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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설] 전매제한 완화, 서울 쏠림 효과가 더 문제다

분양권 전매제한 기간이 다음달 크게 줄면 시장에 온기가 돌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고금리 기조 속에 양도소득세가 여전히 높은 제약은 있으나 효과가 없을 수는 없다. 분양에서 입주까지의 2~3년 시간을 감안하면 입주 전 분양권 매매가 가능해진다. 올해 분양한 단지에 소급 적용하면 분양권 매물은 시장에 풀리고 거래도 활발해진다. 그러면 정부가 의도한 목표에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간다. 대충 그려봄 직한 ‘그림’이다. 실제로 침체된 부동산 경기의 회복에 일조할 것이다. 분양권 전매제한 해제는 강수를 두는 대책에 속한다. 2017년 17만여 건이던 전국 분양권 거래량이 지난해 3만여 건으로 줄어든 데는 전매제한 영향이 컸다. 서울은 98.6%까지 감소했던 터다. 지난 1월 서울은 지방보다 적은 27건에 불과했다. 최대 전매제한 기간 10년이던 수도권이 최대 3년에서 6개월까지 단축될 땐 상황은 이내 역전된다. 과밀억제권역인 올림픽파크 포레온(둔촌주공)의 경우도 전매제한 기간이 1년으로 확 줄어든다. 수도권 분양가 상한제 주택의 실거주 의무까지 폐지되면 회복력의 효과는 커질 수 있다.그러나 실거주 의무 폐지 법안과 함께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돼도 수혜지역은 제한적이다. 새롭게 남을 한계다. 무순위 청약 규제가 완화되면서 단지간 청약 경쟁률이 더 벌어진다는 것 역시 새로운 걱정거리다. 시장이 바닥에 닿지 않았다는 점 또한 잊어선 안 된다. 미분양 증가를 못 막는다면 반짝 대증요법에 그칠 수 있다. 웃돈이 붙을지 더 떨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 몇 년간의 과열이 식어가는 과정이다. 서울 등 수도권의 확실한 입지 또는 1군 브랜드에만 수요가 몰리지 않도록 주택청약 쏠림에 대한 대책도 나와야 한다. 이전의 규제지역 해제에서 익히 봤듯이 일부 지역만 소폭 회복된다면 기간 완화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매수 희망자들이 선호하는 지역 중심으로 움직이면 결과는 뻔하다. 공급량이 적은 서울 쪽이야 프리미엄 붙은 거래를 발생시킬 수 있다. 지방은 다르다. 서울 외 수도권도 부분적으로 그렇지만 지방은 이미 미분양이나 예정된 물량이 많다. 자구 노력으로는 급한 불도 못 끌 지경이다. 지방의 공공택지 및 규제지역 1년, 광역시 6개월 등의 전매제한까지 아예 없애는 걸 포함해 추가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전반적 시장 활성화가 답이다. 수도권 분양권 거래만 느는 양극화, 수요가 서울에 몰리는 부동산 시장 일극화는 전체 시장에 악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경제를 잠식한다. 미분양 심화가 악재로 작용하지 않게 진지한 처방을 써야 할 이유다.

2023-03-30 14:33 사설 기자

[사설] 15년 연속 적자인데 재정준칙 안 급한가

지난해와 지지난해는 재난지원금, 일회성 공공근로 등의 명목만 떠올려도 재정적자 확대를 누구나 어림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요, 코로나19 때의 현금살포 때문만은 아니다. 정부 곳간은 15년째 연속 적자를 기록한 상태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를 관통하며 준칙 아닌 준칙처럼 자리잡았다. 정부가 이제야 내년 예산 편성에서 허리띠를 졸라맨다고는 한다. 지역상품권, 노조보조금 등 재량 지출의 10% 다이어트까지 선언했다. 건전재정 기조로 정부 살림살이를 가늠하는 지표인 관리재정수지를 조금은 개선할 수는 있을 것이다. 문제는 효과다. 이 정도의 노력으로 만년적자에서 탈피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단기적으로 보면 재정 건전성 회복은 어떤 의미로 문재인 정부 때 유난히 심하게 손상된 재정 건전성을 복원하는 일이기도 한다. 물론 포퓰리즘 색채가 짙은 이전 정부와 무조건 반대로 간다는 프레임이 능사가 될 수는 없다. 여당 시절 습관을 못 버리고 30조원 추경을 꺼내들던 민주당을 보면 참으로 어렵겠다는 생각도 든다. 대표적인 곳간지기인 기획재정부가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전달한 재정준칙 관련법(국가재정법) 수정안은 아마 ‘소귀에 경 읽기’쯤 되지 않을까 싶다.이런 정치권에 지난해 재정적자 규모가 100조원을 넘어선 사실이 국가재정법 법제화의 시급성을 일깨워준다고 믿긴 어렵다. 재정은 합목적적이고 실질적인 운영이 중요하다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지난 1월 세수가 전년 동월 대비 6조8000억원이 줄었다. 올해도 부동산 및 기업 실적 악화 등으로 세수 부족이 겹쳐 연간 재정수지가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할 게 너무나 뻔하다. 그런데도 재정 건전성 제고는 방만재정을 가리기 위한 장식품으로 전락하고 있다. 재정을 공짜나 화수분처럼 여겨서인가. 재정 건전화를 위한 재정준칙 늦장 심의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안 보인다.재정 안전벨트를 지금부터라도 매야 한다. 재정 건전성의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재정운용 목표를 수치로 명시하고 법제화하는 건 쓸 만한 억제장치다. 55개국을 대상으로 분석했더니 이 같은 준칙을 둔 나라의 재정적자가 개선됐다는 국제통화기금(IMF)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국내총생산(GDP)의 3% 내로 제한하는 등의 재정준칙 법제화를 미루지 않아야 한다. 내년 총선도 재정의 복병이다. 올해는 58조 2000억원의 관리재정지수 적자가 예상된다. 그러면 16년째 적자다. 재정준칙보다 재정운용이 중요하다며 또 얼버무릴 텐가. 줄이는 것도 합리성이다.

