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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쓰레기 소각장에서 공연 관람… 폐교서 피자 만들기

부천아트벙커B39.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늦더위 기승도 잠잠해지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몸을 감싸는 가을이다. 시원한 날씨와 높은 하늘, 다채로운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여행의 최적기로 꼽히는 가을, 수명을 다 한 공간이 역사와 예술이라는 옷을 입고 재탄생한 곳을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한국관광공사는 가을철 가볼만 한 여행지로 ‘공간의 재활용’이라는 테마로 자칫 사라질 뻔한 건축물을 이용해 미술관이나 박물관으로 되살린 곳을 추천했다. 낙후된 건물이라도 그 가치를 인정받아 재활용 과정을 거쳐 새로이 주목받는 공간으로 거듭난 곳이다. 추천 여행지는 경기 지역부터 강원, 경남, 전남지역까지 넓다. 찾아가 볼 생각이 든다면 개방여부·개방시간·관람방법 등에 대한 확인은 필수다. ◇예술의 중심지된 쓰레기 소각장 ‘부천아트벙커 B39’부천아트벙커B39 모습.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부천아트벙커B39는 부천시 오정구에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원래는 ‘삼정동 소각장’이었다. 1995년 문을 연 이 소각장은 1997년 다이옥신 파동을 거치며 꾸준히 환경 파괴 문제가 제기되어 오다가, 2010년에 폐쇄됐다. 폐쇄된 소각장은 수년간의 공사를 마치고, 2018년에 새로운 복합문화공간 ‘부천아트벙커B39’로 다시 태어났다. 이곳은 과거 소각장 구조를 보존하면서도 멀티미디어홀, 벙커, 에어갤러리 등 다양한 예술 공간을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부천아트벙커B39에서는 융복합 예술을 추구하는 현대 미술품 전시와 친환경을 주제로 한 행사와 공연 등이 열린다. 부천의 대표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셈이다.부천에는 급격한 도시화의 유산을 복원한 사례가 더 있다. 1980년대 복개되었던 심곡천은 2017년 생태 복원 사업을 통해 도심 속 녹지 공간으로 재탄생한 곳이다. 부천의 예술적인 감각을 확인해 보고 싶다면 레노부르크뮤지엄으로 향하자. 초대형 미디어아트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관이다. 2001년 개관한 한국만화박물관은 한국 만화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소개하는 곳이다.◇산골 학교라서 더 낭만적인, 평창무이예술관평창무이예술관.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1999년 폐교한 무이초등학교가 조각가 오상욱, 서양화가 정연서, 서예가 이천섭 등의 예술가를 만나 2001년 평창무이예술관(이하 무이예술관)으로 변신했다. 기존 학교 틀을 그대로 살린 채 학교 운동장은 조각공원으로, 교실은 전시실로 꾸몄다. 나무 복도 바닥, 칠판, 풍금 등 무이초등학교 시절 흔적이 곳곳에 남아 예술관에 머무는 내내 옛 시골 학교 정취를 고스란히 만끽할 수 있다. 무이예술관을 꾸린 작가들의 전시와 다양한 기획 전시를 감상하고 화덕 피자 만들기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예술 체험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2층 규모 갤러리 카페도 갖췄는데 예술관 전경을 감상하며 쉬어가기 좋은 공간이자 봉평 감자 피자 맛집으로 유명하다. 무이예술관 운영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이며 실내 전시관은 오후 6시까지만 이용할 수 있다. 수요일은 휴관이나 공휴일, 성수기, 평창효석문화제 기간은 예외다.무이예술관이 터를 잡은 봉평은 작가 이효석의 고향이자 그가 쓴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주 무대로 관련 여행지가 다양하다. 이효석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소개하는 문학관과 바로 이웃한 효석달빛언덕, 소설에도 등장하는 봉평장(봉평전통시장) 등이 있다.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2023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된 발왕산 천년주목숲길까지 둘러 보기를 추천한다.◇상상력 놀이터, 충주 오대호아트팩토리코치빌더오대호아트팩토리로 변신한 폐교.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충주의 오대호아트팩토리는 쓸모없는 물건을 뜻하는 ‘정크(junk)’를 예술로 승화시킨 정크아트 작품이 자그마한 폐교를 가득 채운 공간이다. 이곳에 생기를 불어넣은 건 우리나라 정크아트 1세대 오대호 작가다. 철과 플라스틱, 나무 등 버려진 재료에 기계공학적 기술과 상상력을 입혀 작품을 탄생시켰다. 움직이는 요소를 넣은 키네틱아트(kinetic art)도 선보여 작품을 만져보는 것도 가능하다. 아트바이크를 타고 드넓은 운동장을 마음껏 누릴 수도 있다.조선 시대 후기 대표 하항(하천 연안에 발달된 항구)이었던 충주 목계나루 근처에는 담배창고였던 공간이 코치빌더라는 카페로 변신했다. ‘코치빌더(Coach builder)’는 고객의 주문에 따라 독창적인 신차를 만드는 것을 뜻하는데, 이곳에 전시된 올드카와 클래식카 역시 주인장의 취향을 반영, 개성적으로 복원하기도 했다. 벽면과 천장에는 차 계기반, 변속기, 휠 등 차량의 부품을 세심하게 분해해 실내장식 소품으로 활용했다.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현대자동차 1세대 그랜저와 기아 콩코드 등 지금은 보기 힘든 반가운 모델도 만날 수 있다. 코치빌더는 빵 맛집으로 입소문 난 곳. 충주에서 나는 밤과 고구마 등으로 빵을 개발해 선보인다.◇역사와 치유가 어우러진 문화 공간, 거창근대의료박물관거창근대의료박물관.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고색창연한 아름다움을 지닌 거창근대의료박물관은 1954년에 지어진 옛 자생의원으로 거창지역 최초의 근대병원이다. 2006년 의원이 문을 닫으면서 설립자 고(故) 성수현 원장의 유족들이 시설을 기부하고 거창군청이 부지를 매입했다. 2013년에 문화재청 등록문화재로 지정받은 후 2016년에 거창근대의료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현재 의료전시관이 된 병원동은 당시의 처치실, 수술실, X선실 등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고, 생김새가 낯선 옛 수술기구들과 의료시설들이 눈길을 끈다. 의사가 거주했던 주택동에는 그 시절에 사용했던 다양한 생활용품들이 전시되어 있다.요즘 거창근대의료박물관은 특색있는 근대의료문화 콘텐츠를 바탕으로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흥미진진한 근대의료의 역사를 듣는 이야기의 공간이자 역사와 치유를 경험하는 이색적인 문화 체험의 공간으로 채워가고 있다. 때때로 박물관의 앞마당은 삶을 위로하는 힐링 콘서트의 공간으로 이용된다.거창전통시장은 거창근대의료박물관에서 도보 3분 거리로 가깝다. 매달 1과 6으로 끝나는 날에 전통 오일장이 열린다. 거창창포원은 사계절 내내 다른 테마로 꽃을 즐길 수 있는 친환경 수변생태공원이다. 거창항노화힐링랜드의 Y자형 출렁다리는 우두산 협곡의 600m 상공에서 깎아지른 절벽 사이를 세 방향으로 연결한 빨간색 산악 보도교로 짜릿한 스릴을 만끽할 수 있다.◇ 5·18민주화운동의 흔적들, 광주 전일빌딩245전일빌딩245.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전일빌딩245는 5·18민주화운동 중 이 건물을 향해 헬기에서 사격한 총탄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장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진행한 현장 조사에서 모두 245개의 탄환이 확인되었고, 이는 헬리콥터 등 비행체에서 발사됐을 것으로 결론 내렸다. 국과수 결론 이후 이곳을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는 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 지상 10층과 지하 1층 중 광주콘텐츠허브로 사용 중인 5~7층을 제외한 나머지 층에 전시 공간이 마련돼 있다. 가장 중요한 전시 공간은 10층과 9층이다. 외부에서 날아온 탄흔의 원형을 보존하는 장소다. 헬기 사격을 목격한 증언을 참고해 제작한 멀티 어트랙션 영상도 재생 중이다. 모형 헬리콥터 UH-1H 기종과 M60 기관총, 전일빌딩245 주변을 재현한 디오라마 축소 모형, 왜곡의 역사, 진실의 역사 등을 주제로 전시물을 관람할 수 있다.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5·18민주화운동을 기록한 방대한 양의 자료를 보관 전시하는 공간이다. 5·18민주광장에 가면 당시를 촬영한 사진과 영상에 등장하는 원형 분수대를 볼 수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아시아와 문화를 주제로 전시와 공연이 이뤄지는 광주의 대표 문화시설이다.송수연 기자 ssy1216@viva100.com

2024-09-25 07:00 송수연 기자

[비바100] 도쿄 지겨웠던 N차 여행객, '쁘띠 재팬' 빠졌다

롯데관광개발이 일본 소도시행 전세기 상품을 출시했다. 사진은 일본 오카야마시의 풍경.(사진제공=롯데관광개발)최근 엔화 가치가 37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역대급 엔저에 일본으로 향하는 여행객들이 지속 증가하고 있다. 이에 여행업계는 일본 여행에 대한 열기를 잇기 위해 ‘소도시’ 상품을 기획하는 등 다양한 일본 상품과 콘텐츠 개발에 나서고 있다.지난해부터 이어진 엔저로 일본 여행 수요가 급증해 올해부터는 성장세가 다소 주춤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슈퍼 엔저에 일본 여행 수요는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 올 상반기 일본행 국제선 오른 승객은 역대 최다를 기록하는 등 역대급 호황기를 누리고 있다. 국토교통부 항공 통계에 따르면 올해 1~6월 국적 항공사와 외항사의 국제선 항공편을 이용해 일본으로 떠난 승객은 1217만명으로 지난해 상반기 대비 43.8% 늘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상반기와 비교하면 100만명 가까이 늘며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엔저 현상에 일본 여행이 가성비가 좋아지며 도쿄, 오사카 등 일본 주요 도시뿐 아니라 소도시로 향하는 여행객들이 늘었기 때문이다.북해도 온천.(사진제공=모두투어) 실제로 여기어때가 해외숙소 예약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올해 상반기 ‘가고시마’ 지역의 숙소 예약 건수는 지난해 동기 대비 3배 이상 뛰며 소도시 여행이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기록적 엔저로 일본을 재방문하는 여행객이 증가하고 여행지도 다변화했기 때문이다. 여기어때 측은 “최근 ‘N회’차 일본 여행을 즐기는 여행객이 늘면서 소도시로의 여행 수요가 생겼다”고 설명했다.원래 일본은 가깝고 교통편이 잘 발달돼 있고 여행정보가 많아 패키지보다 자유여행을 선호하는 경향이 크다. 다만 국내 여행객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소도시들의 경우 대도시에 비해 접근성이 낮고 교통편이 발달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상대적으로 자유여행이 쉽지 않다. 이에 여행업계는 일본 소도시와 이색 여행지를 둘러보는 패키지를 앞다퉈 선보이고 있다. ◇ 로컬의 매력… 소도시 콘텐츠로 차별화일본 미야자키 타카치호 계곡.(사진제공=롯데관광개발)소도시 여행이 주목받자 여기어때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일본의 ‘로컬 여행’의 매력을 담은 콘텐츠를 시리즈로 만들었다. 유튜브 채널 ‘오사카에 사는 사람들 TV(오사사)’와 함께 만드는 콘텐츠로 첫 번째 시리즈는 ‘가고시마’로 정했다. 가고시마는 자연과 온천, 지역의 특색이 담긴 맛집이 많은 곳이다. 소도시 여행에 익숙치 않은 여행객들에 초점을 맞춘 여행 영상 가이드북처럼 만든 것이 특징이다. 여기어때는 콘텐츠 공개와 함께 가고시마 지역 숙소 할인 이벤트도 연다. 가고시마를 시작으로 향후 후속으로 소도시 콘텐츠를 지속 업로드할 예정이다.롯데관광개발은 다가오는 추석 연휴기간 오카야마, 니가타, 미야자키 등 일본 소도시로 향하는 특별 전세기 상품을 출시했다. 각 도시의 명소부터 특산품을 활용한 음식까지 다채로운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구성하 것이 특징이다. 롯데관광개발은 항공권을 구하기 어려운 추석 기간, 특별 한정 전세기 상품을 마련해 수요를 선점하겠다는 계획이다.하나투어도 지방 출발 상품 다양화의 일환으로 인기 여행지인 일본을 중심으로 전세기를 확대하고 있다. 청주-일본(후쿠오카, 나리타, 간사이) 상품은 오는 10월까지 매일 출발 예정이다. 앞서서는 일본 홋카이도에서 열리는 ‘한일 드림 플레이어즈 게임’을 직관하는 홋카이도 패키지여행 상품을 출시하는 등 일본 상품 차별화를 지속하고 있다.교원투어 여행이지도 국내 여행사들은 일본 N차 여행객을 겨냥해 소도시 패키지 라인업을 확대하고 있다. 마츠야마·아오모리·히로시마·사가·도야마·요나고 등은 일본을 여러번 방문한 여행객들에게도 신선한 매력을 줄 수 있는 도시들이다.여행업계 한 관계자는 “일본은 여행 만족도도 높고 재방문도 많은 여행지”라며 “소도시에 대한 니즈가 확산되고 있어 당분간 일본여행 인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프리미엄 일본 상품도 ‘속속’북해도 온천.(사진제공=모두투어)올해 여름 성수기 시즌에는 일정이 짧으면서도 럭셔리한 해외여행에 대한 수요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호텔스컴바인과 카약의 해외 항공권 검색량에 따르면 4~7일 이내 기간으로 설정한 검색량이 가장 많았고 호텔 검색량은 4성급 호텔 비중이 1위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3성급 호텔 검색량은 전년 대비 크게 하락했다. 호텔스컴바인은 “생활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음에도 한국인의 해외여행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높다”며 “올 여름에는 럭셔리한 여행을 만끽하고자 하는 의지가 돋보인다”고 설명했다.프리미엄 여행에 대한 이같은 수요는 일본 패키지 상품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모두투어는 일본 지역 프리미엄 여행 수요 증가에 맞춰 ‘시그니처 블랙’ 신상품을 내놨다. 시그니처블랙은 시그니처와 함께 모두투어의 대표 패키지 브랜드로 프리미엄을 지향한다. 시그니처블랙은 △노팁, 노쇼핑, 노옵션 및 △5성급 이상 호텔 숙박 △현지 유명 식당 및 호텔 정찬식 등으로 즐길 수 있는 상품 브랜드이다.이번에 출시한 신규 시그니처 블랙의 대표 상품은 ‘북해도 료칸 온천 4일’이다. 해당 상품은 대한항공을 이용하고 럭셔리 전통 료칸으로 유명한 노보리베츠 타키노야 료칸에 3연박 숙박한다. 전통 료칸에서 즐기는 일본 가이세키 특정식을 통해 일본의 맛과 멋을 느낄 수 있다.고마츠 컨트리 클럽. (사진제공=롯데관광개발)또 일본 골프 여행을 찾는 관광객들이 증가함에 따라 추석 연휴 기간 떠나는 프리미엄 일본 골프·크루즈 상품도 등장했다. 롯데관광개발이 선보인 이 상품은 최대 크루즈인 11만4500t급 전세선 크루즈 코스타 세레나호를 이용하며 내부에 대극장, 실내외 수영장, 카지노, 헬스장 까지 갖추고 있어 크루즈 안에서 모든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다. 기항지는 가나자와에 위치한 고마츠 컨트리클럽과 마이즈루의 미야즈 컨트리클럽으로 자연 속에서 라운딩을 즐기는 코스로 기획됐다.하나투어는 내년 초 설 연휴 기간과 삿포로 눈 축제 기간에 맞춘 크루즈 여행 상품을 한정으로 선보였다. 설 연휴 기간에 운영하는 ‘설맞이 오니카와 크루즈’ 상품은 부산에서 출발해 오키나와에 있는 나하시, 이시가키 섬을 둘러보는 여정이다. 일본 최대 겨울 축제인 삿포로 눈 축제 기간에 맞춰 준비한 홋카이도 눈 축제 크루즈는 부산에서 출발해 홋카이도 남부 하코다테를 관광하고 서부 오타루에서 2일간 머무는 일정이다. 이 상품 역시 각종 부대시설을 갖춘 정통 크루즈 ‘코스타 세레나호’를 이용한다.한-일 크루즈코스타 세레나호. (사진제공=하나투어)이 기간 모두투어도 크루즈 여행 상품 2종을 선보인다. 설맞이 오키나와 6일은 설 연휴 기간에 맞춰 마련한 상품으로 부산에서 출발해 오키나와의 나하시와 이시가키섬 등을 거쳐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홋카이도 눈 축제 크루즈 7일’은 내년 2월 초 삿포로에서 열리는 세계 3대 축제 중 하나인 ‘유키마쓰리’ 눈 축제 기간에 부산에서 출발해 하코다테와 오타루를 거쳐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는 코스다.하나투어 관계자는 “크루즈 여행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짐에 따라 이번 한-일 크루즈는 하나투어 역대 한-일 크루즈 중 최대 규모의 좌석을 확보했다”며 “또한 고객 편의와 차별화 서비스 일환으로 크루즈 내 하나투어 전용 안내 데스크를 운영하고 있으며, 한-일 크루즈와 연계한 다양한 테마상품을 기획해 고객 확보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노랑풍선은 미야코지마 에어탈 상품을 출시해 새로운 여행 경험을 제시한다. (사진제공=노랑풍선)◇ 거대 빙벽·활화산… 테마여행상품도 인기 일본은 북위 20도에서 45도까지 약 3000㎞에 걸쳐 길게 뻗어 있는 일본은 아열대부터 한대까지 다양한 기후와 자연자원을 품고 있다. 이에 따라 빙벽과 아열대 해변, 활화산 등 일본의 자연 풍광을 구경할 수 있는 테마여행상품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일본의 알프스’로 불리는 지바현의 다테야마시는 4월 중순에서 6월까지 1년에 딱 두 달만 개통되는 거대한 설벽 ‘눈의 대계곡’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겨우내 쌓인 눈으로 세워진 20m 거대한 설벽 사이를 관광할 수 있다.모두투어는 아시아나 항공 전세기 업계 최다석을 확보하고 단 2개월간 만날 수 있는 알펜루트 설벽 관광이 담긴 패키지를 선보였다. 해당 패키지는 현재 보유 좌석의 80% 이상 판매되며 인기를 끌고 있다.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이기도 한 도고 온천 관광, 혼슈 최북단 아오모리에서는 일본 최대 사과 산지 답게 신선한 사과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일본 규슈 북서쪽에 위치한 소도시 사가는 온천과 도자기, 일본 3대 소고기인 사가규 등으로 유명하다.오키나와에서 280㎞ 떨어진 미야코지마를 즐길 수 있는 상품도 출시됐다. 노랑상품의 ‘미야코지마 에어텔’ 상품이다. 미야코지마는 일본의 몰디브로 통하는 휴양지로, 천혜의 자연과 바다로 새로운 여행 경험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일본의 유명한 활화산인 사쿠라지마 화산을 직접 볼 수 있는 상품도 출시됐다. 가고시마 3·4일 상품은 화산 연기를 직접 볼 수 있는 유노히라 전망대를 포함해 다양한 체험 일정이 포함됐다. 이 패키지에 포함된 호텔에서는 사쿠라지마 화산 전망을 제공하며 이곳에서는 안전하게 활화산도 감상할 수 있어 이용객에 특별한 추억을 남길 것으로 기대된다.송수연 기자 ssy1216@viva100.com

2024-07-24 07:00 송수연 기자

[비바100] 디스트릭트 이성호 대표 “이제 스물, 디지털 아트의 고유명사를 꿈꿔요!”

