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장경제칼럼

[시장경제칼럼] 고령화 시대, 평생교육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자

이진영 강원대학교 교수국가통계포털의 생명표 자료에 따르면 2021년생의 기대여명은 83.6세이다. 1970년생의 기대여명이 62.3세였음을 감안하면 50여 년 동안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21년 정도 연장된 셈이다. 따라서 정년 이후 나머지 20여 년의 기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계획의 필요성이 여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은퇴 이후의 삶은 개인의 성향 및 보유자산 등에 따라 천차만별일 테지만, 일을 하거나 일을 하지 않는 등 크게 두 가지 정도의 삶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정년 이후에는 재취업을 하거나 자영업을 운영하며 살아갈 수도 있고, 아니면 정년까지 축적해놓았던 소득을 취미생활이나 건강관리 등에 사용하며 살아갈 수도 있다.올해 초 발표된 국회미래연구원의 한 보고서는 2022년 현재 주된 일자리 퇴직 연령은 49.3세, 실제 퇴직 연령은 72.3세라 밝혔는데, 이와 같은 결과는 실제로 정년 이후에도 노동시장에 남아 계속 일하는 고령층 인구 비율이 높다는 사실이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개인의 은퇴 이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교육정책이 있다. 바로 평생교육에 관한 정책이다. 평생교육은 성인학습자의 직업능력을 개발하고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등 은퇴 이후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새로운 분야에 재취업을 희망하는 사람에게 직업훈련 교육을 제공하고, 자영업을 운영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최신 트렌드 및 노하우를 알려주며, 취미생활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외국어부터 예체능까지 다양한 분야의 온오프라인 강의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평생교육의 역할이다.이를 통해 은퇴 후 계속해서 경제활동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본인의 생산성 및 소득을 제고시킬 수 있고, 취미생활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은 개인의 삶에 대한 만족도를 제고시킬 수 있다. 또한 평생교육은 지역 인재 양성을 통해 지역사회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평생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그러나 우리나라의 평생교육 참여율은 그리 높지 않다. OECD 교육지표 2023 보고서(Education at a Glance 2023)에 의하면 한국의 만 25~29세 취학률은 7.9%로 OECD국 평균인 16.2%를 훨씬 밑돌았다. 전년 동 보고서에 따르면 동 연령대 취학률은 한국의 경우 7.9%, OECD국의 경우 15.4%였다. 1년의 기간 동안 OECD국 평균 취학률은 0.8%p 증가하는 추이를 보인 반면, 한국의 취학률은 OECD국 평균의 반 정도밖에 못 미치는 수준을 유지하는 것에 그친 것이다.만 25~29세 인구의 취학률은 재교육·계속교육·평생교육 차원의 고등교육인구의 비율을 보여준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의 평생교육 참여율이 OECD 국가들에 비해 더 낮고 그 격차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평생교육에 대한 관심이 매우 낮다는 것을 방증한다. 특히 저출산 현상으로 인해 고령층 인구비율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하면 고령층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평생교육에 대한 관심이 적다는 현실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지난 20여 년간 정부는 총 다섯 번의 평생교육진흥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평생교육 보급 및 확충에 노력을 기울였다. 가장 최근 발표된 제5차 평생교육진흥 기본계획(2023~2027년)은 지역대학을 평생학습의 플랫폼으로 삼아 3050 연령층에게 인공지능에 기반한 맞춤형 평생학습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제는 참여도다.정부가 발표한 최근 5년간 25-79세의 평생교육 참여율은 2017년 34.4%, 2018년 41.2%, 2019년 41.7%, 2020년 40.0%, 2021년 30.7%로, 40%대 초반을 유지하다 2021년에 큰 폭으로 하락하는 양상을 보였다. 2021년은 코로나 대유행 상황으로 인해 일시적인 하락을 보였을 수도 있지만, 온라인 평생교육 프로그램도 꾸준히 제공되어 왔다는 점에서 결국 평생교육정책이 수요자의 호응을 끌어내는 것에 실패하였다고 볼 수 있다.정부가 추진하는 장기적 평생교육진흥 기본계획은 문제 인식 및 진단, 그리고 추진계획 등의 면에서 크게 나무랄 데가 없다. 그러나 평생교육에 대한 관심이 아직 크지 않은 현 상황에서 참여도를 제고하려면 장기적인 계획보다는 단기적인 계획에 중점을 두고 시행해야 할 것이다. 참여도 제고보다 선행되어야 할 작업이 관심의 제고인데,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선 평생학습의 참여자가 얻을 수 있는 단기적인 편익이 무엇인지를 널리 알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이러한 작업은 중앙정부보다 지역대학이나 지자체가 더 잘 할 수 있는 작업이다. 대학이 평생교육의 플랫폼 역할을 하게 될 경우 교육의 접근성이 가장 큰 학습자들은 대학 인근의 주민들이다. 따라서 이들을 위한 맞춤형 학습을 제공해 참여를 유도하는 작업은 지역 밀착형으로 추진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다. 평생교육 수요자(주민)의 특성, 평생교육을 제공하는 대학의 특성, 평생교육 학습자를 (재)고용하려는 기업의 특성이 모두 반영된 지역별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비로소 관심과 참여도가 제고될 것이다.지식기반사회로의 전환과 급속한 인구구조의 변화 등으로 인해 평생교육의 중요성은 점차 더해가고 있다. 이에 따라 평생교육은 더 이상 선택적 교육이 아닌 필수적 재교육으로서 미래 불확실성에 대비할 수 있는 수단이 되고 있다. 정부는 평생교육에 대한 관심과 참여도를 제고하기 위해 지역대학 혹은 지자체의 의견이 대폭 반영된 단기적 세부 계획이 시행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이진영 강원대학교 교수

2023-11-27 10:51 이진영 강원대학교 교수

[시장경제칼럼] 해서는 안 되는 것은 ‘일회용품 ’규제‘ 그 자체였다

곽은경 자유기업원 사무총장다행스럽게도 환경부가 일회용품 규제 정책을 철회했다. 정부는 오는 11월 24일부터 카페와 식당 내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할 계획이었으나, 어려운 소상공인들과 소비자들의 불편을 고려해 일회용품 관리 방안을 완화하기로 했다. 플라스틱 빨대 사용금지 계도기간은 무기한 연장하고, 종이컵 금지정책은 철회할 방침이다.소비자와 소상공인의 불편을 덜어줄 수 있도록 정책방향을 바꾼 것은 잘 한 일이다. 조금 불편하고, 비용이 더 들더라도 환경을 보호하는 효과가 명확했다면 국민들이 기꺼이 감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기존의 일회용품 규제 정책의 경우 시장참여자 모두가 불편했지만, 결과적으로 환경도 보호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면 재수정하는 것은 불가피했다.특히, 종이빨대의 경우 소비자들의 불편함이 매우 컸다. 조금만 사용해도 축축하게 젖고, 흐물거려서 여러 개를 사용해야 했으며, 음료의 맛을 변질시키기 일쑤였다.일부 이용자들은 종이빨대에서 가정통신문 맛이 난다, 택배박스 맛이 난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소비자들이 더욱 분통터지는 것은 종이빨대가 플라스틱 빨대보다 5.5배 더 많은 이산화탄소가 배출되기 때문에 결코 친환경적이지도 않다는 소식이었다.이번 기회에 환경보호와는 무관한 환경규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보통 일회용품은 환경을 파괴시킨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일회용품 대신 사용되는 머그컵, 텀블러, 에코백이 결코 친환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우선, 일회용컵 대신 다회용 컵을 사용할 경우 당장 눈앞에 쓰레기가 생겨나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을 뿐, 머그컵을 세척하기 위해 사용되는 물과 세제 역시 환경오염을 일으킨다. 세제 사용으로 수질이 오염되고, 전기를 사용하는 식기세척기 역시 탄소배출을 증가시키고 에너지 낭비를 초래한다.에코백과 텀블러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면으로 된 에코백의 경우 비닐봉지와 비교할 때 131회 이상 사용해야 환경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일반적으로 50회 이하로 사용하고 있다. 텀블러 역시 일회용 용기보다 더 많은 플라스틱이 사용되고 있어 환경오염의 또 다른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상황이다. 텀블러와 에코백을 세척하는 데도 환경오염은 수반된다.게다가 머그컵과 같은 다회용품들은 위생문제도 초래할 우려가 크다. 우리는 이미 코로나 바이러스를 경험했고,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물품에 대한 거부감이 어느 때 보다 높은 상황이다. 소비자들에게 환경오염을 위해 위생문제를 포기하라고 강요하기는 어렵다. 심지어 환경보호 효과도 적은 규제정책을 소비자들에게 강요하다 보니 소비자들의 거부감은 커져가고 있다.소상공인들도 환경부의 규제철회는 경제적 부담을 해소하고 고객의 불만을 줄일 수 있어 환영하고 있다. 카페 자영업자들은 머그컵을 세척하기 위해 인력과 비용을 투입해야 했었다. 또 플라스틱 빨대보다 2~4배 이상 높은 가격의 종이 빨대가 주는 부담도 컸다. 게다가 위생적인 일회용품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푸념도 감당해야 했다.일부 언론의 환경정책에 대한 그릇된 시각은 문제다. 조선일보가 최근 사설에서 정부의 일회용품 규제 철회를 두고 “아무리 선거용이라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며 정치적으로 해석했다. 일회용품 규제를 해소한 것을 두고, 마치 과거 민주당이 선거용으로 돈을 뿌린 것과 마찬가지의 총선용 정책이라고 오해한 것이다.언론마저도 과학적 근거 없이 환경보호를 일종의 미신처럼 당연히 하고 있어 이 분야의 소비자 피해가 이어져 왔던 것이다. 문제는 처음부터 일회용품 금지하는 규제 그 자체였지, 효과 없는 정책의 철회가 아니다.환경을 보호하려는 것은 모두가 원하는 바이다. 환경관련 규제들이 실제로 환경을 보호하는 결과를 이끌어내는지 면밀히 검토한 후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제품이 생산-소비-폐기 되는 일련의 과정을 고려해서, 소비자들의 후생도 높이고, 사업자들의 부담도 줄이면서 실제로 환경보호 효과도 있는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좋다.플라스틱빨대 대신 종이빨대를 쓰면서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에 빠지는 잘못된 정책들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곽은경 자유기업원 사무총장

2023-11-22 08:59 곽은경 자유기업원 사무총장

[시장경제칼럼] 고금리 대출이자, 상생의 길을 찾아야

최근 금융권의 화두는 이자수익에 기반한 은행권의 역대 최고의 수익에 대한 부정적 의견과 1000조가 넘는 가계대출의 우려와 경제현황의 어려움으로 가계 및 기업들의 대출이자 가중이 국민들에게 큰 부담으로 돌아오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금융권에 대한 질타는 금융권 스스로 선제적으로 경제주체인 국민들과 함께하지 못한 책임도 있을 것이다. 금융권에서도 이에 대한 반론으로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최근 고금리상황에서 대출을 사용하는 국민에게 바로 이해되지는 않을 것이다.금융권도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기관이고 특히 지금까지의 CEO 및 리더들의 역량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수익창출이었음은 이러한 행태를 더욱 공고히 해왔다. 시장경제 질서에서 수익을 창출하는데 문제를 제기할 부문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거시적 위기상황에서는 경제공동체가 함께 극복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대통령이 은행의 이자장사에 대해 “은행의 종노릇”이란 표현까지 쓰며 은행권의 초과이익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였고, 야당은 “한국형 횡재세”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정부와 야당 모두 은행권의 수익초과에 대한 반감과 국민들의 경제적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활발히 나오고 있다.고금리 대출금리로 인한 가계 및 기업들의 대한 상생과 급격한 신규대출 증가의 통제를 위해서는 기존대출고객과 신규고객에 대한 금리를 차등 적용하는 방안이 있다. 은행권에서는 대출시점에 따라 기준금리가 달리 적용된다. 과거의 기준금리보다 2배이상 금리가 오른 현시점에서 대출이자에 대한 부담은 이를 감당해야 하는 가계 및 기업에게 두배로 힘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특히 일정기간 이후 원금과 이자를 같이 상환해야하는 원리금 분할상환 시점이 오면 대출이자에 대한 부담은 더욱 커지는 상황인 것이다. 시장에서의 조달금리에 따른 대출금리 운영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고객에게 제시되는 금리는 일종의 마진 등이 포함된 금리인 것이다.금융기관은 고객들의 파산이나 회수불능 상태가 아닌 경우는 계속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이다. 회수가 어려울 경우를 산정해 충당금 등을 준비해 충격에 대비하는 것이 금융기관의 속성이다. 국민들이 파산이나 회수불능 상태를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이 금융기관에게도 가장 좋은 정책인 것이다.최근의 고금리 상황에서 이러한 우려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여 대출금리를 인하할 수 있는 방안들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우선, 기존의 대출고객과 신규 대출고객에 대한 차등적 대출금리를 운용한다. 이는 기존 대출시점에서의 조달금리와 신규 시점에서의 대출 금리가 다름에 따른 것이다. 신규 대출은 시장의 높은 조달금리를 감안해 운용하고 기존의 대출은 가계 및 기업들에게 부담을 줄이거나 상환을 유도하는 정책으로 서로 상생하면 된다.첫째, 원리금분할 상환을 한시적으로 유예하거나,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부분 원리금상환제도를 운영하여 국민들에게 부담을 줄이는 방안이다. 고금리상황이 호전될 때까지 일시유예나 부분 원리금상환 제도를 이용하여 대출자에게 부담을 줄이며 기존 대출규모도 줄일 수 있는 방안이다.둘째, 원금과 이자를 상환해야하는 원리금상환시 낮은 금리를 적용해 국민들이 부담하는 금액은 줄이고 은행의 수익도 줄이는 방안으로 서로 상생하는 방안을 추진해 볼 수 있다. 원리금상환시에는 기존의 중도상환수수료도 면제하고 동일조건으로 재대출이나 금리인하 적용 등으로 대출의 규모를 줄이는 데 함께 할 수 있다.셋째, 기존 대출연장 및 상환시 대출금액의 규모에 따른 방안으로 가계 및 기업들의 대출규모에 따라 1억이내, 5억이내 등 상대적으로 소액에 대한 금리인하를 적극적으로 차등적용하여 많은 일반국민들에 혜택이 가도록 운용할 수 있다.넷째, 정책적으로 지원해야할 청년, 신혼부부, 노약자 등 사회적 필요가 있는 분야에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운용하여 금융권의 금융중개기능을 보다 원활히 할 수 있는 방안들을 금융기관들의 특성에 맞추어 운용할 수 있다.고금리의 경제위기에서 은행권의 초과수익을 국민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상생의 길이 거시적으로 보면 가계 및 기업들의 한계상황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며 경제를 다시 활성화시킬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각 금융기관의 노하우와 자율적인 대책으로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면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기관으로 거듭 날 수 있을 것이다.이헌석 자유기업원 대외협력본부장/한국국제경제학회 이사

