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우주항공청특별법 늦지 않게 ‘잘’ 만들어야

우주항공 분야의 정책과 연구개발, 산업육성을 총괄하는 우주항공청 출범이 가시권 안으로 들어온다. ‘우주항공청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이 오는 17일까지 입법예고되고 있다. 3경(京) 원 규모 이상이라는 천문학적인 우주시장을 노크하면서 우주경제 로드맵의 신개척지로 가는 관문이다. 그 길로 향하는 마스터키는 전문 인력 수급이다. 이 법에도 국내외 전문가 유입에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청 단위 중앙행정기관이면서 공직자윤리법에 따른 주식백지신탁을 면제했으나, 우주 쪽은 전문 인력 풀이 워낙 한정돼 있다. 최고의 전문가 유입은 최대 과제이며 난제가 될 것 같다. 사소한 듯 사소하지 않은 것은 또 있다. 대선 기간이나 100대 국정과제 등에서 항공우주청으로 불리다가 중간 과정을 거쳐 우주항공청으로 정식 개명한 데서는 우주산업에 대한 비중을 엿볼 수 있다. 물론 장차의 직접 경제효과와 의료, 환경, 교통, 산업 등으로 파생되는 우주기술 스핀오프(파급) 효과를 생각할 때 우주와 항공의 우열을 뜻하진 않아야 한다. 지금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기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우주산업은 연관된 산업까지 포함해 고속 성장이 잠재된 미래 먹거리 분야다. 그것이 우주항공청에 거는 기대치로 모인다.법적 근거 확보로 우주청이 하루라도 빨리 설립되면 좋다. 우주경제 개발의 강력한 펌프 역할을 다하는 건 더 중요하다. 그렇게 할 법이 필요하다. 행정조직 중심이 아닌 우주청은 전문 인재 수혈이 시급한 첨단 분야 공기관 행정 혁신의 기준이 된다는 의미도 있다. 청장, 차장을 제외한 보직 전체를 민간 전문가로 채운다고 가정해도 전문적이고 유연한 조직에 대한 우리 경험은 희소하다. 유연성이 강조된다고 해서 힘이 덜 실리는 기존 정부조직이 재연되는 느슨한 조직이 되면 안 된다. 특별법에서도 보완해야 하지만 하위법령으로 구체화할 내용도 가다듬을 게 많다.우주항공청특별법상의 몇 가지 원칙과 기능, 특례만으로 그러한 우주 컨트롤타워가 보장될는지는 의문이다. 그 조직을 2032년 달 착륙, 2035년 화성 궤도 탐사, 2045년 화성 착륙 계획에 투사해보면 대강의 답은 나올 것이다. 국가가 주도하는 올드 스페이스를 넘어 민간 기업 주도의 뉴 스페이스 시대다. 반도체 공장 짓는 데 8년이나 걸린 경직된 공직 시스템 갖고는 ‘불능’이다. 우주항공청 신설은 정부조직법 협의부터 정치권 합의가 불발된 상태다. 더불어민주당이 별도 법안 발의를 검토 중이라는 얘기까지 흘러나온다. 우주산업 앞에서 여야가 손잡지 않으면 연내 개청은 힘들 수도 있다.

2023-03-02 14:00 사설 기자

[사설] 주 52시간제 개편이 노동개혁 핵심이다

윤석열 정부가 개혁 과제 중 노동 분야를 첫 손에 꼽고 있다. 주요 국가들과의 노동시장 경쟁력 격차가 더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그 첫째 실마리는 근로시간 완화에 있다. 실제로 단축해보니 다수 근로자에게 ‘저녁이 있는 삶’이 보장되거나 보편화되는 건 아니었다. 대기업도 어렵지만 전체 기업 숫자의 99%이며 근로자 수 88%인 중소기업은 특히 노동시장 유연화를 입에 달고 사는 형편이 됐다. 기업 규모 면에서 소규모 기업은 아예 대응 여력조차 부족하다. 8시간 추가연장 근로제로 근근이 버티다가 일몰되면서 범법자로 내몰릴 처지다. 더 일하고 더 받고 싶은데 생계 위기를 겪는 근로자로서도 불합리한 제도이긴 마찬가지다. 업무 효율성과 개인의 자율성 역시 고려할 대상이다. 외국투자기업마저 근로시간 규제 완화를 노동 분야의 개선 과제로 꼽을 정도다. 글로벌 스탠더드와 산업환경 변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시장 환경에 안 맞는 제도다. 근로시간 제도 개편은 노사관계의 안전성 등과 함께 노동시장 개혁의 주를 이룬다. 노동 수요에 따른 유연성은 한국 경제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다.임금과 함께 노동시간은 노동의 근간이다. 획일적으로 다뤄선 안 된다. 정부는 한 주 최대 근로시간을 69시간과 64시간 중 선택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외형적으론 2018년 7월부터 주당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기 전과 비슷하다. 69시간 장시간 근무 시 근로자 건강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11시간 연속 휴식 등의 전제를 붙이면 된다. 1주일에 법정노동시간 40시간, 연장근로시간 12시간 등 주 단위로 초과 근로를 관리하는 경직성 자체가 잘못이다. 디지털이 중심이 된 현대사회에서 1953년 공장법 제정 당시의 틀에서 못 벗어난 근로시간 제도는 어울리지 않는다. 업계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되 주 단위 연장근로 관리를 월·분기·반기·1년으로 확대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연장근로 총량관리가 보다 합리적이다.새 노동정책은 1주 단위인 연장근로 산정 기준을 바꾸는 데서 시작하는 게 타당하다. 시대적 흐름에 대한 유연한 대처는 결국 기업 생존율을 높이는 일이다. 근로자나 직종에 따라 근로시간을 자유 선택하는 폭을 넓혀야 노동시장의 양극화 해소에 도움이 된다. 주 52시간이라는 제도에 갇힌 일방적·경직적 규제로 현장의 수요를 소화할 수 없다. 재계의 입장, 그리고 3월 중 소상공인 간담회, 중소기업 대상 종합 토론회 등에서 나온 의견을 기반으로 기업 현실을 제대로 살피는 전향적인 제도 개편을 기대해본다.

