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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설] 난방비 지원 ‘신속’은 좋지만 신중하게 하라

난방비 쇼크에 민심이 들끓는 가운데 대통령실이 긴급처방에 나서고 있다. 서로 요금 폭탄 돌리기에 주력하는 여야보다 보기에는 좋다. 취약계층의 무거운 짐은 누구 손으로 하든 덜어줘야 한다. 오로지 여론 악화 때문이어서는 안 된다. 에너지바우처 지원금과 사회적 배려 대상자 요금 할인 폭을 두텁게 하는 것도 일단 잘한 일이다. 난방비 대책을 거의 매일같이 내놓으며 지원 액수와 대상을 주도적으로 늘리는 것은 민생에 성큼 다가선 모습으로 비치기도 한다.정치권에만 맡겼으면 흉흉한 민심을 잠재우는 데 몰입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것은 포퓰리즘이 원인이다, 손놓고 있다가 난방비 폭탄을 맞았다며 싸움질에 일관하려는 여야의 한계다. 글로벌 에너지 수급난이라든지 말끔한 그래프 하나로 정리되는 수요와 공급의 원리는 아예 무시하고서 말이다. 국제 에너지가격 상승 대응 잘못이나 가격에 대한 시그널을 제때 못 준 책임은 둘 다 가볍지 않다. 윤석열 정부가 발빠르게 대처하는 모습으로 대비 효과를 꾀하는 측면도 있다. 다만 언제까지나 차별화된 정책 대결의 맞상대가 전임 정부와 현 정부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일 잘 하려고 경쟁하고 비교하는 거야 꼭 나쁘진 않다. 여기에 치중하다 방향성을 잃는다는 게 문제다. 취약계층에 더 지원하고 잠재적 빈곤층인 차상위계층을 포함하는 것은 현실성 있는 대안이다. 중산층을 소득 구간에 따라 차등지원하는 방안까지 오르내리는 것은 결이 좀 다르다. 1인당 10만원씩 보편적으로 에너지 지원금을 주자는 설익은 주장도 그렇다. 여야가 힘쓸 것은 사실 하나다. 사각지대를 없애면서 퍼주기식 포퓰리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 합리적인 지원이다. 난방비 보편 지급이 결코 아니다. 국무회의를 앞당겨 예비비 지출안을 재가하는 신속함은 보기에 좋다. 다만 고통 분담과 공동체 의식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중산층 부담 경감 방안에는 신중하길 권한다.당장 들끓는 민심을 잠재우려 곳간을 헐어 마구 쓰는 게 바로 에너지 포퓰리즘의 해악 아닌가. 밑도 끝도 없는 ‘기승전 탈원전’ 역시 정치공세의 루트가 되기 쉽다. 또 하나, 차상위계층 지원 확대 등에서 산업통상자원부보다 대통령실이 먼저 움직였다는 것이 자랑일 수만은 없다. 궁극적인 실효성도 봐야 한다. 그래서 관계부처의 점검과 검토가 먼저여야 바람직하다. 부처가 예견하지 못했던 용산 대통령실의 한발 앞선 선제 대응 이전에 부처가 면밀히 살피고 당정협의회 등에서 심도 있게 논의하는 게 기본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상적인 정부의 상식적인 정책을 놓치는 함정을 만날 수 있다.

2023-02-01 14:10 사설 기자

[사설] 제약바이오, ‘사료’ 아끼며 ‘병아리’만 키울 수 없다

6년 임기를 마치고 곧 떠나는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의 발언은 고언으로 새겨들으면 제약바이오 산업의 체질 개선에 이로운 ‘약’이 될 것 같다. 2월에 회장 임기를 마치는 원 회장이 제약주권, 제약강국에 대한 소신을 거침없이 쏟아낸 신년 간담회의 울림은 크다. “병아리로 놔둘 게 아니라 닭으로 키워야 알도 낳는다”는 비유는 세계 제약바이오그룹과 겨뤄서 이겨 국부를 창출해야 함을 뜻한다. 그런데 “사료값만 아끼려고 한다”는 말은 우리 현실에 대한 직언이다. 발언을 유심히 듣고 나면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라든지 메가펀드의 시행 필요성이 설득력 있게 이해된다. 미국과 중국 등의 자국 공급망 중심주의 강화와 지난해의 원료 의약품 품귀 사태는 ‘제약(製藥)’ 뒤에 붙인 ‘주권(主權)’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로 대체된다. 화이자나 모더나의 백신과 치료제 개발 능력이 국력처럼 치환된 사실을 똑똑히 인지해야 할 듯하다. 원료 국산화는 특히 제약 바이오의 글로벌화와 국민생명권과 직결된다. 원료약 생산에서 채산성 딜레마는 기피가 아닌 극복의 대상이다. 60%에 이른 완제의약품 자급률과 겨우 25% 내외인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꼭 높여야 한다. 국부 창출과 사회안전망 두 측면에서다.제약바이오 산업은 물론 자동차·배터리와 어깨를 견줄 만큼 전진해 왔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지난해 매출 3조원을 돌파와 1조원에 육박하는 영업이익은 괄목할 만한 사례다. 지난해 기준 세계 의약품 시장 규모는 1630조원으로 반도체(740조원)를 웃돈다. 중국은 바이오산업을 2030년까지 1800조원까지 확대한다는 원대한 계획까지 미리 잡고 있다. 미국 정부가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에 예산 14조원을 지원할 때 우리는 4127억원을 투입했다. ‘병아리’만 키우지 않으려면 범부처적인 중장기 전략과 함께 전광석화 같은 속도전이 받쳐줘야 한다.지원 없이 블록버스터 신약을 바라선 안 된다. 원 회장이 예시했듯이 작은 연구소였던 모더나가 3년에 할 일을 3개월 만에 끝냈다. 미국 정부의 과감한 지원이 가능케 한 일이다. 현장 중심형 연구를 위한 핵심 인력 양성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제약산업계는 고용 있는 성장산업으로서 고용시장에도 활력을 주는 분야다. 1980년대가 배경인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미래 먹거리를 제시하면서 나온 대사가 곱씹어진다. “기술 장사해야 먹고 산다”는 그 말은 제약바이오 부문에 그대로 적용되며 앞으로도 능히 관통할 메시지다. 제약산업 발전은 ‘한국의 미래’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2023-01-31 14:06 사설 기자

