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내년 최저임금, 고용 영향도 살피며 결정하길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놓고 노사간 팽팽한 신경전을 보이는 것은 여느 때도 늘 보던 모습이다. ‘대폭 인상’과 ‘사실상 동결’도 익숙한 구호처럼 들린다. 노동계는 물가 폭등으로 소비 여력이 급격히 위축됐음을 근거로 드는 반면, 경영계는 위축되는 기업 지불능력을 고려하자며 치열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8년 만에 가까스로 협상 시한 데드라인을 지킨 것이 이례적으로 비칠 정도다. 매출 규모나 영업이익 면에서도 봐야 할 것이 최저임금 결정이다. 임금 수준이 낮은 중소기업일수록 인건비 비중이 높아 최저임금 영향을 크게 받는다. 최저임금 제도의 목적과 취지를 중시하되 경영 부담을 안 주고 현장에서 수용할 능력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근로자 생계비와 함께 노동생산성과 소득배분율 등도 고려할 대상이다. 물가 폭등과 낮은 성장률 사이의 접점 찾기에 가려지 있지만 심도 있는 논의의 장을 거쳐 업종별 차등적용도 언젠가는 손대야 한다. 사문화 조항처럼 됐을 뿐, 이러한 취지가 최저임금법에도 담겨 있다. 보다 중시할 것은 최저임금 결정 기준에 기업 지불능력을 포함해야 한다는 점이다.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중소기업은 최저임금 인상 자체가 큰 부담이 된다. 최저임금 맞추기에 급급한 회사가 부지기수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허망한 깃발 아래 문재인 정부 첫해의 16.4% 등 급격한 최저임금 오름세의 여파를 돌아봐야 한다. 그러고도 저임금 근로자 비중은 도리어 늘었다. 노동 수요의 탄력성, 노동시장의 이중적 구조, 경제 상황 전반을 두루 살피지 못한 잘못이다. 주요 선진국에도 없는 주휴수당은 빼고라도 국내 최저임금은 중위임금 대비 높은 편이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경제적 안녕만 챙기려다 보면 일자리 감소로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주객전도의 상황까지 생긴다. 최저임금 심의에서 ‘최저임금 1만원’에 과하게 집착하지 않길 바라는 이유다.실제로 최저임금이 고율 인상될 경우 고용을 줄이겠다는 중소기업이 절반 이상이었다. 30일 공개된 중소기업기업중앙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서는 신규 채용 축소(29.9%)나 감원(25.5%)을 하겠다고 했다. 같은 조사에서 올해 경영상황이 지난해보다 악화(62.9%)됐다고도 봤다. 높은 최저임금 인상이 저숙련 노동자의 실업과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는, 즉 일자리 정상화에 역행하는 정책실험은 그만둘 때가 됐다. 대신, 지난 5년여 동안 최저임금 산정 때 뒷전이었던 중소기업 입장도 헤아려줄 차례다. 일자리 환경을 악화시키지 않는 선에서 시한 내에 합의하고, 더 많고 더 좋은 일자리를 만들 방안도 함께 궁리하길 권고한다.

2023-05-30 14:00 사설 기자

[사설] ‘재활 분야’ 일자리 사업 추가 바람직하다

장애인 취업과 재활을 도울 다양한 개선 방안이 요구되고 있다. 누구나 원하는 일자리에 근무하는 노동시장은 사실 꿈에 가까운 일이다. 비장애인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일하기 편한 일터 조성의 벽은 현실적으로 높기만 하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일자리사업 유형에 지원고용 및 재활분야를 추가한 건 바람직하다. 사각지대나 다름없는 영역이 비장애인의 삶을 살다가 사고나 질병으로 일시적으로 어려워진 경우의 노동시장 편입이기 때문이다. 재활 분야의 정부 일자리 사업 추가가 단순히 지원 유형의 추가일 수는 없다. 성패는 ‘디테일’에 있다. 불의의 사고 등으로 후천적 장애를 가진 경우에 대해서는 원활한 전환기를 돕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등록 장애인 10명 중 9명이 이런 유형이다. 그에 비하면 직업재활 시스템은 정교함이 부족하다. 민간기업, 공공기관 위주의 연계고용을 국가, 지자체 등으로 확대하는 속도를 높여야 한다. 운영의 묘를 살려 의무고용의 회피수단이 되지 않게 하면서 말이다. 의료재활, 직업재활 체계화가 잘 돼 있고 그 중간단계로 의료·직업재활을 둔 독일의 사례에는 참고할 점이 많다.이런 서비스를 제공할 더 많은 재활전문기관이 필요하다. 소득지원, 의료재활, 직업재활·취업을 지원하기 위해 빈약한 직업재활 시설과 프로그램을 확충해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직접일자리 세부유형은 현재의 공공업무지원, 소득보조형, 인턴형, 사회봉사·복지형에서 노동시장 이행형, 사회봉사·복지형 둘로 단순화한 것이 특징이다. 가급적 지체·청각·시각·뇌병변·지적장애 등 장애유형별 배려를 하고 근로 여건도 개선해야 한다. 일을 해도 소득이 적어 생활비 충당이 어려운 것은 또 다른 문제다.재활사업이든 장애인 연계고용이든 정확한 실태 조사 없는 지원사업은 실효성을 떨어뜨리기 마련이다. 재활분야 대상자들도 노동시장 편입을 위한 정보를 흡수하는 능력이 약하다고 보고 이에 맞춰 대처해야 한다. 정부 재정지원 일자리가 민간부분의 일자리를 몰아내는 역기능은 미리 차단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서 중중·발달장애인 일자리 확대에 기여해 온 대기업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은 최대한 활성화해야 한다. 급속히 변화하는 노동시장에 대응하면서 정부가 관련 규제를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장애인, 재활사업 대상자가 어렵게 정규직으로 전환하지만 근속 유지가 쉽지 않다. 65세 이상의 장애인 비율이 52.8%를 넘어 꾸준히 늘고 있다. 더 이상 전통적 정책 수단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일자리사업 유형뿐 아니라 다양한 시각에서 일자리를 고민할 때다. 아울러 재활분야 일자리에서는 양극화가 사라지길 기대한다.

2023-05-29 14:08 사설 기자

[사설] 금리 3연속 동결, 경기회복이 최우선 과제다

기준금리가 연 3.50%에 그대로 멈췄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25일 정례회의에서 전원 일치로 이 같은 선택을 내린 가장 큰 이유는 경기 부진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지난 2월 23일, 4월 11일에 이은 세 번째 동결이다. 금리 인상이 숨고르기에 들어간 그 사이에도 경제가 더 나빠지고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금리 인상의 빌미가 됐던 물가가 다소 진정세를 보인 것도 올 들어 3연속 동결을 이끈 배경이다. 한은으로서는 물가안정이 경기 부양 정책보다 상위에 있다 할 만큼 우선적이고 중요하다. 다만 3%대 물가상승률이라도 보다 기조적인 근원물가(에너지·식품 제외) 상승률은 4%대에 걸쳐 있다. 고물가는 고금리, 수출 부진과 함께 여전한 악재다. 한국 경제의 급속한 위축은 연속적인 무역 감소와 무역적자가 잘 대변한다. 인상 사이클 종료는 어찌 보면 경기 둔화만을 우려한 결정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물가와 함께 약한 모습으로 전개되는 원화 가치의 흐름은 이번 동결 이후 특히 경계할 대상이다.그러면서 가계와 기업, 부동산 시장도 안정화를 이뤄내야 한다. 통화 당국이 금리동결로 대응한 재정당국과의 역할 분담으로 경기회복세에 얼마나 기여할지는 미지수다. 2021년 8월부터 이어진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이 사실상 멈춰선 이 시간도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6월 금리 인상 여부를 놓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 대외의존도가 높고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유출입이 빈번한 국내 특성에 미국 금융 불안이 해소되지 않은 점을 주시하면서 유사시에 대비해야 한다.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도 미미하다. 이날 1.6%에서 1.4%로 낮춰진 것을 비롯해 연속 하향 조정되는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주요 10개국 중 이례적이라는 사실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다시 강조할 것은 연이은 기준금리 동결은 추락하는 경기 방어를 위한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는 측면이다. 국내 경기 상황에 맞는 통화정책만으로 경기를 끌어올릴 수는 없다. 국내 경제의 근본 체질 개선이 전제돼야 한다. 내외 금리차로 인한 외국인자금 유출 가능성은 계속 잠복 상태다. 무역수지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는 일 또한 시급하다. 구조 개혁을 통한 경제 체질 개선이야말로 긴요한 처방이 될 것이다. 물가안정 목표(2%)를 웃돌고 있는 물가는 안심하긴 이르다. 물가·환율 불안을 경계하면서 경기 회복에 국가적 역량을 모을 때다. 금통위원들이 최종금리 수준에 대해서는 3.75% 가능성까지 열어둔 것도 기억하자. 발등의 불인 경기 악화에 총력 대응하는 일이 남았다.