2023-03-01 15:09 사설 기자

[사설] IT 공급망 위험 대응, ‘차이나 플러스’ 괜찮다

중국의 정찰용 풍선이 북미 영공에서 격추된 사건이 공급망 변수로 부풀어 오를 조짐이다. 공급망 위험에 거의 맨몸으로 노출된 한국 IT 기업들에게 미국의 맞춤형 수출 통제는 진퇴양난을 예고한다. 컴퓨터, 반도체, 전기차 부품을 비롯한 전기 및 광학기기 부문에서 중간재로 사용되는 비중, 즉 전방참여율이 높을수록 신경이 곤두서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싱크탱크인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가 본 그대로다. 좋게 말하면 글로벌 공급망에 깊이 편입돼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지경학적 국면에서 공급망 다변화나 공급망 재편을 해석한 대한상의 SGI의 분석에는 공감이 가는 대목이 많다. 장기적으로 두 나라를 중심으로 이원화된다는 부분이 특히 그렇다. 대중 무역적자 등 갖가지 이유에서 다변화가 화두인 우리에게 열린 시각을 제공한다. 수출구조 변화는 첨단 IT산업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흔히 다변화라면 탈중국으로 치환하지만 좀 섣부른 일면도 있다.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을 마이너스로 묶지 않는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신시장을 발굴하는 차이나 플러스, 차이나 앤드가 훨씬 적절해 보인다. 최적 해법 앞에서 뒷걸음질은 없다.당장 최대 전략산업인 IT 수출 부진으로 성장세 둔화가 걱정되는 우리다. 베트남을 필두로 아세안, 포스트 차이나로 일컫는 인도, 중동 등으로 경제 영토가 뻗어나가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중시할 상대국은 중국이다. 영구적 위기(Permacrisis) 경고까지 나오는데 중국에 관심을 줄이는 것은 좋은 다변화라 할 수 없다. 중국을 경로로 제3국으로 수출되는 중국 중심의 국내 생산제품 공급망은 결코 가벼움의 대상이 아니다. 중국의 자체 생산 확대 정책에는 우리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최고의 대응이다. 중요한 교역 상대국인 중국이 한국산 수입을 줄이고 수입선을 다변화한 점을 오히려 놓쳐서는 안 된다.수출 다변화, 미래산업의 성장 동력 확보는 수출국가 숙명처럼 늘 나란히 취할 전략이다. IT 산업(3.0)을 이을 미래산업(4.0)에 집중하는 신성장 4.0 전략도 그 하나다. 이럴 때 국회가 팔짱 끼는 건 신산업 딴죽 걸기와 다르지 않다. 이제 이재명 이슈는 사법적 판단에 맡기고, 입법부는 IT 등 전략산업 지원 입법, 경제 체질 개선과 체력 강화 입법 전략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중국 시장 수출 공략에 더해 플러스(plus)와 앤드(and) 전략으로 목전의 공급망 위기를 해소하는 데 여야가 없다. G2 패권 경쟁에 전전긍긍하는 기업을 위해 한·미 정부가 ‘건설적으로’ 결론 내줘야 할 것도 물론 있다.

2023-02-27 14:08 사설 기자

[사설] KT 신임 대표에 정치권 ‘낙하산’ 안 된다

구현모 KT 대표가 연임 도전을 포기하면서 신임 대표 하마평이 무성하다. 남은 후보군 33명 중 적임자가 누구인가보다 안타깝게도 관심사는 따로 있다. 정치권 인물이 다수 포진해 있는 지원자 면면에 세간이 눈총이 따갑다. 8명 내외로 압축하는 최종 후보자(숏리스트) 명단까지 지켜볼 일이지만 지금 그대로 낙하산 인사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안 그래도 구 대표가 연임 의지를 밝히다가 돌연 공모 후보자에서 사퇴했다. 정치권 외압 논란이 무성히 일고 있는 마당이다. 구 대표가 백기를 든 지 하루 만에 누가 유력하다는 물망에 오르는 것 자체에서 그러한 KT CEO 수난사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시가총액 10조원을 자랑하는 재계 순위 12위의 거대 민간통신회사에 비전문성 색깔이 짙은 낙하산 인사 낙점은 퇴영적인 구습이다. 5G 시대 혁신을 넘어 급변하는 ICT(정보통신기술) 산업을 이끌 차기 대표의 조건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외부인사 중에는 과거 KT 재임 시절 IPTV 등 미래성장 산업을 이끈 인물도 있고 자신의 입으로 정치권 인사가 KT 대표로 영입되면 안 된다고 외치던 올드보이 출신도 있다. ICT 업계의 발전 속도가 빠르다는 것쯤은 지원 후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꼭 통신업계에서 잔뼈가 굵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더라도 기업 경영능력, 특히 IT 통신 경영 경험은 검증돼야 한다. 신임 대표 후보 재공모가 시작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든 데서 잔존하는 공기업의 깊은 뿌리를 실감하게 한다. 전문성 측면에서 약점인 정치권 인사들이 KT의 지속성장을 이끌 적임자로 보이지는 않는다. 사업을 연속성 있게 발전시키고 글로벌로 확장할 경영 전문성 부재는 실격이다.정치권 출신 인사의 강점으로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통신산업 특성을 내세울지 모른다. 그러한 사고 자체가 챗GPT가 시대의 총아로 떠오르는 시대에 걸맞지 않는다. 정치적 외압은 기업 경쟁력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돌아보면 2002년 민영화된 KT는 CEO 선임 때면 낙하산 논란에 휘말리지 않은 예가 없었다. 과거의 청와대, 지금의 대통령실에서 낙점한 지원자가 되는 고리를 이번에 끊어내야 한다. KT는 통신업, 인공지능, 클라우드, 메타버스, 콘텐츠 등으로 사업 영역이 넓게 파생돼 있다. 품앗이하듯 비전문성 낙하산 인사를 내리꽂는 자리가 아니다. 다른 무엇보다 ICT 산업의 장래를 최우선시할 때다. 문외한인 정치권 낙하산 인사는 28일 발표할 숏리스트에서 빠지는 게 순리인 이유다. 외풍의 낙하산이 아닌 전문성을 갖춘 인사 선임을 기다리겠다.

2023-02-26 14:12 사설 기자

[사설] 경기가 묶은 기준금리 … 물가 압박 더 세졌다

약 1년 5개월 사이에 총 3.00%포인트(p) 인상 행진을 보이던 기준금리가 3.50%에서 멈췄다. 한국은행이 23일 올해 두 번째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조정 없이 동결했다. 국내 기준금리 인상을 압박하는 요인이 많은데도 현 수준을 유지한 데 주목해야 한다. 경기 침체에 초점을 맞췄다는 뜻이다. 물가안정과 경기불안이라는 양자택일 딜레마에서 무게중심은 일단 정부가 최근 공식 인정한 경기 둔화 쪽에 더 맞춰졌다. 5%대의 고물가 장기화는 막중한 부담이지만 기준금리를 연속 인상할 경우 위중한 경기 침체가 급격히 부풀려질 파급성을 위험시한 것이다. 그렇다고 연말 5%와 올 1월 5.2% 등으로 꼬리가 길어진 고물가의 억제를 경시해도 된다는 신호는 절대 아니다. 인플레이션 방어를 위해 소폭인 베이비스텝(0.25%포인트 인상) 정도는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소수의견을 누르고 금리는 숨고르기를 했지만 정책적 지향점은 똑같이 중시해야 함을 말해준다.금리 동결로 한·미 기준금리 격차는 1.25%로 유지된 점에도 양면성이 있다. 이보다 벌어지면 국내 경제에 악영향을 주게 된다. 원화 약세와 외국 자본 유출, 수입물가 상승 등 걱정도 커졌다. 정책금리 4.5~4.75%인 미국은 한동안 지속적 고금리 행진을 계속할 것이다. 비둘기적 신호를 통해 우리가 인상 사이클 종료가 아니라는 흐름을 내비치는 것만으로는 통하지 않는다. 우리 또한 금리 인상 기조를 당분간 지속할 처지다. 어느 쪽이든 충격을 흡수하긴 쉽지 않다. 지금 같아선 올해 1분기도 이전 분기(-0.4%)에 이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역성장이 관측된다. 미국 기준금리가 최고 5.5%를 넘어 6월 6% 고점이 될 최악까지 상정해 두고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경기와 물가가 충돌할 땐 물가를 우선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수출 감소와 무역수지 적자, 소비 회복세 약화는 심각하다. 그걸 다 감안하면서 경기를 우려한 결과물이 금리 동결이다. 침체기에서 못 헤어나는 부동산 시장도 외면할 수 없다. 긴축적인 수준까지 금리가 올라 한계상황에 몰린 경제주체들은 그대로 있어도 힘겹다. 3월 이후까지 물가가 5%대에서 내려오지 않는다면 금리를 인상하자는 반론이 이내 다수설이 될 수 있다. 경기에 무게를 둔 통화정책으로 물가 안정은 더 급한 과제가 됐다. 물가 압박 속에서의 금리 동결이라는 통화정책 운용에 정부가 손떼지 말고 인플레이션과의 싸움 등에서 보다 정교하게 움직여야 한다. 8번만의 금리 동결 앞에서 정책 대응 실패는 허용되지 않는 ‘옵션’이다.

