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장경제칼럼

[시장경제칼럼] 금융 감독기관의 시중금리 규제는 폐지돼야 한다

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최근의 금리 상승기에 은행들이 차입자들의 부담은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의 배만 불린다는 비난 투의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5대 시중은행들이 과도한 ‘이자 장사’로 임직원들에게 1억 원이 넘는 연봉을 지급하고 있다는 보도가 그런 것이다. 이런 생각은 대부자는 강자이고 차입자는 약자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따라서 금융 감독기관의 금융시장 개입은 정의로운 조치로 여겨지곤 한다. 지금도 그런 상황이다.현재의 자원과 미래의 자원이 거래되는 시간시장(time market)에는 금융기관과 자본가가 참여한다. 현재의 자원은 사람들이 오늘 당장 소비할 수 있는 식품, 옷, 주택, 여타 소비재를 말하며 미래의 자원은 나중에 완성되는 소비재 생산에 기여하는 노동과 토지(원자재 포함) 서비스 등을 말한다. 그런데 노동자나 토지 소유자들이 당장 필요한 소비재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가진 미래의 자원을 사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들이 바로 금융기관이나 자본가이다.현재와 미래는 시간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금융기관과 자본가는 이러한 시간거래를 통해 이자 소득을 얻는다. 간접 교환에서 거래는 화폐를 통해 이뤄지므로 이자를 화폐 사용의 비용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자는 시간의 비용이다. 물물교환의 경우에도 이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금융시장은 현재의 일정 금액과 미래의 특정 시점에 받을 원금과 이자에 대한 청구권이 거래되는 시장이다. 차입자는 빌린 자금으로 현재의 자원을 구매하여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금융기관은 차입자가 미래의 자원을 활용하여 원금과 이자를 갚을 것을 약속하는 신용증서를 받는다. 즉 금융기관은 현재의 자원을 제공하고 미래의 자원이 생산에 기여할 몫에 대한 청구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금융기관이 미래에 완성되는 소비재를 직접 생산하는 활동을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이와 같은 시간거래에서는 거래가 탈 없이 완결돼야 원금과 이자를 확보할 수 있다.자본가는 자신과 남의 저축을 바탕으로 자본재를 획득하고 생산에 투입하여 미래에 완성되는 소비재를 팔아 이자 소득을 얻는다. 이 과정에서 자본가는 미래의 자원인 노동과 토지 서비스를 사고 그 소유자들에게 현재의 자원을 제공한다. 물론 위의 시간거래와 마찬가지로 생산과 판매가 탈 없이 이뤄져야 이자 소득을 얻을 수 있다.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시간시장에서 전 생산 과정에 걸쳐 활동하는 자본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금융기관이 차지하는 비중보다 훨씬 더 크다.이와 같이 금융기관과 자본가는 현재와 미래 간에 자원을 중개함으로써 이자 소득을 얻는다. 불확실성을 성공적으로 떠맡은 데 대한 보상인 기업가의 소득은 이윤이다. 금융기관이 이자 수입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은 영업을 잘 했다는 것이다.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제조업이나 다른 서비스업을 하며 돈을 많이 번 자본가가 사업을 잘 했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경제학에 ‘과대’나 ‘과소’, ‘착한’ 등의 개념은 없다.기준금리가 오름에도 불구하고 현재 시중금리가 낮아지는 것은 금융 감독기관이 시중금리를 규제하기 때문이다. 관치 금융이다. 물론 감독당국이 규제한다고 해서 금리가 낮아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금융기관이 시장 상황에 따라 금리를 조정·책정하는 자유와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당연히 현 정권이 지향하는 자유 시장경제에도 어긋난다.금리 인상으로 채무자들의 이자 부담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작금의 불황은 2007~8년의 금융위기를 전후해서 풀린 돈과 코로나19 사태로 풀린 돈이 원인이다. 지금 금리 인상으로 빚어지는 어려움은 불황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치러야 하는 비용이다. 돈을 푸는 정책에는 모두가 즐거워하고 거둬들이는 정책에는 저항이 많지만, 그 동안 형편없이 망가진 경제를 복구하기 위해서는 금리 인상 기조는 유지돼야 한다. 완급을 조정할 수는 있으나 인상 기조 자체를 멈추거나 섣불리 인하하는 것은 불황의 터널을 더 길고 깊게 할 뿐이다.마지막으로 이자율을 낮게 규제하면 신용이 낮은 사람들은 제도 금융권 밖으로 내몰려 더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된다는 사실은 더 이상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의도하는 선보다 의도하지 않은 악을 낳을 뿐이다.지금까지 엄청나게 쌓인 돈 쓰레기(?)가 정리돼야 경제가 회복의 길로 접어든다. 기준금리 인상은 돈 쓰레기를 정리하는 과정이므로, 그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감독기관의 시중금리 규제는 폐지돼야 한다. 한편에서는 기준금리를 올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시중금리를 낮게 규제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은 정책의 엇박자이다.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

2023-01-23 11:10 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

[시장경제칼럼] 보험업법 개정안의 위헌성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일명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새해에도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이 개정안에는 보험사가 보유한 주식을 시가로 평가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즉, 삼성 총수 일가가 소수 지분으로 삼성을 지배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총수 일가가 삼성생명 유배당 가입자들에게 배분해야 할 돈을 지배 재원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이를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대체 이 법의 보호법익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보호법익이 없는 법률은 위헌이기 때문이다. 특히, 보험업법처럼 보험사들의 투자와 영업행위를 제한하고 위반시 행정벌과 형벌을 가하는 공법이라면 더욱 그러하다.삼성생명법이 아니어도 대기업 총수 일가는 1987년 공정거래법 개정 이후 경제력 집중억제라는 법리 하에 계열사 지배권을 엄격히 규제받아 왔다. 더욱이 삼성생명은 2016년부터 시행된 금융사지배구조법상의 계열사 지배권 통제도 추가로 받아 왔다.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경제력 집중규제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너무 과도하다는 지적을 해왔다. 예를 들어 선진국은 대기업이 계열사를 지배하더라도 경쟁제한 효과가 발생한 경우에만 규제하는 “시장집중규제 정책”만을 입법화해 왔는데, 우리나라는 자산규모가 크면 사전규제하는 일반집중규제와 계열사지분 소유에 대한 소유집중규제정책까지 입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금융사지배구조법까지 금산분리라는 구시대적인 잣대를 가지고 규제를 하니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은 당연한 것이다.그럼에도 일부 야당의원들은 이것만으로 부족하니 추가로 보험업법을 개정해서라도 총수일가가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현행 보험업법은 보험사가 특정 계열사의 주식을 총자산의 3% 이상 보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사실 이 규정 자체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물론, 고객이 맡긴 보험금액을 위험한 계열사에 과도하게 투자해 부실화를 막는 것은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반대로 건전한 계열사에 투자하는 것도 제한하는 것은 보험가입자들의 자산가치 증대 기회를 차단한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우리 헌법 제10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3%룰인 것이다.그럼에도 이 3% 룰만으로는 부족하니 추가로 더 규제해야 한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일각에서는 보유주식 평가시 은행이나 증권사는 시가로 평가하는데 유독 보험사만 취득원가로 평가해 실질적으로 3%를 넘기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일률적 규제라는 덫에 걸린 시각이다.우선, 생명보험사와 은행, 증권사는 업무 특성이 다르다. 삼성생명의 경우에는 인보험을 주로 다루는 회사라는 점에서 보험료를 납입하는 기간이 수십년에 달할 정도로 장기간의 계약을 전제로 한다. 당연히 보험금지급도 보험료 납입 당시의 산정기준으로 명확히 정해야 보험금지급 시 구체적인 보험금액을 산정할 수 있다. 이는 생명보험사의 경우 보험료를 수령한 당시의 자산취득 가치를 기준으로 장부가를 기재해야 보험사고 발생시 지급할 보험금액이 명확해 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왜 ’보험업감독규정’이 보험사에게만 분자가 되는 보유자산은 취득원가로, 분모가 되는 총자산은 시가로 평가하도록 한데는 나름 이유가 있는 것이다.그리고 삼성생명이 소유한 지분으로 총수일가가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것을 지적하는 것도 논란의 여지가 크다. 여기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입법을 통해 삼성총수 일가의 삼성전자 지배권을 박탈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물론, 총수 일가가 지배권을 행사해서 삼성전자의 경영실적이 악화되었다면 이러한 비판이 나름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굳이 삼성생명법이 아니어도 외국인 주주들이 나서서 경영권을 박탈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이 보험법 개정안은 보호법익이 없는 입법안으로서 과잉금지의 원칙 중 입법목적의 정당성은 물론이고 방법의 적절성, 피해의 최소성, 법익 균형성 모두를 위반한 입법이 될 수 있다.언론보도에 따르면 삼성생명법이 입법이 되면 삼성생명은 약 22조원어치의 삼성전자 주식을 일정한 기각 내에 매각해야 한다고 한다. 이 기간동안 삼성전자 주가는 저평가될 수밖에 없으며 삼성생명 보험가입자들에게 그 부담이 어떠한 형태로든 전가될 수밖에 없어 법익균형성 원칙을 위반할 여지 또한 크다.지금이라도 좀 더 심도있는 논의를 거친 후 다른 대안을 찾는 입법안이 제출되어야 할 것이다.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2023-01-16 08:37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시장경제칼럼] 재정건전성 제고 방안

황상현 상명대학교 경제금융학부 교수지난해 12월 24일 국회를 통과한 2023년 예산에 따르면 올해 국가채무는 1134.4조 원이 될 전망이다. 그리고 올해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차감한 통합재정수지는 13.1조 원 적자로,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등 4대 보장성 기금을 차감한 관리재정수지는 58.2조 원 적자가 될 전망이다. 올해 GDP대비 국가채무비율도 예산상 49.8%이지만 지난해 12월 21일 정부가 발표한 수정경제전망을 반영할 경우 50.4%로 상승한다. 지난 정부로부터 지속된 확장재정 운용에 따라 재정적자가 누적되고 성장률이 둔화되면서 국가채무가 급증하여 GDP의 절반 수준에 육박하게 됐다. 정부가 지난해 9월 발표한 재정준칙 도입방안을 담고 있는 법안은 국회에서 아직 논의되지 못한 상황이다.코로나19 충격에 따른 재분배, 그리고 저출산#61598;고령화로 재정지출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어 이를 위한 재원부족과 함께 재정건전성 확보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 따라서 우선 향후 복지정책을 수립하는데 신중을 기하여 구조적인 재정지출이 급격히 증가하지 않게 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분별한 복지지출 증가를 지양하고 부정수급을 막아내는 노력이 필요하다.이와 동시에 법인세, 소득세 및 소비세 등 주요 세목별 세부담 수준을 합리적으로 조정하여 효율적인 조세시스템의 구축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키며, 경제 선순환 구조 하에서 재정수입을 안정화하는 것이 요구된다. 궁극적으로 과도한 조세부담은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서 세원 축소로 재정수입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없다.구체적으로 법인세는 누진세율 체계가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재분배 기능이 없고 전가와 귀착의 정도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세율체계를 낮추고 세율을 인하하여 국내 자본유출을 막고 해외 자본유입을 유도하여 국내 투자 및 고용 촉진과 함께 더 높은 경제성장을 달성해야 한다.소득세는 재분배 기능이 미약한 것이 문제이지만 그 원인이 고소득층의 낮은 세부담이 아니라 전 소득계층에 걸친 과도한 비과세·감면으로 인해 세수를 확보하는 세제로서 기능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소득세의 세수확보 기능을 회복하는 소득세 정상화가 필요하다.소득세는 세입기반 확충을 위해 ‘국민개세주의’ 측면에서 전소득층을 포함하는 비과세·감면 축소 및 합리화가 필요하다. 또한 세입기반 확충뿐만 아니라 과세효율 제고를 위해 소득세 인하에서 부가가치세 인상으로의 세수중립적 전환 등 부가가치세의 역할 확대를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다른 국가들에 비해 우리나라 부가가치세는 도입 당시 그대로의 낮은 세율을 유지해 왔기 때문에 세율인상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다. 조세의 효율성과 단순성에서 부가가치세는 법인세 또는 소득세보다 더 나은 평가를 받는다. 일반적으로 부가가치세 부담이 역진성을 가진다고 알려져 있지만 우리나라 부가가치세는 대체적으로 중립적이며 미미한 재분배 효과를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또한 국가부채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향후 경기대응성 확보와 동시에 재정건전성 제고에 효과적인 재정준칙이 도입돼야 한다.우리나라는 재정건전성 제고를 위해 총지출 규모 관리(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계획기간 중 총지출 증가율을 총수입 증가율보다 낮게 관리)와 Pay-go 원칙(의무지출의 증가를 가져오는 신규법안 입법시 재정수지에 영향을 초래하지 않도록 의무지출의 감소 또는 세입의 증가를 가져오는 다른 법안이 함께 입법화되도록 하는 제도)의 실효성 제고 이외에 특별히 다른 방안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은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 법적 근거 및 구속력을 지닌 재정준칙과 함께 탄력적 재정운용을 위해 경기조정 또는 구조적 지표를 이용하는 재정준칙을 적용하거나 예외조항을 마련해 왔다. 우리나라도 향후 경기대응성 확보와 동시에 재정건전성 제고를 위해 구조적 재정수지(경기변동에 따른 수입 및 지출의 자동적인 증가부분을 제거한 후 계산된 재정수지) 준칙과 함께 채무 준칙이 우선 검토되고 법적 근거 및 구속력을 가지면서 도입될 필요가 있다.요컨대 향후 재정건전성 제고를 위해 무분별한 복지지출 증가를 지양하는 등 복지정책의 수립에 신중하여 구조적인 재정지출의 급격한 증가를 억제하고, 효율적인 조세시스템을 구축하여 성장을 촉진하고 재정수입을 안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와 더불어 국가부채 수준의 합리화를 위해 경기대응성 확보와 재정건전성 제고에 효과적인 재정준칙이 도입되어 운영돼야 한다.황상현 상명대학교 경제금융학부 교수

