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칼럼] 수도권, 아파트가 가져온 경쟁력

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입력일 2023-01-02 09:00 수정일 2023-01-02 09:00 발행일 2023-01-01 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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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한국의 에너지 산업을 들여다볼 때 잘 이해되지 않았던 것은 연료 대부분을 수입하면서 에너지 소매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것이다. 물론 전기요금과 같이 정부가 가격을 규제한 측면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전기요금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점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궁금증이 풀린 것은 구글에서 여러 도시의 주택가 사진을 서로 비교하며 살펴본 후다. 미국과 뉴질랜드의 주택가는 도심과 달리 비교적 집과 집 사이가 널찍하게 떨어져 있다. 인구밀도가 꽤 높은 동경의 주택가는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그런데 서울의 주택가 풍경을 보고는 아연실색했다. 아파트로 꽉 차 있었기 때문이다. 집들이 빽빽한 정도가 아니었다. 수직으로 쌓여 있었다.

우리 수도권의 가장 큰 특징적 풍경은 아파트다. 여기에는 물론 아파트에 대한 한국 국민의 높은 선호도가 깔려 있다. 외국에서는 아파트를 고급주택으로 쳐주지 않는다. 한국은 예외다. 아파트 브랜드도 ‘저택’(맨션) → ‘성’(캐슬) → ‘왕궁’(팰리스) → ‘신전’(판테온) 등으로 진화하지 않았나?

아파트, 연립주택, 다세대주택과 같은 공동주택의 비율이 수도권은 90%에 달한다. 한국은 전력 생산에 필요한 연료를 대부분 수입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보다 발전단가가 비싸다. 그러나 수도권의 높은 공동주택 비율로 인해 배전 비용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낮다. 미국은 집과 집 사이가 멀어서 전기를 배달하는 비용이 크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아파트 단지에만 연결하면 수백 세대의 전기가 동시에 켜진다. 전기 배달 비용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싼 셈이다. 개략적으로 외국은 전력 공급 비용의 약 40%가 송배전 비용이다. 그런데 한국은 20% 수준이다.

이런 점은 한국 수도권의 광역화된 지역난방 네트워크에서도 나타난다. 뜨거운 증기(열)를 배달하는 지역난방은 본래 열 손실이 커서 유럽과 미국에서도 발전소 인근이나 대학 캠퍼스 등 좁은 지역에서만 나타난다. 그러나 수도권은 아파트 비중이 커서 집과 집 사이의 평균 거리가 가깝다. 열 손실이 크지 않도록 서로 붙어서 보온을 해 주는 셈이어서 지역난방의 광역화가 가능하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조사한 세계 주요 도시의 주택밀도(주택수/km2)에 따르면 서울이 파리에 이어 2위를 차지하였다. 그런데 파리의 행정구역은 도심 한가운데만을 가리키고 교외는 제외한다. 사실상 전 세계 주요 도시 중에서 서울이 가장 주택밀도가 높다는 말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IT 경쟁력이 가장 뛰어나다. 인터넷 보급률과 속도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의 IT 경쟁력은 다름 아닌 우리 수도권의 빽빽한 아파트 단지에서 온 것이다. 수도권에는 한국 인구의 절반인 2천5백만 명이 살고 있다. 필자가 2008년 미국을 연구년으로 방문했을 때 인터넷을 신청하였는데 1주일 이상 걸렸고 그 비용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인터넷 속도도 너무 느려서 아주 답답하였던 기억이 있다. 우리의 인터넷과 케이블 TV 사용료가 싼 것도 수도권의 주택밀도가 높기 때문이다. 지역독점으로 운영되기 쉬운 인터넷과 케이블 TV도 여러 업체가 경쟁하고 있다.

수도권의 장점은 대중교통에서도 나타난다.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우리 수도권만큼 대도시지역을 지하철, 시내버스, 광역버스, 마을버스, 기차 등이 짧은 간격으로 빠르고도 값싸게 운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워싱턴 DC 교외에서 시내로 전철을 타고 다녀오면 왕복 30달러가 넘게 나온다. 배차 간격도 20분이 넘는다.

그런데 수도권에서는 배차 간격이 대부분 5-10분 이내이며 가격도 4천 원이 채 안 나온다. 10배 정도 차이가 난다. 시내버스는 더 하다. 요금은 둘째치고 미국 대도시도 교외 지역으로 하루에 10회 이상 배차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물론 도로와 지하철 등 기본 인프라가 잘 구축된 것이 한국 수도권 경쟁력의 배경이다. 그러나 그 비용을 수도권의 엄청난 인구와 조밀한 주택이 분담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상대적으로 값싼 요금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어서 더 많은 사람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이 이용하여 그 경쟁력이 올라갈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었다.

도로와 마찬가지로 철도, 통신망, 전력 네트워크, 상하수도망, 가스 배관망, 지역난방 네트워크, 케이블 TV 등 여러 인프라를 값싸고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이유도 인구 1인당, 한 가구당 부담해야 하는 인프라 비용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수도권은 국제 공항도 두 개나 있고 고속철도망, 고속버스를 통해 전국과 연결되어 국내외적으로 접근성이 뛰어나다. 바다에 접해 있고 북한산, 청계산, 관악산 등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녹지 비율도 높아 여가활동에도 최적이다. 첨단 장비를 갖춘 종합병원도 곳곳에 있고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진과 의료서비스를 싼 가격으로 누릴 수 있다.

이와 같은 수도권의 경쟁력을 이끈 높은 주택밀도는 급속한 산업화로 수도권에 집중된 인구와 주택문제를 단기간에 공급 가능한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으로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그 결과 한국의 수도권은 ‘집적의 경제(economies of agglomeration)’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수도권 경쟁력의 8할은 아파트가 가져왔다.

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