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위기에 빛나는 SK ‘역발상 투자’에 박수를

내년 상반기까지는 글로벌 경제 회복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무게감을 더하고 있다. 국내 경제도 곡물과 원자재 파동에 물가와 금리 급등까지 겹쳐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정부 재정은 메말라가고, 가계 소비여력도 한계에 달했다. 이런 와중에 마지막 남은 경제주체 ‘기업’이 다시 본격 투자에 나서기로 해 큰 위안이 된다.SK하이닉스가 최소 15조 원을 투입해 2025년까지 충북 청주에 신규 반도체 공장 ‘M15X’를 짓기로 했다. 꽁꽁 얼어붙은 최근 반도체 경기를 감안하면 파격적인 결정이다. 3년 후 업황 개선을 노린 경영 판단이라니 박수 받아 마땅하다. 위기와 불황에 과감히 투자하는 ‘역발상’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고대했던 ‘기업가정신’이다.SK의 이번 결정은 지난 6월 말 M17 공장 투자 보류로 확산되었던 대기업 투자 연기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이라 더욱 반갑다. 반도체 2위 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낼 승부수를 던진 SK 덕분에 승수효과도 기대된다. 국내에 6개 반도체 생산라인을 가동하겠다고 밝혔던 삼성전자 등 여타 기업들이 보다 과감한 국내투자에 나설 계기가 되길 희망 한다.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국내 10대 그룹이 향후 3~5년에 추진하겠다고 밝힌 투자 규모가 700~800조 원 수준이다. 이 가운데 절반이라도 국내에서 투자가 이뤄진다면, 갈수록 기력을 잃어가는 우리 경제가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수십만 명의 신규 고용 창출은 덤이다.그러러면 기업에 대한 전방위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지금 글로벌 시장에서는 ‘초격차 기업’이 아니면 살아 남기 힘들다. 최악의 생산성에도 툭하면 파업을 일삼는 노사관계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불법 파업에 대한 손실을 노조 측에 물을 수 없도록 하는 입법이 진행되는 나라에서 기업이 자발적으로 대규모 투자와 고용에 나서길 기대하는 것은 과욕이다.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미국기업으로 만들려는 미국의 공세를 이겨내려면, 알량한 기업의 애국심에 호소할 일이 아니다. 해외에서 벌어들인 이익의 대부분을 국내에서 세금으로 내는데도 기업을 여전히 파렴치 집단으로 보는 시각이 개선되지 않는 한 기업의 애국심은 요원한 일이다.기업이 다시 국내에 투자하고 고용을 늘릴 수 있도록 정책적 배려와 지원이 절실하다. 반기업 입법을 자제하는 정치권 협조도 절박하다. 기업을 있는 그대로 봐주어야 기업도 신명나게 다시 뛸 수 있도록 해 주자. 기업이 약속한 대단위 투자 계획이 제대로 지켜지는 지 감시하되 그들의 노력에는 흔쾌히 박수를 보내자.

2022-09-07 14:06 사설 기자

[사설] 태풍 피해복구와 2차 피해 예방에 만전을

역대급 태풍으로 온 나라를 공포에 떨게 했던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6일 오전 위험지역을 빠져나갔다. 전국 공항의 국내선 운항이 순차적으로 재개되었고, 코레일도 이날 오전 9시부터 단계적으로 열차 운행을 다시 시작했다. 완전 정상화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당초 우려했던 것보다 인명 피해 등 태풍 피해 규모가 최소화되어 다행이다.태풍이 할퀴고 지나간 곳곳에선 여전히 크고 작은 피해가 잇달아 보고되고 있다. 제주도는 각종 시설물 피해와 함께 2만에 가까운 가구가 정전 피해를 입어 완전 복구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부산·울산부터 동해안, 울릉도까지 해안 지역은 여전히 높은 파도에 월파 위험성이 크다. 태풍에서 가장 먼 서울과 수도권에서도 수 백건의 시설피해 보고가 이어질 정도다.그나마 태풍 피해가 최소화된 것은 민관이 예방에 힘을 모았기 때문이다. 지난 달 서울 기습폭우 사태를 거울 삼아 치수(治水)에 만전을 기한 덕분에 하천 범람과 그에 따른 차량 침수 등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각 지자체에서 산사태 및 침수 위험지역 주민들을 사전 대피시킨 것도 주효했다.밤샘 대기하며 태풍관리 현장을 지킨 대통령부터 폭우와 강풍 속에서도 자리를 지킨 현장 공무원들까지 모두가 수고한 덕분이다. 다만, 위험천만의 태풍 현장에서 무리하게 촬영을 감행한 일부 상업형 유튜버들의 행태는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언론 행세 하며 명백히 공공 행정을 방해한 이런 행위를 엄단할 별도 법안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태풍이 위험권을 지나간 상황에서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피해복구에 총력을 다하는 것과 2차 피해가 없도록 하는 것이다. 아직도 정전과 저지대 범람 가능성이 여전한 만큼, 민관이 다시 힘을 모아야 한다. 특히 지반 침하에 따른 갑작스런 싱크홀 등 모든 2차 피해 가능성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예고 없는 산사태 대비도 시급하다. 피해가 우려되는 도로변과 주택가를 빨리 파악해 선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농작물 침수 피해로 인한 병충해도 큰 문제다. 가뜩이나 추석을 앞두고 서민 물가가 무섭게 치솟고 있는 상황이다. 지자체와 농협 등 관계 기관들의 유기적인 협조 아래 원활한 복구 작업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피해가 큰 지역은 조기에 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조기 복구를 위해 물심양면의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혼란기를 틈탄 지역 치안 유지에도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태풍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날 마지막 순간까지 모두가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된다.

