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칼럼] ‘문재인 케어’란 작명에 공감할 수 없는 이유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입력일 2023-06-26 09:51 수정일 2023-06-26 09:58 발행일 2023-06-26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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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화려한 약속 우울한 성과 (Bright Promises Dismal Performance)>는 노벨상 수상자인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만(M. Friedman)의 1972년 저술이다. 정치인들은 균형발전, 분배개선, 중소기업보호, 복지확대, 사회적 약자 보호 등 대중이 반길만한 화려한 약속을 쏟아내지만 이념과잉과 정치과잉, 설계주의 등으로 현실은 의도와 반대로 전개되기 십상이다. 2017년에 시행된 ‘문재인 케어’도 ‘화려한 약속, 우울한 성과’의 예외가 아니다.‘문재인 케어’, 의료정책에 실명(實名)이 들어간 자체가 패착

‘문재인 케어’를 압축하면 ‘급여확대를 통한 보장성 강화’ 정책이다. 그렇다면 ‘문재인’이란 이름을 붙일 이유가 없다. ‘의료 보장’ 개념이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착안된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역대 정부 모두 ‘보장성 강화’에 정책적 노력을 기울였다면, ‘문재인 케어’ 작명은 패착이다. 공명심 내지 소(小) 영웅주의 발로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일각에서는 ‘오바마 케어’를 들어 ‘문재인 케어’ 작명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양자를 같은 평면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 오바마는 미국의 의료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려 했다. 오바마는 공보험은 아니지만 개인보험을 통해 한국처럼 ‘국민 개보험(皆保險)’ 시대를 열려고 했다. 개인들은 ‘의료보험 거래소’(Health Insurance Marketplace)를 통해 다양한 보험 옵션을 비교·선택할 수 있게 했고, 거래소에 저소득층을 위한 다양한 공공지원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오바마는 나름 혁명적인 변혁을 꾀했지만 결과적으로 착근하지 못했다. 많은 이유 증에 ‘오바마 케어’란 작명도 부정적 기여를 한 것으로 판단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anything but obama’라는 ‘오바마 지우기’가 이를 보여주고 있다. 대중이 용인하는 선은 ‘댓처리즘, 레이거노믹스’까지다. 사람 이름을 정책화 소재로 삼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문재인 케어’ 효과 호도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성적표는 주지하는 바와 같다. 그래서 그런지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케어’ 성과 홍보에 집착하고 있다. 적확(的確)하게는 ‘호도’하고 있다. 민주당 남인순 의원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제출한 ‘건강보험보장성 강화 대책 과제별 의료비 현황’ 자료를 인용해 “문재인 케어가 2022년 상반기까지 총 4477만 명의 국민에게 21조 3000억 원의 의료비 부담 경감 혜택을 주었다”고 주장했다.(2022. 10. 13.)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내린 해석이다. ‘다른 사람의 부담을 늘리지 않고 누군가의 부담을 줄였다면’ 남인순 의원의 말은 맞다. 하지만 누군가의 부담이 줄었다면, 다른 누군가의 부담이 늘었을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국가’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국가는 ‘무산(無産) 국가’이기 때문에 세금은 모두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의료보험 같은 공적 보험의 보험료도 모두 가입자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보장성 강화 대 지출구조 효율화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commons)은 소유권이 ‘개별화’되지 않을 경우 낭비가 초래된다는 것이다. 의료보험 같은 공보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장성 강화’와 ‘지출구조 효율화’ 간의 균형 유지이다. 문재인 케어는 ‘보장성 강화’에 함몰되어 ‘공유지 비극’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2017년까지 건강보험은 ‘당기 재정수지’ 흑자를 유지했다. 2017년 현재 ‘건강보험 누적수지(의료보험재정기금)’가 20.8조 원을 기록한 것도 건강보험이 흑자기조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기 재정수지는 2017년 ‘문재인 케어’ 실시로 2018~2020년 적자로 반전했다. 그 결과 누적수지는 2020년에 17.4조 원 까지 감소했다. 특히 2020년 당기 재정수지 적자 ‘2조 8000억 원’은 뼈아픈 대목이다.

2021년 이후 당기 재정수지가 흑자로 돌아선 것은 ‘코로나 펜데믹’으로 소소한 호흡기성 의료비 지출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2022년 당기 수지가 크게 개선된 것은 보험료 수입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3년 전망은 밝지 않다. 코로나19 안정화에 따른 의료수요의 증가와 부동산 공시가격 하락으로 인한 수입 감소가 근저요인이다.

