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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설] 정책 엇박자 ‘실거주 의무’ 왜 방치하나

부동산 규제 빗장이 또 하나 풀리나 싶더니 스텝이 꼬이기 시작한다. 분양가상한가 주택에 대한 실거주 의무 폐지 방안이 그것이다. 주택법 개정안 심사 논의는 일단 보류됐다. 여야 이견으로 26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소위원회에서 첫발도 떼지 못했다. 책임이 큰 쪽에 묻는다면 같은 취지로 추진된 정책의 효과는 무시하고 부정적인 자세를 취하는 야당의 엇박자 때문이다. 이른바 갭투자(전세금과 매매가 차액만 내고 세입자가 사는 집을 매수) 증가 우려가 있는 점은 인정된다. 다만 그것이 신규 분양 아파트에 대한 실거주 의무 폐지를 논의조차 하지 않을 절대적인 사유는 아니었다. 국토교통부가 새해 업무보고에서 밝힌 2~5년 실거주 의무 폐지와 전매제한 완화 기조는 나란히 유지해야 할 정책이다. 분양시장 한파 속에 부동산 시장 경착륙을 막는 것이 지엽적인 목표일 수는 없다. 청약에 당첨된 수분양자가 세입자를 들여 잔금을 치르고 분양권을 사거나 팔아 빈사 상태의 분양시장을 살린다는 규제 완화책의 목표도 중요하다. 전세사기 여파에 가려졌을 뿐이다. 안 그래도 분양시장 기상도는 갬 수준도 아니고 잔뜩 흐리다.수도권 기준 최대 10년이던 전매제한의 완화는 정부의 시행령 개정만으로 가능하다. 실거주 의무 폐지는 주택법 개정이 따라야만 한다. 지난 2월 발의된 개정안은 입법권을 장악한 야당의 동의가 절대적인데 여태 정확한 당내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듯하다. 책임 있는 정당이라면 전매제한 기간이 완화됐어도 실거주 의무 기간을 채우라는 식의 법안 보류가 분양시장에 미칠 파장쯤은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 다른 화약고도 있다. 전세사기, 깡통전세의 문제가 있다면 어정쩡하게 두지 말고 당당히 보완하는 것이 옳은 자세다.두 법은 무엇보다 지금 상충한다. 실거주 의무가 남아 있으면 전매제한 완화는 실효성이 확 떨어진다. 둘은 도저히 따로 놀게 방치할 수 없는 정책이다. 규제지역 해제, 금융 대출과 재건축 기준 완화에 이어 분양권을 거래하는 길까지 터준 것은 연이은 규제완화의 실효성을 살리기 위해서다. 시장 골격을 허무는 포퓰리즘과 엄연히 다르다. 다주택자 취득세 중과를 완화하는 지방세법 개정안 통과에도 초당적으로 입법에 협조해야 한다.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주택법 개정안은 내달 10일 재논의 이전에라도 처리하든지 처리에 합의해야 할 것이다. 실거주 의무 유지와 분양권 전매불가 공존은 모순어법인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속절없는 무대책이다. 건축법 개정안이 취지대로 서둘러 국회를 넘어야 한다. 시장이 혼란스럽다.

2023-04-27 14:00 사설 기자

[사설] EU 탄소국경 법안 승인, 산업계 지원 불충분하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가 돌이킬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너고 있다. 유럽연합(EU)이 25일(현지시간) 가장 다국적으로 적용되는 탄소국경제도 법안을 승인했기 때문이다. 탄소 감축이 명분인 EU 집행위원회, 유럽의회, 이사회의 정치적 합의안이 공식화됐다. 역내 수준의 탄소가격을 역외 수입품에 부과하면 우리 수출 기업에 큰 부담으로 돌아온다. 시행 전 전환기간은 있지만 대응엔 길지 않은 시간이다. 국내 기업에 미칠 영향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가령, EU 수출액이 제일 많은 철강(43억달러, 2021년)에 관세를 9.7% 부과하면 수출효과는 20% 이상 감소한다. 수출액 5억달러인 알루미늄도 탄소배출량이 높다. 시멘트(140만달러), 비료(480만달러), 전력(0), 수소(0)도 먼저 부과되는 품목일 뿐이다. 탄소배출량 산정과 인증서 감면 등 세부 이행법안 마련 과정에서 정부는 산업계와 상시 소통하고 EU 측과는 양자·다자회의를 거쳐 목소리를 내야 한다. 유기화학제품 등 향후 추가될 품목까지 고려한 탄소배출 감축 기술개발 노력도 필요하다. 탄소배출권 가격은 계속 상승할 것이 확실시된다.제도의 목적은 탄소누출 억제에만 있지 않다. 역외 경쟁업체들의 탄소비용 지불로 역내 산업경쟁력 저하를 보완할 의도가 숨어 있다. 30년 전부터 재생에너지로 전환 중인 EU의 자국 산업 보호용이기도 하다. 안 그래도 우리 기후대응 성적은 카자흐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다음으로 낮은 낙제점이다. 국제 평가기관 저먼워치 등은 한국의 기후대응 순위를 60개국 중 57위로 친다. 그런데 기후위기 입법엔 여야 따로 없이 소극적이다. ‘퍼스트 펭귄’처럼 위험을 무릅쓰고 전진해도 시원찮은데 말이다. 정부의 제1차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계획도 좀 안이하다. 가격경쟁력, 수익성 저하와 직결된 문제인데 수출의존도가 높은 산업계에 대한 지원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산업계의 역량을 키우면서 차별적 조항은 미리 집요하게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 탄소집약도가 높으면서 준비가 뒤늦은 우리로서는 전환기간(2023~2025년)이 지나도 어려움은 가중된다. 탄소집약적인 제품을 비EU국가에 수출하는 등의 수출 포트폴리오 전환을 포함해 지혜로운 대처법이 요구된다. 정부는 한·일 공동의 이익에 부합하는 대응을 강조하지만 일본도 국제기후클럽을 만든 G7 선진국그룹의 일원이다. 산업과 경제에 탄소장벽을 치겠다는 세계질서의 선언인 탄소국경제도의 다른 얼굴도 꼭 기억해둬야 이롭다.

2023-04-26 14:01 사설 기자

[사설] 경제활동인구 증가 톱3 지역이 시사하는 것들

인구 감소세와 함께 줄어드는 것으로만 알려진 경제활동인구가 증가하는 곳도 있다. 올 3월 기준 최근 5년간 경제활동인구 증가율이 높은 세종과 경기, 충북이 그런 경우다. 세종은 47.22%로 증가 폭이 가파르다. 경기와 충북은 각각 10.84%, 9.84%였다. 리얼투데이가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는 인구와 연관성이 있고 지역적 특색도 조금씩 다르다. 그런데 증가 이유가 일자리라는 공통점은 발견된다. 새롭지 않은 사실처럼 보이지만 실증적인 자료다. 성장엔진이 두텁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는 대목이다. 이 기준이 물론 절대적이지는 않다. 다른 조사에선 상용 근로자 수 증가 폭이 경기, 대구, 인천 순으로 높게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세종에서 대규모 공공기관 이전을 통한 종사자 수 증가가 결정적인 몫을 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다. 분석한 대로 2위인 경기는 산업단지 조성과 탈(脫)서울이 작용했다. 3위 충북은 청주테크노폴리스, SK하이닉스, LG생활건강 등이 입주한 청주시에 힘입었다. 간과하지 않을 것은 경제활동인구는 경제 주축 세대라는 점이다. 부동산 전문 리서치업체는 청약시장이나 주택 수요를 겨냥했지만 노동시장에 줄 충격을 가늠하기는 어렵지 않다.전체 증가율의 결은 다르다. 같은 충북도내에서도 지역 간 양극화는 크게 벌어진다.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대전시 안의 경제활동인구에서 대덕구(+6.6%)와 유성구(+6.0%), 동구(+2.3%)는 구분이 된다. 차이보다는 인구 감소에 따르는 생산인구감소라는 보편적인 흐름 전체를 읽어야 한다. 빨라지는 인구 감소 속도만이 아닌 경제활동인구 감소라는 내용은 우리가 마주하는 위기다. 중소도시, 농어촌으로 가면 심각하다. 젊은 세대 인구가 적은 인구구조발 경제위기는 곧 경제안보의 문제다. 경제활동인구 증가 지역에는 의미심장한 힌트가 들어 있다. 지역 일자리 창출이 그것이다.5년 전부터 생산가능인구는 줄기 시작됐다. 20년간 19%나 감소한다는 전망의 확실한 의미를 깨닫고 가야 할 것이다. 좋은 일자리와 주거 안정이 핵심 역할을 한다. 여기에 특별한 기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고용, 교육, 문화, 주거 해결 없이는 경제 핵심 축이 무너진다. 경제활동인구 증가는 저성장 해결의 해법이다. 사회경제적 요인, 여성 사회진출, 고령자 취업 등을 망라한 실효성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세종, 경기. 충북 세 지역이 시사하는 바는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고 고용의 질은 높이라는 점이다. 인구감소 원인이 출산율 감소라는 순환논법만 언제까지 되풀이할 수는 없다.