2023-11-13 09:30 이헌석 자유기업원 대외협력본부장/한국국제경제학회 이사

[시장경제칼럼] 금산분리 균형추 맞추기

지인엽 동국대학교 교수금융위원회(금융위)는 연내에 금산분리완화 세부안을 발표하기로 했으나 추가 의견 수렴 필요하다며 발표를 무기한 연기하였다. 최근 활발했던 금산분리완화 논의가 각계의 반발로 다소 주춤하는 듯하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금산분리 규제가 완화되면 금융회사들이 자신들의 사업 영역을 침범할 것을 우려하고 있고, 이자 수익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금융회사들은 고객 정보를 이용하여 비금융 신사업을 발굴하고 싶어 한다.규제 당국도 마찬가지다. 금산분리 주무 부처는 금융위이지만 한국은행이 금산분리완화에 따른 디지털 지급결제시장 확장 문제를 지적하고 있고 금융감독원과 공정거래위원회도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이외에도,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간 대립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어 논의의 진전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이 충돌은 충분히 예견된 것이지만 금산분리완화 논의가 밥그릇 싸움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본래 금산분리 규제의 주요 목적 중 하나는 비금융 리스크가 금융시장을 통해 경제 전체로 파급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일반기업이 은행을 지배하면 예금자의 돈을 마음대로 갖다 쓰는 도덕적 해이가 나타날 수 있으니, 이를 막자는 것이다.실제로 우리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에는 비금융기업들이 노골적으로 금융회사들을 이용하고 싶어 했던 때도 있었다. 금산분리 규제 때문이라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금융회사들은 비금융 자본으로부터 보호되었고 금융회사 간 경쟁은 제한되었다.현재 4대 은행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똑같이 약 15%의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90년대에 시중은행 숫자가 10개를 넘긴 적도 있었지만, 줄곧 4~5대 은행 체제가 유지되었다.금산분리 규제는 금융시장 건전성과 효율성 간 상충관계를 전제로 한다. 여기서 건전성은 금산분리를 통해 위에서 언급한 금융의 비금융 사금고화를 막는 이치다. 반면, 효율성은 금산분리 완화로 능력 있는 기업가가 금융회사에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게 되어 금융혁신을 도모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 상충관계가 금산분리 규제의 본질이다.우리는 지금 건전성과 효율성 중 무엇을 추구해야 할까? 우리 경제 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봤을 때, 균형추를 효율성 쪽으로 한 칸 옮기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하다. 우리나라 기업 지배 구조는 과거에 비해 개선되었고 시장 감시 기능도 강화되었다. 또한, 2008년 국제금융위기 이후, 바젤Ⅲ 등 전 세계적으로 매우 강력한 건전성 규제가 도입되어 주식과 부동산 등에서 자산 효과까지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건전성 우려는 상당히 경감 된 것으로 판단된다.더욱이, 규제 당사자인 금융회사들이 금산분리완화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금융·비금융을 막론하고 기업의 사업모델은 데이터 중심으로 전환되었고 디지털 기술 혁신 없이 수익 창출에 성공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정부도 나름대로 인터넷 은행제도를 도입하여 은행업에서 금융혁신을 도모하고 있다.금융, 비금융, 정부 등의 속내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표면적으로는 효율성 추구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선진 경제 도약을 위해서 우리는 이 모멘텀을 잘 이용할 필요가 있다.지인엽 동국대학교 교수

2023-11-07 17:36 지인엽 동국대학교 교수

[시장경제칼럼] 포퓰리즘 정치가 국민 분열과 경제 추락의 원흉

권혁철 자유와시장연구소장만일 무언가를 하기 위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지어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때, 늦게 온 몇 사람이 새치기를 하여 먼저 입장하게 되면, 차분히 기다리던 사람들이 동요하고 어수선해지면서 서로 먼저 가겠다고 아우성을 치게 된다. 급기야 줄까지 무너져버린다.이런 상황에서는 힘 있는 사람, 염치를 모르는 사람, 목소리 큰 사람, 우기기 잘하는 사람, 타인의 자리를 자신의 자리라고 떼쓰는 사람, 이른바 ‘요령 좋은 사람들’이 앞자리를 차지해버린다. 반면,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차례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뒷자리로 밀리거나 아예 입장의 기회조차 얻지 못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이들은 분노와 함께 ‘왜 지금까지 미련하게 차례를 기다리며 서 있었을까’하는 회의가 들게 마련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자기 자리를 지키라는 말은 분노만을 더 키울 뿐이다. 그리고, 이런 사회에서 국민통합은 어불성설이다.정치인들을 비롯하여 저명인사들 대부분이 이구동성으로 ‘국민통합’을 이야기하면서, 해법으로 제시하는 것은 예외 없이 ‘퍼주기와 재분배’, 그리고 ‘예외와 특혜’의 제공이다. 그런데, 정부나 정치권이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준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에게 세금 등으로 빼앗아서 주겠다는 것과 같다.누군가에게 특혜를 주겠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를 차별하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무언가를 받는 사람, 특혜와 특권을 받는 사람은 좋아하겠지만, 그로 인해 빼앗기는 사람, 차별을 받는 사람은 허탈감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알고 보면 국민통합을 외치는 사람들이 실상은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장본인들이다.한 가지 사례를 보자. 65세가 되어 ‘어르신’이 되면 정부의 한 기관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고 한다. 그 편지에는 이른바 ‘어르신이 되면 받으실 수 있는 혜택 리스트’가 들어 있다고 한다. 전체 두 페이지에 걸쳐 있는 이 리스트에는 대한민국 남녀가 65세가 되면 받을 수 있는 갖가지 혜택들이 빼곡하게 쓰여 있다고 한다.그런데, 그 편지를 받았던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허탈한 심정과 함께 분노가 치민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많고 많은 혜택 가운데 이들이 실제로 받을 수 있는 혜택은 달랑 지하철 무료 탑승권 하나이기 때문이다. 지하철 무료 탑승권은 65세가 되면 무조건 발급이 되기에 받을 수 있지만, 나머지는 이런 조건, 저런 조건에 걸려 하나도 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분노하지 않을 수 있는가.이런 사정을 감추거나 모면하기 위해 포퓰리즘 정치인들은 언제나 그럴듯한 명분을 들고, 부자 대 가난한 자, 강자 대 약자, 자본가 대 노동자, 정규직 대 비정규직, 남성 대 여성, 노년층 대 청년층, 7:3 심지어 9:1 사회를 언급하며 분열을 부추기고, 그것을 기반으로 유권자 다수의 표를 매수하려고 한다.잘 알다시피 분열시키고 갈등하게 만드는 것은 포퓰리즘 정치의 근본 토대이다. 국민을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가는 포퓰리즘 정치는 결국은 근면과 성실, 약속 이행, 책임감 등 사회적 자본까지 갉아먹으며 국가와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든다는 게 아르헨티나와 그리스 등이 보여주는 역사적 사실이다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국민의 대다수인 노동자의 상태가 가장 행복하고 가장 안락하게 보이는 것은 사회가 이미 부의 전체를 획득했을 때라기보다는 사회가 부를 더 획득하기 위해 전진하고 있을 때 ”라고 했다. 잘 살기 위해 전진하고 노력하는 사회가 나눠 먹기 사회, 국가가 책임진다는 사회에서보다 더 행복하고 안락한 사회라는 것이다.‘가난의 대물림’이니 ‘부익부 빈익빈’이니 하면서 타인의 호주머니에 기생하여 살게 만드는 사회에서는 누가 빼앗기고 누가 특혜를 받는가가 사회적 관심사로 등장하게 되고 , 이들 사이에 갈등과 분열은 피할 수 없다. 또 이런 사회에서 경제가 발전하고 번영할 것이라 기대할 수 있는가.이권추구에 열중하고 요령과 편법이 득세하는 사회에서 국민통합과 경제적 번영은 먼 나라 이야기다. 국민 모두가 분명하게 밝혀진 동일한 규칙하에서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자신과 가족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자 노력하는 사회에서 국민은 한마음이 되고 경제는 번영하게 될 것이다 .

2023-11-03 09:04 조진래 기자

[시장경제칼럼] 오래된 미래, 공공부문 개혁

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한국은 공기업과 공공기관 왕국이다. 에너지와 인프라 부문뿐 아니라 금융도 덩치 큰 공기업이 모두 장악하고 있다. 에너지 부문의 공기업은 한전 및 발전자회사(한국수력원자력, 남동발전, 남부발전, 동서발전, 서부발전, 중부발전), 가스공사, 지역난방공사, 전력거래소, 석유공사 등을 들 수 있고 인프라 부문에는 수자원공사, LH공사, 농어촌공사, 철도공사, 도로공사, 인천공항공사, 한국공항공사, 부산항만공사, 인천항만공사, 경기평택항만공사, 울산항만공사 등이 있다. 금융공기업으로는 기업은행,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 등이 있다. 이 밖에도 마사회, 관광공사, 국민체육진흥공단 등의 공기업이 관광과 체육사업도 맡고 있고 MBC, KBS, EBS, YTN, 연합뉴스, 방송광고공사 등을 통해 사실상 정부가 방송도 장악하고 있다. 여기에는 굵직굵직한 공기업과 공공기관만 추려 놓았지만 이외에도 작은 규모의 공기업과 공기업의 자회사, 공공기관, 연구기관, 국공립병원과 학교 그리고 지방공기업은 셀 수도 없이 많다.한국이 왜 이렇게 공기업 천국이 되었을까? 출발은 너무도 당연했다.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신생국 한국에 정부 외에 대형사업을 맡을 만큼의 돈 있고 자본 있는 민간기업은 있을리 없었다. 할 수 없이 정부가 직접 맡거나 공기업을 세워서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이 운영했던 철도, 전력, 통신, 수도, 항만의 건설과 운영이 대표적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정은 학교, 병원, 은행 등도 마찬가지여서 몇몇 사립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정부가 운영하는 것이었다.문제는 이처럼 정부가 주도하는 시스템이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경제가 성장하고 선진화되었으나 이 같은 공기업과 공공기관 등의 비대화는 멈추지 않고 있다. 공공부문의 비대화는 많은 민간이 세운 기관을 사실상 유사 공공기관으로 만들어 버리는 문제점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학교와 병원이다. 국공립학교, 국공립병원과 병행하는 사립학교 및 사립 의료기관 등에 대해서 정부는 등록금과 진료비를 엄격히 규제하고 그 반대급부로 재정적 지원을 시행하는 조건으로 사실상 민간이 세운 시설을 장악하고 있다. 사립학교는 사실상 공립과 차이가 없다. 교사 인건비 지원이라는 조건을 전제로 엄격한 교육부 규제와 통제가 사립학교의 자율성과 창의력을 꽁꽁 묶게 마련이다.이러한 사정은 병원, 시민단체, 예술단체, 학회 등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민간기업들도 대정부 민원·로비를 위해 각종 협회, 사업자단체, 이익단체, 협동조합을 만들고 전직 공무원들을 그 이사장, 회장, 부회장 등에 앉히고 담당 정부부처와 소통의 자리를 마련한다. 민간기업이라고 하지만 법에 의하여 대주주가 없는 포철, KT 등의 민영화된 기업과 은행 등의 금융기관은 사실상 정부가 그 주인노릇을 하며 경영에 개입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친정권인사로 CEO를 갈아치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공공부문과 유사 공공부문은 민간이 진출할 수 있는 영역을 선점하고 왜곡함으로써 우리 경제의 성장과 경쟁력을 제한한다. 인프라, 에너지, 물관리, 교통 등의 부문에 민간기업이 역량을 펼치며 진입하기 쉽지 않고 그 경쟁력도 제약된다. 이보다 더 큰 문제점은 공공부문의 일처리 방식으로 인해 경제의 생산성이 크게 제약된다는 것이다. 특히 산출보다 투입 및 절차를 중시하는 공공부문의 관료적 관리 특성으로 인해 경제의 자율성과 창의력의 기회가 상실되며 경쟁력이 저하된다.공공부문은 시장에서 기업을 감시하고 규율하는 소비자, 채권자, 투자자의 시장규율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공공기관이 독점이어서 소비자가 다른 기업이나 제품을 선택할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돈을 꿔 준 채권자도 정부와 국가가 빚보증을 서는 공공기관을 감시할 필요가 없다. 상장된 공기업이 드물어 공공부문의 투자자는 대부분 정부이다. 민간이 투자자로 정부와 같이 참여한 상장 공기업의 경우에도 공공기관은 민간의 눈치보다는 정부의 눈치를 살피므로 민간 투자자의 감시와 지적에도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공공개혁은 우리 경제가 선진화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겪어야 할 관문이다. ‘빨리빨리’라는 구호를 외치며 일하고 밥 먹는 우리 국민이 해방 이후 편만하게 전 경제영역에 퍼져있는 공기업을 아직까지 그대로 놔두고 있는 것은 미스터리다. 공공개혁은 하루빨리 시작해야 한다. 이미 오래된 미래다.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2023-10-23 11:44 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시장경제칼럼] 자유민주주의 지키는 ‘여론조작 방화벽’이 시급하다