2023-02-23 14:04 사설 기자

[사설] 불법이 오죽 심했으면 ‘건폭’과의 전쟁 나왔겠나

윤석열 대통령이 노조 부패를 ‘척결 대상 3대 부패’로 지목한 것은 과장이 아니었다. 전국 건설현장에서 자행되는 각종 노조 불법행위는 그 전형이라 할 만하다. 현장의 갈취·협박 등 불법행위에는 ‘요지경’이라는 표현이 온정적일 정도다. 위법적 행태로 잇속을 챙기고 수틀리면 건설사들에 보복행위를 일삼는 비정상 행각을 왜 여태 방치했는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알려진 비상식적인 실력행사 사례만으로도 건설 현장 폭력을 줄여 ‘건폭’ 신조어를 대통령실에서 만든 것이 과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조폭(조직폭력배)을 연상케 하는 것은 이 축약된 말보다 오히려 급행료 명목의 월례비 등 ‘삥 뜯기’와 똑같은 ‘뒷돈’ 요구 등 행동양식에 있다. 작업을 멈춰 공사를 방해하고 보복을 무기로 하도급사의 목숨줄을 휘어잡는 수법이 실제로 조폭을 상당히 닮았다. 그걸로 공사에 지장이 생기지 않았다고 항변하려면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건설현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거나 원청 건설사에 찾아가 시위를 벌인 행위, 현장의 사소한 안전 민원을 관련 기관에 집중 제기해 공사에 차질을 빚게 하는 등의 행태부터 설명해야 할 것이다. 탈법을 넘어 무법에 가까운 관행은 이미 관행이 아니다.불법행위를 조사하고 제재를 가하는 것은 정당한 법 집행이며 정부의 존재 이유다. 상납금 성격인 월례비, 노조 전임비, 채용 비리 등을 낳게 한 구조적 문제는 노조의 횡포를 막음으로써 해결된다.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 검찰, 경찰의 강력한 해결 의지로 공정(工程)의 절반을 한다 할 만큼 비중이 큰 타워크레인을 비롯해 건설노조가 장악한 현장을 온전하게 되돌려놓아야 할 것이다. 현장을 마비시키는 준법투쟁의 불씨가 되는 불합리한 안전 수칙도 이번 기회에 손봐야 한다. 울며 겨자 먹기 신세인 시공사가 현장 불법 근절에 역할을 할 여건도 정부가 만들어줄 몫이다.선의의 노조 전체를 파렴치범으로 몰아가는 건 잘못이다. 그러나 월례비와 전임비 요구, 장비 사용이나 채용 강요, 운송 거부 등 노조의 탈을 쓴 폐해는 악의 편이다. ‘자본 착취’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건설노조의 갈취·폭력 횡포를 실상 그대로 보고 척결해야 할 것이다. 노조 탄압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조직적 불법행위를 시스템적으로 막을 토대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관계부처 합동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지만 지나고 보니 ‘쇼’에 지나지 않았다. 부처 총동원령이 내려진 윤석열 정부에서는 일시적이고 겉만 요란한 ‘오버액션’이 되지 않길 기대한다.

2023-02-22 14:26 사설 기자

[사설]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가 노동개혁 첫발이다

불투명한 노동조합 회계에 정부가 엄중 대응 기조를 강화하고 나섰다. 법령 의무를 준수하지 않은 노동단체는 지원에서 배제하고 부정이 있으면 환수한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회계 자료 미제출 노조에 대해 정부 지원금 중단과 세액 공제 원점 재검토라는 초강수 정부 카드를 내보였다. 방해 행위에는 현장 조사를 하고 과태료를 추가로 부과하겠다고도 했다. 엄포가 아니라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이다. 노동 개혁이나 노사법치를 들먹이기 전에 회계 투명성 강화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노조의 ‘역린’을 건드린 것처럼 보이는 정부 지원 중단 및 지원금 환수, 조합비 세액 공제 재검토 등은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불이익 성격이 있다. 그러나 본질은 매년 수백억원대 지원금을 받으면서 불투명 회계로 일관하는 태도에 경고장을 날린 것이다. 최소한의 의무인 정부의 회계자료 제출 요구에 불응해 생긴 일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최근 5년간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1521억원을 지원받았다면 노조 공격이라고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노조 재정을 투명하게 관리하고 공개하자는 것이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훼손이 아니다. 노조법상 의무 사항을 이행하고 ‘부패 노조’가 아님을 보여주고 나서 ‘자주성 훼손’을 말해도 늦지 않다.노동탄압이라고 외치려면 노조 또한 그동안 정상적인 노사관계 구축에 힘쓰는 충실한 협의체였는지 먼저 자성해볼 필요가 있다. 채용 강요와 월례비 등 건설노조와 유사 노조의 관행처럼 굳어진 악습과 불법행위는 부끄러움의 한 단면이다. 사측에 대해 상대적 열위에 있다면 불가능한 일들이다. 회계 투명성에 대한 반발은 노동시장의 경직적 구조 속에서 파업 등을 수단으로 지속해온 지대추구자(rent-seekers) 노릇을 수행하겠다는 것밖에 안 된다. 노조 불법에도 무관용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회계 결산과 운영 상황이 떳떳하면 그대로 보고하고 공개하면 그만 아닌가.노조 회계에 칼을 뺀 정부도 유념할 것이 있다. 이념 공세에 치중하거나 노조 주장처럼 실제로 노조 탄압에 행정권력 남용이 되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다.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 노조를 바로잡는 것이 노동 개혁의 시작점이면 좋겠다. 정부가 돈줄 쥐고 노조의 힘 빼는 것이 아닌 우리 경제를 성장시킬 노동개혁의 첫 단추를 삼아 달라는 뜻이다. 깜깜이 회계 장부에는 기업에만 투명성을 요구하면서 자기 통제에는 인색한 기득권 강성 노조의 모습이 투영된다. 과도한 기대일지는 모르나 정부와 경영계, 노동계가 모두 노조 회계 공시 정책에 공감하고 지지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2023-02-21 14:17 사설 기자