2023-05-25 14:07 사설 기자

[사설] 미·중 칩 전쟁, 마이크론 ‘빈자리’ 정도가 아니다

중국이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의 자국 내 판매 금지라는 제재를 가하자마자 국내 반도체 기업에 불똥이 떨어졌다. 미국 하원 특별위원회 위원장 입에서 한국 기업들이 중국 내 공백을 채울 수 없도록 하라는 말이 기어이 나왔다. 미국의 대중 장비 수출 규제에 맞선 첫 보복은 K반도체에 본격적으로 닥칠 위기의 진폭을 가늠케 해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 내에서 최소한이나마 생산성을 유지하도록 숨통을 터준 것에 안도할 때는 아닌 듯하다. 한국 기업이 마이크론 공백을 메울 수 없도록 압박할 가능성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다. 미국과 각별한 동맹국이기 때문에 우리가 겪는 이중고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의 압박과 중국의 제재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마이크론 대신 못 팔게 하는 것뿐 아니라, 미국은 중국 공장의 반도체 수준에 어떤 식이든 상한선을 둘 것이다. 중국 내 실질적인 피해를 줄이면서 대체 공급업체가 되는 노력을 아직은 포기하기에 이르다. 확실한 것은 K반도체가 입을 타격이 심대하다는 점이다.일정 조건만 지키면 얼마간 안정적으로 중국 내 공장을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은 비교적 괜찮은 낙관론이다. 중국이 납품을 요청할 경우는 정말 중대한 시험에 드는 순간이다. 미국 반도체 수입 시장에서도 중국산이 빠진 자리를 메우긴 쉽지 않아 보인다. 대만과 베트남 제품이 힘을 얻고 있어서다. 정부도 수출과 투자 유치, 공급망 다변화가 살길이라고 되뇌고만 있을 때는 아니다. 미·중 칩 전쟁 속에 한국이 빈자리 채우는 것(backfilling)을 용인하지 않은 이상, 마이크론의 대체 공급업체가 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고 보고 방비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유예 조치를 취한 부분도 정말 걱정인 것은 그 조치 이후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견제망이 되어버린 반도체 공급망 재편이라는 큰 흐름은 이렇듯 험난하다.삼성과 SK하이닉스 제품을 중국 제조폰들이 많이 쓰고 있는데 이 부분에도 대처가 필요하다. 한국산 메모리 판매에 제동이 걸리는 상황을 피해가야 한다. 중국 공장에서 양산하는 최첨단 메모리칩과 관련된 장비 반입도 미국의 제재를 피해가야 할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 간 상대국 반도체 기업 때리기가 심해질수록 우리는 그나마 조금 벌어놓은 시간마저 까먹게 생겼다. 마이크론 ‘빈자리’ 정도가 아니다. 중국 봉쇄가 불러올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지 않아야 한다. 최악의 결말인 중국 공장의 반도체 생산을 중단해야 할 사태가 오지 않게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걸핏하면 공조와 동맹을 내세우는 미국에 대해서도 이익의 균형은 맞춰야 한다.

2023-05-24 14:16 사설 기자

[사설]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시행 혼란 없어야

오는 6월 1일부터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시행하지만 아직 준비가 덜 된 채로 있다. 재진 환자와 의원급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하며 ‘예외적 허용 상황’을 둔 것부터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법정 감염병 확진자, 거동불편자, 의료취약지 거주자 등에 대한 예외적 초진 대상을 놓고 빚어지는 혼선부터 정리하는 게 순서일 것 같다. 소아청소년의 야간·휴일 진료를 둘러싼 각계의 첨예한 의견도 조율이 끝나야 한다. 제도가 사람을 위해 있다는 ‘가치’가 특히 중요한 것이 비대면 진료의 경우다. 가치를 적절히 배분하는 노력을 그만큼 기울여야 한다.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돈벌이를 해서도, 비대면 진료를 중개하는 플랫폼 업체의 배만 불려서도 당연히 안 된다. 단계적으로 허용 범위를 넓히는 방안에 대해서는 시행 과정에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초진을 비대면 진료 범위에 포함시키는 건 시범사업 이후 피할 수 없는 방향이다. 다만 진단 과정의 오류나 의료사고의 위험성, 의약품 남용 우려가 없는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 비대면 진료 수가도 합리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다.비대면 진료의 특성상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약사 간 잡음이 없길 바라긴 힘들다. 비대면 진료가 어려운 진료과목도 있고 오프라인 약국의 위치에 따라 매출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장단점이 뚜렷하고 제한된 자원이 있는 제도임을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환자의 안전이 뒷전이라며 거부만 해서는 안 된다. 진료 반대나 불가라는 강경한 입장 대신, 코로나19 사태 3년간 축적된 3660여만건의 비대면 진료 경험을 잘 살리면 못할 것도 없다. 병원이 재진 중심으로 일정 부분 참여하는 등 효율적인 대안을 찾아 제도화하는 게 합리적이다. 더 정확하고 덜 위험한 제도로 정착하기 위한 분명한 원칙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그게 부족하다.그런 면에서 방향과 범위를 조금 더 넓혀보는 것도 괜찮다. 시범사업 기간에 진료의 위험성도 평가하고 보완점을 찾는 데 유리할 것이다. 의료계의 반발에 따른 절충안이긴 하지만 코로나19 때보다 비대면 진료가 오히려 축소됐다. 편의성보다 안전성을 찾는데 불리하다는 이야기다. 진료 제도의 구체적인 내용을 놓고 혼란이 가중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플랫폼 간 과당경쟁을 막을 대안까지 마련해둬야 한다. 도마 위에 오른 예외적 초진 허용이나 진료 수가 책정에 대해서는 남은 시간을 감안할 때 가급적 이번 주에 단안을 내리길 바란다. 보건복지부가 당정 협의 등을 거쳐 내놓을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안부터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쪽으로 설계되고 시행되면 좋겠다.

