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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그라운드] 페어 아닌 축제로의 변신! 핵심 키워드는 ‘협업’ 어반브레이크 2024

아트페어에서 페스티벌로 전환한 ‘어반브레이크 2024’의 키워드는 ‘협업’이다(사진제공=어반브레이크)“어반 스트리트 아트 영역을 대표하는 아트페어 혹은 플랫폼에서 ‘페스티벌’로 변신을 시도합니다. ‘지루한 예술은 하지 않겠다’를 테마로 시각 예술을 확장하고 주루와 비주류의 경계를 융합하는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아트 페스티벌을 만들겠습니다.”국내 스트리트 아트(Street Art) 신을 대표하는 페어였던 어반브레이크(Urban Break, 7월 11~14일 코엑스 B홀)가 론칭 5년 만에 ‘축제로의 전환’을 공식화했다.어반브레이크 장원철 대표는 10일 서울 중구 소재의 레스토랑에서 기자들을 만나 “크레이지 익스피리언스(Crazy Experience) 그리고 아트 콜라보레이션(Art Collaboration)을 테마로 시각예술을 통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는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고 밝혔다.어반브레이크 2024 포스터(사진제공=어반브레이크)그의 선언처럼 올해의 어반브레이크는 다양한 콘텐츠, 장르와의 융합을 통해 시각예술로 할 수 있는 경험들을 확장하는 데 집중한다. 프랑스 최고 권위의 명예훈장 ‘레지옹 도뇌르’를 수상한 세계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 존원(Jonone)과 홍이삭, 한국의 스트리트 댄스 아티스트 리아킴과 오와칠호(OWA-7HO), 조지 오웰(George Orwell)과 사진작가 안준, 김정기 뮤지엄, 비보이들의 패션브랜드 애즈아이원트(ASIWANT), 서그클럽(Thug Club), 메타간지(Meta Ganji) 등 협업 아티스트 및 브랜드들도 대단하다.존원은 홍이삭의 음악에 맞춰 라이브 페인팅을 선보이며 공연 후에는 두 아티스트의 대담도 마련된다. 특히 존원은 7월 신안에 조성될 그래피티 예술섬 프로젝트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리아킴은 공연에서 착용했던 안무복들을 오와칠호와 협업해 새로운 패션을 선보이고 그 협업 과정을 영상으로, 퍼포먼스로 선보일 예정이다.애초 1년 6개월에 걸쳐 무라카미 하루키와의 협업을 준비했지만 무산돼 조지 오웰의 ‘1984’ ‘동물농장’ 등을 안준 작가가 AI를 활용해 새로운 형태의 전시로 풀어낸다.세계적인 라이브 아티스트 김정기 뮤지엄과의 공동기획 프로젝트도 눈에 띈다. 김정기는 BTS(RM, 진, 슈가, 제이홉, 지민, 뷔, 정국), 마블, 블리자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LOL 등과의 협업으로 잘 알려진, 2022년 급작스레 세상을 떠나 안타까움을 자아낸 글로벌 아티스트다. 이번 어반브레이크에서는 그를 기리며 국내외 5명의 작가가 라이브 드로잉 퍼포먼스를 선보이는가 하면 그의 유작 ‘눈불토끼’를 모티프로 한 아이템도 출시한다.더불어 어반브레이크에서만 만날 수 있는 다양한 특별전들도 마련된다. 레어템과 3000여종 이상의 스페셜 컬렉션이 한 자리에 모이는 국내 최대 규모의 ‘베어브릭 컬렉션’(BE@RBRICK Collectiong)展에는 다양한 아티스트, 브랜드, 애니메이션, 영화, 아티스트 등과 협업한 베어브릭을 테마별로 만날 수 있다.국내외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팝 컬처 스퀘이’(사진제공=어반브레이크)‘팝 컬처 스퀘어’(Pop Culture Square)에서는 코테 에스크리바(Cote Escriva), 오지 슬릭(OG Slick), 사이크롬(Psychrome, 본명 이안볼), 예카 하스키(Yeka Haski), Nychos, Dave Persue, Tristan Eaton, 테오도루(Theodoru), NAU 등 국내외 유명 팝 아티스트들의 독특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내셔널지오그래픽스의 글로벌 앰버서더이자 세계적인 아티스트 덜크(Dulk)와 2011년생 니콜라스 블레이크(Nicholas Blake),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영재 마리아, 소피아와 한국의 조슈아가 펼쳐 보이는 ESG 아트 프로젝트 ‘아트 포 투모로우, 댄스 위드 애니멀스’(Art for Tomorrow, Dance With Animals) 그리고 PSG, Pharrell Williams, BTS 등의 피규어를 작업한 유명 아트토이 작가 쿨레인(Coolrain)이 데뷔 20년을 맞아 그의 친구들과 함께 꾸리는 ‘쿨레인과 프렌즈’도 특별함을 더한다.어반브레이크 2024는 다양한 협업으로 페스티벌로의 전환에 나선다(사진제공=어반브레이크)어반브레이크 2024와 협업하는 존원, 덜크, 코테 에스크리바, Vance, 니콜라스 블레이크, Deekay(본명 권동욱), Janine Daddo, 사이크롬, 제이슨 킴(Jason Keam), 예카 하스키, 민정(Minjeong), 테오도루, 필독(Feeldog), 집시(Zipsy), 레지나 킴(Regina Kim), 지화(Jiwha) 등 국내외 유명 아티스트들은 직접 관람객들을 만나는 ‘미트그리트’(Meet Greet) 무대에 오른다.장 대표는 “그 동안 어반브레이크는 시대 상황, 시대의 흐름, 콘텐츠적인 트렌드 등을 반영해 기획해 왔다”며 “내년부터는 갤러리를 받지 않겠다는 결단을 내렸다”고 전했다. 지금까지도 어반브레이크는 부스비를 받지 않고 페어 성격에 맞는 갤러리 선정에 유독 신경을 써왔다.“저희와 함께 결을 맞출 수 있는 브랜드, 갤러리, 스튜디오, 아티스트 등과 협업해 특별한 테마로 우리만의 아트페스티벌로 만들고자 합니다. 미국의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outh by Southwest, SXSW)처럼 세계에서 찾아올 수 있는 글로벌 아트 페스티벌을 만들고자 합니다. 올해 ‘어반브레이크’의 변신으로 그 첫 번째 발걸음을 내딛고자 합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6-11 18:00 허미선 기자

[비바100] 그만의 '원더랜드' "나는 배우 박보검, 아티스트 그리고 엔터테이너가 될꺼야"

3년 전 촬영을 마친 영화 ‘원더랜드’를 들고 온 박보검. 지난 5일 개봉,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흥행 순항중이다. (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더블랙레이블)“관객들에게 질문을 많이 던지는 영화가 됐으면 해요.”영화 ‘원더랜드’ 시나리오를 받은 건 군입대 전이었다. 당시만 해도 AI기술이 지금 같지 않은 시절이었는데도 박보검은 ‘보고 싶은 사람과 화상 전화로 소통하는 서비스’에 대한 울림이 컸다. 사실 그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남겨진 가족이나 지인, 연인들은 가상공간에서 생전의 기억 혹은 자신들이 설정한 모습대로 살아가는 AI들의 연락을 통해 위로를 받는다.죽은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복원하는 영상통화 서비스 ‘원더랜드’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나는 이야기다. 김태용 감독이 ‘만추’ 이후 13년 만에 내놓은 작품으로, 탕웨이, 수지, 박보검, 정유미, 최우식 등이 출연한다.(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그가 1인 2역을 맡아 열연한 ‘원더랜드’ 속 태주는 사고로 식물인간이 됐다. 같은 항공사에 근무했던 연인 정인(수지)은 그를 원더랜드를 통해 먼 우주에 파견나가 있는 남자친구로 복원시켰다. 기상알람과 비타민을 챙겨주는가 하면 자신의 비행 스케줄까지 훤히 꿰고 있다. 마른 얼굴에 장발로 병원에 누워 있는 태주가 현실이지만 가상세계의 태주는 여전하다. 장난 잘 치고 다정한 평소 모습 그대로. “촬영 당시에는 AI로 복원해 그리운 사람을 만난다는 게 정말 신기했어요. 실제로 그런 서비스가 있다면 신청할 거란 생각이 컸어요. 그런데 완성된 걸 보니 할 것 같지 않아요.(웃음) 현실에서 너무 생각날 것 같아서요. 시나리오에는 자세한 서사가 나오진 않아서 정인이랑 태주가 어떤 삶을 공유했고 어떻게 사랑했는지를 정하는 게 중요했어요.”그의 표현대로 ‘원더랜드’ 서비스로 복원된 태주와 정인은 유일하게 혈연관계가 아닌 사이다. 박보검은 ‘어떻게 연인끼리 저렇게 애틋하게 생각하며 살지?’란 궁금증으로 접근해 결국 두 사람은 “고아원에서 만나 서로를 의지하며 자랐고 사랑하는 사이가 됐기에 사망에 준한 상태를 못 견디는 것”이라고 설정했다. “사람의 온기는 없고 기술만 있어도 서로밖에 없는 관계니까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답변을 내놨다.박보검은 “감독님께서 인공지능 ‘태주’를 연기할 때는 밝고, 활기차고, 기쁨을 배로 표현하는 건강한 이미지였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면서 “그 말을 듣고 깨어난 뒤에는 몸과 마음이 이상한 상태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밝혔다. (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더블랙레이블)하지만 기적적으로 현실의 태주가 깨어나고 죽다 살아난 그의 성격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한 시상식의 MC로만 만났던 수지를 상대 배우로 만난 건 이 영화의 천운이었다. 친구이자 오랜 연인의 느낌을 살리는 적당한 친분, 연기가 아닌 실제 상황과도 같은 호흡에 개봉과 동시에 ‘실제로 사귀었으면 좋겠다’는 대중의 반응을 이끌어냈다.“그런 반응들이 정말 즐거워요. 둘이 서로 ‘정말 어리고 예뻤네. 저 당시에는’하면서 감탄했죠. 진짜 잘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고 통하는 게 많았습니다. 솔직히 개봉이 늦어진 속상함보다 지금 개봉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 역시 친한 사이에는 문자나 카카오톡 보다는 영상통화를 주로 하는지라 요즘 시대에 잘 맞는 것 같아요.”최근 여러 음악 무대에서 뛰어난 피아노 연주와 노래 실력을 선보인 박보검. “사실 ‘뮤직뱅크‘ MC를 할 때부터 가수들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때 받은 에너지와 경험을 통해 아티스트, 엔터테이너가 되고 싶다”는 속내를 밝혔다. (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더블랙레이블)김태용 감독은 두 사람이 현실에서 처음으로 다시 마주보는 장면에 유리창을 넣었다. 차례로 머리를 부딪히는 장면을 통해 직접 대면하는 시대가 되려 어색해진 상황을 아우른다. 그 의도를 정확히 표현하는 박보검의 연기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인지부조화 상태에서도 연인에게 끌리는 본능, 가상 현실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자신을 바라보는 허망한 눈빛까지 과하지 않은 수트를 입은 듯 반짝거린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로 스타덤에 오른 뒤 복제인간을 소재로 한 영화 ‘서복’에 이어 뮤지컬 데뷔작 ‘렛미플라이’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는 원동력은 다재다능한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란다. “연기도 잘하고 음악적인 능력도 출중하고 싶거든요. 누군가를 경쟁자로 삼지 않고 나 자신과 노력한달까. 끊임없이 발전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끊임없이 공부하는 편입니다.”그는 가족들에게도 집안의 막내로서 늘 에너지 120%를 발휘하고 자주 영상통화를 하는 편이라고 밝혔다.(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더블랙레이블)무엇보다 군 제대 후 박보검의 생활은 변한 게 없다. 하지만 생각은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상대방이 편해야 자신이 편했다면 ‘그렇다면 나는 누가 챙겨주지?’라는 질문이 많아졌다. 일부러 휴대폰 없이 입대했던 것도 주변을 돌아보는 계기였다. 아예 연락 자체가 안됐던 그 시기가 마음의 안정과 위로를 받은 시기였던 것.“마음의 주머니가 더 커지게 된 계기가 됐어요. 그 전에는 모든 걸 챙기고 아우르려 했다면 지금은 내 자신을 더 챙기고 행복해야 된달까? 예전보다 나에게 포커스를 맞추려고 합니다. 늘 변함없는 건 작품을 결정하는 기준입니다. 나중에 제 가족들에게 ‘아빠가 이런 작품 했어’라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어야 하죠. ‘우와’라는 감탄사가 나왔으면 하거든요.(웃음)”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6-10 18:30 이희승 기자

[비바100] 1949년생 '물의 요정'이 건넌 180km 바닷길!