[사설] ‘경제 허리’ 40대 고용률 뒷걸음질 막아야

가계소득이나 투자·소비 위축과 긴밀하게 연결된 40대는 ‘경제 허리’에 곧잘 비유된다. 40대 고용률이 번번이 좋지 않아서인지 경제 활력의 지표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3년 전에도, 2년 전 코로나19 이후 13개월 만에 청년층과 60대 취업자 수가 늘었을 때도, 심지어 22년 만에 최고의 고용 지표 개선이라고 떠벌릴 때도 40대 취업자 수의 2년 연속 뒷걸음질은 숨길 수 없었다. 40대 고용은 이처럼 숙제다. 그 연장선에서 보면 전 연령대 중 40대만 최근 5년간 고용률이 감소(-1.3%포인트)했다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의 분석이 새삼스럽지는 않다. 화려한 지표를 한 꺼풀 벗기면 문재인 정부 때도 대동소이했다.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면 절박하지 않은 세대가 어디 있으랴만 산업계 구조조정 등 일자리 한파의 최대 피해자가 40대다. 심상히 볼 일이 아니다. 40대 인구 절반 이상(56.0%)은 가정 생계를 책임진다. 자칫하면 가족 구성원 삶의 곤핍으로도 이어진다. 인구와 산업구조 조정, 자동화 등이 고용에 미치는 악영향을 감안하면 한가롭지 않다. 제조업 분야 등의 일자리를 시급히 회복해야 고용시장 가시밭길을 걷는 40대의 눈물을 막을 수 있다.40대 고용이 다 그런 건 아니었다. 한국의 40대 고용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평균보다 5%포인트 이상 낮다. 31위라는 것이 그 예다. 2년 전 3040을 묶었을 때도 30위였다. 5년간 전체 취업자 수가 136만명 이상 늘어나도 거꾸로 47만명 가까이 줄어든 것이 40대 취업자 수다. 일시적인 코로나19 여파이기보다 이건 구조적이다. 올해도 일부 산업의 구조조정 바람이 거셀 것이다. 주력 제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근로유연성을 높이면서 일자리를 지킬 수 있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재정 지원 일자리 사업으로만 메우는 데는 한계가 뚜렷하다.‘경제 허리’를 휘청거리게 할 요인은 더 쌓여 있다. 취업자 증가 폭이 지난해의 1/8에도 못 미칠 것이란 점도 그것이다. 40대는 지난해 전경련 분석에서도 고용률이 낮았다. 맞춤형 취업 프로그램도 필요해 보인다. 미래산업인력 등 중소기업 쪽 사정을 보면 일자리 부족이 아닌 일손 부족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런 문제에도 정책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일자리 뒷걸음질을 못 막아서면 경기 회복에 큰 걸림돌로 남는다. 40대 일자리 감소는 추세적·구조적·장기적이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2023년에도 40대 일자리가 가장 위협받는다. 지금 어물거리면 올 하반기와 내년 초가 더 힘들어질 것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2023-01-30 14:02 사설 기자

[사설] 노마스크 시대, 어렵지만 경제에 훈풍 감돌게 해야

2년 3개월 만에 맞는 노(No)마스크, 탈(脫)마스크 시대에 산업 및 경제계 전반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오늘(30일)부터 의무라는 형태의 마스크 강제성을 벗겨냄으로써 소비자들은 아무래도 시공간에 대한 상이한 감각을 느낄 것이다. 권고 꼬리표가 일부 남아 있긴 해도 실내 사업장의 약진이 기대된다. 외식업계나 예술, 스포츠, 여가 생산 등은 특히 기대해볼 만한 분야다. 마스크 대란을 뚫고 코로나19 장기화 속에 1월 현재 10배 넘은 1505곳으로 늘어나 있는 마스크 제조업체는 희비의 대척점에 설 수밖에 없다. 공공성이라는 사회적 의미가 부여됐던 마스크의 착용 의무 해제에 맞춰 유통업계 등이 대면 영업을 강화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주가를 비롯해 시장이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면 물론 반가운 현상이다. 민낯을 내놓기 어색한 기분을 누르고 패션 뷰티 등 일부 업종에서 온기가 돌 것으로 예상되지만 훈풍까지는 아직 아니다. 기대보다 준비할 일이 더 많다. 코로나19 사태가 앞당긴 디지털 전환, 4차 산업혁명 기술과 새로운 서비스를 연계하는 비즈니스 모델 개발에 힘쓰는 것도 그중 하나다. 고물가와 고금리로 여건이 좋지 않지만 긍정 효과의 극대화 노력은 포기해선 안 된다.우리만의 특수성, 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국 중 끝까지 실내 마스크 착용이 의무인 나라로 남아 있던 것이 매출 회복을 더 더디게 할 수도 있다. 꽤 오랜 시간을 ‘내 몸은 내 것’만이 아니고 서로가 서로에게 환경이며 연결된 존재임을 확장시켜준 마스크에 대한 일상의 사회학도 한번 조명하고 넘어가야 한다. 돌발적인 위기 앞의 감염병 확산 방지가 목적이었지만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전체주의 조건으로 내걸었던 것과 유사한 일면도 분명히 있었다. 사람 사이의 연결과 사회적 유대가 끊어지고 마치 국가기관이 허가하는 관계만 남은 형국이기도 했다. 한때 K-방역으로 칭송받던 마스크 쓰기지만 전 세계에서 감염자 수 7번째인 점은 규명이 필요할 것 같다. 의료적인 대처와 향후 유사한 사태 때의 정상적인 경제활동과도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이제 마스크에 대한 집단적 압력에서 풀려나지만 전반적인 보복소비 같은 꿈은 접고 대처하는 게 현실적이다. 경기를 비관적으로 보는 전망이 우세하고 소비심리가 악화돼 있다. 방역조치 완화를 여러 번 맛본 기저효과까지 있어 소비 여력 복원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839일 만의 마스크 의무 해제가 완연한 소비 진작까지는 아니라도 잔뜩 움츠러든 우리 경제를 되살리는 유효한 촉매가 되길 기대해본다.

2023-01-29 14:05 사설 기자

[사설] 지금이 난방비 폭탄 돌리기 할 땐가

‘북극 직배송’ 한파에 ‘난방비 폭탄’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게 쓰이고 있다. 월세 수준으로 치솟은 난방비는 중앙난방 방식이 많은 노후 아파트 전·월세 수요에 영향을 준다고 할 정도가 됐다. 대통령실은 26일 최상목 경제수석을 통해 사회적 배려 대상자 160만 가구에 대해 난방비 할인 폭을 2배 늘린다고 밝혔지만 국민 마음은 빙점 아래를 오르내린다. 정치권은 요금 인상 탓, 전 정권 먹튀 탓이라며 ‘네 탓이오’에 또 혈안이다. 난방비 요금 고지서를 받아든 바닥민심은 방구들보다 더 냉골 같다. 관리비가 급등한 원인을 국민은 모르지 않는다. 국제 에너지 가격과 환율 상승 여파라든지 도시가스의 연료인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가격 폭등까지 알고 있다. 전임 정부의 인위적인 요금 인상 억제가 한 원인인 사실도 엄연하다. 집단에너지 사업자가 도시가스 요금에 연동해 조정하는 지역난방 열 요금도 오를 수밖에 없다. 어쨌든 거듭된 전기요금 인상과 전반적인 물가상승으로 생계 부담이 커졌고 일부 취약계층은 생존이 걸려 있다. 애꿎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난방비 급등에 대한 사과방송을 할 지경이다. 원인이 무엇이건 책임을 느껴 대안을 찾는 것이 정치의 몫이다.대책이라고는 26일 대통령실이 올해 1분기 요금을 동결하겠다는 게 거의 전부다. 1분기 전기요금이 이미 인상된 뒤다. 한국가스공사가 천연가스를 수입해 국제 시세보다 낮춰 공급한 것이 누증되면서 2분기 가스요금 인상은 불가피한 형편이다. 유럽에서 러시아 파이프라인천연가스(PNG) 수입을 끊고 LNG로 돌리면서 국제가격이 뛸 땐 요금을 안 올리다가 하락 때 올리는 우리가 문제다. 평상시처럼 난방을 하던 가정이 요금 폭탄을 맞는 건 정해진 순서였다. 사전에 그 내용을 소상히 인지시키고 난방 수요를 줄일 수 있게 홍보라도 했어야 한다. 여야가 2월 임시국회를 열기로 했지만 난방비 대책이 정치적 논쟁으로 옮겨 붙는 걸 봐야 하는 국민만 괴롭게 됐다.사태가 이렇게 된 데는 얼마 전까지 여당이었던 야당의 책임도 작지는 않다. 건수라도 잡은 듯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고 말 폭탄이나 퍼부을 때는 아니라는 뜻에서 지적하는 것이다. 전임 정부와 후임 정부 간의 한심한 작태뿐 아니라 민생을 빙자한 포퓰리즘 정책도 그치길 권한다. 시베리아발 한파 고속도로가 뻥 뚫린 지금, 극과 극의 대립을 멈추고 정치적 중립이 보장되는 요금 독립위원회를 설립하는 등의 실효적인 난방비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국민이 지금 보고 싶은 것은 정략적 발상을 접고 문제 해결에 진중하게 나서는 모습이다.