2023-05-23 14:03 사설 기자

[사설] 거부권 예견된다면 ‘노란봉투법’ 폐기가 최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일명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여야 대치 국면이 이번 주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지난 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은 60일을 꽉 채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국회법상 절차인 본회의 직회부 요건이 된 것이다. 본회의를 하루 앞둔 24일의 환노위 전체회의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거대 야당이 전매특허처럼 휘두르는 강행 처리 가능성은 커질 대로 커진 상태다.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경영계는 초비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2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토론회를 여는 등 반대 목소리를 높이지만 또 귓등으로 듣는 것 같다. 사용자의 범위를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 자’로 넓히면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닌 원청도 사용자로 볼 수 있게 된다. 노조 불법파업에 대해 사측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불법파업 조장법’이라는 수식어가 대변하듯이 강성 노조가 휩쓰는 대립적인 노사 관계는 뿌리부터 흔들린다. 이건 신중 입법 과제이기보다는 전면 재검토해야 할 부당한 법안이다. 만일 노란봉투법이 노동현장에 적용되면 공동 불법행위를 보호하는 꼴이 된다.법안 처리를 강행하려는 더불어민주당과 노란봉투법 반대가 사실상 당론인 국민의힘 간 협의는 거의 무의미해 보인다. 2015년 19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이 법은 19대와 20대 국회 연속으로 국회 회기 만료로 자동폐기됐다. 하지만 21대 국회에서 11개의 노란봉투법이 1개의 법안으로 압축된 지금은 다르다. 노사관계와 경제에 미칠 해악이 불 보듯 하지만 입법 독주를 위해 손잡은 두 야당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하긴 어렵게 됐다. 본회의에 직접 상정하는 직회부 코스를 밟지 않기를 바라야 할 처지다. 중재가 가능한 법이 아닌 수용 불가능한 법에 가깝다는 게 더 문제다.지속 가능한 노동시장 선진화가 과제인 우리 노사 관계에 저해 요소를 새로 만들지 않아야 한다. 노사 상생 협력 생태계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원·하청 문제 해결 수단도 아닌데다 소모적인 분쟁을 키울 수 있다. 합법적 파업의 범위를 늘리고 노동쟁의 개념을 확대하면 사용자 고유 권한인 경영권은 더욱 위축될 것이다. 1년 내내 분쟁이 걱정되는데 국내외 기업이 투자하고 싶을 리 없다. 가뜩이나 힘든 산업현장에 혼란을 키울 법이라면 전면 폐기가 최선이다. 앞으로 며칠이 고비다. 야당 단독 처리와 재의요구권(거부권) 수순은 피해야 한다. 노란봉투법을 막아달라며 호소에 나선 경제단체장들의 목소리에 더 귀기울여야 할 때다.

2023-05-22 14:06 사설 기자

[사설] G7 슈퍼위크 접고 경제외교 한계 돌아볼 시간

21일 끝난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는 인도·태평양지역 경제외교에 시동을 걸고 핵심광물 공급협력을 다진 점이 알맹이로 남는다. 서방과 중국의 관계 전환점에서 중국의 경제적 강압에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참관국(옵서버) 자격으로 참석한 한국 역시 글로벌 의제를 놓고 숨가쁜 외교의 시간을 보냈다. 최첨단 과학·바이오 기술을 보유한 국가로서, 또한 세계시장 수출 점유율 6위와 수입 8위의 국가로서 많은 과제도 남겼다. 서방 선진 부국 회의체인 G7은 세계질서의 추이를 점검하고 협력 기조를 강화하는 모임이다. 성격에 맞게 에너지, 기후 변화, 핵무기 문제 등이 심도 있게 다뤄졌다. 한국으로서는 G7 국가, 특히 첨단산업에서 중국을 봉쇄하는 전략을 펴는 미국의 신경제질서 구축 전략에 한발 앞으로 다가간 것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세계 주요 자유 연대 선진국과 평화·안보에 관한 공감대는 소중하다. 그렇다고 경제안보 협력이나 공급망 문제에서 과도하게 경직된 자세를 가져서도 안 된다. 미국이 대중국 단결의 고삐를 죄지만 전례 없는 단일대오에는 한계가 있다. 그건 우리도 다르지 않다.유럽 국가들은 한반도 정책에 있어서는 대략적으로 미국과 보조를 맞추는 경향이 있다. 희토류 등 광물이나 중요 물자 수출 제한에 대응하기 위한 경제적 강압에 대한 조정 플랫폼에서 실리적으로 접근할 부분도 있다. G7 정상회의 뒤 성명에서 발표된 중요 광물, 반도체·배터리 등에 대한 글로벌 파트너십에 어떤 방식으로 참여할지 보다 치밀해져야 한다. 경제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을 견제할 수단으로 핵심광물안보 협력의 체계화를 말하지만 간단하지 않다. 광산 공동개발과 정·제련 공정협력 등 무척 많은 숙제를 남겨두고 있다.미·중 간 전략적 경쟁과 경제적 실익 사이에서 공급망을 촘촘히 다진다는 게 만만한 문제는 아니다. 공동성명을 G7 회원국만의 ‘결과 문서’로만 규정할 수만도 없고, 대중국 공조 수위 등에서 미국이나 유럽과 완전히 일치할 수도 없다. 2년 전 런던 G7 정상회의에 한국이 초청받은 것 역시 대중국 견제를 주도하는 미국과 영국의 전략도 내포돼 있었다. 연쇄 정상회담으로 얻은 경제외교 성과는 국익 차원에서 살리면서 들뜨지 말고 한계까지 돌아볼 시간이 왔다. G7 슈퍼위크가 끝난 지금은 미·중 전략 대결 구도가 짙어진 다음을 차분히 대비해야 한다. 미국이 압박하는 진영 구도를 지지하고 세계질서의 비전을 제시하되 우리 경제와 긴밀한 한·중관계에 추가 악재를 만들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중국 견제 협의체에 가담할 계획이 없더라도 마찬가지다.

2023-05-21 13:44 사설 기자

[사설] 아직 부동산 ‘경착륙 방어 성공’ 말할 때 아니다

부동산 시장은 고도를 급격히 낮추면서 활주로에 착륙하는 항공기의 경착륙에 비유되는 상황이다. 경착륙했다면 추락에 가까운 상황을 피해 착륙했다는 뜻이니 파장이 클 것이다. 침체 국면으로 볼 때 국내 부동산은 경착륙 직전까지 이르렀다가 좀 나아진 단계에 해당한다. 연착륙 가능성은 지난해보다 커졌다. 하기에 따라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연착륙으로도, 경착륙으로도 갈 수 있다. 연착륙 방안과 그 실효성에 달린 문제다. 집값이 급격히 하락하면 경제에 감당하기 힘든 부담을 준다. 주가 하락, 실업률 등 지표를 악화하지 않으면서 경기 침체 등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유도해야 한다. 현재의 부동산 시장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부분에서는 연착륙이 가능하다. 다만 경착륙을 막고 연착륙을 유도한다는 것은 집값이 완만하지만 상승 반전이 아니라 결국 하락한다는 의미도 될 수 있다. 올해 부동산 시장은 4.1% 더 하락한다는 전망이 나온다. 거래량은 다소 회복세를 타지만 대출을 안고 부동산을 거래할 동기가 줄어드는 문제가 생긴다.지난해 5월 이후의 집값 급락세가 다소 진정은 됐다. 더 완연한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게 해야 한다. 국내외 경제 상황이 안 좋다. 기준금리가 급격히 상승했고 가구별 갚아야 할 원리금 규모가 급증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 경착륙 방어에 성공했다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자평 자체가 어쩌면 시기상조다. 미분양 상황이 개선되는 이면에는 준공 후 미분양 확대라는 시장 악화 요인이 기다린다. 10채 중 8채가 지방에 몰린 미분양 주택이 경착륙의 신호탄이 되지 않아야 한다. 연착륙 유도가 ‘경착륙하고 있다’로 읽히지 않게 정부의 시장개입 수준을 잘 가늠해야 할 것이다. 부동산은 정책과 함께 개발, 특히 경기 사이클에 좌우된다는 사실까지 잘 기억해야 한다.시장 흐름이 반드시 정책의 결과는 아니다. 흐름이 그대로 시장의 변인이 되기도 한다. 지금을 연착륙과 경착륙의 중간단계이며 갈림길로 보는 게 더 타당하다. 고금리 벽을 넘는 것도 연착륙의 연료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착륙을 주문했지만 세제와 대출 규제 완화 등 내놓을 방안은 제한적이다. 실수요자를 위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더 완화해 매매수요의 그릇을 키울 필요가 있다. 미분양 매수자의 양도세 감면 등 세제 혜택도 고려해볼 만하다. 유동성 지원과 추가 규제 완화 등의 대안도 찾아봐야 한다. 공급 기반 유지와 임대차 3법 개정 또한 현안 중 시급하다. 무엇보다 부동산 연착륙은 거래 활성화로 실질적인 수요를 늘려야 하는 문제와 직결돼 있다.

