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경련 ‘재계 맏형’ 위상 회복 가능하려면

사설 기자
입력일 2023-04-11 14:01 수정일 2023-04-11 14:21 발행일 2023-04-1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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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따라붙던 ‘재계 맏형’은 위계적 지위이기보다 강한 의무감을 내포하는 단어다. 구실이나 역할, 제값을 하면서 맏형다운 든든함이 있을 때 어울리는 수식어다. 윤석열 대통령 방미 경제사절단을 전경련 주도로 꾸린다는 것 등 몇몇 이벤트로 전성기의 위치로 직진할 수는 없다. 전경련이 맏형의 ‘격’을 조금씩 되찾은 건 사실이다. 다만 4대 그룹 등과의 접점이나 국민과 좁혀야 할 거리는 한 발, 몇 걸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전경련 뉴웨이(발전안) 선언도 더 지켜봐야 한다.

다행히도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의 과도체제가 높이 치켜든 전경련 쇄신의 깃발에서 상당한 진정성이 느껴진다. 재계 주요행사를 주관하며 전면에 나서는 모습은 세간의 반신반의를 얼마간 사라지게 한다. 다만 그것이 모든 공식 행사 일정에서 배제된 직전 정부와의 대비효과에 그쳐선 안 된다.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을 열고 방미 경제사절단을 주도적으로 꾸리는 역할은 둘도 없는 기회지만 여기에 안주할 일은 아니다. 전경련의 존재감은 외부적인 의지나 권력이 부여해주지 않는다. 내부 시스템 구축을 통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때리기와 윤석열 정부 지원 사격을 통해 재계 대표단체의 위상 찾기에 성공하는 것 역시 아니다. ‘구태의연’의 연장일 수 있다. 4대 그룹과의 만남 등 관계 회복을 과거 회귀와 동일시한다면 이거야말로 오산이다. 지금 산업도, 리더십도, 세대도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5·16 협력, 전두환·노태우 정치자금 모금 주도, 박근혜 정부에서의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기금 모금 주도 등 고질적 과거사를 스스로 치유하고 환골탈태해야 한다. 또 진화해야 한다. 신산업 분야 한·일 협력 증진이나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을 국제 수준으로 재편해 국가·경제·산업의 비전과 전략을 제시할 구상 등은 그러한 진화의 일단이 될 수 있다.

과거의 위치로 한걸음씩 다가서는 것은 좋다. 그것은 단순히 탈퇴 회원사의 회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과거 영욕까지도 잘라버리는 용기, 조직의 색을 바꾸고 전경련 자체를 넘어 경제단체의 변신을 이끌 추동력이 필요하다. 국익을 위한 경제 외교에도 전력을 기울여 새로운 경제단체 이미지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위상 회복의 지름길이다. 정경유착 고리를 끊으러 왔다는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의 취임 일성은 기억되고 회자될 것이다. 존폐 아픔을 딛고 뼈를 깎는 쇄신으로 다다를 이정표는 정경유착 대신 정경협력이다. 전경련이 진짜 맏형다운 든든함을 품질보증서처럼 보여줄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