윤주진 퍼블리커스 대표항저우 아시안 게임이 한창이던 지난 10월 1일, 한국과 중국의 8강 축구 대표님 경기를 앞두고 국내 주요 포털 ‘다음’에서 기이한 광경이 벌어졌다. 네티즌들이 응원하는 팀을 클릭하도록 했는데, 한국 국민의 사용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국내 포털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대표팀 응원 비율이 91%를 기록한 것이다. 자체 조사 결과 전체 클릭의 약 87%가 해외 IP에서 나왔고, 그중에서도 99.8%은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한 2개의 해외 IP에 의한 클릭으로 밝혀졌다. 더 구체적인 조사 결과를 살펴봐야겠지만, 어쨌든 ‘해외’와 ‘조작’이라는 두 개의 팩트는 확인된 셈이다.지난 8월에는 페이스북 운영사인 ‘메타’ 측이 친중 성향 콘텐츠를 집중적으로 올리는 가짜계정 7,700여 개를 삭제했다고 발표했다. 메타는 이들 계정의 배후로 중국 정부를 지목했으며, 중국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가짜뉴스를 생산했다고 설명했다. 영향력 자체는 미미했던 것으로 파악됐지만, 특정 국가가 직접 조직을 운영해가며 온라인 여론조작을 시도했다는 점은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그 밖에 수많은 SNS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여론’이란 그 활동 주체들의 생태계와 다름없다. 국민은 여론을 고려해 정치적 의사결정을 하고 지도자를 선택한다. 정부나 정당, 기업 역시 여론을 살피며 방향 및 기조를 정하고 정책, 마케팅 전략을 수립한다.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여론조사 결과가 중요 뉴스로 다뤄지는 것 역시 마찬가지 이유 때문이다. 1~2%p의 격차에 정국이 요동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권력이나 권위의 정당성 기반이 바로 여론에 있기 때문이다. 여론전에서 지면, 정치적으로는 패배다.따라서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여론을 조작한다는 것은 곧 체제의 질서를 혼란과 불신에 밀어 넣는 매우 심각한 위협이라고 볼 수 있다.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비틀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국가 공동체를 끌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잘못된 여론 분석으로 오판하도록 유도할 수 있으며, 국민 간 분열을 조장해 사회 분위기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타국의 여론 조성에 개입하면 사실상 내정간섭이다.문제는, 이처럼 위험한 여론조작이 자유 진영과 반자유 진영 간 이념 대결 구도에서 반자유 진영 국가들의 긴요한 ‘전략 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우리는 북한의 ‘대남 심리전’ 공격에 늘 노출돼 있다. 우리 사회에서 횡행했던 각종 가짜뉴스의 진원지가 북한 당국에 있었음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올해 들어 북한은 ‘대외 인터넷 선전’을 총괄하는 조직을 신설해 사이버 공격 역량을 대폭 강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제대로 ‘재미’ 좀 보겠다는 신호다.과연 북한만 해당되는 문제일까? 한미동맹, 한미일 공조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고 박근혜정부 당시 ‘사드 보복’에 나섰던 중국 정부도 한국 사회의 여론을 조작할 유인은 차고 넘친다. 서두에 언급한 ‘클릭 응원전’ 조작에 우리가 화들짝 놀란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혹시 중국에서?’라는 아찔함이 밀려왔다.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를 공식 지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는 과연 한국 사회 여론이 어떤 방향으로 바뀌길 바랄지 그 답은 명확하다.여당인 국민의힘은 지난 1월 ‘인터넷 국적표시법’을 발의했다. 포털 뉴스 댓글 등을 작성한 사용자의 접속 국가를 공개하자는 제안이다. 특정 국가에서 국내 여론에 개입하기 위해 댓글부대를 동원하고, 추천수 등을 조작하지 못하도록 막자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이 법안의 실효성과 적법성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더 이상 온라인 공간을 광범위한 조작 세력에 무방비로 내줄 수는 없다는 문제의식에 적잖은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다.온라인 공간 특성상, 외국인 출입국을 관리하듯 모든 해외 접속자를 일일이 확인하고 차단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 소지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일부 권위주의 체제 국가들에 의해 조직적으로 자행되는 여론조작을 단순히 방치, 방관하고 있기에는 그 위험성이 매우 높다. 특히, 미·중 갈등의 ‘신냉전’의 틈바구니에서 국익과 가치가 충돌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한국의 경우, 의도적인 개입에 따라 비틀린 여론이 초래할 피해와 부작용은 막대하다.AI 발달에 편승해 가짜뉴스의 양과 질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불과 몇 초 정도 되는 분량의 영상이 순식간에 수만, 수십만을 속이고 순간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영토를 지키기 위해 철책선을 두르고 상시 경계 근무를 서듯, 국민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은 온라인 공간을 조작과 왜곡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방화벽이 시급하다. 정부와 국회는 초당적 협력을 통해 해외발 여론조작을 차단할 해법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 역시 중대한 안보 대책이다.윤주진 퍼블리커스 대표

2023-10-16 18:22 윤주진 퍼블리커스 대표

[시장경제칼럼] 평화의 소멸, 자유경제의 쇠락

김정호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중동이 다시 전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팔레스타인 통치기구이자 테러조직인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수천 발의 로켓공격과 더불어 국경을 넘어 민간인들을 여러 명 납치했다. 이스라엘은 이들의 근거지인 가자지구에 폭격을 가했고, 곧 본격적 보복 공격이 뒤따를 전망이다. 이란 혁명군이 하마스의 공격을 돕고 최종 승인했음이 드러나고 있으니 조만간 이 전쟁은 이스라엘과 이란 세력 간의 전면전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하마스와 이란 자신은 물론이고 레바논의 헤즈볼라, 이슬람지하드 등 이스라엘은 사방의 적과 전쟁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조만간 미국도 직간접적으로 관여될 것이고, 중국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듯하다.전쟁은 여기만이 아니다. 가장 큰 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이지만 그밖에도 아제르바이잔의 아르메니아 인종 청소, 아프리카에서의 수단 전쟁, 니제르 전쟁 등 최근 들어 곳곳에서 전쟁이 터지고 있다.왜 갑자기 이럴까.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퇴조 때문이라는 설명이 설득력을 가진다. 1945년 이후 미국은 세계 경찰 역할을 해왔다. 1980년대까지 냉전 기간 동안은 자유세계의 경찰이었다. NATO를 결성해 소련으로부터 서유럽을 지켰고, 아시아에서는 한국 일본 필리핀 등과 동맹 관례로 그렇게 했다. 외적의 침략뿐 아니라 이 나라들이 사회주의로 기우는 것도 막았다. 중동에서는 사우디, 이스라엘과 손을 잡고 전쟁을 억제하려 했다.1991년 소련 붕괴 이후부터는 전세계가 미국의 통치 대상이었다. 60년대의 베트남전쟁, 911 이후 이라크 전쟁, 아프간 전쟁 등의 정당성에 대해서 비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과 자유민주주의 수호 의지 덕분에 세계의 평화와 자유민주주의, 자유경제 체제가 그럭저럭 유지되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무엇보다 강력한 경제력을 가지게 된 일본과 독일이 안보를 미국에 의존했기에 가능했던 질서였다.하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 미국 GDP의 80%에 육박한 중국이 적대 세력으로 변했다. 군사력도 막강해 졌다. 특히 해군함정 숫자로 보면 중국이 더 많다. 미국에는 없는 극초음속 미사일도 스스로 개발해 냈다. 반면 미국의 군사력은 쇠락 또는 정체 중이다. 중국의 대만침공, 남중국해에서의 도발을 억지하기에도 벅차 보인다.그러다 보니 다른 데에 신경 쓸 힘이 현저히 줄었다. 그동안 지구 곳곳에서 미국 눈치를 보느라 억눌려 있던 무장 세력들이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잠재해 있던 갈등과 적대적 감정들이 무장공격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평화 시대가 저물고 전쟁 시대가 열리고 있다.세계 경제의 흐름도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여곡절이 있기는 했어도 지난 70년 동안 글로벌 경제 흐름의 대세는 자유무역의 확대였다. 대공황과 2차대전 때문에 강고해졌던 보호무역 체제는 종전과 더불어 GATT라는 꽤 자유로운 무역체제로 대체되었다. 1995년에는 WTO로 더 확대되었고 2001년에는 중국까지 받아들이면서 자유무역의 절정기를 맞았다.국내적으로도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시장의 자유가 확대되어 왔다. 우리가 ‘워싱턴 컨센서스’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그러면서 세계는 인플레 조차 없는 경제성장을 구가했다. 재정 측면에서는 탈냉전 시대에 걸맞게 군사비의 비중이 현격히 줄어드는 대신 복지나 교육 등에 대한 지출이 크게 늘었다.지난 수십년 인류 역사의 황금시대에 누렸던 이 모든 것들이 파괴되어 간다. 중국은 가급적 최대한 많은 것들을 자급자족 하려 하고, 수입이 불가피한 것들은 최대한 비축해 놓으려 한다. 전쟁을 위해서다. 미국 역시 중국을 자신과 동맹들의 무역망에서 배제하려 한다.반도체, 2차전지 등 전략적 가치가 큰 상품들은 자국 영토내에서 자급하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 지급도 마다하지 않는다. 미국답지 않은 행동이지만 중국과의 대결을 위해서는 그런 정도의 비판 쯤은 개의치 않게 되었다. 그동안 최소한의 수준으로 유지되던 군사비 예산이 급격히 증가하고, 복지나 교육 등의 예산은 줄어들게 되었다.우리나라를 비롯한 다른 모든 나라들은 미국과 중국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과거처럼 안보는 미국과, 장사는 중국과 하는 식의 행보는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은 중국에서 나오거나 또는 China+1 정책을 써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그럴수록 시장은 작아진다. 매출은 줄고 원가는 상승한다. 이윤과 소득은 줄고 가격은 높아진다. 국내적으로도, 1930년대 대공황기에 그랬듯이 너도나도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주의의 유혹을 느끼고 있다. 방위비 지출 증가 역시 모든 나라가 감당해야 한다.이러니 저러니 해도 미국이 수퍼 파워일 때가 좋았다. 그 덕분에 70억 인구는 풍요와 평화를 누렸다. 전체주의를 표방하는 중국이 적대 세력으로 등장하면서 세계는 전쟁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다. 자유경제는 희미해지고, 경제적 풍요는 지난날의 이야기가 되어 가는 듯하다.김정호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2023-10-10 08:25 김정호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시장경제칼럼] 정부에 ‘제도적 자제’가 필요하다

