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브릿지칼럼

[브릿지 칼럼] 다시 불러보는 독도

노래 ‘홀로아리랑’ 때문이었을까. 독도와의 첫 조우에서 눈시울이 먼저 붉어졌다. 백두산 천지에서도, 백령도에서도, 가거도에서도 그러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전염된 듯 너나없이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민국’을 외쳐댔다. 이 뜨거운 군무의 연출자는 누구일까. 바로, 독도 곳곳에 배어있는 우리 민족의 혼과 땀방울일 것이다. 그 맨 앞에 이사부가 있다. 6세기 초중반 신라의 명장인 그는 동해 먼바다에 동떨어진 우산국을 정복해 한반도 본토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했다. 당시 우산국은 울릉도와 독도를 생활터전으로 한 해상왕국이었다. 삼국사기에는 “지증왕 13년(512년) 이사부가 지형의 험준함을 믿고 복종하지 않는 우산국인들을 나무사자를 이용해 합병했다”고 적혀 있다. 우산국은 고려 시대에도 특산품을 바치며 군신 관계를 지속했다. 조선이 건국된 이후에도 울릉도와 독도는 더욱 체계적으로 관리됐다. ‘세종실록지리지’를 비롯한 여러 기록을 통해 두 섬이 명백한 조선의 영토로 관리됐음을 알 수 있다. 이사부에 이어 안용복도 독도의 혼이다. 조선 숙종 때 부산 동래 사람으로, 어부였던 그는 울릉도와 독도를 드나들며 조업을 하던 일본 오오야(大谷家) 가문 어부들과 충돌해 1693년 일본으로 피랍되었다.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도 그는 일본의 조선 영토 침범과 피랍의 부당성을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과 일본 간의 교섭 끝에 일본 막부(幕府)는 울릉도·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울릉도에 대한 이권을 노리던 대마도에서 막부의 명령을 지연시켰고, 두 섬의 불법 침입은 계속됐다. 이에 안용복은 영토문제를 직접 해결하고자, 1696년 조선 어민을 이끌고 2차 도일을 감행한다. 그는 호키주 태수와 담판을 별여 성과를 거두었고, 에도 막부는 자국민에 대한 죽도도해금지령을 내리게 된다. 안용복에 이어 전라도 흥양(지금의 고흥) 사람들도 독도지킴이였다. 흥양에서 울릉도·독도까지의 거리가 500km 이상인데 19세기 흥양 사람들은 작은 목선을 타고 왜 그곳까지 가게 되었을까. 검찰사 이규원(李奎遠)이 1882년 울릉도를 수토한 후 조정에 올린 보고서 ‘울릉도검찰일기’에 의하면 흥양 사람 90여 명은 울릉도 곳곳에 천막을 치고 배를 건조하고, 미역을 채취하고 있었다. 이들은 계절풍을 이용해 3~4월 울릉도로 출발했다가, 7~8월이면 다시 흥양으로 돌아왔다. 이규원 울릉도 검찰 이후, 1883년 조선 조정은 울릉도 개척령(이주정책)을 시행한다. 이후 울릉도 거주민이 증가하자, 1900년(10월 25일) 고종은 ‘칙령 제41호’를 통해 울릉도에 울도군을 설치하고 죽도(竹島)와 석도(石島)를 관할 하에 두었다. 조선 후기 울릉도를 오가던 흥양 사람들은 돌로 이루어진 독도를 독섬이라 불렀는데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독섬=석도=독도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해방 이후에는 독도의용수비대와 독도경비대, 최초 독도 주민 최종덕 씨와 미역채취를 위해 장기간 독도에 거주한 제주 해녀들도 독도를 지켰다. 현재에도 많은 독도 연구가들과 관련 단체들이 독도 수호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은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를 통해 독도를 주인 없는 섬이라며 일방적으로 시마네현에 편입시켰다. 2005년 2월 22일에는 시마네현에서 ‘다케시마(竹島)의 날’을 정해 도발 수위를 한 층 높였다. 더욱이 내년부터 일본 중학생이 사용할 사회과 교과서 대다수에 ‘한국이 독도를 불법점거 했다’는 역사 왜곡이 들어간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오는 25일 ‘독도의 날’을 맞는다. 독도의 날은 2000년 민간단체인 독도수호대가 대한제국 칙령이 제정된 날을 기념해 지정한 기념일이다. 하지만 갈수록 치밀해지는 일본의 도발에 맞서, ‘독도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뜨겁다. 한 독도 연구가의 염원처럼, 독도에 방파제와 항구를 건설하고 대형 크루즈 선박을 띄워 국민 누구나 편안하게 다녀올 날은 그 언제쯤일까. 양진형 한국섬뉴스 대표

2024-10-14 15:12 양진형 한국섬뉴스 대표

[브릿지 칼럼]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

인간은 얼마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소비를 할까? 하바드대 비즈니스스쿨의 제럴드 잘트먼 교수는 그의 저서 ‘소비자의 숨은 심리를 읽어라’에서 소비자들이 구매를 결정할 때 95%는 무의식 상태에서 이뤄진다고 밝혔다. 인간의 심리를 활용한 고도화된 마케팅 방법은 갈수록 의식적 소비를 줄어들게 만든다. 고객이 구입할 때 물건을 담는 쇼핑카트와 장바구니는 지난 몇 년 사이 계속 커졌다. 브랜딩의 권위자이자 브랜드 미래학자인 마틴 린드스트롬의 책 ‘바이올로지’(Buyology)에 의하면 쇼핑 카트를 두배 더 크게 만든 후 매출액은 19%나 증가했다. 큰 쇼핑카트에 빈 공간은 뭔가를 더 사야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을 주기 때문이다. 매장에 들여오는 음악 또한 철저하게 계산된 전략이다. 혼잡한 시간대에는 빠른 템포의, 오전과 늦은 오후 시간에는 느린 음악이 흐른다. 대개 고객의 보행 속도는 음악을 따라간다. 사람들이 좀 더 느리게 걸으면 29% 이상 더 구매하게 된다. 색깔은 구매 행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특별 세일 표지판을 보면 붉은 색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붉은색이 주의력을 높이고 좀 더 활기차게 반응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신선식품은 과일과 채소가 더 싱싱하고 신선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노란색 조명을 사용한다. 육류는 붉은색 비율이 높은 조명, 생선은 냉백색 조명을 사용한다. 은행은 파란색을 즐겨 사용한다. 믿음과 신뢰를 주기 때문이다. 연상되게 제품을 배치하는 것은 기본이다. 치약 옆자리에 칫솔을, 스파게티 옆에 소스를 나란히 비치한다. 이케아(IKEA)는 매장을 복잡한 미로처럼 설계하고 있다. 매장 전체를 한길로만 걸으면서 상품들을 보고 또 보게끔 하기 위함이다. 중간에 돌아나갈 생각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지금 어디만큼 왔는지도 알 수 없다. 이때 이케아 레스토랑이 등장한다. 허기진 고객의 상당수는 여기서 주저앉았다. 3시간 넘게 돌아보고 계산을 마치면 절로 기진맥진이다. 그런데 바로 옆에는 1000원짜리 핫도그콤보와 아이스아메리카노가 노려보고 있다. 이런 일은 슈퍼마켓과 이케아뿐 아니라 패션 매장, 전자제품 매장, 화장품 및 잡화 매장 등 어디서든 마찬가지다. 저널리스트 플로리안 슈크라발은 “소비자들은 결정한 권리가 없다. 소비자는 얼마든지 조종당할 수 있으며 수요를 창출할 뿐”이라고 말했다. 수요가 공급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지속적으로 소비하는 걸까? 흔한 이유 중 하나인 쇼핑 중독 외에도 인간은 소속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동일한 제품을 입고 먹고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소속감을 드러낸다. 이들에게 소비는 기본적인 사회참여를 위한 도구인 셈이다. 동일한 브랜드를 사용함으로써 집단에 소속해 있다는 편안함을 느낀다. 동시에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동일한 집단에 소속해 있다는 안전의 욕구와 자신이 개별 존재로 인식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