2023-01-09 08:36 황상현 상명대학교 경제금융학부 교수

[시장경제칼럼] 수도권, 아파트가 가져온 경쟁력

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한국의 에너지 산업을 들여다볼 때 잘 이해되지 않았던 것은 연료 대부분을 수입하면서 에너지 소매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것이다. 물론 전기요금과 같이 정부가 가격을 규제한 측면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전기요금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점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궁금증이 풀린 것은 구글에서 여러 도시의 주택가 사진을 서로 비교하며 살펴본 후다. 미국과 뉴질랜드의 주택가는 도심과 달리 비교적 집과 집 사이가 널찍하게 떨어져 있다. 인구밀도가 꽤 높은 동경의 주택가는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그런데 서울의 주택가 풍경을 보고는 아연실색했다. 아파트로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집들이 빽빽한 정도가 아니었다. 수직으로 쌓여 있었다.우리 수도권의 가장 큰 특징적 풍경은 아파트다. 여기에는 물론 아파트에 대한 한국 국민의 높은 선호도가 깔려 있다. 외국에서는 아파트를 고급주택으로 쳐주지 않는다. 한국은 예외다. 아파트 브랜드도 ‘저택’(맨션) → ‘성’(캐슬) → ‘왕궁’(팰리스) → ‘신전’(판테온) 등으로 진화하지 않았나?아파트, 연립주택, 다세대주택과 같은 공동주택의 비율이 수도권은 90%에 달한다. 한국은 전력 생산에 필요한 연료를 대부분 수입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보다 발전단가가 비싸다. 그러나 수도권의 높은 공동주택 비율로 인해 배전 비용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낮다. 미국은 집과 집 사이가 멀어서 전기를 배달하는 비용이 크다.그러나 우리의 경우 아파트 단지에만 연결하면 수백 세대의 전기가 동시에 켜진다. 전기 배달 비용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싼 셈이다. 개략적으로 외국은 전력 공급 비용의 약 40%가 송배전 비용이다. 그런데 한국은 20% 수준이다.이런 점은 한국 수도권의 광역화된 지역난방 네트워크에서도 나타난다. 뜨거운 증기(열)를 배달하는 지역난방은 본래 열 손실이 커서 유럽과 미국에서도 발전소 인근이나 대학 캠퍼스 등 좁은 지역에서만 나타난다. 그러나 수도권은 아파트 비중이 커서 집과 집 사이의 평균 거리가 가깝다. 열 손실이 크지 않도록 서로 붙어서 보온을 해 주는 셈이어서 지역난방의 광역화가 가능하다.필자가 개인적으로 조사한 세계 주요 도시의 주택밀도(주택수/km2)에 따르면 서울이 파리에 이어 2위를 차지하였다. 그런데 파리의 행정구역은 도심 한가운데만을 가리키고 교외는 제외한다. 사실상 전 세계 주요 도시 중에서 서울이 가장 주택밀도가 높다는 말이다.한국은 세계에서 IT 경쟁력이 가장 뛰어나다. 인터넷 보급률과 속도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의 IT 경쟁력은 다름 아닌 우리 수도권의 빽빽한 아파트 단지에서 온 것이다. 수도권에는 한국 인구의 절반인 2천5백만 명이 살고 있다. 필자가 2008년 미국을 연구년으로 방문했을 때 인터넷을 신청하였는데 1주일 이상 걸렸고 그 비용도 적지 않았다.게다가 인터넷 속도도 너무 느려서 아주 답답하였던 기억이 있다. 우리의 인터넷과 케이블 TV 사용료가 싼 것도 수도권의 주택밀도가 높기 때문이다. 지역독점으로 운영되기 쉬운 인터넷과 케이블 TV도 여러 업체가 경쟁하고 있다.수도권의 장점은 대중교통에서도 나타난다.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우리 수도권만큼 대도시지역을 지하철, 시내버스, 광역버스, 마을버스, 기차 등이 짧은 간격으로 빠르고도 값싸게 운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워싱턴 DC 교외에서 시내로 전철을 타고 다녀오면 왕복 30달러가 넘게 나온다. 배차 간격도 20분이 넘는다.그런데 수도권에서는 배차 간격이 대부분 5-10분 이내이며 가격도 4천 원이 채 안 나온다. 10배 정도 차이가 난다. 시내버스는 더 하다. 요금은 둘째치고 미국 대도시도 교외 지역으로 하루에 10회 이상 배차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물론 도로와 지하철 등 기본 인프라가 잘 구축된 것이 한국 수도권 경쟁력의 배경이다. 그러나 그 비용을 수도권의 엄청난 인구와 조밀한 주택이 분담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상대적으로 값싼 요금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어서 더 많은 사람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이 이용하여 그 경쟁력이 올라갈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었다.도로와 마찬가지로 철도, 통신망, 전력 네트워크, 상하수도망, 가스 배관망, 지역난방 네트워크, 케이블 TV 등 여러 인프라를 값싸고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이유도 인구 1인당, 한 가구당 부담해야 하는 인프라 비용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수도권은 국제 공항도 두 개나 있고 고속철도망, 고속버스를 통해 전국과 연결되어 국내외적으로 접근성이 뛰어나다. 바다에 접해 있고 북한산, 청계산, 관악산 등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녹지 비율도 높아 여가활동에도 최적이다. 첨단 장비를 갖춘 종합병원도 곳곳에 있고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진과 의료서비스를 싼 가격으로 누릴 수 있다.이와 같은 수도권의 경쟁력을 이끈 높은 주택밀도는 급속한 산업화로 수도권에 집중된 인구와 주택문제를 단기간에 공급 가능한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으로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그 결과 한국의 수도권은 ‘집적의 경제(economies of agglomeration)’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수도권 경쟁력의 8할은 아파트가 가져왔다.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2023-01-02 09:00 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시장경제칼럼] 국민연금, 정부로부터 독립이 필요하다

김영훈 경제지식네트워크 사무총장4차 국민연금 장기재정 추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57년에 고갈된다. 기금고갈 시점에서는 급격한 연금보험료 인상이 있을 수밖에 없어, 연금개혁이 시급하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계속되고 있다.연금개혁은 정치적으로는 ‘독이 든 성배’다. 박근혜 정부는 공무원 연금 개혁을 시도하면서 10% 가까운 지지도 하락을 경험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연금개혁을 건드리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는 3대 개혁의 일환으로 연금개혁을 내세웠지만 세대 간 형평을 이루는 연금개혁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국민연금의 구조적 개혁과 함께 논의되어야 하는 것은 정부로부터의 독립이다. 900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은 언제나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에게 좋은 먹이감이다. 그동안 국민연금을 임대주택 사업, 노인장기요양시설확대등에 활용하자는 주장이 계속되어 왔다.현재 국민연금의 복지사업 투자는 매년 신규 여유자금의 1%이내에서 가능하지만, 이 역시 수익률은 해당기간 국고채권 수익률 이상을 강제하고 있다. 국민연금기금은 복지사업을 위한 기금이 아니다. 정부나 시민단체가 해야할 일에 손쉽게 국민연금이 동원되는 시도는 국민연금의 수익성을 훼손할 수밖에 없다.정치적 외풍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국민연금이 처한 현실이다. 과거 김성주 전 이사장은 20대 총선에서 여당 후보로 출마 후 낙선한 전력이 있다(전북 전주). 문재인 정부 출범 후 2017년 11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임명됐지만, 임기 1년을 앞두고 총선출마를 위해 사임했다. 이후 8개월이나 공석이었던 이사장 자리는 2020년 4월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 후 낙선한 김용진 전 기재부 차관이 차지했다. 국민의 노후보장을 총괄하는 국민연금 이사장 자리가 총선 낙선자를 위한 배려석이 된 꼴이다.대외적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기금운영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기금운용본부장(CIO)의 위상도 국민연금이 처한 현실을 보여준다. 1999년 기금의 전문적 운용을 위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설립된 이후 총 8명의 기금운용본부장(CIO)이 재직했다. 이중 임기를 마친 사람은 조국준, 이찬우 CIO 단 두명에 불과하다.조국준 CIO의 경우 임기중 사표를 제출하며“금융 비전문가인 관료들의 관습과 지배 아래서 나의 법적 지위와 권한으로는 기금을 안전하게 지켜낼 수 없다”밝히기도 했다.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1%만 높아져도 기금고갈 시점은 9년이 늘어난다. 우수한 인력들이 국민들의 노후자금을 운영해야 하지만 지방발전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국민연금 이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인력유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국민연금 의결권 확대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은 2015년부터 의안분석 및 배당정책 평가 전문기관을 선정해 의결권 행사와 배당 관련 주주권 행사에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상법상 주총공고는 2주일 전이고, 통상 국내 기업들은 2~3일 사이 모두 비슷한 시기에 주총을 개최하고 있는 만큼 짧은 시간안에 한정된 인력으로 세밀한 분석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의결권자문기관의 자문내용이 객관적이고, 이게 걸맞는 책임이 있는지는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2014년 SEC는 이해상충을 발생시킬 수 있는 중요한 관계 및 분석대상 안건에 대해 의결권 자문사가 갖는 중대한이익(material interests)에 대해 공시하도록 하는 지침을 발표했고, 2017년 12월 미 의회는 의결권 자문사의 등록을 의무화 하는 법안(Corporate Governance Reform and Transparency Act)을 하원에서 통과시킨바 있다.국민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수탁위)는 과거 “이사 선임으로 인해 아시아나 인수계약 체결과정에서의 실사 미실시, 계약상 불리한 내용 우려 등 주주권익 침해 행위에 대한 감시 의무가 소홀해질 가능성이 있다”며 조원태 대한항공 대표이사의 사내이사 선임반에 반대했지만, 정작 국민연금은 장내 매수를 통해 대한항공 지분변경을 공시한바 있다(8.11%-13.87%). 주주권익을 침해되는 회사 주식을 자신들이 추가 매입한 꼴이다.국민연금의 정치적인 독립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의결권 확대는 연금사회주의 우려를 확대시킬 수 밖에 없다. 앞으로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활용해 상생기금, 이익공유제, 동반성장 등 정부가 원하는 정책에 기업의 참여를 강제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이 피해는 모두 국민들에게 전가된다. 정부와 정치권의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행 복지부 산하로 되어 있는 국민연금을 독립시키는 방안이 조속히 논의되어야 한다.김영훈 경제지식네트워크 사무총장

2022-12-26 09:00 김영훈 경제지식네트워크 사무총장

[시장경제칼럼] 국민연금의 개혁과 관련한 몇가지 사항

국민연금연구원이 최근 개최된 국민연금 전문가 포럼을 통해 장기 추계 시나리오에 따른 국민연금 재정안정화 방안을 발표한 후 제1차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연금의 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며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정부의 공식적인 개혁안이 아직 발표되지 않았으나 제1차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비추어 보면 국민연금 개혁안의 대부분은 국민연금연구원이 발표한 국민연금 재정안정화 방안과 유사하게 보험료율의 인상과 수급개시연령의 상향으로 기금의 고갈시점을 늦추는데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굉장히 복잡한 내용으로 생각될 수 있으나 기금의 고갈시점을 늦추기 위한 개혁방안은 매우 간단하고 기계적인 산출만을 요구한다. 한 예로 국민연금연구원의 재정안정화 방안은 현재의 보험율과 수급율이 유지될 경우 2042년에 국민연금 수지가 적자로 전환되어 2057년에 기금이 고갈된다는 기본 시나리오에 근거한다. 반면 현재와 달리 보험요율을 2025년부터 12년 간 0.5%pt씩 인상시켜 현재 9%인 보험요율이 2035년에 15%로 인상된다면 국민연금 수지가 적자로 전환되는 시점은 2056년으로, 고갈되는 시점은 2073년으로 16년 늦추어지며, 수급개시연령을 2년 상향 조정하면 고갈 시점을 추가로 2년 더 늦출 수 있다는 것이 국민연금연구원이 발표한 재정안정화 방안의 골격이다. 가입자에게 더 많은 보험료를 걷으나 더 늦게 지급해 기금의 고갈 시점을 늦춘다는, 즉 더 많이 걷고 더 적게 내주는 방식으로 전환해 국민연금으로 인한 미래세대의 부담을 어느 정도 해소시킨다는 매우 단순한 골격에 기반을 둔 개혁방안이다.기존 가입자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되어 인기가 없고 거부감이 심할 수밖에 없는 이러한 기금의 고갈시점 지연방안이 추진된다는 점에서 현 정부의 강력한 정치적 의지와 용기는 당연히 칭찬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더 많이 걷고 더 적게 내주는 방식으로 추진되는 기금의 고갈시점 지연방안이 국민연금 개혁의 본질이 될 수도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기금의 고갈시점은 그 시점이 2050년이 되었던, 2100년이 되었든 간에 언젠가는 항시 도래한다. 정치적으로 칭찬받아 마땅한 개혁방안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더 많이 걷고 더 적게 내주는 방식의 개혁방안이 주판을 되었든 더 뚜들겨 보는 매우 단순한 방안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을 통한 국민과의 계약을 어떻게 최대한 이행할 수 있느냐와 기금이 고갈되어도 어떻게 국민의 노후소득이 최대한 보장될 수 있느냐가 항시 국민연금 개혁방안의 본질이어야 한다.특히 국민연금의 개혁은 현재 국민연금을 통해 약속된 계약을 최대한 이행할 수 있는 방안의 모색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며 약속된 계약을 최대한 이행하기 위해 추진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기금의 운용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즉 국민연금의 진정한 개혁은 현재의 기금운용방식이 과연 최대한의 수익률을 달성하기 위해 적합한지를 따져보는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기금운용이 기금의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적합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을까?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는 그렇지가 않다. 한 예로 국민연금의 기금운용본부는 정치적인 이유로 금융시장과는 무관한 전주로 이전해 갔으며 이로 인해 수익률의 극대화를 위해 필수적인 인적자본의 유출은 점차 심해지고 있다. 또한 국민연금의 기금운용본부가 소위 세계금융시장의 최대의 ‘갑’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기금운용본부로 이직을 고려하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기금운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아주 허황된 꿈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국민연금은 사실 매우 변태적인 조직으로 짜여 있다. 국민연금 보험료를 걷고 수령액을 지급하는 행정조직인 연금공단과 기금을 운용하는 금융조직인 기금운용본부를 마치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는 조직으로 간주해 기금운용본부가 최적의 인적자원을 유치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는 것만 봐도 금세 알 수 있다. 과거에 어떤 금융회사에서 어떠한 임무를 수행하고 어떠한 능력을 발휘했는지를 전혀 알 수 없는 블라인드 채용 방식으로 기금운용본부의 신규직원이 뽑힌다고 생각하면 어쩌면 현재의 기금운용본부가 보여주고 있는 수익률은 기적적인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오죽했으면 월스트리트저널은 2018년에 돼지와 가축의 오물냄새로 둘러싸인 사무실에서 근무한다는 것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의 직업을 설명하는 요건이라 했을까?어느 능력 있는 금융전문인력도 가기 싫어하고 뽑을 수도 없는 조직을 만들어 기금의 수익률이 곤두박질치게 만들어 두고 국민에게는 더 많이 걷고 더 적게 내줄테니 이해하라고 하면 그것을 과연 개혁방안이라 할 수 있을까? 국민연금의 개혁은 그저 보험료율, 수급개시연령을 조정해 주판을 몇 번 더 뚜드려서 나오는 게 아니다. 국민에게 최대의 혜택을 누리도록 정부가 최대한 노력을 했으나 부족한 면이 어쩔 수밖에 없었다고 솔직하게 이해를 구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주판을 다시 한 번 뚜드리기 전에 소중한 국민연금기금을 정치적으로 오용하고 있지는 않는지 혹은 내부적으로 잘못된 점은 없는지부터 따져봐 달라는 게 너무나 큰 기대가 아니길 바란다.윤상호 한국지방세연구원 연구위원

