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칼럼] 국민연금, 정부로부터 독립이 필요하다

김영훈 경제지식네트워크 사무총장
입력일 2022-12-26 09:00 수정일 2023-12-19 08:51 발행일 2022-12-25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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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경제지식네트워크 사무총장

4차 국민연금 장기재정 추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57년에 고갈된다. 기금고갈 시점에서는 급격한 연금보험료 인상이 있을 수밖에 없어, 연금개혁이 시급하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계속되고 있다.

연금개혁은 정치적으로는 ‘독이 든 성배’다. 박근혜 정부는 공무원 연금 개혁을 시도하면서 10% 가까운 지지도 하락을 경험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연금개혁을 건드리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는 3대 개혁의 일환으로 연금개혁을 내세웠지만 세대 간 형평을 이루는 연금개혁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국민연금의 구조적 개혁과 함께 논의되어야 하는 것은 정부로부터의 독립이다. 900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은 언제나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에게 좋은 먹이감이다. 그동안 국민연금을 임대주택 사업, 노인장기요양시설확대등에 활용하자는 주장이 계속되어 왔다.

현재 국민연금의 복지사업 투자는 매년 신규 여유자금의 1%이내에서 가능하지만, 이 역시 수익률은 해당기간 국고채권 수익률 이상을 강제하고 있다. 국민연금기금은 복지사업을 위한 기금이 아니다. 정부나 시민단체가 해야할 일에 손쉽게 국민연금이 동원되는 시도는 국민연금의 수익성을 훼손할 수밖에 없다.

정치적 외풍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도 국민연금이 처한 현실이다. 과거 김성주 전 이사장은 20대 총선에서 여당 후보로 출마 후 낙선한 전력이 있다(전북 전주). 문재인 정부 출범 후 2017년 11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임명됐지만, 임기 1년을 앞두고 총선출마를 위해 사임했다. 이후 8개월이나 공석이었던 이사장 자리는 2020년 4월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 후 낙선한 김용진 전 기재부 차관이 차지했다. 국민의 노후보장을 총괄하는 국민연금 이사장 자리가 총선 낙선자를 위한 배려석이 된 꼴이다.

대외적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기금운영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기금운용본부장(CIO)의 위상도 국민연금이 처한 현실을 보여준다. 1999년 기금의 전문적 운용을 위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설립된 이후 총 8명의 기금운용본부장(CIO)이 재직했다. 이중 임기를 마친 사람은 조국준, 이찬우 CIO 단 두명에 불과하다.

조국준 CIO의 경우 임기중 사표를 제출하며“금융 비전문가인 관료들의 관습과 지배 아래서 나의 법적 지위와 권한으로는 기금을 안전하게 지켜낼 수 없다”밝히기도 했다.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1%만 높아져도 기금고갈 시점은 9년이 늘어난다. 우수한 인력들이 국민들의 노후자금을 운영해야 하지만 지방발전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국민연금 이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인력유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민연금 의결권 확대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은 2015년부터 의안분석 및 배당정책 평가 전문기관을 선정해 의결권 행사와 배당 관련 주주권 행사에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상법상 주총공고는 2주일 전이고, 통상 국내 기업들은 2~3일 사이 모두 비슷한 시기에 주총을 개최하고 있는 만큼 짧은 시간안에 한정된 인력으로 세밀한 분석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의결권자문기관의 자문내용이 객관적이고, 이게 걸맞는 책임이 있는지는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2014년 SEC는 이해상충을 발생시킬 수 있는 중요한 관계 및 분석대상 안건에 대해 의결권 자문사가 갖는 중대한이익(material interests)에 대해 공시하도록 하는 지침을 발표했고, 2017년 12월 미 의회는 의결권 자문사의 등록을 의무화 하는 법안(Corporate Governance Reform and Transparency Act)을 하원에서 통과시킨바 있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수탁위)는 과거 “이사 선임으로 인해 아시아나 인수계약 체결과정에서의 실사 미실시, 계약상 불리한 내용 우려 등 주주권익 침해 행위에 대한 감시 의무가 소홀해질 가능성이 있다”며 조원태 대한항공 대표이사의 사내이사 선임반에 반대했지만, 정작 국민연금은 장내 매수를 통해 대한항공 지분변경을 공시한바 있다(8.11%->13.87%). 주주권익을 침해되는 회사 주식을 자신들이 추가 매입한 꼴이다.

국민연금의 정치적인 독립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의결권 확대는 연금사회주의 우려를 확대시킬 수 밖에 없다. 앞으로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활용해 상생기금, 이익공유제, 동반성장 등 정부가 원하는 정책에 기업의 참여를 강제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이 피해는 모두 국민들에게 전가된다. 정부와 정치권의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행 복지부 산하로 되어 있는 국민연금을 독립시키는 방안이 조속히 논의되어야 한다.

김영훈 경제지식네트워크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