 해 정책적으로 과학 분야를 집중육성하는 기본 틀을 다지게 해 주었다.◇ 민간·대학 연구개발(RD) 전폭 지원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일본 기업들도 기초연구 능력을 확충하고 연구개발의 세계화를 추진했다. 주로 전자와 바이오테크놀로지 중심으로 기초연구소 설립 붐이 일었다. 문부과학성은 2016년부터 대학 내 젊은 연구인재를 발굴하는 ‘탁월연구원제도’를 운영 중이다. 이들에게는 2년 동안 1200만 엔 한도의 연구비와 연간 200만~300만 엔의 연구환경 조성비가 5년 동안 지원된다.후지츠 같은 일반 기업도 ‘탁월사회인박사제도’를 도입해 석사과정 학생 중 희망자를 뽑아 박사과정 진학과 동시에 사원으로 채용해 연구에 전념케 돕는다. 일본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부터 물질과 에너지, 지구와 우주, 시간 및 공간과 생명 등을 집중 교육한다. 저자는 “일본은 실험 물리보다 이론물리에 강하다”며 “일본 연구자들의 오타쿠 같은 캐릭터와 맞아떨어지면서 국내에서의 이론 연구만으로도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span style="font-weight: normal;"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는 최근 로봇을 이용한 재생의학 연구가 한창이다.◇ 일본 노벨상의 산실 ‘리켄’일본 기초과학의 중심에는 이화학연구소(理化學硏究所) ‘리켄(RIKEN)’이 있다. 이 민관 연구소가 출범하면서 일본의 과학기술 연구는 조직적으로 첫 걸음을 내디뎠다. 물리학자인 니시다 요시오 초대 연구소장은 젊은 연구자들이 세계 석학들과 만날 기회를 주고, 폐쇄적·연공서열적이던 연구 시스템을 혁파했다. 주임연구원 제도를 도입해 연구 테마와 예산, 인사권 등 전권을 부여해 독립된 연구를 보장해 주었다. 새 연구 계획 아이디어만 제시해도 즉시 일정액의 연구비를 제공받을 수 있게 했다.연구성과로 특허나 실용신안을 얻으면 기업 설립도 허용해 주었다. 특허권과 사용료는 연구소 자산으로 늘려 연구비용을 충당케 했다. 그 대표적인 기업이, 패전 후 페니실린과 비타민 제조에 성공하고 지금은 줄기세포를 연구 중인 ‘리코’이다. 자연과학에 관심 있는 연구자들이 돈이 없다거나 자리가 없다는 핑계로 연구를 포기하지 않도록 만든 것이다.◇ ‘천재’ 라기 보다 ‘오타쿠’가 대부분일본 노벨상 수상자들은 ‘천재’ 보다는 끈기 있게 집중력을 발휘하는 ‘오타쿠’가 대부분이다. 2002년에 화학상을 받은 학사 출신의 회사원 다나카 고이치 등이 그렇다. 일본 수상자들은 또 놀랍게도 모두 일본 국공립대학 출신들이다. 우리보다 인구가 2.5배가 많지만 유학생 수는 절반에도 못 미친다. 출신 고교도 제국대학 진학을 위한 기초교육기관인 구제고교 출신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젊었을 때부터 안정된 직위에 충분한 연구 환경을 갖춘 국립대학에서 끈질긴 연구가 가능했다.2002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다나카 고이치 선임연구원.일본 특유의 도제식 연구도 역할을 했다. 스승의 연구를 제자가 계승하는 학문적 연계성이 탁월하다. 4대째 학맥(學脈)의 문화는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문부과학성은 2006년부터 박사 학위 취득 후 10년 이내의 젊은 연구자들을 선발해 임기 5년을 보장하는 ‘테뉴어트랙 보급 정착 사업’도 실시 중이다. 저자는 “이것이 진정한 기술과학의 인적 네트워크”라고 부러워 한다.◇ 기초과학 투자에 너무 늦은 한국우리나라는 2022년 기준으로 GDP 대비 RD 비중이 4.96%로 OECD 국가 2위다. 일본은 평균인 2%에도 못 미쳤다. 우리는 인구 1000명 당 연구원 수도 세계 1위다. 그런데 과학기술 분야에서 일본을 따라잡지 못한다. 저자는 그 이유로 크게 세 가지를 든다.첫째, 일본이 R, 즉 기초과학에 집중지원한 반면 우리는 산업계의 응용분야와 기술개발 D에 집중했다. 고도성장이 시급했기에 기초연구나 이론연구에 소홀했고, 특허출원도 반도체 통신 등 특정 산업에 편중되었다. 인재들은 의치한(의대 치해 한의대)과 ‘인 서울’ 대학에만 쏠리니 지역 기반 대학은 우수학생을 유치하기 어렵다. 우리도 2008년부터는 기초연구비가 응용연구비를 추월했지만, 순수기초 연구비 30%에 목적기초연구비가 60%다. 하고 싶은 연구보다 정부 연구프로젝트에 목을 맨다는 얘기다.둘째, 일본은 정부 RD를 구체적인 항목 지정 없이 대학에 블록 펀딩 형태로 지원한다. 정부는 연구 방향과 총액만 결정하고 나머지는 기관장에게 일임하니 중장기 과제에 집중할 수 있다. 일본은 또 2001년의 21세기 COE(Center of Excellence) 프로그램을 계기로, 상위 10여 개 대학에 지원을 집중한다. 세밀하고 투명한 운용한 덕분에 논란이나 반발도 없다.셋째, 과감하고 지속적인 연구비 투자다. ‘리켄’ 설립 때 일본에서는 “우리의 폐단은 너무 조급하게 성과를 요구한다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었다. 이 때가 1917년이었다. 기초과학에 종사하는 연구자들이 생활문제로 연구를 포기하지 않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일찌감치 형성되었던 것이다.1949년에 일본 최초의 노벨상(물리학 부문)을 수상했던 유카와 히데키.◇ 우리에게 부족한 ‘기다려주는 문화’일본에는 몇 십 년짜리 지원사업이 많지만 우리는 대부분 1~3년짜리다. 그 안에 성과를 못 내면 연구비가 끊긴다. ‘정부가 관심을 갖는 순간 그 사업은 망한다’는 얘기도, 단기 성과를 요구받기 때문이다. 우리 기초과학 과제의 80%는 5000만 원 미만의 소액이다. 5대 1 정도의 경쟁률을 뚫고 수주해도 간접비, 인건비 등을 제하면 연구에 쓸 비용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내년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주요 사업비가 25% 삭감된다.저자는 “일본은 30,40대 연구자들을 위해 ‘탁월연구원제도’에까지 예산을 쓰는데 우리는 오히려 성취욕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방향성 잃은 평등의식’도 비판한다. 우리는 인문 사회 자연과학 모든 분야에 골고루 예산을 나눠주어야 탈이 없다. 자유 공모는 5%에 불과하고 대부분이 기획과제다. 공무원들이 좋아하는 키워드가 들어가야 선정율이 높아진다. 기획서에 ‘화장’을 해 주는 브로커들이 판치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야 하나어릴 때 꿈이 과학자라고 해도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면 이런 꿈이 물거품이 된다. 고 3 때까지 수능에 목숨을 거는 교육제도 탓이다. 저자는 “당장 돈이 안된다고 기초과학을 무시하면 영원히 ‘넘버 투’에 머물 것”이라고 비판한다. 연구자 도덕성도 꼬집는다. 작년에 문을 연 한전공대가 200억 연구프로젝트 사업비를 인건비로 전용해 물의를 일으킨 것이 우리의 현주소라고 비판한다.저자는 그러나 우리가 일본보다 늦은 1977년에야 기초과학 연구를 시작했고, 창의적 연구 진흥 사업이 시작된 것은 1996년임을 상기시킨다. 그는 “일본의 150년에 비해 이제 경우 30년을 넘긴 셈”이라며 “일본은 1868년부터 기초과학에 투자해 1949년에 첫 수상자 유카와 히데키를 배출했다”며 “우리도 너무 조바심낼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그러면서 일본 정부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주는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에 일본학술진흥회 연락사무소를 두고 4,5명을 상주시켜 교류하고 게이오대학 등 다수 대학들도 MOU를 맺고 연구자들을 파견한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저자는 “우리는 충북도 교육감이 노벨상위원회 위원장과 면담하고 사진 찍는 게 전부”라며 “차라리 학생들을 10명 뽑아 보냈다면 이들이 더 큰 꿈을 갖고 돌아왔을 것”이라고 꼬집는다.표 노벨상에 근접한 한국 후보자들* 생리의학-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석좌교수. 마이크로 RNA(miRNA) 생성과정을 2006년 세계 최초로 밝혀냄.- 방영주 서울대 교수. 위암 임상 세계적 권위자. 위암의 표적항암제와 면역항암제 치료효과를 첫 입증.* 화학- 유룡 한국에너지공과대 교수. 나노다공성 물질 구조 규명. 구조규칙적 메조다공성 탄소합성법 개발.- 김기문 포항공대 화학과 교수. 2011년 논문 피 인용지수 세계 100대 화학자에 이름을 올림.* 물리학- 김필립 하버드대 물리학과 교수.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그래핀’의 물리전기적 특성을 최초로 밝힘,- 현택환 서울대 교수. 실온에서 온도를 서서히 올리는 방식으로 나노 입자를 균일합성하는 방법 개발.- 임지순 포스텍 석좌교수. 한국 물리학자 최초로 미국과학학술원 외국인 종신회원으로 추대됨.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3-12-23 07:00 조진래 기자

[비바100] AI가 우울증 진단하고, 식물이 밤길 밝혀준다

(사진출처=게티이미지)미래 기술의 발전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일본의 닛케이신문은 매년 세계가 놀랄 만한 100개 기술을 선정해 발표해 왔다. 그리고 비즈니스 리더 800명에게 따로 설문조사를 해 기대치 순서대로 순위를 정해 공개하고 있다. 2030년까지 가장 기대가 되는 기술로 선정된 기술이 ‘완전 자율주행’이다. 2위는 산업 메타버스, 3위는 간호 로봇이다. ‘인간을 돕는 기술’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100개 기술 가운데 특히 2024년에 주목할 만한 미래기술로 부상하고 있는 새로운 기술들을 뽑아 소개한다.세계를 바꿀 테크놀로지 2024|닛케이BP|시크릿하우스◇ 인공지능(AI) 활용한 신기술▶이미지 생성 AI = 발주자나 설계자가 직접 그린 그림이나 문장을 이용해 대화하면 이미지가 자동생성되는 기술이다. 프리젠테이션이나 설계에 드는 노력을 획기적으로 줄여 준다. 건축 분야 생성형AI 서비스업체 ‘마인(mign)’이 지난 7월에 선보인 ‘아키텍쳐 디자인 봇’은 발주자에게 원하는 주택의 스타일이나 색상, 주변 환경 등을 묻고 그 답에 맞춰 건물 외관과 내관 이미지 4장을 만들어 준다. ‘오바야시구미’도 설계지원 툴 ‘아이콜브’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1주일 정도면 제안서를 뚝딱 만들어 낸다.인공지능을 이용해 우울증을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어 주목을 끈다. 사진은 우울증 환자의 뇌 사진▶AI 우울증 진단 시스템 = 뇌의 한 영역과 다른 영역의 기능적 연결과 그 강도를 MRI(자기공명영상장치)로 측정하고 그 결과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우울증 진단에 활용하는 신기술이다. 데이터 진단을 지원하는 알고리즘도 프로그램 의료기기로 올해 3월에 승인되었다. 유효성 확인 결과, 민감도와 특이도 및 정확도가 모두 70% 안팎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히로시마대 정신신경과, 국제전기통신기초기술연구소, 진단치료기기 개발업체 XNef 역시 연초에 높은 진단 보조기능과 범용성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AI 생성 콘텐츠 탐지 = AI가 작성한 글이나 이미지를 AI가 탐지한다. 챗GTP 개발사인 오픈AI가 올 1월에 내놓은 ‘AI 분류기’는 1000자, 150~250 단어 문장에 대해 인공지능이 쓴 것인지를 판별한다. 아직 정확도는 떨어진다. 올 1월에 설립된 스타트업 ‘GTP제로’는 ‘AI detection’ 툴을 공개한 데 이어 5월에는 크롬 확장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구글 브라우저와 조합해 사용하면, 검색한 문장이 AI가 생성한 글인지를 자동 판정해 준다. 메릴랜드대학은 AI로 생성한 문서에 워커마크를 남기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딥페이크 찾아내기 = 인공지능을 이용해 실제로 비슷하게 만든 가짜 이미지나 동영상, 음성 등 이른바 ‘딥페이크’를 탐지해 음성 사기 등을 사전에 방지하도록 돕는 기술이다. 미국 플로리다대 연구진은 음성에서 발현되는 성대 모양을 추측해 가짜 음성을 판별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정확도 99.9%에 재현율 99.5%에 이를 정도라고 한다. 연구진은 역으로 그럴듯한 딥페이크 음성을 만들 수 있는지도 검토했으나, 계산에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건축·토목 분야 신기술▶ 생물 발광 = 가로수나 관엽식물이 빛을 발산해 밤거리를 밝게 비춰준다. 반딧불이처럼 생물 발광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식물에 도입한 기술이다. 프랑스 스타트업 ‘우드라이트’가 생체 발광 유전자를 식물에 도입하는 생체 실험을 2021년에 마치고 2024년 시제품 완성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전기를 절약할 수 있는데다 식물의 광합성 덕분에 도시 공해도 줄일 수 있다. 식물이기 때문에 100% 재활용도 가능하다. 다만, 은은한 빛을 비추는 수준이라, 어둠 속에서 책을 읽을 수 있을 만큼은 아니라고 한다.솔라로드웨이즈에서 제작한 태양광 도로.(사진제공=솔라로드웨이즈)▶ 태양광 발전 포장 = 태양광 패널을 노면에 접착하거나 포장에 매립하는 기술이다. ‘발전하는 도로’를 지향한다. 도로포장 업체‘도아도로공업’은 결정질 실리콘형 태양전지와 투명한 특수수지로 패널을 만들어 노면 위에 접착제로 붙이는 형태의 두께 6mm 제품을 선보였다. 대형차 주행에도 버틸 수 있는 내구성을 가진 태양광 패널을 구현하기 위해 검증 작업이 진행 중이다. 아직은 현행 도로법에 태양광 패널을 공공도로 노면에 설치할 수 없는데, 일본에서 도로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어 기대를 모은다.◇ 전기·에너지 미래기술▶ 차세대 전력반도체 = 전력 손실을 줄일 수 있는 차세대 소자다. 산화갈륨과 다이아몬드, 질화알루미늄 등을 재료로 사용한다. 2030년대에는 실리콘 전력반도체와 함께 이 분야 주역으로 기대된다. 산화갈륨 전력반도체가 가장 앞서 있다. 플로스피아와 노벨크리스털테크놀로지가 각각 소재 개발에 성공해 고내압 다이오드로 양산 실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2030년 전기자동차의 모터 구동 인버터에 사용하는 것이 목표다. 그렇게 되면 GaN 전력반도체의 시장 규모를 단숨에 추월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고온 공학 시험 연구로 HTTR. 900도 이상의 고온을 추출할 수 있다.(사진제공=일본 원자력연구개발기구)▶ 고온가스로 = 750~900도 초고온 추출이 가능한 차세대 원자로다. 이산화탄소를 배출 않고 수소를 생산할 수 있어 제출산업 등 에서 활용이 기대된다. 흑연재를 감속재로, 헬륨 가스를 냉각제로 사용하고 연료로는 우라늄에 세라믹을 입힌 직경 약 1mm 피복관 연료 임자가 사용되어, 사고가 나도 방사성 물질을 가둬줄 수 있다. 다만, 대형화가 어렵고, 고온을 이용해 무탄소 수소를 대량으로 저렴하게 제조하는 기술은 아직 상용화가 요원하다. 일본 정부는 2035년 국내 1호기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모빌리티 혁신 기술미국 조비 에비에이션의 에어 택시 eVTOL. (사진제공=조비 에비에이션)▶ 에어택시 = 배터리로 구동되는 eVTOL(전동 수직 이착륙기)을 이용해 헬리콥터처럼 수직으로 상승 하강이 가능하다. 2025년 열릴 오사카·간사이 엑스포에서 상용 운항을 시작할 예정이다. 택시 요금보다 2~3배 비싸지만, 이동시간은 절반으로 줄여준다. 현재 상용 운항이 가능한 4인승 이상 기체 제작업체는 8곳 정도인데, 이미 세계 각국에서 600대 가량의 예약을 받고 있다. 전력 소모가 크고 1회 충전에 100km 정도 이동할 수 있어, 차세대 배터리 개발 및 가스 터빈 발전기 활용 등을 통해 400~1000km까지 늘리는 노력이 경주되고 있다. ▶ 자율항행 잠수함 = 심해를 자율 항행으로 조사할 수 있는 잠수정이다. 3000m급 심해 작업을 위해 해저 지형 관측 등 과학기술 조사나 자원 탐사 등을 담당한다. 가와사키중공업이 검사용 로봇 어뢰를 탑재한 ‘스파이스 원’을 영국에 납품해, 북해 유전을 비롯한 전 세계 해저 파이프라인 부설 해역에서 운용될 예정이다. 최대 4노트(시속 약 7.4km)로 목표물에 접근한다. 리튬이온 배터리로 구동되며, 1회 충전으로 최대 8시간을 항행해 30~40km의 파이프라인을 검사할 수 있다. ◇ 의료·건강/라이프·워크 스타일▶ 비강 투여형 제재 = 코를 통해 간편하게 투여할 수 있는 제재다. 2020년에 출시된 저혈당 응급치료제 ‘바크시미’ 비강분말제가 올해 3월 승인된 데 이어 경구용 독감백신 ‘플루미스트’ 비강 용액도 연내 출시 예정이다. 하마마츠 의과대학과 테이진파마가 공동 개량한 ‘옥시토신’ 비강 스프레이는 임상시험에서 유효성과 안전성이 입증되어 자폐 스펙트럼증 치료제로 기대를 모은다. 제약 스타트업 아큐리스파마는 간질환첩증 또는 경련발작 환자를 위한 항경련제 ‘디아제팜’ 비강 투여 스프레이 제재의 3상 임상을 미국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받는 등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일본 고베대는 MeDIP 측의 오퍼레이션 유닛을 이용해 수술로봇의 5G 원격조작 실증실험에 성공했다.(사진제공=고베대학)▶ 수술 지원 로봇 원격조작 = 멀리 떨어져 있는 지도의사가 현지 수술 지원로봇을 조작해 현지 수술자와 공동 수술을 하도록 돕는 기술이다. 완전 원격수술은 안정성 확보 등의 문제로 허용되진 않지만, 의사의 이동 부담도 줄고 지역 간 의료 격차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는 200~300km 거리에서 부분적 원격수술이 이뤄지고 있다. 통신 지연이나 흔들림 등을 제어하는 게 관건이다. 현지에 숙련된 지도의사가 없을 경우 일반수술로 전환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스트레스 해소 앱 = 스마트 폰으로 개인의 기분전환을 해 주는 앱이다. ‘미 풀니스’는 이용자의 얼굴 영상 촬영으로 피로도를 판단해 폰 진동과 비주얼, 음악이 세트로 된 최적의 이용자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한다. 피부 상태 등으로 스트레스와 피로도를 추정하고, 피부색 변화에서 심박수와 심박 페이스를 읽는다. 체험자들을 대상으로 성과를 측정해 보니, 비 체험 그룹보다 스트레스가 유의미하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이미 산후 케어 앱 등에도 채택되고 있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3-12-16 07:00 조진래 기자