2023-03-29 15:07 사설 기자

[사설] ‘영끌’만의 일이 아닌 ‘빚의 역습’ 조심해야

금융권 주택담보대출에 따른 연체금액이 지난해 1조원 위로 다시 치솟았다. 3년 만이다. 부동산 폭등기에 유행처럼 번진 이른바 빚투(빚내서 투자), 영끌(대출을 영혼까지 끌어모음)이 부메랑이 된 것이다. 2년여 전만 해도 유례 없는 저금리였으나 어느덧 고금리 상황과 맞물린다. 주담대 연체율은 0.18%로 높아졌다. 1조20억원을 기록한 주요 금융사의 주담대 연체는 대출 문제, 민간 부채 문제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지표다. 영끌족이 더 두려운 건 2년간 40% 오르던 집값이 가파르게 떨어진 점, 부채 대비 총자산 비율이 낮아진 부분이다. 집값이 20% 하락하면 집을 팔아도 빚 갖기 힘든 고위험가구로 전락할 수도 있다. 주담대 차주의 다수는 변동금리라 이자 부담도 높다. 없는 집 잔치를 벌이면 찾아오는 건 빚쟁이뿐이라는 부동산 커뮤니티의 ‘금언’이 씁쓸하게 다가온다. 가계 자산의 86%를 차지하는 실물자산 가격 급락은 부채 대응 능력을 약화시킨다. 지금 빚은 안전하지 않다.주담대 연체금액이 1년 만에 54.6% 급증한 것도 최악이다. 가계대출 연체율이 위험의 불씨가 안 되게 관리하는 것은 기본이다. 현재편향성과 미래가치만 믿다가 빚의 사이즈는 한껏 부풀어져 있다. 30대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지난해 7월 기준 165조2000억원으로 5년 전보다 56% 상승했다. 저축은행의 주담대 연체액도 87.8% 늘었다. 금융사에 불안한 신호인 신용대출 연체액(2조5730억원)도 34.4% 늘어 사상 최고점을 찍는다. 2030세대가 작은 외부 자극에도 쉽게 터질 조건을 키운 것은 어쨌든 부동산 가격 폭등 국면이던 지난 정권에서였다.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를 예시할 것 없이 과도한 빚은 위험하다. 주담대 연체 급증, 신용대출 연체 사상 최대는 우리도 경험한 부채의 역습에 조심할 이유가 되고도 남는다.빚은 빚을 만들고 눈덩이처럼 커져 있다. 최고의 재테크는 이자 비용 감소다. 하지만 당장의 상환능력 향상은 비현실적일 만큼 어렵다. 차주 중 영끌, 근로빈곤층이 더 위태롭지만 그뿐만은 아니다. 연체에 따른 부실 쓰나미가 부동산 시장 뇌관을 넘어 금융 충격의 연쇄반응으로 안 나타나게 모든 태세를 갖춰야 한다. 제2금융권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PF) 등에서도 연체율이 높다. 아시아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의 시발점이 기업부채와 함께 가계부채였던 점을 상기해보자. 연체율이 뛰었지만 안정권이라는 금융당국 판단과 별도로 비상이 걸린 셈이다. 잠재된 후폭풍이 가시화됐다고 보고 대비가 필요하다.

2023-03-28 14:01 사설 기자

[사설]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실익 더 살펴볼 때다

규제 완화의 마지막 고리인 토지거래허가제가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정기간 만료를 앞두고 서울 송파구도 26일 잠실동의 토지거래허가구역 전면 해제 건의 대열에 합류했다. 양천구가 목동신시가지아파트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풀어달라고 서울시에 요청한 지 닷새 만이다. 이보다 앞서 강남구는 압구정동 일대 아파트지구를 대상으로 해제를 요청했다. 거래량이 급감하고 집값도 급락하는 부동산 시장 하락기다. 그래서 토지 거래허가제는 불필요한 규제라는 요지다. 거래가 다시 활성화할지 가장 걱정하는 서울시의 입장은 물론 달랐다. 오히려 상반된 근거를 들며 강남·목동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부동산 시장 동향에 대한 시각이 이처럼 다르다. ‘압여목성(압구정·여의도·목동·성수)’ 주요 재건축 단지 등에 대한 허가구역 지정을 연장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처럼 기우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적발된 불이익이 위반한 이익보다 작다는 판단이 설 때는 제도가 왜곡될 수도 있다. 만료를 앞두고 지정 실익을 진지하게 살펴볼 때인 듯하다.특이한 어느 한 단편만 봐서는 안 된다. 다른 지역보다 집값이 더 내린 경우도 있지만 신고가 거래가 속출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허가구역 지정이 해제되면 투기 세력이 당연히 늘어난다는 확신에 찬 결정이 시장에서는 거래를 위축시키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바닥이 아직 아니고 더 내려야 하며 공공 목적 달성을 위해 투기를 차단한다는 강박에 갇히지 않으면서 주민 재산권에 대한 과도한 중복 규제가 아닌지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갭 투자(전세 끼고 주택매수) 비중이나 집값이 덜 빠졌다는 게 재지정의 단일한 기준은 아니다. 건전한 토지거래를 유도한다는 이유만 갖고, 아니면 집값이 비싸다는 공감대 또는 반등 분위기로만 판단할 사안도 아니다.다양한 측면을 함께 봐야 한다. 토지거래허가제는 경제 상황과 시장 여건에 따라 신축적으로 운영돼 왔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는 전국에 걸쳐 일시 해제된 적도 있다. 지금은 규제일변도의 부동산 정책에 숨통을 터줘야 할 시기다. 투기 방지가 제도의 목적이라면 더욱더 투기적인 거래가 성행하는지와 지가변동률과 거래량을 준거로 삼아야 사리에 맞는다. 해제 또는 재지정 가능성을 못박지 말고 더 정밀한 모니터링을 실시하는 게 좋겠다. 각 자치구의 해제 요구를 검토하면서 주택거래허가제처럼 변질된 역차별 규제가 아닌지 함께 살펴봐야 한다. 설령 투기 방지를 위한 최후의 보루라 하더라도 그것이 재산권 침해와 후속 규제 완화를 틀어쥘 유일한 잣대일 수는 없다.

2023-03-27 14:04 사설 기자

[사설] 양곡관리법 거부권 행사에 더 관심 쏠리는 이유

초과 생산한 쌀의 정부 매입을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놓고 윤석열 대통령의 ‘1호 거부권’이 초읽기에 들어선 분위기다. 여야 간 대치 전선을 뒤로 하고, 농산물 생산 체계 전환에 전혀 도움 안 될 이 개정안이 누구를 또 무엇을 위한 것인지 늦게라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여권이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예고한 양곡관리법이 국회 본회의 강행 처리 후 쟁점이 더 부각되는 이유가 있다.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이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 하락할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전량 매입하는 내용이 담고 있는 어떤 부실함 때문이다. 식량안보 담론에 기댄 곡물 수급 및 가격안정 불확실성 해소 논리에 구조적인 쌀 과잉생산과 논 작부체계 전환에 대한 고민은 결여돼 있다. 주장되는 장점을 뒤덮고도 가득 넘칠 단점은 아랑곳하지 않았다.쌀값 정상화법의 미명 아래 쌀 의무매입법이 된 법의 실체를 잘 봐야 한다. WTO(세계무역기구) 협정을 우리 입으로 꺼낼 필요는 없다. 가격이 방어되면서 판로가 불확실한 다른 밀이나 옥수수, 콩 등의 작목 대신 쌀농사로 가득찰 것이라는 극단적인 전제는 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헌법상 국가의 책임인 ‘농수산물의 수급균형과 유통구조 개선’에 대한 오해는 풀어야 한다. 정부가 시장 기능을 저해하면서까지 쌀을 의무적으로 수매하는 걸 뜻하지는 않는다. 생산 전환정책도 그렇다. 정부의 의지만 갖고 벼 재배 면적 관리가 전적으로 가능하지는 않다.과잉생산으로 남아도는 쌀은 결국 값이 서서히 하락할 것이다. 쌀 공급과잉 구조 고착화로 농가 소득이 정체되는 경우도 있다. 이를 도외시한 사실상의 무제한 수매는 농업의 실상과 본질을 모르는 소리다. 시장 원리를 지켜가며 소득 안정성을 확보하고, 과소로 치닫는 밀 등의 자급률을 높이면서 나랏돈 낭비도 막는 법은 결코 이상(理想)이 아니다. 밀과 콩 등 다른 작물의 수입 증가가 입만 열면 말하는 ‘식량 안보’를 취약하게 만든다. 가격 떠받치기에만 무게를 둔 법안의 취약성이 여기에 있다.양곡관리법으로 쌀값도 안정시키지 못하면 궁극에는 농민을 포함한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제도가 될 수 있다. ‘상임위 단독의결, 본회의 직회부, 본회의 통과’라는 거야 입법공식의 무모함이 드러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한편에서는 방송법 개정안이든 노란봉투법이든 이런 식의 처리는 곤란하다는 사실을 미리 보여줬다. 국가 농업경쟁력에도 부정적 결과가 예견된다면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더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밖에 없다.

