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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칼럼

[시장경제칼럼] 윤 정부 규제개혁 1호, ‘대형마트 영업규제 완화’ 탄력 잃어서야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바른사회 시민회의 공동대표윤석열 대통령은 25일 강동구 암사시장에서 주재한 제6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대형마트 의무휴업 등 영업 규제에 대해 “당장은 현행 제도를 유지하면서 소상공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규제를 풀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로써 2차 규제심판회의는 무기한 연기됐다. 규제심판회의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규제 혁신을 위해 마련한 장치로, ‘1호 안건’이 대형마트 영업 규제완화였다. 1호 실행과제가 ‘허망하게’ 막혔으니 개혁의 앞길이 험난해 보인다.대형마트 영업 규제는 골목상권 침해를 막는다는 취지로 2012년 이명박 정부 때 도입됐다. 대형마트에 월 2회 휴업을 강제하면서 0시~오전 10시 영업을 제한하는 게 핵심이다. 경제계와 소비자단체들은 “골목상권 부활 효과는 별로 없고, 소비자 불편만 초래했다”고 비판해 왔다.이에 윤석열 정부는 대형마트 규제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에 나섰다. 정부의 규제 개선 움직임에 소상공인 단체 등 이해관계자 집단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지난 5~18일 진행된 ‘규제심판 국민참여’ 온라인 토론에서 ‘토론에 참여한 3073명 중 87.5%인 2689명이 ‘대형마트 영업제한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규제 개선에 찬성한다는 의견은 337명(11.0%)에 그쳤다.결국 ‘특정 여론 조사’ 결과를 근거로 정책을 접은 것이다. 하지만 “골목상권 부활 효과는 별로 없고, 소비자 불편만 초래했다”는 비판도 역시 ‘여론’의 일부이다. 여론이 절대적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 이런 식으로 정책을 결정할 거라면, 모든 걸 여론조사 가부(可否)로 결정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이다.대형마트 규제는 국가개입주의의 한 산물이다. 국가개입주의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인도되는 시장은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가 불가피하게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국가는 완벽한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경제민주화론은, 시장경제는 탐욕스럽기 때문에 정치에 의해 규율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정치권력은 탐욕스럽지 않은가? 저질스럽지 않은가?국가개입주의가 기댄 마지막 언덕이 ‘민주적 절차와 통제’이다. 하지만 민주적 절차는 자의적 권력을 방지하는 최소한의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그 자체가 ‘권력의 정당성’을 담보하지 않는다.국가개입주의가 최대로 치달으면 ‘사회주의’가 된다. 사회주의는 국가를 ‘조직과 정보’에서 우위에 선 ‘전지(全知)’한 존재로 간주한다. 만약 국가가 전지한 존재라면 사회주의는 지구상에서 최고의 풍요를 누려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다. 치명적 역설이 아닐 수 없다.전지 전능자(者)가 있다면 그를 따르면 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전지 전능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주의 경제철학자 하이에크(F. Hayek)는 자유의 이면에는 인간의 ‘구조적 무지’(inevitable ignorance)가 존재한다고 설파했다. 그런 전지자(全知者)가 없기에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국가가 나서서 대형마트 규제를 해주면 모든 소상공인과 재래시장이 회생할 것인가? ‘재래시장상인과 소상공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생존권을 보장받아야 하는 가? 그러면 예를 들어, 300명이 타면 안전한 배에 1000명이 타면 어떻게 되겠는가? 같은 논리로 300명의 소상공인이 장사하면 알맞은 상권에 1000명이 장사하면 어떻게 되겠는 가?윤 정부가 취임사에서 말한 ‘자유와 혁신’이 ‘갑’ 속에 든 칼이 돼서는 안 된다. ‘실행력을 갖지 못한 말만 무성한’ 정부(No Action Talk Only)로는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윤석열 정부가 탄생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실패는 대외적으로는 ‘외교관계’의 실패, 대내적으로는 ‘경제운영’의 실패로 압축된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의 국가통치의 방향타는 의심의 여지없이 분명하다. ‘자유와 혁신’이다. 부연하면 ‘자유이념의 회복’과 ‘혁신의 추동’이다.혁신은 기존질서를 상당부분 부정히는 것이기에 저항이 따르고 고통스럽다. 일찍이 댓처(M. Thatcher) 수상은 개혁을 셀라미를 얇게 썰어 빵에 끼우는 기술에 비유했다. 섬세한 기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개혁은 그 자체가 거대 담론이기 때문에 ‘실행과제’를 하나씩 선별해 이를 하나씩 해결하는 점진적 접근이 중요하다. 윤 정부가 시대적 과제를 점차적으로 풀어 나가길 기대한다.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바른사회 시민회의 공동대표

2022-08-29 11:06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바른사회 시민회의 공동대표

[시장경제칼럼] 인플레이션의 진정한 원인은 무엇인가?

이승모 경제평론가현재 심각한 인플레이션 현상의 원인에 대해 ①통화량 증가 ②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원자재, 식량 등의 가격상승, ③코로나로 인한 공급망 및 유통망 붕괴에 의한 공급 감소, ④위드 코로나로 인한 수요 증가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일견 보면 4가지가 모두 인플레이션의 원인처럼 보인다. 하지만 통화량 증가를 제외한 나머지는 인플레이션의 진정한 원인이 아니다.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원자재, 식량 등의 가격상승은 일시적인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킬 수 있으나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만약 통화량이 일정할 때, 에너지, 원자재, 식량 관련 재화의 가격이 상승하면 다른 재화의 가격은 조만간 하락하게 된다. 왜냐하면, 에너지, 원자재, 식량 관련 재화의 수요는 비탄력적이고, 이런 재화의 가격이 상승하면 수요량은 감소하더라도 지출은 증가하며, 그 결과 통화량이 일정하므로 다른 재화의 지출 및 수요는 감소하여 다른 재화의 가격은 하락하게 된다.따라서 통화량이 일정하다면, 에너지, 원자재, 식량 등의 가격상승은 일시적인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킬 수 있으나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에너지, 원자재, 식량 등의 가격상승이 있을 때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을 발생하려면, 다른 재화의 지출 및 수요를 증가시키는 통화량 증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코로나로 인한 공급망 및 유통망 붕괴에 의한 공급 감소도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키지는 않는다. 코로나로 인해 공급망 및 유통망이 붕괴한 부문도 있지만, 코로나로 인해 오히려 수요가 증가하여 공급망 및 유통망이 증대된 부문도 있다. 따라서 코로나로 인해 전반적으로 공급망 및 유통망이 감소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없으므로, 코로나로 인한 공급망 및 유통망 붕괴에 의한 공급 감소가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될 수 없다.위드 코로나로 인한 수요 증가도 역시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위드 코로나로 수요가 증가한 부문도 있지만 감소한 부문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드 코로나로 수요가 감소한 부문이 없고 모두 증가하더라도 물가 상승은 코로나 이전으로 수요가 회복된 것에 불과하다 . 코로나 이전보다 높은 물가 상승이 발생한다면, 그 이유는 역시 통화량 증가이다.따라서 인플레이션의 진정한 원인은 통화량 증가이다. 생산량 증가보다 통화량 증가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프리드먼의 주장과도 일치한다. 그는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라고 주장했다.현재 심각한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경기부양을 위해 통화량을 과도하게 증가시킨 결과이다. 역사적으로도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때 그 이전에는 항상 통화량이 과도하게 증가하였다. 1930년대 대공황 이전, 1970~80년대 석유파동 이전, 1990년대 닷컴 버블 이전, 2008년 금융위기 이전에 항상 통화량의 과도한 증가가 있었다.이처럼 과도한 통화량 증대는 심각한 인플레이션뿐만 아니라 경제위기를 항상 초래하였다. 이것을 잘 설명하는 경기변동이론이 오스트리아학파 경기변동이론이다. 오스트리아학파이론에 따르면, 인위적인 통화량의 증대는 과오투자와 과소비를 촉진하여 비정상적 호황인 붐(boom)과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키며, 과오투자와 과소비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버스트(bust) 즉, 경기후퇴와 경기침체를 초래한다.심각한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특정 상황에서 발생하는 특정 재화의 공급 감소 혹은 수요 증가가 아니라, 과도한 통화량의 증가이다. 따라서 인플레이션과 경기변동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통화량을 생산량보다 많이 증가해서는 안 되며, 작금의 심각한 인플레이션에 대한 올바른 대책은 오직 한 가지로서 과도하게 풀린 통화량을 다시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 다른 대책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것이다.물론 통화 축소로 인한 경기침체와 실업 증가가 수반될 수 있으나, 노동시장을 비롯한 모든 시장에 정부나 노동조합의 간섭이 없으면 조만간 물가안정과 고용안정을 이루는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이승모 경제평론가

2022-08-22 13:09 이승모 경제평론가

[시장경제칼럼] 공정거래법상 동일인 적용범위를 가족으로 축소해야

곽은경 자유기업원 기업문화실장99명의 범죄자를 잡기 위해 1명의 무고한 희생자를 만드는 법은 정의롭지도 않지만, 효율적이지도 않다. 이런 사법 체계를 가진 국가의 국민들은 언제든 범죄자로 몰려 개인의 자유를 침해받을 수 있기 때문에 위축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그 국가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부를 축적하기 어렵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개인의 자유를 최우선에 두는 제도가 그렇지 않은 제도들을 대체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법과 제도를 평가할 때 경제적 측면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최근 정부가 국정과제로 동일인의 친족 범위를 조정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공정거래법과 관련한 규제 개선 논의가 시작되었다. 공정거래법, 특히 동일인과 관련된 규제 항목들은 불합리한 면이 많아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현재 공정위에서 제시한 친족범위 조정 등의 개정방향은 규제개선이 아니라 규제강화의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기업경영의 애로사항을 해소하고, 기업이 경쟁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공정거래법은 동일인 규제의 범위에 대기업 총수 뿐 아니라 총수의 친인척까지 포함시키고 있어 문제를 야기해 왔다. 자산총액 합계가 5억 원 이상인 기업집단을 대규모기업집단으로 지정하고, 각종 규제를 적용시키는데, 여기에서 억지스럽게 도입한 개념이 ‘동일인’이다.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황당한 용어이다. 대기업 총수를 지칭하는 ‘동일인’을 기준으로 친족, 인척, 계열사 등 ‘동일인관련자’를 정의내리고, 기업집단의 범위를 확정하고 있다. 동일인 관련자에는 배우자,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뿐 아니라 계열회사의 임원까지 포함된다. 이렇게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방식으로 인해 기업인들은 큰 혼란을 겪고 있다.동일인이라는 잣대로 인해 모든 대기업 총수와 기업인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되는 셈이다. 1960년대 이후 경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기업집단이 등장했고, 일부 대기업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국내 경제규모에 비해 수출 비중이 크다보니, 이를 과도하게 큰 대기업이라고 보는 비판적 주장이 나왔다. 그 결과로 기업의 활동을 억제하고 총수의 지배구조를 약화시켜 경제력 집중을 억제해야 한다는 정책목표가 만들어졌다. 그런 정치적 과정을 통해 1987년 대기업이 친족이나 계열회사를 통해 지분을 소유하거나, 계열사 간 내부거래로 이익을 취하는 것에 대해 규제하는 조항이 공정거래법에 추가되었다.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막겠다며 만든 동일인 조항은 변화하는 경제상황에 적합하지 않다. 우선 모든 대기업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없는 불합리한 제도가 되었다. 이 규제를 도입하던 1980년대만 해도 우리경제는 제조업이 중심이었지만, 네이버, 카카오 등의 IT기업이나 최근에 성장한 다른 대기업들은 과거와 다른 경영환경과 투자구조에서 성장하였기에 지배구조와 경영방식이 다르다. 특히 친족이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방식이 흔하다 보니 동일인 규제가 전혀 현실성 없는 구시대적 규제임이 드러나고 있다. 심지어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해 ‘동일인’으로 지정되어야 할 대기업 총수가 외국인이라 규제를 피해가는 경우도 생겼다. 그 결과 어떤 기업은 총수개인이 동일인 규제를 적용받고, 어떤 기업은 예외를 인정받는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공정거래위원회는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여전히 특정 기업을 손봐주는 식의 제도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최근 동일인의 친족범위를 축소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한편으로는 사실혼 관계를 친족에 추가로 포함시켰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어떤 특정 기업을 염두에 둔 제도라는 해석이 가능한 상황이다. 몇몇 문제되는 행태를 처벌하겠다며 정부당국이 무리한 규정을 만들어 공권력을 휘두르는 과정에서 자유를 침해받는 희생자가 생겨나 고 기업 생태계의 위축현상이 발생한다면 이는 국민에게 그 피해만 줄 뿐이다.규제를 도입한지 30년이 지난 지금, 경제력 집중에 대한 우려는 기우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간단하게 1980년과 2020년 대기업 순위를 비교해 봐도 변화가 확연하다.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이 우리 경제에서 가능한 일이었다면 과거 재계를 이끌던 대우그룹 등이 사라진 것과 최근 대기업으로 진입한 기업들의 존재를 설명하기 어렵다. 우리는 혁신과 경쟁을 통해 소비자의 선택을 받은 기업만이 살아남는다는 시장의 법칙이 우리경제에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게다가 친족 기업의 경우도 경영권이 3대, 4대로 승계되면서 총수 개인의 지분율이 낮아지고 있다. 형제나 사촌간이라 하더라도 이해관계가 달라 동일한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다는 것은 상식이다. 6촌까지 경제적 공동체로 가정하는 공정거래법상 동일인 규제가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 힘을 얻는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다.이번 기회에 공정거래법을 현실에 맞게 개편해야 한다. 모든 기업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 동일인의 친족범위를 ‘가족’으로 한정하는 것이 상식과 부합하는 수준이다. 가족도 아닌 4촌, 6촌의 자료를 제출하라고 강제하는 것은 잘못이다. 동일인이 경찰도 검찰도 아니므로, 4촌과 6촌이 사생활의 자유를 주장하며 자료제출을 거부할 경우 이를 요구할 수단이 없다. 또한, 자료취합의 경우 공정위가 직접 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행정력을 이유로 대기업 총수들에게 부담지우고자 한다면 그 범위는 총수 개인 또는 가족에 한정하여야 한다.세계의 선진 국가들이 99명의 도둑을 포기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시민의 희생을 막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그것이 국가와 사회를 유지하는데 공정하고 사회의 건강성을 유지하는데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동일인 관련 조항의 경우 억울한 피해를 보는 집단이 소수의 대기업 총수라는 이유만으로 그동안 방치되어 온 면이 크다. 좋은 제도와 법을 세우고자 세계 각국이 경쟁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만 기업인들에게 무리하게 가하고 있는 규제를 해소해 기업경제 생태계의 활력이 다시 높아질 수 있도록 해야 할 시점이다.곽은경 자유기업원 기업문화실장