[비바100] 전문가의 시대… 팔방미인 천재들이 그립다

문화사학자인 피터 버크가 시대를 앞서 간 서양의 통합형 인재 ‘폴리매스(Polymath)’ 500인의 발자취를 추적한 책이다. 르네상스 시대 다빈치부터 현대의 수전 손택까지, 분야를 넘나들며 지식의 최전선에서 인류 역사를 새로 써 온 융합형 인재들의 이야기다. 저자는 “지금처럼 지식 노동이 분업화된 시대에는 제너럴리스트, 즉 만능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모든 것을 연결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열 명 이상의 몫을 할 수 있으며, 지금처럼 고도로 전문화된 시대에는 더욱 더 그런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폴리매스(세상을 바꾼 천재 지식인의 역사)|피터 버크|예문아카이브◇ 폴리매스는 누구인가역사상 최고의 폴리매스로 평가받는 레오나르도 다빈치.폴리매스란 다양한 분야에 출중한 재능을 발휘한 사람들을 지칭한다. 단순히 ‘천재’를 넘어 왕성한 탐구 정신으로 서로 무관할 것만 같은 분야의 경계를 넘나들며 활약했던 인재들이다. 자신의 한계를 규정하지 않고 다방면에서 재능을 발휘해 시대를 변화시킨 융합형 인재들이다. 연결성을 고민 않고 지식만을 축적하는 것이 분리형 폴리매스라면, 통합형 폴리메스는 지식 통합이라는 비전을 품고 서로 다른 지식들을 하나의 커다란 체계로 묶으려 노력하는 이들이다.하지만 역사는 폴리매스들에게 마냥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다방면의 괄목할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 두 가지 업적으로만 기억되거나, 피타고라스처럼 ‘협잡꾼’ 또는 ‘지식팔이꾼’으로 비난 받기도 했다. 수학자 파스칼처럼 ‘독학으로 모든 지식을 습득한 외로운 천재들’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저자는 그러나 폴리매스들의 지식과 성실함, 호기심이 합쳐졌을 때 얼마나 위대한 업적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일러 준다.◇ 폴리매스의 특별한 자질수전 손택폴리매스에게는 왕성한 잡식성 호기심과 탁월한 창의력 같은 유전적 기질이 있다. 여기에 양육 환경이나 살아온 이력, 시대 상황 등이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특히 높은 집중력에 감탄한다. 잠바티스타 비코는 시끄러운 아이들 속에서 읽고 쓰는데 익숙했다. 남다른 기억력도 있다. 새뮤얼 존슨은 읽거나 들은 바를 무엇이든 잊지 않았다. 실락원 같은 책을 모두 암기한 매콜리도 있고, 존 폰 노이만은 한번 읽은 책이나 논문의 내용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인용하는 능력을 과시했다. 빠른 정보 흡수 능력은 이들만의 확연한 자질이며, 풍부한 상상력은 중요한 정신적 도구다. 이들은 몽상에 그치지 않고 모두가 놓친 ‘연관성’을 알아채는 능력이 탁월했다. 한 학문에서 습득한 지식을 다른 분야 문제 해결에 남달리 활용했다. 아이디어 재사용이라는 특별한 재능도 가졌다. 사무엘 보샤르, 제임스 프레이저가 ‘비교 방법론’을 주도한 사실이 놀랍지 않다. 이들은 또 에너지 넘치는 노력가들이다. 피에르 벨은 ‘피로를 모르는 연구자’였고 뷔퐁은 하루 14시간을 일하는 엄청난 체력의 소유자였다.◇ 폴리매스의 한계존 폰 노이만폴리매스들은 대부분 수면 부족에 시달렸다. 피에르 다니엘 위에나 존 폰 노이만은 하루 3시간 정도만 잤다. 책상에 오래 앉아있는 습관을 가졌던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 과로가 일상이던 하버트 스펜서는 신경쇠약으로 고생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사망 원인은 과로사였다. 이들은 시간을 함부로 쓰지 못해 대부분 금욕주의자로 남았다. 열정 만큼이나 경쟁심도 남달랐다. 아이작 뉴턴, 카를 만하임은 물론 코스모스를 쓴 훔볼트와 폴라니, 헉슬리 형제들의 경쟁은 눈부신 업적으로 이어졌다.반면에 관심사가 분산되는 바람에 작업이나 연구를 중도에 포기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대표적이었다. 라이프니츠도 중세 독일사를 완성 못했고, 로버트 훅도 그래서 후대의 존경을 덜 받고 있다. 칼 마르크스 역시 너무 다양한 관심사 탓에 죽기 직전에야 자본론을 완성해 엥겔스에게 출간을 맡겼다. 공부에 방해받기 싫었기에 독신 폴리매스도 많다. 찰스 다윈은 결혼의 단점 중 하나로 시간 손실과 저녁 독서의 불가능함을 꼽았을 정도다.◇ 지리적·사회적 환경과 종교의 영향막스 베버저자는 “뛰어난 기억력과 넘치는 에너지는 ‘양육’보다는 ‘본성’에 가깝다”며 출생지의 지리적·사회적 환경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책에 소개된 500인 중에는 독일인이 84명으로 가장 많고 영국(81명)과 프랑스(76명), 북아메리카(62명), 이탈리아(43명) 순이다. 학교나 대학, 도서관 등을 통한 지식 접근 기회가 중요한 요인이었다. 특히 상업도시였던 함부르크는 1529년에 설립된 ‘요하네움’이라는 학교가 근대 초기에 활약한 6명의 독일 폴리매스에게 맞춤형 환경을 제공했다고 전한다.종교적 지형도 관련이 깊다. 막스 베버가 주장한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루터교와 칼뱅주의, 성공회를 막론하고 프로테스탄트 성직자 출신의 19명의 폴리매스를 낳았다. 유대교도 마르크스를 시작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1818년 이후 태어난 250명의 폴리매스 중 55명이 유대인이다. 저자는 “유대계 폴리매스들은 대개 본인이 망명자이거나 망명자의 자녀로, 객관적인 시각으로 다른 문화를 바라볼 수 있었던 덕분에 사고의 편협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폴리매스의 가정 교육크리스티안 하위헌스나 훔볼트 형제, 토머스 영, 존 스튜어트 밀, 버트란트 러셀 등 많은 이들이 유년기에 집에서 교육을 받았다. 독학파도 의외로 많다. 앨런 튜링은 교과서보다 자신만의 방법을 선호했고, 데이비드 흄은 “책에서 만날 수 없는 지식은 교수에게도 배울 수 없다”고 했다. 잠바티스타 비코와 새뮤얼 존슨은 서적상의 아들이었기에 마음껏 혼자 책을 볼 수 있었다. 1만여 권 장서를 소장한 교수를 아버지로 둔 오트 노이라트는 자신의 첫 계산이 서재의 책이 몇 권인가 세어 본 것이었다고 전했다.폴리매스 가족도 있다. 빌헬름과 알렉산더 본 훔볼트 형제가 대표적이다. 프랑스 학자 집안인 레나크 가족 중 폴리매스는 조제프, 살로몽, 테오도르 3형제의 이름 첫 글자인 J.S.T는 프랑스어로 ‘나는 모든 것을 안다(Je sais tout)’를 의미할 정도다. 여섯 형제가 모두 뛰어났던 프로디 가족도 조르조와 파울로 두 명이 폴리매스에 이름을 올렸다. 나머지 4명도 수학자, 물리학자, 경제학자로 이름을 떨쳤다. ‘민족학’의 선구자인 아우구스트 폰 슐뢰처처럼 부녀 폴리매스도 나왔다.◇ 단독 연구에서 ‘학제’ 융합 연구로오토 노이라트폴리매스 한 사람이 맡던 연구를 이제는 집단이 수행한다. 18세기부터 ‘학제’라는 용어가 나왔다. 19세기 들어선 제너럴 일렉트릭, 스탠다드 오일 같은 큰 기업들이 후원한 산업연구가 이런 형태로 이뤄졌고 두 차례 세계대전 후에는 각 나라 정부가 자금을 댄 집단 연구 프로젝트가 추진되었다. 19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융합연구는 전 세계적인 학문통합 운동 바람 속에 특히 미국에서 꽃을 피웠다. 사회과학계에서 융합연구소가 설립되어 활성화 기반이 다져졌고, 잇달아 고등 연구기관들이 생겨났다. 체계적인 학문 통합 운동은 1930년대에 본격 등장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폴리매스 오토 노이라트에서 시작된 ‘빈 학파’는 경제 영역의 토론 때에도 철학의 일반 개념을 반드시 함께 다루도록 의무화하기도 했다.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통섭(consilience)’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그는 “지식 통합 시스템이 미래에 가장 생산적인 연구 주제를 만든다”고 주장했다.◇ 대학의 역할과 책임알베르트 아인쉬타인.대학들도 경계를 넘는 학문 통합의 길에 함께 나섰다. 대표적인 곳이 192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설립된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다. 이곳은 마르크스 학자들로 구성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요람이었다. 미국에서는 특히 자선 재단과 대학들, 정부까지 가세해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모두에서 학제간 융합 연구가 크게 장려되었다. 시카고 대학에서는 로버트 허친스가 불과 30세 나이에 총장에 취임해 사회과학 분야에서 특출난 학재간 융합 연구회를 만들어 이른바 ‘시카고 학파’ 탄생에 기여했다.대학의 고등연구소는 학문간 교류 혹은 협업의 상징이 되었다. 1931년에 세워진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는 초창기에 알베르트 아인쉬타인, 존 폰 노이만과 함께 미술사가 에르빈 파노프스키가 있었다. 포드 재단이 후원해 1954년에 캘리포니아 팰토앨토에 세워진 행동과학 고등연구소는 기존 학문 분류 체계를 따르지 않아 주목 받았다. 파리인문학연구소(1962년), 빈 고동연구소(1963년), 베를린지식연구소(1980년), 런던 고등연구대학(1994년), 프라이부르크 고등연구소(2008년) 등이 줄을 이었다.◇ “지금은 지식 위기의 시대”저자는 “오늘날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폴리매스의 ‘맞춤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는 “그나마 소수의 박학다식한 학자들이 살아남았다는 점을 위안 삼는다”며 작곡가 조지 스타이너,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와 슬라보예 지젝을 ‘현존하는 폴리매스’라고 추켜 세웠다. 독일 사회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이론의 여지 없는 ‘우리 시대의 아리스토텔레스’라고 공언했다.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사회생물학’으로 통섭의 경지를 보여 준 미국인 과학자 에드워드 윌슨을 높이 평가했다.저자는 폴리매스가 앞으로도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지 깊은 우려를 나타낸다. 1950년대부터 폴리매스의 수에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며 안타까워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낙관론자라면 디지털 세대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며 “폴리매스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는 시기상조”라고 말한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3-12-09 07:00 조진래 기자

[비바 2080] 100세 시대 신간... 김성근 <인생은 순간이다>

저자는 야구장으로 가는 길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아이디어가 맞는 지 확인해 볼 수 있어 언제든 야구장에 가는 길은 ‘희망’이었다는 것이다. JTBC ‘최강야구’의 감독으로 옮겨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고 술회한다. 야구라는 것으로 인생을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단순히 이기고 지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 절망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야구를 하면서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을 이렇게 정리해 소개한다. “항상 ‘왜’라는 생각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라. 타협하고 후퇴하지 말라. 그리고 시선은 늘 앞으로 미래로”.  ◇ 죽는 한이 있어도 베스트를 다하라저자는 “인생은 결국 순간이 축적되어 만들어 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제, 오늘, 내일 마주치는 순간에 한 결정과 행동이 쌓이고 쌓여 인생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면 어느 새 내일은 온다고 말한다. 거짓말처럼 기회가 찾아온다고 강조한다. ‘일구이무(一球二無)’, 공 하나에 다음은 없다는 뜻의 그의 좌우명 역시 누구에게나 기회는 있다는 의미다.저자는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엇이든 자기가 지금 ‘베스트’라는 확신이 들 만큼 열심히 하면, 기회는 언제든 오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가르친 선수들 중에도 자기 한계를 뛰어넘은 선수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며, 그것을 보면서 저자는 인간의 잠재능력이라는 게 엄청남을 확인했다고 회고한다.그는 “해내고자 말겠다는 의식이 커질수록 잠재능력도 조금씩 깨어나 꽃을 피운다”고 힘주어 말한다.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다고 말한다. 우리 대부분은 자신의 능력을 20~30% 정도만 발휘하고 사는데, 그렇다면 나머지 70~80%의 능력은 스스로 설정한 한계 속에서 사라지는 것이라고 꼬집는다.저자는 “끝장을 본 사람에게는 미련이 없다”고 말한다. ‘굵고 짧게 살겠다’고 죽어라 연습하면 꼭 잠재능력이 꽃을 피울 것이라고 단언한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안된다면 그 때 다른 길을 찾으라고 권한다. 그래야 아무런 미련이 남지 않는다는 얘기다. 나이나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보다 한계를 스스로 설정하고 마는 의식이 더 문제라고 비판한다.◇ 시행착오는 실패가 아니다저자는 누구든 실패를 겪지만, 포기만 하지 않으면 기회는 반드시 또 온다고 말한다. 비록 실패를 해도 무언가를 배운다고 강조한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쌓여 인생을 바꾼다”며 “포기하는 것은 기회를 버리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래서 그는 “시행착오가 많았다는 것은 결국 실패하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강조한다. 시련을 겪었어도 도전을 했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시행착오가 많다는 것을 그는 그만큼 더 많이 고민하고 도전하면서 ‘자기 길’을 만들어갔다는 뜻이라며 칭찬한다. “시행착오가 많은 인생이야말로 베스트”라고 말한다. 자신의 삶 역시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고 술회한다. 스물 여덟 젊은 나이에 일찍 지도자의 길에 들어섰지만, 프로야구 감독을 맡은 이후 첫 우승까지 무려 25년이 걸렸다고 말한다.그는 “안된다는 의식부터 바꾸라”고 조언한다. 잘못된 결론을 떠올리고 미리 의식해 버리는 순간, 이미 시작도 전에 마음 속에서 실패한 것이라고 단언한다. “괜찮아. 이 정도면 잘 한 거야”라는 생각은 ‘타협’이라고 비판한다. 남의 위로를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도취되어서도 안된다고 말한다. 가장 약한 사람은 남에게 위로받길 바라고 동정을 원하는 사람이라고 꼬집는다.◇ ‘어차피 안돼’에서 ‘혹시’로, 그리고 ‘반드시’로저자는 스스로 ‘비관적 낙천주의자’라고 자평한다. 늘 ‘최악’을 가정하고 ‘최선’을 준비한다고 말한다. 비관적인 상황들을 역전시킬 최상의 방법을 늘 준비해 놓는다는 것이다, 평소 비관적인 상황을 역전시킬 아이디어를 차곡차곡 비축해 준 덕분에 역설적으로 위기가 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위기관리라고 강조한다. 위기가 아예 오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여기서 그는 ‘어차피’와 ‘혹시’, 그리고 ‘반드시’로 이어지는 의식의 문제를 얘기한다. 안된다는 의미의 ‘어차피’ 속에서 희망을 엿보는 ‘혹시’를 만들어 내는 것이 최고의 인생이라고 얘기한다. 조그만 희망이라도 버리지 않는 삶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먼저 2패를 먼저 당했어도 ‘벌써 2패’라는 생각보다 ‘아직 2패’라고 생각하니 역전이 가능했다고 말한다.그는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는 말을 믿는다. 그래서 실력이 모자라다고 해서 선수를 버리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뛰어나고 대단한 선수라도 팀을 하나로 만드는데 방해가 된다면 쓸모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리더는 부모다저자는 “리더는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리더라면 사람을 쉽게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모두가 포기할 때 마지막까지 희망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기를 전부 희생하더라도 아랫사람을 살리고 조직을 살리겠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그는 만년 꼴찌였던 쌍방울 팀을 리그 2위로 만들었던 것이 우승보다도 값졌던 경험이었다고 회고한다. 선수마다 가능성을 찾아주고 결과를 냈을 때가 가장 기뻤다는 것이다. ‘벌떼 야구’라는 비판과 ‘김성근 야구는 야구도 아니다’라는 비난에 선수 혹사 논란에 빠졌을 때도 그는 비정상적인 승부수를 던졌다. 그렇게 살아남으면 그 ‘비상식’은 ‘상식’이 된다고 힘주어 말한다.저자는 “주머니에 10원 밖에 없으면 그것으로 이길 방법을 찾는 게 60여 년 동안 내가 야구를 해 온 방식”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야신(야구의 신)’보다 ‘잠자리 눈깔’이라는 별명을 더 좋아한다고 말한다. 면밀한 관찰을 통해 상대의 약점과 강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집중해 성과를 만들어 내는 본인의 능력을 자랑스러워 한다. 이런 ‘근거 찾기’가 틀림없이 승률을 높인다고 확신한다.◇ ‘나’가 아닌 ‘팀’저자는 “리더란 조직을 살리고 사람을 살려야 하는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그럴러면 희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다만, 그는 그 기준이 나이가 되어선 안된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그는 이른바 ‘세대교체론’을 얘기한다. 능력이 아닌 나이가 기준되어선 안된다는 주장이다. 나이가 먹어도 능력이 있으면 계속하는 것이고, 능력이 없으면 떨어져 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능력이 30%인 선수는 30%를 내게 하는 것이 베스트라고 말한다. 그것이 ‘적재적소’라는 것이다. 30% 밖에 능력이 남지 않은 선수를 100%가 안된다며 버린다면 그것은 조직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베테랑’은 조직에 꼭 필요한 시기가 있으며, 이를 얼마나 유효하게 쓰는지가 문제라고 말한다. 적재적소에 알맞은 자리에 배치했을 때 나오는 전력이 바로 팀의 힘이라고 말한다. 컵에 물을 계속 부으면 어느 순간부터 원래 담겨 있던 물이 자연스럽게 빠져나오는 것, 이런 것이 세대교체라고 말한다.저자는 ‘자타동일(自他同一)’, 즉 팀 속에서 플레이 하라고 강조한다. ‘나’보다는 ‘우리’라는 개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리더가 함께 탐구하고 해법을 찾아내는 사람인지, 그저 아랫사람을 닦달하기만 하는 사람인지에 따라 조직의 운명이 갈린다고 말한다. 방법을 찾는 리더는 아랫사람이 과제를 해결하기를 충분히 기다려주면서 동시에 자기의 길을 찾는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리더일수록 나이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늘 공부에 정진해야 한다고 말한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3-12-04 08:01 조진래 기자