20주년을 맞은 디스트릭트 이성호 대표(사진=이철준 기자)“이제 성인이 됐네요. 스무살이 될 때까지 좀 힘들게 자라서 감개무량한 것 같아요.”이성호 대표이사의 표현처럼 ‘성인’이 된 디스트릭트(d’stirct)코리아의 20주년은 “감개무량”할만 하다. 2004년 웹에이전시로 시작해 디지털 아트 대표 기업으로 거듭나면서 수많은 부침과 성장통을 겪었다.“가장 어려웠던 시점 중 하나는 창업주이자 대표 슈퍼 디자이너였던 최은석 대표의 부재였어요. 유서 한장 없었어요. 정말 많이 흔들렸고 외부에는 디스트릭트는 끝났다는 인식이 팽배했죠. 2016년 제가 대표이사가 될 때까지도 재정적으로 어려웠어요. 부채가 자산보다 더 많은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서 중국 프로젝트의 적극 수주로 위기를 벗어나고자 했죠.”2012년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던 중 디스트릭트의 기둥이었던 최은석 창업주를 하늘로 떠나보냈고 2018년 중국과 100억원대 규모의 프로젝트 계약을 체결했지만 미수금으로 직원들의 월급을 걱정해야할 때도 있었다. 이 대표가 꼽은 “가장 영광스럽고 뿌듯했던 순간”은 단연 ‘웨이브’(Wave)의 성공이다.◇웹 에이전시부터 디지털 아트 대표 기업으로, 산업기능요원에서 대표이사로기사회생의 발판이 된 디스트릭트의 ‘웨이브’(사진제공=디스트릭트코리아)“기업 상대 서비스 뿐 아니라 B2C까지 확장하기 위한 2012년 라이브 파크, 2015년 플레이K팝이 연달아 실패한 상황에서 대표이사가 됐어요. 정말 모든 압박을 다 받으면서 오기가 생겼죠. 경영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저희가 만든 결과물들은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왔거든요.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2020년 ‘웨이브’를 제작했죠.”대망(?)의 2020년 코엑스 거대 전광판에 걸린 ‘웨이브’가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으면서 그야 말로 ‘기사회생’했다. 그렇게 ‘웨이브’로 업계 ‘생존의 아이콘’이 된 디스트릭트는 ‘웨일 넘버2’(Whale #2)과 ‘워터폴’(Waterfall-NYC)로 뉴욕 타임스퀘어에 입성했다.20주년을 맞은 디스트릭트 이성호 대표(사진=이철준 기자)이어 여수, 강릉, 제주, 부산 등 국내 뿐 아니라 홍콩, 중국 청두, 미국 라스베이거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등에 몰입형 미디어 아트 전시관인 아르떼뮤지엄(ARTE MUSEUM)을 운영 중인 디지털 아트 대표 기업으로 성장했다.이성호 대표는 2007년 병역특례 산업기능요원으로 발 들여 2016년 대표이사가 돼 지금에 이르기까지 17년 동안 디스트릭트와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전역을 앞두고 아이폰을 필두로 한 스마트폰이 출시됐고 ‘미디어 파사드’라는 디스플레이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콘텐츠가 트렌드가 됐어요. 컴퓨터 모니터 뿐 아니라 벽, 건물 등에 디지털 아트가 투사되기 시작했죠. 영화 ‘아바타’로 촉발된 홀로그램, 3D 입체영상 등 디스플레이가 다변화되던 시기였어요. 터치, 제스처의 양 등으로 디지털 정보를 입력하거나 사운드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게도 됐죠.”그렇게 경영학도로 회계사 시험에 합격해 회계법인 재직 중 산업기능요원으로 디스트릭트에 근무하던 그는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어 표현하거나 정보를 입력하는 수단들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앞으로 기술이 더 발전하고 수요가 많아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와 가능성”에 스스로의 미래를 맡겼다.“저희가 십몇년을 고생한 또 하나의 이유는 너무 빨리 이 업에 뛰어 들어서예요. 시장을 열었달까요. 보통 퍼스트 무버(First Mover)는 망하기 일쑤예요. 그들의 시행착오를 조정해 이후 주자들이 본격적으로 시장을 형성해 가곤 합니다. 그런 시류 속에서도 디스트릭트는 꾸준한 ‘버티기’로 퍼스트 무버이면서도 디지털 아트 신을 대표하는 사업자로 생존했죠.”◇변화 속에서도 변치 않는! 디테일과 디자이너 마인드span style="font-weight: normal;"디스트릭트의 ‘웨일 넘버2’(사진제공=디스트릭트코리아)“더불어 당시 구성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들이 뭔가를 하겠구나’ 싶었습니다. 대한민국 1세대 대표 웹디자이너였던 두 창업주로부터 ‘유산’처럼 전해져 온 그 일하는 태도는 디스트릭트가 20년간 ‘존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하죠.”그의 표현처럼 “디스트릭트. ‘엄격한 디자인’(Design Strict)이라는 회사 이름 자체가 두 창업주가 만든, 브랜드를 관통하는 철학”이다.“리더들이 그렇게 일하도록 창업부터 문화를 만들어 왔죠. 웹에이전시로 시작한 회사다 보니 픽셀을 다루면서 디테일에 집착하고 끝까지 놓치지 않았거든요. 고객사 오케이 보다 내가 만족할 때까지 다듬고 또 다듬어 완성도를 올리는 게 중요한 태도요.”웹에이전시로 시작했지만 기술 환경에 발맞춰 신속하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계속 바꾸고 병특으로 들어왔던 사람이 대표이사가 되는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았던 것이 그 일하는 태도다.20주년을 맞은 디스트릭트 이성호 대표(사진=이철준 기자)“보통 그런 자잘한 데 신경 쓸 게 아니라 또 다른 일을 해야 경제적이고 생산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 역시 디자이너 출신이 아니지만 이 회사에서 그렇게 일을 해 왔어요. 누가 시켜서가 아니에요. 그게 결국 비슷한 일을 하는 기업 혹은 조직과의 차별화를 만들어냈던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렇게 회사를 운영해 오고 있고 그 정신은 여전히 회사에 남아 있죠.”이어 이 대표는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적응하는 데 힘들어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들 역시 디테일에 집착하게 된다”며 “그것이 20년 동안 비주얼 크리에이티브로서 기업 역량이나 평가 훼손 없이 버텨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덧붙였다.“지금 시대와도 잘 맞는 정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젊은 친구들이 너무 많잖아요. 그들이 디스트릭트가 보여준 성장과정에 공감된다는 얘기들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버티기’ 혹은 ‘존버’라고 하죠. 하지만 그건 결과론적인 거예요. 존버하고 있지만 여전히 힘든 날들을 보내고 계신 분들이 너무 많거든요.”◇‘생존’ ‘기사회생’의 아이콘, 노력하지 않으면 운조차 만날 기회가 없다span style="font-weight: normal;"뉴욕 타임스퀘어에 설치돼 주목받았던 디스트릭트의 ‘워터폴’(사진제공=디스트릭트코리아)“우리 구성원들이 분명 좋은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경영진들이 회사를 잘못 운영해 고생할 뿐이었거든요. 그래서 버티면 분명 좋은 기회가 올 거라고 믿었고 결국 왔죠.”이를 이 대표는 “운이 좋았다”고 표현했다. 디스트릭트 성공의 시발점이 된 ‘웨이브’는 기업만을 대상으로 하던 데서 벗어나 고객을 직접 만나기 위한 마케팅의 첫 발이었다.20주년을 맞은 디스트릭트 이성호 대표(사진=이철준 기자)“사실 허황된 꿈조차 꿀 수 없던 때였어요. 먹고 살기도 힘들어 먼 데를 바라볼 수 없는, 극도로 현실적이 될 수밖에 없는 16년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일하며 버티다 보니 기회라는 게 찾아왔어요. 결국 운이 좋아서 가능했던 일이지만 그 운은 버텨서 찾아왔죠. 운도 정말 중요하지만 그 운이 그냥 찾아오지는 않는 것 같아요. 노력하지 않으면 그 운조차 만날 기회가 없거든요.”이전부터 B2C로의 전환을 꿈꾸며 수많은 시도를 했지만 연달아 실패를 거듭하면서 마케팅의 필요성을 깨닫고 코엑스 LED 전광판 운영사에 전체 운영시간 중 의무사항인 공익적 목적(2, 30%) 콘텐츠를 무료로 제작하겠다는 제안을 했다.“2019년 넥센타이어에 의뢰받아 제작한 ‘물’ 소재의 디지털 영상을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던 걸 떠올렸어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다 보니 (코엑스 LED 전광판 공익 시간대에는) 마스크 착용, 손 씻기 등을 권고하는 콘텐츠가 전부였던 때죠. 사실 답답한 시민들에게 위안과 힐링을 선사했다는 건 사후의 스토리텔링이고 디스트릭트라는 회사를 알리고 싶었어요. 이렇게 능력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콘텐츠 제작비용과 LED 사용료를 맞바꾼 ‘웨이브’는 의외성에 반응하고 열광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건드리며 “기사회생이라는 영광의 순간”으로 돌아왔다.“매체 주목도를 높이는 수단으로 미디어 아트, 아나몰픽 일루전이라는 입체 영상 표현기법이 활용될 수 있음을 확인했죠. 평면 스크린에 입체적 영상을 제작해 스트리밍하는 전세계적인 트렌드를 만든, 제가 관에 들어갈 때까지 뿌듯할 순간이죠.”◇‘영원한 자연’을 소재로 세계로! 세계로! 아르떼뮤지엄디스트릭트 아르떼뮤지엄(사진제공=디스트릭트코리아)“웨이브 뿐 아니라 아르떼뮤지엄의 시작도 운이 좋았어요. 그 장소에서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렇고 많은 분들이 방문하고 좋아해주신 것도 그렇고. 임대차 계약을 하자마자 코로나가 터져서 ‘진짜 망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하늘길이 막히면서 국내 여행이 활성화됐고 아르떼뮤지엄도 많이 찾아주셨죠.”아르떼뮤지엄은 “자연을 소재로 미디어 아트로 공간을 재해석하고 디자인해 어렵지 않고 직관적으로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현재 8개(여수, 강릉, 제주, 부산, 홍콩, 청두, 라스베이거스, 두바이)를 운영 중이다. 그렇게 국내외로 사이트를 늘려간 아르떼뮤지엄은 국내에서만 이미 700만명이 다녀갈 정도로 사랑받고 있다.20주년을 맞은 디스트릭트 이성호 대표(사진=이철준 기자)“B2C로의 전환을 꾀했던 두번의 시도에서 ‘소재’의 중요성을 깨달았어요. 가상의 자연을 직관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 ‘영원한 자연’(Eternal Nature)이라는 큰 주제를 잡았죠. ‘웨이브’의 성공으로 가능성은 이미 확인했으니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공간이 될 거라고 믿었습니다.”기술의 향연 보다는 “세줄 안팎의 설명으로도 이해가 가능한, 직관적으로 즐길 수 있는 공간”에 집중한 아르떼뮤지엄은 현재 디스트릭트 수익의 70%가량을 차지하는 중점 사업이기도 하다.“각 사이트 별로 2, 30% 가량은 그 지역의 문화적, 인문학적, 자연적인 소재들을 반영하고 있어요. ‘가든’이라는 섹션을 예로 들면 제주는 ‘제주도의 푸른 밤’, 여수는 ‘여수 밤바다’, 강릉은 송소희 소리꾼의 ‘강원도 아리랑’ ‘정선 아이랑’ ‘홀로 아리랑’ 등에 맞춰 그 지역 전경들을 담아내죠. 라스베이거스는 네바다 주의 캐년들과 카지노 풍경 등으로 그 지역을 느낄 수 있게 했습니다.”19일 개관한 아르떼뮤지엄 부산 중 ‘오르셰 협업’전(사진제공=디스트릭트코리아)19일 개관한 아르떼뮤지엄 부산은 ‘돌아와요 부산항에’ ‘부산 갈매기’, 최백호의 ‘부산에 가면’ 등에 맞춰 부산의 풍광들이 펼쳐진다. 더불어 고흐, 마네, 모네 등 유명 인상주의 작가들의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프랑스 파리의 오르셰 미술관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된다. 현직 오르셰 미술관 큐레이터의 기획으로 특화한 부산과 더불어 내년부터는 해외 사이트 확장에 집중한다. 내년 중국 션전, 미국 LA 산타모니카, 뉴욕 맨하튼 첼시 피어 그리고 2026년 일본 나고야와 태국 방콕까지 차례로 론칭할 계획이다.◇누구나 품고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 모두가 향유할 예술20주년을 맞은 디스트릭트 이성호 대표(사진=이철준 기자)“저희는 기술기업이 아닌 콘텐츠기업, 아트테크 팩토리입니다. 다른 데서 개발한 기술을 활용할 뿐 저희의 핵심 역량은 손끝에서 나오는 콘텐츠 기획·제작 능력이거든요. 아르떼뮤지엄도 여타의 프로젝트들도 기술적으로는 전혀 돋보일 게 없어요.”처참한 실패를 맛본 두번의 시도, 라이브 파크와 플레이K팝은 이 대표의 표현을 빌자면 “쓸 수 있는 모든 기술을 총동원한 기술박람회” 수준이었다. 하지만 기술이 최첨단화될수록 아날로그가 각광받는 현상은 일상 곳곳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기술을 바탕으로 하지만 사람들의 감정과 경험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저희는 아티스트도 아니에요. 저희는 여전히 완벽한 디테일에 집중하며 디자이너나 아티스트처럼 작업해요. 하지만 그 결과물은 지극히 대중적이죠. 보다 많은 분들이 쉽게, 직관적으로 향유하시길 바라거든요. 뭔가를 가르치거나 아티스트 철학을 이해 못하면 소양이 부족한 거라고 폄훼하지 않아요. 크리에이터도 아닌 저 같은 40대 아저씨 감성이면 수용될 수 있을, 설명 없이도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면 됩니다.”애초 2, 30대 여성들을 메인 타깃으로 론칭한 아르떼뮤지엄은 성별, 나이, 국적에 상관없이 누구나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계기이기도 하다.“아이들 그리고 어르신들도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누구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본능은 있어요. 어머님들이 예쁜 꽃을 좋아하고 아이들도 알록달록 귀여운 것들에 즐거워하잖아요. 아이들도, 어른들도 시각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니즈가 있는데 지금의 현대미술은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향유되고 있잖아요.”디스트릭트 아르떼뮤지엄(사진제공=디스트릭트코리아)이 대표는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욕구를 충족시키고 즐길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디스트릭트라는 회사가 기여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털어놓기도 했다. “동시대 미술 신에서 디지털 아트는 이제 시작되는 단계지만 향후 20년 내에 전통적인 회화나 예술에 버금갈 메인 장르가 될 거라고 믿습니다. 인상주의 이후 미술 자체가 굉장히 추상화되고 작가의 철학을 담는 형태로 진화했다면 앞으로는 기술을 기반으로 인상주의 이전처럼 직관적인 것으로 바뀌어가지 않을까 싶어요.”◇디지털 아트의 고유명사가 되기를 꿈꾸며 span style="font-weight: normal;"20주년을 맞은 디스트릭트 이성호 대표(사진=이철준 기자)“지금까지처럼 먼 미래를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어렵게 성인이 된 순간의 영광보다는 앞으로가 조금 더 기대해 볼 만한 환경인 게 너무 다행스러워요.” 조금 더 기대해 볼만한 미래의 시작이 될 내년 아르떼뮤지엄의 해외 지점 론칭과 더불어 디스트릭트는 시각 경험의 다변화에 집중한다. 아티스트와 협업한 아트프로젝트 ‘리사운드: 울림, 그 너머’(reSound, 8월 25일까지 문화역서울284)의 해외 순회전시 그리고 디지털 아트와 푸드를 접목해 ‘미각 경험’을 선사할 ‘고메트랙’(Gourmet Track) 준비에 한창이다.“쇼케이스 형식으로 올해 처음 무료로 선보인 아트 프로젝트 ‘리사운드’에는 하루 평균 2000여명이 다녀가셨어요. 이 추세라면 전시기간(60일) 동안 10만명은 오지 않을까 싶어요. 아무리 무료여도 하루 평균 2000여명이 오진 않아요. 이 현상이 지나치게 현학적이거나 작가주의에 빠진, 어떤 생태계에 갇혀 소수에만 향유되는 파인아트 신에 던지는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즐길만한 데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거든요.”디스트릭트 아트프로젝트 ‘reSOUND: 울림, 그 너머’ 중 ‘FLOW’(사진=허미선 기자)내후년쯤 제주에서 첫선을 보일 고메트랙은 “사운드트랙처럼 미디어 아트와 더불어 먹는 즐거움을 결합시킨 공간 서비스”다.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쓰고 큰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먹는 행위잖아요. 고메트랙을 위해 제주도에 2만평의 땅을 매입했어요. 제주의 특산물인 흑돼지를 활용한 오마카세부터 다양한 요리를 미디어 아트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이닝 서비스죠.”이어 “잘 알려진 FnB 브랜드와 협업하고 아르떼뮤지엄 제주도 이 부지로 옮길 예정”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20주년을 맞은 디스트릭트 이성호 대표(사진=이철준 기자)“디스트릭트는 시각을 메인으로 공간 경험을 디자인하는 기업이에요. 우리가 살고 있는 장소에서 할 수 있는 많은 경험들을 저희만의 방식으로 확장해 나가고자 합니다. 이제는 한국의 조그만 웹 에이전시가 아닌, 전세계에서 ‘디스트릭트’라는 브랜드를 들으면 ‘디지털 아트’를 연상할 수 있을 만큼은 알려져 있다고 생각해요. 이 열악한 한국의 디자인 산업에서 일하는 많은 크리에이터들에게 가능성을 좀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요.”이어 이 대표는 “영혼이 갈려 가며 누군가의 일을 대신 해주면서 여전히 어려운 시간들을 보내며 ‘버티기’ 중인 재능있는 에이전시, 크리에이터들에게 발전 사례로 남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앞으로는 ‘코카콜라’가 콜라의 고유명사이듯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디지털 아트의 고유명사인 ‘디스트릭트’가 되고 싶어요.”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7-19 18:00 허미선 기자

[비바100] ‘1섬 1정원 1뮤지엄’ 문화예술 섬으로! 박우량 신안군수 “문화예술 이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박우량 신안군수(사진=허미선 기자)“저희의 전략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자(OneOnly)입니다. 문화예술 이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더라고요. 문화예술이 융성하면 (떠나지 않고) 오래 살 수 있고 경쟁력을 더하지 않을까 생각했죠.”이에 벌써 네 번째 신안군수직(2006~2014년, 2018년 7월~현재)을 수행 중인 박우량 군수 정책의 핵심 키워드는 ‘OneOnly’ ‘1섬 1정원’ ‘1섬 1뮤지엄’ ‘문화예술’이다.전라남도 신안군(사진=허미선 기자)“신안에 제일 흔한 것들이 햇빛, 바람, 바닷물입니다. 이런 것들을 지금 기후 변화에 따라 신재생 에너지로 활용해 그 수익을 햇빛연금·바람연금으로 나누고 문화예술로 사람들이 북적거리면 조금 더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불과 몇 년 전까지만도 전라남도 신안군은 “재정자립도 최하위( 226개 지역자치단체 중 224등), 인구 소멸 고위험 지역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달고 있었다.전남 신안군에 조성 중인 ‘그래피티 마을’의 덜크(Dulk) 작품(사진=허미선 기자)1025개의 섬(유인도 76개, 무인도 949개), 인구 3만8191명(2024년 4월 기준) 중 65세 이상 고령인구 40%, 인구의 92%가 농가와 어가다. 1년 중 여객선이 아예 운항할 수 없는 날만도 52일, 하루 1회 이상 운항이 통제되는 날은 115일에 이른다.무엇 하나 희망적인 조짐이라곤 없었다. 그런 신안에 ‘빛의 마술사’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섬이 있다. 그 뿐 아니라 세계적인 아티스트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올라푸르 엘리아손(Olafur Elliasson) 등이 작품 구상을 위해 다녀갔다.전남 신안군에 조성 중인 ‘그래피티 마을’의 존원(Jonone) 작품(사진 제공=어반브레이크)프랑스 최고 권위의 명예훈장 ‘레지옹 도뇌르’를 수상한 세계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 존원(Jonone), 내셔널 지오그래픽 엠버서더 덜크(Dulk)가 신안군 압해도에 ‘그래피티 마을’(Graffiti Town) 조성을 위해 벽화를 작업 중이고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벽화로 유명한 포르투갈의 빌스(Vhils)도 9월 방문 예정이다. 신안이 아우르는 섬 개수를 상징하는 ‘1004’(천사) 브랜드와 지난 한해만 39만여명이 다녀간 ‘퍼플섬’(반월·박지도)을 비롯해 ‘1인 1정원’ 정책으로 완성된 섬만도 11개다.전라남도 신안군의 브랜드인 ‘1004’(사진=허미선 기자)퍼플섬에는 5월 라벤다부터 75만 그루의 버들마편초, 보라색국화 등 보라색 꽃들이 군락을 이루고 방탄소년단(RM, 진, 슈가, 제이홉, 지민, 뷔, 정국) 뷔에서 비롯된 ‘사랑해’의 BTS식 표현 ‘아이 퍼플 유’(I Purple You) 구조물과 퍼플교, 산책길, 화해와 화합을 위한 어린왕자와 여우 조형물 등이 볼거리, 즐길거리를 선사한다.2015년까지도 아무도 찾지 않았지만 현재는 40만명 가까이가 다녀가는 퍼플섬을 비롯해 ‘수선화의 섬’(선도), ‘순례자의 섬’(기점·소악도), ‘맨드라미의 섬’(병풍도), ‘수국·팽나무의 섬’(도초도), 수석미술관과 세계조개박물관, 신안자생식물 뮤지엄, 피아노 해변 등이 자리잡은 ‘1004뮤지엄 파크’와 ‘목련의 섬’(자은도), ‘겨울꽃 분재정원’(압해도), ‘튤립정원, 홍매화의 섬’(임자도), ‘동백의 섬’(흑산도) 등 이 섬들은 이동의 어려움에도 최소 2만명, 최고 39만여명이 다녀가는 꽤 유명한 관광지들이다. 완성된 11개를 비롯해 25만 그루의 작약이 흐드러질 ‘작약의 섬’(옥도) 등 8개가 현재 추진 중이며 5개가 계획 중이다.전라남도 신안군 퍼플섬 풍경(사진=허미선 기자)이들은 퍼플을 비롯해 레드, 옐로, 코발트 블루 등 대표색을 내세우기도 한다. 계절별로 그 대표색에 해당하는 꽃들이 만발해 축제를 펼친다. 그렇게 신안에는 “한달에 한번, 2024년에만 16개의 꽃축제”가 열린다. 그 중 “국내 유일의 겨울 꽃 축제”가 열리는 압해도는 제주 애기동백 5만 그루가 피고 진다. “동백꽃은 꽃째로 떨어지지만 애기동백은 입이 하나씩 떨어져요. 하얗게 덮인 눈 위로 꽃잎이 하나씩 떨어져 있으면 정말 장관입니다. 영하 7도까지 떨어지는 이 정원에 연간 15만여명이 다녀가요. 그들이 와서 입장료를 내고 근방에서 식사를 하고 기름을 넣고 물건을 사죠. 이렇게 100년, 200년이 간다면 정말 전설적인,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 되지 않을까요. 더불어 겨울에 피는 꽃으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체감온도도 2, 3도는 올라가죠.”전라남도 신안군 피아노 섬(사진=허미선 기자)저마다의 색으로 무장한 섬들을 방문할 때면 “그에 맞는 색의 옷으로 갈아입는다”는 박 군수의 전언에 따르면 “그 섬에 어떤 이벤트가 있으면 저 뿐 아니라 도민 전체가 고유 색을 입는다.” 더불어 그 섬의 고유색 옷을 입은 방문객들의 입장료는 50% 안팎의 할인율이 적용되기도 한다. “앞으로 40개의 꽃 축제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꽃이 필 뿐 아니라 문화예술에 참여할 수 있는 섬을 만들고자 합니다. 문화예술은 도시에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자긍심이 생기질 않아요. 마음만 먹으면 15~30분 거리에 아름다운 꽃 축제와 산책길이 있고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다면 섬에 살지만 당당하고 행복한 마음이 차오르죠. 그래서 ‘1섬 1뮤지엄’ 정책을 통해 27개의 뮤지엄을 만들 생각입니다.”박우량 전라남도 신안군수(사진=허미선 기자)신안을 세계로 알리기 위해 2012년 2월 흑백사진의 대가 마이클 케나(Michael Kenna)를 초청해 사진을 찍고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책으로 꾸려 발간했는가 하면 2021년부터는 매그넘포토스 소속가작가 10명과 작업을 이어간다.6월 28일 덜크(압해읍사무소)를 시작으로 존원(펠리스파크) 그리고 빌스(농협본점)까지 올해 3명 작가가 벽화 작업 중인 한국 최초의 ‘그래피티 타운’ 프로젝트는 2026년까지 이어지며 젊은 예술애호가들에게 손짓할 예정이다.흑산도의 ‘새공예박물관’ ‘철새박물관’ ‘박득순미술관’, 암태도 ‘서용선미술관’, 압해도의 ‘저녁노을미술관’, 자은도 ‘1004섬수석미술관’ ‘세계조개박물관’, 비금도 ‘이세돌바둑박물관’ 등 이미 완료된 15개의 뮤지엄을 비롯해 향후 10여개의 뮤지엄도 조성이 한창이다.9점의 작품으로 꾸릴 제임스 터렐 섬(노대도), 그래피티 섬(압해도), 자연과의 조화로움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안토니오 곰리의 작품이 설치될 ‘바다의 뮤지엄’(비금도), 공동묘지 부지에 한창 작업 중인 야나기 유키노리의 플로팅 뮤지엄(안좌도), 올라퍼 엘리아슨의 ‘대지의 미술관’(도초도), 마리오 보타(Mario Botta)와 박은선 작가의 ‘인피니또 미술관’(자은도), 동아시아 인권과 평화 미술관(신의도) 등 월드클래스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신안의 섬들에서 만날 수 있다.군수부터 공무원들, 도민들까지 퍼플, 레드, 옐로, 코발트 블루 등의 옷을 입고 내달린 덕에 신안은 지난해 처음으로 인구(179명)도 증가했다. 방문자 수도 692만명(2022년 기준, 관광데이터랩)에 이르고 전년대비 방문자 수 6%, 관광소비 21%가 증가했다.박우량 전라남도 신안군수(사진=허미선 기자)사람들은 떠나가고 신생아의 울음소리가 끊기다시피했다. 그야 말로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은 비단 신안만이 겪고 있는 현상이 아니다.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전국의 지자체가 고민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다. 그럼에도 지역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들 강조하곤 한다. “남들이 가는 길을 가서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지역은 열악한 여건, 그 지역만의 특성을 가지고 있죠. 그 역경과 고민거리를 강점으로 전환시켜 당당함과 자긍심을 불어넣어야죠. 처음엔 저도, 외부에서도 잘 할 수 있을까 의문점이 많았지만 이제는 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방법이 문화예술의 차별화라고 확신합니다. 배우고 안배우고, 소득의 높고 낮음을 떠나 비전을 공유하고 공감대를 형성해 함께 하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죠. 그런 문화예술과 더불어 지역 특성자원을 활용해 자연환경을 보존하면서 만들어가는 것이 신안만이 가야할 방향이고 차별화 전략이죠.”전남 신안=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전라남도 신안군 풍경(사진=허미선 기자)전라남도 신안군 풍경(사진=허미선 기자)전라남도 신안군이 고향인 단색화가 김환기 고택(사진=허미선 기자)전라남도 신안군 풍경(사진=허미선 기자)전라남도 신안군 임태도의 서용선 미술관(사진=허미선 기자)전라남도 신안군 풍경(사진=허미선 기자)

2024-07-08 18:00 허미선 기자

[B그라운드]800만 관람객, 수익금 253억원 조기달성 202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그 화두는 “지역을 지역답게!”

