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여가

[비바100] 쓰레기 소각장에서 공연 관람… 폐교서 피자 만들기

부천아트벙커B39.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늦더위 기승도 잠잠해지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몸을 감싸는 가을이다. 시원한 날씨와 높은 하늘, 다채로운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여행의 최적기로 꼽히는 가을, 수명을 다 한 공간이 역사와 예술이라는 옷을 입고 재탄생한 곳을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한국관광공사는 가을철 가볼만 한 여행지로 ‘공간의 재활용’이라는 테마로 자칫 사라질 뻔한 건축물을 이용해 미술관이나 박물관으로 되살린 곳을 추천했다. 낙후된 건물이라도 그 가치를 인정받아 재활용 과정을 거쳐 새로이 주목받는 공간으로 거듭난 곳이다. 추천 여행지는 경기 지역부터 강원, 경남, 전남지역까지 넓다. 찾아가 볼 생각이 든다면 개방여부·개방시간·관람방법 등에 대한 확인은 필수다. ◇예술의 중심지된 쓰레기 소각장 ‘부천아트벙커 B39’부천아트벙커B39 모습.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부천아트벙커B39는 부천시 오정구에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원래는 ‘삼정동 소각장’이었다. 1995년 문을 연 이 소각장은 1997년 다이옥신 파동을 거치며 꾸준히 환경 파괴 문제가 제기되어 오다가, 2010년에 폐쇄됐다. 폐쇄된 소각장은 수년간의 공사를 마치고, 2018년에 새로운 복합문화공간 ‘부천아트벙커B39’로 다시 태어났다. 이곳은 과거 소각장 구조를 보존하면서도 멀티미디어홀, 벙커, 에어갤러리 등 다양한 예술 공간을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부천아트벙커B39에서는 융복합 예술을 추구하는 현대 미술품 전시와 친환경을 주제로 한 행사와 공연 등이 열린다. 부천의 대표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셈이다.부천에는 급격한 도시화의 유산을 복원한 사례가 더 있다. 1980년대 복개되었던 심곡천은 2017년 생태 복원 사업을 통해 도심 속 녹지 공간으로 재탄생한 곳이다. 부천의 예술적인 감각을 확인해 보고 싶다면 레노부르크뮤지엄으로 향하자. 초대형 미디어아트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관이다. 2001년 개관한 한국만화박물관은 한국 만화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소개하는 곳이다.◇산골 학교라서 더 낭만적인, 평창무이예술관평창무이예술관.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1999년 폐교한 무이초등학교가 조각가 오상욱, 서양화가 정연서, 서예가 이천섭 등의 예술가를 만나 2001년 평창무이예술관(이하 무이예술관)으로 변신했다. 기존 학교 틀을 그대로 살린 채 학교 운동장은 조각공원으로, 교실은 전시실로 꾸몄다. 나무 복도 바닥, 칠판, 풍금 등 무이초등학교 시절 흔적이 곳곳에 남아 예술관에 머무는 내내 옛 시골 학교 정취를 고스란히 만끽할 수 있다. 무이예술관을 꾸린 작가들의 전시와 다양한 기획 전시를 감상하고 화덕 피자 만들기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예술 체험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2층 규모 갤러리 카페도 갖췄는데 예술관 전경을 감상하며 쉬어가기 좋은 공간이자 봉평 감자 피자 맛집으로 유명하다. 무이예술관 운영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이며 실내 전시관은 오후 6시까지만 이용할 수 있다. 수요일은 휴관이나 공휴일, 성수기, 평창효석문화제 기간은 예외다.무이예술관이 터를 잡은 봉평은 작가 이효석의 고향이자 그가 쓴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주 무대로 관련 여행지가 다양하다. 이효석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소개하는 문학관과 바로 이웃한 효석달빛언덕, 소설에도 등장하는 봉평장(봉평전통시장) 등이 있다.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2023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된 발왕산 천년주목숲길까지 둘러 보기를 추천한다.◇상상력 놀이터, 충주 오대호아트팩토리코치빌더오대호아트팩토리로 변신한 폐교.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충주의 오대호아트팩토리는 쓸모없는 물건을 뜻하는 ‘정크(junk)’를 예술로 승화시킨 정크아트 작품이 자그마한 폐교를 가득 채운 공간이다. 이곳에 생기를 불어넣은 건 우리나라 정크아트 1세대 오대호 작가다. 철과 플라스틱, 나무 등 버려진 재료에 기계공학적 기술과 상상력을 입혀 작품을 탄생시켰다. 움직이는 요소를 넣은 키네틱아트(kinetic art)도 선보여 작품을 만져보는 것도 가능하다. 아트바이크를 타고 드넓은 운동장을 마음껏 누릴 수도 있다.조선 시대 후기 대표 하항(하천 연안에 발달된 항구)이었던 충주 목계나루 근처에는 담배창고였던 공간이 코치빌더라는 카페로 변신했다. ‘코치빌더(Coach builder)’는 고객의 주문에 따라 독창적인 신차를 만드는 것을 뜻하는데, 이곳에 전시된 올드카와 클래식카 역시 주인장의 취향을 반영, 개성적으로 복원하기도 했다. 벽면과 천장에는 차 계기반, 변속기, 휠 등 차량의 부품을 세심하게 분해해 실내장식 소품으로 활용했다.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현대자동차 1세대 그랜저와 기아 콩코드 등 지금은 보기 힘든 반가운 모델도 만날 수 있다. 코치빌더는 빵 맛집으로 입소문 난 곳. 충주에서 나는 밤과 고구마 등으로 빵을 개발해 선보인다.◇역사와 치유가 어우러진 문화 공간, 거창근대의료박물관거창근대의료박물관.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고색창연한 아름다움을 지닌 거창근대의료박물관은 1954년에 지어진 옛 자생의원으로 거창지역 최초의 근대병원이다. 2006년 의원이 문을 닫으면서 설립자 고(故) 성수현 원장의 유족들이 시설을 기부하고 거창군청이 부지를 매입했다. 2013년에 문화재청 등록문화재로 지정받은 후 2016년에 거창근대의료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현재 의료전시관이 된 병원동은 당시의 처치실, 수술실, X선실 등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고, 생김새가 낯선 옛 수술기구들과 의료시설들이 눈길을 끈다. 의사가 거주했던 주택동에는 그 시절에 사용했던 다양한 생활용품들이 전시되어 있다.요즘 거창근대의료박물관은 특색있는 근대의료문화 콘텐츠를 바탕으로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흥미진진한 근대의료의 역사를 듣는 이야기의 공간이자 역사와 치유를 경험하는 이색적인 문화 체험의 공간으로 채워가고 있다. 때때로 박물관의 앞마당은 삶을 위로하는 힐링 콘서트의 공간으로 이용된다.거창전통시장은 거창근대의료박물관에서 도보 3분 거리로 가깝다. 매달 1과 6으로 끝나는 날에 전통 오일장이 열린다. 거창창포원은 사계절 내내 다른 테마로 꽃을 즐길 수 있는 친환경 수변생태공원이다. 거창항노화힐링랜드의 Y자형 출렁다리는 우두산 협곡의 600m 상공에서 깎아지른 절벽 사이를 세 방향으로 연결한 빨간색 산악 보도교로 짜릿한 스릴을 만끽할 수 있다.◇ 5·18민주화운동의 흔적들, 광주 전일빌딩245전일빌딩245.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전일빌딩245는 5·18민주화운동 중 이 건물을 향해 헬기에서 사격한 총탄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장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진행한 현장 조사에서 모두 245개의 탄환이 확인되었고, 이는 헬리콥터 등 비행체에서 발사됐을 것으로 결론 내렸다. 국과수 결론 이후 이곳을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는 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 지상 10층과 지하 1층 중 광주콘텐츠허브로 사용 중인 5~7층을 제외한 나머지 층에 전시 공간이 마련돼 있다. 가장 중요한 전시 공간은 10층과 9층이다. 외부에서 날아온 탄흔의 원형을 보존하는 장소다. 헬기 사격을 목격한 증언을 참고해 제작한 멀티 어트랙션 영상도 재생 중이다. 모형 헬리콥터 UH-1H 기종과 M60 기관총, 전일빌딩245 주변을 재현한 디오라마 축소 모형, 왜곡의 역사, 진실의 역사 등을 주제로 전시물을 관람할 수 있다.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5·18민주화운동을 기록한 방대한 양의 자료를 보관 전시하는 공간이다. 5·18민주광장에 가면 당시를 촬영한 사진과 영상에 등장하는 원형 분수대를 볼 수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아시아와 문화를 주제로 전시와 공연이 이뤄지는 광주의 대표 문화시설이다.송수연 기자 ssy1216@viva100.com

2024-09-25 07:00 송수연 기자

[B그라운드] 대한민국예술원 70주년 기념식·심포지엄 ‘향연’ “미래에 대한 성찰과 교류확대를 위해”

23일 오후 대한민국예술원 개원 70주년 기념식 및 심포지엄 ‘향연’ 기자간담회가 열렸다(연합)“예술창작·기획에도 인공지능(AI)이나 챗GPT 등이 도입되는 시기입니다. 창작자의 고난이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가 쟁점이 되는 시대죠. 그런 시대에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할 주제가 ‘포스트휴먼’(Post-Human)이라고 생각했습니다.”손진책 대한민국예술원(이하 예술원) 부회장이자 70주년 기념행사 추진위원장은 개원 70주년 기념식 및 심포지엄 ‘향연’(10월 4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의 주제 ‘포스트휴먼과 예술’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손 부회장은 “70주년을 맞아 앞으로의 70년, 미래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이 같은 쟁점에 대해 토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주제로 설정했다”고 부연했다.대한민국예술원 개원 70주년 기념식 및 심포지엄 ‘향연’ 포스터(사진제공=대한민국예술원)배우 손숙 사회로 진행되는 ‘향연’에서는 ‘포스트휴먼과 예술’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과 더불어 신수정 예술원 회장(피아니스트)의 전언처럼 “의미있고 상징적인 퍼포먼스가 이어진다.”축하연주, 박정자·이근배 축시낭송 그리고 ‘포스트휴먼과 예술’에 대한 기조발제에 이어 각 분과별 발제와 질의, 실연이 펼쳐진다.문학분과에서는 황유원 시인의 ‘나무 인간의 속삭임’, 미술에서는 임성훈 교수의 ‘인간적인 너무나 기술적인’, 음악에서는 주대창 교수의 ‘손맛 음악의 디지털 맛’, 전정옥 연극평론가의 ‘우리 없는 세계’, 심정민 무용평론가의 ‘낯선 세계에서 숨 쉬는 춤’, 영화에서는 하승우 교수의 ‘클래식 몬스터즈의 괴이한 역습’ 발제와 질의로 이어진다. 발제 및 질의 후에는 각 분과 별로 자작시 낭송, 조영각 작가의 미디어 아트 ‘초월을 위한 경계 위에서’, 바리톤 김성길 등이 선보이는 ‘그대 있음에’ ‘바위고개’ ‘아무도 모르라고’ 등 한국가곡 3선, 손진책 연출의 연극 ‘스페이스 리어’, 장혜림 안무가가 이끄는 99아트컴퍼니의 무용 ‘땅을 위한 시’, 영화 렉처포먼스 ‘비 미래를 위한 생태학’이 실연된다.신수정 회장은 “대한민국예술원이 고희를 맞은 건 굉장한 의미”라며 “굉장히 고답적이고 우리끼리만이 아닌, 모든 사람과 함께 나누는 예술원이고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손진책 부회장은 “예술원이 원로들의 모임이다 보니 근엄하고 보수적인 느낌”이라며 ‘향연’에 대해 “그 이미지에서 벗어나 젊고 발랄한 예술종합선물세트”라고 밝혔다.“앞으로 보다 많은 예술인 및 애호가들과 교류를 확대하고 젊은 예술가들한테 뭔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역할을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습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9-23 20:21 허미선 기자

[비바100] 10대에게 스마트폰의 자유를 불허하라!