2023-01-26 14:21 사설 기자

[사설] 다보스서 SK의 SPC 프로그램 주목한 이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 다보스포럼) 연차총회의 성과로 지나치기 아까운 것이 사회성과인센티브(Social Progress Credits·SPC) 프로그램일 것 같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0년 전 다보스포럼에서 제안한 것은 선견지명이었다. 사회적 기업들이 창출하는 사회성과에 비례해 현금 인센티브를 제공하자는 단순한 캠페인 같지만 민간시장에서의 사회적 가치 확산에 기여했다. 다보스의 눈에 이제야 도두뵈는 것은 제안된 개념으로서가 아니다. 객관적 화폐가치로서 환산되고 실천된 가치로서다. SK그룹이 2015년부터 시행해 온 SPC는 측정과 인센티브, 즉 사회적 가치 측정과 금전적 인센티브 두 축으로 정리된다. 사회적 가치가 높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는 선순환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설계를 정교하게 하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목표 실현과 맞닿는다. 그리고 인센티브 효과는 사회공헌 개념을 넘어선다. 경영 분석과 개선점 도출에 활용하고 성장 효과의 동기부여로 쓴다면 기업 측에서는 다름 아닌 DBL(Double Bottom Line) 경영전략이 된다. 시장원리에 기반해 기업이 정부 할 일을 대신해주는 셈이 되기도 한다.민간 영역뿐 아니다. 걸음마 단계지만 정부나 서울시 등의 지방자치단체 정책에 사회성과연계채권(Social Impact Bond·SIB)이 확산되는 제도적 틀이 됐다. 성과 기반의 사회문제 해결, 또 사회서비스 제공이 가능한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사용하면 좋을 기법이다. 민간투자를 통해 새로운 사업을 해보고 나면 공공 서비스 영역의 예산 절감 및 성과 창출도 명확해질 것이다. 국내 일부 지자체에서 사회성과 보상사업 운영조례안을 만든 건 고무적이다. 이 프로그램을 관류하는 정신은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의 동시 실현이다. 다보스포럼이 충분히 중시했을 대목이다.우리가 다시 반추하는 것은 최 회장이 저서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에서 밝힌 SPC의 전망과 확장성이다. SK그룹이 지난해까지 사회적 기업 326개와 더불어 운영한 결과가 이를 대변해준다. 일자리 창출, 사회 서비스 제공이나 환경과 생태계 문제 해결 등에서 일궈낸 성과가 적잖다. 인센티브 지급으로 재정적 안정을 찾은 기업들의 성장세도 두드러진다. 공공기관과 민간기업, 비영리기관까지 이 프로그램을 적용한다면 직접 창출한 비즈니스 성과, 부가적으로 창출한 성과, 시장에서의 미보상 성과 등을 보완해줄 것으로 믿는다. 정부와 지자체가 할 일은 사회성과인센티브를 통해 사회적 가치 창출 용량을 높여나갈 여지를 넓혀주는 일이다.

2023-01-25 13:56 사설 기자

[사설] 정치가 ‘토끼굴’ 빠진 경제 구하라는 게 민심

여당 당권 레이스와 야당 대표 검찰 소환이 민심의 밥상에 오른 것은 맞다. 그러나 정치적 관심사와 진짜 설날 민심은 구분된다. 요약하면 정치 빅 이벤트보다는 민생 문제 해결이었다. 국민이 체감하는 경제 한파는 인플레이션과 장기 저성장으로 날씨만큼이나 혹독하다. 빨간불에서 노란불로 바뀌어 청신호로 간다는 진단은 어설프다. 실상은 노란불인 듯하다가 물가 폭등, 경기침체가 겹쳐 적신호의 미궁 속으로 향하는 데 말이다. 신년에 교토삼굴(狡兎三窟)을 강조한 이유가 있다. 위기의 파고를 넘으려면 플랜B, 플랜C도 착실히 준비하자는 제안이었다. 국민 경제와 직결되는 대내외 경기 악화, 고물가와 원자재가 상승 지속, 수출 부진, 내수 회복세 저조로 지금 총체적 난국이다. 국내 경제성장률을 1.25%까지 낮춰 잡기도 하는 현실이다. 무역수지는 적자로 반전된다. 그런데 여당은 성장 지체, 투자와 소비 감소, 최악의 자영업자 폐업 사태를 문재인 정부 탓으로 돌린다. 현 정부가 국가와 국민에 대한 책임을 방기한다고 비판하는 야당도 공수만 바뀌었을 뿐 무책임하다. 얼음장 수준의 민생 앞에서 정치권이 일치를 보이는 것은 국민적 고통이 커지고 있다는 것 정도다.그러면서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원년이 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없는 게 문제다.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부문에서 상대적 선방을 했지만 3개월째 감소세를 이어가는 수출도 둔화가 예상된다. 경기 부진 흐름이 이어지고 세계 경제에 변화의 폭풍이 몰려올 상반기가 특히 조심할 시기다. 고금리 정책에도 물가가 잡히기는커녕 경기침체를 몰고온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토끼굴에 빠진 것(Down the rabbit hole) 같은 형국이라는 진단이 나올 법하다. 경제 역동성으로 기회가 많다고 흰소리하지 말고 제대로 대처해 경제의 회복 탄력성 저하를 막아야 한다.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민생을 보듬는 정치다. 윤석열 정부의 중간 평가 성격을 띠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갈등 이슈는 점점 부각될 수 있다. 루이스 캐럴의 소설 속 토끼굴처럼 더 어둡고 혼란스러워질 위험성이 상존한다는 이야기다. 기존의 방식과 전략이 통하지 않은데 낡은 것만 좇는 각주구검(刻舟求劍)의 태도는 참 어리석다. 배터리, 바이오, 모빌리티, 인공지능, 차세대 반도체 등 미래전략산업 육성에 신중하면서 공격적으로 대처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설날 민심에 부응하려면 각종 민생 입법, 부동산 관련법과 외국인투자촉진법 등 경제활성화 법안부터 먼저 통과시켜야 한다. 동상이몽, 아전인수의 싸움질만 일삼으며 피로감을 덧붙이지 않길 바란다. 진짜 민심은 따로 있다.