2023-03-26 14:32 사설 기자

[사설] 집 ‘사기도 팔기도 애매’한 상황 왜 방치하나

아파트 하락폭이 조금만 둔화하거나 영등포자이·둔촌 흥행이 이른바 ‘줍줍’ 덕에 성공해도, 부동산 시장 선행지표로 꼽히는 경매시장에 활기만 돌아도 1·3 부동산 대책이 주효했는지를 생각한다. 시장 회복 분위기에 그렇게 민감하다. 청약시장에서 소외됐던 다주택자의 참여 문턱을 낮추는 등의 대대적인 규제 완화와 대출금리 하락이 청약시장 찬바람을 조금은 멎게 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반응은 제각각이고 일관성이 없다. 분양가 상한제 적용 주택의 실거주 의무 폐지와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완화, 다주택자 관련 세제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서다. 후속 대책 미비와 무관하지 않다. 부동산 대책을 뒷받침할 주택법 개정은 대책 발표 두 달 보름이 훨씬 지나도록 ‘꿩 구워먹은 소식’이다. 그 결과로 실거주 의무가 계속 적용된다면 시장이 혼란스럽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전매 제한 완화도 비슷한 예다. 이건 청약과 매매, 경매 수요자들의 옥석 거리기 심화나 양극화와 결이 완전히 다른 문제다. 부동산 시장 경착륙을 막겠다고 내놓은 강력한 부동산 시장 활성화 대책이 약발을 제대로 못 받는다. 국회 논의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다 할 정도로 부진해서다. 정부의 규제 완화 효과가 그래서 더 제한적이다.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완화와 관련한 개정안은 반년째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잠자다 국회 법안심사소위원회 넘겨졌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부동산 정책 못지않게 이런 후속 대책 지연은 나쁘다. 입법화와 공포 시기도 불분명하다면 사겠다는 사람, 팔겠다는 사람 모두 애매하고 시장의 눈치 싸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금리 인상이 거의 마무리 단계라는 긍정적인 신호조차 못 살리고 있다. 최소한 법률 개정 기대감이라도 줘야 시장이 안심한다. 규제 정책이든 규제 완화 정책이든 예측 가능해야 할 것이다.실거주 의무와 전매제한 완화, 중도금대출 보증 분양가기준 폐지, 특별공급 분양가기준 폐지, 청약당첨자 기존주택 처분의무 폐지, 무순위 청약 자격요건 완화 등이 유효한 대책이 되려면 부동산 시장 안정화에 대한 신뢰를 줘야 한다. 적용 시기를 가늠할 수조차 없다면 누구를 믿고 청약 등 주택 구입 계획을 세우겠는가. 주택법 개정 등이 불발되는 동안은 정부가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주택시장이 반등인지 저점 도달인지 또는 일시적인지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다. 정부 대책만 믿고 청약에 나선 수요자들은 법의 시행 여부까지 걱정한다. 수요자가 차선책을 찾아야 하는 상황을 왜 만드나. 풀리다 만 주택 규제를 가급적 빨리 풀어야 한다.

2023-03-23 14:07 사설 기자

[사설] 기재위 넘은 ‘조특법’, 전략산업 구원투수 되길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가장 눈에 띄는 여야 간 의견 일치였다.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의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 의결을 그렇게 평가하고 싶다. 반도체를 비롯해 글로벌 산업전쟁에 직면한 우리 기업들의 부담을 덜고 투자를 키우는 촉매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모처럼 통했다. 소위원회 통과부터 기재위 전체회의까지 처리 과정만 보면 전례 없이 매끄럽다. 일방적인 동의나 의중 관철이 아닌 여야 합의의 결과물이다. 여야 협치로도 볼 수 있는 시의적절한 선택이 값지다. 기본적으로 정부와 여당, 야당 모두 이 법에 반대하지 않았다는 점이 정부 원안 수용의 열쇠가 됐다. 국가전략기술로 법에 명시된 6개 분야(반도체, 이차전지, 백신, 디스플레이, 수소, 미래형 이동수단)의 투자세액 공제율을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현행 8%에서 15%로,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확대되면 경제 활성화라는 대의에 부합한다. 더불어민주당 요구로 추가된 수소 등 탄소중립산업도 다수 의석의 전횡에서가 아니었다. 전략산업에 대한 올바른 인식 덕에 가능했다.미국발 반도체 규제 등으로 높아진 법안 처리 요구가 개정안 의결의 한 동인이 된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21일 공개된 미국 반도체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 가드레일 세부 조항은 완화된 듯 보여도 여전히 지나치다. 미국 투자보조금의 대가로 10년간 중국 내 웨이퍼 투입량 증가를 5%로 묶었다. 퇴로를 주고 나오라는 말처럼도 들린다. 길게 보면 새로운 중국 리스크의 시작이다. 영원한 친구나 적 대신, 영원한 이해관계만 있는 냉혹한 산업 전쟁터에 있음을 실감한다. 여·야·정이 기업 부담을 덜어줄 구원투수를 자처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다.일각에서는 세액공제 방식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특별법에는 설비투자 세제 지원이 세수만 감소시키는 결과가 되지 않는다는 전제가 당연히 내포된다. ‘그 밖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단서로 가능해진 국가전략기술 산업 추가 지정과 관련해 세액 감면 제도가 누더기가 된다는 우려 또한 잠재워야 한다.22일 기재위 전체회의 통과는 국익을 먼저 생각함으로써 가능했다. 협치로 가는 하나의 시험대로 삼아도 될 법하다. 1960년대 경공업, 70년대 중화학공업에서부터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되기까지 고비마다 큰 동력이 됐던 정치 리더십을 반도체 등 국가전략산업 육성에서 발휘할 차례다. K칩스법으로 불리는 조특법이 국회 문턱을 완전히 넘은 후에도 여야 간 기분 좋은 상통(相通)이 계속돼야 할 이유다.

2023-03-22 14:06 사설 기자

[사설] 22년 묶인 예금자보호 한도 상향할 때 됐다

초고속 파산 선례를 남긴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금융시장 안정성과 관련해 22년째 요지부동인 예금자보호 한도가 적정하지 않다는 오래된 주장도 힘을 받는다. 한도를 확대하는 내용의 예금자보호법 개정안, 그리고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금융회사에 대한 선제적 지원을 위한 금융안정계정 설치법안은 시의적절하다. 예금 전액보호 방안까지 포함해 예금보험제도 개선 차원의 손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은 간명하다. 22년째 보호 한도가 5000만원으로 묶인 것 하나로 충분할 듯하다. 예금보호 한도를 1억원 이상으로 상향하는 안을 지지하는 이유는 실효성 때문이다. 금융 리스크 경각심이나 지급 불능 사태에 대한 불안감에서만은 아니다. 2001년 1000만원(당시 신용관리기금이 갚아주는 한도)에서 5배 올린 뒤로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은 시대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이것이 타당하지 않아서다. 속칭 장영자 사건이라는 거액어음사취사건을 계기로 예금자보호제도가 추진된 건 아이러니하지만 그때보다 보호해야 할 가치는 훨씬 늘어났다.1982년 가구당 평균소득이 월 28만여원 때 설계한 한도액이 483만원인 지금의 준거점이 된다면 사리에 맞지 않는다. 경제 여건 변화에 맞춰 예금보험제도 개선 차원에서 보호 한도와 규모, 보험료율을 상향해야 한다. 예보료를 내는 금융사들이 금융상품에 전가시킬 부작용이 무서워 상향 조정을 다시 미룰 순 없다. 금융 경제상의 긴박한 위기 때 예금 전액을 보호할 근거도 금융권 시스템 리스크 예방 차원에서 마련해둬야 한다. 그렇게 중대한 문제다.국내 금융권 환경에는 선제 대응을 해야 할 것이 많다. 디지털 강국인 한국은 디지털 뱅크런에 더 안심할 수 없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 잠복 중인 부실도 만만찮다.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된 배경이다. 체감하는 보호 한도 가치가 낮으면 고객의 믿음은 더 허약하다. 아시아 외환위기, 글로벌 외환위기 때도 하지 못한 예금자보호 한도를 이제 증액해야 한다. 예금자들이 한꺼번에 돈을 빼지 않는다는 믿음이 균열되고 붕괴하는 시간은 순식간이다.2%의 고액 예금자 보호에 왜 98%의 예금자가 부담을 나누느냐는 반론 제기를 할 수는 있다. SVB 은행은 예금 90% 이상이 보호 한도인 25만달러가 넘었다. 40년간 급성장하던 미국의 은행이 대규모 예금 인출로 파산하는 데 단지 36시간이 소요됐을 뿐이다. 보호 한도가 확대돼야 한다. 예금자 신뢰 강화와 신용질서 유지에 뿌리를 둔 금융제도 안정성에 꼭 필요한 일이다.