‘정율성 역사공원 건립 취소’와 ‘육군사관학교 홍범도장군 흉상 이전’ 관련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역사 전쟁’ 중이다.‘반일(反日)’인가 또는 ‘반공(反共)’인가 정체성 논란이다, 정체성 논란은 “항일 독립운동이 중요한가 또는 자유 수호 6·25 전쟁이 중요한가”의 인식의 차이에서 생겨났으며, “북한-중국-러시아 등 대륙으로 향해 나가야 하는가 대(對) 미국-일본 등 해양으로 향해 가야 하는가”라는 국가 발전모델 논쟁으로 확장됐다.그리고 정체성과 인식 논쟁이어서 ‘끝이 보이지 않는다.’ 유럽의 ‘종교전쟁’과 흡사하다. 그런데 괴이한 것은 ‘역사’ 논쟁에 역사학계가 두드러지게 나서지 않고 있는 점이다. 학계가 ‘빨치산의 정의’ 관련 공동 성명이 나오기는 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역사학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고 있다.역사학계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추측컨대 사회주의 좌파계열 역사학자들이 과거 좌파 독립운동가의 행적을 과장 해놓은 ‘좌파 활동 기록’이 그대로 있어 그것이 도리어 부정할 수 없는 역사 기록으로 발목을 잡고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독립운동이 명명백백 자료로 뒷받침이 되면 역사학계가 의견을 제시하지 않을 리 없지만 홍범도 장군의 경우 사료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전승 관련 기록이 사료로 확실히 뒷받침되는 것이 아니라 구술(口述)에 의한 것이고, 그 과장된 구술을 자료의 뒷받침 없이 독립투쟁의 성과로 학술 논문에 서술해 놓았던 때문일 수도 있다.본래 ‘국사(國史)’란 일정 정도 자민족 중심으로 과장됨이 있음을 전제로 하지만 우리 국사는 지나쳐 보였다. 학자들이 ‘세계사 속의 한국사’라는 세계사적 시각이 아니라 ‘자민족 국수주의(쇼비니즘) 역사 서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정치권이 개입된 ‘역사 전쟁’에 역사학계가 사료를 바탕으로 정리해주어야 끝나는데 학계의 ‘비철저성‘과 ‘이념 편향성’ 때문에 논쟁이 종결되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하지만 정율성과 홍범도의 항일운동의 성과와 공산주의 활동 관련 어떠한 검증보다 더 중요한 것은 두 분의 ‘마음의 조국’이 어딘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본인의 조국(祖國)은 소련과 중국에 가 있는데 대한민국 정부가 괜스레 ‘항일건국 투사’로 모시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야 하는데 이 부분이 소홀히 취급되어 아쉽다.정율성은 19세에 중국으로 건너가 전후(戰後)에는 북한에서 살았고, 1956년 중국에 귀화해 ‘정뤼성’으로 살다 죽은 분이다. 때문에 정율성의 ‘마음의 조국’이 중국이고 중국인으로 대부분을 살았고 또 중국에서 추앙하고 있는 분인데 그분을 대한민국 국민의 세금으로 ‘역사 공원‘을 만들어 기린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정율성 본인조차도 중국이나 북한이 자신을 기리는 것은 환영하지만 대한민국이 자신을 기리고 기념하는 것은 반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홍범도 장군도 ’마음의 조국‘ 부분에서 명확해 보인다. 홍범도 장군이 “무장독립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1921년 ’자유시 참변‘ 후 재판위원을 맡아 볼셰비키 편에 섰으며 그 뒤 1927년 소련 공산당에 입당했고, 독립운동과는 관련 없는 삶을 살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물론 아직 태평양 전쟁이 끝나지도 않았고 대한민국이 건국되기 전으로 나라가 없는 상황에서 무슨 ’조국 타령‘이냐고 할 수 있겠다.하지만 무장독립운동 기간보다 볼셰비키와 소련 공산당원으로서의 기간이 매우 길고 소련에서 ’공산당원‘으로 천수를 마쳤기 때문에 홍범도의 ’마음의 조국‘은 아무래도 ’볼셰비키 소련“에 있다고 보여지는 것이다. 그런 분을 육사생도에게 모범으로 삼게 한 것은 지나치지 않는가 한다. 상식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수년 전 1946년 10월 개교한 북한 ’김일성대학‘ 교수 자리에 지원한 남한 학자들의 교수 임용 지원서류를 일별한 적이 있다. 지금의 교수 임용지원서와는 달리 학문적 업적이나 강의 경력보다 일제 하에서 자신이 얼마나 혁혁한 사회주의 활동을 했는지를 주로 서술했다 . ’김일성 대학‘ 교수로 임용되기 위해 자신의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활동을 적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 것이다.정율성과 홍범도의 공산당 입당 원서가 존재할 것이고 그 원서에 자신이 누구인지 기술한 ’공산당 입당의 변(辨)‘ 문서를 공개하면 이번 정체성 논쟁은 종결될 것으로 보인다.문재인 정부에서는 김원봉을 독립군 출신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군인으로 이미지화 하려고 독립유공자로 세우려고 했다 . 하지만 김원봉은 ”독립군이었지만 북한 정권의 개국 공신으로 남한을 공격한 북한 장관을 지냈고 그 공로로 훈장도 받았다“ 점 때문에 여론의 반대로 실패했다. 김원봉 실패에 대안으로 홍범도가 등장했다.이렇게 문 정부는 역사 왜곡이 지나쳐 ’정상적‘인 정책으로 보이지 않음에도 자제하지 않고 권력으로 강행했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가 정율성 역사공원 건립에 반대하고 육군사관학교 교정의 홍범도 흉상을 독립기념관으로 옮기겠다는 것은 전 정부에서 행해진 ‘비정상’의 ‘정상화’로 이해된다. 역사든 정치든 지나침은 반작용을 부르는 법이다.스티븐 래비츠키와 다니엘 지블렛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에서 “민주주의는 언제나 위태로운 제도였다”라고 회고하면서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가드레일로 ‘상호관용’(mutual toleration)과 ‘제도적 자제’(institutional forbearance)라는 두 제도를 제시하고 있다.‘상호관용’이란 정치적 상대를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는 행위이고, ‘제도적 자제’란 대통령 등 권력자가 주어진 권리를 행사할 때 ‘판사를 자기 사람으로만 임명할 수 있어도 그렇게 하지 않는’ 등 스스로 자제를 하는 것을 말한다. 관용과 절제가 민주주의가 탈선하지 않게 지키는 ‘가드레일’의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문재인 정부 시절 대법원장 임명 등 많은 사법부 인사 임명에서 그리고 소득주도 성장이나 탈원전, 규제 중심의 부동산 정책 등은 ‘자제’ 없이 ‘과도하게’ 정부 권력으로 밀어붙였다. 또 정율성, 김원봉, 홍범도로 이어지는 국가유공자 재선정 시도와 공원 건립은 상식적이지도 또 절제되지도 않은 정부 정책으로 스스로 자제해야 했다 . 그렇지 않았다. 때문에 윤석열 정부 시기에 되돌리는 ‘정상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지나치지 않는 ‘제도적 자제’는 윤석열 정부도 ‘반면 교사’로 배워야 할 미덕(virtue)이다.김인영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교수

2023-09-29 13:27 김인영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교수

[시장경제칼럼] 윤석열 대통령의 ‘양날개론’ 비판이 반가운 이유

시장경제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이해를 추구하는 한편, 왜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작동할 수 없는지에 대한 논쟁을 연구해본 경험이 있는 학자들은 자연스럽게 통제되지 않은 시장가격과 이를 신호로 삼아 시장에서 경쟁자들보다 소비자들을 더 만족시킴으로써 더 큰 이윤을 발생시키고 이를 재투자하는 기업가들의 경쟁적인 도전이 시장경제의 작동에 핵심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이런 공부를 한 경제학자들로서는 사회에서 널리 유통되고 있는 ‘양날개론’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새의 왼쪽 날개는 한자로 좌익(左翼)이고 오른쪽 날개는 우익(右翼)이다. 좌익은 경제적 자유보다는 결과적 평등(정부에 의한 재분배)을 중시하는 데 반해 우익은 반대로 경제적 자유를 중시한다. 흔히 정치학자들은 이처럼 서로 다른 두 가지를 추구하는 정당들이 견제와 균형을 이루면서 정치를 해나가는 것을 바람직한 상태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예를 들어, 사유(개인)재산권을 존중하는 자본주의(시장경제) 원리와 이를 철폐하자는 사회주의 원리는 결코 동시에 양립할 수 없다. 경제적 자유와 부의 재분배 원리도 마찬가지로 동시에 양립할 수 없다. 그런데 시중의 양날개론은 마치 두 가지 원리를 적당히 버무릴 때 새가 잘 날아갈 수 있다고, 즉 사회가 번영하게 된다고 주장하는 셈이다.하지만 이처럼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을 함께 실천하고자 했던 시도들은 실패가 예정돼 있다. 모순된 원리들로 만들어진 기계가 잘 작동할 수는 없다. 더구나 소비재가 아닌 생산재와 자본재의 사유와 거래를 금지한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이론적으로나 또 경험적으로나 실패한다는 것이 이미 드러났다 . 이는 사회주의 원리에 근거한 사회는 ‘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런 점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말 국민의힘 당 연찬회에서 양날개론을 비판하면서 “새는 날아가는 방향이 같아야 오른쪽 날개와 왼쪽 날개가 힘을 합쳐 그 방향으로 날 수 있다.”고 강조한 것은 그가 대선 후보로 유세를 하면서 보여줬던 어퍼컷 세리머니만큼이나 시원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또 윤 대통령은 “우리 당(국민의힘)은 이념보다는 실용이다 하는데 기본적으로 분명한 이런 철학과 방향성 없이는 실용이 없다”고 언급했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념’이라는 말 대신 ‘이론’을 가지고 생각해보면 된다. 예를 들어, 경기부양과 경제성장은 엄연히 다른데도 일시적으로 경기를 자극하기 위해 돈을 마구 풀었다고 해보자. 시간이 지난 후 물가가 오르고 경기도 여전히 부진한 소위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했다고 해보자. 어떻게 하는 것이 실용적인 방법일까?그런 실용적 방법을 제시하기 위해서도 정책당국자는 특정한 ‘이론’에 기대어야 한다. 만약 그가 적자재정 정책을 실업대책으로 제시하는 케인지언 이론을 내면화한 경우라면 스태그플레이션에 직면해서는 그는 아무런 실용적 대책을 제시할 수 없다 . 돈을 더 풀자니 물가가 걱정이고 돈을 죄려고 하니 경기가 더 나빠질까 걱정이 되기 때문에 진퇴양난에 빠진다.만약 그가 오스트리아학파의 경기변동이론을 따르고 있다고 해보자. 이 이론에 의하면 신용팽창을 통한 화폐이자율의 인위적 인하가 실제 사회가 쓸 수 있는 저축보다 더 많은 저축이 투자재원으로 저축되어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 그래서 인위적으로 낮아진 화폐이자율에 유도되어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져 일시적으로 붐이 일어나지만, 가용한 저축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 상당수 투자계획들이 완결되지 못한 채 실패로 끝나는 ‘버스트’ 국면이 전개된다.이 이론을 따르는 정책당국자는 실패하는 투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신용팽창을 하는 것은 향후 더 큰 실패를 예약하는 행위일 뿐이기 때문에 , 재화와 서비스뿐만 아니라 회사주식들의 가격들의 변동을 통해 다시 실제 저축과 투자의 괴리가 사라지는 방향으로 시장이 안정을 찾게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 이처럼 ‘이론’이 있어야 실제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효력을 발생할 ‘실용적’ 수단을 찾을 수 있다. 물론 이 수단을 어느 정도로 추진할 것인지는 당시의 제약요인들을 잘 살펴서 결정할 것이다.이처럼 실용적 수단을 찾게 해주는 ‘이론’들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것이 ‘이념’이다. 그런데 우파 내부에서도 윤 대통령의 ‘이념 과정’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흔히 특정 이념 자체의 옳고 그름이나 작동 여부를 따지지는 않고 그저 ‘이념’ 과잉을 비판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이런 옳고 그른지 여부를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과 이런 ‘이념’에는 공산주의 이념뿐만 아니라 시장경제 ‘이념’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그래서 정당들이 ‘틀린’ 이론에 기초한 이념을 가지거나 양립할 수 없는 ‘이론’에 기초하고 있기보다는 모든 정당들이 ‘올바른’ 이론들로 구성된 패러다임 아래 기초하고 있지만 그런 이론을 추진하는 방법--예를 들어 급진적 방법 혹은 점진적 방법--상의 차이를 보이면서 경쟁하는 것이 아마도 시장경제론자들로서는 최선의 상황으로 판단된다.윤석열 대통령의 통상적 양날개론 비판이 반가운 이유는, 지금처럼 주사파까지 등장하는 상황에서는 그가 지도자로서 우리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확실하게 언급할 필요가 있고 , 그렇게 함으로써 당장은 거대야당의 존재 등으로 법인세를 포함한 세금 인하 등을 추진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상황이 무르익으면, 어떤 방향으로 개혁을 추진할지 국민들에게 확실한 믿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김이석 아시아투데이 논설실장

2023-09-18 18:33 김이석 아시아투데이 논설실장

[시장경제칼럼] 이타적 태도를 배우고 가르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전용덕 대구대학교 명예교수지난 7월 27일 국회도서관에서 일부 사회복지학과 교수들이 초·중·고교에 사회봉사 과목을 신설할 것을 제안했다. 한 교수는 “학생들의 봉사활동 감소는 인성 함양의 기회를 잃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하고 “교과목 등과 연계한 봉사를 통해 이타적 태도를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이런 제안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청소년 자원봉사자가 2017년 200만 명에서 2022년에는 45만 명으로 밑돌며 5년만에 78%나 감소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가 학생들의 기본 인성을 책임지고 교육하기 위해 초·중·고교에 사회봉사 과목을 신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사회봉사 과목을 고교에서는 고교학점제와 연동해 교육 필수 과목이자 졸업 의무 과목으로 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지난 몇 년간 자원봉사자가 크게 감소한 것은 조국 전 장관의 자녀 입시비리 의혹에서 각종 자원봉사 활동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고교에서 졸업 의무 과목으로 지정하고 봉사활동 과정을 엄격히 감시·감독한다고 자원봉사 활동으로 인한 입시비리 의혹을 없앨 수 없다는데 있다. 대학 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이 매우 저렴하고 대학 졸업장으로 인한 대가가 큰 상황에서는 그런 입시비리 의혹은 상존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고교 교육에서 자원봉사 과목을 졸업 의무 과목으로 지정하는 것을 반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이제 그들의 주장을 하나씩 검토해본다. 첫째, 사회복지학자들은 국가가 학생들의 기본 인성을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간의 기본 인성에 대한 책임은 개인 각자가 책임져야 한다. 즉 기본 인성에 대한 교육은 피교육자 자신과 부모와 같은 가족 구성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 인성 교육은 대부분 부모의 몫이고 부모가 밥상머리에 가르쳐야 한다. 작금에 대한민국 교육이 기본 인성 교육에 문제가 있는 것은 부모가 그런 밥상머리 교육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둘째, 이타적 태도는 물론 좋은 것이지만 사회봉사 과목을 청강함으로써 배워지는 것이 아니다. 이타적 마음가짐이나 태도는 스스로 그런 마음가짐이나 태도를 가지도록 훈련하거나 부모가 그런 훈련을 시켜야 한다. 타인이 강제한 이타적 태도는 오래가지 못한다. 학생들은 사회봉사 과목의 학점을 이수하는 데만 집중할 것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국가가 강제하는 이타적 태도에 대해 학생들이 반항 수도 있다.셋째, 고교의 경우에 사회봉사 과목을 필수과목이자 졸업 의무 과목으로 부과할 것을 사회복지과 교수들은 주장했다. 그렇게 하겠다는 것은 사회봉사 과목 이수를 마치 조세나 징병을 의무적으로 납부하는 것과 같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즉 사회봉사 과목을 필수과목이자 졸업 의무 과목으로 부과한다는 것은 국가가 학교와 학생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다. 이 때 학교와 학생의 자율성이란 두 주체가 교과과정을 스스로 수립하는 권리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학교와 학생의 자율성이 너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사회봉사 과목을 졸업 의무 과목으로 부과하는 행위는 정부가 역사 교과서를 직접 발행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강제성을 띤다는 점에서 말이다. 역사 교과서를 민간 역사가들이 집필하듯이 졸업 과목도 학교와 학생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의 대한민국 학교들은, 국공립 또는 사립 구분 없이, 모두 자율성이 너무너무 부족하다. 그런 부족은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국가가 도덕을 강제하면 전체주의 사회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어렵다. 학교와 학생에게 자율을 확대해야 하는 것은 지금과 같은 산업혁명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전용덕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2023-09-11 19:38 전용덕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시장경제칼럼] 자유시장경제와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