2024-10-13 13:56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

[브릿지 칼럼] 정주영 전 현대 회장을 지도자로 그리워하는 이유

배종찬lt;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gt;최근 정치판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과 평가는 냉혹하고 참담하기 그지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율은 임기 최저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집권 여당은 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친윤(윤석열) 세력과 국민의 한동훈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한(한동훈) 세력으로 갈라져 내부 총질하기에 여념이 없다. 야당 쪽은 더 가관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4개 혐의가 기소돼 재판받느라 당 대표 수행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검사 탄핵이나 각종 청문회와 특검법 강행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이재명 방탄’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이미 2심에서 2년 실형을 선고받은 상태라 대법원 선거가 2심 확정으로 이어지면 언제라도 정치권을 떠나야 할 판이다. 국민들의 삶과 관련된 민생 현안이라도 처리하는 국회나 정치권의 모습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10월 국정감사는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에게 정조준된 ‘김건희 국감’으로 흘러가는 국면이다.특히 2030 MZ세대의 탈정치 심리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4개 여론조사 기관(케이스탯리서치, 엠브레인퍼블릭, 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 한국리서치)이 자체적으로 지난달 23~25일 실시한 NBS 조사(전국1005명 무선가상번호전화면접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응답률15.2%. 자세한 사항은 조사 기관의 홈페이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에서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지’ 물어본 결과 더불어민주당 26%, 국민의힘 28%로 나타났다. 20대(만18세 이상)에서는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는 무당층 비율이 무려 49%나 되고 30대는 무당층이 37%로 나왔다. 미디어 등을 통한 정치적 선동이나 유튜브 영상을 통한 ‘확증편향’으로 인해 특정 정치인이나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고 응답했을지 몰라도 실제 정당이라는 정치적 결사체를 통해 ‘실질적 효능감’을 체감하는 비율은 훨씬 낮을지 모르겠다. 정치적 무력감이나 정치적 불쾌감에 대한 수위는 실제로 확인되는 비중보다 더 높고 심각할 수 있다.이 와중에 현대그룹을 만들어 대한민국의 간판 기업을 일궈낸 고 정주영 전 회장을 재소환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현상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정 전 회장은 어떤 지점에서 정치권과 명확히 구별되는 것일까. 첫 번째로 ‘불굴의 도전 의식’이다. 정 전 회장과 관련돼 알려진 어록이 ‘이봐, 해봤어?’다. 조선소도 지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거북선을 만들었던 우리 선조들의 기백을 바탕으로 선박 수주에 성공했고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자동차를 수출하는 나라로 바꿔 놓았다. 정치인들이나 국회의원들이 달성한 성과가 아니라 강원도 통천에서 공부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거인의 불멸의 도전 정신이었다.두 번째로 고 정 회장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주변을 생각하는 애민정신’이다. 울산광역시를 기반으로 성장한 현대는 울산에 대학교를 세워 보국애민을 직접 실천했고 서울에 아산병원을 지어 국민들의 보건 혁신에 크게 기여했다.세 번째로 정 전 회장의 ‘화해와 평화 그리고 협력의 정신’이다. 남북 평화 협력을 강조했던 ‘금강산 관광’은 통일의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 마음의 출발이었으며 ‘정주영 정신’의 화룡점정은 1998년 6월 1001마리 방북 ‘소떼 방문’이었다. 1, 2차에 걸쳐 판문점을 넘어간 방북 소떼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놓는 정 전 회장이었기에 가능했던 역사로 평가받는다. 아무런 효능도 가져오지 못하는 현실의 정치판을 바라보면서 일반 대중들마저 한국 경제 성장의 거인이었던 정 전 회장을 그리워하는 건 지극히 정상적이지만 안타까운 일이다. 구태에 빠져서 진영 간 대결에만 몰두해 있는 정치권을 혁파할 거인은 어디에도 없는 것일까.배종찬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

2024-10-10 11:09 배종찬<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

[브릿지칼럼] 선물 경제의 역설

엄길청 국제투자분석가/국제투자리서치포럼 회장국내 개인 미디어 콘텐츠 제작자들이 연간 수 백억 원을 번다고 한다. 미디어의 가상 상징물을 독자들이 사서 콘텐츠를 만든 이에게 후원하면, 회사가 얼마를 떼고 개인 제작자에게 주는 돈이 그렇단다. 그 소식에 상위 랭커들의 콘텐츠를 들여다보았다. 상식을 넘는 일탈과 파탄의 소재가 적지 않았다. 개인에게 넘겨준 정보물 제작 편의가 불러오는 역사적·사회적·인간적 해악이 상업적 기획자와 만나 이제는 요원의 불길처럼 보인다.마르셀 모스가 1920년대에 펼친 ‘선물경제(gift economy)’를 소환해 보면, ‘정보자본주의’ 시대가 열린 지금이 그 전형인지도 모르겠다. 선물은 비등가의 속성을 지녀, 경우에 따라선 신성한 경제의 반열에서 볼 수도 있다.찰스 아이젠스테인은 고유성과 관계성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선물경제의 시현을 ‘신성한 경제’라고 했다.그런데 요즘 선물경제 같은 온라인 현장들은 시작부터 사회적 병리현상을 내포한다. 구독자들의 선한 후원 규모가 점점 커지자 아예 그것으로 사업을 삼으려는 일부 콘텐츠 생산자들이 점점 상업적 탐욕을 내보이며 선량한 팬덤 위에서 불량한 암약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천재적인 주제도 아니고, 신출귀몰한 행위적 놀람이나 창조적인 재능의 경이로움도 아니다.상당 수는 더 천박하고, 함부로 행동하고, 자기 비하 내지는 타인 인격 모멸, 심지어 집단적 탈 문명의 인격적 막장까지 주 무대로 한다. 혐오와 충격을 표현 주제로 삼아 반 사회적·반 인문적이다. 신기하고 놀라운 일을 메뉴 삼아 매일 온라인에서 관종 세력과 ‘관종 헌금’을 만들어가려는 시도 자체가 고등한 우리의 문명 의식을 얕잡아 보는 언어도단이다.같은 문제를 투자시장에서도 본다. 연일 온라인을 달구는 투자정보 콘텐츠는 거의가 투자자의 막무가내 행동을 이끌려 출처 불명의 자료를 들고 매일 목청을 돋운다.“지금 안 사면 평생 후회한다”는 소리를 눈 하나 까딱 않고 내뱉는다. 아직 누구도 그 가치의 본령을 알지 못하고 가치평가의 이론적 기반은 더욱 오리무중인 가상자산도 ‘갈 길 먼 실험실 속의 애호자산’ 격이다.미국 자산운용사인 아크 인베스트먼트의 창업자 캐서린 우드도 명색이 기본적 분석의 오랜 경험자임에도 함부로 특정 가상자산의 미래 가격을 예언한다. 큰 운용사의 이코노미스트 등을 거쳐 침착하고 논증적인 펀더멘탈 분석기조의 투자전문가였으나, 사회관계망을 통해 아류의 인기를 얻으면서 충동질과 막말로 투자정보시장의 나변을 들락거린다.사이다 같은 말과 기이한 언행으로, 남의 삶을 깨부수는 파괴적 범죄로 돈을 구하고자 하는 ‘선물경제’의 실험적 성공을 기대하는 정보망 콘텐츠업자들은 이쯤에서 멈추었으면 좋겠다. 익명의 사람들 속에서 만들어진 갑작스런 ‘나만의 성공시대’는 항상 ‘순간’이다. 나중에는 자기 후회와 긴 참회만 찾아온다.국내외 정치인들도 ‘관종 정치’를 멈춰야 한다. 트럼프는 지금 그런 대가를 선거 전에서 힘겹게 치르고 있다. 비슷한 대중 언행을 가진 일론 머스크가 그의 곁을 지키는 모습은, 당락을 떠나 그들에게 언젠가는 비싼 수업료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쎈 자’는 없다. 그저 ‘쎈 척 하는 자’다.엄길청 국제투자분석가/국제투자리서치포럼 회장

2024-10-09 13:40 엄길청 국제투자분석가/국제투자리서치포럼 회장

[브릿지 칼럼] 사라져가는 문화의 심장

이미란 롯데문화재단 마케팅팀 수석지난 7월 개봉한 영화 ‘퍼펙트 데이즈’가 조용히 입소문을 타고 13만 관객을 동원했다. 뒤늦게 이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집 주변에서는 좀처럼 상영관을 찾기가 어려웠다. 멀티플렉스관 상당수 상영관이 ‘베테랑2’를 편성했고 옛 명작들이 조금씩 상영 중이었다. 다행히 최근 집 근처 한 상영관에서 영화가 편성돼 겨우 볼 수 있었다. 나는 2006년부터 약 8년간 정동극장과 명동예술극장에서 근무했다. 좋은 공연이 올라가는 공연장에서 일하는 보람 외에 당시 회사가 위치한 광화문과 명동 일대에는 크고 작은 좋은 공연장과 영화관들이 즐비했다. 마음만 먹으면 한달음에 달려가 휴식과 위안을 느낄 수 있는 특권 같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하지만 여전히 그 자리를 고맙게 지켜주고 있는 씨네큐브를 제외하고는 알찬 클래식 공연이 열리던 금호아트홀 그리고 각종 예술영화를 상영했던 씨네코아, 시네콰논, 스폰지 하우스 등은 문을 닫았다. 한국 영화의 상징이었던 종로 일대의 영화관들도 하나하나 폐관하고 있다. 지난 9월 30일 충무로의 상징과도 같았던 대한극장도 결국 문을 닫았다.도심 속 공연장과 영화관은 단순히 오락과 유희의 공간이 아니다. 사람들의 영혼을 풍요롭게 하고 문화적 경험을 공유하며 일상 속에서 잠시나마 현실을 잊게 하는 정신의 안식처같은 곳이다.특정 연주자가 출연하는 공연과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 OTT 플랫폼과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소규모 클래식 공연장과 기존의 영화관은 그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스타 연주자가 출연하는 고가의 공연은 금세 매진되지만 그 외 양질의 클래식 공연들은 텅 빈 객석을 보기 일쑤다. 손 안에서 쉽게 즐길 수 있는 고화질 콘텐츠의 선호는 멀티 플렉스 영화관의 존재도 위태롭게 만든다.하나 둘 사라져가는 문화의 심장을 살리기 위해서는 업계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클래식 관객을 유입할 수 있는 보다 참신한 기획, 양질의 음악감상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시도, OTT 플랫폼과 협업한 독립영화 및 예술영화 상영 등을 고려해 대중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나아가 지자체의 역할도 중요하다. 새로운 공연장을 만드는 것보다 기존의 문화공간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공연장과 영화관이 단순히 상업적 공간이 아니라 지역 문화 발전의 중요한 축임을 인지해야 한다. 예산 지원, 세금 감면 그리고 문화 행사 장소로서의 활용을 통해 문화적 공간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지원이 필요하다.‘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는 주말에 코인 세탁방에 세탁물을 맡기는 동안 헌책방에 가서 책 한권을 사며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반복되는 삶 속에서 주인공의 안식처가 된 헌책방처럼 누구에게나 안정과 영감을 주는 일상 속 문화공간이 큰 마음 먹고 가야하는 특별한 곳이 아닌 루틴처럼 편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우리곁에 존재해야 한다.영화 속 주인공이 매일 필름 카메라로 찍는 ‘코모레비’(木漏れ日)는 일본어로 ‘나무 사이사이 잠깐씩 비치는 햇빛’을 뜻한다. 지친 일상에서 잠시 하늘을 올려다볼 때 나를 비추는 한 줄기 빛처럼 삶의 위안이 되는 문화공간이 더이상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이미란 롯데문화재단 마케팅팀 수석

