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칼럼] 다시 자유와 정부를 생각하며

이주선 기업&경제연구소장, 연세대 경영대학 산업협력 교수
입력일 2022-11-07 11:29 수정일 2022-11-07 13:04 발행일 2022-11-07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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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간은 너무 많은 사건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우선 할로윈 축제를 이태원에서 즐기던 젊은이들이 156명이나 압사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 소식을 들으며 경악한 것은 나만이었을까? 그 부모와 가족들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 생때같은 아들딸이 순식간에 어처구니없이 주검이 되었을 때 아마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과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니 먼저 애도를 표하고 명복을 비는 게 당연하다. 또한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꼭 필요하다.

둘째로 한·미군의 ‘비질런트 스톰’ 훈련 중 북한이 NLL 이남 수역으로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다. 미사일 발사는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강릉에서의 오발에 이어 우리 군이 발사한 미사일들의 오발과 불발이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는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셋째로 사회복지 포함 다양한 정부 보조금이 오집행(誤執行)되고 있는데, 그 환수율은 50%에 불과해서 이를 70%로 높이는 게 정부 목표라는 것이 기사화되었다. 이 기사에 분개한 것은 정부가 국민이 번 돈을 세금으로 강징해서 보조금으로 주는 것 자체도 상당한 논란거리인데, 잘못 준 것이 그렇게 많고 더구나 공권력을 가지고도 오집행 보조금을 절반이나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해서다.

자진 납세하는 국민들에게 조금만 늦어도 과태료 등 다양한 방법으로 팔 비틀기를 서슴지 않으면서, 돈을 거저 준 후 문제 발생 시 조치도 못하고 책임도 지지 않는 게 너무나 비대칭적이었다. 그래서 지난 주 일어난 일들은 내게 자유와 정부의 역할을 다시 짚어보게 했다.

먼저 이태원의 압사사고를 생각해 보면 젊은이들이 축제를 즐기려고 그리로 모인 걸 탓할 수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그런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런 자유를 누린 것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그렇다면 이 압사사고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지금까지 법은 대개 불확실성 아래 위험이 발생하면 이 위험을 가장 빨리 인지하고 회피할 수 있는 당사자에게 그 책임을 지워서 사회의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택하여 왔다.

예컨대, 법원은 서울특별시가 건설한 도로에 웅덩이가 패서 거기를 지나가던 차가 고장 나고 이를 보상하라고 운전자가 소송을 하면, 서울특별시가 아니라 차를 타고 가면서 웅덩이를 보지 못했던 운전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판결한다. 이런 원칙을 법이 정한 것은 그것이 가장 사회(모든 사람)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번 사고에서도 젊은이들이 유명을 달리한 것은 심히 안타까운 일이나 일차적인 책임은 그들에게 있는 것으로 정리되어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무슨 비난을 받을지 상상이 되지 않지만, 원칙은 그것이 맞다. 자유는 자율(자기책임)의 원칙 안에서 누리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것이 기본이 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로 인해서 부주의와 갈등이 증폭되고 자유와 권리가 지속적으로 정부의 개입에 침해되는 상황이 반복된다.

그러나 정부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정부는 국방, 치안, 소방, 방재, 방역 등 시장에서 가격으로 배분이 실패하는 소위 공공재를 공급하는 것이 주기능이기 때문이다. 이번 이태원 사고에는 치안이 개입되어 있다. 치안 서비스가 제대로 되었는가에 대한 논의는 당연히 타당하다. 물론 치안당국자들은 누가 그런 일이 일어날지 어떻게 알았겠느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이 있었고 그 이후에도 다중이 사상하는 수 많은 일들이 지난 정부에서도 반복되어 왔다.

그런데 이런 다중 압사사고가 일어났고 그 대응도 너무나 후진적이고 직분을 다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공분을 사기 충분하다. 당연히 문제 발생 원인 규명과 그 서비스 종사자인 경찰의 복무태도, 책임과 시스템 등이 비판과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특히 지난 정부에서 경찰은 검찰 영역을 상당 부분 흡수해서 큰 권력을 가지면서 비대해졌으므로, 그 개혁이 없다면 치안 서비스의 품질이 더 낮아질 개연성이 높아졌다.

또한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공약한 국민안전이 제대로 지켜지도록 최선을 다했는가 먼저 자성해야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전 정부와 현 정부를 막론하고 서로 손가락질하나 이는 제 눈 찌르기나 마찬가지이다. 이런 일이 있기 전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정부는 세월호 참사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 5년 동안 국회에서 절대 다수이고 행정권력도 지지도가 최고였는데 이런 문제에 대한 매뉴얼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무엇을 했는지, 윤석열 정부는 새 정부가 들어선 후 6개월이 다 되도록 이런 문제를 대처하는 경찰 공무원들의 근무태도와 기강을 왜 제대로 확립하지 못했는지 책임져야 한다.

