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칼럼] 부총리의 ‘라면 값 인하’ 요구 넌센스

이주선 기업&경제연구소장, 연세대 경영대학 연구교수
입력일 2023-07-03 10:11 수정일 2023-07-03 10:12 발행일 2023-07-03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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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선 기업&경제연구소장, 연세대 경영대학 연구교수

최근 추경호 부총리가 라면 값을 내리라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자유와 시장경제를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여러 번 장관들이 시장의 가격이 높다는 둥 낮다는 둥 여러 코멘트들을 했다. 또한 시중에는 위스키 가격이 다른 나라들보다 크게는 거의 두 배 가까이 높다거나 샤넬이나 벤츠 등 브랜드 명품들의 가격이 우리나라에서 유독 높다면서 “우리가 봉이냐”며 해당 기업들을 비난하는 기사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아마 이번 여름 휴가철에도 어김없이 인기 지역 해수욕장이나 휴양지에서의 ‘바가지 요금’에 대한 고발과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

이 가운데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경제 부총리가 라면 값을 내리라고 한 것이다. 이 요구를 한 논리는 라면회사들이 밀가루 값이 올라서 라면 값을 올렸다고 했으니, 이제 국제 밀 가격이 절반이 되었으니 가격을 내리라는 것이다. 위스키, 명품 가격, 그리고 휴양지 요금에 대한 비난도 같은 맥락으로 비판받아야 할 잘못된 인식이다. 하지만 부총리는 나라의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사람이므로 이런 경제학 원론 수준의 지식에 무지함을 보였으니 엄중히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물론 총선을 1년도 안 남긴 시점에서 여야가 거의 박빙 승부를 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심정은 이해가 간다. 결국 경제적 만족도가 최종적인 결과를 좌우할 수 있으므로, 살얼음판 걷는 사람처럼 정치인들과 고위 공직자들이 일하고 있을 것이다. 이미 인플레이션으로 소비자 장바구니 물가가 심각하게 올랐다는 인식이 있고, 이런 국민들의 걱정을 조금이라 더는 것이 득표에 유리하리라는 계산이 추 부총리의 생각에 없다고 하면 이상할 것이다.

아마도 야당도 같은 자리에 있다면 더 심하게 그런 ‘명령 아닌 사실상 명령’을 여러 번 반복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중, 공개적으로 온갖 구실로 재정을 살포해서 국민들의 지지를 사려고 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런 추정은 틀릴 가능성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추 부총리의 라면 가격 인하 발언은 엄중하게 비판받아야 할 이유가 있다.

첫째, 경제에서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을 추 부총리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주지하는 것처럼 가격은 원가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는다. ‘원가+마진’으로 가격이 결정된다는 생각이 많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있는 인식인 것은 맞다. 하지만 ‘원가+마진’으로 책정되는 가격은 생산자나 공급자가 시장에서 받기를 희망하는 ‘게시가격(list price)’일뿐, 시장거래로 결정되는 시장가격(market price)은 아니다.

소비자와 공급자인 기업은 시장가격으로 거래하는데 이는 시장에서 사려는 사람의 의사와 팔려는 기업의 의사가 일치하는 지점에서 원가와 상관없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시장가격은 거래에서 지속적으로 변화해 나간다. 공급자의 원가가 어떠하든지 간에 소비자 선택을 많이 받은 상품은 가격이 올라가고,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한 상품은 가격이 내려간다. 그래서 심지어 어떤 상품은 전혀 값을 받지 못하고 폐기되거나 원가 이하로 거래되고, 어떤 상품은 원가는 미미한데 그 수십 수백 배의 가격으로 팔린다. 이를 잘 알고 있을 부총리가 특별히 예외적 특성을 가지지 않은 지극히 보편적인 상품의 하나인 라면 가격의 인하를 요구했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이다 .

둘째, 추 부총리가 라면 가격 인하를 요구한 것은 ‘세상의 모든 것들에는 대체재가 존재한다’는 경제학이 가진 진리에 가까운 명제를 도무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잘 아는 것처럼 라면은 인스턴트 식품 가운데 하나이고, 대체할 수 있는 먹거리들은 여기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많다. 사람들은 라면의 가격이 비싸면 잔치국수, 짜장면, 스파게티 등 다양한 면류들을 포함해서 밥, 빵, 과일, 생선회, 스테이크 등 다양한 다른 식품들로 그 먹거리를 기호와 선택에 따라서 대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정말로 라면 값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너무 높다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면 농심, 삼양, 오뚜기 등 라면회사들이 라면 봉지에 가격을 얼마로 표시하든 라면 가격은 시장에서 떨어지게 된다. 특히 이 회사들은 이런 상황에서 경쟁해야 하므로 당연히 다양한 판촉을 통해 라면 가격을 시장에서 정상화시키는 데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부총리가 이런 말을 한 것은 사실 정략적인 의도로 공권력을 이용한 것이라고 유추할 여지가 다분하다.

셋째, 추 부총리가 인하 압력의 이유로 말한 ‘국제 밀 가격이 내렸으니 내려야 한다’는 논리는 더구나 온당하지 못하다. 이는 국제 밀 가격이 너무나 올라서 라면 가격을 인상한다고 말했던 라면회사들의 논리로 자신의 논리를 옹호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라면회사들의 이 논리도 라면 값을 올리는 정당한 근거는 되지 못할 수 있다. 왜냐하면 라면 값은 원료가 되는 밀가루 값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라면 가격은 국제 밀 가격뿐 아니라 국제 유가와 임금, 환율, 기계장비류 가격, 토지가격 등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그럴듯한 명분으로 라면회사들이 국제 밀 가격을 들이민 것은 아마도 통할 것 같은 변명이라고 생각해서였을 터이다. 어찌 보면 자승자박한 것이다. 그러나 라면 생산 기업들의 변명을 구실 삼을지라도 라면 가격 인하를 부총리가 나서서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만일 국제 밀 가격이 낮아져 라면 가격을 내려야 한다면, 왜 다른 밀가루나 밀을 써서 만드는 식품들의 가격 인하는 요구하지 않았는가? 짜장면도, 스파게티도, 잔치국수도, 수제비도, 빵도, 피자도, 과자도…. 모든 밀가루 사용 상품들의 가격 인하를 요구해야 했을 것이다. 나아가 식당들의 모든 밀가루 이용 요리들에 대해서도 그래야 했을 것이다. 이 상품들의 가격 인상도 국제 밀 가격 인상이 원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그러나 라면만 콕 찍어 인하를 요구했다는 것은 발언의 정치성을 드러낸다. 또한 이런 경제수장의 발언은 경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장과 가격 기능을 해쳐서 경제를 어렵게 한다. 사소해 보이나 가랑비에 옷 젖는 것처럼.

이주선 기업&경제연구소장, 연세대 경영대학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