오래전부터 반기업 정서는 한국인의 경제관을 대표하는 특징의 하나로 지목되어 왔다. 반기업 정서란 기업 또는 기업인이 자신의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거래 상대방의 이익을 침탈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환경오염과 부정부패 등의 외부효과를 발생시킨다는 인식하에 기업(인)을 불신하고 비판하는 태도를 일컫는다. 더 나아가 반기업론자는 경쟁에 기초한 시장과정을 약육강식 또는 승자독식의 불공정을 낳는 주범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이에 반기업·반시장 정서는 자유시장주의, 자유기업주의를 반대하고 그 대신에 정부의 강력한 시장개입과 기업규제를 적극적으로 촉구하거나 또는 지지하는 여론의 물결을 끊임없이 흐르게 하는 근본적인 원천이다.모든 일이 그렇듯이 비판적 인식과 태도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기업의 소유지배구조와 경영, 시장거래와 경쟁은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제도의 영향을 받는다. 제도는 모든 시장 참여자가 준수해야 하는 규칙이다. 그러나 제도는 사회적 선택으로 형성되기 때문에 완전무결할 수 없고 진화의 대상이다.따라서 만약에 비판적 인식이 경제조직의 효율성을 더 높일 수 있는 제도 개선으로 이어진다면 이 경우 반기업 정서는 음식의 숨은 맛을 끌어내는 소금의 생산적인 역할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터무니없는 비판을 포함해서 기업과 시장에 대한 과도한 비판과 문제 제기는 소금을 지나치게 투입해서 음식을 아예 먹을 수 없게 만드는 것과 같다.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교훈은 반기업 정서에도 적용된다.반기업 정서는 선진국, 후진국을 막론하고 기업이 존재하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한다. 한국의 문제는 반기업 정서가 다른 나라보다 확연히 높아 위험한 상황일 뿐 아니라 그러한 위험 수위가 완화되지 않고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외에서 누가 국민인식 조사를 하는가와 관계없이 결과는 한결같다.비근한 예로 올해 6월에 한국경제신문사가 경제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 “전문가들은 한국의 반기업·반시장 정서가 세다고 입을 모았다. 52.8%(28명)가 ‘다소 세다’, 35.8%(19명)는 ‘매우 세다’고 했다. ‘약하다’는 응답은 2.0%(1명에) 그쳤다.또 다른 예로, 광고회사 에델만이 작년 11월에 조사해서 올해에 발표한 ‘2023 에델만 신뢰지수(Edelman Trust Barometer)’에서 한국 기업에 대한 신뢰지수는 38%로, 함께 비교 조사한 27개 국가 중 단연 ‘꼴찌’였다. 국가 순위와는 별개로 신뢰지수의 값에서도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27개국의 평균 신뢰지수는 62%인데 한국은 38%에 불과했다. 에델만은 신뢰지수가 50% 미만이면 ‘불신 국가’로 분류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한국은 오래전부터 계속해서 기업 불신 국가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반기업·반시장 정서는 필연적으로 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규제하는 여론과 정치로 발전한다. 특히 좌파 정치권과 규제당국은 틈만 나면 반기업·반시장 정서에 편승하거나 더 나아가서는 적극 조장함으로써 자유시장경제의 입지를 축소하고 정부 규제의 깊이와 범위를 더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따라서 당연한 말이지만 기업(인)에게 반기업·반시장 정서는 ‘강 건너 불구경 거리’가 결코 아니다. 선례도 있고 경험도 했다. 지난 정부 때인 2021년,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반기업 정서 기업 인식조사’를 다시 보면, 반기업 정서를 체감한다고 응답한 기업은 93.6%, 반기업 정서의 대표적인 여파로 ‘일률적 규제강화에 따른 경영부담 가중’을 지적한 응답이 53.9%였다.이처럼 심각한 반기업 정서의 문제에 대해 우리 기업(인)은 어떻게 대응해왔는가? 남의 일이 아니건만 신기하게도 대부분은 이 문제를 강 건너 불처럼 보아 왔다. 다른 누가 불을 꺼주겠지 바라며 수수방관하거나 기업 시스템을 비판·공격하는 측을 달랜다고 하면서 거꾸로 그들을 지원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1970년대 전후에 좌파의 공격으로부터 미국의 기업 시스템을 구원하는 비책을 제시했던 루이스 파웰의 표현을 빌면, ‘재계 스스로 기업 시스템의 파괴를 용인하는 황당한 역설(bewildering paradoxes)’이 일어난 것이다.이제라도 우리 기업(인)들이 반기업 정서의 완화와 해소를 진심으로 바란다면, 파웰이 제안했듯이 ‘자유시장경제 가치의 보전·확산’을 기업(인)의 중요한 사회적 책무로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황인학 한국준법진흥원 원장

2023-08-28 10:26 황인학 한국준법진흥원 원장

[시장경제칼럼] ESG 관련 주주제안과 그 효력

지난 몇 년 간 ESG 요소는 기업의 주요한 경쟁적 요인을 넘어 필수 요인으로 수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주주제안의 한 형태로도 ESG 관련 요소들의 대상 범위가 확대되고 있는데, 최근 국내에서는 행동주의펀드 또는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법률상 허용된 주주제안 이외에 ESG 관련 권고적 주주제안 사례가 제시되어 논란이 된 바 있다.구체적으로는 2023년 1월, 경제개혁연대는 국내 11개 상위 대기업집단의 대표회사에 2023년 정기주주총회 안건으로, ESG 관련 “권고적 주주제안”을 허용하는 조문 신설을 내용으로 하는 정관변경 안건을 요청한 바 있었다. 그러면서 경제개혁연대는 상법상의 주주제안 제도를 활성화하고, 경영진의 사회적 책임경영을 강조하기 위해, 권고적 주주제안을 회사가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주주제안이란 주주들이 주주총회에 의제 또는 의안을 직접 제시할 수 있는 상법상의 제도인데, 문제는 상법의 해석상으로는 권고적 주주제안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주주총회에서 가결된 주주제안의 효력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는데, 하나는 구속적 주주제안이고, 다른 하나는 권고적 주주제안이다.구속적 주주제안이란 일반적인 주주총회 승인사항과 마찬가지로 주주총회에서 가결된 주주제안은 반드시 그대로 효력이 발생하여 경영진이 이를 따라야 하는 형태의 주주제안을 말한다. 반면에 권고적 주주제안이란 주주총회에서 가결되더라도 곧바로 효력이 발생하지 않고, 경영진도 해당 결과에 구속되지 않는 형태의 주주제안을 의미한다.우리나라 현행 상법은 첫 번째 형태의 구속적 주주제안만을 인정한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에서도 법률상 주주제안의 구속력을 인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권고적 주주제안을 인정하는 것은 미국뿐이다.그 동안 주주제안은 주주 활동에 최소한의 실효성을 담보한다는 측면에서 기능적 이점이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주주제안의 실질적인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당초의 취지와는 달리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 또는 환경 등의 이슈를 기업시장에서도 부각시키고 주주제안의 활용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 권고적 주주제안의 실효성을 인정하거나 또는 이를 명문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견해가 제시된 것이었다. 이른바 권고적 주주제안 도입론이다.도입론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보면 첫째, 주주활동의 대상이나 목적은 주주총회 권한 사항과 같이 그 효과나 결과를 명확하게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둘째, 주주이익이나 재무적인 기업가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기 어려운 사회ㆍ환경 관련 이슈는 주주제안이 권고적인 효력을 가질 때, 오히려 다른 주주들에 대한 설득 가능성도 높아지며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셋째, 권고적인 효력만 있다 하더라도, 가결된 주주제안의 이행을 거부하는 것은 회사로서도 부담이라는 점에서, 주주의 역할 증대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22년 1월에는 이러한 취지에 근거해 더불어민주당에서 권고적 주주제안을 담은 상법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었다.일단 권고적 주주제안은 현행 상법의 해석상 허용되기 힘들다. 주주총회의 권한은 상법 및 정관에 규정된 사항에 한정되므로(상법 제361조), 그 밖의 사항에 관한 총회 결의를 하더라도 무효가 되는 것이 원칙이고, 주주제안 역시 주주총회의 목적사항, 즉 결의의 대상이 될 것에 대해 행해져야 하므로, 총회의 권한에 속한 사항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결국 법률이나 정관에 명문의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ESG 관련 이슈들을 주주총회의 결의대상으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권고적 주주제안이 우리법상 도입되는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다.우선, 주주제안권 남용 문제가 크게 증가할 것이다. 권고적 주주제안이 거론된 사례를 보면, 회사 측의 제안권 상정 반대의 근거는 모두 주주제안의 남용 문제였다. 미국의 경우에도 주주제안에 권고적 효력만을 부여하면서도, 제안권 남용을 우려하여 회사의 주주제안 거부사유를 광범위하게 정해두고 있다. 우리나라 상법은 법령상 정한 몇 가지 거부사유 이외에 제안권 남용의 문제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해석론상으로 처리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아울러, 권고적 주주제안이 가결되는 경우, 해당 제안을 회사가 실제로 ‘권고적으로만’ 수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환경적인 문제 또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주주제안이 가결되었음에도 회사가 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스튜어드십 코드 등에서 회사ㆍ주주와의 대화 항목에 반할 소지가 생기는데, 이렇게 되면 상장회사 공시 항목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회사 차원에서는 이것이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다.마지막으로, 권고적 주주제안을 도입하는 경우 회사 비용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특히, ESG 요소에 대한 상장회사의 공시강화 기조가 확대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권고적 주주제안의 형태로도 ESG 요소를 별도 지표로 추가 제도화하는 것은 기업에 대한 이중삼중의 규제가 될 수 있다. 결국 이는 회사의 비용 증대로 이어지는 것이다.지난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BlackRock은 투자 포트폴리오에 담은 회사들의 주주총회에서 ESG 안건에 반대표를 제시하였다. BlackRock은 “향후 주주총회에 올라오는 기후 관련 안건 대부분에 대해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밝히면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총회 안건으로 올라오는 정책 상당수는 경영진을 구속할뿐더러 지나치게 규범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면서 “회사를 지나치게 꼼꼼히 관리하려(micromanage) 하거나 주주가치를 증진시키지 않는 제안”을 반대표 행사 대상으로 명시하였다.요컨대, ESG 관련 권고적 주주제안 역시 주주의 이익 보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ESG 요소의 함의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ESG 가치와 회사의 가치가 충돌할 경우,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가? 만약 ESG 가치가 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본다면, 영리단체인 회사에 효율성이 아닌 도덕률을 강조할 수 있는가에 대해 답해야 할 것이다.김영주 부산대 무역학부

2023-08-21 08:15 김영주 부산대 무역학부

[시장경제칼럼] 국가채무 증가의 정치 경제학적 이해

김영신 계명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최근 3대 국제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피치 레이팅스(Fitch Ratings)가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하향 조정했다. 피치 레이팅스가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국가라고 평가받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떨어뜨린 주된 이유는 재정 악화와 국가채무 부담 증가로 설명했다. 지난 5월 미국 연방정부는 부채 한도 31.4조 달러의 돈이 고갈되어 더 이상 지출할 여력이 없어 한도를 늘리기 위한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국가채무 증가는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근년에 코로나19를 극복하고 경기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정부가 재정을 확대하여 국가채무가 크게 증가했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총 1068.8조 원으로 1997년 60.3조 원에 비해 명목 금액을 기준으로 약17.7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11.1%에서 49.4%로 증가했다. 이 같은 증가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국가채무비율이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사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의 증가는 많은 국가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만 국가마다 증가 속도는 다르다. 일부 국가들은 국가채무를 갚고 재정지출을 줄이는 등의 노력으로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낮추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2016년∼2017년에는 증가하지 않았다. OECD 통계에서 우리나라의 GDP 대비 일반정부 채무비율(general government debt of GDP)은 2015부터∼2017년까지 그리고 2022년에는 다소 낮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대체로는 증가하는 추세로 나타나고 있다.국가채무가 증가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부의 재정적자 때문이다. 재정적자는 세수보다 지출이 많은 것을 의미한다. 정부의 지출이 많아지거나 세수가 감소할 때 발생하는 것이다. 국가가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주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2020년 이후 COVID-19 팬데믹 기간에 국가채무가 더욱 증가했다. 하지만 국가의 위기 상황이 아니더라도 국가채무가 증가할 수도 있다. 다름 아닌 정치적 요인에 의한 재정지출의 확대가 국가채무 증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정치인들은 선거를 위해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고자 사회복지 및 공공프로그램을 신설 또는 확대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정책은 정부지출을 증가시켜 국가채무에 부담을 줄 수 있다. 특히 의무지출 프로그램(entitlement program)의 도입과 확대는 정부지출을 증가시키는 주요 요인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1990년대 초에 신설되었던 노령수당제도가 1990년대 말 경로연금제도로 변경되었고 2008년 기초노령연금제도로 바뀌면서 소득보장을 확대하였다.이는 다시 2014년 기초연금제도로 진화하면서 소득보장수준이 대폭 향상되었다. 2014년에 기초연금 수급자는 435만 명이었는데 올해 약 665만 명으로 증가했고 2026년에는 약1,110만명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관련 예산도 도입 당시에는 6.9조 원이었는데 올해 22.5조 원, 2090년에는 366조 원으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동기간 기초연금액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인구가 고령화됨에 따라 고령인구에 대한 의무지출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게 된다. 고령인구가 더 많이 증가한 국가에서 국가채무는 더욱 빠르게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고령가구는 상대적으로 젊은 가구에 비해 시간할인율이 높다. 정치인들은 이들의 정치적 지지를 유도하고자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근시안적인 공공프로그램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국가채무를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게다가 정치인들의 임기는 제한되어 있으므로 단기적 성과에 집착할 유인이 존재한다.특히 케인지언(Keynesian) 정책관점에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선호하므로 적자 재정의 가능성이 더욱 높다고 볼 수 있다. 추가경정예산을 통한 재정지출 확대의 단기적 이익은 특정 소수의 그룹에게 돌아가만 그 비용은 대다수 국민에게 중장기적으로 전가되기에 민주주의 국가에서 재정적자의 가능성은 상존한다고 볼 수 있다. 정당이 적자 재정에 따른 금융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재정지출 확대를 요구하는 정당 간의 경쟁이 치열해 질 경우 자칫 시간에 따른 공유의 비극으로 귀결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국가채무가 증가하여 재정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우리나라의 평균연령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1970년 23.6세에서 2020년에는 42.7세, 그리고 2050년에는 53.4세로 증가할 전망이다. 동기간 중위연령도 18.5세에서 54.9세로 증가될 것으로 예측된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가장 빠르게 고령화되어가는 국가이다. 고령인구가 늘어남에 따른 정부지출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젊은 생산가능 인구 비중도 감소하고 있으므로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증가에 대한 대책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고 볼 수 있다.김영신 계명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