2023-01-24 14:10 사설 기자

[사설] 글로벌 농기계 시장 육성 손놓아선 안 된다

지난해 농기계 트랙터가 미국에서 ‘대박 났다’는 뉴스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중소형 수요가 늘어난 덕에 17억달러를 돌파했다. 4억 달러 수출탑을 받은 기업(대동)도 있다. 취미로 농장을 꾸리는 ‘하비 파머(Hobby Farmer)’ 열풍에 힘입어 농기계 수출이 순풍을 탄 점은 특이하다. 그러면서 농기계 기업의 3대장으로 불리는 대동, LS엠트론, TYM과 같은 회사는 잘 모른다. 농기계 업체가 나름대로 약진한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일반의 인식이다. 농기계 시장 실적은 이러한 추측을 뒤집는다. 200조원의 글로벌 농기계 시장에서 한국 점유율은 2조3000억원에 그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19일 내놓은 보고서 앞에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글로벌 점유율이 1%가 채 안 된다. 5년간 연평균 수출 신장률이 1.7%에 머물 만큼 정체 상태다. 인재가 농기계업에 투입되지 않는 걸 비롯해 여러 요인이 중첩돼 있다. 국내 농업 쇠퇴와 무관하지 않고 농기계 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의 빈약함이 한 원인이다.다변화 문제는 여기에도 있다. 수출 물량의 80% 이상이 집중된 곳은 북미 농기계 시장이다. 현지화 전략을 가미해 동남아 시장 등을 팔을 걷고 뚫어야 한다. 중소형 기종 판매가 주류이고 원자재 가격과 물류비용 상승으로 수익성이 취약한 부분은 개선해야 한다. 국내만 보면 과점적 시장구조를 형성했으나 외국 경쟁회사에 비하면 영세하기 짝이 없다. 우리도 자율주행 트랙터가 없지 않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진행하고는 있다. 하지만 세계 1위 농기계 제조사 존디어의 빅데이터 및 인공지능 기술 접목을 보면 3년 뒤처진다는 말이 ‘팩트’로 이해된다. 올해 CES 2023에서 소개한 것처럼 존디어는 유인 자율주행 단계 트랙터를 양산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우리가 전년(2021년) 대비 15억달러 성장에 자족할 때는 절대 아니다.농기계 수출 개발 기업에 대한 무역금융, 원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금융 지원은 물론 절실하다. 농가가 캐피털(여신전문금융회사)로 거래하고 이자를 제조업체가 부담하는 미국에 맞대응하는 방법은 결국 품질 경쟁력이다. 규모의 경제를 생각하면 스마트 농기계 RD를 무한정 확대하기 어렵지만 농기계 산업은 첨단산업으로 진화한다. 미국의 존디어와 AGCO, 영국 CNH, 일본 쿠보타의 벽은 높다. 그럴수록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대한 산업정책적 의지가 아쉽다. 우수한 품질을 갖춰 제조업 강국의 면모를 농업 기계에서도 보여야 한다. 글로벌 농기계 산업은 매년 5% 이상 꾸준히 성장하는 유망 산업군임을 기억할 때다.

2023-01-19 14:05 사설 기자

[사설] ‘K-방산’ 흥분 가라앉히고 튼튼한 교두보 쌓아야

국내 방위산업을 수출실적으로 말하는 시대가 왔다. 방위산업 앞에 한류 열풍이라 하여 ‘K’자를 붙인다. 무기수출 증가율 1위도 처음이요, 신흥 무기수출 강국 소리도 제대로 처음 듣는다. 아랍에미리트(UAE)를 수출 교두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 오만, 카타르, 쿠웨이트 등의 신규 창출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후속 효과가 강한 시장은 만들기 나름이다. 단발성이 아니다. 지난해 약 173억달러의 방위산업 수출 실적 경신이 이번 방산 수주 쾌거의 견인차가 된 것도 그러한 실례다. 국방과학기술 수준은 국방력을 가늠하는 척도다. 그뿐 아니라 경제에 기여한다면 이보다 좋은 일은 없다. 흥분을 조금 가라앉히고 지속 가능성 있는 K-방산 전성시대를 열 준비를 해야 한다. 일자리 13만개, 46조원 규모의 생산유발 효과를 기대하는 ‘바라카의 축복’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치밀한 분석이 요구된다. 가령 UAE의 프랑스산 구형 전차 교체 움직임에는 K2 흑표 전차 사막형 수출로 맞설 수 있다. UAE는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시설이 공격받은 사실에 예민하다. 한국의 방공유도 및 공중무기체계를 그 맞춤형으로 만드는 건 우리에게 달렸다.방산 수출은 또한 일단 팔면 끝나는 상품과는 다르다. 우리 정비체계와 연계하면서 후속군수지원 시스템 구축에 신경 써야 한다.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신뢰를 쌓아야 선순환 구조가 얹어진다. 방위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하려면 방산 수출 지원 기구 설립도 미루지 않아야 한다. 정부 간 거래와 정부 간 중개, 정부 주도 수출 모두에 대비할 조직이 필요하다. 방위사업청, 국방부, 외교부, KOTRA가 상시 협조체계로 요지부동의 교두보를 쌓아야 한다. 부자 몸조심이라는 말이 있듯이 안전을 꾀하되 도전적인 연구개발(RD) 환경을 조성하는 노력을 곁들여야 한다.핵심 거점국가와는 전략적 파트너라는 말을 곧잘 쓴다. 이 경우라도 수송기 등 기술 이전은 득실을 꼼꼼하게 따져볼 일이 많다. 튀르키예의 알타이 전차나 폴란드와 인도의 자주포는 우리 수출품이 원형이다. 수입국이 경쟁국이 되는 방산 수출 역습사태가 아닐 수 없다. 계약 상대방의 반대급부를 제공하는 조건의 절충교역에도 관심 가져야 할 것이다. 노르웨이에 수출한 군수지원함에 대해 우리가 이를 이행 중이다. 벅찬 ‘수주 대박’을 추스르고 선택과 집중의 수출 마케팅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도 첨단무기체계 사업의 특성에 어긋나는 방위사업계약법과 같은 낡은 법·제도 시스템의 정비는 빠를수록 좋다.

2023-01-18 14:25 사설 기자

[사설] 중대재해 ‘처벌법’ 아닌 ‘예방법’이 맞는 방향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시행 1년 동안 적용 사업장 안팎에서 논란과 개정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법 개정을 고민해봐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경영 책임자나 사업주를 겨냥한 법이란 비판도 그대로다. 실질적인 효과는 미약하고 재해 예방 목적에 맞춰 법 개정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만 고조된 감이 있다. 누구를 위한 법이며 지켜야 할 의무가 무엇인가. 그저 법 모호성만 키웠다. 중대산업재해의 정의부터 다시 규정해야 할 정도라면 법 실효성까지도 의심을 살 만하다.이제 논란거리로 묶어두지 말고 현장에 맞게 처벌 요건과 제재 방식 등에 관한 개선 방안을 집중 논의해볼 때다. 늦게라도 고용노동부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TF‘에서 살펴본다니 다행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의 기업 인식도 조사에서는 대응능력을 갖췄다고 생각하는 기업이 13.6%에 지나지 않았다. 법 개선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80.3%나 됐다. 논의 과정이 부족한 채 건성으로 법을 만들 당시에 예견됐던 바다. 사실은 법률 시행 전에 재개정을 했어야 한다. 노동계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선명히 드러난 지금이라도 해야 할 일이다.다른 건 몰라도 산업재해 예방 기능이 없다면 말 그대로 처벌을 위한 법이다. 법 적용 테스트 기간은 작년 1월 27일 이후 차고 넘칠 만큼 충분했다. 중대재해법 시행령의 ‘충실히’, ‘필요한 ’ 등과 같은 추상적 표현까지 자의적 법 집행을 부추기는 주된 요소다. 법은 명확하고 구체적이며 예측 가능해야 한다. 이 법으로 인한 형사처벌 사례가 축적되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일각의 의견은 무의미하다. 몇 년간 지루하게 끌어온 논란 기간을 연장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자연스럽게 기준이 만들어지길 기다리자는 관망자적 자세는 현장을 잘 모른다는 고백이나 같다. 처벌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려 들지 말고 안전을 기업경영의 핵심과제로 격상시킬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법의 목적으로 돌아가면 그게 현명하고 합리적이다.시행 이후 발생한 중대산업재해 중 수사 중이거나 기소된 사건을 보면 경영책임자 정의부터 손봐야 한다는 것이 더욱 명백해진다. 현행 책임자 처벌 조항은 처벌 만능주의를 조장할 수 있다. 안전한 작업 환경을 의도한다면 정부 주도의 규제와 처벌보다 자기규율 중심으로 전환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다. 처벌 규정을 완화하고 사고 예방에 비중을 두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넘어야 할 고비가 만만찮겠지만 처벌법보다 예방법을 지향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계속해서 들러리처럼 다뤄진 경제계 입장을 진지하게 반영할 차례다.

