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칼럼] 가상화폐, 자생적 사기

박종운 자유민주시민연합 사무총장
입력일 2022-06-09 09:45 수정일 2022-06-09 09:50 발행일 2022-06-09 99면
인쇄아이콘

최근 5월 초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만들었던 K-코인 루나(LUNA)가 일주일 새 99% 폭락하고 그것의 달러연동 스테이블 코인인 테라(Terra)도 마찬가지로 폭락하면서 ‘가상화폐’의 실체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사실 맨처음 가상화폐가 등장했던 것은 2008년 10월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명을 쓰는 프로그래머가 개발한 ‘인플레이션 없는’ 화폐를 목적으로 한 비트코인(bit coin)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후 비트코인의 이러저러한 한계를 해결하고자 하는 이더리움, 이더리움 클래식, 리플, 라이트코인, 에이코인, 대시, 모네로, 제트캐시, 퀀텀 등 다양한 대안적(alternative) 코인들, 즉 알트코인(alt coin)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K-코인 루나도 그러한 대안적 코인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이 가상화폐 현상이다.

그런데 이 가상화폐들은 그것의 구현에 적용된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관심을 제외한다면 화폐인가의 관심만 남는데, 그것들이 과연 사이버 공간에서나마 진정으로 화폐일 수 있는가? 아니면 닥터둠으로 유명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등 많은 전문가들의 말대로 일종의 폰지사기에 불과한가? 이에 대한 해답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경제사적으로 화폐의 기원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인간은 필요한 것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해서 얻거나 타인에게서 얻었다. 타인에게서 얻는 방법에는 대체로 약탈, 교환, 구걸(혹은 자선)의 세 유형이 있으나, 지속가능한 방식인 타인과의 교환이 가장 ‘바람직’했다. 교환은 본능이라기보다는 이 세 유형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 것에 불과했는데, 결과적으로 그러한 선택을 한 사람들이나 종족들은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음이 역사적으로 입증되었다. 이때 은(銀)과 금(金) 같은 귀금속이 여러 좋은 것들(goods, 재화)과의 교환에 사용되었다.

특히 당시 인류의 만신론적(萬神論的) 세계관 속에서 각각의 도시에서 숭앙하는 신들에게 봉헌하기 위하여 곡식 생활필수품 등의 좋은 것들을 내어주고 그 은과 금을 구하는 과정에서 은과 금은 모두가 원하는 ‘좋은 것’이 되었다. 부자들은 은과 금으로 장식까지 하면서 신과 같은(?) 위세를 과시할 수 있었기에 은과 금을 구하기도 했다. 더구나 은과 금 같은 귀금속은 내구성도 좋고 분할성도 좋은 ‘좋은 것(goods)’임이 확인되었다. 은과 금이 이런 과정을 거쳐 화폐로 정착되었다.

이때 봉헌을 받은 신전의 사제들이 은과 금을 대여해주면서 이자까지 붙여서 받았던 역사적 사실도 있다. 마치 현대의 은행처럼 말이다. 물론 이웃 국가들에 의해서 신전이 약탈당하는 경우에도 뱅크런은 없었다. 그 은과 금은 각각의 사람들이 신전에 대여해준 것이 아니라 봉헌했던 것이었고, 따라서 자신이 맡겨놓은 은과 금을 찾아가려는 행렬이 쇄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웃 국가들의 침략은 학살과 노략질 같은 비극을 동반하였기 때문에 그럴 여유도 없었겠지만….

처음에는 은과 금도 덩어리 형태로 교환되었다. 그러나 그 교환 과정에서, 은과 금에 불순물을 섞는 형태의 자생적 사기 혹은 거래 때마다 번번이 무게를 재야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 때문에 로마의 모네타(Moneta) 신전에서는 인증서 도장을 만들어 그 금속 덩어리에 표기했다. 모네타 신전에서 만든 인증서 도장이 찍힌 물건이 우리가 화폐(Money)라고 부르는 주화(鑄貨, Coin)이다.

화폐를 만드는 곳인 주조소(鑄造所)의 영어명인 Mint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최초의 주화는 지금의 터키 지방인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 때 만들어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 후 그리스에서도 만들어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우리가 쓰는 Money라는 이름이 알려주듯이 문화적 전승이란 면에서는 로마의 이 주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화폐의 기원만 보아도 비트코인 등의 가상화폐가 얼마나 엉터리없는 사기극인지를 대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사람들이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비트(bit, binary digit, 예컨대 001000100001)를 구하기 위해서 안달을 하거나 그 비트를 단위로 거래를 한 적이 없었으며, 나아가 그 비트의 인증서(코인)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비트들로 윈도우즈나 마이크로소프트, ‘아래아 한글’ 같은 유용한 프로그래밍을 이용하지만, (황금 조각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조각가들이 금을 구매해야 하지만) 프로그램 개발자들이 그것을 하기 위하여 비트들을 구입하지는 않는다. 당연히 그 비트들의 덩어리를 인증할 도장인 코인의 필요성이 없다. 그러므로 자칭 가상화폐 개발자들이 비트코인이란 이름을 붙인 것 자체가 사람들의 혼동을 유도한 사기의 시작이다.