과연 정치인들은 국민안전을 확보하는데 무슨 노력을 했기에 임명직 공무원들에게 비판과 책임 운운하며 소리를 지르는지 묻고 싶다. 이런 정쟁의 배후에는 정치인들의 국민은 안중에 없는 오만과 총체적인 현안 대처능력 부실이 있음을 알고 자중해야 한다.

둘째로 군의 미사일 오발과 불발 등은 다른 공공재인 국방 서비스의 품질이 국민안전을 제대로 지킬 능력을 보유했는지 의심하게 한다. 이런 문제가 한 번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은 군이 전쟁 발발 시 그 무기체계를 제대로 운용할 능력이 있을지 묻게 한다. 특히 북한이 핵무기를 완성단계에서 배치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 군은 어마어마한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는데 북한의 소위 비대칭 전력에 대한 대처를 어떻게 하고 있는가 생각해 보면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핵무기뿐만 아니라 재래식 장사정포 대비는, 핵무기 미장착 단·중·장거리 미사일 대비는, 잠수정·드론 포함 자폭 무기 대비는 과연 믿을 만 한가?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도주하면서 러시아군이 버린 무기 가운데 1차대전 사용 대포가 나와서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혹여 우리 군에도 제2차 세계대전에 사용된 일본의 구식 대포가 어느 부대에선가 무기로 여전히 취급되고, M1 소총이 부대를 무장하는 개인장비로 지급되지는 않고 있을까?”하는 허무맹랑한 생각까지 든다.

셋째로 복지국가를 지상낙원처럼 초등학교부터 가르치는 나라에서 복지가 이런 허술한 방식으로 세금을 낭비하는 밑 빠진 독이 되고, 그저 사소한 일인 것처럼 취급되고 있는 것도 통탄할 일이다. 아마 복지전달체계의 이런 비효율성은 결국 니즈(needs)가 절실한 계층과 국민에게는 복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서, 복지 기생충들이 번식해서 세금을 빨아먹는 상황을 더욱 증폭시킨다.

복지에서 가장 큰 문제의 하나는 늘 복지지원이 최종 수혜자인 어려운 국민에게 도달하기까지 그 중간에서 이를 집행하는 전달체계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대개 공무원과 이에 준하는 사람들)이 복지재원의 상당 부분을 가져간다는 것이다. 물론 시장에서 물건 유통에도 유통경로(distribution channel) 종사 도·소매업자들이 마진을 먹는 것처럼 복지도 이런 전달체계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물건 유통에서의 효율성을 복지전달체계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물건의 유통경로는 경쟁을 통해서 결정되나 복지전달체계는 공무원들과 그에 준하는 공공기관들의 독점체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여기서도 보조금 대상 선정과정, 보조금 전달체계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시스템 개혁이 없는 한 이런 일은 반복될 것이다.

위에 언급한 세 공공 서비스는 사실상 가장 큰 정부 기능의 존립 이유이다. 그런데 이 세 공공 서비스 제공이 심각한 문제를 노정하고 있다면 정부 자체가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정부 삼부(입법, 행정, 사법부)를 대표하는 위정자들과 그들이 소속한 정당들과 정부기관들은 치안, 국방, 복지 서비스의 효율성과 만족성을 제고할 방안들을 경쟁하기보다는 여전히 자신들의 이해득실에만 초점을 맞추는 정쟁만 일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 국민들의 눈으로 보면 이들의 지휘를 받는 임명직 공무원들과 자치권을 가진 지자체의 대표자들과 공무원들도 여기서 벗어나는 사람들을 찾기 대단히 어렵다.

물론 정치인을 포함한 국민들이 여러 측면에서 문제를 파악해서 드러나게 하는 일은 민주사회에서 진보를 위한 중요한 시스템이다. 그러나 문제 제기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한 사회 또는 국가가 이를 해결하는 시스템과 기준은 지적 합리성과 보편성에 입각해야 한다. 정부의 책임과 역할은 개인의 자유와 자율(자기책임)을 선행시키고 난 후 개입하는 것이어야 한다.

자유와 자율에 기반하지 않을 경우, 시장을 통해서 해결하는 시스템의 기반이 흔들리고, 가치판단 기준이 무너져서 결국 우리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이리’ 상태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 마치 할로윈을 맞아서 거기 모인 사람들이 다 개인적으로 합리적이고 자유로이 행동했을지라도 이태원의 좁은 골목에서 아무도 질서를 확보하지 못했을 때 엄청난 참사가 일어난 것처럼 말이다.

자유와 자율에 근거해서 행동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기준에 근거해서 옳고 그름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비로소 시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보호받게 될 것이다. 이에 기반해서 정부를 선택하고 정부 종사자들의 책임을 물을 때, 공무원들도 결국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서 품질 높은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를 원한다. 그러려면 자유와 자율을 우선으로 하는 시스템에 대한 인식과 동의를 모든 국민들이 보편적으로 가져야 한다. 이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가 지금 보는 끝없는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문제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우리의 해결능력을 벗어날 것이다. 우리는 눈뜨고 이 불행이 우리에게 오는 것을 방치할 것인가?

이주선 기업&경제연구소장, 연세대 경영대학 산업협력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