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유통 규제가 e커머스시대 상생 전략일 수 없다

사설 기자
입력일 2023-04-19 14:19 수정일 2023-04-19 14:19 발행일 2023-04-2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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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유통 채널에 집중된 규제가 전자상거래·온라인쇼핑(e커머스) 업계로 확장되는 추세다. 대형마트 영업시간 규제와 월 2회 강제 휴무를 의무화한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을 제정한 지 12년이 흘렀다. 골목상권을 살리자는 의도에는 경제민주화라는 정치적 이념까지 섞였다. 중요한 건 전통시장 상인과 골목상권의 영세 소상공인들에게 유의미한 반사이익이 안 나타났다는 점이다. 시기적으로 이 기간에 온라인 플랫폼은 급격한 성장을 불러왔다.

지난 10년간 유통시장은 크게 보면 대형마트 대 전통시장에서 온라인 시장 대 오프라인 시장의 경쟁으로 바뀌었다. 대기업(대형마트)과 소상공인을 대립 관계로 몰아가며 갈등을 불러오는 정책은 폐기했어야 한다. 21대 국회가 출범하고 지금까지 발의된 유통법 관련 법안은 20개에 달한다. 정치권의 복잡한 표 계산에 얽히다 보니 유통 패러다임에 맞지 않는 겹겹의 규제는 오랫동안 그대로다. 의무휴업과 온라인 배송 금지 등의 유통 규제로 약자와의 상생이 가능하다는 발상부터 틀렸다. 새롭게 변화하는 유통산업 환경의 흐름을 정면으로 놓친 셈이다.

대형마트의 존재로 전통시장, 골목상권이 기능을 잃었다고 보는 이분법적 사고로 상생 전략을 짠 것부터 무리수였다. 규제 이후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점유율은 각각 24%, 33% 줄었다. 처음부터 정량적·구체적인 정책 목표가 없는 유통 규제였다는 방증이다.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모두 패자로 만드는 유통 규제의 실효성을 점검할 때다. 경제적 당위성이 있는 선택이 아님은 이미 판명이 났다고 본다. 대·중소 유통 상생의 방향을 규제에서 찾는 발상 자체가 문제다. 비유를 들면 유명 레스토랑의 문을 강제로 닫으면 분식가게를 찾는다는 식 아닌가. 이렇게 하면 기업과 소비자만 힘들게 한다.

대형마트와 e커머스 기업의 영업 규제가 경제유발효과, 고객 편의성 저하 등에 미칠 영향까지 생각하며 상생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유통학회가 19일 개최한 유통 규제 정책평가와 유통산업 상생발전 세미나에서도 효과는 적고 갈등을 키운 규제의 문제점과 대안들이 잘 제시됐다. 유통 구조를 무시하고 새 성장동력을 찾는 데 뒷전이다 보니 의도를 빗나가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모두 손해를 본다. 차별화되고 조직화 역량을 키우는 정책이 요구된다. 유통산업의 진흥과 발전, 소비자 선택 폭 확대와 편익 증진 등을 다각도로 살펴야 할 것이다. 유통 채널에 대한 규제 확장이 아닌 미래성장 산업으로 인식하고 상생과 산업발전을 꾀하는 게 합당한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