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규제가 여전히 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부가 ‘킬러규제’를 선정하고 개선하려는 목적은 단순히 조금 걸리적거리는 신발 속 모래알갱이 제거 정도가 아니다. 기업투자 활성화와 성장의 동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그러한 노력은 인정되지만 산업별 규제 완화가 생존을 위한 제도적 환경 개선이라는 목적의식이나 단호함은 부족하다. 신산업 진출의 걸림돌을 치우고 기업가적 도전정신을 북돋운다는 기준에서는 성과가 체감되지 않는다. 국제 표준에서 볼 때는 매우 미흡하다. 기업 규제 완화 또는 선진화의 방향성은 대체로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시장적 정책 기조 수정이라는 면을 파고들면 방향을 선명하게 잡지 못 한다는 느낌마저 든다. 기업이나 시장의 시각이 아닌 정부의 시각이 다분히 반영돼 있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20일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가 공동 주관한 세미나 주제 중 기업지배구조 개선 한 가지만 봐도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지름길이 보인다.대기업집단 제도 합리화는 총수 친족 범위와 계열사 범위를 축소하는 등 몇 가지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제 성장과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그대로다. 기업 세제는 복합적으로 문제를 내포한다. 지난번 브릿지경제 세미나에서 집중 조명한 대로 글로벌 스탠더드서 멀찍이 떨어져 있다.지주회사 자회사의 공동출자 금지, 대기업 기부금 출연 후 기업집단 포함, 공익법인 의결권 규제 등 공정거래 규제는 과감히 손을 대야 한다. 조직적 측면에서든 행위적 측면에서든 기업을 잠재적 범죄 집단시하는 규제들은 혁파해야 한다. 외국인 투자자 접근성을 개선할 부분이 있지만 그렇다고 외국자본에 우대하고 국내 대기업에 푸대접하는 건 잘못이다. 벤처펀드 조성 단계의 외부출자 제한으로 규모를 못 키우는 등의 제기된 애로사항을 풀어야 한다. 건강하고 지속성장이 가능한 경제를 기준으로 삼아야지 구시대적인 반(反)기업 정서는 필요치 않다.기업 규제 강화의 결과는 너무나 뻔하다. 기업의 성장성과 수익성을 저해한다. 그 결과로 국내 고용과 투자를 축소하고 국내 사업장의 해외 이전 등 악영향을 보아 왔다. 입법과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국회는 단식 정국에 함몰돼 있다. 반칙을 통한 성장을 허용하자는 게 아니잖은가. 투자 의욕을 꺾는 규제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잘 맞추자는 선명한 의식이다. 그리고 그 스탠더드를 우리가 만들고 선도해야 한다. 향후 관련 부처에 정책건의를 하면 제대로 수용해 규제 선진화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킬러규제 등 개선 과제에 대해서는 사후평가가 필요하다.

2023-09-20 14:01 사설 기자

[사설] ‘넥스트 팬데믹’ 대응해야 할 K­제약·바이오

코로나19 다음으로 도래할 새로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어떤 모습일까. 언제 재연될지 모르고 정체를 모를수록 신종 감염병, 미지의 감염병 ‘질병 엑스(Disease X)’에는 대비가 철두철미해야 한다. 산업적 측면 외에 잠재적 의약품 부족 상황과 의료 대응 역량은 늘 염두에 둬야 한다. 엔데믹을 말하면서 넥스트 팬데믹을 미리 내다보는 선제조치가 요구되는 이유다. 국내외 제약·바이오 기업의 행보는 이를 겨냥해 빨라지고 있다. 외부기관과의 협력. 기업과 기관들이 공동 대응에 머리를 맞대는 국제 협력 체제는 이제 예삿일처럼 됐다. 코로나19 이전과는 두드러지게 다른 현상이다. 모더나가 국내 대학 산학협력단과 백신 개발을 진행한다. 전에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국립보건연구원 국립감염병연구소는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와 손잡는다. 신종 감염병에 대비한 임상시험을 국내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K­제약·바이오의 달라진 위상은 백신 생산 공정과 생산 역량 기반 확장에서도 마찬가지다.간략히 파트너십과 네트워크 형성으로 줄여볼 수 있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서 기술 내재화의 한계를 해소해준다는 장점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에서의 일상회복은 백신이 있기에 가능했다 하면 틀리지 않다. 추산하자면 국내에서 15만 명 이상의 사망을 예방하기도 했다. 제약·바이오 기업의 움직임은 미지의 신종 감염병에도 선제적으로 맞춰져야 할 것이다. 연구개발(RD) 시스템 구축과 관련한 SK바이오사이언스의 대외 협력, 현대바이오사이언스의 미국 측과의 항바이러스제 공동 개발 계약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새롭게 등장할 백신 플랫폼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코로나19의 법정 감염병 등급이 인플루엔자(독감) 수준으로 내려갔지만 넥스트 팬데믹 관련 백신산업은 계속 유지돼야 한다. 코로나19뿐 아니다.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로 독감 환자가 늘면서 백신 패권 경쟁이 가열차다. 프리미엄 고가 백신을 내세우는 해외 제약사들에 맞서 백신 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키워내기란 만만치 않은 과제다. 정부도 원부자재 산업이라든지 원료의약품 자급화를 위한 규제 혁신 등 가능한 지원을 해야 한다. 대규모 감염병 보건 대응 체제 구축은 인위적인 생물무기 테러나 생물무기전쟁 등으로 촉발되는 경우까지 확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세계 제약사와 기관들의 공조 모드 이면의 자국 중심 공급망 재편까지 주시할 때다. 넥스트 팬데믹 국면에서는 제약·의료주권 차원에서 접근하게 될 것이다. 확실히 이전과 달라질 부분이다.

2023-09-19 14:46 사설 기자

[사설] ‘김동철호’ 한전의 ‘길’은 정치 배제와 고강도 구조개혁

18일 한국전력 임시주주총회에서 사장 선임 안건이 통과된 김동철 바른미래당 전 의원 앞에는 가시밭길이 놓여 있다. 최종 임명되면 정승일 전 사장이 사퇴한 4개월여 만이지만 이번 선임은 단순히 업무 공백 사태 해소에만 있지 않다. 1961년 한국전력주식회사 출범 후 정치인 출신 한전 사장이 첫 탄생한다는 ‘신기성(新奇性)’보다 에너지 인프라 분야의 전문성과 앞에 놓인 중책으로 더 관심 받는다고 봐야 한다. 주총 소집공고의 “추천 사유인 전력사업에 대한 폭넓은 식견과 전문성”이 100% 발휘돼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천문학적 부채를 떠안은 김동철호(號) 한전의 과제는 첫째도 둘째도 재무정상화다. 구조조정과 추가 구조조정은 일상의 언어가 될 것이다. 취임 직후부터 4분기 전기요금 조정 현안이 압박해도 피하지 않아야 한다. 연결 기준 총부채 200조원을 넘어선 재무 위기의 탈출구는 뼈를 깎는 자구 노력에 있다. 자산 매각, 전력설비 건설 이연 등 재무구조 개선은 착실히 이행해야 한다. 올해 추가 영업손실이 나면 신규 한전채 발행 한도는 쪼그라든다. 이렇게 가면 부채는 2027년 226조300억원까지 늘어난다. 적자 수렁 탈출의 해법은 고강도일 수밖에 없다. 다른 길, 다른 퇴로는 닫혀 있다.신임 사장이 중량감 있는 정치인 출신이라 하더라도 상상 초월의 초능력을 발휘하지 않고서는 대처하기 힘든 수준이다. 신재생에너지 계통설비 투자가 저조할수록 전체 계통 불안전성이 높아진다는 사실 하나를 풀자 해도 전기요금 현실화는 불가피하다. 한전이 다시 신발끈을 조이기 전에 간판 공기업 한전이 어쩌다 향후 5년간 부담할 이자만 24조원에 이른 만신창이 처지가 됐는지, 깊이 자성해봐야 한다. 강력한 쇄신 동력을 주입할 외부 인사로서의 장점 발휘가 절실한 시점이다.그 중심에는 정치를 배제한 요금 조정, 즉 ‘정치 요금’ 구조를 비용에 기반한 전기요금 현실화로 돌려놓는 일이 있다. 발전 원가 상승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 요구마저 외면했던 잘못된 루틴과 결별하려면 내년 4·10 총선은 잊어야 한다. 전략적 판단이 개입되면 결과는 필패다. 투명하고 공정한 자산매각 처리도 중요한 업무다. 어떤 성격의 인사든 한전 사장직은 방만한 경영과 조직을 뜯어고칠 리더십 없이는 오르지 않아야 할 자리다. 그래서 독이 든 성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창사 이래 최대 위기인 한전의 정상화를 이뤄낼 용기와 결단을 보고 싶다. 신임 사장의 에너지 산업에 대한 전문적 지식, 그런 것보다 공기업 운영 역량과 쇄신 의지를 일단 믿어보는 수밖에 없다.