2022-09-06 15:14 사설 기자

[사설] 이런 막나가는 정치, 세상에 없다

대한민국 정치가 ‘3류’로 빠르게 추락하고 있다. 협치와 민생의 정치는 자취를 감추고 분풀이와 한(恨)의 정치만 난무한다. 대통령을 포함해 여야 정치권이 온통 ‘내로남불’과 ‘적반하장’의 정치에 목을 메는 형국이다. 코로나와 물가 태풍에 서민 경제는 파탄 일보직전이다. 나라 경제는 우리 손으로 어쩔 수 없는 대내외 악재에 길을 잃고 갈팡질팡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오늘도 상대방 죽이기에만 혈안이다.주변 정리에 실패하는 바람에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곳 국정을 돌봐야 할 시간마저 낭비하고 있다. 부인과 그 가족에 관한 의혹은 뭉갠다고 될 일이 아님을 알텐데 사태만 더욱 키우고 있다. 약속했던 대통령실 개편은 속도도 더디고 운용철학도 부족하다. 믿을 만한 사람이 없다며 아는 사람만 데려다 쓴다. 지금부터라도 믿을 만한 사람을 널리 찾아 키울 생각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더 이상 대통령이 이런저런 구설에 국민들 뒷담화의 안주거리로 전락해선 안될 것이다.여당은 자중지란 속에 장기화하는 내분부터 하루 빨리 수습해야 한다. 당을 위기로 몰아가는 이준석 전 대표의 내부 총질도 그치게 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도 총대를 메지 않으니 해결이 난망 할 뿐이다. 여당은 특히 툭하면 이전 문재인 정부를 탓 하는 ‘쉬운 정치’에서 탈피해야 한다. “그들도 그랬는데…”보다는 “전 정부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했던 초심(初心)이 지금은 가장 필요한 때다. 그래야 국민들 외면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대통령을 공수처에 고발하겠다는 야당을 보고 국민들은 아연실색한다. 민주당이 금새 ‘공수처’를 ‘중앙지검’으로 번복하긴 했지만 선을 넘는 ‘감정의 정치’가 난무한다. 이런 과격한 대여 투쟁이 모두 당 대표 리스크에서 파생되고 있다. 본인이 특검을 자초하겠다는 얘기했다면, 떳떳하게 검찰에 출두해 수 많은 의혹에 해명하면 될 일이다. 대장동부터 백현동에 부인 카드까지 속속 드러나는 증거들에 확실히 소명해야 리더십에 난 상처도 지울 수 있을 것이다.이런 막나가는 정치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말로는 민생을 외치고 협치를 약속하면서도 결국은 자기 살려고 남부터 죽이고 보자는 식의 저급한 정치에 정치권 전체가 매몰되고 있다. 이제라도 ‘감정의 정치’를 내려놓고 ‘이성의 정치’로 돌아오길 바란다. 보복의 정치에서 빠져나와 건강한 협력과 비판의 정치에 임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오기와 분노가 넘치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 행복을 최우선 하는 민생과 협력의 정치임을 잊어선 안된다.

2022-09-05 14:01 사설 기자

[사설]태풍 ‘힌남노’ 피해 최소화에 민관 총력 펼쳐야

역대급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를 향해 북상하면서 제주와 전라도, 경상도 전역으로 태풍 예비특보 지역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현재 이동 속도라면 5일 새벽부터 오전 사이에 제주도에 근접해 6일까지 전국에 최소 100㎜, 최대 600㎜ 이상의 많은 비를 뿌릴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번개와 낙뢰를 동반한 초속 50m 이상의 강풍까지 예보되고 있어 큰 피해가 우려된다.정부도 3일과 4일 잇달아 긴급 태풍상황점검회의를 열어 선제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태풍·호우 위기경보 수준을 ‘관심’에서 ‘주의’로 상향한 데 이어 전국 국립공원 주요 탐방로와 야영장, 대피소 통제에 들어갔다. 풍랑 경보에 따라 여객선 운항도 중단됐고 선박 대피와 결박, 인양 등 안전 조치도 취해졌다. 상습 침수지역이나 인명피해 우려 지역에 대한 접근 통제도 뒤따랐다.힌남노의 한반도 상륙이 현실이 된 지금, 우리가 취할 최선책은 물샐 틈 없는 예방조치와 함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정부와 각 지자체는 비상근무체제로 피해 우려지역을 정밀 점검해 사전대비하는 게 우선이다. 특히 대민 지원에 한 건의 소홀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 재난 예보 및 피해 상황을 실시간으로 국민들에게 정확히 알려 신속한 대피와 대처가 가능하도록 이끌어야 한다.2차 피해가 없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인천을 비롯한 몇 몇 지자체들이 코로나19 임시 선별검사소 운영을 한시적으로 중단키로 한 것이 걱정이다. 검사 대상자들이 보건소나 민간 선별진료소를 이용해야 하는 불편을 겪어야 한다. 국민 불편함이 없도록 보완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비 피해로 인한 누전이나 가스 누출 사고 피해가 없도록 사후관리에도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국민들도 스스로 방어 대책을 세워 대비해야 할 상황이다. 가능한 외출과 차량 운행을 자제하고 차량 침수가 없도록 미리 고지대로 옮겨놓는 게 좋다. 창틀에 종이박스를 끼워넣어 파손을 막고, 침수 범람 피해가 없도록 모래주머니를 쌓아 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소재 지역의 태풍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비상시 신속한 대피를 위한 준비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거센 태풍을 사전에 차단할 방법은 없다. 힌남노가 막판에 한반도를 비껴가면 가장 좋겠지만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희박한 만큼 만반의 대비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국민들은 스스로 철저히 대비하고, 정부와 지자체는 실효성 있는 피해 예방조치와 함께 2차 피해 대비 및 사후 복구에 즉각 나설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할 것이다.

2022-09-04 15:20 사설 기자

[사설] 쇠락하는 한국경제… 민·관·정 공조만이 해법

우리 경제가 2분기에 0.7% 성장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민간 소비가 2.9% 성장하며 버텨 준 덕분이다. 하지만 이것도 당초 속보치보다 떨어진 것이라 3분기 이후 우려를 자아낸다. 수출 둔화에 수입 급증, 투자 부진까지 겹치면서 경제 활력이 뚝 떨어지는 모양새다. 3,4분기 0.1∼0.2% 성장만 해도 연간 목표 2.6% 달성이 무난하다는데, 그마저도 걱정될 정도로 안팎 상황이 안 좋다.외형상으로 우리 경제는 2020년 3분기 2.3% 성장 이후 지금까지 8분기 연속 성장세다. 그러나 성장의 질적인 면을 따져보면 우려가 앞선다. 특히 투자 부문이 기대에 못 미친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민·관의 대규모 투자 재개가 기대되었으나 설비투자 0.5%, 건설투자 0.2% 증가에 그쳤다. 그나마 속보치 때 마이너스로 예상했던 설비투자가 플러스로 돈 것이 위안이다.역시 문제는 수출입이다. 2분기 수출이 3.1%나 줄어 성장률을 1.0%포인트나 끌어내렸다. 8월 무역적자는 95억 달러에 육박했다. 5개월 연속이자 관련 통계 작성 후 66년 만의 최대 적자다. 수출이 8월 기준 역대 최대였음에도 에너지 수입액이 2배나 증가하는 데 도리가 없었다. 중국 수출에 제동이 걸려 반도체 수출마저 2년여 만에 감소했다.우리 경제의 취약점이 여기서 그대로 드러난다. 특정 국가와 품목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수출 구조, 환율 변동에 취약한 교역 구조 등 한계가 명확하다. 원·달러 환율은 1340원대에서 연일 오름세인데, 미국이 예고대로 자이언트 스텝으로 기준금리를 올리면 환율 상승세는 더 거세질 수 밖에 없다. 수입 물가 추가 상승에 성장률 둔화가 불 보듯 뻔하다.그나마 기업들이 최근 들어 중국 대신 아세안(ASEAN)과 인도, EU(유럽연합) 등으로 수출선 다변화에 속도를 내면서 나름 성과를 내고 있어 다행이다. 아세안 수출은 21.7%, 인도 수출도 27.1%나 늘었다고 한다.수출선 다변화와 함께 에너지 수입선도 보다 다원화하고 더욱 안정적인 수입원을 찾는 데 민관 공조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 다음 과제다.1일부터 100일 일정으로 윤석열 정부 첫 정기국회가 열렸다. 내년 예산안 심의와 국정감사 등 현안이 산적하다. 특별감찰관 임명이나 김건희 여사 특검, 공석인 장관직 인사청문회 문제 등을 놓고 치열한 정치공방이 예상된다. 자칫 정국 주도권 싸움에 피 토하느라 민생이 외면받는 국회가 될까 국민들 걱정이 크다. 민·관과 함께 정치권까지 민생과 경제 회복에 도움 될 해법을 찾아주길 기대한다.