[사설] 직무대행 체제로 전경련 위상 회복 가능하겠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직무대행에 김병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이 내정됐다. 오는 23일 정기총회 선임 절차를 남겨두고 있지만 내정 자체가 던지는 파장은 작지 않다. 반년간 전경련 혁신을 주도할 적임자인지 여부는 오히려 두 번째다. 12년간 조직을 이끈 허창수 회장 사의 표명 후 차기 후보군이 없다는 것은 심각하다. ‘재계의 총리’ 별호까지 듣던 전경련(회장)의 위상 회복을 위한 과도기가 길어지는 결과가 되기도 한다. 위기의 6개월 연장이 기약 없는 기다림이 아니길 바란다. 차기 리더 인선 대신에 김병준 체제로 간다는 건 한국 재계 대표에서 사실상 해체 수준으로 급락한 전경련의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음을 예고한다. 새 출범에 즈음해 전경련이 반짝 간사 역할을 수행한 듯 보였으나 직전 정부의 철저한 패싱과 대비됐을 뿐이다. 누가 수장이 되느냐는 기업과 국민으로부터 잃어버린 신뢰를 되돌리는 열쇠와 같았다. 무용론까지 일었던 전경련은 정경유착과 비자금, 국정농단 사건 등 굴곡진 역사의 부산물들을 스스로 걷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재계 대표 인물이 나서지 않는 원인은 다 아는 그대로다. 추락한 한국 재계 맏형 역할과 무게감 실추를 꼽지 않을 수 없다.권한대행 체제 선택으로 유야무야된 것처럼 비치는 위상 복구는 역시 전경련 내부에서 스스로 찾는 것이 순리다. 김병준 개인 역량과는 다른 차원이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 캠프에 몸담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장을 지낸 김 회장의 이력이 도움이 될지와는 전연 별개다. 회장 구인난이 전격적 쇄신과 재정립 작업의 지난함을 가리키고 있어서다. 이 국면이 자칫 통폐합이냐 해체냐를 가름하는 존폐 위기의 시작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정치인 출신 대행의 임시 역할은 경제계 대표로서의 막강 영향력이 유예되는 것과 어떤 의미로 다르지 않다. 전경련이 국민에게 사랑받는 조직으로 부활하려면 새 선장 찾기에서 비롯돼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불가피성은 이해하나 직무대행 체제는 그래서 아쉬움을 남긴다. 김병준 체제 부상으로 차기 회장 역할은 더 중요해졌다. 화려했던 영광과 위상으로 다가선다는 상징성 그 이상이다. 무게감 있는 기존 후보군이든 참신하고 젊은 적임자든 신임 회장 선출은 고비가 될 것이다. 전경련이 후임자 물색 난항 국면을 슬기롭게 타고 넘지 못하면 이제 내리막길도 없다. 방법론적으론 4대 그룹이 복귀해 쇄신을 주도하는 형식이 치트키처럼 비치기도 한다. 결자해지의 첫 단추가 될 대표 후보군의 ‘컴백’이 최고 선택지라고 본다. 대행 체제 앞의 전경련은 다시 갈림길 앞에 섰다.

2023-02-20 14:05 사설 기자

[사설] ‘경기 둔화’ 안 보이고 ‘이재명 방탄’만 보이는 국회

기획재정부의 그린북(최근 경제동향) 2월호는 경기 둔화가 시작됐음을 공식화하고 있다. 경고나 우려 예상이 현실로 화한 복합 경제 위기다. 교역 환경은 악화되고 기업 심리는 잔뜩 움츠러들었는데 민감한 사안만 두두룩하다. 정작 기업이 기대고 바라볼 곳은 없다. 경제 활력 불어넣기에 올인해야 할 정치권은 한심하게도 혼란의 진폭만 키우고 있다. 제1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한국 정치뿐 아니라 경제를 블랙홀로 휘몰아 넣는다. 국가 경제는 안중에 없다는 증좌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럴 수 없다. 주요 경제·민생입법 및 정책 추진은 역주행 그 모습이다. 국가첨단전략기술 투자의 세액 공제에 관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처럼 한시가 바쁜 법률은 거대 야당 저지로 상임위원회 앞에 걸려 넘어져 있다. 노조 파업의 면책 범위를 넓히는 일명 노란봉투법 같은 반경제 법안은 강행 처리 문턱에 다다랐다. 정권이 교체돼도 질주하는 반기업 입법 폭주 기관차를 세워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우선할 일은 ‘우려’ 표현조차 삭제된 경제 지키기다. 당대표 지키기가 아니다. 그게 당도 사는 길이다.우리 경제는 평가 근거의 수위가 나빠져 있다. 실제로 그렇다. 수출 활성화, 투자 촉진, 내수 진작 등 종합 처방을 뒷받침해주는 것이 이럴 때의 국회 책무다. 달리 글로벌 스탠다드가 아니다. 미국은 자국 내 반도체 설비투자 기업 25%의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하고 대만은 세액공제 비율을 25%로 높이는 산업혁신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무엇이 특혜이고 지원인지조차 분간하지 못하는 우리가 표준이 아니다. 두 달 전 노웅래 민주당 의원 체포동의안 때문에 일몰법 등을 처리하지 못한 전례를 벌써 잊었나. 이재명 민주당 대표 방탄 노릇보다 사활을 걸 쪽은 주요 경제 입법 활동이다. 감소가 ‘부진’이 되고 부진이 ‘위축’이 된 수출과 기업 심리를 돌보는 일이다.경제 성장의 감속(slowdown)을 지칭하는 ‘둔화’의 한복판에서 우리가 선택할 명제는 ‘함께 죽느냐’ 아닌 ‘같이 사느냐’여야 한다. 사용자성 확대로 하청업체 노조까지 파업이 가능하고 기업 대항권인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은 틀어막는 ‘노조 천국, 기업 지옥’의 청개구리 법안을 철회해야 하는 이유다. 국민 고통에 최소한의 공감이라도 한다면 야당 대표는 영장실질심사로 당과 지지자 부담을 덜면서 진실과 마주하면 그만이다. 이재명 지키기는 법의 판단에 맡기고 가물거리는 내수와 수출을 전방위적으로 지켜야 한다. 불황(depression)의 진짜 초입에 서 있는데 그게 진정 안 보이나.

2023-02-19 14:09 사설 기자

[사설] 상반기 공공요금 동결 기조로 물가 어떻게 잡나

1월분 공공요금 고지서를 받아들고 나면 공공요금 상반기 동결에 일단 수긍하게 된다. 난방비 인상 하나만 봐도 체감의 진폭은 크다. 폭탄급, 핵폭탄급이란 표현이 과하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이 챙긴 중앙 공공요금 억제 기조에 민생 안정의 한 축인 지방정부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다. 흔들리는 민심과 국민 고충을 살핀 만큼 물가 잡기가 우선되는 과제다. 다만 그것은 한시적이다. 중앙정부가 관리하는 도로·철도·우편이나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은 시간을 잠시 번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에너지 요금의 단계적 인상 기조가 뒤틀린 건 둘째로 하고라도 말이다. 눌려 있던 인상 폭과 속도가 한꺼번에 부담으로 돌아오지 않게 해야 하는 문제가 또 생겼다. 물가 안정의 키를 쥔 가스·전기요금은 말이 동결이지 어디까지나 인상 보류다. 새로운 폭탄의 예고편이 되지 않아야 한다. 에너지 가격의 고공행진 속 공공요금 안정은 공기업의 천문학적 손실의 가중을 의미하기도 한다. 에너지 공급 지속성 확보라든지 한전과 가스공사 경영 정상화 등의 난제를 더 풀기 힘들게 만든 건 사실이다.물가는 게다가 너무 올라 있다. 눈에 띄는 조절이 아니면 물가 상황과 여론 악화 반전에 실익이 적다. 이 점도 이번 대책의 한계다.2월에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대 초반을 찍고 있다. 인플레이션의 꼬리가 길어질 조짐이다. 앞으로의 물가 오름세 역시 가볍게 보지 않아야 한다. 미국 같은 물가 둔화(디스인플레이션) 과정은 언제 시작될지 모른다. 공공요금 동결 기조가 먹혀 물가 안정 기조가 확고해져야 경기 쪽으로 전환하는 데 이마저 시기상조다. 흐름에 반해 억눌린 요금이 한꺼번에 터지면 더 곤란하다. 난방비 난맥상의 요인을 추가로 제공해선 안 된다. 공공기관 구조조정이나 정부 재정 지원으로 눈앞의 물가를 가까스로 잡았다 치자. 그래도 요금 인상 요인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3대 민생요금 억제의 선택지는 그래서 고육책이다. 자칫 잘못하면 유예된 공공요금 인상이 줄줄이 이어질 땐 미궁에 빠진다. 추후 요금 인상은 애초 계획 그대로 갈 공산이 있다. 2025년까지 이어질 수 있는 에너지 위기는 또한 어찌할 텐가. 한국전력·가스공사 누적된 손실 해소를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도 걱정거리다. 무엇보다 인상 방침 자체는 살아 있다.임기 동안 인기 없는 일은 안 한다는 전형적인 ‘님트(NIMT : Not In My Term)’ 의 산물인 이전 정부의 폭탄이 터진 데서 교훈은 얻었다. 상반기 중앙 및 지방 공공요금 조정의 대가와 후과(後果)를 조심해야 한다.