2023-08-07 08:34 김영신 계명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

[시장경제칼럼] 전력 시장, 소비자의 선택의 자유는 언제쯤…

우리나라에서 ‘시장’ 규제가 가장 강한 산업 분야는 무엇일까? 소비자, 특히 우리 같은 일반 국민이 아예 선택권을 행사할 수 없는 곳이 바로 전력 시장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공급자, 가격, 에너지원 등을 선택할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일부는 우리나라에는 진정한 의미의 전력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고도 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고지서에서 이번 달 전기료가 얼마인가를 확인할 뿐이다. 내가 사용하는 전기가 어떤 에너지원을 활용해서 생산되었고, 생산 단가가 얼마이고, 대기오염물질은 얼마나 배출했는지 알 수도 없고, 전력 공급자를 선택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좀처럼 공감을 얻거나 확산되지 못하고 있다. 전력 산업 관계자나 전문가가 아닌 이상, ‘소비자가 선택을 할 수도 있어?’라는 반응이다.언젠가 재생에너지에 관심이 많은 한 모임에서 다양한 정책 수단에 대해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청중이 에너지에 관해서는 상당히 전향적인터라 전력을 생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비자 입장, 즉 소매시장에 대해서 생각해보자고 제안했다. 소매시장을 개방해서 에너지원에 대한 소비자 선택권을 확대하고, 생산자-소비자 간 전력거래계약(Power Purchase Agreement, PPA), 나아가 개인간 거래(P2P)와 같은 다양한 시장 시스템을 도입해야 하지 않겠냐며 여러 해외 사례를 소개하였다.공감과 대안에 대한 활발한 토론을 기대했으나 돌아온 평은 ‘우리가 아직 거기까지 논의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 ‘뒤통수를 맞은 듯하다’ 등이었다. 전력 시장의 구조 개편이라는 크고 민감한 문제를 전제로 하는 주장이니 불편했던 것이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내가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했다.전력 시장의 구조는 크게 발전, 송전, 배전, 소매 시장으로 구분된다. OECD 회원국 대부분은 주로 공공 전력회사가 이를 모두 소유·운용하는 전통적 독점구조에서 점진적인 시장 구조 개편을 통해 발전 시장부터 송·배전망, 소매 시장까지 경쟁원리를 도입하는 방향으로 시장자유화·탈규제화 모델로의 이행을 이루어왔다. 소매 시장이 독점구조로 운영되는 곳은 이스라엘과 한국 뿐이라고 한다.우리나라도 외환위기 이후 3단계에 걸친 전력시장 구조개편에 대한 추진계획을 수립하였으나, 발전 시장의 개방에 그치고 있다. 그마저도 약 10년 전 전력 공급 부족으로 대규모 정전이 발생하자 부랴부랴 대기업을 발전 시장에 진출하도록 독려했던 기억이 있다.대부분의 국가에서 초창기에 전력 시장이 국가에 의해 독점적으로 운영된 것은 민간의 산업 역량이 충분치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민간 부문의 자본이나 기술이 진보한 것은 물론 이윤 추구를 위해 시장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업자가 대기 중이다.한국은 여전히 전력거래소에서 송·배전망을 독점하고 있는데, 영국, 독일, 일본 등의 경우처럼 송전망을 분리독립하여 소매시장에 다양한 사업자가 진출하여 경쟁할 수 있도록 개방할 필요가 있다.우리는 전력 시장 ‘개방’에 대한 의제가 등장하면 일단 전력 수급 불균형, 전력 요금 상승, 대기업 독과점의 문제가 단골손님처럼 등장하여 심화된 논의로 이어나갈 수 없게 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합리적인 것인가는 의문이다.전력 공급이 수요 예측을 넘어 가격이 떨어지자 발전 사업자들이 정부에 가격을 보전해달라고 하거나, 또는 어느 지역의 태양광 초과 발전으로 전력 계통에 과부하가 왔다며 사업자에 대한 특혜·비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송·배전, 소매시장까지 개방한 국가들에서 전력 요금이 급격히 상승해서 산업이 위축되었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우리도 발전 시장을 개방하면 민간 독점 때문에 전기료가 올라서 여름에 에어컨도 사용하지 못할 거라는 반대가 있었지만 아직까지 별문제가 없다. 오히려 발전시장에 소규모 사업자가 대규모 참여하고 있으며, 재생에너지 발전소는 10만개 정도 존재한다고 한다.‘국민과 산업 발전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정부가 국민에게는 전력원 선택의 자유를, 사업자에게는 시장 진출의 기회를 박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아가 전력 산업의 성장을 정부가 방해하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물론 기업은 시장에서 진퇴를 겪으며 경쟁력을 키워가야 하고, 소비자는 기존에 ‘공공재’처럼 주어지던 전력에 대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비용을 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전력 시장이 활성화되면 결과적으로 편익은 다시 국민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다.정부가 최전방 주전으로 뛸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다양한 기술이 활용될 수 있도록 지능형 마이크로 그리드(Smart Micro Grid) 같은 인프라를 보충하고, 전력 시장에서 공정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를 구상하는 역할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는 전력 사업자나 소비자를 보호하고 관리하고 통제할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독립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허용할 때이다. 박선주 경북대 행정학부 부교수

2023-07-31 08:17 박선주 경북대 행정학부 부교수

[시장경제칼럼] 중대재해처벌을 개정해야 하는 중대한 이유

곽은경 자유기업원 사무총장중대재해처벌법 관련 기사가 나올 때 마다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이 법은 산업재해로 사망사고가 나거나, 질병이나 부상이 생기는 경우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 가족 중에 기업경영을 하는 사람도 없으니 나와는 무관한 법인 줄 알았다. 어느 공사장에서 폭발사고가 났다더라, 어디 공장에서 추락사고가 있어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이 되었다는 등의 언론 보도를 접할 때마다 이러다 경영자들 줄지어 처벌을 받겠구나 강건너 불 구경하듯 안타까워했다. 알고 보니 중대재해처벌법은 내 발등의 불이었다. 본의 아니게 2년째 아파트 동대표이자 입주자회의 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입주자대표회의는 공동주택의 운영, 관리, 보수 등 아파트의 크고 작은 공사를 계획하고 결정하는 자리이다. 최근 아파트 도색공사를 하게 되었는데, 인부들이 옥상에서 로프를 타고 내려오면서 작업을 하는 것이라 사고가 나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외벽에 페인트를 칠하는 작업은 모든 아파트가 주기적으로 시행하는 필수적인 공사라 취소할 수도 없고, 행여 사고라도 나서 신문에 나오면 어쩌나 겁부터 덜컥 났다.더 놀라운 것은 우리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하는 모든 업무 즉, 전지작업, 전기공사, 계단대청소 등등이 모두 중대재해처벌법이 대상이 된다는 점이었다. 실제 아파트 직원의 사고로 처벌대상이 되었던 사례도 있었다. 2023년 4월 동대문구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이 천장누수 방지 작업을 하기 위해 사다리에 올라갔다 떨어져서 사망했다. 해당 직원은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고 작업을 했고, 안전보건확보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관리위탁업체 대표가 처벌을 받게 되었다.이렇게 중대재해처벌법은 나의 일상에, 국민들의 일상에 파고들고 있었다. 우리 국민들 중 절반 이상이 공동주택에 살고 있다. 각 아파트마다 입주자대표가 있고 동대표가 있을 것이다. 문제가 발생한다면 1차적 책임은 아파트 관리소장에게 있겠지만, 관리소장을 고용한 입주자대표회의, 자신들을 대신해 의결과 집행을 맡긴 아파트 입주민들 하나하나가 그 책임에서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실제 “입주자대표회의는 제 3자에게 공사를 하도급하더라도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를 다해야 한다.”라는 규정이 있고 이를 위반하면 처벌을 받게 된다고 한다.중대재해처벌법이 나를 포함한 모든 국민이 처벌대상이라고 생각하니 문제가 명확하게 보인다. 이 법은 ‘모든 근로자가 안전해야 한다’는 희망사항을 무리하게 법제화한 것으로, 현실적으로 불합리하다. 이 법 이전에도 모든 아파트는 관리사무소 직원이 안전한 환경에서 근무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왔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법이 생겨났고, 처벌이 강해졌다고해서 사고를 완벽하게 없앨 수는 없다. 사고의 원인은 정말 다양하기 때문이다. 전국의 건설현장, 위험한 일터에서도 마찬가지 사정일 것이다.작업 중 사고에 최고경영자가 형사적 책임을 지게 하는 것부터가 모순이다. 초등학교 6학년 사회 교과서를 보면 산업재해를 막기 위해 정부, 기업, 노동자 노력이 필요하다고 나와 있다. 당연한 상식이다. 그런데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용자인 기업인을 처벌하는 데만 방점을 두고 있다. 이를 대비할 예산과 인력을 배치할 수 없는 중소기업이나 소규모 사업장들, 아파트 관리소들은 아무런 대비책이 없이 법의 처분만 기다려야 한다.결국 안전과는 무관하게 책임회피를 위한 행정절차만 남게 될 우려가 크다. 책임자 입장에서는 이미 최선을 노력을 하고 있는데, 혹시 모를 사고에서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안전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서류로 증명하는 수밖에 없다. 실제로 우리 아파트의 경우 도색공사 계약 외에 ‘기술지도계약’을 추가로 체결했으며, 관리사무소에 안전관리자를 선임 하려고 준비 중이다. 물론 이에 대한 비용은 관리비로, 모든 주민들이 부담하게 된다. 안전을 책임지는 직원이 있다고, 서류가 몇 장 늘어난다고 작업현장이 좀 더 안전해진다고 믿을 사람은 없다.비용과 노력을 더 기울였으나, 중대재해는 오히려 늘었다.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첫해인 2022년 업무상 사고 사망자가 874명으로 전년 대비 46명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시행 첫해, 시범케이스로 처벌받지 않기 위해 더욱 조심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망자 숫자가 늘어난 것이다. 누가 좀 더 부주의해서가 아니라, 최선을 다하더라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사고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 법이다. 처음부터 현실은 반영하지 않고, 그냥 근로자가 안전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제도를 만들었기 때문에, 각 경제주체들은 일상 곳곳에서 추가로 행정비용을 지불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의 예비 처벌대상자가 되고 말았다.결국 중대재해처벌법은 법이 보호하려고 하는 실익이 모호한채,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드는 부작용이 크다. 관리소장이 직원들의 사고에 책임을 지고, 처벌을 받기 시작한다면 아파트는 관리소장을 구하기 어렵게 될지 모른다. 사고에 취약한 중소기업 대표도 반복되는 처벌에 사업을 접을 것이며, 사고 날 확률이 많은 연령층에게는 일자리가 제공되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대형건설사 대표도 사고를 0으로 만들 수는 없고, 자꾸 감옥에 들락날락 하다보면 건설업을 포기하는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 기술력과 자본력 있는 대기업 브랜드의 아파트가 지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전 국민에게 피해가 가는 일이다.앞으로 모든 기업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다고 하니, 더 큰 부작용을 낳기 전에 현실에 맞도록 법을 개정하는 것에 좋겠다. 사용자에 대한 의무를 명확히 하고, 최고경영자를 처벌하는 형사처벌 규정도 현실에 맞게 개정할 필요가 있다.곽은경 자유기업원 사무총장