2023-03-21 14:03 사설 기자

[사설] 중도금 대출 제한 폐지… '청약 양극화' 살필 때다

대출 제한 기준 완화가 20일부터 적용되면서 청약시장의 향배에 시선이 쏠린다. 중도금 대출 분양가 상한 기준과 인당 중도금 대출 보증 한도 규정을 전격 폐지했다. 분양가와 관계없이 대출받고 최대 5억원의 인당 제한도 사라진다. 개정된 사항으로 중도금 자금 조달 부담이 완화될 전망이다. 대출 금리로 가슴앓이를 하던 실수요자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길 먼저 기대한다. 이제 분양 시장에 나오는 12억원이 넘는 집을 계약해도 중도금 대출이 가능하다. 분양이 완료된 아파트에도 변경된 기준으로 대출이 되면 수요가 상승할 전망이다. 무엇보다 유명단지 분양권도 마피(마이너스 프리미엄) 신세가 된 부동산 빙하기에 대출 제한은 미분양 주택을 증가시켰다. 청약 과열 억제 목적에서 엇나간 것이다. 분양 과열을 막는다고 대출 가능한 분양가 상한선을 둔 것이 시장을 최악으로 내몬 결과다. 다만 전격 폐지는 됐으나 부동산 시장 전체에 반향을 일으키기엔 제한적이다. 거래절벽, 집값 하락, 미분양 증가 등 흐름으로는 그렇지만 훈풍은 바랄 수 있다. 규제지역 해제와 전매 제한, 실거주 의무 규제 완화 등 갖은 조치로도 싸늘했던 미분양 사태를 어느 정도 녹일 정도는 될 것으로 본다.시기적으로도 3, 4월 분양 성수기다. 중도금 대출이 어려워 청약 수요가 꺾이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고분양가 단지 위주로 자금 조달에 더 힘을 받아 그쪽 위주로 청약 경쟁률이 살아날 개연성은 있다. 지역 간 양극화 심화 우려도 제기된다. 안 그래도 지방 대부분의 단지는 미달 사태가 최악이다. 또 강남권 청약 문턱이 낮아졌다는 말은 틀리지 않다. 그런데 강남권 진입이 일부 수요자에 한정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특히 투기 부활을 차단할 안전판을 남길 부분이기도 하다. 막힌 중도금 대출이 풀려 청약시장 수요가 일부 살아날 것만은 확실하다. 상황 자체가 그대로라 해도 효과는 그 이상이 돼야 한다.분양·청약 관련 규제는 그동안 대거 풀렸다. 중도금 대출 제한 폐지도 작지 않다. 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PIR)이 높아 서민·중산층 청약자가 급증하지 않는 것 또한 한계다. 제1금융권 중도금 대출 금리 6~7%, 2금융권 중도금 대출 금리 10% 수준인 고금리 부담은 매우 무겁다. 한쪽에선 찬바람이 쌩쌩 부는 분양시장 양극화는 실물경제까지 흔드는 요인임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바뀐 규정이 자산 있는 일부 예비 청약자에게만 유리하지 않아야 한다. 시장 정상화 기조 유지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다. 집값 하락기이고 수요자 관망세가 이어진다는 점도 새삼스러운 주목거리다.

2023-03-20 14:07 사설 기자

[사설] 시선 떼면 안 되는 유럽 빅스텝·미 FOMC

유럽중앙은행(ECB)이 기준금리를 3.0%에서 3.5%로 0.5%포인트 인상함으로써 석 달째 빅스텝을 유지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의 충격이 스위스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로 밀어닥치는 데도 정책금리 인상을 단행한 것이다. 어두워진 한국 경제 전망과 곁들여 주시할 부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세계 성장률을 2.6%로 0.4% 높이면서 한국 성장률 전망은 1.6%로 낮췄다. 침체의 그늘이 짙어지고 있어서다. 유로화를 쓰는 유럽 20개국 중앙은행인 ECB의 기준금리 인상은 예정된 것이었다.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거라는 일각의 예상은 금융 안정보다 물가 안정을 택한 배경을 다소 등한시한 견해다. 경기가 악화됐는데도 하반기 물가상승률 둔화까지 점치며 금리를 동결한 우리와는 상당히 대비된다. 미국의 경우는 물가 안정 목표 달성 가능할 수도 있다. 고강도 긴축 영향이 본격화되면 말이다. 우리 사정은 여러 모로 좋지 않다. 유로권 은행도 주변국, 소규모 은행 중심의 유동성 악화를 배제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대체적으로 재무 건전성이 다소간 강화된 상태다. 채권 보유 비중도 낮다. 일정 부분 완충 장치가 구비돼 있다고 봐도 된다.그에 비할 때 고금리와 고물가 둘 다 악재가 되는 우리는 진퇴양난이다. 기준금리 인상 행진의 브레이크를 놓게 되면 실물 경제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그렇지 않아도 국내총생산을 1.4%포인트나 끌어내리는 등 성장률 둔화에 본격적으로 가세한다. 경기 침체 속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져 들고 있다. 어느 보고서 제목처럼 ‘깨지기 쉬운 회복’(Fragile Recovery)조차도 아직 아니다. 한국 경제가 된서리를 맞지 않게 해야 한다. 지난해 4월 이래의 금리 인상 흐름을 멈춘 건 안개 가득할 때 차를 잠깐 세워둔 데 비유될 딱 그런 정도다.가긴 가야 한다. 그런데 경제 향방이 오리무중인 게 지금의 문제다. 한·미 금리 격차는 원화 약세, 외국 자본 유출, 수입물가 상승과 직결된다. 미국 기준금리를 의식해본들 역할이 제한적이긴 하다. 그러나 그럴수록 수출 증대, 구조 개혁, 서비스 산업 혁신 등 우리 할 일은 많다. 미국의 최종 금리 수준은 이전 전망보다 높을지 모른다. 일련의 매파적 발언을 새겨볼 때다. 이럴 바엔 우리도 기준금리 인상을 미리 내비쳐 시장 충격을 흡수하는 편이 낫다. 미국 금리는 한국 경제에 파장이 크다. 정부와 정치권이 시선을 떼면 안 된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격인 미 FOMC는 이번 주(21~22일) 정례회의에서 빅스텝을 밟을 게 예견되는 상황이다.