노관규 순천시장이 202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제공=박람회사무국)“이번 여름은 유난히 더웠던데다 장마도 길어서 수요예측이 어려웠습니다. 10월 10일쯤에야 목표(관람객 800만명, 수익금 253억원) 달성을 예측했는데 추석연휴기간 동안 100만여명이 다녀가셨어요. 큰 관심을 보여주신 덕분에 지역 국가행사가 목표달성을 며칠 앞당길 수 있었습니다.” 202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190여일만인 7일 목표 관람객 800만명, 128일만에 목표 수익금 253억원(10월 9일 기준 누적수익 316억원)을 돌파한 데 대해 박람회 조직위원회 공동운영위원장인 노관규 순천시장은 11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밝혔다.이번에 박람회를 다녀간 800만여명 중 해외 관람객은 32만여명으로 미국, 중국, 베트남, 일본, 대만, 필리핀, 프랑스 등 64개국에 이른다.  순천만 습지에 조성된 갈대숲(사진=허미선 기자)“2013년 박람회에 440만명이 다녀가셨으니 두배 정도 늘었죠. 이제 폐막까지 20여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다녀가신 분들이 ‘유럽 정원 보다 더 좋다’ ‘해외갈 필요가 있나’ ‘순천시민들이 부럽다’ 등의 평가를 해주셔서 고단함을 이겨내며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이어 “그간은 외국정원 배끼기에 급급했다면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우리 정서에 맞게 만들었기 때문에 많이들 감동하신 듯하다”며 성공요인을 짚은 노 시장은 “개인 뿐 아니라 벤치마킹을 위해 480여개의 기관, 190여개의 지방자치단체가 다녀가기도 했다. 지자체의 고민들은 대부분은 비슷하다”고 말을 보탰다.“농촌지역에 인구는 많고 일자리는 박하다 보니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어 이분들을 급하게 수용하느라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도시계획을 하기에 급급했어요. 그러다 국민소득 3만불이 넘어가면서 아파트, 아스팔트, 자동차 등으로 대표되는 시대를 맞았죠. (전혀 준비되지 않은) 그런 상황에서 환경문제가 심각한 도시를 어떻게 녹색도시로 바꿔나가야 하는지, 소득 수준과 눈높이에 맞는 도시를 만들어가야 하는지 고심했지만 엄두가 나질 않았을 겁니다. 그러던 차에 순천시가 박람회로 그 단초를 열어줬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방문하셨죠.”202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프레스데이가 10월 11일에 열렸다(사진제공=박람회사무국)그리곤 “이제는 보여주는 데만 만족하지 않는 시대”라며 “직접 체험할 수 있고 건강까지 고려할 수 있도록 어싱길 등 걷는 길들을 처음으로 설치를 했다”며 “더불어 복합적으로 다양한 체험요소들도 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에 맞는다”고 부연했다. 대도시를 꿈꾸기 보다는 “지역을 지역답게!”를 강조한 노 시장은 “이제 대한민국의 대도시든, 중소도시든 어떻게 도시계획을 해야하는지 고민하게 될 것이고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성공 사례를 어떻게 적용하고 실행될지 그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고 부연했다.노 시장은 새만금에서 열렸던 잼버리 행사를 예로 들며 “지역에 준 권한들이 작다는 등의 문제제기를 하지만 순천처럼 성공하는 데도 있기 때문에 천편일률적으로 결정할 일은 아니다. 지방으로 권한을 주더라도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지 손해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고 밝혔다.노관규 순천시장(사진제공=박람회사무국)“이 박람회를 치러내고 일을 잘하는 지자체에 더 많은 주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약속대로 애니메이션 등 미래산업들, 순천만 보존을 위한 습지 복원, 경전선 도심 통과 등 주요 현안 사업들에 대한 정부 예산 반영을 지켜냈습니다. 단순히 순천시에만 머물지 않고 인접 지역 경제들까지 들썩이는 효과를 만들어냈죠.”박람회를 위해 ‘임시시설’로 설치된 정원들의 “폐막 후 재활용과 애니메이션 클러스터, 2차 전지 등 미래 산업 위한 기회발전특구 조성 등에 대해서도 고민 중”이라는 노 시장은 “자원순환 성과를 복합적으로 정리를 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단순 생활체육시설을 넘어 산업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로 고민 중입니다. 더불어 기회발전특구를 통해 (지역 청년들이) 수도권에 가지 않아도 될 수 있도록 지역대학과 연계해 청년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데 주목할 생각입니다.”순천=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3-10-12 15:38 허미선 기자

[비바100] 숙소·교통 '한방에'… 올여름 캠핑카 몰고 가세요

(사진출처=게티이미지)바야흐로 캠핑카 전성시대다.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여행 수요가 되살아나면서 캠핑카는 새로운 여행 문화로 자리 잡았다. 기존 차량을 캠핑카로 개조하거나, 차량에 연결하는 캠핑 트레일러를 이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캠핑카로 여름휴가를 계획하는 이들을 위해 ‘알뜰하고 안전한 캠핑카 이용법’을 소개한다.19일 하나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국내 운행 중인 캠핑카는 총 4만8836대로 집계됐다. 2012년 6040대에 불과하던 캠핑카는 10년 만에 약 8배 급증했다. 캠핑카가 늘면서 소비자의 취향과 용도에 따라 모델도 다양해졌다.◇ 모터홈부터 캠퍼밴, 트레일러까지캠핑카 종류 (사진=하나은행)캠핑카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대표적 모델은 모터홈이다. 주거 공간과 이동하는 자동차가 결합된 형태로, 침실, 화장실, 주방시설 등이 포함돼 있다. 주행 중에도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며,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하기 적합하다.캠퍼밴은 기존 차량의 내부를 개조해 만든 캠핑카다. 외부는 주행용 차량과 크기가 비슷하며, 내부에 침실, 테이블, TV 등이 설치돼 있다. 주차와 주행이 편리하며 일상적인 용도로도 사용하기 좋다.트레일러는 자체 동력 없이 다른 차량에 견인돼 운행되는 형태의 캠핑카다. 크기와 모델에 따라 옵션이 다양하다. 대형 트레일러는 주방과 욕실, 침실까지 제공된다.하지만 캠핑카 구매 가격은 4000만원대부터 1억원 넘는 차량까지 다양하다. 캠핑카로 개조하는 비용도 옵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이에 캠핑카를 직접 구매하기보다 대여하는 경우가 많다.◇ 렌트는 최소 15일 전 예약, 면허자격 요건도 확인해야캠핑카 렌트 체크리스트 (사진=하나은행)원하는 날짜와 시간에 이용하고 싶다면 캠핑카 렌트(대여) 어플리케이션(앱)이나 사이트를 통해 최소 15일 전 원하는 캠핑카가 예약 가능한지 확인하고 사전예약을 해야 한다. 이후 여행 일정에 맞춰 대여업체 차고지를 직접 방문하거나 탁송 서비스를 이용해 자택에서 차량을 받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1박 2일 기준 국산차의 대여 비용은 약 15만~50만원, 수입차는 약 45만~80만원이다.캠핑카를 대여하기 위해선 나이와 면허자격 요건을 갖춰야 한다. 캠핑카는 보통 만 26세 이상부터 대여할 수 있다. 일반 승합차 등을 개조한 캠핑카는 2종 보통면허로 운전할 수 있지만, 9인승 이상 차량을 빌린다면 1종 보통면허가 필요하다. 트레일러를 연결해 운전하고자 한다면 총 차량 중량에 따라 소형 견인차 면허가 필요할 수 있다.캠핑카를 대여하면 1시간 이상 안전운행 수칙을 교육받아야 한다. 차량 인수 시에는 내부시설이 정상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고장이나 파손이 없는지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차량 반납 시 오해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확인한 부분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겨둘 필요도 있다.일반적으로 캠핑카 대여업체에서는 기본적인 대인, 대물, 자기신체손해(자손) 종합보험을 가입한 상태로 차량을 빌려준다. 일체형 캠핑카는 일반 승용차가 아니므로 ‘업무용 자동차 보험’에 가입하지만, 스스로 이동하지 못하는 트레일러는 자동차 일부로 규정하므로 종합보험이 아닌 자기차량손해 담보만 가입하면 된다. 자기차량손해(자차)보험은 별도 비용을 내고 가입해야 한다.◇ 크고 높은 캠핑카, 안전운행 주의해야캠핑카 운행 주의사항 (사진=하나은행)캠핑카는 차체가 큰 만큼 적정 속도로 운전하지 않으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일반적인 승용차 크기와 달라 공간감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회전 또는 주차 시 후방센서와 카메라가 탑재돼 있더라도 동승자가 내려 양옆을 확인해 주는 것이 좋다. 차고도 일반 차량보다 높은 2.5m~3.5m이기 때문에 건물 진입 시 해당 건물의 주차 제한 높이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날씨와 노면도 미리 확인할 필요가 있다. 강한 바람은 캠핑카의 방수포와 차양을 손상시키고, 차체를 흔들 수 있으니 사전 장비 점검을 통해 대비해야 한다. 비가 올 경우 차량이 진흙, 모래밭, 자갈밭에 빠질 수 있으므로 노면 상태를 사전에 점검하고, 야전삽을 준비하거나 비포장도로용 타이어를 장착하는 것이 좋다.트레일러를 운행하기 전에는 주행 차량과의 연결 상태를 철저히 확인하고, 연결된 케이블과 체인 등이 바닥에 끌리지 않도록 조절해야 한다. 트레일러의 표시등과 브레이크 작동 상태도 반드시 검사한다. 트레일러의 폭이 주행 차량보다 넓을 경우 차선 변경이나 회전 시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확장형 사이드미러를 부착하는 것이 좋다. 트레일러 운행 시 주행 차량이 휘청거리는 ‘스웨이 현상’을 방지하려면 트레일러 무게 중심이 앞쪽에 오도록 적재물을 배치하고, 버스나 트럭 등 대형 차량 근처에 접근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캠핑카 개조 합법화, 보험·세금 확인해야앞서 지난 2014년 11인승 이상 승합차의 캠핑카 개조 합법화를 시작으로 2020년부터는 승용차, 화물차, 특수차 등 다양한 자동차를 캠핑카로 개조하는 것이 합법화됐다. 캠핑카 개조 시 취침시설 설치는 필수다. 세탁실, 좌석, 테이블, 취사시설, 화장실 중에선 하나만 충족하면 된다. 단 전기 설비를 갖추고자 한다면 별도의 요건을 충족해야 승인받을 수 있다.금융감독원은 지난해 6월 1일부터 승용차를 캠핑카로 개조했을 때 ‘캠핑용 특별할인 요율’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에 승용차를 캠핑카로 바꾸면 자동차보험료가 40%가량 저렴해진다. 특히 개조 과정에서 업무용 승합차 좌석을 없애 캠핑카로 개조하면 개인용 승용차 기준으로 자동차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돼 보험료가 10%가량 줄어든다.캠핑카 전환 시 과세표준의 5%를 개별소비세로, 개별소비세의 30%를 교육세로, 차량을 제외한 모든 비용(개조 비용, 개별소비세, 교육세)의 합계에 대해 10%의 부가가치세를 납부해야 한다. 과세표준은 차량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자동차관리법에 따르면 자동차를 캠핑카로 개조하기 위해선 시장, 군수, 구청장의 승인 후 자동차정비업자 또는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자동차제작자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불법 개조된 차량은 화재 등 안전상의 위험을 초래할 수 있으며 보상을 받기도 어려울 수 있어 반드시 합법적으로 개조해야 한다.출처=하나은행정리=박준형 기자 jun897@viva100.com

2023-07-20 07:00 박준형 기자

[비바100] 모처럼 훌훌~ 킹달러 부담 두고 떠나세요

(사진출처=게티이미지)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웠던 해외여행이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와 PCR 검사가 의무화 해제로 이전처럼 자유로워진 분위기다. 이에 카드사들은 해외여행 활성화 흐름에 맞춰 관련 프로모션과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해외여행 슬기로운 카드 활용법을 알아본다.◇ 공항·해외 현지 이용 시 할인 혜택 제공신한카드는 연말까지 전 고객을 대상(BC, 선불 기프트카드 제외)으로 공항 이벤트를 진행한다. 전 세계 1200여개 공항 라운지 매장을 대상으로 더라운지 이용권 40% 할인을 제공한다. 신한카드 고객은 더라운지 앱에서 신한카드 이벤트 페이지를 통해 할인 이용권을 사전에 구매하면 된다.인천공항 라운지를 이용한 신한카드 고객 대상으로 1인 무료 이용권을 추가로 증정하는 이벤트를 연말까지 진행한다. 인천공항 제1터미널(마티나라운지, 스카이허브라운지)과 제2터미널(마티나라운지, 라운지L, SPC라운지) 등에서 라운지 입구 데스크에서 본인 라운지 이용권 1개 구매 시 동반인 1인 무료 이용권을 증정한다.이달 말까지 신한 신용카드 이용 고객을 대상으로는 공항 카페, 교통편 이벤트도 진행한다. 인천공항 제1터미널 엔제리너스 동,서편과 제2터미널 엔제리너스 서편에서 아메리카노 1잔 구매 시 무료로 1잔을 제공한다. 더라운지 앱의 신한카드 이벤트 페이지에서 K리무진을 8000원 할인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사진출처=게티이미지)KB국민카드는 국제 브랜드 카드(△KB국민카드 마스터 △비자 △유니온페이 △JCB △AMEX 신용·체크카드)로 해외 가맹점에서 20만원 이상 결제하면 해외이용금액의 1%를 최대 100만 포인트리로 적립해준다. 또, 이달 말까지 국민카드로 ‘마이리얼트립’ 홈페이지에서 할인대상 국제선 항공권 결제 시 최대 10% 즉시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인터파크투어’ 홈페이지에서 국민카드로 국제선 항공권 결제 시 최대 10% 즉시 할인해주는 이벤트는 연말까지 진행한다.우리카드도 해외 결제, 여행 이벤트를 마련했다. 우리카드는 이달 말까지 트립닷컴과 함께 전용 프로모션 페이지를 통해 호텔 예약 시 할인코드 입력 후 우리VISA카드로 결제하면 14% 즉시 할인을 제공한다. 우리VISA카드가 없어도 연말까지 트립닷컴 전용 프로모션 페이지를 통해 우리카드로 호텔 예약 시 7% 즉시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우리신용카드 이용 고객을 대상으로 연말까지 해외결제 무이자 할부전환 혜택도 제공한다. 이벤트에 응모 후 우리카드로 1000원 이상 해외 온·오프라인 결제 건을 할부전환 시 2~5개월 무이자 혜택을 받을 수 있다.하나카드는 한국인이 즐겨 찾는 해외 여행지 괌, 사이판, 동남아를 대상으로 ‘Eat, Play, Stay in 괌, 사이판, 동남아’ 여행 특집 이벤트를 이달 말까지 진행한다. 트립닷컴과 하나VISA카드 고객 대상으로 4% 즉시 할인 혜택과 인터파크 투어에서 하나카드 결제 시 국제선 항공권을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 베트남 빈펄 호텔리조트 객실 10% 할인과 식사, 스파 20% 할인을 제공하고 골프여행객을 위한 골프 그린피 35% 할인 및 가족여행객을 위한 빈펄랜드 및 사파리 20% 할인, 태국 아웃리거 호텔리조트 객실 15% 할인 및 룸 업그레이드 무료 혜택 등이 있다.◇ 항공권·환전 혜택 담은 특화 카드삼성카드 ‘삼성카드amp;MILEAGE PLATIUM’ 플레이트(왼쪽)와 롯데카드 ‘하나은행 밀리언달러 카드’ 플레이트. (자료=각 사)삼성카드는 항공 마일리지 적립이 가능한 ‘삼성카드MILEAGE PLATIUM(스카이패스)’ 카드를 선보였다. 이 카드는 모든 가맹점에서 이용금액 1000원당 스카이패스 1마일리지를 적립해준다. 고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주유소 △백화점 △택시 △커피 △편의점 등 5개 업종에서는 이용금액 1000원당 스카이패스 2마일리지를 매월 2000마일리지까지 적립받을 수 있다. 이 밖에도 △인천공항 라운지 본인 무료 △인천공항 발렛파킹 무료 △공항카페 커피 무료 △아티제 커피 1+1 등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제공한다.삼성카드는 연말까지 신세계인터넷면세점 온라인 적립금 제공 이벤트도 진행한다.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면, 신청월로부터 1년내 3번의 적립 월을 선택할 수 있다. 선택한 적립월마다 5만원씩 총 15만원이 직립되면, 적립금은 신세계인터넷면세점에서 결제금액의 30%까지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롯데카드는 수수료 없이 환전하고 결제하며 쓴 만큼 항공 마일리지로 적립해주는 △하나은행 밀리언달러 카드 △트래블앤로카 △아멕스 플래티넘 아시아나클럽 롯데카드 등 해외여행 특화카드 3종을 선보이고 있다.‘하나은행 밀리언달러 카드’는 원화와 외화 결제계좌를 연결해 국내에선 일반 신용카드처럼 쓰고, 해외에서는 VISA 국제브랜드수수료와 해외서비스수수료 등 수수료 없이 미국 달러 금액 그대로 결제할 수 있다. 해외 여행 전 하나은행 ‘하나 밀리언달러 통장’을 외화계좌로 연결하고 원화를 입금하면 달러로 자동 환전된다.‘트래블앤로카’는 이용금액의 최대 3%를 총 15개국 외화로 수수료 없이 환전할 수 있는 ‘트래블포인트’로 적립해준다. 국내외 전 가맹점에서 결제금액의 1%를 트래블포인트로 기본 적립해주고, △해외 △항공사 △여행사 가맹점 결제 시 3%를 매월 5만 포인트로 특별 적립해준다.‘아멕스 플래티넘 아시아나클럽 롯데카드’는 카드 이용금액만큼 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 ‘아시아나클럽 마일리지’로 적립해준다. 국내외 가맹점에서 이용금액 1000원당 1마일리지를 기본 적립해주고, 아멕스 브랜드 카드 이용 시 마일리지가 특별 적립된다. 아멕스 브랜드 카드 이용 시에는 국내외 공항 라운지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연 2회 제공한다. 동반자 1인까지 무료 이용이 가능하고, 동반자와 함께하는 경우 연 1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강은영 기자 eykang@viva100.com

2022-10-12 07:00 강은영 기자

[비바100] 강원작가트리엔날레2022 차재 예술감독 “배가 산으로 가는 게 잘못인가요?”