[비바100] 억만장자에게 없는 것… 현실에 안주하는 마음

‘나폴레온 힐 성공연구원’의 김정수 원장이 자수성가 억만장자들의 성공 비결을 파헤친 책이다. 12명 모두가 억만장자라고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지만, 모두가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궁극의 일가(一家)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억만장자라 칭해도 손색이 없다. 저자는 이들에게서 ‘결코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겠다는 꿈과 희망이, 역경 속에서도 그들을 성공한 억만장자로 만들었다고 강조한다. 억만장자 12명의 비밀|김정수|중앙경제평론사◇ 택배 배달원에서 택배 왕이 된 ‘왕웨이’택배 배달원에서 중국 최대 택배업체 순펑(SF익스프레스)을 창업해 ‘택배왕’이 된 왕웨이(王衛) 회장중국 최대 택배업체인 순펑(SF익스프레스)의 창업자 왕웨이 회장은 고졸의 가난한 염색공장 배달원에서 만 22세 때 아버지에게서 빌린 900만 원을 밑천으로 사업을 시작해 중국 최고의 택배 왕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홍콩-중국 물류에서 일찍이 사업 기회를 포착해, 5년여 만에 선전과 홍콩 물류시장을 독점할 정도로 뛰어난 사업 수완을 보였다.SF익스프레스는 60여대의 화물 항공기와 1만 5000대의 화물트럭으로 중국 전역과 해외 200여 개국 지사를 커버한다. 왕웨이 회장은 2023년 5월 현재 202억 달러 재산으로 세계 81위 부호에 이름을 올렸다. 매년 11월 11일 중국판 블랙 프라이데이 ‘광군제’의 실질적인 최대 수혜자로, ‘길은 마윈이 만들고, 돈은 왕웨이가 번다’는 말까지 생겨났다.전자상거래의 가능성을 조기에 알아채고 올인한 것이 그의 성공비결이다. 외부에 흔들리지 않는 뚝심과 실무 중심 경영도 한몫 했다. 그에게는 중국인 특유의 허풍과 과장이 없다. 정치 바람에 휘말리지 않고, 창업 이후 매일 14시간 씩 오로지 일만 해 왔다. ‘회사의 자산은 직원’이라는 확고한 인식도 순펑을 최고의 기업으로 키우는데 일조했다.◇ 세탁소 알바에서 최고 작가… ‘스티븐 킹’lt;쇼생크 탈출gt; 등 베스트 셀로 소설을 쓴 스티븐 킹은 세탁소 알바로 어려운 시절을 보내면서도 매일 2000자의 원고를 쓰며 꿈을 키웠다.세탁소에서 받는 주급으로 간신히 입에 풀칠하며 살면서 아무리 아프고 고단해도 매일 2000자 글을 쓰며 작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 생활고에 시달리다 마지못해 원고를 쓰레기통에 내다 버렸다가 아내의 독한 격려 덕분에 다시 원고지 앞으로 고쳐 앉아 마침내 쇼생크 탈출,미저리 같은 공전의 히트 소설을 쓴 스티븐 킹이다. 그의 소설은 전 세계에 모두 3억 5000만 부 이상이 팔렸다. 특히 영화로도 제작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 가운데 쇼생크 탈출은 인간에게 ‘희망’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 가를 일러 준다. 그는 인간이 희망을 놓지만 않는다면,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1970년대 중반부터 그는 극심한 알코올과 코카인 중독에 시달렸다. 하지만 이 때도 그의 아내가 ‘마약과 가정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바로잡아 주었고 덕분에 그는 지금 ‘금주 전도사’가 되었다. 그는 글쓰기를 ‘창조적인 잠’이라고 주장한다. 육체적·정신적으로 낮 동안의 논리적이고 따분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라는 설명이다.◇ 매혈 소년 ‘옌빈’, 중국 레드불의 아버지로화빈그룹의 옌빈 회장은 회사 이익을 극대화하면서도 존경도 함께 받는 경영인이다.화빈(華彬)그룹의 옌빈(嚴彬) 회장은 싱가포르의 리카싱 회장과 함께 가장 성공한 화교 기업인으로 꼽힌다. 중국 내 8번째 부호지만 어린 시절에는 국수 한 그릇 먹는 게 소원이었다고 할 정도로 가난했다. 18세 소년은 무작정 태국 방콕 밀항 선에 몸을 실었고, 허기진 배를 채우려 피까지 팔아 연명해야 했다. 그의 사업 수완과 성실함을 눈여겨본 주변 화교들이 십시일반 모아준 돈으로 1984년, 만 30세에 창업을 했고 곧 물류와 여행, 국제무역을 아우르는 그룹을 일궈냈다. 1997년 금융위기 때는 대부분 화교들이 자산을 현금화해 본토로 돌아갔으나 그는 되려 가치가 폭락한 바트 화를 사들여 시장 진정에 기여함으로써 엄청난 이득과 존경까지 받게 된다.중국에 ‘레드불’을 들여온 것은 그의 신의 한 수였다. 현재 레드불은 중국 기능성 음료시장의 80%를 점유 중이다. 그의 러브 스토리도 이목을 끈다. 태국 왕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볼 라타나 공주를 신부로 맞아 태국은 물론 전 세계 거물급 인사들과의 광폭 네트워킹까지 확보했다. 저자는 그의 성공 비결로 신뢰, 과감한 도전, 그리고 뚝심을 들었다.◇ 챗GPT로 인공지능 새 역사 쓴 ‘샘 울트먼’인공지능 챗GPT를 만든 샘 울트먼은 최근 우여곡절을 겪고 있지만 여전히 핫한 경영인이다.실리콘밸리와 억만장자들에겐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대학 중퇴, 그리고 유대인이다. 대학 졸업장보다는 실력을 더 중시하는 실리콘밸리에서 둘을 모두 갖춘 기업가가, 실시간 대화형 검색이 가능한 인공지능 챗GPT를 만든 샘 울트먼이다. 비록 최근 회사에서 밀려나는 해프닝을 겪긴 했지만 그는 여전히 실리콘밸리의 최고 이슈 맨이다. 그는 “2030년쯤이면 인공지능이 불치병 치료나 기후변화 해결처럼 인류가 당면한 난제들을 해결하는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고 낙관한다.울트먼이 작성한 ‘성공을 위한 13가지 방법’은 그의 경영관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는 장기적으로 커리어를 J자 형태로 급격히 끌어올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공하려면 망상에 가까울 정도로 스스로를 신뢰해야 한다고 말한다. 독창적인 사고와 소통의 기술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언제든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 신속하게 처리해야 하고, 99%의 타인을 넘어서기 위한 똑똑함과 근면함을 두루 갖춰야 한다고 역설한다. 호기심을 따르고 스스로 감동할 일을 찾고 실행하라고 권한다.◇ 고아원 소년에서 이탈리아 최고 부자가 된 ‘델 베키오’안경을 거대한 패션 산업으로 끌어올린 레오나르도 델 베키오 회장.안경 하나로 순자산 241억 달러의 세계 52번째 부자가 된 레오나르도 델 베키오 회장. 그는 고아원 출신의 ‘무(無)수저’ 다. 14세 때 금속 세공 가게에서 기술을 배운 후 안경테 부품 공방으로 옮겨 본격적인 안경 장인의 길을 걸었고, 마침내 안경을 고가의 사치품으로, 안경 산업을 거대한 패션 사업으로 격상시켰다. 아르마니, 샤넬, 프라다, 베르사체부터 레이벤, 오클리까지 거의 모든 선글라스 브랜드가 그가 이끄는 이탈리아의 룩소티카라는 회사의 공장에서 만들어진다.1998년 아르마니와의 계약을 시작으로 20여 년 동안 12명의 유명 디자이너들과 협업해 개당 1000달러가 넘는 고급 안경 시장을 창조해 냈다. 20달러 안팎의 범용 브랜드였던 레이벤이 그의 인수 후 150달러로 평균 7배나 올랐다. 최근에는 미국 안과 의료보험 2위 업체인 아이메드 비전 케어를 인수해 눈 보험시장까지 장악했다. 2004년 70세에 은퇴를 선언했다가 10년 후 80세에 다시 돌아와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양식 진주의 신기원 ‘미키모토 고키치’진주 양식화에 성공해 ‘미키모토’ 브랜드를 탄생시킨 미키모토 고키치.양식이 불가능하다던 진주를 1894년 세계 최초로 성공시킨 사람이 미키모토 고키치다. 당시만 해도 진주는 조개 안에 0.5마이크로미터의 탄산칼슘 결정 구조가 1000겹 정도는 쌓여야 만들어진다고 할 정도로 ‘신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그가 원형 진주 양식에 성공함으로써 진주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 졌고, 이제는 범용적인 고급 액세서리가 되었다.보석상들이 ‘모조품’이라며 인정하지 않을 때마다 그는 오로지 ‘품질 고급화’에 매달렸다. 90%의 양식진주를 불태워버렸을 정도다. 상위 5%의 상등품만 내다 팔고 판매 수량까지 관리하는 덕분에 미키모토 진주는 지금까지 세계 정상에 군림하고 있다. 여기에 독창적인 디자인, 고객의 소비행태 변화에 잘 대처하는 유연성과 신속함도 한 몫 했다.아이러니한 것은 양식 진주 덕분에 고가 천연진주의 원산지였던 페르시아만 일대의 쿠웨이트나 아랍에미리트가 진주 산업을 접고 산유국으로 발돋움했다는 사실이다. 진주 조개의 대안으로 택한 것이 자원개발이었는데 1938년 버간 유전을 시작으로 진주보다 더 고귀한 석유라는 자원을 얻게 된 것이다.◇ 온리원서 넘버원으로… 자전거 왕 ‘킹 리우’세계 최대 자전거 왕국 자이언트를 이끌고 있는 킹 리우 회장킹 리우가 토니 로와 1972년에 대만에서 10만 달러로 공동 창업한 ‘자이언트’는 세계 최대 자전거 메이커다. 1977년 미국 유명 자전거 브랜드 ‘슈윈’에 납품하면서 날개를 단 이들은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1981년부터 본격적으로 자체 브랜드 ‘자이언트’를 생산했다. 지금도 전체 매출 가운데 70%가 이 브랜드에서 나온다. 그들이 만들어주는 회사들도 산악자전거 미국 1위 ‘트렉’, 이탈리아 명품 자전거 ‘콜나도’, 스위스의 ‘스캇’ 등 모두 고급 브랜드들이다. ‘더 가볍고, 더 강하고, 더 빠른 자전거’를 모토로 한 자이언트는 끊임없는 기술혁신 끝에 1987년에 세계 최초로 대량 생산이 가능한 탄소(카본) 섬유 자전거 프레임을 만들어 세계 표준을 제시했다. 리우 회장은 그러나 “자전거를 많이 파는 것보다 사람들이 건강하게 자전거를 계속 탈 수 있게 하는 것이 내 목표”라고 말한다. 저자는 자이언트가 글로벌 1위 브랜드가 된 것도 고객에게 맞춤 피팅을 해 주고, 직원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보는 경험을 선사하는 등 고객과 하나 됨의 ‘초심’을 잃지 않은 덕분이라고 말한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3-12-02 07:00 조진래 기자

[비바100] 행복, 함께 만들어요

(사진출처=게티이미지)1938년부터 현재까지 85년 동안 진행 중인 하버드대학의 세계 최장수 행복 종단 연구의 중간 보고서다. 저자는 그러나 ‘행복’보다 ‘굿 라이프’에 방점을 둔다. ‘무엇이 행복하게 하는가’ 보다 ‘무엇이 좋은 삶으로 만드는가’를 말한다. 결론은 ‘좋은 관계’다. 이것이 더 행복하고 건강하게, 더 오래 살게 해준다고 말한다. 저자는 기초 교육과목 ‘3R’(읽기 Reading, 쓰기 Writing, 산수 Arithmetic)에 ‘관계(relationship)’를 추가할 것을 촉구한다. 그리고 ‘좋은 인생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말한다.세상에서 가장 긴 행복 탐구 보고서|로버트 월딩거·마크 슐츠|비즈니스북스◇ ‘좋은 인생’의 기본은 ‘좋은 관계’저자는 우리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유지해 주는 것은 직업적 성취나 운동, 건강한 식단이 아니라 ‘좋은 관계’라고 말한다. “외로운 사람은 수명이 짧다”고 단언한다. 관계도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수적으로 많고 적음보다 ‘따뜻한 관계’가 우선이라며 “50세 때 자신의 관계에 가장 만족한 사람이 80세에 정신적·육체적으로 가장 건강했다”고 전한다.아리스토텔레스는 자기 삶에 의미와 목적이 있다고 느끼는 깊은 행복의 상태를 ‘에우다이모니아(eudaumonia)’라고 했다. 그 반대는 덧없는 쾌락적 행복을 뜻하는 ‘해도니아(hedonia)’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게 ‘헤도닉 행복’이라면, ‘에우다이모닉 행복’은 인생이 멋지다고 느낄 때의 행복이자 모든 우여곡절을 견뎌낼 수 있는 행복이라고 저자는 말한다.저자는 “호모 사피엔스가 생존한 것은 ‘사회적 존재’였기 때문”이라며 ‘긍정적 관계’가 행복의 필수 요소라고 강조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관계의 ‘혼란’만 과대평가하고 ‘이점’은 과소평가한다고 지적한다. “관계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정 수준을 넘으면 돈은 행복에 별 영향을 못 미치며, 자신을 타인과 비교할수록 불행은 더 커진다고 한다.◇ 인생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소중함인생 경로가 불확실한 청년기에 지나치게 목표 달성에만 몰두하다 보면, 인생에 활력을 주는 ‘개인적인 관계’가 무너질 수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자급자족에 대한 욕구가 자칫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럴 때일수록 가까운 친구, 부모와 형제, 연인이 정말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중년기 때는 안정감은 높아지지만 책임감과 걱정에 스트레스가 가장 많다. ‘결국 이게 전부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자는 그러나 “중년기는 보다 관대하고 외향적인 삶의 방식으로 바뀌는 변곡점”이라고 다독인다. 이 때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은 ‘나’ 자신보다 ‘나 이외의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로 생각을 바꾼 이들이라고 조언한다.저자는 감정적으로 현명해지는 노년기야말로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단언한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생각하면 모든 관계가 더 소중해지고 그 반대라면 미래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때로는 뒤로 물러서 더 넓은 시야로 자신과 아끼는 사람들을 비춰보는 것이 관계에 공감과 이해를 불어넣는 훌륭한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사회적 적합성’, 좋은 관계 유지하기노년 고독은 비만보다 건강에 두 배나 해롭고, 만성 고독은 사망 확률을 26%나 높인다고 한다. 영국은 고독 때문에 드는 비용이 연간 25억 파운드(34억 달러) 이상이라며 ‘고독부’까지 설립했다. 저자는 “고립감을 느낄 때일수록 우리에게는 사랑과 연결, 소속감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저자는 현재 자신이 주변과 맺고 있는 관계를 생각해 보라고 조언한다. 자신이 누구와 가까운지, 그 관계의 특징은 무엇인지를 살펴보라고 말한다. ‘기운을 북돋는 관계’는 연결감과 소속감을 지속적으로 느끼게 해 주지만 ‘소모적인 관계’는 긴장과 좌절감, 불안을 유발하고 사기를 떨어뜨린다고 조언한다.인간관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광범위한 원칙으로 ‘관대함’을 강조한다. 다른 이를 도우면 돕는 사람에게도 이익이라는 것이다. 다음은 과거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에 마음을 여는 것이다. 마지막은, 근본적인 호기심이다. 상호 배려의 선례를 만들고 연약한 유대감의 강도를 높여주어 이런 연결을 통해 삶에도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고 말한다.◇ 현재에 집중하며 주위에 관심을저자는 ‘시간’과 ‘관심’이 행복의 필수 재료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시간이 있어도 정작 중요한 일에는 쓰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그래서 우리의 관심의 흐름이 어디로 흐르는 지 살펴보라고 권한다. 우리 자신과 사랑 하는 이들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가고 있는지도 자문하고 그것에 집중하라고 조언한다.여기서 ‘마음 챙김’ 기반의 스트레스 감소 요법을 소개한다. 꼭 명상이 아니라도, 그냥 멈춘 뒤 주의를 기울이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도 좋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관계 구축에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공감 노력이 중요하다는 얘기다.관계 개선에 도움 되는 ‘W.I.S.E.R 모델’도 제시한다. 호기심 있게 지켜 보고(Watch), 멋대로 오해 않도록 잘 해석하고(Interpret), 뭘 해야 할 지 스스로 물어봐 신중하고 의도된 대응 방식으로 선택(Select)한 후에, 주의를 기울여 개입(Engage)해 실행에 옮기고, 반성(Reflect)과 성찰을 통해 우리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사진출처=게티이미지)◇ 어쩌면 우리 삶 그 자체인 ‘가족’저자는 하버드 연구에 참여한 모든 가족의 한 가지 공통점이 ‘꾸준히 이어진 변화’라고 말한다. 새로운 자리와 역할이 주어질 때 정서적으로 잘 적응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 면에서 ‘따뜻한 관계’가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어릴 때 가족들과 친밀하고 따뜻한 경험을 한 사람은 60여 년 뒤에도 파트너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서로 의지하며 도울 가능성이 더 높았다고 전한다.저자는 가족끼리 저녁 식사를 강력 추천한다. 규칙적인 저녁 식사가 아이들의 평균 성적과 자존감을 높이고 약물 중독이나 우울증 위험도를 낮추며, 건강한 식습관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전한다. 항상 좋은 대화를 나눌 순 없겠지만 함께하는 것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선 안된다며 “직접 보고 이야기를 나눈 것 만큼 좋은 관계 증진 방법은 없다”고 강조한다.◇ 가장 친밀한 커플과의 관계친밀한 커플 관계임에도 감정이 격해지는 경우가 흔하다. 그 대부분은 ‘작은 차이’를 실제 보다 크게 느끼기 때문이다. 저자는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라고 말한다. 서로의 진짜 감정을 알아내 관계를 더욱 활성화시킬 기회를 만들어 보라고 권한다.신뢰할 만한 친밀한 파트너는 스트레스를 감소시킨다. 이런 관계는 노년기에 특히 중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방식으로 서로 의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가장 깊은 취약성을 공유할 사람이 곁에 있는 지 여부는 절망과 행복을 가르는 핵심적 차이가 된다. 자기희생이 따를지라도 이 역시 만족감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저자는 파트너와 인생 길을 잘 걸어갈 방법도 소개한다. 먼저, 파트너의 작지만 기분 좋은 행동을 그냥 알아차리라고 말한다. 다음은 오랜 루틴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새로운 행동이나 활동으로 의외의 즐거움을 주라는 얘기다. W.I.S.E.R 모델을 사용해 볼 것도 권한다. 논평하지 않고 듣기, 상대 감정이나 행동 이해하기, 적당한 거리두기 등도 조언한다.(사진출처=게티이미지)◇ 인생의 거친 파도에서 우리를 보호해 주는 ‘우정’저자는 “우정은 무의식적인 습관에 가깝다”고 말한다. 역경을 견디게 돕고 스트레스를 줄여주거나 빨리 털어내게 해 준다. 호주에서의 종단연구에서는 70세 이상 참가자 중 가장 강한 친구 네트워크를 가진 사람이 가장 약한 사람보다 10년 내 사망할 확률이 22% 낮았다. 스웨덴에서는 사회적 연결이 강할수록 어떤 사망 위험이든 6년 동안 거의 4분의 1로 줄었다.저자는 “좋은 친구는 전쟁터의 갑옷과 같다”고 표현했다. 가벼운 우정이라도 유지하려면 친구의 말을 먼저 경청하고, 자신의 사회적 루틴을 생각해 보고, 서로에게 바라는 바를 잘 살피라고 권한다. 그러면서 “친구를 사귀기에 늦은 때란 없다”고 힘 주어 말한다.◇ 직장에서 좋은 관계가 삶의 질을 높인다우리는 일을 해서 가족을 부양하지만, 일이 우리를 가족과 멀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양 쪽이 불균형하다면 문제가 생긴다. 직장 내 외로움은 건강에 좋지 않다. 실제로 외로움은 흡연이나 비만만큼 사망위험을 높인다고 한다. 저자는 자신과 공감하는 동료, 멘토와 멘티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멘토링 관계는 둘 모두를 성장시키고 더 보람된 직장 생활을 만든다고 말한다.‘이상적인 은퇴’에 관해서도 조언한다. 은퇴 후 최고의 성과를 거둔 이들은 직장에서 오랫동안 그들을 지탱해준 사회적 관계를 새로운 ‘동료’로 대체할 방법을 찾아낸다고 강조한다. “결국 일도 우리 인생”이라며 인간관계를 통해 모든 이를 풍요롭게 할 수 있다면, 그만큼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3-11-25 07:00 조진래 기자