(일러스트=김용수 기자 kys404@viva100.com)요즘 아이들은 스마트 폰과 SNS 등 디지털 기기에 일상을 점령당했다. 이 책은 디지털 세계가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병들게 하고, 어른들은 상황이 이렇게 되도록 어떻게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지를 고발한다. 저자는 “부모들이 현실 세계에서는 자녀를 과잉보호하는 반면 가상세계에서는 과소 보호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 해결하려면 일정 연령대까지는 스마트 폰이나 소셜 미디어 사용을 금지하고, 감독받지 않는 놀이와 독립적 행동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불안 세대|조너선 하이트|웅진지식하우스◇ ‘놀이 기반’에서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로저자는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많은 나라에서 Z세대 10대의 정신질환이 늘고 청소년 불안과 우울증이 공통적으로 나타났다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2007년에 출시된 애플의 아이폰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된 스마트폰 시대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2012년 또는 2013년 즈음부터 대다수 가정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10대들의 정신건강이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저자는 “이 시기에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가 탄생하면서 반대로 ‘놀이 기반 아동기’가 완전히 종말을 고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0년부터 2015년을 ‘아동기 대재편의 시기’라고 정의했다. 불과 5년 사이에 청소년의 사회적 패턴과 롤 모델, 감정과 신체활동, 심지어 수면 패턴까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마당에서 뛰어 노는 것보다 더 새롭고 흥미진진한 가상 활동이 폭증한 결과였다.주변 사람들과 온전히 함께 하는 능력을 잃어버리면서 이 시기에는 불안과 우울증, 자해가 급증했다. 여자아이들, 특히 사춘기 직전의 여자아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저자는 “1990년대 후반에 태어난 아이들은 가상 세계에서 사춘기를 보낸 역사상 최초의 세대”라며 “2020년대 초에 그들에게 스마트폰을 준 것은, 아이들을 역사상 최대 규모의 통제 불능 상태 실험으로 몰아 넣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 불안 세대가 된 Z세대(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저자는 “Z 세대는 포털을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면서 사춘기를 보내는 역사상 최초의 세대”라고 말했다. Z세대는 급진적인 새로운 성장 방식, 즉 인류가 진화한 소규모 공동체의 현실 세계 상호 작용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에서 성장하는 방식을 시험하는 대상이 되었다. 이것을 저자는 ‘아동기 대재편’이라고 불렀다. 기술변화에만 원인이 있는 게 아니라, 과잉보호와 자율성 제약이 주 원인이라고 지적했다.저자는 밀레니얼 세대(1981~1995년생) 다음 세대인 1996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 이른바 Z세대를 ‘불안 세대’라고 정의했다. Z세대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2009년 경에 사춘기가 시작되었는데, 그 무렵은 여러 가지 기술 트렌드가 수렴되던 시기였다. 2000년대에는 고속 데이터 통신망이 급속하게 확산되었고 2007년에는 아이폰이 출시되었으며, 소셜 미디어가 매우 빠르게 퍼져나가는 새 시대가 열렸다.그 가운데서도 2009년 ‘좋아요’와 ‘리트윗(혹은 공유)’ 버튼과 함께 시작된 디지털 시대가 온라인 세계의 사회적 역학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들이 ‘불안세대’가 된 주요 원인으로 ‘현실세계의 과잉보호, 가상세계의 과소보호’로 제시했다. 이를 극복하려면 네 가지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첫째, 고등학생이 되기 전에는 스마트폰을 금지한다. 둘째, 16세가 되기 전에는 소셜 미디어도 금지한다. 셋째, 학교에서 휴대폰 사용을 금지한다. 마지막으로, 감독하지 않는 놀이와 독립적 행동을 더 많이 보장하라. 저자는 이 네 가지 개혁을 모두 동시에 추진한다면, 2년 안에 청소년의 정신 건강이 상당히 개선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아동기 대재편’과 Z세대의 황폐화저자는 청소년들이 스마트폰으로 옮겨가면서 나타난 대표적인 결과로 사회적 박탈, 수면 박탈, 주의 분산, 그리고 중독을 들었다. 우선, 친구와의 대면활동 시간이 급감했다. 2012년에 하루 122분이던 것이 2019년에는 67분으로 줄었다. 아동기 대재편은 Z세대를 세상의 모든 사람과 연결하면서 대신 주변 사람들과의 연결을 차단함으로써 그들의 사회생활을 황폐하게 만들었다.스마트폰 기반의 아동기에 전 세계 청소년들의 수면의 양과 질은 모두 떨어졌다. 10대는 하루 최소 8~9시간을 자야 한다. 그런데 밤 늦게까지 스마트폰 화면을 보면, 수면에 악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저자는 “화면으로 인한 수면 감소가 2010년대 초반에 많은 나라를 휩쓴 청소년 정신질환 해일의 주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밤에 겨우 7시간 밖에 자지 않는 평균적인 10대는 깨어 있는 동안 한 시간에 약 11개의 알람 신호를 받는다고 한다. 3분당 1개 꼴이다. 집중력 성숙 과정이 방해받을 수 밖에 없는 환경인 것이다. 저자는 대다수 10대가 소셜 미디어에 중독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의 욕망은 해킹되고 행동은 조정될 수 밖에 없게 된다고 말했다.◇ 소셜 미디어 피해의 남녀 차이(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여자 아이들이 소셜 미디어에 더 큰 피해를 받는 이유를 저자는 네 가지를 들었다. 시각적 비교에 더 민감하고, 다른 여자아이의 관계와 평판을 해치려는 시도로 공격성이 표출되는 경우가 많고, 남자들에 비해 감정을 더 쉽게 나누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남성이 접근하거나 나쁜 행동을 하기가 훨씬 쉬워졌다는 점도 이유로 들었다. 저자는 “소셜 미디어는 여자아이가 더 많이 걸려드는 덫”이라고 말했다.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초반에 전 세계적으로 우울증과 불안, 자해, 자살 비율이 증가하기 시작했고, 일본의 히키코모리 같은 은둔형 청년들의 비중도 덩달아 증가했다. 여자아이들과 달리 남자아이들은 좀 더 긴 시간에 걸쳐 피해 원인이 분산 전개되었다. 이들의 고통을 초래한 주요 원인으로 한 가지 특정 기술을 꼬집어 지적하기 어려웠다.저자는 남자아이들이 특히 2000년대 후반에 온라인 멀티플레이어 비디오 게임, 그리고 2010년대 초반에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대규모 심리적 붕괴 징후가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특히 남자아이들을 집어삼키는 가상 세계로 포르노와 비디오 게임을 지목했다. 저자는 어린이들이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 계정을 갖는 시기를 늦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 건강한 아동기를 위한 정부·테크 기업·학교의 역할(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저자는 자신의 제품을 사용해 줄 충성도 높은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어린 사용자들을 필요로 하는 테크 기업들에게 “2020년 6월에 영국에서 제정된 ‘연령적합설계규약(AADC,Age Appropriate Design Code)’처럼, 아동의 최대이익을 위해 보호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연방법에 1998년부터 13세인 ‘인터넷 성인 나이’를 16세로 높이고, 나이 확인 과정을 쉽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에 대해서는 자녀에게 현실 세계의 자유를 누리게 했다는 이유로 부모를 처벌하는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또 학교에서 더 많은 놀이를 장려하는 것은 물론, 공공장소를 설계하고 구획할 때 어린이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직업 교육과 수습과정, 청소년 개발 프로그램을 늘리면서 관련 투자를 계속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학교에 대해서는 ‘휴대폰 없는 학교’부터 만들라고 강조했다. 수업 시간은 물론 학교에 있는 시간 내내 금지할 것을 권고했다. 더불어 ‘놀이가 많은 학교’를 만들라고 강조했다. 어른의 간섭이 거의 없는 쉬는 시간을 늘리고, 일과 시작 30분 전에 운동장을 개방해 놀 시간을 주고, ‘플레이 클럽’ 결성을 지원하라고 조언했다. 쉬는 시간을 더 많이 주고, 더 나은 운동장을 제공하고, 규칙을 줄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부모의 역할(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부모가 해야 할 일을 저자는 연령대별로 제시했다. 공통적으로는 현실세계에서 더 많은 경험을 쌓게 하고, 더 적은(하지만 더 나은) 화면 경험을 하게 할 것을 권고했다.생후 18개월까지는 어른과의 영상통화, 18~24개월은 보호자와 함께 보는 교육 프로그램 시청으로 제한하라고 했다. 2~5세 아동은 교육 목적이 아닌 화면 사용을 주중에는 하루 약 1시간, 주말에는 3시간으로 제한할 것을 권고했다. 특히 아이들을 달래거나 돌보거나 짜증을 멈추게 할 목적으로 화면을 사용하는 것을 지양하고, 잠자기 30~60분 전에는 화면을 끄고 기기를 침실에서 치우라고 독려했다.6~13세 초·중학생 자녀의 부모들에게는 디지털 기기의 자녀보호 기능과 콘텐츠 필터 사용법을 배우라고 권했다. 분명한 기기 제한 시간을 정하고, 특정 시간과 장소를 기기 사용 불가 구간으로 설정하라고 했다. 특히 문제가 있는 사용이나 중독의 징후가 없는 지 유심히 살필 것을 강조했다.하지만 그에 앞서 아이들이 함께 모여 밤 새워 노는 것을 장려하고, 친구들과 함께 학교까지 걸어가도록 하고, 방과 후 자유놀이나 캠핑을 자주 즐기게 하라고 말했다. 16세가 될 때까지 소셜 미디어 계정 개설을 가능한 늦추고, 10대 초반의 자녀와 위험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자녀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라고 조언했다.13~18세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는 자녀의 이동성이 높아지도록 제3의 장소에서 기간을 보내도록 권장하고, 집에서도 요리나 청소, 심부름 등 그들에게 의존하는 일을 늘려줄 것을 권고했다. 스스로 돈을 버는 파트 타임 일을 권장하고, 자신보다 더 어린 아이를 양육하고 이끌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도록 하라고 조언했다. 자연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라고 했다.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2024-09-21 07:00 조진래 기자

[비바100]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 도시에 축적된 사회상과 역사성 깎아 펼쳐보이는 ‘큰 사과가 소리없이’

