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EU 탄소국경 법안 승인, 산업계 지원 불충분하다

사설 기자
입력일 2023-04-26 14:01 수정일 2023-04-26 14:01 발행일 2023-04-2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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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가 돌이킬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너고 있다. 유럽연합(EU)이 25일(현지시간) 가장 다국적으로 적용되는 탄소국경제도 법안을 승인했기 때문이다. 탄소 감축이 명분인 EU 집행위원회, 유럽의회, 이사회의 정치적 합의안이 공식화됐다. 역내 수준의 탄소가격을 역외 수입품에 부과하면 우리 수출 기업에 큰 부담으로 돌아온다. 시행 전 전환기간은 있지만 대응엔 길지 않은 시간이다.

국내 기업에 미칠 영향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가령, EU 수출액이 제일 많은 철강(43억달러, 2021년)에 관세를 9.7% 부과하면 수출효과는 20% 이상 감소한다. 수출액 5억달러인 알루미늄도 탄소배출량이 높다. 시멘트(140만달러), 비료(480만달러), 전력(0), 수소(0)도 먼저 부과되는 품목일 뿐이다. 탄소배출량 산정과 인증서 감면 등 세부 이행법안 마련 과정에서 정부는 산업계와 상시 소통하고 EU 측과는 양자·다자회의를 거쳐 목소리를 내야 한다. 유기화학제품 등 향후 추가될 품목까지 고려한 탄소배출 감축 기술개발 노력도 필요하다. 탄소배출권 가격은 계속 상승할 것이 확실시된다.

제도의 목적은 탄소누출 억제에만 있지 않다. 역외 경쟁업체들의 탄소비용 지불로 역내 산업경쟁력 저하를 보완할 의도가 숨어 있다. 30년 전부터 재생에너지로 전환 중인 EU의 자국 산업 보호용이기도 하다. 안 그래도 우리 기후대응 성적은 카자흐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다음으로 낮은 낙제점이다. 국제 평가기관 저먼워치 등은 한국의 기후대응 순위를 60개국 중 57위로 친다. 그런데 기후위기 입법엔 여야 따로 없이 소극적이다. ‘퍼스트 펭귄’처럼 위험을 무릅쓰고 전진해도 시원찮은데 말이다. 정부의 제1차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계획도 좀 안이하다. 가격경쟁력, 수익성 저하와 직결된 문제인데 수출의존도가 높은 산업계에 대한 지원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

산업계의 역량을 키우면서 차별적 조항은 미리 집요하게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 탄소집약도가 높으면서 준비가 뒤늦은 우리로서는 전환기간(2023~2025년)이 지나도 어려움은 가중된다. 탄소집약적인 제품을 비EU국가에 수출하는 등의 수출 포트폴리오 전환을 포함해 지혜로운 대처법이 요구된다. 정부는 한·일 공동의 이익에 부합하는 대응을 강조하지만 일본도 국제기후클럽을 만든 G7 선진국그룹의 일원이다. 산업과 경제에 탄소장벽을 치겠다는 세계질서의 선언인 탄소국경제도의 다른 얼굴도 꼭 기억해둬야 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