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칼럼] 석유의 반격, 고유가 진단과 전망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팀 김태환 연구위원 기자
입력일 2022-06-20 09:50 수정일 2022-06-20 09:52 발행일 2022-06-20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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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가 인플레이션으로 고통받고 있다. 2022년 5월 한국의 소비자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5.4% 상승하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크게 올랐고, 같은 기간 미국 소비자 물가도 전년 동월 대비 8.6% 급등하며 41년 만에 최대폭을 기록했다. 현재의 인플레이션 핵심에는 국제유가의 가파른 상승이 있다. 본고는 최근 국제유가 급등의 원인에 대해 진단하고 ‘가격’이 주는 시사점을 살펴본다.

◇ 고유가의 원인 진단: 수급적 요인과 지정학적 요인의 복합작용

2021년 5월 국제유가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60대로 돌아왔지만, 세계 석유수요는 94.4백만b/d로 여전히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크게 하회하고 있었다. 석유수요의 점진적 회복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이해하면 그럭저럭 납득이 되는 수준이다. 당시 각 국은 백신 접종에 속도를 내고 있었고, 세계 보건전문가들은 2021년 하반기 팬데믹 종식 가능성까지 제기했었다.

2021년 7월 국제유가는 팬데믹 이전 수준을 넘어 $70을 향해가고 있었다. 주된 요인은 실질적 석유수요의 회복이다. 백신을 맞은 사람들은 차츰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시작했고, 각국 정부도 방역 조치 완화를 시행했다. 그러던 2021년 8월, 델타 변이바이러스 확산에 따른 석유수요 회복 둔화로 유가는 $70 수준에서 횡보했다. 2021년 9월, 유가는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공급 차질이다. 허리케인 아이다(Ida)가 미국 남부지역을 강타하며 미국 원유 생산에 한 달 이상 차질이 발생했고, OPEC 일부 회원국은 코로나 시기 투자 부진으로 주어진 쿼터만큼도 생산하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2021년 10월부터 국제유가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2021년 9월 말 중국의 화력발전소가 증가하는 전력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며 중국 전역이 전력난에 빠졌다.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에 전력난이 발생하자 전력 소모가 큰 각종 원자재(요소수, 알루미늄 등) 생산이 중단되었고, 이로 인해 원유를 포함한 원자재 가격의 상승이 나타났다. 뿐만이 아니라, 중국이 러시아 등지에서 천연가스와 석탄을 대체 수입하면서 석탄뿐만 석유, LNG 등 다른 에너지의 가격도 상승을 불러왔다.

엎친데 겹친격으로 유럽의 풍력발전량이 기후 이상으로 줄어들자 이를 대체하는 천연가스 신규 수요가 발생했고, 이 현상이 동절기 난방용 가스 수요와 맞물리며 유럽 천연가스 가격의 전례 없던 급등으로 이어졌다. 이는 가스 대체 석유 수요를 유발하며 유가도 상승하는 기이한 현상까지 나타났다(일반적으로 유가가 천연가스의 가격을 결정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동절기만 지나면 유가가 정상화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나 역시도...).

2022년 2월 25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했다. 동절기가 지나기만을 기다리던 에너지시장 참여자들에게 이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푸틴은 많은 전문가들이 예상한 외교적 해법이란 선택지를 보란 듯이 차버렸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은 러시아에 대해 전방위적인 경제제재를 단행했다. 가뜩이나 글로벌 원유시장은 타이트한 공급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러시아산 원유 물량 시장에서 퇴출될 것이라는 우려에 세계 원유시장이 패닉에 빠지며 유가는 단숨에 $100을 넘어 3월 9일 $128까지 치솟았다. 러시아가 수출하는 원유는 대략 450만b/d로 추산된다(IEA, 2022). 전쟁 초기 시장은 서방의 제재로 러시아 공급량이 대폭 축소될 것이라 우려했으나, 러시아산 원유는 중국, 인도 등 러시아 우호국이 대폭 수입량을 늘리며 위태롭지만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잘 소화되고 있는 듯하다.