2022-12-19 13:39 윤상호 한국지방세연구원 연구위원

[시장경제칼럼] 혁신, 경제성장, 지역정책

설윤 경북대 교수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고 있는 인류는 물질적 삶의 질의 가파른 상승을 경험하고 있다. 현재 경험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발전은 재화 및 서비스의 개발, 생산 공정의 효율적 개선 등에 관한 지식의 개발 및 상업화의 결과이다. 수많은 혁신의 연속을 통해 새로운 상품 및 공정에 대한 계획과 생산에 대한 지식을 축적한다. 혁신을 통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삶의 방식 또한 변화하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혁신의 개념은 크게 두 가지 특징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첫 번째로 혁신은 개발된 새로운 지식의 첫 상업화로 제품 또는 공정에 관한 새로운 지식의 개발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둘째, 혁신은 우연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이 아니라 구체적인 목적을 가진 활동이기 때문에 혁신의 본질적인 목적은 상업화를 통한 기업의 이윤 추구이다. 따라서, 혁신은 재화 및 서비스 제품 또는 제품의 생산에 관여하는 공정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상업화하여 이윤을 추구하는 활동으로 정의된다. 즉, 혁신의 중심 주체는 기업이며, 혁신의 목적은 이윤 창출이다.혁신이론의 창시자인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를 기반으로 지속적인 RD 투자를 통한 기술의 응용과 확산이 산업 및 국가 경쟁력을 견인할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 혁신이 산업 및 국가의 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으므로 혁신과 경제성장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경제성장에 대한 태두인 솔로우-스완모형은 기술 진보만이 경제성장의 핵심적인 요소임을 설명하는 외생적 성장이론이다. 하지만 기술진보의 발생과정을 설명하지 못한 한계점으로 지적된다.외생적 성장이론의 약점을 보완하는 Romer의 내생적 성장이론은 혁신을 통한 독점적 이윤으로 인한 끊임없는 혁신 투자 및 기술 진보를 통해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게 됨을 보였다. 따라서 혁신 활동이라는 채널을 통해 경제 성장 및 경제구조의 변화 방식에 대한 결정과정을 설명하였다. Aghion and Howitt의 이론은 기업은 동일 종류 제품의 품질 개선을 통해 경쟁하여 품질의 사다리를 한 단계씩 오르는 수직적 혁신모형으로 설명하였다. 이와 같은 현상은 혁신이 기존의 제품을 기반으로 하여 혁신으로 신제품이 기존 제품의 가치를 대체한다는 점에서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를 모형화한 것이다.상기 두 이론은 혁신을 통한 독점적 이윤의 가능성과 지식의 파급효과가 핵심이다. 따라서 기업은 신제품 혹은 기존제품에 대해 품질이 개선된 제품을 개발함으로써 시장에서 독점적 이윤을 누리고 이러한 독점적 이윤의 가능성으로 인해 기업은 혁신활동에 투자한다.혁신과 경제성장에 대한 연구는 기업의 혁신활동이 기술진보의 원천이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견인함을 설명하고 있으나 혁신과정의 구체성에 대한 설명은 최소화되어 있다. 혁신 활동의 효과성이 어떠한 요소들에 의해 어떠한 방식으로 결정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혁신과정을 탐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공간과 관련된 지역 관점에서 특히 혁신주체들이 공간적으로 집적하는지 그리고 그 효과가 어떤지에 관련된 혁신주체 간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고찰하는 것에 주목할 이유이다.지역혁신정책은 단순히 이론적 차원의 혁신을 지역에 구현하는 개념이 아니라 공간, 시스템, 네트워크 등 다양한 요소를 포함한 개념이다. 지역혁신정책은 장소를 기반으로 하는 혁신정책이기 때문에 산업클러스터정책과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다. 집적을 강조하는 클러스터이론은 지역혁신시스템 정책으로 연결되면서 타지역과의 연계를 위한 네트워크 형성이 보다 중요하게 부각된다.4차 산업혁명에 따른 산업융합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산업 간 연계를 위한 네트워크 형성이 더욱 더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변화는 기존 지역혁신기반 구축에서 지역 내·지역 간 네트워크 활성화, 산업전환을 위한 혁신주체들 간의 상호작용을 강조한 플랫폼 정책으로의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지식 파급 촉진의 관점에서 4차 산업혁명이 지역혁신정책에 주는 시사점은 중요하다.첫째, 혁신은 새로운 기술 지식에 대한 가치 판단 및 시장 전망이 불확실하고 기술 지식이 그 어느 때보다 유동적인 산업전환의 초기에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새로운 기술의 융복합이 요구되는 4차 산업혁명기에는 기술 지식의 가치 평가에 대한 넓은 혼재가 예상된다. 따라서 위험을 감수하는 환경 속에서 기술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창업 및 중소 기업의 역할이 더욱더 중요해질 것이다.둘째, 사회적 자본은 집단 내 구성원들의 집합적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규범과 제도, 네트워크로 정의된다. 따라서 사회적 자본은 지역 내 혁신주체들이 서로 간의 상호 필요성을 발견하고 협력관계를 구축하며 투명성과 책임성을 제고하는 데 기여한다. 4차 산업혁명기에 지식과 아이디어는 가장 중요한 혁신 요소이며 산업 및 기술 간 융복합이 더욱 강조된다. 사회적 자본의 형성과 확충을 촉진하는 프로그램의 개선이 필요하며 정책기관의 역할 강화도 요구된다.마지막으로 혁신정책은 다양한 공간 범위를 갖고 있으며 지금까지 혁신에서 지식 파급의 역할과 파급의 지역화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지식 파급의 효과가 극대화될 수 수준의 공간적 범위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러한 최적의 관점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공간 범위를 대상으로 하는 정책들 간의 연계와 조화이다.4차 산업혁명의 환경은 기술의 융복합을 통해 새로운 기술 지식의 창출의 기회를 지역 밖에서 찾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으므로 혁신 기회는 지역 내로 제한될 필요가 없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기의 지역혁신정책은 지역 간 혁신 협력의 필요성과 수월성을 주요 과제로 설정하고 이를 지원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의 마련이 시급하다.현재 국가 차원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지방소멸이다. 지방소멸의 핵심은 지방의 인구감소인데 인구감소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지방의 고용증대, 특히 청년층을 위한 혁신기업의 유치를 통해 달성할 수 있다. 단순한 형태의 공공기관이전, 기업유치투자를 통한 고용증대에는 한계가 있다. 지역혁신정책 아래 지속적인 자립적 성장이 이루어질 때 지방소멸을 막을 수 있다.설윤 경북대 교수

2022-12-12 14:35 설윤 경북대 교수

[시장경제칼럼] 책임의 집단화와 문명의 퇴행

송상우 보현한의원 원장책임은 무척 성가시다. 누구든 권리는 최대한 누리고 싶지만 그에 수반되는 책임은 최소화하길 원한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전체주의적 이념에 끌리는 이유다. 자유주의 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스스로의 복지에 대한 책임은 기본적으로 개인 각자에게 있다고 본다. 반면, 사회주의나 복지국가 이념은 공동체나 국가가 개인의 복지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역사는 인간이 때때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근본적인 자유조차 포기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복지의 관점에서 건강과 생명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근본적인 가치다. 따라서 이런 가치들에 수반되는 책임은 그만큼 무겁다. 현대 사회에서 이런 가치들에 대한 책임은 이미 개인에서 국가로 크게 이전된 상태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 관련 예산은 2022년에 100조를 넘어 그 어떤 국가예산보다 비중이 크다. 국내 법률시장 규모가 6~7조원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엄청난 규모다.국가 예산이 큰 분야일수록 지대추구가 심하고, 해가 갈수록 의약계열 학과의 인가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최근 몇 년간 소위 문재인 케어라 불리는 지난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정책과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의료영역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더욱 커지고, 급격한 보험료 인상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 적자는 앞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현상은 국가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집단주의적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안전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질병과 마찬가지로 건강과 생명에 직결되기 때문에 역시 국가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안전과 관련된 사고를 국가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이미 하나의 유행이 되어버렸다. 최근 발생한 이태원 사고도 이런 경향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누군가의 지시나 통제가 아닌 자발적 행동의 결과로 발생한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야당과 유가족을 중심으로 정부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하지만 이런 책임의 집단화 또는 국가화가 과연 옳은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정부는 결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며, 일반적으로 개인보다 더 뛰어난 예견력과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행동에 수반되는 비용과 위험에 대한 판단을 행위의 당사자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국가는 각 개인이 처한 상황의 특수성과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각 개인이 가진 고유한 지식과 능력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따라서 책임이 효율적이기 위해서는 개인의 책임이어야 한다. 책임과 자유의 불가분성을 고려하면 개인의 책임일 때 각자가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활용하여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행동의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문제일수록 국가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비효율적이다.모두의 소유는 그 누구의 소유가 아닌 것처럼, 책임을 집단화하면 결국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하고 동시에 책임질 수 없게 될 것이다. 안전에 관한 책임을 국가에 이전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행위는 국가의 통제 영역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어떤 정치인이나 관료도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에 대한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고자 할 것은 분명하다.따라서 통제 영역은 필연적으로 매우 좁을 수밖에 없고, 그 속에서 개인의 자유가 숨 쉴 공간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처럼 확보되지 못한 건강과 안전에 대한 욕구가 국가에 대한 무제한적 청구권을 얻게 되면 개인의 자유와 책임은 종말을 맞을 것이다.삶은 완전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하루하루 수많은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의 삶에서 우연히 발생할지도 모르는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우리의 한정된 시간과 노력을 과도하게 투입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국가와 공동체의 자원도 희소한 것은 마찬가지다. 경제발전을 통해 국가와 개인이 아무리 풍족해져도 희소성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우연적 사고에 국가가 무제한적인 책임을 지는 잘못된 선례가 일반화되면 한정된 자원은 낭비되고 말 것이다. 이것은 결국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기회의 상실을 의미한다. 이 사회에는 예견가능한 위험에 처해 있지만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미 너무도 많다.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해 9·11 테러 조사 예산보다 훨씬 많은 수 백 억의 세금이 투입된 세월호 조사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더 안전해졌는지는 불확실하지만, 거기에 투입된 자원이 긴급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쓰여 더 많은 생명을 살리지 못했다는 점은 확실하다.감당하기 어려운 결과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회피하려 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다. 마치 아이들이 엉뚱한 사고를 치고 부모가 추궁할 때 보여주는 태도와 유사하다. 본능이 충족될 때 인간은 만족감을 느낀다. 이것이 집단주의적 이념의 추종자들이 입버릇처럼 ‘너의 탓이 아니다’ 말을 반복하는 이유다.책임회피라는 원시본능을 충족시켜 듣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이런 달콤한 언어는 정치에서 표는 구걸할 수 있을지언정 개인과 사회의 존속과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책임회피 성향이 가끔 좌파 이념가들이 대중에게 주입한 것으로 오해되지만 이것은 결코 학습의 결과는 아니다. 오히려 어떤 일에 내가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태도야말로 교육과 문명화의 결과다. 문명의 발전이 집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개인적 자유가 확대되는 과정이었다면 책임이 집단에서 개인에게 이전된 것 또한 진보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따라서 책임의 집단화는 어떤 의미에서 문명의 퇴행이다. 이념적 측면에서 사회주의나 복지주의가 책임회피라는 원시적 본능에 호소한다면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는 책임감수라는 문명화된 도덕에 의존한다고 할 수 있다.심리학자 주디스 리치 해리스는 그의 저서 ‘양육가설’에서 자녀의 성장에 부모가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일반적 인식이 과장되어 있음을 지적했다. 책에서 그녀는 자녀의 탈선이 전적으로 부모의 책임이라는 잘못된 견해가 무고한 부모들을 죄인으로 만들고 나아가 진정한 문제의 해결을 방해한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개인들이 자유롭게 행동하여 발생한 우연한 사건에 대해 정부에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경우도 마찬가지다.기존의 양육가설이 유전과 또래집단의 영향을 경시한 것처럼, 책임의 집단화는 개인들의 자기 결정권과 상황대처능력을 지나치게 무시하는 관점이다. 동시에 죄 없는 부모들처럼 국가라는 엉뚱한 대상에 책임을 지움으로써 사고와 거의 관련 없는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죄인으로 몰리는 사태를 야기할 것이다.개인이 겪어야 하는 행운과 불운이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의 결과는 아닐 것이다. 하나의 결과는 우리가 인식하는 그리고 인식하지 못한 수많은 요인들에서 비롯된 창발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고 해서 곧바로 다른 누군가의 혹은 사회의 책임인 것은 아니다.우리가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은 실제 어떤 결과가 완전히 개인의 영향력 아래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부모도 국가도 더 이상 동네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당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든 부모를 탓하지는 마라”는 해리스의 말처럼 툭하면 사회와 국가를 탓하는 나쁜 습관이 생겼다면 이제 버릴 때가 되었다.송상우 보현한의원 원장