2024-10-03 13:26 이미란 롯데문화재단 마케팅팀 수석

[브릿지 칼럼] 화사첨족(畵蛇添足)

오세준 평택대학교 교수.‘Gild the lily’라는 영어 표현이 있다. Gild는 ‘금박을 입히다’, ‘도금하다’라는 뜻으로, gild the lily는 ‘백합에 금박을 입힌다’라는 의미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나온 구절로(To gild refined gold, to paint the lily,..) 줄여서 to gild the lily라고 사용한다. To paint the lily라고도 하고 gild the lily라고도 하는데, 두 표현 모두 비슷한 의미로 불필요한 행동을 할 때 종종 인용된다. 백합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아름다운 꽃인데 굳이 금박을 입혀서 괜히 아름다움에 불필요한 손상을 입힌다는 의미이다. 사자성어로 비유하자면 화사첨족(畵蛇添足)의 의미라고 하겠다.화사첨족(畵蛇添足)은 뱀의 그림에 발을 붙여넣었다는 뜻으로, 고대 중국의 역사서 사기(史記)에 나오는 내용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초나라 회왕(懷王) 시절에 있었던 일로 전해진다. 어느 인색한 사람이 제사를 지낸 뒤, 하인들에게 달랑 술 한 잔을 내놓고 나누어 마시라고 했다. 그러자 한 하인이 나누어 마시기 너무 적은 술이니 땅바닥에 뱀을 제일 먼저 그리는 사람이 혼자 다 마시기로 하자고 제안하였고 모두 찬성했다. 그리하여 바닥에 뱀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너무 빨리 그림을 그린 한 하인이 시간이 남아 뱀에게 발까지 멋지게 그려 넣었다. 그때 막 뱀을 그린 다른 이가 술잔을 재빨리 비우며, 발 달린 뱀이 없음을 지적하니, 발을 그려 넣은 사람은 공연히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후회했다고 한다. Gild the lily, 즉 백합에 금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필요하거나 무의미한 것을 덧붙인다는 뜻이다.우리 속담에는 ‘조리에 옻칠한다’라는 말이 있다. 조리는 쌀을 일구는 도구로, 예전에 우리네 주방에서는 필수로 사용했던 것으로 쌀 속에 든 돌들을 골라내는 도구이다. 요즘은 거의 보기 힘든 조리도구가 되었다. 옻칠이란 나무 재질의 물건에 윤을 내기 위해 옻나무의 수액을 바르는 것인데, 옻칠한 제기의 경우에는 아주 조금 틀어지거나 할 경우, 옻칠의 특성으로 인해 원래 상태로 돌아온다고 한다. 옻칠한 밥그릇에 음식을 담아두면 며칠은 상하지 않을뿐더러, 옻칠하면 옻나무의 수액이 목재 안으로는 스며들고 위로는 비닐처럼 얇은 막을 형성하여 코팅 효과를 내기 때문에 방수와 방습 효과도 매우 좋다. 그러나 옻나무의 수액은 구하기도 어렵지만 많은 시간과 기술 등의 노력이 필요한 힘든 과정이기에 옻칠은 주로 최상품의 가구나 공예품에만 사용되어왔다. 그런데 그저 물을 부어 쌀을 일궈낼 때 아침저녁으로 주방에서 사용하는 흔한 조리에 옻칠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불필요하고 소용없는 일에 괜히 시간과 마음을 쓰고 수고를 하는 경우를 일컫는 표현이다.영어에 ‘Good wine needs no bush’라는 말이 있다. ‘내용이 좋으면 겉치레는 중요하지 않다’라는 뜻이다. 과한 것보다 부족한 것이 낫다고 했다. 사족을 달지도 말고, 백합에 금칠도 하지 말고, 조리에 옻칠도 하지 말도록 하자.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 엄청난 숲이 필요하지 않듯이 형식에 지배당하지 말고 내실을 챙기며 살도록 하자. 형식도 중요한 경우가 있지만, 형식을 위한 형식, 내지는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형식을 삼가도록 하자. 영원할 것만 같던 무더위도 지나고, 어느덧 올 한해도 저물어 가기 시작했다. 차분히 지난 여름을 떠올리며 꼭 필요한 것을 성실히 준비하는 가을이 되도록 하자.오세준 평택대학교 교수

2024-09-30 14:14 오세준 평택대학교 교수

[브릿지 칼럼] 성찰적 인간의 덕목

김시래 부시기획 부사장,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공자는 시중(時中)의 덕목을 군자의 도리로 여겼다. 때와 장소에 맞는 처세술을 강조한 것이다. 비지니스맨의 설득술도 마찬가지다. 눈치없는 놈은 평생 고생이라고 상사가 부부 싸움을 한 다음날 결재 서류를 들고 가는 사람이 있다. 결과는 불문가지다. 비서에게 상사의 심기부터 물어봐야 했다. 점심 이후에 발표를 해야한다면 초반의 집중력을 잡아 줄 위트있는 인삿말이 결정적일수도 있다. 설득은 타이밍의 기술이다. 상대의 수용성이 최고조일 시기를 찾아내라.정보의 배치와 순서에 따라서도 결과가 달라진다. 하느님에게 기도하는 도중에 담배 피워도 되냐고 묻는다면 불쾌해 할 것이다. 순서를 바꾸면 상황이 달라진다. 담배 피우는 도중에 기도해도 되냐고 묻는 것이다. 순식간에 믿음의 부족에서 믿음의 충만으로 뒤바뀐다.법정의 변호사가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을 처음에 해야 유리할까? 아니면 마지막에 해야할까? 초반에 자신의 결론을 밝히는 것을 초두 효과(primacy effect)라고 하고 말미에 주장을 펴는 것을 최신 효과(recency effect)라고 한다.이 때 중요한 것은 설득할 내용의 가짓수다. 설득할 내용이 간단하거나 경쟁자가 별로 없어 설득 메시지가 명확하게 전달될 것이라고 판단되면 처음에 제시하는 것이 좋다. 두 명만 토론할 경우엔 먼저 나서라는 뜻이다. 텅빈 상태에서 듣는 첫번째 이야기라 전달력이 방해받지 않기 때문이다.경쟁자의 수가 작다면 먼저 나서라. 그러나 설득 내용이 많을 경우엔 마지막 순간에 제시하는 것이 유리하다. 발표자가 5명이라면 마지막 다섯번째가 좋다는 말이다. 뒤로 갈수록 메시지가 많아져 기억하기 어렵고 혼선도 생기기 때문이다. 의사 결정 직전의 마지막 정보가 최근 정보로 기억에 남는다는 점에 유의해라. 인간의 뇌는 처리해야 하는 일이 많아지면 앞선 정보를 바탕으로 이후의 정보를 짜맞추는 경향이 있다. 처음에 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전체의 내용을 비교하고 해석하는 맥락 효과는 그렇게 생겨난다.설득의 빈도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짝사랑하는 상대의 앞으로 자주 지나가면 호감을 얻을 것이란 심리학자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첫눈에 기본점수라도 받았다면 가능성이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빨리 돌아서는게 현명하다. 중립이거나 호의적으로 지각된 메시지는 접할수록 호감이 증가하지만 부정적으로 지각된 메시지는 반복해서 접하면 역효과만 쌓인다. 처음에 좋으면 점점 더 좋아지고 처음에 싫으면 더 싫어진다는 뜻이다.광고효과도 마찬가지다. 캠페인 효과가 높지 않다고 판단되면 주저없이 내용을 바꾸어야 한다. 비호감으로 시작한 평가는 횟수가 누적되면 역반응만 초래할 뿐이다.인생도 마찬가지다. 잘못을 알고도 그대로 밀고 나가다 스스로 무덤을 파는 부류를 많이 접했다. 자신의 모자람을 보지 못했거나 모자람을 알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성공 요인이라고 착각한 탓이다. 이런 유형은 자수성가한 중소기업 오너분들에게 많은데 구멍가게 시절의 작은 성공에 취해 아집과 독단의 왕국속에서 우물안 개구리가 되버린 탓이다. 어찌 기업가들 뿐만이랴. 최근의 돌아가는 정국을 보면 성찰적 인간은 학생들에게만 요구할 덕목은 아닌 듯 하다.김시래 부시기획 부사장,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2024-09-29 14:11 김시래 부시기획 부사장,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브릿지 칼럼] 도로 입체화로 도시공간 재생