2023-01-17 14:00 사설 기자

[사설] UAE에서 부는 ‘제2 중동 붐’ 기회 살려야

‘중동(中東)’ 하면 우리에겐 1970년대 중동개발 붐으로 각인돼 있다. 60년대 파독 광부 등과 함께 경제발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아랍에미리트(UAE)와 체결한 초대형 프로젝트 등의 동시다발적인 경제협력 확대에 제2 중동 붐이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은 이유다. 양해각서 체결이지만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300억달러(약 40조원) 규모의 투자는 눈앞의 설 밥상민심이 아닌 미래 먹거리를 위해 놓치지 않아야 할 기회다. 예나 지금이라 달라지지 않은 것은 호혜적인 파트너여야 한다는 점이다. UAE와는 원전·에너지·방산 등의 분야를 비롯해 협력의 폭도 월등히 커졌다. 정상회담 한 자리에서 체결된 13건의 MOU, 다른 자리에서 체결한 것까지 30여건의 MOU는 가히 역대급이다. 탈석유 산업화를 노리는 UAE의 전략에 맞춰 오일머니에서 성장동력을 찾아야 할 우리다. 높아진 경제 위상에 걸맞게 전략 동반자 관계로서 투자 계약을 이행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세일즈 외교가 더욱 주목받는 것은 저성장 속에서 실질적 혁신이 절실한 우리 경제 때문이다. 늪에 빠진 한국 수출과 신기술, 신성장 분야 기업들의 활로가 된다는 확신에서다.위기의 한국 경제에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신념은 동행한 국내 5대 그룹 총수를 주축으로 대기업, 중소·중견기업 등 100개사 인사들의 면면을 통해 확인된다. 제1차 중동 붐이 아니라도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초대형 원전 플랜트 사업을 통해 무함마드 UAE 대통령이 극찬한 ‘약속’에 공을 들여왔다. 양국 원전 협력의 상징인 1·2호기는 상업운전을 했고 3호기는 준공을 앞두고 있다. 차세대 원자력, 수소 등 신재생 에너지 기술을 통해 우리가 포스트 오일 산업 대열에 선 높은 기술력의 국가라는 믿음을 잃게 해서는 안 된다.‘국부펀드’와의 협력을 보더라도 UAE 등 대중동 관계는 경제가 우선인 관계다. 지난 정부 때의 ‘구원(舊怨)’을 돌이키지 말고 여야가 대기업, 중소·중견기업의 해외사업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 UAE가 기회의 땅이지만 차가운 머리로 지정학적 리스크와 저가 수주 등에는 신중히 대처해야 할 것이다. UAE와 관련해서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으로 2019년 추가 단독 수주에 실패한 쓰라린 기억이 반추된다. 그때의 경험을 살려 공급망 부실화에 대한 우려가 나오지 않게 하려면 정책의 일관성도 필요하다. 기업 기술력과 정부 정책 지원이 잘 조합되는 가운데 양국 정상 간 합의가 성실히 이행되기를 기대한다.

2023-01-16 14:00 사설 기자

[사설] 기준금리 7연속 인상, 불가피하지만 무대책은 나쁘다

새해 첫 달부터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으로 시작한 것은 급한 불인 물가부터 잡겠다는 뜻이다. 이제 7번 연속 인상으로 연 3.5%로 운용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2월(연 4%) 후 14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높아진 것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대로 여전히 높아 경기 하강을 감수하고라도 달리 대안이 없다고 본다. 물가 안정이 우선순위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정책 조합이 필요하다. 미국과의 금리 차(상단 기준)가 1.25%포인트에서 1.0%포인트로 줄어든 것만 믿어서는 안 된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은 추가 금리 인상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상황을 보면 우리에게 올해는 그동안의 금리 인상 사이클의 영향이 본격화할 수도 있는 해다. 고환율과 금융시장 불안을 비교적 잘 넘긴 작년과 여건이 똑같지는 않다. 금리를 인상했지만 물가 오름세는 상당 기간은 목표 수준을 넘어설 것이다. 기업과 가계, 특히 영세 소상공인과 취약계층 등의 숨통을 틔우려면 막힌 금융의 흐름을 적절히 되살려야 한다. 물가와 정면승부를 벌일 입장이지만 높은 부채 비율로 대출 상환에 문제가 생기거나 한계기업이 늘어나는 부분을 모른체할 수는 없다. 금리 인상과 환율 불안은 기업 경영에 제일 부담이 되는 요인임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이번 금리 인상에도 물가가 정책 목표 2%로 수렴해 간다는 확신은 미미하다. 다소 소홀했던 금리 인상 파급효과까지 면밀히 살펴볼 때다. 이론적 금리 수준이지만, 경기가 과열도 침체도 되지 않을 적정 수준의 ‘중립금리’까지 여기서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싶다. 물론 지금 같은 때는 금리가 중립 수준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은 거의 상식이다.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아닌 걸 다행스럽게 여겨야 할 판에 급속한 금리 인상과 과도한 긴축을 멈추라는 건 좀 시기상조다. 그러면서도 브레이크에서 조금씩 발을 뗄 준비는 하는 게 좋다. 현재는 아니라 해도 금리 정점 대비는 조금씩 해둘 필요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현실적으로 기준금리 인상으로 잠재성장률 수준 회복이 멀어지게 됐다. 가뜩이나 속도가 안 붙는 내수와 투자를 정체시킬 테지만 경기침체 기간을 최대한 단축시키는 노력은 꼭 필요하다. 부동산 연착륙도 포기해서는 안 되고, 역시 금리와 환율이라는 가격 변수에 변동성이 달린 증시도 살펴봐야 한다. 7회 연속 인상을 손쉽게 감당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할 일이 많이 있다. 물가 안정에 중점을 둔 긴축 기조로 정책 여력은 적다. 그렇다고 해서 경기 둔화에 무신경한 것이야말로 가장 나쁜 대처법이다.