2024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 ‘큰 사과가 소리없이’ 출품작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익현의 ‘하나-둘-여럿’ 중 일부, 세바스찬 위커로스의 ‘무제 (전문적 변형), 안종연 ‘아마란스’, 키타가와 타카요시의 ‘열리는 표층’(사진제공=창원문화재단)광주, 부산 등 지역을 대표하는 비엔날레가 한창인 가을 초입, 국내 유일의 창원조각비엔날레(9월 27~11월 10일 성산아트홀, 성산패총, 창원복합문화센터 동남운동장,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가 올해로 7회를 맞는다.창원조각비엔날레는 문신, 김종연, 박종배, 박석원, 김영원 등 한국 대표 조각가를 배출한 창원 특화 프로젝트로 2년에 한번씩 치러진다. 2010년 창원이 배출한 조각가 중 문신을 기리는 문신국제조각심포지엄으로 물꼬를 트고 2012년 조각비엔날레 형식으로 출범해 동시대 조각예술 탐구를 비롯해 국제 조각 전시 담론 및 동향을 공유해 오고 있다.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 주제 ‘큰 사과가 소리없이’ 포스터(시진제공=창원문화재단)본 행사에 앞서 지난해 프롤로그 전시 ‘미래에 대해 말하기: 모양, 지도, 나무’로 워밍업을 마친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의 주제는 ‘큰 사과가 소리없이’(Silent Apple)다.첫해 ‘자연과 생명의 시메트리-애시메트리’를 시작으로 ‘Dreaming Island 꿈꾸는 섬’ ‘THE SHADE OF THE MOON 月影’ ‘억조창생(億造創生)’ ‘불각의 균형, 不刻의 均衡, The Balance of Non-Sculpting’ ‘비(非)조각 - 가볍거나 유연하거나’ ‘채널 : 입자가 파동이 되는 순간’에 이은 ‘큰 사과가 소리없이’는 김혜순 시인의 ‘잘 익은 사과’ 중 한 구절로 창원을 큰 사과에 빗댄 주제다.사과 껍질이 깎이는 과정과 조각의 깎는 행위 및 시간을 통해 창원이라는 도시에 축적된 기억을 깎아내 펼쳐 보인다.성산아트홀과 성산패총, 창원복합문화센터 동남운동장,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등에서 동시대조각의 수평성을 비롯해 창원이라는 도시의 역사와 변화, 공동체의 움직임, 여성과 노동 등을 조각으로 형상화해 풀어낸다. 이 주제에 대해 현시원 예술감독은 “동시대 조각을 창원 도시 전역에 수평적으로 배치해 조각 특유의 움직임을 조명한다”고 밝혔다. 국내외 60여명(팀)의 국내외 작가가 창원을 비롯한 마산, 진해 풍경, 50주년을 맞은 창원국가산업단지를 기념하는 도시의 시간성, 1973년 발굴한 조개무덤인 사적 제240호 성산패총이 상징하는 역사성 등을 아우른다. 지난 7월 사전 프로그램을 통해 창원, 서울, 덴마크 코펜하겐 및 말뫼 독일 베를린 등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노순천, 쥬노 JE 김에바 에인호른(Jeuno JE Kim Ewa Einhorn)이 교환 프로젝트 ‘시청각X무하유’를 선보인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는 전시와 심포지엄 ‘씨앗과 껍질’을 비롯해 워크숍, 국내외 예술가, 연구자, 시민, 관객 등이 어우러지는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9-18 18:30 허미선 기자

[비바100] 이재경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장 "현상 보다는 시스템 구축, 해결방안 마련에 집중할 때"

이재경 제8대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장(사진=허미선 기자)“하이브와 어도어 민희진 전 대표 간 분쟁에 대한 현황, 그로 인한 편 가르기에만 너무 집중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지난 3월부터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장직을 수행 중인 이재경 변호사이자 건국대학교 교수의 전언처럼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의 이슈는 늘 그렇다. “업무상 배임, 경영권 탈취시도, 대표직 해임 타당성 등은 법정에서 가늠할 일입니다. 결국 K팝 산업에서 늘고 있는 멀티레이블 시스템을 이해충돌 없이 조화롭게 운영할 방안, 이 시스템을 운용하면서 실질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연습생 계약상의 문제, 저작권 해법 및 불공정한 실연권 분배 등에 대해서도 심도 깊게 논의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이 회장은 패션디자이너연합회 운영위원, 패션산업협회 법률자문, 무신사 지식재산권보호위원회 위원,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위원, 케이옥션 감사, 국립극단 이사, TBS 시청자위원회 위원장, 한국프로스포츠협회 이사,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자문위원,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 위원 등 문화예술, 엔터테인먼트 전반에서 활동 중인 법조인이자 전문가다. 이재경 회장은 "이선균, 김호중 사건 등 법적이 아닌 사회적·윤리적 심판이 가해지는 경우들이 비일비재하다"며 "그런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스템적인 문제들에 대한 현상과 원인, 대안들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연합, 하이브, 픽사베이)“우리가 헷갈리면 안되는 게 법과 사회적 정의 및 윤리예요. 그 사이에서 균형잡기란 쉽지 않습니다. 밀양 집단 성폭행 가해자 신상폭로, 비극을 부른 이선균, 분명 큰 잘못을 저지른 김호중 등 법적이 아닌 사회적·윤리적 심판이 가해지는 경우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자꾸 그런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스템적인 문제들에 대한 현상과 원인, 대안들을 이끌어내야죠.”동심마저 멍들게 했던 ‘구름빵’ 사건이 도화선이 된 저작권 문제, 마약 투약 의혹과 협박 등에 시달리다 끝내 극단적 선택으로 유명을 달리한 배우 이선균의 비극, 김호중의 음주 뺑소니 등 사건으로 불거진 연예인·셀럽의 공적 책임이 그렇다.“가칭 ‘이선균 방지법’은 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나올 거예요. 사실 이는 사생활 보호, 인권 및 초상권에 대한 문제기도 해요. 엔터테인먼트 법 뿐 아니라 언론 내지는 미디어법과도 연결돼 좀 어려운 사안입니다. 특히 유튜브 등 SNS는 표현의 자유와 부딪히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문제죠.”BTS 슈가·FC서울 린가드로 다시 불거진 전동스쿠터 및 전동킥보드 운영 및 이에 대한 법제화 허점, 그 어떤 미디어보다 영향력이 확대한 유튜브 콘텐츠에 대한 법과 정책, 인권과 알권리, 공공성과 표현의 자유 등 역시 그렇다. 이재경 제8대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장(사진=허미선 기자)“지금대로라면 일종의 공공역할을 하는 미디어는 사라지고 가짜 뉴스, 돈이 되는 자극적이고 편향된 정보들을 양산하는 개인들은 활개를 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우려가 됩니다.”현상과 그로 인한 편 가르기만 난무할 뿐 이후 행보나 해결법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언급하지 않거나 언급하더라도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06년 출범한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의 존재 이유이자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이기도 하다. “방송·연예 뿐 아니라 예술, 책 및 출판, 유튜브를 비롯한 SNS 등에서 법률적인 해석이 필요한 일들이 너무 많아요. 미디어가 다양화, 다각화 그리고 개인화되면서 점점 증가하는 추세죠. 더불어 김앤장, 세종, 태평양, 율촌, 광장 등 대한민국 거대 로펌들도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적극적으로 활동하고자하는 추세입니다.” 영화, 음악, 드라마, 방송, 공연, 전시, 게임 등 문화콘텐츠산업에 대한 법률 및 정책을 연구하는 교수 및 변호사 등 법조인과 실무가들로 구성된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는 이 회장이 취임 당시 밝힌 소감 중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시기에 현장 실무자들과 긴밀히 소통하면서 국내외 엔터테인먼트법과 정책 인프라의 안정적 구축에 공헌하기 위한” 연구모임이다.이재경 제8대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장(사진=허미선 기자)‘음악산업의 법·정책적 현안’ ‘연예인·셀럽의 공적 책임’ ‘유튜브 콘텐츠에 대한 법과 정책’ ‘스포츠 도박’ 등 매달 시의성 있는 특정 주제로 열리는 학술세미나를 비롯해 사회적으로 큰 사건 발생시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부처나 해당 사건을 맡은 법무법인 등과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며 연구하기도 한다.“어떤 화두를 던지느냐에 따라서 우리 법학회의 색깔이 달라질 겁니다. 좀 남 다른, 미디어에서 잘 다루지 않는 것들에 대해 논의하고 해결책을 마련해보고 싶습니다.”이어 이 회장은 “음악, 영화, 매니지먼트 등은 실무자들도 관심이 많고 법률적으로 많이 연구가 된 분야”라며 “앞으로 남은 임기에는 연구가 덜 된 분야, 아카데믹하게 접근할 수 있는 주제들을 다뤄볼 예정”이라고 부연했다.이재경 제8대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장(사진=허미선 기자)“하이브와 어도어 분쟁 한축이었던 K팝 안무 저작권, AI와 문화예술 및 엔터테인먼트 산업 접목시 불거질지도 모를 법적 이슈들, 전통문화예술의 지원책 등이 그 예죠. 특히 전통문화예술 지원책은 일방적으로 일회성 지원을 받고는 끝이에요. 이건 산업이 아니죠. 산업화를 위한 하나의 구심이 필요해 보입니다.”이 회장은 “한국의 전통문화예술은 물론 서양의 클래식, 발레, 오페라, 고미술 등도 사실 그 당시에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이었다”며 “혁신적이고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모차르트의 음악은 지금의 K팝과도 같았다”고 전했다.“당시 대중들이 즐겼던 대중문화예술들로서 산업화 여지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원에만 의존하기 보다는 산업적으로 자구책을 마련하고 산업화시키는 데 집중해야죠. 이를 위해 문화예술계, 정부 등이 해야 할 일을 논의하고 지원 및 산업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글·사진=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9-18 18:00 허미선 기자