2022-12-05 08:46 송상우 보현한의원 원장

[시장경제칼럼] 진화, 협력, 시장

박성훈 조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인류는 자원을 쟁취하고 그것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진화되었다. 진화는 인류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생명체는 희소한 자원을 얻기 위해 진화되고 있는데, 이러한 진화는 경쟁을 통해 시나브로 시나브로 발현된다. 어떤 생명체도 진화를 피할 수 없으며, 이러한 진화의 불멸성은 싫든 좋든 경쟁할 수밖에 없는 생명체의 운명을 대변한다.생명체는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다양한 무기를 만들었다. 날카로운 이빨, 멀리 볼 수 있는 눈, 날카로운 칼(knife)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외에도 생명체는 독특한 무기를 만들었다. 협력이다. 예를 들어 보자. 대부분 스포츠 경기에서 한 팀에 있는 선수들은 서로 협력하여 다른 팀과 경쟁한다. 또 다른 예로 ‘꿀단지 개미’의 협력(희생)이 있다. 사막에 사는 ’꿀단지 개미’의 일부는 동굴에 매달린 상태로 삶을 이어간다. 꿀단지 개미 중에 소수의 개미가 자발적으로 매달려 있는 것이다.자세히 보면 개미의 배가 불룩하게 단지처럼 생긴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꿀단지 개미다. 꿀단지 개미는 물을 듬뿍 마시고 매달려 있으면서 다른 꿀단지 개미에게 수분을 공급한다. 협력을 넘어선 희생이다. 하지만, 꿀단지 개미는 다른 종에게 물을 주지 않는다. 꿀단지 개미의 관점에서 다른 종은 경쟁 상대이다. 사막에 사는 꿀단지 개미는 경쟁 상대에게 희소한 자원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서로 협력하는 것이다.이렇듯 생명체는 끊임없이 경쟁하며, 필요하면 협력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인류는 협력을 자주 그리고 지속해서 사용하는 생명체일 것이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뇌(brain)의 발전이다. 인간은 진화를 통해 뇌라는 강력한 무기를 얻게 되었다. 협력을 지속하기 위해선 호혜성(reciprocity)이 필요했으며, 호혜성이 지속되기 위해선 기억력이 필요했다. 뇌의 발달은 호혜성을 구현하기에 좋은 환경으로 작용했다. 인간의 협력은 다양한 곳에서 이루어진다. 특히, 다른 생명체와 달리 인간은 협력이 지속되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것은 시장(market)이다.시장은 구매자와 판매자가 서로 협력하는 공간이다. 일반적으로 시장은 개별경제 주체가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곳이라 이해된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교환은 협력을 위한 행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하면, 시장에서 호혜성이 적용되지 않을까? 스미스(A. Smith)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indivisible hands)’은 호혜성에 의한 것일 수 있다. 상대와 교환을 통해 이득을 얻으려는 나의 이기적 욕망과 나와 교환을 통해 이득을 얻으려는 상대의 이기적 욕망이 모두 충족될 수 있는 것이다. 상대가 나에게 이득을 주지 않는다면, 나는 상대와 교환하지 않을 것이다. 상대 역시 내가 이득을 줄 때 나와 교환할 것이다.코즈(R. Coase)는 자신의 논문 Adam Smith’s View of Man에서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다음과 같은 추가적인 설명을 한다. “그(애덤 스미스)에 따르면 인정(人情)은 거대 사회에서 협력을 달성하기 위한 적절한 도구가 아니다. 사람은 인정에 관한 한 친족이나 친구에게 어쩔 수 없이 편향되기 때문이다. 인정에 기초해 이룩된 사회는 친족 편애(偏愛)로 엉망진창이 되고 말 것이다. 낯선 사람들 간의 이기적 욕망을 이합집산하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훨씬 이롭다.” 인간은 시장을 통해 서로에게 이득이 되도록 협력하는 것이다.이제 죄수의 딜레마가 발생하는 상황을 설명하고, 경기자들이 서로 교환이라는 협력을 통해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상황을 소개해보기로 한다. 경기자 A는 노트북을 갖고 있다. A는 자신의 노트북은 100만 원으로 평가한다. 경기자 B는 120만 원을 갖고 있으며, 그는 A가 가진 노트북의 가치를 120만 원으로 책정한다. A와 B가 시행할 수 있는 전략은 ‘준다’와 ’갖는다’이다. 예컨대, B가 A에게 110만 원을 주고 A가 B에게 노트북을 주자는 제의가 나왔다고 가정하자.두 경기자가 자신의 이득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선택하면, A는 ‘갖는다’ 그리고 B 역시 ’갖는다’를 선택한다. 그리고 A는 100만 원의 이득, B는 120만 원의 이득을 유지한다. 이것이 비협조게임에서 내쉬균형이다. 하지만, A가 노트북을 B에게 주고, B가 A에게 110만 원을 주면, A의 이득은 110만 원 그리고 B의 이득은 130만 원이 된다. 따라서, 두 경기자는 교환을 통해 비협조게임에서 자신들이 얻는 이득보다 더 큰 이득을 갖게 된다.경쟁은 하기 싫다고 회피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희소하기에 경쟁하고, 경쟁하기에 진화가 이루어졌고, 진화가 있어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희소함에 대해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희소한 자원을 낭비해선 안 된다.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 희소한 자원에 높은 가치를 책정하는 사람이 그 자원을 지닐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그러한 협력이 가능한 공간이 시장이다.박성훈 조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2022-11-28 14:33 박성훈 조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시장경제칼럼] 증권형토큰공개(STO) 입법 속도 내야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국회 국민의 힘 ‘디지털자산 특별위원회’ 윤창현 위원장은 ‘디지털자산 시장의 공정성 회복과 안심거래 환경 조성을 위한 법률안’이라는 긴 이름의 법안을 지난 10월 31일 대표발의했다. 이어 11월 10일에는 정무위원회 위원장인 백혜련 의원이 ‘가상자산 불공정거래 규제 등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윤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그 제안이유에서 밝힌 것처럼, 주로 디지털 자산 거래에 있어 이용자 자산 보호, 불공정거래 금지 및 자율감시책임 등 불공정 거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단계적ㆍ점진적 입법을 예고하고 있어서, 2023년 중에 거래자(이용자) 보호를 위한 디지털자산의 발행ㆍ상장ㆍ공시와 디지털사업자의 진입ㆍ영업행위(신의성실 의무, 설명의무, 적합성ㆍ적정성 원칙, 광고규제 등) 등에 대한 추가적인 제도적 규율 방안이 이뤄질 전망이다. 백의원 발의 법안도 법안은 가상자산 시장 질서를 확립하고 투자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금융위원회에 가상자산 시장 감독을 맡기고 불공정 거래자에 대해서는 자본시장법에 버금가는 처벌을 부과하는 것 등이 핵심이다.본래 윤석열 정부의 인수위 110대 국정과제에 암호화폐공개(Initial Coin Offering, ICO)허용이 포함되어 있다. 토큰을 증권형과 비증권형으로 분류해 각각 규율하되, 증권형토큰공개(Security Token Offering, STO)도 자본시장법을 적용해 허용하기로 했다. 주요 국가 중에 ICO와 STO를 허용하지 않는 국가는 중국과 한국뿐인데, 지난 정권의 법무부 장관은 가상화폐 거래 금지와 거래소 폐쇄를 고려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최근 가상화폐 루나ㆍ테라의 거래중단 사태, 세계 3위 가상화폐거래소 FTX가 파산신청으로 글로벌 가상화폐 시장이 혼란에 빠진 점 등을 보면 장관의 선견지명이 돋보인다고 할 것인가? 그건 아니다. 1720년 영국 남해회사(South Sea Company)의 버블이 터졌다고 해서 주식제도와 주식회사제도가 없어지지 않은 것처럼,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거쳐 금융과 산업은 발전한다. 이 정부에 와서 비로소 ICO와 STO를 모두 허용하기로 했다니 미국 스위스 일본 독일 등보다는 늦었지만, 외국의 경험을 참고하여 부작용을 최소화한, 용의주도하고 면밀한 시스템 구축을 기대한다.ICO란 어떤 목적이든 블록체인 분산원장기술로 코인을 발행하여 자금을 모으는 행위를 말하고, STO는 ICO의 한 종류다. 코인(암호화폐)과 토큰은 기술적으로는 구분할 수는 있으나 일반적으로 같은 개념으로 사용된다. 암호화폐도 지불형 토큰(payment token)이지만 코인이라 부르는 것과 같다. 다만 STO는 부동산, 주식, 채권 등 실물자산을 블록체인 분산원장기술로 토큰화함으로써 자금을 모집하는 방식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ICO 즉시 세계 어느 거래소에서든 코인을 교차상장할 수 있고, 코인 소지인이 거래소에서 매도를 위한 청약을 하면 매수인이 이를 매수함으로써 거래가 이루어진다. 한국에도 가상화폐거래소 5곳이 영업 중이다.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ICO가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소재 가상화폐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암호화폐는 모두 외국에서 발행한 것으로 보인다. STO도 한국에서는 아직 허용되지 않고 있는데, 다만 증권형토큰과 유사한 DABS(디지털유동화 수익증권) 거래 플랫폼이 금융혁신지원법에 따라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시험적으로 운영 중이다.중소벤처기업의 경우 투자자를 유치하는 경로가 제한되어 있다 보니 자금조달도 애로가 많았는데, STO는 중소벤처기업의 새로운 자금조달방법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받고 있다. 현재까지 중소벤처기업의의 자본조달 방법은 크라우드펀딩(CF)과 벤처캐피털(VC)이 이용되었는데, STO방식으로 기업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자금조달 방법이 생기게 된다. 이중 VC는 오프라인으로 모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CF와 STO는 디지털플랫폼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차이가 있다.VC는 2020년 말 공정거래법의 개정으로 일반 지주사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설립이 허용됐지만, 지주사의 CVC 지분 100% 보유, 외부 자금 차입은 자기자본의 200% 이내로 제한, 엄격한 해외투자 제한(총자산의 20% 이내), 투자조합 자금조달 시 총수일가 및 계열 금융회사의 출자 금지, 외부 자금출자 비율 40% 초과 금지 등의 규제로 일반지주사의 CVC가 사실상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이로써 실제로 신생 기업의 자립을 방해하는가 하면, 유망 투자 기회를 고스란히 해외에 내주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전 세계 벤처캐피탈 투자에서 CVC 투자는 매년 기록적인 수치를 달성하며 폭발적인 증가세인데, 국내의 벤처캐피탈 투자에서 CVC가 차지하는 비중은 CVC 투자가 활발한 미국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훨씬 낮은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자본시장연구원). 절름발이 입법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CF의 경우를 보면, 보상형 CF의 경우는 주최자가 개인일 수도 있고, 전자상거래법이 적용된다. 투자형 CF의 주최자는 회사여야 하고, 의결권 있는 주식 또는 전환사채 등이 발행되므로 현재 자본시장법이 적용되어 금융위원회 등록 요건 등 최소한의 규제를 받고 있지만, CF의 성공이 거대자본 유치로 이어진 사례가 거의 없다는 한계가 있다.VC, CF 외 제3의 대안인 STO는 신속히 허용되어야 한다. 물론 증권형토큰도 증권이므로 발행플랫폼 외에 별도의 거래소 또는 거래플랫폼이 필요하고, 예탁결제원 아닌 전자등록기관과 같은 플랫폼(네트워크) 관리자가 필요하다. 또한 모집과 매출을 위한 주관사, 중개기관이 필요하고, 공모의 경우 증권신고서도 제출해야 한다. 기존 증권의 발행과 유통구조와 크게 다르지도 않다. 다만, 발행과 유통이 분산장부를 기반으로 하고, 발행과 유통 관련 절차가 단순ㆍ효율화되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초기 벤처기업으로서는 전통적 IPO보다는 거래비용 부담이 훨씬 줄어든다.STO에 대한 규제는 기본적으로 시장 참여자들의 자율규제와 자발적 상호감시기능에 맡겨야 하고, 법률에 의한 규제는 최소한에 그쳐야 할 것으로 본다. STO의 경우 자본시장법을 적용하기 위해 미국의 하위 테스트(Howey Test)와 같은 기준으로 증권성을 심사하여, 이 테스트를 통과한 경우 기존의 자본시장법을 적용하여야 할 것으로 본다.장기간에 걸친 경기 침체가 예상되고, 사회 분위기가 지쳐있는 때다. VC, CF 외에 STO의 활성화로 창업 및 신생기업들을 위한 보다 혁신적이고 창의적이면서도 안전하고 효율적인 발행ㆍ유통 수단과 채널을 마련해 창업자들의 도전 의식을 고취시켜야 할 때다.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2022-11-22 08:30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시장경제칼럼] 안심소득의 전국적 확대를 기대한다

박기성 성신여대 교수2014년 서울 송파구 세 모녀 사건 이후 복지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생활고로 인한 죽음이 끊이지 않았고 지난 8월에도 수원시의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생계급여 중심의 기존 복지제도를 아무리 손질해도 이런 죽음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정부는 서울시가 시범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안심소득을 그 대안으로 적극 검토해야 한다. 안심소득은 생계·주거급여를 제외한 모든 복지제도를 그대로 두면서 기준 중위소득 이하 가구에게 기준 중위소득과 가구 소득과의 차이의 반을 채워주는 제도이다. 현재는 소득 및 재산 등을 고려하여 지원대상에서 배제하는 까다로운 적격성 심사 때문에 전 가구의 5%만이 생계급여를 받고 있다.반면에 안심소득은 국세청이 파악한 소득에 의해서 지원 여부 및 지원액을 결정하고 매월 지원하고 연말에 정산한다. 신청하지 않아도 먼저 지원하고 후에 정산하므로 수원시 세 모녀 같은 안타까운 일들을 방지할 수 있다. 생활고로 인한 죽음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더욱 증가하고 있다. 이런 죽음을 막는 것이 국가의 최우선 책무이므로 안심소득을 하루 속히 실시할 필요가 있다.안심소득은 실직을 하거나 사업에 실패하는 경우에도 생계를 영위할 수 있게 해주는 최후의 버팀목이 될 것이다. 창업에 실패해도 가족의 생계가 위협받지 않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모험적인 사업을 시도할 수 있다. 이런 시도가 바로 시장경제 발전의 원동력이므로 안심소득은 미래를 열어가는 복지이다.안심소득은 대상 가구들을 하후상박으로 지원하므로 소득격차 완화 효과가 탁월하다. 한 추정에 의하면 안심소득은 지니계수를 13%, 소득 5분위배율을 27% 떨어뜨린다. 현행 생계급여 수급자는 근로소득이 생겨도 그 소득의 30%만 처분가능소득이 되므로 일할 유인이 낮다.그러나 안심소득은 50%가 처분가능소득이 되므로 일할 유인이 상대적으로 높다. 올해 중앙정부의 복지·노동·보건 사업 예산은 217.7조 원으로 국민 1인당 연 1000만 원씩 2177만 명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돈이지만 복지 혜택을 피부로 느끼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복지 혜택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상당한 정도의 누수가 발생하기 때문일 것이다.안심소득은 현금을 지급하므로 이 누수를 최소화할 뿐만 아니라, 적격성 심사 등을 간소화하여서 3만 명에 달하는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들의 행정 부담을 덜어 줄 것이다. 안심소득은 보편지급형 기본소득과 달리 지원금이 전액 소비될 가능성이 높은 저소득층에 집중해서 지원되므로 유효수요 창출효과 또한 탁월하다.안심소득을 전국적으로 실시할 경우 필요한 추가적인 예산은 35.1조 원으로 추정된다. 최근 5년 동안 중앙정부의 복지·노동·보건 사업 예산은 매년 11%씩 증가해 왔는데 이 비율로 향후 5년 동안 증가하면 2027년의 이 예산이 366.8조 원이 되어 2022년 대비해서 149.1조 원이 순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안심소득 시행에 필요한 35.1조 원은 이 순증액의 23.5%에 불과하며 올 6월에 지급된 7차 긴급재난지원금 39조 원보다도 적다. 즉 정부가 의지만 있으면 감당할 수 있는 액수인 것이다.안심소득은 복지사각지대를 해소하고 기존 복지제도에 더해서 채워줌으로써 코로나 사태 이후 늘어나는 복지수요를 효과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범 복지제도로 전국적 확대를 기대해 본다.박기성 성신여대 교수