2022-09-01 14:47 사설 기자

[사설] 선방한 ‘론스타 분쟁’… 남은 국가소송 선례되길

10년을 끌었던 ‘론스타 분쟁’이 사실상 한국 정부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의 론스타 사건 중재 판정부가 론스타 측 손해배상 청구액의 4.6%인 2억 1650만 달러만을 지급하라고 판정한 것이다. 배상금 완납 때까지 물어야 할 이자까지 감안하면, 우리 정부가 론스타 측에 물어야 할 금액은 3000억 원 가량으로 추산된다.론스타는 홍콩상하이은행(HSBC)에 외환은행 재매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국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해 46억 7950만 달러의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며 지난 2012년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제도(ISDS)’를 통해 국제중재를 제기했었다. 당시 금융위원회가 특별한 이유 없이 고의로 매각 승인을 지연시키고 매각가격을 내리도록 부당하게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당시 외환은행은 자기자본비율(BIS)이 8%를 밑도는 등 최악의 상황이었다. 정부로선 독자생존 가능성이 사라진 외환은행을 그대로 둘 수 없었기에, 론스타의 주주 자격 시비에도 불구하고 특별승인까지 해 주었다. 그렇게 도와주었는데 이내 매각 차익을 노리고 재매각 협상을 추진하는 론스타를 보며 정부나 국민들이 공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우리 정부 입장에서 이번 소송은 애초부터 부당한 조치였다. 당시 정부는 사모펀드인 론스타의 재매각 추진 과정에서 ‘국익’을 위해 정부가 가진 권한과 책임 내에서 정당한 행정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이를 부당한 개입이라며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은 우리를 너무 가볍게 본 처사였다.더욱이 당시 외환은행은 주가조작 사건 등 형사재판을 진행 중이었다. 판결 전까지 재매각을 승인할 수 없다는 정부의 입장은 너무도 상식적인 것이었다. 이번에도 그 같은 상황이 판정에 상당 부분 반영되었다. 애초에 책임 있는 행정을 한 정부와 담당자들이 불이익을 당해선 안되는 사안이었다.우리에게 3000억 원도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국민 혈세와 기업 혈세에서 나가야 하는 돈이다. 그나마 선방한 덕분에 막대한 국민 혈세가 낭비되지 않게 된 것이 천만다행이지만, 차제에 이번 판결을 꼼꼼하고 세세하게 분석해 향후 국가 소송 대응의 모델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부가 판정부에 이의제기를 하기로 한 것도 옳은 판단이다.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국제 소송 규모만 수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정부는 물론 그에 관여된 기업들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부디 이번 판정이 향후 우리의 남은 국가소송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길 기대해 본다.

2022-08-31 15:20 사설 기자

[사설] 美 전기차 협상, 민관 전방위 총력전 펼쳐야

한국산 전기차를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빼기로 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탓에 정부와 산업계가 분주하다. 큰 타격을 입게 된 업계가 현지 생산체계 구축 일정을 앞당길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정부 실무 대표단도 워싱턴으로 날아가 정부와 의회 관계자들과 만나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통상교섭본부장에 이어 산업부 장관도 곧 미국행에 오를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도 다음달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할 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해법을 논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기업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관련 법을 수정토록 하는 데 정부의 궁극적 목표라고 한다.하지만 일이 터지고 나서야 부랴부랴 대응에 나서는 모양새는 매우 실망스럽다. 미국이 반도체 등 핵심 산업 설비의 자국 내 유치를 강력히 추진해 왔음을 수 차례 목도하고도 손 놓고 있다가 뒤늦게 “뒤통수 맞았다”는 식의 변명은 온당치 않다. 민간과 정부가 관련 정보를 면밀히 공유하지 못해 나온 결과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조치는 민관 협력 하에 총력전을 펼치는 것 외에 없다. 이미 법안이 발효된 상황에서 어떤 실효성 있는 대책이 도출될 지는 의문이지만, 일단은 양국 정부간 고위급 협의 채널을 구축하는 게 급선무다. 중구난방식 대응 보다는 협상 채널을 일원화해 총력 대응해야 할 것이다.법안 이행을 위해 필요한 시행령 등 하위규정에 피해 최소화를 위한 제반 조치를 담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본 법안 개정까지는 절차와 시간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이다.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감안해, 필요하다면 한인 사회의 협조를 얻어서 라도 현지 여론을 우리에 유리한 쪽으로 가져갈 필요성도 있다.내국민 대우 및 최혜국 대우 원칙을 위반했다는 점을 들어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나라들과 연대해 WTO(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하는 방안도 있다. 미국이 반대해 WTO 최종심인 상소기구의 기능이 정지된 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실효성을 기대하긴 어렵겠지만, 글로벌 투자와 교역 원칙에 위배된다는 점은 꾸준히 제기하는 게 우리에게 유리해 보인다.지금은 전방위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민관이 없고, 여야가 없어야 한다. 특히 이번 사태를 민관 글로벌 공조체계를 새롭게 다듬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Made in America’는 반도체와 전기차에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긴밀한 민관 공조와 선제적 대응만이 거센 글로벌 파고를 넘는 기반이라는 게 이번 사태의 교훈임을 잊어선 안된다.

2022-08-30 14:00 사설 기자

[사설] 이재명 새 대표, 소통·협치 약속 꼭 지키길

이재명 의원이 총 득표율 77.7%라는 엄청난 지지를 얻어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에 올랐다. 대선 패배, 총선 셀프 공천 논란 속 국회의원 당선에 이어 마침내 거대 야당의 대표가 됐다. 이재명 계로 분류되는 의원들 위주로 새 최고위원회가 꾸려지면서 민주당은 이제 ‘문재인의 당’에서 ‘이재명의 당’으로 바뀌게 되었다.신임 이 대표는 수락 연설에서 당의 재건과 협치를 각별히 강조했다. 잇단 선거 패배와 계파 간 갈등으로 불거진 당을 수습하고 다시 수권정당으로 만들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을 제안하면서, 민생에 관한 한 자신도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른바 ‘포괄적 협치’를 공언한 것이다.강성 이미지의 이 대표가 협치를 각별히 강조한 것은 고무적이다. 대권과 당 헤게모니를 놓고 다투었던 세력들과 적극 소통하고 협치하겠다는 그의 약속은 “이재명답다”는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여러 흠결과 사법적 의혹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까지 그를 올라오게 했던 자신감과 실리적 스타일이 그대로 묻어난 연설이었다.하지만 그의 약속을 이뤄지려면 선결돼야 할 과제들이 있다. 과도한 팬덤 정치가 가져 올 ‘이재명 사당화’ 가능성부터 없어져야 한다. 그의 사법 처리를 막으려 당헌 투표 결과까지 번복하게 만든 게 지지세력들이다. 꼼수 보다 합리적 판단에 따르도록 단속할 사람이 어디에도 안보인다.민생 정치에 협조하겠다는 그의 약속도 미지수다. 그는 “국민의 삶이 단 반 발짝이라도 전진할 수 있다면 제가 먼저 나서 적극 협력하겠다”고 했지만, 당장 국회에선 부자 편 가르기 하느라 법인세 인하를 비롯한 세제 개편안, 1주택자 종부세 완화법안 등이 반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 대표 자신의 사법 리스크다. 대장동 의혹 등 그를 둘러싼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당장 경찰은 ‘백현동 특혜 의혹’과 관련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한 사건을 최근 검찰에 송치했다.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과연 그가 약속한 ‘협치’가 제대로 이뤄질 지 모를 일이다.이런 난관에도 이 대표가 약속을 지켜간다면 ‘큰 정치’를 하는 인물로 인식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권력욕에 빠진 또 한 명의 정치인 정도로 남게 될 것이다. 그는 민주당이 왜 정권을 내 주었는지 대선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지켜보았다. 그렇기에 과거의 민주당과는 다른 민주당을 만들고 싶어할 것이다. 그가 만들려는 것이 그저 ‘강한 민주당’이 아니라 ‘합리적인 민주당’이길 바란다.