2023-09-18 14:02 사설 기자

[사설] 대·중소기업 상생경영, ‘윈윈’ 전략이어야 한다

추석을 앞두고 대기업, 협력사, 지역사회 등이 함께 사는 기업 운영 방식인 상생경영이 힘을 받고 있다. 환경·사회·투명(ESG) 경영이 성장의 핵심 요소로 부각되면서 상생 활동에 선순환하는 것은 더 긍정적인 변화다. 다양한 복지 제도로 대리점과의 상생 경영에 나서면 해당 기업으로서는 협력 체제 강화 수단이 된다. 당연히 수위탁관계에서 지배적인 교섭력을 보유한 대기업의 상생 의지가 더 센 추동력이 되는 건 사실이다. 최근 상생 생태계에서 떠오른 소재 하나가 납품대금 연동제다.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간 거래에서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납품대금에 반영하는 이 제도에 동참하는 기업이 2000개사를 넘어섰다. 이러한 호응은 관련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은 덕도 있지만 기업이 제도의 시장 안착에 노력해 온 결과다. 상생의 가치는 최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분쟁 발생을 줄이는 데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좋을 듯하다. 공정성의 이름 아래 중소기업 출혈경쟁이 벌어질 수 있는 측면은 보완할 점이다. 그러면서도 일방적인 지원이 아닌 각자 위치에서 호혜적인 윈윈(win-win) 전략이 되게 해야 한다.이해 부족만 탓하지 말고 상생에 대해서는 정부의 지원,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중소벤처기업부와 방위사업청 간의 방산 분야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도 소기의 성과를 내야 한다. 가장 바람직한 상생 모형(모델) 발굴은 기업 운영 방식의 변화에 의한 것이다. 정부는 상생협력 유도를 위한 인센티브 확대에 힘써야 한다. 대기업도 낮은 비용으로 더 효율적인 일을 처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재계 주요 기업들의 자세 전환은 자율적인 제도 참여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상생’은 서로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납품대금 선지급도 명절 시즌의 관례처럼 자리잡고 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삼성, LG, 롯데, KT 등 대기업들이 협력사 납품대금 조기 지급에 나선 선례가 더 굳어지고 있다. 고금리, 고물가로 힘든 상황에서 실질적인 혜택이 될 것이다. 협력사의 금융부담을 덜어주는 다른 노력, 즉 동반성장펀드 운영, 중소기업 100% 현금 결제 도입은 한층 심화된 상생 노력이다. 금리로 대출을 받아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상생협력펀드, 직접 대출 등 금융 지원 프로그램이 확산됐으면 한다. 협력사뿐 아니라 소외계층 지원과 소비 활성화에 나서는 것 역시 지역사회 상생활동의 본보기다. 서로 살 수 있고 서로 주고받을 수 있어야 진정한 상생경영이다. 올 추석엔 대·중소기업이 그런 뜻을 잘 모아 상생의 가치를 빛내보길 바란다.

2023-09-17 15:55 사설 기자

[사설] 대한민국 경제 재도약, 브릿지경제가 맡는다

석유 등 에너지 가격의 급등과 요소수, 반도체 공급망 악재 등 우리 경제가 불청객들에 둘러싸여 있다. 수출 감소와 실체가 모호한 제2금융권발 위기설이 또 하나의 복병이 되지 않을지 걱정도 된다. 1%대 저성장 전망 속에 소비자물가는 다시 3%대로 뛰었다. 국제기구들은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계속 낮추고 있다. 경제가 위기라는 뚜렷한 신호들과 함께 브릿지경제 창간 9주년을 맞는다. 비상등 켜진 대한민국 경제를 다시 뛰게 하라는 소명의식까지 갖게 되는 아침이다. 어려울 때 기업과 시장의 가치를 더 생각한다. 가장 아쉬운 것은 기업의 투자를 확대·확장할 적극적인 경제정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 노력마저 재정정책 중심의 긴축 재정 기조에 억눌린 느낌이다. 최근 성장세를 이어가는 인도나 브라질 등에서 무역 의존도가 낮다는 공통점이 발견되는 것 또한 곤혹스럽다. 각국의 보호주의 성향은 강해진다. 명료하게 드러난 리스크, 웃을 듯 말 듯한 ‘모나리자 모호성’에 비유될 아무도 모르는(Nobody knows) 리스크가 한둘 아니다.경제와 기업은 용수철에 비유되기도 한다. 과도하게 오래 짓눌리면 회복력과 생존력을 상실한다. 개방경제인 우리 경제가 그렇다. 제조·건설 등 전통산업이나 첨단·신산업에서나 같다. 특집으로 집중 조명한 ‘신성장 형제들’인 K-브랜드 확장에 브릿지경제는 힘을 보탤 것이다. 비은행 금융기관의 복원력 향상도 눈앞의 과제다. 정부와 기업 간 와해된 협력 네트워크는 제대로 정비해야 한다. 허리띠 졸라매고 잘 견디자는 여당과 확장적 재정 운용으로 가자는 야당 모두 경제 살리기에 힘써야 한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시행령과 입법으로 규제를 풀어 기업 경쟁력을 살려야 한다. 창간 9주년 기념 ‘기업 현안 포럼’을 통해 기업 세제의 대안을 찾은 뜻이 여기에 있다. 창간기념호 지상의 ‘산업, 다시 경쟁력이다’ 기획물에서 혁신을 저해하는 규제의 과감한 혁파를 주문한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우리가 직시할 것은 생산성이 떨어지는 경직된 노동시장 문제, 위험하고 낡은 경제 구조, 킬러규제들 앞의 등불 같은 중소기업,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연구개발 환경 등 온갖 악조건이다. 산업 경쟁력, 경제 전체의 경쟁력 복원을 위해 경제팀이 비상한 대응에 나서야 한다. 자기실현적 예언이 될지 모를 위기설보다는 위험 요소를 싹 제거한 변화의 바람을 우리가 일으킬 차례다. 어떻게 시장 성과를 개선하고 상생과 공정의 시장경제를 선도할지에 집중할 것을 다짐한다. ‘따뜻한 시장경제’, 대한민국 경제 재도약을 향한 브릿지경제의 힘찬 여정은 계속된다.

