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칼럼] 정주영 전 현대 회장을 지도자로 그리워하는 이유

배종찬<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
입력일 2024-10-10 11:09 수정일 2024-10-10 11:20 발행일 2024-10-1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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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찬(사진)
배종찬&lt;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gt;

최근 정치판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과 평가는 냉혹하고 참담하기 그지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율은 임기 최저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집권 여당은 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친윤(윤석열) 세력과 국민의 한동훈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한(한동훈) 세력으로 갈라져 내부 총질하기에 여념이 없다. 야당 쪽은 더 가관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4개 혐의가 기소돼 재판받느라 당 대표 수행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검사 탄핵이나 각종 청문회와 특검법 강행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이재명 방탄’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이미 2심에서 2년 실형을 선고받은 상태라 대법원 선거가 2심 확정으로 이어지면 언제라도 정치권을 떠나야 할 판이다. 국민들의 삶과 관련된 민생 현안이라도 처리하는 국회나 정치권의 모습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10월 국정감사는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에게 정조준된 ‘김건희 국감’으로 흘러가는 국면이다.

특히 2030 MZ세대의 탈정치 심리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4개 여론조사 기관(케이스탯리서치, 엠브레인퍼블릭, 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 한국리서치)이 자체적으로 지난달 23~25일 실시한 NBS 조사(전국1005명 무선가상번호전화면접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응답률15.2%. 자세한 사항은 조사 기관의 홈페이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에서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지’ 물어본 결과 더불어민주당 26%, 국민의힘 28%로 나타났다. 20대(만18세 이상)에서는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는 무당층 비율이 무려 49%나 되고 30대는 무당층이 37%로 나왔다. 미디어 등을 통한 정치적 선동이나 유튜브 영상을 통한 ‘확증편향’으로 인해 특정 정치인이나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고 응답했을지 몰라도 실제 정당이라는 정치적 결사체를 통해 ‘실질적 효능감’을 체감하는 비율은 훨씬 낮을지 모르겠다. 정치적 무력감이나 정치적 불쾌감에 대한 수위는 실제로 확인되는 비중보다 더 높고 심각할 수 있다.

이 와중에 현대그룹을 만들어 대한민국의 간판 기업을 일궈낸 고 정주영 전 회장을 재소환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현상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정 전 회장은 어떤 지점에서 정치권과 명확히 구별되는 것일까. 첫 번째로 ‘불굴의 도전 의식’이다. 정 전 회장과 관련돼 알려진 어록이 ‘이봐, 해봤어?’다. 조선소도 지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거북선을 만들었던 우리 선조들의 기백을 바탕으로 선박 수주에 성공했고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자동차를 수출하는 나라로 바꿔 놓았다. 정치인들이나 국회의원들이 달성한 성과가 아니라 강원도 통천에서 공부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거인의 불멸의 도전 정신이었다.

두 번째로 고 정 회장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주변을 생각하는 애민정신’이다. 울산광역시를 기반으로 성장한 현대는 울산에 대학교를 세워 보국애민을 직접 실천했고 서울에 아산병원을 지어 국민들의 보건 혁신에 크게 기여했다.

세 번째로 정 전 회장의 ‘화해와 평화 그리고 협력의 정신’이다. 남북 평화 협력을 강조했던 ‘금강산 관광’은 통일의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 마음의 출발이었으며 ‘정주영 정신’의 화룡점정은 1998년 6월 1001마리 방북 ‘소떼 방문’이었다. 1, 2차에 걸쳐 판문점을 넘어간 방북 소떼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놓는 정 전 회장이었기에 가능했던 역사로 평가받는다. 아무런 효능도 가져오지 못하는 현실의 정치판을 바라보면서 일반 대중들마저 한국 경제 성장의 거인이었던 정 전 회장을 그리워하는 건 지극히 정상적이지만 안타까운 일이다. 구태에 빠져서 진영 간 대결에만 몰두해 있는 정치권을 혁파할 거인은 어디에도 없는 것일까.

배종찬<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