김현수 단국대학교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동탄신도시를 동서로 나누는 경부고속도로를 지하화하고 지상부에는 축구장 12개 규모의 공원을 조성하는 작업이 진행중이다. 그간 고속도로로 분리되었던 동탄1, 2신도시는 공원과 6개의 도로망으로 연결되면서 생활권이 통합된다. 지상에는 신도시간 연결도로와 공원이, 공원 하부에는 경부고속도로 동탄 터널이, 터널 하부에는 광역환승센터와 SRT, GTX 철로가 위치하는 입체적 구조로 변모한다.강남구 삼성역과 봉은사역 사이의 영동대로 600m 구간이 지하화되고 지상에는 대규모 녹지광장이 들어선다. 이 구간 지하에 폭 63m, 깊이 53m 규모로 조성되는 광역복합환승센터는 철도환승시설과 상업공간으로 조성된다. 지하의 복합환승센터에는 2개의 광역철도, 3개의 도시철도와 광역버스에 더해 공항터미널까지 연결된다. 다양한 교통수단들이 지하에서 연결되고 지상부에는 광장이 조성되면서 전에 보지 못한 입체적 지하도시의 등장이 기대된다.도쿄 시부야역 인근 미야시타 파크는 입체공원의 명소로 세계의 젊은이들을 끌어 모은다. 혼잡하고 땅값이 비싼 도심에 평지공원을 만들기보다, 저층에는 쇼핑, 식당, 호텔을 만들고 옥상에는 공원을 조성해 지가 부담을 낮췄다. 서울에서도 조만간 이와 같은 입체공원을 보게될 듯 하다. 하남시의 유니온파크는 지하에 폐기물처리시설과 하수처리시설을 함께 설치한 환경처리시설이다. 뜨거운 민원을 야기하는 폐기물, 하수처리장을 지하화하고, 그 땅에는 대규모 공원을 조성해 박수를 받는다.도쿄의 혁신공간이 세계의 관광객을 불러들인다. 34년에 걸쳐 일본 최고의 초고층 복합재개발을 성공시킨 아자부다이 힐즈, 도로 지하화로 도심교통체증을 완화하는 복합재개발을 성공시킨 도라노몬 힐즈,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도쿄역 인근 지하에 환승센터를 조성한 미드타운 야에수 등 반도체기술이나 자동차생산에서는 일본에 아쉬움이 없는데, 도시개발분야에서는 뒤처지고 있다.제도정비부터 나서야 한다.철도지하화통합개발특별법(2024) 제정에 따라 철도상부부지개발을 통한 수익으로 지하화사업을 연계할 수 있는 수단이 마련됐다. 지하화 대상구간 선정, 상부부지 개발을 통한 수익, 공공기여의 확보 등 많은 불확실성이 우려되나, 철도로 단절된 도심공간의 연결을 통한 공간혁신의 획기적 기회임이 분명하다.철도역이라는 공공영역과 사적 재산인 건물을 연결하는 일, 공공공간인 철도부지 위, 아래에 사적 재산권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을 필요로 한다. ‘도시계획시설규칙’에도 입체적결정, 중복결정의 근거가 확보됐다.국토계획법 개정(2024)을 통하여 추진 중인 도시혁신구역, 복합용도구역, 입체복합구역의 ‘공간혁신구역 3종’은 이러한 배경에서 도입됐다. 입체화·복합화·컴팩트화하면서도 민간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새로운 도시계획수법들이다. 시행을 앞두고 시행착오가 예상되지만 가야할 길임에 분명하다. 가뜩이나 고밀이고 이해관계가 첨예한 도심에 학교, 공원, 주차장을 설치하는 일도 지난하다. 이에 대한 검토도 필수다. 이런 공간에 창의인력과 혁신기업이 모이고 청년일자리가 생긴다.김현수 단국대학교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

2024-09-26 14:11 김현수 단국대학교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

[브릿지 칼럼] '보호출산제' 환영해야

오창화 전국입양가족연대 수석대표지난 2020년 11월 베이비박스 앞에서 발견된 아동이 초겨울 저체온증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임신과 출산을 가족과 사회로부터 단절되어 혼자 결정해야 했던 생모의 상황을 생각하면, 보호출산제의 문을 열고 위기임산부의 비밀을 보장해 줌으로써 스스로 사회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면 아동의 생명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지난해 수원에서 영아 사망사건이 발생하면서 보편적 출생등록제도의 필요성에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2023년 6월 30일에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 통과됐다. 즉, 병원에서 출산과 동시에 출생등록이 병원에서 자동으로 이뤄지게 된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출생통보제만 단독으로 시행되면 아동의 출생등록을 본인의 호적에 올릴 수 없는 위기임산부들은 산부인과 병원마저 방문할 수 없게 돼, 본인과 태아의 건강을 확인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위험한 낙태를 하거나 병원이 아닌 곳에서 출산을 하게 되는 극심한 상황에 처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사각지대를 방지하기 위해 위기임신보호출산제는 2024년 7월에 출생통보제와 함께 병행 시행됐다.위기임신보호출산제는 아동의 생명을 살리고, 산모와 아동의 권리를 지키는 제도이다. 위기임산부가 극단적 상황에 처해 낙태를 선택할지 고민하다가 보호출산을 선택한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 위기임신보호출산제를 통해 아동의 생명을 지키고, 위기임산부의 건강권도 보호할 수 있다.일각에서는 아동의 알권리를 박탈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위기임산부가 보호출산을 선택하더라도 아동의 알권리, 생부의 권리 등을 포함하는 필수 상담을 받게 된다. 또한 출산 아동으로 태어난 아동의 출생증서를 보존, 관리하고, 정보공개 요청 시 정보공개 절차를 시행하게 된다.위기임신보호출산제의 시행으로 공적인 책임하에서 아동을 보호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위기임신보호출산제가 입양아동을 양산시킨다는 우려를 제기하지만, 위기임신보호출산법이 없다면 유기아동, 베이비박스아동, 시설아동이 양산될 수 있다. 제도로 유입되는 위기임산부는 보호출산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선택하기 전에 원가정양육 상담을 받고, 본인이 직접 아동을 양육할 의사가 없는 경우라도 보호출산 상담에 앞서 입양상담을 진행하고 입양 절차를 안내받는다.위기임신보호출산법은 여성에게 가명으로 출산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함으로써 여성의 선택의 폭을 증가해준다. 남녀간 신체상의 차이로 인해 여성에게는 그동안 출산의 비밀이 보장되기 어려웠다. 보호출산이 남녀 간 신체상의 차이에서 오는 불리함을 극복할 수 있게 해준 면이 있다.대한민국에 위기임신보호출산제가 시행된 지 석 달째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많은 위기임산부들이 도움을 받기 시작했고, 태아의 생명을 지키며 출산을 선택하고 있다.특히 정부가 제공하는 여러 복지제도를 안내받으며 직접 양육을 결정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한다. 위기임신보호출산제는 양육을 포기시키려고 만든 제도가 아니라, 위기임산부를 온전히 도와서 오히려 직접 양육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이다.극심한 고립에 처한 위기임산부가 본인 스스로를 도울 수 있도록 비밀을 보장한 상태에서 사회에 손을 내밀 수 있게 하는 제도이며 태아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인 위기임신보호출산제를 사회가 환영해줘야 할 것이다.오창화 전국입양가족연대 수석대표

2024-09-25 14:38 오창화 전국입양가족연대 수석대표

[브릿지 칼럼] '똑똑한 증여' 저가양수도

윤기호 ㈜감정평가법인 머니플러스 대표이사세무당국은 가족 간의 부동산 거래를 정상적인 거래로 보지 않고 증여로 추정한다. 하지만 가족 간의 부동산 저가양수도인 경우에는 정상적인 거래로 인정되면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증여세가 면제되는 저가양수도의 기준은 어떻게 정해질까.현행 세법은 가족 간 부동산을 저가로 거래한 경우 매수인에게 증여세를 부과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시가와 거래대금의 차액이 3억원을 한도로 시가의 30% 이내라면 정상적인 거래로 보고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딸이 아버지에게서 시가 10억원인 주택을 거래대금 7억원에 매입하는 경우, 시가와 거래대금의 차액이 3억원 한도로 시가의 30% 이내이므로 딸에게는 증여세 납부 의무가 없다. 하지만 거래대금이 6억원이라면 시가와 거래대금의 차액이 4억원이 되므로 3억원 한도를 초과하는 1억원에 대해서는 증여세를 내야 한다.딸에게 주택을 매도한 아버지는 양도소득세를 내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1세대 1주택으로 시가 12억원 이하 주택이라면 양도소득세 비과세특례가 적용된다. 이런 경우에 해당되지 않아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면 양도소득세를 계산할 때 정상거래로 보는 기준은 증여세의 경우와 다르다. 양도소득세 관련 규정에서는 3억원을 한도로 시가의 5% 이내인 경우를 정상적인 거래로 본다.위의 예처럼 시가 10억원의 주택을 7억원에 매도한 경우, 시가와 거래대금의 차액이 시가의 5%(10억원×5%=5000만원)를 초과했으므로 정상적인 거래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 경우에 양도소득세는 거래대금 7억원이 아닌 시가 10억원을 기준으로 계산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다시 정리하면, 가족 간의 부동산 거래에서 시가와 거래대금의 차액이 3억원을 한도로 증여세는 시가의 30% 이내인지, 양도소득세는 시가의 5% 이내인지를 기준으로 정상거래 여부를 판단한다.이쯤 되면 시가는 무엇인지도 궁금해진다. 세법에서 정의하는 부동산 ‘시가’란 불특정 다수인 사이에 통상적으로 성립된다고 인정되는 가액으로 되어 있는데 추상적이다. 거래 대상 부동산의 매매가액, 감정평가액, 보상가액, 경공매가액 등을 시가로 인정하고, 유사매매사례가액도 시가로 본다. 일반적으로 감정평가액과 유사매매사례가액이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유사매매사례가액을 시가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아파트의 경우 유사매매사례가액은 거래대상 아파트와 동일한 단지 내에 있어야 하고, 주거전용면적과 공시가격의 차이가 5% 이내인 동호수에 대한 실거래가격이어야 한다. 물론 평가기간 내의 거래로서 관할 관청에 신고된 실거래가격이어야 한다. KB아파트시세 등은 유사매매사례가액에 해당되지 않는다. 따라서 실무적으로는 감정평가액을 시가로 많이 활용하고 있다.초고령화 사회가 급격히 진행되는 상황에서 노부모는 유일한 자산인 부동산을 적절한 가액으로 자녀에게 저가양도함으로써 증여세와 양도소득세를 절세하고, 매각자금을 노후 생활자금으로 활용한다면 일거양득의 현명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윤기호 ㈜감정평가법인 머니플러스 대표이사