2023-01-15 14:58 사설 기자

[사설] 18만 고객 정보 유출 막아낼 대책 어디로 갔나

LG유플러스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은 확인된 것만으로도 예사로운 사고가 아니다. 해커 정보 공유 사이트의 고객 정보 판매 암시 글 등으로 미뤄 유출 사례가 추가돼도 이상하지 않게 됐다. 개별 통지 문자를 받았거나 못 받았거나 두렵고 답답하긴 매한가지다. 피해 고객을 생각해서라도 유출 규모를 신속하고 철저히 가리는 게 우선이다. 고객의 권리 차원에서 이제부터 대응을 잘해야 한다. 유출 경로 등 자세한 사고 경위는 경찰과 한국인터넷진흥원의 수사·조사를 통해 밝혀질 일이다. 그 전에 보안이라는 안전벨트가 느슨했다. 첫 인지 경로가 외부 기관의 통보였다는 점 역시 의아하다. 금융 정보 유출이 안 됐다고 하지만 계정정보(ID, PW)나 고객 신상 정보가 부적절하게 이용될 소지는 많다. 해킹된 정보만 갖고도 전화사기나 복제폰 등 악용 위험에 노출돼 있다. 경제적 손실로 끝나지 않고 인격권 침해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 부분이다. 비록 사태 파악은 뒤늦었지만 18만명 또는 그 이상이 털렸다면 사후 조치는 각자도생에 맡기지 않는 게 도리이며 원칙이다.이번 사고가 입증한 사실 하나는 기업의 보안의식 수준은 정보를 지킨다는 이동통신사의 의지에 비례한다는 점이다. LG유플러스가 해킹 공격 등과 관련해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과태료 처분을 받은 지도 얼마 지나지 않았다. 늘 그렇듯이 인력이나 투자 부족이 주요인으로 꼽힌다. 소 잃고라도 외양간을 잘 고치려면 매출의 0.2%에 불과한 관련 예산부터 늘려야 한다. 경쟁사인 SK텔레콤, KT와 굳이 비교할 것 없이 전담인력과 정보보호 투자 금액을 늘려야 한다. 여기에는 정보보안 마인드 확산을 위한 교육투자도 포함된다. 개인정보 보호, 네트워크와 데이터 보안에 취약하지 않도록 조직적 대응 구조를 만드는 등 재발 방지가 곧 고객 중심 경영이다.초고도로 지능화된 통신 환경에서 공신력이 실추되면 이용자는 믿을 언덕이 사라진다. 개인정보 보호 재정비는 이동통신사에 국한하지 않고 은행, 보험사, 대형마트 등 어디서나 적용된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한국인터넷진흥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이 앞서 고객 정보가 이처럼 손쉽게 유출되지 않도록 정보의 울타리를 꼼꼼히 손질해야 한다. 보안 위협에 대한 취약성 문제는 군사 및 경제안보 관점에서도, ICT 기반으로 연결되는 미래 모빌리티 등에서도 중차대하다. 보안, 정보보호, 복원력, 내부통제를 통한 모니터링 시스템 완비가 절실해졌다. 고객의 소중한 정보를 마케팅 자료쯤으로만 여긴다면 그것이 바로 정보보호 불감증이다.

2023-01-12 15:07 사설 기자

[사설] UAE·다소스 출장길, 기업 경제외교 꽃피우길

세계 경제 혹한기가 줄지어 예고되고 있어서인지 재계 총수들의 글로벌 현장경영 행보가 더 주목받는 이즈음이다. 연초 도전과 개척을 외친 재계는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 2023에서 K-스타트업과 나란히 한국 경제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보여줬다. 국내 주요 기업인들은 다시 아랍에미리트(UAE)와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세계경제포럼(WEF)으로 향한다. 경제외교가 꽃피울 투자 보따리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집권 2년차를 맞은 윤석열 대통령의 UAE와 스위스 순차 방문은 ‘경제에 중심을 둔 정상외교’ 성격이 짙다.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하는 기업 대표들로서는 대외 협력을 두텁게 하고 해외 기업 최고경영자들과 투자 논의를 진행할 둘도 없는 기회다. 인텔, IBM, 퀄컴, JP모건, 소니 등 해외 유수 기업 CEO들도 참여한다. 업계 분위기도 살피면서 경영전략을 모색할 수 있다고 본다. 대외 의존도가 높아 복합 위기를 수출로 돌파해야 할 우리다. 더욱이 세계은행은 올해 글로벌 경제성장률을 1.7%로 낮춰 잡으며 광범위한 악화를 경고하고 있다. 세계경제는 구조적 전환이 한층 빨라진다. 큰 흐름을 보면서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할 것이다.해외 출장길에서는 가시적인 성과를 얻고 공급망 재편기에 살아남을 다각적인 생존법도 터득해야 한다. 원자력, 에너지, 투자, 방산 등 핵심분야뿐 아니라 ICT, 게임, 관광, 스마트팜 등 유망 분야의 기업이 합류한 점은 상당히 바람직하다. 거시경제, 효율성과 회복의 방향을 잘 포착해야 한다. 방문단 선정에서는 철저할 만큼 수주와 계약 가능성을 고려한 듯하다. 시장형 공기업을 포함해 대기업 24개, 중소·중견기업 69개, 경제단체·협회조합 7개 등이 모두 원팀이다. 비상 경영, 생존 경영으로 파고를 넘으며 함께 기회를 만들 동력이 필요하다.투자나 수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글로벌 네트워킹이다. 경제외교를 통해 미래 투자 구상에 쓸 만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52명의 각국 정상급 인사와 기업 최고경영자 600여명이 한데 모이는 다보스포럼에도 국내 총수들이 대거 집결한다. 여기에서 세계 경제발전 전망은 물론 기후변화 대응, 디지털 대응 등 당면 이슈에 대처할 지혜가 보일 것이다. 저성장에도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등 반대 사이클로 움직이는 진퇴양난의 시기다. 각국 경제계나 지식인들과 교류하면서 경제 활력과 기업 성장의 활로, 미래 경쟁력에 관한 해법을 찾아오길 바란다. 어려울수록 빛나는 경제위기 극복 DNA의 진가를 다시 한 번 발휘할 때다.

2023-01-11 14:50 사설 기자

[사설] 납품대급 조기 지급, ‘협력사와 상생’ 신호다

상생경영은 기업과 고객, 협력사, 주주, 지역사회의 이익을 아우르는 기업 운영 방식이다. 자금 수요가 몰린 설 명절을 앞두고 두드러진 것이 협력사의 관계, 그 가운데 기존 지급일에 앞선 납품대금 조기 지급이다. 올해는 정초부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신년인사회를 함께 개최하는 등 화기애애했다. 그래서인지 복합 경제위기를 하나 되어 이겨내자는 통 큰 행보가 의미 있게 받아들여진다. 가뜩이나 고금리로 힘든 상황에 어려움을 나눠 극복하겠다는 의지다. 납품대금 선지급을 의례적인 설맞이용 이벤트쯤으로 폄하해선 안 될 것 같다. 10일 기준으로 현대차그룹 2조4000억원, 롯데그룹 7000억원, GS리테일 1800억원 등의 조기 지급을 예고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사외 협력사 자재 대금 1900여억원을 지급한다고 이미 밝혔다. 중소 협력사 결제 대금을 미리 주겠다고 선언한 현대백화점그룹은 거래 중소기업이 1만4000여개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3000여개 협력사가 도움을 받는 셈이다. 현대삼호중공업, KT그룹, 삼성그룹, SK그룹, LG그룹 또한 이러한 결정에 합류했다. 당초 지급일보다 앞당기는 것은 협력사나 가맹점에 실질적인 혜택이 된다. 2·3차 협력사들까지 대금을 일찍 받도록 유도하는 측면도 있다.재계 주요 기업들이 지급일보다 10일이나 20일을 앞당겨 명절 대목 전에 집행하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들로서는 자금 부담을 완화하는 효과가 크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조차 빼앗기리라.’ 조기 지급은 성경에서 유래한 경제의 마태효과를 완화하는 데도 기여할 좋은 신호다. 납품대금 외에 동반성장펀드 운영, 중소기업 대상 100% 현금 결제 등을 도입한 기업도 있다. 각도를 달리해서 협업과제를 통한 대·중소기업 상생형 스마트공장은 좋은 상생 모델이다. 곳간을 열든 상생을 하든 시장 원리와 동떨어져 대기업 팔 비틀기처럼 되면 오래 가지 못한다.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하는 납품단가연동제 등의 현안 역시 그런 기조로 풀면 좋겠다.핵심가치를 무시한 채 갑(대기업), 을(중소기업)만 따지려 들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협력사가 국제 경쟁력을 갖추도록 직원 역량 개발을 지원하거나 일감, 금융, 기술경쟁력, 협력사 동반 진출 등 상생 움직임이 빨라지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다. 중소기업은 납기를 잘 지키는 걸로 보답하면 상생의 선순환이 되지 않을까. 납품대금 조기 지급은 우리 경제의 활력 회복과 성장에 필요한 팀코리아 정신을 보여준 사례다.

