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유럽도 보조금제 개편, ‘한국판 IRA’ 내놓아야 하나

사설 기자
입력일 2023-03-16 14:01 수정일 2023-03-16 14:02 발행일 2023-03-1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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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도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을 겨냥해 보조금 빗장을 풀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생산 기지 등의 EU 역외 투자 전환을 막자는 심산이다. 미국 등 제3국에 맞먹는 수준의 매칭 보조금제를 설계하는 것 같다. 미 IRA의 차별적 조치에 오도 가도 못하는 국내 산업계에는 새로운 난관이 얹어졌다. 기존 보조금 관련 규정을 확대하는 정책 변경이 실행된다면 우리에겐 ‘한시적 위기’ 정도가 아니다.

한국 기업 불이익을 최소화하겠다는 외교적 수사 한 마디에 유리한 법으로 돌변되지는 않는다. 미 IRA에 대해서는 오는 4월의 한·미 정상회담에 너무 내맡기려는 경향이 있다. 국내 완성차 업계 요구처럼 핵심 광물과 배터리 부품 요건 완화 등 불이익을 풀기 위해 치밀한 물밑 작업을 해둬야 한다. 테슬라에 필적하는 탄탄한 전기차 경쟁력을 갖춘 현대차 그룹만 보더라도 불의의 기습공격을 당한 셈이다. 대미 투자 확대가 불가피한 면이 있더라도 새로운 안전장치의 틀은 갖춰야 한다. 반도체법의 경우도 강력한 디테일 앞에서 이와 똑같은 비상사태다.

똑바로 봐야 할 게 ‘메이드 인 USA 또는 EU’의 본질이다. 동맹이나 주요 교역 대상국이라고 해서 북미산, 유럽산과 동등한 대우를 할 리 없다. 자유무역협정(FTA)을 들이미는 건 좀 순진한 발상이다. 그걸 의식했다면 바이든 행정부가 독소조항들을 통치 전략의 중심에 놓지 않았을 것이다. 국내 전기차와 전기차용 배터리 업체, 배터리 소재·부품 업체의 움직임이 실제로 심상치 않다. EU가 역내 기업 이탈을 우려하는 것 이상으로 국내 기업들도 대미 투자가 가속화할 위험이 상존한다. 눈 뜨고 지켜만 볼 수는 없다.

미국 IRA나 유럽판 IRA는 매우 교묘하고 거대한 계획이다. 각종 친환경 사업 보조금으로 위장해 그린산업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명분은 내년 미국 대선과 이어진 불가분의 승부수다. 거기에다 중국 CATL과 포드의 미국 내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립 계획에 K-배터리 업계는 비상이 걸려 있다. 남이 깔아준 판이나 반사이익에 의존할 수도 없는 냉엄한 현실이다. 정부가 미국 행정부와 의회 설득에 발벗고 뛰고 정치권은 경제 발목 그만 잡고 진짜 한국판 IRA라도 내놓아야 할 판이다. 미국만큼 주겠다는 유럽 보조금제 개편으로 기업 보조금 전쟁은 더 정교하고 이행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자국 우선주의, 보호 무역정책의 얼굴을 띤 유럽판 IRA가 미국 IRA의 재판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이나 읊조린다면 이 역시 답답한 대처법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