2023-09-15 06:00 사설 기자

[사설] ‘요소수 대란 재연 없다’ 확신할 수 있나

요소 품귀 사태 재발에 대한 우려가 식지 않고 있다. 중국이 자국 비료업체에 요소 수출 중단을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다. 중국산 요소 의존도가 절대적이라는 점에서 소비자 불안감이 기우만은 아닐 것이다. 2021년 10월에도 중국과 호주의 석탄 분쟁이 갑작스러운 요소 수출 전면 중단으로 이어질 줄 아무도 몰랐었다. 비료용 요소라고 하지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의 경험과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선지 한 대형마트에선 2주 전보다 6배가량 요소수 판매가 늘었다 한다. 정말 아무 일 없다는 확신이 들더라도 요소수 수급 불안 때문에 품귀 사태를 빚지 않도록 관리해야 할 것 같다. 높은 중국 의존도 탓에 작은 충격에도 크게 휘둘리는 이슈이기 때문이다. 최단기 1조 달러 무역 실적에 도취해 있던 2년 전에는 요소수 사태로 국내 물류 체계가 흔들리고 있었다. 200만 대 이상의 디젤 차량 운행을 중단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 했던 그때와 지금이 다른 점은 학습효과 여부다. 같은 점은 수급난이 닥칠 경우 우발적인 위기가 재연된다는 것이다. 요소수 부족이나 중단에 대비해 콘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은 늘 준비해둬야 한다. 예측하기 어렵거나 예측하고도 단기간 회복이 어려운 경우의 대처법이다.상황이 오히려 안 좋아진 것도 있다. 수입 요소의 중국산 비중이 2021년 71%에서 지금은 89% 이상으로 높아진 사실이다. 경제안보 운운하며 각종 공급망 안정화 대책을 늘어놓으며 요소 수입처 다변화를 추진하겠다던 인사들이 답할 차례다. 화물자동차 대다수가 질소산화물 저감장치(SCR)를 달아 요소수를 투입해야 기계가 작동한다. 재고가 넉넉하다며 진화에 나설 뿐 아니라, 실제 물류 대란으로 국가 경제나 산업에 타격이 없게 해야 한다. 포괄적인 수출 제한이 재발하지 않더라도 긴장감이 소비자의 전유물이어서는 안 된다. 원료 공급이 막히면 해결 불능이다.미심쩍으면 군용기까지 동원해 호주에서 요소수를 긴급 공수하던 2년 전의 긴박한 영상을 재생해보길 바란다. 공급망 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한·중 양국 정부 간 협의도 강화해야 한다. 친환경차 상용차 비중은 8%밖에 안 돼 전환 속도를 올리자 해도 한계가 있다. 산업용 요소 물량 비축분도 미리 파악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요소의 확보 방안 없이 일 터지면 수입 다변화 및 국내 생산기반 확충을 외치는 것은 후진적인 일처리 방식이다. 요소수 수급이 위험한 국제분업의 원리라면 그 허점을 중국이 언제든 꺼내들 수 있다. 중국의 요소 수출 중단설이 말 그대로 ‘설’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대비는 필요하다.

2023-09-13 14:16 사설 기자

[사설] ‘기업 세제’ 전반, 경제 활성화 기준에서 재편해야

임시투자세액 공제 재도입,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세액공제율 상향 등 올해는 기업 세제에 있어 한 줄기 희망이 보이는 해다. 가업 상속공제 사후관리 요건 완화, 표준사업 분류상 대분류 내 업종 변경 허용 등은 바람직한 변화다. 동시에 많은 과제를 남긴다. 시장경제 활성화의 기준 하나는 경제가 어렵고 승계까지 어려우니 기업을 헐값에라도 판다는 말이 사라지느냐 여부일 것이다. 가업승계제 및 투자세액 공제의 개선 방안도 이런 부분에 맞춰야 한다.불확실한 경제 여건이다. 글로벌 경제는 분절화하고 우방국 중심 공급망 재편 등 리스크가 허다하다. 이럴 때일수록 가업상속공제 확대, 중소기업의 납품대금연동 법제화 등 경제정책들을 술술 잘 풀어야 한다. 설비 등 고정자산을 형성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임시투자세액공제는 취지에 맞게 더 보완해야 한다. 12일 브릿지경제 ‘기업 현안 포럼’에서 제기된 대안처럼 가업승계가 원활하려면 다양한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 기업이 투자한 만큼 소득세·법인세에서 일정 부분을 이듬해 공제받는 제도 역시 포퓰리즘일 수는 없다. 기업 세제 개선은 곧 성장 잠재력을 키우기 위한 방향 전환이다.과도하고 징벌적인 상속세제는 안정적 승계와 지속성장을 가로막는다. 상속세 때문에 빚을 내거나 폐업하는 모순적인 사태나, 포럼에서 예시됐듯이 정부가 국내 최대 게임업체의 2대 주주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상시화되지 않아야 한다. 다수의 경제를 생각해 승계 걸림돌을 빼자는 것인데, 소수에만 혜택을 준다며 어깃장 놓는 야당의 인식도 문제다. 기업의 지속성장이라는 관점이 결여된 단견이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의 주제 발표 내용처럼 “대부분 기업들이 승계가 어렵다는 것”과 “기업의 성장 동력, 국가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본질에 보다 집중해야 한다. 부의 대물림 억제라는 단세포적 프레임에서 놓여날 때가 왔다.다른 것보다 기업 활성화, 시장경제 활성화 기준에서 기업세제를 보는 게 좋겠다. 기업이 잘 되면 결국은 세수 증대로 이어진다. 12년 만에 부활한 임시투자세액공제 제도는 산업전환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해 1년 또는 수년간으로 연장할 수 있어야 한다. 더 좋은 방법은 전반적인 법인세율 인하다. 국회는 장기전에 대비할 한국 경제를 위해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세법 개정안부터 꼭 통과시키기 바란다. 상속세·법인세는 물론 RD 세액 공제를 포함한 기업 세제 전반은 경제 파이를 키우는 핵심 요소다. 그런 재정정책이 되도록 세제 재편이 되는 게 최선이다.

2023-09-12 14:03 사설 기자

[사설] 정부·방산기업 협의체에 K-방산 미래 달렸다

방위산업 분야도 바쁜 한 주를 맞는다. 방산기술 보호를 위한 공조가 시급해진 가운데 국가안보실, 국방부, 방위사업청과 주요 방산업계가 11일 방산침해대응협의회 첫 회의를 열었다. 기술 보호를 앞세워 방산 수출과 안보에 적극적으로 공조한다는 전략이다. 대통령실 임종식 국가안보실 제2차장은 11일부터 열리는 영국 국제방산전시회에 참석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10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 정상회담에서 K-2 자주포 2차 사업 등 방산 파트너십을 다졌다. 첨단 신무기 개발 못지않게 정부의 방산 정책도 정교해져야 한다. 무기만 잘 만든다고 무조건 팔리는 시대는 지났다. 글로벌 정보 취득과 공유도 필요하며 민감한 방산기술은 물샐틈없이 보호해야 한다. 일반적인 교역처럼 수출 지원 체계가 잘 가동해야 수출이 탄력을 받는다. 협의체에서 빠진 중소·벤처기업들도 K-방산을 떠받치는 또 다른 주역이다. ‘방산혁신기업 100’ 지정 사업을 내실화하면서 금융과 컨설팅을 지원해야 한다. 또한 낡은 규제의 암초를 제거해야 전체 무기체계 개발도 힘을 받는다.민관 협의체의 주요 기능은 해킹 등 주요 방산 침해 요인을 사전 점검하고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유럽연합(EU) 국가들까지 한국 무기체계에 관심을 표명하고 지금 국제 방산전시회에 주도국 자격(Lead Nation)으로 참가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만큼 군사 정보 수집에 혈안인 북한을 따돌려야 한다. 북한의 주된 공격 대상은 러시아, 이스라엘, 독일과 함께 한국이다. 북한 해킹그룹의 사이버 작전에 대응하는 것도 협의체의 주된 업무다. 방산보안 정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폴란드 방산 수출을 계기로 한국 무기들의 국제 경쟁력은 확인됐다. 다만 한두 가지 ‘잭팟’이 그것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후속 수주에도 힘써야 한다. 이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것은 기술 경쟁력 우위 선점과 방산 안보에 관한 협력이다. 이 두 가지에 K-방산 미래가 걸려 있다. 국가 간 무기거래라는 방산수출 성격상 방산 침해 대응과 방산 수출 전략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물자보다는 기술 수출이 패러다임이라고 해서 기술 보호에 허술하다면 2027년 세계 방산 수출 점유율 5% 돌파와 4대 방산 수출국 도약은 사상누각이 된다. 대기업 중심의 체계 업체뿐 아니라 협력업체가 해커의 공격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기술 유출 방지 등을 위한 ‘방산침해대응’의 중요성이다. 기술 경쟁력 우위 선점과 방산 보안정책 수립에 정부와 방산기업, 유관기관이 ‘원팀’을 이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023-09-11 14:21 사설 기자