2023-07-25 10:58 곽은경 자유기업원 사무총장

[시장경제칼럼] 유치찬란하게 규제개혁에 나서보자

윤주진 퍼블리커스 대표역대 모든 정부는 성향과 무관하게 ‘규제개혁’을 외쳐왔다. 낡은 규제, 손톱 밑 규제, 갈라파고스 규제와 같은 진부한 표현들은 언제나 대통령과 주요 부처 장관, 정당 대표의 입에 오르내렸다. 반시장 정책 기조를 노골적으로 내비치며 오히려 규제 생산에 앞장서는 정치인마저도 규제개혁을 약속한다. 경제 일꾼 이미지 구축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단골 메뉴다. 이번에는 다소 색다른 표현이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의 ‘킬러 규제’다. 대학수학능력시험 관련해 논란이 됐던 이른바 ‘킬러 문항’의 유쾌한 응용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킬러 문항보다 킬러 규제라는 말이 더 현실감 있게 느껴지고 시급하다는 인상을 준다.실제로 킬러 규제에 기업은 생존이 달렸으니, 혁신과 확장을 가로막는 규제란 분명 ‘킬러(killer)’가 틀림없다. 자유 시장 경제 질서를 중시하는 윤 대통령이 평소에 강조하는 국정 철학과 주요 정책 과제를 봐도, 윤석열 정부의 규제개혁 의지 자체는 큰 신뢰감을 준다.기업인들이 실무에서 부딪치는 규제의 실체는, 어려움보다는 막막함의 대상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규제의 범위와 내용이 명확히 정해져 있어서 누구를 설득하고 무엇을 고치면 될지 알 수 있다면 기업이 체감하는 규제의 벽이 그렇게 높지만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딴판이다. 하고자 하는 사업, 실증하고자 하는 기술의 관련 법령, 규제의 종류부터 특정하기가 어렵다.행정부 최고 수반인 대통령과 부처 장관이 아무리 규제개혁을 강조해도 그것이 실무 부서 담당자 수준의 실행으로 이어지기까지는 부단한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 그 사이 시간은 흐르고 몇 차례의 선거를 치르고 나면 금세 지침의 힘은 빠지고 담당자는 교체되기 일쑤다.특히, 규제 완화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법적 책임에 대한 두려움이 일선 공무원들을 위축시킨다. 선의로 적극 행정을 펼쳤다가 어느 날 갑작스럽게 터진 안전사고나 재난으로 인해 수사나 징계를 받을 수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해주지 않으면 공무원들에게는 소극 행정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규제개혁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크지만 정작 ‘어떻게’ 규제개혁을 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적다. 그만큼 현실적 난제라는 뜻이다. 캄캄한 우주를 전체적으로 이해해서 완벽한 로드맵을 짠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복잡할수록 간단하게, 대단할수록 유치하게 접근하는 것이 어쩌면 더 본질적인 해결 방법일 수 있다.규제개혁, ‘유치하게’ 접근해보는 것은 어떨까? 국정, 정책, 공직과 같은 무거운 개념에 얽매이지 말고, 최대한 단순하게 풀어나가 보자는 제안이다.첫째, 일단 숫자부터 정해보자.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국내 모든 규제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기업 ‘씨지인사이드’에 따르면 2023년 3월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규제는 총 8만 7456건이고 이 중 중앙 규제는 55%(4만 7255건)이라고 한다. 규제라고 해서 모두 불필요하고 구태의연한 것은 아닐 것이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 거래의 공정성과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한 필수 규제의 비중이 훨씬 더 높다. 모든 규제가 반시장적인 것 또한 당연히 아니다.그렇다면 최대한 보수적으로 접근해, 전체 규제의 5% 수준을 개혁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은 어떨까? 중앙 규제 기준으로 약 2,500건 수준이다. 윤석열 정부의 중앙 부처 숫자는 19개다. 기계적으로 할당을 하면 부처별로 약 130건이다. 부처 고유 업무 특성과 규모에 따라 조정을 거쳐 많게는 300~400건에서 적게는 100건 미만까지 목표치를 할당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아마도 반드시 개혁해야 할 규제의 전체 숫자에 비해선 적은 수치에 해당할 것이다.목표 숫자를 정하면, 그 다음부터는 자연스럽게 규제를 샅샅이 살펴보게 된다. 과거에는 판단이 망설여지던 규제도 더욱 적극적으로 개혁 대상에 포함하는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실적 충족에만 집중하느라 신중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그런데 결국, 그 오래고도 전통적인 신중함이 규제개혁 발목을 잡아 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단순 목표 숫자 설정이 가져올 득이 실보다 더 클 것이라 확신한다.둘째, ‘묻지마 규제개혁’을 시도해보자. 누가 추진해서 누가 결정한 것인지, 흔적을 남기지 말자는 것이다. 일종의 ‘영구 미제 규제개혁’이기도 하다.규제개혁에 소극적인 공무원을 대상으로 정부는 ‘적극행정’을 장려하고 있다. 그래서 정부는 ‘적극 행정 면책’ 제도를 운용 중이다. 공무원이 적극행정을 추진한 결과에 대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감사원 감사, 자체 감사 등에서 징계 요구 등 책임을 묻지 않거나, 징계의결 또는 징계부가금 부과 의결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하지만 결국 적극 행정면책도 면책 이유를 소명하고 심의를 거치는 꽤 무거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안타깝지만, ‘추후 면책이 가능할 수 있다’는 믿음만으로 공무원을 움직이기란 한계가 뚜렷하다.차라리 부처별로 핵심 규제개혁 과제인 경우에 한해, 애초에 기안자와 결재권자를 모두 장·차관급으로 격상시켜버리는 것도 대안이다. 이른바 ‘셀프 기안, 셀프 결재’다. 범정부 차원에서 규제개혁 과제를 모아 부처별 기안·결재의 과정 없이 국무총리 전결로 ‘원 포인트 처리’하는 것 또한 고려해볼 만하다. ‘규제개혁부 특임 장관’은 차라리 어떠한가? 관례를 깨야 하는 부담, 새로운 시도에 대한 낯섦은 있을지언정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행정부 자체 규정 개정만으로도 가능하다.없앨 규제 숫자부터 정해놓고 채우자, 누가 추진한 것인지도 모르게 하자, 다시 한번 시인하지만 유치찬란한 발상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파격과 실험이 없이 단기간에 의미 있는 규제개혁 성과 기대하는 것은 더욱 난망하다.초저성장 공포의 그림자 아래 한국경제 전망이 점차 어두워지고 있다. 핵심 산업마저 불황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지금, 규제개혁은 최소한의 생존 해법이다. ‘전격전’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빠르게, 그리고 날카롭게 들어가야 한다. 유치함이 해법일 수 있다.윤주진 퍼블리커스 대표

2023-07-17 11:32 윤주진 퍼블리커스 대표

[시장경제 칼럼] 부총리의 ‘라면 값 인하’ 요구 넌센스

이주선 기업amp;경제연구소장, 연세대 경영대학 연구교수최근 추경호 부총리가 라면 값을 내리라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자유와 시장경제를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여러 번 장관들이 시장의 가격이 높다는 둥 낮다는 둥 여러 코멘트들을 했다. 또한 시중에는 위스키 가격이 다른 나라들보다 크게는 거의 두 배 가까이 높다거나 샤넬이나 벤츠 등 브랜드 명품들의 가격이 우리나라에서 유독 높다면서 “우리가 봉이냐”며 해당 기업들을 비난하는 기사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아마 이번 여름 휴가철에도 어김없이 인기 지역 해수욕장이나 휴양지에서의 ‘바가지 요금’에 대한 고발과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이 가운데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경제 부총리가 라면 값을 내리라고 한 것이다. 이 요구를 한 논리는 라면회사들이 밀가루 값이 올라서 라면 값을 올렸다고 했으니, 이제 국제 밀 가격이 절반이 되었으니 가격을 내리라는 것이다. 위스키, 명품 가격, 그리고 휴양지 요금에 대한 비난도 같은 맥락으로 비판받아야 할 잘못된 인식이다. 하지만 부총리는 나라의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사람이므로 이런 경제학 원론 수준의 지식에 무지함을 보였으니 엄중히 비판받아야 마땅하다.물론 총선을 1년도 안 남긴 시점에서 여야가 거의 박빙 승부를 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심정은 이해가 간다. 결국 경제적 만족도가 최종적인 결과를 좌우할 수 있으므로, 살얼음판 걷는 사람처럼 정치인들과 고위 공직자들이 일하고 있을 것이다. 이미 인플레이션으로 소비자 장바구니 물가가 심각하게 올랐다는 인식이 있고, 이런 국민들의 걱정을 조금이라 더는 것이 득표에 유리하리라는 계산이 추 부총리의 생각에 없다고 하면 이상할 것이다.아마도 야당도 같은 자리에 있다면 더 심하게 그런 ‘명령 아닌 사실상 명령’을 여러 번 반복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중, 공개적으로 온갖 구실로 재정을 살포해서 국민들의 지지를 사려고 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런 추정은 틀릴 가능성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추 부총리의 라면 가격 인하 발언은 엄중하게 비판받아야 할 이유가 있다.첫째, 경제에서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을 추 부총리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주지하는 것처럼 가격은 원가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는다. ‘원가+마진’으로 가격이 결정된다는 생각이 많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있는 인식인 것은 맞다. 하지만 ‘원가+마진’으로 책정되는 가격은 생산자나 공급자가 시장에서 받기를 희망하는 ‘게시가격(list price)’일뿐, 시장거래로 결정되는 시장가격(market price)은 아니다.소비자와 공급자인 기업은 시장가격으로 거래하는데 이는 시장에서 사려는 사람의 의사와 팔려는 기업의 의사가 일치하는 지점에서 원가와 상관없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시장가격은 거래에서 지속적으로 변화해 나간다. 공급자의 원가가 어떠하든지 간에 소비자 선택을 많이 받은 상품은 가격이 올라가고,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 상품은 가격이 내려간다. 그래서 심지어 어떤 상품은 전혀 값을 받지 못하고 폐기되거나 원가 이하로 거래되고, 어떤 상품은 원가는 미미한데 그 수십 수백 배의 가격으로 팔린다. 이를 잘 알고 있을 부총리가 특별히 예외적 특성을 가지지 않은 지극히 보편적인 상품의 하나인 라면 가격의 인하를 요구했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이다 .둘째, 추 부총리가 라면 가격 인하를 요구한 것은 ‘세상의 모든 것들에는 대체재가 존재한다’는 경제학이 가진 진리에 가까운 명제를 도무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잘 아는 것처럼 라면은 인스턴트 식품 가운데 하나이고, 대체할 수 있는 먹거리들은 여기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많다. 사람들은 라면의 가격이 비싸면 잔치국수, 짜장면, 스파게티 등 다양한 면류들을 포함해서 밥, 빵, 과일, 생선회, 스테이크 등 다양한 다른 식품들로 그 먹거리를 기호와 선택에 따라서 대체할 수 있다.그러므로 정말로 라면 값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너무 높다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면 농심, 삼양, 오뚜기 등 라면회사들이 라면 봉지에 가격을 얼마로 표시하든 라면 가격은 시장에서 떨어지게 된다. 특히 이 회사들은 이런 상황에서 경쟁해야 하므로 당연히 다양한 판촉을 통해 라면 가격을 시장에서 정상화시키는 데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부총리가 이런 말을 한 것은 사실 정략적인 의도로 공권력을 이용한 것이라고 유추할 여지가 다분하다.셋째, 추 부총리가 인하 압력의 이유로 말한 ‘국제 밀 가격이 내렸으니 내려야 한다’는 논리는 더구나 온당하지 못하다. 이는 국제 밀 가격이 너무나 올라서 라면 가격을 인상한다고 말했던 라면회사들의 논리로 자신의 논리를 옹호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라면회사들의 이 논리도 라면 값을 올리는 정당한 근거는 되지 못할 수 있다. 왜냐하면 라면 값은 원료가 되는 밀가루 값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라면 가격은 국제 밀 가격뿐 아니라 국제 유가와 임금, 환율, 기계장비류 가격, 토지가격 등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그럴듯한 명분으로 라면회사들이 국제 밀 가격을 들이민 것은 아마도 통할 것 같은 변명이라고 생각해서였을 터이다. 어찌 보면 자승자박한 것이다. 그러나 라면 생산 기업들의 변명을 구실 삼을지라도 라면 가격 인하를 부총리가 나서서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만일 국제 밀 가격이 낮아져 라면 가격을 내려야 한다면, 왜 다른 밀가루나 밀을 써서 만드는 식품들의 가격 인하는 요구하지 않았는가? 짜장면도, 스파게티도, 잔치국수도, 수제비도, 빵도, 피자도, 과자도…. 모든 밀가루 사용 상품들의 가격 인하를 요구해야 했을 것이다. 나아가 식당들의 모든 밀가루 이용 요리들에 대해서도 그래야 했을 것이다. 이 상품들의 가격 인상도 국제 밀 가격 인상이 원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므로.그러나 라면만 콕 찍어 인하를 요구했다는 것은 발언의 정치성을 드러낸다. 또한 이런 경제수장의 발언은 경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장과 가격 기능을 해쳐서 경제를 어렵게 한다. 사소해 보이나 가랑비에 옷 젖는 것처럼.이주선 기업경제연구소장, 연세대 경영대학 연구교수