실제 아네트 베닝은 아카데미 노미네이트만 4회, 조디 포스터는 여우주연상을 2회 수상한 베테랑 배우들로 올해 1월 열린 96회 오스카 시상식에서 나란히 여우 주연상과 조연상에 이름을 올렸다.(사진제공=넷플릭스)한국 나이로 치면 환갑이 넘었다. 극 중 나이애드(아네트 베닝)는 20대 후반의 창창한 나이에 쿠바와 플로리다를 잇는 바다수영에 나섰던 전력이 있다. 마라톤 수영 선수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 그는 미국과 쿠바의 외교가 단절되기 직전 무모한 도전에 나섰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와 엄청난 후원금을 등에 업고 도전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만다.50시간을 물에서 버텨야 하는 극한의 상황임을 모른 건 아니었다. 역행하는 조류를 만난 탓에 에너지는 빠르게 소모됐고 설상가상 거리계산이 잘 못돼 여러 번 수정해야 했다. 상어떼에서 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보호장치는 되려 속도를 늦추는 요소였다. 급기야 체온이 떨어지고 등과 뺨이 바다의 소금기와 만나 벗겨져 얼룩덜룩 한 채로 나이애드는 결국 물 밖으로 건져진다. 물에 들어간 지 42시간 만이었다.당시 배에 타고 있던 의료진의 만류와 스폰서들의 설득이 있었지만 “포기하기 싫다”고 울부짖는 나이애드의 젊은 시절은 그렇게 영원히 뉴스에 박제됐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는 세월이 흘러 투덜이 대마왕이 된 주인공의 모습을 비춘다. 한때 자신의 코치였던 보니(조디 포스터)는 10대부터 함께 수영을 했던 사이로 60살 생일파티를 몰래 열어 주려는 게 다 읽히는 순수한 친구다.“제발 아무 것도 하지말고 서프라이즈도 하지 말아달라”고 애원하지만 역시나 지인들이 잔뜩 몰려온다. 10대 때 훗날 미국 수영 명예의 전당에 오른 올림픽 대표 출신 잭 잴슨에게 가르침과 함께 성폭력을 당한 전력이 있는 그는 보니와 한때 연인사이였다. 당시의 트라우마로 남성에 대한 거부감이 생긴 두 사람은 그때의 기억을 묻고 각자의 분야에서 때론 경쟁하고 서로 연대하며 긴 시간을 함께 했다.가장 좋은 경로를 골라서 가도 최소 이틀 이상 헤엄쳐야 하는 바다 수영에 도전한 실화를 그린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 공식 포스터. (사진제공=넷플릭스)그리스어로 ‘물의 요정’이란 이름을 붙여준 아버지의 영향 때문일까. 나이애드의 수영실력은 남달랐다. 유력한 올림픽 선수로 떠올랐고 장거리 수영선수로 종목을 바꾼 이후에는 맨해튼 둘레(약 45km)를 7시간 57분 만에 헤엄치는 데 성공하며 명성을 쌓았다. 그 정점에서 쿠바해협 도전에 실패한 그는 스포츠 중계를 하며 늙어가고 있다. 절대로 수영을 하지 않는다는 철칙을 지키면서.‘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는 그런 주인공이 다시 도전에 나서는 과정을 세세하게 그린다. 그것도 다들 은퇴한다는 60세가 넘은 나이에 우연히 발견한 엄마의 읽던 책을 발견하면서가 변화는 시작됐다. 남편에게 소극적이고 어린 딸의 불행한 유년시절의 방관자였던 엄마는 문학과는 거리가 먼 존재였지만 요양원에서 시집 한 귀퉁이를 고이 접어놓았다. “귀중한 한 번 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란 문장을 읽고 나이애드는 “20분만 물에 들어갈까?”란 생각으로 동네 수영장을 방문한다.몇 십년 만의 물 속은 그렇게 5시간이 흘러도 지치지 않고 수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만든다. 이후 매일 출근도장을 찍으며 결국 한 라인을 통째로 장악하고 수영장의 불이 꺼져야 나오는 주인공의 일상이 보여진다. 물속에서 나이애드는 애써 외면해 왔던 자신의 본능 그리고 다시금 천직을 찾고서 전율한다.할리우드에서 당당하게 레즈비언임을 밝히고 두 아들을 낳아 키우고 있는 조디 포스터. (사진제공=넷플릭스)보니의 걱정도 커져만 간다. 운동처방과 더불어 체력 단련을 시키는 직업으로 꽤 유명한 자신의 삶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꾸 쿠바행을 권한다. 선수로서 나이애드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지만 코치로서 승승장구 했던 보니는 사실 이렇게 늙어가는 자신이 싫지 않다. 황혼의 나이에 전문가들도 모두 실패할 거라 단언하는 도전을 하는 전 연인이자 현 친구인 나이애드가 이해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번엔 다들 비웃음 뿐이다. 후원자가 없어 집을 저당 잡혀야 하고 그나마 구한 사람들은 열정은 넘치지만 재능기부에 가깝다.하지만 그 역시 어느 새 나이애드가 말하는 “가슴 떨리는 일”에 도전한다. 자신은 비록 수영을 그만 뒀지만 그를 돕는 것만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영화는 도전에 실패하는 모습을 실제 다큐멘터리와 함께 교차시킨다. 그 사이사이 주인공이 겪은 훈련 과정과 성적 학대 그리고 도전의 결과물들은 시대상을 고스란히 재연한 다른 연령대의 배우들이 소화한다.2011년에 다시 도전한 나이애드는 62세로 고작 86km를 남기고 아쉽게 실패한다. 두 번째 도전은 고작 7주 후로 알려진다. 젊은 시절의 실패로 상어보호망 없이 도전에 나선 그의 복병은 해파리였다. 흐른 세월만큼 지구 온난화가 심해졌고 발전된 과학은 상어의 접근은 음파로 퇴치할 수 있었지만 바다에 떠있는 해파리의 공격은 막을 수 없었다.결국 생화학자가 발명한 수트와 함께 세 번째 도전에 나섰지만 이번엔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잠도 못 자고 90분 마다 엄청난 칼로리를 먹으며 생리현상까지 해결해야 하는 나이애드의 모습은 실화여서 더 경이롭다. 보니와 더불어 생업까지 포기한 베테랑 선장 그리고 해양 전문가들의 노력에도 사활을 걸었던 네 번째 도전도 결국 수포로 돌아간다.2013년 8월 31일 아침 출발한 그는 해파리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거추장스러운 실리콘 마스크와 전신 수영복, 장갑과 부츠까지 탁용하며 바다에 뒤어들었고 9월 2일 오후 쿠바 해안에 도착했다.(사진제공=넷플릭스)첫 도전에 몰려들었던 언론과 대중들의 환호가 사라진 다섯 번째 도전은 사실상 마지막이었고 계절상 더이상 강행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이애드의 다섯번째 파도’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한 인간의 도전기를 한때 할리우드를 미모와 연기력으로 사로잡은 두 배우를 통해 완벽 부활시킨다. 화장기 하나 없이 주름 투성이 피부, 그마저도 잔뜩 그을린 상태에서 바다와 배 위에서 연기하는 모습은 세월의 슬픔보다 우러러 나오는 존경심으로 가득찬다. 영화의 말미에는 실제 나이애드가 해변에 도착하는 뉴스를 삽입하는데 그 사실성을 살린 감독과 배우들의 연기에 절로 물개 박수가 쳐진다. 실존인물인 다이애나 나이애드는 2013년에 성공한 60시간이 넘는 해협횡단을 자서전으로 내놨고 이후 아네트 베닝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로 완성됐다. 그렇다고 ‘인간극장’급 감동을 기대하면 곤란하다. 다만 이 역할을 위해 65세의 아네트 베닝은 1년 넘게 수영 훈련을 받았고 61세의 조디 포스터 또한 매일 8시간 넘게 체력 단련을 하며 캐릭터에 녹아들었다고 전해진다.나이애드는 자신의 도전이 결코 혼자 해 낸 게 아니라는 의미를 담은 “수영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라는 어록을 남겼다. 배울 수는 있어도 발전하려면 뭐든 ‘같이’해야 즐거운 게 스포츠 정신의 진수니까.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6-10 18:00 이희승 기자

[B그라운드] 다가가야 보이는! 수십겹 점들로 쌓아올려 구축한 ‘김기린: 무언의 영역’

작고 후 첫 개인전인 ‘김기린: 무언의 영역’ 전경(사진=허미선 기자)멀리서 보면 꽤 두터운 단색조의 화면에 점을 찍은 게 다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더불어 작업 과정을 알고 보면 오랜 동안 차곡차곡 쌓아올린 작가의 여정이 보이는 듯하다. 1960~70년대 그 시작은 시(詩)였다. 고등학교 시절의 불어 교사가 읽어준 발레리(Valery), 랭보(Rimbaud), 말라르메(Mallarme) 등의 시에 매료돼 집필활동을 시작했고 생텍쥐페리(Antonie de Saint-Exupery)의 ‘어린왕자’에 빠져들어 그 연구를 위해 프랑스 디종으로의 이주까지 감행했다.그렇게 그곳에서 미술사 공부와 미술을 시작했고 생계를 꾸리기 위해 미술작품 복원 전문가로도 활동하던 김기린은 그렇게 한국을 대표하는 단색화가가 됐다.작고 후 첫 개인전인 ‘김기린: 무언의 영역’ 전경(사진=허미선 기자)2021년 세상을 떠난 후 처음으로 열린 개인전 ‘김기린: 무언의 영역’(7월 14일까지 갤러린현대 본관)에서는 단색화가 중 유일하게 전통적인 회화재료인 캔버스에 유화로 작업한 김기린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를 만날 수 있다. 1970년대작인 흑단색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부터 작고하기까지의 ‘안과 밖’ 연작, 캔버스가 아닌 한국 전통 한지를 바탕으로 한 유화작업들 그리고 그의 사진과 시 등 아카이빙 자료들이 총망라된다.작고 후 첫 개인전인 ‘김기린: 무언의 영역’에 대해 설명 중인 갤러리현대 권영숙 이사(사진=허미선 기자)유화물감에서 기름기를 뺀 후 넓은 붓으로 서너겹의 평면작업 후 작은 붓으로 그리드를 그리고 마치 원고지에 한자 한자 시구를 써내려가듯 점을 찍어 작품을 완성하는 데는 1~3년의 시간이 걸렸다. 수년간의 기간 동안 찍는 점 하나는 최소 30겹, 동일한 색채의 물감이지만 순간순간의 습도, 온도, 환경 등에 따른 다른 밀도, 농도 그리고 그의 모든 것들이 깃들었다.이를 “아름다운 인간으로 바로 서기 위한 작업”이라고 표현한 김기린의 작품들은 그래서 이 전시를 기획한 갤러리현대 권영숙 이사의 표현처럼 “시의 운율과도 같은 박동이 느껴진다.” 권 이사는 이 작품들에 대해 “김기린이라는 작가의 시적, 문학적, 철학적 그리고 음악적 소양이 발현돼 완성된 것들”이라고 했다.작고 후 첫 개인전인 ‘김기린: 무언의 영역’ 전경(사진=허미선 기자)영국 출신의 미술평론가이자 스스로도 예술가인 사이먼 몰리(Simon Morley)는 김기린의 작품 세계를 ‘무언의 메시지’(Undeclared Means), ‘이름 지을 수 없는’(Unnamable), ‘능동적 관람객’(User Activated)이라는 3개 키워드로 정리했다. ‘무언의 메시지’에 대해 그는 “보는 이에게 메시지가 명확하게 전달되는 않지만 이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 메시지가 분명하게 표현되지는 않지만 그 이면에 뭔가가 있다는 건 누구나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작업은 일종의 메시지를 쓰는 과정”이라고 부연했다. 작고 후 첫 개인전인 ‘김기린: 무언의 영역’ 전경(사진=허미선 기자)‘안과 밖’ 연작에 대해 사이먼 몰리는 “이 작품에서 보이는 점의 패턴은 손가락 지문을 연상시키고 일종의 비밀코드가 입력된 인상”이라며 “뭔가 있는데 가려진, 이름 없는 이름(Nameless Name)과도 같다‘고 평했다.“그는 진실, 존재 등을 우리가 쓰고 있는 언어나 글로는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 언어는 결국 인간이 발명했으니까요. 두 번째 키워드 ‘이름 지을 수 없는’은 도가 사상과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진짜 진실은 쓰여질 수도, 규정될 수도 없거든요.”이어 세 번째 키워드 ‘능동적 관람객’에 대해 사이먼 몰리는 “작품이 관람객이 그림을 보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초대한다”고 표현했다.김기린 작가의 작품세계를 ‘무언의 메시지’(Undeclared Means), ‘이름 지을 수 없는’(Unnamable), ‘능동적 관람객’(User Activated)이라는 세개의 키워드로 소개하고 있는 사이먼 몰리(사진=허미선 기자)“그의 작품은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아주 가까이 다가와서 보라고 요구하고 있거든요. 김기린 작가는 작품을 통해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라고 요구하고 있죠.”2층에서는 1965, 66년 본명인 김정환이라는 이름으로 원고지에 눌러쓴 시를 비롯해 한지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빛에 따라 투명함이 다르게 느껴지는, 같은 공간에 존재하며 직접 봐야만 그 본질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작고 후 첫 개인전인 ‘김기린: 무언의 영역’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작고 후 첫 개인전인 ‘김기린: 무언의 영역’ 전경(사진=허미선 기자)작고 후 첫 개인전인 ‘김기린: 무언의 영역’ 전경(사진=허미선 기자)작고 후 첫 개인전인 ‘김기린: 무언의 영역’ 전경(사진=허미선 기자)작고 후 첫 개인전인 ‘김기린: 무언의 영역’ 전경(사진=허미선 기자)작고 후 첫 개인전인 ‘김기린: 무언의 영역’ 전경(사진=허미선 기자)작고 후 첫 개인전인 ‘김기린: 무언의 영역’ 전경(사진=허미선 기자)작고 후 첫 개인전인 ‘김기린: 무언의 영역’ 전경(사진=허미선 기자)작고 후 첫 개인전인 ‘김기린: 무언의 영역’ 전경(사진=허미선 기자)작고 후 첫 개인전인 ‘김기린: 무언의 영역’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2024-06-09 01:39 허미선 기자