2023-05-18 14:02 사설 기자

[사설] 간호법 거부권 정국, 절실해진 ‘의료 대타협’

간호법 제정안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이후 갈등 국면이 쉽게 해소될 것 같지 않다. 17일부터 간호사 면허증 반납운동을 갖고 준법투쟁에 나서고 있다. 법을 강행 처리한 더불어민주당 측은 업무범위 침해 요소 등을 수정해 간호법을 재추진할 움직임이다. 국민의힘은 법안 폐기 전 법안 조율에 나선다는 자세를 취한다. 시점상 거부권 행사에 앞섰어야 옳은 순서다. 간호사의 근무환경과 처우 개선을 위한 법이라는 시각과 국민 생명을 볼모로 하는 입법독주법이라는 시각만큼이나 대화의 벽은 높다. 그 벽이 이렇게 거부권 정국을 쌓았다. 국회와 정부가 간호법을 숙론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지 않은 엄중한 책임을 반추해봐야 한다. 간호사의 과도한 업무와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한 공감대 속에 발의된 것까지는 좋았다. 간호사만을 위한 이기주의법처럼 오도되는 것은 잘못이다. 민주당이 독주한 결과이기도 하다. 중재안과 간호사 처우 개선 종합 방안에는 애초 관심도 없는 듯 보였다. 그 대가로 지금 갈등 조정 능력을 상실한 무기력한 국회의 모습을 보고 있다. 국회가 한 일은 유기적인 협업이 중요한 의료계를 직역 간 쪼개고 갈등을 부풀린 게 전부다. 국민건강권은 뒷전이다.법안이 국회로 되돌아온 다음 어떻게 할지 이제 생각해야 한다. 연차 투쟁을 통한 단체행동을 예고한 간호사들은 19일 거부권 규탄대회를 갖는다. 파업을 하지 않기로 한 건 다행이다. 국민 건강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파업은 성립할 수 없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민생법안인지를 돌이켜봐야 한다. 직역 간 이해관계, 그보다 축소하면 간호법에 대한 간호조무사의 반발은 편가르기 입법의 허점을 드러낸 상징적인 단면일 수도 있다. 간호법 자체가 목적이어서 빚어진 일은 아닌지 반성해볼 대목이다.간호법은 기존 의료법에서 간호사만 떼어내는 법이다. 이해관계가 첨예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의료체계 붕괴법’ 우려가 전적으로 괜한 트집은 아니다. 이익단체 간 최소한의 합의와 국회 숙의를 전제로 의료 시스템을 흔들지 않고 간호법 제정이 이뤄져야 정석이다. 그래 봐야 폐기되겠지만 야당 주도의 입법 폭주로 또 해결할 생각은 꿈도 꾸지 않아야 한다. 정치권과 정부, 의료계가 머리 맞대고 단일안을 도출하는 일은 난이도가 높지만 유야무야 덮어둘 수는 없다. 거부권 행사가 혼란을 막는 불가피한 선택일지라도 진정으로 시대적 흐름에 맞는 간호와 돌봄의 취지를 살려 원점에서 재협의해야 한다. 거부권에 걸려 넘어진 간호법은 국회의 시간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제부터 정말 필요한 명제가 의료 대타협이다.

2023-05-17 14:03 사설 기자

[사설] 전세사기 이은 역전세 보증사고도 위험수위다

전세사기와 깡통전세, 역전세 등이 겹치면서 전세 포비아(공포증)가 확산하는 흐름이 이어진다. 전세사기와 달리 집값 하락으로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전세보증 사고 대책도 강구해야 할 때다. 전셋값 및 전세수요 하락 등으로 집주인의 자금 여력이 부족해지면서 역전세도 위험수위다. 터지기 직전의 시한폭탄 단계를 지나고 있다. 16일 한국부동산원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임차인이 돌려받지 못한 전세보증금이 2856억원에 이른다. 부동산 시장 과열로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집값과 임대차 3법 여파로 전셋값이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던 지난 시절의 원죄까지 이제 안고 가야 한다. 집값이 바닥을 다지는 듯한 모습이 어렴풋한 가운데 전세시장 수요가 부분적으로 살아나기도 하지만 매매가격과의 동반 하락세 지속은 아직 멈출 줄을 모른다. 역전세 보증사고 불안 요인이 깔려 있는 전세시장에도 시장 안정화 정책이 절실해 보인다. 전세 선호도가 낮아져 수요가 위축하면 전셋값을 더 끌어내릴 수 있다.빌라 등 비아파트를 넘어 아파트까지 넘보게 될 때는 역전세 공포는 전세사기 못지 않다. 자산에 비해 유동성이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전세가 4억씩 빠지는 지역의 비명이 그래서 높다. 역전세난의 경우, 대도시와 주거 선호도 높은 신축 아파트가 특히 위험할 수 있다. 지난달 보증사고의 88%는 수도권에서 발생했다. 2021년말 고점을 찍은 전셋값을 생각하면 올해 하반기의 역전세 대거 확산은 예고된 수순이다. 다음달이면 전셋값 폭등기에 체결한 전세계약 만기가 본격 도래한다. 전세사기 여파로 비교적 안전한 아파트로 진입하려는 세입자도 늘고 봄 이사철은 끝나간다. 계절적으로 전세 수요가 줄어들 시기다. 사적 시장에 전세사기 수준의 구제책을 내놓진 못하지만 보증금 미반환 위험 대응 체계를 마련해둘 이유들이다.민간 사금융 성격이 있는 전세 제도 자체의 변화도 장기적으로는 모색해야 한다. 전세 대출 축소와 월세 소득 공제 확대로 전세의 월세화를 유도하는 방법도 거론될 수는 있다. 발등의 불은 역전세와 전세사기 공포를 진정하는 일이다. 전세 수요가 위축하면 매매가격까지 끌어내릴 수 있다. 전셋값 하방 압력이 멈출 여건이 아닌 데다 하반기로 갈수록 역전세에 따른 보증금 미반환 관련 부담은 더 고조된다. 실제로 올해 말까지 계약 만기가 돌아오는 빌라 10채 중 6채꼴로 보증금을 낮춰 계약하지 않으면 전세금을 떼일 우려가 커져 있는 상태다. 세입자 퇴거 조건부 대출의 한시적 확대, 전세 보증금 반환 목적의 다주택자 대출 규제 완화 등 실효적인 대안 마련이 급하다.