2023-02-16 14:04 사설 기자

[사설] 반도체 투자 축소 없다는 삼성전자 ‘안간힘’ 보라

반도체 혹한기를 건너는 삼성전자가 투자금 확보를 위해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원을 차입했다. 반도체 투자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호실적을 보인 자회사에서 현금을 빌린 것이다. 투자를 지속한다는 의지이지만 반도체 보릿고개라는 뜻도 된다. 지난해 12월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의 ‘개정안’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에서 고꾸라졌다. 국회 입법을 위한 문턱을 못 넘은 직후에 듣는 뉴스다. 대비효과가 크게 다가온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반도체 투자 재원의 일시 부족이 아닌 반도체 업계의 전반적 활력의 필요성이다. 삼성, SK하이닉스를 위시한 반도체 관련 기업에 현 단계에서 매우 유용한 수단이 세제 지원이다. 삼성전자는 영업이익 적자를 겨우 면하고서도 투자하겠다는데 국가전략기술을 바라보는 국회의 태도는 너무 안일하다. 법안 상정조차 합의 안 될 때 알아봤지만 이럴 줄은 몰랐다. 미래 수요에 대한 기술 리더십 강화와 직결된 것이 반도체 투자 세액공제 상향 법안인데 말이다.설비투자 세액 공제는 반도체 미래 경쟁력을 높이는 실질적·실효적인 방안이다. 지난번의 찔끔 상향 때 “차라리 부결시켜 달라”는 목소리까지 산업계 등에서 불거진 이유가 있다. 각국의 초격차 경쟁을 봤고 반도체 생태계 위축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회는 대기업 특혜 주장으로 모자라 이익환류 담보 주장을 이제 덧붙인다. 반도체 등 국가전략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는 발등의 불이다. 일부 의원이 제기하는 ‘선순환’은 여기서 파생된다. 조만간 추가로 조세소위를 연다는 불씨를 지금 곧 살려내야 할 것이다. 여야 합의까지 넘어야 할 산은 조세소위 이후 어쩌면 더 늘어났을 수도 있다.다른 나라를 또 보자. 모든 기계·장비가 투자로 인정되는 대만은 RD 투자에 대한 25% 세액공제 법안을 통과시켰다. 토지, 건물, 차량·운반구, 선박·항공기, 공기구 등이 쏙 빠진 국내의 반도체 기업은 똑같이 투자해도 감면액이 적다. 반도체 한파를 참고 견딘 삼성전자는 미래를 위한 투자 축소를 하지 않으려 이렇게 안간힘이다. SK하이닉스는 투자를 전년 대비 50% 감축한다고 하고 있다. 모두 투자를 늘릴 여력이 부족한 것이다. 투자 증가분에 대한 추가 공제가 절실하다.국가전략기술 세액공제 확대로 반도체 우위를 지키는 일 이상의 명확한 투자효과, 정책효과가 무엇인가. 반도체 산업 육성에 국가 역량을 총동원하는 세계 조류가 안 보이나. 정부 지원 격차가 초격차가 되지 않으려면 조특법 개정안을 어서 재논의해야 한다.

2023-02-15 14:05 사설 기자

[사설] 한시가 급한 조특법 개정안, 2월 안에 입법 끝내길

반도체 설비투자에 대한 추가 세제지원안(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한국 반도체의 미래가 없어졌다고 한탄할 만큼 인색했던 반도체 투자 세액 공제율을 손보기 위해서다. 대기업·중견기업에 대해 7% 포인트(p)를 더해 15%까지 감면한다는 게 골자다.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공제율을 상향한다. 여야 간 공방이 격화하는 와중에서 지난 연말처럼 하세월로 질질 끌어서는 안 된다. 다른 건 놔두고라도 대표적인 장치 산업인 반도체가 불황 국면이다. 글로벌 반도체 경쟁에서 생존하려면 주요 경쟁국 정부의 대규모 보조금과 세액공제 등 지원 공세를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국가적 뒷받침이 화급한 반도체 산업 여건을 고려하면 지난해 연말 입법화한 8% 비율의 ‘찔끔 지원’이 이렇게 금방 수정되는 걸 다행스럽게 여겨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한마디 지시에 태도를 바꾼 변덕도 용서되는 시점이다. 반도체 업계의 현실을 안다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나 조세소위원회의 줄다리기는 더 이상 필요치 않다.당장 1분기인 지금 글로벌 IT 수요 위축으로 반도체 부진이 진행되고 있다. 반도체 지원에 총력을 기울여도 모자란다. 선행적인 생산시설 투자를 위한 세제개편부터 깔끔히 마무리해야 한다. ‘건전 재정’ 등 어떤 구실로도 15%, 25% 세액공제율이 후퇴해서는 안 된다. 야당 반대로 통과 여부가 불투명하면 투자세액 공제 비율이 또다시 줄어들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그러나 이 사안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등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연쇄적인 생태계 강화로 직결된다. 대기업 특혜법 시각을 버리지 않는 민주당 등 야당의 스탠스 전환을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반도체 기업이 대기업 아닌 곳이 어디인가. 왜 세수를 채울 방법을 따져보기 전에 세제 지원을 하겠나. 반도체 기업 투자 활성화의 거국적 중요성 때문 아닌가. 남들이 투자에 주춤할 때 과감히 투자해 성공한 기업만이 살아남았다. 그런데 이번에 정부는 윤 대통령 지시 20일 지나서야 움직였다. 기획재정부가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기재위에 제출한 것은 지난달 19일이다. 그로부터 다시 한 달이 다가오고 있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등 일정을 고려하면 시간이 또 없다. 역대급 위기를 맞은 반도체는 국가안보산업이다. 조특법을 최우선으로 처리하는 것은 중장기적 투자계획 수립 등 반도체 산업을 하기에 좋은 여건을 만드는 일이다. K칩스법(반도체산업강화법) 핵심인 조특법의 2월 안 입법 추진이 급선무다.

2023-02-14 14:02 사설 기자

[사설] 노조법 개정 중단 요구가 더 정당한 이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을 놓고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15일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와 21일 전체회의에서 처리한다는 그림이 그려지면서다. 노동자와 사용자의 정의를 규정하는 노조법 2조와 손해배상 폭탄을 방지하는 3조가 그 대상이다. 논란이 된 지점은 크게 노동자 권리 보장과 노조 불법행위 조장 , 그리고 조속한 입법과 입법 중단 사이에 있다. 노란봉투법이라 불리는 이 법은 처음부터 접점을 찾기 어려운 구조였다. 노조의 불법파업으로 발생한 손실에 사측의 손해배상을 제한하는 내용을 보자. 적법의 미명으로 수용하긴 쉽지 않다. 파업 과정에서 생산 기타 주요 업무와 연관된 회사 주요 시설을 점거해 막대한 손실을 끼쳐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길이 막힌다 치자. 그건 이미 합법이 아니다. 폭력이나 파괴 행위가 수반되고 안 되고를 떠나 경제 단체들이 개정안 입법 강행 철회 목청을 키울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 법의 쟁점은 특정 단체의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이 면제되는 법안이 옳은지 여부여야 한다.노동자의 권리는 보장돼야 하고 법이 또한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노조 불법행위를 조장하거나 보장한다면 노동자 권리 찾기와 질적으로 다르다. 근로계약 관계가 없는 도급업체 사용자와 하도급업체 근로자 간 단체교섭까지 강제하는 사안도 그러하다. 법원의 원청 사업자의 ‘사업자성’ 판결이 유일무이한 기준일 수는 없다. 정당성을 넘어선 불법 파업이나 해사 행위까지 보호받는 문제를 지적한 것이지 정당한 노조활동을 억압하라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그릇된 인식과 관행까지 노동자 권익의 영역은 아니다. 헌법이든 민법이든 법에 따라 책임지는 게 법치다. 노란봉투법이 민주노총의 민원 법안이 되지 않아야 한다. 불법의 합법화를 법으로 정하지 않는 게 옳다.불법파업조장법이란 걱정도 있다. 법치주의가 훼손되고 노사관계 불안을 가중시킬 이 법의 미래다. 야당은 민생개혁과제로 생각하겠지만 노조만 지켜주는 법이란 반대 논리가 더 설득력이 있다. 강행 통과를 위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의를 건너뛴 채 본회의 직회부(패스트트랙) 카드를 쓰지 않아야 할 것이다. 169석 거대의석에 노동 정체성을 강화 상품으로 삼는 다른 야당의 협력까지 앞세워 반시장적·반헌법적 입법 폭주를 자행하지 않아야 한다. 법의 기본원리를 훼손하면서까지 노조법 2·3조 개정안의 입법을 강행하면 실제로 ‘돌이킬 수 없는 파탄’에 이를 수 있다. 재계 호소에 아랑곳없이 입법으로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고 본다면 오만이거나 착각이다.