[비바100] 에너지가 곧 국력이다

현대는 ‘에너지 전쟁’의 시기다. 누가 얼마나 희소한 에너지 자원을 많이 보유하고 있느냐가 ‘국력’이 되는 시대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러시아가 천연가스와 석유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대표적인 실증 사례다. 에너지를 어떻게 확보하고 운용할 것인가에 관한 전략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이 책은 세계 주요국의 에너지 전략을 다루면서 궁극적으로 미래 에너지 전쟁이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 지를 조망해 준다.◇ 국가 에너지 전략의 ‘3E’나라마다 우선순위는 다르지만, 국가 에너지 전략의 핵심은 세 가지 E의 균형을 찾는 것이다. 먼저, 에너지 안전보장(Energy Security)이다. 에너지 자급도와 통한다. 미국과 캐나다, 러시아와 중동 산유국들, 그리고 노르웨이와 호주가 자립도 100%가 넘어 ‘에너지 순수출국’이다. 중국도 80% 정도이며 영국과 프랑스도 75%, 55%로 무난하다. 낮은 에너지 자급률은 곧 그 나라의 리스크다.다음은 경제적 효율성(Economic Efficiency)이다. 얼마나 에너지를 저렴하게 조달하느냐가 최우선 과제다. 마지막은 지구온난화 대책, 즉 환경(Environment)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통제하느냐가 중요하다.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에너지를 무기로 세계를 농락하는 러시아러시아는 에너지 의존도가 매우 큰 경제구조를 가졌다. 수출액에서 화석연료 비중이 58%다.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은 세계에서 손꼽힌다. 석유 수출량은 사우디에 이어 세계 2위며, 점유율은 13% 수준이다. 천연가스 수출은 부동의 1위다. 전 세계 수출량의 23%를 담당한다. 석유는 주로 중국으로, 천연가스는 대부분 유럽으로 수출한다. 러시아에게 있어 에너지는 또 다른 강력한 무기다.푸틴 정부는 이것으로 세계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가스프롬, 로스네프트 같은 국영기업을 앞세워 세계 에너지 시장을 쥐락펴락한다. 최근 러시아는 미국과 EU를 견제하려 중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있다. 시베리아와 베이징을 잇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시베리아의 힘1’과 2를 이미 개통했거나 개통 예정이다. 풍력이나 태양광, 원자력 발전 같은 재생가능에너지는 아껴두고 있다.에너지를 무기화하고 있는 러시아로 인해 유럽을 비롯한 세계 천연가스 시장이 요동을 치고 있다.◇ ‘탈 러시아’ 재생에너지 선진국 독일독일은 에너지 자급률이 30%에 불과하다. 일차에너지 공급량은 석유가 35%, 천연가스가 26%, 석탄이 15%, 원전이 5%, 재생가능에너지가 18%다. 소비량은 석유와 천연가스가 압도적이고 다음이 재생가능에너지다. 석유와 천연가스는 러시아에서 각각 30%, 55%를 들여온다. 그렇게 수입한 천연가스를 절반만 사용하고 주변국에 수출해 수지를 맞춘다.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러시아산 천연가스 비축량을 늘리고 수입선을 다변화하면서 ‘탈 원전-탈 석탄-재생가능에너지 확대’라는 에너지 대전환을 추진 중이다. 2045년 탄소중립 달성, 2050년 온실가스 감소 시작을 법제화했고, 총 17기의 원전 중 14기를 이미 정지시켰다. 재생가능에너지의 절반을 풍력으로 조달하고, 태양광으로 4분의 1, 나머지를 바이오와 수력으로 채운다는 계획이다.하지만 풍력이 북부 해상지역에 많아 초장거리 송전망 건설이 난제다. 석탄화력발전이 여전히 압도적이라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유럽 내 최대라는 점도 문제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에너지 정책이 변화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탈 러시아 정책이 어느 정도 진전되느냐, 풍력과 태양광 발전이 얼마나 확대될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셰일 혁명으로 에너지 자립 이룬 미국미국은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소비량이 세계 1위다. 석탄은 생산량 5위에 소비량은 3위다. 발전량에서는 수력이 세계 4위, 풍력과 태양광은 2위, 원자력은 부동의 1위다. 2020년에 이미 에너지 자급을 이뤄냈다. 지하 2000m 이상 깊이의 세일층을 개발하면서 파나마 운하를 통한 에너지 운송 리스크까지 벗어났다.원자력 발전 비중이 압도적이다. 가동 중인 원전이 94기, 건설 중인 원전이 2기이며 3기가 추가될 예정이다. 발전량에서 단연 세계 1위다. 소형 원자로 부문에서도 중국과의 일전이 예상된다. 다만,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지구 온난화 관련 정책이 변한다는 게 치명적 약점이다. 현재 바이든 대통령의 에너지 정책은 ‘국제협력 노선’에 기초한 ‘미국 제일주의’다.2022년 5월에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를 완화하고 원유 수입을 재개하면서 석유 부족 문제를 해결했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로 에너지 문제가 심각해 짐에 따라 향후 외교방침의 변화 여부가 주목된다. 저자는 하지만 “미국은 국가의 안정이나 에너지 안전보장, 국가 독립, 국가 안정보장, 안정 공급의 측면에서 100점에 가깝다”면서 “미국은 3E가 모두 강력하다”고 평가했다.미국이 석유 시추 설비. 미국은 셰일 혁명을 계기로 에너지 자립국이 되었다.◇ 세계 최대의 에너지 소비국 중국중국은 최대 에너지 수입국이다. 급속한 성장을 지탱하려다 보니 자급률이 75%까지 떨어졌다. 석탄 58%, 석유 19%, 천연가스 8% 등 화석연료 비중이 85%에 이른다. 실제 발전량도 화력이 68%로 압도적이다. 수력과 원자력이 각각 18%, 5%까지 올라왔다. 가동 원전이 50기로 세계 3위지만 건설 중인 원전이 16기로 단연 1위다. 외자 유치 덕분에 풍력발전에서는 51%로 압도적 세계 1위다. 태양광발전도 1위다.문제는 천연가스 공급 루트다. 천연가스 대외의존도가 45%가 넘고, LNG 수입 비율도 46%로 매우 높다. 호주와의 관계가 악화하면서 석탄 수입국에서 빠진 것도 걸린다. 이에 서부의 천연가스를 동부 해안지역으로 운송하는 ‘서기동수’ 프로젝트와 함께, 사할린의 천연가스를 연결하는 ‘사할린1’과 시베리아의 가스를 몽골을 경유해 운송하는 ‘시베리아의 힘2’ 파이프라인 등을 추진 중이다.시진핑 주석은 2030년까지 화석 에너지 소비 비중을 대폭 낮추고, 풍력과 태양광 발전의 설치 용량을 극대화할 것을 공언했다. CCUS(탄소포집·활용·저장) 시장에도 적극 뛰어들었고, 그린 본드 발행액이 세계 2위일 정도로 ‘녹색금융’도 강화 중이다. 중국은 재생가능에너지 설비 제조의 대국이기도 하다. 수력발전 설비의 70%, 풍력발전은 50%를 도맡아 두 부문 설비제조와 운영에서 세계를 석권하고 있다.◇ 성장 뒷받침할 에너지가 시급한 인도2050년까지 미국을 제치고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경제대국을 꿈꾸는 인도는 이를 뒷받침할 에너지 안정확보가 필수다. 하지만 인도의 에너지 자급률은 매년 떨어지고 있다. 전력 송배전에서는 30% 가까이나 로스가 발생한다. 석탄과 석유 수입 및 공급량은 급증하는데, 바이오매스 비율은 감소하며 ‘친 환경’에 역행 중이다. 화석연료 비중은 75%인데, 수력 풍력 태양광 등 재생가능에너지 비중은 3%에 불과하다.그나마 태양광발전량이 세계 4위(7%)일 정도로 태양광 잠재력은 평가를 받는다. 라자스탄주 사막에는 1000만 개의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이 설비를 국경 문제로 적대적인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 문제다. 풍력도 전 세계 생산량의 5%로 세계 4위지만 공급망과 인프라 부족이 걸림돌이다. 수력발전도 비슷한 처지다. 인도 정부는 바이오매스 혼합연료를 의무화하는 등 바이오매스 에너지 확대에 적극적이다.이란과 오만에서 해저 가스 파이프라인을 연결할 구상과 함께 총 전력의 50%를 2030년까지 재생가능에너지로 충당하고, 2070년까지 ‘넷 제로’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다. 저자는 하지만 “인도에서 지구온난화 대책이 우선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며 아마도 탈 중국이나 급격한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 에너지 경제성의 우선순위를 높게 잡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인도 라자스탄주 사막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 사진=사진=utoimage◇ ‘자립’이 목표인 세계최대 유전지대 ‘중동’전 세계 석유 매장량 및 생산·수출량 톱 10 국가의 절반이 중동에 있다. 사우디와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다. 이란과 카타르, 사우디는 천연가스 매장량과 생산량에서도 톱 10에 포함된다. 반대로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단연 중동이다. 이란이 6위, 사우디가 9위다. 1인당 배출량은 1위 카타르부터 2~4위인 쿠웨이트와 아랍에미리트, 바레인까지 톱 10 중 7곳이 중동국가다.이란은 서방세계의 제재 탓에 풍부한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을 갖고도 애를 먹고 있다. 카타르 국경지역의 대형 가스전이 개발된다면 카타르만큼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러시아와 가까와 우려를 낳는다. 세계 석유 매장량 3위의 이라크는 2003년 후세인 사망 후 석유 생산을 크게 확대 중이다. 이라크 수익의 99%가 석유에서 나올 정도라고 한다.카타르는 이란을 지원한다는 이유로 사우디 등으로부터 국교 단절을 당했다가 2021년에야 간신히 국교를 회복했고 이후 세계 최대 천연가스 수출국으로 자리매김 했다. 사우디는 석유 수출은 세계 1위지만 LNG는 수출 않고 있다. 이것마저 이뤄진다면 그 여파가 상당할 전망이다. 석유 의존도를 낮추려 원자로도 16기를 건설할 계획이다. 미국과 거리를 두면서 러시아, 중국과 가까와질 조짐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하지만 중동 에너지 이슈 중에는 늘 ‘초크 포인트 리스크’가 뒤따른다. 호르무즈 해협과 수에즈 운하,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지나야 에너지 수송이 가능하다. 언제든 공급이 끊길 위험이 상존한다는 얘기다.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2024-06-08 07:00 조진래 기자

[B그라운드] 글로벌 경제와 기후의 예술적 고찰! 수퍼플렉스 개인전 ‘피시&칩스’

수퍼플렉스(사진=허미선 기자)이주민과 난민 그리고 이방인 문제, 도시 공공공간, 보이는 현상 이면에서 세계를 작동시키는 시스템, 인류적 위기를 맞은 환경과 기후 문제, 카드에 탑재된 마이크로 칩에 의해 가능한 소비 등.우리가 경험하고 있지만 인식하지 못하거나 언젠가는 다가올 근미래의 모습들 등을 품은 이들은 전혀 달라보이지만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문제들이기도 하다.수퍼플렉스(Superflex) 개인전 ‘피시 앤 칩스’(FishChips, 7월 28일까지 국제갤러리 K 1, 3)에서는 이 문제들에 대한 작가들의 비판 의식과 이를 모티프로 한 상상력에 집중한 세계의 풍경을 유머러스하고 은유적으로 담아낸 작품들 20여점을 만날 수 있다.수퍼플렉스 개인전 ‘피시amp;칩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수퍼플렉스는 야콥 펭거(Jakob Fenger), 브외른스테르네 크리스티안센(Bjornstjerne Christiansen), 라스무스 닐슨(Rasmus Rosengren Nielsen)이 1993년 설립한 컬렉티브 그룹으로 자본의 불균형, 이주, 저작권 소유 등의 문제를 끄집어내는 데 집중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Hold Your Tongue’ ‘Make a Killing’ ‘Save Your Skin’ 등 텍스트를 모티프로 한 LED 작품에 대해 수퍼플렉스는 “전시제목인 ‘피시칩스’ 중 경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라며 “자본시장에서 사람들이 무언가를 획득하거나 보관할 때 쓰는 문장들로 이들이 시구처럼 서로 주고받으며 반응하기를 기대했다”고 설명했다.분홍색 조명의 LED작품들과 달리 흰색 조명이 주조를 이루는 공간에 전시된 ‘칩스’와 ‘인베스트먼트 뱅크’(Investment Bank) 역시 “경제 시스템에 관련된 작업들”이다.수퍼플렉스 개인전 ‘피시amp;칩스’ 칩스 연작 (사진=허미선 기자)‘칩스’ 연작은 멀리서 보면 흰색 캔버스일 뿐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신용카드의 결제를 담당하는 마그네틱 띠 부분이 마치 모더니즘 회화처럼 보이는, 항상 우리 뒤에 버티고 있는 건축적인” 어떤 구조를 발견하게 되는 회화작품이다. 이 연작들의 어두운 부분들은 실제로 칩을 만드는 데 쓰이는 규소를 활용해 다시 한번 의미를 덧칠한다.“경제 시스템을 작품을 통해 드러내는 것은 저희가 오랜 동안 해온 작업이기도 합니다. 저희가 작품에서 다루는 경제라는 건 물건을 사는 등 우리가 일상에서 관여하는 행위까지를 아우르죠. 오래 전에 ‘프리쇼’라는 실험작업을 한 적이 있는데요. 편의점에서 어떤 물건이든 계산대에는 0이라는 숫자가 찍히는, 돈이라는 요소를 제거한 작업이었죠. 그 반응은 다양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땅히 있어야할 경제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을 때 누군가는 권력의 상실을 생각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얻으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거든요.”수퍼플렉스 개인전 ‘피시amp;칩스’ 중 ‘인베스트먼트 뱅크’(사진=허미선 기자)제주에서 채취한 식물과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시티그룹 건축물을 본 딴 도자기 화병으로 꾸린 ‘인베스트먼트 뱅크’ 역시 경제 시스템에 대한 은유다. 수퍼플렉스는 “이 식물은 제주도에서 자생하는 식물로 적정량 이상을 섭취할 경우 몽롱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고 전했다.“이 식물은 어찌 보면 타자 혹은 자연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언젠가 누군가 ‘세상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보다 자본주의에서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게 숨겨져 있거나 너무나도 명징하게 드러나는 시스템을 제거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죠.”사람들이 전시장을 찾는 순간들은 물론 밤에도 성장하고 꽃이 피고 지는가 하면 이파리나 꽃잎이 떨어지는 식물의 퍼포먼스는 계속될 것이라는 귀띔이다.K3는 전시 제목 중 ‘피시’에 해당하는, 물고기들을 클라이언트로 삼은 설치작과 회화가 어우러진다. 그들은 “남태평양 과학탐사에 초대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10년쯤 전부터 바다에 가는 작업을 많이 하고 있다”며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과연 무엇을 바라는지를 이해하고자 하는 탐사였다. 함께 작업했던 과학자들 중에는 동물 의식의 척도를 측정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의식의 속도를 측정하는 거울 테스트 작업에서 물고기 역시 사람들의 기준에서도 매운 높은 수준의 의지라고 할 만한 것들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금붕어는 3초밖에 기억하지 못한다고들 이야기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죠. 이 실험을 여러 번 반복했고 실제 과학논문에도 해당 내용이 기재돼 물고기라는 종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바뀌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수퍼플렉스 개인전 ‘피시amp;칩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이 설치물들을 이루는 돌은 해양생물들에게는 살아갈 터전이 되는 것으로 다양한 실험과 그에 대한 물고기들의 반응을 기반으로 도출한 형태다. 설치물 뿐 아니라 벽과 천장에 전시된 회화작업에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그들이 선호하는 돌의 종류부터 생김새, 색 등을 구현한 작품들로 수퍼플렉스는 “인간이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일종의 프리즘이 되기를 바랐다”고 전했다. 수심 30미터 아래로 조명을 떨어뜨린 후 수면 속으로 내려갔을 때 보게 된 생명체들을 구현한 풍경 역시 K3에서 만날 수 있다.“거대한 생명체들은 인간의 친구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인간과 실제로 비슷한 행태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화면에서 보시는 생명체 같은 경우도 사실은 하나의 객체가 아니라 여러 개가 하나로 합쳐져서 같이 다니기로 결정한 객체였죠.” 수퍼플렉스(사진=허미선 기자)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인터랙티브 요소를 추가했다. 수퍼플렉스는 “우리가 한 세계를 볼 수 있는 일종의 인터페이스 혹은 포털”이라며 “관람객이 작품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소리가 점점 커지고 가만히 있으면 영상 속 존재가 우리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말하자면 그 존재의 시각으로 이 조각이나 회화 혹은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되는 거죠. 인간으로서 다른 존재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가만히 서서 관찰하는 겁니다. 그들은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을 관찰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거든요. 그런 경험들을 하시기를 바랐습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수퍼플렉스 개인전 ‘피시amp;칩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수퍼플렉스 개인전 ‘피시amp;칩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p수퍼플렉스 개인전 ‘피시amp;칩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2024-06-07 18:30 허미선 기자

[B그라운드] ‘음악 우주’로의 열다섯 번째 여정, 2024 여우락페스티벌

2024 여우락페스티벌에 참여하는 12명의 아티스트들(사진제공=국립극장)“대중적이기 보다는 소수의 진설된 열성 팬들을 위해 전통을 기반으로 새로운 현대적 해석을 하는 국립극장의 정체성을 꾸준히 이어가는 게 저희 역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앞으로 20년, 30년 동안 이어가며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도, 전통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작품들이 많이 잉태되고 꽃을 피울 수 있는 축제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박인건 국립극장장은 올해로 15회를 맞은 여우락(여기 우리의 음악이 있다) 페스티벌(7월 4~27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하늘극장, 문화광장, 이하 여우락)의 ‘지속성’에 대한 바람을 전했다.박인선 국립극장장(사진제공=국립극장)지난 15년간 8만명의 관객이 다녀간 올해의 여우락은 무토(MUTO)의 멤버이자 거문고 연주자인 박우재가 예술감독, 에스파·르세라핌·세븐틴·로꼬·코드쿤스트 등의 아트 디렉션 및 샤넬·프라다·구찌·버버리 등과의 협업과 젠틀몬스터누데이크 비주얼 에디터 등을 진행했던 메이킴이 아트 디렉터로 나선다.박우재 예술감독은 “우리 음악을 중심으로 한 아티스트, 그들이 벼려내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들을 국립극장에 모아보려고 한다”며 “우리 음악의 근원적 요소들이 충돌하고 팽창하고 증폭하는 모습들을 보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그는 예술감독인 동시에 연주자로서 개막작 ‘오:0’로 여우락의 시작을 알린다. ‘오:0’에 대해 박 감독은 “거문고가 중심이 되는, 무용수들이 함께 하는 음악회”라고 소개했다.“국립국악관현악단의 24인조 청년오케스트라, 문화예술 인턴단원, 청년교육단원이 함께 하는 무대입니다. 더불어 한국 창작춤의 대모이신 김매자 선생님과 황태인 국립무용단원, 김남진 현대무용가 등 선후배가 한자리에 어우러지는 무대를 꾸릴 예정입니다.”메이킴은 “아트디렉터로 함께 하면서 뉴미디어 기술과 전통을 어떻게 엮을지 논의하는 즐거운 작업이었다”며 이번 축제에서 선보일 ‘장면들’(Sceneries)은 “기술을 결합해 새로운 거문고 사운드를 만드는 황진아 작가, 가야금을 메고 퍼포먼스를 하시는 박선주 작가와 함께 미디어 아트, 새로운 기술들을 적용한 무대를 만든다”고 설명했다.2024 여우락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이태백(왼쪽부터), 박우재 예술감독, 메이킴 아트 디렉터(사진제공=국립극장)예술감독인 박우재, 아트디렉터 메이킴을 비롯해 거문고 연주자 허윤정, 가야금 연주자 이준, 남도음악의 명장이자 서울시무형문화재 아쟁산조 이수자 이태백, 국가무형문화재 동해안 별신굿 이수자 방지원, 젊은 소리꾼이자 싱어송라이터 송소희, 양금 제작자·연주자 윤은화,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원일, 소수민족컴퍼니 대표 겸 서도민요 보컬리스트 추다혜, 국가무형문화재 강령탈춤 이수자 박인선,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수궁가 이수자이자 국립창극단원 김준수 등 12명의 아티스트가 ‘가장 빛나는 우리 음악의 관측’이라는 주제 아래 원·선·점을 테마로 새로운 전통 무대를 선사한다. 여우락과 6번째 작업에 나서는 원일은 시나위적인 인물인 백남준의 포스터모던이 품은 굿의 요소, 자기 긍정과 극복의 힘을 발휘하는 초인 디오니소스 정신을 모티프로 한 ‘디오니소스 로봇: 리부트’를, 남도소리의 거장 이태백은 남도음악의 기원을 담은 ‘오리진 사운드’(Origin Sound)를, 여우락과 네 번째 무대를 꾸리는 허윤정은 연극 ‘다시라기’, ‘진도 다시래기’를 매개로 죽음을 대하는 신명을 표현한 ‘다시:나기’를 선보인다.2024 여우락페스티벌 기자간담회에서 참여 아티스트들이 선보인 쇼케이스(사진제공=국립극장)박인선은 탈춤의 다채로운 예술적 요소를 선보이는 1인극 ‘박인선쇼’, 윤은화는 전통 악기인 듯하면서 서양에서 온 양금을 제작·교육·연주하면서 스스로에게 던졌던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는 ‘페이브’(PAVE), 방지원은 한국인 전체가 공유하고 있는 심리적 유산인 무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음악에 녹여낸 ‘잔향: 나무의 노래’로 무대를 꾸린다. 더불어 음악 혹은 인생을 살아가는 마음가짐, 좋은 예술가로 성장하기 위한 순수한 마음가짐을 주제로 한 이준의 ‘경계면’, 최근 싱어송라이터로 변신을 꾀한 송소희의 ‘공중무용: 화간접무’, 굿과 무가가 가진 즉흥성 및 현재성, 유연성을 살려 신묘하고 신명나는 치유의 무대를 구릴 추다혜의 ‘부귀덩덩’ 그리고 소리, 뮤지컬, 두번째달 등과의 콜라보레이션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 중인 김준수의 ‘창(唱); 꿈꾸다’도 관객들을 만난다.2024 여우락페스티벌 기자간담회에서 참여 아티스트들이 선보인 쇼케이스(사진제공=국립극장)이번 축제의 주제인 ‘가장 빛나는 우리 음악의 관측’과 원·선·점이라는 테마에 대해 박우재 감독은 “음악으로 설정된 우주, 그 우주 안에 우리 음악이 중심이 되는 은하, 태양처럼 빛나는 항성, 그 주위를 도는 행성들, 우리 일상 속에 불현 듯 나타났다 사라지며 경이로움과 즐거움을 선사하는 혜성 등을 상상했다”고 설명했다. “정해진 틀 없이 아주 독보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12명의 예술세계를 온전히 마주하는 음악 축제이길 희망합니다. 아티스트 내면에 가지고 있는 원형을 감각할 수 있는 그리고 우리 음악을 경험하는 새로운 차원이 열리는 그런 시간이기를 기원해 봅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6-07 18:00 허미선 기자