2023-05-16 14:01 사설 기자

[사설] 전기·가스요금 인상, ‘원가 회수율’이 문제다

공회전만 거듭하던 전기요금은 킬로와트시(㎾h)당 8원, 가스는 메가줄(MJ)당 1.04원 인상하기로 정부·여당이 15일 당정협의회에서 결정했다. 지난 3월 31일 긴급 당정협의회에서 2분기(4~6월) 요금 조정을 유보했을 때를 기점으로 해도 한 달 반가량 뜸을 들였다. 줄곧 현실을 외면해 왔고 누적 적자로 한계 상황에 도달한 다음의 소폭 인상이다. 전기발전의 원가 회수율이 70%밖에 안 되는 상태에서 16일부터 적용되는 인상 폭만 갖고 전력의 안정적 공급을 바란다는 자체가 사실은 무리수다. 1분기 원전 이용률 증가에 이번 인상을 더해도 영업 손실 규모나 한전채 발행 증가로 인한 금융시장 왜곡을 감당하긴 힘들 듯싶다.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분을 반영하지 못하고 정치 셈법을 들이댄 후과는 한동안 떠안아야 한다. 에너지 시장의 정상화를 위한 계속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것은 전기료의 원가 회수율이 높아야 가능하다. 지연의 연속 끝에 내려진 뒤늦은 이번 인상 조치로 에너지 산업 생태계 불안까지 해소할 수 있을지 그래서 의문이다.전기·가스요금 인상은 공공요금 인상의 신호탄이 되는 등 경제에 미칠 여파가 적지 않다. 그렇지만 전기요금 인상을 미루다 눈덩이처럼 재정 부담을 키우면 어차피 국민에게 환원된다. 한전의 경영 악화는 전기요금 인상률 이전의 에너지원 가격 급등에서 먼저 찾아야 더 합당하다. 전기료를 낮게만 유지하면서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는 것 또한 모순된 이야기다. 한전 적자의 원인이 전적으로 ‘탈원전’에만 있는 건 아니다. 비상경영 자구안도 좋지만 전기를 팔수록 손해가 커지는 구조를 깨야 효과가 있다. 전력시장 불안을 잘못된 전력정책에서도 찾지 않으면 안 된다.전기요금 현실화를 온전히 내놓기 어려운 측면은 있다. 이번 역시 처음부터 ㎾h당 10원 이상 인상을 어렵게 봤다. 물가 상승과 냉방비 부담 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책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10차례 이상 거듭된 인상 요구를 묵살하다가 임기 말에 인상 계획을 발표했고 이를 통박하던 윤석열 정부는 전기료 인상 백지화 공약으로 인상 기회를 놓쳤다. 3월 말에 결정할 2분기 전기요금은 이제야 결정했다. 전기료는 모든 분야의 원가에 반영되므로 물가를 자극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에너지 가격의 폭등 같은 인상 요인이 있으면 국민에게 차근차근 이해를 구해야 한다. 그럴 생각은 하지 않고 지지율에만 신경 쓴 것이 지금의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다. 예고 하나 해 두자면 내년 총선 전 인상 때는 에너지 정치화를 특히 경계해야 할 것 같다.

2023-05-15 14:06 사설 기자

[사설] 수출산업으로 급부상한 ‘K-방산’ 잘 살리자

세계 방산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자랑하는 한국 방위산업(K-방산)이 올해도 유럽·아시아 국가들과 릴레이 협력을 이어간다. K-2 전차, K-9 자주포, FA-50 등의 호조에 힘입어 지난해엔 170억달러(약 22조원) 수출을 달성했다. 올해는 그 이상의 수출 수주액 목표치를 설정했다. 정부가 주한외교사절 초청 홍보 등 세일즈 외교에 활발하다. 주요 수출 상대국과 수조원 규모 계약 체결도 예정돼 있다. 방산 분야의 분위기나 전망은 밝은 편이다. 세계 무기 수출시장 점유율 상승률로만 보면 무기 수출 상위 10개국 가운데 한국이 1위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영향도 있겠으나 루마니아, 체코 등과의 협력 가능성은 폴란드 등에 수출하면서 검증받은 기술력 덕이다. 아랍에미리트(UAE)에 K-방산 수출이 본격화되면 더 한층 탄력을 기대해볼 수 있겠다. 우리의 무기시장 점유율이 2018~2022년 2.4%까지 높아진 만큼 첨단기술을 독자적으로 보유해야 한다는 면에서는 부담도 크다. 정권과 무관하게 이어진 정책 기조가 방산 관련 제조 경쟁력을 키웠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체급에 맞게 자주국방에서 글로벌 방위산업을 주도하는 ‘디페노믹스’로 변환하고 최적의 대응을 해야 할 것이다.한국형(K) 방산의 최대 강점은 높은 가성비다. 그리고 신뢰, 빠른 납기다. 기술 이전과 산업 협력에 우호적인 것 또한 강점이지만 첨단 기술의 집합체인 방산 관련 기술의 공유에서는 지속가능성까지도 신중히 생각해둘 문제다. 지역별로 특화된 방산 클러스터나 대학 전문학과 개설 등을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국방 분야 자유무역협정(FTA) 격인 한·미 상호국방조달협정(RDP-A)도 필요는 하다. 그러나 고도의 기술력이 있는 미국에 시장을 내줄 소지가 있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전혀 검토하지 못한 사항이 언제고 새롭게 돌출될지 모른다. 한국 방위산업이 메이저 리그(defense major league)에 진입했다는 해외 반응에 너무 취하지 말고 속도 조절이 요구된다.국내 특유의 방산 관련 규제가 적지 않다. 소총은 고사하고 실탄 하나 못 만들던 국가가 세계를 주름잡는 방산 강국이 된 지금도 여전하다. 연구개발에 실패할 때의 ‘제재’는 방산 분야에서는 취약점이다. 무기운송 때마다 도로관리청 운행허가를 받는 규제 또한 그 일례다. K-방산은 가장 좋은 시기를 만나고 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말은 맞지만, 노를 잘못 젓는다면 배는 엉뚱한 방향으로 갈 수 있다. 미래 신기술을 방산에 접목하는 등의 시스템 고도화로 K-방산 글로벌 협력 기대감을 잘 살리자는 뜻이다.

2023-05-14 14:02 사설 기자

[사설] 전월세 신고제 ‘꼼수 계약’ 못 막으면 효과 없다

임대차 3법 중 마지막 카드인 전월세 신고제가 6월부터 정식 시행된다. 보증금 6000만원 초과, 월세 30만원 초과의 경우라면 임대차계약 내용을 주택 소재지 관할기관에 신고하는 등 사적 거래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는 측면도 있다. 그런데 임대료를 보전하면서 신고 의무를 피하는 사례부터 고개를 든다. 월세를 낮추고 관리비를 높이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초장부터 꼬여 가지만 이말 말까지인 계도시간 안에는 별 뾰족한 수가 없다. 이전 정부 때부터 반복적으로 미루기만 한 채 보완책 마련에는 미진한 결과다.임대인의 조세 저항이라든지 인상된 세금이 임대료에 전가될 가능성은 돌연히 제기된 문제는 아니다. 꾸준히 예견되고 제기된 사안이다. 단기적인 전월세 급등은 어찌어찌 차단한다 치자. 월세 일부를 관리비로 충당하는 ‘꼼수’ 동원을 이대로 둔다면 신고제는 무엇이 남는가. 지역별, 주택유형별, 시기별 임대차 정보 파악만 해서 긍정 효과를 높이겠는가. 전월세 신고제 기준을 회피하지 못하게 손쓸 생각은 왜 안 했나. 임대차 시장의 투명성, 임차인 보호 기능 강화에 도움이 안 되면 쓸모없는 것이 이 제도다. 자칫하면 그렇게 전락하는 건 시간문제다. 전월세 상한제에서 먼저 체험한 부작용이 걱정스럽다.입법을 거세게 밀어붙이던 문재인 정부에서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와 함께 회심의 마지막 카드처럼 홍보했던 게 전월세 신고제다. 2020년 7월 말 시장에 즉시 적용하지 않고 그 이듬해로 시행을 미뤘다. 그러면서 2022년 5월 말까지 계도기간을 운영하기로 했다. 다시 추가 1년 연장해 지금에 이른다. 시장 혼란을 방지할 시간만 흘려버린 셈이다. 임대소득 투명화로 세금 탈루를 막는다는 목표도 가물거린다. 법망을 교묘히 피하는 ‘꼼수 계약’으로 전이되고 있는 까닭이다. 한편으로는 임대인이 저항감 없이 제도를 수용하게 만드는 데 소홀했다.관리비도 신고 내역에 포함하는 문제를 검토 중이라고는 한다. 계약 당시 일정 금액 이상 관리비를 못 올리게 규정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임대차계약 절차가 복잡해진 김에 공인중개사가 전월세 신고까지 일괄 처리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깡통전세, 역전세 등 곳곳이 시한폭탄 상태인 전세 시장 자체를 못 믿을 지경에 이르렀다. 전월세 신고제로 전세사기 문제가 감소할 거라는 기대까지 충족하면서 부당한 관리비 지정을 억제하는 등의 추가 대책을 찾아야 한다.전세는 계속적으로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할 것이다. 신고 의무화의 후유증을 줄이면서 현실에 바탕을 둔 주택정책을 펼쳐야 하는 이유다.