2022-08-15 09:00 곽은경 자유기업원 기업문화실장

[시장경제칼럼] 폴 크루그먼 교수의 반성문 무게

지난 7월 21자 뉴욕 타임스(NYT)에는 “인플레이션에 관해 제가 틀렸습니다”라는 크루그먼 교수의 반성문이 실렸다. 이는 “극도의 당파성과 분열로 치닫고 있는 우리 시대에, 자기 확증편향을 부추기는 소셜미디어 환경에서, 당신이 무엇인가에 잘못이었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여기 타임스 오피니언에서는 선의의 지적 논쟁이 가능하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모두 쟁점들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재고할 수 있어야 한다.”는 NYT의 기획 의도에 따라 게재된 것이었다. 이제 반성문의 내용을 살펴보자.“2021년 바이든 행정부 출범 초기 추진된 1조 9천억 달러(약 2천 5백조 원) 규모의 미국구조계획(American Rescue Plan)의 결과를 두고 벌어진 경제학자들 사이의 격렬한 논쟁에서 일부는 구조계획이 매우 위험한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경고를 했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심해 팀’이었고, 결과적으로 이는 매우 잘못된 예측이었다.”그런데 이 논쟁은 상반된 경제 이념진영 간의 것이 아니라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을 필두로 한 ‘인플레이션 팀’이나 ‘안심해 팀’ 모두 같은 중도좌파 성향의 케인스 학파 경제학자들이어서 쟁점은 정부 재정지출 ‘승수’에 모였다. 구조계획의 방대한 지출에 정상 규모의 승수효과가 발생한다면 경기가 과열되고 이는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리라는 것이 ‘인플레이션 팀’의 경고였다.반면, ‘안심해 팀’은 두 가지 이유에서 ‘승수’가 정상보다 낮을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계획의 큰 부분인 납세자들의 수중에 들어가는 일회성 현금 지급은 소비되기보다는 저축될 것이고, 다른 큰 부분인 주 및 지방정부 보조금은 여러 해에 걸쳐 점진적으로 집행될 것이라는 이유였다. 기이한 점은 ‘안심해 팀’의 예측이 틀리지 않았는데도, 물가가 치솟기 시작한 것이다.처음에는 팬데믹과 관련된, 예를 들면, 감염의 위험이나 록다운으로 서비스 구매는 감소하고 재화의 구매는 증가하는 소비구조의 변화, 와해하였던 해운 및 항만시설 같은 국제물류 시스템과 붕괴한 글로벌 공급망에 기인하는 생산 차질을 겪는 산업부문에 국한되었던 인플레이션이 점차 경제 전반으로 확산하였다.노동시장에서의 구인난이 경제의 생산능력 감소와 임금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또한 COVID-19의 영향인 조기퇴직, 이민 감소, 보육시설 부족 등이 원인이다. 올해 들어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 대도시들의 록다운이 인플레이션의 추가적 압력으로 작용했다.“여하튼, 이번의 경험은 겸손의 교훈이었다. 아무도 안 믿겠지만, 2008년 금융위기 여파에서 표준경제모형들이 꽤 잘 작동했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2021년에도 그 모형들을 적용했다. 돌이켜보면 COVID-19가 바꿔 놓은 새 세상에는 기존모형의 외측 삽입 정도 가지고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어야만 했다.”위에 인용된 NYT의 기획 의도 중 생략된 부분에는 ‘가장 심각한 잘못이나 가장 사소한 잘못이나’라는 문구가 있는데 크루그먼 교수의 반성문은 사소한 잘못에 관한 것이다. 필자의 생각에는 그가 써야 할 또 하나의 반성문이 있다.꼭 써야 할 심각한 잘못에 대한 반성문지난해 12월 3일 자 “돈이 다가 아니다 (Money Isn’t Everything)”라는 그의 칼럼에 관한 얘기다. 칼럼 제목이 “인플레이션은 항상 어디서나 통화적 현상이다”라는 통화주의 모토의 부정이다. ‘항상 어디서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초인플레이션의 경우에는 옳았지만, 이자율이 영에 가까울 때는 통화정책과 인플레이션이나 성장과의 상관관계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대공황과 2008년 대침체기가 사례라며, 대공황에 분석의 초점을 맞춘다.이는 케인스 학파와는 경쟁 관계인 통화주의 모토의 부정뿐 아니라 밀턴 프리드만의 중요한 업적 중 하나인 ‘대공황 연준(Fed) 책임론’까지 겨냥한 것이다. 탄탄한 연구의 결실인 ‘미국 화폐의 역사 1867-1960’의 중요한 내용을 부정하려는 크루그먼 교수의 전략은 단순화와 사실관계의 은폐다.먼저 그는 1929부터 1936년까지의 총통화와 GDP 그래프(1929=100)를 제시한다. 명목 GDP는 거의 반토막이다. 실질생산의 감소와 큰 폭의 물가하락이 반영된 것이다. 총통화의 감소도 삼분의 일 이상이다. 그런데 통화량 감소는 통화정책 때문이 아니란다. 연준이 직접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은 본원통화뿐이고 총통화가 아니니까(재할인율의 역할은?).이어서 같은 그래프에 본원통화까지 포함한 그림을 보여준다. 본원통화 그래프는 1930년부터 단조 우상향이다. 연준의 긴축적 통화정책 같은 것은 없었고, 따라서 총통화의 감소도 연준의 정책 탓이 아니라 주식시장 붕괴에 이은 예금인출 사태와 경기침체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간단히 두 변수의 인과관계를 뒤집었다. 과연 그럴까?프리드먼과 슈워츠의 연구는 이런 부류의 반론을 염두에 두고, 산출이나 가격변수와 무관한 이유로 통화량의 변화가 발생한, 즉 통화량의 변화를 ‘외생적’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에피소드를 찾아 그 이후 나타난 산출과 가격의 변화가 외생적 통화정책의 결과임을 보여주었다. 그런 에피소드가 네 번 있는데, 첫 둘만 간략히 소개하겠다.첫 번째는 1928년 봄에 시작되어 1929년 10월 주식시장 붕괴 시까지 지속된 신중하게 계획된 긴축 통화정책이다. 당시는 경기순환주기 상의 바닥(1927년 11월)을 막 지난 때였기에 경기과열이나 인플레이션이 긴축의 원인이 아니었음은 자명하다. 그러면 왜? 주된 원인은 신용을 ‘생산적 사용’과 ‘투기적 사용’으로 구분해 오던 워싱턴 연준 이사회의 이분법적 인식이 월가 주식투기에 대한 우려와 만나면서, ‘반투기’ 정책으로 긴축 통화정책이 추진되었던 것이다.정책 수단은 현재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잡으려 사용하고 있는 금리(당시는 재할인율)인상과 테이퍼링 두 가지였다. 1928년 7월에는 재할인율을 1921년 이래 최고 수준인 5%까지 올렸고, 연준의 보유국채 잔고는 1927년 말의 6억 달러에서 1928년 8월에는 2억 천만 달러로 감소했다. 통화긴축에 뒤따른 것은 물가하락과 경제활동 둔화였다. 경기의 정점이었던 1929년 8월에서 주식시장이 붕괴하는 10월까지 두 달 사이에 만도 생산, 도매물가, 개인소득이 연이율로 각각 20%, 7.5%, 5% 하락했다.두 번째 에피소드는 1931년 10월 있었던 또 다른 통화 긴축정책이다. 파운드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에 밀려 9월 영국이 금본위제를 포기하자, 투기세력들의 관심이 달러화로 향하면서 외국 중앙은행들과 개인 투자자들이 달러자산을 금으로 앞다투어 바꾸면서 금의 해외유출과 은행예금 인출사태와 은행파산이 현실이 되었다. 연준은 금의 해외유출에 강력하게 즉각적으로 대응했다.뉴욕준비은행은 10월 9일 재할인율을 1.5%에서 2.5%로 인상했고, 일주일 만인 16일 또 3.5%로 인상해, 일주일 사이에 2% 포인트 인상이라는 연준 역사상 전무후무한 가장 빠른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이 조치로 금의 해외유출은 저지했지만, 뱅크런과 은행 파산은 가속화되었다. 10월에 만도 522개의 상업은행이 문을 닫았다. 긴축적 통화정책과 그 결과인 은행시스템의 붕괴로 통화공급은 급락했고, 생산과 가격은 더 가파르게 하락했다.위 두 사례만으로도 우리는 투기응징이나 달러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즉 국내 생산이나 물가수준과는 관련이 없는 긴축 통화정책으로 연준이 대공황기에 통화공급을 축소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크루그먼 교수가, 문제의 칼럼에서, 연준은 총통화 중 본원통화 만 통제할 수 있고, 예금통화는 직접 통제할 수 없는데 대공황기에 본원통화는 증가했으므로 통화량의 감소가 연준의 통화정책 때문이 아니라고 설명한 것은 경제학에 깊은 이해가 부족한 일반 독자들이 프리드먼 교수의 대공황 연준 책임론이 근거 없는 주장이라는 판단을 하도록 오도한 것으로 보인다.크루그먼 교수는 이제라도 자신이 쓴 칼럼의 왜곡을 바로잡는 진정성 있는 반성문을 써서 “타임스 오피니언에서는 선의의 지적 논쟁이 가능하다는” NYT의 기대를 뒷받침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우택 한림대 명예교수

2022-08-08 09:00 김우택 한림대 명예교수

[시장경제칼럼] 지속가능발전의 정치도구화

박선주 경북대학교 조교수지속가능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은 그 개념 자체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자연자원의 유한성과 생태계의 하위체계로서의 인간 활동을 인정하고, 인간과 자연의 공존과 자연자원의 공유에 있어서 세대 간 형평성을 고려하기 위해 생태적 수용력 내에서 경제 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 발전과 환경 보전, 그리고 사회적 형평이라는 세 가치 간의 균형을 표방한다. 서로 다른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에 가치 갈등이 필연적으로 수반되며, 국가, 기업, 시민단체, 소비자, 정치인은 각자가 우선순위에 두는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정치적 활동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환경단체가 기업의 경제활동을 감시하고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거나, 기업은 규제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입법 로비활동을 하고, 국가 차원에서도 정부의 가치 지향에 따라 국제규범의 수용 정도나 정책 목표를 바꾸기도 한다. 진보당과 보수당의 가치지향이 뚜렷한 미국의 경우 오바마 행정부 시절 주도하였던 UN 파리기후협정을 두고 2017년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제조업계에 제약을 가하는 것이 불공정하다며 탈퇴하였다가, 대선에서 민주당이 정권을 교체하자 바이든 행정부에서 재가입하기를 반복할 정도이다.지속가능발전의 정치적 속성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조금 더 독특하게 변질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과도하게 정치화되어 본질을 잃고, ‘정치도구화(political instrumentalization)’ 되었다고나 할까.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볼 수 있다.우리는 역대 정부에서 보수, 진보의 가치를 떠나 지속가능발전을 정치적으로 선점하고 덧씌우고자 노력을 반복해왔다. 다소 복잡한 과정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2000년 김대중 정부에서 최초로 ‘새천년 국가환경비전’을 발표하고 2002년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조직하였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이를 법제화하고자 2007년에 지속가능발전기본법을 제정하였다. 얼마후 이명박 정부에서는 기존의 기본법을 일반법인 지속가능발전법으로 개정하고,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을 제정(2010년)하였다. 또한 기존의 대통령자문 위원회를 환경부 소속으로 변경하고, 녹색성장위원회를 대통령직속으로 발족하여 위상과 권한을 강화하였다. 지속가능발전이 녹색성장을 포괄하는 상위개념이지만 법제상 녹색성장이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이다.이에 대하여 관계 시민단체, 전문가 집단, 진보정당에서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였고, ‘지속가능발전’ 기본법의 제정을 촉구해왔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임기 말인 작년 9월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이 폐지되고,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 제정되어 올해 9월부터 시행 예정이다. 그리고 올해 1월 국회가 기존의 지속가능발전법을 폐지하고 지속가능발전기본법을 통과(제정)시켜 올해 7월부터 시행되었다. 당시 언론과 현장에서 드디어 무언가 쟁취하고 승리하였다는 환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그러나 엎치기와 되치기를 반복하였지만 결과적으로 기본법 두 개와 위원회 두 개가 여전히 살아있고, 개정, 폐지, 제정을 반복하면서 위상을 바꾸었을 뿐 그 내용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지속가능발전기본법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본원칙과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무, 국민과 사업자의 책무가 규범적으로 열거된 반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는 전략과 계획의 수립 및 이행, 지속가능발전지표의 개발과 평가, 보고서의 격년 작성과 공표 등 획일적이고 표준화된 업무가 추가되었다. 우리가 왜, 어디로 가야할 지를 알려주는 이정표라기에는 레토릭에 가깝고, 국제사회에서 강조하는 참여와 자발성을 유도하기에는 너무 권위적이고 지시적이다.최근에 지역 현장에서는 여러 가지 부작용이 관찰된다. 기본법 때문에 기존에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참여적·자발적으로 운영되던 목표와 지표가 중단되고, 지자체에서 산하 시책연구원에 용역과제를 발주하여 정부와 전문가 중심으로 지표를 개발하여, 오히려 퇴보 또는 하향평준화 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편으로 후발주자인 지자체에서는 각 시민단체가 추진하던 사업의 성과가 잘 나올 수 있는 지표, ‘히트’ 칠 수 있는 지표, 정치성향이 다른 지자체가 잘 못하고 있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지표를 ‘끼워넣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2015년 UN에서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발표한 이후 시민사회에서 각각의 목표를 선점하고 주도권을 갖기 위해 더 분발하는 듯하다. 지속가능발전의 정치도구화가 시민사회에서도 발생하며, 그들 간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이러한 현상은 우리에게 익숙한 에너지 정책을 살펴보면 더욱 명확하다. 지속가능발전에 있어 에너지 정책은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는데도 불구하고 최근 정권 교체를 몇 차례 거치며 매우 안타까운 선택이 반복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고리1호기 영구 정지 선포식에 참석하여 탈원전 정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태양광과 풍력 설비 등 재생에너지 확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문제는 에너지 트릴레마(energy trilemma: 에너지 안보, 형평성, 환경적 지속가능성)로까지 일컬어지는 에너지 정책을 수립함에 있어서 정부와 전문가 시장 플레이어와 시민들이 분석, 학습, 치열한 토론과 합의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정치적인 결단을 하면서 도구화되었다는 점이다. 원자력과 재생에너지가 더 이상 테이블 위에 함께 올라오지 못하게 된 것이다.아니나 다를까 윤석열 정부에서는 국정과제로 탈원전 정책 폐기와 원자력산업 강화를 강조하면서, 재생에너지에 대한 언급은 최소화하며 에너지 신산업으로만 다루고 있다. 마침 최근에 유럽연합에서 원자력 발전을 그린에너지로 분류하여, 원자력 발전에도 그린 태그를 붙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화석연료의 대체에너지원으로써 원자력과 재생에너지원은 상충하지 않는다. 그리고 에너지원의 다양화와 함께 도·소매 전력계통의 개방이 이루어진다면 시장이 형성되고, 기술혁신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경제적 가치도 함께 추구될 수 있다. 지속가능발전은 좌우 일직선의 연속선(continuum) 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이한 가치가 교차하는 지점(intersection)에 있다.마지막으로 약간 논점에서 벗어나는 말이지만 정부와 정치권에서 이루어지는 일련의 양상을 보고 있자면, 지속가능성 평판(sustainability reputation)을 위해 그린마케팅에 주력하는 기업들에서 나타나는 ‘그린워싱(greenwashing)’이 떠오른다. 이는 같은 제품인데 포장재만 녹색으로 바꾸거나, 친환경 메시지를 전달하는 행사를 표방하며 한정판 다회용 플라스틱컵을 증정하여 자원을 과다사용하는 것과 같이 친환경적이지 않지만 그런 것처럼 홍보하는 ‘위장 환경주의’를 일컫는다. 시장에서는 소비자들이 그린워싱을 구별할 수 있도록 여러 유형을 분석·구분하여 공유하고 있다. 보통 상충효과를 감추고, 모호하게 설명하고, 증거 없는 주장이나 허위 표시를 하는 등의 양상으로 나타난다고 한다.시장에서 그린마케팅과 그린워싱을 구분하는 것은 관심과 의식 있는 소비자들의 자발적 노력이다. 기업에 대한 사회적 평판이나 불매운동 등으로 대응한다. 마찬가지로 정부와 정치권의 지속가능발전 정책이 정치도구로, 그린워싱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두 눈 뜨고 지켜보아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도 있다. 박선주 경북대학교 조교수