2023-01-10 14:18 사설 기자

[사설] CES 2023에서 빛난 기업 존재감 살려야

세계 최대의 기술 전시회다웠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3년 만에 제대로 열린 ‘CES(Consumer Electronic Show) 2023’에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 발전의 잣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줬다. 한국의 두각은 인상적이었다.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빅테크 강자들이 그다지 신선한 감동을 주지 못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세계 최대 전자·정보통신 박람회에 한국 기술을 대놓고 베낀 유사품을 앞세운 중국 기업들과도 비교가 됐다. 삼성, LG, SK, HD를 비롯해 국내 기업 550여 곳이 참여했고 질적으로도 압도했다. 자만과는 다른 자신감을 가질 만한 사례다. 자족감에 그쳐서는 안 되고 미래 먹거리에 접목할 준비를 해야 한다. 특히 IT업계의 별들 못지않게 주목할 것이 있다. 바로 신기술과 신제품을 장착한 비(非)전자 업계의 진출이다. 조선과 건설기계, 철강, 석유화학 부문의 참여에서는 기존 영역을 벗어나 신시장을 찾으려는 안간힘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읽어야 한다. 가전 사업과 거리가 있는 SK그룹, 탄소감축 솔루션과 조선·기계 산업에 IT를 접목한 HD현대도 그러한 예다. 글로벌 투자자와 파트너사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을 것으로 믿는다. 기술 역량을 인정받았다면 일회성 전시에 끝내지 말고 활용해야 한다.또 하나 도출해낼 것은 글로벌 기업들이 단순한 기술과 제품에만 집중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기술 진보를 인간의 문제 해결에 응용한다든지 소비재로만 인식되던 콘텐츠나 엔터테인먼트 산업군을 일상의 영역으로 넓혀가는 점 또한 관심사다. 300여 개 자동차 브랜드가 참여한 부분에서는 단적인 흐름이 보인다. 이럴 때 진입 장벽을 허물고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규제 해소는 꼭 풀고 가야 한다. 단순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가 아니라는 사실은 향후 기업의 미래를 말해준다. 정부가 할 일이 더 넘쳐난다. 국내 벤처·창업기업들이 ‘CES 2023 혁신상’을 쓸어담은 것은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 가능한 기업이 차고 넘친다는 뜻도 된다. 전통적인 전자 분야인 기존 가전제품 시장을 벗어나는 시도는 가장 눈여겨볼 부분이다. 산업 간 경계가 모호해지는 빅 블러(Big Blur)는 갈수록 속도가 빨라진다. 안드로이드 오토로 대변되는 구글카, 혼다 합작 전기차를 선보인 소니카 등도 곧 경쟁 상대다. 이제 혁신성을 갖춘 아이디어와 기술을 비즈니스 모델에 장착할 차례다. 8일(현지시간) 폐막한 CES에서 커진 존재감을 정말 잘 살려야 한다. 미래 청사진을 우리가 못 그리면 주도권을 해외 기업에 빼앗긴다.

2023-01-09 15:14 사설 기자

[사설] ‘노도강’ 전화기 울리지만 시장 전체를 봐야

정부의 규제 완화 패키지로 시장이 설렌다고 보기에는 이른 것 같다. 수도권 규제 해제지역도 전반적으로는 들썩이기보단 대체로 조용한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둔촌주공 재건축단지 관련 문의 전화가 5배나 늘었고 내놨던 급매를 거둬들이거나 급매를 찾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관심이 커졌다는 일면이다.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 지역에는 전화기가 다시 울린다고 한다. 이것이 뉴스가 되는 것은 집값 하락세가 가팔랐던 지역이어서다.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노도강 지역은 하락장으로 거래 단절 여파가 심대한 지역이다. 노원구와 도봉구는 서울 25개 자치구 중 하락률 1, 2위를 다투던 곳이면서 최근엔 패닉 셀링(공포 투매)에 나서는 대표적인 지역이기도 하다. 노도강에 문의 전화가 많다니 그래서 반갑다. 다만 하락 기조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실제 대출 규제 완화 효과의 구조적인 한계를 더 들여다봐야 한다. 가격상승폭이 컸던 만큼 조정폭이 커진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그렇다고 부동산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기본 전제에 너무 매달린 것도 걱정거리다. 서울 아파트 매수심리가 8개월(35주) 만에 반등하긴 했으나 시장에서는 아직 정부를 그런 시선으로 본다.또 계속해서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부담 정도를 나타내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등이 작동하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여신 부담도 만만치 않다. 고금리에서 촉발된 수요 감소를 막아야 시장을 근본적으로 움직일 텐데 말이다. 하방 안전판 구실을 하던 전세 가격이 약세인 점까지 함정이다. 수도권 외곽은 낙폭을 그린다. 세종시, 지방광역시와 중소도시 등 지방 주택시장의 온도 차는 더 논할 게 없이 크다. 규제 대못을 뽑아도 부동산시장과 경제 상황의 불확실성으로 거래를 미루자는 기류까지 형성돼 있다.이런 분위기에서 거래량, 공급량, 심리 등의 발목을 싸잡아 잡는 것이 금리다. 이로 인해 부동산시장 회복 효과가 미미하다. 심지어 대출이자 부담 증가로 집값 추가 하락 우려까지 있다. 실수요·투자수요가 특정지역을 제외한 서울과 수도권 핵심 지역으로 몰릴 걸 예상하기란 별로 어렵지 않다. 규제 카드를 몽땅 던졌다 할 만큼 풀었지만 어떤 규제가 왜 시장을 망치는지 살펴볼 대목이 남아 있다. 당분간 금리 인상 흐름이 유지될 것이고 가계부채 리스크가 있어 어렵겠지만 DSR 등 추가 조치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노도강, 아니면 중저가 주택이 많은 금관구(금천·관악·구로구)가 시장 가늠자는 될 수 있으나 시장 전체 흐름도 봐야 한다.

2023-01-08 14:37 사설 기자

[사설] 5일 풀린 부동산 규제, 시장 경착륙 잘 막아내길

부동산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 및 주택 투기지역에서 전방위 규제 완화 카드가 적용된 5일 시장 반응은 엇갈렸다. 문재인 정부의 규제 대못을 원점으로 되돌린 대책에 분위기는 이번에도 둘로 나뉜다. 진입장벽이 낮아져 거래 정상화가 된다는 것과 고금리로 효과가 제한될 것 등이다. 그런가 하면 서울 마지막 규제지역인 강남3구와 용산이 언젠가 풀리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꿈틀거린다. 어떤 대책을 막론하고 늘 따라다니는 회의론도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망 중에는 비교적 확실한 것과 다소 불확실한 것이 있다. 금융, 세제, 청약, 거래, 정비사업 등 패키지 규제 해제를 ‘해봤자 별수없다’는 시큰둥한 기류도 없지 않다. 높은 관심이 시장에 집중된 자체가 대책이 갓 나온 시점에선 긍정적인 요소가 될 수는 있다. 전매제한과 실거주 의무에서 벗어나게 한 것,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푼 것 등은 잘한 조치라고 우리는 평가한다.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차원이라고 해서 각론에서 물론 좋은 방향으로만 작용하지 않는다. 금리 영향을 적게 받는 현금 보유 유주택 또는 다주택자의 구매력에 기댄 성격 때문이다. 정부의 과도한 시장개입에 따른 본의 아닌 양극화는 경계할 부분이다.정책의 한계가 효과의 한계로 투영되지 않는 게 중요하다. 대출수요 구매 유도에도 고금리 여파로 부동산 급락을 막겠다는 정부의 구상은 삐끗할지 모른다. 전매제한, 실거주, 중도금 대출 제한을 철폐해도 금융환경이 실수요자들에게 나쁜 쪽으로 급선회하면 그땐 활성화의 이면인 투기가 떠오른다. 집값 하방경직성에 대한 기대감이 관망세를 더 짙게 만들 경우 또한 문제가 된다. 부동산이라는 재화가 가격의 하방경직성이 높은 상품이라는 ‘원론’을 잊지 않는 게 좋겠다.가계자산의 상당 부분이 주택 등 비금융자산에 쏠린 점, 이를 추구하는 무주택 실수요자의 존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진입 장벽과 고금리 사이에서 집값 급상승의 롤러코스터를 탈 개연성까지 배제하지 않아야 한다. 아파트라는 상품이 갖는 특성상 투기 안전판, 그리고 다주택자와 실수요자 간 균형 잡힌 시장 관리 기조가 절실해졌다. 여차하면 서울 강남·서초·송파·용산구를 향한다는 전망이 이 시간 이후로 커질 것이 유력하다. 얼마나 매물을 거두고 호가 조정을 할는지 주시하면서 수요 진작의 한계, 투자 수요 및 갈아타기 수요에 초점을 맞춘 정책의 한계를 뚫어야 한다. 집값 하락 가속화에 브레이크를 잘 걸어야 부동산 시장 연착륙과 주거 안정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다.