2024-09-23 14:09 윤기호 ㈜감정평가법인 머니플러스 대표이사

[브릿지 칼럼] 안젤라 게오르규, 비평과 비난 사이

주순이 한국메세나협회 경영기획팀장·경영학 박사한 대학교 글로벌스포츠산업학과에 재학 중이라는 학생이 지난달 게재한 ‘파리 올림픽을 빛낸 스포츠 마케팅’ 칼럼을 보고 메일을 보내왔다. 수업의 일환으로 스포츠 마케팅에 관한 칼럼 비평문을 작성하는 과제를 수행 중인데 자신이 작성한 비평문을 보고 의견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올림픽이 지나치게 상업화됐으며 겉으로는 멋지고 새로운 개막식이었으나 선수단 출신 국가를 잘못 소개하는 등 보여지는 것에만 집중하느라 정작 중요한 부분에서 실수가 있었다”는 생각을 밝혔다. 스포츠의 역할, 스포츠가 지나치게 상업화될 경우의 문제점 등 다양한 논문자료를 찾아 반박의 근거를 조목조목 적었다. 스포츠의 가치를 손상시키는 과도한 스포츠 상업주의를 누군들 찬성할까. 그러나 파리올림픽 개막식 운영의 실수를 후원 기업 스포츠 마케팅과 연관짓는 것은 비평의 기제가 다르다. 기업 후원의 중요성을 강조한 내용임을 설명하며 내 칼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세심하게 비평을 해줘 고맙다고 회신했다.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좋았겠지만 큰 행사를 개최함에 있어 크고 작은 실수와 사고는 있기 마련이다. 비단 실수뿐 아니다. 문화 차이,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의견 등을 대하는 모습은 참으로 냉정하다. 때론 공격에 가까울 때도 있다.최근 이슈가 되었던 오페라 사상 전무후무한 성악가의 ‘무대 난입’ 사건을 보자.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한 오페라 ‘토스카’ 마지막 공연에서 벌어진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의 무대 매너에 대한 비난여론은 혹독했다. 남자가수가 솔로 앵콜곡을 부르는 중 게오르규가 무대에 올라와 항의해 극의 흐름을 방해했다. 결국 커튼콜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퇴장했다. 이후 커튼콜 파행, 까탈스러운 성깔머리, 몰상식한 매너, 이름값 못한 디바 등 비난과 조롱이 온라인을 달궜다. 심지어 전남편에 대한 험담 기사도 나왔다. 주최사인 서울시오페라단에게 책임을 묻자는 얘기도 있었다.세종문화회관이 게오르규 측에 사과를 요청하겠다고 했고 논란이 걷잡을 수 없게 되자 게오르규는 “앙코르를 하지 않기로 사전 합의가 됐다”고 반박했다. 서울시오페라단은 계약 조건에 앙코르에 관한 내용이 없었다는 입장문을 내며 이 사건은 ‘누구의 말이 진실인가’ 양상으로 치달았다. 잇단 비난과 비방, 인신공격 그리고 끝끝내 책임자를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격한 언어들이 안타까웠다.긍정적인 변화를 위한 비판이나 비평, 공연의 작품성에 대한 기사가 아쉬웠다. 어떤 결말이 나든 그녀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보여진, 프로답지 않은 태도는 어떤 말로도 정당화되기 어렵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논란은 곧 해프닝으로 끝나고 잊혀지겠지만 게오르규는 그 많던 한국팬의 상당수를 잃게 됐음은 틀림없어 보인다.그러나 이번 논란으로 뜻밖의 정보를 알게 됐다. 오페라 공연 중 앵콜곡을 부르는 것이 실례가 아니라는 것. 덩달아 오페라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토스카’와 푸치니를 검색해보고 게오르규의 젊은 시절 노래부르는 모습과 베이스 바리톤 사뮤엘 윤 그리고 주제곡을 사무치게 잘 부르는 바람(?)에 이번 앵콜 사건의 사달이 된 테너 김재형의 기사와 공연영상도 찾아서 보았다. 그들의 영상과 음악을 보며 새삼 오페라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지금 막 칼럼 비평문을 써보낸 그 대학생에게서 또 메일이 왔다. 본인 또한 기업들의 후원 중요성에 동의한다며 답장해 주어 고맙단다. 아니다. 내가 더 고맙다.주순이 한국메세나협회 경영기획팀장·경영학 박사

2024-09-22 14:16 주순이 한국메세나협회 경영기획팀장·경영학 박사

[브릿지 칼럼] 퇴색된 가족의 쓸모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모든 건 변한다. 특히 한국의 제반변화는 남다르다. 압축·고도성장을 이끌어낸 ‘빨리빨리’가 한 몫 했다. 무에서 유를 불러낸 원동력은 혁신이라 불리는 시대변화에의 발 빠르고 동물적인 적응DNA 덕이다. 잠깐만 쳐져도 못 따라갈 정도다. 개중 하나가 가족관이다. 갈수록 가족을 본능적 애정관계에서 경제적 편익상대로 보는 트렌드가 확산세다.가족도 변한다. 어제의 가족과 오늘의 가족은 사뭇 구분된다. 가족본연의 본질·가치마저 변할까만은 뜯어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오늘의 MZ세대는 가족의 쓸모를 다양한 잣대로 비교·검토한다. 해서 0.72명(2023년)의 출산률을 보건대 본능조차 포기되는 사회답게 가족을 둘러싼 상식수정은 자연스럽다. 이대로면 ‘가족은 없다’에 후속세대의 몰표가 쏠릴 터다. 세계를 놀래킨 무지막지한 속도·범위와 함께다. 그렇다면 상식·모범이란 수식어가 붙던 표준가족의 운영질서는 옅어진다. 가령 부모자녀의 4인형 평균모델이 기준점인 조세·복지·행정 등 제반제도도 바뀌는 게 맞다.유행을 선도하는 패턴은 1인화다. 벌써 절반에 가까운 42%가 싱글세대다. 30대와 60대 이후가 주력집단이다. 환갑이후 늙음에 비례한 1인화는 그나마 일반적이다. 이혼·사별 등 인생 후반전일수록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포인트는 젊은 1인화다. X세대에서 보였던 나혼자의 낌새가 MZ로 넘어오며 확산한 게 30대 단신거주 트렌드로 이어진 듯하다. 앞으로의 1인화는 이례적인 모델이 아닌 주류적인 스타일로 흡수될 전망이다.가족의 쓸모는 분해된다. 평생 영향을 미치는 게 가족이니 그 부재·포기는 뚜렷한 이유 없이는 설명되기 어렵다. 바통터치처럼 이뤄지던 ‘자녀부양→현역자립→부모봉양’이 없는 신생활을 뜻해서다. 먼저 1인화는 분화단계에 진입한 MZ의 가족포기로 나타난다. 결혼·출산이란 생애이벤트에 맞서 나홀로가 낙점된 경우다. 1차 가족과의 해체 후 2차 가족에의 분화 없는 생활형태를 뜻한다. 0.72명의 출산율로 귀결된 원인인자와 맞물린다. 최소한 자녀양육의 경제학적 가성비가 낮다(편익비용)는 뜻이다. 덧대면 자녀미래의 불확실성도 예비부모의 의사결정을 압박한다. 요컨대 노예인생은 본인으로 끝이란 투의 슬픈 자각이 그렇다.부양의 쓸모가 청년그룹의 주도변화라면 봉양의 쓸모는 전체세대를 아우른다. 노년부모뿐 아니라 중년자녀 및 청년손주까지 쓸모변화의 영향권에 들어선다. 비유하면 ‘마처세대’가 떠오른다. 부모를 모시는 마지막 세대지만, 자녀로부터 정작 부양을 못 받는 처음이란 의미다. 이로써 자녀효도를 통한 부모노후의 안전장치라는 봉양구조는 급격히 붕괴된다. 자녀편익 중 보험기능의 상실이다. 실제 MZ세대의 결혼조건 중 선순위가 부모자립형 노후준비란 점에서 봉양실종은 구체화된다. 결국 1인화를 택한 청년인구의 노년복지는 철저히 각자도생 혹은 정부위탁일 수밖에 없다. 가족이 없으니 당연지사다. 관계단절 속 고독사의 공포를 보완·대체할 움직임이 거세지는 배경이다. 이런 점에서 봉양의 쓸모를 둘러싼 재구성은 좀더 씁쓸하고 긴박하게 쪼개진다.이제 핵개인의 쓸모만 남는다. 가족의 퇴색된 쓸모만큼 개인의 강화된 역할이 중시되는 시대다. 어쩌면 인류역사가 축적·강화시켜온 가족분화형 인생행복의 값어치가 2024년 한국사회에서 최초로 거세게 거부되는 게 아닌가 싶다. 본능에 맞서 DNA를 바꿔가며 가장 잘 살아내는 인생모델로 한국청년이 택한 게 1인화일지 몰라서다. 가족의 쓸모가 의심받고 수정된다면 심상찮은 일이다. 십분 양보해 자연스런 진화경로일지언정 변화가 불러올 충격최소를 위한 연착륙은 필수불가결하다.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2024-09-19 14:08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브릿지 칼럼] 강요하지 마세요