2022-08-01 09:32 박선주 경북대학교 조교수

[시장경제칼럼] 도그마가 된 원자력, 진화론적 접근이 필요할 때

이혁우 배재대학교 교수원자력은 친환경에너지일까, 아닐까. 석유에너지도 아니고 이산화탄소 배출도 덜 하니 지구온난화 주범은 아니다. 그래도 스리마일과 체르노빌,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강력한 기억은 원자력에 친환경 딱지를 붙이기 망설여지게 만든다. 더구나 원자력발전 폐기물은 또 다른 골칫거리이다. 고준위 방폐장은 아직 세계에 하나도 없다. 알쏭달쏭하다. 이런 골치를 없애는 쉬운 방법이 있다. 원자력을 녹색에너지, 혹은 전환에너지로 분류해 버리는 거다. 분류는 복잡한 문제도 단순하게 만드는 마법이 있다.지난 7월 7일. 우여곡절 끝에 유럽연합 본회의에서는 원자력 발전을 녹색에너지로 분류하기로 결정했다. 2주 전 경제통화 상임위원회와 환경보건식품안전 상임위원회에서의 녹색에너지 제외 결정을 되돌린 것이다. 유럽연합 본회의의 이번 결정에 따라 적어도 2045년까지는 건설허가가 난 원자력 발전은 친환경으로 간주된다.국내에선 어떨까? 문재인 정부 말, 지난 연말 환경부가 발표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지침서에는 원자력 발전을 녹색 경제활동에서 제외했다. 같은 원자력 발전을 두고 유럽연합과 우리나라가 다른 판단을 한 거다. 정권이 바뀌고 윤석열 정부는 이것을 다시 녹색에너지로 포함시키려 방침을 세웠다.이를 두고 사회에선 이런 쓸데없는 논란도 벌어진다. “원자력이 친환경이라잖아, 친환경 에너지 원자력은 잘 사용해야지, 도대체 왜, 탈핵이니, 반원이니 그러는지 모르겠군.” 혹은 “원자력이 누가 친환경이래, 유럽연합에서 원자력을 녹색투자로 분류한 건, 2045년까지 건설허가 난 것에 대한 거지, 그걸 더 활성화하고 더 많이 지으라는 건 아니잖아?” 원자력을 두고 벌어진 우리사회, 아니 세계 사회의 오랜 논쟁이다.그래서 원자력은 도대체 친환경일까, 아닐까? 답은 ‘원자력은 친환경 에너지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이다. 어떤 에너지가 친환경일까, 아닐까란 문제는 세상에서 인간의 씀씀이, 기술의 발전, 경제상황에 따라 지속적으로 다시 정의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온 산을 민둥산을 만들어 땔감을 때던 시절, 석탄은 우리강산 산림녹화를 가능하게 해 준 녹색에너지였다. 반면 석탄에너지의 미세먼지에 비하면 원자력 에너지가 더 청정해 보인다.물론 방사능의 위험은 여전하다. 더 새로운 친환경 에너지 개발이 필요한 거다. 그래서 지금 세계 학자들은 핵융합 발전을 가속화시키고 수소에너지도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요컨대 어떤 에너지가 친환경 에너지인지는 진화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여기서 좀 오래된 얘기하나. 향유고래에서 도시를 밝힐 연료를 얻었던 시절이 있었다. 큰 놈이라도 잡으면 50통을 얻을 수 있었다. 2000통을 목표로 에섹스호가 출발했다. 은행의 든든한 자금도 있었다. 고위험 투자사업, 어쩌다 향유고래 무리를 잘 만나 40마리만 사냥하면 돈방석에 앉을 수 있었다. 이게 1820년 영화 ‘인더하트오브더씨(In the heart of the sea)’ 얘기다.향유고래 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 년이나 고래를 못 본 채 바다 위를 헤매기도 하고, 어쩌다 발견한 고래라도 이 힘 센 놈을 잡는 건 언제나 죽음을 담보로 한 일이었다. 에섹스 호 선원도 잘못 걸렸다. 거의 다 죽고, 아주 일부가 죽은 동료의 살을 먹고 버티며 죽음 직전 운 좋게 구조될 수 있었다. 이때 생명을 건진 에섹스호 막내 선원은 평생을 자기 세상 속에만 갇혀 있었다. 동료의 시신을 먹고 살아남았다는 비밀을 세상에 내 놓을 수 없었고, 자신이 그렇게 살아남았다는 것에 대한 존재론적 갈등이 컸던 거다.1850년, 30년 만에 찾아온 작가와 이제는 노인이 된 막내 선원의 마지막 대화가 인상적이다. “선생님, 1년 전부턴 서부 땅에서 기름이 쏟아진다고 합니다.”, “그럴 리가,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 1820년엔 향유고래 포경이 기름 대량 생산의 주요 산업이었다. 이 시대 사람들은 30년도 안 돼서 기름을 구하느라 이렇게 힘들고 위험하고, 투자위험도 큰 사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당연히 알지 못했다. 지금 와서 보면 석유가 발견되며 향유고래기름 생산 산업이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였는데도 말이다.인간은 미래를 모르면서 현재를 판단하고 논쟁한다. 원자력이 회색이듯, 향유고래기름도 회색이다. 인간에게도 향유고래에게도 위험한 에너지 향유고래기름은 도시 전체를 밝혀주는 최신의 에너지였다. 그런데 이제 그런 시대는 없다. 기술발전으로 향유고래기름은 더 이상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향유고래도 안전해졌다.원자력 발전도 마찬가지이다. 원자력은 앞으로도 한참은 더 쓸 수밖에 없는 에너지이다. 원자력을 그린 택소노미에 포함시킨 것도 이를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난에 직면한 독일 등 유럽국가의 형편도 역할을 했다. 그린 택소노미는 어떤 에너지가 환경과 조화롭고 지속가능한지를 검토한 것으로, 친환경 분야 투자지침으로 쓰인다.원자력은 물론 위험한 에너지다. 불안한 부분을 계속 보완해가며 사용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와 동시에 대안적 에너지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당연하다. 그리고 이제 대안적 에너지가 경쟁력이 원자력을 대체할 만큼의 경쟁력이 생기면 원자력의 시대도 마감 될 것이다. 그때, 원자력은 그린 텍소노미에서 확실히 제외될 수 있을 것이다. 경쟁력 있는 에너지를 두고 굳이 원자력에 투자할 이유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카멜레온의 생존능력은 인간에게도 필요하다. 현재 수준이라도 유지하려면 적응해야 하고, 조금이라도 더 잘 살려면 진화해야 한다. 자전거 타기처럼 말이다. 계속 패들을 굴러야 넘어지지 않고, 다단기어를 발명해 붙여야 더 편하게 탈 수 있다. 다단기어의 탁월함이란 웬만한 오르막도 오를 수 있게 해 준다는 거다. 그 결과로 인간은 조금씩 변덕스런 환경변화에서 자유로워졌다. 그래서 다시 원자력 정책에도 도그마를 버리고, 진화적 사고를 수용해야 한다.이혁우 배재대학교 교수

2022-07-25 09:00 이혁우 배재대학교 교수

[시장경제칼럼] 정부가 야기하는 사중존실과 최소화를 위한 노력의 필요성

오경수 한국지방세연구원 연구위원‘사중손실(deadweight loss)’은 경제학원론에서 다루는 주요 개념 중 하나이다. 완전경쟁시장에서 가격제한, 세금부과 등 정부가 시장에 개입함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효용의 손실을 의미한다. 완전경쟁시장이 실현되기 어려운 이론적 가정이라는 점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개입이 이론적으로 사회적 비효율을 야기한다고 하여 그 존재와 역할을 부인할 수는 없다. 정부의 개입에 대한 이론적 논의는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주제이며, 본고에서 이러한 이론적 논의나 쟁점을 다루고자 함은 아니다. 정부의 개입을 통한 적절한 규제나 정책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정부의 역할과 개입의 필요성에 대한 인정이 정부의 모든 정책에 대하여 불가침영역의 특권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규제나 정책의 시행에 있어서 시장의 비효율을 최소화하고, 적절한 정책성을 갖추기 위하여 면밀한 분석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합당한 근거, 사회적 합의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다.정부가 제시하는 기준이나 규제는 시장에 시그널로 작용한다. 정부의 규제를 받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서 소비자와 생산자는 그 시그널을 인지하고 소비 및 생산활동의 선택에 있어서 이를 반영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해당 제품이나 서비스는 진화하거나, 시장에서 퇴보하게 된다. 즉, 정부가 시장에 보내는 시그널의 영향은 매우 크다.우리나라 정부의 각 부처에서 관련한 법안 및 규제와 기준 등을 끊임없이 내놓고 있으며, 시장은 이를 준수하기 위하여 혹은 이에 적응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장의 비효율, 사중손실(deadweight loss)은 여전히 불가피한 것일까? 직접적인 규제는 아니지만 관련 부처의 행정적인 접근방식으로 인한 불필요한 비용이나 비효율성이 시장에 전가되는 사례들을 언급하고자 한다.자동차에 관련한 법률을 살펴보면 국토교통부 소관의 ‘자동차관리법’과 경찰청 ‘도로교통법’에서 구분하는 자동차의 정의 및 구분기준이 서로 상이하다. 더불어 최근 자동차에 관한 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 환경부의 ‘대기환경보전법’에서 분류하는 기준은 또 다르다. 각 법령에 따른 기준에 따라 서로 다른 규제나 정책이 적용된다. 자동차의 소유 및 관리의 측면, 운행의 측면, 환경적 측면에서 각각 다른 기준을 적용받는 것이다.자동차라는 제품군에 대하여 부처별 업무 혹은 정책의 성격에 따라서 그 분류기준을 상이하게 정해놓고,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에게 각각의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소비자도 생산자도 상품의 특성과 규제의 적용범위를 직관적으로 알기 어려우며, 이는 결국 부처 간 협의 등의 과정을 생략하는 행정편의에 따른 추가적인 사회비용을 야기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또 다른 사례는 ‘자동차관리법’ 상의 이륜자동차 구분기준에는 기존의 배기량 기준과 함께 전기이륜자동차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최고정격출력 기준을 함께 제시하고 있다. 즉, 전기이륜자동차도 최고정격출력 기준에 따라 규모별로 분류된다. 그러나, 동일 법령하에서 규모별 분류기준으로 배기량을 사용하고 있는 승용 및 화물자동차에 대해서는 전기자동차에 적용할 수 있는 최고정격출력이나, 혹은 배기량을 치환하여 적용할 수 있는 그 어떠한 기준을 정하지 않고 있다.‘자동차관리법’에서 자동차의 한 종류인 이륜자동차에 대해서는 전기이륜자동차의 도입을 고려한 최고정격출력 기준이 도입되었으나, 다른 종류인 승용 및 승합자동차에 대해서는 그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있는 배경을 이해하기 어렵다. 전기자동차 시장이 급증하고 다양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기자동차는 그 크기나 제원 등에 기반한 어떠한 분류도 없이 ‘전기자동차’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여있을 뿐이다. 자동차관리법 상의 분류를 기반하여 자동차의 종류에 따른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이러한 행정적 일관성 결여(혹은 지연·누락)는 시장의 다양성에 대하여 대처하지 못하는 사회적 비효율을 야기할 수 있다.반면, 우리나라에서 1995년부터 시행하여 온 분리수거 정책이 궁극적으로 자원의 재활용으로 이어지지 않아 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물론, 소비자가 올바른 방법으로 배출하지 않기 때문인 부분도 있지만, 일부 플라스틱류, 종이류 등의 제품은 애초에 재활용이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분리수거 되어 온 것이다. 환경문제가 점차 대두되고, 시장에서 생산되고 소비되는 모든 제품에 대한 재활용 이슈가 논의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매우 아쉬운 뉴스였다.분리수거 정책을 기반하여 정부는 생산자에게 자원 재활용에 대한 규제 및 지침을 명확히 하고, 이에 따른 제품이 시장에 공급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올바른 배출방법 뿐 아니라 재활용이 가능한 제품인지 여부를 소비자들이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라벨 부착 등을 통하여 시장에서 보다 환경친화적인 제품이 개발되고 거래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는 점에서 매우 아쉬움이 남는다.종합예술이라 칭하는 건축분야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건축물은 지역 및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과 다양하고 복잡한 시설이 어우러져 주요 관광상품이 되기도 하고, 혹은 지역주민에게 심미적 효과를 제공하는 공공재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규제와 규격 적용에 급급한 나머지 이러한 건축물의 특성이나 다양성을 적용하기 어려운 구조를 갖는다. 건축물에 대해서는 안전, 환경 등 점점 더 다양한 부분에 대한 고려와 반영이 필요한 종합예술에 가까운 부분이라는 것을 인정하나, 이러한 필요성을 충족하기 위하여 행정적인 기준에 급급하여 재화(건축물)의 특성과 다양성을 저해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면 이것은 행정편의주의에 의한 사회효용의 손실임이 분명하다.정부의 역할과 시장개입의 필요성은 명료하다. 하지만, 이것이 행정편의주의에 따른 사회효용의 손실을 감내해야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행정적인 업무와 규제 및 정책의 적용에 있어서 시장의 효율성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사중손실(deadweight loss)을 최소화할 수 있는 분석적인 접근과 정책에 대한 고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부분에 대한 정부의 노력은 사라진지 오래인 것으로 보인다.오경수 한국지방세연구원 연구위원

2022-07-18 08:30 오경수 한국지방세연구원 연구위원

[시장경제칼럼] 시장집중도와 시장점유율은 경쟁 측정의 좋은 지표인가

정회상 강원대학교 경제학과HHI(Herfindahl-Hirschman index)는 시장의 집중도를 측정할 때 사용되는 지표 중 하나로 일정한 거래분야에서 각 경쟁기업의 시장점유율을 제곱하여 모두 합한 값이다. HHI는 0과 1 사이의 값을 갖는데(시장점유율을 백분율로 측정하면 0과 10,000 사이), 기업의 수가 적을수록 또는 기업들의 시장점유율이 덜 분산되어 있을수록 그 값은 커진다. 극단적으로 독점인 경우 HHI는 1의 값을 갖고, 경쟁적인 시장일수록 0에 가까운 값을 갖는다.과점시장에서 시장집중도는 시장의 평균적인 지배력과 일대일 관계에 있기 때문에 HHI를 이용하여 경쟁의 정도를 측정한다.예컨대, 기업들의 수평결합 결과 HHI가 일정 수준 이하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경쟁제한성이 없다고 추정하고 기업결합을 승인해준다.그런데 높은 시장집중도가 항상 낮은 사회후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HHI를 이용하여 경쟁의 정도를 측정할 때 주의를 할 필요가 있다. 동일한 비용구조를 지닌 기업들이 경쟁하는 경우, 기업 수가 줄어들어 HHI가 증가할수록 사회후생은 낮아진다.그러나 기업들의 비용구조가 서로 다른 경우에는 HHI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사회후생이 감소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 간 비대칭성이 증가하여 HHI가 높아져도 비용이 낮은 기업이 많이 생산하고 비용이 높은 기업이 적게 생산하여 생산의 효율성이 증가하면 사회후생은 증가할 수 있다 . 또한 신규 진입기업의 생산비용이 큰 경우에는 기업 수 증가에 따른 HHI 감소에도 불구하고 사회후생이 감소할 수 있다.기업들의 경쟁 구조도 시장집중도와 사회후생 간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기업 수에는 변화가 없지만 기업들이 동시에 생산량을 결정하는 구조에서 어떤 기업들이 먼저 생산량을 결정하는 구조로 바뀌면 기업 간 비대칭성이 증가해 HHI는 증가하지만 총생산량이 증가해 사회후생도 증가한다.기업의 시장점유율을 이용해 경쟁의 정도를 판단할 수도 있다. 이는 과점시장에서 어떤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높아질수록 이윤이 높아지고 시장지배력이 커진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 그러나 플랫폼들이 경쟁하는 양면시장에서는 시장점유율이 시장지배력을 측정하는 좋은 지표가 되지 못한다. 어떤 플랫폼이 경쟁 플랫폼보다 높은 시장점유율을 갖더라도 더 낮은 이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이유이다.시장집중도나 시장점유율과 같이 계산하기 쉬운 지표를 이용하여 경쟁의 정도를 측정하는 것은 유익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들의 비용이나 경쟁 구조 또는 시장의 특성 등을 파악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다 . 더욱이 경쟁을 어떤 조건이 만족되는 상태가 아니라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의 과정으로 이해하면 경쟁의 정도를 측정하려는 시도는 의미 없을지도 모른다 .