‘강원작가트리엔날레2022’ 차재 예술감독(사진=이철준 기자)“배가 산으로 가는 게 굳이 잘못이라고 해야 할까요?”‘강원작가트리엔날레2022’(9월 29~11월 7일)의 차재 예술감독은 올해 주제인 ‘사공보다 많은 산’에 대해 이렇게 반문했다. 남해 스페이스 미조, 제주 베케, 춘천 오월학교, 서울 노들섬 등 지역재생 프로젝트 기획과 크리에이티브를 수행했던 그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건 맞다”며 “건축가로서 로컬 브랜딩, 도시 재생 등의 일을 하다 보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자주적으로 말씀을 하신다”고 말을 보탰다.차재 감독은 “사공이 각자의 배를 탈 수 있게 하는 다양성의 문제”라며 “사공이 물이 좋아서 물에 있으면 응원해주고 산으로 가려고 해도 지지해주는 것이 저희 예술제가 취해야 하는 기본 태도”라고 부연했다.“사공은 배를 타고 강과 바다, 물 위에 있는 사람들이죠. 그들이 산으로 간다는 건 범주를 확장한다는 의미이고 교류가 많아서 경계를 넘어서는 거잖아요. 예술제, 예술 그리고 일상까지 포함해서 지향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사공이 많은 자체로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 많은 사공을 한배에 태우려는 게 문제죠.”span style="font-weight: normal;"‘강원작가트리엔날레2022’ 차재 예술감독(사진=이철준 기자)◇다양성의 문제, 모두가 산이 되는!“그래서 ‘사공 보다 많은 산’은 각자 가고 싶은 대로 가면 된다는 의미에요. 스스로가 산이고 각자가 그 산을 오르기도 하죠. ‘나는 산’ ‘우리는 산’이라는 메시지를 다 품을 수 있는 주제가 ‘사공 보다 많은 산’ 같아요. ‘강원작가트리엔날레2022’가 저마다가 산이 되고 모두가 산이 되는 예술제가 됐으면 좋겠어요.”‘강원작가트리엔날레2022’는 강원도 주최, 평창군·강원문화재단·평창문화도시재단 주관으로 치러지는 ‘강원트리엔날레’의 첫해 행사다. ‘강원트리엔날레’는 2013년 격년제인 ‘평창비엔날레’로 시작해 2018년 올림픽특별전까지 치른 후 2019년부터 행사의 성격을 바꿔 진행해 왔다.3년 단위로 강원도의 한 지역을 정해 첫해는 강원도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이 참여하는 ‘강원작가트리엔날레’, 이듬해는 ‘키즈트리엔날레’ 그리고 3년째는 ‘국제트리엔날레’가 진행된다.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홍천에서 치러진 ‘강원트리엔날레’는 ‘예술의 고원, 평창’이라는 대주제로 올해부터 2024년까지 평창에서 진행된다. 올해의 ‘강원작가트리엔날레’를 시작으로 2023년에는 ‘키즈트리엔날레’, 2024년 ‘국제트리엔날레’가 열린다. 새로운 3년의 첫발인 ‘강원작가트리엔날레2022’에서는 강원도를 연고로 한 성인작가 134팀과 드로잉 공모로 선정된 30명의 청소년이 참여해 25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이 작품들은 어린이 실내 낚시터, 게이트볼장, 종합공연체험장에 각각 꾸린 ‘풀’(Pool), ‘게이트’(Gate), ‘홀’(Hall) 그리고 진부 전통시장을 포함한 ‘타운’(Town), 파빌리온과 조각공원으로 구성된 ‘파크’(Park), 평창연구아카이빙·아트밭·체험프로그램으로 구성된 ‘밭’(Batt) 등 6개 공간에 나뉘어 전시된다.‘강원작가트리엔날레2022’ 차재 예술감독(사진=이철준 기자)더불어 단풍절경으로 유명한 월정사에서는 그래피티 작가 제바(XEVA, 유승백)와 평창 진부중학교 2학년 재학생 100여명이 함께 작업한 작품을 만날 수 있고 파버카르텔, 러쉬코리아 등 잘 알려진 브랜드와 협업한 드로잉 체험, 발달장애 아티스트 지원 프로그램 등도 진행된다. “트리엔날레라고 하면 거대담론, 예술적 담론의 성취는 무엇이냐고 묻곤 하세요. ‘강원작가트리엔날레’는 로컬 예술제예요. 강원 작가와 주민들이 강원도의 자연과 일상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을 교차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죠.”차재 감독이 말하는 두 가지 시선 중 하나는 “강원의 자연과 일상을 대하는 작가의 시선”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산을 쪼개고 쪼개면서 발견되는 또 다른 이야기들”이다.“그 이야기들은 흙, 나무, 돌, 강 등 각자의 고유성을 가지면서 산을 구성하는 것들이죠. 이들을 재발견하고 모아 교차시켜 전시하면 ‘강원의 이야기’이자 ‘강원의 지역성’이 된다고 생각합니다.”span style="font-weight: normal;"‘강원작가트리엔날레2022’ 차재 예술감독(사진=이철준 기자)◇강원의 재발견, 그 의지를 담은 전시장들“외부에서 어떤 개념을 가져오기보다 내부의 것들을 발견하는 과정들의 연속이었어요. 그렇게 인문학적으로 지역을 탐구하는 프로젝트를 하면서 뽑아낸 키워드가 ‘밭’이에요. 논과는 다른, 땅의 기운이 더 느껴지고 토양의 이야기가 더 많기도 하죠.”차재 감독이 꼽은 ‘밭’(BATT)은 ‘강원작가트리엔날레2022’가 펼쳐질 6개 공간 중 하나이자 평창의 지역색이 가장 잘 묻어나는 키워드다. 벼에 한정적인 논과 달리 밭은 “어떤 걸 가져다 심어도, 여러 품종을 한데 심어도 되는” 공간으로 ‘다양성’과 ‘지역성’을 내포하는 개념이기도 하다.“작가의 작품에 지역이 동원되는 게 아니라 역전시킨, 지역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공간들도 있어요. ‘일상예술전’이 그렇고 진부역, 진부시장에서 진행되는 ‘오일장 프로젝트’가 그렇죠.”최근 몇 년간 유휴공간이었던 평창송어축제장에는 차재 감독이 구축한 파빌리온과 조각공원이 들어선다. 이 공간에 대해 차재 감독은 “벽과 지붕이 있는 관이 있고 지붕만 있는 외부 공간, 전망대도 있다. 그들 사이에는 데크 공간과 크고 작은 마당들이 있다”며 “지역의 특징을 살려 활동하는 팀들, 진부농협 등과의 협업을 통해 평창의 특산물로 만든 지역 음료와 다과, 특산품, MD 등을 선보인다”고 설명했다.“파빌리온은 지역의 시간적 연계, 행사장의 주요 공간을 잇는 앵커스페이스예요. ‘강원트리엔날레’ 기간에는 예술제 공간으로 활용되지만 그 이외에는 마을이나 지역 행사들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남아 있을 거예요. 더불어 행사가 없을 때는 지역민들의 일상을 담아내는 기능을 하죠. 이들이 충분히 끼어 들어갈 수 있게 다양한 개폐감 등을 고려했어요. 다양한 방식으로 주민들의 일상이 충분히 잘 담기고 빛을 발할 수 있도록 꾸린 공간이죠.”태백 미용실에서 모은 머리카락으로 작업하는 황재형 작가, 수묵화가 신철균 작가, 길종갑 작가, 박홍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주제전은 유휴공간이던 게이트볼장, 어린이를 위한 실내낚시터, 평창송어종합공연체험장 등을 새로 꾸린 전시장에서 열린다.‘강원작가트리엔날레2022’ 차재 예술감독(사진=이철준 기자)“공간이 품고 있고 그들이 사용된 흔적들을 살려 꾸린 전시장들이에요. 도시재생의 가장 큰 문제는 새로 꾸려지는 대부분의 유휴공간이 ‘원래 뭐였는지’를 알 수 없다는 거예요. 지역재생이 이뤄지는 풍경과 결과를 보면 좀비영화 혹은 드라마 ‘워킹데드’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원래는 간호사, 선생님, 경찰 등이었던 이들이 똑같은 모습으로 변해버리는 좀비처럼 보건소, 경찰서, 학교, 창고 등 각기 다른 기능을 하던 공간들이 도시재생으로 죄다 카페가 돼버리곤 하거든요.”이어 차재 감독은 “원래 기억이나 사용 흔적 등과는 상관없이 기승전‘카페’가 돼버리는 도시재생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됐다”며 “죽은 걸 되살리기만 하면 된다 보다는 잠깐 쉬고 있는 공간을 재활시키는 게 도시재생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강원작가트리엔날레2022’ 전시장들은 원래 기능을 일깨우는 재활 방식으로 꾸려진 유휴공간들이다.“실내 낚시터는 25mX25m 크기의 정방향 공간에 가운데 12m 지름의 낚시터 풀장이 있는데 성스러운 기운이 느껴지는 공간이죠. 공간으로 퍼져나가는 물결의 기운들에서 영감을 받아 전시장을 꾸렸는데 공중에 매달린 동그란 수조의 아우라고 되게 좋아요. 게이트볼장은 인공잔디가 깔려 있어 기존 미술관과는 다른 보행감을 줘요. 공들이 통과하면서 직선으로 오간 사용흔적을 그대로 살렸죠.”◇지속가능성의 핵심 ‘지금의 나’‘강원작가트리엔날레2022’ 차재 예술감독(사진=이철준 기자)“당장 건강하지 않더라도 멀리 나아갈 비전이 없더라도 그냥 지금의 나를 나로 인정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차재 감독은 “모든 것의 지속가능성은 건강한 자아, 장기적 비전 등 보다 지금 당장의 스스로를 인정하는 용기에서 시작한다. 그렇게 스스로를 인정하고 누군가 나를 인정해주고 서로를 인정하면서 지속된다”고 밝혔다. ‘강원작가트리엔날레2022’의 주제인 ‘사공 보다 많은 산’과도 맞닿아 있는 그의 말은 4년차를 맞은 ‘강원트리엔날레’에도 적용된다.“제가 물음표로 던지는 주제를 기반으로 끊임없이 지역을 두드려 먼지가 나게 하고 소리들이 좀더 풍성해질 수 있도록 기운을 만들어주는 게 첫해의 역할 같아요. 그렇게 지역을 두드릴 판을 깔고 먼지든 향이든 올라오면서 ‘키즈비엔날레’ ‘국제비엔날레’까지 지속되면 3년차에는 무르익을 겁니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건 세부 지원보다는 서로에 대한 인정, 다양성의 확보죠. 쇠붙이만 붙으라고 자석을 가져다 대는 게 아니라 뭐든 그대로 흡착될 수 있는 끈끈이처럼요.”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2-09-30 18:30 허미선 기자

[비바100] 내 여행의 산증인은 사진이 아니다?

(사진출처=게티이미지)바야흐로 휴가의 계절이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창궐로 하늘길이 막힌 지 3년 만에 해외여행이 개시됐지만 여전히 휴가를 가지 못한다. 들고 갈 ‘가방’이 없기 때문이다. 만인이 인정한 가방 중독자(였)로 과거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가수 서인영이 구두를 “울 아가”라고 불렀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는 사람이다. 방 2개인 경리단의 빌라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할 때도 옷장보다 가방을 보관하는 장롱이 더 컸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가볍고 개성적인 에코백이 최고임을 아는 나이가 됐다. 여기서의 가방은 바로 캐리어다.예전만큼은(이라고 쓰고 체력이 딸려라고 고백한다) 아니지만 출장이 잦은 직업적 특성상 크기별로 여러 개의 캐리어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기내용과 수화물로 부칠만한 튼튼한 녀석(?)만 있으면 됐는데 싶지만.역시나 캐리어도 종류나 색, 재질과 크기로 천차만별이다. 그렇다고 패리스 힐튼처럼 L사의 로고가 박힌 고가의 가방은 소유할 능력도, 흥미도 없었다. 다만 크기별로 다양하게 구비한 탓에 주말에 친정행 혹은 과하게 물건을 사야하는 코스트코 방문 때 요긴하게 써왔다. 늦둥이가 태어난 후에는 마트에 갈 때 아이를 태울 수 있는 캐리어를 무리해서 구입하기도 했다. 정작 물건은 많이 넣을 수 없는 취약점이 있지만 아이를 끌고(?) 다닐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디자인이었다. 지금은 흔하지만 약 4년 전만 해도 해외구매대행으로만 살 수 있던 이 캐리어는 동네 마트에서 반드시 “이건 어디서 사나요?”라는 엄마들의 질문을 받곤 했다.여행의 필수품인 캐리어. 개인적으로 여행가방은 가볍고 튼튼한 게 최고인데 비슷한 디자인이 많은 탓에 유치해도 차별성을 더하는게 좋다. (사진=이희승기자)휴가철이기도 하니 캐리어 파손시 겪었던 다양한 항공사들의 반응과 공통적인 요구 서류에 대한 경험을 공유해 보고자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즐겁게 해외여행에서 돌아온 후 가방 파손에 대해 “일단 집에 간 뒤 해결하자”는 입장을 취한다. 긴 시간 비행에 시달렸고 환승이라도 했다면 피곤과 짜증이 극에 달했을 터. 하지만 가방 파손이 발견됐다면 그 즉시 해당항공사로 가야 한다. 심야나 새벽 도착이라도 상관없다. 인천공항의 수준은 세계적이고 연계된 항공사는 많다. 간혹 창구를 닫았더라도 친절한 안내가 가능한 곳이다.얼마전 프랑스 칸 국제 영화제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캐리어의 손상을 입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는 전설적인 그룹  프레디 머큐리가 가수가 되기 전 했던 기내짐을 분류하는 작업 장면이 잠깐 나온다. 심드렁하게 가방을 던지는 그의 모습이 2초 정도 스치는데 요즘 세상에서 그건 애교수준인 것 같다. 다년간 꽤 여러번의 가방 손상 및 분실을 겪었는데 그럴 때 해당 항공사의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할 마음은 없다. 쌓인 경험만큼이나 나름 대처한다고 생각했는데도 닥칠 때마다 생소한 경험이다.(사진출처=게티이미지)일단 캐리어 구매 영수증이나 결제 카드 내역서를 갖고 있기를 바란다. 열의 아홉이 가방을 구입했을 당시의 서류를 요구한다. 설사 그게 있다고 한들 끝이 아니다. 감가삼각비라는 항목이 있어 사용한 연도만큼 금액이 차감된다. 칸영화제 출장에서 손상된 캐리어를 구입한 건 5년 전, 영수증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랍에미레이트의 빠른 일처리였다. 일요일임에도 담당 직원이 필요서류를 요청했고 친절한 안내를 받았다. 영수증이 없으므로 규정상 50% 정도를 제한 가격에서 1년에 거의 2~3만원이 차감됐다. 이런 안내를 수차례 받았기에 차라리 같은 크기의 가방을 요청했다. 과거 러시아 항공인 에어로프루트에서 바퀴가 3개인 깨진 캐리어를 돌려 받으면서 자그마치 5개월을 연락했던 경험이 있다. 전화는 ‘담당자를 바꿔주겠다’며 5번 이상 돌려졌고 어렵게 알아낸 담당자에게 읍소의 이메일을 보내고서야 겨우 대체 가방을 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해외배송으로 구매한 라이드 캐리어.(사진캡쳐=해당홈페이지)아랍에미레이트의 담당자는 “과거에는 대체되는 가방의 퀄리티가 괜찮았지만 지금은 추천하진 않는다”면서 “구매를 5년 전에 하셨으니 영수증이 없다면 당시 결제한 카드 내역서를 뽑아달라”고 했다. 수하물 가방 치고는 꽤 큰 크기라 25만원에 구입했으니 영수증이나 카드 내역서가 없으면 50%를 제하고 사용한 4년에 해당하는 금액을 빼고 나면 손에 쥐는 건 몇 만원뿐이다. 결국 대체 가방을 받겠다고 했다. 다만 밝은 색으로 된 가방을 원한다고도 했다. 3일 후 거대한 크기로 도착한 박스에는 이름도 들어 본 적 없는 로고가 박힌 은색 캐리어가 들어 있었다. 이 가방은 현재 제주도에서 한달살기 중인 친정부모님 댁에 가 있다. 가방으로 받는 조건은 반품불가이고 동일한 크기여야 한다. 무려 28인치인 탓에 한달 살기에 가 있을 짐을 담기에는 그만이었다.더불어 현명한 여행을 원한다면 보험을 드는 것이 좋다. 허니문이 첫 해외여행이었던 남편은 몰래 당시 거금의 여행자 보험을 들었다. 지금처럼 부담없는 1~2만원대에 다 되는 호시절은 아니었지만 분실물에 대해선 상당부분 보상해주는 혜자스런(?) 시기였다. 꼼꼼히 따져 본 사람은 알겠지만 요즘 해외여행자 보험은 파손에 대해서만 보상한다. 그나마도 전액 보장도 아니다. 여행자보험 체크리스트.항목은 죄다 줄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닥쳤을 때 첨부해야 할 서류를 체크해야 현명한 여행이 될 수 있다. (사진=이희승기자)당시 렌트카 위에 면세점에서 산 보스 선그라스를 올려두고 그냥 출발했던 남편은 면세점 영수증을 안 버리고 가지고 있던 덕분에 전액을 보상받았다. 이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소매치기를 당했던 가방과 디지털 카메라도 당시 현지 경찰서를 방문해 해결했다. 당시엔 “찾을 방법이 없다. 하필 그곳엔 CCTV가 없다”며 달랑(?) 서류 한장을 받았는데 검색을 통해 관할 경찰서 도장이 찍혀있으면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에 귀국 후 전액보상은 아니지만 3분의 1 정도는 돌려 받을 수 있었다.이 사건에 대해 악사(AXA) 관계자는 “현지 경찰서에 신고 후 폴리스리포트를 발급 받은 것이 신의 한수”라며 “있어서는 안될 일이지만 만약 닥쳤다면 현지 증명 서류는 필수”라고 조언했다. 가장 빈번한 휴대폰 파손의 경우 가입증명서의 할부원금과 구입시점부터 사고시점까지 법정 감가율이 적용되니 참고하자.캐리어도 소모품이라 굴러가는 바퀴도 닳는 법. 저렇게 견고한 나사를 박아주자 실제 새것같은 가방으로 재탄생됐다. (사진=이희승기자)나의 경우 캐리어가 파손됐을시 수리불가 확인서가 필요했는데 양심적인 수리업자를 만나해결한 적이 있다. 도저히 굴러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수리업자는 “보험료를 받으면 새 것을 살 수는 있다. 하지만 내 경력에 마이너스를 내고 싶지 않다”면서 “더 쓸 수 있겠냐”고 물었고 새 것 이상으로 고친 경험이 있다. 눈치챘겠지만 보험을 빌미로 마냥 우기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여행의 추억을 가장 가까이서 함께한 캐리어에 대한 예우를 다해보는 건 어떨까.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2-08-11 18:30 이희승 기자

[B그라운드] #도시브랜딩 #글로벌마케팅 #매력특별시 #BTS 서울관광재단 “포스트 코로나 시대, 행복한 관광도시 서울을 꿈꾸며!”

서울관광재단 길기연 대표(사진제공=서울관광재단)“관광은 굉장히 창의적인 산업이라고 생각해요. 창의적인 상품 및 콘텐츠를 시의적절하게 제공해야 하거든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위한 새로운 관광 콘텐츠 개발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서울관광재단 길기연 대표는 18일 서울관광플라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매력특별시 서울 관광 콘텐츠, 글로벌마케팅 계획’을 발표하며 이렇게 의견을 밝혔다. 이어 길 대표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관광 전담 조직이자 컨트롤타워인 우리 (서울관광)재단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서울 관광 발전과 재도약을 위해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길 대표를 필두로 한 서울관광재단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을 비롯한 다양한 변수들을 맞닥뜨리며 ‘창의력’을 발휘해야하는 관광 콘텐츠 개발에 힘을 기울인 계획을 발표했다.“서울이 관광도시인지에 대한 의문 가지고 있었습니다. 경복궁, 덕수궁 등의 고궁, 남산, 남대문시장 등을 방문하거나 쇼핑 정도가 다 였으니까요. 전세계적으로 K콘텐츠가 각광을 받으면서 서울도 주목받고 있지만 파리, 바르셀로나 등 연간 1억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도시에 비하면 뒤처져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이렇게 전한 길 대표는 “거대한 시설물, 예를 들어 1998년 생긴 런던아이는 연간 350만명이 다녀간다. 서울에는 그런 랜드마크가 부족하다”며 “멋진 장치물이 있어 관광도시로 이미지를 바꿔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시에서도 긍정적으로 태세 전환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을 보탰다.서울관광재단 기자간담회에서 길기연 대표이사가 질의응답에 답하고 있다.(사진제공=서울관광재단)“성수기에 남산 케이블카는 2시간 정도 기다려야 합니다. 곤돌라 형식으로 바꾸던가 해야 하기도 하지만 그 외의 다른 멋진 장치물이 생겨야 할 듯해요. 변화에 따라 서울의 이미지를 바꿔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이어 청와대 개방에 따른 관광 클러스터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는 “관광업계에서는 엄청난 사건이 터진 거라고 보고 있다”며 “그 동안 서울의 랜드마크가 없었는데 청와대가 개방되면서 광화문, 경복궁, 인사동, 창경궁, 북촌과 서촌 등 그 일대를 엮어 관광 클러스터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평했다.다만 “12월까지는 문화재청이 운영한다. 문화재청은 보존에 중점을 두는 기관”이라며 관광에 방점을 찍는 서울관광재단과는 다른 현재 운영 상태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어 길 대표는 “청와대 개방은 관광업계의 활력소로 작용할 뿐 아니라 향후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로서의 잠재력도 매우 높다”고 덧붙였다.“저희 입장에서는 청와대가 서울 관광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청와대 개방을 필두로 새로운 관광 콘텐츠 개발을 통해 서울이 세계적인 관광 도시로 진입할 수 있도록 그 어느 때보다도 관심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현재는 관리, 책임 등 여러 부분에서 모호한 사안이지만 서울에 있는 청와대를 서울시에서 운영하게 되면 우리 서울관광재단으로 (운영권이) 넘어오지 않을까 기대를 가지고 항시 준비 중입니다.”서울관광재단이 발표한 ‘매력특별시 서울 관광 콘텐츠, 글로벌마케팅 계획’ 골자는 ‘서울 관광 RE:START 글로벌 마케팅’ ‘뉴노멀 MICE 도시 브랜딩’ ‘매력 특별시 서울관광 콘텐츠개발’ ‘지역상생협력 클러스터 구성’이다.서울관광재단 기자간담회에서 이혜진 글로벌마케팅팀장이 사업계획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제공=서울관광재단)‘서울 관광 RE:START 글로벌 마케팅’은 서울명예관광홍보대사 방탄소년단(RM, 진, 슈가, 제이홉, 지민, 뷔, 정국)과 함께 하는 2022 홍보영상 제작을 비롯한 글로벌 한류스타 활용 콘텐츠, 해외 매체 홍보 및 인플루언서 활용 실시간 라이브 방송·해외 초청 팸투어 등 외래 관광객 유치를 위한 대면 마케팅 전면 재개, 신규 서울 관광 브랜드 ‘마이 소울 서울’(My Soul Seoul) 활용 콘텐츠 개발, 서울관광 생태계 혁신 및 지원 등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길 대표는 8월 촬영 예정인 방탄소년단과의 홍보영상에 대해 “최근 그룹 행보의 변화로 (방탄소년단 측과) 긴밀하게 협의 중”이라며 “멤버 전체가 아니더라도 홍보영상은 촬영하는 걸로 얘기가 되고 있고 장소나 촬영 장소는 미정인 상황”이라고 전했다.지속가능한 MICE 환경 조성을 위한 ‘뉴노멀 MICE 도시 브랜딩’과 더불어 ‘매력 특별시 서울관광 콘텐츠개발’에도 나선다. 강북구 ‘도심등산관광센터’ 및 반려견 친화 카운티 광진구의 ‘댕댕이 산책코스’ 등 자치구별 특성을 살린 테마관광 카운티 육성, 2022 서울 페스타(Seoul Festa 2022, 8월 10~14일 잠실종합운동장), 서울 쇼핑페스타, 서울빛초롱축제 광화문 등을 개최한다.서울시 관광·문화 분야 산하기관과의 협력체계 구축, 지방관광공사(RTO) 서울 공동사무소 개소, 서울관광플라자 협력 클러스터 구성 등 지역자치구·지방 협력 기반 조성으로 상생하는 ‘지역상생협력 클러스터 구성’도 진행된다.서울관광재단 기자간담회 전경(사진제공=서울관광재단)“지난달 북한산 구역의 서울도심등산관광센터를 개발해 시범 운영을 시작했고 반려동물 가구 1500만 시대를 맞아 7개의 산책 코스를 발굴해 생활 관광 콘텐츠도 소개했습니다. 최근 시범 운영 중인 서울등산관광센터를 다녀왔는데 운영 2주만에 370여명이 다녀가는 등 많은 관심을 받고 있죠. 정말 오랜만에 많은 외국인들이 가득 찬 모습에 뭉클하기까지 했습니다.”이어 “한국을 입국하는 외국인 중 80% 이상이 서울을 방문한다. 서울을 중심으로 국내 항공, 철도, 도로 등이 촘촘히 연결돼 있어 대한민국을 방문하는 외래 관광객에게는 서울이 첫 번째 관문”이라며 “서울 관광이 성장하면 더불어 지방의 관광까지 두루 성장하고 더 많은 외래 관광객 유치가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을 보탰다. 이에 서울관광재단은 지역 자치구, 지방 관광공사 등과의 협력을 기반으로 공동 마케팅 추진, 매력적인 서울 관광 콘텐츠 개발 등에 나선다.“먼저 자치구와의 협력을 통해 각 구마다의 특성을 살린 테마관광 사업지를 조성할 계획입니다. 이미 조성한 강북구의 도심등산관광센터, 광진구의 댕댕이 산책코스를 시작으로 송파구의 올림픽경기장, 공원, 체육시설 등을 활용한 ‘스포츠 앤 골프 카운티’, 서초구 예술의 전당을 활용한 ‘뮤직 카운티’ 등을 조성해보고자 합니다.”더불어 길 대표는 “해외 경쟁을 위한 해외 지부 개설, K콘텐츠를 활용해 패션·미용·라이프스타일·문화까지를 아우르는 ‘뷰티 서울’, 다양한 국가에서 문의를 해오고 있는 K의료, K팝·드라마·OTT콘텐츠 등을 활용한 체험 프로그램 등을 준비하고 있다”며 “랜드마크로는 노들섬이 딱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앞으로 보다 부지런히 뛰며 관광 접점의 모든 주체들과 함께 힘을 모으겠습니다. 각 지자체, 관광업계, 학계 등이 서로 소통하며 여행하고 싶고 살고 싶은, 매력 넘치고 행복한 관광도시 서울을 만들어 가겠습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2-07-19 17:45 허미선 기자