2023-02-13 13:12 사설 기자

[사설] 고용시장 한기 녹일 정책 있기나 한가

취업률이 양호한 수치를 보이는가 했더니 어느새 고용시장에 활기 대신 한기가 감돌고 있다. 뚜렷한 내리막길이다. 취업자 증가폭이 6월 이상 계속 하향세다. 1년여 전(2022년 1월) 113만5000명이던 전년동월대비 취업자 증가폭이 같은 해 12월 50만9000명까지 내려온 통계가 이를 설명해준다. 고용시장 위축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이렇게 단정할 수 있는 근거는 고용 회복 발목을 잡을 내외생적 변수가 또렷하기 때문이다. 지난해와 같은 이례적 호조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일상 회복, 방역·돌봄 수요 증가, 배달·IT 일자리 확대, 수출 호황에 따른 기저효과를 모두 배제하고 봐도 그렇다. 인플레이션과 글로벌 경기 침체 내지 경기 둔화가 뒤덮고 있고 그 골은 깊어질 전망이다. 정부와 KDI, 한국은행은 취업자 증가 폭을 8만~10만명으로 잡는데 그친다. 전망처럼 지난해 8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질 경우에 대비해 노동 취약계층의 고용을 상대적으로 더 집중 관리해야 한다. 코로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특수가 소멸할 올 상반기의 고용 둔화 대응 방안을 지금 찾지 않으면 안 된다.엔데믹 효과로 지난해 연간 취업자 수가 82만가량 급증한 호시절이 싹 사라진 올해는 공공의 역할에 기대기도 어렵게 됐다. 무엇보다 향후 3년간 공공기관 정원은 1만2000명 줄어든다. 지난 5년간 그 정원을 11만5000명이나 늘린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공공에서 만든 단기 일자리도 부담을 주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고 경기침체가 풀려 온기가 돌기만을 가만히 앉아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방자치단체도 공무원 채용을 줄인다. 이도저도 제외하면 민간 중심의 일자리 확대만 남는다. 그런데 주요 기업들까지 구조조정에 들어가 채용 규모를 축소한다. 민간 채용 경쟁이 심화되고 고용시장 침체를 가속화할 환경이다. 답은 더 좁혀진다. 정부가 민간 일자리 창출을 적극 지원하는 것이 유효한 해법으로 남는다.하반기 들어 경제가 회복세를 보여도 경기에 후행하는 고용의 특성상 월별 증가 폭은 여의치 않을 수 있다. 고용시장이 꽁꽁 얼어붙지 않게 민간의 고용 창출 여건을 개선하는 것은 정부 몫이다. 고용유발계수가 큰 서비스 부문 규제 완화와 비대면 의료 등 서비스 분야 혁신도 양질의 일자리와 무관하지 않다.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이 필요하면서도 일자리의 양 못지않게 질이 악화되는 딜레마 또한 정부가 방치하지 않아야 한다. 우선 일하라는 식의 고용정책만 갖고는 고용시장의 한기가 쉽게 걷히지 않는다.

2023-02-12 15:13 사설 기자

[사설] 미 공화당 하원 장악으로 통상정책 바뀔까

새해 공화당이 미국 하원을 탈환한 이후 무역 기조에서 아직은 크게 이상기류가 형성되지는 않고 있다. 집권 민주당은 아슬아슬하게 상원 다수당이 됐다. 정치적 입지가 서로 뒤바뀌면서 통상정책에 변화가 따를 수밖에 없다. 중국특위 설치를 예고한 공화당의 강력한 중국 견제 행보로 파장이 예고된다. 통상을 포함한 경제를 지지층 결집의 효과적인 수단으로도 쓴다고 봐야 한다. 미국의 2022년 중간선거 민심은 ‘경제심판’의 성격이 다분히 있었다. 기억해두는 것이 좋다. 자국 중심주의는 더 강고해질 수 있다. 자유무역 방식도 약간은 변한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통상이 분열적인 이슈로 보이긴 하지만 미국 국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생각보다 오래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 양분이 심화되면 통상정책에서 미세조정은 있겠으나 ‘메이드 인 아메리카’(미국 내 제조), ‘바이 아메리칸’(미국산 구매)라는 틀은 고수할 것이다. 무역을 경제와 국가 안보의 맥락으로 다루는 부분 역시 눈여겨볼 대목이다. 지경학(地經學, geoeconomic) 측면에도 우리가 눈뜰 시점인 것 같다.상·하원 모두의 ‘레드 웨이브(Red Wave·공화당 압승)’는 아니라 해도 미 의회 리더십 변화와 통상 담론 전반에 더 민감해져야 한다.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를 오히려 제도화한 바이든이다. 야당이 하원 다수당이나 국정 동력이 흔들릴 정도는 아니다. 전통적 무역협정에 집중하면서 그 영향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하원은 행정부의 대외 조치에 대한 감시를 보다 강화할 것이다. 몇몇 목소리 굵은 공화당 의원들이 퇴임했지만 현재 시간 공화당 일각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기 시도에 조 바이든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를 말하고 있다. 한국산 전기차가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되느냐가 걸린 중대 사안이다. 우리 기업들이 타격을 받지 않도록 무역 지원 등으로 적극 챙겨야 한다.주시할 것은 다르면서도 같은, ‘초록은 동색’인 점이다. 공화당이 기후변화에 덜 신경 쓰고 신재생에너지 등에서 한발 뒤로 후퇴할지는 모른다. 그것은 ‘디테일’일 뿐이다. 자유무역과 다자주의 편일 것 같은 바이든도 무역 기조는 트럼프를 따라간다. 바꿔도 국익 범위 내에서 움직인다. 신규 무역협정 체결과 무역촉진법안(TPA) 논의 등 통상정책에서는 양원의 초당적 압박이 거세질 것이다. 미국 국익 앞에서다. 젠틀맨 바이든이 조금 달라도 예컨대 ‘좀 공손한 트럼프’라고 보고 대처하면 된다. 걸핏하면 엇나가는 우리 정치권도 통상정책 등 경제 앞에선 똘똘 뭉칠 줄 알아야 한다.