2022-07-12 21:26 조진래 기자

[시장경제칼럼] 생태계 구성원의 본래 성질과 책임

김희중 시장경제학회 자문위원우리는 지구라는 터전에서 살고 있다. 지구는 오랜 역사를 거쳐 나름대로의 생태계(ecosystm)를 지니고 있으며 보이지 않는 자연의 질서에 의해 그 속에 많은 생물체들이 살고 있다. 하루살이는 하루살이로, 개미는 개미로, 여우는 여우로 숲속과 같이 자기가 사는 공간에서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다. 인간 역시 생태계의 먹이사슬에서 최상의 위치에서 육식과 채식을 먹으며 살아가고 있다.나무와 숲, 다양한 동물과 식물,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도 그들이 각자가 가진 고유한 특성과 성질을 가지며 살아간다. 우리 인간도 그 속에서 불을 발견하고 언어와 만들면서 진화하였다. 그리고 또 오랜 역사를 통해 문명을 만들고 발전시켜 나왔다. 모두가 자기의 영역과 먹이사슬, 생태계가 있는 것이다. 또한 살아가는 동식물, 그리고 사람들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한다. 벌은 꿀을 만들어 제공하고, 나무와 숲은 산소를 만들어 제공하고 맑은 공기를 만든다. 생태계 속에서 자기의 특성을 지니면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 또 나중에 가야할 길이 있는데 이는 최종적인 길로서 모든 생물이라면 죽음으로 이 세상을 마치게 된다.인간은 자연과 함께 문명을 발전시켰다. 공원을 가꾸어 삶의 터전을 관리한다. 하지만 인간은 욕심과 무책임, 자연의 생태계(natural ecosystem)를 생각하지 않는 결정들을 하곤 한다. 이런 행동들은 지구의 환경을 위협한다. 인간이 편안해지려고 만든 각종 문명의 산물들이 오히려 환경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버려진 양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산과 들, 바다의 오염 물질이 되곤 한다.생태적인 지구의 땅 말고도 우리는 하루하루를 시장(market)이라는 경제 생태계(economic ecosystem)안에서 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우리가 먹는 아침 식단의 식사 재료들, 아침을 먹고 출근하면서 타야하는 차량들, 승용차이건 버스이건 전철이건 상관없다. 또 회사에서 점심을 먹는 식재료들, 점심 후 먹는 커피, 또 퇴근 후 먹는 저녁식사 재료들 등이 있다. 이것들은 모두 생산자, 즉 기업이 만든 제품들이며 우리는 가게(shop)라는 시장을 통해 제품을 구입하거나 구입된 제품을 이용하게 된다.시장(market)이라는 경제 생태계에도 이를 구성하는 많은 구성원들이 있다. 물건을 생산하는 생산자, 물건을 사는 소비자, 그리고 정부, 은행 등 많은 구성원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면서 시장은 움직인다. 여기서도 자기 고유의 성질과 자기 일을 해야 하는 문제는 역시 나타난다. 생산자는 생산자답게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좋은 물건을 만든다. 최선을 다해 잘 팔리는 물건을 만드는 것이 생산자의 고유 성질이다. 소비자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와 기호(嗜好)를 동원하여 좋은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사려고 한다. 이 또한 소비자의 고유 성질이다.정부는 시장이 잘 돌아가도록 투자나 재정지출을 한다. 때로는 소비자로서 때로는 생산자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은행은 이자율과 통화량 조정을 통해 시장 경제가 침체되지 않도록 또는 때로는 너무 과열되지 않도록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모든 구성원은 다 각자의 고유한 성질과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고유한 기능을 다하기 위해 각자는 또한 자신들이 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구성원들이 시장에서 자신의 고유한 성질을 지키지 못할 때, 고유한 기능을 위한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 생겨난다.시장은 오랜 역사를 두고 아주 많은 구성원들로 이루어져온 인류의 터전이며 산물이다. 우리나라 인구를 5천만명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시장을 구성하는 구성원은 5천만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시장은 많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시장은 사고 파는데 있어서 자유로운 의사를 기초로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시장은 수많은 구성원들의 개개의 본래 성질과 개인의 자유의사를 최대한 보장하면서 또한 개개인이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가운데 자유로운 거래(transaction) 속에서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다.그런데 개개의 구성원들이 본래 성질을 잃게 되고 구성원들이 자신에게 지워진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면 시장이 그 기능을 잃거나 약화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생산자가 제품을 만들 때 사회적 책임을 등한시하여 불량식품을 만든다든지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사용하여 만드는 경우가 있다.정부도 시장 기능을 위축시킬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시장에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규제위주의 정책으로 시장을 위축시키는 경우이다. 복지를 늘리기 위해 재정을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각종 세금의 세율을 지나치게 높이거나 고소득자와 저소득자간의 빈부의 격차를 줄인다는 명목으로 재정지출을 지나치게 늘리는 확장재정 정책을 펼치면서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제공하는 것 등이 있다.정부는 또한 일정한 임기제를 가진 정치 엘리트들이 정책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때로는 경제 정책이 표를 얻기 위한 표풀리즘(표(票)+populism) 정책으로 결정되기도 한다. 어느 나라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임기제로 정부가 운영되고 집권 정부의 연장 또는 교체가 선거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선거가 다가오면 대체적으로 어느 나라나 재정확대 정책을 사용할 가능성이 많아지게 되는 것이다. 경제를 근본적인 진단에 의해 처방하기 보다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단기적인 경기 부양 정책을 사용할 가능성이 많아진다는 의미이다.선거철에 경기 부양을 위한 국가의 재정지출 정책이 많아지면 통화량이 시장의 수요에 의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인위적인 재정확대 정책에 따라 늘어나기 때문에 시장은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맞게 된다. 시장이 자연적인 생태계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재정확대 정책과 그 결과로 나타난 통화량 확대에 대한 반응으로 움직이게 된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시장에서 인플레이션 또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면서 시장 기능이 왜곡될 가능성도 높아진다.시장의 기능은 시장을 구성하는 구성원들이 각기 가진 고유 성질과 자신에게 부여된 책임을 다할 때 그 온전한 기능을 발휘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을 구성하는 각 구성원들은 다른 구성원들의 고유의 성질과 의사결정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시장의 구성원들이 가진 고유의 성질을 유지하고 또한 자신의 본연의 책임을 다한다면 시장의 순기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우리 모두에게 유익한 시장이 되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김희중 시장경제학회 자문위원

2022-07-04 09:00 김희중 시장경제학회 자문위원

[시장경제칼럼] 전기요금 인상과 물가안정, 정책적 지지율의 트릴레마(Trilemma)

최성희 계명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2009년 미국 피치버그 G20 정상 회의에서 2020년까지 화석연료보조금 축소 및 폐지가 합의되었다. 화석연료보조금이 자국 에너지 가격의 경직성을 조성시켜 시장을 왜곡시킬 뿐 아니라, 과도한 화석연료 사용을 유도하여 글로벌기후변화를 악화시킨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즉 시장경제학적으로나 글로벌기후환경학적 관점에서 모두 화석연료보조금은 축소 및 폐지가 바람직하다고 판단된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에서 화석연료보조금은 여전히 거대한 규모로 유지되고 있다. IMF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현재 세계 화석연료에너지 보조금은 약 5.9조 달러로 추정되는데, 이는 세계 GDP 규모에서 무려 6.8%에 해당되는 규모이다. 심지어 2019년 OECD 국가의 화석연료보조금은 오히려 30% 증가하였으며, 2022년 현재까지 WTO가 주도하는 화석연료보조금폐지를 위한 동참 노력에 세계 경제의 양축이라고 일컫는 미국과 중국의 참여는 매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시장경제학적으로나 기후환경학적으로나 축소 및 폐지가 정답인 화석연료보조금 정책이 현실적으로는 유지되는 이유는 바로 에너지요금 상승에 대한 각국 정부가 직면한 물가 상승과 정책적 지지율 하락이라는 부담 때문이었다. 화석연료보조금 축소와 폐지는 곧 생활필수재인 전기의 요금을 상승시키게 되고, 결국 필연적으로 물가 상승을 유발한다.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빈번하게 발생되었던 다양한 경제적·정치적 위기를 관리하기에 급급했던 선진국들에게 화석연료보조금 축소를 단행하여 물가 상승까지 가중된다면 국정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다. 피선거권자인 국민에게 경제적 고통을 준 대가는 투표로 심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국의 정책 최고결정자들은 글로벌 사회에서 화석연료보조금 축소를 합의하였어도 현실 앞에서 화석연료보조금 축소를 수행하기 어려웠던 각국 정부정책 결정자들의 고충은 충분히 이해할만하다.이는 단순히 정책의 최고의사결정자가 정치가(statesman)냐 아니면 정치꾼(politician)이냐의 개념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모든 정책의 최고의사결정자 역시 호모이코노미쿠스라는 인간일 뿐이고, 그렇다면 그 인간이 가지고 있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본연의 행동이자 모습을 보였을 뿐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합하다.2022년 6월 현재 대한민국에서 전력요금 인상에 대한 논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생산단가보다 낮은 전력 가격은 시장왜곡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시장경제학적으로 온당치 않으며, 재생에너지시설이 확충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력소비가 확대되면 전력생산을 위해 화석연료사용 증대가 유발한다는 점에서 기후환경학적으로도 낮은 전력 가격은 바람직하지 못한 정책이라고 평가받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력 요금을 과감히 올릴 수 없는 이유는 앞서 소개한 화석연료보조금을 유지하였던 선진국들의 최고정책의사결정자들이 직면한 상황과 유사하다. 전력 가격 상승으로 빈곤층이 잃게 될 에너지 복지 부분을 메꿔줄 추가적 정책도 설계할 시간이 필요하고, 우리나라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물가상승률과 공조될 수 있는 구체적 전기요금인상분은 얼마인지도 면밀하게 검토할 시간도 필요하다.가뜩이나 “해외발” 물가상승 요인들로 인플레이션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자칫 국내전기요금 상승이라는 “국내발” 물가상승 트리거가 발동되면 외국 평균 보다 훨씬 높은 물가상승률로 인해 우리나라만 고물가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2022년 3월 대한민국은 새로운 정부 구성과 함께 새롭고도 매우 어려운 정치경제적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새 정부의 경제정책결정자들은 작금의 전기요금 인상의 필요성도 알고 있고, 인플레이션 관리의 중요성도 알고 있으며, 무엇보다 새 정부의 정책적 지지율 관리의 중요성도 알고 있을 것이다. 소위 전기요금인상과 물가안정, 정책적 지지율의 트릴레마를 균형 있게 풀어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트릴레마의 해결은 앞으로 5년 간 성공적인 대한민국 경제 운영을 위한 중요한 기준이자 핵심적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단순히 화폐적으로 계산되는 재무적 관점에서만 전기 요금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거나, 정치적 논리는 철저히 배제하고 경제적 논리로만 전기 요금을 결정하려는 것도 최선의 해법이 될 수 없음을 명심해야한다. 서민 중심의 사회적 후생을 고려한 에너지 복지정책과 물가 안정, 그리고 국민들의 정부 정책 신뢰까지 제고시킬 수 있는 균형 있는 의사결정을 통해서 전기 요금 인상과 물가 안정, 국정 운영의 원동력 확보라는 트릴레마를 균형 있고 현명하게 풀어나가길 기대한다.최성희 계명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

2022-06-27 10:52 최성희 계명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

[시장경제칼럼] 석유의 반격, 고유가 진단과 전망

세계 경제가 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고 있다. 2022년 5월 한국의 소비자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5.4% 상승하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크게 올랐고, 같은 기간 미국 소비자 물가도 전년 동월 대비 8.6% 급등하며 41년 만에 최대폭을 기록했다. 현재의 인플레이션 핵심에는 국제유가의 가파른 상승이 있다. 본고는 최근 국제유가 급등의 원인에 대해 진단하고 ‘가격’이 주는 시사점을 살펴본다.◇ 고유가의 원인 진단: 수급적 요인과 지정학적 요인의 복합작용2021년 5월 국제유가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60대로 돌아왔지만, 세계 석유수요는 94.4백만b/d로 여전히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크게 하회하고 있었다. 석유수요의 점진적 회복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이해하면 그럭저럭 납득이 되는 수준이다. 당시 각 국은 백신 접종에 속도를 내고 있었고, 세계 보건전문가들은 2021년 하반기 팬데믹 종식 가능성까지 제기했었다.2021년 7월 국제유가는 팬데믹 이전 수준을 넘어 $70을 향해가고 있었다. 주된 요인은 실질적 석유수요의 회복이다. 백신을 맞은 사람들은 차츰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시작했고, 각국 정부도 방역 조치 완화를 시행했다. 그러던 2021년 8월, 델타 변이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석유수요 회복 둔화로 유가는 $70 수준에서 횡보했다. 2021년 9월, 유가는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공급 차질이다. 허리케인 아이다(Ida)가 미국 남부지역을 강타하며 미국 원유 생산에 한 달 이상 차질이 발생했고, OPEC 일부 회원국은 코로나 시기 투자 부진으로 주어진 쿼터만큼도 생산하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2021년 10월부터 국제유가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2021년 9월 말 중국의 화력발전소가 증가하는 전력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며 중국 전역이 전력난에 빠졌다.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에 전력난이 발생하자 전력 소모가 큰 각종 원자재(요소수, 알루미늄 등) 생산이 중단되었고, 이로 인해 원유를 포함한 원자재 가격의 상승이 나타났다. 뿐만이 아니라, 중국이 러시아 등지에서 천연가스와 석탄을 대체 수입하면서 석탄뿐만 석유, LNG 등 다른 에너지의 가격도 상승을 불러왔다.엎친데 겹친격으로 유럽의 풍력발전량이 기후 이상으로 줄어들자 이를 대체하는 천연가스 신규 수요가 발생했고, 이 현상이 동절기 난방용 가스 수요와 맞물리며 유럽 천연가스 가격의 전례 없던 급등으로 이어졌다. 이는 가스 대체 석유 수요를 유발하며 유가도 상승하는 기이한 현상까지 나타났다(일반적으로 유가가 천연가스의 가격을 결정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동절기만 지나면 유가가 정상화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나 역시도...).2022년 2월 25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했다. 동절기가 지나기만을 기다리던 에너지시장 참여자들에게 이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푸틴은 많은 전문가들이 예상한 외교적 해법이란 선택지를 보란 듯이 차버렸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은 러시아에 대해 전방위적인 경제제재를 단행했다. 가뜩이나 글로벌 원유시장은 타이트한 공급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러시아산 원유 물량 시장에서 퇴출될 것이라는 우려에 세계 원유시장이 패닉에 빠지며 유가는 단숨에 $100을 넘어 3월 9일 $128까지 치솟았다. 러시아가 수출하는 원유는 대략 450만b/d로 추산된다(IEA, 2022). 전쟁 초기 시장은 서방의 제재로 러시아 공급량이 대폭 축소될 것이라 우려했으나, 러시아산 원유는 중국, 인도 등 러시아 우호국이 대폭 수입량을 늘리며 위태롭지만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잘 소화되고 있는 듯하다.코로나19 사태로 2020년 4월 22일 국제유가는 배럴당 $13.52까지 급락했었다. 이로부터 불과 2년도 지나지 않은 2022년 3월 9일 국제유가는 배럴당 $127을 웃돌았다. 저점 대비 고점까지의 상승률은 무려 846%으로 실로 믿기지 않은 변동성을 보였다. (기대)수요의 증가와 (기대)공급의 감소는 필연적으로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며, 지금의 고유가는 이에 대한 결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석유의 반격: 타이트한 공급과 견고한 수요(공급감소) OPEC+ 회원국의 증산 여력은 현재 제한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그나마 증산 가능한 국가는 사우디, UAE 정도이지만 미국과 사이는 예전만큼 좋지 않다. 그렇다면 이제 미국 석유기업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미국 석유업체들은 ESG 경영으로 화석에너지 투자에 제약을 받고 있다. 또한 바이든 행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재생에너지에 확산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며 화석에너지에 비우호적인 정책환경을 조성했다 . 이처럼 전 세계가 탄소중립에 열광하며 석유 부문 투자는 오랫동안 위축되었고, 이에 따라 세계 원유공급은 자연적으로 점차 감소하게 될 것이다.한 예로, 미국 다우지수에 92년간 이름을 올리고 있던 ExxonMobil은 2020년 8월 지수에서 퇴출당하였다. 세계 많은 언론이 ‘석유시대 종말’이 시작되었다며 이를 환영하듯 보도했다. ExxonMobil의 이러한 굴욕적 수모에도 불구하고, 올해 ExxonMobil 영업이익은 55조 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주 바이든 대통령은 엑손이 지난해 하느님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며 더 많은 시추(투자)를 하지 않는 엑손을 맹비난했다. 석유를 퇴물 취급하던 바이든이 인제 와서 석유 투자를 늘리라니…. 이 얼마나 웃픈 상황인가?(견고한수요) 영국 최대 석유회사 BP의 CEO 루나드 루니는 2020년 6월 한 인터뷰를 통해 인류의 기후위기 대응으로 석유수요가 곧 정점에 다다를 것이라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제약조건이 없다면 여전히 크고 편의성 좋은 SUV를 선호한다(미국의 2021년 신차 판매량 1-6위는 SUV다). 매년 전기차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2021년 기준 세계 100대 신차판매 중에 90대 이상은 내연기관차였다. 자동차의 교체주기와 내구연한, 그리고 전기차의 획기적인 비용 절감 달성 시기, 대체가 매우 어려운 산업용 석유수요 증가를 생각해보면 적어도 2030년 전에 세계 석유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은 거의 없다.이제 석유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2014년 이후 저유가 시기가 6년간 지속되며 전 세계 석유산업이 불황 속에 지내왔고, 2020년 코로나 사태로 유가가 폭락하며 수많은 셰일업체들이 완전히 도산했다. 우리가 탄소중립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국가 경제시스템 및 에너지 안보의 핵심이 되는 전통에너지의 중요성을 등한시했다 . 과거의 1·2차 오일쇼크, 그리고 2000년 초반부터 이어진 고유가 사이클은 대략 10년 동안 지속되었다.이번 러시아 사태에서 촉발된 고유가 시대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다만 공급은 지금과 같은 정책환경에서는 매우 제한적이며, 수요는 적어도 10년간 줄어들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경기침체로 인한 수요감소는 말하고 싶지 않다). 이번 고유가는 우리 선택의 결과이며 가격은 善도 惡도 아니기에 있는 그대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사고방식으로 시장 가격을 재단하여서는 곤란하다.전 세계가 에너지가격발(發) 인플레이션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만약 비 시장적 접근을 통한 가격 인하를 강제한다면, 시장은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또 다른 복수를 할 것이다. 인류는 언제나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해왔기에, 이번 고유가 시기도 결국엔 잘 극복해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그 과정이 가급적 짧고 너무 힘들지 않기를 소망한다.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팀 김태환 연구위원