[비바100] 긴 기다림만큼 더 꼼꼼하게… 즉흥여행 줄고 계획여행 증가

(사진출처=게티이미지)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코로나19 엔데믹 전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해외여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즉흥적으로 국내여행을 떠났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계획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커뮤니케이션그룹 KPR 부설 KPR 디지털커뮤니케이션연구소가 본격적인 여름휴가 시즌을 앞두고 여름휴가에 대한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올해 휴가 트렌드는 ‘해외여행’과 ‘계획여행’이었다. 이번 빅데이터 분석은 매스미디어, SNS(트위터, 인스타그램)와 웹(블로그, 커뮤니티) 등의 온라인 버즈를 기준으로 이루어졌다.분석 결과 여름 휴가와 함께 ‘해외여행’을 언급한 건수는 3월 6만4798건에서 4월 7만7055건으로 약 1.2배 증가했다. 5월에도 7만5785건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4월을 기점으로 해외여행에 대한 언급량이 증가한 이유에 대해 KPR 디지털커뮤니케이션연구소는 “4월 초 중앙방역대책본부의 발표를 통해 사회적 거리두기 운영이 완화되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서 한국이 엔데믹으로 나아가는 첫 국가가 될 것이라는 보도에 힘입어 엔데믹 이후 처음 맞이하는 여름 휴가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여름휴가 관련 키워드 업급량 추이(자료=KPR 디지털커뮤니케이션연구소)또 다른 올해 여행 트렌드는 즉흥 여행보다 계획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4~6월에는 주말(1만7359건), 일요일(8916건), 평일(7857건) 등 근거리 여행이나 즉흥 여행과 관련된 검색이 주를 이뤘다. 반면 올해 같은 기간에는 예약(1만8955건), 가격(1만4914건) 등이 키워드로 떠올랐다.실제로 예년에 비해 숙소 예약도 빠르게 이뤄졌다. 종합 여행·여가 플랫폼 여기어때가 지난해와 올해 6월15일 기준으로, 7월1일부터 8월31일까지 이용하는 상품의 예약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숙소 예약 거래액은 전년 대비 3.7배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예약 시점은 숙소 이용 시점보다 평균적으로 52.3일 일렀다. 이는 지난해보다 3.5일 빨라진 수치다. 억눌렸던 여행 수요가 폭발하면서 원하는 상품 이용을 위해 예약을 서두른 것이다. 김용경 여기어때 브랜드실장은 “엔데믹 이후 첫 여름 성수기인 만큼 여행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좋은 여행 상품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이른 시점에 예약을 완료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했다.해외여행 연관 긍·부정어 키워드(자료=KPR 디지털커뮤니케이션연구소)반면 항공권과 숙박권의 예약이 어려워 해외여행을 포기하는 양상도 보였다. 올해 4~6월 해외여행에 대한 연관어 분석 결과 코로나(4만7009건), 가격(3만3683건), 예약(2만8166건)이 상위에 등장했다. 또 해외여행에 대한부정어에는 ‘걱정’, ‘비싼’이 상위에 등장했다. 이는 베케플레이션 현상에 따른 변화로 분석할 수 있다. 베케플레이션은 베케이션(vacation)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이 합쳐진 신조어로 항공권의 가격 상승과 국제유가 및 환율 상승이 더해져 해외여행을 포기하는 현상을 말한다. 따라서 엔데믹에 대한 기대로 해외여행에 대한 관심과 수요는 증가하고 있지만 코로나에 대한 걱정과 높은 항공권 가격, 인플레이션 등으로 인해 장거리 비행이 필요한 미국이나 유럽 등 국가보다는 일본, 베트남, 태국, 홍콩 등 근거리 여행지에 대한 인기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베트남 다낭 논누옥해변.(사진=하나투어)이에 여행사들은 여행객들의 가격 부담을 낮추고자 전세기 상품을 내놓고 있다. 하나투어는 다낭 전세기를 활용해 크라운플라자, 하얏트리젠시, 쉐라톤그랜드 등의 리조트를 이용하는 ‘다낭 5일’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다낭 해변 동일선상에 위치한 리조트 고객들이 한 팀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2명만 예약해도 출발이 확정된다. 그리고 전세기 이용으로 유류할증료 인상에 대한 부담도 없다. 리조트에 따라 79만9900원부터 예약 가능하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고객이 항공권 가격과 유류할증료 인상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도록 다낭 전세기를 운영 중”이라고 말하며, “이를 통해 고객 눈높이에 맞춘 신상품을 선보이는 등 여행객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고 말했다.롯데관광개발은 최근 일본 정부가 여행사 단체 관광객 입국을 허용함에 따라 오는 8월 한달 간 총 8회 출발하는 북해도 단독 전세기 여행 상품을 출시했다. 에어서울을 이용한 3박4일 및 4박5일 일정으로 1인 기준 189만9000원(유류할증료 및 세금 포함)부터다. 권기경 롯데관광개발 여행사업본부장은 “리오프닝(경제 재개)에 따라 증가하고 있는 해외여행 수요 및 여름 휴가시즌을 대비해 보다 많은 편수의 단독 전세기 상품을 출시해 롯데관광개발만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겠다”고 설명했다.노연경 기자 dusrud1199@viva100.com

2022-06-29 07:00 노연경 기자

[B그라운드] 3년차 ‘2022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 청와대를 품다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2022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 기자간담회가 열렸다(사진제공=한국문화재재단)“우리 문화유산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10개 테마 코스 선정, 뉴욕·런던·방콕·도쿄 등에 한복·한식·한글·한옥 알리기 영상 송출, MZ세대들과의 소통을 위한 가상 인플루언서와 MZ세대들이 한류를 즐길 수 있는 가상공간 내 홍보관을 운영합니다. 더불어 경복궁의 후원에 해당하는 청와대를 방문코스에 포함시켜 국악과 K팝이 어우러진 광복절 행사 등을 선보입니다.”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2020년 출범해 3주년을 맞은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며 “10개 테마에 포함된 75개 거점에서의 행사를 올해 처음 마련한다”고 덧붙였다.최 청장의 설명처럼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은 ‘천년 정신의 길’ ‘백제고도의 길’ ‘소릿길’ ‘설화와 자연의 길’ ‘왕가의 길’ ‘서원의 길’ ‘산사의 길’ ‘관동 풍류의 길’ ‘선사 지질의 길’ ‘가야 문명의 길’이라는 10개 테마 방문 코스를 제안한다.2022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은 버추얼 패밀리 호·곤·해일과의 협업으로 트래블로그를 제작한다(사진제공=한국문화재재단) 이 중 ‘왕가의 길’ 거점 중 하나인 경복궁은 후원격인 청와대를 포함하고 있다. 청와대에서는 국악, K팝 등을 아우르는 광복절 행사 ‘코리아 온 스테이지’가 열리며 10월에는 미디어아트와 결합한 전시를 통해 청와대의 역사를 알릴 예정이다.청와대를 품은 이번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은 MZ세대와의 소통을 위해 가상 인플루언서 호(昊)·곤(坤)·해일(海日) 버추얼 패밀리와 함께 ‘인생샷 여행’ 영상 콘텐츠를 제작했다. 이 트래블로그는 세 남매가 ‘왕가의 길’ 중 수원 화성, ‘관동풍류의 길’ 중 강릉 선교장, ‘천년 정신의 길’ 중 안동 하회마을, ‘서원의 길’ 중 안동 병산서원을 체험하고 즐기는 방법을 담는다.2022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 홍보대사 ‘파친코’ 김민하(사진제공=한국문화재재단)이들의 트래블로그는 6월 27일부터 미국 뉴욕의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한달 간 송출 예정이다. 더불어 메타버스(제페토) 내 홍보관에서는 11월 남원 광한루원을 공개한다. 출범부터 진행해온 ‘코리아 인 패션’은 올해 ‘리을’과 함께 한다. 리을은 글로벌스타 방탄소년단, 지코 등 K팝 스타들과 이번 대통령선거 후보들의 한복정장을 담당했던 브랜드다.문화유산 방문 캠페인의 ‘코리아 인 패션’에서는 김리을 아트디렉터가 백제역사유적지구를 배경으로 한국적 의상을 감각적으로 담아낸 다. 이 영상은 10월 일본 도쿄 옥외 광고로 공개한다.이날 기자간담회에서는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 홍보대사 위촉식도 진행됐다. 올해의 홍보대사는 애플+TV ‘파친코’로 급부상한 신예 김민하다.그는 ‘산사의 길’ 중 합천 해인사를 방문해 팔만대장경을 소개한다. 이 여정을 담은 시네마 필름 또한 9월 타임스퀘어 전광판으로 한달 간 만날 수 있다.김민하는 “K콘텐츠, 한국문화 등이 세계적으로 널리 펼쳐나가는 가운데 제가 한국문화유산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알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자부심이 든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합천은 ‘파친코’ 촬영 당시 방문했었다. 해인사에 너무 가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했는데 이번에 방문할 수 있어서 기뻤다”며 “역사가 깊고 고요한 해인사에서 제가 그랬듯 좋은 기운을 얻으실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팝아트 작가 홍원표는 그의 대표 캐릭터인 바라바빠를 활용해 가장 한국다운 장소를 친근하게 표현한 작품을 선보인다. 더불어 웅진식품의 하늘보리, CJ ENM의 K팝 채널 ‘스튜디오 춤’, S오일 등과 협업해 굿즈, 콘텐츠 등을 제작하고 NFT를 발행해 배포할 예정이다.홍준표 작가의 작품과 홍보대사 김민하(사진제공=한국문화재재단)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엔데믹(풍토병화) 전환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이동이 활발해진데다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이 3년차를 맞으면서 보다 풍성한 프로그램들로 무장하며 성장했다. 하지만 출범 이래 지적됐던 국내여행 기반시설과의 연계 및 확보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았다.국내 여행의 어려움은 교통편 및 이동수단, 숙소 문제 등 미흡한 인프라에서 기인한다. 이에 10대 테마코스와 그 안에 배치된 75개 거점 등을 방문하기란 한국인조차 쉽지 않다. 하물며 한국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해외 관광객들이 문화유적지까지의 이동, 내부에서의 교통수단, 숙소 등을 이용하기란 어려운 일이다.그들이 텍스트, 영상, 디지털 콘텐츠, 미디어아트 등으로 접한 정보를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우리의 문화유산을 보다 쉽게 방문·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구체적이고도 체계적인 방안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2-06-14 20:15 허미선 기자

[B그라운드] 타이타닉부터 플라워 트렁크까지…저마다의 이야기를 품은 ‘레전더리 루이비통 트렁크’展

‘레전더리 루이비통 트렁크’展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크리에이티브들(사진=허미선 기자)“아무 데서나 볼 수 없는, 굉장히 희귀한 트렁크를 소개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들은 단순한 트렁크가 아니라 저마다 스토리를 가지고 있죠.”아시아 최초로 루이비통 트렁크과 관련 소품들을 선보이는 전시 ‘레전더리 루이비통 트렁크’展(3월 18~8월 21일 타임워크 명동 1층)을 주최한 스웨덴의 노르딕 이그지비션(Nordic Exgibition) 스테판 파판길레스(Stefan Papangelis) 대표이사는 “트렁크에 깃든 이야기에 집중해 관람하면 흥미로울 것”이라고 강조했다.스테판 파판길레스 대표는 “각 트렁크를 가진 세러브리티, 여행 황금기 등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을 것”이라며 “이들은 모두 수제로, 각자 특징에 맞게 커스터마이징돼 제작됐으니 그에 집중해서 보시길 바란다”고 귀띔했다.‘레전더리 루이비통 트렁크’展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트렁크와 공예품 등 200여점이 넘게 전시됩니다. 그 중 일부는 드물어서 세상에 하나 혹은 두 개뿐인 트렁크도 있어요. 개인 컬렉터 기준으로는 가장 큰 규모의 컬렉션이죠. 타미 힐피거,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등이 소유했던 트렁크도 볼 수 있어요. 특히 세관사인 에드워드 폴리가 소유했던 트렁크는 의미가 깊습니다. 세관사인 에드워드가 이민자들 중 여권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 배포한 것으로 많은 사람들을 구한 의미가 담긴 트렁크죠.”매그너스 말럼(Magnus Malm) 단 한명이 소유하고 있는 컬렉션 350점 중 200여점을 선보이는 ‘레전더리 루이비통 트렁크’展에는 1800년대부터 디자이너 루이비통이 만들었던 진귀한 트렁크들과 공예품들이 전시된다.애초 방한을 계획했으나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9)에 확진되면서 좌절된 컬렉터 매그너스 말럼은 편지를 통해 “세계에서 (개인 컬렉터 기준) 가장 큰 컬렉션 중 하나를 보게 된다”며 “아무 곳에도 전시된 적 없는 트렁크를 볼 수 있는 전시”라고 소개했다. ‘레전더리 루이비통 트렁크’展 전경(사진=허미선 기자)유년시절 목공과 패커(짐을 꾸리는 사람)로 일했던 디자이너 루이비통이 소지품 보관을 위한 마차 보관함을 만들면서 시작된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의 역사와 그 트렁크들에 깃든 역사적 사건, 유명인사 이야기 등을 경험할 수 있다.전시에서는 최초의 철도선 파리생 제르맹(Paris-Saint-Germain) 건설현장을 지켜보며 1858년 처음 만들었던 트렁크로 프랑스 황후를 비롯해 영국의 윈저공 부부, 문학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배우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등이 애호했던 바닥이 평평한 사각형 모양의 트렁크 ‘그레이 트리아농 캔버스’(Grey Trianon Canvas)를 만날 수 있다.‘레전더리 루이비통 트렁크’展 전경(사진=허미선 기자)전세계 10개만 존재하는 팝스타 저스틴 비버의 스케이트보드 트렁크와 록 허드슨이 에이즈로 사망한 후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설립한 미국 에이즈 연구재단 암파르를 위해 배우 샤론 스톤이 디자인한 암파르 윈 배니티 주얼리 케이스(Amfar One Vanity Case)를 비롯해 루즈벨트 32대 미국대통령, 배우 주디 갈랜드, 패션 디자이너 타미 힐피거, 슈즈 디자이너 마놀로 블라닉,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등 유명인사들의 트렁크와 이야기도 전시된다.더불어 증기기관차, 자동차, 초호화 유람선, 비행기 등 인류의 진화와 함께 여행했던 다양한 형태의 트렁크, 타이타닉 사고를 경험한 트렁크, 전쟁터를 누빈 적십자를 위한 트렁크, 보기 드문 시가와 향수, 캐비어 전용 트렁크 그리고 루이비통 최우수 고객들에게 사은품으로 주어지는 ‘플라워 트렁크’까지를 만날 수 있다.‘레전더리 루이비통 트렁크’展 전경(사진=허미선 기자)서울 전시의 주최·주관사인 LMPE컴퍼니 김단 대표는 개막을 앞둔 17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루이비통의 탄생은 소지품 보관을 위한 마차 보관함이었다. 그후 역사의 현장 곳곳에서 루이비통 트렁크는 다양하게 활용됐다”며 “교통수단의 발달로 여행을 떠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했고 역사 현장에서 함께 한 트렁크를 한번 더 깊이 들여다보고 예술적 가치를 느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했다”고 밝혔다.“루이비통이라는 명품 브랜드가 어디서 시작됐고 다양한 트렁크들이 역사의 한 장면, 사람들과 어떻게 함께 하며 예술적 가치를 확산시켰는지 혼자 보기 아깝다는 생각에 기획했습니다. 트렁크는 인간의 이동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만들기 시작했어요. 마차를 시작으로 교통수단의 발전과 함께 배, 기차, 비행기 등에 적합한 트렁크들을 만들었죠. 이제 우주여행의 시대가 다가오니 그에 맞는 트렁크들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그 또한 관객들께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2-03-18 18:30 허미선 기자

[비바100] 한번도 안 간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간 사람은 없을 걸?

호텔 침구는 집에서 아무리 같은 제품을 구해다 덮어도 그때의 기분이 나지 않는 마법의 아이템이다.(사진=이희승기자)미리 밝히자면 ‘호캉스’에 지극히 비관적인 입장이었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는 ‘호캉스’는 신조어이자  콩글리시로 영미권에서는 이러한 휴가를 호텔에서 보내는 스테이케이션(Stay+Vacation) 혹은 호텔 스테이케이션(Hotel Staycation)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편의시설이 좋은 곳, 이왕이면  바다에 인접한 호텔의 해수욕장을 이용하는 게 호캉스의 시초였지만 요즘엔 실내 수영장이나 스파, 바(술집), 마사지 등 평소 접하기 힘든 고급 서비스를 갖춘 호텔에서 보내는 시간까지 포괄하는 모양새다. 돌이켜보니 출장을 제외하고 호텔에 묵은 경우는 전무했다. 굳이 휴가를 와서 근처 관광지는 구경하지 않고 룸서비스 위주의 식사와 호텔 내 편의시설을 이용하며 지내는 걸 이해할 수 없기도 했거니와 숙소에 쓰일 돈을 아껴 체험이나 쇼핑, 음식에 쓰자 주의였다. 남녀혼숙이 아니라면 4인 도미토리(공동 침실)도 마다하지 않았다. 치안이나 위생만 괜찮다면 그곳에서 만난 인연도 여행의 또 다른 재미였으니까.하지만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되면서 여행은 결국 사치가 됐다. 어느 CF의 표현대로라면 ‘처음으로 여행이 우리를 떠난 상태’가 된 것이다. 굳이 멀리 떠나지 않아도 도심 속 호텔 체험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특히 분리된 공간에서 안전한 휴식을 꾀하는 추세가 제법 눈에 띄었다. MZ세대들을 중심으로 호텔 유료 멤버십 가입도 높아지는 추세다. 크리스마스 마케팅에 빠질 수 없는 트리(사진=이희승기자)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자사가 운영 중인 유료 멤버십 ‘아이초이스’는 2013년 론칭 이후 가장 많은 회원수를 기록했다. 호텔관계자에 따르면 “멤버십 가입 고객을 연령별로 보면 2030의 선전이 눈에 띈다. 20대는 전년 대비 6배, 30대는 2.3배 급증했다. 덕분에 가입자 평균 연령도 51세에서 46세로 5세 가량 낮아졌다”면서 “코로나19에 대한 경계감이 다소 완화됐지만 아직 해외 여행은 힘든 만큼 여행 수요가 호텔 멤버십으로 옮겨간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그 중 특급호텔은 예상 밖 특수를 누리고 있다. 코로나 확산 여파로 해외여행을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호텔들이 내놓은 연말연시 패키지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가 내놓은 110만원대 크리스마스 패키지는 11월 중순 이미 완판 됐다. 서울 남산의 반얀트리 호텔은 1일 라이브커머스를 통해 7분만에 100개 객실 완판을 기록했다. 편안하고 안전한 곳에서 겨울 휴가를 즐기려는 사람이 많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다. 회사에서 남은 연차소진을 적극 권하면서 자연스럽게 집 근처의 호텔을 알아봤다. 계절만 도와줬다면 제주도나 강원도를 꿈꿨겠지만 오롯이 ‘방에 콕 박혀 있을 곳’이 필요했다. 가격도 중요했다. 너무 시설이 고급스러우면 부담이 갈 것이다. “이 돈이면 OO을 사지” “가족 모두 킹크랩을 먹고도 남을 돈” “애들도 같이 올 걸” 등 타고난 걱정DNA가 발동하는 소심한 A형으로 휴식이 될 수 없을 게 뻔했다. 그렇다고 집 떠나서까지 궁상맞게 지내긴 싫었다. 출장이 아닌 이상 내 돈 주고 토요코인에 묵지 않고 싶은 심리랄까.감히 ‘호캉스의 꽃’이라 이름 붙힌 조식서비스. 탄수화물은 죄가 없음을 기억하고 맛있게 냠냠.(사진=이희승기자)레이다망에 걸린 호텔은 두 곳. 한국에 늦게 도착한 외국인들에게 좋은 점수를 받은 A와 가족 단위로 많이들 묵는 B였다. 공항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A는 평일 숙박이 6만원 정도로 호텔급 시설을 저렴히 이용할 수 있는 기대감으로 결제한 곳이었다. 생긴 지 3년이 채 안된 곳으로 침구와 편의시설에 대한 점수가 높은 편이었다. 체크인을 하자 1층 편의점에서 교환할 수 있는 웰컴 드링크 쿠폰을 줬다. 샴푸와 비누는 제공되지만 치약과 칫솔은 개별 판매한다는 안내를  받고 룸에 들어가자 트윈 베드가 나타났다.취향은 더블 베드지만 이틀간 머물며 새 침대에서 자고싶은 나만의 길티 플레저(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즐기는 행동)랄까. 요즘엔 환경운동의 일환으로 그린카드를 침구 위에 올려놓으면 교체해주지 않지만 이번에 오롯이 숙소에서의 휴식을 위해 체크아웃할 때까지 청소 서비스도 하지 말아달라고 해놨던 터다. 그동안 사기만 해두고 읽지못한 책도 챙겨왔겠다 이제는 침대와의 합체만이 남았다. 그때 침대 옆 ‘숙소이용안내’가 내 발목을 붙잡았다. 객실 내 넷플릭스 무료라는 문구가 눈에 띄자 어느새 책 대신 리모콘을 쥐고 있었다. 1인분에 35000원은 좀 비씨게 느껴졌지만 현지인 셰프의 맛은 역시 달랐다. 처음 호텔에서 먹은 훠궈.저 양과 소모양의 그릇을 사고 싶다고 했지만 한국어를 못하는 스태프로 인해 실패.(사진=이희승)호텔에서의 첫 식사는 중국 훠궈장인을 영입해 문을 연 1층 식당에서 해결했다. 투숙객에게는 20% 할인을 해줘 반주로 곁들인 하얼빈 맥주 2병은 공짜인 셈이 됐다. 도심 속 호텔답게 창문을 열면 롯데마트와 길 건너 먹자 골목, 병원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필요한 걸 얻을 수 있는 이 상황이 묘한 안정감을 자아냈다.그에 비해 3일째 묵은 호텔 B는 차로 A에서 2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이었다. 이 곳의 콘셉트는 ‘나만 알고 싶은 호텔’이다. 온수로 즐길 수 있는 인피니티풀(Pool)로 인해 평일에도 예약이 힘든 곳이었지만 취소자는 언제나 있는 법. 1박에 20만원대로 호캉스의 꽃인 조식 뷔페도 함께 예약했다. 가격은 비쌌지만 호텔 조식과 석식 중 고르라면 언제나 전자를 고르는 편이다. 2시에 체크인인데 A에서의 체크아웃이 11시라 도착해서 보니 1시간이나 남았다. 평소에 하지 않는 과감함을 시도할 차례였다. 하루 2타임으로 정해진 인원만 들어갈 수 있는 인피니티 풀.(사진=이희승기자)1층에 문 연 바(Bar)에 들어가 화이트 와인을 시켰다. 낮에는 카페, 밤에는 라운지로 운영되는 곳이었는데 낮술은 왜 이렇게 맛있는 건지. ‘요즘 애들’ 코스프레로 셀카도 몇장 찍으며 살짝 아쉬운 입맛을 다실 즈음 체크인 시간이 됐다. 수영장을 갈 마음이 급한 사람들은 부리나케 짐을 풀고 야외 풀로 달려갔지만 나는 12월에 아무리 온수여도 수영을 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방역조치 완화로 간만에 문을 연 수영장을 만끽 하려는 그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는 갔지만 사우나로 발길을 돌렸다. 다행히 이곳은 두 세명만 몸을 담글 수 있는 야외 욕조가 있어서 간만에 노천욕을 하는 기쁨을 맛봤다. 42도의 뜨거운 물에 담근 몸과 달리 젖은 얼굴과 머리카락은 차가운 공기와 맞닿으며 도리어 상쾌함을 안겼다. ‘그래 휴식이란 바로 이런 거지’란 생각으로 숙소에 돌아와서는 평소 기계치인 내가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안내장에 써 있는 대로 블루투스 스피커에 평소 좋아하는 노래를 플레이해둔 후 착한어린이가 잠드는 밤 9시에 곯아떨어진 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놀라울 따름이다.실로 몇 년만에 다시(?)본 일출.(사진=이희승기자)전날 일찍 자서인지 다음날은 해가 뜨기 전 눈이 떠졌다. 실로 오랜만에 바다 위로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봤다. 4만원 때문에 마운틴뷰로 할 것인지 바다뷰로 할 것인지 살짝 고민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반짝이는 황금반지 같은 해가 떠오르자 자연스럽게 배가 고파졌다. 8시에 내려간 조식 뷔페에서 혼자 온 사람은 오직 나 하나였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식스팩 복근을 소유한 멋진 남자가 살짝 젖은 머리로 잉글리시 블랙퍼스트를 마시는 모습도 볼 수 없었다.부모와 동반한 젊은 부부 혹은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듯 보이는 연인, 남매 둘에게 이것저것을 먹이는 엄마, 임신 막달인 아내의 비위를 맞추고 있는 남편 등 사이에서 나는 곧 닥칠 ‘피의 토요일’을 가늠도 못한 채 암호화폐 몇개를 소액으로 주워담으며 여유롭게 위를 채웠다. 그러고 보니 14살 노견인 토비가 혹시나 실수를 했을까 노심초사 깨는 아침(종종 모닝똥을 밟는다)이 아닌 순간은 실로 오랜만이다. 등교와 등원, 출근이란 저글링을 무한 반복해온 나에게 ‘호캉스’란 진정 필요한 거였음을, 다음달 카드값이 나오기 전까긴 만끽해야지. 글·사진=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1-12-07 18:30 이희승 기자