[비바100]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권력자다

(사진출처=게티이미지)권력은 누구에게나 주어질 수 있다는 ‘권력의 수평적 본질’을 탐색한 책이다. 스탠퍼드대학 석좌교수인 저자는 “우리 모두는 권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보다 약한 존재들을 진심으로 보살피는 방법으로도 지위를 높일 수 있다”며 “권력을 잘 사용하는 것이란 그런 것”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권력을 연기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됨을 믿는다”고 말한다. 권력이 주는 힘과 달콤함의 유혹을 이겨내고, 권력을 두고 우리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이 이 책에 담겨 있다.수평적 권력|데버라 그룬펠드|센시오◇ “우리는 모두 권력을 갖고 있다”우리는 권력이 클수록 더 나은 삶을 더 오래 누릴 수 있고, 죽은 후에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을 수 있다고 여긴다.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권력을 추구한다. 하지만 막상 권력을 갖더라도 ‘좋은 사람’이 되는 법을 모르기에, 권력만 잡으면 모두가 악당이 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저자는 “권력은 지위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지위가 없어도 권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공식적인 권한이 없어도 권력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권력은 영향력과도 다르다고 말한다. 영향력은 권력의 ‘효과’라는 것이다. 그는 “한 마디로 권력은 사회통제 능력”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권력을 잘 쓰려면 권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도 잘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저자는 “권력은 개인의 특성이나 소유물이 아니며, 개인에게 주어진 권리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부와 명성, 카리스마, 자신감 등 권력과 동일시되는 개인의 특성들은 사실은 권력의 ‘결과’라고 지적한다. 권력은 영원하지도 않다고 말한다. 특정 상황에 누가 더 큰 가치를 더하느냐로 결정되기 때문이라며, 유일무이한 지식이나 기술에 더 큰 권력이 따라온다고 강조한다.저자는 권력이 사회계약의 일부이며 ‘감정’이 아니라고 힘 주어 말했다. 권력을 차지한다고 저절로 존경이 따라오거나 사회적 지배력이 생기지는 않는다고 거듭 강조한다. 권력을 과시해야 하는 사람일수록 그 권력은 보잘 것 없을 가능성이 크다고 꼬집는다. 그는 특히 권력은 ‘지배’가 아니라 ‘관계’라고 역설한다. 권력은 협조와 연결, 신뢰가 바탕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권력은 ‘자기 목적을 위해 타인을 통제하는 능력’이기도 하지만 타인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주는 능력이기도 하다고 강조한다.그는 “우리 모두가 권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하급자라도 자신의 가치만큼 권력을 갖는다고 강조한다. 권력은 그것을 휘두르고 과시하고 누가 우월한지 사람들에게 일깨워줄 수 있는 반면에 권력을 억누르고 숨기고 사람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일깨울 수도 있다고 말한다. 권력을 잘 쓰려면 이런 ‘권력의 두 얼굴’을 편하게 다 드러내야 한다고 조언한다.◇ 부패한 권력자의 세 가지 유형저자는 집단의 목표를 달성할 목적으로 권력을 부여받은 사람이 이기적인 목적, 특히 집단 구성원들을 희생하면서 개인의 목적을 이루려 권력을 쓰는 것은 ‘권력 남용’이라고 비판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나 다른 사람들의 문제 해결에 진심으로 헌신하지 않은 채 휘두르는 권력은 온갖 남용과 부패로 이어진다고 경고한다.권력이 부패할 때 생기는 몇 가지 현상도 지적한다. 첫째, 억제에 대한 거부다.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사회적 결과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둘째, 타인에 대한 대상화다. 타인을 개인 목표 달성의 도구로 취급하고 착취하는 경향이 높다. 셋째, ‘나에겐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믿음이다. 자신의 요구가 도를 지나쳤음을 인정할 자제력이나 창피함, 미안함이 없다는 것이다.저자는 부패한 권력자를 악당과 과대망상증, 돈 후안 등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다. 악당은 타인에게 책임을 지우려 권력으로 겁을 주어 지배력을 유지한다. 불필요하게 비판적이거나 가혹하거나 모욕적이며, 인격까지 흠을 잡는다. 과대망상증 유형은 자신이 특권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도움 되지 않는 관계는 쓸모가 없다고 여기고 패배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돈 후안 유형은 권력을 사용하는 이유가 성적인 지배력관 인정을 추구한다. 권력이 성 비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학습된 무력감’에서 먼저 벗어나라부패한 권력은 우리를 ‘무력한 피해자’로 느끼게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환심을 되찾는 것뿐이라고 믿게 만든다. 저자는 “악당과 싸우려면 이런 ‘학습된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에서 먼저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권력자의 ‘악한 매력’에서 도망치라고 말한다. 권력 남용자에게서 빠져나와 스스로의 그림을 그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악당에게 공격의 대상이 되기 쉬운 사람들의 아홉 가지 대처 법도 일러 준다. 먼저, 위험신호를 인식하는 것이다. 특히 거절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을 조심하라고 조언한다. 둘째, 미끼를 물지 말라고 한다. 악당과 물리적·심리적 거리를 동시에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셋째는 자책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책은 곧 상대의 전략에 걸려드는 것이라고 말한다.넷째는 피해자처럼 행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명백한 경계와 우선 순위와 결단력을 갖추거나, 적어도 갖춘 듯이 행동하라고 말한다. 다섯째는 공적인 공간에서 멀리 떨어지지 말라는 것이다. 사적인 맥락이나 역할이 불분명한 맥락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여섯째는 경계를 지키라는 주문이다. 환하게 미소 지으면서도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언이다.일곱 째는 ‘저지하라’이다. 감정에 치우쳐 목소리를 높이거나 야단을 피우기 보다 “방금 한 말이 진심인가요?” 하는 식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여덟째로, 이를 악물고 환하게 웃어라. 분위기를 주도하게 놔두지 않겠다는 결연함이 필요하며, 가끔은 허세도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마지막은 공감 드러내기다. 자신과 타인을 보호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존중’을 보이라는 것이다.◇ 부패한 권력의 방관자가 뒤지 않으려면저자는 차분하고 침착하게 ‘나서는 자’가 되라고 독려한다. 세를 규합해 ‘공동의 항의’가 권력 남용을 막을 수 있도록 하라고 조언한다. 그는 “집단 행동의 문제를 누구나 남의 책임인 듯 취급하면 문제는 더 악화되고 모두가 고통을 겪게 된다”면서 공동행위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단언한다. 다만, 위험을 감수하고 타인의 협력을 유도하는 신뢰 기반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저자는 또 ‘인식하고, 지적하고, 조용히 저항하라’고 제언한다. 대수롭지 않게 보일 수 있는 사소한 위반 역시 훨씬 나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인식하고, 지적하고, 조용히 저항하라고 말한다. 사정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사소한 불의에도 행동하지 않고 합리화한다면, 학대를 그냥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조장하는 것이라고 꼬집는다.저자는 ‘나서는 자’가 되는 네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첫째, 무리에 합류하라. 과거 ‘미투’ 운동에서 보았듯이, 권력남용에 대처할 때는 의사소통과 협력이 공동행동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다음은 유머 구사하기다. 가해자를 농담의 소재로 만들 방법을 찾는 것이다. 권력을 인정하면서도 그런 영향력이 별로 자랑스러워 할 것이 아니라는 뜻을 슬쩍 비추는 것이다.세 번째는 벌칙 구역 만들기다. 문제가 되는 사람을 일시적으로 쫓아내 소외시키는 것이다. 부정적 결과를 경험케 해 반성의 여지를 줌으로써 무라 내 권력 오남용을 단속할 수 있다. 마지막은, 관심 있는 듯 행동하기다. 저자는 “우리가 자신을 관객보다 배우로, 구경꾼보다 출연자로 여길 때 권력 남용을 제대로 감시할 수 있고, 통제할 수도 있다”고 강조한다.◇ 내가 가진 권력,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저자는 “한 인간을 판단하는 척도는 얼마나 막강한 권력을 지녔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권력을 사용하느냐에 달렸다”고 지적한다. 권력자는 스스로 롤 모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며, 자신의 행동에만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리 범위 안에서 발생하는 모든 부정적 영향에 책임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리더십 잠재력을 확인할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첫째는 ‘성취지향성’이다. 권력을 의무로 여기는 리더는 지위나 인정, 평판에 대한 자기욕구보다는 모두에게 유익한 결과를 달성하는 데 힘을 쏟는다고 말한다. 두번째는 ‘헌신 지향성’이다. 카리스마나 호감도 보다는 ‘따뜻한 권력자’가 되어 따뜻함과 유능함을 두루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지막은 ‘집단에 대한 헌신’이다. 개인의 이익이나 기회를 희생하는 습관, 적어도 그런 마음가짐을 보이는 사람이라면 권력을 대하는 성숙한 태도를 지닌 리더라는 것이다.저자는 “이런 기준을 고루 갖춘 ‘선한 권력’이 결국 승리한다”면서 “권력을 잘 쓰려면 우리는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약점과 강점을 모두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두려움에 이끌려 행동할 때 두려워하는 세상이 만들어지고, 희망을 품고 행동할 때 우리는 권력을 너그럽게 사용하고 다른 이를 먼저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되는 신뢰의 기반을 만든다고 강조한다. 저자에게는 그것이 권력의 목적이라고 힘주어 말한다.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2023-11-18 07:00 조진래 기자

[비바100]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지금 우리의 극단적인 근미래 그리고 희망 ‘슈뢰딩거의 소녀’

마쓰자키 유리의 SF단편소설 모음집 '슈뢰딩거의 소녀'는 근미래의 디스토피아를 다룬다(사진=픽사베이)65세가 되면 8개월 안에 죽게 되는 ‘예순다섯 데스’부터 수학이 금지돼 이를 위반하면 사형에 처해지는 왕국에 떨어진 명문고 재학 소녀 이야기 ‘이세계 수학’, 이런저런 이유로 자취를 감춰버린 꽁치 맛 재현을 위해 연대하는 ‘꽁치는 쓴가, 짠가’, 세상에서 사라져야할 존재가 돼버린 비만인들의 서바이벌 게임과 연대를 다룬 ‘살 좀 찌면 안되나요’, Z 바이러스 팬데믹을 맞은 도시 이야기 ‘슈뢰딩거의 소녀’ 그리고 제물 풍습이 남아 있는 외딴섬에서 벌어지는 ‘펜로즈의 처녀’까지.근미래의 니폰, 도키오를 배경으로 한 이 이야기들은 어쩌면 진짜 우리의 가까운 미래일지도 모른다. 남녀, 보수와 진보, 국가 간, 세대 간 양극화가 극단으로 치달으며 혐오와 불통으로 점철되는 사회가 심화된다면 마쓰자키 유리의 SF단편소설 모음집 ‘슈뢰딩거의 소녀’ 속 디스토피아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늘어나는 인구 때문에 환경파괴, 식량부족 등의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가 세운 65세면 죽어야 하는 정책과 반드시 이루고 싶은 걸 적은 ‘65 리스트’ 존재하고 죽음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돼주는, 죽음의 공포를 전문적으로 치유하는 불법의사도 존재한다.수학을 금지하다 못해 사용자에게는 사형까지 시키는 왕국은 수학점수로 고민하는 청소년들에겐 천국일까. 비만율 억제를 내세워 정권을 잡은 국민건강증진당이 뚱뚱하다고, BMI 수치가 높다고, 의료비에 부담을 준다고 해고하는 데서 더 나아가 죽이기 위한 ‘다이어트왕 결정전’이라는 대국민 이벤트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슈뢰딩거의 소녀|마쓰자키 유리(사진제공=빈페이지)좀비를 연상시키는 Z 바이러스가 창궐한 도시와 인간의 곁을 지키는 경호AI ‘프렌드 아이’, 사람을 제물 삼는 콩데이 섬 등 각 소설 속 주인공들의 세상은 극단적이다. 사라진 꽁치 소금구이 맛을 재현하기 위해 분투하는 소녀의 이야기 ‘꽁치는 쓴가, 짠가’ 속 세상은 애교 수준이다.사실 굳이 미래에서 찾을 필요도 없다. 노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불거지고 심화되는 나이든 이들과 젊은 사람들의 갈등, 비만을 혐오하는 눈길, 본질은 보지 않고 점수와 경쟁으로만 점철된 일들, 굳이 수학이 아니더라도 진정 원하는 것에 눈 감아야 하는 현실, 환경파괴 등으로 자취를 감춰버리는 것들, 점점 잦아지는 바이러스 팬데믹 등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다.그에 대처해 노인의 일괄 사망, 합법적인 혹은 게임처럼 즐기는 비만인 살해, 일촉즉발의 생존게임 등 극단적인 정책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슈뢰딩거의 소녀’ 속 디스토피아로 갈 출발선에 우리는 이미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디스토피아’라는 단어에서 떠올리는 우중충함이나 칙칙함, 기계적인 차가움, 인간성을 상실한 비정함, 우울감 등은 다소 덜하다. 오히려 핑키시(Pinkish)하고 때로는 유쾌하며 가볍고 단순하며 또 어떤 때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현실의 부조리를 닮았다.그래서 양자역할을 바탕으로 한 다세계 이론 ‘슈뢰딩거의 고양이’(Schrodinger‘s Cat) 가설이나 인간과 교신이 가능한 지적 외계생명체 문명의 수를 계산하는 드레이크 방정식(Drake Equation), 보통은 증명 보다는 암기로 알고 있는 이차방정식 등을 소재로 함에도 일상적이며 온기가 돌며 희망적이다.그렇게 작가는 꽤 있을 법한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지금의 문제를 비틀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 핵심은 연대와 용기다. “넌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아이”라던 아버지 슬하에서 자랐던 무라사키는 죽기 1년 전 자신을 닮은 사쿠라를 만나 후계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애쓰다 희생한다.스스로가 좋아서가 아니라 항상 수학 만점을 맞는 옆자리 남학생 다니야마와 같은 학교에 가고 싶어 암기가 통하지 않는 어려운 수학문제만 출제되는 명문 기요토대학 진학을 꿈꾸던 에미는 수학이 금지된 왕국에서의 경험으로 수학을 좋아하게 되고 진학 보다는 진짜 좋아하는 것을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더불어 말도 안되는 대국민 이벤트로 비만인을 죽이려는 정부에 대항하는 리바운드·못타이나이·야케구이의 눈물겨운 연대가 촉발시킨 정권퇴진, 사라진 꽁치 소금구이 맛을 재현하는 소녀·증조할머니·숯쟁이 그리고 촉각 재현 AI 등의 의기투합 등에는 본질을 꿰뚫고 삶을 온전히 나로서 살아내는 데 유효한 메시지들이 담겼다.그렇게 ‘슈뢰딩거의 소녀’는 SF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지금의 사회 현상과 문제들을 반영하고 근본적으로 질문하게 한다. 유난하지 않지만 유니크하게, 슬프지만 유쾌하게, 차갑지만 온기가 돌게, 얼토당토 않지만 동화처럼 천진하게 그리고 때로는 사랑스럽게.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3-11-13 18:00 허미선 기자

[비바100] 조용한 럭셔리 탐하고, 육각형 인간을 꿈꾼다

올드머니 따라하기가 유행하면서 20대 젊은이들도 자신의 경제적 여건을 크게 따지지 않고 승마나 요트 등 고급 취향의 즐길거리를 찾아나서고 있다.(사진출처=게티이미지)2013년에 첫 출간된 라이프 트렌드는 이제 국내를 대표하는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전문 시리즈로 자리매김 했다. 매년 핵심 트렌드를 선정해 날카롭고 흥미진진한 전망과 분석을 제공한다. 올해 최대 키워드는 ‘올드 머니(OLD MONEY)’다. 매년 영문 조어 새기기로 새해의 소비 트랜드를 제시해 온 서울대트렌드연구소도 장기 베스트셀러다. 내년에는 장기 불황에서 벗어나 경기 반등의 ‘화룡점정(畵龍點睛 )’을 찍었으면 하는 소망을 반영해 ‘DRAGON EYES(용의 눈)’을 2024년의 키워드로 정했다. ◇ 라이프 트렌드 2024 “부자 되기는 멀다. 하지만 부자처럼 보이는 것은 가깝다”라이프 트렌드 2024|김용섭|부키2024년의 대표 트렌드로 ‘올드 머니(OLD MONEY)’가 선정되었다. ‘올드 머니’는 사전적 의미로 ‘번 것이 아니라 물려받은 부’를 말한다. 가문 대대로 물려받은 부, 혹은 그런 부를 소유한 부자를 지칭한다. 이들은 돈이 많다고 자랑하지 않는다. ‘조용한 럭셔리’와 ‘스텔스 웰스’를 추구한다. 티나는 명품보다는 아는 사람만 아는 특별한 명품을 선호한다. 여러 대에 걸쳐 예술에 투자하고, 문화 자산을 쌓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기부와 자선에도 적극 나서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다.이를 흠모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올드 머니’의 패션과 취미, 일상의 라이프스타일을 소비하는 것이 꿈이자 로망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부자가 되는 건 멀지만 부자처럼 보이는 것은 가깝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다. 요즘의 1020, 2030 세대가 바로 그런 것을 욕망한다. 진품이 아니어도 괜찮다. ‘짝퉁’이라도 올드 머니로 보일 수 있다면 족하다. 저자는 “진짜 부자는 못되더라도 일부만이라도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누리고 싶어하는 것은 합리적 선택”이라고 옹호한다.(사진출처=게티이미지)2030세대는 이제 골프나 테니스 같은 귀족 스포츠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곧 승마와 요트로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패션에서도 에르메스, 롤렉스 같은 하이엔드 럭셔리 브랜드를 추구한다. 배낭여행 대신 럭셔리 리조트와 고급 료칸, 에어비앤비를 통한 고품격 여행에 천착한다. 젊은 세대가 문화, 예술, 스포츠 등 전방위에서 럭셔리 스타일을 추구하면서 2024년에는 ‘올드 머니 트렌드’가 패션과 취향을 넘어 라이프스타일과 사회, 문화, 경제 등 전방위에서 변화와 파급 효과를 이끌 것이라고 전망된다.벼락부자 같은 신흥 부자 ‘뉴 머니(New Money)’도 올드 머니를 지향한다. 그들을 따라 우아한 라이프 스타일을 추종하며 진정한 계층 상승을 원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에 더 적극적이다. 저자는 “부자는커녕 부모 세대보다 더 소득이 적을 세대가 올드 머니에 관심을 쏟는 것은 새로운 욕망이자 새로운 스타일에 대한 갈구일 수 있다”며 “이는 허영이나 망상이 아니라 즐겁게 만족하며 살아가기 위한 합리적 대응”이라고 말한다.저자는 이밖에도 최근 두드러진 트렌드의 하나로 반려 동물 확산을 든다. 결혼보다 반려동물과의 사랑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한다. 반려자의 의미가 바뀌어야 할 상황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월 평균 반려동물 양육비가 15만 4000원에 달해도 아랑곳 않는다. 반려동물보험시장이 커질 가능성도 충분해 보이는 이유다. 1인 가구 증가와 추세를 함께 한다는 점에서 눈 여겨봐야 할 시장이다. 최근에는 기업들도 반려동물보험을 지원해주고 반려동물 돌봄 시설을 만들어주는 등 관련 복지 혜택도 빠르게 늘고 있다.‘각집살이’도 새 트렌드로 지목됐다. ‘별거’가 이혼에 가깝다면 ‘각집살이’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부부가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유형으로 인식된다. 졸혼(卒婚)도 그 한 유형이다. 저자는 또 2024년에 새롭게 떠오를 핫 플레이스 후보지를 소개하고, 지구 열대화 시대를 맞아 갈수록 주목받는 폭염 경제와 ‘펀임플로이먼트’로 대변되는 Z세대의 직업관 변화, 그리고 전 세대로 확장된 얼리 안티 에이징 욕망과 관련 기술의 발전 등을 대세 트렌드로 소개한다.◇ 트렌드 코리아 2024 “완벽한 ‘육각형 인간’ 추구, 그리고 같은 가치관의 동반소비”트렌드 코리아 2024|김난도 외|미래의창‘DRAGON EYES’의 D는 ‘분초사회’다. Don’t Waste a Single Second: Time-Efficient Society이다. 시간은 돈보다 더 중요한 자원이 되면서 이른바 ‘시간의 가성비’가 필요해진 시대다. 단순히 소유하는 것을 넘어 보다 다양한 것 들을 경험하고 즐기는 경향이 확산되면서, 주어진 시간을 분초 단위로 쪼개 써야 한다. R은 ‘호모 프롬프트’의 출현, Rise of ‘Homo Promptus’이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어떤 질문에도 척척 답을 내놓는 시대가 되었다. 어떻게 질문하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 저자는 그러나 인공지능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 ‘화룡점정’은 인간의 사색과 해석력의 몫이라고 단언한다.A는 ‘육각형 인간’, Aspiring to Be a Hexagonal Human이다. 외모는 물론 학력과 재산, 직업, 성격 등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완벽’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반대로 이는 닿을 수 없는 목표이기도 하다. 저자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흔들리는 사회를 살아야 하는 젊은이들의 활력이자 절망이면서 하나의 놀이”라고 말한다. G는 버라이어티 가격 전략, Getting the Price Right: Variable Pricing이다. 빅 데이터와 인공지능 덕분에 소비자의 지불 의향을 정확히 파악하는 맞춤형이 대세가 되면서 이제 장소, 유통 채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일물 N가’의 세상이 열렸다. 더 이상 ‘최저가’는 없다. 이제 ‘최적가’의 시대이다.1분 1초가 아쉬운 '분초사회'에서는 다양한 경험을 위해 시간을 쪼개 쓰고, 사회적 약자들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돌봄 서비스가 중요해지고 있다.(사진출처=게티이미지)O는 ‘도파밍(On Dopamine Farming)’이다. 요즘 소비자들은 ‘재미’를 최우선으로 여기며 다양한 루트를 통해 ‘재미’를 수집하고 직접 경험한다. 엉뚱하고 기발하고, 전혀 무의미한 것 들이 주목을 끈다. 자극적인 숏폼 콘텐츠가 넘쳐나는 것도 이런 추세의 한 단면이다. N은 Not Like Old Daddies, Millennial Hubbies, ‘요즘 남편, 없던 아빠’이다. 아빠의 역할이 가사 노동과 육아 쪽으로 점점 옮겨 가면서 부부 간 균형점이 이동하고 있다. 권위적 가장은 사라지고 평등한 동반자가 표준이 되고 있다.E는 ‘스핀 오프 프로젝트’, Expanding Your Horizons: Spin-off Projects이다. 숨 가쁜 변화의 시대에 개인들도 자기 개발을 위해 과감히 스핀 오프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 현장은 물론 개인에게도 이제 사이드 프로젝트를 도모하는 스핀오프가 새 성장동력이 되고 있다. Y는 ‘디토 소비’를 지칭한다. You Choose, I’ll Follow: Ditto Consumption이다. ‘Ditto’란 ‘나도 그렇다’는 뜻이다. 나와 가치관이나 취향이 흡사한 사람이나 대세 콘텐츠나 유통 채널의 선택을 따라 하며 단순한 구매 의사결정에 내리는 최근 트렌드를 의미한다. 실패의 두려움을 줄여주는 가장 손쉬운 방편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디토 소비가 대세가 되고 있다.(사진출처=게티이미지)E는 ElastiCity, Liquidpolitan(리퀴드폴리탄) 즉, 유연도시를 말한다. 이제 ‘유목적 라이프스타일’이 대세다. 지역 자체가 ‘고정된 공간’이 아니라 ‘이동하고 흐르는 유연한 공간’이 되고, ‘정주 인구’보다 ‘관계 인구’에 방점이 찍힌다. 지역 소멸의 새로운 대안이자 해법이다. S는 ‘돌봄 경제’를 말한다. Supporting One Another: ‘Care-based Economy’이다. 초개인화하는 나노사회, 1분 1초가 아쉬운 분초 사회에서는 더더욱 ‘돌봄의 시스템화’가 중요하다. 사회적 약자만이 아닌,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서비스로 돌봄이 진화하고 있다. 돌봄 경제를 통해 개인은 물론 관련 조직과 사회 경쟁력이 싹 튼다고 저자는 말한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3-11-11 07:00 조진래 기자