2023-05-11 13:42 사설 기자

[사설] 코인 문제, 국회의원으로서 처신 문제다

윤석열 정부 1년에 즈음해 전임 정권의 반시장적·비시장적 정책을 탓하는 일이 부쩍 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가상자산 금융투자 사기 등 반칙행위 감시체계의 무력화 원인으로 증권범죄합동수사단 해체를 지목했다. 주식·가상자산 투자사기와 관련해서는 감시 적발 시스템 무력화에 화살을 돌리기도 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취임 즉시 부활한 증권합수단이 경제범죄에 대처하고 시장 안전망 구축에 얼마나 힘썼는지와 별개로 상관성이 없지는 않아 보인다. 직접 지목하지는 않았어도 관심은 다시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60억 코인 의혹’으로 향한다. 투자 원금을 조성한 경로, 투기성이 큰 잡코인에 손댄 점, 그리고 가상화폐 지갑에 보유하다 인출한 돈의 행방도 석연치 않다. 자금 흐름을 공개하지만 이상거래 의혹이 풀리지 않는다. ‘실정을 덮으려는 얄팍한 술수’라며 정치적 공방으로 물타기해선 안 될 사안이다. ‘검소하게 사는 게 죄가 되느냐’는 두둔 역시 바른 태도는 못 된다. 뜯어진 운동화 신고 값싼 구내식당 밥을 자주 먹는 건 본질과 동떨어진 이야기다. 가상화폐 거래실명제 실시 직전의 코인 인출은 무슨 우연일까. 대체불가토큰(NFT)을 활용한 ‘이재명 펀드’의 실체는 있나. ‘불법은 없다’란 해명 한마디로 정면 돌파할 수 없는 부분들이다.그보다 누구 못지않게 김 의원 자신은 일확천금의 탐욕이 꿈틀대는 가상자산 사각지대 규제의 필요성을 잘 알았을 터다. 코인시장의 불공정 거래행위를 막는 입법을 해도 시원찮을 국회의원으로서 처신은 적절했는지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내부자 거래나 대선용 자금세탁이란 점도 확실히 해둘 사안이다. 오히려 코인 등 가상자산 과세를 유예하고 소득공제 범위를 확대하는 법안까지 공동 발의했다니 합리적 의심을 더 받는 것이다. 자신이 수혜자가 되는 이해충돌의 사례이며 의원 입법권 남용이라는 지적을 피하긴 힘들다. 현행법을 위반하지 않았더라도 정치적·도의적 책임도 있다. 김 의원은 코인 투자보다는 코인시장을 규율할 법과 제도 도입에 더 앞장서야 마땅했다.당당하다면 소상히 밝히면 된다. 가상화폐를 공직자의 재산신고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문제에는 왜 모른척 눈감고 있었나. 투전판과 생리가 비슷한 가상화폐 투자에서의 불법 여부는 수사를 통해 명약관화하게 가려야 할 일이다. 아울러 증권합수단을 난데없이 해체한 경위가 라임펀드 사기 등 당시의 정권 비리를 덮기 위해서는 아니었는지 진짜 이유까지 규명해야 한다. 합수단은 1년 전 2년 4개월만에 부활한 바 있다. 그 이후로 가상자산 범죄가 사라졌는지도 의문이다.

2023-05-10 14:12 사설 기자

[사설] 한·일 재계, 글로벌 공급망 등 협력 속도 내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방한 때 양국 정상이 합의한 의제는 가벼울 수 없다. 기시다 총리와 6명의 우리 경제단체장이 티타임에서 논의한 경제협력 활성화 방안을 구체화하기란 말처럼 간단하지는 않다. 그리고 이제 막 경색된 관계가 풀려가는 단계다. 미래협력 시너지, 제3국 공동진출 추진, 미국 주도로 급박하게 돌아가는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공동 대처 등은 진중하게 풀어갈 과제다. 공감과 신뢰의 수준부터 높일 사안이기도 하다. 한·일 정상의 셔틀외교 복원 등 무르익는 분위기에 맞춘다 해도 재계 협력은 그만한 인내가 있어야 하고 공도 들여야 한다. 기업이 나서달라는 기시다 총리와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협력해달라는 경제단체장들의 당부는 결국 양국 기업과 정부의 공동 노력을 가리킨다. 안보 협력 문제와도 결부돼 경제협력 복원과 반도체 공조는 느슨한 관계만으로는 잘 안 되는 측면이 있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견·중소기업 차원에서도 손잡을 것이 많다. 다양한 다수와 느슨한 관계를 맺는 ‘약한 고리의 강한 힘’ 같은 것도 함께 구사해야 할지 모른다. 완급은 조절하되 속도는 내야 한다.현상황은 공급망, 디지털 전환, 수소경제 등 신경제협력을 좌우한 퍼즐조각들을 꺼내든 상태에 비유된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경제협력 상대국 다변화라는 면에서 엄연한 당위성이 있다. 자국의 패권 유지에 혈안이 된 미국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 인도의 공급망 허브 전략, 중국과 유럽연합 등 주요국들의 자국 산업 육성과 공급망 쟁탈전에 양국이 공동 대응한다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제조 강국인 한국과 소부장(소재·부품·장비)에 강한 일본의 협력이 첨단산업 분야로 확장되면 시너지를 발휘할 지점이 또렷하게 보일 것이다. 소부장 분야 경쟁력까지 협력하면 더 이상적인 ‘윈윈’이 될 수 있다. 물론 견고한 공급망 구축이 순항한다는 전제에서다.훈풍이라지만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그러면서 경제안보와 관련해 양국 협력이 절실해진 시점이다. 반도체와 배터리, 모빌리티, 에너지 등에서 협력의 보폭을 넓히고 콘텐츠 수출도 늘려야 한다. 핵심 전략 물자의 공급망 협력, 해외 자원 공동 개발은 진전시키기 나름이다. 무엇보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 및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글로벌 공급망 전쟁 중이다. 이런 중대한 시기에 공급망기본법, 국가자원안보특별법, 소부장법 개정안 등 공급망 3법이 국회에서 표류 중이라면 말이 안 된다. 한·일 양국 경제협력은 2019년 8월 이후 약 4년간의 단절로 꿰기 어려운 구슬을 꿰는 듯 단편화돼 있다. 세밀한 분야와 방식을 앞에 놓고 더 많고 더 치밀한 노력을 기울일 것을 당부한다.