[비바100] '텀블러 유목민'에서 벗어났다! 세척, 브랜드, 크기… 당신은?

요즘 세대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스탠리’ 팝업행사 진행중 한 고객이 컵을 들어보고 있다.(사진제공=롯데백화점)지난달 타사 후배에게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원하던 ‘생선’(생일선물의 준말)을 받았다. 카카오톡 선물함 위시리스트에 올려 놓은 한 커피브랜드의 텀블러였다. 아이보리색 외형에 파란색 보틀(Bottle)이 그려진 누구나 아는 브랜드의 작고 앙증맞은 사이즈. 원하던 거라 유난히 감동이 물결쳤다. “그런데 선배 비슷한 거 지난번에 들고 다니시던데…”라는 후배의 말에 나는 감동의 이모티콘과 함께 “하늘 아래 똑같은 텀블러는 없다”는 답변을 보냈다.사실 같은 브랜드지만 다른 디자인의 텀블러(편의상 A라 부르겠다)를 가지고 있다. 색은 더 하얗고 얼음을 넣을 경우 넘치지 않도록 스테인레스로 마개가 있는 타입이다. 맛과 색을 음료로 비교하자면 베지밀과 아몬드 브리즈 같은 미묘한 차이가 있다. 물론 크기도, 뚜껑 부분도 다르다.텀블러 세계에서 용량의 세계 만큼이나 뚜껑 디자인 차이는 천차만별이다. 블루보틀 매장에서 한눈에 반해 구매한 A는 뚜껑에 손잡이가 없다. 대신 안의 거름망(?) 덕분에 티백을 넣어도 편리하고 얼음이 입술에 닿지않아 위생적이다. 하지만 산책을 하거나 뒷산을 올라갈 때 아무 것도 없는 뚜껑은 은근히 불편하다.멋스럽게 몇번 들고나갔는데 아웃도어 전용 물병에 달린 손잡이 있는 뚜껑의 존재를 수긍할 정도로 은근 ‘짐’이 됐다. 이 참에 손잡이 있는 걸 받았으니 그 기쁨이란. 깜짝 선물도 좋지만 역시 선물은 ‘원하는 것’일수록 만족도가 올라간다는 걸 절감한 순간이었다.집에 있는 각종 물병들. 세워놓으면 찾기가 어려워 와인렉에다 보관해 놓고 있다. (사진=이희승기자)사실 텀블러 사랑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추세가 점점 일회용품을 들고 어딘가 입장하거나 구매할 수 없는 분위기다. 종교시설은 물론 스포츠 센터, 세미나에서도 테이크 아웃 컵을 들고 입장하는 건 개념없음의 표본이 됐다. 처음엔 집에 뒹구는 보온병을 들고 다녔다. 귀여운 동물이 그려졌지만 여기 여기저기 생채기가 난 오래된 보온병은 아이들이 유치원에 들고 다녔던 추억이 깃든 물건이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보온병은 곧 트라이탄 물병으로 바뀌었다. 가볍고 투명해서 밀폐용기로 인기를 끄는 제품이다. 판촉용으로 받은 것도 제법 됐는데 문제는 얼리거나 차가운 음료를 넣으면 표면에 물기가 생기는 게 영 귀찮았다.컵처럼 들고 다니면서 이왕이면 빨대도 있는 디자인이 눈에 들어왔다. 가방에 넣을 순 없어도 가까운 거리라면 들고다닐만 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찰나 올 초 ‘#스탠리 텀블러’라는 해시태그가 달린 틱톡을 우연히 보게 됐다. 미국 Z세대 사이에서 하나의 문화가 된 핑크색 스탠리 텀블러를 받고 오열하는 아이의 모습이었다. 높은 조회수는 물론 품절 대란으로 40달러였던 가격이 400달러에 거래됐다는 뉴스가 눈을 사로 잡았다.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일명 ‘텀꾸’(텀블러 꾸미기)라 불리며 ‘젠지(Generation Z, 199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 출생자들) 세대들이 스탠리컵이란 해시태그를 달아 자신이 직접 꾸민 텀블러를 SNS에 올리며 자랑을 하고 있었다.‘굳이 왜 그렇게까지 꾸미냐?’는 생각이 절로 들지만 빨대 커버, 씻을 때도 벗겨지지 않는 큐빅 스티커, 전용 가방 등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런 인기를 간과할 111년 전통의 스탠리가 아닐 것이다.올해에만 무려 3개째 구매한 각종 텀블러들. (사진=이희승기자)지난 4일 롯데백화점 잠실월드 1층에서 성황리에 종료된 스탠리 팝업 행사에는 온라인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퀜처 H2.0’(887ml)을 12가지 색상으로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로즈쿼츠, 크림 등 인기 색상과 더불어 2024년 새롭게 선보이는 넥타린, 피오니 등의 색상도 오프라인 매장 최초로 선보였는데 오픈런이 이어질 정도였다. 고백하자면 그 현장에서 딸기우유 색깔의 연핑크와 쨍한 분홍인 피오니 중 무려 30분을 고심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1.8리터 페트병 음료수가 거의 다 들어가는 크기를 고른 건 미국에서 한때 단종됐던 ‘퀜처’의 숨겨진 사연을 듣고서다.그간 군용에 납품하거나 캠핑에 쓰는 투박한 느낌이 강했던 스탠리의 주요고객층이 여성들을 겨냥하게 된 건 2019년 단종 이후다. 미국은 대략 7시 20분 전후에 모든 아이들이 등교를 마친다. 새벽같이 일어나 자녀를 학교에 보낸 뒤 출근길과 근무하면서도 내내 일정한 온도의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스탠리 텀블러는 사실 워킹맘들의 필수템이었다. 식기세척기에 넣어도 되고 튼튼하고 질리지 않는 클래식한 디자인도 인기를 거들었다. 이런 고객들의 충성도를 뒤늦게 알게 된 브랜드측은 상품 재생산에 들어갔고 트레이드 마크였던 녹색에서 벗어나 다양한 색상을 출시했다.하지만 내근직이 아닌 탓에 이 제품은 결국 주말템이 됐다. 환경도 지키고 동시에 의무적으로 이 정도 물을 마실 거란 다짐으로 지갑을 연건데 평일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이 많은 취재기자의 현실에서 뉴요커스런 텀블러는 사치였다. 가지고 다녀본 사람은 알겠지만 500ml는 크기는 적당해도 음료를 넣으면 무겁다. 355ml를 샀더니 뚜껑 디자인에 따라 편의성이 갈렸다. 유행이라는 말에 덜컥 구매한 1.18L는 빨대도 씻어야 하는 귀찮음을 애써 묵인하고 있다.사실 텀블러를 소유하는 행위로 환경 보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한국기후환경네트워크에 따르면 텀블러 생산에 발생되는 온실가스는 일회용 컵보다 30배를 웃돈다. 영국 환경청은 최소 220번을 사용해야 일회용 컵을 대체하는 친환경 효과가 있음을 꼬집었다. 무분별한 생산을 중단해야할 때 되려 텀블러 열풍이 본질을 흐린다는 뜻이다.신개념 텀블러 세척기 ‘마이컵(myCup)’의 보급을 확대해 일회용컵 대신 다회용컵 사용 문화 확산에 앞장서며 ESG 경영에 나선 LG전자.(사진=연합)요즘 최애는 200ml 짜리 미니 텀블러다. 포털사이트와 각종 쇼핑 앱은 최근 며칠간 텀블러를 검색했음을 AI에 알렸고(?) 관련 배너와 함께 많이 검색한 텀블러 순위를 친절하게 보여줬다. 이 낚시의 승자는 쿠팡이었다. 빠르게 배송된 모슈의 새빨간 텀블러는 색깔만 다를 뿐 주말에 들고 있는 사람만 벌써 세 명은 스친 것 같다. 크기에 비해 입구가 넓어 세척이 쉽고 무엇보다 가볍다. 그걸 본 지인들은 “너무 작은 거 아니냐?” “앙증맞다” “이것만 마시고 되겠니?”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지만 나는 드디어 ‘텀블러 유목민’을 탈출했다. 뭐를 ‘담고’ 다니기 위해서가 아닌, 일회용품이 아닌 곳에 ‘담아’먹기 위해서임을 그들은 알까.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6-06 18:00 이희승 기자

[B코멘트] ‘시간과 클라우드’ 호추니엔, ‘중첩’과 ‘공명’으로 시공간을 넘어서

개인전 ‘시간과 클라우드’에 맞춰 내한한 호추니엔(사진=허미선 기자)“제 작품 세계의 키워드는 ‘중첩’(Layering)과 ‘공명’(Resonance)이 될 것 같습니다.”개인전 ‘호추니엔: 시간과 클라우드’(Ho Tzu Nyen: Time the Cloud, 8월 4일까지 아트선재 아트홀, 스페이스 1, 2)로 한국을 찾은 싱가포르 작가 호추니엔(Ho Tzu Nyen)은 자신의 작품세계 키워드를 ‘중첩’과 ‘공명’이라고 밝혔다.스크린과 스크린, 장면과 장면, 서로 다른 시간대와 장소, 소리들의 중첩 등을 통해 시간성을 그리고 지역성을 넓혀가는 그의 작품세계를 담은 베니스비엔날레 출품작 ‘미지의 구름’(The Cloud of Unknowing, 2011), 일본제국주의와 아시아적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주해가 담긴 ‘호텔 아포리아’(Hotel Aporia, 2019), 아시아의 근대적 시간에 대한 연구를 담은 최신작인 ‘시간(타임)의 티’(T for Time, 2023~2024) 등을 만날 수 있다.개인전 ‘시간과 클라우드’에 맞춰 내한한 호추니엔(사진=허미선 기자)“제 작품에서는 중첩과 더불어 공명이 중요합니다. 전혀 다른 것들의 중첩이 어떻게 공명할 수 있는지가 항상 관심거리죠. 이성(Reason)이 아주 근본적으로 느껴지는, 어떤 것을 확립하고 지배하는 것이라면 공명은 근접성을 통한 진동에 가깝거든요. 그래서 서로 다른 것들이 중첩하고 공명하는 데 끌립니다.”영상 속 얼굴을 가린 존재들의 이야기를 지금 관객들이 앉아서 보고듣고 공명하며 과거는 현재가 되고 상상은 현실이 되며 신화는 역사가 된다.선전부대 일원이었던 일본의 만화가 요코야마 유이치가 후쿠짱이라는 캐릭터를 활용한 해군 선전 애니메이션, 선전영화 제작을 위해 싱가포르에 파견됐던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작품들, 카미카제 전투기의 프로펠러 등 관련 기록물들이 중첩되고 공명한다. 그렇게 동서양을 비롯한 다양한 근대성의 충돌과 오해, 제국주의 여파, 식민주의 경험, 그런 시간을 지나온 사람들의 현재, 모순적이지만 해학적인 상황들 등은 중첩과 공명을 통해 연결고리를 만들어 과거와 현재, 현실과 상상, 역사와 신화 등을 넘나들고 가로지르며 이야기를 펼쳐간다.그렇게 20여년 간 아시아의 근대성과 동시대성을 탐구해 온 호추니엔은 이번 개인전에서 시간성을 토대로 아시아의 근대성과 새로운 역사 철학 그리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미지의 구름’ ‘호텔 아포리아’ ‘시간의 티’와 더불어 과학과 예술의 개념을 비트는 ‘뉴턴’(Newton, 2009)과 ‘굴드’(Gould, 2009~2013), 43개의 모니터 영상 설치작인 ‘타임피스’(Timepieces, 2023~2034)를 선보인다.그가 나고 자란 고향이자 활동 터전이기도 한 싱가포르는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다양한 민족이 각 민족의 언어를 표준어로 삼는가 하면 불교, 이슬람, 도교, 힌두교, 기독교 등 여러 종교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국가다.‘호추니엔: 시간과 클라우드’ 전경(사진=허미선 기자)차이나타운, 리틀인디아, 아랍 스트리트 등 각 민족들의 고유 지역이 있는가 하면 그 내부는 다민족 문화들이 어우러진다. 차이나타운 내에 불아사라는 불교사원과 스리마리암만이라는 가장 오래된 힌두교 사원이 공존하는 식이다. 그런 싱가포르가 가진 지역적 특색, 그로 인해 불거진 질문들과 연구들 역시 그의 작품세계에 스며있다.“싱가포르는 다문화적인 나라이고 저라는 사람이 형성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다문화적인 싱가포르에서 자라면서 항상 생각하게 되는 것이 내가 믿고 있는 바가 무엇이든 그것이 다른 사람의 믿음에 관련이 있으면서도 상대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사유를 이끄는 중요한 질문 중 하나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죠. 어떻게 다양성을 품고 살아갈까, 여러 차이 안에서 이것을 어떻게 좀 더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관계로 만들어 갈 것인가라는 질문이요.”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호추니엔: 시간과 클라우드’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호추니엔: 시간과 클라우드’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호추니엔: 시간과 클라우드’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호추니엔: 시간과 클라우드’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호추니엔: 시간과 클라우드’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호추니엔: 시간과 클라우드’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호추니엔: 시간과 클라우드’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호추니엔: 시간과 클라우드’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호추니엔: 시간과 클라우드’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호추니엔: 시간과 클라우드’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호추니엔: 시간과 클라우드’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2024-06-05 18:00 허미선 기자

'AI 국제경쟁 부문'에 몰린 114편의 영화, BIFAN의 새로운 시도!