2022-06-20 09:50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팀 김태환 연구위원 기자

[시장경제칼럼] 문재인 정부의 사회적 가치와 시장경제

2018년 3월 문재인 정부는 ‘정부혁신 종합 추진계획’을 발표하였다. ‘비전-목표-3대 전략’의 ‘정부혁신 체계도’에서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첫 번째 전략은 ‘정부운영을 사회적 가치 중심으로 전환한다’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 가치’를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가치’로 규정하며 보다 구체적으로는 인권, 안전, 환경, 복지, 공동체, 사회적 약자배려, 양질의 일자리, 시민참여, 대기업-중소기업간 상생, 지역사회 활성화 등 여러 가지 가치들을 의미한다고 설명하였다.이는 문재인 정부가 그 이전의 모든 정부들과 구분되는 매우 특이한 전략이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경제개발 이후 역대 모든 정부에서 내용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정부역할의 초점을 시장실패 교정에 맞추었다. 민간의 시장이 자율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역할을 정부가 수행해야 한다고 인식했던 것이다. 시장과 정부가 추구하는 가치에는 차이가 없고, 그 수단으로서 시장은 부족한 부분이 있기에 정부의 역할이 요구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정부가 민간의 시장이 추구하는 가치와 다른 ‘사회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인식하였다.이러한 인식은 매우 심각하고도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많은 지식인들이 문재인 정부에 대해 제기했던 의문은 바로 이것이다. 과연 시장은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사회적 가치’와 무관한 것인가? 문재인 정부에 의하면, 정부가 추구해야 하는 ‘사회적 가치’는 시장이 추구하는 가치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는 국가유기체적 가치관으로 절대주의 국가로 빠트릴 위험을 수반하고 있다.21세기에 들어와 형성된 전세계의 보편적 인식과 정통적 가치관은 시장이 추구하는 가치가 정부가 추구하는 가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국민의 자유와 행복이라는 근본적 가치를 추구하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시장과 정부는 동일하다. 가치추구의 수단으로서 시장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부가 필요하고, 또 정부의 역할에도 많은 문제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시장친화적인 정부혁신이 필요하다. 이처럼 정부혁신은 시장실패와 정부실패 사이에 균형을 잡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강제성에 기반하기에 정부역할 확대에는 훨씬 더 조심해야 한다.시장이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사회적 가치’를 갖는 이유는 시장이 개인들의 생존과 존엄에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개인들이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거래를 할 수 있다면 시장의 영역은 확대되고 개인들이 획득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양도 늘어날 것이다. 이러한 비인격적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안전장치는 -법의 규칙과 그 집행체제의 확립- 곧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인격적 교환에 수반되는 신뢰를 비인격적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법치로 대체하는 것이 곧 정부의 기본 역할이 되는 것이다.그런데 현실의 시장에서는 편익과 대가의 대응관계가 직접적이고도 구체적이기보다 매우 느슨한 형태로 존재하기도 한다. 공공재에서 무임승차(free ride)가 가능한 이유는 개인이 지불하는 대가와 획득하는 편익 사이의 관계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대가를 지급하는 구매자가 그 편익을 적절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에도(‘정보의 불완전성’으로 표현된다) 편익-대가의 관계가 느슨하다. 예컨대 환자는 의사가 제공하는 의료서비스를, 학생은 선생님이 제공하는 교육서비스를, 기부자는 자선단체가 제공하는 자선서비스를 속속들이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이처럼 대가관계가 느슨할 때에는 시장의 참여자들이 보다 더 정직하고 성실해야 시장실패를 줄일 수 있다. 무임승차의 유인이 있을 때 구매자들이 조직을 형성하고 그 조직 내에서 보다 정직하게 행동하는 거버넌스를 확립하면 공공재 재원은 충분히 조성될 수 있다. 또한 구매자가 기업조직의 산출물(또는 서비스) 내용을 적절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이윤배당 금지’가 요구되는 비영리조직을 통해 종업원들의 정직하고 성실한 행동을 유도할 수 있다. 이처럼 느슨한 대가관계에서는 조직 구성원들의 정직과 성실이 중요한데, 우리는 이들의 사명감을 공직가치(public service value)라 부른다. 그리고 공직가치 제고를 위한 일련의 노력들을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라고도 부른다.그러나 시장경제라 하더라도 자유로운 거래가 아예 허용되지 않아야 하는 영역들도 존재한다. 신체의 자유가 있다고 하여 장기매매, 성매매를 자유로이 허용할 수 없고, 자신이 자유로이 행사할 수 있다고 하여 다른 사람에게 투표권을 매각하도록 허용할 수는 없다. 인류의 정치사회적 발전이 한 편에서는 시장경제의 발전이었다면 다른 한편에서는 인간권리의 보편적 보호가 병행하여 나타났다. 인간권리에 포함되는 내용들은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모든 인간들에게 무조건적, 보편적, 획일적으로 보장돼야 할 최소한의 요건이라는 성격에는 변함이 없다. 역사적으로 등장한 다양한 권리선언들은 모두 개인들에게 보장해야 할 서비스의 표준약관이라 할 수 있는데, 20세기 중반에는 최저한의 생활보장이라는 생존권이 포함되기도 하였다.결국 ‘사회적 가치’는 시장경제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시장과 정부는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는 서로 다른 수단일 뿐이다. 시장에서 편익-대가의 관계가 느슨할 때에는 공직가치의 제고를 통해, 자유로운 거래를 허용하지 않아야 할 때에는 권리의 보편적 보호를 통해 시장의 결함을 보완해야 한다. 사회적 가치는 시장경제의 발전, 그리고 모든 개인들에게 보편적으로 허용되는 최소한의 권리 기준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누구에게는 더 많고 또 누구에게는 더 적은 차별적 허용은 개인들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만약 최저한의 기준을 넘어 더 많이 충족하는 것을 정부가 전면적으로 강제한다면 자의적이고도 전체주의적인 정부개입이 만연할 것이다.더구나 문재인 정부가 제시하는 10여개의 사회적 가치들에 대해서는 각각을 소관하는 정부부처들이 이미 따로 존재하고 있다. 인권에 대해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안전에 대해서는 행정안전부가, 환경에 대해서는 환경부가, 복지와 사회적 약자배려는 보건복지부 등이 소관하고 있다. 이는 마치 분업과 전문화를 통해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시장경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분업과 전문화를 팽개치고 모든 개인들이 모든 행동에서 모두 똑같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은 강압적인 사회주의에서나 가능한 일이다.옥동석 인천대학교 dsoak@naver.com

2022-06-13 08:30 옥동석 인천대학교 기자

[시장경제칼럼] 가상화폐, 자생적 사기

최근 5월 초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만들었던 K-코인 루나(LUNA)가 일주일 새 99% 폭락하고 그것의 달러연동 스테이블 코인인 테라(Terra)도 마찬가지로 폭락하면서 ‘가상화폐’의 실체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사실 맨처음 가상화폐가 등장했던 것은 2008년 10월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명을 쓰는 프로그래머가 개발한 ‘인플레이션 없는’ 화폐를 목적으로 한 비트코인(bit coin)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후 비트코인의 이러저러한 한계를 해결하고자 하는 이더리움, 이더리움 클래식, 리플, 라이트코인, 에이코인, 대시, 모네로, 제트캐시, 퀀텀 등 다양한 대안적(alternative) 코인들, 즉 알트코인(alt coin)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K-코인 루나도 그러한 대안적 코인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이 가상화폐 현상이다.그런데 이 가상화폐들은 그것의 구현에 적용된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관심을 제외한다면 화폐인가의 관심만 남는데, 그것들이 과연 사이버 공간에서나마 진정으로 화폐일 수 있는가? 아니면 닥터둠으로 유명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등 많은 전문가들의 말대로 일종의 폰지사기에 불과한가? 이에 대한 해답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경제사적으로 화폐의 기원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인간은 필요한 것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해서 얻거나 타인에게서 얻었다. 타인에게서 얻는 방법에는 대체로 약탈, 교환, 구걸(혹은 자선)의 세 유형이 있으나, 지속가능한 방식인 타인과의 교환이 가장 ‘바람직’했다. 교환은 본능이라기보다는 이 세 유형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 것에 불과했는데, 결과적으로 그러한 선택을 한 사람들이나 종족들은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음이 역사적으로 입증되었다. 이때 은(銀)과 금(金) 같은 귀금속이 여러 좋은 것들(goods, 재화)과의 교환에 사용되었다.특히 당시 인류의 만신론적(萬神論的) 세계관 속에서 각각의 도시에서 숭앙하는 신들에게 봉헌하기 위하여 곡식 생활필수품 등의 좋은 것들을 내어주고 그 은과 금을 구하는 과정에서 은과 금은 모두가 원하는 ‘좋은 것’이 되었다. 부자들은 은과 금으로 장식까지 하면서 신과 같은(?) 위세를 과시할 수 있었기에 은과 금을 구하기도 했다. 더구나 은과 금 같은 귀금속은 내구성도 좋고 분할성도 좋은 ‘좋은 것(goods)’임이 확인되었다. 은과 금이 이런 과정을 거쳐 화폐로 정착되었다.이때 봉헌을 받은 신전의 사제들이 은과 금을 대여해주면서 이자까지 붙여서 받았던 역사적 사실도 있다. 마치 현대의 은행처럼 말이다. 물론 이웃 국가들에 의해서 신전이 약탈당하는 경우에도 뱅크런은 없었다. 그 은과 금은 각각의 사람들이 신전에 대여해준 것이 아니라 봉헌했던 것이었고, 따라서 자신이 맡겨놓은 은과 금을 찾아가려는 행렬이 쇄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웃 국가들의 침략은 학살과 노략질 같은 비극을 동반하였기 때문에 그럴 여유도 없었겠지만….처음에는 은과 금도 덩어리 형태로 교환되었다. 그러나 그 교환 과정에서, 은과 금에 불순물을 섞는 형태의 자생적 사기 혹은 거래 때마다 번번이 무게를 재야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 때문에 로마의 모네타(Moneta) 신전에서는 인증서 도장을 만들어 그 금속 덩어리에 표기했다. 모네타 신전에서 만든 인증서 도장이 찍힌 물건이 우리가 화폐(Money)라고 부르는 주화(鑄貨, Coin)이다.화폐를 만드는 곳인 주조소(鑄造所)의 영어명인 Mint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최초의 주화는 지금의 터키 지방인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 때 만들어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 후 그리스에서도 만들어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우리가 쓰는 Money라는 이름이 알려주듯이 문화적 전승이란 면에서는 로마의 이 주화에서 비롯된 것이다.이런 화폐의 기원만 보아도 비트코인 등의 가상화폐가 얼마나 엉터리없는 사기극인지를 대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사람들이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비트(bit, binary digit, 예컨대 001000100001)를 구하기 위해서 안달을 하거나 그 비트를 단위로 거래를 한 적이 없었으며, 나아가 그 비트의 인증서(코인)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비트들로 윈도우즈나 마이크로소프트, ‘아래아 한글’ 같은 유용한 프로그래밍을 이용하지만, (황금 조각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조각가들이 금을 구매해야 하지만) 프로그램 개발자들이 그것을 하기 위하여 비트들을 구입하지는 않는다. 당연히 그 비트들의 덩어리를 인증할 도장인 코인의 필요성이 없다. 그러므로 자칭 가상화폐 개발자들이 비트코인이란 이름을 붙인 것 자체가 사람들의 혼동을 유도한 사기의 시작이다.그렇다면 가상화폐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가 쓰고 있는 역시 그 자체로 가치가 없는 종이화폐와는 비견될 수 있지 않을까?종이화폐는 10세기 경 송나라에서 교자(交子) 회자(會子), 13세기 경 원나라에서 ‘지원보초’도 사용된 적도 있지만, 역시 문화적 전승 및 연속성에 비추어보면 지금의 종이화폐 현상은 1630년대 이후의 잉글랜드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1630년대 잉글랜드에서는 찰스 1세(Charles I)에 의해 전쟁비용 마련을 위해 런던탑에 보관되었던 상인들의 금이 강제로 ‘대출’되는 상황이 벌어진 바 있었는데, 이에 원 소유주들인 상인들이 항의하고 금을 런던탑에의 보관이 아닌 자가보관을 하거나 금세공인들에게 맡겨놓기 시작했다.이때 금세공인들(goldsmiths)은 상인들이 자가보관한 금을 이자를 주고 대출받거나 혹은 자신에게 직접 맡겨진 것을 바탕으로, 거래편의를 위하여 금으로 ‘즉시’ 교환해준다는 약속증서(promissory notes)를 만들어 발행하게 되었다. 이 금세공인들이 잉글랜드에서 은행(bank)으로 발전하였고, 이들이 발행했던 약속증서는 은행권(bank note)으로 정착되었던 것이다. 1688년 명예혁명으로 브리튼연합왕국에서 개인들의 소유권이 평민들 수준에서까지 완전히 정착되자 은행권을 통한 거래는 더욱 활성화되었다.1694년 주식회사 잉글랜드은행(Bank of England)이 탄생되었고, 이 잉글랜드 은행은 혁명 정부에 필요한 돈을 공급해주는 대신 국고수납업무를 맡았다. 잉글랜드 은행은 1946년 노동당에 의해 국유화되기까지 민간은행이었지만, 국세수납 업무를 맡음으로써 중앙은행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많은 금세공인 은행들이 발행했던 은행권들보다 잉글랜드은행이 발행한 은행권을 필요로 할 이유가 생겼고, 그것이 압도적인 큰 권위를 갖게 되었다.다른 나라들도 이를 본따서 중앙은행을 설립하게 되는데, 1918년 만들어진 미연방의 연방준비제도 및 연방준비은행도 마찬가지로 민간은행이지만 중앙은행이 되었다. 이 은행들이 발행했던 은행권들은 한결같이 지폐에 상응하는 금(金)의 지급준비(reserve)를 필수요건으로 하였고, 보여주는 ‘즉시’ 현물인 금으로 바꿀 수 있었기에 신용을 얻었다.금세공인들의 지급준비(reserve) 이상의 ‘자생적인’ 은행권 초과발행도 인플레를 불러왔지만, 중앙은행들의 지급준비(reserve) 이상의 ‘권력형’ 은행권 초과발행도 인플레를 불러왔다. 특히 세금의 징수와 각종 정부활동에 필요한 경비 지출과 관련하여 지배력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었던 특정 은행권, 즉 중앙은행권이 만들어낸 인플레는 심각한 결과를 낳았다. 결국 중앙은행도 은행권과 금(金)의 ‘즉시’ 교환을 계속 유지할 수 없었다.1차 세계대전과 그 후의 막대한 전비 지출은 물론 막대한 재건비용, 복지비용 등을 위해 중앙은행권이 남발된 바 1930년대부터 잉글랜드은행, 미국의 연방준비은행 등이 차례대로 금으로의 교환 중지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1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피해 금이 모였던 미연방의 경우, 1971년까지 국제결제에서는 금으로의 교환을 할 수 있었고, 그래서 달러가 2차세계대전을 계기로 ‘세계의 기축 통화(基軸通貨)’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금으로의 교환중지에도 불구하고 세금의 징수와 각종 정부활동에 필요한 경비 지출의 사용 때문에 사람들은 각국의 중앙은행의 은행권을 계속 필요로 하였기에, 그것들은 계속 나름의 권위를 가진 채 통용될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의 막대한 전비 지출, 그 후의 막대한 재건비용, 복지비용, 또 1950년 한국전쟁, 1964년 미국의 월남전 참여로 인한 막대한 전비지출 등으로 비슷한 상황이 재연되었다. 여기에 1970년대 석유 무기화정책 때문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플레이션 위에 고유가(高油價) 고물가(高物價)까지 가중되자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생겨나게 된다.‘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동화 이야기에서 제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열심히 뛰어야 하고 다른 곳에 가기 위해서는 두 배를 빨리 뛰어야 하는 경우처럼, 인플레는 더 열심히 뛰어야 따라잡을 수 있는데, 고유가 고물가까지 이겨야 하니 아예 생산을 포기하는 것이 낫게 된 것이다. 결국 인플레 속의 성장률 감소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바로 이와 같은 중앙은행들, 그리고 정부들의 ‘권력형’ 인플레 성향을 막기 위해서 그 발행량 한정을 전면에 내걸었다는 점이 비트코인이 격하게 환영을 받았던(?) 요소였다. 그래서 인플레 방지 약속이 약간의 매력 요소로 들릴 수는 있으나, 확실하게 짚어야 할 것은 비트코인 등이 애초부터 은 및 금과의 교환을 전제로 하지도 않았고 그런 지급준비(reserve)도 갖추지 않았다는 점이다.비트코인이 전자화폐가 될 수 있으려면 ‘무엇으로 바꾸어주겠다는 약속이 있는 전자증서’여야 하는데, 그 약속이 없는 것이다. 출발점부터 종이화폐 은행권의 ‘약속’에 미치지 못한 허무한 것이었다. 그래서 비트코인 등은 종이화폐를 대신할 전자화폐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비트코인 등이 민간차원에서 화폐를 참칭(僭稱)한다는 점에서 그 현상은 자생적 사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비트코인이나 각종 알트 코인들은 현실의 달러나 원화 등이 들어와야 가격이 올라가고 먼저 들어왔던 사람들이 팔고 돈을 벌고 나간다는 점에서 뒷 사람 돈으로 앞 사람의 원금과 이자를 갚아나갔던 폰지 사기의 일종이기는 하나, 그래도 무엇을 주겠다는 약속이 없었기에 다행히(?) 루나 테라의 폭락처럼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이 원리에서 보면 루나 테라 폭락사태를 두고 더 심하게 약속도 없고 지급준비도 없는 이더리움을 만든 부테린이 권도형에게 당장 폰지사기를 멈추라고 일갈한 것은 코미디에 가깝다)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의 K-루나나 테라의 경우에는 야심차게 일종의 ‘약속’을 했었다. 스테이블 코인인 테라를 발행하여 그것을 1달러와 등가가 유지되도록 하겠다고 한 것이었다. 이 경우에는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첫째, 테라를 1달러와 등가가 되도록 유지한다고 하면 테라가 달러 자체의 인플레에 연동된다는 점에서 그 약속으로 인하여 비트코인 류가 내걸었던 명분, 즉 인플레 제거 명분이 증발된 것이다. 사람들이 달러 인플레를 우려하여 비트코인 류를 구매하는 것일 텐데 달러와 등가를 유지하면 굳이 비트코인 류를 구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기존의 종이화폐도 전자화폐 못지않게 사이버공간에서 스마트폰 컴퓨터 등을 활용하여 이체(移替)거래가 용이하다는 점도 범죄 탈세 불법송금 등의 목적이 아닌 한 비트코인 류를 구매할 이유가 없다는 또 다른 이유다.둘째, 테라의 안정성을 위해 K-루나와 연동시킨다고 했지만, K-루나가 달러와의 등가성을 보장할 수 있는 어떠한 인과관계적 연결고리도 없는 것이다. 테라의 달러와의 등가성은 오직 달러로 지급준비(reserve)를 유지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폭락 사태를 막으려면 테라 구매자들에게 달러를 즉시 교환해주면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했다. (루나 테라 등은 싸이월드 등의 도토리, 네이버나 각 금융기관 백화점 등의 포인트 제도와도 다르다. 그 경우에는 현실에서 통용되는 화폐와의 교환이 명시적이었고, 지급준비도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따라서 이번 사태는 애시당초 치유할 수 없었던 일이다. 권도형 대표는 프로그래밍에는 밝았을지 모르지만, 화폐의 기원에 대해서도 종이화폐가 힘을 가질 수 있는 근거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일대 사기극의 주연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루나 테라 폭락 사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상화폐 사기극에 참여하거나 대안화폐인 양 미련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심지어는 경제학계의 권위자들마저도 대안화폐로 여기는 그런 경우가 있다. 그러나 화폐의 본질이, 경제학자 미제스(Ludwig von Mises)의 말대로, 종이화폐도 어제 또 그제 등으로 원점회귀를 해보면 금속화폐였었고, 금속화폐도 그것이 화폐로 되는 과정도 이런 저런 이유에서 애초에 사람들이 좋은 것(goods)으로 여겼던 것이었음을 상기한다면, ‘자생적 사기극’에 불과한 가상화폐 열풍에 더 이상 현혹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박종운 자유민주시민연합 사무총장