사람 이름을 정책화 소재로 삼은 ‘포퓰리즘’ 패착

사람 이름을 앞세웠기에 ‘문재인 케어’는 포퓰리즘에 포획될 수밖에 없었다. 평등을 앞세운 좌파정부에게 선택진료비(특진료)는 귀족적 ‘가격차별’로 폐지되어야 할 구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선택진료비 폐지로 ‘가격의 신호기능’이 작동할 수 없었다. 가격이 비싼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비근한 예로 대중식사에서 ‘특’자가 붙는 경우가 많다. 선택진료비 폐지는 ‘특곰탕’을 팔지 말라는 것이다.

2018년 1월부터 ‘비급여 항목’인 ‘선택진료비’가 전면 폐지됐다. 의사가 제공하는 의료 질은 천차만별이고 의료 소비자는 그 차이를 정확히 알고 있다. 가격 차이를 없애면서 유명 의사로의 ‘쏠림현상’이 심화됐다. 높은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빨리 진료를 받고 싶은 환자, 진료가 급한 위중한 환자도 ‘선착순’이라는 ‘프로테스크 침대’에 놓이게 되었다.

‘상급병실’ 급여화, 즉 ‘2인·3인 병실 급여화’는 최대의 패착이다. ‘6인실 환자에 대한 진료의 질’과 ‘2인·3인실 환자의 진료의 질’ 간에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병실 이용료는 환자 수에 의해 결정돼야 하고 그 차이는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상급병실 급여화는 무임승차를 부추기는 의료자원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남인순 의원 논리대로 ‘환자부담금’ 경감을 최대로 끌어올리려면 1인실 독방도 급여화하고 병원손실분은 보험재정에서 보상하면 된다.

문재인 케어로 CT, MRI, 초음파 촬영이 급여화됐다. 특수장비를 이용해 ‘유병(有病) 여부’를 정확히 그리고 적기에 판별할 수 있다면 특수의료장비 이용 급여화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무분별한 급여화로 불필요한 촬영이 이루어지면, 결국 건강보험의 낭비로 이어지게 된다.

건강보험 낭비가 의심되는 사례를 적시한다. MRI 촬영의 경우 2018년 환자수(이용자수)는 2017년에 비해 1.19배 늘었지만 촬영건수는 1.41배 늘었다. 그만큼 중복촬영이 많았다고 볼 수 있다. 2019년에는 그 같은 추세가 강화된다. 2019년 이용자수는 2017년에 비해 1.98배 증가했지만 촬영건수는 3.94배 증가했다. 2021년 촬영건수는 2017년에 비해 4.62배 늘었다. 하지만 환자수는 2.15배 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에필로그

정책 이름에 개인 실명를 넣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이례적인 일이 한국에서 아무렇지 않게 벌어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포퓰리즘의 독소가 곳곳에 스며들었다. 급기야는 ‘급여 확대로 인한 진료비 경감’을 문재인 케어의 성과로 포장했다. 의학적으로 임상학적으로 급여화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질환 중심으로 급여전환이 이루어져야 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 상급병원과 종합병원의 상급병실 급여화는 명백한 패착이다. 선택진료의 폐지는 이념과잉의 산물이다. 의료 소비자의 선택의 폭을 제한한 것이다. 가격기구(price mechanism)의 신호전달 기능을 무력화시켜 쏠림 현상만 심화시켰다.

급여화가 ‘문재인 케어’의 산타 선물이어서는 안 된다. 치료에 있어 필수적이지 않고 효과에 논란이 있다면 치료에 대한 선택권은 환자에게 넘기고, 환자는 선택에 대한 책임을 ‘자기 비용부담’ 형태로 지는 것이 순리이다. 한방의 보험 적용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치료목적’에 국한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선택적 의료행위에 건강보험을 적용해주면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 재정 낭비가 발생할 수 있다.

고령화로 인한 의료비 급증이 확실시 되는 상황에서 적정 이용과 적정 부담에 대한 신중한 숙고 없이 급여화를 통해 보장률만을 향상시키려는 근시안적 정책은 의료자원의 낭비를 초래해 , 국민의 실질적 의료 보장성을 낮추고 국가 의료보장체계를 붕괴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저출산은 재앙이지만 고령화는 ‘그동안 흘린 땀에 대한 댓가’로 축복이다. 문제는 ‘축복’을 거저 누랄 수 없다는 것이다. 노령화에 대비해 건강보험기금을 꾸준히 적립해야 한다. 그만큼 건강보험지출구조 합리화 조치가 절박하다. 개인 이름을 걸고 ‘보장성 강화’를 펼친 ‘문재인 케어’는 출발부터 순수하지 않았

다. 정책이 선동이나 캠페인일 수 없다. 정책은 과학에 기초한 종합예술로 승화돼야 한다.

조동근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