2022-08-29 14:06 사설 기자

[사설] ‘민심’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국민의힘

집권 4개월도 안된 여당 국민의힘이 안팎으로 난처한 상황이다. 비상대책위원장의 직무를 정지한 법원 가처분 결정 이후 급히 당헌당규를 바꾸고 새 비대위를 꾸리겠다며 정신이 없다. 당의 전 대표는 여전히 밖에서 대통령과 당을 향해 총질 중이며, 현 사태에 책임이 큰 현 원내대표를 “사람이 없다”며 의원총회까지 또 시간 벌어주기를 하는 등 어수선한 모양새다.국민의힘은 지난 27일 마라톤 의원총회 끝에 법원 결정을 수용하되 이의신청 등으로 후속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 보다는 당이 비상사태인 것은 분명하니, 당헌당규부터 빨리 고쳐 비대위 체제를 유지하겠다고 했다. 그래야 이준석 전 대표의 비대위 효력 정지 추가 가처분 신청으로 당무에 제동이 걸리지 않을 것이란 현실까지 고려된 조치로 보인다.국민의힘이 추진하려는 당헌당규 개정은 비대위 구성 요건에 ‘최고위원 절반 이상 사퇴’ 또는 ‘선출직 최고위원들의 사퇴’ 같은 최근이 당 상황을 넣겠다는 것이다. 새 비대위 위원장을 누가 선임할 것인지도 담길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정작 의원총회 후 당 안팎에선 원내대표 등의 거취를 놓고 거센 공방이 펼쳐졌고, 결국 ‘국민도 버린당’이라는 자아비판까지 나왔다.국민의힘 지지자들은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국민의힘이 이렇게 민심을 모를 수 있느냐며 안타까와 한다. ‘책임론’이 제기된 사람을 “수습이 먼저”라며 눈감아주고, 당을 사분오열시키는 사람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죽했으면 같은 상황에서 과거 더불어민주당이라면 어땠을까 상상할 정도라고 말한다. 전략도, 철학도 없는 ‘우유부단’ 자체라는 것이다.집권당인 ‘국민의힘’에 ‘국민’은 없고 내 편 네 편만 있는 게 문제다. 대통령도 국민만을 받들겠다고 약속했거늘 국민을 바라보는 정치가 안 보인다. 나만 챙기는 정치만 있을 뿐, 나라와 국민을 위해 힘과 지혜를 모으는 정치가 없다. 대통령 내외 옆에서 바른 말 하는 사람 하나 없고, 그에 귀 기울이려는 노력도 부족하다. 무조건 전 정권을 비토하는 ‘오기’의 정치만 난무한다.‘인의 장막’을 걷어내고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을 위해 제대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집단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다. 말로만 ‘선당후사’를 외치지는 입에 발린 정치는 안된다. 모두가 ‘읍참마속’의 결단을 스스로 새겨야 할 때다. 당과 사람을 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안될 시점이 왔다. 좌고우면하며 주판알 퉁길 때가 아니다. 지난 4개월의 정치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더욱 속도를 내지 않으면 안 될 때다.

2022-08-28 14:02 사설 기자

[사설] 한국경제 최대 과제는 금리·환율 리스크관리

25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연 2.50%로 0.25%포인트 올렸다. 벌써 4차례 연속 인상이다. 가파르게 오르는 물가와 치솟는 환율을 잡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받아들여진다. 한미 간 금리 역전을 막아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과 원화 약세에 따른 수입 물가 상승을 최대한 억제하자는 취지까지 반영된 결과다.이날 한국은행은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5.2%로 제시했다. 1998년 7.5% 이후 24년 만에 최대치다. 6월과 7월 연속 나타난 6%대 물가상승률에 가파른 환율 상승까지 고려한 조치다. 환율 상승에 따른 수출 확대 기대감을 상쇄할 정도로 글로벌 시장이 둔화될 것으로 우려해 올해 실질 GDP(국내총생산) 성장률 전망치도 2.7%에서 2.6%로 낮췄다.물가 전망치 상향과 기준금리 인상은 현실을 반영한 조치로 평가된다. 하지만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0.1%포인트 밖에 내리지 않은 것이 우려된다. 2.5% 안팎이 현실에 가까운 수치가 아닐까 싶다. 국내외 경제예측기관들도 대부분 2.3~2.5%로 추정하고 있다. 내년 2.1% 성장률 전망은 그나마 현실적이다.정부와 통화당국의 과제는 ‘리스크 관리’ 하나로 모아진다. 성장에 대한 욕심은 조금 내려놓더라도 과거의 위기가 재현되지 않도록 리스크 관리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상황이다. 다음 달 미 연준이 0.5%포인트 이상의 금리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에 대비해 우리 역시 다음 스텝을 미리 점검하고 대비해야 한다.상당 기간 우리도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갈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 폭이 더 커지고 환율 시장이 요동을 쳐 국제금융시장이 다시 불안해지면, 단기간의 급속한 자본유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금리격차를 좁히는 데 특단의 전략적 관리가 필요한 이유다.현실을 반영 않는 성장 욕심은 당분간 접어두는 게 좋겠다. 성장의 요건인 수출과 소비, 투자 어느 것 하나 회복 기운이 없는데 비현실적 수치를 제시하며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들어선 안된다. ‘만성 흑자국’이던 증국에 마져 4개월 연속 무역적자라는 사실에서, 우리가 자신해 온 ‘펀더멘탈’을 재확인할 필요성이 제기된다.다들 올해보다 내년이 더 어려울 것이라 걱정한다. 과거처럼 나라 곳간 신경 안 쓰고 정부 재정지출로 메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적절한 리스크 관리와 함께 재정의 적재적소 투입이 필요해지는 시점이다. 더불어 민간부분의 생산과 투자를 촉진할 유인책도 서둘러야 한다. 그 모든 부분에 리스크 관리가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