안미경 예담심리상담센터 대표·교육학 박사초등학교 교사가 학교 복도를 지나던 중이었다. 저만치에 늘 문제의 중심에 있던 아이가 다른 아이를 뒤쫓아가 가방을 던져 맞추더니 다가가 때리기까지 했다. 문제를 해결할 요량으로 두 아이를 불러다 화해를 시키려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부딪힌 거라고 발뺌하는 아이에게 “선생님이 봤다”며 사과할 것을 요구했지만 맞은 아이가 그 사과를 받지 않겠다고 거부해서다. 상대방이 사과해도 진심이 아닐 것이 자명하고 신뢰가 없는 아이의 사과를 받고 화해를 하는 건 더욱 하고 싶지 않다는 데서 기인한 거부였다. 친구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아이의 단호한 결심과 판단이 의아했는데 살펴보니 그럴 법도 했다. 그를 때린 아동은 친한 친구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학교 안에서 거칠 것 없이 행동했다. 친구들을 괴롭히기 일쑤였고 자기 행동을 지적당하면 뉘우치거나 사과하기는커녕 이를 부인하거나 교사의 지시까지 대놓고 무시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어린아이라도 상대의 진심을 가름할 요량은 갖췄을 수 있고 사과받고 싶지 않은 거부의 권리, 화해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은 수용돼야 한다.화해가 완벽한 문제의 결말인 듯 갈등 해결을 종용하는 행위는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 있다. 누군가의 지적처럼 화해가 강요된다면 그건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 아직 어리다고 함부로 그 마음을 재단하거나 지시해선 안 된다. 헤아리는 게 우선이다. 상대를 위한다는 이유로 화해가 강요된다면 이런 모순이 어디 있을까. 이는 종종 부모들이 자녀들을 상대로 수없이 저지르는 무의식적 ‘만행’이기도 하다.다행히 교사는 금방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렸다. 맞은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기 보다 폭력이라는 문제 상황을 서둘러 종결하려 했던 데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좋은 게 좋다지만 정말 그럴까. 내게 좋다고 너에게도 좋다는 확신은 지나친 자기 중심성에서 기인한다. 너와 내가 어떻게 같을 수 있을까. 서로의 위치와 입장이 제각각이고 사람의 마음도 한둘이 아닌 데다 시시각각 움직이는데 말이다.추석 명절을 앞둔 딩크족 내외는 8년째 자녀출산을 요구하는 부모를 또 어떻게 봬야 할지 고민이 컸다. 아무리 설명해도 명절마다 반복되는 은근한 언급이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다. 조모와 함께 사는 30대 싱글 직장인은 명절이면 조모를 보러 집에 몰려오는 친척들을 피해 도망가는 것이 한가위를 보내는 패턴이 됐다. 안부를 묻는다는 명목 하에 결혼 얘기를 밥상머리에 얹는가 하면 다 큰 조카들 용돈으로 목돈을 뜯겨야 하는 게 싫어서 찾게 된 궁여지책이다.아무리 일리 있고 바람직한 방향의 이야기라도 전달방식이 ‘강요’라면 불편하기 마련이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이에게 혹은 다양한 신념의 소유자에게 사회적 통념이나 올바름, 유익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압력과 간섭은 적절하지 않다. 자기 삶을 어떻게 채워나갈지는 본인의 때에 본인의 속도와 방식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도 타인의 인생을 책임질 수 없다. 무엇이 옳다고 또 이래야 한다고 가르치고 명령할 수 있을까. 스스로의 마음을 돌보고 책임지며 드러내는 일은 옳고 그름을 떠나 저마다의 방식이 온전히 수용돼야 한다. 자신과 다른 상대의 마음을 바꾸려 애쓰기보다 경청하고 헤아리는 만큼 포근한 세상에 좀더 다가가게 될 것이다.안미경 예담심리상담센터 대표·교육학 박사

2024-09-18 14:13 안미경 예담심리상담센터 대표·교육학 박사

[브릿지 칼럼] 현세대 위해 그린벨트 풀어야

최현일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교수최근 그린벨트를 풀어서 청년과 서민들을 위해 공공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정부계획에 일부 시민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그린벨트는 1971년 도입돼 그동안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방지와 자연환경 보전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그러나 1998년 헌법재판소에서 그린벨트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결이 나왔으며, 2003년 서울지방법원에서는 토지개발권 사유제하에서 그린벨트 토지 보상제를 실시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라는 판결이 나오는 등 사유재산권 침해논란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린벨트로 묶여 있는 토지를 활용할 수 없어 토지부족에 따른 부동산 가격 상승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우리나라의 경우 국토가 좁고, 산이 70%로 가용 토지가 적어 토지가격이 부동산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서울의 경우 택지고갈로 주택을 공급할 토지가 없기 때문에 주택가격은 매년 상승하고, 청년과 신혼부부 같은 젊은 세대들의 내 집 마련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그린벨트를 풀어서라도 젊은 세대들을 위한 공공주택을 대량 공급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그린벨트는 이미 김대중 정부에서 외환위기 극복의 일환으로 외국인 투자와 서민 주거안정을 이유로 역대 정부 중 가장 많은 면적을 해제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두 번째로 많은 654㎢를 해제했으며,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도 각각 75.18㎢, 32.8㎢를 해제했다. 문재인 정부는 3기 신도시 건설을 위해 약 100㎢의 그린벨트를 풀었다.그린벨트를 풀어 공공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정부계획에 일부 시민단체가 반대하는 이유는 미래세대를 위해 그린벨트를 보존하자는 주장이다. 반대로 정부는 현재의 젊은 세대인 청년과 신혼부부들도 미래세대라는 주장이다. 현재의 청년과 신혼부부들도 미래세대로 본다면 그린벨트를 공익적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을 찾아야 한다.미래에는 산업화 시대만큼 토지수요가 많지 않을 수도 있다. 먼저, 미래에는 인구감소로 주택수요가 감소하기 때문에 택지수요도 감소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도시에서 가장 많은 토지를 필요로 하는 곳이 주택공급을 위한 택지였다. 지금까지는 도시화로 인한 인구집중으로 주택공급을 위한 많은 택지가 필요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인구감소로 주택수요가 줄고, 택지수요도 감소할 것이다.또한 미래에는 산업화와 고도성장 시대만큼 산업용 토지수요가 많지 않을 수 있다. 산업화의 퇴조와 저성장 시대에는 공단조성과 공장 같은 물리적 시설물의 감소로 이어져 토지수요는 감소할 것이다.지나친 주택가격 급등으로 청년과 신혼부부 등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세대의 내 집 마련은 갈수록 힘들어지고, 전월세 부담은 증가하고 있다. 주택가격의 급등 원인이 토지가격의 상승에 있는 만큼 저렴한 토지를 많이 공급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특히, 주거비 부담으로 고통 속에 빠져있는 젊은 세대들을 위해 그린벨트를 풀어서라도 싼 주택을 대량 공급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그린벨트를 풀어 젊은 세대의 주거문제도 해결하고, 일자리 창출을 통한 국가경쟁력도 강화한다는 공익적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방안을 찾아야 한다.최현일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교수

2024-09-12 14:19 최현일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교수

[브릿지 칼럼] 기본소득은 강제 배급이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기본소득 도입 관련 주장이 계속되고 있어 논란이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이들은 모든 국민에게 정기적으로 일정 금액을 지급함으로써 경제적 안전망을 강화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주장은 듣기 좋은 말처럼 들리지만, 기본소득이 실질적으로는 단순한 강제 배급에 불과하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기본소득은 복지제도를 무력화시킨다. 기존 복지 시스템은 보통 개인의 필요와 상황에 맞춘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는 개별적 요구를 충족시키고, 사회적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등 주어진 예산 하에서 세밀한 조정을 가능하게 한다. 반면, 기본소득은 모든 시민에게 동등하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보편적인 방식으로 접근한다.이로 인해 기존의 복지제도가 지향했던 세심한 지원과 조정이 무시되며, 결국 복지 제도의 목적이었던 맞춤형 지원을 희생시키고 다양한 사회적 요구와 개별적 필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이러한 획일적 접근은 결국 복지 제도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효과 자체를 감소시킬 것이다.기본소득은 강제 배분일 뿐이다. 기본소득 제도는 국가가 모든 시민에게 무조건적으로 자금을 지급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선택권과 자율성은 제한된다. 기본소득이 자발적 의사 표현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제도는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자유를 억압하는 강제적 시스템들이 도출했던 부작용의 심각성은 이미 역사적으로 무수히 증명됐다. 기본소득 제도의 강제 배분적인 형태로는 사회적 비효율을 초래할 위험이 매우 크다.기본소득은 재원이 국민에게 돌아가는 것보다도 더 큰 비용을 초래한다. 기본소득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정적 자원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세금 인상이나 국가의 다른 재정 자원을 전용해야 할 수도 있다. 이는 국민에게 추가적인 경제적 부담을 줄 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의 안정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세금을 걷는 비용과 다시 배분하는 비용, 그리고 그런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행정조직 비용을 고려하면 우리 사회의 비효율은 더욱 커질 것이다. 또한 국가부채와 세수 부족 문제에 빠진 정부의 현 상황에서 기본소득 도입 시 발생할 혜택보다도 더 큰 재정적 부담 문제에 부딪힐 것은 불 보듯 뻔하다.획일화된 자금 지원정책은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리고 사회 구성원들을 매너리즘에 빠지게 만들 위험이 있다. 실업 급여와 기초수급자 등의 각종 복지정책을 악용하는 사례가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대상들을 선발해 운영하는 정책도 각종 문제가 발생할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국민 모두에게 획일적으로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정책은 무책임한 정책이 아닐 수 없다.개인의 환경, 특성, 재산 등을 고려하지 않은 무차별적인 지원은 결국 복지 시스템과 경제 전반에 혼란을 야기한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라는 말처럼, 기본소득이라는 포퓰리즘적인 정책은 실질적인 문제를 회피하는 것에 불과하다. 실제적인 원인을 깊이 분석하고 신중하게 접근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기본소득 제도의 진정한 의도를 살펴보아야 하며, 장기적인 사회적 목표와 경제적 안정성을 모두 고려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태도가 중요하다.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