코로나19 사태로 2020년 4월 22일 국제유가는 배럴당 $13.52까지 급락했었다. 이로부터 불과 2년도 지나지 않은 2022년 3월 9일 국제유가는 배럴당 $127을 웃돌았다. 저점 대비 고점까지의 상승률은 무려 846%으로 실로 믿기지 않은 변동성을 보였다. (기대)수요의 증가와 (기대)공급의 감소는 필연적으로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며, 지금의 고유가는 이에 대한 결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석유의 반격: 타이트한 공급과 견고한 수요

(공급감소) OPEC+ 회원국의 증산 여력은 현재 제한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그나마 증산 가능한 국가는 사우디, UAE 정도이지만 미국과 사이는 예전만큼 좋지 않다. 그렇다면 이제 미국 석유기업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미국 석유업체들은 ESG 경영으로 화석에너지 투자에 제약을 받고 있다. 또한 바이든 행정부는 정권 초기부터 재생에너지에 확산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며 화석에너지에 비우호적인 정책환경을 조성했다 . 이처럼 전 세계가 탄소중립에 열광하며 석유 부문 투자는 오랫동안 위축되었고, 이에 따라 세계 원유공급은 자연적으로 점차 감소하게 될 것이다.

한 예로, 미국 다우지수에 92년간 이름을 올리고 있던 ExxonMobil은 2020년 8월 지수에서 퇴출당하였다. 세계 많은 언론이 ‘석유시대 종말’이 시작되었다며 이를 환영하듯 보도했다. ExxonMobil의 이러한 굴욕적 수모에도 불구하고, 올해 ExxonMobil 영업이익은 55조 원을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주 바이든 대통령은 엑손이 지난해 하느님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며 더 많은 시추(투자)를 하지 않는 엑손을 맹비난했다. 석유를 퇴물 취급하던 바이든이 인제 와서 석유 투자를 늘리라니…. 이 얼마나 웃픈 상황인가?

(견고한수요) 영국 최대 석유회사 BP의 CEO 루나드 루니는 2020년 6월 한 인터뷰를 통해 인류의 기후위기 대응으로 석유수요가 곧 정점에 다다를 것이라 말했다. 그러나 우리는 제약조건이 없다면 여전히 크고 편의성 좋은 SUV를 선호한다(미국의 2021년 신차 판매량 1-6위는 SUV다). 매년 전기차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2021년 기준 세계 100대 신차판매 중에 90대 이상은 내연기관차였다. 자동차의 교체주기와 내구연한, 그리고 전기차의 획기적인 비용 절감 달성 시기, 대체가 매우 어려운 산업용 석유수요 증가를 생각해보면 적어도 2030년 전에 세계 석유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제 석유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2014년 이후 저유가 시기가 6년간 지속되며 전 세계 석유산업이 불황 속에 지내왔고, 2020년 코로나 사태로 유가가 폭락하며 수많은 셰일업체들이 완전히 도산했다. 우리가 탄소중립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국가 경제시스템 및 에너지 안보의 핵심이 되는 전통에너지의 중요성을 등한시했다 . 과거의 1·2차 오일쇼크, 그리고 2000년 초반부터 이어진 고유가 사이클은 대략 10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번 러시아 사태에서 촉발된 고유가 시대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다만 공급은 지금과 같은 정책환경에서는 매우 제한적이며, 수요는 적어도 10년간 줄어들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경기침체로 인한 수요감소는 말하고 싶지 않다). 이번 고유가는 우리 선택의 결과이며 가격은 善도 惡도 아니기에 있는 그대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사고방식으로 시장 가격을 재단하여서는 곤란하다.

전 세계가 에너지가격발(發) 인플레이션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만약 비 시장적 접근을 통한 가격 인하를 강제한다면, 시장은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또 다른 복수를 할 것이다. 인류는 언제나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해왔기에, 이번 고유가 시기도 결국엔 잘 극복해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그 과정이 가급적 짧고 너무 힘들지 않기를 소망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팀 김태환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