2023-02-09 14:21 사설 기자

[사설] 도쿄선언 40주년 삼성, ‘넘볼 수 없는’ 실력 기대한다

8일로 40주년이 된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의 ‘도쿄 선언’은 삼성그룹 사사(社史)에서 거대한 분기점이 된다. 한국기업사에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가는 ‘퀀텀 점프’를 장식한 순간이기도 하다. 선제 투자와 미래 기술로 획기적인 도약을 한 창업회장과 이건희 선대회장의 정신은 그대로 계승된다. 미래 산업에 대한 꾸준한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앞세우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맞닿는다. 이날을 하루 앞두고 “넘볼 수 없는 실력을 키우자”고 역설한 이 회장의 경영철학에도 녹아들어 있다. 익히 알려진 대로 도쿄선언은 1983년 2월 8일 일본 도쿄에 있던 이병철 창업회장의 반도체 사업 진출 계획을 알리는 전화 한 통화가 발원이다. 그 혜안이 변두리 국가의 고만고만한 기업에서 반도체 강국의 초일류 기업으로 변신시킬 줄 아무도 몰랐다. 서구 선진국 눈에 미친(lunacy) 짓으로 보일 법도 했다. 인텔은 과대망상증 환자라며 대놓고 비웃었다. 그러나 삼성은 최후에 웃는 승자가 된다. 이건희 선대회장의 ‘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신경영선언도 되새김해봐야 할 가치다. 프랑크푸르트선언은 위기 상황에 주눅들지 않고 공격적 투자로 신사업에 진출하는 기업가정신을 일깨운다. 그 뒤를 이를 카드가 매우 절실하다. 도쿄선언, 프랑크푸르트선언 당시와 같은 결정적 순간이 바로 지금일 수 있다.삼성 DNA를 한 줄로 압축하면 어려울 때 신규 투자 결단으로 미래 경쟁력를 스스로 강화하는 것이다. 무력전과 달리 “(경제전쟁은) 전쟁에 지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망해간다”는 이건희 선대회장의 말은 오늘 그대로 적용된다. 그 통찰력이 필요한 순간이 왔다. 글로벌 경쟁구도 변화는 시간문제이고 공급망 재편 위기 속에서 다시 또 크게 점프해야 하는 건 필연이기 때문이다. 미래기술을 선점하는, 위기에 강한 삼성 DNA의 새로운 ‘넘사벽’ 승부수를 보여줄 이재용 회장의 리더십을 기대하는 이유다. 기회의 문은 자주 열리지 않는다.경쟁국들의 기술력은 턱밑까지 쫓아왔다. 파운드리 생태계에는 일본까지 새롭게 참전했다. 미국에서는 제2 반도체법 도입 가능성까지 고조된다. 그런데 우리는 제대로 된 법안·정책이 없이 기업에만 운동화끈을 조여매라는 격 아닌가. 삼성 반도체 신화의 시발점이 된 도쿄선언 10년 뒤에 메모리 반도체 분야 글로벌 강자 자리에 올라선 결기를 소환해낼 차례다. 정부는 아낌없는 지원을 하고 국회는 기업가정신을 돋울 입법에 머리를 맞대 “끊임없이 혁신하고 선제적으로 투자”할 여건을 뒷받침해줘야 한다.

2023-02-08 14:05 사설 기자

[사설] 국가 미래 먹거리는 첨단 인재 양성에 달렸다

정부가 ‘ABCDE’(예: A는 항공·우주, 미래 모빌리티) 등으로 나눈 22개 첨단 신기술 인재 양성과 국가 지원에 팔을 걷어붙였다. 비유하자면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가는 마지막 흔들다리처럼 인식된다. 7일 윤석열 대통령이 정부세종청사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경제 전쟁’ 대처를 강조했는데 그 핵심에 인재 양성이 있다. 이달 1일에는 대통령이 의장인 인재양성전략회의를 출범시켜 첫 회의를 열었다. 제2의 내각이라고 평가될 만큼 총출동한 것은 높은 관심도를 반영하지만 첨단 기술 분야의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는 뜻도 된다. 그런데 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예측된 미래였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국가경쟁력지수에서 한국은 수준급 엔지니어 공급 42위, 해외 고급 인재 유입 49위로 63개국 기준 중하위권을 차지한다. 미래 추가인력은 차치하고라도 반도체(최근 산업통상자원부 분석으로는 1752명), 전자(5375명), 화학(4275명) 등의 인력이 당장 부족해 아우성이다. 산업 현장에 적합한 기술인재 육성에 과감하고 선도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정신 바짝 차려 준비해야 한다. 미래를 주도할 인재가 부족한 채 미래 먹거리를 개발한다는 건 모순이다.반도체나 정보기술 인재 ‘10만 양병론’도 그동안은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실제로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사람이 없다는 하소연이 곳곳에서 터진 다음에야 국가인재양성법, 직업교육법, 인재데이터 관리법 등 인재 양성 3법 제정을 추진한다고 법석이다. 정부와 대학, 산업계가 힘을 합쳐 사람에 투자하고 미래를 주도할 인재를 양성하는 데 답이 들어 있다. 비수도권 대학은 첨단학과 정원을 늘려도 가르칠 교수가 없는 형편이다. 우리 산업이 잃어버린 20년에 빠져 미래 먹거리 화두 찾기에 한 발 늦었다는 위기의식을 가질 때다.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몇몇 기업이 있다 해서 우쭐해할 여유는 없다.핵심 기술인재 양성 없이는 성장의 시대는 종언을 고한 것이나 다름없다. 국가발전 동력이 과학기술이고 인재 양성이라면 교육 개혁도 여기에 맞춰야 이치상 맞는다. 인재 양성의 중심인 대학이 겹겹의 규제와 관행에 손발이 묶이면 말이 안 된다. 지난날 미네소타 프로젝트로 무장한 교수들이 한국 재건의 밑거름이 됐음을 반추해보자. 새로운 먹거리 창출을 위한 산업 대전환의 열쇠는 인재 양성이다. 어렵게 키운 첨단 인재가 미국, 중국 등으로 이탈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글로벌 기술패권을 향한 ‘흔들다리’를 범부처적인 비상한 협업으로 슬기롭게 건너야 한다.