2023-03-19 14:10 사설 기자

[사설] 유럽도 보조금제 개편, ‘한국판 IRA’ 내놓아야 하나

유럽연합(EU)도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을 겨냥해 보조금 빗장을 풀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생산 기지 등의 EU 역외 투자 전환을 막자는 심산이다. 미국 등 제3국에 맞먹는 수준의 매칭 보조금제를 설계하는 것 같다. 미 IRA의 차별적 조치에 오도 가도 못하는 국내 산업계에는 새로운 난관이 얹어졌다. 기존 보조금 관련 규정을 확대하는 정책 변경이 실행된다면 우리에겐 ‘한시적 위기’ 정도가 아니다. 한국 기업 불이익을 최소화하겠다는 외교적 수사 한 마디에 유리한 법으로 돌변되지는 않는다. 미 IRA에 대해서는 오는 4월의 한·미 정상회담에 너무 내맡기려는 경향이 있다. 국내 완성차 업계 요구처럼 핵심 광물과 배터리 부품 요건 완화 등 불이익을 풀기 위해 치밀한 물밑 작업을 해둬야 한다. 테슬라에 필적하는 탄탄한 전기차 경쟁력을 갖춘 현대차 그룹만 보더라도 불의의 기습공격을 당한 셈이다. 대미 투자 확대가 불가피한 면이 있더라도 새로운 안전장치의 틀은 갖춰야 한다. 반도체법의 경우도 강력한 디테일 앞에서 이와 똑같은 비상사태다.똑바로 봐야 할 게 ‘메이드 인 USA 또는 EU’의 본질이다. 동맹이나 주요 교역 대상국이라고 해서 북미산, 유럽산과 동등한 대우를 할 리 없다. 자유무역협정(FTA)을 들이미는 건 좀 순진한 발상이다. 그걸 의식했다면 바이든 행정부가 독소조항들을 통치 전략의 중심에 놓지 않았을 것이다. 국내 전기차와 전기차용 배터리 업체, 배터리 소재·부품 업체의 움직임이 실제로 심상치 않다. EU가 역내 기업 이탈을 우려하는 것 이상으로 국내 기업들도 대미 투자가 가속화할 위험이 상존한다. 눈 뜨고 지켜만 볼 수는 없다.미국 IRA나 유럽판 IRA는 매우 교묘하고 거대한 계획이다. 각종 친환경 사업 보조금으로 위장해 그린산업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명분은 내년 미국 대선과 이어진 불가분의 승부수다. 거기에다 중국 CATL과 포드의 미국 내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립 계획에 K-배터리 업계는 비상이 걸려 있다. 남이 깔아준 판이나 반사이익에 의존할 수도 없는 냉엄한 현실이다. 정부가 미국 행정부와 의회 설득에 발벗고 뛰고 정치권은 경제 발목 그만 잡고 진짜 한국판 IRA라도 내놓아야 할 판이다. 미국만큼 주겠다는 유럽 보조금제 개편으로 기업 보조금 전쟁은 더 정교하고 이행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자국 우선주의, 보호 무역정책의 얼굴을 띤 유럽판 IRA가 미국 IRA의 재판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이나 읊조린다면 이 역시 답답한 대처법에 속한다.

2023-03-16 14:01 사설 기자

[사설] 핵심광물·소재 확보에 사활 걸린 K-배터리

전기차의 심장은 2차전지(배터리)다. 배터리 산업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처럼 성장세를 이어갈 미래 주력산업으로 만들어야 하는 건 필연이다. 배터리 시장뿐 아니라 세계 자동차 업체 동향을 둘러보면 한마디로 치열하다. 특히 미국시장 등 경쟁조건 변화는 배터리 제조사와 소재·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사들에까지 기회와 숙제를 나란히 안기고 있다. 그 답의 중요한 단서를 15일부터 사흘간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 중인 인터배터리 2023(더배터리컨퍼런스 2023)에서도 찾는다. 국내 최대 배터리 전시회답게 배터리 제조사들이 글로벌 배터리 시장을 주도할 신기술로 K-배터리의 듬직한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전지산업 전문가들이 제시한 미래 비전과 혁신적인 전략도 매우 유용하다. 행사에서 선보인 2차전지 리사이클 기술은 최근 유럽연합(EU)의 폐배터리 재활용 의무화와도 밀접한 연결고리가 있다. 전기차와 배터리 시장의 성장세를 말하면서 배터리 리사이클 시장의 잠재력을 빼놓을 순 없다. 배터리 회수·유통·활용 등 순환 체계 구축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주요 선진국들은 더욱이 2035년 내연기관 신차 생산 중단을 잇따라 선언하고 있다. 헨리 포드의 내연차 등장이 촉발한 혁명처럼 이제 미래 모빌리티 혁명의 시대는 배터리 제조 기업이 이어받을 차례다. 내연기관의 전설적인 트렌드 가치가 일거에 휴지조각이 될지 모를 상황이다. 물론 유망하다고 무조건 공격적으로 밀어붙일 수는 없다. 2년 뒤인 2025년이면 전 세계에 배터리 공급 설비 과잉의 분수령이 온다는 전망은 꽤 설득력을 갖추고 있다. 배터리 산업 인력난 해소 역시 중대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산학협력, 계약학과 개설 등을 통한 맞춤형 인재 육성이 절실하다. 전지산업 성장 속도를 못 따라가선 안 된다.핵심광물과 소재시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인터배터리’ 행사에서 소개된 차세대 양·음극제 등 압도적 기술력을 보유해도 배터리는 결국 광물 의존산업이다. 리튬, 코발트, 니켈 등 수요 광물의 공급망 다변화로 중국 의존도를 낮출 계획만 갖고는 부족하다. 유럽 CRMA(핵심원자재법)으로 중국산 광물 비중을 줄이는 문제와 맞닥뜨렸기 때문이다.전 세계 배터리산업 가치사슬의 하단을 맡는 셈인 우리에게 중간소재와 원료, 광물 분야가 아킬레스건이 되지 않아야 한다. 생산 효율과 품질 못지않게 핵심광물 확보 전략, 그리고 광물 채굴 및 제련, 소재, 셀을 아우르는 국내 가치사슬 구축 노력도 필요하다. 그런 의미로 다시 자원개발 시대다.