[人더컬처]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정상훈 “아픈 사람도 일으키는 웃음, 코미디가 참 좋아요!”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에서 1인 9역의 다이스퀴스를 연기 중인 정상훈(사진제공=잼엔터테인먼트)“저는 웃음이 아픈 사람들을 일으킨다고 생각해요. 웃음만큼 돈 없이도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게 또 있을까요? 사람들이 주위 분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면 좋겠어요. 그게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전 코미디가 참 좋아요.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게. 누군가 그게 원동력이 돼 한 순간이라도 웃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감사해요.”자타공인 ‘웃음 장인’다운 말이었다.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A Gentleman‘s Guide to Love and Murder, 10월 20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9명의 다이스퀴스를 연기 중인 정상훈은 “웃음의 핵심은 공감대 형성”이라고 털어놓았다.“그것이 아마도 제 강점이 않나 생각도 들어요. 웃음에서 자꾸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게 좀 불편해요. 그냥 흘러가도 된다고 생각해요. 웃음은. 웃으면 ‘장땡’이잖아요. 우리가 쇼츠(Shorts)나 릴스(Reels)를 볼 때 웃기니까 웃고 기분 좋아서 웃는 것처럼요.”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에서 9명의 다이스퀴스를 연기 중인 정상훈(사진제공=쇼노트)‘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은 지독히도 가난하지만 사랑에도, 세상에도, 삶에도 순수했던 청년 몬티 나바로(김범·손우현·송원근, 이하 시즌합류·가나다 순)가 런던 최고의 귀족 다이스퀴스 가문의 8번째 백작 후계자였음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1900년대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몬티 나바로와 다이스퀴스 가문 후계자들(이규형·정상훈·정문성·안세하), 오매불망 연인 시벨라 홀워드(류인아·허혜진)와 결혼 상대로 적합한 피비 다이스퀴스(김아선·이지수) 등이 펼쳐가는 좌충우돌 블랙코미디다.2018년 한국 초연 후 2020년, 2021년에 이은 네 번째 시즌으로 이 작품의 백미는 음악, 풍자와 더불어 몬티가 백작이 되기까지 한명의 배우가 연기하는 빨리(Quick) 죽는(Die) 다이스퀴스 가문 후계자들이다.◇웃음 안에 담긴 탐욕 “알아주시면 감사하지만 그저 웃음 만으로도 괜찮아요!”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에서 1인 9역의 다이스퀴스를 연기 중인 정상훈(사진제공=잼엔터테인먼트)“이 극본을 쓸 때 제가 만약 참여했다면 너무 행복했겠다 싶어요. 저는 이런 결이 되게 좋거든요.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 자체가 어둠을 가지고 있잖아요. 이 작품에서는 ‘죽음’이라는 어두운 측면을 가지고 있죠.”최고 권력 집안의 후손임을 알고도 “그저 일자리 하나”를 부탁하는 순박함과 첫사랑 연인 시벨라만을 바라보던 순정의 소유자였던 몬티는 다이스퀴스들이 죽어나갈수록 백작 자리는 물론 두 여자 모두를 가지고자 하며 인간 본연의 탐욕과 욕망을 불태운다.“인간은 누구나 수직 상승 욕구가 있어요. 누구라도 돈을, 권력을 가지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잖아요. 몬티의 행동이 윤리적 잣대로 보면 잘못됐죠. 하지만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도록 극의 구조를 너무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요.”그리곤 “이 작품 이후 이야기가 만약 나온다면 (마지막에 등장한 또 다른 다이스퀴스 가문의 숨겨진 후손) 천시가 백작에 오른 몬티랑 일대일로 계속 결투를 벌이지 않았을까 싶다”고 털어놓았다.“다른 다이스퀴스들이 다 죽어서 딱 둘 뿐이잖아요. 여전히 암투가 벌어지겠죠. 어쩌면 백작인 몬티를 죽인 후에는 가족들끼리 암투를 벌일지도 몰라요.”내면 깊숙이 누구나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탐욕과 욕망, 이를 건드리면서도 공감대를 끌어내는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은 웃음 자체가 극이 가진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와도 같다.“한 혈통이라는 걸 이용해 9명을 한 배우가 연기하도록 한 그 뼈대 자체가 기발한 아이디어 같아요. 그런 설정 없이 누군가를 죽인다면 좀 불편했을 수도 있어요. 근데 한 사람이 계속 죽잖아요. 하물며 과격할 수도 있는 죽음의 첫 번째는 영상을 이용해 재밌게 풀었어요. 떨어져서 피가 번지는데도 사람들은 신기해 하면서 웃거든요. 블랙 코미디적 요소를 정말 극대화한 작품 같아요.”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에서 9명의 다이스퀴스를 연기 중인 정상훈(사진제공=쇼노트)1인 9역의 다이스퀴스와 그들을 차례차례 해치우며(?) 백작 자리에 가까워지는 몬티에 포복절도 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이렇게 웃어도 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이, 코미디가 어려운 것 같아요. 웃기는 것만큼 그 안에 페이소스(Pathos)를 담는 게 중요하거든요. 캐릭터에,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그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인간이 가진 탐욕스러운 부분을 담아뒀어요. 그 웃음 안에 담고자 노력했던 것들을 관객 분들이 알아주시면 너무 감사한 일이죠. 하지만 그저 웃음으로 끝난다고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요.”◇4년만의 무대 복귀, 다시 한번 ‘젠틀맨스 가이드!’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에서 9명의 다이스퀴스를 연기 중인 정상훈(사진제공=잼엔터테인먼트)“재연 때는 코로나가 너무 심해서 관객들을 제대로 만나질 못했어요. 영상화, 띄어 앉기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지만 박수도 칠 수 없었고 맘껏 웃을 수도 없었죠. 그 아쉬움이 너무 커서 무조건 이 작품은 다음 시즌에 꼭 해야지 했는데 3연은 드라마 촬영이 겹쳤어요.”수십년도 전 ‘스팸어랏’에서 호흡을 맞췄던 김재범·김대종 배우와 연극 ‘아트’ 무대에 함께 오르고 싶어 직접 발 벗고 나서 백화점 행사 7개를 영업해올 만큼 간절했던 정상훈은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 재연에 이어 4년 만에 무대로 돌아왔다.아쉬움이 깊어진 만큼 “이번엔 무조건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돌아온 그는 “내가 이렇게 무대를 좋아했나 싶은 생각이 다시금 들 정도로 너무 좋다”고 털어놓았다.“너무 너무 좋아요. 무대는 진짜 솔직하거든요. 연습 양 만큼, 고민한 만큼 그대로 드러나죠. 때로는 과할 때도 있고 예상을 빗나가기도 하지만 제가 고민해서 만들어 놓은 코미디가 검증받는 느낌이랄까요. 캐릭터 변화를 좀 더 주기 위해서 속도를 높이거나 늦추는 등 계산이 딱 맞아 떨어지면 그대로, 안맞아 떨어져도 그것대로 너무 재밌어요. 무대에서 너무 너무 행복해요.”그리곤 “제일 기분 좋은 소리는 아무 정보 없이 오신 분들이 극을 다 보고서야 놀라시면서 하시는 ‘9명이 다 다른 사람 아냐’라는 말”이라며 “짜릿하다”고 부연했다. ‘김종욱찾기’부터 1인 7역의‘아이러브유’, 40여개의 역할을 소화한 ‘구텐버그’ 등 웬만한 대학로 작품의 멀티는 다 거친 그는 스스로의 표현처럼 ‘멀티의 시초’이자 ‘퀵 체인지 스페셜리스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퀵 체인지 동선을 짜주기도 했어요. 한쪽에서 분장팀이 수염을 떼는 동시에 의상팀이 모자를 씌우고 재킷 소매에 팔을 끼우고 뒤로 제끼면 물 한 모금 마시고 바로 안경을 쓰고 무대로 들어가요. 나오자마자 10초 안에 인물에 대해 설득을 시켜야 해요. 관객들이 그 인물에 빨리 빠져들어 몰입할 수 있게요. 유야무야 앞뒤 인물이 섞이면 매력도, 완성도도 떨어지거든요.”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 다이스퀴스 역의 정상훈(사진제공=쇼노트)이어 “의상이나 분장이 다른 인물처럼 보이는 데 도움을 주지만 서있을 때의 자세와 높낮이로 변화를 주는 편”이라며 “목소리나 동작으로 변화를 주면 인물이 좀 더 밀도 있게 표현되는 것 같다”고 부연했다. “애덜버트가 똑바로 서 있다면 에스퀴스는 한쪽으로 삐딱하고 헨리는 안짱다리로 서서 스누피처럼 손을 꽈요. 목소리도 하이와 로우로 변화를 계속 줘요. 9명 인물 중 확 구분되지 않아서 고민 중인 다이스퀴스가 에스퀴스 2세와 헨리죠.”그는 “에스퀴스 2세 목소리를 좀 더 느끼하게 하고는 있는데 좀 더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지, 애덜버트는 할아버지 목소리를 내다보니 목에 무리가 가서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털어놓았다.“다 나쁘지만 제일 나쁜 다이스퀴스는 레이디 히야신스가 아닌가 싶어요. 나쁜 짓을 해서 혹은 물려받으면서 권력을 가지고 부를 누리는 건 보기에도 나쁘잖아요. 하지만 누군가를 돕는다는 명목 하에 남의 돈을 자기 돈인 양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잖아요. 어떻게든 단속에 걸려서 죗값을 받았으면 좋겠어요.”◇보컬특훈 그리고 전혀 다른 매력의 세 몬티와 다이스퀴스 정문성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 몬티 나바로 역의 송원근(왼쪽부터), 김범, 손우현(사진제공=쇼노트)“다양한 방법으로 죽는데 저는 빨리 죽는 편이에요. 이 작품은 특히나 노래의 힘이 너무 좋거든요. 빨리 죽고 넘버로 표현하고자 하는 욕심을 좀 부리고 있죠. 그래서 이번에 돌아오면서는 노래에 진짜 많이 투자를 했어요.”이를 위해 정상훈은 거미와 조정석 부부에게 보컬특훈(?)을 받는가 하면 성악과 출신의 ‘하데스타운’ ‘영웅’ ‘노트르담 드 파리’ ‘웃는 남자’ ‘명성황후’ ‘레미제라블’ ‘미세스 다웃파이어’ 등의 뮤지컬 배우 양준모 그리고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 앙상블들에게 묻고 또 물으며 연구를 거듭했다.“뮤지컬에서 노래는 감정을 담아야 한다는 생각에 정말 많이 묻고 배웠어요. 감정을 충분히 담으면서도 목을 보호할 수 있는 창법, 고음을 올리는 노하우, 호흡법 등에 대해 연구를 진짜 많이 했어요. 신세계를 만난 것 같아요.”정상훈은 “몬티도, 다이스퀴스도 너무 다양해서 재밌다”며 “연습실부터 무대까지 진짜 열심히들 한다. 묘하게 긴장감도 있고 좀 더 돋보이기 위해 치열하게 연구하면서 상승 효과,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 다이스퀴스 역의 정문성(사진제공=쇼노트)“우리 (손)우현이는 장난꾸러기에요. 개구지고 되게 열정이 넘치죠. 애가 힘이 좋아요. 우현이가 얼굴 잘생긴 흙수저에서 금수저가 되는 몬티라면 반대로 (김)범이는 진짜 귀족이었는데 자리를 뺏겼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죠. (송)원근이는 워낙 뮤지컬을 오래 해온 배우다 보니 경력직과 경력직이 맞붙는 느낌이에요. 그래도 늘 내가 이긴다는 마음으로 대하고 있죠.”3연부터 다이스퀴스로 분하고 있는 정문성은 정상훈과 tvN 드라마 ‘빅 포레스트’에서 인연을 맺은 사이다. 그는 “연기를 너무 잘하는 배우였다”고 떠올렸다.“코미디도 어떻게 그렇게 잘하고 딕션도 맛깔 나는지…딱 헨리 같아요. 헨리에서 파생된 문성이를 정말 사랑하거든요. 팔색조 같아요. 무슨 연기든 그렇게 잘해요. 노래도 잘하고 연기도 잘하고 유연성도, 호흡도 되게 좋죠.”◇그저 열심히 할 뿐 “행복이 퍼져나가길 바라요”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에서 1인 9역의 다이스퀴스를 연기 중인 정상훈(사진제공=잼엔터테인먼트)“관객들의 취향은 정말 다양해요. 관객 모두를 설득한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이에요. 반만 설득해도 대단한 거죠. 다만 그건 분명해요. 열심히 하면 무조건 설득이 된다는 사실이죠.”이어 정상훈은 “배우가 열심히 하면서 에너지를 주려고 애쓰면 관객들을 감복하게 만든다”며 “나태해지지 않고 요령 피우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앞으로 그냥 열심히 하겠다는 거 말고는 드릴 말씀이 없어요. 그게 당연한 제 일이기도 하죠.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을 보고 많은 분들이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행복함이 널리 퍼져나가기를 바랍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9-17 18:00 허미선 기자

