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래 향하는 한·일관계, 일방통행은 없다

사설 기자
입력일 2023-03-14 14:00 수정일 2023-03-14 14:00 발행일 2023-03-1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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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 사이에 대화 물꼬를 튼 계기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징용) 피해자 배상안이다. 이것이 매개가 되어 급히 조율된 실무방문이다. 16일부터 1박 2일의 일본 방문 일정은 2011년 12월을 끝으로 끊긴 셔틀외교 복원 자체에 의미를 부여할 수는 있다. 2018년 대법원의 확정 판결 이후 최악으로 치닫던 양국 관계만 녹일 수 있어도 일단은 성과다. 국내적으론 반드시 그렇지 않다. 야당 주장처럼 ‘굴욕외교로 일본행 티켓을 산 것’이 아님을 보여줘야 할 부담이 있다.

외교적으로 이번 회담은 4월 한·미정상회담과 5월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의 사전 포석 성격도 갖는다. 한·미·일 공동 대응 전선은 국제외교안보 전략상 불가결하다. 이 모두를 겨냥해 윤 대통령이 지난 삼일절 기념사에서 과거사를 직접적으로 따져 묻지 않는 형식을 취했다. 기시다 총리가 우익정치의 정점인 아베 노선을 그대로 유지할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경색된 관계를 풀 기본 해법은 양국 현안인 강제징용 배상에 있다. 과거 입장 계승을 고집하고 ‘새로운 사죄는 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임한다면 회담 성과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한·일 양국 협상은 자산이 아니라 부채라는 말이 외교가의 금언처럼 내려온다. 잘해봐야 본전이란 뜻을 담고 있는데 우리에겐 특히 그렇다. 일본의 자세 변화가 더 필요한 이유다. 가령, 수출규제 해제와 관련해 한국 정부의 자세를 보겠다는 식의 기세등등한 오만을 버려야 한다. 양국 정상이 정상회담에 이어 만찬을 두 번 하는 것까지 화제다. 다양한 분야의 파트너십, 상호 호혜적 경제구조를 중시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반도체 공급망 재편. 배터리, 콘텐츠 산업, 스마트폰, 화장품과 같은 교류 증진의 영역은 많다. 양국 간 경제적 실리 회복은 복합 경제 위기를 뚫을 지렛대가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일본이 ‘성의 있는 호응’을 할 차례다. 여론 악화를 각오하고 제3자 변제 방안을 택한 우리다. 미래청년기금에 일본 피고기업 참여가 중요해졌다.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원한다면 그런 방향으로 협의가 이뤄져야 마땅하다. 일방통행은 없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때 외무상이었던 기시다 총리가 외교는 상호 인정이며 그 실천임을 잘 알 것이다. 과거 한·일 공동선언에 우리가 썼던 ‘기적은 기적적으로 오지 않는다’는 표현은 지금 여전히 유효하다. 한·일관계 새 장을 여는 데서 일본의 응답은 중요하다. 윤 대통령의 강제징용 배상 해법의 여백은 일본이 메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