‘AI 영화 국제경쟁 부문’을 발표하며 기대를 모으는 제28회 BIFAN은 오는 7월 4일부터 14일까지 부천시 일대에서 개최된다.(사진제공=영화제사무국)대한민국 국제영화제 최초로 시작하는 ‘AI 영화 국제경쟁 부문’인 ‘부천 초이스: AI 영화(Bucheon Choice: AI Films)’ 본선 진출작이 4일 발표됐다. 지난 5월 13일부터 26일까지 2주 간의 접수 기간 동안 총 114편의 작품들이 전 세계에서 출품됐다. 극 영화와 비디오 아트에 이르는 다양한 스타일의 본선 진출작은 현재 생성형 AI 영상 기술을 활용한 창작 영역의 발전 상황을 잘 보여주는것. 프랑스, 미국, 일본, 싱가포르 등에서 출품, 선정된 최종 본선 진출작 15편 중에는 런웨이 AI 영화제를 비롯, AI 전문 영화제에서 두각을 드러낸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과 더불어 총 4편의 한국 영화도 선정되어 눈길을 끈다. 두바이 국제 AI 영화제에서 대상과 관객상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은 바 있는 권한슬 감독의 ‘원 모어 펌킨’과 더불어 박성원 감독의 ‘언더 더 사인 오브 문’, 배준원 감독의 ‘폭설’, 차세환 감독의 ‘파이널 씬’은 현대 AI 기술이 구현할 수 있는 영상 이미지와 사운드의 완성도와 함께 기발한 상상력과 신선한 각본, 캐릭터 구현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네 작품 모두 그동안 한국 영화가 전 세계에 보여준 기술적 발전과 예술적 다양성이 AI 영화를 통해 향후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기대하게 한다.15편의 본선 진출작은 BIFAN 개최 기간 중 극장에서 상영되어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국내외 뉴미디어 전문가와 영화 전문가로 구성된 본선 심사위원의 심사를 통해 결정되는 작품상, 기술상 그리고 관객들의 투표를 통해 결정되는 관객상이 발표될 예정이며 수상작에는 총 1500만 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또한 최종 선정된 본선 진출작 중 ‘어나더’를 연출한 데이브 클라크 감독은 영화제 기간 중인 7월 5일부터 7일까지 개최되는 ‘BIFAN+ AI 콘퍼런스’의 연사로도 참가할 예정이다.신철 집행위원장은 “이번 공모를 통해 AI 영화제작이 가져올 새로운 창작의 가능성을 만날 수 있었다. 거대 제작 자본에 접근이 어려운 창작자들이 AI를 통해 제작비로부터 창작의 자유를 얻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6-04 12:29 이희승 기자

‘샤말란X샤말란’이 온다…영화 '더 워처스' 부녀감독의 내공 '기대UP'

7월 개봉 확정한 ‘더 워처스’가 4일 오전 티저 포스터를 공개했다.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할리우드에 길이 남을 스릴러 ‘식스센스’의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제작을 맡은 영화 ‘더 워처스’가 국내 개봉을 확정지었다. 둘째 딸이자 감독으로 활동중인 이샤나 나이트 샤먈란이 연출을 맡았다. 이샤나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서번트’를 통해 로튼토마토 신선도지수 100% 기록, 새턴 어워즈와 크리틱스 초이스 슈퍼 어워즈 베스트 호러 시리즈 부문 후보 지명 등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았다는 평가를 받은 바. ‘샤말란X샤말란’이라는 조합이 눈에 띄는 ‘더 워처스’는 거대한 숲 속 기이한 쉘터에 고립된 미나가 낯선 세명의 사람들과 함께 매일 밤 자신들을 지켜보는 미지의 존재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사투를 그린다.배우들의 조합도 짱짱하다. 다코타 패닝이 성인이 된 후 첫 공포 영화에 도전, 넷플릭스 인기 시리즈 ‘블랙 미러’의 조지나 캠벨이 무게감을 더한다. 출간 즉시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오른 A.M. 샤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번 작품의 티저 포스터는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기이한 쉘터의 유리창 너머 나란히 서있는 캐릭터가 눈길을 끈다.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울창하고 캄캄한 숲속 마치 쇼윈도의 밝은 불빛 아래 전시된 듯한 그들의 모습은 섬뜩한 분위기를 전하며 어떠한 이유로 이 고립된 공간에 갇히게 되었는지 호기심을 자아낸다. ‘더 워처스’는 오는 7월 극장에서 공개된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6-04 12:19 이희승 기자

[B그라운드] 현대판 카스트 제도? 고등학교 속 하이라키… 어느정도일까?

‘하이라키’ 주연 맡은 노정의.(연합)부모의 재력과 사회적 위치가 곧 ‘서열’이 된다. 상위 0.01%의 소수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군림하는 주신고등학교에 비밀을 품고 입성한 전학생, 그리고 견고한 세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과정을 담은 ‘하이라키’제작발표회가 3일 서울 장충동 앰배서더 풀만 호텔에서 열렸다.교복을 입은 10대지만 계층과 계급을 보고자란 이들의 관계는 수직적이다. ‘하이라키’라는 제목에 대해 배현진 감독은 “그들이 만든 견고한 계급 사회를 지키려는 자와 복수하려는 자의 대립을 다룬 이야기다. 사건의 발생과 해결보다는 당연하게 누릴것을 누리며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는 아이들의 성장에 집중했다”며 기존 하이틴물과의 차별점을 강조했다.극중 주신고의 퀸이자 재계를 대표하는 그룹 장녀인 재이 역할을 맡은 노정의는 ‘하이라키’에 대해 또래들과의 호흡을 출연이유로 꼽았다. “겪어보지 못한 삶의 방식과 평소에 할 수 없는 장면들이 많더라. 화려함 뒤에 비밀을 품고 있는 양면적인 인물이다. 너무 하고 싶어서 (제작진의) 연락을 자꾸 확인했을 정도”라며 극중 캐릭터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다. 노정의는 2011년 채널A ‘총각네 야채가게’로 데뷔해 올해 데뷔 13년 차. 배감독은 “현장에서 쌓인 경험과 노력들이 역할의 섬세함을 다 살리더라”며 극찬하는 모습이었다.배우 이채민(왼쪽부터), 노정의, 김재원이 3일 오전 서울 중구 앰배서더서울풀만호텔에서 열린 넷플릭스 드라마 ‘하이라키’ 제작발표회에 참석,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주신고의 질서를 뒤흔드는 의문의 전학생을 맡은 이채민은 “해맑은 웃음 뒤에 날카로움과 단단함을 가진 입체적인 인물인 강하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옳다고 믿는 길은 끝까지 걸어나가는 캐릭터”라고 말했다. 그는 노정의를 사이에 두고 주신고의 법이자 질서로 불리는 김재원과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서열 1위인 캐릭터지만 재이를 향한 순정을 감춘 인물로 “주신고에서 수업하는 수영, 미식축구, 펜싱등을 소화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는 말로 작품의 사실성을 강조했다. ‘환혼’ 시즌2, ‘빅마우스’, ‘스타트업’을 공동연출한 배현진 감독과 드라마 ‘멈추고 싶은 순간: 어바웃타임’의 추혜미 작가가 뭉친 ‘하이라키’는 7일 전세계에 공개된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6-04 11:59 이희승 기자

[비바100] 변우석의 시대, 시작!

변우석이 열열한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는 지난 28일 16회를 끝으로 인기리에 종영했다.(사진제공=바로엔터테인먼트)대세는 대세다. 서울 강남의 한 복판이지만 힙한 카페와 음식점보다 주로 개인 사무실이 많은 한적한 동네에 수많은 팬들이 빌딩을 감싸고 있었다. 1990년대 가수 서태지 혹은 일본에 한류 열품을 몰고 온 배용준 시대에나 볼 법한 클래식한 팬덤이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환호와는 거리가 있다. 2세대 아이돌부터 시작된 서포터로서의 모습을 잃지않으려는 듯 변우석이 있는 공간을 조용히 바라볼 뿐이다. 그들에게 ‘변우석=류선재’.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의 선재는 그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캐릭터였다.“솔직히 실감은 지난 달 열린 전주국제영화제 마중토크 때였어요.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다들  저를 보고 ‘선재다’ ‘선재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오롯이 캐릭터로 불리는 쾌감을 만끽했죠.(웃음) 부디 제 다음 작품까지도 그 마음이 변치 않기를. 혹시 실망하더라도 지금처럼 응원해주셨으면 하는 게 저의 솔직한 심정입니다.”그는 영화사에 길이 새겨진 ‘늑대의 유혹’ 강동원의 우산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며 손사레를 쳤다. (사진제공=tvN)본방 시청률 5% 드라마가 불러온 후폭풍은 유독 화려했다. 종영 전 열린 드라마 팝업 스토어의 굿즈는 동이 났고 팬들과 함께 관람하는 단체관람은 올해 CGV가 진행한 이벤트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며 빛의 속도로 마감됐다. 국민드라마도 쉽지 않은 대본집 출시와 더불어 극 중 선재가 활동한 그룹 이클립스의 노래는 실제 멜론 차트를 점령했다. 소감이 어떻냐는 물음에 변우석은 “두 눈을 의심했다. ‘이렇게 유명한 가수분들을 사이에 그것도 톱5 안에 있다고?’라며 계속 순위를 확인했다”고 털어놓았다.‘선재 업고 튀어’는 삶의 의지를 놓아버린 순간 자신을 살게 해줬던 유명 아티스트 류선재와 그의 죽음으로 절망했던 열성팬 임솔이 최애를 살리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2008년으로 돌아가는 타임슬립 구원 로맨스다. 시청자들에게 ‘솔선커플’로 불린 15년 로맨스와 쌍방 구원 서사, 캐릭터와의 높은 싱크로율을 보인 배우들의 열연 사이에서 변우석은 ‘월요일의 남자’로 불렸다.변우석은 선재에 대해 “소나무 같은 사랑을 하는 인물이다. 실제로도 그런 운명같은 사랑을 믿는 편”이라고 수줍게 미소지었다.(사진제공=바로엔터테인먼트)지난 1년간 선재로 살면서 “너무 행복했다”고 연신 미소짓는 변우석이었지만 사실 연기는 늘 ‘높은 산’이었다. 데뷔 후 줄기차게 떨어진 오디션, 어쩔 땐 대본 리딩까지했지만 하차해야 했던 흑역사도 있었다. 16부작 중 반도 아닌 6부 대본이 나온 상태에서 첫 촬영을 시작한 그는 이시은 작가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니에요. 그런데도 집에 오자마자 ‘이렇게 좋은 작품을 맡겨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의 문자를 빼곡하게 적었어요. 이 정도의 인기를 예상하지는 않았지만 너무 느낌이 좋았죠.”수영선수면서 고등학생, 동시에 스타면서 대학생과 30대를 오고가는 남자주인공을 섭외하기란 제작진에게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교복도 잘 어울리고 동시에 무대 위에서 빛나야 하며 또 아련한 첫사랑의 아이콘을 잘 소화해야 했다. 실제 키189cm의 변우석이 첫 미팅 장소에 나타났을 때 “내 머릿속에 있던 선재가 걸어오는 것 같았다”는 작가과 감독의 이구동성은 ‘선재 업고 튀어’를 반복재생하게 만드는 것으로 증명됐다. 드라마 종영 후 이 작가는 “늘 우석에게 ‘나에게 와줘서 고맙다. 선재가 되어줘서’라는 말을 달고 산다”며 화제성의 중심에 우뚝 선 배우에 대한 속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연기자들이 늘 고대하는 ‘본명 실종’을 오롯이 겪고 있는 그는 “월요일이 싫었던 사람으로서 ‘월요병 치료제’라는 말이 가장 기분 좋았다”고 말했다.(사진제공=바로엔터테인먼트)“어렸을 때 수학 100점을 맞은 적이 있는데 주변에서 좋아하고 칭찬해준 기억이 지금도 또렷해요. 인간은 기본적으로 그때의 기분을 느끼기 위해 노력하게 되잖아요. 또다시 100점을 맞진 못했지만 연기만큼은 ‘잘한다’를 이야기를 꼭 듣고 싶어요. 작품의 결과는 하늘에서 내려준다는 말을 믿지만 주연으로서 컨디션 조절, 발성, 감정 표현들이 부족함을 많이 느낍니다. 평소 부끄러워하지 않고 출연작을 자주 찾아보는 편인데 ‘선재 업고 튀어’는 제가 앞으로도 가장 많이 복기해 볼 작품인 건 확실해요.”공부보다 운동이 좋았던 고등학교 시절 또래보다 큰 키로 모델 제의를 많이 받았다는 그는 “화보 촬영과 더불어 영상 작업을 하면서 즐거움을 느꼈다”며 카메라 앞에서의 기쁨을 고백했다. 2016년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윤여정의 까칠한 조카로 눈도장을 찍은 그는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 ‘힘쎈여자 강남순’ ‘20세기 소녀’ ‘청춘기록’ 등 장르를 불문하고 변신을 거듭해왔다.촬영 전 수영강습을 집중적으로 받고, 대형 콘서트 장면을 위해 보컬트레이닝과 안무 연습에 매진했다는 변우석.(사진제공=바로엔터테인먼트)“아직 차기작을 결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솔직히 그 전에 받던 시나리오의 10배 정도 는 것 같아요. 로맨틱 코미디가 가장 많지만 시대극도 있고 정말 다양한 장르가 들어와서 너무 좋더라고요. 하지만 제 행복은 언제나 작은 일상에서 찾는 편이에요. 다음날 스케줄이 없을 때 하루 일정을 다 끝낸 뒤 과일을 먹으며 늦게까지 축구를 보는 게 가장 좋아요. 치맥? 술을 못 마시기도 하지만 얼굴이 붓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으니까.(웃음)”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6-03 18:30 이희승 기자

[비바100] 언젠가는 출발점에 설 이들을 위한 자립방정식 ‘나는 전주비빔 파스타를 만드는 작가입니다’