[사설] 재정 안정과 소득 보장, 둘 다 중요한 연금개혁

노령화사회로 접어들면서 연금 소득대체율을 정하는 문제가 최대 난제로 떠올랐다. 제대로 된 재정안정방안도 돼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가 소득대체율을 제외하고 18가지 시나리오만 내놓았다는 건 그만큼 국민연금 개혁이 가시밭길임을 예고한다. 더 내고 더 늦게 받는 방향의 어려움이다. 한국적 상황인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재정 악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연금개혁은 불가피하다. 자문안을 통해 재정계산위가 던진 핵심 화두도 이와 다르지 않다. 25년째 묶인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손봐야 한다. 그런데 요율 15%, 68세 수령 등으로 재정 논의에만 전적인 힘이 실려 있다. 공개된 국민연금 개혁안 초안이 반쪽이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최종 정부안에는 바람직한 개혁안을 압축해내야 한다. 연금 개혁안이 갈지자걸음으로 ‘시나리오’만 재생산할 게 아니다.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생애 평균 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인 소득대체율에 대한 결론을 포함해야 타당한 개혁안이다. 개편의 밑그림은 국민 눈높이에도 맞아야 한다. 노후 소득 강화도 연금 개혁의 주요 의제 중 하나다. 도외시하면 국민적 또는 정치적 수용성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이를 너무 강조하다간 재정계산위 개편안보다 후퇴한 방안이 담길 수 있다. 각 연금 간 형평성도 살펴봐야 한다. 20세가 90세가 되는 2093년까지 기금 고갈을 막는 목표지만 소득보장이 빠진 채 재정 안정으로만 치우친 게 문제다.이런 개혁 방안은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소득보장을 명문화해도 가령 소득의 18%를 받아들일 사람은 적다. 국민 여론과 정부 의지가 조합돼야 한다. 기금 소진 우려를 덜기 위한 것이긴 하지만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은 국민적 반발이 큰 사안이다. 단기적 실행 계획부터 장기적 운영 원칙까지 틀을 확고히 짜야 한다. 소득대체율 인상 요구는 거세질 수밖에 없다. 국민이 납득하도록 설명하고 설득해 국민연금 공회전 역사는 윤석열 정부에서 끝내야 한다.국민연금 개혁의 최고 접점은 다음 세대도 향유하게 할 지속가능성이다. 문제는 재정 안정과 소득보장 강화는 잡기 힘든 두 마리 토끼와 유사하다는 점이다. 한 마리씩 따로 잡기도 똑같이 어렵다. 누구나 공감할 상생의 연금개혁은 하나의 이상의 영역일 정도로 난제다. 달리 ‘개혁’이 아니다.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에 관한 정부안을 받아 입법안으로 완성해야 할 국회도 잘해야 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이 지지율 셈법의 늪에 빠질지 모른다. 말 그대로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는 원론적 정의에 충실할 때다.

2023-09-10 13:50 사설 기자

[사설] EU ‘초강력 빅테크 규제안’, 삼성전자 빠진 건 다행

유럽연합(EU)이 6일(현지시간) 디지털시장법(DMA) 제재 대상으로 6곳을 선정했다. 초강력 규제 후보군 중 천만다행으로 삼성전자만 제외됐다. 당초 7곳이 거론되다가 시장 지배 플랫폼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삼성전자의 논거가 통해 최종명단에서 빠졌다. 갑질 땐 ‘연매출 최대 20% 과징금’ 한 가지만 봐도 천문학적인 갑질처럼 보이는 규제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인 애플, 알파벳(구글 모회사), 메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중국의 바이트댄스(틱톡 모회사)가 문지기(게이트키퍼) 플랫폼으로 지정된 자체에서 EU의 입장 강화 의도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대형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디지털시장법 적용을 앞두고 빅테크들이 MS·애플 등이 ‘우린 인기 없어요’라며 저마다 ‘셀프 디스’에 바빴던 이유다. 만약 삼성전자가 지정됐으면 어떠했을지 끔찍하다.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디지털 기기에 삼성전자 애플리케이션(앱)을 우선적으로 설치할 수 없고, 어기면 과징금을 물게 됐을 것이다. 소셜미디어 플랫폼, 앱스토어, 운영체제(OS) 등 22개 주요 서비스가 규제 대상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보호무역적인 측면을 잘 살펴야 할 것 같다. 시장 지배력 남용 우려지 사실은 시장 지배력을 대놓고 제한하는 ‘중징벌’이 된다. 말이 반독점 규제지 너무 세다.역대급 규제에 삼성이 포함이 안 됐다고 안심할 수만은 없다. 유럽 법률이 전 세계에 미칠 파급효과로 더 폭넓게 자사 우대, 끼워 팔기, 타 서비스 이용 제한 등이 금지되는 추세로 간다고 봐야 한다. 미국은 혁신 및 선택 온라인법안을 매만지는 중이다. 중국도 규제 강도를 높이고 있다. 확고하고 지속성 있는 지위가 있다고 판단하면 게이트키퍼로 지정될지 모를 문은 열려 있다. 변변한 빅테크 기업 하나 없는 EU가 규제안을 주된 무기로 빅테크 기업의 힘을 견제하는 선두주자가 됐다. 유럽은 삼성전자가 북미 다음으로 매출 실적이 좋은 시장이기도 하다.여기서 또 직시할 것은 각국이 글로벌 빅테크에 대항하려 한다는 점이다. 디지털시장법과 비슷한 규제를 국내에 도입할 때는 자칫 토종 플랫폼의 경쟁력을 좀먹는 정책은 만들지 않아야 할 것이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국내법 규제를 무시하는 태도는 묵과하지 않아야 한다. EU 입법기구인 유럽의회가 통과시킨 인공지능(AI) 관련 규제 법안의 초안에도 신경을 곤두세울 때다. 빅테크 경쟁력을 키우면서 누군가가 사다리를 걷어차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2023-09-07 14:22 사설 기자