[남민의 스토리가 있는 여행] 한산도서 울린 승전보, 왕도 버린 조선을 구하다

통영 한산도 앞 바다 한산대첩 현장. 사진=남민어려운 일엔 앞장, 이익은 나중에 ‘선난후획(先難後獲)’ 樊遲問知(번지문지), 子曰(자왈), 務民之義(무민지의) 敬鬼神而遠之(경귀신이원지) 可謂知矣(가위지의). 問仁 曰(문인 왈), 仁者先難而後獲(인인자선난이후획) 可謂仁矣(가위인의) 번지(樊遲)가 지혜에 관해 여쭈자 공자께서 “사람이 지켜야 할 도의에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면 지혜롭다고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인에 대해서는 “어려운 일은 앞장서 하고, 이익을 챙기는 일은 나중으로 돌리는 것이 인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하셨다.◇ 이순신의 ‘선난후획(先難後獲)’공자는 “솔선수범은 누구나 쉽게 말하지만, 진정한 군자는 막상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말하고자 하는 바를 먼저 실천으로 옮기고, 그런 후에 따르게 한다”라고 가르쳤다.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에 대해선 ‘교언영색 선의인’이라고 경계하면서 “옛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은 것은 행동이 뒤따르지 못할 것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공자가 말한 이러한 사람은 대체로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 높은 자리를 탐하려 남을 모함하지도 않는다. 반면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뒤로 숨는 사람은 이익이 보이면 꼭 제일 먼저 달려든다. 우리 역사에서 공자의 ‘선난후획’ 가르침을 목숨보다 중하게 여기고 실천한 최고의 위인이 충무공 이순신이다.◇ 백의종군에 목숨 바친 이순신이순신 장군의 시에 나오는 수루. 바다를 향해 망을 보던 망루다. 사진=남민임진왜란은 조선 개국 후 200년 간 전쟁을 잊고 태평을 누리며 굳어졌던 안일함이 부른 대 참화였다. 1592년 4월 13일 오후 부산 앞바다에 정박한 왜군은 14일부터 파죽지세 한양으로 진격했다. 4월 30일 새벽 비가 퍼붓는 창덕궁 인정전 뜰에서 선조와 동궁, 중전은 급히 몽진 길에 오른다. 신하들이 막아섰지만 임금은 나라는 잃어도 자신만은 살겠다는 선택을 했다. 명나라로 망명까지 하려 했다.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떠난 지 사흘 후인 5월 3일에 왜군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는 한양으로 무혈입성한다.그 무렵 연전연패하던 육군과 달리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수군은 연전연승으로 왜군의 발을 꽁꽁 묶었다. 일본 병참을 무력화하고 호남 곡창지대를 지키려면 바닷길 사수가 중요했다. 평양성까지 점령한 고니시 유키나가의 육군은 더이상 북진하지 못하고 그곳에서 고립됐다. 선조가 머문 의주를 눈앞에 두고도 더 진격할 수 없었던 것은 통영 앞바다에서 이순신이 거둔 ‘한산대첩’이라는 결정적 승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길 수 있을 때 싸우고,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이순신 장군은 한산정에서 바다 너머 왜적선을 향해 활을 쏘는 훈련을 했다. 사진=남민한산도는 경상도 바닷길에서 전라도로 넘어가는 길목을 지키는 천혜의 요새였다. 그 지리적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이순신은 그곳에 진을 치고 삼도수군통제영을 배치했다. 사헌부 지평 현덕승(玄德升)에게 쓴 편지에서 그는 “호남은 국가의 보호막이며,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 그래서 진을 한산도로 옮겨 바닷길을 막으려고 한다”고 적었다. 여기서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란 어구가 회자됐다. ‘곡창지대 호남이 곧 국가의 보호막’이라는 뜻으로 그곳을 지키기 위해 통제영을 전진배치 했다는 설명이었다.1592년 7월 8일. 세계 해전사의 기념비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거제도 입구 견내량에 왜적선 70여 척이 정박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이순신은 먼저 배 5~6척을 보내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했다. 공격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견내량의 좁은 해로는 자칫 우리 배 끼리 부딪혀 위험할 수 있었다. 그는 적을 유인해 포위하는 학익진(鶴翼陣)으로 왜적을 섬멸했다. 59척을 격파 및 나포하고 8000명 내외의 왜군을 수장시키는 놀라운 전과를 올렸다.이순신은 정유재란 때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부임했다. 선조 임금이 배 12척으로 싸울 수 없으니 수군을 포기하고 권율 장군 휘하의 육군으로 싸울 것을 명했다. 이순신은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남아 있습니다”라며 바다를 지키겠다고 했다. 또다시 선조의 어명을 거역해 죽음으로 몰릴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그 바다를 그냥 왜적에게 내어줄 순 없었다. 이순신은 이때 ‘미신불사(微臣不死)’라는 말과 함께 선조를 설득했다. ‘이 신하가 살아있는 한 왜적이 감히 넘볼 수 없다’는 뜻이다. 다행히 선조도 이순신의 뜻을 받아들였고 그 결과는 명량해전 대승의 씨앗이 됐다.명량해전은 그 5년 전 한산대첩과 달리 수비를 해야 하는 전투였다. 10배 이상 많은 적을 막기 위해 ‘울돌목’의 좁은 해로를 택했다. 이순신은 이때 “한 명의 병사가 좁은 통로를 잘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는 ‘일부당경 족구천부(一夫當逕 足懼千夫)’의 어록을 남겼다.◇ 하늘이 내린 조선의 구원자통영 한산도 제승당 전경. 사진=남민이순신(1545~1598)은 서울 건천동(현 중구 인현동)에서 아버지 덕수 이씨 이정(李貞)과 어머니 초계 변씨 사이의 네 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다. 3살 위 류성룡, 5살 위 원균)과 같은 동네에 살았다. 문신 가문이었기에 청소년기에는 학문을 익혔다. 이것이 명작 ‘난중일기(亂中日記)’를 쓴 바탕이 됐다. 12살 이후 아산으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보성 군수를 지낸 무인 방진(方震)의 딸과 21세에 결혼하면서 장인의 영향을 받아 무예를 익히기 시작했다. 덕분에 문무를 두루 겸비한 명장이 됐다.이순신은 임진왜란 1년 2개월 전 류성룡의 추천으로 전라좌수사가 된다. 종 6품 현감에서 정 3품으로 파격 승진한 것이다. 숱한 반대가 있었지만 이때만 해도 선조는 불차탁용(不次擢用, 차례를 밟지 않고 발탁함)을 내세우며 반대 목소리를 막았다. 하지만 이후 이순신은 끝없이 견제를 당했다. 정유재란 직후 왜군의 계략임을 알고 선조의 출정 어명을 어겼던 그는 소환돼 격한 고문을 받았다. 검은 머리가 백발로 변할 만큼 잔혹한 고문이었다. 그런 그였지만 말없이 묵묵히 조선을 구원했다.한산도는 통영여객터미널에서 배로 30분 거리다. 섬에 내리면 바닷가 산책길을 따라 10분 정도 거리에 제승당(制勝堂) 등 장군의 유적지들이 있다. 이순신은 ‘운주당(運籌堂)’이라 불렀는데 훗날 1740년(영조 16)에 통제사 조경(趙儆)이 칠천량해전 때 전소됐던 것을 다시 짓고 제승당이라 친필로 써 올렸다. ‘운주’와 ‘제승’은 ‘군막 안에서 작전을 세워, 천리 밖에서 승리를 쟁취한다’라는 말에서 유래했다.바닷가 쪽 건물이 이순신의 시에도 등장한 ‘수루(戍樓)’다. 바다를 향해 망을 보던 망루다. ‘수루’ 현판 글자는 이순신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다. 제승당 뒤쪽 한산정(閑山亭)은 바다 건너편 과녁으로 활을 쏘던 곳이다. 바다 위의 적을 향해 활쏘기 연습을 했으니 그 현장감과 치밀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이외에 조경 통제사가 세웠던 유허비와 1976년에 세운 영당인 충무사가 있다.◇ 함께 둘러보면 좋을 통영의 명소삼도수군통제영이 육지로 옮겨가면서 지어진 객사 ‘세병관’. 사진=남민통영엔 이순신 장군의 유적지가 유난히 많다. 세병관(洗兵館)은 이순신 사후 1603년 삼도수군통제영을 한산도에서 육지로 이전하면서 지은 객사 건물이다. 국보다. 경회루, 진남관과 함께 가장 규모가 큰 단일 한옥으로 꼽힌다. 특히 당시의 건물이라는 유일한 가치까지 지니고 있다.충렬사(忠烈祠)는 1606년 선조의 명으로 세운 사액사당이다. 현판은 동춘당 송준길의 글씨다. 명나라 신종 황제가 선물했다는 ‘명조팔사품’ 유물이 있다. 착량묘(鑿梁廟)는 장군을 존경한 수군과 백성들이 장군 사후 1년 뒤 세운 ‘이순신 장군 최초의 사당’이다. ‘착(鑿)’은 ‘파다’라는 뜻이다. 왜군이 미륵도와 육지 사이 좁은 바닷길을 파고 달아난 데서 유래했다. 그곳을 ‘판데목’이라 부른다. 통영운하에 석양이 비치는 모습. 사진=남민통영은 ‘바다의 땅’으로 불린다. 500개가 넘는 섬을 연결하는 바다 면적이 땅 면적보다 넓기 때문이다. 소매물도, 장사도, 연화도, 욕지도, 사량도, 비진도 등 쪽빛 바다에 떠 있는 그림 같은 섬들이 많다.통영은 박경리와 유치진, 김춘수, 전혁림, 윤이상 등 내로라하는 문화예술계 대표 인사들의 고장이기도 하다. 이들의 기념관이 통영에 즐비하다. 이외에 미륵산 케이블카와 동피랑 벽화마을도 바람을 일으키며 이제는 통영 꿀빵, 충무 김밥과 함께 통영의 대표 아이콘이 됐다.글·사진=남민 인문여행 작가 suntopia@hanmail.net지금까지 ‘남민의 스토리가 있는 여행’을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깊이 있고 맛깔나는 콘텐츠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2021-09-28 07:00 남민 인문여행 작가

[남민의 스토리가 있는 여행] 100명의 식솔 굶주림 택한 '율곡의 義' 뿌리내리다

강릉 오죽헌의 율곡 선생 동상. 사진=남민이득을 보면 취해도 될, 옳은 것인지를 생각한다 ‘견득사의(見得思義)’ 孔子 曰(공자 왈), 君子有九思(군자유구사) 視思明(시사명) 聽思聰(청사총) 色思溫(색사온) 貌思恭(모사공) 言思忠(언사충) 事思敬(사사경) 疑思問(의사문) 忿思難(분사난) 見得思義(견득사의).공자께서 “군자가 늘 생각해야 할 아홉 가지가 있다. 보는 것은 명확한지, 듣는 것은 분명한지, 안색은 온화한지, 몸가짐은 공손한지, 말은 치우침 없이 충실한지, 섬김은 정중한지, 의문점은 물어보려 하는지, 분노 후엔 뒤탈이 없는지, 이득을 보면 옳은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라고 하셨다.◇ 율곡 이이의 ‘견득사의(見得思義)’강릉 오죽헌 안채 모습. 사진=남민공자는 “군자는 의를 밝히고 소인은 이익을 밝힌다”고 했다. 진정한 군자라면 부당한 이익을 탐하느니 정당한 어려움을 감내하라는 주문이다. 오늘날에도 정치인이나 공직자가 취한 부당 이득은 반드시 뒷감당해야 할 날이 온다는 교훈이다.그런 면에서 율곡 이이(栗谷 李珥) 만큼 ‘견득사의’ 정신을 실천한 위인도 드물다. ‘이득을 보면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공자의 말씀을 율곡이 금과옥조처럼 품고 실천한 말이다.율곡은 “의(義)를 좋아하는 자는 나라를 위하고, 이(利)를 좋아하는 자는 자기 집을 위하기 마련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임금의 요청으로 ‘학교모범’을 지어 바쳤다. 스승과 학생 선발 10개 조건과 함께 학생과 선생의 16가지 규범을 정했는데 여기에 두 번이나 ‘벼슬을 해도 이해득실 때문에 지조를 잃거나 도를 버려선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공과 사를 분명히 했던 율곡은 나아가고 물러나며 사양하고 받아들이는 ‘출처사수(出處辭受)’가 한결같았다. 본의 아니게 서인(西人)으로 분류됐지만 붕당의 폐해를 잘 알기에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오로지 ‘옳고 그름’으로 판단했다. 극한 대립 중이던 동인 김효원(金孝元)과 서인 심의겸(沈義謙)을 둘 다 외직으로 보내자는 제3의 대안을 내놓은 것이 대표적이다. 심의겸과 매우 가까웠음에도 이성적으로 판단한 조치였다.율곡은 형제 가족들까지 거둬 100여 명의 대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던 가장이었다. 9세 때 ‘이륜행실’이란 책에서 당나라 사람 장공예가 구족(九族)과 함께 살았다는 내용을 접하고는, 자신도 아무리 어려워도 가족은 챙겨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듯하다. 하지만 벼슬을 관뒀을 땐 굶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율곡의 곤궁함을 알고 친구인 황해도 재령 군수 최립이 쌀을 보냈을 때 율곡은 “관아의 곡식을 보낸 것 같아 도저히 받을 수 없다”며 되돌려보냈다. 100명의 가족이 굶주린 상태에서 쌀가마를 되돌린 것이다. 관아의 곡식인 눈앞의 이득은 의롭지 못했기에 굶주림을 택한 것이다.그는 관직에서 물러나면 호구지책으로 해주 석담에서 손수 대장간을 짓고 호미를 만들어 팔아 생계를 이어갔을 만큼 늘 가난했다. 그럼에도 자주 사직하려 했던 것은 토붕와해(土崩瓦解)에 처한 나라가 걱정되어 늘 ‘개혁’을 강조했건만 선조가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줄곧 벼슬에서 물러나려 했던 것은, 그런 임금에게 간들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어 아무 쓸모가 없을 진데, 이름만 올려놓고 빌붙어 녹이나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대를 앞선 ‘경장론자’ 율곡강릉 경포대 율곡 시. 사진=남민율곡은 선조에게 ‘동호문답(東湖問答)’과 ‘만언봉사(萬言封事)’을 올린 데 이어 ‘성학집요(聖學輯要)’를 통해 자신의 성리학 학문을 집대성했다. 성학집요는 이후 군왕들의 필수 교과서가 된다. 짧게 49세를 사는 동안 홍문관 및 예문관 대제학과 이조·병조판서 등을 두루 거쳤지만, 북쪽 오랑캐 침입 대비책 건의가 수용되지 않는 등 영광보다는 한이 서린 관직 생활이었다. 특히 선조와의 골이 깊었다. 선조 10년에 대사간 벼슬을 다시 내리자 그는 “시사(時事)에 관해 물을 것이 있으시면 하문하시고, 아니면 다시 부르지 마십시오”라고 일축했다.율곡은 평소에도 ‘토붕와해’에 대한 경각심을 강조했다. 태조~태종 대 약 20~30년간의 ‘창업(創業)’ 기간과 세종~성종 대 약 70~80년의 ‘수성(守成)’의 시기 이후 나라 기강이 와해되었다며 “경장(更張)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경장은 ‘오래 사용해 늘어난 거문고 줄을 팽팽하게 조이는 것’을 말한다. 낡은 관행, 느슨해진 국가 시스템을 가다듬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가 붕괴에 직면할 것임을 안 것이다.‘창업-수성-경장’이 율곡 개혁 사상의 핵심이다. 다급하게 경장을 호소했건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는 수시로 사직을 청했다. 선조는 거유(巨儒) 율곡을 품을 그릇이 못 되었다. 한번은 정승 박순(朴淳)이 율곡의 사직을 받지 말라고 청하자, 선조는 “그는 교만하고 과격해 인격이 성숙된 뒤에 쓰는 것도 해롭지 않다”며 오히려 율곡을 힐란했다. 결국 율곡 사망 8년 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선조는 의주행 몽진 첫날 저녁 율곡의 정자 화석정(花石亭) 아래 임진강 나루에서 아수라장이 된 배에 올라 신하들 앞에서 통곡했다.율곡을 이야기할 때 퇴계 이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두 위인은 1558년(명종 13년) 2월에 처음 만났다. 58세의 퇴계는 천하의 대학자였고 율곡은 세상에 막 이름을 알리고 있던 23세 젊은이였다. 둘은 예안(안동)에서 2박 3일을 보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퇴계는 훗날 제자 조목(趙穆)에게 보낸 편지에서 “뒷사람을 두려워할 만하다. 後生可畏(후생가외)”라며 그를 극찬했다. 율곡은 1584년 한양 대사동(현 인사동) 우사(寓舍, 셋집)에서 생을 마감했다. 1624년(인조 2년)에 문성공(文成公) 시호를 받았다.◇ 오죽헌… “스스로를 경계하라”강릉 오죽헌. 사진=남민율곡(1536~1584)는 강릉 외가에서 태어났다. 덕수 이씨 이원수(李元秀)와 신사임당(申師任堂, 신인선)의 4남 3녀 중 셋째 아들이다. 출생 전날 밤 신사임당이 용꿈을 꾸어, 태어난 방을 몽룡실(夢龍室)이라 부른다. 16세에 스승과도 같았던 어머니가 사망했다. 큰 충격에 빠진 그는 3년 시묘살이 후 불쑥 금강산으로 들어가 승려가 된다. 불교의 허망함을 느끼고 1년 만에 환속한 그는 강릉 외가로 돌아와 약 1년 동안 오죽헌에 머물며 냉혹하게 자신을 비판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때 11개 항의 ‘자경문(自警文)’을 지어 스스로 경계하는 삶을 살기 시작한다. 공자는 마흔에 ‘불혹(不惑)’이라 했는데 율곡은 스물에 이미 그 경지에 다다른 것이다.이듬해 서울로 올라온 율곡은 부침 속에서도 아홉 번이나 장원을 해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 소리를 듣는다. ‘자경문’이 그를 단단히 지탱해준 덕이었다. 하지만 그도 한성시(漢城試)와 문과 별시 등 몇 차례 과거 시험에 낙방한 적이 있다. 성균관 유학 시절엔 산사 생활을 했다는 이유로 심한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강릉 오죽헌에 보관 중인 율곡 선생의 벼루. 사진=남민율곡이 태어난 방은 사랑채 담장 밖에 있는 별채 ‘오죽헌(烏竹軒)’ 건물이다. 율곡의 외할머니는 강릉 집을 율곡의 이종 아우인 권처균(權處均)에게 상속했는데 집 주변에 검은 대나무(烏竹, 오죽)가 많아 당호를 오죽헌이라 지었다. 중종 때 건축된 오죽헌(보물)은 조선 중기 사대부 별당의 운치를 느끼게 해준다. 정면 3칸 방 가운데 오른쪽 한 칸에 ‘몽룡실(夢龍室)’ 현판이 걸려 있다. 앞뜰에는 율곡이 어머니와 함께 어루만졌을 배롱나무 고목이 용틀임하듯 기세를 뽐낸다. 뒤뜰에는 수령 600년 된 율곡매(栗谷梅)가 향기롭다. 본채 앞쪽으로 오른쪽 협문 안쪽에 작고 앙증맞은 ‘어제각(御製閣)’이 보인다. 이곳에 율곡의 벼루와 ‘격몽요결’이 보관되어 있음을 들은 정조대왕이 이를 가져오게 해, 벼루 뒷면에 어제어필(御製御筆)을 새기고 격몽요결에도 서문을 써 내려보내며 지은 건물이다.◇ 함께 둘러보면 좋을 강릉의 명소송담서원 전경. 사진=남민율곡의 위패를 모신 송담서원이 있다. 강원 감사와 유생들이 강릉 강동면 언별리에 1630년 처음 세웠다. 오죽헌 근처엔 300년 넘은 전통한옥 선교장(船橋莊)이 있다. 선교장은 세종대왕 형인 효령대군의 11세손 이내번(李乃蕃)이 발견하고 터를 잡아 크게 발복한 집이다. 대대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사례가 많이 전해온다. 조상이 통천 군수로 재임할 때 흉년이 들자 곡식을 내어 구휼하니 백성들이 감사해 하며 ‘통천집’이라 불렀다. 금강산 유람객에게는 몇 날 며칠 무료 숙식을 제공했다. ‘베풀수록 재산이 늘어난다’는 교훈을 잘 보여준 집이다.해당화가 핀 경포해변 전경. 사진=남민‘강릉’의 으뜸은 경포호와 경포해변이다. 경포대(鏡浦臺)는 송강 정철이 관동별곡(關東別曲)에서 읊은 ‘관동팔경’ 중 하나다. 조선 선비들의 유람 1번지였다. 율곡 이이가 10세에 경포대의 사계절 아름다움을 읊어 쓴 ‘경포대부(鏡浦臺賦)’도 있다. 아이 글이라고 믿기지 않는 수작이다. 키 작은 해당화가 필 늦여름 풍경은 진한 향수를 자극한다.강릉 허난설헌 기념공원 일대. 사진=남민초당동에는 비운의 남매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이 있다. 남매는 아버지 허엽과 이곳에서 자랐다. 홍길동전(洪吉童傳)의 저자로 잘 알려진 허균은 정치적으로 몰려 죽음을 맞았고 누이 허난설헌도 27세에 운명한 비운의 남매다.글·사진=남민 인문여행 작가 suntopia@hanmail.net

