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중 칩 전쟁, 마이크론 ‘빈자리’ 정도가 아니다

사설 기자
입력일 2023-05-24 14:16 수정일 2023-05-24 14:17 발행일 2023-05-2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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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의 자국 내 판매 금지라는 제재를 가하자마자 국내 반도체 기업에 불똥이 떨어졌다. 미국 하원 특별위원회 위원장 입에서 한국 기업들이 중국 내 공백을 채울 수 없도록 하라는 말이 기어이 나왔다. 미국의 대중 장비 수출 규제에 맞선 첫 보복은 K반도체에 본격적으로 닥칠 위기의 진폭을 가늠케 해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 내에서 최소한이나마 생산성을 유지하도록 숨통을 터준 것에 안도할 때는 아닌 듯하다.

한국 기업이 마이크론 공백을 메울 수 없도록 압박할 가능성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다. 미국과 각별한 동맹국이기 때문에 우리가 겪는 이중고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의 압박과 중국의 제재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마이크론 대신 못 팔게 하는 것뿐 아니라, 미국은 중국 공장의 반도체 수준에 어떤 식이든 상한선을 둘 것이다. 중국 내 실질적인 피해를 줄이면서 대체 공급업체가 되는 노력을 아직은 포기하기에 이르다. 확실한 것은 K반도체가 입을 타격이 심대하다는 점이다.

일정 조건만 지키면 얼마간 안정적으로 중국 내 공장을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은 비교적 괜찮은 낙관론이다. 중국이 납품을 요청할 경우는 정말 중대한 시험에 드는 순간이다. 미국 반도체 수입 시장에서도 중국산이 빠진 자리를 메우긴 쉽지 않아 보인다. 대만과 베트남 제품이 힘을 얻고 있어서다. 정부도 수출과 투자 유치, 공급망 다변화가 살길이라고 되뇌고만 있을 때는 아니다. 미·중 칩 전쟁 속에 한국이 빈자리 채우는 것(backfilling)을 용인하지 않은 이상, 마이크론의 대체 공급업체가 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고 보고 방비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유예 조치를 취한 부분도 정말 걱정인 것은 그 조치 이후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견제망이 되어버린 반도체 공급망 재편이라는 큰 흐름은 이렇듯 험난하다.

삼성과 SK하이닉스 제품을 중국 제조폰들이 많이 쓰고 있는데 이 부분에도 대처가 필요하다. 한국산 메모리 판매에 제동이 걸리는 상황을 피해가야 한다. 중국 공장에서 양산하는 최첨단 메모리칩과 관련된 장비 반입도 미국의 제재를 피해가야 할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 간 상대국 반도체 기업 때리기가 심해질수록 우리는 그나마 조금 벌어놓은 시간마저 까먹게 생겼다. 마이크론 ‘빈자리’ 정도가 아니다. 중국 봉쇄가 불러올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지 않아야 한다. 최악의 결말인 중국 공장의 반도체 생산을 중단해야 할 사태가 오지 않게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걸핏하면 공조와 동맹을 내세우는 미국에 대해서도 이익의 균형은 맞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