[人더컬처]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이해준 “5년 같은 2년, 느티나무 같은 앙드레로 찾은 진짜 나!”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앙드레 역의 이해준(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회차는 적었지만 ‘모차르트!’로 첫 주연을 맡으면서 엄청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저한테는 버거운 작품이었죠. 그 버거움을 견뎌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숙제처럼 넘어야할 관문이었죠. 그렇게 ‘모차르트!’를 겪고 나니 저도 모르게 어느 정도는 강해져 있더라고요. 경미하지만 부상에도 끝까지 해냈다는 자신감도 생겼죠.”그렇게 ‘모차르트!’로 첫 대극장 주연작을 마무리한 이해준은 ‘마리 앙투아네트’ 악셀 폰 페르젠 백작, 10주년을 맞은 ‘프랑켄슈타인’ 앙리 뒤프레·괴물 그리고 신작 ‘베르사유의 장미’(La Rose de Versailles, 10월 13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의 앙드레 그랑디에(이해준·고은성·김성식, 이하 관람배우·가나다 순)로 연달아 무대에 서고 있다.7, 8월은 ‘베르사유의 장미’ 개막이 미뤄지면서 ‘프랑켄슈타인’과 맞물려 분주했던 그는 뮤지컬 ‘렌트’(Rent)의 극작가 조너선 라슨의 이야기를 다룬 ‘틱틱붐’(Tick, Tick...Boom! 11월 16~2025년 2월 2일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을 차기작으로 확정한 상태다.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앙드레 역의 이해준(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사실 진짜 어려웠던 시기는 ‘마리 앙투아네트’ 공연을 할 때였어요. ‘마리 앙투아네트’ 공연에 ‘프랑켄슈타인’ ‘베르사유의 장미’ 연습까지 겹쳤었거든요. 괴물을 위해 생전 처음으로 몸도 만들어야 했죠. 너무 행복한데도 과부하가 걸리면서 다 감당할 수 있을까 부담감이 컸어요.”이어 이해준은 “너무 외롭고 춥거나 누군가를 사랑하는데 잘 안돼 슬프고 우울한 캐릭터를 쉼없이 연달아 하다 보니 리프레시할 수 있는 시간이 좀 부족했던 건 사실”이라며 “그걸 작품 안에 최대한 녹여내려고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처음에는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너무 힘들었어요. 결국 수능 입시생처럼 일 관련을 제외하고는 외부와 단절하고 운동과 레슨에 집중했죠. 이런 기회가 앞으로도 다시는 없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잡생각도, 스트레스도 사라진 것 같아요.”◇오스칼과 앙드레, 사랑을 넘어 느티나무처럼!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앙드레 역의 이해준(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왕용범 연출님과는 ‘프랑켄슈타인’에 이어 두 번째 작업인데 연기적인 부분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굉장히 디테일하게 디렉션을 주는 스타일이세요. 앙드레가 서사나 감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숨은 연기를 해야하는 캐릭터다 보니 서사가 부족해 보이지만 되게 짠해요. 그 숨은 연기를 보는 맛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작품 개발과정 중 콘서트부터 앙드레로 분했던 그는 “6개월 넘게 되게 장기공연을 하고 있는 느낌”이라며 “그래선지 첫 공연은 떨리곤 하는데 ‘베르사유의 장미’는 무언의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캐릭터에 대한 사랑이랄까요. 앙드레가 이미 오스칼을 사랑하고 있다는 관계성과 서사가 이미 전개된 상태로 극이 시작해요. 귀족인 오스칼과의 신분 차이가 컸으니 사람 혹은 친구로서 오스칼을 존경하고 동경하고 사랑할 수는 있지만 선을 넘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늘 바라만 보는 존재였던 것 같아요.”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는 이케다 리요코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프랑켄슈타인’ ‘벤허’ ‘삼총사’ ‘영웅본색’ ‘신데렐라’ ‘잭더리퍼’ ‘조로’ 등으로 호흡을 맞춘 왕용범 연출과 이성준 작곡·음악감독이 의기투합한 작품이다.“그간 제가 했던 캐릭터들이 그랬어요. ‘베토벤’의 카스파도, ‘마리 앙투아네트’의 페르젠도 형 혹은 마리를 위해 헌신하는 캐릭터였죠. 그게 쌓이다 보니 앙드레의 서사를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어요.”대대로 프랑스 왕실 근위대를 이끌어온 자르제 가문의 막내딸로 태어났지만 아들로 키워져 근위대장이 된 오스칼 프랑소와 드 자르제(김지우·옥주현·정유지)의 이야기다.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앙드레 역의 이해준(왼쪽)과 오스칼 옥주현(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너무 늦게 깨달아 버린 소꿉친구 앙드레 그랑디에에 대한 사랑 그리고 오스칼·앙드레와 더불어 반쪽짜리 귀족으로 부조리한 세상에 혁명을 부르짖는 신문기자 베르날 샤틀레(박민성·노윤·서영택), 마리 앙투아네트를 조정하는 폴리냑(리사·박해미·서지영) 부인의 버려진 딸로 길러준 엄마의 복수를 꿈꾸는 로자리 라 모리엘(유소리·장혜린) 등이 꿈꾸는 ‘내가 살고 싶은 세상’에 대한 이야기기도 하다. “다른 사람의 행복과 인생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걸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죠. 하지만 그게 사랑을 뛰어넘는 어떤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철없는 친구라고 생각했던 오스칼이 신념을 가지고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내(앙드레)가 그(오스칼)의 곁을 지켜줬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내 곁을 지켜줄 사람이라는 걸 깨달으면서 사랑을 넘어서는 감정으로 발전했던 것 같아요.”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앙드레 역의 이해준(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이에 이해준은 앙드레를 표현할 수 있는 넘버로 ‘너라면’을 꼽았다. 그는 “오스칼이 더 큰 사람으로 성장했다는 걸 느끼면서 더 사랑할 수 있는 계기가 된 넘버”라며 “그 가사들이 오스칼을, 제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제(앙드레) 마음이 오스칼에게 직접 들리지 않아서 진짜 슬프더라고요. 이 작품의 메시지를 잘 담은 넘버는 마지막의 ‘나를 감싼 바람은 내게만 불었나’ 같아요. 연출님께서 둘이 사랑하는 사이로 보이는 걸 철저히 배제하기를 바라셨어요. 넘을 수 없는 선 안에서 지켜주고 바라봐주는 게 오히려 진정한 사랑임을 보여주고자 다가가지 않으려고 노력했죠.”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앙드레 역의 이해준(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그럼에도 “결국 이 작품의 메시지는 시대를 관통하는 사랑이다. 사랑이 없었다면 이 작품이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겉으로는 되게 화려해 보이지만 그 안에 따뜻하고 인간적인, 시대를 뛰어넘는 사랑이 있어서 모든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말을 보탰다. “앙드레로서 오스칼에게 느티나무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 반려견처럼 연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늘 곁에 있는, 오스칼의 마음의 안식처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5년 같은 2년 “천천히, 오래오래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앙드레 역의 이해준(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2022년 ‘엘리자벳’ 오디션에 합격해서 대극장 뮤지컬을 시작했으니 정말 단기간에 엄청 많은 작품을 했어요.”‘엘리자벳’을 시작으로 ‘베토벤’ ‘모차르트!’ ‘마리 앙투아네트’ ‘프랑켄슈타인’ ‘베르사유의 장미’까지 쉴 새도 없이 달려온 그는 5년 같은 2년을 보내며 “어쩌면 진짜 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를 만끽하는 중이다.“중소극장에서 강한 캐릭터나 섹시한 역할 등을 하면서 배우로서 행복했어요. ‘엘리자벳’의 토드나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등을 연기하는 데 밑거름이 되기도 했죠. 반면 대극장에서는 진짜 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것 같아요. 다가가기 어려운 첫 인상과는 달리 수다쟁이에 사람을 좋아하는 제 성격을 앙드레나 앙리를 통해 보여줄 수 있었거든요.”EMK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되면서 받은 “EMK뮤지컬컴퍼니 작품만 출연한다는 오해를 털어내고 싶다”는 그는 “정당하게 오디션 기회를 얻어서 배우로서 성장할 수 있는 작품이거나 노래와 대본이 좋으면 언제든 도전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아직은 대사나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있어 서사가 부족하거나 연기적으로 디테일이 없으면 많이 티가 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대사량이 진짜 너무 많아서 정신을 못차릴 정도인 연극을 해보고 싶어요. 배우로서 꼭 스타가 돼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이 직업을 천천히, 오래오래 하는 게 목표죠. 하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으면 그 목표도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만 이 직업을 오래, 행복하게 할 수 있겠다 싶거든요.”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9-15 17:13 허미선 기자

[비바 2080] 긴 추석 연휴… 이런 책 한 두권 읽어보세요

‘예스 24’가 추천하는 서적들.문화체육관광부의 지난해 국민 독서 통계에 따르면 국내 성인의 43%가 1년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다. 소득이 적을수록 독서량이 낮아지는 경향이 뚜렷한 가운데 이런 ‘독서 외면’ 추세는 매년 강화되고 있다. 14일부터 오랜 만에 긴 추석 연휴를 맞았다. 귀향·귀성일이나 여행길에서는 물론 긴 연휴 기간에 집 안에서 모처럼 독서 삼매경에 빠져 ‘마음 건강’을 살 찌울 좋은 기회다. 도서 전문 플랫폼들이 추천한 ‘추석 연휴 권장 도서’들을 소개한다. 당장 연휴 때 읽을 책들을 챙겨보자.◇ ‘예스 24’ 추천 서적들문화콘텐츠 플랫폼 예스24이 긴 추석 연휴를 맞아, 마음에 위로가 되고 가족과의 시간을 즐겁게 채워줄 책들을 추천했다. 특히 담당 PD들이 휴일을 풍성하게 채워줄 신작들을 대거 소개해 주목을 끈다.김유리 소설 PD는 국내외 신작 소설들을 추천했다. 김애란 작가의 13년 만의 장편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비정한 현실을 용기 있게 헤쳐 가는 세 친구의 거짓말을 다뤘다. 정유정 작가의 영원한 천국은 스릴러와 SF를 동시에 원하는 독자들에게 딱이다. 6년 만에 다시 국내에 선보인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의 우연을 비켜 가지 않는다은 우연을 가장한 운명의 아이러니를 엮어낸 걸작으로 평가된다.오다은 자기계발 PD는 국내 대표 멘토 이하영 작가가 꿈과 성공에 대해 기술한 나는 나의 스무 살을 가장 존중한다를 추천했다. 이주은 에세이 PD는 늘 불안과 우울 사이를 넘나드는 젊은 청춘들을 위한 에세이 흐릿한 나를 견디는 법을 권했다. 김현주 어린이 PD는 사라질 위기의 죽집의 감동을 선사하는 언제나 다정 죽집을, 손민규 인문 PD는 환경 문제를 다룬 소비하는 인간, 요구하는 인간을 추천했다.건강 관련 서적으로는 내 몸 혁명이 추천되었다. 몸무게만 줄이는 다이어트가 아닌, 근본적인 건강 관리법을 제시한다. 13권 짜리 액션 판타지 만화 괴수 8호는 귀성길 가족들에게 안성맞춤이다. 46억 년 지구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기발한 상상의 과학 도서 찬란한 멸종도 가족 공통의 독서 목록으로 이름을 올렸다.◇ ‘밀리의 서재’ 추천 서적들 밀리의서재가 추천하는 추석 연휴 독서 콘텐츠국내 최대 독서 플랫폼 ‘밀리의서재’도 추석 연휴를 맞아 ’삼색(三色) 독서 상차림‘을 선보였다. 자기계발과 스릴러, 철학 등 세 가지 카테고리에서 엄선한 10권의 도서를 엄선했다.심리 스릴러의 대가 정유정 작가의 소설 종의 기원은 어머니를 살해한 이를 찾아 나서며 벌어지는 섬뜩한 이야기다. 성우가 읽어주는 오디오 북도 겸한다. 같은 작가의 또 다른 소설 7년의 밤은 독일 차이트(Zeit)지 선정 ’2016년 올해의 추리소설‘ 베스트 9위‘에 올랐던 장편 스릴러다. 킬에이저는 국내 대표 여성 프로파일러 강해수가 아들의 학교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추리 소설이다.철학 입문서 만화로 보는 3분 철학은 어렵게 느껴지는 철학을 만화로 상쇄해 깊이를 더했다.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인 행복 심리학자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은 우리가 느끼는 ‘행복’의 본질에 관해 의미 있는 질문에 답을 전한다. 쇼펜하우어의 소품집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 역시 과하게 행복을 추구하느라 오히려 불행해지는 현대인의 모습을 날카롭게 파헤친다.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부조리와 용기냄 사이에서 고민하는 가장의 이야기를 담았다. 배우 정우의 목소리로 오디오 북을 들을 수도 있다. 쓴소리 챌린지 오디오북도 추천되었다. 쓴소리 전문가들이 명절 잔소리와는 다른 실질적이고 유용한 ‘유쾌한 잔소리’를 전한다.이의현 기자 yhlee@viva2080.com