2022-08-25 14:03 사설 기자

[사설] 물가폭등 없도록 환율 방어에 최선을

환율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대통령까지 구두 개입에 나섰음에도 23일 원·달러 환율이 1345원을 훌쩍 넘어 금융위기 이후 최고점을 찍더니 24일에는 반대로 큰 폭 하락으로 출발하며 출렁였다. 분명한 것은 추세적으로 강한 오름세이고, 우리로선 마땅한 방어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일각에선 곧 1380원 이상까지 오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가파른 환율 상승세는 안전자산 선호 수요에 더해 투기 수요까지 가세한 탓이다. 전 세계적으로 달러만큼 안전하고 수익률 높은 투자수단이 없다. 더욱이 우리 외환 수급과는 완전 별개로 외생적 변수가 주요인이다 보니, 상승 흐름 자체를 막기에 역부족이다. 인위적으로 누를 경우 부작용마저 우려된다.문제는 고물가다. 높은 환율은 수입가격을 끌어 올린다. 물가당국이 할당관세제를 확대해 수입물가 하락을 유도하고 있지만 최근의 환율 급등 탓에 효과가 모두 사라졌다. 관세혜택을 받은 수입육이 이전보다 더 비싼 것이 예사다. 정부는 9월이나 10월을 물가 정점 시기로 낙관했었으나 ‘가능성 제로’다.특단의 물가 대책이 필요한 때다. 달러 가격 추가 상승에 미리 대비하지 않다간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농심조차 원재료값 상승을 이유로 라면 값을 크게 올렸고, 이런 추세가 줄줄이 이어질 것이 뻔하다. 물가 안정을 위한 환율 안정 대책을 세우지 못하면, 가장 우려해 왔던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할 가능성도 커진다.환율 시장 구두 개입은 언제나 효과가 제한적이다. 급하다고 외환보유액을 풀었다간 아까운 외환보유고만 축낼 판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물가 폭등을 지켜볼 수도 없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투기세력의 시장 개입을 차단하고 특단의 리스크 관리에 매진하는 일이다. 환율 상승 속도를 최대한 더디게 하는 게 현재로선 차선책이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외 공조다. 역외 투기 세력 유입을 막으려면 국내외 관계기관 간 긴밀한 공조가 필수다. 한미 통화스와프 카드도 여전히 유효하다. 한덕수 총리나 추경호 경제부총리 모두 “지금은 외환 위기가 아니다”라며 필요성을 부정했지만, 실제 성사 여부와 무관하게 추진 자체가 효과적인 구두 개입일 수 있다.“우리 펀더멘털은 전혀 문제가 없다”며 큰소리 치다 외환위기를 맞았던 과거를 곱씹어 보자. 물론 그런 최악의 상황이 되도록 내버려 두어선 안되겠지만, 시장의 리스크를 줄일 대책이라면 무엇이든 해야 할 때다. 폭등하는 물가에 이미 허리가 휜 서민들을 위해서라도 환율 방어는 현 경제팀의 대단히 무거운 과제다.

2022-08-24 14:02 사설 기자

[사설] 한국과 중국, 흔들리지만 여전한 파트너

한국과 중국이 24일로 수교 30년을 맞았다. 1992년 8월 24일 양국 외교장관이 중국 베이징에서 ‘한중 외교관계 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해 외교 관계를 정상화한 지 꼭 30년이다. 그 동안 한국의 대 중국 수출은 160배 넘게 증가했다. 2003년 이후 20년째 부동의 1위 수출 대상국이다. 중국에게도 한국이 4위 수출국이다. 두 나라가 사실상 하나의 경제 공동체인 것이다.적대감을 벗고 두 나라가 국교를 정상화했기에 우리는 중국 거대시장을 발판으로 개발도상국을 넘어 선진국 대열에 오를 수 있었다. 중국 역시 덩샤오핑(鄧小平)의 ‘박정희 벤치마킹’을 시작으로 지금의 경제적 번영을 누릴 기반을 다졌다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지난 30년 대부분이 서로에게 ‘윈-윈’의 시기였고, 중국은 언제나 ‘전략적·협력적 동반자’였다.그래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를 계기로 최근 몇 년 동안 두 나라가 유례 없이 불편한 사이가 된 것은 더 유감이다. 최근 열린 외교장관 회의에서 중국은 ‘3불(不) 1한(限)’, 즉 한국이 마땅히 해야 한다는 ‘도리’를 강요하며 좁혀지지 않은 간극을 확인했다. 이후 글로벌 공급망 갈등을 비롯해 두 나라 간 갈등은 회복불능 상황까지 치닫는 모양새다.따지고 보면 이런 갈등과 반목은 두 나라에 직접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나 북한 등 외생변수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순화된 공식이 불문율처럼 인식되던 때가 있었으나 경제가 곧 안보요, 안보 없는 경제가 불가능해진 요즘은 통하지 않는 말이다. 어느 한 쪽을 선택하도록 강요받는 상황에선 정상적인 교류가 힘들다.지금 사급한 것은 두 나라가 국교 수립 후 20여 년간 보여 주었던 ‘상생’의 공감대를 되찾는 것이다. 그 바탕에는 당연히 ‘국익’이 최우선 되어야 하겠지만, 서로의 이익을 교환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가는 상호 노력이 중요하다. 갈등 속애서도 실리 차원의 도움은 주고 받는 전략적 유연함이 요구된다. 자주 만나 대화하며 해법을 공유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정부와 정치권도 중국 문제에 관한 한, 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 생각이 다르고 행동이 제각각이면 외교력을 발휘할 수 없다. 대통령부터 모두가 국익에 기반한 실리외교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중국은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거대시장이자 미래 산업의 보고이며 자원 수급의 최대 의존처다. 상생의 실리 외교만이 우리의 향후 30년 중국 해법이다.

2022-08-23 14:00 사설 기자

[사설] 정치적 고려 앞선 합목적적 재정준칙 시급

정부가 혁신적인 재정준칙을 곧 마련하겠다고 한다. 빠르면 이달말 발표될 새 재정준칙안은 그동안 윤석열 정부가 누차 강조해 온 ‘합목적성’과 ‘재정 안전성’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야 마땅히 긴급 재정을 투입하겠지만, 정치적 의도에 따라 시행되는 자의적 집행을 최소화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정부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3.0% 안에서 관리하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60%를 넘을 경우 2.0% 이내로 더 낮춰 관리하겠다는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올 연말 이 비율 전망치가 5%를 웃돌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상당한 재정긴축이 불가피함을 예고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문재인 정부의 2020년 ‘한국형 재정준칙’을 고쳐 재정 운용을 보다 보수적이고 타이트하게 하겠다는 뜻이다. 기존의 통합재정수지를 기준 삼지 않는 대신 관리재정수지를 재정 관리 지표로 채택한 것부터 남다르다.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더라도 반드시 재정건전화 계획을 다시 세워 균형을 맞춘다는 원칙에서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문제는 입법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 준칙을 당장 내년 예산안부터 적용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그런데 기존 문재인 정부가 밝혔던 재정준칙의 시행 시점이 2025년이다. 거대야당으로선 의석 수를 앞세워 새 준칙의 입법화를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민생을 외면하는 재정 운용’이란 프레임으로 몰고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최근 “재정준칙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역사적 책무”라고 했다. 재정 낭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누군가의 자의적 판단과 정치적 목적으로 나랏돈이 허투루 쓰이게 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여야 협의를 거쳐야 새 준칙도 실효성을 얻는다. 일방적인 추진 탓에 재정이 희생양이 되어 오남용되었던 선례를 우리는 얼마전까지 보지 않았던가.9월 초쯤 내년도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될 전망이다. 올해 본 예산 대비 5만 증액된다고 해도, 내년 정부 지출은 640조 원에 육박하게 된다. 이런 엄청난 규모의 예산을 집행하고 운영함에 있어 여야 합의는 필수다. 재정 안정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공감대가 없으면 자칫 정쟁만 남을 수 있다.새 준칙안의 핵심은 ‘확장적 재정’을 ‘건전 재정’ 기조로 전환하겠다는 데 있다. 최근 수 년간 막대한 정부지출로 경제를 지탱해 왔다면, 이제는 민간과 시장의 분발을 촉구해야 할 시점이다. 언제까지 재정에 기댄 경제 운용을 할 순 없다. 새 준칙에 따라 우리 소중한 재정이 ‘경제 마중물’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다할 수 있길 기대한다.