2024-09-11 14:23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

[브릿지 칼럼] 딥페이크 근절 대책 서둘러야

김동수 원광디지털대 교수딥페이크란 인공지능(AI)을 이용해 특정인의 얼굴과 나체 사진 또는 영상을 합성 조작하는 일이다. 최근 성 범죄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딥페이크 사진·영상을 만들어 유포하는 범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인공지능 기술이 빠르게 발전함에 따라 사회·경제·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공지능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이를 통해 국민의 삶 전반에 걸쳐 혁신적인 변화가 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인공지능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정책들을 담은 법률을 제정하고 있다.한편 인공지능의 기술적 발전은 디지털 양극화, 정보격차 심화, 사생활 침해 등의 잠재적 부작용과 사회적 문제를 동시에 안고 있어 법·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텔레그램 딥페이크 피해 학교 500여 곳이 목록에 실리면서 전국 초·중·고와 대학이 초비상 사태를 맞게 됐다. 여성 군인을 대상으로 한 성 범죄물이 제작·유포된 정황까지 드러나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딥페이크 성범죄의 안전지대가 없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교육부, 각 교육청이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피해 사례가 더 나올 것으로 본다. 딥페이크 성 범죄는 제작·유포의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청소년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이미 어제와 오늘의 일이 아니다.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7월 딥페이크 성 착취 범죄 신고가 무려 297건이나 접수됐다. 입건 피의자 178명 중 10대가 131명(73.6%)에 달했다. 더 걱정되는 것은 소셜미디어 사용과 사진 공유가 일상인 10대들이 딥페이크 합성물을 만들고 공유하는 것이 범죄 행위라는 인식을 못 하고 있다는 점이다.관련 당국은 이런 범죄가 알려지면 온갖 대책 마련에 분주하지만 그때 뿐이다. 딥페이크는 명백한 범죄 행위다. 근본적으로 뿌리를 뽑아야 한다. 하루빨리 종합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솜방망이 처벌만으로는 딥페이크 성 범죄를 차단할 수 없다. 실제로 2020년 이후 지난해까지 딥페이크 성 범죄 관련 판결 71건 중 35건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고 한다.‘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의2(허위 영상물 등의 반포 등)에 따르면 반포 등을 할 목적으로 사람의 얼굴·신체 또는 음성을 대상으로 한 촬영물이나 영상물 또는 음성물을 영상물 등의 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형태로 편집·합성 또는 가공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돼 있다.이 양형기준부터 대폭 상향할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8월부터 딥페이크 영상 등 가짜뉴스·혐오 표현을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가 삭제하도록 하는 ‘디지털 서비스법’을 시행하는 등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우리도 AI 산업 발전을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여·야·정이 딥페이크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종합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22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발의가 됐다. ‘딥페이크 방지법’으로 불리는 ‘인공지능 산업육성 및 신뢰 확보에 관한 법률’ 안이 12월 10일까지 100일 동안 열리는 정기국회에서 꼭 통과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김동수 원광디지털대 교수

2024-09-09 14:02 김동수 원광디지털대 교수

[브릿지 칼럼] 한 지붕 두 가족 '키아프리즈'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더이상 서울의 가을은 편지를 쓰는 계절이 아닌 미술의 향연이다. 2002년부터 시작한 키아프(KIAF)는 우리 미술계의 가장 큰 행사다. 2021년부터 세계적 아트페어 프리즈(Frieze)와 협업 중이다. 콜라보 3년차에 접어든 키아프와 프리즈는 천생연분일까? 아니면 불편한 동거일까?올해 키아프에는 22개국 206개(해외 74개) 갤러리가, 프리즈에는 32개국 112개(국내 31개) 갤러리가 참가했다. 각각 350여개, 330여개가 참여했던 2022년, 2023년 상황과 비교할 때 갤러리 숫자는 확연하게 줄었다. 양 보다는 질을 추구하는 가운데 두 페어의 협업은 티켓 공동화에서 확인된다. 행사기간 내내 프리즈와 키아프를 모두 관람하는 티켓은 25만원, 1일 관람권은 4∼8만원에 판매됐다.아트페어는 방문객들에게 수많은 작품들을 선보인다. 고가의 작품을 구매할 경제력이 없어도 아트페어를 찾는 이유는 눈요기에 있다. 하지만 박람회를 뜻하는 페어(Fair)는 기본적으로 상업성을 추구한다. 전시에 방점을 두는 비엔날레(Biennale)와 매매를 추구하는 경매(Auction)의 중간쯤으로 볼 수도 있지만 매출이 없으면 페어(Fair)는 그야말로 Farewell(안녕)일 뿐이다. 키아프는 출범 이후 매년 양적으로 성장하며 한국에서의 미술 대중화에 큰 공헌을 했지만 막상 손에 쥔 손익계산서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세계적인 인지도를 자랑하는 미술장터 프리즈와 손잡은 키아프는 소수 컬렉터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해외 큰손 구매자들에게 손을 내밀었던 것이다. 프리즈를 찾는 해외 컬렉터들이 키아프까지 찾아주기를 기대하면서.하지만 올해 역시 프리즈에만 사람들이 몰리고 키아프는 비교적 한산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키아프가 여러 측면에서 프리즈를 벤치마킹한 흔적이 보인다. 프리즈가 자랑하는 ‘프리즈 마스터즈’를 본따 ‘정통성을 자랑하는 국내외 모던명작을 집결’하는 ‘마스터피스’ 전을 그랜드불룸에서 선보였다. 나아가 참가국적 및 공간·장르적 확장을 키워드로 삼았다. 해외 갤러리에 문호를 더 개방하고 전시 면적을 넓혀 기존의 회화, 조각 위주의 틀에서 벗어나 미디어·디지털·퍼포먼스 등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프리즈 역시 최근 문화예술 분야에서 가장 핫하게 떠오르는 한국으로 영향력을 키우면서 빅샷 아트페어들에 앞서 아시아 영역을 선점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프리즈 참가 갤러리 중 63%가 아시아권이며 아시아 색채와 조화를 강조하며 21개 한국 갤러리들에게 첫 참가를 허락했다.그럼에도 키아프도, 프리즈도 서로 원하는 만큼의 시너지를 얻지 못한 듯하다.환상의 콤비는 서로의 약점을 덮고 강점을 돋보이게 한다. 한지붕 두 가족이 적과의 동침이 될지 잉꼬커플이 될지 역시 서로의 강점을 얼마나 돋보이게 하는지에 달렸다. 해외 명품과 신토불이의 콜라보가 성공하려면 각자의 개성을 더 살려야 한다. 이에 프리즈의 아시아화는 다소 아쉽다. ‘키아프리즈(키아프+프리즈)’의 협업 계약은 5년이며 양 페어의 대표는 5년 이후에도 함께 갈 것이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매출 성적표가 이들의 동행을 보증하지 못할 가능성도 다분해 보인다. 관람객, 관심의 증가만으로는 이산가족이 될지도 모른다.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2024-09-08 14:07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