2024-09-14 14:38 이의현 기자

[비바100] 두 얼굴의 트럼프… 그의 입만 보지 말고 당당히 '한국우선주의' 말하라

트럼프는 ‘최고 질서 파괴자’로 불릴 정도로 ‘파격’ 자체다. 그가 다시 화려하게 공화당 후보로 부활한 것을 저자는 ‘신의 개입(Divine Intervention)’이라고 표현했다. 온갖 곤경과 시련, 모욕에도 오히려 더 강인해지는 그에게서 설명하기 힘든 ‘신의 역사’를 떠올린 것이다. 저자는 그러나 트럼프가 내년 1월 백악관의 새 주인이 된다면, 혁명적 변화가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그의 재림을 ‘악몽’이 아닌 ‘축복’으로 만들 방안을 일러준다. 카멜라 해리스라는 강력한 변수가 돌출된 상황에서 향후 미 대선의 향방이 주목된다. 신의 개입|송의달|나남◇ 인간 트럼프저자는 트럼프 2기를 한국이 주도하려면 트럼프 개인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학습이 필수라고 말한다. 감당 못할 예측 불가능성, 의도성 있는 잦은 실수와 변화무쌍함, 야비하고 잔인한 이미지의 이면에 있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반드시 이기려는 무한한 열정과 의지를 제대로 읽어내야 한다는 것이다.트럼프는 정치를 포함한 일상사에서 ‘공포’라는 인간의 취약한 심리를 최대한 활용한다. 진정한 힘이 공포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얼마나 진지한 노력과 훈련, 그리고 철저한 사전검토와 준비를 해 왔는지 여러 저서에서 밝히고 있다. 대단히 돌발적일 것이라 여겨지지만, 치밀한 준비와 전략이라는 얘기다.그는 균형감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 3시간의 독서와 묵상을 한다면서,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69세 나이에 생애 첫 대통령 도전을 결행할 수 있었다고 했다.저자는 아베 전 일본 총리의 성공담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베는 식사와 골프비로만 4억 달러 넘게 지출했다. 트럼프팀을 만들어 치밀하게 그를 연구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촘촘하게 관리했다. 무엇보다 끈기 있게 상대했다. 저자는 “아베가 부드러움과 겸손함으로 트럼프의 강함과 독단을 4년 가까이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다스렸다”고 말했다.◇ 진짜 트럼프의 모습트럼프 후보가 피격 직후 계속 연설을 강행하려는 모습. 스트롱맨의 이미지를 다시한번 각인시켜 주었다. (AP=연합)트럼프는 ‘위험천만의 정치인’으로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2023년 7월에 ‘최근 40년 동안 가장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한 대통령’을 묻는 설문에서 그는 19%의 지지를 얻어 오바마(32%), 레이건(23%)에 이어 당당히 3위에 올랐다. 2020년 12월 갤럽 여론조사에서는 ‘가장 존경받는 미국인 남성’ 1위에 올랐다. 지식인 엘리트 층의 냉소와는 다른 결과다.트럼프는 자신의 승리가 먼저다. 싸우면 무조건 이겨 살아남아야 한다. 늘 거칠고 상스러운 막말을 달고 산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이 힘을 발휘한다고 경험적으로 확신한다. 자신의 패를 잘 보여주지 않고 상대방에게 초조와 공포심을 유발케 해 뒤흔든다. 그는 “거짓말조차도 비밀스런 소스”라고 말한다.저자는 대중이 트럼프에 열광하는 것은 그가 ‘금수저’가 아니라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모습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초호화 이미지지만 블루칼라 노동자와 중산층 시민과 잘 어울리고 그들을 대변하는 발언들이 그를 추종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평범한 미국인들과의 친숙함이 그의 정치적 밑거름이라는 평가다.◇ ‘트럼피즘’이 낳은 미국 사회구조의 변화 미국 우선주의를 기초로 ‘매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를 내건 트럼피즘은 21세기 미국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하지만 저자는 트럼프가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약화시키고 고립주의로 회귀하려 한다는 평가는 잘못된 것이라고 단언한다. 트럼프는 미국의 ‘실익’을 극대화하려 외교정책을 재조정하고 재협상했으며, 적과 동맹을 구분하지 않고 압박할 뿐이라는 것이다.저자는 “이미 반 세계화는 대세이며, 미국 역시 세계화보다 자국의 이익을 훨씬 더 중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30여 년 동안 지속된 세계화의 후유증으로 미국은 이제 세계에 대한 관심과 개입을 줄이고 있다. 미국의 이익을 먼저 챙겨야 한다는 국민들이 늘고 있다. 이런 달라진 세계관이 트럼피즘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백인의 나라로 만들려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2024년 대선은 민주당 대 공화당 싸움이 아니라 흑백 인종 간의 싸움, 우파와 좌파의 첨예한 갈등이 되고 있다. 수세에 처한 백인들이 트럼프를 중심으로 뭉치고, 흑인들이 반격하는 모양새다. 해리스 부통령의 만주당 대선 후보 낙점 이후 이런 갈등은 더욱 첨예화하는 모양새다.◇ 트럼프 2기의 정책 구상과 비전카멜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 현재 여론조사 결과는 박빙이다. (AP=연합)트럼프는 재집권 시 가장 먼저 손을 볼 집단으로 글로벌리스트와 딥스테이터(자기 이익을 위해 비밀 활동을 하는 조직의 일원)을 꼽는다. 그는 미국이 직면한 최대 위협은 ‘내부의 파벌과 혼란’이라며 말썽 많은 고위관료에 대한 대통령의 해임권을 보장하고, 예산 억제를 위한 지출 거부권 부여 및 공무원 해고 활성화 등을 적극 추진할 심산이다.중국 경제 의존도를 대폭 낮출 방안도 찾고 있다. 최혜국 대우를 폐지하고 중국에 대한 관세를 60%대로 높이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중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최대 200%까지 부과하겠다는 지침도 만지고 있다.상대국과 동일한 비율의 관세 부과를 골자로 하는 ‘트럼프 상호무역법’ 제정도 계획하고 있다. 대신 미국 노동자와 기업에는 세금을 대폭 깎아줄 요량이다. 바이든 정부의 그린 뉴딜 정책은 폐지하고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 개발에 다시 나서고, 원전을 풀 가동해 풍부하고 값싼 에너지를 미국 기업들에게 대량 공급해 주겠다고 공언한다.트럼프는 특히 ‘힘을 통한 평화’ 전략을 더욱 공공히 할 방침이다. ‘환상적인’ 차세대 미사일 방어체계를 구축하고 ‘강력한 미국 군대’라는 전통을 복원하겠다고 벼른다. 그 차원에서 한반도는 물론 대만에도 방어 비용을 청구해, 중국 견제를 위한 전방위 포석을 완성하겠다는 생각이다.◇ 트럼프 2기 한반도 정책은?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9년 2월 베트남 회담에서 처음 악수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트럼프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고, 새로운 핵무기 개발 동결을 대가로 제재 완화와 경제·재정적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김정은과의 직접 담판으로 성사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10% 보편적 기본관세 부과, 탈 중국화 강화, 인플레이션감축법 등 친환경 정책 축소도 예견되는 정책들이다.미국이 한국산 제품에 10%의 보편적 기본관세를 부과할 경우, 한국의 대미 수출액은 연간 152억 달러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산 중간재 수입 추정치가 연간 47억~67억 달러 수준이니, 전체적으로 한국의 대미 수출액 감소규모가 연간 200억 달러 안팎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한국이 북한을 상대로 재래식 방어를 주도케 할 것이란 전망도 점쳐진다. 군축 협상 등 미국과 북한의 직접 대화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심지어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 허용 가능성까지 부상하고 있다. 한미, 한일 동맹을 넘어 한미일 3국 협력체제 구축이 강조될 것이 확실시된다.◇ 해답은 자주국방과 안미경미(安美經美)?우리의 주한미군 분담금은 2023년 기준 1조 3000억 원 안팎이다. 우리 정부 총예산의 0.2% 수준이다. 저자는 분담금 이슈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미국을 상대로 매년 최대 60조 원의 무역흑자를 내는 한국이 1억~2억 달러의 분담금 중액을 망설이다 소탐대실할 수 있다고 말한다.트럼프가 재임 때 이미 “주한미군 철수를 두 번째 임기의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고 공언했던 점도 상기시킨다. 한반도 방어의 책임을 우리에게 넘기려는 마당에, 안보는 물론 경제도 미국에 더 의존하는 ‘안미경미’ 전략이 우리 중장기 이익에 더 부합할 것이라고 말한다. 어설픈 양다리 전략은 대단히 위험하다며, 오히려 중국의 강점과 약점을 더 깊이 연구하고 확실한 우위 요소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한다.독자적 핵무장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우리에게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국의 핵은 미국의 핵 억제 부담을 덜어주고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핵개발 로드맵 등을 미리 준비하고, 일본과의 군사협력 및 공동 핵개발, 핵 프로그램 분업 같은 카드도 갖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저자는 끝으로 세 가지를 각별히 강조했다. 첫째, 트럼프가 파괴적이고 예측불허의 위험한 인물이라는 ‘허상’에서 벗어나, 그의 많은 행동과 언사가 고도로 계산된 행위이거나 최소한 오랫동안 벼려온 신념과 계획 임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두 번째는, 설사 트럼프가 낙선한다 해도 트럼피즘을 계승한 후보들이 계속 껄끄럽고 사나운 청구서를 들이밀 것이란 것이다. 세 번째는, 누구든 그는 미국편에 설 것을 요구할 것이라는 얘기다. 해리스가 당선되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저자는 우리가 스스로의 운명에 비관하지 않고 한계를 넘어서는 노력을 벌여갈 때, 트럼프 2기는 우리에게 축복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의 정치와 정치인들도 과거에 매몰되어 후진적 퇴행을 거듭하지 말고, 한국우선주의(Korea First)를 당당하고 논리 있게 설파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2024-09-14 07:00 조진래 기자

[비바100]니체, 바그너, 미얀마…SMK인터내셔설 김성민 회장 “의연하게, 파르지팔처럼!”