2023-03-15 14:07 사설 기자

[사설] 미래 향하는 한·일관계, 일방통행은 없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 사이에 대화 물꼬를 튼 계기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징용) 피해자 배상안이다. 이것이 매개가 되어 급히 조율된 실무방문이다. 16일부터 1박 2일의 일본 방문 일정은 2011년 12월을 끝으로 끊긴 셔틀외교 복원 자체에 의미를 부여할 수는 있다. 2018년 대법원의 확정 판결 이후 최악으로 치닫던 양국 관계만 녹일 수 있어도 일단은 성과다. 국내적으론 반드시 그렇지 않다. 야당 주장처럼 ‘굴욕외교로 일본행 티켓을 산 것’이 아님을 보여줘야 할 부담이 있다. 외교적으로 이번 회담은 4월 한·미정상회담과 5월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의 사전 포석 성격도 갖는다. 한·미·일 공동 대응 전선은 국제외교안보 전략상 불가결하다. 이 모두를 겨냥해 윤 대통령이 지난 삼일절 기념사에서 과거사를 직접적으로 따져 묻지 않는 형식을 취했다. 기시다 총리가 우익정치의 정점인 아베 노선을 그대로 유지할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경색된 관계를 풀 기본 해법은 양국 현안인 강제징용 배상에 있다. 과거 입장 계승을 고집하고 ‘새로운 사죄는 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임한다면 회담 성과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한·일 양국 협상은 자산이 아니라 부채라는 말이 외교가의 금언처럼 내려온다. 잘해봐야 본전이란 뜻을 담고 있는데 우리에겐 특히 그렇다. 일본의 자세 변화가 더 필요한 이유다. 가령, 수출규제 해제와 관련해 한국 정부의 자세를 보겠다는 식의 기세등등한 오만을 버려야 한다. 양국 정상이 정상회담에 이어 만찬을 두 번 하는 것까지 화제다. 다양한 분야의 파트너십, 상호 호혜적 경제구조를 중시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반도체 공급망 재편. 배터리, 콘텐츠 산업, 스마트폰, 화장품과 같은 교류 증진의 영역은 많다. 양국 간 경제적 실리 회복은 복합 경제 위기를 뚫을 지렛대가 될 수 있다.그러기 위해 일본이 ‘성의 있는 호응’을 할 차례다. 여론 악화를 각오하고 제3자 변제 방안을 택한 우리다. 미래청년기금에 일본 피고기업 참여가 중요해졌다.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원한다면 그런 방향으로 협의가 이뤄져야 마땅하다. 일방통행은 없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때 외무상이었던 기시다 총리가 외교는 상호 인정이며 그 실천임을 잘 알 것이다. 과거 한·일 공동선언에 우리가 썼던 ‘기적은 기적적으로 오지 않는다’는 표현은 지금 여전히 유효하다. 한·일관계 새 장을 여는 데서 일본의 응답은 중요하다. 윤 대통령의 강제징용 배상 해법의 여백은 일본이 메워야 한다.

2023-03-14 14:00 사설 기자

[사설] SVB 사태, 금융시장 영향 면밀히 살펴야

미국 16번째 규모의 실리콜밸리은행(SVB)의 갑작스러운 파산 이슈 이후 첫 장이 열린 13일 ‘블랙먼데이’(월요일 증시 폭락)가 덮치지 않나가 관심사였다. 걱정보다는 국내 주식시장 영향이 크지 않았다 해도 지켜봐야 한다. 이스라엘 증시가 3%대 급락한 사례도 있었다. 자산 규모 2090억 달러 규모의 SVB가 공적 관리로 넘어가면서 파산에 걸린 시간은 극히 짧았다. 예금 인출 사태(뱅크런)로 자금난에 빠진 지 이틀 만이다. 리먼브러더스 파산이 방아쇠가 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재현될 정도는 아니지만 경각심은 가져야 한다. 미국 스타트업의 ‘돈줄’ 폐쇄에 대한 어떤 속단도 이르다. 해외시장의 변동성에 관한 부분은 성급하게 예단해서도 안 된다. 국내에 미치는 파산 영향이 제한적이란 것과 신용위험이 확대된다는 것이 지금 해볼 수 있는 전형적인 두 전망이다. 어느 전망을 취하든 정부와 한국은행은 SVB 파산 사태가 시장 변동성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대비해야 한다. 은행권 전반으로의 전이 가능성이 낮다는 미 당국의 전망은 원만한 해결이 전제된 가정이다. 금융위기의 도화선에 불이 붙여질 개연성을 완전히 배제하면 나쁜 선택만 남을 수도 있다.불확실하다면 국내 금융·실물경제에 나쁜 쪽도 대비하는 게 좋다. 주로 스타트업 대출에 특화된 SVB 파산은 시장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악재다. 위험한 것과 덜 위험한 쪽이 있을 뿐이다.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은 막연한 대처법이다. 국내 금융시장과 실물경제는 대외 의존도가 높고 민감하다. 해외시장의 변동성이 주가나 환율 등 국내 금융시장 및 실물경제에 빨리 전이된다. 우리 경제에 부작용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물가, 금리, 환율, 그리고 부채 관리를 더 잘해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붕괴한 워싱턴뮤추얼 다음으로 미국 내 파산은행 중 규모가 크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전운을 상시 모니터링하며 위기 전염을 막는 게 지금 할 일이다.단기적일 수 있지만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매파 기조로 가는 미 연준(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긴축 행보 여부도 주시할 대목이다. 미국 내 중소 규모의 지역은행이 다음 순번이 된다면 ‘특수한 사례’는 일반화된다. 국내외 금융상황에 선제 대응을 소홀히 하면 ‘블랙 먼데이’는 그냥 과거의 일이 아닐 수 있다. 직접적인 영향이 없어 보인다 해서 방심하면 약한 고리에서 출발해 눈덩이처럼 확대재생산되는 위기의 함정에 빠진다. 국내 벤처투자 시장 위축도 우려된다. 사태 진행 추이를 면밀히 살펴 금융시장 불확실성 확대에 기민하게 대비해야 한다.

2023-03-13 14:08 사설 기자

[사설] 중국의 해외 단체여행 한국 ‘왕따’에 대처해야

중국 관광객 복귀에 대한 조기 완화 기대감이 거듭 유보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자국민의 해외 단체여행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오는 15일부터 온·오프라인 여행사들이 여행상품과 항공권·호텔 패키지 상품을 시범적으로 팔게 하면서 프랑스, 이탈리아 등 40개국만 추가한 것이다. 상품 개발과 마케팅을 비롯해 본격적인 리오프닝을 준비해 온 업계는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중국인 방한객 70~80%가 국내 여행사를 통해 들어온다고 보면 더욱 실망스러운 조치다. 중국 문화관광부의 이번 공지는 양국 간 정치적 리스크가 여전함을 확인시켜준다. 지난달 1차로 20개국에 대한 자국민 단체여행 허용에서 배제당했을 때도 그렇게 해석해야 옳았다. 상호 단기 비자 발급 중단 갈등은 진행 경과였지 근본 원인은 아니었다. 입국 전 PCR 검사를 포함해 모든 제한 조치를 풀고서야 최악의 상황이 지나지 않았음이 선명해졌다. 관광비자 발급 제한 외에 중국의 단체관광 금지 명분은 애초에 따로 있었다. 중국 시장의 민감함을 모르고 방역 상황 위주로 지켜본 건 우리 실책이다.지구 반대편 우루과이, 엘살바도르에까지 문을 열면서 한국을 쏙 뺀 중국식 상호주의 원칙은 복잡하게 꼬여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중국이 ‘큰손’인 사실에만 얽매일 필요는 없다. 코로나19 사태 직전인 2019년 국내 입국 중국 관광객 수 602만명(전체 1750만여명)을 넘어선 사실에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진정 기미가 보이자 한국행 중국인이 자연스럽게 늘던 때와는 확연히 달라진 여건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도입에 대한 보복 조치의 연장선으로 인식하고 대처해야 현명하다. 그런 점에서는 중국 대표 여행기업의 한국 관광상품 판매는 양국 간 긴장 완화의 긍정 신호인데 아쉬움이 크다.중국인 방문객 증가로 서비스 수지 개선에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는 일단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자국민의 해외여행까지 정치적 의도를 깔아 외교에 끌어들이는 행태를 비판하기 전에 동남아 관광객 유치 등 관광정책 개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내국인 수요로는 감당이 힘든 카지노업계를 필두로 오는 4월 말 중국 노동절 휴가까지 겨냥한 관련 기업의 상실감이 눈에 보인다. 한계는 있겠지만 외교적 해결과 함께 관광시장 다변화가 숙제일 수밖에 없다. 한·미·일 외교·안보 삼각공조가 강화될수록 여행 한한령(限韓令) 신호탄은 언제든 쏘아올려질 수 있다. 관광내수산업에 큰 악재가 되지 않게 대응하는 일은 정부 몫으로 남겨졌다.