[비바100] 캤다! 찾았다! 진짜 원조

(사진출처=게티이미지)고고학은 어찌 보면 ‘원조’를 다루는 학문이다. 역사학이 역사 기록을 바탕으로 한다면, 고고학은 발굴된 유물에 근거한다. 저자는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출신으로 현재 경희대 사학과 교수 겸 한국고대사고고학연구소 소장이다. 발굴과 연구 만큼이나 대중과 고고학의 거리를 좁히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는 학자다. 이 책은 그가 들려주는 ‘죽어가는 유물이 들려주는 살아 있는 이야기’이다.세상 모든 것의 기원|강인욱|흐름출판◇ 막걸리와 소주 (사진출처=게티이미지)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탁주인 막걸리는 해외에서 ‘1달러의 기적 같은 술’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중국에서는 허난성 자후(買湖) 유적에서 쌀에 꿀과 과일을 섞은 막걸리를 담았던 흔적이 남은 토기가 발견되었다. 이 토기를 근거로, 제사 때 음복하는 풍습이 1만 년 가까이 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증류주인 소주는 몽골을 기원으로 본다. 제국 건국과 함께 증류 기술을 널리 공개하면서 소주는 ‘세계의 술’이 되었다. 최근에는 ‘베갈’이라는 증류주(백주)의 기원이 중국이라는 주장도 대두됐다. 2006년 만주 지린성 다안의 한 맥주공장 증축 현장에서 발견된 거란 시대 술고리(술 빚는 솥과 쟁반)를 복원하니 요즘 술과 비슷한 도수 40~50도의 증류주가 만들어졌음이 확인되었다.◇ 김치(사진출처=게티이미지)유라시아를 중심으로 동서양 곳곳에서는 김치와 유사한 배추 발효 음식들이 널리 유행했다. 중국에서도 3000년 전 주나라 문왕이 절임 채소를 먹었다는 기록이 여씨춘추에 남아 있다. 현재 우리가 아는 배추는 고려 혹은 조선시대에야 한반도에 전해진 것으로 관측된다. 고추를 넣은 매운 김치는 400년, 통배추를 버무린 김장의 역사는 150년 남짓에 불과하다. 저자는 김치 원조 논쟁이 무의미하다며, 전 세계 채소 절임 요리 가운데 우리 김치만큼 다양한 젓갈류로 풍미를 끌어올린 음식은 없다고 말한다.◇ 삼겹살과 소고기, 그리고 닭(사진출처=게티이미지)염장을 한 우크라이나의 전통 생 삼겹살 ‘살로(salo)’는 얇게 잘라 빵에 얹어 먹는데, 열량과 비타민이 풍부해 추운 러시아에서도 인기다. 돼지비계는 상하기 쉽고 역한 냄새가 강해 요리가 쉽지 않지만 고대 로마에서도 ‘라르도’라는 음식에 활용되었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우리나라에서 비계 특유의 잡내 탓에 1970년대가 되어서야 삼겹살 구이가 본격 유행했다.소는 꼬리부터 발톱까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고기다. 가축 소는 야생소 ‘오록스(aurochs)’에서 기원했다. 구석기와 신석기 초기 벽화에서 보는 뿔 달린 소다. 이를 근동 지역에서 가축화해 약 6000년 전 실크로드를 통해 동아시아로 전해졌다. 국제적으로 공인된 한우는 황우와 칡우, 흑우, 제주 흑우 등 네 가지인데 일제강점기에 한우로 표준화되어 전통 소의 명맥이 끊겼다.닭은 새벽에 울어 새로운 시간을 연다는 의미에서 길조(吉鳥)로 여겨졌다. 붉은 벼슬이 악한 마귀를 쫓아낸다며 영물로도 인정받았다. 복을 부른다고 해 생물로 전통 혼례상에도 올라갔다. 우리 신라를 계림(鷄林)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인연이 깊다. 천마총에서는 권력의 상징으로 ‘달걀’이 출토되기도 했다. DNA 분석 결과 우리 토종 닭은 중국 운남성에서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축구(사진출처=게티이미지)현대식 축구의 역사는 150년 정도 밖에 안된다. 하지만 둥근 공으로 차는 놀이로 확장하면 이집트 시대로 올라간다. 마야 문명에서는 공을 태양처럼 신성시해 공놀이 경기에서 지면 목숨을 잃는 ‘데스 매치’였다. 유라시아 초원에서는 말 위에서 공을 겨루는 격구(擊毬)가 발전해 동아시아로까지 전파됐다. 현대 축구의 원형인 축국(蹴鞠)은 기원 전 3~4세기 경 중국에서 처음 시작됐다. 네모난 경기장에서 동그란 공을 차는 방식이기에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철학을 구현한 놀이로 여겨졌다. 이후 동아시아로 전파되었으나 몸싸움이 심한 놀이라 유교나라 조선에서는 인기가 없었다고 한다.◇ 낙서중앙아시아 소그드인의 오래 전 낙서인간은 직립보행을 하면서 양 손의 자유를 얻었다. 낙서도 그 산물이다. 터부시 되는 인간의 욕망을 담아내는 통로이기도 했다. 과학잡지 네이처에 따르면 50만 년 전 인도네시아에서 발견된 자바원인 유물에서 지그재그로 낙서한 조개껍데기가 있었다. 남아프리카에서는 7만 3000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동굴에서 붉은 물감으로 그려진 낙서가 발견됐다. 이집트 카이로 남부의 아트리비스라에서는 2000년 전 어린 학생이 토끼 쪼가리에 끼적인 것으로 추정되는 낙서가 자화상 그림 낙서와 함께 발견되었다. 실크로드 둔황에서 발견된 문서에는 불경 뒷 면에 성적 능력이 과장되게 그려진 낙서가 발견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개와 고양이(사진출처=게티이미지)개의 원조는 구석기 시대 얼어붙은 들판을 헤매며 인간을 물어뜯고 해치던 야생 늑대였다. 야생 늑대가 개로 바뀌는 것은 5만 년 전 이상이다. 현재까지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벨기에 ‘고예 동굴’에서 발견된 3만 6000년 전의 늑대 흔적이다. 오늘 날의 개는 빙하기가 끝날 무렵인 1만 5000년 전 유럽 근방에서 서식하던 회색늑대를 길들이며 동고동락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고양이는 기원 전 6세기 페르시아 때부터 인간이 정성껏 키우고 모셨던 동물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숭배의 대상이기도 했다. 다산과 풍요의 여신이 고양이 모습으로 묘사되곤 했다. 신석기 시대에 근동 지역에서 약 9000년 전, 중국에서는 5000년 전의 것이 가장 오래된 흔적으로 평가된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곡식을 갉아먹는 쥐를 소탕할 동물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도굴(사진출처=게티이미지)도굴은 예로부터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하지만 그 성과가 워낙 엄청났기에 상당히 성행했다. 진시황의 14대 조인 진경공의 무덤은 도굴 갱이 250여 개나 발견되었을 정도로 도굴 꾼 들의 공략 대상이었다. 그렇기에 진시황은 자신의 무덤을 축구장 3개 넓이보다 넓게 조성하면서도 극비에 부쳤다. 삼국을 통일했던 조조는 군사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무덤을 파헤치는 부대, 보물을 긁어모으는 부대를 별도로 만들어 왕릉을 도굴했다고 전해진다. 정작 자신의 무덤은 어디에 조성했는지 극비에 부쳐 지금도 그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묘는 많지만 진위 여부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인삼인삼은 세계 역사를 바꾼 명약이다. 2000년 전 중국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당시에도 백두산 일대가 대표 산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구려와 백제가 진상품으로 인삼을 중국에 선물했다는 기록이 삼국시대부터 나온다. 백두산에 인접했던 발해는 인삼의 주산지였다. 당시 인삼을 채취하던 도구가 최근 유적으로 발견되기도 했다. 조선은 유일하게 인삼 건조 기술을 보유해 큰 인기를 끌었다.◇ 미라레닌의 시신은 방부 냉동처리되어 러시아가 특별관리 중이다.‘미라’라고 하면 이집트를 먼저 떠올리지만, 북극해에서부터 남아메리카 잉카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도 발견되었다. 이집트가 의도적으로 영구보존을 위해 미라를 만들었다면 여타 지역은 시신이 잘 썩지 않고 잘 보존될 수 있는 온도와 습도 덕분에 우연히 미라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에는 345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미라를 만드는 법’이 적힌 파피루스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 기록에 따르면 35일간 건조하고 35일간 붕대를 감는 등 총 70일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미라 기술은 현대에 와서는 소련으로 이어져, 레닌의 시신이 미라로 제작되어 영구 보존되고 있다.◇ 마스크마스크는 원래 의료 목적이 아니라 ‘신’을 상징하는 도구였다. 고대에는 하늘의 뜻을 인간에 전해주는 대리인 ‘샤먼’의 전유물이었다. 많은 나라에서 죽은 이를 매장할 때 얼굴에 복면 같은 것으로 감싸는 장례 풍습을 갖고 있었다. 실크로드에서는 유난히 황금 마스크가 많이 발굴되었다. 지금처럼 마스크가 의료용 도구로 바뀐 것은 120여 년 전부터로 관측된다. 현대식 마스크는 17세기 유럽에서 패스트가 한창일 때 프랑스 의사가 처음 개발한 것으로 전해진다.◇ 문신(사진출처=게티이미지)예로부터 문신은 유라시아 유목 전사들에게 계급장과도 같은 것이었다. 공을 세우고 계급이 올라갈 때마다 문신이 늘어난 것으로 짐작된다. 고대인들에게는 문신은 대체로 주술적이고 신령한 의미를 담고 있었기에 문신에 쓰이는 재료도 귀한 것으로 썼다. 솥에서 떼어낸 숯 검댕이 등이 주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에는 얼굴 문신의 전통이 남미나 태평양 섬에 사는 소수 민족들 사이에서만 전해지지만 여러 유물을 통해 오래 전 고대 유라시아 전역까지 얼굴 문신 문화가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3-11-04 07:00 조진래 기자