2021-09-14 07:00 조진래 기자

[남민의 스토리가 있는 여행] 성난 어심 돌려세운 중용의 상소… 충무공을 살리다

약포 정탁 선생의 읍호정. 사진 = 남민함께 어울리지만 편 가르지 않는다. ‘군이부당(群而不黨)’ 子曰(자왈), 君子(군자) 矜而不爭(긍이부쟁) 群而不黨(군이부당)공자께서 “군자는 언행이나 몸가짐을 조심하기에 다투지 않으며, 함께 어울리지만 당파를 형성하지 않는다”라고 하셨다.◇ 약포 정탁의 ‘군이부당(群而不黨)’예천 도정서원. 사진=남민‘긍(矜)’은 ‘남을 공경하고 숭상하며 자신의 언행이나 몸가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 중후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니 군자는 ‘긍지(矜持)’가 높아 가벼이 사사건건 부딪치지 않고 처신에 신중을 기한다. 정치에 나섰으면 두루 어울려 토론하지만 반드시 예를 갖춘다. 편 가르기를 하지 않고 오로지 국가와 민족을 위한 정의를 추구한다. 공자는 여기에 “군자는 두루 사귀지만 한편에 치우치지 않고, 소인은 한편에 치우쳐 두루 사귀지 못한다”며 ‘중용의 덕’을 강조했다.1597년 1월 15일 정유재란 발발 직후 선조 임금이 이순신 장군 체포를 명했을 때 그를 살려낸 약포(藥圃) 정탁(鄭琢)은 ‘군이부당’을 평생 실천해 수많은 인재의 목숨을 살려내 나라를 구한 큰 인물이다. 파벌이 난무하는 조정에서 그는 늘 중용의 길을 실천했다. 앞장서서 편싸움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존재감은 드러나지 않았으나 그의 보이지 않는 완충의 가교역은 위대했다.당시 선조는 원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려 했다. 임금과 조정은 이미 이순신에게 등을 돌린 상태였다. 남인인 우의정 오리 이원익(李元翼)이 바로잡으려 했지만, 일본의 계략에 휘말린 조정은 이순신에게 임금의 출정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등의 책임을 물어 ‘사형 죄목’을 뒤집어 씌웠다. 이순신의 죽음은 시간문제였다.이때 행지중추부사(行知中樞府事) 정탁이 72세 병환 속에서 용기를 내어 임금에게 글을 올린다. ‘죄가 없음을 아뢰어 구한다’는, 신구차(伸救箚) 상소문이다. 정탁은 선조의 입장을 지극히 존중하면서 나라와 국왕을 위해 이순신을 살려야 마땅함을 제시했다. 그렇다고 이순신을 두둔하지는 않았다. 이 절제와 중용의 상소는 선조의 마음을 움직였다.마침내 이순신은 석방됐고 나라를 구해냈다. 격분한 선조의 모함으로 자칫 정탁 자신도 죽음에 이를 지 모를 상황에서 목숨 걸고 올린 ‘이순신옥사의(李舜臣獄事議)’ 상소문은 선조의 체면도 살리고 이순신을 살릴 명분도 준 것이다. 그 인연으로 이순신 장군의 후손은 경북 예천 정탁 대감의 제사에 수 백년 동안 참가해 왔고 그를 ‘약포 할아버지’라고 불렀다.정탁은 임진왜란 때 활약하다 반란군 이몽학(李夢鶴)과 내통했다는 모함에 걸린 김덕령(金德齡) 장군의 구명에도 적극 나섰다. “나라가 전란일 때는 한 명의 인재라도 아껴야 한다”고 변호했지만 그는 끝내 옥중 고문으로 사망한다. 왜적에게 빌붙었다는 혐의를 쓴 함숭덕(咸崇德) 등 6명에 대해서도 “증거가 불충분하니 관용을 베풀어 인재로 쓰자”고 건의했다.◇ 위대한 조율자 정탁예천 회룡포 전경, 사진=남민약포 정탁(1526~1605)은 경북 예천 금당실 외가에서 태어났다. 11세 때 안동 가구촌(佳丘村)으로 이사했고, 17세에 안동에서 퇴계 선생 문하생이 되었다. 20세에 다시 금당실로 돌아와 살다 22세에 예천 고평리 거제 반씨 반충(潘沖)의 딸에게 장가들면서 그곳에 터전을 잡았다. 36세에 진주향교 교수가 되었을 때 인근 초야의 남명 조식 선생의 제자가 되었다. 당대 최고의 스승 두 분을 모두 모신 행운아였다. 그는 오랜 관직 생활을 했지만 단 한 번도 벼슬에 욕심내지 않았다. 남에게 항상 관대했지만 옳고 그름 앞에선 절대 타협하지 않았다. 명종이 병이 나 문정왕후가 부처에게 기도하려 향을 가져가려 하자 담당관이던 그는 “이 향은 하늘과 땅에 제사 지낼 때 사용하는 것이지, 부처에게 공양하는 향이 아니다”라며 거절했다.정탁은 예천군 고평리에서 8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선조는 사제문을 내리며 “재상에 오르고 중추부에 발탁됐지만 치우침도 기울어짐도 없어, 공도(公道)가 저울처럼 공평해졌다”라고 평했다.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정간공(貞簡公) 시호를 받았다. ‘네 편 내 편’ 당동벌이(黨同伐異) 정치판에서도 오로지 옳고 그름을 가치의 척도로 살아온 행적에 대한 국왕의 훈장이다.약포를 대변하는 말은 선조가 내린 사제문의 한 구절 ‘일절이험(一節夷險)’이다. ‘편안할 때나 위기일 때나 한결같이 절의를 지켜 실천한다’는 뜻이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남을 배려했고, 남 탓하기보다는 자신을 먼저 되돌아보는 성품이었다. 그는 자신의 호와 이름의 내용처럼 똑같은 삶을 살았다. 자신을 다듬고 연마(琢, 탁)했으며 ‘약초를 심는 밭(藥圃, 약포)’처럼 살아왔다. 파벌의 모함을 받은 사람을 살리고, 무너지는 나라를 구하는데 ‘약(藥)’이 되었던 위인이다.◇ 나아가고 물러남에 더러움이 없다예천 정탁 선생 신도비, 사진=남민“호성공(扈聖功)으로 숭품(崇品)에 오르고 얼마 후 재상으로 발탁되었다. 이에 상소하여 물러가기를 청했으니… (중략)작위를 탐해 늙어도 물러가지 않는 자에 비하면 차이가 크다.” 선조실록 약포의 졸기(卒記)에 관한 최초 기록이다. 그는 벼슬길에 나아가고 물러남에 있어 한 치의 더러움이 없었다. 물러나 고향에서 지낼 때도 그가 재상이었는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한번은 은퇴 후 내려와 지내던 고향 고평리 내성천에서 어느 초립동이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채 약포 선생을 찾아뵙기 위해 가던 중, 무례하게도 강 건너편까지 업어달라고 하자 묵묵히 업어주었다는 일화는 약포의 삶 그대로다. 등에 업힌 초립동이가 “요새 약포는 뭘 하고 지내는지 아는가?” 하고 묻자 태연하게 “요새는 낚시하다 초립동이를 업어 물을 건너게 해 준답니다”라고 대답했다. 업힌 이가 깜짝 놀랐음은 말할 것도 없다.예천 정충사 전경. 사진=남민약포의 향기가 고향인 경상북도 예천에 남아 있다. 그는 예천 읍내에서 동남쪽으로 3~4km 떨어진 고평리에 망호당이라는 초가를 짓고 살았다. 어느 때인가 없어지고 후손 역시 흩어져 살면서 종가고택은 남아 있지 않다. 이곳에는 1980년 국비로 지은 정충사(靖忠祠)가 있다. 조현명이 지은 신도비와 보물로 지정된 약포의 영정, 문서를 보관하고 있다. 400여 년 전 선생의 기풍이 서려 있는 곳이다. 이 마을엔 약포가 젊은 시절에 팠다는 우물 ‘중간샘’이 남아 있다. 내성천 건너편에서 상류로 2km 정도 올라가면 냇물이 ‘S’ 자로 휘감아 도는 곳에 약포가 직접 지은 ‘읍호정(揖湖亭)’이 있다. 옆엔 유림들이 세운 도정서원(道正書院)도 함께 있다. 휘돌아 가는 물길이 잔잔한 호수로 여겨졌던지 정자 이름에 ‘호수 호(湖)’ 자를 붙였다. ‘읍(揖)’은 ‘물 위에 뜨다’라는 의미와 함께 ‘인사하는 예를 갖춘다’는 뜻으로, 두 손을 맞잡아 얼굴까지 올리고 허리를 굽혀 갖추는 예를 말한다. 읍호정 정자 이름에서 사대부의 예스러움과 풍류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정탁 선생을 모신 도정서원. 사진=남민◇ 함께 둘러보면 좋을 예천의 명소용문면 금당실마을은 약포 선생의 고향마을이다. 예언서 정감록(鄭鑑錄)에서 사람이 살아남을 안전한 피신처 마을로 꼽은 곳으로 유명하다. 마을 주변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옛날에는 외부에선 들어갈 수 없는 땅이었다. 전쟁과 기아, 전염병이라는 ‘삼재(三災)’가 들어오지 못한다는 이런 곳을 정감록에서는 십승지(十勝地) 마을이라 칭했다. 실제로 금당실에는 정치적 위기를 겪던 명성황후가 몰래 은신할 궁을 짓기도 했다. 그 터가 지금도 남아 있다. 우리 전통의 한옥과 담장이 아름다운 고장으로 관광 마을로 발전하고 있다. 5월의 장미가 빨갛게 흙담장 위로 필 즈음 경치는 도연명의 전원이 부럽지 않을 곳이다.예천 금당실 마을 모습. 사진=남민내성천을 따라 읍호정에서 하류로 가면 풍양면 삼강리가 있고 2005년까지 영업을 했던 ‘삼강주막’이 나온다. 우리나라 최후의 주막으로, 지금은 관광지가 되어 많은 이들이 대포 한 잔 즐기는 곳이 됐다. 회룡포(回龍浦)도 가까운 곳에 있다. 여름엔 초록의 농경지와 마을, 하얀 모래사장과 휘감아 도는 푸른 강물, 주변을 에워싼 신록의 산이 고요하게 펼쳐진다. 마을 건너편 비룡산 회룡포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일품이다.글·사진=남민 인문여행 작가 suntopia@hanmail.net

2021-09-07 07:00 남민 인문여행 작가

[남민의 스토리가 있는 여행] 묵살당한 충정에도… 목숨 아깝지 않으리

금산 칠백의총 전경. 사진=남민옳은 일에는 목숨도 바친다 ‘살신성인(殺身成仁)’子曰(자왈), 志士仁人(지사인인) 無求生以害仁(무구생이해인) 有殺身以成仁(유살신이성인)공자께서 “뜻을 지닌 선비와 인(仁)을 지닌 사람은 자기 살고자 인을 저버리지 않으며,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인을 이룬다”라고 하셨다.◇ 임진왜란을 정확히 예측한 조헌공자는 “인(仁)이란 자신이 서고 싶은 자리에 남을 먼저 서게 하고, 자신이 뜻을 이루고 싶은 것에 남이 먼저 이루게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인은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말라”고 까지 말했다.일본의 침략을 경고하는 상소를 무시하고 결국은 백성마저 버리고 도망친 선조 임금이지만, 그를 지키겠다며 온몸을 던졌던 중봉(重峯) 조헌(趙憲, 1544~1592)은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대표적 인물이다.임진왜란 발발 수년 전에 일본의 무장 야나가와 시게노부와 일본 승려 겐소 등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지시로 한양에 들어와 일본에 통신사 파견을 요구했다. 이때 일본의 간계를 눈치채고 일본 사신의 목을 벨 것을 요구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조헌이다.그는 청절왜사소(請絶倭使疎)를 써 관찰사 권징(權徵)에게 올려줄 것을 청했다. 일본에 사절을 보내 축하한다면 저들이 더욱 교만해져 군사를 일으켜 도적질할 것이니 사신들을 처형해 누구도 조선을 범할 수 없다는 위엄을 보여주라고 촉구했다.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는 직접 한양으로 향했다.하지만 상소를 받아본 선조는 조헌을 인요(人妖), 즉 상식을 벗어난 요망한 자로 치부했다. 그리고 사흘 안에 승정원에 내려보내야 할 소장을 내려보내지 않고 태워버렸다. 국정 기록물을 고의로 인멸한 것이다. 그리고는 사관에게 “차라리 내 허물을 크게 기록하여 후세를 경계하면 좋겠다”고 지시했다. 무능한 국왕의 극치였다.고경명 선생 비각. 사진=남민2년 뒤 1589년 4월에 조헌은 도끼를 메고 다시 한양으로 올라와 대궐 문 앞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논시폐소(論時弊疎)’ 지부상소를 올렸다. 들어주지 않으면 도끼로 자신의 몸을 베어버리겠다는 각오다. 하지만 조헌은 5월에 함경도 길주 영동역으로 유배길에 오른다. 그해 11월에 풀려났지만 일본 사신이 다시 와 있다는 소식에 “속임수 술책에 동맹을 맺지 말라”고 거듭 요청했다. 조속히 변방에 문사를 뽑아 배치하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선조는 이번에도 “조헌은 간귀(奸鬼)다”라며 대로했다.통신사 황윤길 일행이 일본 사신과 함께 돌아온 직후인 1591년 3월. 조헌은 백의 차림에 또다시 도끼를 메고 궁궐로 나아갔다. 도요토미가 사신을 보내 엿보게 하여 갑자기 출병할 계획을 세울 것이라며 ‘청참왜사1소(請斬倭使一疎)’를 올려 간언했다. 임진왜란 1년 1개월 전이었다. 사흘이 지나도 답이 없자 ‘청참왜사2소’를 올린다. 일본의 상륙 지점은 동남 해안(부산 일대)이며, 한양을 향하는 길목은 조령, 죽령, 추풍령일 것이라고 했다. 도요토미의 전략 그대로였다.승정원은 이 소를 받지 않았다. 7월에도 조헌은 금산 군수 김현성(金玄成)에게 이듬해 봄 도요토미가 조선을 침략할 것이니 조정에 전문을 보내라 했지만 이 역시 전라 감사 이광(李洸)이 묵살했다. 그러나 임진왜란은 모두 조헌의 예측대로 일어났다. 발발 시점과 부산으로의 상륙, 한양으로 진격하는 길목까지 정확히 들어맞았다.조헌은 어떻게 이렇게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을까? 율곡 이이, 우계 성혼, 토정 이지함을 스승으로 모신 덕분에 대세를 읽는 시야를 가졌고, 천문에 밝아 별의 움직임으로 길흉화복을 내다볼 수 있었다. 도요토미를 정권 탈취 신하로 확신했고, 사신들이 오가는 것을 조선을 정탐하는 행위로 읽었다. 혹자는 말한다. “임진왜란 후에는 이순신이 있었고, 임진왜란 전에는 조헌이 있었다”라고.성곡서원 터. 역사적 유적지가 지금은 양봉터로 이용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사진=남민1592년 4월 13일, 부산 앞바다에 왜군이 들이닥치면서 조선은 곧이어 초토화된다. 조헌을 요괴 취급하던 선조는 황급히 도망갔다. 그럼에도 조헌은 왕의 신변을 걱정했다. 관군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무너졌기에 의병을 모아 왕을 지키려 했다. 조헌은 5월 중순 충청지역에서 처음 의병을 일으켜 무장한 왜적에 농기구와 돌멩이로 맞서 보은 차령 전투에서 승리했다. 이어 청주성까지 탈환했다.그러나 의병의 승전을 시샘한 지방관의 방해로 의병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내부는 분열되어 갔다. 그럼에도 그는 “이달 안에 임금께서 환궁하게 하겠다”며 충성을 다짐했다. 하지만 곡창지대 호남의 관문인 금산성에 왜군이 대거 진입했다는 소식에 급히 금산으로 향한다.전라도 순찰사 권율(權慄)에게 협공을 요청하고 승병장 영규(靈圭) 대사까지 가세시켰으나 겨우 700명뿐. 왜군은 1만 5700명으로 중과부적이었다. 권율마저 ‘18일 전투 연기’ 전갈을 보내왔다. 그래도 호남평야의 곡식이 왜적의 수중에 들어가는 것은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8월 18일 새벽 연곤평 들판. 조총으로 무장한 왜적이 기습공격을 해왔다. 화살로 맞선 의병들이 겁에 질릴 법도 했으나 조헌은 “오직 한 번의 죽음만 있을 뿐”이라며 ‘옳을 의(義)’ 자를 쓴 깃발을 높이 쳐들었다. ‘의(義)’ 자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자고 독려했다. 단 한 명의 의병도 도망가지 않았고 들판은 피로 물들고 시신이 산처럼 쌓였다. 조헌은 눈을 부릅뜬 채 죽음을 맞았다.조헌 선생을 모신 표충사. 사진=남민조헌은 원래 내외직 벼슬을 했던 문신이었다. 의병장 생활은 일생의 마지막 3개월이 전부였다. 그 석 달 동안 조헌은 목숨을 바쳐 인(仁)을 이루었다. 자신의 청을 뿌리친 왕에게조차 신하로서 자신의 최후를 바침으로써 살신성인의 표상이 됐다. 700명의 의병은 최후의 한 사람까지 이탈없이 대항하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산화했다. 이들의 저항은 결국 왜군으로 하여금 호남 곡창지대를 포기하게 만든다.제자 박정량과 전승업 등이 나흘 후 달려와 시신들을 수습해 한 무덤에 모시고 ‘칠백의총(七百義塚)’이라 칭했다. 조헌을 ‘인요’라고 조롱했던 선조는 뒤늦게 1603년 ‘중봉조선생일군순의비(重峰趙先生一軍殉義碑)’를 세웠고, 1647년 유림들이 사당을 세워 칠백의사의 위패를 모셨다.◇ 조헌과 이름 없는 ‘칠백의총’금산 칠백의사 순의탑. 남민조헌은 경기도 김포에서 출생했다. 집 뒷산이 중봉산(重峯山)이라 호를 중봉이라 했다. 어려서부터 독서광이었던 그는 24세에 과거에 급제한다. 31세 땐 명나라 황제 생일을 축하하는 성절사에 질정관(質正官)으로 뽑혀 중국에 다녀오면서 조천일기(朝天日記)를 남겼다. 선진 문물을 수용해야 한다는 식견을 보인 것이다.이순신도 모르게 이순신을 도운 일도 있다. 이순신이 발포(전남 고흥군) 만호(萬戶, 종4품) 시절에 전라 좌수사 이용의 미움을 받아 근무 성적이 최하위로 매겨졌는데 당시 전라도 도사였던 조헌이 바로 잡아 구제해 주었다. 월등한 이순신을 밉다고 깎아내릴 수 없다는 소신이었다.사헌부 감찰, 예조좌랑 등 다양한 직책을 거쳐 통진 현감과 충청도 보은 현감을 지내던 때에 스승 율곡이 사망하자 당파싸움은 더욱 거셌고 그도 파직 당했다. 이때부터 세상을 등져 옥천 산림에 은거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영조 때 영의정에 추증됐고, 고종 때 문묘에 배향됐다.칠백의사 사당은 현종 때인 1663년에 ‘종용사(從容祠)’라 사액해 토지를 하사하고 제사를 모셨다. ‘대의에 따라 의연하게 순절하신 분들을 모신 사당’이란 뜻이다.경내 입구 쪽 비각 속의 ‘중봉조선생일군순의비’는 왜란 직후 해평 부원군 윤근수가 글을 짓고 명필 김현성이 썼다. 일본 금산경찰서장 이시카와 마치오가 1940년에 폭파시켰는데 갑자기 먹구름과 천둥 번개가 몰아쳐 혼비백산했다고 한다. 유림들이 조각난 비석을 모아 땅 속에 숨겨뒀다가 1970년대 성역화 때 붙여 순의비각에 보관 중이다. 종용사 뒤 ‘칠백의총’ 옆의 비는 일본인이 폭파한 비를 대신해 1963년 다시 만들었다.조헌의 묘소는 제2의 고향인 옥천군에 모셨다. 훼손된 의총과 종용사는 군민 성금으로 정비해 지금에 이른다. 칠백의총 경내에는 순의비각과 기념관 등이 있다. 맞은 편에는 ‘칠백의사순의탑’이 있다. 칠백의총 입구에 세웠다가 연곤평이 내려다 보이는 현 위치에 다시 세웠다. ◇ 함께 둘러보면 좋을 금산의 명소우암 송시열의 글씨가 새겨진 수심대. 사진=남민중봉 관련 유적지로 복수면 곡남리의 수심대(水心臺)와 조헌사당(趙憲祠堂)인 표충사가 있다. 그가 후손들에게 살 곳으로 권했던 장소다. 수심대는 냇가에 마을이 3개로 나뉘어져 ‘마음 심(心)’ 자와 같다며 그가 이름 지었다. 바위 위 ‘수심대’ 글씨는 우암 송시열이 썼다. 사당의 표충사 편액은 광해군이 1609년에 하사했다.대둔산 아래 ‘금산이치대첩지’는 권율이 동복현감 황진과 1500여 명의 군사로 10배 이상 많은 일본군을 물리친 역사적 현장이다. 이 고개를 넘으면 곧바로 호남평야다. 배나무가 많아 이치(梨峙)라 불렀다. 지금도 계곡에는 200~300년 된 키 큰 산돌배나무가 많다.권율이 일본군을 대파한 역사적 현장 금산 이치대첩지. 사진=남민금산은 인삼의 고장이다. 1500년 전 남이면 성곡리에서 처음 인삼을 재배했다는 개삼(開蔘)터가 있다. 그 주차장 너머 농지 사이 숲이 우거진 곳에는 성곡서원(星谷書院) 터가 있다. 조헌·고경명·김정·길재·윤택·김신의 덕행과 충절을 추모하려 광해군 때 세운 서원이다. 훼철된 후 표지석만 한쪽에 방치되어 현재 양봉장으로 쓰이고 있어 안타깝다.금산의 보석사(寶石寺)는 명성황후 원찰로 유명하다. 입구에 의병 승장비각이 있다. 승병장 기허(騎虛) 영규 대사가 수행했던 사찰이다. 맞은 편 산비탈에는 천연기념물 제365호로 1000년 넘은 매우 큰 은행나무가 사찰의 연륜을 말해준다. 기암괴석에 단풍과 노을이 붉은 빛을 띠어 ‘적벽’이라 불린 금산 적벽강. 사진=남민금성면 양전리에는 고경명 선생 비각이 있다. 영암군수, 동래부사 등으로 근무하다 낙향한 그는 임진왜란을 맞아 담양에서 6000명의 의병을 긴급 모집해 두 아들까지 대동해 싸우다 작은 아들과 함께 금산 눈벌 전투에서 전사했다.전라북도와 경계선에 있는 대둔산(大芚山)은 명산 중 명산이다. 금산군의 동남쪽에서는 적벽강(赤壁江)의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할 수 있다. 30m 높이의 기암괴석에 단풍이나 노을이 질 때 붉은 빛을 띠어 ‘적벽’이라 한다. 글·사진=남민 인문여행 작가 suntopia@hanmail.net