그렇다면 가상화폐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가 쓰고 있는 역시 그 자체로 가치가 없는 종이화폐와는 비견될 수 있지 않을까?

종이화폐는 10세기 경 송나라에서 교자(交子) 회자(會子), 13세기 경 원나라에서 ‘지원보초’도 사용된 적도 있지만, 역시 문화적 전승 및 연속성에 비추어보면 지금의 종이화폐 현상은 1630년대 이후의 잉글랜드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1630년대 잉글랜드에서는 찰스 1세(Charles I)에 의해 전쟁비용 마련을 위해 런던탑에 보관되었던 상인들의 금이 강제로 ‘대출’되는 상황이 벌어진 바 있었는데, 이에 원 소유주들인 상인들이 항의하고 금을 런던탑에의 보관이 아닌 자가보관을 하거나 금세공인들에게 맡겨놓기 시작했다.

이때 금세공인들(goldsmiths)은 상인들이 자가보관한 금을 이자를 주고 대출받거나 혹은 자신에게 직접 맡겨진 것을 바탕으로, 거래편의를 위하여 금으로 ‘즉시’ 교환해준다는 약속증서(promissory notes)를 만들어 발행하게 되었다. 이 금세공인들이 잉글랜드에서 은행(bank)으로 발전하였고, 이들이 발행했던 약속증서는 은행권(bank note)으로 정착되었던 것이다. 1688년 명예혁명으로 브리튼연합왕국에서 개인들의 소유권이 평민들 수준에서까지 완전히 정착되자 은행권을 통한 거래는 더욱 활성화되었다.

1694년 주식회사 잉글랜드은행(Bank of England)이 탄생되었고, 이 잉글랜드 은행은 혁명 정부에 필요한 돈을 공급해주는 대신 국고수납업무를 맡았다. 잉글랜드 은행은 1946년 노동당에 의해 국유화되기까지 민간은행이었지만, 국세수납 업무를 맡음으로써 중앙은행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많은 금세공인 은행들이 발행했던 은행권들보다 잉글랜드은행이 발행한 은행권을 필요로 할 이유가 생겼고, 그것이 압도적인 큰 권위를 갖게 되었다.

다른 나라들도 이를 본따서 중앙은행을 설립하게 되는데, 1918년 만들어진 미연방의 연방준비제도 및 연방준비은행도 마찬가지로 민간은행이지만 중앙은행이 되었다. 이 은행들이 발행했던 은행권들은 한결같이 지폐에 상응하는 금(金)의 지급준비(reserve)를 필수요건으로 하였고, 보여주는 ‘즉시’ 현물인 금으로 바꿀 수 있었기에 신용을 얻었다.

금세공인들의 지급준비(reserve) 이상의 ‘자생적인’ 은행권 초과발행도 인플레를 불러왔지만, 중앙은행들의 지급준비(reserve) 이상의 ‘권력형’ 은행권 초과발행도 인플레를 불러왔다. 특히 세금의 징수와 각종 정부활동에 필요한 경비 지출과 관련하여 지배력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었던 특정 은행권, 즉 중앙은행권이 만들어낸 인플레는 심각한 결과를 낳았다. 결국 중앙은행도 은행권과 금(金)의 ‘즉시’ 교환을 계속 유지할 수 없었다.