[비바100] 떴다! 떴다! 태양광 비행기~

태양광 에너지로 미국 샌프란시스코 도심을 비행하고 있는 태양광 비행기.(사진=솔라임펄스재단)KOTRA가 올해도 전 세계 해외무역관에서 엄선한 트렌드 이슈를 소개하는 2024 한국이 열광할 세계 트렌드를 내놓았다. 맞춤형 젤리 영양제부터 자율주행 유아차, 짜고 매운맛을 내주는 그릇과 수저, 모래 배터리 등 실생활에 도움 될 미래형 제품과 서비스는 물론 비즈니스의 새로운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는 핫 아이템들을 풍성하게 소개한다.2024 한국이 열광할 세계 트렌드|KOTRA|알키◇ 미래형 ‘퓨처 테크’맞춤형 젤리 영양제 ‘노리시드 젤리’.(사진=노리시드)개인 맞춤형 젤리 영양제 ‘노리시드 젤리(Nourished Jelly)’는 영국 스타트업 ‘노리시드’가 개인의 건강 상태와 생활 패턴에 꼭 맞는 7가지 영양소를 선별해 필요한 양 만큼 젤리에 담아 선 보인 제품이다. 보관과 휴대가 쉽고 물과 함께 복용할 필요가 없어 편리하다. 모든 재료가 ‘비건’으로 제조되고 3D 프린터로 만들어진다. 한 알에 1.29파운드(약 2100원) 정도에 불과하다. 홈 페이지에서 현재 건강상태와 생활패턴에 관한 설문조사에 응하면 7가지 맞춤형 영양소를 추천해 준다. 주문 후 일주일이면 받아볼 수 있다. 구독 주문도 가능하다. 장년 및 고령을 위한 제품이지만 유아와 청소년을 위한 별도 제품들도 판매한다.스타와 직접 만나볼 수 있는 플랫폼 ‘민리’ 화면. (사진=민리)‘최애 스타’와 독자를 연결해 주는 온라인 플랫폼 ‘민리(Minly)’는 이집트에서 시작해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초개인화 경험을 제공해 스타와 팬 간 소통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모바일 앱이나 웹사이트에 접속해 민리에 등록된 1000여 명의 스타 중 좋아하는 대상을 골라 생일축하 노래나 응원 메시지 등 원하는 내용을 요청하면 영상이나 메시지를 보내 준다. 아랍에미레이트에서 인기를 끌던 유사 플랫폼 ‘울로’ 인수를 계기로 세를 더욱 확장 중이다.1200곳이 넘는 다양한 스타일의 지역 양조장을 보유한 ‘수제 맥주의 천국’ 캐나다에서는 최근 인공지능이 빚은 맥주가 큰 인기다. 전통 양조업체인 그레인 빈 브루잉 컴퍼니가 올해 2월에 선보인 ‘앰버 웨이브 오브 그레인(Amber Waves of Grain)은 레시피는 물론 제품명, 가격, 디자인 등을 모두 챗GPT의 도움으로 만든 세계 최초의 AI 수제 맥주다. 앞서 2021년에는 맥주 생산에 인공지능을 활용한 캐나자 최초의 인공지능 맥주 ’리틀로보틱‘이 선보이기도 했다. AI봇이 개발한 ’새스커툰 베리 사워 맥주‘는 브라인드 평가에서 60%의 표를 얻어, 양조 장인인 루바브 진저 사워 맥주를 누르기도 했다.모래 베터리가 이용되는 발전소. (사진=마갈디그룹)미래형 에너지로 주목을 끄는 것이 ‘모래 배터리’다. 모래는 높은 열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데다 이 열을 전기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다. 물의 4배에 달하는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어 열 손실율도 10% 안팎으로 매우 낮다. 이탈리아 로마 소재 ‘마갈디그룹’에서 전력으로 전환이 가능한 모래 배터리를 개발해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2024년에는 이 배터리로 첫 번째 발전소도 가동할 계획이다. 모래 배터리를 사용하면 가격을 기가와트 당 20유로(2만 8000원)로 절반 이상 낮출 수 있어 높은 가격경쟁력이 기대된다. 재생에너지의 패러다임 전환도 가능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기대하고 있다. ◇ 뉴 노멀 라이프당뇨 환자들도 맛깔나는 음식 맛을 느낄 수 있는 ‘일렉솔트’. (사진=기린홀딩스)‘일렉솔트(Elecsalt)’는 당뇨 환자에게 찌개나 라면의 맵고 짠 맛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일본의 기린홀딩스가 저염식에 입맛을 잃고 괴로워 하는 환자들을 위해 메이지대학 미야시타 호메이 연구실과 협업해 전기의 힘으로 짠맛을 1.5배 높여주는 국그릇과 스푼을 개발해 올 연말 출시를 앞두고 있다. 그릇 옆면과 스푼 손잡이의 스위치를 누르면 인체에 유해한 미세한 전류가 흘러, 실제로는 저염식인데 짠 맛이 느껴지게 해 준다. 실제 실험에서 31명 중 29명이 약 1.5배 더 짜게 느꼈다고 답했다고 한다.갱년기 여성들을 위한 이른바 ‘펨테크(FemTech)’ 제품들도 관심을 끈다. 갱년기 여성의 80% 정도가 겪는다는 일과성 열감과 홍조 치료를 위한 ‘엠버 웨이브(Embr Wave)’는 손목 시계 형태의 기기에 붙은 냉각 버튼을 누르면 3분 이내에 최소 5~9도 정도 시원함을 느끼게 해 준다. 수면의 질을 높이는 데 효과가 크다. ‘미드데이(Midday)’는 일과성 열감과 수면 장애, 질 건조증, 체중 증가 등의 증상을 관리해 만성질환의 위험을 막아주는 개인 맞춤형 건강 솔루션이다. 갱년기 헬스케어 및 노화방지 요법에 중점을 둔 치료 플랫폼 ‘위노나(Winona)’는 병원에 가지 않고도 치료받을 수 있어 인기가 높다.흠시스템스가 선보인 실내 생활 모니터링 시스템 ‘리비 얼라이브’. (사진=흠시스템스)독일의 ‘흠시스템스’가 선보인 ‘리비 얼라이브(Livy Alive)는 독거 고령자들에게 유용한 실내 생활 모니터링 시스템이다. 벽이나 천장에 장착해 센서를 통해 실내 움직임을 실시간 감지하고 다양한 공기 오염 지표를 측정하는 것은 물론 화재 등 잠재적 위험까지 조기에 파악해 가족이나 간병인에게 알려준다. 외부 침입 감지나 비활성 상태 감지를 통해 도난 경보나 사이렌 알림, 비디오 녹화 등의 기능도 제공한다. 기준치 이상 소음이 발생할 경우 즉시 알려준다. 고화질 카메라와 상호 통신 기능도 갖춰 외부와의 의사 소통이 원활하다. 야밤 낙상 방지를 위해 지능형 야간 조명도 작동한다.자율주행 유아차 ‘엘라’. (사진=글럭스킨드)캐나다 기업 ‘글럭스킨드’가 만드는 자율주행 유아차 엘라(ELLA)는 보호자가 자율주행차의 원리를 유아차로 옮긴 제품이다. 주변 환경을 360도로 모니터링해 잠재 위험을 사전해 감지하고 경고해 준다. 보호자의 걷는 속도에 맞춰 함께 움직이고, 보호자의 팔이 닿는 거리 이상으로 멀어질 경우 자동으로 멈추도록 설계되었다. 내리막 길에서 특히 유용하다. 기능개발은 현재 베타 단계에 있고 추가 기능 보완과 업 데이트를 앞두고 있다. 가격은 3300달러 안팎으로 저렴하진 않지만 자녀의 안전을 희구하는 부모들로부터 사전주문이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그린 이코노미음식으로 음식을 포장하는 친환경 기술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2020년 창업한 ‘세이브지’는 특정 식물에서 추출물을 얻어 코팅물질을 혼합해 얇은 막을 만들어 100% 생 분해되는 코팅제를 만든다. 오이 바나나 같은 거의 모든 채소와 과일에 적용해 성공했고, 앞으로는 육류 등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해 갈 방침이다. 어떤 합성화학물질이나 유전자변형, 미세플라스틱 성분이 포함되지 않는다. ‘플라스틱프리’라는 기업은 밀 싹이나 옥수수 껍질 같은 부산물을 사용해 100% 생분해 가능 제품을 생산한다. 농업 폐기물로 대체 플라스틱 봉투를 만들어 탄소 저감과 식품 유통 혁신에 기여하고 있다.‘테라사이클’이 만드는 ‘제로 웨이스트 박스’는 과자 포장지부터 장난감, 마스크, 헌 옷, 화장품 공병 등 일반적으로 무료로 수거되지 않는 폐기물을 수거하기 위해 제작되어 지자체나 기업에 유료로 판매된다. 이 회사는 2019년에 쓰레기 없는 사회를 표방하며 ‘루프 플랫폼’을 출범시켰다. 다양한 소비재들을 재사용이 가능한 다회용기에 담아 판매한다. 용기 재사용을 통해 기업의 포장 비용을 줄여주는 동시에 회수나 세척 같은 번거로움을 도맡아 처리해 준다. 쓰고 버릴 용기는 인근 매장에 반납하면 재질에 따라 0.5~3달러 정도의 보증금을 루프 앱을 통해 돌려 받을 수 있다.3D 프린트로 만든 대체육. (사진=코쿠스)스페인의 스타트업 코쿠스(Coccus)는 3D 프린팅 대체육을 개발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 회사는 식물 기반의 물질이나 배양된 세포를 가지고 유기물을 합성하는 ‘생합성’의 원리로 대체육을 만든다. 실제 고기를 3차원 입체 컴퓨터 단층촬영을 해 지방과 살코기, 뼈, 힘줄 등을 이미지화해 3D프린터로 출력한다. 재료의 지방층을 줄이거나 늘려 입맛에 따라 고기를 디자인하고 질감 까도 조절할 수 있다. 세포 단충을 형성할 때 특정 효능을 가진 활성성분이나 식이음료 등을 첨가할 수 있어 소비자 특성에 따라 영양소를 달리한 맞춤형 고기를 만들 수 있다. 이슬람 시장에서도 대체육 베이컨이 팔릴 수 있다는 얘기다.◇ 도시와 인간태양광으로 나는 자율주행 비행기. (사진=스카이드웰러)미국과 스페인이 합작해 만든 최첨단 항공우주 스타트업 ‘스카이드웰러’는 지난 2월 7일에 태양광 무인비행기 자율 비행에 성공해 화제를 모았다. 이 회사의 전신인 ‘솔라임펄스 2’는 앞서 태양광만으로 세계일주에 성공한 바 있다. 보잉 747 날개보다 더 긴 71m의 날개에 1만 7000개가 넘는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고 비행기 동체 윗부분에도 장착했다. 낮 동안 저장된 태양 에너지로 배터리 전원을 충전시켜 해가 없는 밤에도 비행할 수 있다. 미국 마이애미에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까지 연중 무휴 비행하는 것을 1차 목표로, 조종사 없는 완전 무인 비행을 궁극적인 목표로 잡고 있다. 미국 에어버스는 군사 및 상업용 위성을 대체한다는 목표 아래 태양광 드론 ‘제퍼(Zephyr)’을 선보였다. 레이더를 피할 수 있는 성층권에 띄울 준비를 하고 있다.로보카인드가 만든 특수 교육용 로봇 '마일로'.(사진=로보카인드)자폐 스펙트럼 아동의 친구이자 선생이 된 로봇이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 스타트업인 로보카인드(RoboKind)가 만든 특수 교육용 로봇 ‘마일로’는 친근하고 귀여운 외모에 그들과의 상호작용을 능숙하게 수행해 큰 인기다. 단순히 녹음된 웃음소리가 아니라 로봇의 눈과 코, 입을 통해 사람의 표정 변화를 직접 구현해 주어 시각적 교육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로봇의 얼굴과 몸에는 모두 29개 모터가 있어 자폐 상대방의 말하기 속도에 맞춰 조절할 수 있다. 이 로봇이 투입된 후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가 2.5% 수준에서 87.5%로 대폭 상승했다는 보고도 있다. 의사 소통과 행동 코칭, 정시 이해 등 16개 주제를 망라하는 142개 발당교육 커리큘럼을 탑재하고 있다.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2023-10-28 07:00 조진래 기자

[비바100] 한·일 상호 인식의 덫… 콤플렉스 넘어 미래로

“무조건적인 비판에서 벗어나 ‘비판의 격’ 높이고 건설적인 미래지향적 파트너십 구축해야”‘일본’에 관해 웬만해선 균형 감각을 지키기가 쉽지 쉽다. 시류에 편승한 ‘국뽕’ 서적들이 많은 이유다. 서울대 동양사학과 박훈 교수의 위험한 일본책은 그런 면에서 상당히 균형적이다. 저자는 ‘비판을 위한 비판’을 경계한다. 일본에 대한 비판도 한 차원 높일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일본’이기에 무조건 거부하는 태도를 바꿔, 이제 미래지향적으로 봐야 할 때라고 촉구한다위험한 일본책|박훈|어크로스◇ 시대에 뒤처진 ‘민족주의’저자는 최근 다시 만연하는 ‘민족주의’에 선을 긋는다. 더 이상 도움 되지 않는 시점이 되었다고 말한다. 예전의 민족주의가 한국인을 단결시키고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면, 지금은 배타적이고 폐쇄적으로 만들 뿐이라고 꼬집는다. 특히 과학이나 학문과 다른 쪽으로 오용되고 있다고 비판한다.저자는 특히 우리가 극복해야 할 민족주의의 한계로 ‘반일’을 든다. 일본을 공격하는 것이라면 다소간의 과장이나 왜곡, 은폐와 날조까지도 눈감아 주는 ‘반일무죄(反日無罪)’를 성토한다. 오류를 알면서도 못 본 척 하고, 문제가 생기면 “아니면 말고” 식으로 빠지는 무책임을 강하게 질타한다.◇ 비슷한 듯 다른 한국과 일본저자는 ‘소용돌이 속의 한국, 상자 속의 일본’이라 표현했다. 조선이 역동적이고 신분제 역시 유동적이었던 반면 도쿠가와 시대 일본은 상자 속에서 자기 ‘분수’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회였다는 것이다. ‘한국은 문(文)·일본은 무(武)의 나라’라는 평가도 부정한다. 젊은 사무라이들이 학문에서 돌파구를 찾아 정치화되었고, 이것이 메이지유신의 촉매제가 되었다고 말한다.저자는 일본은 ‘민란(民亂)’이 없는 나라, 한국은 ‘민심(民心)’의 나라라고 정의한다. 일본은 격동의 19세기에도 난(亂)이라 할 만한 시위가 거의 없었고, 20세기 이후로도 수 십만 명이 모인 시위는 손에 꼽을 정도였던 반면 조선은 ‘여론정치의 나라’ 답게 ‘천심(天心)’인 민심이 세상을 지배하는 사회였다고 말한다.일본은 순위 매기기를 좋아하는 나라다. 스모에서 시작된 ‘방즈케(番付)’가 확산되어 ‘거짓말 방즈케’나 양처(良妻)·악처(惡妻) 순위까지 나올 정도다. 근대 일본이 세계 최강국을 꿈꾸었던 것도 순위 매기기와 무관치 않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저자는 그런 ‘방즈케의 요술’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일본에 대한 ‘얕은 지식’과 ‘얕은 비판’2019년 7월에 수출규제 문제로 불거졌던 한일 갈등은 4년 가까이 지난 올 4월부터 해소 국면으로 접어들었다.저자는 우리가 일본에 대한 높은 관심에 비해 일본에 관한 지식은 얕고 편견이 강하다고 지적한다. 일본이 원래 후진국인데 어쩌다 서양문물을 빨리 받아들여 우리를 앞서게 되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쓰라린 식민지 역사에 대한 보상 심리가 깔린 주장”이라며 “일본은 이미 도쿠가와 막부 때부터 획기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었다”고 반박한다. 실제로 일본은 전 세계 은 생산량의 3분의 1을 맡으며 떼 부자가 되었고, 눈부신 농업 발달로 안정적인 자급자족이 가능했다.특히 메이지 이전부터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교육·출판업이 발달하는 등 어느 정도 준비된 상황에서 서양을 맞았다. 저자는 또 메이지유신에 대한 편견을 지적하면서, 메이지 시대에 일본을 강하게 만든 힘 중 하나로 ‘국민 통합’을 들었다. 처형 당해 마땅한 적의 장수를 구명해 치안을 맡기며, 반란의 주범을 사면해 요직을 추증하고 동상을 세워 추념했다. 메이지 시대를 여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던 가쓰 가이슈도 권력욕을 내려놓고 스스로 권좌에서 물러나는 용단을 보였다.◇ 두고두고 아쉬운 만민공동회와 의회 설립 무산저자는 한국인들이 별 근거도 없이 ‘과대평가’와 ‘자기폄하’ 사이를 수시로 오간다고 지적한다. 과대평가의 대표사례로 ‘국민 설화’를 들며 “자칫 ‘국민 마약’이 될 수 있다”고 꼬집는다. 일본과 비슷한 주장이면 ‘친일사학’으로 폄훼하는 문제도 지적한다. 자기폄하의 패배주의와 열등 콤플렉스 같은 열패감에 우리가 더 ‘위대한 역사’에 환호하는 것일 지 모른다고 말한다.그는 조선이 ‘자강(自强)’을 못 이룬 것을 통탄하며 “개화파가 수구파 이상으로 분열한 탓이었다”고 비판한다. 구한 말 외교력 부재에도 아쉬움을 토로한다. 1896년 5월 모스크바에서의 러시아 니콜라이 2세 대관식 때 청과 일본이 대규모 축하 사절단을 보내 전략적 조약을 체결할 동안, 가장 러시아의 도움이 절실했던 우리는 10명 만을 보내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다.저자는 특히 관민 개혁운동 ‘만민공동회’의 붕괴를 못내 아쉬워했다. 대한제국은 당시 니시-로젠 협정으로 일본과 러시아로부터 주권과 독립을 확인받아 ‘자주적 근대화’의 기회를 얻었다. 개혁파 정부와 독립협회는 의회 설립법도 공포했다. 하지만 고종이 의회설립을 백지화시키면서 근대화의 마지막 기회는 무산됐다. 그 때 의회가 세워졌다면 을사보호조약도, 한국 병합도 그렇게 간단하게 이뤄지지 못했을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무시’와 ‘두려움’의 사이한일 양국 간 정치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 간 문화교류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사진은 한일문화교류센터가 주최한 한일 지역간 문화교류 행사 모습.저자는 우리가 일본을 너무 일찍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정말로 극일(克日)을 원한다면 계속 도전자의 자세로 일본을 더 공부하고 식견을 더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통해 ‘근대와 자주’라는 시대정신을 체현한 이승만과 김구, 안중근 등 1870년대 생 젊은 활동가들도 개항 이후 한 동안은 일본이 한국 개화파의 친구였음을 인정했다 “개항 후 한국 근대사의 좌절을 모두 일본 탓으로 돌리는 ‘일본 환원주의’도 수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저자는 “한일관계 교착은 ‘해결 방식’을 몰라서가 아니라 ‘해결할 의지’가 없어서” 라고 강조한다. 한국 근대사가 모두 일본 제국주의 침략과 음모, 치밀한 기획의 산물이라는 ‘과대평가’를 교정하지 않으면 우리 스스로를 무능력자로 만들 뿐이라고 비판한다. 우리야말로 제국주의와 식민 지배를 않고도 선진국이 된 거의 유일한 나라라는 자부심을 가질 만 하다고 말한다.일본은 한국이 늘 자신들 밑에 있어야 한다는 묘한 심리와 함께 근대화 이후 지나치게 자국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조선이 스스로를 동국(東國), 동번(東藩)이라 부르며 현실적 인식을 했던 반면 일본은 자신이 세계 7대 강국이라며 ‘대국(大國) 일본’의 환상을 놓지 않았다. 그 현실적 공허함을 채워줄 대상이 조선이었기에 조선은 소국이어야 했다. 저자는 일본이 이런 한국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더 성숙해져야 하며, 한국 역시 일본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콤플렉스를 넘어 미래로 일본 국민의 95%가 천황제에 찬성한다. 저자는 최근 국내에서의 ‘일왕’ 논란과 관련해 “적국이 아니라면 그 나라 호칭을 불러주는 것이 성숙한 자세”라고 말한다. “중국까지 황제 부활을 시도하던 때는 우리는 한 치의 미련도 없이 왕정을 폐지하고 당당히 공화국을 수립했던 나라”라며 “애초에 이런 시대착오적 역사 감각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일축한다.일제 잔재 처단의 차원에서 일본식 용어부터 몰아내자는 운동이 전개된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촉구하는 공문이나 구호에도 온갖 일본산 표현들 투성이었다. 저자는 “이런 말을 쓰면 우리의 민족정신이 훼손되는가”라고 되묻는다. 그는 “한국은 전 세계에서 식민 종주국에 사과를 요구하고, 그것을 외교문제로 삼고 있는 유일한 나라”라며 “지금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과하라’ 보다는 식민주의라는 ‘괴물’에 대한 공동의 투쟁을 촉구하는 것이 훨씬 좋은 전략일 것이라고 조언한다.◇ 아키히토 상황의 한국방문 가능할까1998년 10월에 전격적으로 발표된 '김대중·오부치선언'은 한일 관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김대중 대통령과 일본 오부치 게이조 수상이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는 모습.(사진=e영상 역사관 캡처)저자는 식민지 문제가 국제사회 공감을 끌어내기 쉽지 않은 이슈라고 말한다. 열강들이 대부분 과거 식민지 문제의 공범이기 때문이다. 야스쿠니 신사 문제도 간단치 않다고 말한다. A급 전범들 위패를 빼고 국립묘지화할 경우 자칫 우리만 국제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미국과 중국은 ‘전쟁 행위’만을 문제삼고 있기 때문이란다.저자는 식민 지배를 통렬히 사죄하고 미래 파트너십을 약속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와 1998년의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일본에 거듭 상기시킬 것을 강조한다. ‘혐한(嫌韓)’ 타개를 위해 아키히토 상황의 한국 방문도 제안한다. 그는 직계조상인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 후손이라고 발언한 바 있고, 무령왕릉 방문도 희망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저자는 “실타래처럼 얽힌 한일 관계는 논리가 증거 싸움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며 정치적으로 대범하게 풀 것을 촉구했다. 그러려면 양국과 세계 이목을 집중시킬 상징적 이벤트가 필요하다. 저자는 “아키히토 상황이 조상을 찾는 것을 계기로 두 나라가 대범하게 현안을 처리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비판하되 경쟁적 협력관계로지난 1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25주년 기념식에서 유흥수 한일친선협회 회장, 가와무라 다케오 일한친선협회중앙회 회장을 비롯한 내빈들이 착석해 있다.(연합)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일본 국회에서 “50년도 안된 불행한 역사 때문에 1500년 교류와 협력의 역사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연설했다. 저자는 “우리는 옛 식민 종주국에게 사과를 받아낸 거의 유일한 나라”라며 이 선언문의 핵심도 ‘자신감’이었다고 강조한다. 당시에도 위안부나 독도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김 대통령은 ‘죽창가’를 부르지 않았다.저자는 “김대중 계승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계승하고 있는가”라며 1998년처럼 한국이 다시 자신감을 갖고 한일관계를 리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일본 제국주의의 과거를 끊임없이 비판해야 하지만, 그 목적은 두 나라가 자유와 민주, 법치와 평화의 세계로 가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민족주의 선동을 위한, 정치적 이득을 위한 일본 비판은 이제 거둘 때라고 말한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3-10-21 07:00 조진래 기자