2022-08-22 14:08 사설 기자

[사설] 유명무실 여야 중진협의체, ‘협치’ 돌파구로

지난 19일 윤석열 대통령과 국회의장단 만찬에서 여야 중진협의체 운영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끝 없는 여야 교착상태를 타개하려는 근본 취지에 윤 대통령을 포함한 참석자들 모두가 공감했다고 한다. 실종된 ‘협치’의 복원을 위한 돌파구가 될 것이란 기대가 높아지는 분위기다.제안자가 야당 소속 김진표 국회의장이라는 점이 더욱 기대를 갖게 한다. 그는 어느 새 대세가 돼 버린 빗나간 팬덤정치의 부작용을 우려하면서 여야 중진들이 풍부한 정치 경험과 경륜을 기반으로 갈등 중재 역할을 할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2014년 이미 국회 규정에 설치 근거도 마련해 놓았으니 구성에 걸림돌도 없다. 김 의장은 빠르면 9월 정기국회 전에 여야 지도부에 중진협의체 가동을 공식 제안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국회 사무처는 이미 실무 준비에 착수했다고 한다. 국회의장단과 여야 5선 이상 중진 의원, 원내대표·정책위의장 등이 상시 참석하고 필요시 국무위원을 참석토록 하는 방안이 유력해 보인다.꽉 막힌 여야관계에 돌파구를 찾고, 특히 연금·노동·교육 등 3대 개혁을 추진해야 하는 윤 대통령이나 여당 입장에서는 이런 협의체를 통해 야당의 협조를 이끌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 야당 역시 정부의 일방적 개혁 추진을 견제할 수 있는 숙의 장치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거부할 명분이 없다.다만, 극단이 일상화된 현 정치상황에서 이 협의체가 얼마나 실질적 역할을 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정기국회를 앞두고 여야는 사사건건 충돌하고 있다. 상대편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예민하다. 국회에선 이번 주부터 극렬한 대치 국면이 예상된다. 대통령을 겨냥한 각종 국정조사 요구에 검찰 수사권 회복 시도에 관한 논란 등 여야 조율이 쉬운 것이 하나도 없다.‘중재자’ 차원을 넘어 실질적인 상설 협의체화가 그래서 더더욱 요구된다. 협치는 물론 정치의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이 협의체는 꼭 필요하다. 과반 의석수를 앞세워 야당의 힘을 보여주겠다며 벼르는 민주당이나, 거대야당의 파상 공세에 전 정부 비판으로 고루한 역공에만 의존하려는 국민의힘 모두 전향적인 태도 전환이 필요하다.이대로라면 중진협의체 구성은 난망하다. 대통령과 국회 수뇌부가 공감한 ‘협치’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여야 지도부가 먼저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사사건건 상대 발목을 잡으려는 후진 정치에서 서둘러 탈피해야 한다. 지금은 여야 협치와 정치의 정상화가 어느 때보다 시급한 상황이다. 건강한 파트너십을 위한 여야 지도부의 환골탈태를 기대한다.

2022-08-21 14:08 사설 기자

[사설] 미국은 당근과 채찍…우린 강건너 불구경

17일부터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시행되면서 국내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인플레이션 감축이란 겉 이름과 달리 이 법은 현지 생산체제를 갖추지 못한 전기차 업체에게서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 혜택을 빼앗는 ‘자국 산업 보호 법안’이다. 아우디 BMW 벤츠 등 21개 해외 자동차 기업은 모두 혜택을 받는데 한국 브랜드만 모두 빠졌다.아이오닉, EV6 등 인기 전기차를 수출해 온 현대차와 기아가 당장 직격탄을 맞게 됐다. 현지에서 경쟁하려면 가격을 낮추거나 추가 혜택을 부여할 수밖에 없어 수익성 악화가 불 보듯 뻔하다. 반도체나 배터리처럼 전기차 역시 국내 라인을 미국이나 멕시코로 옮겨야 하는, 인력 구조조정이 수반되는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지도 모르게 된 것이다.이번 인플레이션 감축법에서 보듯이, 바이든 정부의 산업정책은 명확하다. 미국의 국익을 위해 당근과 채찍을 과감하게 사용해, 미국에 필요한 공급망을 완벽하게 미국이 주도해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파격적인 혜택과 겁박을 병행해 삼성전자 등 글로벌 기업을 현지에 유치했듯이, 전기차와 배터리 등 차세대 산업설비도 그렇게 만들겠다는 노골적인 야욕이다.일각에선 우리 자동차업계가 앞으로 미국과 포괄적 협력을 추진하는 한편으로 중국과도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를 활용해 협력을 추진하는 앙면 전략을 주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민간기업이 할 수 있는 수단이 막힌 상황에서, 산업정책과 외교·통상정책이 맞물리는 이런 난제를 우리 외교력으로 얼마나 풀 수 있을 지 의문이다.우리 산업계 현실과 환경을 둘러 보면 한숨 밖에 나오지 않는다. 노동계는 잘 사는 자기들만 더 잘 살겠다고 파업 전선을 이끌고 있다. 공장과 설비가 해외로 나갈 지도 모르는 상황인데도, 글로벌 차 업계 바닥 수준인 생산성을 끌어올릴 생각은 없다. 해외로 라인 빼는 걸 막겠다며 파업부터 일삼을 지 벌써부터 걱정이다.정부와 정치권은 모두 ‘나 몰라라’다. 기업에 힘을 실어줄 법인세제 개편 등은 말만 꺼내놓고 제자리 걸음이다. 정부와 여당은 진정성 있게 거대야당을 설득해 협조를 구하고, 야당은 힘만 센 야당이 아니라 건강한 국정운영 파트너 역할을 해야 한다.다른 나라들은 당근과 채찍을 사용해 어떻게든 자국 산업을 살리려 하는데 우리만 강 건너 불 구경 할 순 없는 일이다. 이제라도 범 정부 차원의 특별팀을 꾸려 모두가 머리를 맞대어 거센 글로벌 파고를 헤쳐갈 총체적인 방안을 고민하고 실행해야 할 때다.