2023-02-07 15:48 사설 기자

[사설] ‘윤석열표’ 분양보다는 청약시장 양극화를 보라

고금리 기조와 집값 추가 하락으로 청약 인기가 높아지기 힘든 환경이다. 식어도 너무 식었다. 1월 경쟁률이 11개 단지에서 1 대 1을 넘어선 곳은 3곳에 불과했다. ‘윤석열표’ 사전청약 흥행이 더욱 관심사인 이유다. 청약시장 한파가 여전히 매서운 가운데 윤석열 정부의 공공분양주택 ‘뉴:홈’ 브랜드가 첫선을 보인다. 고양 창릉, 양정 역세권, 남양주 진접2 등의 사전청약 접수가 6일 시작됐다. 고전을 면치 못하는 아파트 단지들에도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지금 전국에선 대대적인 규제 해제에도 힘을 쓰지 못하면서 미분양이 속출 중이다. 마포더클래시 등 서울을 중심으로 이른바 ‘줍줍’(무순위 청약)에 수요가 몰리고 규제가 덜 풀린 서초·강남까지 포함해 집값 하락 폭이 좀 주춤하고는 있다. 기대심리가 반영된 수도권, 특히 서울 중심부는 상대적으로 규제 완화 영향을 받는다. 침체된 청약 시장의 반등 기미로 해석해볼 여지도 있다. 문제는 일부 인기 지역이 아닌 그 나머지다. 인디언 기우제 지내듯 집값이 오르기만 기다려서는 급속히 붕괴돼 가는 시장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공공분양주택은 흥행에는 문제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전국 미분양 주택은 6만2000가구로 설정된 위험선을 넘어서 있다. 주택이 충분한 시장이 아닌 서울은 분양가만 합리적이면 청약자를 모을 수 있으나 지방은 다르다. 대구, 대전, 울산 등 지방 도시들은 1·3 대책으로 실상 크게 바뀐 게 없다. 대단위·1군 브랜드 아파트마저 고배를 마시고 있다. 이 상황을 잘못 관리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폭탄이라도 터지면 경제 전체가 위험해진다. 금융권 부실의 뇌관이 되지 않기 위해서도 분양시장 초양극화를 차단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고금리 상황에서는 손실회피 심리까지 작용한다.나눔형으로 다수 공급돼 고금리에 따르는 실수요자 부담이 줄어드는 공공분양주택 ‘뉴:홈’은 물론 다를 수 있다. 지방과 수도권 모두 비규제지역으로 놓이면서 청약 한파는 지방을 중심으로 더 심해질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방 미분양은 수도권 미분양의 4배에 달한다. 시장 불개입 원칙을 버리고 특단의 대책을 정말 써야 할 때는 1순위 미달률이 74%까지 올라간 바로 이럴 때다. 취득세를 대폭 감면해주고 양도소득세를 일정 기간 면제해주는 것도 그중 하나다. 서울 한복판의 ‘줍줍’이나 공공분양주택 흥행이 전부가 아니다. 추후 시장에 대한 기대심리가 저조한 지방 집값과 그렇지 않은 서울 집값의 차이가 더 벌어지면 안 된다.

2023-02-06 14:09 사설 기자

[사설] ‘민생 파탄’ 묻는 장외투쟁, 민생에 도움 안 됐다

더불어민주당이 장외투쟁을 진행한 것은 2016~2017년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운동’ 이후 6년 만이다. 전임 정권에서 집권세력이었으니 윤석열 정부 탄생(5월 10일) 이후 약 9개월 만이라 해야 더 정확할 수도 있겠다. 여하튼 4일 서울 숭례문 인근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민생 파탄·검사 독재 규탄대회’는 설득력을 갖추기 어려웠다. ‘난방비 폭탄’ 등을 표면에 내세웠으나 최후의 수단 격인 장외투쟁으로 해결될 사안은 아니었다. 의구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기득권 지키기, 이재명 지키기라는 굴레를 성급하게 씌우자는 게 아니다. 특정인 수사를 놓고 야당이 이러는 건 물론 전례가 있다. 김대중 정권 시절이던 1998년 9월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주도한 세풍수사 규탄 등 ‘편파적 대선자금수사’ 관련 장외투쟁이 그것이다. 문재인 정권 출범 넉 달 만인 2017년 9월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체제에서 벌인 김장겸 MBC 사장 체포영장 발부 반대 투쟁 역시 주요 장외투쟁사로 꼽을 수 있다. 이렇게 조명해보니 최다 의석을 가진 거대 야당이 거리로 뛰쳐나간 이유가 한결 선명해지는 듯하다. 심각한 민생, 경제 위기로 포장을 잘 해도 대장동 의혹 등 이재명 대표를 둘러싼 상황과 무관치 않다고 온전히 믿기는 힘들 성싶다.민주당이 민생, 경제를 금과옥조로 삼는 정당이었나. 그처럼 혜안을 가진 정당이라면 어벌쩡한 여론전을 접고 원내에서 싸워야 제1야당스러운 행보다. 검찰 독재와 야당 탄압 프레임이 검찰 수사 물타기로 비친다면 169석 야당의 거리 투쟁은 투쟁 방식 면에서도 전략적이지 못하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라는 말까지 환기시키는 장외투쟁이다. 2019년 8월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의 이해찬 대표는 ‘좌파 폭정’을 중단하라는 자유한국당의 장외투쟁에 대해 일본의 수출규제 국면을 앞세웠다. “저렇게 생각머리가 없나”고 힐난한 사실까지 되짚어진다.그 이슈가 지금 ‘검찰 독재’로 바뀌었을 뿐이다. 민주당은 숭례문 집회에 이은 2차, 3차 집회 등 장외를 떠돌 미련을 접고 책임과 역할로 돌아가야 한다. ‘입법 갑질’의 폐해를 합리적인 방향으로 다듬어야 할 경제·민생입법은 또 얼마나 수두룩한가. 성공한 장외투쟁이 그다지 흔치 않음을, 특히 지금 같은 경우에서는 더욱 그러하다는 사실을 정당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익히 알 텐데 말이다.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맨 것은 아니지 않은가. 지금 할 일이 있다면 이재명 살리기가 아닌 민생 살리기, 장외투쟁이 아니라 진실로 민생과 경제에 도움이 되는 정책투쟁이다.

2023-02-05 13:45 사설 기자

[사설] 대출 규제·고금리 못 넘으면 부동산 연착륙 없다

부동산 시장을 대출 규제, 고금리, 경기침체의 3대 악재가 뒤덮고 있다. 국지적으로 얼마간 풀린 곳은 있으나 여전히 거래절벽을 넘어 빙하기다. 다주택자에 대한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규제를 완화해도 끄떡하지 않는다. 1주택자에 대한 LTV 추가 완화를 추진해도 거래 증가를 체감하긴 힘들 듯하다. 그나마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진단한 대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늦춰 다행이다. 국제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줄어 다소간 위안은 된다. 거래 가뭄의 주요 근원이 대출 규제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가계부채 관리를 생각하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처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지점이 물론 있다. 취약차주의 고통도 가중되는데, 비상거금회의에서 밝힌 정책서민금융 공급이 유효한 대안이 됐으면 한다. 무엇보다 살필 것은 대표적인 규제인 주택담보대출 금지를 완화해도 거래 정상화가 가능성 속에만 있다는 점이다.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대출 규제는 양날의 검 같긴 하지만 시장 상황을 보면 규제 예외를 넓혀 사실상 전임 정부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는 게 맞는다. 추 부총리가 부동산 대출규제 정상화를 부동산 시장 연착륙 방안으로 제시했는데 방향성은 옳다.다만 부동산 시장 호황기에 도입했던 과도한 규제를 다 뜯어고친 다음에도 부동산 수요 진작에 한계로 남을 것이 있다. 바로 고금리 기조다. 주요 부동산 대못인 대출 규제와 금리 급등을 한 묶음으로 다루면 좋은 이유다. 그 대책으로 실수요자를 위한 대출금리 인하 등은 가능할 것이다. 성역이라 생각하지 말고 금리와 DSR의 파고를 조심스레 넘어서야 한다. 부작용 없는 처방이 없다면 그걸 최소화하는 것이 차선이다. 대출 완화가 고금리 상황에서 미칠 영향을 살피면서 이 부분을 손대지 않으면 안 된다.시장 정상화 행보의 출발점인 매수 심리 회복은 지금 겪고 있듯이 쉽지 않다. 고금리에 대출이자 걱정하느니 전세보다 월세살이를 한다는 수요자가 늘수록 매매는 더 곤두박질친다. 실제 지난해에는 전국 아파트 전월세가 첫 100만건을 넘어섰다. 그러니 매매가 반 토막 아닌가. 대출을 중심으로 한 금융 관련 규제를 더 풀고 세제 개편을 서두를 시점이다. 분양시장에도 온기가 돌게 해야 한다. 청약 미분양이 속출해 위험선을 넘고 있다. 주택 구입에 남은 걸림돌을 대거 제거해 가급적 올 해 안에 부동산 경기 전체가 저점을 찍게 해야 한다. 그것이 추 부총리가 이날 강조한 부동산 부문 리스크 관리의 최고 목적이 돼야 할 것이다.

2023-02-02 14:00 사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