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칼럼] 민영화 ‘가짜뉴스’에 ‘미시정치’를 생각한다

김이석 아시아투데이 논설실장·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
입력일 2022-05-23 09:00 수정일 2022-05-23 09:00 발행일 2022-05-22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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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치에서 ‘선동’이 점차 일상화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는 한·미 FTA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지금도 아무탈 없이 잘 먹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가짜뉴스를 퍼트리고 여기에 자극받은 대규모 시위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른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도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 갑자기 “전기·공항의 민영화 반대”를 외치고 나섰다. 국민의힘은 민영화의 ‘민’자도 꺼내지도 않았다는데 말이다.

사실 공기업에 내재된 결함은 ‘철밥통’이란 말 속에 응축돼 있다. 공기업이 ‘철밥통’인 것은 공무원보다 급여는 좋으면서 일반 기업처럼 퇴출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이다. 최근의 보도에 따르면, 공기업 연봉은 대기업보다 높지만 절반 정도의 공기업들이 적자상태에 빠져있다고 한다. 공기업을 파산시켜서는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전기나 수도 등을 공급받을 수 없게 되므로 공기업 적자는 결국 세금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

당장 문명생활을 가능케 하는 핵심인 전기 에너지를 공급하는 한국전력의 적자도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기요금은 생산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인 데다가 한전 내부에 쌓인 경영문제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금이 관련되는 만큼 ‘집단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여야 정치권이 누적되는 공기업 적자와 철밥통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갈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그 방안을 고심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공기업 개혁을 위한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은 채 더불어민주당이 느닷없이 정부와 여당이 추진할 것을 천명하지도 않은 ‘민영화 반대’를 외쳤다. 그 속내는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공기업 근로자들에게 철밥통을 잃게 된다는 공포감을 주고, 총파업으로 사회를 혼란시킬 힘을 가진 공기업 노조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소비자들에게는 ‘민영화’로 비싼 가격을 물어야한다는 두려움을 퍼트려 표를 얻겠다는 계산이다.

소비자-납세자들이 실제로 무는 비용은 공기업에 직접 지불하는 가격에 더해 공기업에 보전되는 세금을 합한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납세자들이 과연 이 전체 비용을 인식해서 더 비싼 돈을 내게 된다는 ‘선동’에 넘어가지 않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자기가 직접 무는 요금은 명확한데 자신이 내는 세금 가운데 얼마가 여기로 들어가는지는 불분명하기에 ‘비싼’ 비용을 물게 된다는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사실 ‘민영화’도 공기업 개혁 방안들 가운데 하나다. 세금으로 손실이 보전될 길을 막아 서비스를 잘 제공하지 못하거나 방만한 경영을 하면 퇴출되게 하는 근본적 해결책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민영화는 다른 방안들과 구별된다. 이런 ‘민영화’는 영국에서 1970년대에 추구됐는데 흥미롭게도 1970년대 초에 시도됐다가 실패했지만 1970년대 말 관련 당사자들의 이해관계를 고려하면서 추진했더니 큰 성과를 내었고 그 결과 전 세계에 수출됐다.

공영주택은 영국의 민영화 성공 사례 가운데 하나다. 이 사례는 가짜 ‘공포 마케팅’에 대해 또 다른 방식의 이해관계자들의 이해관계를 잘 헤아리는 《미시정치》로 맞서면 성공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1970년대 영국의 공공부문 소유 주택 거주자는 전체 세입자의 35%로 민간주택 세입자들보다 평균 소득이 더 높았다. 그럼에도 정부가 공공주택 세입자들에게 임대료 보조금을 주다보니 정부의 재정 적자는 불어나기만 했다. 그래서 공공주택을 팔아서 소유자를 정해주는 ‘민영화’를 하려고 시도했을 때는 ‘주거의 공공성’을 내세운 주장과 세입자들의 반대에 밀려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정부가 공공부문 소유의 임대주택을 임대주택 회사들이 아니라 세입자들에게 시세보다 저렴하게 판매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세입자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민영화 반대자들이 강력한 정치적 지지자들로 돌변했다.

이처럼 민영화뿐만 아니라 모든 공공부문 개혁은 이로부터 혜택을 보고 있던 이들의 반발을 가져올 수 있고 이를 이용하려는 정치세력이 선동을 할 기회로 삼는다. 그래서 공공부문 개혁을 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이런 선동을 미리 예상하고 어떤 《미시정치》로 대응해야 한다. 다시 말해 어떤 방식을 동원해서 반대자들을 설득해낼 수 있는지 세심한 전략을 마련해서 추진되어야 한다.

병을 아는 ‘인지’ 능력과 병을 치료해내는 능력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정치권이 공공부문의 병을 정확히 인식하고 이를 치유할 방법을 모색할 때 그 국가와 국민은 번영한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이 ‘허깨비’ 민영화를 만들어 공격하는 것을 보면 이런 기대는 정치현실과 너무나 른 허망한 것이다.

그러나 너무 절망하고 아예 공공부문 개혁의 의지를 꺾을 필요는 없다. 영국에서 발휘되어 효과가 입증된 《미시정치》의 지혜를 배우고 십분 활용하면, 정치적 반발은커녕 오히려 정치적 지지를 받으면서 공공부문 개혁에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이석 아시아투데이 논설실장·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