[비바100] 반성하는 보수, 변화하는 진보… 그들은 달랐다

독일 의회 전경. 독일 정치는 좌우 정당 간 연정(聯政)의 역사다.(연합)저자는 ‘전범국가’에서 ‘1등 모범국가’로 탈바꿈한 독일에서, 특히 독일의 정치에서 배워야 할 것이 많다고 지적한다. 그는 “지금 대한민국에는 독일처럼 제대로 된 진보도, 제대로 된 보수도 없다”고 일침을 가한다. 서로를 존중하는 정치와 포용력 넓은 사회의 안정이 선행되어야 그 바탕 위에 지속적인 성장이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발전 모델로 ‘조화로운 발전, 포용적인 사회’를 든다. 독일은 어떻게 1등 국가가 되었나|김종인|오늘산책◇ 전후 독일을 만든 세 명의 위인들독일의 역대 총리들. 왼쪽 상단 첫번째가 아데나워 초대 총리, 두번 째가 에르하르트 총리다. 아데나워는 대통령이 되면서 에르하르트에게 총리직을 물려준 이후 경제에 관한 한 일체 간섭하지 않아 ‘라인강의 기적’을 함께 만들어 냈다.저자는 “오늘의 독일은 아데나워와 비스마르크, 에르하르트 세 사람이 상징하는 각각의 구성 성분이 어울려 만든 나라”라고 단언한다. 비스마르크가 독일의 근대를 완성한 사람이라면, 아데나워는 독일의 정치 외교적 기반을 다져 현대 독일을 만들었다. 에르하르트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독일 경제를 일으켜 세우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아데나워에게 배울 점은 ‘인내의 리더십’이 꼽힌다. 그는 친서방 정책을 확고히 뿌리내리게 해 먼 미래 ‘독일 통일’의 기반을 다졌다. 과거는 반성하되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73세인 1949년에 서독 총리에 취임한 그는 14년 재임 기간 내내 언제나 대화와 타협으로 합의를 이끌어 냈다. 결론을 내기까지 지겨울 정도로 끝까지 토론하며 노력하는 독일 정치의 기본문화를 만든 것이다.비스마르크에 대해 저자는 “반 민주주의자였지만 정치적 현실주의자였다”고 평가한다. 그는 역사상 대표적인 보수 정치인이었지만 좌파 아젠다를 모두 끌어가 선수를 쳤다. 사회연금, 의료보험, 실업급여 등의 기틀을 확립해 ‘독일 사회국가’의 근간을 다졌다.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러시아, 영국 등 주변국과 의견조율에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 ‘외교의 신’으로 추앙받았다.에르하르트는 독일의 2대 총리였지만 아데나워 정부의 경제부장관으로 더 이름을 떨쳤다. ‘독일을 먹여 살린 사람’이다. 연합국 점령군이 독일을 3류 농업국가로 만들려 하자, 자유시장경제의 전환을 주장해 관철시켰다. 사사건건 대립한 아데나워도 경제만큼은 그에게 일임했다. 각자의 책임과 역할을 존중하며 경쟁하고 협조했다. 저자는 이것이 독일 정치의 힘이라고 말했다.◇ ‘보수’라고 자랑하지 않는 독일 보수독일 바이마르공화국 헌법 제1조는 ‘독일은 공화국이며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우리 헌법 1조와 판박이다. 대통령에게 권한을 주어 총리와 ‘견제와 균형’을 이루게 했고 여성에 참정권을 주었다. 언론과 출판·집회의 자유도 보장했다. 하지만 그 탓에 히틀러가 합법적으로 집권할 수 있었다. 독일의 뼈를 깎는 반성과 성찰은 이런 모순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었다.독일의 보수 정당도 ‘반성’에서 시작됐다. 2차 대전 후 보수의 ‘보’자도 꺼내기 힘든 때 그들은 전통을 중시하고 개인과 가족 지역공동체를 소중히 여기면서 국가주의적 사고관을 배격하는 보수적 가치관의 ‘기독교’를 피난처로 선택했다. 나치에 가장 저항한 세력도 기독교였다. 그런 사람들이 ‘기독교’ 이름을 붙여 만든 정당이 독일의 최대 보수정당인 CDU(기독민주당)이다.저자는 “독일은 연합을 통해 과반을 만들어냄으로써 대의민주주의를 실천해 왔다”고 강조한다. 2등 정당이 연립정부의 마법을 발휘해 총리를 배출하고 집권당이 될 수 있는 것이 독일 내각제의 최대 장점이라고 말한다. 그런 기초 위에 CDU는 SPD(사회민주당)의 사회주의적 공약에 맞서 ‘사회적 시장경제’를 표방하며 경제 민주주의와 사회적 시장경제를 모토로 내세웠다.저자는 “독일의 보수는 한국의 보수보다 훨씬 더 진중한데도 스스로를 보수라고 칭하지 않는다”며 “제대로 된 보수라면 사회의 조화와 안정을 먼저 도모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보수주의는 정치의 기본”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한국의 보수는 ‘반공’ 밖에 없는 ‘적대적 보수’에 불과하다고 깎아 내린다.◇ ‘변해야 산다’는 것을 깨달은 독일 좌파독일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지난 1970년 폴란드 뱌르샤바의 유대인 추념비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하는 모습.(연합)저자는 “좌파들은 악랄한 세력이 사라지면 세상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는 경향이 있다”며 독일의 진보정당 SPD도 마찬가지였다고 전한다. 나치 청산에 강경했던 슈마허 당수는 나치 정권에 협조했던 자들까지 포괄해 새 정당을 만든 CDU를 혐오했다. 하지만 1949년 총선에서 그가 보수정당에 패한 이유 중 하나가 그런 사회주의적 색채를 지우지 않았다는 점이다.슈마허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옛 사회주의 노선에 집착했다. 1961년 총선부터 SPD가 CDU보다 더 높은 지지율을 얻은 비결이 바로 ‘변화’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보수당이 권력에 위한 사이에 SPD는 계획경제와 국유화를 버리고 CDU의 간판인 ‘사회적 시장경제’ 실현을 약속했다. 오랜 보수 정권에 지쳐있던 국민들은 다시 지지를 보였고 1969년 진보정당은 집권에 성공한다.독일의 총리 빌리 브란트는 1970년 폴란드 뱌르샤바의 유대인 추념비를 찾아 쏟아지는 비 속에 무릎을 꿇고 눈물로 사과했다. 나치의 죄악을 대신해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저자는 이렇듯 SPD가 150년도 넘은 정당이지만 오늘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혁신하는 과정을 거치는 중이라며 “부럽다”고 했다.◇ 우파와 좌파가 공동정부를 구성하는 나라독일 정치는 연정(聯政)의 역사다. 지금까지 네 번의 대연정이 있었다. 1957년 총선에서 CDU는 전체 497석 중 270석을 차지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단독 과반’이었다. 하지만 아데나워는 단독내각 대신 연정을 택했다. 내각의 일부까지 맡겨 정치적 합리성을 발휘했다. 어디서 어떻게 만날 지 모르니 서로 ‘정치적 금도’를 지키고 존중하는 관계가 일상화될 수 밖에 없다그런 면에서 저자는 우리 정치권이 ‘내각제 포비아(공포증)’에 걸린 듯 하다고 꼬집는다. 그는 “한국의 진보와 보수정당은 처참하게 몰락했다. 경기장을 바꿀 생각은 않고 선거제도 같은 부수적인 것만 바꾸려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이념을 뛰어넘는 결합까지 단행할 줄 아는 것이 독일식 내각제”라며 “정치는 타협이고 협상”이라고 강조한다.◇ 독일의 노동정책독일은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이 지켜지는 나라다. 최저임금과 임금협상이 산업별로 이뤄진다. 그럼에도 기업 규모나 지역에 따라 임금 차이가 별로 없다. ‘포괄 단체협약 시스템’ 덕분이다. 그런 독일의 노동개혁을 이끈 ‘어젠다 2010’을 만든 것이 SPD 소속 슈뢰더 내각이다. 소득세율 인하, 엄격한 실업급여, 의료보험 축소, 연금 지급시기 연기 등 ‘좌파 정책’이 아니었다.독일에서는 노조가 산별로 구성되어 개별 기업 단위의 파업이 어렵다. 조합원 4분의 3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독일 노동운동의 아버지라 불리는 한스 뵈클러 초대 노총의장은 당초 강경파였으나 노사를 설득해 ‘협조적 조합주의’를 만들어냈다. 저자는 독일 노동 정책이 유연한 것은 정치 시스템 자체가 포용적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통일을 원한다면 독일처럼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순간. 갑작스럽게 찾아온 장벽 붕괴지만 독일은 마치 준비해 왔다는 듯 슬기롭게 통일을 완성했다.(연합)혹자는 독일 통일을 ‘벼락같이 찾아온 통일’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저자는 서독이 통일을 감내할 ‘돈’을 준비했었고, 생각이 다른 동독을 포용할 자세가 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서독은 당시 10대 1의 교환가치였던 양 국의 마르크를 일대 일로 통합해 동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외교적 노력도 성공적이었다. 친미 노선이면서도 소련과 동구권 공산국가들에게 적대적이지 않았다.당시 동독의 경제규모는 서독의 10분의 1 정도, 소득은 2분의 1 정도였다. 현재 남북한 경제규모는 거의 60배, 소득 격차는 20~30배에 달한다. 저자는 “북한 지역이 일정한 경제적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최대한 지원하되 통일이 운명적으로 다가오는 순간에 대비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말한다.저자는 우리의 ‘햇볕정책’에 대해 실패한 통일정책이라고 비판한다. 햇볕정책이 베낀 독일의 ‘동방정책’은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동방정책에 반대했던 CDU도 국민들이 SPD에 정권을 넘겨주자 SPD의 13년 집권 내내 동방정책에 대한 쓸데 없는 정치적 공격을 자제했다. 그렇게 1990년 독일은 통일을 이루었다.◇ 헌법·의회민주주의·정당정치의 ‘표준’을 만든 나라저자는 독일의 최대 수출품목을 ‘법’이라고 말한다. 우리 제헌헌법도 바이마르 헌법을 가장 많이 참조했고, 내각책임제의 산물인 헌법재판소 역시 독일에서 수입한 것이라고 전한다. 독일 헌재는 법률이 의회를 통과해 시행되기 전이라도 위헌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심지어 재판에 대해서도 위헌 여부를 판단한다. 헌재의 권위를 국민 모두가 존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독일은 근대국가 최초로 국고보조금 제도를 도입한 나라다. 다만, 정당이 자체 확보한 자금 혹은 법률이 정한 일정 한도를 넘을 수 없다. 연방정부와 지방정부가 공동 부담한다. 정당의 정치 재단 지원금은 정당 지원 예산보다도 더 많다. 국고보조금 중 30% 이상을 정책연구소에 투입토록 한 우리와 달리 독일 정치재단은 예산도 국가에서 따로 지원받아 철저히 독립적으로 운영된다.재단 이사장도 정당에서 내려보내지 않고 재단 이사회에서 자율 결정한다. 우리처럼 당내 여론조사 기관도 아니다. 저자는 우리의 국고보조금 30% 지원 제도의 전면적인 개선을 촉구한다. 돈을 주는 쪽에 종속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당의 자체 수입보다 국고보조금이 훨씬 더 많은 경우가 허다한데다, 의석 수를 기반으로 하니 신생 정당이 생겨날 수 없는 구조라고 비판한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3-10-14 07:00 조진래 기자

[비바100] 일론 머스크, 광적인 'X'사랑… 괴짜인가, 천재인가

“혹시 저 때문에 감정 상한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저는 전기차를 재창조 했고 사람들을 로켓에 태워 화성으로 보내려 해요. 그런 제가 차분하고 정상적인 친구일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서문에 적힌 일론 머스크의 말이다. 상상하는 모든 것을 현실로 만드는 ‘시대의 혁신가’인 그를 지탱한 것은 ‘강박 장애’와 ‘하드코어(hardcore) 마인드’였다. 이 책은 머스크의 ‘준(準) 자서전’이다. 전기 작가인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머스크를 2년 동안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고 한다.일론 머스크|월터 아이작슨|21세기북스◇ 학대 받던 어릴 시절의 트라우마머스크의 아버지 에롤 머스크는 ‘카리스마 넘치는 몽상가 혹은 불한당’이라는 양면적 평가를 받는 사람이었다. 본인은 “아이들을 강하게 키우려 매우 엄격했다”고 하지만 머스크는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어야 했다. 그는 자신을 키운 것이 ‘역경’ 이었으며 덕분에 리스크를 두려워 않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한다.어린 시절 그의 유일한 심리적 안식처는 ‘독서’였다. 달에 범죄자들을 보내 식민지를 건설한다는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이 가장 좋아했던 책이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소설들도 그의 상상력을 키웠다.◇ 인터넷 물결 위에 올라타다인터넷 광풍에 매료된 머스크가 동생 킴벌과 일군 첫 사업체가 ‘집투(ZIP2)’였다. 사업체 전화번호로 길을 알려주는 모델이었다. 하지만 곧 좌절을 맛본다. 투자한 벤처캐피탈이 그를 CTO(최고기술책임자)로 빼고 전문 경영인을 영입한 것이다. 사업은 인기를 끌었으나 의욕을 잃었다. 결국 27세에 2200만 달러를 받고 발을 빼게 된다.1999년에 그는 ‘엑스닷컴’을 창업한다. 뱅킹과 디지털 구매, 신용카드, 투자와 대출 등 원 스톱 서비스가 가능한 온라인 은행이라는 파괴적 혁신을 꿈 꾸었다. 이 때부터 ‘x.com’은 그의 시그니처가 된다. 하지만 순탄치 않았다. 공동창업자마저 그에게 용퇴를 요구했다. 그 때 경쟁자 피터 틸을 만나 ‘페이팔’로 합병하게 된다. 하지만 그가 욕심을 낼수록 내부 반발은 격화되었다. 2002년에 이베이에 매각되었고 그는 2억 5000만 달러의 투자수익을 챙긴다.◇ ‘로켓 맨’의 화성 탐사계획2002년 5월에 스페이스X를 설립한 머스크는 이듬해 9월 첫 로켓 발사와 2010년 화성 무인 탐사선 발사라는 당찬 목표를 제시한다. 우주항공업계 부품이 자동차보다 10배나 높다는 사실에 경악하곤 비용통제에 전념한다. 결국 스페이스X 로켓 구성품의 70%가 자체제작된다. 이를 계기로 엔지니어들에게도 ‘광적인 긴장감’을 강요하게 된다.2004년에 NASA와 2억 2700만 달러 계약을 따냄으로써 그의 우주 사업은 도약의 계기를 맞는다. 그러나 로켓 발사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2006년 3월에 첫 발사된 ‘펠컨 1호’는 연료 누출 사고로 공중 폭발했고, 2008년 세 번째 발사까지 계속 실패하자 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졌다. 그럼에도 그는 “6주 후에 네 번째 발사를 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그런데 이런 황당함이 오히려 조직에 낙관적인 분위기를 확산시켰다. 순식간에 절망과 패배의 분위기가 결의로 가득차게 된다.마침 ‘페이팔 마피아’ 피터 틸이 2000만 달러를 투자한 덕에 네 번째 발사 자금을 조달한다. 마침내 2008년 9월 28일, 최초의 민간 제작 로켓이 새 역사를 썼다. 곧 이어 우주정거장을 12회 왕복하는 16억 달러 계약을 NASA와 체결하면서 파산을 면한다. 그는 자신의 컴퓨터 로그인 패스워드를 ‘ilovenasa’로 변경했다. 이후 무인궤도 진입 후 지구로 안전하게 귀환시키는, 어떤 민간기업도 성공하지 못했던 미션을 2010년 6월에 성공한다.◇ 혁신적인 전기차 ‘테슬라’리튬이온 배터리 전기차는 누구도 생각 못한 아이디어였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초기 버전의 제작비가 대당 7만 달러 이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상용화 모델 ‘로드스터’의 개발을 추진키로 하고, 초기 자금 조달을 조건으로 ‘테슬라’의 이사회 의장을 맡는다. 그는 ‘대량생산’ 밖에 길이 없다며 밀어 부치면서 모든 공정에 간섭했고, 2006년에 드디어 시제품을 내놓는다.하지만 자금사정은 빠르게 악화되었다. 공급 체계가 문제였다. 일본에서 배터리 셀을 만들어 태국에서 팩으로 조립하고 영국에서 새시에 조립하는 방식이 물류는 물론 현금흐름 문제를 불렀다. 초기 로드스터 제작에 최소 14만 달러가 들었다. 10만 달러에 팔아야 적자만 쌓일 뿐이었다. 때 마침 다임러가 5000만 달러의 지분을 인수해 주지 않았다면 테슬라는 붕괴될 운명이었다.머스크는 곧바로 6만 달러 짜리 4도어 세단의 대량생산을 추진한다. ‘모델 S’였다. 차체를 최대한 얇게 만들기 위해 배터리 팩을 차량 바닥에 배치하는 등 모델 S는 ‘게임 체인저’가 된다. 자동차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가 되었다. 지속적인 업 그레이드를 통해, 오래 굴릴수록 성능이 더 좋아지는 전기차가 창조된 것이다.◇ 머스크 만의 생산 알고리즘머스크가 자신만의 생산 알고리즘 완성을 위해 강조하는 다섯 가지 계명이 있다. 첫째, 모든 요구사항에 의문을 제기하라. 특히 법무당국이나 안전당국의 요구사항은 절대 거부한다. 둘째, 부품이든 프로세스든 가능한 최대한 제거하라. 셋째, 단순화하고 최적화하라. 넷째, 속도를 높여 주기를 단축하라. 마지막은 ‘자동화’다.때로는 몇 가지 부수사항을 수반한다. 모든 기술 관리자는 실무경험을 갖춰야 한다. 일을 방해하는 ‘동지애’는 경계 대상이다. 틀려도 괜찮지만 잘못된 것을 우겨선 안된다.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팀원에게 부탁하지 말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기면 경영진보다는 실무 선임자를 만나고, 특히 ‘광적인 긴장감’을 늘 유지해야 한다.사진 왼쪽부터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제프 베조스◇ ‘필생의 라이벌’ 이마존의 제프 베조스두 사람은 닮았다. 열정과 혁신, 의지력으로 세상을 흔들었다. 가능성을 의심하는 사람을 경멸한다. 다만, 베조스가 체계적이라면 머스크는 본능적이다. 리스크를 무시하고 몰아붙인다. 베조스도 아이작 아시모프와 로버트 하인리히를 탐독하며 자랐다. 고교 졸업식 때 “태양계 행성들을 식민지로 만들어 지구를 구하자”고 연설했다. 2000년에는 우주기업 ‘블루 오리진’을 창업했다.둘이 우주사업을 놓고 다투기 시작한 것은 머스크가 2013년에 케이프커내버럴의 유서 깊은 39번 발사대를 임대하자 베조스가 소송을 제기하면서 부터였다. 머스크는 “이쑤시개 하나도 궤도에 올려놓지 못한 블루 오리진이?”라며 조롱했다. 베조스가 2015년 11월에 우주공간의 시작이라는 62마일 상공까지 로켓을 올렸을 때도 그는 “우주 관광객에게나 재미있는 일”이라며 폄하했다.2021년 4월 스페이스X가 블루 오리진을 제치고 우주비행사를 달에 보내는 계약을 NASA에서 따내자 경쟁은 다시 불 붙었다. 위성통신 회사를 둘러싸고도 맞붙었다. 2021년 여름까지 스페이스X는 2000개에 달하는 스타링크 위성을 궤도에 배치했다. 베조스도 2019년 프로젝트 ‘카이퍼’를 발표했지만 2021년 말까지 발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빌 게이츠와 자선활동머스크는 2022년 초에 자선기금을 설립하고 57억 달러를 기부했다. ‘기부왕’ 빌 게이츠가 그를 찾았으나 둘은 당장 부딪쳤다. 게이츠는 “배터리로는 결코 대형 트럭의 동력을 공급할 수 없으며, 태양 에너지는 기후 문제의 주요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했다. 머스크가 화성에 과도하게 열중하고 있다면서 “지구 내 문제부터 해결하자”고 몰아 세웠다.머스크는 “(게이츠의) 대부분 자선활동은 허튼 수작”이라고 쏘아 부쳤다. 그는 자선활동 보다 에너지의 지속가능성과 우주 탐사, 안전한 인공지능을 추구하는 회사들에 투자하는 것이 인류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위험한 인공지능머스크는 “우리가 미리 안전장치를 해 놓지 않으면 인공지능 시스템이 인간을 대체해 인류를 멸종시킬 수 있다”면서 뜻을 같이 하는 샘 울트먼과 비영리 인공지능연구소 오픈AI를 공동 설립한다. 2018년에 그와 결별하고 ‘엑스닷에이아이’라는 자신의 새로운 챗봇 회사를 설립한다.그는 “챗봇과 AI 시스템이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에 넘어가면 정치적으로 세뇌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럼에도 오픈 소스형 비영리회사로 세워진 오픈AI가 마이크로소프트가 통제하는 폐쇄 소스형의 최대 영리회사가 되었다며 비판했다. “인류가 만든 가장 강력한 도구인 AI가 무자비한 기업 독점의 손아귀에 들어갔다”고 비난했다.◇ 논란을 빚은 트위터 인수그에게 트위터는 ‘놀이터’였다. 트위터 이사회가 먼저 손을 내밀자 이사회에 합류했다. 하지만 이내 기본 철학 부문부터 견해가 다름을 알게 된다. 그는 트위터가 사용자들의 발언을 제한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과하게 많다고 비판했다. “테슬라에는 200명인 엔지니어가 여기엔 왜 2500명이나 있느냐”고 따졌다.혁신적 금융 소셜 네트워크의 잠재력을 트위터에서 발견한 그는 결국 적대적 인수합병에 나선다. 거센 반발이 일었으나 주당 54.2달러에 지분 100%를 인수하겠다고 선언했다. 광고 의존도를 90%에서 45%로 줄여도 2028년까지 매출을 5배나 늘릴 수 있다고 호언했다. 우여곡절 끝에 총 440억 달러에 트워터 인수에 성공한다.이곳에서도 그는 직접 회사를 운영하길 원했다. 가장 먼저 2000명이 넘는 엔지니어들의 ‘살생부’를 만들었다. 90% 이상을 해고한다는 목표가 정해졌고 세 차례에 걸친 대학살이 펼쳐진다. 결과적으로 약 75%가 감원되었다. 이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3-10-07 07:00 조진래 기자