2023-04-25 15:10 사설 기자

[사설] 기업인 동행 방미, 첨단기술동맹답게 성과 내야

윤석열 대통령의 5박 7일 미국 국빈방문 키워드는 확장 억제, 경제안보 강화로 압축된다. 25일 한국전쟁기념비 참배, 26일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시곗바늘도 이를 가리킨다.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해 성사되는 자리라 그렇긴 하지만 경제에서나 안보 면에서나 ‘동맹’이란 두 글자가 유난히 자주 쓰인다. 외교, 안보 협력과 경제적 성과물을 바라보는 국민 기대치가 그래서 크다. 군사 안보 중심의 동맹 영역을 첨단기술동맹으로 넓히겠다는 데 대해서도 관심도가 지대하다. 주목되는 것은 국내 주요 그룹 총수와 6대 경제단체장의 동행, 122명에 이르는 역대 최대 규모의 경제사절단이다.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 경제단체 및 협회단체, 공기업까지 사절단으로 꾸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워싱턴과 보스턴에서 소화할 투자신고식과 첨단과학기술 협력 방안 논의 등 7건의 경제 일정도 관심사다. 우주 분야 협력, 첨단기술 분야 인재 양성 지원,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 등 안건들을 어떻게 구체화할지에도 촉각이 쏠린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미국 정·재계 관계자들과 보조금 신청 과정의 자료 제출범위 조정 등에 관해 맨투맨식으로 협상할 것도 있다. 규모보다는 역시 성과다.즉, 한국 기업이 실질적인 이득을 낼 협력 보따리다. 이는 저절로 풍성해지지 않는다. 신뢰를 기반으로 해도 국익 보호를 최우선으로 할 것이다. 협상력으로 얻어야 할 요소가 적지 않다. 기대이익을 초과하게 되면 미국 정부와 공유하는 내용의 초과이익 환수와 같은 독소조항은 꼭 풀어야 한다. 이럴 때 쓰는 ‘공유’는 일방적이다. 반도체 시설 접근권 허용은 원천기술 유출로 이어질 소지가 다분하다. 수출 포트폴리오 다변화, 공급망, 첨단기술, 투자 유치는 기업·기관 간 양해각서로만 모두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건 몰라도 양국 이해관계가 상충하면서 우리 기업의 명운이 걸린 사안은 매듭을 지어야 한다. 인플레이션감축법, 반도체지원법(칩스법)이 바로 이 경우다.윤 대통령 방미 성격을 두문자로 따면 ‘안경미’로 표현할 수 있겠다. 안보와 경제와 미래다. 군사 안보 중심이던 안보동맹의 영역을 경제동맹, 미래동맹으로 넓히라는 뜻이다. 글로벌 네트워크 속에서 동맹은 서로의 이익이나 목적을 위해 같이 가는 것이다. 일방의 이익만 추구하면 성립이 어려운 경지가 동맹이다. 첨단기술동맹이라면 더 말할 나위 없이 호혜적이어야 한다. 국민적 관심은 경제다. 반도체와 전기차 등의 숙제를 풀면서 속이 꽉 찬 성과로 국민 기대에 화답하길 기대한다.

2023-04-24 14:02 사설 기자

[사설] 파운드리 전쟁, 지원금… 강화된 정부 역할 필요하다

‘반도체는 2년마다 집적도가 배로 늘어난다’는게 무어의 법칙이다. 인텔 창업자 고든 무어의 지키기 어려운 예언을 위한 삼성, TSMC, 인텔 등 반도체 업계의 패권경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계의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반도체 업계는 전국시대를 방불케 하는 각축장으로 변했다. 미국, 유럽, 중국은 반도체 보조금을 뿌릴 준비가 끝나간다. 자국 이익 극대화에 방점을 둔 이상, 잘못 맛들이면 ‘독이 든 사과’처럼 되기에 신중해야 한다. 유럽연합(EU)까지 본격 참전했다. 반도체 생태계 자립을 넘어 글로벌 시장 점유율 20%를 목표로 잡는다. TSMC를 끌어들이려 하는 등 무시할 수 없는 변수가 많다. 삼성전자와 대만 TSMC가 주도하는 2나노 초미세공정을 둘러싼 파운드리 선단 공정 경쟁은 숨가쁘다. 기술력의 격차는 있지만 미국 인텔과 일본 라피더스 등의 도전에도 긴장해야 한다.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를 추격하려면 대규모 설비·기술 투자가 필요하다. 메모리 분야의 영업이익 감소가 발목을 잡을 수 있기에 더 외롭고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미국과의 이번 정상회담은 반도체 하나만 해결해도 성공한 회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이든 대통령 방한 때의 “반도체가 한미 동맹의 핵심”이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에 미국이 응답할 차례라고 본다. 반도체 지원을 받기 위해 영업비밀을 미국 정부에 넘긴다는 것은 곤혹스러운 독소 조항이며 족쇄다. 첨단기술이 아닌 간접 노하우일지라도 민감한 정보인 건 마찬가지다. 기업 득실을 꼼꼼히 따져보고 단안을 내려야 한다. 제안에 응답할 때도 우리 반도체 기업을 보호할 조치는 다해야 할 것이다. 또한 메모리와 비메모리 반도체를 분리해 메모리 반도체는 규제에서 제외하라고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불확실성은 해소되지 않았다.눈에 보이지도 않는 선폭의 회로를 집적하기 위한 반도체 첨단기술 경쟁이 국가대항전으로 번지고 있다.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 팹리스와 파운드리의 중간 역할인 디자인하우스, 그리고 파운드리로 이어지는 생태계의 안정이 긴요하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관련해서도 중국에 대한 광물 의존도를 낮출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한다. 미국 보조금을 받으려면 민감한 정보를 제공하는 반면 우리가 얻어낼 건 뚜렷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속을 들여다본다며 열라는 판인데 정상회담에서 반도체지원법을 논의하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 아닌가. 글로벌 시장 선점을 위해 기업도 전략 수립을 잘해야 하지만 강화된 정부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는 지금 미래를 놓고 다투는 격전에 돌입했다.