[사설] 태양광 산업도 국가성장동력으로 키워야 한다

문재인 정부 때의 보조금 부정 수급 비리나 이권 카르텔 혁파 등에 묻혀 태양광 산업이 앞으로 가지 못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신재생에너지 중 태양광만 떼어놓고 보면 한국은 국제적인 추세에 역주행하는 듯 보일 때가 있다. 파리협정(2015년)에 동참한 우리다. 온실가스 전망치 대비 37% 감축한다는 탄소중립 약속도 이행해야 한다. 하지만 국가성장동력으로 키우자고 하기조차 힘든 분위기다. 수명이 짧은 효율성의 한계, 주력 발전으로서의 부적합성, 낮은 발전효율만 부각되는 것도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신재생에너지 확대는 전 지구적 과제라는 점이다. 관련 산업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아도 설비 용량 기준으로 국내 전체 원전 용량(24.65GW)을 태양광 발전이 뛰어넘었다. 그런데 속은 온통 중국산이다. 자국산 제품 우대를 금지하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등을 들어 박대할 때가 아니다. 중소 제조사, 부품 업계들은 특히 고전을 거듭하고 있다. 대기업도 만만치는 않다. 시장이 커질수록 가격 경쟁력에서 압도하는 중국 기업만 재미를 보는 구조 때문이다. 중국이 한국 태양광 시장을 접수하다시피 해도 문제시하지 않는 게 정말 문제다.한국뿐 아니라 글로벌 태양광 시장까지 석권한 중국의 집요한 저가 공세는 자국 정부 지원이 있어 가능했다. 올해 1~5월 국내에 보급된 태양광 셀(빛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바꿔주는 장치)의 70%가량은 중국산이다. 원전 생태계 회복을 강조한 윤석열 정부에서도 태양광 설비는 계속 늘 수밖에 없다. 에너지 정책의 방점을 원전 생태계 회복에 두는 것과 별개로 태양광 업계는 지원해야 한다. 이념이나 정권과 무관하게 탄소중립이라는 큰 방향성은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신재생 발전 비중 확대는 정부의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도 들어 있다.시장성에 주목하면서 폴리실리콘, 잉곳·웨이퍼, 셀, 모듈로 이어지는 태양광 산업의 글로벌 밸류체인을 우리가 나눠 가져야 한다. 먼저 국내 파이부터 키워야 한다. 태양광 발전 입찰에서 산업·경제 기여도를 넣거나 가산점 부여로 사업자의 국산 부품 사용을 늘려야 할 것이다. 일조량 등에 따라 발전량이 좌우되는 ‘천수답’ 문제는 결국 연구개발로 뚫어야 한다. 태양광이 신산업으로서도 살려면 갈 길은 차세대 셀 개발 등 기술 고도화다.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화(RPS) 비율을 다시 높이고 업계에서 요구하는 ‘태양광 국가전략산업법’을 만들어 국가성장동력을 확보하는 수출전략 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 지난해 글로벌 태양광 설치는 1TW(테라와트·1TW는 1000GW)를 돌파했다.

2023-09-06 14:00 사설 기자

[사설] 유커 귀환에 면세업계 얼마나 살아나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후폭풍이 드디어 끝나는가. 중국 단체관광객(유커·游客) 감축 지침의 빗장이 풀리면서 추락하던 면세업계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7월부터 월별 방한 외래관광객 수 1위로 올라서면서 상승 기류를 타는 중이다. 면세업계는 각종 할인과 우대 행사, 프로모션 등을 통해 핵심 인바운드(외국인의 국내여행) 고객인 중국인 맞이에 한창이다.이렇듯 호전되는 여건이지만 김칫국부터 마실 일은 아니다. 6년 전 또는 10년 전과는 달라진 여행 트렌드 때문이다. 면세업계가 이에 대응해야 한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중국인의 한국 여행 만족도나 재방문율은 하향길을 걷고 있었다. 물론 유커의 지출 경비는 전체 외국인 평균보다 38% 높다. 그러나 저가 여행과 바가지 상술 따위는 안 통한다. 한·중 관계가 얼어붙은 것까지 변수다. 면세점 수는 또 늘어나 있다. 외국 관광객 지갑에 의존하는 비즈니스인 면세점의 앞날이 활짝 열려 있지만은 않다. 시장 예측에 따른 중장기 정책이 필요하다. 매출 감소에도 이익이 한시적으로 늘어난 ‘불황형 흑자’ 탈피는 면세점업계로서도 과제다.이럴 때 정부가 유커 면세쇼핑 환급 등을 간소화한 것은 좋은 방안이다. 아직은 중국인이 한국보다 많이 찾는 태국이나 일본과 겨뤄 경쟁력이 있으려면 역부족이다. 단체관광 유치 대책도 세분화해야 한다. 중국 내부적으로 관광객 구성이 변화한 디테일도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개별여행 선호도가 증가하는 수요에 신경 써야 한다. 장기간 침체를 겪던 면세점은 특히 유커 유치 활동의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 유커의 지갑만 쳐다보는 한탕주의식 관광 산업은 잊는 게 좋다. 관광 활성화의 진짜 승부처는 고부가가치 관광상품 개발에 있다. K-팝을 비롯한 K-컬처와 K-뷰티, K-푸드 체험은 정말 특화돼야 한다. 지리적 인접성과 몇 가지 쇼핑 매력만 갖고 유혹하기에는 역부족이다.관광 정상화 등에 힘입어 내년 한국 면세점 시장 규모가 올해보다 20% 성장한다는 증권업계 전망도 나왔다.지난 3월, 유커 7만3000여명에 불과하던 데 비하면 올해 200만명 계획을 세우는 것은 어찌 보면 장족의 발전이다. 유커 600만명을 돌파하던 시절의 영화를 언제 되찾을지는 모르겠다. 씀씀이가 큰 중국 관광객이지만 대량소비에서 자신에 맞는 소비 행태로 바뀌는 경향도 있다. 대책이 정교해져야 한다. 한·중 양국 간 경제적·인적 교류 증대와 우호 분위기도 유커의 장바구니 변화 못지않게 중요하다. 면세업계 노력만으로 안 되는 부분은 정부가 채워주기 바란다.

2023-09-05 13:43 사설 기자

[사설] 중소벤처 킬러규제 해제, ‘용두사미’ 되지 않길

중소벤처기업부가 1193건 중 가려 뽑은 킬러규제를 4일 공개했다. 중기부 선정 ‘킬러규제 톱 150’ 성격이 있는 과제에는 소상공인·중소벤처 분야의 성장을 막는 제도들이 다 모여 있다. 하나씩 훑어봐도 버릴 게 없을 정도다. 분야별로 중요도나 시급성, 파급효과에 대한 전담반과 전문가의 검토를 거쳐 그럴 테지만, 기업활동을 저해하는 규제가 보편적이라는 뜻도 된다. 중점 추진 과제 중에는 기존 규제의 완화를 넘어 적극적인 제도 개선에 가까운 것들도 있다. 전통주 인정 범위 확대, 분사형 임상시험 가이드라인 마련 등은 신산업을 위해 요긴한 제도들이다. 불분명한 규정 해석·적용 등 경영부담 규제와 같이 포괄적인 내용도 섞여 있다. 동일 제품인데 색깔별로 받아야 하는 유아용 섬유제품 인증은 시급을 요하는 사안이다. 유아용 의류 제조업체 외의 분야에 이와 유사한 사례가 많다. 실익은 없고 소비자 혜택만 막는 낡은 규제는 ‘뽀개기’(빠개기)의 대상이다. 150개 과제에는 국회의 입법 뒷받침을 요하는 것이 상당수다. 더불어민주당이 여당 시절의 ‘규제 샌드박스’ 경험을 살려 입법 절차에 잘 협조하는 자세를 보고 싶다.발굴된 과제들에 대해서는 더 구체화하고 세밀한 해결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노동, 판로, 인증, 신산업 등 워낙 방대한 분야에 걸쳐 있다. 과제 이행 단계와 완결까지 추진 속도와 효과를 점검해야 할 것이다. 제도가 현장에 잘 미치는지, 새로 생긴 현장 애로는 없는지 꾸준히 살펴 규제 혁신 과정에서 미세조정을 거쳐야 한다. 규제 도입 당시와 달라진 시대 흐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엄격한 규정을 위해 규제를 함부로 덧붙이지 않는 것 역시 중요하다. 타당한 규제지만 중복규제가 된다면 손질이 필요하다.규제 해제의 모호성 또는 예기치 않은 문제 발생으로 기업이 갈 길을 잃어서는 안 된다. ‘먹고사는 문제’는 모두의 것이다. 부당하게 편을 들려는 규제 완화가 아니다. 킬러규제에는 기후위기 등 일부 진영 논리화 여지가 있으나 오직 경제를 기준으로 작동해야 한다. 중소기업중앙회와 소상공인연합회, 벤처기업협회 등과도 이를 위해 조율하고 소통해야 할 것이다.타 부처 소관 과제는 범부처 회의체를 통해 규제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 이전 정부의 규제 샌드박스뿐 아니라, 전봇대 뽑기(이명박 정부), 손톱 밑 가시 제거(박근혜 정부) 등의 규제 혁파처럼 용두사미가 되지 않아야 한다. 위기 상황의 경제 살리기에 집중한다는 목표의식을 분명히 하면서 150개 규제 해소를 끝까지 완수하길 당부한다.