바그너 초상 앞에 선 SMK인터내셔널 김성민 회장(사진=허미선 기자)“대학시절 푹 빠졌던 니체가 언급한 바그너에 빠져들었어요. 벌써 40년도 전의 일이죠. 대학시절부터 니체와 바그너, 헤르만 헤세의 ‘향수’ 그리고 ‘브레이킹 어웨이’라는 영화와 TV시리즈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 중 킹스필드 교수 파트를 보면서 꿈과 낭만을 키웠습니다.” SMK인터내셔널 김성민 회장은 그렇게 대학 도서관에서 영사기로 돌려본 영상으로 처음 접한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의 세계관과 그 음악에 깊이 빠져들었다.“바그너의 음악을 듣다 보면 제가 바그너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어요. 그렇게 40년을 넘게 바그너는 저의 멘토죠. 힘들 때면 무조건 바그너를 찾습니다.”바그너로만 꾸리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Bayreuther Festspiele)을 비롯한 푸치니 페스티벌(Puccini festival), 시칠리아의 팔레르모 테아트로 마시모(Theatro Massimo di Palermo), 잘츠부르크 페스티벌(Salzburg Festival), 키아프와 프리즈 서울 등을 찾는가 하면 녹록치 않은 출장의 여독을 오페라나 클래식 공연으로 풀 정도로 그의 예술사랑은 깊다.SMK인터내셔널 사옥 2층에서 관악산을 굽어보고 있는 바그너 조각상(사진=허미선 기자)그가 40여년 간 키워온 예술사랑은 사옥 2층에서 관악산을 굽어보고 있는 바그너의 조각상, 고재윤 작가의 바그너 초상 회화, 13년 전 열었던 스페인 레스토랑 엘 올리보(El Olivo), 지난해 개관한 KL뮤지엄 등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니콜라라는 미얀마 이태리 조각가에게 바그너의 대리석 동상을 의뢰할까 고민 중”이라고 귀띔할 정도로 못말릴 김 회장의 예술사랑과 지역 발전에 대한 의지는 개관 1주년을 맞은 KL 뮤지엄에 응축돼 있다.한국의 신진작가들을 발굴해 선보인 ‘뉴히어로’(New Hero)를 시작으로 빌리 바길홀(Billy Bagilhole)과 마크 생부쉬(Mark Sengbusch) 2인전 ‘언더 더 트리 트렁크’(Under the Tree Trunk), 권여현의 ‘춤추는 사유’(In a Trance), 오스트리아의 전위 예술가 헤르만 니치(Hermann Nitsch) ‘Gesamtkunstwerk: 총체예술’에 이어 현재 스위스 현대미술가 클라우디아 콤테(Claudia Comte) 개인전 ‘재로부터의 부활: 재생의 이야기’(Ascending The Ashes: Tale of Renewal)가 한창이다.◇미얀마 쿠테타, 글로벌 경제난, 반토막난 매출 그럼에도 “계속된다는 것이 중요하죠”SMK인터내셔널 김성민 회장(사진=허미선 기자)“사업은 안정됐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쿠테타 전에 직원 5000명, 수출액 5000만불이었고 2025년 1억 달러 매출을 목표로 했지만 올해 반토막이 나긴 했어요. 하지만 사업은 그럴 수 있습니다.”“피아노만 있으면 작곡할 수 있다”며 어디든 피아노를 동반해 위대한 음악을 만들어낸 “바그너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더”는 김 회장은 “미얀마의 상황, 한국경제, 세계 무역경제의 어려움이 오더라도 제 비즈니스 여정은 계속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계속된다는 것. 그게 중요합니다. 결국 지속가능성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니체가 말하는 ‘의지’겠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은 의지로부터 나오는 거니까요.”대학졸업 후 1985년 대우그룹 섬유개발부서에 입사했던 그는 8년만에 독립해 SKM인터내셔널을 설립했다. 자라, 망고 등 글로벌 유명 패션 브랜드를 비롯한 의류 제조기업으로 자신의 영어 이름을 딴 남성 셔츠 전문 브랜드 ‘해리 켄트’를 론칭하기도 했던 그는 2000년 모두가 중국, 베트남 등으로 내달리던 때 미얀마로 향했다.“일단 사람들이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우리하고 문화적인 코드도 맞았죠. 제가 베트남에 공장을 안 세운 이유는 그들의 기술이나 사람들의 능력이 당시 이미 어느 수준에 올라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없어도 되는 곳이었거든요. 그런 곳에 굳이 공장을 세울 이유가 뭘까 싶었죠.”본사 건물과 개관 1주년을 맞은 KL뮤지엄, 13년째 운영 중인 스페인 레스토랑 ‘엘 올리보’가 과천 주택가에 자리 잡은 이유기도 하다.클라우디아 콤테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Kamp;L뮤지엄 창 너머로 보이는 스페인 전문 레스토랑 엘 올리보.(사진=허미선 기자)“그래서 제가 아직까지 이 기업을 여기까지 밖에 못 키웠는지도 모릅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우리 직원들입니다. 그들이 저를 이해해 주고 따라와 준다는 게 제일 중요하죠. 거기서 패션 제조업도, 문화예술 사업도 지속성을 얻거든요. 그게 안 되는 순간 끝입니다. 지난해 선친이 돌아가신 후 회장이 된 제가 문화사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30년 넘게 함께 해온 현석호 사장님을 비롯한 임직원들이 사업을 도맡아 주고 계시죠.”군부 쿠테타와 그로 인한 내전, 민주항쟁으로 위험한 미얀마를 떠나지 않으리라 마음먹은 그는 바그너처럼 혹은 ‘의지’를 강조한 니체처럼 “사업적으로 더 큰 회사를 만들 수 있는 기회는 많았지만 사업적 확장에만 집중하기 보다는 함께 살아가며 성장할 수 있는 길을 택했다.”“어려울 때 함께 해야 진짜죠. 제 속에 비즈니스 마인드와 예술가적 마음이 공존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미얀마에 공장을 짓고 그들의 어려운 시절을 함께 하며 예술가들을 발굴해 소개하고 KL뮤지엄도 짓고 그러는 것 같아요. 남들과는 다른 선택, 미얀마의 정치 상황 등에 다들 걱정들을 하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할 겁니다. ‘무소의 뿔처럼’ 의연하게요.”◇3년여를 준비한 광주비엔날레 미얀마 파빌리온 “현재는 KL뮤지엄 정체성 고민 중”1주년을 맞은 Kamp;L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클라우디아 콤테 개인전 ‘재로부터의 부활: 재생의 이야기’ 전경.(사진=허미선 기자)“다들 미얀마에도 예술이 있냐고 묻곤 하지만 벌써 60여년간 내전과 민주항쟁이 치열한 그들의 문화, 예술은 정말 대단해요. 말로 표현이 도저히 안될 정도로 훌륭한 작가들이 많습니다. 보물찾기를 하듯 파빌리온을 꾸릴 작가들을 만났죠.”그는 3년 전부터 발로 뛰어 미얀마의 보석같은 아티스트들을 발굴하며 30주년을 맞은 광주비엔날레(12월 1일까지) 파빌리온을 준비했다. 그에게 “미얀마를 떠나지 말아주세요”(Harry, Don’t Move Myanmar)라고 당부했던, 12시간을 이동해 만나 이틀에 걸쳐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정치범 출신의 작가 떼일린을 비롯한 미얀마 아티스트들의 작품으로 파빌리온을 꾸려 소개하면서 김 회장은 KL뮤지엄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이번 광주비엔날레 미얀마 파빌리온을 준비하면서 다양한 작가들, 컬렉터들, 갤러리스트들 등을 만나면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굉장히 혼돈스러웠습니다. 40년 전 바그너의 음악을 들었을 때만큼이나 충격이었죠.”미술관 부지 마련을 위해 15년 동안 3필지를 사들이며 공을 들인 KL뮤지엄의 애초 정체성은 음악에 조예가 깊은 그와 선화예술중·고등학교, 미국 시카고 ‘SAIC‘(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시카고 예술대학)에서 미술 전공 후 국내외 유수의 갤러리에서 커리어를 쌓은 딸 김진형 실장이 함께 하는 미술관 그리고 음악과 미술이 공존하는, 아방가르드한 작품들을 선보이는 미술관이었다.“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소장하는 것도 중요하죠. 하지만 숨은 보석들을 발굴·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들을 어떻게 믹스 앤 매치하며 균형을 잡을까 고민에 빠졌죠.” SMK인터내셔널 김성민 회장(사진=허미선 기자)스위스 작가인 클라우디아 콤테 전시 기간 중인 10월 6일 KL뮤지엄에서는 각종 와인을 즐길 수 있는 와인 페스티벌과 10여명이 동원되는 스위스 전통 요들송 공연이 열린다. 그는 스페인 갤러리를 방문했다 발견한 와인을 직접 수입할 정도로 와인애호가이기도 하다. “저 나름의 와인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정성이 들어가서 만들어지고 세월이 지날수록 그 가치를 더한다는 데서 예술과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클라우디아 콤테 개인전이 끝나는 12월, KL뮤지엄에서는 광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이고 있는 작품들에 좀더 다양한 미얀마 작가들의 작품들을 더해 기획전을 열 예정이다.◇오페라 뮤지엄 팝업, KL 후속전시, 미얀마의 한국문화원 그리고 ‘파르지팔’span style="font-weight: normal;"클라우디아 콤테 개인전이 열리는 Kamp;L뮤지엄의 SMK인터내셔널 김성민 회장(사진=허미선 기자)“올 초 미얀마에서 아티스트들과 그곳을 떠나지 않고 남아 계신 한국 교민들 300분을 초청해 클래식 음악회를 열었어요. 마지막에 저와 사회자, 소프라노, 테너 등이 다 같이 ‘고향의 봄’을 불렀는데 전부 울컥해서 결국 떼창으로 이어졌죠. 벌써부터 내년에도 신년음악회를 할 건지 문의가 오고 있어요.”그렇게 김 회장은 매순간 음악 그리고 예술의 대단한 힘을 목도하곤 한다. 광주비엔날레 미얀마 파빌리온에 소개하고 싶었지만 판매를 한사코 거부했던 작품 소장자의 마음을 단박에 움직인 이 음악회의 지속성을 고민 중이기도 한 김성민 회장은 그만큼이나 바그너와 오페라 애호가인 이오테크닉스의 성규동 회장과 10월 예술의전당에 팝업으로 설치할 ‘오페라 박물관’ 준비에 한창이다.“굉장히 심혈을 기울여 준비 중이시죠. 팝업 기간이 끝나고는 이오테크닉스 사옥에 박물관을 지어 옮겨갈 예정입니다. KL뮤지엄은 한명의 관객 앞에서 의연하게, 보다 공을 들여 연주한 위대한 예술가들처럼 단 한명의 관람객이라도 있다면 열어둘 겁니다. 13년 전 엘 올리보를 오픈했을 때도 그랬어요. 3년 간은 적자였죠. 어떤 날은 단 한명의 손님이 없기도 했어요. 그런 시기를 보내고 나니 지금은 잘 운영되고 있잖아요. 정말 단 한명의 고객, 관객이 중요한 것 같아요.”SMK인터내셔널 김성민 회장(사진=허미선 기자)KL뮤지엄은 콤테, 미얀마 작가들 기획전에 이어 내년에는 ‘금강산’을 주제로 의뢰한 윤종숙 화가 신작들을 선인다. 그는 “그 기간 중 ‘그리운 금강산’ 등 가곡 음악회도 기획하고 있다”며 “그 이듬해는 척박한 글로벌 미술시장에서 예술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라파 마카롱(Rafa Macarron) 개인전을 플라멩코 기타리스트 호세 전국투어와 동시에 기획 중”이라고 말을 보탰다. 오래 공들여 발굴해 선보인 미얀마 작가들 중 몇몇은 아트바젤 파리(Art Basel Paris), 아시아나우 파리(ASIANOW Paris) 등 글로벌 아트페어에 출품할 계획을 진행 중이기도 하다. 바그너 작품들 중 가장 감동받은 하나가 ‘파르지팔’이라고 꼽은 그는 “제가 추구하는 인간형”이라고 털어놓았다.“캐릭터 자체가 가장 순수한 바보잖아요. 그 사람이 난세에 세상을 구원한다는 바그너의 메시지가 제 가치관과 잘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구원자가 좀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70세가 됐을 때 오페라 ‘파르지팔’을 국내 무대에 올리는 것 그리고 미얀마에 한국문화를 함께 즐기고 소통하는 ‘SMK 코리안 컬처 콤플렉스’를 짓는 게 꿈이에요. 제가 파르지팔이 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앞으로도 그 꿈을 향해 의연하게 제 길을 가고자 합니다. 무소의 뿔처럼요.”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9-13 18:00 허미선 기자

[B그라운드] 집시킹스, 플라멩코, 감정적 접근 그리고 공감대…뮤지컬 ‘조로: 액터뮤지션’