두 번째 책 ‘나는 전주비빔 파스타를 만드는 작가입니다’를 출간한 밀라노기사식당 박정우 대표이자 작가(사진=브릿지경제DB, 허미선 기자)“혼자서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일단 살고 보자’ 얘기하고 싶었어요. 저는 홀로서기 위해 세게 넘어져도 보고 절망도 해보고 실패도 해봤죠. 그런 제 이야기지만 홀로서기에 나서거나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분들 혹은 삶이 힘들어 모두 내려놓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저보다는 덜 아프기를, 빨리 일어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습니다.”서울 은평구 주택가에 위치한 밀라노기사식당 오너셰프이자 작가이며 강연가이기도 한 박정우 대표는 신간 ‘나는 전주비빔 파스타를 만드는 작가입니다’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2022년 밀라노기사식당 창업과정과 그곳을 다녀간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어서 오세요, 밀라노기사식당입니다’에 이은 두 번째 책으로 창업 등 홀로서기를 꿈꾸거나 새로운 출발점에 선 이들을 위한 자기개발서다. 이전작이 에세이에 가까웠다면 ‘나는 전주비빔 파스타를 만드는 작가입니다’는 누구나 언젠가는 맞이할 새로운 시작을 위한 자립 노하우를 꼼꼼하게 알려주는 개발서지만 ‘나를 따르라’거나 ‘이래라 저래라’ 식의 조언, 자기자랑을 늘어놓지는 않는다.나는 전주비빔 파스타를 만드는 작가입니다|박정우 지음(사진제공=예문당)‘나를 망가뜨리기 보다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만 착실하게 살자.’‘있는 척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그의 삶의 방식이 시작된 건 8살 무렵부터였다. 늦둥이 막내, 사업부도로 어려워진 집안살림, 버스비가 모자라 ‘숨을 쉬며 살고자 감행했던’ 명동나들이가 좌절된 어머니의 손을 잡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던 날이었다.목표 없는 생활, 그저 책임감으로만 하는 노력, 그 끝에서 만난 첫 후회, 나는 없이 누군가를 위해 마냥 하는 희생, 생겨버린 하고 싶은 것과 미래를 향한 비전 그리고 그 꿈을 지지하며 함께 걸어줄 동반자. ‘나는 전주비빔 파스타를 만드는 작가입니다’는 태어날 때부터 몇번을 넘긴 죽을 고비, 살아 있지만 죽고 싶다는 절망감에 빠져 살았던 유년·청소년기, 국립서울과학기술대학교 식품공학과, 성균관대학원 식품생명공학과를 거쳐 CK코포레이션즈 식품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살아보겠다 안간힘을 쓰던 청년기를 보내고 스무살 무렵부터 꿈이던 작은 레스토랑을 창업한 그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예쁜 접시 위에 맛깔스럽게 플레이팅된 음식들에 빠진 스무살부터 전주비빔밥, 순두부찌개와 강된장, 따로국밥 등 한국 고유의 음식 비법을 접목시킨 이탈리안 파스타와 더불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정겨운 사랑방 같은 공간을 꿈꿨다. 호텔조리학과에서 공부할 때도, 유명 셰프의 레스토랑에서 ‘실습교육’이라는 명분으로 열정페이를 감내할 때도, 식품공학과로의 편입을 결심했을 때도, 커피전문기업 연구원으로 근무할 때도, 도자기 수업을 받을 때도, 퇴직 후 친구의 치킨가게에서 일하며 매출을 3000만원에서 1억 5000만원으로 늘릴 때도 잊지 않고 간직했던 박정우 셰프의 꿈이었다. 그렇게 안정적이지만 ‘나’는 없는 직장생활을 마무리하고 2020년 8월 5일 서울 은평구 수색동 주택가 사이에 밀라노기사식당이라는 이탈리안·한국 퓨전레스토랑을 열었다. 두 번째 책 ‘나는 전주비빔 파스타를 만드는 작가입니다’를 출간한 밀라노기사식당 박정우 대표이자 작가(사진=브릿지경제DB, 허미선 기자)그러나 딱 열흘 뒤 8.15 광화문집회를 기점으로 창궐한 코로나19 팬데믹을 맞닥뜨려야 했다. ‘이 정도면 하늘이 날 저주하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자영업자에게는 지옥과도 같던 시간들을 지나 꾸준한 입소문으로 행운처럼 찾아온 2022년에는 가게 앞에 손님들이 줄을 늘어섰고 유재석이 이끄는 ‘식스센스’ 시리즈에도 출연하며 승승장구했다. 지옥같은 코로나19 팬데믹에도 손님들이 붐비면서 꾸준히 찾아주던 단골들이 오지 못하는 날들이 늘었다. 11시간 운영을 위해 11시간 준비시간을 들여야 하는, 신체를 쥐어짜 돈을 버는 요식업의 사업구조로 행복하지 않았고 손님들에게 소홀해지는 날들도 생겨났다.일에 함몰돼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 뻔 했다는 걸 깨닫고 2달의 휴식기를 가지고 식당운영 방식을 재정비했다. 매출 상승세 속에서 일주일에 5일, 하루 5시간 운영 철칙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자 강연과 책 출간의 기회가 찾아들었다. 서울시 골목창업경진대회 수상, 대형기업 밀키트사업 제안 등도 이어졌다.그 여정에서의 절망감, 행복과 불행 그리고 치열한 고민과 실행,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기, 눈 앞에 보이는 매출 상승세를 마다하고 추구한 것들 등은 ‘나의 이야기, 잘 살펴보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시대분석’ ‘세상에 스스로 내딛는 첫걸음, 자기관찰’ ‘언젠가 시작할 자신의 일’ ‘체계적인 준비와 끊임없는 대응’ ‘자신의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 성장’ 등 5개 파트에 나눠 담겼다.두 번째 책 ‘나는 전주비빔 파스타를 만드는 작가입니다’를 출간한 밀라노기사식당 박정우 대표이자 작가(사진=브릿지경제DB, 허미선 기자)철저한 자기 관찰부터 금전 관리, 창업 혹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해야 할 리스크 체크, 창업 후 대응 등의 경험을 담은 책은 그의 표현처럼 “자랑도, 성공법도, 조언도 아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지 보고 뭘 잘하고 좋아하는지 스스로를 관찰하고 그것이 대중들과 맞는지, 특이성을 가지고 있는지, 리스크는 무엇지 등을 가늠해 자신만의 영역을 세우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책이다.“일단 살고 보자는 마음이지만 내가 잘 만들면 혹은 손님들을 잘 대하면 늦게라도 입소문이 날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나 자신을 잃지 않는다면, 스스로가 감당하고 책임질 수 있는 자신만의 영역을 수립한다면 어떤 격랑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믿거든요. 제가 그랬으니까요.” 그 핵심은 오롯이 나로 서는 것, 탄탄한 자기 영역 수립이다. 타인이나 사회의 잣대에 맞춘 자립이 아니다. 무조건적인 자기애나 자신의 것에만 함몰되는 것과도 다르다. 시대에 대한 가늠, 냉철한 자기 객관화, 리스크 체크와 그에 대한 체계적인 준비, 다른 이들만의 영역에 대한 존중 등을 바탕으로 스스로 감당하고 책임질 수 있는 ‘자기 영역’이다. “저처럼 하라는 게 아니에요. 사람은 저마다 다르니까요. 그저 이런 방법도 있다고, 조금 덜 아프게 넘어지고 좀 더 빨리 일어나시기를 바라는 거죠.”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6-03 18:00 허미선 기자

[人더컬처]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박천휴&윌 애런슨 “누구나 언젠가는 이방인!”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창작콤비 박천휴(왼쪽)와 윌 애런슨(사진제공=CJ ENM)“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너무 상투적으로 표현하지는 않는, 조금은 이질감이 드는 정서가 아마 저희의 유니크하다면 유니크한 세계가 아닐까 생각해요.”최근 뮤지컬 ‘일테노레’ 초연을 마치고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 6월 18~9월 8일 예스24 스테이지 1관) 한국공연 5번째 시즌과 10월 브로드웨이 공연 준비에 한창인 박천휴 작가는 윌 애런슨(Will Aronson) 작곡가와 만들어가는 작품세계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창작을 같이 하기 전부터 친구였어요. 취향이나 당장 큰돈을 벌기보다 우리가 하고 싶은 걸 하자는 가치관이 비슷한 것 같아요. 그렇게 존경심이 들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다 보니 서로에게 예술적인 혹은 문화적인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좋은 음악, 영화, 소설 등을 함께 향유하며 토론하다 보니 자연스레 창작 파트너로서의 색이나 성격이 형성된 것 같아요.”◇근미래부터 1930년대, 1970년대 경성으로의 여정, 그 끝은 지금의 내 이야기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창작자 박천휴(사진제공=CJ ENM)“저희에게는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게 되게 중요해요. 한국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다면 이야기를 쓸 원동력이 잘 안 생기거든요. 지금까지의 작품은 물론 연말에 나올 신작 ‘고스트 베이커리’도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요.”미국 뉴욕에서 친구로 만나 동명 영화를 무대로 옮긴 ‘번지점프를 하다’를 시작으로 ‘어쩌면 해피엔딩’ ‘일테노레’(Il Tenore)까지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은 뮤지컬 마니아들 사이에서 ‘윌앤휴’(WillHue)로 불리며 사랑받는 창작자들이다.“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정서 자체만으로 보면 묘하게 어딘가 서양문화와 한국문화가 섞인 듯한 느낌을 받으실 거예요. 음악 스타일도 그렇고 한국 창작자와 미국 창작자가 협업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녹아드는 것들을 유니크하다고 생각해주시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박천휴의 전언처럼 “뉴욕에 오래 살고 있는 한국인, 한국에서 활동하는 미국인으로서 느끼는 약간의 이방인 혹은 외국인의 정서, 거기서 오는 어떤 외로움 그리고 이중문화적인 성격들”은 고스란히 작품 속에 녹아들어 유니크한 세계를 구축하곤 한다.윌 애런슨은 “유니크하다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식상하지 않은, 가까운 미래나 1930년대, 1970년대 등 좀 색다른 배경의 이야기를 쓰는 것을 좋아하고 저희의 목표이기도 하다”고 털어놓았다.“친숙하지 않은, 지금의 환경과 좀 다른 곳으로 갔다가 결국엔 지금의 현실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이랄까요. 친숙하지 않은 것에서 친밀한 것을 찾아내는 경험을 추구하는 것 같습니다. 관객분들이 극장에서 공연을 보고 떠나실 때 익숙하진 않지만 그 경험이나 감정 속에서 지금의 현실과 접점을 찾기를 바라고 있죠.”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창작진 윌 애런슨(사진제공=CJ ENM)근미래의 한국, 제주를 배경으로 한 ‘어쩌면 해피엔딩’이 그렇고 일제강점기 경성을 배경으로 서양고전 장르인 오페라를 소재로 한 ‘일테노레’가 그렇다. 그리고 올 연말 선보일 ‘고스트 베이커리’ 역시 197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양과자점에 대한 꿈을 키우는 여성의 이야기다. “사실 공연을 본다는 행위 자체가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돌아보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극장이라는 곳에서 2, 3시간 동안 다른 인물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삶이라는 게 저런 거지’ ‘나도 저럴 수 있지’ 혹은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등의 의미를 찾게 되거든요. 그게 공연을 보는 즐거움이기도 한 것 같아요. 1930년대, 1970년대 경성이든, 2060년 근미래든 호기심을 가지고 함께 떠났다가 결국 ‘이건 내 얘기’라고 느끼게 만드는 게 저희의 목표죠.”◇‘음악사랑’ 교집합이 만들어낸 ‘어쩌면 해피엔딩’의 재즈, ‘일테노레’ 오페라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창작콤비 박천휴(왼쪽)와 윌 애런슨(사진제공=CJ ENM)“음악을 사랑하는 게 저희의 공통점이에요. ‘어쩌면 해피엔딩’의 올리버가 처음엔 트럼본을 연주하는 설정이기도 했어요. 윌이 고등학교 때 재즈밴드활동을 하며 트롬본을 연주했고 저는 재즈라는 장르 자체를 굉장히 좋아해서 대학교 때 트럼본을 연주하는 사람이 주인공인 단편소설을 쓰기도 했죠.”박천휴의 말처럼 그렇게 두 사람이 좋아하는 음악과 창작활동, 경험 등 교집합은 ‘어쩌면 해피엔딩’에 자연스레 녹아들었다.“해피엔딩인 내밀한 사랑이야기를 써보자”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한 ‘어쩌면 해피엔딩’은 박천휴가 좋아하던 영국 록밴드 블러(Blur, 데이먼 알반·알렉스 제임스·그레이엄 콕슨·데이브 로운트리) 보컬 데이먼 알반(노래Damon Albarn)의 솔로곡 ‘에브리데이 로봇’(Everyday Robots)에서 영감받으며 본격화됐다.“다양한 인간 군상을 로봇에 비유한 노래인데 그 안에 어떤 외로움의 정서가 짙게 느껴졌어요. 문득 되게 인간적인 이야기를 로봇들을 주인공으로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죠.”그렇게 ‘로봇이 주인공인 작은 이야기’라는 아이디어는 윌과 공유되며 낡아서 버림받은 헬퍼봇들의 사랑이야기로 완성돼 무대에 올랐다. ‘일테노레’ 역시 “클래식을 전공하고 독일에서 오페라를 공부한 윌의 장점을 극대화해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면 좋겠다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었다”는 박천휴의 바람에서 시작됐다.“그걸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떠올리다 보니 한국에서 최초로 오페라를 공연한 사람을 찾아보게 됐고 윌이라면 이 이야기를 음악으로 너무나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작품마다 음악적 장르가 중요한 소재로 들어갔던 것 같아요.”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창작자 박천휴(사진제공=CJ ENM)윌 애런슨은 “사실 ‘일테노레’ ‘어쩌면 해피엔딩’ 뿐 아니라 뮤지컬적으로나 음악적으로 특별하고 유니크한 장르를 만들어내는 자체를 굉장히 좋아한다”며 뮤지컬 ‘스위니 토드’(Sweeney Todd: The Demon Barber of Fleet Street), ‘하데스타운’(Hades Town), ‘헤어스프레이’(Hair Spray), ‘광장의 불빛’(The Light in the Piazza) 등을 예로 들었다. “이들의 음악들은 완전히 다른 세계죠. 음악을 들으면서 뭔가 유니크한 세상 속으로, 이야기나 캐릭터들에도 빠져드는 느낌이거든요. 박천휴 작가와 일을 할 때도 그런 유니크한 세계를 구현하고 싶어서 사운드, 이미지, 이야기를 고민해요. 단지 음악 뿐 아니라 특정한 세계에 빠져들 수 있게끔 스토리, 캐릭터 등 전반적인 구성에 대해 생각하죠.”◇브로드웨이 입성 앞둔 한국 창작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창작진 윌 애런슨(사진제공=CJ ENM)“한국에서 트라이아웃 공연을 하고 2016년 말 뉴욕에서 업계 관계자들만을 모시고 낭독공연을 진행했어요. 그 낭독공연 다음날 제작자 제프리 리처드(Jeffrey Richards)로부터 ‘브로드웨이로 가져가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죠.”‘비틀주스’(Beetlejuice), ‘매디슨카운티의 다리’(The Bridges of Madison County) 등의 제프리 리처드는 토니어워즈를 8회나 수상한 브로드웨이 대표 제작자다. 박천휴가 언급한 제프리 리처드의 제안 후 2020년 트라이아웃 공연을 했고 그해 말 정식으로 무대에 오르기로 했던 계획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무기한 연기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두 번의 워크숍을 거쳐 드디어 올해 10월 브로드웨이에 입성한다.“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의 설정도 같아요. 한국의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올리버의 옛주인인 제임스도 한국인이죠. 주인공들이 로봇이다 보니 연기할 배우들의 인종을 특정하진 않았지만 제임스는 무조건 동양인이어야 한다는 건 변함 없어요. 올리버가 재즈음악을 좋아해서 재즈 레코드가 등장하고 반딧불이나 아날로그 정서들도 게속 유지되죠. 올리버도 소년스러움이 강조되는 역할 그대로 가고 그 이미지에 맞는 대런 크리스(Darren Criss)라는 배우가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됐죠.”“무대가 좀 커지다 보니 좀더 미래적이게 느껴질 수는 있을 것”이라는 박천휴의 말에 윌 애런슨은 “비주얼적으로 다른 점은 (올리버와 클레어가 옛 주인인 제임스가 살고 있는) 제주도로 가는 길”이라며 “한국에서는 터널로 가는데 미국에는 터널이 없기 때문에 페리를 타고 간다는 설정 하나가 다르다”고 귀띔했다.“한국에서는 제임스가 재즈가수까지 같이 연기하지만 브로드웨이 버전에서는 분리시켰어요. 그래서 음악적으로 좀 달라지는 것들이 있죠. 한국버전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있고 미국 버전에서는 4곡 정도가 달라집니다.”‘◇차기작 ‘고스트베이커리’ 그리고 이방인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창작자 박천휴(사진제공=CJ ENM)“1970년대를 배경으로 돈도, 명예도, 친구도, 연애도 필요 없이 오로지 한국 최고의 양과자점을 만들어 성공하겠다는 꿈밖에 없는 여주인공 순희의 이야기예요. 가진 돈을 탈탈 털어서 몇십년 동안 비어 있던 허름한 가게를 빌려 양과자점을 차리는데 거기서 예상치도 못한 아주 고집센 누군가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두 사람의 차기작으로 올 연말 공연될 ‘고스트 베이커리’에 대해 이렇게 전한 박천휴는 “저희가 좋아하는 ‘스위니토드’나 ‘하데스타운’ 같은 다크한 아이디어들이 있었지만 밝고 따뜻한 작품들을 먼저 선보이게 됐다”며 “이 작품은 이전작들보다는 좀더 어른스러운 느낌들이 있고 후반부에는 다소 어두운 면들도 나오게 된다”고 털어놓았다.이에 윌 애런슨은 “초반에는 우리도 어두운 걸 해볼까 하는데 결국 이런저런 따뜻한 감성이 들어가게 된다”고 말을 보탰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창작진 윌 애런슨(사진제공=CJ ENM)“인생이라는 게 슬픈 일도 있지만 즐거움도 포함하고 있잖아요. 재밌고 즐겁기도 하지만 반면 슬프고 어둡기도 한 면면들을 담고 있다 보니 처음에는 어떤 장르를 써보자 했다가도 결국 모든 감정을 포함하는 작품으로 완결이 되더라고요.”이에 대해 박천휴는 “전작인 ‘일테노레’ 중 ‘인생은 되게 비극적이지만 딱 그만큼 아름답다’는 대사가 저희가 이야기나 음악을 만들 때의 생각과 비슷한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미국인인 윌 애런슨이 한국에서 뮤지컬 창작자로 활동하면서, 한국인인 박천휴가 미국에서 오래 생활하면서 느낀 ‘이방인’으로서의 감정들은 두 사람이 추구하는 유니크한 세계의 바탕이기도 하다. 이에 박천휴 작가는 ‘일테노레’ 중 오랫동안 넣고 싶었지만 결국 들어가지 못한 “꿈이 멀리 있는 사람은 모두가 이방인이네”라는 대사를 언급했다.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창작콤비 윌 애런슨(왼쪽)과 박천휴(사진제공=CJ ENM)“그런 정서를 저희가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날로그도 결국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데 대한 그리움이잖아요. 그런 것들이 작품에 녹아난 게 아닌가 싶어요.”윌 애런슨은 “모두가 어떤 순간에는 ‘나 혼자’라고 느낄 때가 있다”며 “실제로 외국에서 이방인인 채로 혼자 있을 때 그런 느낌이지만 ‘이방인’임을 깨달아서 좋은 점도 있다”고 밝혔다.“누구나 느끼는 감정이지만 집 혹은 익숙한 데서는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를 때가 있어요. 그런데 막상 혼자이거나 이방인이라는 감정을 느낄 때 혹은 외국에 혼자있을 때는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알겠다’ 싶어지거든. 설명 혹은 근거가 생긴달까요. 그래서 집에서 멀리 떨어지거나 혼자 있는 시간이 되게 가치 있는 것 같아요.”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6-01 17:17 허미선 기자