2021-08-31 07:00 남민 인문여행 작가

[남민의 스토리가 있는 여행] 삼정문란 시대… 다산, 글로 '청백리 정신' 새기다

다산초당 전경. 사진=남민‘윗사람이 탐욕 버리면 백성은 도둑질 않는다’ 불욕부절(不欲不竊)季康子患盜(계강자환도) 問於孔子(문어공자) 孔子對曰(공자대왈), 苟子之不欲(구자지불욕) 雖賞之不竊(수상지부절)계강자가 도둑이 많음을 걱정하여 조언을 구하자 공자께서 “진실로 선생(지도자)이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백성은 상을 준다고 해도 도둑질을 하지 않습니다”라고 하셨다.◇ 정약용의 ‘불욕부절(不欲不竊)’강진만 전경. 사진=남민계강자(季康子)는 노나라 군주 애공 때의 대부(大夫)로 국정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며 백성에게 무거운 세금을 거둬 부를 축적했다. 자신이 큰 도둑이었지만 백성이 도둑질하는 것은 두고 보지 못했다. 공자는 이에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게 됨을 충고한 것이다. 공자는 각자 자기 위치에서의 역할이 있는 바,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라고 했다. 윗사람의 행실에 선하고 명분이 서야 백성이 믿고 따르는 법.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뜻이다.그런 점에서 조선 후기 최고 학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불욕부절(不欲不竊) 실천의 주인공이자 채찍을 든 인물이다. 그가 전라도 강진(康津)으로 유배 온 지 3년째인 1803년에 쓴 ‘애절양(哀絶陽)’이라는 시는 무법천지 속 당시 백성들의 피폐한 삶에 대한 슬픔이 그대로 녹아 있다. 삼정문란으로 썩어 들어간 나라에 대한 개혁의 외침이었다.갈대밭에 사는 농민이 아이를 낳자 사흘 만에 군적에 올라가고, 마을 이장이 와서 군포 대신 소를 빼앗아간다. 농민은 아이 낳은 죄로 소를 잃었다며 자신의 양경을 칼로 잘라버리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억울한 현실을 그는 뒷날의 거울로 삼고자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짓고 ‘애절양’ 시를 수록했다.앞서 33세에 경기도 암행어사 때도 ‘암행어사로 임명되어 적성의 시골집에서 짓다’라는 시를 남겼다. 놋수저는 이장에게 빼앗기고, 다섯 살에 기병에 오른 큰 아들과 세 살에 군적에 묶인 작은 아들의 군포세를 바치느라 하루 한 끼 겨우 풀칠하는 백성들의 죽지 못해 사는 현실을 임금께 보고했다.이때 정조의 최측근으로 고을 수령을 했던 김양직과 강명길을 단죄하는 건의를 올려 임금을 깜짝 놀라게 했다. 두 사람 모두 왕을 등에 업고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악행을 일삼았던 이들이다. 다산은 “법을 적용할 때는 마땅히 임금의 최측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라며 소를 올렸고 정조는 고민 끝에 이들을 단죄했다.◇ 명예롭게 살다 빛나게 죽은 개혁가강진 다산박물관 앞 비석. 사진=남민다산은 1762년 경기도 광주군 마현리(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정재원(丁載遠)의 4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고산 윤선도(尹善道)의 증손자인 공재 윤두서(尹斗緖)의 손녀로 해남 윤씨다. 다산의 집안은 대대로 8대 옥당(玉堂, 홍문관) 명문이었지만 노론 치하에 남인 집안이라 고조부 이후 삼세(三世)가 벼슬 없는 선비로 지냈다. 정재원이 남인 재상 채제공의 추천으로 말직인 고을 원님에 나갈 정도였다.다산은 6살에 오언시를 짓기 시작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22살에 성균관 유학 때 정조를 처음 알현했다. 정조는 그가 임오년생임을 듣고 생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었던 임오화변을 떠올린 듯하다. 이후 정조는 다산에게 각별한 애정으로 관심권에 뒀다. 정조에게 다산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교목세신(喬木世臣, 여러 세대에 걸친 충성스런 신하)의 표상이었다. 다산이 정조와 ‘쇄신’을 추구하며 개혁을 함께한 18년, 하지만 정조의 갑작스런 승하에 이듬해 오랜 유배를 떠나야 했다.1800년은 다산의 인생에 큰 변곡점이 된 해다. 정조로부터 6월 그믐 입궐하라는 통보를 받고 고향 마재에서 기다리는데 입궐해야 하는 날 아침 왕의 부고를 받았다. 정치 인생 목표였던 ‘정조의 요순 임금 만들기’ 프로젝트가 속절없이 무너져버린 것이다. 11살의 순조가 즉위하면서 정순왕후의 수렴청정과 함께 노론 벽파의 시대가 열렸다.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세력이었으니 정국은 정조 치세 24년 이전으로 되돌아간 것이다.다산이 즐겨 찾았던 강진 약천. 사진=남민다산에게도 곧바로 악몽이 닥쳤다. 18년간 강진으로의 유배를 떠난 것이다.다산은 오랜 유배 생활로 가난에 몹시 시달렸다. 이때 노론 측의 회유도 있었다. 함께 벼슬할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아들 학연조차 이젠 반대파에 고개 숙이기를 원했다. 하지만 다산은 영혼을 팔아 부귀를 누릴 순 없었다. 자리 하나 얻기 위해 명예를 저버릴 수 없음을 아들에게 분명히 밝혔다. 더 먼 추자도로 쫓아보내도 눈 하나 꿈쩍 않겠다는 것이었다.우리가 부르는 정약용의 대표 호는 다산(茶山)이다. 하지만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다산은 자신의 묘지명에 ‘사암(俟菴)’으로 남겼다. ‘사(俟)’는 ‘기다린다’는 의미다. 누구를 기다릴까? 중용에서 말하는 ‘백세이사성인이불혹(百世以俟聖人而不惑)’에서 따온 말로, 자신의 처세가 훗날 공자와 같은 성인을 기다려 심판 받아도 부끄러움이 없다는 표현이다. 불의에 가담하지 않은 자신의 행동, 후세 길이 귀감을 남긴 아름다운 이름이다.◇ 정약용의 ‘다산초당’… “후세에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강진 사의재. 사진=남민11월 강진 땅에 도착한 유배객 다산은 동문 밖 주막의 주모와 딸의 도움으로 그 집에서 생활했다.동네 아이들을 모아 글을 가르쳤다. 그 방을 ‘사의재(四宜齋)’라 이름했다. 생각(思)·용모(貌)·언어(言)·행동(動)을 바르게 하라는 뜻이다. 황상(黃裳)과 이청(李晴) 등이 애제자가 되었다. 다산은 주막의 사의재에서 4년을 살았다. 지금도 초가로 복원해 당시의 분위기를 연출해 놓았다. 뒤쪽엔 사의재 한옥 체험관이 조성돼 있다.다산은 1805년 백련사 혜장 스님의 소개로 보은산 계곡의 고성사(高聲寺) 보은산방으로 거처를 옮겼다가 이듬해 제자 이청의 집을 거쳐 1808년 외가 해남 윤씨의 산에 다산초당을 짓고 자리를 잡는다. 주변에 야생 차나무가 많아 호를 ‘다산(茶山)’이라 지었다. 그 역시 차를 즐겨 마당의 넙적바위에서 차를 끓여 들었다. 손수 판 샘 약천의 물로 차를 끓이며 차를 연구해 ‘각다고’라는 글도 남겼다. 다산의 차 지식은 해남 대흥사 초의선사에게 전수되어 차문화로 부흥한다. 덕분에 초의선사는 다성(茶聖)으로 일컬어진다.암벽에 새겨진 정석(丁石) 각자. 사진=남민초당에서 오솔길을 따라 20~30분 걸으면 그의 각별했던 벗 혜장선사의 백련사가 있다. 둘은 왕래하며 인생을 논하고 주역과 같은 철학을 논했다. 다산은 초당에 책 1000권을 쌓아두고 학문에 몰입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무려 500권의 책을 저술했다. 앉아서 책을 쓰다 보니 복사뼈가 세 번이나 구멍이 났다. ‘과골삼천’이란 고사가 여기서 생겼다.다산초당은 그의 대표 저서 ‘1표 2서’의 산실이 됐다. 다산초당에서의 10년, 초당에는 그의 흔적이 몇 개 남아있다. 산 암벽에 ‘정석(丁石)’이란 글씨를 새겼다. 자신의 성을 돌에 새긴 것이니 ‘정석’이다. 초당 아래 만덕리엔 다산박물관이 세워져 있다.고향으로 돌아온 다산은 더 이상 정계에 나아가지 않았다. 풍파에 희생양이 되어 고된 삶을 살았지만, 자신의 처세와 학문에 부끄러움이 없음을 자부하면서 그는 깨끗하고 당당하게 살다 떠났다.◇ 함께 둘러보면 좋을 강진의 명소백운동 별서정원월출산 아래에 ‘호남 3대 민간 정원’으로 꼽히는 백운동 별서정원이 있다. 넓게 펼쳐진 다원 사이에 잘 보존된 원림이다. 다산 정약용도 월출산을 등반한 뒤 하룻밤 유숙했다. 거북이가 강진만으로 들어오는 모양의 가우도(駕牛島)가 있다. 보은산이 소의 머리이고, 소의 멍에에 해당된다 해 이렇게 부른다. 강진만 위 출렁다리와 함께 걸어서 1시간 남짓 섬을 둘러볼 수 있다. 정상에서 짚트랙도 탈 수 있다. 강진 가우도. 사진=남민고금도와 마주하는 강진 최남단 마량항(馬梁港)은 미항이다. ‘마량’은 말을 건네주는 포구라는 뜻이다. 제주에서 실어 온 말들을 이곳에 내렸다. 전라 병영성은 1417년(태종 17년)에 설치되어 1895년(고종 32년) 갑오경장까지 500여 년간 제주도와 전라도 53주 6진을 총괄한 육군 총지휘부다. 총 길이 1060m에 높이 3.5m로 사적 397호다.고려청자박물관은 강진이 고려청자의 중심지였음을 말해준다. 국내 청자 요지가 400곳 정도 발굴됐는데 강진에 188곳이 있다. 청자의 초창기부터 전성기, 쇠퇴기까지 전 과정을 보여준다. 청자박물관과 함께 청자 판매장도 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으로 유명한 시인 김영랑(金永郞)의 생가가 강진 군청 근처에 있다. 신사참배와 창씨개명을 거부했던 저항 시인으로 87편의 시를 남겼다.강진 백련사 전경. 사진=남민백련사(白蓮社)는 고려 때 ‘백련결사운동’으로 이름을 떨친 것이다. 조선 초 효령대군이 8년 간 머물며 중수를 도왔다. 8 대사를 배출한 명찰이다. 천연 기념물 제151호 동백나무 군락으로도 유명하다. 다산과 혜장선사의 사연이 깃든 사찰이다. 무위사(無爲寺)는 사찰 이름처럼 위안처가 되는 곳이다. 원효대사가 관음사로 창건했다가 조선 명종 때 무위사로 개칭했다. 국보 제13호인 극락보전은 단아함과 소박미가 넘친다. 내부는 총 31점의 벽화로 장식돼 있었는데 지금은 두 점만 남기고 29점은 성보박물관으로 옮겼다. 글·사진=남민 인문여행 작가 suntopia@hanmail.net

2021-08-24 07:00 남민 인문여행 작가

[남민의 스토리가 있는 여행] 제자 신의에 탄복… 초가 유배지서 완성된 추사의 붓

대정향교. 사진-=남민어려울 때 참모습이 드러난다 ‘세한후조(歲寒後彫)’子曰(자왈), 歲寒(세한) 然後知松柏之(연후지송백지) 後彫也(후조야)공자께서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라고 하셨다.◇ 세한후조(歲寒後彫)… 군자의 의리를 지킨다‘세한(歲寒)’이란 ‘설 전후의 한겨울 추위’란 뜻으로, 매우 추운 시기 혹은 힘든 시기를 말한다. 송백(松柏)은 소나무와 잣나무로, 변하지 않는 지조를 상징한다. 추운 겨울에도 소나무와 잣나무는 독야청청 푸르다.‘세한후조’는 태평을 누릴 땐 고마움을 모르다가 역경에 처하면 그 시절 지도자를 그리워한다는 의미도 있다. ‘조(彫)’는 ‘시들다’란 뜻이다. 진정한 군자는 눈앞의 이익을 좆지 않고 끝까지 의리로써 신뢰를 보내는 바, 혹독한 날에도 의리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공자는 시류에 편승해 겉으론 군자인 척해 주변의 칭송을 받지만 실은 덕을 해치는 도둑이 있다며, 그들을 ‘향원(鄕原)’이라고 했다. 겉으로 드러난 평판을 이용해 뒤로는 영달을 추구하는, 처세술에 능한 사이비 군자다. 조선시대엔 이런 선비를 속유(俗儒)라고 불렀다. 우리 역사에서는 추사 김정희(金正喜)와 애제자 우선 이상적과의 사이가 어떤 상황에서도 군자의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세한후조(歲寒後彫)의 표상이다.◇ ‘시대의 지성’ 추사를 도운 사람들추사 유배지. 사진=남민1840년 6월. 55세의 김정희는 동지부사로 30년 만에 다시 ‘신지식의 보고(寶庫)’ 연경(베이징)을 찾게 될 꿈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10년 전 ‘윤상도 옥사 사건’이 정치적으로 악용돼 다시 소환되는 바람에 경주 김씨인 추사의 연경행 꿈은 깨지고 국문을 당하게 된다.오랜 국문 끝에 죽음이 임박한 그때, 다행히 북한산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함께 확인했던 벗 우의정 조인영(趙寅永)의 상소로 제주도 대정현(大靜縣)으로 유배형을 받아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그곳은 겨울이면 거센 찬바람에 사람이 ‘못살 곳’이라 해서 ‘모슬포’라 불리던 험지였다. 마당 울타리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는 위리안치(圍籬安置) 형벌은 더욱 큰 고통이었다.재상 채제공은 추사가 6살에 대문에 써 붙인 ‘입춘대길(立春大吉)’ 글씨를 보고 “이 아이는 명필로 크게 이름을 떨칠 것이지만 운명이 기구할 테니 붓을 잡게 하지 말라. 대신 문장으로 한다면 세상을 크게 울릴 것이다”라고 했다. 기구한 운명대로 예언이 들어맞았다. 유배 중 아끼던 제자 소치 허련(許鍊)이 세 번 바닷길을 건너왔고, 절친인 초의(初衣)선사가 찾아와 6개월 간 함께했다.누구보다 추사를 감동시킨 인물은 역관(譯官)인 이상적(李尙迪)이었다. 청나라에서 스승에게 필요한 귀한 책을 구입해 전달했다. 조정 고관들에게 상납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도(道)’를 택했고, ‘시대의 지성’ 추사는 크게 감동했다. 이상적이 선사한 책은 만학집(晩學集)과 대운산방문고(大雲山房文藁)를 비롯해 120권에 이르는 황조경세문편(皇朝經世文編) 등이었다. 당시로선 셀 수 없을 만큼 큰 금액이다. 경제적으로 풍족했던 역관이었기에 가능했다.추사 동상. 사진=남민추사는 고마운 마음에 문인화 한 폭을 그려 화제(畵題)를 ‘세한도(歲寒圖)’라 쓰고 그의 호 ‘우선’이란 말과 함께 발문을 적어 그에게 준다. “천만 리 먼 곳에서 사와야 하는 책들이다. 세상 인심이란 물처럼 흘러 권세와 이익을 따라가는데, 권세가에게 주지 않고 바다 너머 초라한 내게 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추운 겨울이 된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드는 것을 뒤로 제쳐둔다(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고 하셨는데….”추사 사망 후 이상적은 ‘추사를 위한 만시(輓詩)’를 읊었는데 역시 ‘세한(歲寒)’이다. “지기로서 한평생 간직해온 유묵은, 맑은 난과 겨울 추위에도 변치 않는 소나무일세.” 스승에 대한 변치 않은 신의와 존경심이자, 이익을 계산 않고 의리를 지킨 참 인간의 모습이다.하지만 세한도는 이상적 사후 수난을 겪는다. 주인이 숱하게 바뀌면서 일본인 후지츠카 지카시의 손에 넘어가 도쿄로 건너갔다가 손재형(孫在馨) 선생의 끈질긴 설득에 돈 안 들이고 찾아왔지만 또 다시 떠돌다 간신히 국립중앙박물관 품에 안겼다.◇ 낡은 조선의 ‘혁신’을 갈망한 신지식인산방산과 한라산 전경. 사진=남민김정희(1786~1856)는 충남 예산 용궁리에서 김노경(金魯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8살 때 백부 김노영(金魯永)의 양자로 들어간 이후 서울 영조대왕의 잠저 창의궁(현 서촌 통의동)에서 자랐다. 71세이던 1856년 10월 7일 봉은사 ‘판전(板殿)’ 현판을 쓰고 사흘 후에 과천에서 숨을 거두었다.금석 고증학의 대가인데다 주역에도 매우 뛰어났다. 명나라 동기창(董其昌), 청나라 옹방강(翁方綱)은 물론 북송의 소동파(蘇東坡)와 미불, 당나라 구양순(歐陽詢)의 서체까지 두루 섭렵해 자신만의 독창적 ‘추사체’를 완성했다. 꾸밈 없이 소박하며 맑고 고아해 졸박청고(拙樸淸高), 졸박청수(拙樸淸瘦)로 표현되었다. 역설적이지만 오랜 유배 시간이 그런 예술의 극한 경지에 이르게 한 밀알이 되었다.추사체를 사대주의 등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추사는 성리학의 폐단에 갇힌 조선 유학, 세도정치에 농락되던 당시 사회 속에서 유학의 본질을 찾고자 고증학에 심취했다. 그리고 송나라와 원나라를 주목했다. 매우 진보적인 사고였다. 실용 학문에 앞서가던 청나라 서적도 찾았다. ‘우리 것’을 위해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자, 중국이 갖고 있던 ‘그것’을 갈망했다.추사체는 ‘글씨’를 넘어 ‘그림’이었다. 그의 글씨체는 어떤 장소에 어떤 의미의 글씨를 걸어둘 것인지에 따라 획이나 모양새가 완전히 달라진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림에 수많은 ‘암호’를 남겼듯이 추사 또한 글씨를 통한 그림 속에 다양한 ‘암호’를 남겼다. ‘추사 코드’다. 그 암호를 우리는 다 풀 수 있을까?◇ 제주 유배지 … 인내의 열매는 달았다화북포구 해신사. 사진=남민제주도는 너무 멀고 사람이 살기 힘들어 원악도(遠惡島)라고 불렸다. 작은 배로 풍랑을 헤치려면 목숨도 걸어야 한다. 하지만 추사는 살 운명이었다. 해남에서 제주까지 뱃길로 사흘 이상 걸리는 거리를 당일에 도착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거센 풍파에 배가 휘청거림에도 뱃머리에 앉아 의연했다. 공자의 ‘군자는 곤궁에 처해도 의연하다’는 말 그대로였다.위리안치 형벌이었지만 지방관의 도움으로 유배 기간에 많은 곳을 다녔다. 인근 대정향교는 물론 산방산, 한라산 등반도 했다. 뜻 있는 많은 이들이 찾아와 제자가 되었다. 대정읍에 재현한 ‘추사 유배지’도 제자 강도순의 집을 복원한 것이다.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제주 추사관’도 있다. 옆 모습이 ‘세한도’ 그림 속 집과 닮았다.풍토병 등 척박한 환경 속에서 추사는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완숙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살아있는 권력에 아첨하지 않고 유배객 노 스승을 챙겨준 이상적 등 제자와 벗들의 도움으로 추사체를 완성해 간 것이다. 그 열매를 맺게 해 준 강도순의 집에 추사는 ‘귤중옥(橘中屋)’이라는 당호를 지어주었다. “겉과 속이 깨끗하고 빛깔은 푸르며 누런데, 우뚝한 지조와 꽃답고 향기로운 덕은 비교할 바가 아니니 그로써 내 집의 액호로 삼는다”고 했다.추사관. 사진=남민추사는 자신보다 200년 앞선 1614년에 유배 왔던 동계 정온(鄭蘊)을 기리며 제주 목사 이원조(李源祚)를 설득해 ‘동계정선생유허비’를 세우게 했다. 유배객 추사의 입김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준다. 추사관 근처 보성초교 뜰에 있다. 정온은 도가 없는 세상을 등지고 덕유산에 은둔해 살다 굶어 죽은 기개 있는 선비다.이곳에서 도보로 30분 거리의 대정향교는 추사가 제자들을 가르치러 종종 들렀던 곳이다. 기숙사인 동재(東齋)에 ‘의문당(疑問堂)’이라 써준 현판은 ‘늘 의문을 갖고 학문에 임하라’는 의미로, 이 또한 공자의 말씀이다. 현판은 현재 제주 추사관에 있다. 서쪽 담장 너머 길가에는 추사가 차를 마시기 위해 길었던 세미물 샘터가 남아 있다.제주도 유배 8년 3개월 만에 석방 명령이 떨어져 1849년 새해에 64세로 제주를 떠나게 된다. 뭍으로 향하는 제주시내 화북포구 해신사(海神祠)에서 그는 용왕에게 제물을 올리고 무사히 건널 수 있기만을 빌었다. 얼마나 간절했을까. 추사도 이렇게 나약해질 때가 있었다.◇ 함께 둘러보면 좋을 제주의 명소 정온 유허비. 사진=남민제주도는 유배지나 전쟁터 등 암울했던 현장을 여행하는 ‘다크 투어리즘(darktourism)’의 필수 순례지가 많다. 조선의 내로라 하는 거물급 인사, 심지어 왕도 이곳으로 유배를 왔다. 제주 읍내와 대정현이 그들의 주요 유배지였다.1519년 기묘사화로 죽임을 당한 충암 김정(金淨)은 이곳에서 충암집을 남겼다. 광해군 때는 영창대군 살해의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동계 정온이 유배를 왔다. 광해군 역시 인조반정으로 내쫓겨 강화도를 거쳐 1636년에 이곳으로 오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광해군의 적거지는 제주목 관아 옆 중앙사거리와 남문사거리 중간 정도에 있었다.우암 송시열(宋時烈)도 제주행 배를 탔다. 1689년 장희빈이 아들(훗날 경종)을 낳자 세자 책봉에 반대하다 83세에 유배당해 제주 시내 산지골로 왔다. 제주에 머문 기간은 불과 두 달 20여 일이었고, 돌아가던 중 정읍에서 사약을 받았다. 박영효(朴泳孝)는 고종 때 대신들의 암살을 음모했다는 혐의로 유배를 와 이곳에서 뮈텔 신부와 함께 근대여학교인 신성여학교 개교와 원예농업 보급에 힘썼다. 최익현(崔益鉉)은 제주도에 위리안치 됐다가 2년 후 돌아갔다. 이때 한라산을 등반한 후 ‘유한라산기(遊漢拏山記)’를 남겼다.이들 가운데 김정 정온 송시열 3인은 제주시내 이도1동 옛 귤림서원 터의 ‘오현단(五賢壇)’에 모셔져 있다. 제주 주민들이 제주를 위해준 다섯 분의 현인을 추모한다는 의미다. 송시열이 서울 명륜동 자신의 집터에 써놓은 ‘증주벽립(曾朱璧立, 증자와 주자의 학문이 쌍벽)’이란 큰 글자가 이곳에도 모각돼 있다. 오현 중 나머지 두 명은 안무사(按撫使, 지방 특사)로 제주 주민을 도우러 왔던 청음 김상헌(金尙憲)과 1534년 제주목사로 임명된 규암 송인수(宋麟壽)다.남민 인문여행 작가 suntopia@hanmail.net

2021-08-17 07:00 남민 인문여행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