2022-11-14 09:00 박기성 성신여대 교수

[시장경제칼럼] 다시 자유와 정부를 생각하며

지난 한 주간은 너무 많은 사건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우선 할로윈 축제를 이태원에서 즐기던 젊은이들이 156명이나 압사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 소식을 들으며 경악한 것은 나만이었을까? 그 부모와 가족들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 생때같은 아들딸이 순식간에 어처구니없이 주검이 되었을 때 아마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과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니 먼저 애도를 표하고 명복을 비는 게 당연하다. 또한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꼭 필요하다. 둘째로 한·미군의 ‘비질런트 스톰’ 훈련 중 북한이 NLL 이남 수역으로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다. 미사일 발사는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강릉에서의 오발에 이어 우리 군이 발사한 미사일들의 오발과 불발이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는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셋째로 사회복지 포함 다양한 정부 보조금이 오집행(誤執行)되고 있는데, 그 환수율은 50%에 불과해서 이를 70%로 높이는 게 정부 목표라는 것이 기사화되었다. 이 기사에 분개한 것은 정부가 국민이 번 돈을 세금으로 강징해서 보조금으로 주는 것 자체도 상당한 논란거리인데, 잘못 준 것이 그렇게 많고 더구나 공권력을 가지고도 오집행 보조금을 절반이나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해서다.자진 납세하는 국민들에게 조금만 늦어도 과태료 등 다양한 방법으로 팔 비틀기를 서슴지 않으면서, 돈을 거저 준 후 문제 발생 시 조치도 못하고 책임도 지지 않는 게 너무나 비대칭적이었다. 그래서 지난 주 일어난 일들은 내게 자유와 정부의 역할을 다시 짚어보게 했다.먼저 이태원의 압사사고를 생각해 보면 젊은이들이 축제를 즐기려고 그리로 모인 걸 탓할 수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그런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런 자유를 누린 것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그렇다면 이 압사사고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지금까지 법은 대개 불확실성 아래 위험이 발생하면 이 위험을 가장 빨리 인지하고 회피할 수 있는 당사자에게 그 책임을 지워서 사회의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택하여 왔다.예컨대, 법원은 서울특별시가 건설한 도로에 웅덩이가 패서 거기를 지나가던 차가 고장 나고 이를 보상하라고 운전자가 소송을 하면, 서울특별시가 아니라 차를 타고 가면서 웅덩이를 보지 못했던 운전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판결한다. 이런 원칙을 법이 정한 것은 그것이 가장 사회(모든 사람)에 유리하기 때문이다.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번 사고에서도 젊은이들이 유명을 달리한 것은 심히 안타까운 일이나 일차적인 책임은 그들에게 있는 것으로 정리되어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무슨 비난을 받을지 상상이 되지 않지만, 원칙은 그것이 맞다. 자유는 자율(자기책임)의 원칙 안에서 누리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것이 기본이 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로 인해서 부주의와 갈등이 증폭되고 자유와 권리가 지속적으로 정부의 개입에 침해되는 상황이 반복된다.그러나 정부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정부는 국방, 치안, 소방, 방재, 방역 등 시장에서 가격으로 배분이 실패하는 소위 공공재를 공급하는 것이 주기능이기 때문이다. 이번 이태원 사고에는 치안이 개입되어 있다. 치안 서비스가 제대로 되었는가에 대한 논의는 당연히 타당하다. 물론 치안당국자들은 누가 그런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알았겠느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이 있었고 그 이후에도 다중이 사상하는 수 많은 일들이 지난 정부에서도 반복되어 왔다.그런데 이런 다중 압사사고가 일어났고 그 대응도 너무나 후진적이고 직분을 다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공분을 사기 충분하다. 당연히 문제 발생 원인 규명과 그 서비스 종사자인 경찰의 복무태도, 책임과 시스템 등이 비판과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특히 지난 정부에서 경찰은 검찰 영역을 상당 부분 흡수해서 큰 권력을 가지면서 비대해졌으므로, 그 개혁이 없다면 치안 서비스의 품질이 더 낮아질 개연성이 높아졌다.또한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공약한 국민안전이 제대로 지켜지도록 최선을 다했는가 먼저 자성해야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전 정부와 현 정부를 막론하고 서로 손가락질하나 이는 제 눈 찌르기나 마찬가지이다. 이런 일이 있기 전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정부는 세월호 참사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 5년 동안 국회에서 절대 다수이고 행정권력도 지지도가 최고였는데 이런 문제에 대한 매뉴얼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무엇을 했는지, 윤석열 정부는 새 정부가 들어선 후 6개월이 다 되도록 이런 문제를 대처하는 경찰 공무원들의 근무태도와 기강을 왜 제대로 확립하지 못했는지 책임져야 한다.과연 정치인들은 국민안전을 확보하는데 무슨 노력을 했기에 임명직 공무원들에게 비판과 책임 운운하며 소리를 지르는지 묻고 싶다. 이런 정쟁의 배후에는 정치인들의 국민은 안중에 없는 오만과 총체적인 현안 대처능력 부실이 있음을 알고 자중해야 한다.둘째로 군의 미사일 오발과 불발 등은 다른 공공재인 국방 서비스의 품질이 국민안전을 제대로 지킬 능력을 보유했는지 의심하게 한다. 이런 문제가 한 번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은 군이 전쟁 발발 시 그 무기체계를 제대로 운용할 능력이 있을지 묻게 한다. 특히 북한이 핵무기를 완성단계에서 배치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우리 군은 어마어마한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는데 북한의 소위 비대칭 전력에 대한 대처를 어떻게 하고 있는가 생각해 보면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핵무기뿐만 아니라 재래식 장사정포 대비는, 핵무기 미장착 단·중·장거리 미사일 대비는, 잠수정·드론 포함 자폭 무기 대비는 과연 믿을 만 한가?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도주하면서 러시아군이 버린 무기 가운데 1차대전 사용 대포가 나와서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혹여 우리 군에도 제2차 세계대전에 사용된 일본의 구식 대포가 어느 부대에선가 무기로 여전히 취급되고, M1 소총이 부대를 무장하는 개인장비로 지급되지는 않고 있을까?”하는 허무맹랑한 생각까지 든다.셋째로 복지국가를 지상낙원처럼 초등학교부터 가르치는 나라에서 복지가 이런 허술한 방식으로 세금을 낭비하는 밑 빠진 독이 되고, 그저 사소한 일인 것처럼 취급되고 있는 것도 통탄할 일이다. 아마 복지전달체계의 이런 비효율성은 결국 니즈(needs)가 절실한 계층과 국민에게는 복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서, 복지 기생충들이 번식해서 세금을 빨아먹는 상황을 더욱 증폭시킨다.복지에서 가장 큰 문제의 하나는 늘 복지지원이 최종 수혜자인 어려운 국민에게 도달하기까지 그 중간에서 이를 집행하는 전달체계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대개 공무원과 이에 준하는 사람들)이 복지재원의 상당 부분을 가져간다는 것이다. 물론 시장에서 물건 유통에도 유통경로(distribution channel) 종사 도·소매업자들이 마진을 먹는 것처럼 복지도 이런 전달체계가 필수적이다.그러나 물건 유통에서의 효율성을 복지전달체계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물건의 유통경로는 경쟁을 통해서 결정되나 복지전달체계는 공무원들과 그에 준하는 공공기관들의 독점체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여기서도 보조금 대상 선정과정, 보조금 전달체계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시스템 개혁이 없는 한 이런 일은 반복될 것이다.위에 언급한 세 공공 서비스는 사실상 가장 큰 정부 기능의 존립 이유이다. 그런데 이 세 공공 서비스 제공이 심각한 문제를 노정하고 있다면 정부 자체가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그런데도 정부 삼부(입법, 행정, 사법부)를 대표하는 위정자들과 그들이 소속한 정당들과 정부기관들은 치안, 국방, 복지 서비스의 효율성과 만족성을 제고할 방안들을 경쟁하기보다는 여전히 자신들의 이해득실에만 초점을 맞추는 정쟁만 일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 국민들의 눈으로 보면 이들의 지휘를 받는 임명직 공무원들과 자치권을 가진 지자체의 대표자들과 공무원들도 여기서 벗어나는 사람들을 찾기 대단히 어렵다.물론 정치인을 포함한 국민들이 여러 측면에서 문제를 파악해서 드러나게 하는 일은 민주사회에서 진보를 위한 중요한 시스템이다. 그러나 문제 제기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한 사회 또는 국가가 이를 해결하는 시스템과 기준은 지적 합리성과 보편성에 입각해야 한다. 정부의 책임과 역할은 개인의 자유와 자율(자기책임)을 선행시키고 난 후 개입하는 것이어야 한다.자유와 자율에 기반하지 않을 경우, 시장을 통해서 해결하는 시스템의 기반이 흔들리고, 가치판단 기준이 무너져서 결국 우리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이리’ 상태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 마치 할로윈을 맞아서 거기 모인 사람들이 다 개인적으로 합리적이고 자유로이 행동했을지라도 이태원의 좁은 골목에서 아무도 질서를 확보하지 못했을 때 엄청난 참사가 일어난 것처럼 말이다.자유와 자율에 근거해서 행동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기준에 근거해서 옳고 그름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비로소 시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보호받게 될 것이다. 이에 기반해서 정부를 선택하고 정부 종사자들의 책임을 물을 때, 공무원들도 결국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우리는 우리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서 품질 높은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를 원한다. 그러려면 자유와 자율을 우선으로 하는 시스템에 대한 인식과 동의를 모든 국민들이 보편적으로 가져야 한다. 이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가 지금 보는 끝없는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문제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우리의 해결능력을 벗어날 것이다. 우리는 눈뜨고 이 불행이 우리에게 오는 것을 방치할 것인가?이주선 기업경제연구소장, 연세대 경영대학 산업협력 교수

2022-11-07 11:29 이주선 기업&경제연구소장, 연세대 경영대학 산업협력 교수

[시장경제칼럼] 윤석열 대통령 ‘자유 이념’ 단상(斷想)