1차 세계대전과 그 후의 막대한 전비 지출은 물론 막대한 재건비용, 복지비용 등을 위해 중앙은행권이 남발된 바 1930년대부터 잉글랜드은행, 미국의 연방준비은행 등이 차례대로 금으로의 교환 중지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1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피해 금이 모였던 미연방의 경우, 1971년까지 국제결제에서는 금으로의 교환을 할 수 있었고, 그래서 달러가 2차세계대전을 계기로 ‘세계의 기축 통화(基軸通貨)’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금으로의 교환중지에도 불구하고 세금의 징수와 각종 정부활동에 필요한 경비 지출의 사용 때문에 사람들은 각국의 중앙은행의 은행권을 계속 필요로 하였기에, 그것들은 계속 나름의 권위를 가진 채 통용될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의 막대한 전비 지출, 그 후의 막대한 재건비용, 복지비용, 또 1950년 한국전쟁, 1964년 미국의 월남전 참여로 인한 막대한 전비지출 등으로 비슷한 상황이 재연되었다. 여기에 1970년대 석유 무기화정책 때문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플레이션 위에 고유가(高油價) 고물가(高物價)까지 가중되자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생겨나게 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동화 이야기에서 제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열심히 뛰어야 하고 다른 곳에 가기 위해서는 두 배를 빨리 뛰어야 하는 경우처럼, 인플레는 더 열심히 뛰어야 따라잡을 수 있는데, 고유가 고물가까지 이겨야 하니 아예 생산을 포기하는 것이 낫게 된 것이다. 결국 인플레 속의 성장률 감소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중앙은행들, 그리고 정부들의 ‘권력형’ 인플레 성향을 막기 위해서 그 발행량 한정을 전면에 내걸었다는 점이 비트코인이 격하게 환영을 받았던(?) 요소였다. 그래서 인플레 방지 약속이 약간의 매력 요소로 들릴 수는 있으나, 확실하게 짚어야 할 것은 비트코인 등이 애초부터 은 및 금과의 교환을 전제로 하지도 않았고 그런 지급준비(reserve)도 갖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비트코인이 전자화폐가 될 수 있으려면 ‘무엇으로 바꾸어주겠다는 약속이 있는 전자증서’여야 하는데, 그 약속이 없는 것이다. 출발점부터 종이화폐 은행권의 ‘약속’에 미치지 못한 허무한 것이었다. 그래서 비트코인 등은 종이화폐를 대신할 전자화폐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비트코인 등이 민간차원에서 화폐를 참칭(僭稱)한다는 점에서 그 현상은 자생적 사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트코인이나 각종 알트 코인들은 현실의 달러나 원화 등이 들어와야 가격이 올라가고 먼저 들어왔던 사람들이 팔고 돈을 벌고 나간다는 점에서 뒷 사람 돈으로 앞 사람의 원금과 이자를 갚아나갔던 폰지 사기의 일종이기는 하나, 그래도 무엇을 주겠다는 약속이 없었기에 다행히(?) 루나 테라의 폭락처럼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이 원리에서 보면 루나 테라 폭락사태를 두고 더 심하게 약속도 없고 지급준비도 없는 이더리움을 만든 부테린이 권도형에게 당장 폰지사기를 멈추라고 일갈한 것은 코미디에 가깝다)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의 K-루나나 테라의 경우에는 야심차게 일종의 ‘약속’을 했었다. 스테이블 코인인 테라를 발행하여 그것을 1달러와 등가가 유지되도록 하겠다고 한 것이었다. 이 경우에는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테라를 1달러와 등가가 되도록 유지한다고 하면 테라가 달러 자체의 인플레에 연동된다는 점에서 그 약속으로 인하여 비트코인 류가 내걸었던 명분, 즉 인플레 제거 명분이 증발된 것이다. 사람들이 달러 인플레를 우려하여 비트코인 류를 구매하는 것일 텐데 달러와 등가를 유지하면 굳이 비트코인 류를 구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기존의 종이화폐도 전자화폐 못지않게 사이버공간에서 스마트폰 컴퓨터 등을 활용하여 이체(移替)거래가 용이하다는 점도 범죄 탈세 불법송금 등의 목적이 아닌 한 비트코인 류를 구매할 이유가 없다는 또 다른 이유다.

둘째, 테라의 안정성을 위해 K-루나와 연동시킨다고 했지만, K-루나가 달러와의 등가성을 보장할 수 있는 어떠한 인과관계적 연결고리도 없는 것이다. 테라의 달러와의 등가성은 오직 달러로 지급준비(reserve)를 유지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폭락 사태를 막으려면 테라 구매자들에게 달러를 즉시 교환해주면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했다. (루나 테라 등은 싸이월드 등의 도토리, 네이버나 각 금융기관 백화점 등의 포인트 제도와도 다르다. 그 경우에는 현실에서 통용되는 화폐와의 교환이 명시적이었고, 지급준비도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애시당초 치유할 수 없었던 일이다. 권도형 대표는 프로그래밍에는 밝았을지 모르지만, 화폐의 기원에 대해서도 종이화폐가 힘을 가질 수 있는 근거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일대 사기극의 주연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루나 테라 폭락 사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상화폐 사기극에 참여하거나 대안화폐인 양 미련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심지어는 경제학계의 권위자들마저도 대안화폐로 여기는 그런 경우가 있다. 그러나 화폐의 본질이, 경제학자 미제스(Ludwig von Mises)의 말대로, 종이화폐도 어제 또 그제 등으로 원점회귀를 해보면 금속화폐였었고, 금속화폐도 그것이 화폐로 되는 과정도 이런 저런 이유에서 애초에 사람들이 좋은 것(goods)으로 여겼던 것이었음을 상기한다면, ‘자생적 사기극’에 불과한 가상화폐 열풍에 더 이상 현혹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박종운 자유민주시민연합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