2023-09-04 14:41 사설 기자

[사설] 기업 잘 뛰게 화평법·화관법 규제 풀어줘야

화학물질 규제와 간소화는 기업 투자를 막는 결정적 규제인 킬러규제의 혁신 대상으로 꼽힌다. 기업 화학물질 등록 의무 때문에 독성·가연성 가스 감지기 설치가 대폭 늘어나는 것도 손질 대상으로 떠오른다. 화학물질 누액이 되지 않는 곳까지 누출 감지기를 설치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의 유해방지시설 설치 규정을 손질해 바로잡을 문제다. 국제 기준에 비해서도 과하다. 신규 화학물질을 제조 또는 수입할 때 환경부에 등록해야 하는 기준치를 연간 100㎏(0.1t)으로 잡은 것은 일관된 민원 사항이다. 규제 위주인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을 개정해 1t 위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 정기검사 면제나 연장까지도 합리적으로 검토해볼 사안이다. 화평법·화관법 시행 이후 지정된 유독물질이 1100여종으로 늘었다. 유독물질을 획일적으로 관리하는 현 제도의 실효성에는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경영환경을 해치는 화평법을 개정하면 얻는 효과가 많다. 반도체·전자 등 첨단업종 700여개 기업이 비용을 절감하고 제품을 조기 출시할 수 있다. 반도체의 경우는 시간과 비용 소요 그 이상이다. 반도체 소재 대부분은 개발 과정에서 신규 물질이 들어간다. 테스트 용량이 100㎏이 넘는다며 7개월 이상 등록 절차에 붙잡힌다고 하자. 반도체 발전 주기를 따라잡을 수 없어 경제전정에서 기업이 뛸 여건을 가로막게 된다. 제재 대상을 확대하고 처벌만 하면 다 된다는 착각이 만든 규제들이다. 이런 규제는 속도감 있게 개선하고 가야 한다.이대로 방치하면 안전에 필수적인 부분을 넘어 기업 활동을 더 위축시킨다. 화학물질 100㎏ 기준이나 필요 이상의 독성·가연성 가스 감지기 설치가 대표적이다. 소량의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업체조차 전문인력을 확보하는 것 역시 과도한 측면이 있다. 취급량이 적은 중소기업 등에는 보다 완화된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 위험비례형 규제 차원에서도 그것이 맞는 방향이다.비교하자면 1호 킬러규제인 산업단지 입지, 업종 제한 완화와 결이 약간 다른 요소는 있다. 2호가 될 화학물질 관련 규제는 기본 입법 취지를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서 고칠 것은 확실히 고쳐야 한다. 다만 화학물질 유해성 정보를 사전에 확인하고 유독물질 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하는 취지에 역행해 위험물질 관리에 허술하면 안 된다. 2015년 시행된 화평법과 화관법의 화학안전 기조 자체는 무너뜨릴 수 없다. 완전 철폐가 아니다. 국민 안전은 담보하면서 기업이 체감할 수 있게 규제를 혁파하자는 것이다.

2023-09-03 15:08 사설 기자

[사설] 3%대 물가 확대에 대비해야 할 ‘9월’

우리의 물가 목표 2% 개념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물가안정목표제(Inflation targeting)에 근거한다. 정작 미국에서는 물가상승률 2%는 과학이 아니라며 수정론이 확산하고 있다. 그래도 우리에게 3%대 물가는 물가 상승 불안을 막는 일종의 저지선이다. 오를 대로 오른 물가가 다소 잦아들다가 9월이 시작되며 다시 3%대 초반 확대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는 의미 없는 숫자가 아니다. 물가 반등 예상은 세계경제 둔화, 가계대출 증가와 함께 기준금리 5연속 동결 원인 3가지에도 들어 있다. 글로벌 애그플레이션(Agflation·농산물 가격이 주도하는 물가 상승)은 현실 단계가 됐다. 에너지 가격과 식료품 가격은 물가를 끌어올리는 두 축이다. 가파른 물가를 잡은 데 일정한 기여를 한 석유류 가격은 다시 상승 조짐이다. 국제유가의 시차를 고려하면 이달엔 상승 압력이 커질 것이다. 버스와 지하철 요금 등 다른 물가 상승 요인까지 겹치고 있다. 31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짚은 명절 성수품 물가 안정 대책 이상의 광범위한 대응이 요청된다.관례적인 수준으로는 어려운 이유가 있다. 가공식품에 이어 농산물 가격은 추석 물가를 들썩이게 할 것이다. 원부자재 부담, 집중호우와 폭염, 세계 쌀 수출의 40%를 담당하는 인도의 수출 제한, 흑해곡물협정 중단 등 반등 요인은 많다. 식량 자급률(쌀을 빼면 2021년 기준 20.9%)이 낮은 우리는 대외의존도가 높다.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와 관련해서는 수산물 소비와 가격에 미칠 영향까지 주시해야 한다. 추석 선물용이 기존 비축분이라는 설명만 갖고 10명 중 9명꼴로 수산물 소비를 줄이겠다는 소비자 마음을 돌리긴 힘들 듯하다. 국민의 먹거리 불편이 없도록 안전과 물가를 같이 챙겨야 할 9월이다.올해 물가는 1월 5.2% 기록 이후 2월 4.8%, 3월 4.2%, 4월 3.7%, 5월 3.3%를 끝으로 2%대에 진입해 있다. 모처럼의 하향 안정세는 8월부터 이미 끝나가고 있었다. 체감하는 밥상 물가에서는 그보다 심했다. 신선식품과 수입 곡물가 등의 동반 상승 기류가 역력하다. 정부가 주요 농축산물의 수급 상황과 물가 점검에 면밀하게 힘써야 할 것이다.식료품처럼 하방 경직성과 지속성이 높은 품목은 물가 불안을 더 자극한다. 일단 오른 물가는 잘 떨어지지 않는다. 전년 동월 대비 3%대를 당분간 유지한다는 예상을 예사롭게 봐 넘겨서는 안 된다. 물가 관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10월 들어 다시 2%대로 돌아와 안정화한다는 전망만 기다릴 때는 아니다.