2022-06-09 09:45 박종운 자유민주시민연합 사무총장

[시장경제칼럼] 개인주의 : 진짜와 가짜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자유주의는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그리고 효용을 극대화하는 인간을 전제한다고 말한다. 원자적 인간을 전제하기 때문에 잘못된 이념이고 그래서 배려·유대감의 도덕을 전체사회로 확대하는 사회주의가 옳은 이념이라는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그런 논리가 옳은가의 문제다. 개인주의: 프랑스 전통과 스코틀랜드 전통우선 지성사의 양대 산맥을 구성하는 두 가지 종류의 계몽주의를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데카르트, 토머스 홉스, 제레미 벤덤 전통의 프랑스 계몽주의다. 이를 현대에 계승한 대표적인 인물은 존 롤스다. 신고전파 경제학도 그런 전통의 충실한 계승자다. 다른 하나는 데이비드 흄, 애덤 스미스, 애덤 퍼거슨, 알렉시스 토크빌 등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다. 이 전통의 현대적 계승자는 오스트리안 학파인 칼 멩거와 하이에크다. 여러 가지로 두 전통을 구분할 수 있다.프랑스 계몽주의는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을 전제한다. 자기 완료적 인간이기 때문에 사회 속에서 타인들과 상호작용 과정에서 배울 필요가 없다. 이런 전통은 하이에크가 지적했듯이 인간 이성의 힘을 지나칠 정도로 신뢰한다. 인간 이성은 사회에 들어가기 전에 완전히 개발되었다는 그래서 그런 이성의 힘을 통해서 사회를 계획하여 조종·통제할 수 있다는 미신이 깔려 있다. 하이에크는 그런 미신을 구성주의적 합리주의(Constructivistic Rationalism).라고 혹평했다. 원자적 인간을 전제한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은 진정한 자유주의라고 볼 수 없다. 정부의 계획과 간섭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하이에크는 1945년 유명한 강연문《진짜와 가짜 개인주의》에서 원자적 인간을 전제한 개인주의를 “가짜 개인주의”라고 비판했다.스코틀랜드 계몽주의자들이 발견했듯이 인간은 극도로 합리적이지도 않고 효용을 극대화하지도 않는다. 인간은 제도적 사회적 환경의 산물이다. 개인들이 가진 진정한 이해관계는 인간역량의 개발과 이용과정에서 형성된다. 선호, 취향 등은 정치·사회적 과정에서 비로소 형성된다. 특히 종교, 도덕, 문화는 인간들의 선호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이야말로 자아와 삶의 목적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런 인간관이 진짜 개인주의다.스코틀랜드 전통의 인간관 (1)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전통에서는 사회와 독립된 인간의 존재는 상상할 수 없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지식을 습득하고 모방하는 등 학습하지 않으면 누구도 살 수 없다. 사회적 학습을 통해서 개인 자신이 발전해 간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도덕적 행동도 개발하고 학습한다. 따라서 인간 이성은 사회적 과정의 결과다. 인식론적으로 볼 때 스코틀랜드 전통은 진화론적 합리주의(Evolutionary Rationalism)다. 이때 진화란 인간이 지닌 지식은 틀릴 수 있고 사회적 과정에서 변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따라서 원자적 인간에 대한 비판은 스미시안 전통의 자유주의에는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흥미롭게도 1980년대에 벌어진 “공동체주의-자유주의 논쟁”에서도 그런 전통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 논쟁에서 자유주의는 존 롤즈의 사상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의 사상의 중심에는 “무지의 장막”에서 자신의 이성을 통해서 사회를 계획할 분배정의를 선택하는 원자적 인간이 있다.원자적 인간의 또 다른 의미는 편협한 이기심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타인들이나 인간제도에 대해 전혀 애착심이 없고 오로지 자기만을 생각하는 아주 편협한 이기심으로 여기는 패러다임도 프랑스 계몽주의 전통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서로 의존하면서 살아간다. 평등한 자유는 인간들의 상호의존성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다. 상호의존 관계의 유익한 결속을 유지하는 사람들에게만이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 가족, 공적인 삶, 도덕, 종교단체, 상공단체 등 정치와 독립적으로 형성된 자발적 연합에 의해 촉진되는 생산적인 상호의존이야말로 혁신과 기업가 정신의 원천이다. 깊은 연합적 결속과 건전한 상호의존이 없으면 상업 정신도 위축되고 장사하는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함께하는 버릇을, 타인들과 결속하는 버릇을 배우지 못하면 문명 그 자체를 위태롭게 한다.스코틀랜드 전통의 인간관(2)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동감 능력을 바탕으로 하여 인간의 도덕성을 개발했다. 타인들이 반복적으로 부인하거나 비난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런 행동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상상을 동원하여 판단한다. 토크빌이 미국 민주주의에서 밝혔듯이, 그가 미국에서 발견한 개인주의도 애덤 스미스에 가장 근접한 인간관을 전제했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성장한다. 인간들이 고립적일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의 행동이 상업문화를 뒷받침하는 필수적 법과 제도뿐만 아니라 도덕적 문화적 요소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감정적이고 물질적인 상호의존 관계의 유익한 결속을 유지하는 사람들에게만이 시장의 자기 이익추구와 위험 부담을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있다.하이에크도 자유헌정론에서 밝혔듯이 오로지 직접적인 자신의 욕구에만 관심이 있다는 의미에서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점(편협한 이기심)을 반대했다. 그는 친목 단체, 취미그룹, 자선단체, 국경 없는 의사회, 마약퇴치 운동 등 국가와 개인 사이에서 활동하는 제3 섹터로서 공익을 위한 자발적 연합을 중시했다. 특수한 목적을 위하여 조직한 소규모 그룹에 적합한 유대감을 임의로 확대하기는 곤란하다.그러니까 자유주의는 유대감을 법으로 정하는 것을 반대하고 그런 이타심의 범위를 자유에 맡긴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이웃에서부터 전체사회에 이르기까지 확대하여 구성원들의 유대감을 강제한다. 강제적 확대의 결과는 강제적 재분배와 복지국가다. 유대감의 확대는 시장의 자생적 질서를 조직사회로 만들고 그래서 시민들이 국가의 노예가 된다.그렇다고 자생적 질서를 지향하는 자유주의는 별도의 도덕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도덕은 인격·재산의 존중, 관용, 정직성, 자기 책임, 법 앞의 평등, 진리추구 등이다. 이 같은 도덕을 준수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풍요로운 물질문명을 안겨준 거대한 열린 사회가 가능했다.자유주의와 인간관요컨대 자유주의는 원자적 인간을 전제하기 때문에 잘못된 이념이고 그래서 배려·유대감의 도덕을 전체사회로 확대하는 사회주의 또는 공동체주의가 옳은 이념이라는 논리는 틀렸다. 스코틀랜드 전통의 자유주의는 타인과 인간제도에 대해 전혀 애착심이 없고 오로지 자기만을 생각하는 아주 편협한 이기심으로 여기는 패러다임은 결코 아니다. 인간은 시장의 자생적 질서의 형성에 없어서는 안 될 도덕을 구현하는 제도를 존중할 뿐만이 아니라 그런 도덕의 테두리 내에서 배려·유대의 이타적인 욕구를 자발적으로 충족한다. 그런 욕구는 사회주의가 아닌 자유 사회에서 훨씬 더 잘 충족할 수 있다.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2022-05-30 09:00 민경국 강원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시장경제칼럼] 민영화 ‘가짜뉴스’에 ‘미시정치’를 생각한다