[비바100] 골든티켓 목매는 한국, 골든타임 놓치면 사멸

(그래픽=백승민 기자)우리가 선택한 ‘합계출산율 0.72명 대한민국’의 암울한 미래를 조망한 책이다. 저자는 대한민국이 빠르게 ‘사멸(死滅)’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말한다. ‘천천히 가난해지는 삶’이 우리의 가까운 미래라고 꼬집는다. 특히 이런 현실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 왔으며, 지금도 우리는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말기 암 환자처럼 아무 것도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도 죽음으로 치닫는 대한민국에 ‘역전’이 가능할 지를 따져본다.자살하는 대한민국|김현성|사이드웨이◇ 공공을 위해 지출한 ‘돈’이 부족한 한국인들저자는 한국이 죽어가는 원인이 ‘국민들이 돈이 없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자기 생활수준 유지가 어려운 게 아니라 공동체 유지에 자기 지갑을 열 돈도, 의지도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물가까지 비싸니 공동체를 위한 지출에 인색할 수 밖에 없다. 역설적으로 지나치게 낮은 사회간접자본 비용과 낮은 에너지 및 서비스 물가도 한 몫 한다. 반면에 생필품 가격은 너무 비싸다.저자는 “낮은 사회간접자본 및 에너지 물가로 높은 식료품 물가를 지탱케 하는 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필연적으로 공공부분 적자가 누적될 수 밖에 없고, 이를 효율화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절대적으로 높은 사교육비도 문제다. 특히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과하다. 이런 구조가 지나치게 오래 지속되니, 조금만 손을 보려해도 강력한 심리적 저항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서울 수도권 독식의 후유증서울과 수도권은 ‘한국의 모든 것’이다. 전체 국민의 절반이 사는데, 70%가 넘는 이주 희망자까지 더해지면 심각성이 더 크다. 돈과 좋은 일자리도 독식하고 있다. 심지어 제조업도 수도권 독식이 강고하다. 전체 제조업 부가가치의 65%를 담당하는 반도체, 2차 전지, 디스플레이, 자동차 등 10대 산업에서 수도권이 총 27%의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반도체는 수도권 생산 점유율이 80%에 이른다.서울·수도권 집중이 사실상 한국 공동체의 물리적 소멸에 거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그 와중에 메가시티와 행정수도 구상은 사실상 좌절되었다. 그나마 충청권 메가시티가 유일하다. “비수도권에 남은 것은 관광 밖에 없다”는 자조의 목소리도 나온다. 무작정 ‘지방분권’만 외치다 소프트웨어 파워마저 빼앗긴 꼴이다. 저자는 생산성 높은 수출 대기업이 지역에 자리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모두가 가난한 이유(연합)한국의 노동생산성은 OECD 주요 45개국 중 32위에 그친다. 하지만 제조업만 떼어보면 세계적인 수준이다. 문제는 우리 고용 구조가 서비스업 위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비스업은 금융 등 일부를 제외하면 모두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해당 산업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니 임금이 낮고 이는 다시 낮은 생산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다.지적재산권 수출이 활발한 일본과 달리 한국은 저 부가가치 운송업에 서비스 수출을 의존한다. 좁은 내수시장의 태생적 한계 탓에 내부 경쟁은 격화되고, 자영업 비중까지 높아 낮은 생산성이 지속된다. 도소매 및 숙박음식업, 보건 및 사회복지업, 교육서비스업의 3대 주축 업종이 모두 영세하다. 생산성을 높일 기반이 없으니 아무리 해도 계속 가난하다.저자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지갑을 열어야 사회안전망 확충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런 거의 유일한 집단은, 수도권에 살면서 좋은 교육을 받고 높은 생산성을 지닌 수출 대기업 종사자들이라고 말한다.◇ 노인들이 가난할 수 밖에 없는 이유왜 우리 노인들은 빈곤할까. 안정적인 노후를 보낼 정도의 자산축적을 이루지 못한 채로 일터에서 쫓겨나기 때문이다. 노인빈곤율 40%가 넘는 이유도 주택 자산에 비해 금융자산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청년과 비슷한 수준의 생활비가 필요함에도 유일한 자산인 주택을 절대 포기하지 못하니, 그 구조 안에서 그대로 늙어갈 수 밖에 없다.우리 노인들은 평균 73세까지 근로하길 원한다. 연금을 통한 소득 대체는 언감생심이다. 생명보험사들이 연금보험보다 종신보험을 주력으로 하는 것도 미래에 잠재적 문제가 될 수 있다. 저자는 “한국에선 노인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는데 필수인 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이라는 3층 연금제도가 심각하게 미비하고, 당분간 개선도 쉽지 않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국민연금은 절대 고갈되지 않으며, 국민연금 적립금도 전혀 걱정할 수준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나아가 청년들이 노인들에게 퍼주고 나중에 받을 돈이 없다는 주장은 사기이자 정치적 선동이라고 비판한다. 이런 정치적 주장들이 3층 연금을 통한 합리적인 노후 보장에 신경쓰기보다 가상화폐 같은 고위험 자산을 선택케 하는 부작용을 낳는다고 일갈한다.◇ 한국에서 가장 비싼 결정 ‘결혼’우리 혼인건수와 출생아 수의 상관관계는 0.938에 이른다. 저출산이 곧 혼인 감소다. 출산을 미래의 경제적 이득을 축소시키는 선택지라고 믿기에 결혼을 않는다. ‘소득’이 있어도 축적된 ‘자산’이 없으면 결혼이 불가능하다. 그릇된 지원정책도 한 몫 한다. 수많은 대출지원 제도들이 ‘부부합산소득’ 같은 황당한 기준에 묶여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의 디딤돌 대출은 30세 이상 미혼자와 결혼한 부부의 대출가능 소득 기준이 연 6000만 원으로 같다. 맞벌이 신혼부부가 주택청약 우선공급을 받으려면 1인의 소득이 도시노동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의 100% 이하여야 한다. 근로장려금 제도도 단독 가구는 소득 2200만 원 미만부터 지원받지만, 맞벌이는 3800만 원 미만이다. 이러니 결혼은 손해가 나는 선택지가 된다.모두 수도권에 살고 싶어하니, 재산이 없으면 결혼도 불가능하다. 여성은 생애주기 소득도 출산 이후로 현격히 떨어진다. 남성 취업률은 30대 후반에 91%까지 높아졌다가 54세까지 87% 안팎이 유지되지만, 여성은 20대 후반 70%를 정점으로 30대 후반에는 58% 안팎까지 곤두박질친다. 54세에도 66% 정도 밖에 회복 못한다. 부모 재산이 더욱 중요한 변수가 되고 결혼 회피 경향은 심화된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극심한 경쟁 압력저자는 우리가 높은 경쟁 압력에 비해 빈약한 사회 안전망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때 발생하는 것이 가성비만을 추구하며 ‘손해를 참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 그리고 불특정 다수를 향한 범죄의 증가라고 말한다. 개개인의 이기심을 증폭시키는 사회적 토양이 축적되면서 효율성과 이기심 밖에 남지 않는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불행과 증오에 중독된 공동체’라고 표현했다.시험을 통과해야 기득권을 얻고, 경쟁에서 이겨 쟁취해야만 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500년이 넘도록 살고 있다. 그것이 국가에 이롭다는 논리가 우리 정신세계를 지배해 왔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시대는 지났다. 2022년 서울대 신입생 중 10.4%가 강남·서초구 출신이며, 두 지역에서 전체 서울지역 신입생의 28.8%가 나왔다. 경제력=입시 성적인 사회다.경쟁 제도에 가장 잘 적응하는 사람만이 승자가 되는 한국식 능력주의가 만연해 졌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배려도 등한시된다. 약자가 약자를 미워하는 체제가 만들어지고 있다. 사회적 약자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같은 처지의 대상들에게 더욱 강한 반감을 지니는 모순이 고착화되는 것이다.◇ 모두가 조금씩 가난해지는 나라… 해법은?(사진출처=게티이미지)인구 감소는 곧 가난함으로 이어진다. 인구가 줄어 수요가 줄면 소비재들을 비싸게 수입해야 하니, 다 같이 가난해질 수 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려면 국가가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꾸준히 유지되어야 하고, 내수시장을 메우고도 남을 정도의 해외시장이 필요하다. 서비스업의 저 생산성 구조도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정부의 재정 부담도 준 조세 같은 형태로 민간에 전가되지 않아야 한다.인구 감소가 불러올 ‘사회적 쏠림’도 우려된다. 수도권 쏠림에 이들 지역구만 계속 증가하면 자칫 수도권의 이해관계만 중시될 위험이 크다. 인구 감소는 또 국방력 감소를 야기해 한반도 리스크로 경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인구 문제를 해결할 가장 현실성 있는 미래 대안은 ‘이민’이지만 비 선진국 중심의 이민 정책은 자칫 또 다른 저 생산성 집단을 만들어 사회적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저자는 “소수만이 성취 가능한 사회적 성공에 집착하는 ‘황금 티켓 증후군’ 극복이 과제”라고 말한다. 정부 지출도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한다. “인구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재정 건전성이 얼마나 의미가 있느냐”가 되묻는다. 미래에 쓰기 위해 지금 아끼는 선택 보다는, 미래 세대의 수를 늘리거나 그들의 생산성이라도 보전하는 적극적인 투자가 더 바람직하다고 강조한다.저자는 두 가지 해법을 제시한다. 첫째, 황금 티켓을 얻은 사람을 포함해 ‘증세’에 대한 국민적 합의다. 둘째, 정부 재정을 적극 확대하고, X세대와 밀레니엄 세대의 잉여 자본을 개인의 국채 보유로 유도해 자산 축소에 대비하는 것이다. 그는 “공동체의 성공적인 운명은 누군가의 승패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기꺼이 지갑을 여는가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2024-06-01 07:00 조진래 기자

[人더컬처] 차범석 탄생 100주년 연극 ‘활화산’ 윤한솔 연출 “원작 그대로도 지금과 공명할 수 있기를!”

50년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는 ‘활화산’ 윤한솔 연출(사진제공=국립극단)“첫 인상은 이랬어요. 여성을 어떤 변화의 주체로 내세워 새마을운동을 선전하기 위한 목적극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흥미로웠어요. 또 하나는 1974년에 정권의 특정 사업을 선전하기 위해 만든 공연의 선전성, 프로파간다가 2024년에도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어떤 지점에서 가능한지 궁금했어요. 지금의 관객들에게 프로파간다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을 갖춰야 하는지 질문을 시작했죠.”윤한솔 연출은 1974년 초연 후 50년만에 무대에 오른 차범석 희곡의 연극 ‘활화산’(6월 17일까지 명동예술극장) 극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한국적 사실주의의 거장 차범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활화산’은 그가 오십줄에 들어서던 1973년 집필해 이듬해 이해랑 연출과 백성희, 장민호, 손숙, 신구 등의 출연으로 국립극단 제67회 정기공연으로 초연됐다.연극 ‘활화산’ 공연장면(사진제공=국립극단)급진적인 경제개발 계획이 추진되던 때의 농촌 마을, 한때는 떵떵거리던 양반가문이었지만 쇠잔해 가는 이씨 문중 이야기다. 빚까지 내야하는 분수에 넘치는 일이 돼 버린 허례허식, 시대착오적인 가부장제와 구습 등에 맞서 팔을 걷어 부친 며느리 정숙(강민지), 천지분간 못하고 큰소리만 치는 남편 상식(구도균), 그런 그를 못믿으면서도 지원하는 집안의 수장 이노인(정진각)과 그의 아내 심씨(백수련) 등의 이야기다. “원작상 4, 5막이 되면 과거 모습에 젖어 몰락해 가던 집안이 정숙에 의해 변화하기 시작해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새마을운동의 어떤 기조들을 정숙이 계속 얘기해요. 자료조사를 하다 보니 당시 대통령 혹은 정부 문건에 나오는 단어들과 문장들이 정숙의 입에서 나와요.”그렇게 전반부 사실주의적으로 펼쳐지던 극은 2막부터 전혀 다른 양상을 띤다. 세상의 변화, 집안의 변화를 극 형식 변화를 통해 보여줌으로서 다른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연극 ‘활화산’ 공연장면(사진제공=국립극단)“마지막 장면은 집단 광기 같은 걸 좀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정숙의 이야기는 옳아요. 아무리 옳아도 결국 누군가는 소외되죠. 변화를 위해 또 누군가는 배제돼야 하는 과정들이 현대사회에서는 어떻게 읽힐지 궁금했던 것 같아요. 현대 희곡이 재밌는 건 당시 시대상들을 담은 상황이나 장면들을 2020년대에 맞게 수정하지 않아도 공명하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는 겁니다. 시대착오적인 인식들이 발생하는 지점들을 그대로 두는 기법으로 접근한 것 같아요.”이번 ‘활화산’에서 눈에 띄는 인물들은 한국전쟁으로 전사한 장남의 남겨진 4남매 중 어린 원례(장호인), 식(박은경), 길례(서예은)다.윤 연출은 “처음 읽었을 때 제 시선을 끌었던 것 중 하나가 그 아역 세명이었다”며 “거기서 벌어지는 일들을 목격하게 되는 인물들인데 계산해보면 지금의 386세대 또래”라고 설명했다.연극 ‘활화산’ 공연장면(사진제공=국립극단)“그 아이들의 세대를 봤을 때 여러 가지 생각들이들어서 눈여겨 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아이들이 무대 위에서 어른들의 행동들이나 상황들을 관찰하고 적극적으로 반응하게 해보자 했죠.”윤한솔 연출에 따르면 초연 당시 ‘활화산’에 대한 혹평은 굉장했다. 그 혹평의 대부분은 예술의 도구화에 대한 것이었다. 이는 윤 연출이 하고 싶었던 “개인들만 남은 지금 사회에서 집단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프로파간다가 가능할까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었다.50년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는 ‘활화산’ 윤한솔 연출(사진제공=국립극단)“변화의 중심인 여성이 지금도 달라지지 않은 당대 정치, 구습 등에 대한 비판들을 하죠. 일종의 도화선이 되는 사건, 목적으로서 목적을 달성하게 하려는 연출이었어요. 새마을운동을 언급하진 않지만 ‘우리도 저렇게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하게 하죠 하지만 정작 제가 하고 싶었던 건 ‘바뀌어야 한다’ 뒤에 ‘그런데’가 붙는 거였어요.”정숙이 변화를 주장하는 장면에 차분한 목소리로 녹음한 정숙의 내레이션을 시차를 두고 동시에 진행시킨 것도 그래서다. 프로파간다를 위한 연설과 그 연설에 감동하는 대중들을 표현한 이 장면은 변화에 대한 질문들이 이어지길 바라는 연출 의도이기도 하다.“광기 어린 장면에서 흐르고 있는 대사들을 좀 천천히 다시 들어보게 하는 거죠. 무슨 말을 어떻게 하는지, 그 말들이 장면에서 어떻게 광기로 변모되고 있는지, 집단적인 움직임에 내가 동의하고 동참하는 과정들을 들여다보게 함으로서 개혁과 세상이 변화하는 양상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었으면 했어요. 그렇게 공연이 끝나고 극장문을 나서면서 마지막 광기를 어떻게 읽어야 하고 그 광기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배제되는지 등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를 바랐습니다.”‘더 발전할 수 있다’거나 ‘우리가 해야 한다’ 등의 논리와 그 논리에 깔린 저의, 그렇게 설득된 대중들이 어떤 식으로든 움직인 결과가 ‘지금’이다. 변화 과정에서 이어지는 질문과 그 지점들을 눈여겨 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신문 기사의 한 문장을 곁들인 데 대해 윤 연출은 “그게 희망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스스로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대한 알 수 없는 지점에 대한 질문이 너무 궁금했던 것 같아요. 사회 문제를 얘기하는 동시에 내가 그 사회의 일부인지를 의심하게 되는 그 지점이요. ‘이 사회가 이렇다’고 얘기할 때 나도 그 일부인지를 서로 의심하게 되고 혹시나 아닐지도 모른다는 공포 같은 게 생기는 감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키스 역시 관계라는 측면에서 처음 회복되는 장면인데 어색해요. 혼란스럽게 하는 거죠. 그렇게 원작 그대로 2024년에 물음표를 던지는 겁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5-31 18:30 허미선 기자