[책갈피] 매순간 10리터의 피, 땀, 눈물로 얼룩진 전세사기 분투기 ‘루나의 전세역전’

루나의 전세역전|홍인혜 글·그림|정민경 감수(사진제공=세미콜론)그야 말로 고군분투다. 엄연히 피해자임에도 자괴감과 자책이 휘몰아치고 비난의 대상이 될까 두려움이 앞서 차마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채 전전긍긍했다. ‘루나의 전세역전’은 카피라이터 출신의 만화가이자 시인인 루나(Luna) 홍인혜가 직접 체험한 전세사기 피해를 해결하는 과정을 담은 생생한 분투기다.그 시작은 3년을 거주하던 집에서의 갑작스런 퇴거요청이었다. 가스유출을 핑계로 강제 퇴거되면서 사람과 세상에 대한 신뢰를 잃은 것으로도 모자라 더한 고난이 몰려들었다.  루나의 전세역전|홍인혜 글·그림|정민경 감수(사진제공=세미콜론)꼼꼼하게 따져보고 입주한 새 전세집, ‘경매예정’을 알리는 임차인 통지서, 적지 않은 내 돈이 얽혀 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던 시간 끝에 결국 잡혀버린 경매일, 세입자의 전세금보다 순위가 앞선 집주인의 체납세금, 경매 입찰을 위해 예고도 없이 들이닥치는 낯선 사람들, 고통을 공유하기에는 더 불안하게만 하는 지인들의 걱정스러운 말들, 경매 유찰과 낙찰 그리고 중단, 급기야 날아든 공매 통지서….매일을 이사 전날처럼 불안에 떨면서도 직장생활을 유지하며 신체적, 정서적으로 피폐했던 시간들을 보내다 결국 어떤 전문가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가 집주인이 되기 위해 했던 고군분투가 고스란히 담겼다.상식을 기대할 수 없는 집주인의 뻔뻔함과 안하무인이 난무하고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었으며 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었던 그 시간의 매순간에는 10리터의 피, 땀, 눈물이 스며들었다.부동산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그림이 곁들여진 설명과 말도 안되는 사기꾼의 악행에도 스스로의 일상을 지키고자 마음과 정신줄을 다잡는 루나의 고군분투는 이 책의 백미다. 부동산 사기가 판을 치지만 그 어떤 상식도 통하지 않고 어떤 누구, 나라 및 해당기관과 법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시대다. 결국 ‘결자해지’의 각오로 임해야하는 각자도생의 시대에서는 그렇게 누군가의 체험도 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를 불행에 대한 대비책 중 하나가 된다.그럼에도 주목해야할 것은 모든 사건이나 사례들이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참고할 것은 참고하되 자신의 일에 맞는 해결책은 스스로 공부하고 발품을 팔아야 해결이 가능해 진다. 그 어떤 지혜와 지식도 결국 어떻게, 어디까지 활용하느냐는 스스로에게 달렸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3-10-01 11:51 허미선 기자

[책갈피] 저마다의 커피, 그 안에 담긴 저마다의 이야기 ‘나만 알고 있는 당신의 커피’

사진출처=픽사베이토종 밤꿀 한 숟갈, 에스프레소 샷 3개, 무지방 우유 70~80ml로 낸 거품 그리고 표면을 거의 덮을 정도의 시나몬가루. 매일 아침이면 밤새 그 속도가 느려졌을지도 모를 신체와 정신을 깨우는 커피가 있다.이는 빈 속에 진한 아메리카노, 에스프레소를 들이켜다 위장 장애를 얻으면서 수차례의 시행착오와 변화를 거듭한 끝에 만들어낸 것이다. 유난히 추웠던 한겨울, 몸을 녹이라며 밤꿀 차를 내어준 한 예술가의 호의에서 영감을 얻은 이 레시피는 수십년 간 매일의 하루를 시작할 에너지가 돼 준 ‘동반자’와도 같다.피곤한 날에는 연거푸 한잔을 더 마시기도 하는데 너무 지친 날에는 이 마저도 입맛을 되살리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니 이 커피는 매일 아침의 루틴인 동시에 컨디션과 건강 상태를 가늠하는 주치의(?)이기도 했다.나만 알고 있는 당신의 커피|조엘 글, 아토(소형섭) 사진(사진제공=크레파스북)호주 로컬 카페에서 커피를 배우고 경험하는 ‘골드코스트 한달살이’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조엘(Joel Park)이 쓴 글에 대학도 자퇴하고 호주에서 11년째 살고 있는 아토(소형섭)의 사진을 곁들인 ‘나만 알고 있는 당신의 커피’는 이 같은 저마다의 커피에 담긴 삶 이야기다.공부도 뒷전인 조엘이 여행자의 삶을 살다 한국에서 시작한 사업에 실패하고 다시 방문한 호주의 골드코스트에 카페를 열면서 만난, 커피 없이는 못사는 호주 사람들의 이야기가 ‘골드코스트, 절망과 기회를 만나다’ ‘커피를 만드는 시간, 커피를 마시는 삶’ ‘커피와 함께 하는 삶, 커피잔에 담긴 이야기’ 3개 섹션에 나눠 담긴다.책은 ‘서른 중반 골드코스트 정착’을 꿈꾸며 발 디딘 호주에서 최저시급 20달러짜리 동네 카페에서 조엘이 몸소 겪은 호주인들의 성향, 커피 라이프 등과 골드코스트 카페 창업 과정으로 시작한다.전세계를 덮친 코로나19로 사라져버린 동업자, 그 위기가 기회로 작용하며 흥했던 카페사업 등 저자의 골드코스트 생활 속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겼다.전동차를 타는 은퇴한 작가 브라이언, 사채업자 존, 중년의 백발 은행원 소냐, 노쇠한 할아버지 세르지오, 커피 한잔이 350만원까지 치솟은 베네수엘라에서 온 후안, 서핑에 진심인 네이슨, 용역업체 사장 사이먼, 직원이 된 단골손님 멜라니, 레지던트 나타샤, 하드 워커 앤드류, 보석상의 조엔, 중국 이민자 쿠이니 가족과 애니, 여전히 신혼같은 노부부 로버트와 빅토리아, 노숙자 자넷, 블루칼라(Blue Collar) 노동자 토니와 클라우스, 회계사 존, 부동산 중개업소와 레스토랑 사장 이합, 아부다비에서 온 자예드, 아시안 정서를 이해하고 언어를 구사하는 올리, 일본인 모모, 태국여자 팍시….그들이 먹고 마시는 다양한 플랫 화이트와 차이 라테, 라테아트가 필수인 피콜로, 초콜릿 가루를 뿌린 카푸치노, 프렌치 토스트, 아몬드 라테, 지밀모카와 스매시드 아보카도, 프레틴 볼, 빅 브레키, 바닐라 라테, 골드코스트롤, 버터 밀크 프라이 치킨버거 등.그렇게 ‘나만 알고 있는 당신의 커피’는 커피 책처럼 보이지만 사람 이야기이자 창업자이며 한 인간으로서 그곳을 사랑하고 배우며 살아가는 이의 일상이자 삶의 여정이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3-09-29 18:00 허미선 기자

[비바100] 색깔, 상징이 되기까지…

(사진출처=게티이미지)20년차 CMF(Color, Material, Finishing) 디자이너가 전하는 9가지 색깔에 관한 이야기다. 이들 컬러가 어떻게 탄생했으며, 어떻게 인간과 어울려 의미와 가치를 부여받고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감성 있게 소개한다. 저자는 코코 샤넬의 말을 인용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색은 당신에게 잘 어울리는 색”이라고 전한다.컬러 인사이드|황지혜|크레타◇ 천박하고 매혹적인 컬러 ‘레드(RED)’레드의 상징 ‘페라리’저자는 레드가 가장 천박할 수도, 가장 매혹적일 수도 있는 컬러라고 말한다. 강인한 생명력, 열정과 사랑, 권력, 분노와 수치 등 다양한 이미지를 갖는다. 이집트인들은 생명·승리의 의미로 붉은 황토를 몸에 발랐고, 르네상스기에는 권력을 상징했다. 프랑스혁명 후로는 자유와 혁명을 상징한다. 앙리 마티스는 대표작 붉은 방에서 작품 전체를 강렬한 레드 원색으로 표현하기도 했다.최초의 손목시계를 만든 ‘까르띠에’는 진한 레드로 제품의 전통과 권위를 살렸다. ‘페라리’는 다소 어두운 ‘로소 스쿠테리’부터 시작해 9개의 대표 레드 컬러를 운영하며 차별화된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영국의 국가 상징 색은 높은 채도의 ‘칠리 레드’다. 국기 ‘유니언잭’에도 칠리 레드가 있다. 십자군 전쟁 때부터 국가 상징 색으로 사용되었다. 1854년 앤 여왕이 영국 상선의 깃발 컬러로 공표하면서 공식화되었다. 영국의 명물 공중전화 박스와 이층 버스도 모두 레드 컬러다.◇ 깊고 넓은 컬러 ‘블루(BLUE)’조니워커 블루라벨블루는 이성적이고 중립적이며 깊고 넓다. ‘깨진 얼음의 색’으로, 자연에서 재현하기 어려운 컬러로 여겨졌다. 지금은 유엔과 유럽연합, 유네스코, 나토 등 국제기구를 대표하는 색으로 자리잡았다. ‘울트라마린’과 ‘코발트 블루’는 특히 고가와 고귀함의 상징이다. 고호는 코발트 블루를 사용해 ‘별이 빛나는 밤’ 같은 명작을 탄생시켰다. 삼성의 컬러도 블루다. 2005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블루블랙폰’을 시작으로 ‘페블 블루’ 등 제품의 컨셉과 소재에 최적화된 새로운 블루 컬러를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조니워커는 라벨 컬러에 따라 서로 다른 풍미와 품질, 캐릭터를 갖는다. 블루라벨은 그 중 최고급 프리미엄 라인업으로 맛과 향, 목 넘김 등 모든 면에서 독보적이다. 유럽에서 블루가 비범함과 월등함을 상징하듯이, 조니워커 블루라벨도 스카치 위스키계의 왕 중의 왕으로 평가받는다. 지금도 다양한 에디션 제품으로 높은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스타벅스의 컬러 ‘그린(GREEN)’그린 컬러를 선택하며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한 스타벅스그린은 생명의 탄생에서 죽음까지, 대자연의 시작과 끝이 담긴 컬러다. 편안함과 조화, 균형을 상징한다. 고대 로마에서는 그린이 미의 여신 비너스를 의미했다. 중세에선 부유층의 컬러였다. 20세기 들어선 반 공산주의 녹색당이나 환경운동을 상징했다. 이슬람권에서는 유토피아를 상징하는 가장 신성한 컬러다.그린 컬러의 세이렌 로고로 유명한 스타벅스는 창사 40주년을 맞은 2011년부터 지금의 디자인 로고와 그린 컬러를 사용 중이다. 매장 인테리어도 그린을 5% 정도 비율로 사용한다.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는 한 동안 진부하다는 평가를 받다가 ‘페러킷(parakeet)’이라는 원색의 파격적인 그린 컬러를 선택한 이후, 젊고 혁신적이며 긍정적인 이미지로 쇄신했다.◇ 테니스공의 색깔? ‘엘로(YELLOW)’따뜻하고 부드러우며 낙관적이지만 시기와 질투, 탐욕을 의미하기도 하는 컬러다. 1만 7000년 전 그려진 프랑스 라스코 동굴의 말이 노랑으로 채색되었을 만큼 역사가 깊다. 고호는 해바라기 작품에서 해바라기는 물론 배경의 벽과 테이블까지 모두 채도를 달리 한 옐로로 칠했다. 이마트나 노브랜드, 이케아 등도 친근하고 즐거운 이미지의 옐로를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착용하고 있다.카카오의 옐로도 눈길을 끈다. 블랙에 가까운 다크 브라운과 옐로의 배색이 명시성과 가독성을 한층 높였다. ‘옐로캡’은 뉴욕 맨해튼의 명물이다. 가장 눈에 띄는 옐로 컬러로 차량 색을 통일하고 운전기사에게도 옐로 점포를 입혔다. 테니스공도 옐로다. 100여 년 동안 사용되던 화이트 고무공이 컬러 TV 보급을 계기로 위기를 맞자 국제테니스연맹이 지금의 색깔로 바꾸었다. 이 컬러가 그린이냐 옐로냐는 논쟁이 지금도 뜨겁다. 현재 공식화된 컬러명은 ‘옵틱 옐로(Optic yellow)’이다.◇ 에르메르가 만든 컬러 ‘오렌지(ORANGE)’주황색을 글로벌 컬러로 만든 에르메스.주황은 미각과 후각을 자극하는 가장 상큼한 컬러다. 인도에서는 ‘영성의 컬러’로 통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찰나를 표현해 화가들은 ‘최적의 컬러’라고 평가한다. 높은 가시성 덕분에 구조용 비행기와 구명조끼, 블랙박스 등 위급 상황에도 적극 활용된다. 미국에서는 재소자 의복의 색상이다. 도주 시 눈에 잘 띄기도 하지만 활력과 긍정적인 사고를 고양시킨다는 이유에서다.에르메스(Hermes)는 오렌지 컬러에 첫 유명세를 안긴 브랜드다. 그레이스 켈리 모나코 왕비가 애용했던 ‘켈리백’에 이어 지금은 최상급 악어가죽으로 일주일에 12개만 만든다는 수제 ‘버킨백’으로 오렌지 원색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존재감이 적은 오렌지 컬러를 국가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나라가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다. 스페인과 카톨릭에서 독립시켜 준 민족의 영웅 오랑주(orange) 가문에 대한 존경심이 바탕이 됐다. 오렌지를 형용사로 ‘좋다, 훌륭하다’는 최상급으로 사용할 정도다.◇ BTS의 상징 색 ‘보라(VIOLET/PURPLE)’BTS 멤버 ‘뷔’의 바이올렛 컬러 마스크보라는 변화무쌍한 역동적 가치를 지녔다. 블루에 가까운 바이올렛, 레드에 가까운 퍼플로 나뉜다. 퍼플은 럭셔리를 대변하는 컬러였다. 퍼플 염료 1g 제조에 1만 마리 달팽이가 필요했다고 한다.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는 “바이올렛이야 말로 대기의 진정한 색”이라고 극찬했다. 100여 점의 워털루 다리 연작을 남겼는데 한결같이 보라 색채다. 패션 디자이너 안나 수이는 의상과 액세서리, 화장품, 향수에 이르기까지 퍼플만을 모티브로 삼는다. 그의 퍼플은 특히 수 많은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더욱 빛난다.최근에 보라는 ‘BTS의 컬러’로 완전히 재해석되고 있다. 2016년 공식 팬 미팅 때 팬들이 응원 봉에 보라색 비닐봉투를 씌워 흔드는 퍼포먼스를 보인 이후 바이올렛 보라는 BTS를 상징하는 컬러가 되었다. BTS는 삼성전자나 아모레퍼시픽과 스타벅스 맥도날드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을 이어가고 있는데, 해당 기업들은 그 때마다 자신들의 색깔을 내려놓고 퍼플을 채용한다.◇ 마니아를 가진 색 ‘핑크(PINK)’핑크는 마니아 층을 가진 컬러다. 로맨틱하고 부드러운, 꿈과 낭만의 색이다. 원래 ‘소년의 컬러’로 인식되다가 미국 34대 대통령 아이젠하워의 영부인 마미가 취임식 때 핑크 색 원피스를 입은 이후로 여성스러움을 상징하는 컬러로 바뀌었다. 코코 샤넬이 질투했다는 스키아파렐리는 1938년에 헐리우드 여배우 메이 웨스트의 몸매를 본 딴 향수 ‘쇼킹 핑크’로 파장을 일으켰다. 소심하고 차분했던 핑크의 이미지를 파괴적이고 개성 넘치는 컬러로 탈바꿈 시켰다. 초현실주의 예술가들과의 콜라보도 왕성하게 펼쳤다.화가 르누아르는 잔 사마리의 초상에서 밝은 옐로에서 핑크로 자연스럽게 번져가는 화법으로 핑크의 사랑스러움을 극대화했다. 핑크 컬러가 주는 진정성과 안정감은 스위스의 페피콘 교도소에도 접목되었다. 심리학자의 조언에 따라 교도소 30개 방을 모두 쿨 다운 핑크로 칠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1년 송파 경찰서 유치장에도 벽면을 핑크와 그린 컬러로 꾸미는 시도가 있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블랙(BLACK)’남성의 전유물이었던 블랙을 여성의 컬러로 만들러 준 샤넬의 ‘리틀 블랙 드레스’.블랙은 어두움과 죽음, 악의 색깔이었다. 하지만 많은 아티스트와 디자이너들은 블랙이 모든 컬러를 압도하는 강렬한 카리스마 컬러라고 평가한다. 저자는 블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단 번에 바꾼 인물로 코코 샤넬을 든다.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블랙을 ‘리틀 블랙 드레스’ 하나로 오늘날 여성의 컬러로 만들어 주었다고 극찬한다. 롤스로이스의 ‘고스트 블랙 배지’는 최고급의 럭셔리한 가치와 의미를 담았다. 가장 짙은 블랙을 만들려고 45㎏의 페인트를 투입해 다섯 시간 동안 장인이 손으로 직접 광택을 낸다고 한다.99.965%의 빛 흡수율을 지닌, 세상에서 가장 짙은 블랙이 ‘반타블랙(VantaBlack)’이다. 이 신비로운 컬러의 독점권을 사들여 완벽한 어둠과 무를 표현한 이가 인도 출신의 영국 예술가 아니쉬 카푸어다. 미국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에 설치된 ‘클라우드 게이트’는 거대 조형물을 현존하는 가장 짙고 완벽한 블랙으로 덮어 초현실적 분위기를 창조해 냈다.◇ 가장 완벽한 색 ‘화이트(WHITE)’저자는 화이트를 “태초의 색이자 가장 완벽한 색”이라고 말한다. 16세기에 한 때 슬픔과 애도를 상징하는 ‘과부’의 컬러였으나 지금은 어느 나라에서든 공통적으로 밝음과 빛, 평화와 저항의 상징이다. 흰 리본은 여성폭력 추방운동을 뜻하며, 흰 장미는 히틀러의 나치 정권에 맞서 싸우다 희생된 백장미단 ‘바이세 로제’의 상징이다.2001년 애플의 디자이너 조너선 라이브가 ‘미니멀리즘의 끝판 왕’ 아이팟을 솔리드 화이트 색상으로 선보였다. 스티브 잡스가 다양한 컬러로 출시할 것을 원했지만 그가 고집을 부려 화이트 단 하나의 컬러 모델로 내 놓아 대박을 쳤다. 화이트의 백미는 웨딩 드레스다. 1813년 프랑스 패션잡지 여성과 패션에서 처음 선보였고, 1840년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앨버트 왕자와 결혼식 때 흰색 공단에 레이스가 달린 드레스를 착용하면서 오늘날 화이트 웨딩드레스의 시초가 되었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3-09-23 07:00 조진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