2022-08-18 14:03 사설 기자

[사설] 尹정부 100일…'소통'과 '정치력'부터 복원을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아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첫 공식 기자회견을 가졌다. 많은 문답 속에서 우리가 주목한 것은 대통령의 강한 자부심과 자신감이었다. 지적된 많은 문제들에 대해 윤 대통령은 “‘국민의 관점’에서 세밀하고 꼼꼼하게 따져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시종일관 지난 100일은 물론 앞으로의 국정 운영 방향에 대한 비판에 거침이 없었다.윤 대통령은 세계 경제 위기에 체계적으로 대응하면서 민생 경제 살리기에 노력했고, 반도체와 우주산업 원전 등 산업 고도화와 미래전략산업 육성에 매진했다고 말했다. 소득주도성장 같은 잘못된 경제정책을 폐기하고, 과감한 규제개혁과 세제 개혁을 추진해 민간 주도 성장의 기반을 다졌다고 자평했다. 그런 와중에도 서민과 사회적 약자 보호에 주력해 왔고, 특히 집값과 전셋값 안정을 이뤄냈다고 자부심을 보였다. 하지만 지난 100일에 대한 이런 대통령의 자평은 다소 과했다.대통령은 낮은 지지율과 그 원인으로 지적된 인사 문제에 대해선 “민심을 겸허히 받들겠다”고 했다. 조직과 정책 등이 작동되고 구현되는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소통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면밀하게 짚어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정치적 국면 전환이나 지지율 반등 같은 정치적 목적으로 인사 등을 해선 안 된다며 세간의 부정적 평가를 거부하며 선을 그었다. 그나마 “대통령실부터 어디에 문제가 있었는지 짚어보고 있다”는 답변이 긍정적이었다.윤 대통령은 “국정 운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국민의 뜻, 둘째도 국민의 뜻”이라고 말했다. 국민의 숨소리 하나 놓치지 않고, 한 치도 국민의 뜻에 벗어나지 않도록 잘 받들겠다고 했다. 자신부터 더욱 분골쇄신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뜻이 투영된 것이 곧 ‘지지율’임을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간과하고 있는 듯 하다. 지지율 30%를 다시 넘기기가 버겁고, 부정 평가는 여전히 70% 언저리인 것이 지금 윤석열 정부가 처한 현실이 아닌가.출근 길 도어스테핑이 ‘소통’의 전부가 아니다. 누구와도 만나 자신의 생각과 정책을 설득력 있게 알리고 듣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 문외한이었던 검찰총장을 대통령으로 뽑아주면서 국민들이 기대했던 것은, 닳고 낡아빠진 불통의 정치가 아니라 국민 눈높이에 맞춘 ‘소통과 변화의 정치’였을 것이다. 그들 절반이 등을 돌리는 상황임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날 대통령이 밝힌 향후 국정운영 과제들도 국민 지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정리할 것은 빨리 정리하고, 새로운 소통의 능력과 정치력을 발휘하길 기대한다.

2022-08-17 14:10 사설 기자

[사설] 화물연대 잇단 불법 이대로 방치할건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소속 100여 명의 조합원들이 급기야 16일 이른 아침에 서울 하이트진로 본사를 점거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지방의 하이트진로 공장 3곳을 돌며 제품 출하를 막아 섰던 조합원들이 이번에는 본사 옥상까지 점거해 농성을 시작했다. 주의 주장의 정당성이나 절박성 여부를 떠나, 명백한 불법 점거이자 경영방해 행위다.지난 6월 2일 화물연대가 운송료 30% 인상 및 운송료 차별 해소를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한 이후 10여 차례 대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갈등만 격화될 뿐 전혀 간극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앞서 경기 이천공장·충북 청주공장의 화물운송 위탁사인 수양물류 소속 화물차주들이 지난 3월 화물연대에 전격 가입한 것을 계기로 이뤄진 민주노총과의 연대가 사태를 더욱 키우고 있다.이번 본사 점거 농성은 궁극적으로 수양물류의 100% 주주인 하이트진로에게 “직접 사태 해결에 나서라”는 압박이다. 화물연대는 물가와 유류비 상승에도 불구하고 15년째 운송료가 제자리라며 초강경 태세다. 맥주와 소주 운송료의 차이도 큰 불만이다. 최근에는 ‘노조탄압’이라는 이유로 하이트진로에 대한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까지 요구했다.하이트진로 측은 현재 업무방해금지 가처분신청과 함께 일부 조합원에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한 상태다. 화물연대 기사들과는 어떠한 계약관계도 없으며, 손해배상 청구는 3곳 공장에서 제품 출하가 중단되었던 데 따른 책임을 물은 것이라는 입장이다. 특별근로감독 요구 주장에는 “회사를 압박하려는 수단일 뿐”이라고 일축하며 강경한 입장이다.사태가 장기화하면 모두에게 손해다. 민주노총과 화물연대부터 즉각 농성을 풀고 정상적인 대화에 나서야 한다. 특히 민주노총은 화물차주들을 지나치게 자극해 사태를 키우려는 시도를 멈춰야 할 것이다. 하이트진로와 수양물류 측도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그들의 요구에는 한번 더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그런 상호 노력이 시도조차 이뤄지지 않거나 불가능한 상황에 이른다면 마지막 방법은 ‘공권력’ 밖에 없을 것이다. 명백한 불법 행위를 이렇게 장기간 방치할 순 없기 때문이다. 양 측을 다시 대화 테이블에 앉히는 노력이 우선이지만, 공권력의 직무유기를 그대로 좌시할 순 없는 일이다. 대우조선 사태처럼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모두가 불법 파업에 ‘단호한 대처’를 촉구하지만, “그 때만 면하자”며 흐지부지 끝낸 허술한 결론 탓에 이런 불법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2022-08-16 14:23 사설 기자

