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강제동원 배상 해법, 아쉽지만 최선책 만들어야

사설 기자
입력일 2023-03-06 14:19 수정일 2023-03-06 14:19 발행일 2023-03-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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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문제의 꼬인 실타래를 푸는 대신 칼로 자르는 방식을 택했다. 2018년 10월 대법원 판결 이후 악화일로를 걷던 한·일 관계에 서광이 비쳤다. 정부가 6일 공식 발표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중심의 강제징용 해법은 갈등 해소 측면에서 고르디우스 매듭 같은 성격이 없지는 않다. 정석대로 못 풀고 제3자 변제안이라는 기업 출연 방식에 관한 부분에서 아쉬움이 작지 않다.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이 아닌 제3자 변제가 분명히 최선은 아니다. 하지만 상대국이 ‘추가 배상과 사과는 없다’던 일본이었다. 언제까지나 평행선을 달릴 수는 없었다.

우회하는 방식을 택한 것은 국익을 위한 고육책으로 규정할 수 있겠다. ‘강제동원’ 용어조차 꺼리는 일본과의 강제징용 피해배상 문제는 그만큼 난해했다. 관계 개선 분위기 이후에도 양국 간 모든 현안이 봄눈 녹듯 일사천리로 풀리는 것은 아니다. 걸림돌이 된 문제들을 하나씩 제거하는 데 공동의 조율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취하와 3년 넘게 이어지는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를 묶는 조건부 방식 자체도 경제협력의 대의로 수용해야 한다.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미래지향적 관계를 구축하려면 과거를 직시해야 한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피해자 측으로서는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와 전범기업의 배상이 없는 외교적인 선택이 주객전도로 보일 수도 있다. 피고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체철도 양국 재계 주도의 미래청년기금 참여로 성의를 보일지 지켜볼 일이다. 실질적인 피해 배상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긴박한 안보 위기와 경제 위기 속에서 관계를 재건할지는 신뢰가 바탕이 된 상호존중과 협력에 달려 있다. 사죄 대신 기존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나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했다고 해서 우리가 도덕적 우위를 잃거나 일본에 끌려가는 모양새는 되지 않아야 한다. 국제관계에 짝사랑은 없다. 일본 게이단렌(經團連·일본경제단체연합회)의 카운터파트로 활약한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 단체들도 역할을 다해주길 바란다.

제3자 대위변제 방식과 미래청년기금이라는 투 트랙으로 복잡한 문제를 더 복잡하게 풀지 않은 건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새로운 미래 지향적 관계에는 한 올 한 올 정성 다해 풀어야 할 매듭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군국주의 침략자와 피해자였던 한·일 양국관계를 이제 진정성 있게 원점에서 검증할 시간이 왔다. 포괄적 관계 증진과 별개로 반도체 등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자립과 공급망 안정화는 지속돼야 할 과제다. 강제동원 우회로를 차선책으로 들어갔다 최선책이 된 모범 사례로 만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