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이 문제를 대하는 순서는 명확해야 한다. 돈(반도체 생산보조금)을 미끼로 반도체 생산 주도권을 챙기겠다는 미국 의도에 대처하는 게 먼저일 수밖에 없다. 미국을 방문 중인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7일(현지시간) 한국의 기업이 불공평한 대우나 불확실성에 직면할 가능성을 최소화하기로 했다고 전하지만, 사실 그 ‘최소화’도 문제다. 경제·국가안보 등 심사 기준을 보면 반도체법 자체가 불공정 경쟁을 유도하는 ‘반도체 패권법’ 성격을 띤다. 자국 반도체 생태계 조성을 빌미로 과도한 독소조항을 포함한다. 가령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낸 초과 수익을 미국 정부가 공유해 자국 반도체 육성에 쓸 수 있다면 이게 말이 되는가.
반도체가 아무리 ‘21세기의 편자’라 하더라도 미국의 지나친 시장 개입 시도에 경제안보까지 우려해야 할 입장이다. 미 국방부 등에 반도체 시설 접근을 허용하도록 요구한 것 역시 날벼락 같은 소리다. ‘공짜 점심은 없다’, ‘어떤 기업에도 백지수표는 없다’(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고 하지만 너무 과하다. 원천기술 유출 위험이 있다. 살을 조금 내주고 뼈를 취하는 ‘육참골단(肉斬骨斷)’ 식 미국 반도체 정책 앞에서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술패권주의 옷을 입은 미국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미국 주도의 반도체 먹이사슬에 편입될 수는 없다.
선택을 강요받는 K-반도체로서는 이미 불공평의 극치다. 안 그래도 진퇴양난인데 중국이 추격하고 EU와 일본까지 반도체 공장 쟁탈전에 뛰어든다. 그런데 우리는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하나도 여야 간 평행선만 긋고 입법 문턱을 못 넘고 있다. 불공평 대우 최소화를 막연히 희망하지 말고 우리 몫을 챙겨야 한다. 첨단 반도체를 만드는 유일한 나라로 바꾸려는 듯한 미국의 집념을 파격적 지원책 없이 이길 자신 있는가. 이 살벌한 공급망 전쟁 앞에서 생존하려면 세액공제가 ‘재벌 특혜’라는 못난 정치부터 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