2023-07-03 10:11 이주선 기업&경제연구소장, 연세대 경영대학 연구교수

[시장경제칼럼] ‘문재인 케어’란 작명에 공감할 수 없는 이유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화려한 약속 우울한 성과 (Bright Promises Dismal Performance)는 노벨상 수상자인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만(M. Friedman)의 1972년 저술이다. 정치인들은 균형발전, 분배개선, 중소기업보호, 복지확대, 사회적 약자 보호 등 대중이 반길만한 화려한 약속을 쏟아내지만 이념과잉과 정치과잉, 설계주의 등으로 현실은 의도와 반대로 전개되기 십상이다. 2017년에 시행된 ‘문재인 케어’도 ‘화려한 약속, 우울한 성과’의 예외가 아니다.‘문재인 케어’, 의료정책에 실명(實名)이 들어간 자체가 패착‘문재인 케어’를 압축하면 ‘급여확대를 통한 보장성 강화’ 정책이다. 그렇다면 ‘문재인’이란 이름을 붙일 이유가 없다. ‘의료 보장’ 개념이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착안된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역대 정부 모두 ‘보장성 강화’에 정책적 노력을 기울였다면, ‘문재인 케어’ 작명은 패착이다. 공명심 내지 소(小) 영웅주의 발로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일각에서는 ‘오바마 케어’를 들어 ‘문재인 케어’ 작명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양자를 같은 평면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 오바마는 미국의 의료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려 했다. 오바마는 공보험은 아니지만 개인보험을 통해 한국처럼 ‘국민 개보험(皆保險)’ 시대를 열려고 했다. 개인들은 ‘의료보험 거래소’(Health Insurance Marketplace)를 통해 다양한 보험 옵션을 비교·선택할 수 있게 했고, 거래소에 저소득층을 위한 다양한 공공지원 프로그램을 준비했다.오바마는 나름 혁명적인 변혁을 꾀했지만 결과적으로 착근하지 못했다. 많은 이유 증에 ‘오바마 케어’란 작명도 부정적 기여를 한 것으로 판단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anything but obama’라는 ‘오바마 지우기’가 이를 보여주고 있다. 대중이 용인하는 선은 ‘댓처리즘, 레이거노믹스’까지다. 사람 이름을 정책화 소재로 삼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문재인 케어’ 효과 호도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성적표는 주지하는 바와 같다. 그래서 그런지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케어’ 성과 홍보에 집착하고 있다. 적확(的確)하게는 ‘호도’하고 있다. 민주당 남인순 의원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제출한 ‘건강보험보장성 강화 대책 과제별 의료비 현황’ 자료를 인용해 “문재인 케어가 2022년 상반기까지 총 4477만 명의 국민에게 21조 3000억 원의 의료비 부담 경감 혜택을 주었다”고 주장했다.(2022. 10. 13.)보고 싶은 것만 보고 내린 해석이다. ‘다른 사람의 부담을 늘리지 않고 누군가의 부담을 줄였다면’ 남인순 의원의 말은 맞다. 하지만 누군가의 부담이 줄었다면, 다른 누군가의 부담이 늘었을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국가’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국가는 ‘무산(無産) 국가’이기 때문에 세금은 모두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의료보험 같은 공적 보험의 보험료도 모두 가입자의 주머니에서 나온다.보장성 강화 대 지출구조 효율화‘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commons)은 소유권이 ‘개별화’되지 않을 경우 낭비가 초래된다는 것이다. 의료보험 같은 공보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장성 강화’와 ‘지출구조 효율화’ 간의 균형 유지이다. 문재인 케어는 ‘보장성 강화’에 함몰되어 ‘공유지 비극’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2017년까지 건강보험은 ‘당기 재정수지’ 흑자를 유지했다. 2017년 현재 ‘건강보험 누적수지(의료보험재정기금)’가 20.8조 원을 기록한 것도 건강보험이 흑자기조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기 재정수지는 2017년 ‘문재인 케어’ 실시로 2018~2020년 적자로 반전했다. 그 결과 누적수지는 2020년에 17.4조 원 까지 감소했다. 특히 2020년 당기 재정수지 적자 ‘2조 8000억 원’은 뼈아픈 대목이다.2021년 이후 당기 재정수지가 흑자로 돌아선 것은 ‘코로나 펜데믹’으로 소소한 호흡기성 의료비 지출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2022년 당기 수지가 크게 개선된 것은 보험료 수입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3년 전망은 밝지 않다. 코로나19 안정화에 따른 의료수요의 증가와 부동산 공시가격 하락으로 인한 수입 감소가 근저요인이다.사람 이름을 정책화 소재로 삼은 ‘포퓰리즘’ 패착사람 이름을 앞세웠기에 ‘문재인 케어’는 포퓰리즘에 포획될 수밖에 없었다. 평등을 앞세운 좌파정부에게 선택진료비(특진료)는 귀족적 ‘가격차별’로 폐지되어야 할 구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선택진료비 폐지로 ‘가격의 신호기능’이 작동할 수 없었다. 가격이 비싼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비근한 예로 대중식사에서 ‘특’자가 붙는 경우가 많다. 선택진료비 폐지는 ‘특곰탕’을 팔지 말라는 것이다.2018년 1월부터 ‘비급여 항목’인 ‘선택진료비’가 전면 폐지됐다. 의사가 제공하는 의료 질은 천차만별이고 의료 소비자는 그 차이를 정확히 알고 있다. 가격 차이를 없애면서 유명 의사로의 ‘쏠림현상’이 심화됐다. 높은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빨리 진료를 받고 싶은 환자, 진료가 급한 위중한 환자도 ‘선착순’이라는 ‘프로테스크 침대’에 놓이게 되었다.‘상급병실’ 급여화, 즉 ‘2인·3인 병실 급여화’는 최대의 패착이다. ‘6인실 환자에 대한 진료의 질’과 ‘2인·3인실 환자의 진료의 질’ 간에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병실 이용료는 환자 수에 의해 결정돼야 하고 그 차이는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상급병실 급여화는 무임승차를 부추기는 의료자원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남인순 의원 논리대로 ‘환자부담금’ 경감을 최대로 끌어올리려면 1인실 독방도 급여화하고 병원손실분은 보험재정에서 보상하면 된다.문재인 케어로 CT, MRI, 초음파 촬영이 급여화됐다. 특수장비를 이용해 ‘유병(有病) 여부’를 정확히 그리고 적기에 판별할 수 있다면 특수의료장비 이용 급여화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무분별한 급여화로 불필요한 촬영이 이루어지면, 결국 건강보험의 낭비로 이어지게 된다.건강보험 낭비가 의심되는 사례를 적시한다. MRI 촬영의 경우 2018년 환자수(이용자수)는 2017년에 비해 1.19배 늘었지만 촬영건수는 1.41배 늘었다. 그만큼 중복촬영이 많았다고 볼 수 있다. 2019년에는 그 같은 추세가 강화된다. 2019년 이용자수는 2017년에 비해 1.98배 증가했지만 촬영건수는 3.94배 증가했다. 2021년 촬영건수는 2017년에 비해 4.62배 늘었다. 하지만 환자수는 2.15배 밖에 증가하지 않았다.에필로그정책 이름에 개인 실명를 넣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이례적인 일이 한국에서 아무렇지 않게 벌어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포퓰리즘의 독소가 곳곳에 스며들었다. 급기야는 ‘급여 확대로 인한 진료비 경감’을 문재인 케어의 성과로 포장했다. 의학적으로 임상학적으로 급여화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질환 중심으로 급여전환이 이루어져야 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 상급병원과 종합병원의 상급병실 급여화는 명백한 패착이다. 선택진료의 폐지는 이념과잉의 산물이다. 의료 소비자의 선택의 폭을 제한한 것이다. 가격기구(price mechanism)의 신호전달 기능을 무력화시켜 쏠림 현상만 심화시켰다.급여화가 ‘문재인 케어’의 산타 선물이어서는 안 된다. 치료에 있어 필수적이지 않고 효과에 논란이 있다면 치료에 대한 선택권은 환자에게 넘기고, 환자는 선택에 대한 책임을 ‘자기 비용부담’ 형태로 지는 것이 순리이다. 한방의 보험 적용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치료목적’에 국한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선택적 의료행위에 건강보험을 적용해주면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 재정 낭비가 발생할 수 있다.고령화로 인한 의료비 급증이 확실시 되는 상황에서 적정 이용과 적정 부담에 대한 신중한 숙고 없이 급여화를 통해 보장률만을 향상시키려는 근시안적 정책은 의료자원의 낭비를 초래해 , 국민의 실질적 의료 보장성을 낮추고 국가 의료보장체계를 붕괴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저출산은 재앙이지만 고령화는 ‘그동안 흘린 땀에 대한 댓가’로 축복이다. 문제는 ‘축복’을 거저 누랄 수 없다는 것이다. 노령화에 대비해 건강보험기금을 꾸준히 적립해야 한다. 그만큼 건강보험지출구조 합리화 조치가 절박하다. 개인 이름을 걸고 ‘보장성 강화’를 펼친 ‘문재인 케어’는 출발부터 순수하지 않았다. 정책이 선동이나 캠페인일 수 없다. 정책은 과학에 기초한 종합예술로 승화돼야 한다.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2023-06-26 09:51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시장경제칼럼] 비정규직 존재 이유 : 기업은 비정규직을 선호하는가?

이승모 경제평론가비정규직 고용의 결정요인을 파악하기 위한 이론적 토대는 이중노동시장론이다. 왜냐하면 이 이론은 정규직 노동시장인 내부노동시장과 비정규직 노동시장인 외부노동시장의 존재와 내부노동시장이 외부노동시장에 대한 영향을 설명하는 이론이기 때문이다.내부노동시장이란 임금 결정과 채용, 직무 배치, 승진과 같은 고용 결정이 시장경쟁원리에 의해서 결정되기보다는 기업 내의 일련의 관리 규칙으로 결정되는 시장이다. 반면 임금과 고용 결정이 시장경쟁원리로 결정되는 시장이 외부노동시장이다.저비용을 추구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시장경쟁원리에 입각하여 임금과 고용을 결정하는 것이 이득이지만, 상대적으로 고비용 구조인 내부노동시장을 기업이 스스로 수용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기업이 노동자들에게 고용 안정성 및 승진 가능성, 상대적 고임금, 기업 내 교육훈련 및 각종 복리후생 등을 제공함으로써 안정적인 노동력 확보와 더불어 근로자들의 자발적 조직규율의 수용과 충성심을 유도함으로써 감시·감독에 따른 통제 비용의 감소와 생산성 향상을 제공한다.그러나 내부노동시장은 고용 안정성 및 생산성 향상과 그에 따른 통제의 효율성을 증가시키는 반면, 기업의 시장 환경변화에 따른 임금과 고용 규모 조정을 어렵게 하는 단점을 내재하고 있다. 즉, 임금과 고용의 경직성을 내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내부노동시장은 한편으로는 고비용 구조 및 경직성이라는 특징을 다른 한편으로는 잠재적 효율 구조라는 특징을 지닌 이중적 성격이 있다. 따라서 내부노동시장의 성패는 기업이 근로자들의 기업 특수적인 숙련 향상과 자발적 규율 준수에 입각한 관료제적 통제를 얼마나 잘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따라서 내부노동시장의 효율성이 비효율성보다 많이 발휘되면 내부노동시장이 형성되고, 그 반대이면 외부노동시장이 형성되는 것이다. 실제로는 한 기업 내에서도 내부노동시장의 효율성이 비효율성보다 많이 발휘되는 부문은 내부노동시장으로 형성되고 그렇지 않은 부문에서는 외부노동시장으로 형성된다. 이처럼 노동시장은 내부노동시장과 외부노동시장이라는 이중구조로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 이중노동시장론이다.그러나 내부노동시장의 형성이 방금 언급한 것과 같은 효율성의 논리에만 적용받는 것은 아니다. 내부노동시장은 특히 노동법 및 노동조합 등 외부 제도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경기가 위축되거나 수요가 부진할 때, 수요변동에 따라 임금 변동이 이루어지는 임금유연성이 이루어진다면 내부노동시장의 규모는 크게 변동하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내부자(즉, 정규직)들이 노동법과 노동조합을 통해 강력한 교섭력을 발휘하여 임금유연성, 특히 임금 하락을 거부한다면 내부노동시장의 축소와 외부노동시장의 확대가 추진된다. 또한 경기가 호전되거나 수요가 증가하더라도 내부자들이 노동법과 노동조합을 통해 강력한 교섭력을 발휘하여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시장청산 임금보다 높은 임금 상승을 추구한다면, 내부노동시장의 확대가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외부노동시장이 축소되지 않는다.심지어 임금 상승폭이 과다하면, 내부노동시장의 축소와 외부노동시장의 확대도 추진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전개되면 내부노동시장으로부터 배제된 노동자는 설사 동일한 자질이 있더라도 외부노동시장에 편입되어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상황을 감수해야 하는 비정규직으로 존재하게 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강력한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경우, 노동조합은 호경기든 불경기든 임금을 시장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하기보다는 교섭을 통해 시장청산임금보다 높은 임금을 추구하면서 연공서열에 의한 일정량의 해고를 받아들인다. 즉, 노동조합은 다수 노동자의 복지 향상을 위해 일부 노동자를 희생시킨다. 노조는 노동자들을 다음과 같이 세뇌한다.해고를 받아들이는 노동자는 자신의 희생으로 다수 노동자의 임금 상승을 초래함으로 그들을 위대한 전사로 칭송하고, 반면 해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노동자는 비열한 인간이라고 비난한다. 노조의 세뇌로 노동자들도 자신의 희생으로 다수 노동자의 복지가 향상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해고를 받아들인다.이처럼 내부노동시장에서 내부자(즉, 정규직)들은 강력한 노동조합을 형성해 호경기에는 과도한 임금 인상을 추구하고, 불경기에는 임금 하락을 거부하는 임금 하방경직성을 추구함으로써 자신 중 일부가 해고되어 비자발적 실업자로 전락하고, 그 실업자들은 결국 외부노동시장으로 추방되어 임금과 고용조건이 나쁜 비정규직이 된다.실제 1990년대 이후 이런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내부노동시장은 임금 유연화를 추구하던 세계적인 추세와 달리 내부자들이 노동법과 노동조합을 통해 강력한 교섭력을 발휘하여 임금 및 고용 경직성이 더욱 강화되었다. 따라서 기업은 내부노동시장의 축소와 외부노동시장의 확대를 통한 수량적 유연성을 시도해 왔다.이상으로부터 우리는 내부노동시장에 강력한 교섭력을 가진 노동조합이 존재한다면 내부노동시장의 축소와 외부노동시장의 확대를 통하여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상황을 감수해야 하는 비정규직의 증가를 초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물론 기업들은 경쟁의 격화와 수요 불확실성에 대비하여 핵심 노동자층을 내부노동시장에서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나머지를 외부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으로 고용함으로써 수량적 유연성을 제고하여 노동비용을 절감하는 방향으로 자신들의 인사전략을 변화시켰다, 따라서 흔히 기업이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의 고용을 선호한다고 주장된다.그러나 기업들이 이런 식으로 인사전략을 추구한 것은 내부자들이 노동법과 노동조합을 통해 강력한 교섭력을 발휘하여 임금 및 고용유연성을 거부하므로 어쩔 수 없이 추구한 차선책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기업의 원하는 최선책이 아니었다.위에서 본 것처럼 정규직들이 임금 및 고용유연성을 허용한다면 기업은 정규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산성 및 통제의 효율성이 낮은 비정규직을 구태여 선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이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의 고용을 선호한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비정규직이 존재하고 그들의 고용조건이 열악한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내부노동시장의 경직성이다. 내부노동시장에서 내부자(즉, 정규직)들이 자신들 이익을 위하여 강력한 노동조합을 형성하여 과도한 임금 인상 또는 임금 하방경직성을 추구함으로써 외부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이 존재하고 그들의 고용조건이 열악하게 된다.이승모 경제평론가

2023-06-19 16:48 이승모 경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