정치는 무엇으로 하는가? ‘말’(언어)이다. 그래서 정치인의 ‘말은 곧 정치’다. 때문에 정치인의 ‘말’을 분석하는 행위는 정치인의 정치를 이해하는 기본이고 시작이다.대통령 선거 후보 시절 정치인으로서 윤석열은 ‘자유’를 빈번히 언급했다. 세간과 언론에서는 이러한 윤석열의 ‘자유’ 발언을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한다. 하나는 진보좌파 언론과 논객들의 접근이다. ‘자유’는 보수의 핵심 가치인데 자유를 언급한다는 것은 자유로 만들어진 사회적 불평등과 경제 격차를 인정하는 친자본주의적 사고로 본다. 그래서 무조건 비판한다.과거 영국에서 존 스튜어트 밀(J. S. Mill)이 언론의 자유를 언급했을 때 그는 사회적으로 ‘진보’였다. 또 하나는 보수우파 가운데 주로 시장주의 논자들의 접근이다. 윤석열 행정부의 정책을 볼 때 자유시장주의의 면모가 적으니 윤 대통령은 진짜 자유주의자가 아닌 유사(類似) 자유주의자에 속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윤석열 행정부가 더 큰 친자유시장주의 정책을 시행하기를 기대하는 입장이다.‘친자유주의 사고’ 또는 ‘유사 자유주의 사고’ 가운데 무엇이 진실에 가까울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정치인 윤석열이 ‘자유’를 언급한 부분에 대한 자세한 이해가 필요하다.정치인 윤석열의 자유를 이해하는 첫 번째 키워드는 그가 좋아하고 추천하는 책이다. 제20대 대선을 앞두고 출판협회에서 ‘인생 책’ 세 권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을 때 윤 후보자는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On Liberty),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Free to Choose),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의 3권을 선택해서 제출했다.특히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를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라고 제일 우선으로 추천했고, 밀의 자유론은 “자신의 법대 진학을 결심하게 만든 계기가 된 책”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최근에 읽은 책으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꼽으며 ‘인센티브를 보장하는 자유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핵심’이라는 책의 논지에 동의한다고 밝혔다.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은 국가를 경제적 번영으로 이끄는 핵심 요인으로 ‘포용적 정치·경제 제도’의 존재를 지적하고 있다. 포용적 제도로 ‘사유재산권 보장’, ‘공정한 경쟁’, 그리고 ‘신기술 투자를 위한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이다. 책의 선택에 정치적 목적이나 거짓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정치인 윤석열의 사고구조에 ‘자유’가 깊이 내재되어 있음을 추측한다.정치인 윤석열에게 대선 출마 선언문은 자신이 정치를 하게 된 이유와 목표를 설명하기에 매우 중요한 문서다. 그는 선언문에서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는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고 독재다”라고 단언한다. 윤석열에게 ‘자유’가 ‘민주’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자신이 정치를 시작하게 된 ‘분노’가 ‘자유없는 민주’에 대한 분노였음을 밝혔다. 한국 민주화의 문제점으로 ‘자유가 없는 민주’에 대한 날카롭고 본질적인 지적이다.주목해야 할 점은 ‘무엇을 위한 민주주의냐’에 대한 그의 답변이다. 진보좌파와 보수우파가 갈라진다고 할 때 보통 진보좌파는 ‘평등’을 이야기하고, 보수우파는 ‘자유’를 강조하는데 그의 답은 “민주주의는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 정치 철학 면에서 국민의힘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기자 질문에 답했다. 정치인 윤석열은 확실히 ‘자유를 민주에 선행’하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 대목이다.다음은 대통령 취임사에 나타난 그의 자유관이다. 취임사에서는 자신의 ‘자유’ 개념에 대한 좀 더 세련된 설명을 하고 있다. 많은 사회의 어려움이 ‘과학과 진실이 전제되지 않은 반지성주의’에 원인이 있다고 규정하면서 그러한 위기 극복을 위해 국민이 공유해야 할 가치로 ‘자유’를 택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유를 제대로 알고 자유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이어서 인류 역사에서 “자유로운 정치적 권리, 자유로운 시장이 숨 쉬고 있던 곳은 언제나 번영과 풍요가 꽃피었다”고 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논지를 반복하여 강조한다. 그리고 “번영과 풍요, 경제적 성장은 바로 자유의 확대입니다”라고 자유가 번영으로 이어짐을 단정한다,그러한 자유를 향유하는 자유시민을 만들기 위해 “일정한 수준의 경제적 기초, 그리고 공정한 교육과 문화의 접근 기회”가 필요함을 지적한다. 자신의 복지, 교육, 문화관이 결국 자유시민을 만들어 내기 위한 정책적 도구임을 밝히고 있다. 자유를 위한 복지, 자유를 위한 교육, 문화적 자유를 강조하는 대목으로 윤석열 정부의 복지, 자유, 문화 정책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취임사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자유민주주의는 평화를 만들어 내고, 평화는 자유를 지켜줍니다’라고 최근의 민주평화론(democratic peace theory)을 도입한다. 칸트(I. Kant)가 주창하는 민주평화론은 자유공화국들 사이에서는 전쟁이 자제되고 평화가 이루어진다는 이론으로 유럽연합의 이념적 기초가 되고 있다. 자유공화국이란 법치, 민주주의, 시장 자유가 그 조건으로 규정한다.앞의 설명에서 보듯이 대통령 취임사로 볼 때 정치인 윤석열의 ‘자유’는 인간 조건, 정치적 권리의 기초, 경제적 번영의 시작, 복지·교육·문화 정책 필요성의 근거, 국제평화의 조건으로 귀결된다. 때문에 대통령 윤석열은 취임사에서 ‘자유’를 35차례, 8.15 경축사에서 33차례, 그리고 지난 9월 20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자유와 가치 공유국의 유엔 중심 연대’를 제안했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정치인 윤석열은 마가렛 대처 수상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정치인으로서의 등장 배경과 성장 과정이 다르다. 때문에 억지 춘향식으로 대처의 ‘자유’와 레건식 자유주의를 들이밀고 이러저러하게 비교를 하는 일은 어설프고 적절하지도 않다. 윤석열과 대처, 레이건은 탈냉전, 세계화라는 정치적 사회경제적 배경에서 다르기 때문이다.그리고 지적해야 할 또 하나의 핵심은 윤석열의 ‘자유’를 법률가로서의 자유라는 전제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치인 윤석열에게 ‘법치’와 ‘자유’는 물러설 수 없는 중요 가치로 보인다.이러한 대통령 윤석열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인 ‘자유의 확대와 실천’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윤대통령이 염두에 둔 자유의 확대와 실천이 어려운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며 더 큰 자유를 요구해야 한다는 의미다. 주말마다 ‘윤석열 퇴진’ 요구 집회가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고 갈수록 집회 규모가 커져 가는 상황에서 자유의 확대는커녕 정권 유지에도 숨이 찰 상황일 것임을 감안해야 한다.지금 앞으로 5년 윤석열 대통령이 지향하는 자유의 운명을 예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자유가 사치가 되는 전체주의 또는 집단사회주의의 나라로 가지는 않을 것임을 예상하게 된다.김인영 한림대 교수(정치학)

2022-10-31 08:30 김인영 한림대 교수(정치학)

[시장경제칼럼] ‘쌍둥이 적자’ 문제와 그에 대한 해법

안재욱 경희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지속적인 재정적자와 함께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섰다. 올 상반기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101조 9천억 원으로 2019년 이후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무역수지(상품수지)가 지속적으로 적자를 보이면서 지난 8월 경상수지는 30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재정적자와 경상적자, 즉 ‘쌍둥이 적자’를 기록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5년만이다.이 ‘쌍둥이 적자’는 우리 경제에 대한 위험신호다. 경상수지 적자는 우리가 번 돈보다 쓴 돈이 더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경상수지 적자는 외국에 대한 부채가 증가했음을 나타낸다. 번 돈보다 더 많이 썼기 때문이다. 물론 빚을 얻은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개인이 빚을 지더라도 그 빚으로 생산적인 투자에 사용하면 나쁘지 않다. 빚을 얻어 이자를 갚고도 남을 만큼 소득을 올리게 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빚을 얻어서 과도한 소비나 잘못된 투자에 사용하면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고 결국 파산하게 된다.국가도 마찬가지다. 경상수지 적자로 인한 부채가 생산능력을 증가시키는 데에 사용되면 경쟁력이 향상되어 경제가 성장하며 국가가 번영을 이룬다 . 그러나 경상수지 적자로 인한 부채가 장기적인 생산적 이득을 얻지 못하는 지출에 낭비된다면 상환능력에 의문이 제기되고 , 잘못하면 국가 파산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경상적자는 국내경제 상황과 구조 하에서 경상적자에 따른 부채가 어떻게 쓰이는지에 따라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 국내경제 환경이 생산성이 높고 성장하는 구조라면 경상적자는 경제에 좋지만, 과다한 소비와 잘못된 투자에 사용되는 구조라면 경제에 나쁘다. 지속적인 재정적자가 경상수지 적자에 대해 좋지 않은 환경을 만든다. 성장 동력을 떨어뜨리고 과다한 소비와 잘못된 투자를 야기하는 것이다.지속적인 재정적자가 경상적자를 유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경제학자들이 있지만, 이 주장은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나 타당하지 않다. 재정적자와 경상적자는 약간의 상관관계를 가질 수는 있지만 둘 사이에는 분명한 인간관계가 없다. 재정적자는 다만 경상수지 적자가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하는 환경을 만들 뿐이다.지속적인 재정적자가 어떻게 좋지 않은 환경을 만드는지 보도록 하자. 첫째, 재정적자 증가는 정부가 커진 것을 반영한다. 정부가 커지면 사람들의 지대추구행위가 증가하게 된다. 개인들이 생산을 통하여 소득을 증가시키려고 하기보다는 정부의 시혜를 통해 소득을 증가시키려고 노력함에 따라 희소한 자원이 부의 창출에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의 소득이전추구 활동에 사용된다 . 즉 자원이 생산적인 것에서 비생산적인 사용처로 이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원의 이동은 경제성장을 방해한다.둘째, 재정적자의 증가는 정부의 시장에 대한 개입의 증가로 해석할 수 있다. 정부개입의 증가는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기업가 정신을 방해하여 경제성장의 활력을 떨어뜨린다. 셋째, 정부지출에 따른 돈이 소비자들에게 주어지면 소비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해 소비재 가격이 올라간다. 소비재를 만드는 것이 도구나 기계 등의 생산재를 만드는 것보다 더 많은 이익을 내기 때문에 자원이 소비재 부문에 몰려 생산재 부문이 위축된다 . 생산재 부문이 위축됨에 따라 성장이 둔해진다. 재정적자를 통한 정부지출의 증가가 소비와 생산 구조를 왜곡시켜 과다한 소비와 잘못된 투자를 야기하는 것이다.게다가 지난 문재인 정부가 취한 친노조정책, 과다한 기업규제, 그리고 징벌적 세금으로 인해 성장 동력이 떨어지고 과도한 소비와 잘못된 투자가 야기되는 환경이 만들어 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쌍둥이 적자는 우리의 경쟁력을 떨어뜨려 수출은 줄고 수입이 늘어나 경상수지 적자가 고착화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에 치명적일 수 있다 . 외환위기 때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11.4%로 그나마 재정이 상대적으로 건전한 편이어서 IMF 구제금융이라도 받았지만, 올해는 그 비율이 50%를 넘었다. 위기에 매우 취약할 수 있다.그러므로 쌍둥이 적자의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 정부의 지출을 축소해 재정적자를 줄여야 한다. 그리고 성장 동력을 떨어뜨리고 과도한 소비와 잘못된 투자를 야기하고 있는 경직적인 노동시장을 개혁하고, 기업규제를 포함한 정부의 반시장적 정책을 철폐하며 징벌적 세금을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가의 혁신 등 경제의 역동성이 살아나 국가 경쟁력이 높아져 경제가 성장하며 국가가 부강해지고 국민들의 삶이 부유해진다.안재욱 경희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2022-10-25 08:22 안재욱 경희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시장경제칼럼] 내부자 거래, 사전공시가 능사인가

김영주 대구대학교 경영학부 교수지난 9월 금융위원회는 내부자거래 사전공시제도 도입방안을 발표하였다. 그동안 사후 공시만 하면 충분하였던 상장회사 임원ㆍ주요주주와 같은 내부자의 지분거래가 이제부터는 사전에 공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의무공시 사항으로 변경되었다. 예를 들어 상장회사 내부자는 당해 회사의 주식매각계획이 있는 경우, 매매예정일 최소 30일 전에 매매목적·가격·수량 및 매매예정기간 등을 공시하여야 한다. 만약 미공시·허위공시·거래계획 미이행의 경우 형벌이나 과징금 또는 행정조치 등의 엄격한 제재를 부과받게 된다. 금융위는 이와 관련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연내 국회에 제출하여 신속히 제도화하겠다고 밝혔다.현행 자본시장법상의 내부자거래규제는 직접규제와 사후규제가 중심이다. 따라서 상장사 임원이 주식을 처분한 경우에는 해당 처분 이후 5일 내에만 공시하면 된다. 그러나 지난해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카카오페이 먹튀사건을 계기로 상장회사 임원 등 내부자의 대량 주식매도에 대한 규제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정부는 회사 내부자가 주식을 매도할 경우 그 매도계획을 사전에 공시하도록 하여 미공개정보를 이용한 시세차익을 근절하고 주가조작을 통한 가격형성 왜곡을 차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금융위 도입방안은 이와 같은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다.이번 금융위의 내부자거래 사전공시제도의 면면을 보면, 미국 SEC가 2021년 발표한 SEC Rule 10b5-1 개정안상의 면책항변제도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 제도를 참고하기는 했으나 그 근본적인 배경과 취지 및 내용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SEC Rule 10b5-1에 따르면, 내부자가 미공개 중요정보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주식을 매각하였다면 그 내부자는 해당 정보를 이용하여 사적 편취를 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는 미국 증권거래법(Securities Exchange Act of 1934)이 규정하는 금지행위의 유형에 포함되고 있다.한편으로 Rule 10b5-1은 해당 정보가 거래에서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음을 내부자가 증명하는 경우에는 면책된다고 규정한다. 내부자의 면책을 위한 적극적 항변(affirmative defense)으로 사전에 예정된 주식거래계약이나 거래계획 등을 예시하고 있다. 그러나 면책항변으로서 거래계획(소위 ‘Rule 10b5-1 계획’)은 실무상 미공개중요정보 이용의 우회적 통로로서 오랫동안 남용되어 왔다. 즉, Rule 10b5-1 계획을 이용하여 내부자거래를 하면서도 관련 규제를 피해왔다는 것이었다.SEC는 그러한 남용 현상이 Rule 10b5-1 계획에 대한 사전 공시의무가 부과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밖에 Rule 10b5-1 계획이 언제라도 중지할 수 있다는 점 또는 계획을 수립하더라도 미공개정보를 알게 된 이후에는 계획에서 정하지 않은 거래를 행할 수 있다는 점도 남용을 야기하고 있는 원인으로 파악했다. 내부자는 Rule 10b5-1 계획을 통해 회사의 경영악화 사실 공표를 시기적으로 조정하여 손해를 회피할 동기를 가지게 된다고도 인식했다. 결국 SEC는 2021년 말, Rule 10b5-1 계획의 사전 공시를 의무화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발표하였다. 금융위가 참고한 입법례는 바로 이러한 SEC Rule 10b5-1의 개정안이다.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금융위의 도입방안은 Rule 10b5-1 개정안과는 그 취지와 내용이 전혀 다르다. 금융위 방안은 미공개정보의 이용과는 상관없이 일단 거래계획을 수립하면 의무적으로 이를 사전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공시하지 않으면 이를 불공정거래로 보겠다는 것이다. 반면에 SEC Rule 10b5-1 개정안은 거래계획을 사전에 공시하면 내부정보를 이용하지 않은 것으로 인정할 뿐이고, 이를 불공정거래행위로는 판단하지 않는다. 즉, SEC Rule은 공시하지 않음으로 인한 불이익을 면책항변의 주장 불가에만 둘 뿐, 미공시 자체를 내부자거래규제 위반의 구성요건으로 파악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에 금융위 방안은 미공시를 불공정거래의 일종으로 판단한다.금융위는 지배주주 등 대량매도 규제와 관련하여 SEC Rule 144의 규제 내용도 참고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역시 내용의 실질이 확연히 다르다. SEC Rule 144에 따르면, 지배주식매각과 같은 거래계획에 관한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기만 하면 그 범위에서 매도 여부, 시기, 수량 등을 재량껏 정할 수 있고 장래에 거래이행의무가 발생하지 않는다. 반면에 금융위 방안은 지배주주 등이 거래계획을 공시한 후 미이행하였다면 이를 불공정거래행위로서 제재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이처럼 금융위는 2021년 Rule 10b5-1 개정안과 Rule 144를 참고로 내부자거래 사전공시제도 도입방안을 제시하였으나, 미국에서 발현된 제도적 배경과 그 취지에 대한 고려 없이, 몇 가지의 규율 방식만을 취사선택하여 혼합한 독특한 규제를 만들었다.지배주주가 주식을 매도함으로써 그것이 시장에 악재로 작용하여 주주가 손해를 입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주주가 입은 손해를 무조건인 부당한 손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상장 이후 주가 변동성이 큰 상황처럼 예외적으로 소액주주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이미 상장규정으로 보호가 이루어지고 있는데도 말이다.주식매도계획의 사전공시 자체는 시장에서 유익한 정보로 판단되지 않는다. 만약 해당 공시정보가 가치 있는 정보로 판단되는 경우라면, 내부자가 거래계획 수립 당시 미공개 중요정보를 인식하여 이를 이용한 경우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거래계획, 특히 주식의 대량매도계획은 일단 해당 회사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정보이다. 이러한 정보를 사전에 공시함으로써 오히려 주가 변동성이 확대되고 회사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가 야기될 수도 있다. 아울러 거래계획을 이행하지 않는다고 하여 이를 불공정거래로 제재하는 것은 결국 특정 증권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이점을 감소시켜 궁극적으로 회사와 주주의 비용을 증가시킬 것이다.규제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래왔듯이 직접적인 규제 시도는 혁신을 제약하며 실물의 발전을 저해해 왔다는 사실도 함께 기억해야 할 것이다.김영주 대구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2022-10-17 09:00 김영주 대구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시장경제칼럼] 제대로 된 경제 논리로 교육을 논하자