[브릿지 칼럼] AI 시대의 지적재산권

전소정 변리사최근 발생한 미성년자들의 딥페이크 성범죄 사건은 우리 사회에 AI 시대의 신종 범죄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사건들이 지속적으로 발생되고 있어 최근 캘리포니아 주는 AI로 아동 성적 학대 이미지와 비디오 제작 행위 자체를 금지한다는 내용을 딥페이크 법안에 포함시켰다. AI는 인류에게 드라마틱한 편의를 제공하고 있지만, 예상치 못한 범죄들을 너무 쉽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양산하고 있다. 그렇다면 AI 시대 우리의 지식재산권은 범죄와 불법으로부터 과연 안녕한가?잠시 AI와는 다른 얘기를 해보겠다. ‘얼굴 없는 예술가’로 알려진 영국 그라피티 아티스트 뱅크시의 상표권과 저작권 문제이다. 그의 진짜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 뱅크시는 1990년 정도부터 이름과 얼굴을 숨긴 채 세계 곳곳을 누비며 담벼락 등에 사회 풍자적 벽화를 그려왔다. 그러나 한 연하장 업체가 뱅크시 작품을 이용해 연하장을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뱅크시는 작품을 공유하자는 것이지 특정인이 사유화하는 것을 허락한 것은 아니었다. 이 과정에서 2019년 영국에서 상표권 분쟁이 제기되었다. 해당 연하장 업체가 뱅크시(페스트 컨트롤)를 상대로 상표권 등록 무효를 주장한 것인데, 유럽연합지식재산청(EUIPO)는 2021년, 연하장 업체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유인즉슨, 첫째, 상표권의 취지는 소비자가 상품 출처를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데, 뱅크시는 타인의 상표 등록이나 사용을 막겠다는 악의적 이유로 상표 등록을 했다는 것이다. 둘째, 뱅크시의 권리를 대리한 페스트 컨트롤이란 업체가 뱅크시로부터 저작권을 넘겨받았다는 어떤 증명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올해 1월, 항소심 결정에서는 뱅크시의 손을 들어주었는데, EU항소위원회는 페스트컨트롤의 상표권 출원이 상표를 이용할 의사가 없는 행위라는 연하장 업체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뱅크시의 존재와 철학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뱅크시의 사례가 AI시대의 지재권 문제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뱅크시가 상표권 분쟁에 휩싸인 이유는 그의 ‘익명성’ 때문이었다. 그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고 실명으로 활동하면 아무 문제가 될 수 없는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익명성을 유지하는 존재에게 상표법의 보호를 허락할 것인지가 문제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생성형 AI가 저작물을 만들어 냈을 때 법인격을 특정할 수 없는 생성형 AI에게 저작권을 인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와 연결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뱅크시의 상표 등록과 저작권이 무효가 되었다고 볼 수 없다면, AI가 만들어 내는 저작물이나 디자인에 대한 법적 보호도 다시 생각해 볼 문제이다.2023년에 제작된 ‘여명의 자리야’(Zarya of the Dawn)라는 만화는 작가 크리스 카지노가 생성형 AI를 사용해 제작한 만화이다. 이야기와 구성은 인간 작가가 작성했지만 그림의 상당 부분은 AI를 통해 만들었다. 작가는 이 만화에 대한 저작권을 등록하려 했으나, 미국 저작권청은 AI가 그린 그림에 대해서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AI가 법인격을 인정하거나 특정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법적 보호를 해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만으로 AI로 만든 작품에 대한 지재권을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것이 가능할까? AI 시대에는 ‘법인격’과 ‘창작’의 개념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해질지 모른다. 이 문제에 대해 AI에게 물어보면 뭐라 대답할지 궁금해진다. AI의 대답을 듣기 전에 우리의 치열한 고민이 선행되길 바란다.전소정 인탤런트 특허법률사무소 변리사

2024-09-05 14:10 전소정 인탤런트 특허법률사무소 변리사

[브릿지 칼럼] 전월세 상한제, 단계적 폐지 방안 마련해야

박성복 파이터치연구원 연구실장전월세 상한제가 도입된 지 4년이 지났다. 2020년 7월부터 시행된 전월세 상한제는 임차인이 전월세 계약 갱신을 요구할 경우 전월세 가격 인상률을 5% 이내로 제한하는 제도다. 전월세 가격의 과도한 상승을 억제함으로써 임차인의 주거 안정을 도모하는데 그 취지가 있다. 그러나 전월세 상한제가 오히려 전월세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목되면서 제도 폐지 논의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다.최근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전세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은 2023년 5월 넷째 주를 시작으로 2024년 8월 셋째 주까지 66주 연속으로 올랐다. 이 기간 누적 상승률은 7.63%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갱신 계약이 완료된 전세 물량이 시장에 풀리기 시작하면 전세 가격은 더욱 가파르게 오를 수 있다. 지난 4년간 시세만큼 올리지 못했던 집주인들이 신규 계약 체결 시 전세 가격을 한꺼번에 올릴 것이기 때문이다. 또는 향후 4년간 가격 상승분을 미리 반영해 전세 가격을 올려 받으려는 집주인도 있을 것이다. 어느 경우든 전세 가격을 상승시키는 압력으로 작용한다.그 동안 전월세 상한제의 이런 문제점은 여러 차례 지적돼 왔다. 파이터치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전월세 상한제 도입으로 2년간(2020년 6월~2022년 5월) 신규 계약과 갱신 계약의 전월세 가격 격차는 21% 확대되고, 전월세 평균 가격은 8.1%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상한제를 적용받는 전월세 계약(갱신 계약)의 경우 전월세 가격 인상률이 5% 이내로 제한되지만, 상한제를 적용받지 않는 전월세 계약(신규 계약)의 경우에는 임대인이 전월세 가격을 직접 설정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후자의 전월세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전월세 평균 가격은 상한제 도입 전 대비 오히려 상승한다.이 같은 분석 결과를 뒷받침하는 실사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일례로 국토교통부의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2021년 7월 마포구 마포래미안푸르지오(59.96㎡) 전세 계약의 경우 상한제를 적용받는 갱신 계약은 보증금 6억3000만원에 계약됐지만, 상한제를 적용받지 않는 신규 계약은 8억 6000만원에 계약됐다. 최근 2024년 7월에도 동아파트에서 갱신 계약은 6억4000만원에 계약된 반면, 신규 계약은 7억8000만원에 계약된 바 있다. 주목할 것은 전월세 상한제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이 같은 부작용이 단기적인 현상일 뿐 장기적으로는 해소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시행 4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여전히 발생되고 있다는 점이다.정부가 전월세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전월세 상한제는 이중가격 문제를 발생시키고, 결과적으로 전월세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따라서 전월세 상한제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기도 하다. 다만, 당장 폐지 수준의 개정이 이뤄질 경우 급격한 전월세 가격 상승으로 임차인의 부담이 증가될 수 있다. 그러므로 현행의 5% 상한률을 법 개정 1년차에는 7%, 2년차에는 10%로 완화한 후 3년차부터 완전히 폐지하는 등의 단계적 폐지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타당하다.박성복 파이터치연구원 연구실장

2024-09-05 06:09 박성복 파이터치연구원 연구실장

[브릿지 칼럼] 차기 한국섬진흥원장에 바란다

양진형 한국섬뉴스 대표한국섬진흥원(이하 한섬원)을 이끌어 갈 제2대 원장의 공모가 지난 22일 마감됐다. 한섬원은 ‘섬발전촉진법’에 의거, 섬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조사·연구·정책수립·진흥을 목적으로 2021년 10월 8일 출범했다.초대 원장은 행정안전부 고위직 공무원 출신이었다. 그는 실사구시적 관점에서 새로운 섬 정책을 개발해 우리의 섬을 ‘살고 싶은 섬’, ‘찾고 싶은 섬’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섬 교통체계 혁신방안 연구’ 등 섬 발전을 위한 연구와 신생조직의 안정화, 조직의 외연 확대 등에 주안점을 두고 3년간 조직을 이끌었다. 하지만 섬 주민 실생활의 곳곳에 내재한 불편함을 개선하는 데는 미흡했다는 평가가 나온다.현재 섬에 사는 주민들은 조선 후기에 육지에서 섬으로 이주한 사람들의 후손들이 대부분이다. 당시 육지를 떠나 섬으로 이주한 선조들은 이전보다 나은 삶을 꿈꿨다. 반대로 산업화 이후 많은 섬사람이 육지로, 대도시로 더 나은 삶을 위해 떠났다. 대부분 섬의 인구는 전성기의 10분의 1 수준으로 다운사이징(Downsizing) 됐다.오늘의 섬 환경은 고령화와 인구감소 외에도 무분별한 섬 개발, 기후변화로 인한 바다 생태환경과 농업구조의 변화, 밀려드는 해양쓰레기, 태양광과 해상풍력발전소 설치 등으로 급변하고 있다. 이런 상황 에서 한섬원은 지속 가능한 섬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 출범했다.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는 말이 있듯이 82만 섬 주민들에게 한섬원이 신뢰와 희망을 주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현재 한섬원의 기능과 역할이 기존 행안부 섬 정책과 연관성이 커서, 해양수산부와 환경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주관하는 별도의 섬 사업과 조화를 이루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측면도 있다.차기 섬진흥원장은 여러 중앙 부처들로 다변화된 섬 정책을 조율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하면서, 당장 섬 주민이 직면한 삶의 질을 향상하는데 주안점을 두었으면 좋겠다. 또한 중장기적으로는 섬을 국가 신성장동력으로 키워나가기 위해 국회와 정부, 섬 주민, 학계, 섬 단체 및 활동가, 언론 등이 참여하는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해 국민적 관심을 도출해내야 한다.한섬원은 현재 64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작은 규모의 신생 조직이다. 그러나 조직의 효율성을 위해 각 분야에 적임자가 배치되었는지, 그리고 이들이 실제 섬 현장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는 의문이다.섬 방문은 여러 불편함이 따르지만, 현장에서 주민들과 직접 소통하지 않으면 섬의 실질적인 문제를 파악하기 어렵다. 현장 방문을 통해 교통, 의료, 환경 등 육지와는 다른 섬 생활의 취약점들이 명확히 드러난다. 한섬원은 심도 있는 연구와 함께 현장에서 발견한 문제점들, 그리고 ‘콜센터’나 ‘찾아가는 섬 포럼’ 등을 통해 접수된 현안들을 개선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재의 ‘현안대응TF팀’의 위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TF 팀원들이 국회, 중앙부처, 지자체를 적극적으로 방문하고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섬 주민의 삶의 질이 점진적으로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또한 그동안 유인 섬 중심이었던 연구 분야를 무인 섬까지 확장할 필요가 있다. 현재 유인도는 행안부, 무인도는 해양수산부와 환경부 등이 관리하고 있다. 국가 전체의 섬 발전과 무인도의 가치 증진을 위해서는 무인도까지 연구 범위를 넓히는 것이 바람직하다.해외 섬 연구도 강화했으면 좋겠다. 오늘날의 세계적 섬 관광 명소들이 어떻게 생태 섬, 관광섬, 문화예술의 섬들로 도약했는지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국내 섬 정책 입안자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면 좋겠다.양진형 한국섬뉴스 대표

2024-09-03 06:55 양진형 한국섬뉴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