2023-08-31 14:21 사설 기자

[사설] 역대급 R&D ‘예산 조이기’ 번지수 틀렸다

1일 국회에 제출할 내년도 정부 예산안 중 가장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 있다. 바로 25조9152억원으로 줄어든(올해는 31조778억원) 연구개발(RD) 예산이다. 기술 주도에 무게를 둔 정부이니 강력한 긴축 속에 이 예산만큼은 증액할 것이라는 기대는 허망했다. 불안은 현실이 됐다. RD 예산이 1991년 이후 33년 만에 줄어든 것보다 올 예산 대비 16.6%나 크게 줄인 파격이 당황스럽다. 이것이 ‘RD를 RD답게’한다는 윤석열 정부의 과학기술 철학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먼저 묻지 않을 수 없다. 연구개발 투자의 효율화나 재정 정상화는 지당한 말이다. 그러나 관행과 비효율을 걷어낸다는 것이 무차별적인 예산 조이기를 의미하진 않는다. A·B·C·D(AI, 바이오, 사이버 보안, 디지털 플랫폼)에 중점을 두는 건 좋다. 예외적으로 증액된 차세대 원전인 소형모듈원자로(SMR) 연구개발 등 원전 생태계 지원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전체 방향은 그르쳤다. 모래알에 비유되는 과제수는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성과창출형으로 바꾸면 된다. 5조2000억원의 예산 삭감이 아닌 재분배가 올바른 방향이다. 선택과 집중의 이름으로 미래 경쟁력과 혁신의 동력이 꺾이면 안 되기 때문이다.이명박 정부 시절 10조원을 막 넘긴 RD 예산이었다. 박근혜 정부 때 16조원을 넘어서고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10년 만에 두배 가까이 늘어났다. 연평균 10.9%씩 증가하면서 부실 문제가 불거진 건 사실이다. 그런 부분은 예산 배분부터 집행·평가 전 단계에서 보정해 가면 될 일이었다. 기술패권 경쟁의 시대에 추격도 하고 격차도 줄여야 할 중대한 시기다. 이를 외면한 채 기초연구 분야에서 6.2%를 깎고 정부 출연연 예산에서 10.8%를 깎은 명분이 ‘RD 카르텔 타파’라는 것은 근거가 약하다. 과학계 카르텔이 어디서 생겼는지, 나눠 먹고 갈라 먹기를 했는지 얼마나 따져봤는가. 예산 조이기의 번지수가 틀렸다.오히려 지금은 RD 투자가 늘어날 수 있게 제도와 환경을 재정비할 때다. RD 예산으로 생존하는 ‘RD 좀비’를 지원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재정 누수 요인은 줄이면 된다. 안정적·장기적 연구 환경을 악화시킬 RD 예산 삭감은 재고해야 한다.추경호 경제부총리는 “건전재정을 하면서도 쓸 곳은 반드시 써야 한다”고 했다.‘반드시’ 쓸 곳이 연구개발 투자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속에서도 증가했던 RD 예산이다.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길 바란다.

2023-08-30 13:57 사설 기자

[사설] 경제단체·기업의 수산물 소비 촉진, 결과도 좋으려면

올해 2분기도 전분기에 이어 수산물 소비가 줄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전부터 소비 감소가 현실화되고 있었다. 경제단체와 기업들이 수산물 소비 촉진에 동참하는 것은 방류 이후 정말 위축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무분별한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 확대가 아니라도 소비력 저하는 불가피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수산물 소비가 2012년 4.8%, 2013년 6.0% 등으로 연속 줄어든 전례가 있다. 국내 어업 생산량과 생산액도 줄었다. 사정이 그때보다 좋다고 단언할 수 없다. 경제단체와 기업의 전방위적인 노력은 이럴 때 큰 힘이 될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중소기업복지플랫폼에 수산물 판매업체를 입점하는 방안처럼 지속성을 띤 것도 있다. 회원사와 연계한 전국경제인연합회(한국경제인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의 소비 진작책, 그리고 기업들의 수산물 소비 운동 동참은 선한 영향력이 되리라 믿는다. 해운선사, 유통업계 가리지 않고 수산물 소비와 판매 촉진에 힘을 보탠다. 이러한 노력, 협력은 오염수가 해양 생태계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다. 국민 안전과 건강에 구체적인 위협 요인이 된다면 허사가 된다. 유통·식품업계의 자체 품질 관리 기준 강화만으로는 역부족이다.오염수 위해성 우려 외에도 수산물 소비심리 위축은 세계적인 피시플레이션(수산물+인플레이션) 영향까지 크게 받는다. 세계수산물 가격지수는 지난해와 비교해 15%의 최고점을 기록했다. 기후변화에 기인한 공급 부족과 중국 수요 증가 등에 따르는 가격 급등 영향이다. 기업 단체급식, 학교급식 등에 활용할 때는 단가가 높은 수산물을 급식에 많이 활용해야 하는 난제가 생긴다. 할인 판매로 이익이 줄어드는 어업인에게 예비비를 지원하는 것도 아이디어가 될 것이다. 소비 진작을 위한 다각적인 고민과 대응 전략이 요구된다. 결과가 좋으려면 안전성 100% 담보는 기본이다. ‘사실상 강제 급식’과 같은 무분별한 비판쯤은 넘어서야 한다.올해 2분기 월평균 신선수산동물 지출액(통계청 가계동향조사)은 1만7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분기보다 9.8% 급감했다. 본격적인 시장 위축이 되는지는 추석 명절 대목이 분수령이 될 것이다. ‘과학이니 믿으라’보다는 실제 과학적인 정책이 수산물 소비에 도움이 된다. 경제단체와 기업들의 캠페인 역시 과학에 기반하면 최고의 불안심리 해소 수단이 될 것이다. 정부의 지속적인 모니터링 대상에는 오염수뿐 아니라 수산물 물가도 있다. 수산물 공급망 정상화와 가격 안정화에 힘쓰고 수산업을 구제할 단계별 대책까지 마련해 둬야 한다.

2023-08-29 14:32 사설 기자

[사설] ‘반백년 대출’ 규제, 가계부채 ‘구제’ 카드인가

주택경기 개선이 가계대출 급등을 부르고 그것이 소비 회복을 제약한다. 주택 가격 상승에도 대출 상환 부담에 소비 증가 효과를 상쇄한다고 28일 한국은행은 설명했다. ‘민간소비 회복 모멘텀’에 초점을 맞춘 분석이다. 하우스 푸어 이야기로 돌아가면 다중 채무자의 평균은 소득 60% 이상을 원리금 상환에 쓰는 처지다. 최근 늘어난 빚의 상당 부분은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주담대)로 화살이 돌려진다. 그 영향이 크다. 연령 제한 등 대출 제한 카드가 발동되기 전 막차를 타려는 심리가 작용한 듯하다. 집값이 오르자 다시 은행권 조이기 분위기다. 시중은행들이 속속 출시한 반백년 대출(50년 만기 주담대)을 가계대출이 증가한다며 한 달 만에 브레이크를 밟겠다 한다. 정책에는 유연성과 함께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상품 가입 연령을 만 34세 이하로 제한하면 다른 연령대와의 형평성은 또 어떻게 하려는가. 30대는 주택 매매 비중이 높아 주택 매수세를 잠재우는 효과가 얼마간 있을 것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수익성이 좋고 안정적인 점도 가계대출 증가 배경이 된다.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말하던 때와 다르게 가계부채 증가 책임을 은행에 미루는 것은 처음 보는 현상은 아니다.유동성을 감소시켜 주택구매능력을 떨어뜨리는 정책이 결국 신용 좋은 사람만 돈을 빌릴 수 있는 제도가 된다는 점 또한 문제다. 주담대 금리가 오르면 주택 매입 시 대출의존이 낮은 쪽보다 자금이 부족한 실수요자의 주택 구매 심리가 위축되는 건 당연하다. 다른 각도에서 자산불평등을 키우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 가계대출은 빤히 알면서 피할 수 없는 ‘회색 코뿔소’ 같은 측면이 있다. 빚을 늘리지 않아야 하지만 급한 가계부채 축소, 즉 디레버리징 역시 경제에 충격을 준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예외 대상 축소와 만기일시상환 대출 가산금리 적용 등에도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가계부채 상승 흐름을 끊기 위한 50년 만기 주담대 대출 제한이 DSR 규제를 풀지 않겠다는 의지로도 해석되고 있다. 그런데 가계 부문 DSR은 13.6%로 소득에 비해 빚 상환 부담이 높다. 소득과 신용도까지 낮은 대출자의 DSR은 말할 것도 없다.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679조원을 넘고 DSR 규제 바깥의 빚이 100조원을 넘는다. 가계대출이 늘면 내년 4·10 총선을 앞두고 집값이 오르지 않을지 신경 쓰일 것이다. 그보다는 DSR 규제가 가계부채를 구제(救濟)하는 최후의 보루처럼 쓰이는 현실을 중시해야 할 것 같다. 어떤 정책을 펴든 가계부채에 대한 튼실한 방어벽은 쌓아 두자는 의미이기도 하다.