2023-01-05 14:07 사설 기자

[사설] 식량자급, 식량안보가 K농업 미래다

올해는 윤석열 정부가 편성한 첫 예산으로 윤석열표 정책을 추진하는 원년이다. 비교우위에 치이고 경제논리에 떠밀린 농업·농촌정책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농림축산식품부 업무계획을 보면 식량안보와 농식품 혁신 두 축에 무게를 둔다. 업무보고를 마친 기획재정부 계획에도 청년농 3만명 육성과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이 언급한 푸드테크 산업 육성이 담겼다. 2027년 식량자급률 55.5% 달성 목표에 맞춘 식량안보 예산 증액 등 눈에 띄는 것도 있다. 중장기 식량안보 강화안이 농식량자급률인 것은 두말 할 것이 없다. 이거야말로 빨간불 켜진 국정현안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에 51.9%이던 자급률은 4년차인 2021년에 44.4%로 뚝 떨어졌다. 직불제도 했고 이것저것 하고도 이렇다. 밀과 옥수수 자급률이 0%대다. 식량계획을 다시 짜야 할 심각성이 여기 있다. 쌀만 과잉공급되는 수급 불균형으로 쌀값 안정 하나 못 시키는 게 현실이다. 이전의 실천방안, 계획들이 입증하듯 식량자급률은 법으로 못박는다고 높아지지 않는다. 농가인구와 경지면적을 비롯해 식량생산 기반을 끌어올리지 않고는 안 되는 문제다.한국농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당연히 높여야 한다. 식량도 교역 상품이 된 지 오래다. 극소수 다국적기업이 식량의 유통과 재가공, 곡물 거래를 통제·조정하는 시대다. 식량 가공 시장 역시 소수 대기업이 독점한다. 주요 식량 작품 수출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도 식량가격을 부채질했다. 식량안보나 농식품 혁신, K식품 비전은 업무보고용 수사(修辭)가 아니다. 식량자급률 제고는 급속히 번지는 식량보호주의에 관한 대처법이다. 수출도 농식품산업 등 여러 측면에서 농업의 새 미래다. 14년 전에도 다짐했던 수출 100억달러 목표에 매달려 있는 우리가 깊이 각인할 점이다. 농산물에서도 세계 시장점유율을 따져봐야 할 날이 곧 온다.정 장관이 꺼낸 전략작물직불제도 그저 골고루 생산한다는 데 멈춰선 안 된다. 세계 식량 가격 상승이나 공급 불안과 연계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 공급 부족, 물가 안정을 구실로 수출 제한을 강행하는 국가가 늘어간다. 국제 식량 시장과 공급망, 국가 안위와 직결된 식량 무기화의 전 단계를 엿보게 한다. 신성장 4.0 전략 중 도심형 수직농장 활성화도 의미를 부여하자면 세계 식량정책에 맞춘 식량안보와 연결되는 사안이다. 해외의존도를 낮추는 목표를 넘어 K농업도 주요 식량 생산국들을 경쟁국으로 보는 인식의 변화가 요구된다. 농업도, 농정도 혁신해야 한다. ‘외부 충격에도 굳건한 식량주권을 확보하는 첫 정부’가 헛구호가 되지 않길 바란다.

2023-01-04 14:02 사설 기자

[사설] 원가관리 안 되는 원자재 가격 급등, 손놓고 있나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원가율이 높아진 건설사들의 시름이 전방위적으로 깊어지고 있다. 원자재·노무·장비 등 공사비를 종합한 건설공사비지수가 2000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140을 넘어선 것도 초유의 일이다. 시공능력평가 상위 10곳 중 4곳이 원가율 91%를, 20위부터 40위 사이의 중견건설사의 절반은 원가율 90%를 넘어선다. 원자재와 유가(운반비) 인상 타격에서는 대형사, 중견사, 중소건설사 구분이 무의미한 수준이다. 치솟는 공사비로 원가관리 능력 밖이다. 이건 원가관리가 어렵다는 정도가 아니다. 원자재 가격, 유류비와 인건비 부담으로 매출에서 원가 비중이 높아 공사를 할수록 손해 입고 셧다운 된 현장이 전국 곳곳에 숱하다. 봄에는 레미콘, 여름에는 타워크레인, 가을에는 시멘트, 겨울에는 화물연대 파업 등 지난해 같은 건설현장 악재가 아니라도 바람 잘 날 없다. 미분양 급증에 레고랜드발(發)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금경색까지 겹친 터에 미국발 금리 인상, 또 해가 바뀌어도 여전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에 따른 세계적 원자재 가격 인상에다 대규모의 부동산 PF 부실화가 가팔라졌다. 자금경색에 종합건설사 폐업 신고가 줄을 잇고 있는데 정부가 뒷짐을 지거나 그렇게 보여서도 안 된다.건설사 간 원가율 편차는 있지만 원가율 최고치 97.22%는 건설업황이란 말을 꺼낼 형편조차 못 된다. 철근과 후판, 레미콘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은 5년래 최대치다. 원가관리에 이 이상 타격을 입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 건설자재 생산·유통정보망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건설공사에 투입되는 직접공사비도 줄여야 하지만 호황기에 도입된 부동산 관련 규제 정책도 풀어야 한다. 건설물가 변동, 즉 원가상승에 따른 계약금액 변경제도가 작동하지 않는 것 역시 난제다. 자재비 상승분을 공사비에 적기 반영해 오롯이 건설사 몫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연쇄적인 원자재 가격 인상은 유동성이 부족한 중견건설사나 일부 중소 건설사들을 올해 상반기에도 부도로 내몰 것이다. 공급망 교란에 기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을 방치하면 그 직격탄은 건설업계를 넘어 실물경제 둔화를 겨냥하게 된다. 현금 유동성이 부족한 중견·중소 건설사의 자금 경색은 이미 한계다. 지방은 더 현저히 떨어진다. 미계약·미분양 주택을 시장에서 흡수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건설물가 변동과 수급 불안에 대한 피해 보전 방안이 절실하다. 대외 경제상황 때문이라면 국제 공급선 다변화로 대응하면서 건설자재 공급망을 점검해야 할 것이다. 원가관리가 안 돼 건설사의 타격이 불가피하다면 대책 또한 불가피하다.

2023-01-03 14:19 사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