이진영 강원대학교 교수올해 7월 개최된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기획재정부는 하반기에 유·초·중등 교육 예산인 교육재정교부금 중 약 3조 6000억 원을 고등교육에 투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전용된 예산을 대학 교육·연구역량 등 경쟁력 강화, 반도체 등 미래핵심 인재 양성, 직업 재교육 등 평생교육 지원, 지방대학 육성 등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교원단체 등 여러 교육 관련 단체 및 사회단체들은 이러한 정부의 방침에 대해 즉각적으로 우려를 표명했다. 교육 예산의 편성 및 운용을 경제 논리만으로 접근할 경우 미래 세대의 교육을 그르칠 수 있다는 것이 이들 주장의 골자이다.그러나 현 정부의 교육재정교부금 전용 방침이 경제 논리만을 앞세운 방침이라는 비판은 경제 논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에서 비롯한 오해이며, 오히려 이번 기획재정부의 방침은 경제 논리보다는 정치 논리가 강하게 반영된 결과물이라 해석할 수 있다.우선,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교육재정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은 정치 논리의 산물이다. 교육이라는 재화가 거래되는 교육 시장의 개념을 떠올려볼 때, 교육 재화에 대한 소비자는 학생 및 학부모이며 교육 재화에 대한 생산자 혹은 제공자는 정부 및 교육기관이다. 학령인구 감소는 교육 재화에 대한 소비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 즉 교육 재화의 수요가 감소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르면 수요가 감소할 경우 이에 따라 시장균형가격도 감소하는데, 시장균형가격이 평균생산비용(정확히는 평균가변비용)보다 낮아지면 생산자는 생산을 중단하고 장기적으로 시장에서 퇴출한다. 그러나 교육 시장은 생산자의 퇴출이 자유로운 시장이 아니다.공립학교가 퇴출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데 이는 공립학교가 이윤 추구 기관이 아니기 때문인 것이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지만, 정확한 교육생산비용 산출의 어려움 및 학교 운영에 대한 각계 간 이견 등으로 인해 공립학교들의 구조조정 추진이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따라서 비효율적인 운영이 폐업으로 이어지지 않는 교육 시장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방만하게 운영되는 교육기관의 퇴출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경제 논리로 풀어본 학령인구 감소에 대한 대응책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정부가 학생 1인당 공교육의 혜택을 현 수준보다 더 늘리고자 한다면 비록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하더라도 교육 예산을 확대하는 정책의 시행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다시 말해, 한정된 예산으로 인해 정책의 우선순위에 따라 예산의 편성과 운영이 달라지는 것은 정치 논리의 산물이지 경제 논리의 산물이 아니다. 정책의 우선순위는 가치 판단의 영역에서 정해지는 문제이며 경제 논리는 다양한 주체들이 평가한 주관적인 가치들에 대해 순위를 매기지 않는다.또한 경제 논리는 유·초·중등 교육과 고등교육이 서로 상충관계에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개인의 합리적인 교육수준 결정을 분석하는 대표적인 모형인 인적자본모형은 교육을 미래 개인 수익에 대한 투자의 개념으로 이해한다. 인적자본모형에 따르면 교육을 통한 개인의 인적자본 축적은 개인의 근로에 대한 보상(즉, 근로소득)을 증가시키는데, 이러한 교육의 수익률은 초반일수록 높고 후반일수록 낮다. 즉, 유·초등교육이 고등교육에 비해 더 수익률이 높다.따라서 개인의 교육에 대한 수익률만을 고려하면 유·초등교육에 대한 투자가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보다 나은 투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교육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수익을 발생시킨다. 예를 들어 시민의식 향상, 지역사회 공헌, 경제 성장 동력으로서의 인재 양성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교육의 개인적 수익뿐 아니라 교육의 다양한 사회적 수익을 고려하여 교육정책을 수립해야 한다.이때 개입하는 논리는 정치 논리이다. 교육의 사회적 수익에 대한 가치는 주관적인 판단, 즉 정부의 철학이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정부가 고등교육 투자에 대한 사회적 수익률이 매우 높다고 판단한다면 고등교육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정책의 시행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다만, 구체적으로 어떠한 정책을 시행하여 고등교육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것인지의 문제는 정치의 영역에 속한다. 이를테면 고등교육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학자금 대출에 대한 이자율을 감면시켜 줄 수도 있지만, 국가장학금 지원 기준을 완화할 수도 있고 고등교육의 준비과정인 중등교육에 대한 지원을 강화할 수도 있다. 따라서 유·초·중등 교육 예산을 전용하여 고등교육 예산으로 투입한다는 정부 방침은 정부의 철학이 반영된 결과이지 경제 논리에 따른 결과는 아니라 할 수 있다.정부 정책은 한정된 예산을 통해 우선순위에 따라 순차적으로 시행된다. 각 정책에 대해 비용-편익 분석이 수행된다면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정책의 우선순위를 매길 수 있으나, 비용-편익 분석이 만능은 아니다. 한 정책과 관련된 모든 비용과 모든 편익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 작업이기 때문이다.이러한 이유로 인해 우선순위, 즉 각 정책의 중요도는 행정부 및 입법부의 판단이 개입된다. 이는 분야별 예산, 예를 들어 교육 분야와 사회복지 분야의 예산이 서로 상충할 수 있고, 교육 분야에서도 부문별 예산, 예를 들어 유·초·중등 교육 부문과 고등교육 부문의 예산이 서로 상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번 교육재정교부금 전용 방침은 정치 논리가 반영된 교육정책이자 정부의 교육철학의 일환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이진영 강원대학교 교수

2022-10-10 09:00 이진영 강원대학교 교수

[시장경제칼럼]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관한 단상

황인학 한국준법진흥원 원장“오늘 혁신에 매진하는 나라가 내일 세계경제를 장악할 것이다. 이것만큼은 미국이 (다른 나라에게) 결코 양보할 수 없다.”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던 2014년 1월에 한 말이다. 그리고 2015년, 미국의 국가경제위원회와 과학기술정책국은 공동으로 준비한 보고서-‘미국의 혁신전략’은 오바마의 이 발언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알려진 세계사의 중대한 변곡점에서 미국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만큼 간결하면서 명쾌하고 의지가 담긴 웅변을 대신하는 표현을 찾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돌아보면,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신조어가 나타나 세상에 퍼지기 시작한 것은 클라우스 슈밥이 주도하는 2016년 다보스 포럼 부터였다. 그러나 오바마 발언에서 보듯이 이미 주요국들은 새로운 혁신기술과 경제조직이 기존의 국가 간 비교우위의 판도를 창조적 파괴하는 위협이자 기회요인임을 인식하고 자국의 경쟁우위를 유지, 확장시키기 위한 전략을 준비해서 실행하고 있었다. 독일이 일찍이 2011년에 ‘인더스트리 4.0’을 거론한 배경도 근원에 있어서는 오바마의 발언 배경과 다르지 않다.그리고 ‘미국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한 가지’ 에 대해서는 정파를 떠나서 오바마, 트럼프, 바이든의 생각이 같은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애플, 알파벳 등 자국의 혁신 대기업들이 세금이 낮은 국가로 기술 특허 등을 이전한 것을 되돌리기 위해 미국의 법인세율을 대폭 인하하는 등의 정책으로 자국 기업들의 리쇼어링을 유인했고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또한 오바마 발언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 법은 사실상 미국에서 제조한 전기차에만 최대 7,500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 숨은 의도는 글로벌 혁신기업의 투자와 생산을 미국으로 끌어들여 국제 비교우위 판도를 재편하겠다는 것이다.결국 바이든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오바마의 혁신 전략의 연장선상에서 트럼프의 자국의 글로벌 기업에 국한된 리쇼어링 정책보다 판을 키울 것이다. 우리 정부는 국내 수출산업에 미치는 피해를 우려해서 미국 행정부와 다각도로 협상을 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첫째, 법률로 확정한 제도이기 때문이고 둘째, 동맹국의 피해를 간과한 일과성 해프닝이 아니라 ‘미국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한 가지’ 전략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더 심각한 문제는 장기적인 영향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한국을 포함한 일부 수출기업에게 당장은 불리한 제도이지만 소재, 부품의 공급망 문제만 완화되면 결국에는 미국에서 투자, 생산해서 판매하는 것이 수출기업의 경제적 이해와 합치되기 때문이다. 중국과의 패권 다툼을 빌미로 미국이 ‘메이드 인 아메리카’의 고압적인 정책을 펼치기 때문에 미국에 수출하는 주요 기업들이 마지못해서 수동적으로 미국행 투자를 늘린다고 보는 것은 오판일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건비 부담이 완화되면서 수요가 많은 곳에서 생산하는 것이 더 나은 입지 전략일 수 있기 때문이다.산업화 시대에도 기술은 제조원가에서 인건비가 점하는 비중을 낮추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AI, 3D 등의 4차 산업혁명 기술들은 제조업을 스마트하게 변모시킴으로써 투자 결정 시에 인건비의 중요성을 더욱 낮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선진국의 기술과 자본으로 양질의 저렴한 노동력이 비교적 풍부한 개도국에서 물건을 만들어 선진국으로 역수입하는 국제분업 시스템의 효용은 크게 감소하거나 사라지게 된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수출기업으로서는 혁신 기술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수요자 취향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이 가능한 현지에서 투자·생산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 결과 전통적인 국제분업 시스템은 재편되고, 부자 나라로 생산과 투자가 쏠리면서 4차 산업혁명은 국가 간 부익부 빈익빈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고민하는 정책당국은 바로 이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특히 지금의 산업혁명 시기에 경제성장, 일자리 창출의 엔진을 점화시키는 변수는 기술이나 자본이 아니다. 우리 역사의 비근한 예를 들면, 금속활자는 고려에서 세계 최초로 발명했지만 세계 역사, 인류 문명을 바꾼 것은 독일의 금속활자였다. 1993년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더글라스 노스가 일관되게 역설했듯이 경제성장의 원천은 효율적인 경제조직의 발전이다. ‘서구 세계의 부상(1973)’에서 노스는 이렇게 말한다: ‘서구인의 풍요로움은 (동양에 비해) 비교적 새롭고 독특한 현상이다. 독특한 역사적 산물인 서구 세계의 부상은 효율적인 경제조직의 발전 때문에 가능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효율적인 경제조직의 성장의 원천이다.’노스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의 한국은 효율적인 경제조직의 발전을 제도적으로 잘 뒷받침하고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이 소유권인데 이와 직결된 조세제도를 보면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25%로 OECD 평균값 21.2%(2021년 기준)보다 높다. 무슨 일이 터지기만 하면 기업인을 형사 처벌하겠다 하고 혁신을 가로막는 등의 정부규제 부담은 87위(WEF, 2019년)로 매우 열악하다. 또한 경제조직의 유연한 변화와 발전과 관련이 깊은 노동시장 제도 중에서 고용 및 해고 관행의 경쟁력은 102위로 이미 세계 최악이다. 그럼에도 최근에 민주당의 주도로 노조의 극렬한 불법투쟁에 면죄부를 주는 이른바 ‘노란봉투법’을 더하겠다고 하니 이래저래 한국의 투자 매력도는 갈수록 추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4차 산업혁명 기술발전에 힘입은 국제분업 판도의 재편, 미국의 혁신전략에 기초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 그리고 한국의 경제제도 현황과 전망 등을 종합해볼 때 ‘투자 엑소더스(exodus)’는 계속 확대가 불가피할 듯하다. UN국제무역개발협의회(UNTAD) 자료에 의하면 4차 산업혁명이 처음 거론된 2016년부터 작년까지 6년 동안 한국에 들어온 해외직접투자(FDI)는 연평균 129억 달러, 해외로 나간 FDI는 그보다 약 3배나 많은 389억 달러였다. 추세변화로 보면, FDI 순유출은 2016년 178억 달러에서 2021년에는 440억 달러로 빠르게 증가해서 지난 6년 동안에 약 2.5배 증가했다.만약에 이런 추세를 반전시키는 전기를 구하지 못하면 우리 청년들, 미래 세대의 일자리는 어디에서 구할 것인가? 노스는 앞서 인용한 책의 말미에서 효율적인 경제조직이 성장의 원천이라는 것은 새로울 게 거의 없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이를 잊은 듯이 엉뚱한 정책에 낭비한다며 우회적으로 일갈한다.황인학 한국준법진흥원 원장

2022-10-03 08:39 황인학 한국준법진흥원 원장

[시장경제 칼럼] 법인세 세율 논쟁에 관한 단상(斷想)