2023-05-09 14:05 사설 기자

[사설] 윤 대통령의 남은 4년, 더 중요해진 경제적 리더십

10일로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주년을 맞는다. 경제, 사회, 미래, 안보·외교 각 분야의 공과를 정리하기엔 다소 이르다. 시장경제 복원과 저성장 극복,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구현에도 충분치 않은 기간이다. 그러면서 수출 부진, 무역적자 등 경제적으로 적잖은 숙제까지 앞에 떠안고 있다. 지금부터는 4년 남은 임기의 시작이라 생각하고 경제 부문에서 늘어난 비관론의 해소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본다. 윤 대통령을 향한 표현 중에 ‘대세주도형 리더십’이 있다. 그런 시각에서는 경제적 리더십이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평가가 가능할 듯싶다. 국정과제 30대 핵심 성과 자료집을 통해 자평하듯이 경제 부문에서 1027건의 규제가 개선된 점 등은 인정받아야 한다. 쉽지 않은 여건이지만 11개월 연속 감소세인 대중 수출, 7개월 연속 적자인 대중 무역수지의 회복은 시급하다. 최대 수출품인 반도체와 최대 교역국인 중국을 경시하면 안 되는 우리 경제 현실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 이후 경제협력 관계도 복원해야 한다. 안보뿐 아니라 경제에서도 위기관리시스템이 무너지면 안 된다.민간·기업·시장 중심 경제운용 전환, 6대 국가 첨단산업 육성 등은 정부 스스로 꼽는 성과다. 시장경제, 민간주도 경제체제를 표방한 것은 맞다. 그러면서 ‘관치’를 꾀했다는 냉혹한 평가에서는 자유롭지 않다. 원전 생태계 복원에 기여했지만 워싱턴 선언이 한편으로는 원전 수출을 어렵게 할 수 있다. 에너지전환포럼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추가의정서 준수’는 원전 수출에 대한 경고 성격이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노사 법치주의 확립, 노조 회계 투명성 기반 강화 등은 마중물 이상의 의미 있는 시도였다. 반면, 노동 개혁이라는 전체 틀에서 보면 첫발을 떼지 못한 분야가 많다.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가장 심각하다고 꼽는 저출산 대책에 손을 놓지 않아야 한다.앞으로 4년간 한·미·일 중심의 가치외교나 안보가 경제를 뒤흔들지 않을지 점검해봐야 한다. 중국의 경제보복 차단에도 외교력을 집중할 차례다.지난 1년간 한국경제 위기론이 깊어졌다. 무역적자의 골이 더 파이고 세수 구멍이 커지면서 낙제점이라 할 만큼 경제성적표가 후하지 않다. 범부처 수출 플러스 대응체계 구축을 비롯해 수출 총력 지원 체계로 가야 한다. 세계 10위 경제대국 위상에 걸맞은 경제적 리더십, 국민적 기대치가 모인 경제 활성화에 대한 대통령의 강한 리더십이 절실하다. 문제의식을 갖고 성과를 극대화해야 할 시간이 오고 있다. 노동·연금·교육 3대 개혁은 올해가 골든타임이다.

2023-05-08 14:00 사설 기자

[사설] 금리 역전 폭 175bp 괜찮을지 주시할 때다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가 상단을 기준으로 1.75%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이번 25bp, 0.25%포인트 인상을 포함해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10회 연속 인상으로 금리는 연 5.0~5.25%로 끌어올려졌다. 16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관심은 아무래도 경기침체 여부와 금리인하 시점으로 이동될 것이다. 아직은 막바지 통화긴축 기조의 효과를 주의 깊게 지켜보면서 잘 대처해야 할 때다. 한 번도 걸어본 적 없는 길이다. 원론부터 제시하면 한국의 기준금리는 기축통화국인 미국보다 높은 쪽이 순리다. 금리 역전이 역대 최대 수준인 175까지 벌어진 베이시스 포인트(Basis Point, bp)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의 최대 기준점인 150bp(1bp=0.01%)를 갈아치워 원화 가치 하락(환율 상승)과 국제자금 압박이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추가 긴축 사이클이 종료됐다는 신호가 나오긴 한다. 물가상승률도 주춤한 모습이고 금융 불안과 경기 불확실성이 커졌다. 한은의 금융상황지수로 볼 때는 이미 상당한 긴축기에 들어섰다.외환 시장도 안정적인 편이다. 경기 하방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굳이 미국의 긴축 사이클에 키 맞추기를 하기 위해 기계적으로 대응할 이유는 없다. 시장 금리 하락으로 긴축 효과도 반감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초유의 금리 차이로 환율 변동 우려는 엄존한다. 앞으로 최소 보름 동안의 외국인 자금 동향 데이터 등을 면밀히 지켜보며 결정해야 한다. 동결에 관해 미국은 모호성으로 남겨뒀다. 우리의 경우 기준금리를 올리기에는 상당히 부담스럽지만 최종금리 전망으로 3.75%(0.25%) 인상의 선택지가 완전히 닫혀 있지는 않다. 비둘기적 통화정책으로 가되 매파적인 시각을 버리지 않아야 할 이중적인 상황인 것처럼도 보인다.비교적 확실시되는 것 하나는 미 연준의 연내 금리 인하 전환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다. 연말께나 인하 쪽에 무게가 실릴지언정 미국의 연 5%대 기준금리는 꽤 오래 지속된다. 우리가 강화할 것은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경제 충격에 대비한 금융시장 모니터링과 경계감이다. 무역수지 적자도 만만치 않다. 기준금리 상승 우려의 영향이 잔존하는 부동산 시장이 금융시장에 타격을 가할지 모른다. 지금은 괜찮지만 금리를 또 올릴 수 있다는 보수적인 접근이 요구되는 측면도 없지는 않다. 중시할 것은 금융·외환시장의 변동성이다. 당국은 눈앞의 지표만 읽지 말고 미래 시선으로 현재를 준비해야 한다. 오는 25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선택과 별도로 선제 대응의 방파제를 높여야 하는 이유다.