2023-08-28 14:08 사설 기자

[사설] ESG 공시 의무 도입 일정 연기하는 게 낫다

기업들이 요즘 관심 갖는 핵심 키워드는 단연 ESG(환경·사회·지배구조)다. 2025년부터 단계적으로 모든 상장사에 적용되는 ESG 공시 의무화를 앞두고 기업들에 비상이 걸려 있다. ESG 경영인식이 낮아서가 아니다. 여건이 안 갖춰지고 준비가 덜 되어 있어서다. 자산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 등의 윤곽만 대강 잡혔을 뿐이다. ESG 보고서를 낸 기업조차 상당수는 온실가스 배출량 데이터가 없다. 협력업체까지 공시 관리가 요구되는 점을 감안하면 공시 의무화 일정은 무리다. 물리적·시간적으로 빡빡하다.더 중요한 공시제도 로드맵 발표는 8~9월 중으로는 힘들 것 같다. 적용 계획을 짜려면 미국이 4분기께 발표할 로드맵을 지켜보는 게 아무래도 유리하겠다. 그냥 기다리자는 게 아니다. 세계경제의 뉴노멀로 전환돼 간다 해도 준비 상황의 기본 골자는 알고 가야 한다. 실천 방법을 찾아야 정책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의 기업 의견조사에서도 최소 1년 이상 연기하자는 의견이 과반(56.0%)이었다. 조직 정비와 전략 수립, 비즈니스 모델 재편, 협력업체 데이터 측정·취합 모든 것에 좀더 시간이 소요된다. 규제가 아닌 지속가능한 투자 결정과 성장을 위한 목표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게다가 기업 윤리 차원이 아닌 생존의 차원이 된다. 이렇게 역사가 새롭게 열리는 데 비하면 방향성이 뚜렷하지 않다. 정부의 산업별 ESG 컨트롤 타워도 있어야 한다. 규모가 큰 대형사 중심의 코스닥 기업도 합류를 전제로 대응전략을 단단히 짜야 할 것이다.글로벌 투자기관들이 이미 ESG 지수를 활용하지만 우리는 일상적인 데이터 관리,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 기반마저 충분하지 않다. 법정 공시의 경우 형사나 민사 책임을 부여하기 마련이다. 법률 이슈에 대해 일정 기간 책임 면제기간을 설정하는 게 타당해 보인다. ESG에 발목 잡히지 않으려면 다방면에서 정책 불확실성 해소가 시급하다. 이행 과정의 경제·환경·사회적 불평등도 없어야 한다.지속가능성도 선택적이지 않고 의무적일 땐, 그리고 준비가 부족할 땐 부담이 된다. 비재무적 요소를 경영 목표로 삼는 데는 진통이 따른다. 미국 등 일각에서 반(反)ESG 바람이 일고 EU에서 공시 유예 역풍이 불기도 했지만 대세에 주는 영향은 미미하다. EU 기준에 맞춘 중소기업 ESG 경영 지원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 국내 시총 200대 기업 가운데 공급망 전반의 온실가스 배출량 공시조차 못한 기업이 수두룩하다. 적용 시점 및 공시 의무 시점 등 도입 일정을 유예해야 하는 이유는 이처럼 많다.

2023-08-27 14:06 사설 기자

[사설] 2자녀로 낮춘 다자녀 특공, 부작용도 예견된다

다자녀 가구에 주어지는 주택 관련 혜택 중 대표적인 것이 공공분양주택 특별공급(특공)이다. 지원 정책 기준을 기존 3자녀에서 2자녀로 완화하고 주택 공급에서 경제적 부담을 덜어준다는 정책 추진 방향은 나쁘지 않다. 들쑥날쑥한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다자녀 가구 기준 통일은 잘한 일이다. 부처 간 조율이 남아 있지만 자동차 취득세 면제·감면 혜택, 국립 문화시설 이용료 할인, 초등돌봄교실 지원 대상 포함과 아이돌봄서비스 본인부담금 추가 할인 등도 소소하지만은 않다. 전체적으로 개선된 혜택이다. 저출생에 대응하는 정책을 통틀어도 역시 핵심은 아파트 특별공급이다. 기준을 하향한 것은 2자녀 이상 다자녀 가구의 출생아 수 감소 폭이 큰 현실을 감한 것이다. 10년간 연평균 2자녀 이상 가구 감소율은 6.9%나 된다. 인구를 유지할 출산율이 2.1명이라고 보면 절박한 인구 현실이 반영돼 있다. 높은 생활비와 주택 구입의 어려움은 출생률 저하의 한 동인(動因)이다. 그러면서 사회문화적 또는 가치적 요소까지 포괄한다. 다자녀 가구에 대한 주거 안정 지원으로 출산율을 획기적으로 올릴지 그래서 미지수다. 상당 부분은 3자녀 특공 때 검증된 사안이니 더 그렇다.기억을 되돌리면 불임시술을 청약우선 공급조건을 내놓던 것이 불과 반세기 전 이야기다. 그 시절, 서울 반포의 특정 아파트단지는 당첨자 대부분이 정관수술을 마친 웃지 못할 사례도 있었다. 지금과는 180도 뒤집힌 정책이지만 여하간 다자녀 특공의 정책적 효과는 선한 의도만 갖고 얻어지지 않는 것임을 말하고 싶다. 청약 광풍에도 다자녀 특공이 미달하는 경우는 3자녀 이상 지원 현장에서 익히 봐 왔다. 전용면적이 작은 주택 유형만 공급되면서 실수요자가 외면하기도 한다. 이번에는 공급보다 수요가 월등하게 큰 분양시장에서 경쟁률만 높일 수 있다. 주거 안정에 실제 유의미한 정책이 될지 우려하는 이유는 이처럼 많다.다둥이 기준 완화가 기준의 현실화라 쳐도 청년·신혼부부와의 형평성 등이 제기될 수 있다. 양육·교육·주거 지원 정책은 좋다. 그러나 인구 감소 폭을 줄이는 고육지책이라 해서 막대한 재정 소요를 모두 감내해야 하는 건 아니다. 2자녀 이상 가구는 3자녀 가구에 비해 현저히 많다. 특공 경쟁률이 과도하게 높아질 걸로 예견된다. 3자녀 기준일 때와 같거나 다른 부작용이 한꺼번에 튀어나올지 모른다. 특공 수단으로 민영주택을 검토하기 전에 체감도 높은 정책부터 밀고 가지 않으면 정책 효과가 반감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저출산·고령사회 정책이라는 추진 방향과 과제를 잊지 않기 바란다.

2023-08-24 14:03 사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