[사설] 北 비핵화·日 관계개선보다 급한 내치(內治)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북한과 일본에 대한 새로운 메시지를 던졌다. 북한에는 핵 개발 중단을 전제로 한 경제·민생 지원을, 일본에는 새로운 한일관계 개선 노력을 촉구했다. 특히 북한에는 취임식 때 밝힌 ‘담대한 구상’의 구체 실천 방향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윤 대통령은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를 약속하면, 단계에 맞춰 북한 경제·민생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도록 돕겠다고 했다. 대규모 식량 공급, 발전과 송배전 인프라 지원, 국제교역을 위한 항만·공항의 현대화 프로젝트, 농업 생산성 제고를 위한 기술 및 병원과 의료 인프라의 현대화 지원 등 구체 계획도 소개했다.새로운 한일 관계 구상도 제시했다. 일본을 지울 수 없는 적대의 대상이 아닌, 자유를 위협하는 도전에 맞서 함께 힘을 합쳐야 하는 이웃이라고 선언했다.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양국 미래와 시대적 사명을 향해 나아갈 때 과거사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며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빠르게 한일관계를 회복, 발전시키겠다고 약속했다.북한, 일본과의 얽힌 매듭을 푸는 것은 우리 정치적 안전과 경제적 성장에 절대적이다. 하지만 지금도 두 나라와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핵 도발은 여전하고, 야스쿠니신사 공물 헌납은 올해도 멈추지 않았다. 전 정부의 과도한 굴종 외교, 경제를 도외시한 지나친 반일주의가 낳은 결과다. 윤 대통령의 이날 제안이 그 새로운 돌파구가 되길 기대한다.하지만 이런 외교적 난제들에 앞서 먼저 풀어야 할 숙제는 내부에 있다. 강한 외교도 확고한 내치(內治)의 기반 위에서 이뤄지는 법이다. 국민들이 체제를 인정하고 대통령과 정권을 존중해 주어야 외교도 비로소 힘을 발휘하고 지지를 얻을 수 있음이다.그런 면에서 우리는 윤 대통령이 이날 “이제 자유와 인권, 법치가 존중되는 나라를 세우기 위한 새로운 ‘독립운동’을 할 때”라고 언급한 것에 주목한다. 강력한 내치 결의를 천명한 것으로 읽힌다. ‘윤핵관’의 전횡과 힘 겨루기, 이준석 전 당 대표의 ‘양두구육’ 파문, 수해 현장의 의원 막말 등으로 얼룩진 내부를 추스르고 정치적 안정을 도모할 전열 정비 태세가 엿보인다.17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 윤 대통령의 아킬레스 건은 바닥권 지지율이다. 최근 간신히 30%대를 회복했지만 부정평가가 여전히 70% 안팎일 정도로 국민적 지지기반이 취약하다. 교육부 장관 경질로 시작한 ‘주변 정리’로 내치 기반부터 확실히 다지는 것이 지금으로선 더 중대한 과제임을 인식하길 바란다.

2022-08-15 15:20 사설 기자

[사설] ‘반지하’ 없애기 전 취약층 주거 대안부터

중부지역 집중 폭우로 반지하에 살던 취약계층 주민들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졌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에 저지대 및 상습 침수지역의 서민 주거 대책 마련 등 폭우 피해 재발방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고, 정부 여당과 서울시도 반지하와 지하층 주거지 개선을 위한 대책을 서둘러 내놓고 있다.당정과 서울시 대책의 핵심은 건축법을 고쳐 주거 용도의 취약한 지하 주택 신규 건축을 전면불허하고, 전체 가구의 5% 수준인 20만 호의 기존 반지하·지하 주택은 10~20년의 유예기간을 주고 단계적으로 없애겠다는 것이다. 이주 세입자에게는 공공임대주택이나 바우처를 지원하고 임대주택 전환 검토도 약속했다.문제는 대책의 ‘실효성’과 ‘지속가능성’이다. 우선, 이들에게 똑같이 저렴한 비용으로 가능한 대체지를 마련해 줄 수 있느냐는 점이다. ‘주거상향 사업’으로 공공임대주택 입주 기회를 주고, 공공임대주택에 살지 않는 차상위계층 가구에 월세를 지원하는 주거 바우처 방안이 나왔지만 충분한 양의 공공임대주택이 공급되지 못하면 공염불이다. 당연히 대규모 예산도 수반된다.서울시는 그러나 10일 발표한 대책에서 예산 확보 및 집행 방안까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했다. 정부와 여당도 수도권 피해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 특별예산을 투입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자칫 지하와 반지하 주택을 없앤다는 명분으로 신축 주택만 늘려 전체 주택 가격을 끌어올리는 부작용만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사고가 나면 그때만 반짝하는 대책이 되풀이 될 수도 있다. 2010년 서울시에서 큰 물난리가 났을 때도 반지하 불허 대책이 있었다. 시 건의로 침수 우려 지역에 반지하 주택 신규 건축허가를 제한하는 법 개정이 이뤄졌다. 하지만 그 후로도 4만 호 이상의 반지하 주택이 건설되었다. 그 때 뿐이었다는 얘기다.그때도 시는 방재용 지하 터널 건설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양천지역에만 건설되고 강남지역은 배제되면서 이번 물난리를 겪어야 했다. 당시 서울시장이 오세훈 현 시장이었다. 이번 만큼은 임시방편의 단기적 대안이 아닌, 시민 안전과 주거 안정을 위한 근본 대책을 추진하겠다는 오 시장의 약속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서울시 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중앙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 촘촘한 전수 조사 결과를 토대로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실질적인 공공임대주택 확충 대책이 나와야 한다. 폭우가 그치더라도 중앙과 지방정부는 계속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만들고 예산 확보 방안을 함께 찾아야 할 것이다.

2022-08-11 14:01 사설 기자

[사설] 삼성 반도체 ‘made in America’ 괜찮은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반도체산업 육성법’을 공포했다. 중국 위협을 견제하고 자국 반도체 기술 및 산업 발전을 위해 2800억 달러의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겠다는 게 골자다. 반도체의 ‘made in America’를 위해 현지에 공장을 짓는 기업에는 25%의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하고 첨단 분야 연구 프로그램 등에도 2000억 달러를 추가 투자하겠다고 공언했다.이 법안으로 대만의 TSMC는 물론 현지 공장 증설을 추진 중인 삼성전자도 큰 지원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우호적 동맹 체제를 구축해 기술적 진화와 안정적 경영을 도모하게 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진전이다. 하지만 삼성을 비롯해 굴지의 국내기업들이 이렇게 계속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을 그대로 지켜보는 것이 편한 일은 아니다.마침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글로벌 1위 기업인 대만 TSMC에 비해 우리 삼성전자에 대한 인프라 지원이 매우 처진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법인세의 경우 국내 최고세율이 25%로 대만의 20%보다 월등히 높다. 22%로 낮추는 세법개정안이 추진되고 있지만 그마저도 대기업 지원 법안에 인색한 거대야당 탓에 국회 통과 여부가 미지수다.TSMC가 RD(연구개발) 투자에 15% 세액공제를 받는 반면 삼성전자는 RD투자 2%, 시설투자 1% 공제에 그쳤다. 그나마 이달 초부터 ‘반도체 특별법’이 시행되어 RD 비용과 시설투자 비용에 대한 세액공제율이 각각 2%에서 30∼40%, 1%에서 6%로 높아진다. 이런 열악한 지원 환경에서도 TSMC를 꾸준히 추격해 파운드리 2위로 올라섰다는 게 대단하다.‘글로벌 삼성전자’는 삼성의 기업가 정신과 보국(報國)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미국 수준의 인프라 지원이 더해졌다면 ‘초격차 기업’이 되어 미국 중국에도 휘둘리지 않았을 지 모른다. 낮은 생산성에도 고임금에 안주하며 툭하면 파업을 일삼고, 그 손실에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척박한 나라에서 기업들의 선택은 ‘해외’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남발되는 반 기업 입법, 일관성 없고 근거법령도 없는 행정규제와 복잡한 인허가 절차 등이 여전히 발목을 잡는다. 언제 삼성전자가 미국기업이 될 지 모를 일이다. 해외에서 벌어들인 세금의 80%를 국내에서 법인세로, 내고 엄청난 돈을 사회공헌에 쓰는데도 그 이익은 늘 ‘불로소득’으로 여기는 나라. 이제 막연한 애국심에 호소하며 이 땅에 남아 계속 투자해 달라고 할 염치도 없어질 날이 곧 올 지 모른다.

2022-08-10 14:02 사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