2023-05-07 14:39 사설 기자

[사설] 입법 폭주가 낳은 간호법 파업, 정치권 책임이다

간호법 제정을 둘러싸고 의료계가 쪼개지고 있다. 보건의료 단체들의 부분파업의 씨앗은 간호법 제정안(간호법), 의료법 제정안(면허박탈법)의 국회 본회의 강행 처리 이전부터 싹트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연가투쟁 및 단축진료, 의료총파업 등으로 갈등 양상이 증폭될 게 뻔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의 향배도 중대한 분수령이다. 의료 현장의 혼란을 최단기로 줄이기 위한 노력이 아쉽다. 그렇지 않으면 충돌할 일만 남았다. 상황은 마치 두 기관차가 마주보고 폭주하려는 모양새다. 한쪽에서는 문제점이 많고 소모적이며 간호단체 이익을 대변하는 특혜법이라고 목청을 높인다. 간호조무사 측은 학력 제한 차별을 포함한 위헌적인 법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초고령사회를 맞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법이라고 맞불을 놓는다. 보건의료직역 간 업무 침해는 간호법이 아닌 의료기관 탓이라고도 한다. 입법 과정에서 중재안조차 무시돼 빚어진 대가를 이처럼 톡톡히 치르고 있다. 법의 정당성과 부당성을 떠나 간호법 자체, 통과 자체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더 벌어진 사단 아닌가.편을 가르거나 척을 지지 않아야 할 보건의료계의 분열은 거칠게 보면 전선을 가리지 않는 여야 전면전의 희생양이다.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의 역할과 업무를 규정한 기존 의료법에서 간호사만 떼어내려면 이익단체간 합의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임상병리사, 응급구조사, 요양보호사 등 다른 직역까지 침해할 소지가 있을 때는 특히 그러하다.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한 약속이었다 해서 다르지는 않다. 방치된 돌봄이 아닌 생활의료체계 구축, 존엄·맞춤·안심돌봄 등이 지향할 방향이더라도 마찬가지다. 상식선에서 공감과 동의 속에 이뤄지는 게 순리다. 그렇지 않으니 의료연대 참여 직역들의 연대 투쟁 등 직역 간 분열로 치달은 것이다.양수겸장, 더블 체크를 노리며 상대 쪽을 제압하려는 듯한 의료계에 먼저 자제를 촉구한다. 가장 큰 화근은 물론 정략적인 입법 폭주, 즉 의료법이 다수 의석을 믿는 야당의 폭주 리스트가 됐다는 것과 상관관계가 밀접하다. 상관관계가 인과관계의 필요요건이라고 보면 그 이상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텐데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따른 반사이익이라도 바라는 눈치다. 부분파업이 더불어민주당 규탄대회처럼 된 이유를 깊이 자성하면서 국민건강권에 심각한 도전이 될 의료계 총파업을 함께 막아내야 할 것이다. 여당 역시 간호법 갈등을 키우지 않아야 하며 정부는 직역 다툼이 조기에 수습되도록 책임 있는 중재에 나서야 한다.

2023-05-03 14:07 사설 기자

[사설] ‘부동산 투자이민제’ 개편, 방향은 잘 잡았다

일몰을 앞두고 제도 연장 여부를 두고 저울질하던 ‘부동산 투자이민제’는 손질 후 존치로 일단락됐다. 지난달 말 또는 이달 중순에 시행 만료되는 인천, 제주, 강원, 전남, 부산 등 대상 지역에 대해 기간을 3년 연장한 것이다. 투자기준금액은 5억원 이상에서 10억원 이상으로 2배 상향했다. 지가 상승률을 반영할 때 적절한 조치였다. 투자 금액과 영주 자격 기준을 강화한 것도 잘된 방향이다. 그렇다고 2010년 제주도에서 처음 시작했을 당시부터 안고 있었던 문제가 이번 개편으로 일거에 해소된 것은 아니다. 그동안 존폐 논란이 자주 불거졌던 것은 부동산에 투자하는 외국인에게 거주자격과 영주권을 주는 제도라는 속성 때문이기도 했다. 숙박시설, 체육시설 연계 주택, 관광 펜션, 미분양 주택으로 투자를 확대하면서 다분히 부동산 투기 성격으로 흘렀다. 중국인 부호들의 관심을 끌면서 외국인 투자 활성화를 위한 본래 목적에서 상당히 멀어지고 있었다. 이 점은 앞으로도 짧은 시간 안에 변할 것 같지는 않다. ‘관광·휴양시설 투자이민제도’로 명칭을 바꿨다고 해서 체류상 혜택 등에 비해 실익이 커진다거나 역기능이 하루아침에 순기능이 되지는 않는다.외국인 투자의 적극적인 유치는 두 얼굴이 있다. 관광, 레저, 문화 분야 개발사업을 적극 추진한다는 명분과 실리를 살리지 못한 게 가장 문제였다. 투자를 차단하지 않으면서 총량제 도입을 포함해 진입장벽은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단점이 있더라도 장기 표류 중인 대규모 개발사업의 물꼬를 터주는 등의 장점을 보고 취할 줄 아는 유단취장(有短取長)의 자세가 제도에 더 잘 맞는다. 안정적인 투자 여건 확보가 투기를 조장할 여건을 형성할 수도 있다. 경제적 이득이 작으면서 부작용만 크고 남 좋은 일만 시킨다면 그때가 바로 제도 자체를 재검토해야 할 시간이다.우리의 경우, 과거 미국에서 경제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해 도입된 제도와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 점을 인정해야 한다. 투기 열풍 때문에 제도를 폐지한 홍콩처럼 되는 경향이 오히려 눈에 띈다. 이제부터는 부동산 과열과 난개발, 환경 훼손 폐해를 최소화하면서 투자정책 변화에 맞는 제도로 운영해야 할 것이다. 영주권을 획득한 뒤 부동산을 되팔아 투자금을 회수하는 ‘먹튀’ 사례도 차단해야 한다. 부동산이 아닌 해당 지역 기업에 투자하거나 금융기관에 예금하는 경우에 한해 영주권을 부여하는 식으로 개선할 여지는 남아 있다고 본다. 외국인 투자 활성화를 위해 도입된 본래 목적을 살리지 못하면 언제라도 폐지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2023-05-02 14:05 사설 기자

[사설] 국빈 방미 '효과', 기업에 돌아가야 '성과'다

윤석열 대통령의 5박 7일간 미국 국빈방문은 한미동맹 70주년다웠다. 안보뿐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등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성과가 있었다. 민주주의라는 가치의 공유 면에서는 어느 때보다 밀도가 높았다. 확장억제를 강화하고 이를 명문화한 ‘워싱턴 선언’을 통해 격상된 양국 관계는 평가받을 만하다. 다만 귀국길 들고 온 보따리를 풀어보면 외교협력과 군사협력, 경제협력 세 차원의 결은 조금씩 다르다. 신흥기술, 사이버안보, 과학기술, 우주탐사까지 글로벌 동맹을 확대한 자체는 물론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주요 경제사안이 뒷전으로 밀린 듯한 미진함은 어쩔 수 없다. 방미 전부터 우려는 했지만 미국의 반도체지원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못해 못내 아쉽다. 시간을 갖고 보완할 점이다. 대외 상황도 복합해졌다. 신냉전 한복판에 뛰어들면서 경계감이 커진 주변국의 경제적 강압, 무엇보다 2016년 국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 때와 같은 중국의 경제적 보복 카드는 없는지 잘 관리해야 한다. 핵심 공급망을 중국에서 분리할 방안 등 다각적인 대처가 이전보다 절실해진 것 또한 사실이다.거칠게 규정하면 경제 분야 성과의 대부분은 동시에 과제로 남겨진 셈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재선 도전 등 여건이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경제와 안보를 챙기는 국익 외교는 지정학적 양면성 때문에 쉽지 않은 일면이 있다. 손익 크기로만 단순화할 수 없는 것이 국제관계다. 긍정적인 전환점을 만드는 노력도 지속해야 한다. 경제적 관계 악화는 안보상 위협을 증대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역으로 경제적 교류가 활성화되면 안보 위협도 줄어든다. 중국과 관계 악화는 경제 분야에서 악재다. 한·미 정상 간 파티가 끝나고 중국으로부터 계산서가 언제 날아들지 모른다. 안보에 치중한 대가로 한·중 또는 한·러 관계가 급속히 얼어붙거나 냉각이 오래 가지 않도록 해야 하는 이유다.전체적으로 반도체 수출 통제를 포함해 공급망, 첨단과학기술, 첨단기업 투자유치 등 방미 성과를 보완해야 한다. 경제협상의 성적표가 기업활동에 예측 가능성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데는 부족했다. 기업에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는 효과를 만들지 못하면 기존의 성과마저 파편화할 수 있다. 외교안보와 경제 관련 성과물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야당도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협조해야 한다. 특히 기업에 돌아갈 정상회담 효과를 아직 말하기엔 이르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임한 윤 대통령과 현 정부의 미래 청사진을 구체화하는 실질적인 후속 조치가 관건이다.

2023-05-01 14:22 사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