2023-04-23 14:31 사설 기자

[사설] 우선매수권, 실질적 구제 대책인지가 중요하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극단적 선택이 잇따르는 가운데 정치권이 앞다퉈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국민의힘과 정부는 주택 경매 때 우선매수권을 주고 저리대출을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20일 밝혔다. 인천 미추홀구를 비롯해 서울 강서구, 경기 동탄신도시 일대 등 어느 지역에서든 피해자가 희망을 버리는 일이 없으려면 피부에 와닿는 대책이어야 한다. 태스크포스(TF) 구성, 특별법 제정, 경매 절차 중단 등 어떤 특단의 대책이든 때늦은 대응이란 걸 모르진 않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때부터 전세사기를 가장 긴급한 민생 현안으로 본 것 치고는 사실 너무 늦다.당정은 이날 조직적 전세 사기에 대한 초강수 조치도 예고했다. 범죄단체 조직죄를 적용해 범죄 수익을 전액 몰수 보전 조치한다고도 한다. 대책의 상당수는 처벌과 예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임차보증금을 지방세 체납액보다 우선 변제받을 수 있는 지방세기본법 개정안 등 발의된 법안, 전세사기 관련 특별법 제정에도 시간을 단축해야 한다. 전세사기 피해자 거주 주택에 대한 경매·매각 유예도 금융기관으로서는 챙겨볼 사항이 많다. 업권별 상황에 맞춰 대출의 기한이익 상실 여부, 경매 여부 등을 파악하고 나서 추진해야 한다. 이미 터진 일부터 잘 수습하는 것이 중요하다.어떤 제도화도 갭투자의 부메랑을 온몸으로 맞고 있는 피해자들부터 적용돼야 한다. 신속한 피해 복구와 주거 안정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끝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예컨대 경기도 오피스텔 매매가격 하락률이 전국 최고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추가 피해 경보로 봐야 할 조짐이다. 이럴 때 국가가 역할을 다해야 하지만 보증금 전액 반환이라든지 공공매입에는 일정한 선을 그을 수밖에 없다. 전세사기 물건이 선순위 채권 등으로 피해자에게 돌아갈 금액이 적다는 한계도 있다. 어쨌든 지금 필요한 것은 실제 구제 대책이다.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으면서도 또 다른 피해가 없어야 한다. 소방수로 투입된 은행권과 상호금융권이 피해를 덮어쓰거나 책임을 떠넘겨 받아서는 안 된다. 경매 적기를 놓쳐 집값이 하락하면 누가 감당하는가. 금융사가 건전성 관리를 위해 전세대출 요건을 강화하면 그 영향은 또 일반 세입자에 미친다. 이미 벌어진 사건에 대한 경매유예 조치 역시 피해자의 눈물을 닦는 완벽한 솔루션일 수는 없다. 전세사기를 개인 아닌 사회 문제로 봐야 하는 이유다. 입법은 필요하나 시간이 걸린다. 더 확실한 경매 유예, 경·공매 중단 기간의 특정을 포함한 전방위적인 보완책이 나와야 한다. 당정청, 정치권이 우선매수권 등 해법에 지혜를 모을 때다.

2023-04-20 14:01 사설 기자

[사설] 유통 규제가 e커머스시대 상생 전략일 수 없다

오프라인 유통 채널에 집중된 규제가 전자상거래·온라인쇼핑(e커머스) 업계로 확장되는 추세다. 대형마트 영업시간 규제와 월 2회 강제 휴무를 의무화한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을 제정한 지 12년이 흘렀다. 골목상권을 살리자는 의도에는 경제민주화라는 정치적 이념까지 섞였다. 중요한 건 전통시장 상인과 골목상권의 영세 소상공인들에게 유의미한 반사이익이 안 나타났다는 점이다. 시기적으로 이 기간에 온라인 플랫폼은 급격한 성장을 불러왔다. 지난 10년간 유통시장은 크게 보면 대형마트 대 전통시장에서 온라인 시장 대 오프라인 시장의 경쟁으로 바뀌었다. 대기업(대형마트)과 소상공인을 대립 관계로 몰아가며 갈등을 불러오는 정책은 폐기했어야 한다. 21대 국회가 출범하고 지금까지 발의된 유통법 관련 법안은 20개에 달한다. 정치권의 복잡한 표 계산에 얽히다 보니 유통 패러다임에 맞지 않는 겹겹의 규제는 오랫동안 그대로다. 의무휴업과 온라인 배송 금지 등의 유통 규제로 약자와의 상생이 가능하다는 발상부터 틀렸다. 새롭게 변화하는 유통산업 환경의 흐름을 정면으로 놓친 셈이다.대형마트의 존재로 전통시장, 골목상권이 기능을 잃었다고 보는 이분법적 사고로 상생 전략을 짠 것부터 무리수였다. 규제 이후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점유율은 각각 24%, 33% 줄었다. 처음부터 정량적·구체적인 정책 목표가 없는 유통 규제였다는 방증이다.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모두 패자로 만드는 유통 규제의 실효성을 점검할 때다. 경제적 당위성이 있는 선택이 아님은 이미 판명이 났다고 본다. 대·중소 유통 상생의 방향을 규제에서 찾는 발상 자체가 문제다. 비유를 들면 유명 레스토랑의 문을 강제로 닫으면 분식가게를 찾는다는 식 아닌가. 이렇게 하면 기업과 소비자만 힘들게 한다.대형마트와 e커머스 기업의 영업 규제가 경제유발효과, 고객 편의성 저하 등에 미칠 영향까지 생각하며 상생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유통학회가 19일 개최한 유통 규제 정책평가와 유통산업 상생발전 세미나에서도 효과는 적고 갈등을 키운 규제의 문제점과 대안들이 잘 제시됐다. 유통 구조를 무시하고 새 성장동력을 찾는 데 뒷전이다 보니 의도를 빗나가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모두 손해를 본다. 차별화되고 조직화 역량을 키우는 정책이 요구된다. 유통산업의 진흥과 발전, 소비자 선택 폭 확대와 편익 증진 등을 다각도로 살펴야 할 것이다. 유통 채널에 대한 규제 확장이 아닌 미래성장 산업으로 인식하고 상생과 산업발전을 꾀하는 게 합당한 자세다.

2023-04-19 14:19 사설 기자

[사설] ‘예타 완화법’ 처리하지 않길 잘했다

사회간접자본(SOC)과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를 더 쉽게 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상정하지 않은 것은 바른 선택이었다. 내년 총선을 앞둔 시점이다. 지금 풀면 타당성과 경제성의 사전 검증과 특정지역 쏠림을 방지하는 지역균형이라는 장점마저 사라진다. 필요성으로 말하자면 대형 신규 공공투자사업을 면밀하게 사전 검토하는 예타 제도 강화가 도리어 맞는 일이다. 오해가 아니라 실제로 선심성 지역 사업 챙기기가 남발될 여지가 많아서 그렇다. 미뤄두고 숙고해야 옳다. 지난 12일 국회 기재위 소위에서 이의 제기 없이 만장일치로 통과시킬 때만 해도 여반장, 즉 손바닥 뒤집기나 다름없이 쉽게 여겨졌다. 17일 기재위 전체 회의와 4월 본회의 처리는 일사천리로 진행될 분위기였다. 예타 대상 기준 금액을 총사업비 500억원, 국가 재정 지원 300억원 이상에서 각각 1000억원과 500억원으로 올리는 것은 합리적인 일면도 있다. 대규모 국가 재정이 투입되는 사업에 대한 예타 요건이 제도를 도입한 24년 전(1999년) 기준이란 측면에서는 설득력이 전혀 없지는 않다. 경제 규모도 커졌다.그러나 총선 포퓰리즘이란 오해, 총선용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운가의 시선에서 보면 이야기가 확 달라진다. 도로, 철도 등 총사업비 1000억원이 넘지 않는 경우, 사업성을 안 따지고 추진한다면 선거에 유리한 지역 사업을 챙기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가 있겠는가. 2017년부터 5년간 예타 면제 사업에 들어간 재정만 무려 107조204억원을 헤아린다. 대규모 복지사업의 시범사업 우선실시, 예타 면제 사업 사후 적정성 재검토 등 개편 방안까지 내놓고 이러니 더 미심쩍다. 포퓰리즘(대중주의)이 아니라 포퓰러리즘(대중영합주의)으로 흘러가는 게 문제다. 재정 부담을 수반하는데 재정 준칙에 부정적 시각을 갖는 것은 무엇보다 이해하기 힘들다.과학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현행 예타 면제의 일상화가 가져올 결말을 예측하기란 어렵지 않다. 예타 사업이면서 적자에 허덕이고 파산하는 등 예산낭비 사업은 셀 수 없이 많다. 본래 목적인 재정의 효율적 운용은 온데간데없다. 기준을 풀면 앞을 다퉈 선심성 지역 사업 챙기기에 뛰어들 게 뻔하다. 문재인 정부에서 사실상 유명무실화돼 재정 낭비를 부른 예타 제도를 손질하긴 해야 한다. 그러나 대형 신규사업의 무분별한 착수에 따른 예산 낭비 방지 차원에서는 그 방향이 꼭 완화는 아니다. ‘예타 완화법’ 처리의 잠정 보류 이후 최우선으로 할 일은 정부 지출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재정 준칙 마련이다.

