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국회 기재위 소위에서 이의 제기 없이 만장일치로 통과시킬 때만 해도 여반장, 즉 손바닥 뒤집기나 다름없이 쉽게 여겨졌다. 17일 기재위 전체 회의와 4월 본회의 처리는 일사천리로 진행될 분위기였다. 예타 대상 기준 금액을 총사업비 500억원, 국가 재정 지원 300억원 이상에서 각각 1000억원과 500억원으로 올리는 것은 합리적인 일면도 있다. 대규모 국가 재정이 투입되는 사업에 대한 예타 요건이 제도를 도입한 24년 전(1999년) 기준이란 측면에서는 설득력이 전혀 없지는 않다. 경제 규모도 커졌다.
그러나 총선 포퓰리즘이란 오해, 총선용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운가의 시선에서 보면 이야기가 확 달라진다. 도로, 철도 등 총사업비 1000억원이 넘지 않는 경우, 사업성을 안 따지고 추진한다면 선거에 유리한 지역 사업을 챙기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가 있겠는가. 2017년부터 5년간 예타 면제 사업에 들어간 재정만 무려 107조204억원을 헤아린다. 대규모 복지사업의 시범사업 우선실시, 예타 면제 사업 사후 적정성 재검토 등 개편 방안까지 내놓고 이러니 더 미심쩍다. 포퓰리즘(대중주의)이 아니라 포퓰러리즘(대중영합주의)으로 흘러가는 게 문제다. 재정 부담을 수반하는데 재정 준칙에 부정적 시각을 갖는 것은 무엇보다 이해하기 힘들다.
과학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현행 예타 면제의 일상화가 가져올 결말을 예측하기란 어렵지 않다. 예타 사업이면서 적자에 허덕이고 파산하는 등 예산낭비 사업은 셀 수 없이 많다. 본래 목적인 재정의 효율적 운용은 온데간데없다. 기준을 풀면 앞을 다퉈 선심성 지역 사업 챙기기에 뛰어들 게 뻔하다. 문재인 정부에서 사실상 유명무실화돼 재정 낭비를 부른 예타 제도를 손질하긴 해야 한다. 그러나 대형 신규사업의 무분별한 착수에 따른 예산 낭비 방지 차원에서는 그 방향이 꼭 완화는 아니다. ‘예타 완화법’ 처리의 잠정 보류 이후 최우선으로 할 일은 정부 지출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재정 준칙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