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다시 불러보는 독도

양진형 한국섬뉴스 대표
입력일 2024-10-14 15:12 수정일 2024-10-14 15:24 발행일 2024-10-1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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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형 한국섬뉴스 대표

노래 ‘홀로아리랑’ 때문이었을까. 독도와의 첫 조우에서 눈시울이 먼저 붉어졌다. 백두산 천지에서도, 백령도에서도, 가거도에서도 그러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전염된 듯 너나없이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민국’을 외쳐댔다. 이 뜨거운 군무의 연출자는 누구일까. 바로, 독도 곳곳에 배어있는 우리 민족의 혼과 땀방울일 것이다.

그 맨 앞에 이사부가 있다. 6세기 초중반 신라의 명장인 그는 동해 먼바다에 동떨어진 우산국을 정복해 한반도 본토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했다. 당시 우산국은 울릉도와 독도를 생활터전으로 한 해상왕국이었다. 삼국사기에는 “지증왕 13년(512년) 이사부가 지형의 험준함을 믿고 복종하지 않는 우산국인들을 나무사자를 이용해 합병했다”고 적혀 있다.

우산국은 고려 시대에도 특산품을 바치며 군신 관계를 지속했다. 조선이 건국된 이후에도 울릉도와 독도는 더욱 체계적으로 관리됐다. ‘세종실록지리지’를 비롯한 여러 기록을 통해 두 섬이 명백한 조선의 영토로 관리됐음을 알 수 있다.

이사부에 이어 안용복도 독도의 혼이다. 조선 숙종 때 부산 동래 사람으로, 어부였던 그는 울릉도와 독도를 드나들며 조업을 하던 일본 오오야(大谷家) 가문 어부들과 충돌해 1693년 일본으로 피랍되었다.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도 그는 일본의 조선 영토 침범과 피랍의 부당성을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과 일본 간의 교섭 끝에 일본 막부(幕府)는 울릉도·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울릉도에 대한 이권을 노리던 대마도에서 막부의 명령을 지연시켰고, 두 섬의 불법 침입은 계속됐다. 이에 안용복은 영토문제를 직접 해결하고자, 1696년 조선 어민을 이끌고 2차 도일을 감행한다. 그는 호키주 태수와 담판을 별여 성과를 거두었고, 에도 막부는 자국민에 대한 죽도도해금지령을 내리게 된다.

안용복에 이어 전라도 흥양(지금의 고흥) 사람들도 독도지킴이였다. 흥양에서 울릉도·독도까지의 거리가 500km 이상인데 19세기 흥양 사람들은 작은 목선을 타고 왜 그곳까지 가게 되었을까. 검찰사 이규원(李奎遠)이 1882년 울릉도를 수토한 후 조정에 올린 보고서 ‘울릉도검찰일기’에 의하면 흥양 사람 90여 명은 울릉도 곳곳에 천막을 치고 배를 건조하고, 미역을 채취하고 있었다. 이들은 계절풍을 이용해 3~4월 울릉도로 출발했다가, 7~8월이면 다시 흥양으로 돌아왔다.

이규원 울릉도 검찰 이후, 1883년 조선 조정은 울릉도 개척령(이주정책)을 시행한다. 이후 울릉도 거주민이 증가하자, 1900년(10월 25일) 고종은 ‘칙령 제41호’를 통해 울릉도에 울도군을 설치하고 죽도(竹島)와 석도(石島)를 관할 하에 두었다. 조선 후기 울릉도를 오가던 흥양 사람들은 돌로 이루어진 독도를 독섬이라 불렀는데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독섬=석도=독도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해방 이후에는 독도의용수비대와 독도경비대, 최초 독도 주민 최종덕 씨와 미역채취를 위해 장기간 독도에 거주한 제주 해녀들도 독도를 지켰다. 현재에도 많은 독도 연구가들과 관련 단체들이 독도 수호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은 1905년 2월 22일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를 통해 독도를 주인 없는 섬이라며 일방적으로 시마네현에 편입시켰다. 2005년 2월 22일에는 시마네현에서 ‘다케시마(竹島)의 날’을 정해 도발 수위를 한 층 높였다. 더욱이 내년부터 일본 중학생이 사용할 사회과 교과서 대다수에 ‘한국이 독도를 불법점거 했다’는 역사 왜곡이 들어간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오는 25일 ‘독도의 날’을 맞는다. 독도의 날은 2000년 민간단체인 독도수호대가 대한제국 칙령이 제정된 날을 기념해 지정한 기념일이다. 하지만 갈수록 치밀해지는 일본의 도발에 맞서, ‘독도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뜨겁다.
한 독도 연구가의 염원처럼, 독도에 방파제와 항구를 건설하고 대형 크루즈 선박을 띄워 국민 누구나 편안하게 다녀올 날은 그 언제쯤일까.

양진형 한국섬뉴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