2023-04-18 14:32 사설 기자

[사설] 한전 송전시장 민간 개방 더 신중해야 한다

한국전력공사가 독점하는 송전망 구축에 변화가 예고된다. 민간자본을 끌어오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거론되는 서해안 종축 해상 초고압직류송전망(HVDC) 사업이 첫 민간 송전투자 모델이 될지 주목된다. 공공 전력망을 민간에 개방하는 사안이라 아무래도 조심스럽다. 재무적 어려움 탓이지만 어느 단계든 공급 과정의 독점을 푼다는 것은 상당히 복잡한 문제다. 한전이 독점하는 송전망 시장에 민간 참여로 물꼬를 터줄 수밖에 없는 사정은 이해한다. 국가기간산업의 이름으로 손해를 감수하며 전기를 팔다 생긴 일이다. 한전 사업 역량과 건설 여건상, 향후 증가가 예상되는 송전설비 건설사업으로 확장될 수도 있다. 전기요금 현실화가 지연되다 보면 또 한전 민영화가 거론될 것이다. 정부는 선을 긋는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회 답변에서 “전체 경영권, 소유권을 완전히 넘기는 민영화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기도 했다. 그럼에도 민간투자 규모가 커질수록 수면 위로 떠오를 민영화 이슈를 완전히 잠재우진 못할 것 같다.상세한 민자사업화 계획은 10차 송변전 설비계획을 기다리면 확실해지겠지만 그 이후가 문제다. 시장 원리에 입각한 원가주의 요금을 채택하지 않는 한, 천문학적 적자 행진을 못 막기 때문이다. 전력 구입비와 전력 판매액의 불균형, 비용이 매출보다 큰 구조를 그냥 덮어두면 민간투자 유치는 멈출 수 없는 대안으로 남는다. 한전의 독점적 전력 판매 방식은 투자받는 대신 시장을 여는 식으로 허물어질 것이다. 그러다 보면 송전망 사업의 돌파구에 그치지 않는다. 민영화 논란이 점화되는 과정에서 전력산업을 민간 경쟁 체제로 하고 전기료는 정부와 협의하는 반(半)민영화 모델도 제기될지 모른다. 민공 합작 1호 프로젝트 향배가 더 주시되는 이유다.서해안 송출과 비슷한 모델은 외국에도 있다. 민간투자사업으로 추진한 영국은 근해송전망이 그것이다. 유사한 민간투자 방식은 미국과 호주에도 있다. 그런데 조심할 부분이 많다. 외국 사업자에게 송전과 배전은 넘기지 않는다는 걸 어떤 철칙으로 삼아야 한다. 전력 송배전에 외국인 지분한도를 철폐하고 에너지 시장까지 추가 개방한 필리핀의 경우를 보자. 기간산업이 중국의 놀이터가 되다시피 했다. 송배전 건설비용을 감당할 여력 부족으로 대기업 등의 손을 빌리는 방식은 전면적 민영화와 당연히 다르다. 하지만 송전 투자의 민간시장 개방부터 신중을 거듭할 필요가 있다. 송전뿐 아니라 발전, 배전, 판매 전 과정에서 에너지 안보까지 생각해야 한다. 그로 인해 재정이 멍들었지만 달리 국가기간산업이 아니다.

2023-04-17 14:14 사설 기자

[사설] PF발 건설사 위기 실체 제대로 보고 있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이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앞으로 일어날 사업성, 수익성을 판단해 그 가치를 믿고 사업자금을 대출해주는 금융기법의 속성상 부동산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미분양 물량이 쌓이고 원자재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면서 수익률이 악화된 건설사의 위기는 점점 현실로 옮겨오고 있다. 건설업계는 심한 몸살을 앓는 중이다. 1·3 대책 등 규제 완화 조치 단행도 자금 여력이 부족한 영세 건설사엔 힘이 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주택시장 침체로 문 닫는 건설사가 속출한다. 종합건설사, 전문건설사를 다 포함하면 올해 폐업 신고는 1000곳을 넘어선 지 오래다. 건설업체 줄도산 행렬이 시장이 미치는 영향을 안이하고 한정적으로 보는 건 아닌지 의심된다. 차후 들어오게 될 분양수익을 담보로 한 PF 대출 부실화는 명확해진 사실이다. 건설사, 시행사뿐 아니라 금융기관의 자산건전성과 유동성까지 위협받지 않게 해야 한다. 부실 여파가 닥쳤는데 부실을 우려하지 않는 것은 가장 잘못된 대처법이다.작금의 법정관리 사태가 말해주듯이 규모 있는 건설사들까지 고전하는 양상이다. 전국 미분양 주택은 7만5000가구를 넘어섰다. 대출 이자 부담이 겹치면서 유동성 리스크는 건설사 다수의 문제가 됐다. 확대해석을 하지 않고 지금 이대로도 전국의 시장 실태는 실로 엄중하다. 상황에 비해 당국의 대응은 미온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건설산업의 위기나 붕괴를 크게 걱정하지 않는 태도다. 하도급 업체, 일자리 문제로까지 시야를 넓히면 그렇게 한가할 때가 아닐 터인데 말이다. 부동산 경기를 넘어 한국 경제 전반을 위협하게 마련이다. 자금 구조가 취약한 PF 대출 한파의 심각성부터 인식할 때다.제2금융권 부실은 더 걱정이다. 증권사나 캐피털사가 개발업체에 빌려준 토지 매입 자금(브리지론)만 해도 21조원에 달한다. PF 대출 연체율은 3월 들어 1.19%로 뛰었다. 증권사 PF 대출은 연체율이 10%를 넘어 위험수위다. 이자를 못 내는 지방 소재 건설사는 17%를 헤아린다. 악성 미분양 아파트를 비롯해 미분양 위험을 떨어뜨려야 할 절박한 단계다. 금리나 세제 문제로부터 시작해 부동산 경기 전체까지 보는 실질적인 대책이 아쉽다. 대출 잔액이 130조원에 육박하는 모든 부동산 PF를 살리라는 뜻이 아니다. 미분양 물량 10만 가능성을 공식화하기 전에 PF 대출을 잘 관리하자는 것이다. 혹시라도 과거 2009년 위기 때의 16만여 호보다 양호하다고 팔짱 끼지는 않길 바란다. 위기의 뇌관이 되지 않기 위해서다.