우리 정치에서 ‘선동’이 점차 일상화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는 한·미 FTA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지금도 아무탈 없이 잘 먹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가짜뉴스를 퍼트리고 여기에 자극받은 대규모 시위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른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도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 갑자기 “전기·공항의 민영화 반대”를 외치고 나섰다. 국민의힘은 민영화의 ‘민’자도 꺼내지도 않았다는데 말이다.사실 공기업에 내재된 결함은 ‘철밥통’이란 말 속에 응축돼 있다. 공기업이 ‘철밥통’인 것은 공무원보다 급여는 좋으면서 일반 기업처럼 퇴출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이다. 최근의 보도에 따르면, 공기업 연봉은 대기업보다 높지만 절반 정도의 공기업들이 적자상태에 빠져있다고 한다. 공기업을 파산시켜서는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전기나 수도 등을 공급받을 수 없게 되므로 공기업 적자는 결국 세금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당장 문명생활을 가능케 하는 핵심인 전기 에너지를 공급하는 한국전력의 적자도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기요금은 생산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인 데다가 한전 내부에 쌓인 경영문제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금이 관련되는 만큼 ‘집단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여야 정치권이 누적되는 공기업 적자와 철밥통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갈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그 방안을 고심하는 것이 정상이다.그런데 공기업 개혁을 위한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은 채 더불어민주당이 느닷없이 정부와 여당이 추진할 것을 천명하지도 않은 ‘민영화 반대’를 외쳤다. 그 속내는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공기업 근로자들에게 철밥통을 잃게 된다는 공포감을 주고, 총파업으로 사회를 혼란시킬 힘을 가진 공기업 노조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소비자들에게는 ‘민영화’로 비싼 가격을 물어야한다는 두려움을 퍼트려 표를 얻겠다는 계산이다.소비자-납세자들이 실제로 무는 비용은 공기업에 직접 지불하는 가격에 더해 공기업에 보전되는 세금을 합한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납세자들이 과연 이 전체 비용을 인식해서 더 비싼 돈을 내게 된다는 ‘선동’에 넘어가지 않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자기가 직접 무는 요금은 명확한데 자신이 내는 세금 가운데 얼마가 여기로 들어가는지는 불분명하기에 ‘비싼’ 비용을 물게 된다는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사실 ‘민영화’도 공기업 개혁 방안들 가운데 하나다. 세금으로 손실이 보전될 길을 막아 서비스를 잘 제공하지 못하거나 방만한 경영을 하면 퇴출되게 하는 근본적 해결책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민영화는 다른 방안들과 구별된다. 이런 ‘민영화’는 영국에서 1970년대에 추구됐는데 흥미롭게도 1970년대 초에 시도됐다가 실패했지만 1970년대 말 관련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고려하면서 추진했더니 큰 성과를 내었고 그 결과 전 세계에 수출됐다.공영주택은 영국의 민영화 성공 사례 가운데 하나다. 이 사례는 가짜 ‘공포 마케팅’에 대해 또 다른 방식의 이해관계자들의 이해관계를 잘 헤아리는 《미시정치》로 맞서면 성공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1970년대 영국의 공공부문 소유 주택 거주자는 전체 세입자의 35%로 민간주택 세입자들보다 평균 소득이 더 높았다. 그럼에도 정부가 공공주택 세입자들에게 임대료 보조금을 주다보니 정부의 재정 적자는 불어나기만 했다. 그래서 공공주택을 팔아서 소유자를 정해주는 ‘민영화’를 하려고 시도했을 때는 ‘주거의 공공성’을 내세운 주장과 세입자들의 반대에 밀려 실패하고 말았다.그러나 정부가 공공부문 소유의 임대주택을 임대주택 회사들이 아니라 세입자들에게 시세보다 저렴하게 판매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세입자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민영화 반대자들이 강력한 정치적 지지자들로 돌변했다.이처럼 민영화뿐만 아니라 모든 공공부문 개혁은 이로부터 혜택을 보고 있던 이들의 반발을 가져올 수 있고 이를 이용하려는 정치세력이 선동을 할 기회로 삼는다. 그래서 공공부문 개혁을 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이런 선동을 미리 예상하고 어떤 《미시정치》로 대응해야 한다. 다시 말해 어떤 방식을 동원해서 반대자들을 설득해낼 수 있는지 세심한 전략을 마련해서 추진되어야 한다.병을 아는 ‘인지’ 능력과 병을 치료해내는 능력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정치권이 공공부문의 병을 정확히 인식하고 이를 치유할 방법을 모색할 때 그 국가와 국민은 번영한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이 ‘허깨비’ 민영화를 만들어 공격하는 것을 보면 이런 기대는 정치현실과 너무나 른 허망한 것이다.그러나 너무 절망하고 아예 공공부문 개혁의 의지를 꺾을 필요는 없다. 영국에서 발휘되어 효과가 입증된 《미시정치》의 지혜를 배우고 십분 활용하면, 정치적 반발은커녕 오히려 정치적 지지를 받으면서 공공부문 개혁에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김이석 아시아투데이 논설실장·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

2022-05-23 09:00 김이석 아시아투데이 논설실장·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

[시장경제칼럼] 자유주의 시각의 페미니즘

황수연 전 경성대 교수지난 대선 후보 토론에서 이재명 후보는 윤석열 후보에게 “후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뭐냐?”고 물었다. 이에 윤 후보는 “저는 페미니즘이라는 것은 휴머니즘의 하나라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이 후보는 답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고, 심상정 후보도 윤 후보가 “페미니즘이 휴머니즘의 일부라는 놀라운 말씀을 했다”고 동조했다. 이어서 이 후보는 윤 후보에게 구조적 성차별이 거의 사라졌다는 윤 후보의 언론 인터뷰와 관련하여 “여전히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이어갔다. 토론을 시청하면서 필자는 ‘윤 후보는 자유주의 시각의 페미니즘을 이해하고 있지만, 다른 후보들은 전도(轉倒)된 페미니즘을 옳은 페미니즘으로 받아들이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휴머니즘은 복합적인 개념으로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넓은 개념 안에는 개인의 존엄을 긍정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한다는 측면이 포함되어 있다. 페미니즘은 여성이라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하는 사회 운동이다. 그렇다면 페미니즘이 휴머니즘의 하나라는 점은 당연하고 옳은 이야기다. 그리고 페미니즘이 대상으로 삼는 문제는 여성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문제이지, 여성 집단에 이익을 제공하는 문제가 아니다. 페미니즘을 여성 집단의 문제로 보고 접근하면 개인으로서 여성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과 무관한 중대한 문제가 야기된다. 특히 구조적 성차별의 문제가 해소된 상황에서 그렇다.종종 최초의 영국 페미니스트라 불리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1759-1797)는 자유는 성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페미니즘이 휴머니즘의 일부로 여겨지는 대목이다.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성에 따른 차별을 반대하는 운동이 있었고, 특히 19세기 후기와 20세기 초기 페미니즘은 생명력을 가진 사회 운동이 되었다. 이때의 페미니즘은 성에 따른 차별 없이 남녀 똑같이 개인으로서 자유와 권리를 획득하게 하려는 사회 운동이었다. 이렇게 미국에서 첫 번째 물결의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의 일부였다.미국에서 여자들은 1920년까지 투표할 헌법적 권리를 얻지 못했고 남자들과 동등한 재산 소유권을 갖지 못했다. 그 당시까지 법은 성과 같은 비개인적 특성들에 근거하여 한 집단, 남성들에게 특권을 부여했다. 법에 따른 제도적, 구조적 성차별이 있었다. 그러한 성차별에 대한 개선책은 차별적인 법을 폐지하여 모든 사람이, 성에 따른 차별 없이, 자유와 권리를 누리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유주의 개선책이다. 그러한 첫 번째 페미니즘 물결은 투표할 권리와 같이 여자들에게 새로이 인정된 정치적 권리로 20세기 초에 정점에 도달했고, 계약을 맺을 권리와 재산을 소유할 권리가 여자들에게 부여된 것과 같이 19세기와 20세기의 민권을 강화했다.그런데 미국에서 1960년대 중반 존슨 대통령 시대부터 페미니즘은 과거 성차별에 대한 보상을 위해 집단으로서의 여성들에게 혜택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이것은 남성들이 이용할 수 없는 특권을 여성들에게 줄 것을 주장한다는 점을 의미했다. 법으로 여성들에게 새로운 제도적 특권을 주자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남성들에 대해 제도적 차별이 행해진다.첫 번째 물결의 페미니즘이 역사적으로 남자들에게만 부여되었던 법적 특권을 똑같이 여자들에게도 부여할 정치적 및 시민적 권리를 얻는 데 집중했다면, 페미니즘의 후속판은 법 아래서의 특권을 여자들에게만 줌으로써 소위 과거의 불의를 시정하자는 데 집중했다. 과거에는 법은 남자들에게 이용 가능한 일정 권리들을 여자들에게 거부했다. 그래서 첫 번째 물결의 페미니즘이 제도적 차별을 철폐하는 운동을 했고, 그 결과 남성이건 여성이건 모든 ‘개인’이 똑같이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전도된 페미니즘이 대두된 후에는 한 집단, 남성들에게 이용될 수 없는 일정 특권들을 다른 집단, 여성들에게 보장하려고 했다. 그 결과 새로운 제도적 차별을 만들어 내었다.예를 들어, 전도된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중역이 적으니 기업이 여성들에게 일정 비율의 중역을 할당하도록 법으로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성 중역이 적다는 것은 남녀 개인의 경력 결정과 생애 결정에서의 차이, 생산성의 차이, 인적 자본 생산성의 차이 등 다양한 요인이 상호 작용한 결과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이런 것들을 무시하고 인위적으로 여성 중역 비율을 높이도록 요구하는 것은, 개인으로서의 여성의 권리와는 상관없이, 여성들이라는 집단에 특권과 특혜를 주는 잘못된 결정이다.다른 예로, 주로 여자들이 담당하는 직업들에 대한 임금이 주로 남자들이 담당하는 비교 가능하지만 다른 직업들에 대한 임금과 같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도된 페미니스트들은 이렇게 남녀 두 집단의 결과를 비교한 후 같게 할 것을 주장하는데, 결과를 인위적으로 같게 하는 것은 여성 개인에 대한 권리 보호가 아니라, 여성들이라는 집단에 대한 특혜이고 특권이다. 이렇게 집단 결과가 다른 것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강조하듯이, 다른 행위자들의 결정들에 대응하여 분산된 경제 행위자들이 내린 수백만의 분권화된 결정의 결과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이런 점들을 무시하고 인위적으로 같게 하려고 하는 것은, 개인으로서 여성의 권리와는 상관없이, 여성들이라는 집단에 특권·특혜를 주는 제도적·구조적 성차별이다.남성들에게만 선거권과 재산 상속권이 부여되고 여성들에게는 그런 권리들이 부여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구조적 성차별이다. 그리고 그러한 구조적 성차별은 폐지되어야 한다. 다행스럽게, 오늘날 영국과 미국은 물론이고 우리나라도 그러한 구조적 성차별은 첫 번째 물결의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의 노력 덕분에 거의 사라졌다. 따라서, 역설적이지만, 오늘날 페미니스트들이 할 일이 있다면 여성들에 대한 특혜 · 특권을 폐지하고 여성이나 남성이나 개인으로서 똑같이 권리를 향유하게 하자고 사회 운동을 벌이는 것이다. 전도된 페미니스트들이 그런 일을 할 것 같지 않으므로, 남은 일은 자유와 권리의 침해로부터 개개 여성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페미니즘의 문제가 아니라 치안과 사법(司法)의 문제이다.그런 의미에서 여성가족부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타당하다. 여성의 인권이 침해된다면 인권의 침해를 막고 처벌하는 일은 해당 정부 기관에서 하면 되지, 굳이 여성가족부에서 할 일은 아니다. 여성가족부는 남성들에게 부여되지 않는 혜택을 여성들에게 부여하기 위해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남성과 똑같은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에게만 특별한 혜택을 주기 위해 그 부서가 존재한다면, 그러한 특혜를 주는 것이 옳지 않으므로, 여성가족부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덧붙여서, 할 필요가 없는 일을 하는 정부 부서가 적어진다는 점에서도 여성가족부의 폐지는 바람직하다.황수연 전 경성대 교수

2022-05-16 09:00 황수연 전 경성대 교수

[시장경제칼럼] 신뢰의 생태계와 자생적 질서로 미래 희망을 품다

김영신 계명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대내외 환경의 변화글로벌 주요 국가들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이 엔데믹(풍토병)으로 전환되면서 글로벌 경기가 활발해 지려는 가운데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에너지 및 자원의 정치경제화, 글로벌 공급망의 변화, 미국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 등 대외환경의 변화는 그 어느 때보다 높은 불확실성을 고조시키고 있다.대내적으로 새로운 정부의 출발은 다극화되어가는 우리사회의 난제를 풀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더욱이 디지털 네트워크로 촘촘하게 연결되는 초연결사회(hyper-connected society)로 빠르게 진화되는 상황은 개인과 기업, 그리고 정부의 변화와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우리나라 신뢰의 현주소최근에 발표된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s Survey Wave 7: 2017-2021)에서 우리나라의 ‘일반적 신뢰(Most people can be trusted)’가 32.9%로 나타났다. 일반적 신뢰는 다른 사람을 신뢰하는 인구의 비율을 의미한다. 조사 자료가 있는 OECD 회원국 31개국 평균치인 38.6%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덴마크가 가장 높은 신뢰도 측정치인 73.9%로 1위로 나타났으며, 그리스는 8.4%로 최하위를 기록했다.세계가치관조사는 가치관이 사회와 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실시되는 조사로서 1981년부터 전 세계 사회과학자들의 네트워크로 100여개 국가를 대상으로 약 5년 단위로 시행하고 있다. 세계가치관조사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국가 간 대중들의 일반적인 신뢰도를 비교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이다.신뢰가 왜 중요 한가사회와 국가가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제도가 중요하다. 제도는 규범, 질서, 문화, 가치관, 신뢰 등 다양한 비정형적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 가운데 신뢰(trust)는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한 사회나 국가의 기술수준과 인구 및 자본을 증가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생산요소의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결합을 통한 규모수익의 증가(increasing returns to scale)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무엇보다 한 사회와 국가가 지속되는데 신뢰는 결정적 역할과 기능을 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신뢰는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을 감소시켜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 심지어 신뢰가 있는 상황에서는 협력과 협동을 넘어 경제적 자산을 제공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실제로 신뢰를 통해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 민주주의에서 빈번하게 관찰되는, 다수의 비용으로 만들어진 공공정책이 소수의 이해관계자에게만 그 이익이 집중되는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신뢰가 크게 도움을 줄 수 있다.신뢰의 형성과 상실그렇다면 신뢰는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가? 무엇보다도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행동을 존중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온전하게 감당하는 것이 신뢰 형성에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약속한 바를 제대로 이행하면 거래의 위험과 불확실성은 극소화되고 예측가능성은 극대화 될 것이다. 개인의 선택과 행동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다하는 것이 공동체의 규범으로 정착될 때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공동체의 신뢰가 형성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반면 신뢰의 상실은 급속히 진행될 수 있다. 특히 정치인들의 말 바꾸기와 책임지지 않는 언행은 사회적 파급효과가 빠르고 크다. 감염증처럼 개인과 기업에게 쉽사리 전염될 수 있다. 더욱이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의 만연은 사회적 규범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기에 경제활동에도 미치는 해악은 크다고 볼 수 있다.따라서 신뢰의 상실로 공동체는 많은 거래비용을 야기하여 공동체를 유지하기 어렵게도 만들 수 있다. 바다에서 적조현상이 심각해지면 해양생물이 소멸하는 하는 것처럼 신뢰의 상실에 따른 인간 생태계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신뢰를 통한 자생적 질서는 미래 희망해양생태계에서는 많은 생물들이 공존하기 위해 주요 물질을 순환시키며 공유하고 있다. 30억년 이상의 해양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는 룰(rule)의 핵심 중 하나는 생태계 내 순환을 방해하는 생물은 도태된다는 자생적 질서다. 근년에 이념, 나이, 성별 등으로 다극화 되어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신뢰의 형성과 강화는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다극화된 이익집단현상이 만연해 가는 사회가 통합되기 위해서는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또한 개인 선택의 자유와 책임이 증진될 수 있을 때 경제는 활성화되고 공동체는 번영할 것이다. 게다가 네트워크의 확대를 통한 공유경제와 메타버스(metaverse)로 만들어지는 초연결사회에서는 신뢰를 통한 자생적 질서의 확보와 강화는 미래 희망이다.김영신 계명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

