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칼럼] ‘균형’이 아니라 ‘자치’로

신중섭 강원대학교 명예교수(서양철학)
입력일 2022-09-12 08:51 수정일 2022-09-12 09:16 발행일 2022-09-12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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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섭 강원대학교 명예교수(서양철학)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 https://

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2/09/06/QHQ5NRAMJ5CHTAPQSTPZDHEDG4/)에서 “윤석열 대통령 임기 내에 대기업 3~5곳과 주요 대학, 특수 목적고의 지방 이전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현 정부 ‘지역 균형 발전’ 정책의 주무 장관이다. 과거 정부들도 수도권 집중 완화를 국정 과제로 설정하였지만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지역 균형 발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수도권 쏠림 현상을 문제라고 생각한다.

행안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100대 기업(매출액 기준) 중 91개 기업이 수도권에 본사를 두고 있고, 수도권 인구는 2022년 8월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51%에 달한다. 2000년부터 인구비중, GRDP 비중, 취업자 비중에서 수도권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http://www.balance.go.kr/template/resources/attach/Public_announcement_of_balanced_national_development.pdf)이런 현상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균형 발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수도권도 망하고 지역도 망한다는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하면서까지 행정안전부 장관은 균형 발전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신중섭

이상민 장관은 “젊은이들이 지방으로 가려면 결국 대기업이 내려가야 한다. 공공기관 이전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대기업이 지방으로 가기 위해선 대기업에 인재를 공급할 주요 대학과 대기업 직원 자녀들이 공부할 특목고를 세트로 묶어 같이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20대 대기업의 본사나 공장, 서울대·연세대·고려대·서강대 등 주목을 끌 만한 주요 대학, 특목고를 함께 내려 보내야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도 했다.

이 장관은 대기업과 주요 대학의 지방 이전을 유도하기 위해선 파격적인 인센티브(보상)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특혜’ 논란이 일 정도로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해 지방 이전을 유도하겠다”며 “예를 들어 (지방 이전) 대학에 수도권 캠퍼스 부지를 직접 개발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도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대학이 기존 캠퍼스 부지를 개발해 그 수익으로 지방 이전 등에 쓸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가 힘으로 밀어붙인다고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지방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도록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물론 이 장관의 이러한 발언은 윤석열 대통령의 ‘균형발전 지역공약’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지난 4월 27일 균형발전 지역공약을 위해 17개 시도에 각각 7대 당선인 공약을 제시하고 그 아래 15개 정책과제를 제시했다. 윤석열 정부는 6대 국정목표 가운데 하나로 마지막에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말하였다. ‘지방시대’의 목적은 국민의 사는 곳의 차이가 기회와 생활의 격차로 이어지는 불평등을 멈추고, ‘수도권 쏠림-지방소멸’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같은 날 “지역균형발전 비전 대국민 발표”를 하였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역균형발전 특별위원회는 “어디에 살든 균등한 기회를 누리는, 공정ㆍ자율ㆍ희망의 지방시대”를 만들기 위해 “진정한 지역 주도 균형발전, 혁신성장의 기반 강화, 지역 특성 극대화”의 3대 약속을 실현하기 위해 15대 국정과제를 도출하였다.

균형발전이 정치적 의제로 부상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노무현는 2003년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규정을 만들고,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대통령 소속으로 조직하였다. 이때부터 이 위원회는 정권이 바뀌면서도 지속적으로 운영되었다.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제22조 및 23조’에 따르면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설치 목적은 “지역 간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지역의 특성에 맞는 자립적 발전을 통하여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과 국가균형발전의 효율적 추진을 위한 주요정책에 대하여 대통령에게 자문하는 것”이다. 수도권 집중화를 막기 위한 정책은 그 전부터 있었지만, 균형발전을 본격적으로 표방한 것은 노무현 정부부터이다. 그 이후로 보수 정권도 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을 버리지 못했다. 현 정부도 ‘균형’이라는 실체 없는 말에 매료되어 균형발전을 적극적으로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민 장관은 수도권과 지방의 균형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균형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어떤 상태가 되어야 균형 상태라고 할 수 있는가? 모든 것이 50: 50이면 균형인가? 수도권과 지역 간에만 불균형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수도권 안에서도 불균형이 존재하고, 지역 사이에서도 불균형이 존재한다. ‘불균형’을 인위적으로 조정한다고 해서 균형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균형’은 정치가들이 만들어낸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균형을 명분으로 내놓은 정책들은 모두 극단적인 비효율과 자원의 낭비와 불편을 초래하고,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사회 전체의 자유를 줄인다. 수도권과 지방, 지방과 지방 사이의 인위적 균형을 유지하려면 중앙 정부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조정해야 한다. 강력한 힘을 가진 권위주의적 중앙 정부가 일시적으로 균형을 조정한다고 해서 지속적인 ‘균형 발전’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지속적으로 강력한 통제를 해야 한다.

그렇다고 수도권과 서울에 모든 것이 집중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균형 발전’이 아니라 ‘지방 분권’이다. 중앙 정부가 가지고 있는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 중앙 정부의 권력을 시·도로, 시‧도는 그 아래의 지방 자치단체로 권력을 내려보내야 한다. 중앙 정부의 권력을 지방 정부에게 주고,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지방 정부와 지방 정부가 서로 경쟁하게 해야 한다. 지방 정부에게 입법과 재정에 대한 자치권을 주고(예를 들어 상속세나 법인세 제정을 지방 자치에 맡길 수 있다), 지방 정부는 자치권을 가지고 서로 경쟁하면서, 서로 다른 삶의 환경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기업이나 사람들은 자신의 조건에 맞는 지역을 찾아갈 것이다.

프리드먼이 말했듯이 청소든 도시계획이든 학교든 간에 우리 지역에서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면 그만이다. 실제로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지라도 그럴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하나의 견제 수단이 된다. 과도한 세금을 피해 기업이나 개인이 국적을 바꾸듯이, 기업이나 개인도 자기에게 유리한 조건을 찾아 이 지역에서 저 지역으로 옮겨갈 수 있다. 이것이 개인의 자유를 확장하는 길이고, 지역이 발전할 수 있는 길이다.

신중섭 강원대학교 명예교수(서양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