2023-04-16 14:12 사설 기자

[사설] 중국 리오프닝이 왜 기업 매출·수익 도움 안 될까

중국 경제활동 재개(리오프닝)가 우리 경제와 기업 경영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얼마만큼일까. 기대감보다 크지 않다. 이는 여러 각도로 시사점을 준다. 소비재 중심으로 중국 내수 경기 개선이 가속화된다 해도 우리 수출 주력 품목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중국이 경제 회복을 해도 매출·수익에 미칠 효과는 제한적이다. 때로는 오히려 부정적이다. 중국의 기술력이 높아질수록 점점 그렇다. 이래저래 중국 소비 전환 속도만 지켜볼 수 없게 됐다. 수출 추이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그 너머까지 내다볼 시간이다. 반년 넘게 수출 하락세가 이어진 것, 4월 첫 열흘간 수출이 1년 전 대비 30% 넘게 줄어든 것 모두 그 원인이 중국에 있다는 설정 자체를 바꿔야 한다. 지난달 수출에서의 중국 비중 20% 붕괴를 ‘최대교역국 중국’이란 의존적 등식에서 벗어나는 신호로 삼으면 된다. 대중국 수출이 10개월째 ‘죽 쑤는’ 것은 사실이다. 중국 방역정책과 무관하지 않으나 코로나 팬데믹과 포스트 코로나의 이분법에서 좀 떨어질 줄 알아야 한다. 한국의 대중국 무역흑자는 5년 전부터 빠르게 줄어간다. 판이 뒤집히기 전에 국익에 맞게 선제적으로 뒤집을 필요도 있다. 스스로 만들 ‘터닝 포인트’다. 중국과의 교역에서 흑자만 생각하던 시대는 갔다.중국과 관련된 미국 정부의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세부지침에도 낙관은 금물이다. 1~2년 새 바뀔 조건에 정신 차리고 대비해야 한다. 핵심광물도 2025년부터 ‘외국 우려 단체’에서 조달해서 안 된다고 못박고 있다. 원자재의 국산화와 다변화도 발등의 불이다. 그뿐 아니다. 최고의 우리 무역흑자국이던 중국이 지난해 22위로 떨어졌다. 올해는 최대 무역 적자국이다. 안이하게 다뤄선 안 될 추세들이다. 무너지는 공급망, 글로벌 분업체계에 대해서는 정부와 업계가 촘촘하게 대응책을 짤 때다. 중국으로서는 소비재뿐 아니라 중간재 등 수입 안 해도 되는 품목이 점점 늘어난다. 기술력으로도 중국은 우리와 대등하거나 앞지른 분야가 많다.경제적으로 신속한 반등 기회를 중국이 제공한다는 건 과한 믿음이다. 이걸 버리라는 신호가 있다. 국내 기업 62%가 중국 리오프닝의 매출과 수익 증가 효과에 부정적으로 답했다. 대한상공회의소의 440개 수출 제조기업 대상 조사 결과에서는 중국 사업 확대에도 부정적이다. 지난 19년 10개월간 수출액 1위가 중국이던 시대를 잊고 동남아나 중동, 중남미 등지로 수출을 다변화해야 한다. 중국을 배제한 ‘제로 차이나’의 의미가 아니다. 중국은 교역 면에서 여전히 중요하지만 중장기적 출구 전략이 절실한 대상국 또한 중국이다.

2023-04-13 14:00 사설 기자

[사설] 빌라 인기 추락, 주거 양극화 차원에서 다뤄야

아파트 대체재로 주목받던 빌라(다세대·연립·다가구주택)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 일명 ‘빌라왕’ 사건 발생 이전에도 인기 하락이 경미하게 진행된 적은 있었으나 일부의 특이사항 정도에 그쳤다. 거래량 면에서 빌라는 한때 아파트의 두배를 넘고 정점을 찍으며 전체 분위기를 이끌기도 했다. 그와 정반대로 현재 진행되는 아파트 선호의 극단화는 전세사기 여파다. 피해를 막으려는 심리가 빌라를 기피하게 하고 월세로 갈아타는 수요를 늘렸다. 주거 사다리 역할의 붕괴로 읽어야 할 신호다. 그러한 현상적 증거는 차고 넘친다. 단적인 예로 올해 2월 전국 주택 거래량(7만7490건)의 82.5%(6만3909건)가 아파트 거래량이다. 통계 작성 이후 아파트 거래 비중 최고치를 찍은 것이다. 세종시의 경우 아파트 거래가 97.9%(779건 중 763건)에 달한다. 빌라 전세 수요도 매매를 따라간다. 대출과 세제, 청약 규제 등 아파트 관련 규제의 대거 완화도 역대 최저치인 빌라 거래 침체의 한 축을 이룬다. 결정적으로 소비자로부터 외면받는 상품이 된 데는 물론 빌라 전세사기가 겹쳐 있다. 안전한 집에서 멀어진 결과가 이렇다.심지어 빌라 전세보증보험 기준 강화 등 전세사기 대책마저 빌라 시장 침체를 부채질하는 원인으로 탈바꿈한다. 전세사기 낙인이 반영된 빌라 매매수급지수로 보면 호전은 당분간 어려울 것이다. 전세사기에 이용된 주택 유형에서 빌라 비중 61.6%는 치명적이다. 아파트(24.4%)나 오피스텔(13%)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전세사기의 핵심 고리인 무자본 갭투자가 악용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단독·다세대·연립 등 비(非)아파트 공급 불균형은 주거 다양성을 해친다. 입법을 포함한 대책을 보강해 서민 보금자리가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일은 특히 막아야 한다. 빌라 시대가 저물면 선량한 집주인까지 피해자가 된다.연립과 다세대, 다가구주택가 감당하는 전체 거주 가구의 약 28%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주거용 오피스텔, 즉 아파텔도 집값 급등기에 관심을 끌었으나 혜택에선 찬밥 신세가 되고 있다. 근원을 파고들면 다주택자 규제, 비아파트 건축규제 강화, 임대차법 시행도 공급 불균형 심화의 주범이다. 집값을 잡겠다며 빌라·단독주택에까지 규제를 적용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 부실을 소환하고 싶은 이유다. 아파트 전셋값이 더 떨어지면 서민 주거에서 주요 몫인 빌라와의 양극화는 더 벌어진다. 아파트 대체재 기능을 중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거 불안을 가속화하기 때문이다. 빌라 매수심리 위축을 주거 선호도 차원으로만 다루는 것은 잘못이다.