[B코멘트] 연극 ‘연안지대’ 김정 연출 “내 이름이 모두의 이름, 내 아버지가 모두의 아버지가 되는 ‘지금’ 여정”

연극 ‘연안지대’ 김정 연출(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전쟁이나 어떤 거대한 재난 혹은 폭력으로 인해 희생된 사람들은 그 실체들이든 이미지들이든 사라져가잖아요. 결국 남는 것은 무엇인가 했을 때 벽에 새겨지지도 않은 채 없어져 버린 이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지점에서 ‘내가 살아 있었다’ ‘내가 사람이었다’ ‘내가 존재했었다’고 이 문화 혹은 사회에 남길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이름 아닌가 싶어요.”연극 ‘연안지대’(6월 14~30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의 김정 연출은 극 중 ‘이름’의 상징성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그는 “아무리 강하고 약한 인간이라도 모두에게 남는 것은 결국 이름뿐”이라며 “그 이름들이 서서히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지고 또 다른 희생자들이 그 이름을 밀어내곤 한다”고 부연했다.연극 ‘연안지대’ 연습 장면(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이 극에서는 조제핀(조한나)으로 대표되는, (떠돌며 전화번호부에 사라져버린 이름을 적고 부르며) 이름을 간직하려는 의지를 가진 혹은 누군가를 잃어버린 사람들로 인해 호명되어지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원작에 있는 이름들을 하나도 빼지 않고 다 외워서 부르고 있죠. 그것이 멀리서부터 누군가에게 불려져 무대로 찾아왔을 때 주는 이상한 소름돋음이 있더라고요.”이어 “그 부분들이 작가의 머릿속에서 써낸 게 아니라 주변 사회에서의 조각들을 가지고 와 모든 배우들과 토론하고 같이 만드는 작업 과정에서 나온 굉장히 중요한 장면”이라고 말을 보탰다.연극 ‘연안지대’는 ‘화염’ ‘숲’ ‘하늘’로 이어지는 와즈디 무아와드(Wajdi Mouawad) 전쟁 4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이다. 이 4부작 중 ‘화염’은 연극으로, 드니 빌뇌브(Denis Villeneuve) 감독의 영화로 소개됐던 ‘그을린 사랑’의 원작이기도 하다.연극 ‘연안지대’ 포스터(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와즈디 무아와드는 레바논 태생의 캐나다 극작가로 그 스스로가 레바논 내전으로 프랑스, 캐나다 등을 떠돌며 겪었던 전쟁의 상흔들을 고스란히 담은 작품들로 주목받았다.‘연안지대’ 역시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아버지 이스마일(윤상화)의 죽음, 그 아버지의 시신을 묻을 땅을 찾아 떠난 아들 윌프리드(이승우)의 여정을 따른다.“극 중 제 아버지를 죽게 만든 아이 아메(이미숙)가 ‘어차피 그런 것들은 다 잊혀지고 우리 이름까지도 다 불태워질 것’이라면서 무너지는 장면이 있어요. 한데 모여 떠돌아다니는 아이들도 결국은 자신있어서가 아니라 겁이 나기 때문에, 언젠가는 본인들도 부모들, 친구들처럼 사라져 버릴 거기 때문에 붙드는 것 같아요.”그 여정 중 마주하는 전쟁의 참상, 전쟁에 내몰린 이들의 상실감과 죄책감, 죽은 아버지가 남긴 편지를 통해 알게 된 진심 등으로 상처 받은 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으며 위안받고 성장하는 이야기다“사실 모여있다고는 하지만 이들도 폭탄 한번 터지면 끝나요. 오히려 그렇게 소란스럽게 모여 다니다 보면 이 사회에서 언제든 제거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되잖아요. 그렇게 한치 앞도 모르는 아이들, 가장 약한 존재들이 뭉쳐 다니며 아버지가 묻힐 땅을 찾는 여정에서 성장하는 이야기 같아요. 그래서 놀랍죠. 굉장히 현재성이 느껴진달까요.”존재조차 희미했던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하고 장례를 치르겠다고 길을 떠난 윌프리드의 개인사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그 여정 중에 만나는 엄마 잔(최나라)과 아버지 이스마일의 사랑, 엄마의 친척들과 영화감독(강신구), 저마다의 사연들로 몰려 다니는 조제핀, 아메, 시몬(윤현길), 사베(공지수), 마시(정연주) 등을 통해 전쟁의 참상, 사회적 문제를 아우르다 또 다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연극 ‘연안지대’ 연습 장면(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이 여정에 대해 김정 연출은 “로드무비라는 것은 뭘 잃은 채 힘들거나 포기하고 싶은 혹은 내 한계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경험들을 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며 “심지어 좋은 곳으로의 여행이 아닌, 척박하고 파괴되고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아주 공포스러운 곳으로 가는 윌프리드가 죽어서야 만난 아버지를 절대로 놓지 못하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그래서 배우(이승우)랑 상의 끝에 (아머지 이스마일의 시체 더미를) 내려놓지 말자고 했어요. 한번 안은 아버지를 내려놓지 않는 상징이 굉장히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렇게 품에 안았던 더미를 풀어헤칠 때야 문드러진 존재로서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 그제야 아버지를 만져주는 아들의 행위가 굉장히 중요했죠.”김 연출은 “우리나라 장례 문화라는 게 사람을 보내는 느낌이 들지 않는, 되게 처참하다는 생각을 한다”며 “결국 저 외롭고 쓸쓸하고 조막만해져 문드러져 버린 존재를 눈물로, 노래로, 울음으로 혹은 외침으로 보내주는 이 행위 자체가 이 연극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을 보탰다.연극 ‘연안지대’ 연습 장면(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더불어 전쟁으로 희생된 모든 사람들에 대한, 치러야할 장례가 얼마나 많은가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결국 (이스마일의 시체를 감싼) 이 더미 자체가 모두의 아버지가 돼 가는 과정이거든요. 처음엔 윌프레드의 아버지였지만 아이들이 저마다의 상처를 밖으로 내놓는 순간부터 개인의 아버지가 아닌 모두의 아버지죠.”이어 “연습은 뼈로 하고 있지만 실제 무대에서는 문드러진 어떤 상태, 누구든 죽으면 그렇게 될 말라붙은 미라 같은 형태의 소품이 등장할 것”이라 귀띔했다.연습실에서 활용하고 있는 전신 해골이든, 실제 무대에 올려질 미라 형태의 소품이든 누군가로 특정할 수 없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사실 엄청 고민을 했어요. 그냥 더미로 충분한가, 사람으로 할까…결국 그 더미를 풀어헤쳤을 때 실체가 나오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좀 번거롭고 어려울 수도, 다소 충격적일 수는 있죠. 하지만 공격적이고 그로테스크하더라도 그건 실체이기 때문에 극 진행과정에서 접한 수많은 증언들로 흔들리는 관객들을 파고들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겠다 싶었죠.”그리곤 “거기서부터 윌프리드는 개인 윌프리드가 아니라 돌아가신 분들을 장례치러주고 대신 울어주는 어떤 존재”라며 “그 여정을 통해 심플하고 원시적인 힘이 있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개인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하고 나약한가, 그렇기 때문에 얼마나 보호해야 되는가를 두고 우리는 계속 싸워 왔어요. 하지만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그런 싸움이 되기도 전에 이미 돌아가신 분들, 희생자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그런 분들을 과거로부터 한 사람 한 사람 불러와서 배우들과 스태프들, 심지어 이 공연을 보러오신 관객분들 앞에서 장례를 치러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여러 사람의 상징화가 아니라 눈 앞에 실존하는 어떤 앙상한 존재의 장례요.”연극 ‘연안지대’ 출연진과 김정 연출(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이어 “그런 면에서 와즈디 무아와드도 이 작품을 쓴 게 아닐까 생각한다” 밝힌 김정 연출은 “우리의 아픔을 대신 느껴주고 누군가는 객석에서 눈물을 흘리고 마음 아파 하는 자체가 우리가 강렬하게 링크돼 있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저마다 떠올리는 사람도 다 다를 거예요. 각자의 유전자, 시선 안에서 저마다의 시신을 안고 장례를 치러주는 그런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사회적인 폭력, 재난 혹은 전쟁이라는 것이 왜 불필요하고 사라져야 하는지에 대한 얘기는 결국 단 한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귀한가, 그 한 사람을 위해 울어줄 수 있는 사회가 얼마나 중요한가인 것 같거든요.”하지만 “지금은 말로서, 이성으로, 논리로서, 구조로서 그런 얘기를 하거나 감각하기 어려운 세상”이라며 “그래서 연극 무대에서 눈앞에 실제로 들이밀어서 이렇게 나약해진 존재가 얼마나 귀중했는지, 우리가 얼마나 울어줄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를 일깨우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연극 ‘연안지대’ 연습 장면(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이스마일은 외롭디 외롭고 초라한 삶을 대표하는 개인이에요. 어쩌면 완전히 구석진 데 존재했다 사라져간 개인을 대표하는 인물이죠. 영웅적인 서사가 아니에요. 홀로 슬픔 속에 떠돌아다니다 외롭게 벤치에 앉아서 똥오줌을 지리고 죽어버린 아버지에 대한 얘기죠. 그런 인물, 가장 보잘 것 없이 보이는 삶을 가장 소중하게 장례치러주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입니다.”이는 어쩌면 길고도 긴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 이태원 참사, 어지럽고 첨예한 갈등, 갈라치기와 가짜뉴스가 판치는 사회상 등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지금에 절실하게 필요한 여정인지도 모른다.“모든 이슈들이 들끓고 있는 이 한국 사회, 서울 한복판에서 개인의 장례를 치른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 그리고 연극의 방식으로,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 방식인 누군가의 눈물로, 외침으로, 비명으로 한다는 것이 너무 중요하죠. 저희 모두에게 필요한 과정인 것 같아요.”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5-31 18:00 허미선 기자

[B그라운드] 재개봉 하는 '태극기 휘날리며', 장동건 "아들과 극장갈것"

극중 장동건은 동생을 징집해제 시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진태’ 역을 맡았다. 전쟁의 소용돌이 안에서 점차 광기를 더해가는 모습이 남과 북으로 나뉘는 비극위에 아로 겹친다. (사진제공= 와이드릴리즈㈜, ㈜제이앤씨미디어그룹)역시 의리의 장동건이었다. 30일 오후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25 전쟁을 배경으로 두 형제의 갈등과 우애 그리고 전쟁의 비극을 그린 영화다. 올해로 영화가 개봉 20주년을 맞은 가운데 롯데시네마에서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을 결정했다. 당시 제작비 170억원이란 엄청난 돈이 투입, 한국 영화사상 최단기간 천만 관객 돌파 등의 신기록을 세우며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 영화 ‘쉬리’ ‘은행나무 침대’ 를 만든 흥행메이커였던 강제규 감독의 작품 중 수작으로 꼽힌다.강제규 감독은 “ 우리 역사 속에서 우리가 꼭 건드리고 얘기하고 같이 공유하고 그래야 하는 무언가는 꼭 있다고 본다”고 말문을 열며 “그 중에 ‘태극기 휘날리며’가 한국전쟁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어떻게 변해갈지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역할을 앞으로 10년, 20년 뒤에도 꼭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선 장동건은 당시에는 밝히지 않았던 이야기 보따리를 풀며 재개봉에 대한 벅찬 감정을 드러냈다. 그는 “제 아버지, 할아버지 고향이 이북이라 명절 때 가족들과 같이 모이면 한국전쟁 얘기를 어렸을 때부터 듣고 자랐다”면서 “시나리오 읽을 때부터 친숙했고 진태의 마음이 이해가더라. 캐릭터 중에 가장 마음에 들고 좋아했다”고 강조했다.지난 2004년 개봉, 1174만 6135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의 한 장면. 지금은 한국 영화 역대 흥행 순위 21위에 올라 있다.(사진제공= 와이드릴리즈㈜, ㈜제이앤씨미디어그룹)천만고지를 밟은 뒤 배우 고소영과 세기의 결혼을 올린 장동건은 “아빠가 나름 유명한 배우라고 하는데 제 출연작중 아들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영화가 없었다. 이번에 재개봉한다고 하니까 아들이 먼저 극장에 가서 보고 싶다고 하더라. 예매해서 같이 갈 것”이라고 함박 미소를 지었다. 이어 그는 극중 북한 장교로 나왔던 선배 최민식에 대해 남다른 고마움을 밝히기도.“몸싸움을 하는 장면을 찍다 합이 안 맞아 선배님 얼굴에서다 총을 쏘게 됐어요. 요즘 같으면 안전사고도 덜 했을테지만 파편이 박혀 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참으시더라고요. 알고보니 ‘올드보이’ 개봉을 앞두고 있어서 영화 잡지 표지를 촬영하러 가셔야 하는 상황인거예요. 당시에 너무 죄송했는데 이 자리를 빌어 다시한번 사과와 더불어 감사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장동건 역시 왼쪽 무릎 연골이 찢어져서 걷지도 못하는 상태이었지만 스태프들의 사기와 촬영 지연을 염려해 군복 안에 두꺼운 무릎 아대를 철로 댄 채로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전쟁 장면이니까 절뚝거리며 찍어도 티가 안 나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이날 함께 자리하지 못한 원빈에 대해 강감독은 “요즘 활동을 잘 안 하시니까 연락을 한 지가 꽤 됐다. 그렇다 보니 전화 번호가 바뀐 것 같더라”고 솔직 고백해 눈길을 모았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현충일인 오는 6월 6일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5-31 11:17 이희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