2022-05-09 09:00 김영신 계명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

[시장경제칼럼] 한국의 무상교육, 바우처 방식으로 바꾸자

김정호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사립이 공립보다 더 낫다2022년 사립초등학교의 경쟁률이 11.7대 1을 기록했다. 무료인 공립초등학교를 마다하고 매월 100만원 가까이 부담하는 하겠다는 학부모들이 그렇게 많다는 말이다. 코로나 대응에서도, 영어교육에서도, 컴퓨터 교육에서도 사립초등학교는 공립초등을 압도한다.돈을 많이 쓰니까 당연한 것 아닌가 하는 반문이 나올 법하다. 틀렸다. 1인당 교육비도 사립이 공립보다 더 싸다. 공립초등학교의 경우 연간 학생1인당 교육비는 1092만원인데, 사립은1019만원이다. 사립이 공립보다 73만원을 덜 쓴다. 그런데도 공립은 싸고 사립이 비싸다고들 믿는 이유는 학부모 부담금의 차이 때문이다.공립의 학부모부담은 거의 0%인 반면 사립은 학부모가 80% 이상을 부담한다. 공립의 비용은 모두 납세자들 부담이어서 누구도 비용이라고 느끼지 못하지만 사립은 부담을 학부모가 직접 느끼기 때문에 오해가 생겨났다. 결론적으로 교육내용에서도 비용-효율 면에서도 사립이 공립보다 낫다.이런 사정은 유치원에서도, 고등학교에서도 예외 없이 나타난다. 자립형 사립고가 일반고등학교보다 더 교육을 잘한다는 데에는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그러면서 비용도 더 저렴하다. 전국 단위 자립형 사립고의 1인당 학비는 1192만원, 공립고등학교 평균 1396만원보다 204만원이나 더 낮다. (일반고는 대부분 기숙사가 없지만 전국단위자사고는 대부분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한다. 표 속의 1192만원은 전국단위자사고 학비에서 기숙사비 400만원을 제한 금액이다). 유치원도 사립이 공립보다 교육내용이 더 좋다. 비용은 공립의 절반 수준이다.교육과 비용 모두에서 사립이 공립보다 나은 이유는 절박함에 있다. 사립은 학부모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예산 확보가 안된다. 자칫하면 학교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사립은 학부모와 학생의 선택을 받기 위해 절박할 수 밖에 없다. 반면 공립은 학생이 자동 배정되는 데다가 예산 또한 성과와 무관하게 학교로 직접 지원되기 때문에 절박할 이유가 없다. 예산을 절약할 이유도, 학생의 선택을 받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다. 심화되는 교육의 획일화교육 재정이 증가하면서 사립학교들의 정부 재정 의존이 심화되었고, 교육 활동도 사립의 특성을 잃고 공립화되어 왔다. 중학교는 평준화와 무상화를 거치면서 사립들이 사립의 특성을 잃고 공립화되었다. 고등학교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몇 안되는 자립형 사립고의 경우 어느 정도 사립의 장점을 발휘해 왔지만 좌파 교육감들은 그 마저도 폐지하려고 한다.자사고들이 일반고로 바뀐다면 학부모 돈이 아니라 정부 돈을 받게 되고 나름대로 독창성을 유지하던 교육내용은 공립들과 똑같아 지게 될 것이다.재정 지원의 증가가 공립화를 통한 획일화로 치닫는다는 사실은 유치원 교육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2011년까지 사립유치원은 정부 돈을 거의 받지 않고 학부모의 학비에만 의존했다. 교육 내용에 대한 통제도 거의 없었다. 그 덕분에 사립유치원들은 저마다 매우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해왔다.2012년 유치원 무상교육이 시작되었고 학부모들에게 매월 29만원의 바우처가 지급되었다. 그와 함께 획일화 작업도 시작되었다. 교육의 질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들여온 누리과정은 다양하던 유치원의 교육을 획일화로 몰고 갔다. 모든 사립유치원을 실질적으로 공립화하는 작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교육 재정은 계속 늘게 되어 있다. 지방교육재정이 내국세 총액의 20.79%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내국세가 줄어들지 않는 한 교육재정은 늘어 난다. 학생수는 급격히 줄어드는 데 말이다. 그 자체도 문제이지만 교육의 획일화는 더욱 큰 문제다. 재정이 늘수록 교육이 좋아져야 하고, 그러자면 교육내용이 풍부해 져야 한다.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학교에 대한 교육 재정 지원이 늘수록 교육 내용은 획일화로 치달아 왔다. 학교와 교사들은 자발성을 잃고 공무원들의 지시에 복종하는 데에 더욱 익숙해져 간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바우처를 통한 학부모 선택권 확대와 더불어 교육 내용의 획기적 자율화가 필요하다.바우처로 공립을 사립화 하자바우처 제도는 두가지 축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첫째 축은 재정인데 방법은 간단하다. 전체 교육 예산을 유아, 초등, 중등교육별로 배분한 후, 학생수로 나눠서 각자에게 바우처를 지급한다. 1인당 금액을 학생 수에 따라 정부가 직접 매월 학교에 지급해 줘도 마찬가지다. 공사립 모두 학생 1인당 금액은 같아야 한다. 공립학교의 학생 1인당 교육비가 사립학교보다 이미 더 많기 때문에 재정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두번째 차원은 학생의 학교 선택권이다. 학교가 학생의 선택을 받기 위해 절박하게 노력하도록 만드는 것이 이 제도의 핵심이다. 그러자면 학군제에 의한 학생 강제 배정 방식을 폐기해야 한다. 사립이든 공립이든 학생이 관내의 어떤 학교라도 선택할 수 있게 허용해야 한다. 학교 서열화가 걱정된다면 스웨덴에서처럼 선지원 후추첨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세번째 차원은 학교의 자유와 책임이다. 학생이 바우처로 공사립 구분 없이 선택을 하듯이 학교들이 공사립 구분 없이 자유롭게 교육 내용을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예산 집행에서도 자유가 허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유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원을 채우지 못한 학교는 적자가 나겠지만 스스로 책임지게 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는 폐교도 감수해야 한다. 공사립 가리지 말고 이렇게 해야 늘어나는 교육 재정이 교육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 처럼 놔두면 돈은 돈 대로 쓰고 교육은 더욱 획일화의 나락으로 빠져들 것이다.수십 년에 걸친 교육 개혁, 공무원과 시민단체, 교사에 의한 교육 개혁은 대부분 실패했다. 이제 학부모와 학생이 주도하는 개혁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이 스쿨 바우처다. 학생이 오지 않으면 공립학교도 문을 닫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바우처 제도는 지금까지의 어떤 개혁보다 강력한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학생과 학부모가 주도하는 바우처 제도로 대한민국의 교육이 환골탈태하길 바란다.김정호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2022-05-02 10:37 김정호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시장경제칼럼] 환경변화에 부응하는 정부조직 개혁방향

이영환 계명대 교수우리나라는 세계 모두가 부러워하는 초고속 성장을 이룩하였다. 이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고, 이러한 점이 다른 나라보다 단기적으로 앞설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나라는 발전하였지만, 국민의식이 성숙하고 국민이 그만큼 성장하였는지는 의문이다. 성장을 위해 뒤돌아보지 않는 나라, 발전을 위해 일정한 희생을 강요받은 국민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라는 이제 국민을 위해 뒤돌아보는 계기 마련이 필요하다. 먼저 나라가 발전하는 동안 등한시 했던 환경변화에 대한 이해가 요구된다. 공정과 상식을 모토로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는 무엇을 변화시키고,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환경변화 원인 중 공통된 것은, 현대사회가 세계화됨에 따라 국가 간 경계가 모호해졌다는 점이다. 그만큼 국민과 정부는 전 세계 모든 정보를 실시간 습득이 가능하며, 해당 정보의 활용은 성장과 성숙의 발판이 된다. 그러나 이념차이로 상호 간의 양극화와 부조화가 생겨난다.정부주도의 국가계획 수립과 정책시행은 민주화 이전의 정부에서 보여 왔던 행태이다. 현대사회의 국민은 자발적·주도적으로 국가정책과 지역현안의 수요를 발견하고, 올바른 국가·지자체를 위한 수호자이자 감시자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만큼 의식이 성장하였다.이러한 의식의 향상은 일방적인 국가운영을 저지하고, 성장과 분배, 공정과 상식 등을 고려하여 국가를 운영하고 있는지 감시하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의식향상에 걸맞게 정부는 국민주도의 정책을 지원하고 중개해 주는 맞춤형 정책제공자로의 변화가 요구된다. 더불어 국민 의식 향상에 따른 국민 참여의 장이 현실성에 맞게 마련될 필요가 있다.지금은 스타트랙(1979), 백투더퓨처(1985), AI(2001)와 같이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기술들을 실제로도 마주하고 있다. 과학기술발전은 무한의 도전체계를 형성한다. 정보화·디지털의 발달은 시간과 공간을 무너트리고 있다. 따라서 기존세대는 적응과 변화가, 미래세대는 창의적인 도전이 요구된다. 과학기술발전으로 일자리 전망에도 다양한 걱정들이 존재한다. 현재 근로자들은 머지않은 장래에 자신의 일자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걱정한다.학부모들과 자녀들은 어떤 직업이 장래 유망할지 궁금해 한다. 이처럼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일자리 문제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기 위한 각계각층의 고민과 방향성 제시가 요구되는 시기로 정부의 역할조정에 변화가 요구된다. 급진적이고 무한에 가까운 변화에는 정부만 주된 임무를 수행한다고 해결될 일들이 아니다. 기존의 정부주도의 과학기술발전 방향에서 민간지원 중심의 과학기술 발전으로 선회하고, 국제적으로 과학기술 분야 경쟁체계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중재자(coordinator), 보조(assistant)의 역할이 강조되어야 한다.그리고 규제방법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야 한다. 정부보다 앞선 기업이나 민간에게 ‘무엇을 해야 한다’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한다’ 중에서 어느 쪽이 민간의 발전의지를 꺾지 않는 것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당연히 공익을 위하여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네거티브규제로 바꾸어야 한다.최근 각계각층에서 불평등에 대한 여러 대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만족스러운 대안이 제시되지 못하는 동안, 불평등은 더 다양화되고 심화되고 있다. 우리의 경제지표는 세계 10권 내외이고, 경제적 신용평가도 높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자살률은 세계 최고수준이며 혼인율과 주관적 삶의 질은 세계 30~40권밖에 머물고 있다. 특히, 정부와 정치의 부조화는 국가정책의 효과를 불완전하게 하며, 혼란의 원인이 되고, 국가와 국민의 신뢰를 하락시키고 있다.이처럼 사회적 불평등은 다양하게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선제적으로 정부와 정치의 부조화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는 위기극복 리더십을 발휘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전문성과 책임성이 강화된 정부를 운영해야 한다. 여소야대의 정치권에서는 이념에 치우친 정부와의 대립이 아닌 세밀한 감시와 명확한 지원역할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이상과 같은 환경변화를 가져오는 공통적인 요인들과 더불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에서 다방면으로 급진적인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특히, 코로나 19로 인해 4차 산업혁명이 앞당겨지면서 신기술의 등장과 온라인으로 세상을 연결하는 시대가 다양한 분야에서 실현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로 ‘디지털 소외계층’이 증가하는 사회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지만, 변화는 계속해서 진행되어 국민의 적응력도 점차 높아지는 추세이다.문제는 이러한 변화에 익숙해져 가는 국민과 달리 정부는 어떠한가? 정부조직은 보수적이고 위계적인 구조적 특성으로 인해 급격한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어려운 형태이다. 또한 정부부처 간, 중앙과 지자체 간 이기주의와 권력다툼으로 인해 개별적·소극적인 변화에 치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환경이 변화하면 내부의 조직구조·운영·문화 등도 변화하기 나름이다. 더욱이 급변하는 환경변화 속에서 기존 정부조직의 운영방식과 지침, 관습은 그대로 두고 새로운 정책·제도를 혁신이란 이름으로 껍데기만 바꾸는 방식은 절대 금해야 한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조직은 결국 도태되기 마련이다. 때마침 새롭게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의 조직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변화가 아닌 생존하기 위한 개혁이 필요하다.이영환 계명대 교수

2022-04-25 17:52 이영환 계명대 교수

[시장경제칼럼] 창조경제? 창업경제! 창업시장

이기환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창조경제라는 화두가 이 사회에 남긴 것은 무엇일까? 18대 정권에서 창조경제의 핵심거점으로 17개의 창조경제혁신센터(창경센터)가 전국에 설립되었다. 창경센터 설립은 대기업의 노하우를 창업기업에 전수하고, 창업기업의 혁신적 아이디어를 대기업에서 활용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였다. 센터 운영을 위해 각 창경센터에 전담파트너 대기업이 배정되어 기부금을 납부하고, 또 정부가 재정지원을 하였다. 2020년 9월에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 발표에 따르면, 대기업 지원은 2015년 327억에서 2019년 52억원으로 전체 대기업 기부금이 6분의 1로 줄었다. 놀랍게도 중기부 지원자금은 2015년 295억에서 2021년 363억원으로 지원액의 감소는 없었다. 일부 대기업 기부금의 감소(또는 중단)로 몇몇 창경센터는 운영이 쉽지 않을 것이다.우연한 기회에 한 창경센터장을 만나 “창조경제라는 기관의 이름이 부담스럽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처음엔 창조경제라는 말이 국민들에게 와 닿지 않았지요. 그래서 여러 전문가들이 창조경제가 무엇인지 고민을 했죠. 우리가 찾은 답은 창조경제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창업을 돕고, 후속투자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창업경제’이지요.”정치적 부담감을 물은 것이었는데, 창조경제에 대한 현업에서 생각하는 답을 들은 것이다. 애초부터 창조경제는 정치적 문제가 아니었는지 모른다. ‘새로운 상품을 만드는 기업을 창조하는 경제’는 정치와 정권을 넘어서 일관적으로 이어져 온 경제 문제인 것이다.2021년 4월 중기부는 2000년대 초반 불었던 ‘제1벤처붐’의 지표를 2배 이상 경신한 ‘제2벤처붐’이 도래하였다고 홍보하였다. 2000년 신설법인이 약 6만개이었으나 2020년도 12만개를 넘어섰으며, 신규벤처투자도 2000년 2조원를 달성하였다가 이후 정체기를 거쳐 2020년에 다시 4조원을 달성하였다.중기부 창업예산이 2016년도 3,766억원, 2018년 6,911억원, 그리고 2020년 8,492억원으로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고, 중기부는 창업경제의 성장이 ‘정부가 적극적 창업 활성화 의지를 보인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 양적인 성장은 환영할 일이지만, 한걸음 물러서서 이러한 성장이 지속가능한지 그리고 효율적 성장인지에 대해서는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정부주도로 각 지역에 매칭되었던 대기업이 창경센터에 기부금을 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답은 질문 자체에 있다. ‘투자금’이 아니라 ‘기부금’이기 때문이다. 기업은 미래이윤 위해 필요한 기술과 조직에 투자한다. 기업은 충분한 투자수익이 기대된다면, 외부의 강제 없이도 자발적으로 투자할 것이다.창경센터가 대기업을 넘어 모든 기업들에게 투가가치가 있는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수요가 반영된 의사결정구조를 가져야 할 것이다. 앞에 언급한 창경센터장은 “창경센터도 기업들의 지분투자를 받고, 결국 민간재단법인으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정부사업만을 운영하는 관리조직이 되면 안됩니다“라고 말한다. 정부가 시작했더라도 지속가능 하려면 결국 민간시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중기부에서 발표한 2022년도 창원지원사업 공고를 보면, 중소기업지원사업이 94개 기관(14개부처, 80개 지자체)에서 378개 사업(중앙부처 100개, 지자체 278개)을 진행한다고 한다. 예산규모는 3조 6,668억원이다. 사업부처가 많고, 수행하는 사업이 많으면 유사중복사업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한번 만들어진 공공조직이 없어지기 어렵듯이, 부처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재정지출사업도 통폐합하기는 쉽지 않다. 때문에 예산의 양적인 성장은 두 걸음 더 물러서서 꼼꼼히 바라보아야 한다.창업시장에서 민간투자/창업지원기관들의 성장이 가시화되고 있다. 대학 창업동아리에서 성장한 엑셀러레이터들이 투자조합을 결성하여 seed 투자를 하고 있으며, 프라이머 등 성공한 엑셀러레이터들도 시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Maru180/360, D.camp, 프론트원 등 창업기업에 공간과 네트워킹, 투자연계를 지원하는 민간기관들과, 공유오피스 사업자인 위워크, 패스트파이브가 등장하여 창업자들의 진입장벽을 낮춰주고 있다. 창업기업이 창업시장에서 창업에 필요한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고, 투자받을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더 많아진다.창업시장의 양적성장이 정부사업의 증가를 위한 근거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시장활성화를 위한 공공인프라 투자사업이 끝났다면, 민간의 투자 인센티브를 살려 시장이 성장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창업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재무정보도 없는 기업에 불확실한 미래 사업성을 예측하고 투자하는 것이다.정부 창업지원 사업비를 과도하게 늘려, 사업비 수혜기업 숫자만을 늘리는 것은 리스크 증가로 인한 비효율성을 키우는 것이다. 정부주도의 양적성장보다도 민간의 눈으로 옥석을 골라내는 창업시장을 활성화하는 것이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더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이기환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2022-04-18 08:33 이기환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