2023-04-12 14:03 사설 기자

[사설] 전경련 ‘재계 맏형’ 위상 회복 가능하려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따라붙던 ‘재계 맏형’은 위계적 지위이기보다 강한 의무감을 내포하는 단어다. 구실이나 역할, 제값을 하면서 맏형다운 든든함이 있을 때 어울리는 수식어다. 윤석열 대통령 방미 경제사절단을 전경련 주도로 꾸린다는 것 등 몇몇 이벤트로 전성기의 위치로 직진할 수는 없다. 전경련이 맏형의 ‘격’을 조금씩 되찾은 건 사실이다. 다만 4대 그룹 등과의 접점이나 국민과 좁혀야 할 거리는 한 발, 몇 걸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전경련 뉴웨이(발전안) 선언도 더 지켜봐야 한다. 다행히도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의 과도체제가 높이 치켜든 전경련 쇄신의 깃발에서 상당한 진정성이 느껴진다. 재계 주요행사를 주관하며 전면에 나서는 모습은 세간의 반신반의를 얼마간 사라지게 한다. 다만 그것이 모든 공식 행사 일정에서 배제된 직전 정부와의 대비효과에 그쳐선 안 된다.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을 열고 방미 경제사절단을 주도적으로 꾸리는 역할은 둘도 없는 기회지만 여기에 안주할 일은 아니다. 전경련의 존재감은 외부적인 의지나 권력이 부여해주지 않는다. 내부 시스템 구축을 통해 가능하기 때문이다.문재인 정부 때리기와 윤석열 정부 지원 사격을 통해 재계 대표단체의 위상 찾기에 성공하는 것 역시 아니다. ‘구태의연’의 연장일 수 있다. 4대 그룹과의 만남 등 관계 회복을 과거 회귀와 동일시한다면 이거야말로 오산이다. 지금 산업도, 리더십도, 세대도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5·16 협력, 전두환·노태우 정치자금 모금 주도, 박근혜 정부에서의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기금 모금 주도 등 고질적 과거사를 스스로 치유하고 환골탈태해야 한다. 또 진화해야 한다. 신산업 분야 한·일 협력 증진이나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을 국제 수준으로 재편해 국가·경제·산업의 비전과 전략을 제시할 구상 등은 그러한 진화의 일단이 될 수 있다.과거의 위치로 한걸음씩 다가서는 것은 좋다. 그것은 단순히 탈퇴 회원사의 회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과거 영욕까지도 잘라버리는 용기, 조직의 색을 바꾸고 전경련 자체를 넘어 경제단체의 변신을 이끌 추동력이 필요하다. 국익을 위한 경제 외교에도 전력을 기울여 새로운 경제단체 이미지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위상 회복의 지름길이다. 정경유착 고리를 끊으러 왔다는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의 취임 일성은 기억되고 회자될 것이다. 존폐 아픔을 딛고 뼈를 깎는 쇄신으로 다다를 이정표는 정경유착 대신 정경협력이다. 전경련이 진짜 맏형다운 든든함을 품질보증서처럼 보여줄 수 있길 기대한다.

2023-04-11 14:01 사설 기자

[사설] ‘압여목성’ 토허제 재지정 꼭 했어야 했나

‘압여목성(압구정·여의도·목동·성수동)’ 토지거래허가구역이 1년 더 유지됐다. 이유는 ‘집값이 덜 떨어졌다’는 한마디로 줄여진다. 같은 기준을 상정하면 지정 기간 만료를 앞둔 ‘잠삼대청(잠실·삼성·대치·청담동)’도 연장에 무게가 실린다. 2021년부터 토지거래허가제도(토허제)로 묶인 주민들의 반응은 기대에서 실망을 넘어 분노로 치닫는다. 해제 목소리를 높였지만 6월에 재지정될지 모를 다른 한쪽은 기대서 우려로 흐르는 분위기다. 부동산 시장에서 토지거래허가를 보는 시선을 둘만 추려보면 재산권 침해와 지역 간 형평성 두 가지다. 압구정 아파트지구, 목동 택지개발지구, 여의도 아파트지구, 성수 전략정비구역 등 해당 지역이 아닌 곳에서는 부동산 투기를 막는 강력한 제도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재건축 등이 활발히 진행되면 투기 수요가 유입될 가능성은 커진다. 이를 완전히 부인하지는 못한다. 최소 안전장치로 놔두고 관리하느냐, 풀어서 거래 활성화를 하느냐를 두고도 다툼의 여지가 있는 건 사실이다. 헷갈릴 땐 부동산 규제 전방위 해제 기조에서 보면 좀 명쾌해진다. 규제지역을 푸는 것과 같은 선상에서 보면 어땠을까. 가뭄 수준인 주택 거래를 일으키는 쪽으로 결정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그래서 남는다.현장 목소리도 들어야 했다. ‘압여목성’ 4곳의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관리는 지정 당시에는 단기간 집값이 급등했던 곳이다. 물론 지금도 고층 재건축 허가가 잇따르긴 하지만 거래 자체를 금지할 목적처럼 흘러가선 안 된다. 부동산 연착륙이 시급한 시장에 찬물을 끼얹을 여유가 없다. 누구나 아는 서울 핵심지라 해서 까다로운 요건을 붙이고 허가대로 이용하게 꽁꽁 묶은 것은 건전한 토지거래 유도라는 강박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다소의 부작용을 감수하고라도 집값 추락, 미분양 급증발 경착륙을 막는다는 더 큰 목표가 우선이어야 한다. 응징의 성격이 강한 규제는 푸는 게 원칙이다.매도자도 매수자도 부담스러운 제도가 거래허가제도다. 이사도 마음대로 못 가고 큰 돈 들여 사서 바로 입주해야 한다. 그러면 수요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다른 곳의 주택 거래량이 증가한다고 해서 이 지역만 묶는 것 또한 문제다. 풍선효과도 조심해야 한다. 제도 실효성이 떨어지면 주택거래허가제처럼 역차별 규제로 변질될 수도 있다. 또 다른 형평성, 일관성 논란이 무서워 거래허가제를 1년 연장하는 일이 이른바 ‘잠삼대청’에선 없길 바란다. 실거주 잠재수요까지 매수가 힘든 상황을 만드는 규제 일변도 정책은 최소화하면서 숨통을 터줘야 바람직하다. 지금은 그래야 할 때다.

2023-04-10 13:59 사설 기자

[사설] 정부 주도 내수 ‘붐업’, 효과와 한계 함께 봐야

한국이 수출 국가임이 강조되다 보니 내수는 상관없는 것처럼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대단한 오해다. 최근 20년 동안 국내총생산(GDP) 대비 내수 비중은 61.9%였다. 내수에 딸린 자영업자 수도 유난히 많은 나라다. 정부가 소비 진작을 통한 내수 부양책을 내놓은 것, 윤석열 대통령이 이를 통해 새로운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겠다는 것, 그 초점을 국내 관광 활성화에 맞춘 것은 나쁘지 않은 정책이 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경기지표들은 민간 소비 둔화를 정면으로 가리킨다. 체감경기라도 끌어올릴 시도는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13개월째 적자인 무역수지도 어떻게든 벌충해야 한다. 문제는 경기둔화를 방어하는 방법론과 현실이다. 구체적으로 1인당 숙박비 3만원, 놀이시설 1만원 등의 ‘붐업 패키지’가 내수의 물줄기를 바꿀 비책이며 비급이 되겠느냐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최대 4만원의 숙박 할인쿠폰 100만개 지원의 효과는 다분히 일시적이었다. 또한 지금 해외여행이 늘어나는 현상과 국내 여행이 늘어날 가능성은 역의 상관관계일 수도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관광 정책으로 둔화한 민간 소비를 끌어올릴 마중물을 찾기 전에 소매판매 수치가 지난해 11월부터 연속 마이너스를 보인 원인부터 더 규명해봐야 한다. 물가를 고려한 실질소득으로 볼 때 중산층·서민 지갑이 얇아졌다. 경기가 워낙 안 좋으니 안 하느니보다 낫다는 식이 아닌 정공법이 절실한 내수 시장이다. 대통령의 일방 지시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주지는 않는다. 2021년 11월 가을휴가 지원 명목으로 565억원의 재정을 투입해 매출액 944억원, 여행소비액 3108억원을 찍었다는 추정을 과신하지 않아야 한다. 600억원 규모를 정부가 쏘아 내수를 활성화한다는 믿음은 좀 터무니없기도 하다.내수를 떠받칠 서민·중산층의 소득 안정화 없이는 특히 그렇다. 국내 가계소비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현재는 55% 밑으로 내려갔다. 이번 주 여행박람회(13~16일)를 시작으로 서울페스타(4월 30~5월 7일) 등의 행사도 앞두고 있어 내수에 안간힘을 쓰는 정부 정책에 합리적 기대를 하게 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수출이 저조하면 내수 진작의 성장 정책을 펴는 중국, 미국과 달리 국내 내수 시장의 파이가 크지 않다. 파급력 면에서는 건설 경기 활성화 쪽이 낫겠다는 지적도 일각에선 나온다. 여행 쿠폰을 풀어 소비의 불씨를 실리는 데는 한계가 분명하다. 관광 활성화도 하되 규제를 과감히 푸는 등 보다 공격적인 돌파구를 찾는 게 실효적일 수 있음을 여기서 지적해두려는 것이다.