2023-03-12 14:20 사설 기자

[사설] 저축 여력 없는데 ‘청년도약계좌’ 도움 될까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청년(19~34세) 중 적정 독립 시기를 자산 형성 이후, 취업 후, 결혼 후 순으로 응답했다는 국무조정실 실태조사에는 공통점이 있다. 돈, 즉 자산과 공통적으로 연관된다는 점이다. ‘자산 형성 이후’는 경제적 자립의 기준이면서 청년 미래의 근간이 된다. 정부와 금융권 협업으로 자산 형성을 지원하기 위해 6월 출시되는 청년도약계좌에 관심이 가는 이유다. 이자와 개인소득 수준 등에 따라 정부 기여금을 지원받는다는 게 유인책이 될지 주목된다. 월 70만원 한도 납입 등 도약계좌 내용을 보면 가급적 많은 청년이 지원 대상에 포함되도록 설계한 흔적이 역력하다. 적어도 이론상으론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대로 청년이 5년간 5000만원을 모으게 한다는 취지를 뒷받침할 만하다. 그런데 고물가·고금리 속에서 생활비 부족과 절약에 시달리는 평균적인 청년의 삶을 볼 때면 회의감이 고개를 든다. 만기 2년의 청년희망적금조차 유지하지 못하는 청년이 속출한 사실이 의문을 미리 부풀리게 한다. 최대 연 10% 상당의 고금리 이자 지원에도 지난해 반년 만에 30만명 이상이 적금을 해지한 전례를 봐서 하는 말이다.청년의 자산 형성을 돕는다는 취지가 잘못됐다는 시비가 아니다. 상품이 출시되고 300만명 가깝게 몰려 예산을 증액했던 청년희망적금의 초반 인기가 꺼질 때보다 청년이 겪는 체감경기가 더 얼어붙고 있어서다. 파격적인 조건이 붙은 ‘혜자(인심이 좋은) 상품’이라도 생활비가 비고 목돈이 급해지면 울며 겨자 먹기로 도약계좌도 해지할 것 아닌가. 우대금리가 부연된다 해도 저소득층 청년은 적금을 부을 엄두조차 못 낸다. 만기 2년을 못 채운 청년이 5년은 또 어떻게 채우나. 자산 형성을 돕기 전에 개인소득이 낮아 적금이 사치가 된 청년의 고달픈 현실을 보자는 의미다.실제로 먹고사는 문제로 한계 상황에 접어든 청년의 경제적 고통은 국가적 과제로 대두됐다. 청년 일자리의 실상은 통계 숫자보다 심각하다. 청년의 평균 근속기간은 31.6개월이다. 실업급여를 위해 단기간 일자리를 전전하거나 차라리 ‘백수 혜택’에 기대며 구직을 단념하는 경우까지 허다하다. 집값 7억원에 청년평균소득 2162만원인 현실에서는 양질의 일자리 정책이 더 주효할 것이다. 청년희망적금에서 익히 봤듯이 5000만원 통장을 만들어주는 정책은 본말 전도가 아니었으면 한다. 만기 후 좋은 조건으로 갈아타게 해줘도 저축할 여력이 없는 청년에게 5년짜리는 ‘초장기 적금’이다. 청년도약계좌의 숙제도 중도탈락 상황이 없는 자산 형성 지원에 있을 것 같다.

2023-03-09 14:08 사설 기자

[사설] 미국 반도체법 앞 ‘진퇴양난’ 지켜만 볼 텐가

다운사이클(침체기)로 어려움을 겪는 국내 반도체 업계에 ‘숨 불어넣기’ 해법이 절실하다. 제품 가격 하락으로 반년 넘도록 고전하는 터에 미국 행정부의 ‘반도체 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이 옥죄고 있다. 초과이익 환수, 반도체 시설 공개 등 부대조건을 주렁주렁 내건 미국 반도체 보조금 정책, 정확히는 미국 내 제조 강화 행보가 매우 난감하다. 바이오(Bio), 배터리(Battery)와 함께 미국의 3대 미래 먹거리인 반도체(Chips)는 우리에게도 최대 효자 품목의 하나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대하는 순서는 명확해야 한다. 돈(반도체 생산보조금)을 미끼로 반도체 생산 주도권을 챙기겠다는 미국 의도에 대처하는 게 먼저일 수밖에 없다. 미국을 방문 중인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7일(현지시간) 한국의 기업이 불공평한 대우나 불확실성에 직면할 가능성을 최소화하기로 했다고 전하지만, 사실 그 ‘최소화’도 문제다. 경제·국가안보 등 심사 기준을 보면 반도체법 자체가 불공정 경쟁을 유도하는 ‘반도체 패권법’ 성격을 띤다. 자국 반도체 생태계 조성을 빌미로 과도한 독소조항을 포함한다. 가령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낸 초과 수익을 미국 정부가 공유해 자국 반도체 육성에 쓸 수 있다면 이게 말이 되는가.반도체가 아무리 ‘21세기의 편자’라 하더라도 미국의 지나친 시장 개입 시도에 경제안보까지 우려해야 할 입장이다. 미 국방부 등에 반도체 시설 접근을 허용하도록 요구한 것 역시 날벼락 같은 소리다. ‘공짜 점심은 없다’, ‘어떤 기업에도 백지수표는 없다’(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고 하지만 너무 과하다. 원천기술 유출 위험이 있다. 살을 조금 내주고 뼈를 취하는 ‘육참골단(肉斬骨斷)’ 식 미국 반도체 정책 앞에서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술패권주의 옷을 입은 미국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미국 주도의 반도체 먹이사슬에 편입될 수는 없다.선택을 강요받는 K-반도체로서는 이미 불공평의 극치다. 안 그래도 진퇴양난인데 중국이 추격하고 EU와 일본까지 반도체 공장 쟁탈전에 뛰어든다. 그런데 우리는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하나도 여야 간 평행선만 긋고 입법 문턱을 못 넘고 있다. 불공평 대우 최소화를 막연히 희망하지 말고 우리 몫을 챙겨야 한다. 첨단 반도체를 만드는 유일한 나라로 바꾸려는 듯한 미국의 집념을 파격적 지원책 없이 이길 자신 있는가. 이 살벌한 공급망 전쟁 앞에서 생존하려면 세액공제가 ‘재벌 특혜’라는 못난 정치부터 버려야 한다.