정승영 창원대학교 세무학과 교수지난 7월 말에 발표된 ‘2022년 세제개편안’에서는 끝없이 평행선에서 달리고 있는 법인세 세율 인하와 과표구간을 조정하는 것에 관한 개정안을 선두에 배치하였다. 기획재정부는 이러한 개정이 필요함에 대해 법인세 부담 경감과 더불어 투자ㆍ일자리 창출을 위한 지원 목적을 그 이유로 제시하였다. 현행 법인세법상 과세표준은 4개 구간에서 초과누진세율 구조로 최고 명목세율 25%를 두고 있다. 여기에 지방세법상 법인지방소득세 신고ㆍ납부까지 생각하면 최고 명목세율은 27.5%이라 할 것이다. 이번에 제시된 개정안에서는 과세표준의 구간을 5억원 이하(세율 10%), 5억원 초과 200억원 이하(세율 20%), 200억원 초과(세율 22%)로 하여 3개 구간으로 조정하였는데, 특징으로는 5억원 이하의 낮은 구간의 세율은 중소ㆍ중견기업만 적용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결국 중소ㆍ중견기업은 3개 과세구간이 적용되지만, 대기업에게는 2개 과세구간만 존재하는 구조로 재편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 ‘부자감세’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나 법인세 인하에 따른 긍정적 효과는 없다는 점을 표하는 경우가 있기에 아래의 단상(斷想)을 생각해 본다.기획재정부가 세제개편안에서 법인세율 인하와 과세표준의 재개편을 하게 된 이유로 제시한 것은 ‘법인세 부담 경감 및 투자·일자리 창출 지원’이다. 법인세 인하를 통하여 법인세 부담이 경감되는 결과가 도출되는 것은 당연지사이고, 세율 인하와 관련하여 논란의 초점이 되는 사항은 ‘투자ㆍ일자리 창출 지원’을 이유로 제시한 것과 더불어 법인세제 근간에서 비롯된 사유, 즉 법인세의 귀착이 법인세를 신고ㆍ납부하는 ‘법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사실 투자ㆍ일자리 창출 지원에 관하여는 조세를 인하하여 그러한 효과가 당위적으로 도출된다고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논란이 있을뿐더러 다른 분야의 제도 내지 인프라 지원으로 더 효율적으로 그 효과를 거둘 여지도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후자의 내용에 대해서만 생각해보고자 한다.우선 법인세는 실질적으로 주주의 사업활동에 대해서 과세하고자 주주가 모여 사업활동의 도구로 보는 ‘법인’의 소득에 대해 과세하는 세목이다. 법인세 세목에 관한 설명 내지 의의에는 최소 다음의 2가지가 함축되어 있다.첫 번째, 개인의 사업활동에 소득활동에 대해서 소득세를 부과하듯, 법인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사업활동을 하는 주주들에 대해서도 소득세를 부과하여야 ‘공평’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영리법인(기업)이 사업활동을 위하여 고안된 인간의 창작품이듯, 법인세 역시 사업활동을 하는 주주들에 대해서 그 소득을 효율적으로 징수하기 위한 대체품으로서 고안된 존재라고 볼 수 있다는 점이다.즉, 법인세를 과세하지 않게 되면 상장법인과 같이 주주가 수시로 바뀌는 경우 일일이 추적하여 과세하여야만 하는 곤란함이 있을 수 있는데 법인세를 매 과세연도마다 과세하면서 일종의 원천징수 효과를 거둘 수 있고, 다시 주주에 대해서는 양도소득세제와 배당·이자 소득 등 투자에 관한 개인소득세제로 투자활동 내지 그 산물에 대한 과세 체계를 구현하는 구조를 만드는 방향을 취하게 된다.이와 같이 법인세가 가지는 특징에도 불구하고 법인세의 귀착은 꼭 주주에게만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경우들이 있다. 왜냐하면 법인은 세제 환경의 변화에 따라 그 법인세 부담 부분의 높고 낮음에 적응하여 누군가에게 전가하기 때문이다. 이는 단기적으로 벌어지지 않을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법인의 상품 등 가격을 인상하는 과정에서 은닉하면서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도 있고, 근로자의 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더불어 법인들은 글로벌화된 사업환경에 맞춰 세제상 우대받을 수 있는 해외 사업장에 대해서 투자를 더 늘릴 수도 있다. 이른바 포럼 쇼핑(Forum Shopping)이 이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즉 법인세 세율 인하(또는 인상)의 작동효과가 법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닐 수 있다.한편, 법인세가 기본적으로 ‘주주’의 사업활동에 대한 과세를 하고자 고안된 점도 고려한다면, 법인세율이 높거나 세율 구간이 복잡하게 이루어져 있을 이유가 없다는 점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A라는 법인이 어떠한 상품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법인소득이 많이 있고, 그 소득에 대해서 많은 법인세를 부담한다고 하자.이러한 A에 대한 사정은 A에 투자하고 있는 소수주주 B 개인의 개인적 경제 사정과는 다른 국면이다. B는 다른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적용되어 개인의 경제적 사정이 좋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즉 법인세 인하가 곧 그 기업에 투자하고 있는 ‘부유한’ 개인의 경제적 부담을 직접적으로 덜어주는 것이라는 단정을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만약에 ‘부유한 개인’에 대해서 과세를 높이고자 한다면 직접적으로 금융투자상품 등을 통해 고수익을 창출하는 개인의 소득과세 세율을 직접 조정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법인세율의 높은 명목세율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오히려 법인세제가 품고 있는 ‘일종의 소득세액 원천징수 효과’에 대한 선호로 그러한 효과를 포기하기에는 어렵다는 설명이 어울릴 수 있다.다시 원론적인 입장으로 돌아가 보자면 ‘법인’은 사업 활동을 위하여 만든 법으로 창조해낸 최고의 발명품이다. 즉, 그 존재의 가치가 아무리 높더라도 ‘도구’로서의 가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법인세제는 이러한 점을 맞춰 고안된 세제라는 점에서 이번 세제개편안을 바라본다면, 오히려 모두가 쉽게 법인세제를 이해할 수 있도록 초석을 마련하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정승영 창원대학교 세무학과 교수

2022-09-26 09:00 정승영 창원대학교 세무학과 교수

[시장경제칼럼] 코로나19 이후 음식점·카페 등의 지역서비스업 경쟁에 대한 관점

조장희 제주대학교 경제학과2015년 전후로 음식점 및 카페 등의 지역서비스업에 대한 경쟁이 과다하다는 이슈가 시작되었다. 이 때 자영업자의 높은 시장 퇴출률에 대한 원인을 강한 시장의 압력에 따른 과당경쟁, 즉 출혈경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증가해 왔다. 또한 동학적 관점에서 이러한 현상에 대한 원인을 창업의 증가로 보는 시각이 대두되어 시장의 퇴출률 감소를 위한 진입 규제에 대한 논의가 있어 왔다.그러나 음식점, 카페 등의 지역서비스업 시장에서 창업(시장진입) 및 폐업은 산업 효율성 증가 관점에서 의미가 있다. 음식점 및 카페 등의 지역서비스업은 제조업과 달리 자체적인 혁신이 구조적으로 어려운 산업이다. 따라서 위 산업에서는 생산성 성장을 위해 효율성이 낮은 사업체의 퇴출과 높은 생산성을 갖는 신규 사업체의 진입을 통한 창조적 파괴과정이 필요하다. 또한 지금까지의 실증연구는 위의 창조적 파괴과정을 통해 음식점을 비롯한 지역서비스업 전반에서 생산성 향상이 나타남을 보인다.특히 시장에 신규 진입한 젊은 사업체는 기존의 시장 참여자와 다른 차별적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높은 생산성을 갖는다. 예를 들어 개인 카페에서 스페셜티 커피를 제공하거나, SNS를 위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 등이 모두 차별적 서비스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차별적 서비스를 새롭게 소비자에게 제공함으로써 경쟁에서 도태된 기존 사업자는 퇴출되고 결과적으로 전체 시장의 효율성이 증가되는 것이다.반면 코로나19로 인한 구조변화는 지금까지와 다른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음식점, 카페 등이 오프라인을 통한 경험적 서비스를 제공하였다면, 코로나19 이후에는 배달서비스 등을 통한 비대면 경험이 강조되고 있다. 다시 말해 창업 환경의 변화에 따라 최근 신규 진입하는 사업체는 비대면 경험에서의 차별화라는 과제에 당면한 상황이다.따라서 이와 같은 구조변화가 나타난 시장에서도 여전히 오프라인 시장과 같은 창조적 파괴과정이 나타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여전히 경쟁을 통한 사업체의 퇴출과 진입이 산업 생산성 성장 방식이 유효하다면, 코로나19 이후 높은 폐업률을 막기 위한 진입규제 보다는 폐업하는 자영업자에 대한 사회적 안정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적용되는 것이 적합하다.덧붙여 코로나19이후 접객서비스가 없는 배달 중심의 음식점들의 경우 기존 사업체에 비하여 더 노동집약적이며 영세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배달 중심 창업에 따른 사업체의 영세화가 장기적으로 시장의 생산성 성장에 도움이 되는지 역시 면밀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조장희 제주대학교 경제학과

2022-09-19 09:00 조장희 제주대학교 경제학과

[시장경제칼럼] ‘균형’이 아니라 ‘자치’로

신중섭 강원대학교 명예교수(서양철학)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2/09/06/QHQ5NRAMJ5CHTAPQSTPZDHEDG4/)에서 “윤석열 대통령 임기 내에 대기업 3~5곳과 주요 대학, 특수 목적고의 지방 이전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현 정부 ‘지역 균형 발전’ 정책의 주무 장관이다. 과거 정부들도 수도권 집중 완화를 국정 과제로 설정하였지만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지역 균형 발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수도권 쏠림 현상을 문제라고 생각한다. 행안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100대 기업(매출액 기준) 중 91개 기업이 수도권에 본사를 두고 있고, 수도권 인구는 2022년 8월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51%에 달한다. 2000년부터 인구비중, GRDP 비중, 취업자 비중에서 수도권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http://www.balance.go.kr/template/resources/attach/Public_announcement_of_balanced_national_development.pdf)이런 현상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균형 발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수도권도 망하고 지역도 망한다는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하면서까지 행정안전부 장관은 균형 발전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이상민 장관은 “젊은이들이 지방으로 가려면 결국 대기업이 내려가야 한다. 공공기관 이전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대기업이 지방으로 가기 위해선 대기업에 인재를 공급할 주요 대학과 대기업 직원 자녀들이 공부할 특목고를 세트로 묶어 같이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20대 대기업의 본사나 공장, 서울대·연세대·고려대·서강대 등 주목을 끌 만한 주요 대학, 특목고를 함께 내려 보내야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도 했다.이 장관은 대기업과 주요 대학의 지방 이전을 유도하기 위해선 파격적인 인센티브(보상)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특혜’ 논란이 일 정도로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해 지방 이전을 유도하겠다”며 “예를 들어 (지방 이전) 대학에 수도권 캠퍼스 부지를 직접 개발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도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대학이 기존 캠퍼스 부지를 개발해 그 수익으로 지방 이전 등에 쓸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가 힘으로 밀어붙인다고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지방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도록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물론 이 장관의 이러한 발언은 윤석열 대통령의 ‘균형발전 지역공약’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지난 4월 27일 균형발전 지역공약을 위해 17개 시도에 각각 7대 당선인 공약을 제시하고 그 아래 15개 정책과제를 제시했다. 윤석열 정부는 6대 국정목표 가운데 하나로 마지막에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말하였다. ‘지방시대’의 목적은 국민의 사는 곳의 차이가 기회와 생활의 격차로 이어지는 불평등을 멈추고, ‘수도권 쏠림-지방소멸’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다.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같은 날 “지역균형발전 비전 대국민 발표”를 하였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역균형발전 특별위원회는 “어디에 살든 균등한 기회를 누리는, 공정ㆍ자율ㆍ희망의 지방시대”를 만들기 위해 “진정한 지역 주도 균형발전, 혁신성장의 기반 강화, 지역 특성 극대화”의 3대 약속을 실현하기 위해 15대 국정과제를 도출하였다.균형발전이 정치적 의제로 부상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노무현는 2003년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규정을 만들고,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대통령 소속으로 조직하였다. 이때부터 이 위원회는 정권이 바뀌면서도 지속적으로 운영되었다.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제22조 및 23조’에 따르면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설치 목적은 “지역 간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지역의 특성에 맞는 자립적 발전을 통하여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과 국가균형발전의 효율적 추진을 위한 주요정책에 대하여 대통령에게 자문하는 것”이다. 수도권 집중화를 막기 위한 정책은 그 전부터 있었지만, 균형발전을 본격적으로 표방한 것은 노무현 정부부터이다. 그 이후로 보수 정권도 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을 버리지 못했다. 현 정부도 ‘균형’이라는 실체 없는 말에 매료되어 균형발전을 적극적으로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이상민 장관은 수도권과 지방의 균형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균형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어떤 상태가 되어야 균형 상태라고 할 수 있는가? 모든 것이 50: 50이면 균형인가? 수도권과 지역 간에만 불균형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수도권 안에서도 불균형이 존재하고, 지역 사이에서도 불균형이 존재한다. ‘불균형’을 인위적으로 조정한다고 해서 균형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균형’은 정치가들이 만들어낸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균형을 명분으로 내놓은 정책들은 모두 극단적인 비효율과 자원의 낭비와 불편을 초래하고,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사회 전체의 자유를 줄인다. 수도권과 지방, 지방과 지방 사이의 인위적 균형을 유지하려면 중앙 정부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조정해야 한다. 강력한 힘을 가진 권위주의적 중앙 정부가 일시적으로 균형을 조정한다고 해서 지속적인 ‘균형 발전’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지속적으로 강력한 통제를 해야 한다.그렇다고 수도권과 서울에 모든 것이 집중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균형 발전’이 아니라 ‘지방 분권’이다. 중앙 정부가 가지고 있는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 중앙 정부의 권력을 시·도로, 시#8231;도는 그 아래의 지방 자치단체로 권력을 내려보내야 한다. 중앙 정부의 권력을 지방 정부에게 주고,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지방 정부와 지방 정부가 서로 경쟁하게 해야 한다. 지방 정부에게 입법과 재정에 대한 자치권을 주고(예를 들어 상속세나 법인세 제정을 지방 자치에 맡길 수 있다), 지방 정부는 자치권을 가지고 서로 경쟁하면서, 서로 다른 삶의 환경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기업이나 사람들은 자신의 조건에 맞는 지역을 찾아갈 것이다.프리드먼이 말했듯이 청소든 도시계획이든 학교든 간에 우리 지역에서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면 그만이다. 실제로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지라도 그럴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하나의 견제 수단이 된다. 과도한 세금을 피해 기업이나 개인이 국적을 바꾸듯이, 기업이나 개인도 자기에게 유리한 조건을 찾아 이 지역에서 저 지역으로 옮겨갈 수 있다. 이것이 개인의 자유를 확장하는 길이고, 지역이 발전할 수 있는 길이다.신중섭 강원대학교 명예교수(서양철학)

2022-09-12 08:51 신중섭 강원대학교 명예교수(서양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