2023-04-09 13:59 사설 기자

[사설] 전세사기 대응, HUG 사장부터 잘 선임해야 한다

각종 보증업무 및 정책사업을 하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주기능이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제도다. 빌라 전세사기와 깡통전세가 사회적 논란으로 비화된 최근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기관이기도 하다. 전세보증금 미 반환 사고가 전국에 성행하면서 산적한 과제가 많고 유난히 분주해졌다. 전세대출 보증기관의 역할론이 커지고 있다. 이에 반해 총지휘할 수장이 없는 비상식적인 상황이 이어진다. 뒤늦게 5일부터 신임사장 공모를 재개했다. 지난해 10월 권형택 사장 사퇴 후 반년 만이다. 주택금융공사(HF)의 전세지킴보증, 서울보증보험(SGI)의 전세금보장신용보험을 통해 지원하는 방법도 있긴 하다. 하지만 주택보증 전문기관으로서는 HUG가 국내 유일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그런 막중한 자리인데 최종 후보자가 낙점됐다가 개운치 않게 사퇴했다. 그 뒤론 이렇다 할 하마평마저 돌지 않고 있다. 자리에 대한 중압감이 전문기관 수장 자리가 6개월째 비어 있어도 되는 이유에 대한 해명으로는 부족하다. 효율적인 전세사기 피해 지원과 예방을 위해서도 납득할 수 있는 합당한 인사로 자리를 채워야 할 것이다.제도적으로는 전세사기를 벌여 HUG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을 악용하는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법무부,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LH 등의 협업으로 범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다. ‘눈 뜨고도 코 베이는’ 부동산 범죄라는 말이 전세사기의 성격을 잘 함축한다. 정부도 내수 활성화 대책에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대책을 끼워넣는 것과 같은 헛발질은 그만해야 한다. 그보다는 정확한 시세를 몰라 공인중개사, 중개보조원이 공모해 집값을 쉽게 부풀리는 구조부터 뜯어고쳐야 할 것이다. 지난해 보증사고가 무려 1조1726억원 규모인 것도 제도적 허술함에 기인한다. 이 가운데 9241억원을 HUG가 세입자에게 반환했다. 회수 불능의 채권도 계속 증가세다.HUG의 주요 기능은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제도다. 그런데 보증배수가 지난해 연말 기준 54배까지 치솟아 전세 보증금 반환이 늦어지는 요인이 된다. 자금 여력을 키우면서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HUG 위상을 새롭게 정립할 명분 하나가 여기에 있다. 그 첫 단추는 최고경영자 선임이다. 즉, 조직 안정화를 전제로 한다. 14일까지 공모를 마치면 혼란을 잘 수습할 전문가가 새 자리에 오길 바란다. 전세사기 대응 과제는 우선 중의 우선이다. 전세대출 보증기관의 보증 여력 확충과 보증 활성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인선 실패가 다시는 없어야 한다.

2023-04-06 14:12 사설 기자

[사설] 반시장 입법독주 언제까지 봐야 하나

경제의 룰을 정하는 활동이 정치라고 볼 때 작금의 그 활동은 엉망진창이다. 과잉생산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게 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양곡법)은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안(거부권) 행사에 따라 다시 국회로 넘어갔다. 행정 대 입법의 대립,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과 입법권을 틀어쥔 야당의 충돌처럼 보이는 이 국면은 오래 갈 것 같다. 정부와 경제6단체의 ‘파업의 일상화’ 우려에도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야당의 독주가 하루아침에 어디로 가겠는가. 일련의 입법 성향을 거칠게 분류하면 친노동 성향이고 친시민단체형이다. 산업 현장이 노사 분규에 휩쓸려 국가 경쟁력을 저하한다고 부르짖어도, 경제위기인 데다 경제의 성적표가 좋지 않거나 말거나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7년 전 국회법 개정안(상시청문회법) 이후 첫 거부권이 행사됐지만 입법폭주는 방송법 개정안 등으로 향하고 있다. 민주당이 여당이던 시절에도 기업규제 3법 등의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민심 이반의 가속화는 관심권 밖이었다. 정권을 내주고도 다수당의 횡포는 계속된다. 거대 몸집의 의석구조만 있는 정치를 언제까지 견뎌야 하는지, 피로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그러고도 내년 총선 여론전에서 손해 볼 것 없는 장사라고 여긴다면 착각이며 만용이다. 무제한 수매를 규정한 양곡법 개정안을 놓고 거대 야당의 상임위 단독의결, 본회의 직회부 의결, 본회의 처리까지 정부와 여당은 없었다. 방송법 개정안도 기어이 본회의 직회부를 의결했다. 일방의 이익만 생각하는 진영의 귀에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등의 재정 부담과 쌀 과잉 생산 우려가 곧이 들릴 리 없다. 양곡법에 한정해 보면 식량안보로 포장된 대중영합주의로 우리는 규정한다. 노사 갈등을 부추겨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로 만들 노란봉투법이 왜 민생입법 과제여야 하나. 신랄하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압도적 의석만 믿고 원칙과 절차를 무시한 행태는 의회민주주의를 병들게 한다. 그렇게 밀어붙여 전세 물량과 가격 급등을 초래한 임대차 3법과 기업 투자 의욕을 꺾은 기업규제 3법 등의 폐해를 보라. 애매모호한 법령 규정을 무리하게 적용해 그룹 회장을 기소해 기업 경영 리스크를 증폭시킨 게 지금 안 보이나. 중대재해처벌법을 입법 독주로 완성시킨 결과다. 사회적 가치를 시장에 녹여내려는 한줌의 노력마저 하지 않는 반기업·반시장, 정치공해 같은 반정치(反政治)의 입법독주를 4월 국회에서는 멈추길 호소한다. 야당의 입법독주에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라는 악순환 정치를 끝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2023-04-05 14:17 사설 기자

[사설] 기습적인 OPEC+ 감산 파장 최소화해야

물가를 자극하는 대외변수가 또 생겼다.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OPEC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 플러스’(OPEC+)가 잠잠하던 원유 시장을 온통 휘저어놓는다. 세계 하루 원유 수요량의 3% 규모로 전체 감산량이 늘자 파장이 예고된다. 시장의 즉각적인 반응에서 예견되듯이 하루 116만 배럴 규모의 추가 감산 소식에 국제 유가가 요동칠 것은 거의 기정사실이다. 산유국들은 시장 안정을 위해서라지만 시장 불확실성을 자극하는 결정이다. 시기상 우리 경제가 반전을 모색할 2분기의 초입이다. 기습적인 감산 계획이 그래서 당혹스럽다. 유가가 출렁이면 물가 안정세가 흔들린다. OPEC+ 24개국이 아닌 국가, 우리 같은 비산유국들엔 특히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더 나쁜 대외환경이다. 국제유가 인상이 고물가 상황에 반영되면 소비를 제약한다. 시장에 돌을 세게 던진 자발적 감산의 파장으로 소비 진작에 금이 가더라도 최소에 그치게 해야 한다. 수출전선에 드리워진 먹구름이 더 이상은 짙어지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다. 원유 감산 쇼크로 경상수지 적자 폭이 늘지 않을지도 걱정거리다.멀지 않아 여름이 오지만 계절에 상관없이 에너지 변동 폭에 따른 영향은 작지 않다. 유가가 지금 별것 아니게 보여도 잠깐 미뤄둔 공공요금까지 자극하기 마련이다. 앞서의 200만 배럴 감산까지 더하면 316만 배럴이다. 국제유가는 배럴당 90달러를 넘어 배럴당 100달러를 내다볼 조건이 갖춰졌다고 본다. 기세를 보면 경기 침체에 따른 하방 압력을 받아야 유가가 낮아질 형국이다. OPEC+의 감산 결정이 현명한지 여부와 무관하게 인플레이션 경고등이 새로 켜졌다. 경험칙으로는 인위적인 유가 낮추기 시도는 사실상 무의미하다. 그렇지만 유가가 끌어올려질 현상을 방치할 수도, 마지못해 낡은 경로의존적 셈법을 구사할 수도 없다. 경기 회복에 부담이 가지 않게 현명하게 대처하자는 것이다.전체 산유량의 90%를 차지하는 OPEC+의 원유 감산은 소비 회복세에 대한 기대감에도 찬물을 끼얹는다. 4월 말쯤 유류세 인하 폭 축소가 현실화되면 유가 상승세에 불을 댕길 수 있다. 오름세가 다소 둔화되는 물가를 억제하는 데 정책의 비중을 두기 바란다. 경기침체를 동반한 고물가 국면에서는 서민·자영업 소비자의 체감유가 대책에도 신경 써야 한다. 물가상승률이 4월엔 3%대로 내려올 거란 전망 또한 흐려진다. 물가변동의 변수인 유가, 인플레이션, 기준금리 모두 잘 챙겨 상반기 경기 회복의 시동을 거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