2023-03-08 14:10 사설 기자

[사설] 수출규제 해제해도 소부장 자립화 계속해야

강제징용 배상 해법 발표로 곧바로 떠오른 현안이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 조치를 2019년 7월 이전으로 되돌리는 문제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핵심소재 3개 품목 등의 수출 규제 강화 조치와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배제가 당연한 수순처럼 뒤따른다. 수출 복원을 둘러싼 양자 협의와 맞물려 우리가 제소한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절차도 잠정 중단된다. 소재 국산화 일부 성공이라든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자립화 추진과 별개로 취할 조치들이다. 어떤 구실을 일본 정부가 붙였건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대한 100% 경제보복이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수출규제가 어느새 4년이 다가오는 시점에 분쟁 중단은 관계 복원의 신호탄이라는 가시성도 있다. 실익을 떠나 수출규제 조치 해소로 이어지는 게 자연스럽다. 이에 관한 수출관리 정책대화를 비롯한 양자 협의는 서둘러 마무리할수록 좋다. 그러나 G20 오사카 정상회의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을 강조한 지 사흘 만에 핵심 공급망의 허를 찔린 일은 기억해둘 일이다. 정치적 문제가 경제적 문제로 발화되는 속성을 두고두고 되새김해봐야 한다. 일본 정부가 수출규제 그물망으로 우리 산업의 심장을 정조준하면서 얻은 교훈을 우리가 꼭 챙겨야 할 이유다.경제보복 국면에서도 일본은 전형적인 가해자 입장 그것이었다. 국제 여론전도 불통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불안정성을 종식하기 위해 굴욕이란 말을 들으면서까지 우리가 결단했다. 한·일 간 냉각 상태에서 누가 얼마나 영업이익에 타격을 봤는지에 대한 손익계산은 오히려 중요치 않을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폐기는 전략적 고려 없는 문재인 정부의 일방적 정치행위의 성격도 있었음을 반추해봐야 할 것이다. 어쨌든 다른 이슈들도 조속히 정상화 궤도에 진입시켜야 한다.그동안에도 우리는 WTO 분쟁 해결 절차를 잠정 중단하면서 일본의 변화를 촉구한 적이 있었으나 일관되게 허사였다. 오로지 경제보복이었다는 증거다. 반도체 수출규제 해제 절차가 거론되는 시간에도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강제징용과 별개의 안보 관점이라고 경제산업성에 떠넘기며 선을 긋고 있다. 공개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라는 입장의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미래지향적 결단으로 다시 공급망 협력에 나서더라도 첨단소재 국산화로 일본 의존도를 낮추는 노력은 계속해야 한다. 이르면 3년 8개월 만에 재개될 양국 경제협력의 시너지에 몰두하면서도 소부장 업체 자립은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2023-03-07 14:06 사설 기자

[사설] 강제동원 배상 해법, 아쉽지만 최선책 만들어야

강제징용 문제의 꼬인 실타래를 푸는 대신 칼로 자르는 방식을 택했다. 2018년 10월 대법원 판결 이후 악화일로를 걷던 한·일 관계에 서광이 비쳤다. 정부가 6일 공식 발표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중심의 강제징용 해법은 갈등 해소 측면에서 고르디우스 매듭 같은 성격이 없지는 않다. 정석대로 못 풀고 제3자 변제안이라는 기업 출연 방식에 관한 부분에서 아쉬움이 작지 않다.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이 아닌 제3자 변제가 분명히 최선은 아니다. 하지만 상대국이 ‘추가 배상과 사과는 없다’던 일본이었다. 언제까지나 평행선을 달릴 수는 없었다. 우회하는 방식을 택한 것은 국익을 위한 고육책으로 규정할 수 있겠다. ‘강제동원’ 용어조차 꺼리는 일본과의 강제징용 피해배상 문제는 그만큼 난해했다. 관계 개선 분위기 이후에도 양국 간 모든 현안이 봄눈 녹듯 일사천리로 풀리는 것은 아니다. 걸림돌이 된 문제들을 하나씩 제거하는 데 공동의 조율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취하와 3년 넘게 이어지는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를 묶는 조건부 방식 자체도 경제협력의 대의로 수용해야 한다.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미래지향적 관계를 구축하려면 과거를 직시해야 한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피해자 측으로서는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와 전범기업의 배상이 없는 외교적인 선택이 주객전도로 보일 수도 있다. 피고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체철도 양국 재계 주도의 미래청년기금 참여로 성의를 보일지 지켜볼 일이다. 실질적인 피해 배상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긴박한 안보 위기와 경제 위기 속에서 관계를 재건할지는 신뢰가 바탕이 된 상호존중과 협력에 달려 있다. 사죄 대신 기존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나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했다고 해서 우리가 도덕적 우위를 잃거나 일본에 끌려가는 모양새는 되지 않아야 한다. 국제관계에 짝사랑은 없다. 일본 게이단렌(經團連·일본경제단체연합회)의 카운터파트로 활약한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 단체들도 역할을 다해주길 바란다.제3자 대위변제 방식과 미래청년기금이라는 투 트랙으로 복잡한 문제를 더 복잡하게 풀지 않은 건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새로운 미래 지향적 관계에는 한 올 한 올 정성 다해 풀어야 할 매듭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군국주의 침략자와 피해자였던 한·일 양국관계를 이제 진정성 있게 원점에서 검증할 시간이 왔다. 포괄적 관계 증진과 별개로 반도체 등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자립과 공급망 안정화는 지속돼야 할 과제다. 강제동원 우회로를 차선책으로 들어갔다 최선책이 된 모범 사례로 만들길 기대한다.

2023-03-06 14:19 사설 기자

[사설] 난임지원 사업부터 재정비해야 한다

인구 자연감소가 현실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합계 출산율 0명대를 기록하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 연간 출생아 수가 25만명을 넘지 못했다. 막대한 돈을 들이고도 출생률은 날개를 돋을 줄 모른다. 이쯤에서 실질적 인구감소 대응을 위한 진짜 계획들을 내놓을 때다. 그 가운데 아이를 갖고 싶은 부부, 즉 임신을 적극적으로 원하는 부부에 대한 난임 지원이 상당히 실효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걸로 예상되는 평균 아이의 수가 0.78명인 충격적인 현실을 무겁게 직시해야 한다. 맞벌이 부부 등에 대한 시술비 추가 지원 확대가 절실한데 국고지원금을 없애거나 난임지원 예산을 줄이는 것은 정책상의 오류다. 아이를 갖고 싶은 부부에 대한 소득기준과 시술횟수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저출산 대책은 난임시술비 지원 사업의 문제점을 바로잡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16년간 280조원의 저출생 대응 예산을 들였지만 인구 절벽이 계속되는 이유는 돈을 잘못 쓴 탓이 크다.적용 횟수 제한 없이 지원 시술을 받게 하는 게 제대로 된 정책이다. 남녀고용평등법상 규정된 난임 치료 휴가 3일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실치료기간과 관찰기간도 늘려야 한다. 지자체 재정 여건 등에 따라 들쑥날쑥하는 지원 기준을 보면 임신에 우호적인 환경을 만들기를 포기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난임진단서의 ‘남성 요인’ 등이 포함된 지원 조건 등은 삭제해야 할 것이다. 난임 지원으로 가계 소득이 증가하진 않는다. 난임 지원에서의 소득 기준도 없애야 타당하다. 부산, 대구, 세종, 전남, 경남 등에서는 소득 기준을 폐지했다. 하지만 지원을 받기 위해 소득 수준을 낮추고 휴직하는 사례가 아직 있다. 조건 없는 난임 시술비 지원 정책이 절실하다.거주 지역에 따라 난임지원 사업에 차별이나 역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저출산 대책에 효율적으로 집중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는 고령 인구를 부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통계가 나올 때마다 경신을 거듭하는 출산율 역대 최저 기록을 끊으려면 난임 치료 과정의 건강권 보호를 비롯해 성·재생산건강권 사업을 재구조해야 할 것이다. 자녀를 안전하게 출산해 키울 사회적 안전망 완비는 결혼과 임신 단계부터 시작해야 한다. 신생아 11명 중 1명은 난임시술로 태어났다는 일부 보고도 있다. 난임시술 지원 사업의 지방 이양으로 국가 의무가 끝나는 건 아니다. 만혼 등으로 35세를 전후로 가임력이 급격히 떨어진 부분까지 감안하면서 지원 사업을 재정비하기 바란다.

2023-03-05 15:16 사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