2023-04-04 14:01 사설 기자

[사설] 인사 개입 고리 끊고 KT 직무대행 체제 끝내야

KT 수난사가 윤경림 대표이사 후보 사퇴 이후 더 길어지고 있다. KT 정기 주주총회도 구현모 차기 대표 후보군 사퇴와 윤 후보 사의 표명 이후의 격랑을 전혀 잠재우지 못했다. 인사 개입은 모르쇠로 일관한 채 그들만의 이권 카르텔로 퉁치는 정부도 보기에 딱하다. 대행 체제를 끝내고 새 CEO를 뽑고 이사회를 구성해야 한다. 민영화 21년이 지나도록 정체성이 흔들리며 갈피를 못 잡는 KT의 굴레를 벗는 일은 최대한 빨라야 좋다. 그 방법을 다시 요약하면 CEO 선임 절차와 기준을 투명하게 하면 된다. 업계와 상관없는 정치권 인사, 정권과 각별한 연이 있는 인물은 배제하는 것이 옳다. 매출 25조원, 재계 서열 12위 거대 통신기업을, 더구나 국가 산업발전의 미래를 비전문가에게 맡길 수는 없다. KT에 공적 영역인 부분도 있고 공기업의 뿌리라는 한계는 있지만 누가 뭐라 해도 민간통신회사다. 경영진과 이사진에 대한 불신이 정치권과의 거리 때문이라면 심각하다. 기업경영과 거리가 먼 보은인사와 낙하산 인사의 구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KT는 권력의 전리품이거나 ‘봉’이 아니다.차기 대표는 KT의 지속성장을 이끌 가장 적임자가 누군지가 기준이 되는 게 맞다. 탈락하긴 했으나 정치권 인사가 KT 대표로 오면 안 된다며 목소리 높이던 인물까지 가세한 것은 코미디다. 낙하산 인사는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는다는 걸 스스로 입증했다. 기업 경쟁력을 위해서도 정치적 외풍에 휘둘리는 나쁜 DNA는 버려야 한다.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인 논공행상 흥정물이 CEO 리스크를 낳는다. ICT(정보통신기술) 전문가가 와서 권력의 부력이 작동하지 않게 하는 방법은 인사 개입의 고리만 끊으면 의외로 간단해진다. 미래 통신 산업 경쟁력을 위한 소유 구조 개편 논의도 중하지만 당장은 모회사의 경영 공백이 계열사들에 전가되는 상황도 막아야 한다.KT가 날렵한 혁신기업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은 정부와 여당의 노골적인 개입을 멈추는 데서 시작한다. 더불어민주당도 큰소리칠 형편만은 아닌 듯하다. 정권 말기까지 청와대 출신, 민주당 보좌관 출신을 줄줄이 요직에 기용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전 세계가 AI 스타트업 인수 전쟁에 여력이 없는데 완력으로 수장을 간택한다니 말이 안 된다. 카르텔을 치우면 낙하산이 올 뿐 아니겠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문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문외한에게 KT를 맡기는 막장 부조리극을 서둘러 마감할 때다. 전자정부와 디지털 정부를 넘어 챗CPT가 시대의 총아로 떠오르는 마당에 어디 할 일인가.

2023-04-03 14:11 사설 기자

[사설] 아파트 ‘작명’, 또 다른 규제가 되지 않아야

아파트 이름이 복잡해진 시기를 특정하면 품질이 중시되면서 브랜드가 도입된 것과 관련이 있다. 주로 지역명을 붙이거나 건설사 이름만 붙이던 1979년 이전에는 평균 3자에 불과했다. 1980년대 3.5자, 1990년대 4.2자, 2000년대 6.1자, 2010년대 들어 8자로 길어졌다. 일시적으로 짧아지는 추세를 보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20자를 넘어 25자까지 늘어났다. 소재 지역에 건설사, 브랜드, 단지 성격이나 입지, 주변 여건, 교통편의를 반영한 펫네임이 조합되다 보니 긴 이름이 전형처럼 된 결과다. 재산 ‘포지션’에서 아파트가 중시되면서, 특히 과도한 자산 인플레이션이 긴 이름을 유도한 경향이 있다. 단지명이 아파트 가치를 상징한다는 등식을 믿기 때문이다. 상대적이긴 하지만 문재인 정부 시절에 이명박·박근혜 정부 기간에 오른 금액의 6배 가까이 오르면서 심화한 측면은 있다. 재건축 등으로 새로 이름을 지을 때는 지방자치단체 승인을 받지 않아도 되는 점 등이 한몫 가세했다. 고급 브랜드를 붙이는 이름 짓기 경쟁의 핵심은 집값 상승을 겨냥한 것이다. 1998년 분양가 자율화 이후 아파트 품질이 중시되는 것과 맞물려 일반화된 현상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주변 입지나 교통 호재를 반영해 좋은 이미지를 담는 것까지 부정적인 시선으로 볼 이유는 없다. 소유자 동의를 거쳐 아파트 단지명을 변경하는 것 역시 문제적으로 볼 사안은 아니다. 아파트 작명을 통해 차별화하고 건축물 이미지를 높이려는 시도를 욕심으로만 치부해선 안 되겠지만 이로 인해 피로도를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시어머니 못 찾게 작명했더니 시누이를 데려온다는 우스개가 통할 정도로 난해한 이름을 간결히 바꾸는 아파트가 일부 없지는 않다. 다른 법정동 이름을 사용한다면 자율의 영역을 벗어난 것이라고 본다. 지역명 사용 제한 규정이 법적으로 있는지 여부가 쟁점은 아니다.원칙적으로 지역과 주변환경 등에 적합한 작명까지 규제할 수는 없다. 브랜드와 잘 연관된 경우 집값이 7.8% 올랐다는 사례도 있다. 아파트명이 집값을 좌지우지하는 한 이런 추세를 막기는 곤란하다. 서울시가 쉽고 간단한 이름을 짓도록 유도한다고 한다. 법적으로 민간 아파트 명칭을 규제할 근거는 없지만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권고하는 방식은 가능하다고 본다. 다국적의 외래어가 뒤범벅된 정체불명 아파트 단지명이라 할지라도 물론 건설사나 재건축조합 등의 의견은 충분히 존중하는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 사실상 간섭이 되거나 공공이 민간보다 효율적이라는 신념에 갇혀 규제 성격의 개입이 되면 안 된다.

2023-04-02 14:02 사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