뮤지컬 ‘조로: 액터뮤지션’ 프레스콜에서 크스티안 더럼 각색·연출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허미선 기자)“집시킹스의 다이내믹한 음악과 펜싱을 바탕으로 한 액션, 28명이 무대에 오르는 대극장 버전 오리지널 공연원작의 엔터테인먼트 요소들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이야기가 다소 심플하고 강렬해졌습니다. 더불어 조금 더 공감을 할 수 있는 이야기로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뮤지컬 ‘조로: 액터뮤지션’(11월 17일까지 인터파크 유니플렉스 1관)의 크리스티안 더럼(Christian Durham) 각색·연출은 11일 열린 프레스콜에서 이렇게 밝혔다.“한국 프로덕션은 제작사(모먼트메이커), 한국배우들, (홍승희) 협력연출 등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국 관객에게 더 쉽게 다가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변주하고자 노력했습니다.”뮤지컬 ‘조로: 액터뮤지션’ 주요 출연진(사진=허미선 기자)‘조로: 액터뮤지션’은 2008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이자벨 아얀데(Isabel Allende)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무대화한 뮤지컬의 액터뮤지션 버전이다. ‘리베흐테’(Liberte), ‘발리메’(Balie Me), ‘밤볼레오’(Bamboleo) 등 세계적인 집시밴드 집시킹스(Gipsy Kings)의 대표곡들 그리고 집시킹스와 음악감독 존 캐머런(John Cameron)이 함께 쓴 20개곡(짧은 리프라이즈 제외)으로 넘버를 꾸린 액터뮤지션 버전으로 2022년 4월 영국 채링 크로스 극장(Charing Cross Theatre)에서 초연됐다.화려하고도 열정적인 집시선율에 플라멩코, 검술액션 그리고 집시 혹은 고통받는 민중으로 등장하는 액터뮤지션들의 바이올린, 트럼펫, 기타, 베이스, 카혼, 셰이커, 아코디언, 캐스터네츠, 탬버린 등 라이브 연주가 흥을 더한다 .뮤지컬 ‘조로: 액터뮤지션’ 창작진들(사진=허미선 기자)이범재 음악감독은 “집시킹스의 음악은 정통 스패니시 집시 음악이라기 보다는 팝적인 요소가 가미된 퓨전”이라며 “그래서 장르가 아닌 감정적으로 접근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스페인 누에바에스파냐 지배 하에서 억압받던 19세기 초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귀족집안의 아들 디에고가 정의구현을 위해 가면을 쓴 영웅 조로로 변신해 겪는 절망과 좌절, 사랑의 완성, 그로 인한 성장 등을 담는다.뮤지컬 ‘조로: 액터뮤지션’ 액터뮤지션들(사진=허미선 기자)민중을 구원하기 위해 가면을 쓴 디에고(민규·최민우·MJ, 이하 가나다 순)와 권위적이고 냉혹한 지배자인 그의 형 라몬(김승대·최세용), 디에고의 소꼽친구이자 연인 루이자(서채이·전나영), 집시 여인 이네즈(배수정·홍륜희) 등 주요 인물들을 비롯해 액터뮤지션까지 17명이 무대오른다. “액터뮤지션이 집시 문화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집시들이 떠돌면서 춤추고 연주하는 모습 그대로죠. 액터 뮤지션들이 음악 연주를 비롯한 연기, 춤을 통해 집시문화를 보여주고 있어서 이야기가 더 재밌어진 것 같습니다.”협력안무가 헤더 더글러스(Heather Douglas)는 “한국배우들의 스킬이 뛰어나서 런던 프로덕션보다 안무를 더 어렵게 짤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뮤지컬 ‘조로: 액터뮤지션’ 창작진과 전 출연진(사진=허미선 기자)“한국 배우들은 규칙과 자기관리에 철저해요. 뭘 가르쳐주면 혼자서 혹은 남아서 연습하는 등의 모습을 보며 신뢰할 수 있었죠. 영국에서는 많이 쓸 수 없었던 부채 안무도 더 많아졌고 액터뮤지션들의 역할도 크게 늘었습니다.”디에고이자 조로를 연기하는 아이돌그룹 아스트로의 MJ는 “디에고와 조로의 온도차가 굉장히 커서 그 부분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며 “제 조로는 완벽하기 보다는 약간 허당미가 있는 영웅으로 표현하는 것이 차별점”이라고 밝혔다. DKZ의 민규는 “다른 캐릭터들과 디에고, 조로의 관계가 어떻게 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집중했다”고 털어놓았다.뮤지컬 ‘조로: 액터뮤지션’의 디에고이자 조로 역의 배우들. 왼쪽부터 MJ, 최민우, 민규(사진=허미선 기자)“저만의 특별한 디에고이자 조로는 팀의 막내로서 성숙한 모습보다는 좀 장난꾸러기 혹은 개구쟁이 같은 영웅이지 않나 생각합니다.”최민우는 “캐릭터와의 관계, 서사 그리고 우리가 얼만큼 사랑하고 많은 추억들을 가지고 있는지에 중점을 뒀다”며 “실제로 보이지 않아도 관객이 느낄 수 있게 감정선을 섬세하게 준비했다”고 전했다.“제 조로, 디에고의 매력은 나이는 제일 많지만 막내 민규에게 뒤지지 않는 에너지와 흥과 끼를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9-12 18:21 허미선 기자

[비바100] 세계적인 집시킹스 음악, 가면을 쓴 영웅을 만나다! 뮤지컬 ‘조로: 액터뮤지션’

뮤지컬 ‘조로: 액터뮤지션’ 공연장면(사진제공=모먼트메이커)할리우드 영화,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으로 변주되며 사랑받았던 이자벨 아얀데(Isabel Allende)의 베스트셀러 ‘조로’(Zorro)가 세계적인 집시밴드 집시킹스(Gipsy Kings) 음악을 만난다. 신음하는 민중을 구원하기 위해 가면을 쓰는 디에고와 권위적이고 냉혹한 지배자인 그의 형 라몬, 디에고의 친구이자 연인 루이자, 집시 여인 이네즈 등 주요 인물들을 비롯해 액터뮤지션까지 17명이 무대에 오르는 ‘조로: 액터뮤지션’(9월 11~11월 17일 인터파크 유니플렉스 1관)이 한국에서 초연된다.뮤지컬 ‘조로: 액터뮤지션’ 공연장면(사진제공=모먼트메이커)스페인 누에바에스파냐 지배 하에서 억압받던 19세기 초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그 지역의 스페인 귀족 돈 알레한드로 베가의 아들 디에고가 가면을 쓴 영웅 조로로 활약하며 겪는 절망과 좌절, 정의 구현과 사랑의 완성, 그로 인한 성장 등을 따르는 모험담이다.‘조로: 액터뮤지션’은 2008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됐던 뮤지컬 ‘조로’의 액터뮤지션 버전으로 2022년 4월 영국 채링 크로스 극장(Charing Cross Theatre)에서 개막했다.‘리베흐테’(Liberte), ‘발리메’(Balie Me), ‘밤볼레오’(Bamboleo) 등을 비롯한 집시킹스의 대표곡 그리고 집시킹스와 음악감독 존 캐머런(John Cameron)이 함께 쓴 20개의 넘버(짧은 리프라이즈 제외)로 꾸린다.낯선 듯 익숙한 집시 선율에 화려하고도 열정적인 플라멩코, 검술액션 그리고 집시 혹은 고통받는 민중으로 등장하는 액터뮤지션들의 바이올린, 트럼펫, 기타, 베이스, 카혼, 셰이커, 아코디언, 캐스터네츠, 탬버린 등 라이브 연주가 실린다.캘리포니아 최고 권력과 부를 가진 스페인 귀족집안의 아들로 총명하고 유쾌하며 재치와 카리스마를 겸비한 가면을 쓴 영웅 조로인 디에고는 ‘에곤 실레’ ‘모딜리아니’ ‘인사이드 윌리엄’ ‘홀연했던 사나이’ ‘삼총사’ ‘마마돈크라이’ ‘최후진술’ 등의 최민우와 아이돌그룹 아스트로의 MJ, DKZ 멤버 민규가 트리플 캐스팅됐다.뮤지컬 ‘조로: 액터뮤지션’ 공연장면(사진제공=모먼트메이커)디에고에 대한 질투와 욕망으로 흑화되는 집안의 후계자인 라몬은 ‘노트르담 드 파리’ ‘다윈영의 악의 기원’ ‘웃는 남자’ ‘고스트’ 등의 김승대와 ‘지킬앤하이드’ ‘모차르트!’ 등의 최세용이 번갈아 연기한다. 치명적인 매력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이네즈에는 ‘그레이트 코멧’ ‘미드나잇’ ‘호프’ ‘블랙메리포핀스’ ‘베르나르다 알바’ 등의 홍륜희와 ‘렌트’ ‘식스 더 뮤지컬’ ‘물랑루즈’ 등의 배수정이, 아름답고 총명한 루이자는 ‘아이다’ ‘렌트’ 등의 전나영과 ‘미드나잇’ ‘브로드웨이 42번가’ ‘김종욱찾기’ 등의 서채이가 더블캐스팅됐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9-11 18:15 허미선 기자

[비바100]소설, 영화, 오페라, 연극, 음악…경계를 넘나드는 작가 숀 “넘어설 수 있으면 경계가 아니죠!”

소설가이자 시인이며 영화 시나리오 작가, 연극과 오페라 극작가, 음악의 작사가 등으로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넘나드는 작가 숀(사진=허미선 기자)“최근 굉장히 흥미로운 변화 하나를 포착을 했습니다. 바로 오디오 북입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80% 이상이 독서를 오디오북으로 해요. 사실 책은 비교적 최신 매체입니다. 구술로 전해지던 이야기가 문자와 책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구술로 돌아온 셈이죠. 우리가 항상 미디어의 변화에 열려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소설과 영화, 오페라, 연극, 음악, 전시 등 문화와 산업 전반을 넘나드는 숀(Sjon, 본명 Sigurjon Birgir Sigurðsson)은 급변하는 환경에서는 무엇보다 “열린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작가로서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를 통해 언어의 한계를 테스트하고 우리가 무엇에 대해 이야기해야하는지를 계속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큰 변화 속에서도 여태껏 문학이 그래왔듯 사람들을 실제 이야기로 연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변치 않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소설가이자 시인이며 영화 시나리오 작가, 연극과 오페라 극작가, 음악의 작사가 등으로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넘나드는 작가 숀(사진=허미선 기자)◇어떤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문학의 가치“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 즉 ‘내용’과 어떻게 말할 것인가 ‘형식’입니다. 이 두 가지는 다른 방식으로 쓰이긴 하지만 영화에서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죠.”아이슬란드 레이카비크에서 태어나 16세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시집 ‘시선’(Synir, Visions)을 출간한 그는 최근까지도 20여개 언어로 번역된 시를 발표하는 시인이다.더불어 40여개국에 번역·출간된 ‘푸른 여우’(The Blue Fox), ‘속삭이는 뮤즈’(The Whispering Muse), ‘고래의 입에서’(From the Mouth of the Whale), ‘문스톤’(Moonstone-The Boy Who Never Was) 등으로 북유럽 이사회 문학상, 아이슬란드 문학상, 스웨덴 아카데미 노르딕상 등을 수상했고 2021년 프랑스 정부 문화예술공로훈장을 수여받은 영향력 있는 소설가이기도 하다. “다만 시는 좀 달라요. 우리를 현실 바깥에 존재하게 하는 게 바로 시인데요. 현실에서 한 발짝 나와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하거든요. 시를 통해 우리가 내부에서 보지 못한 아주 작은 꽃이라든지 소소한 것들도 볼 수 있게 되죠.”그는 창작오페라 ‘신북극’(Neoarctic), ‘레드 워터스’(Red Waters), ‘더 모션 데몬’(The Motion Deomn), ‘섀도우 플레이’(Shadow Play), ‘세븐 스톤스’(Seven Stones) 등과 연극 ‘테일 프롬 어 시 저니’(Tales From a Sea Journey), ‘가고일스’(UFSAGRYLUR. Gargoyles) 등의 극작가이며 바이킹 이야기를 다룬 영화 ‘노스맨’(The Northman)를 비롯해 ‘램’(Ram) 등을 집필한 시나리오 작가이자 비요크(Bjork)와 협업한 영화 ‘댄서 인 더 다크’(Dancer in the Dark) OST 등의 작사가이기도 하다.지난 6일 개막한 서울국제작가축제(9월 11일까지 JCC아트센터) 초청으로 내한한 숀은 축제의 대주제인 ‘입자와 파동’, 그로 인한 새로운 물길을 내는 문학에 대해 “존재만으로도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고 의견을 밝혔다.소설가이자 시인이며 영화 시나리오 작가, 연극과 오페라 극작가, 음악의 작사가 등으로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넘나드는 작가 숀(사진=허미선 기자)“이야기를 읽기 위해서는 일상을 멈춰야 해요. 그렇게 따로 시간을 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죠. 작가인 제가 이야기를 쓰기 위해 삶을 멈추고 글자를 정돈을 해야 하는 것처럼요. 독자들이 제가 쓴 이야기를 읽기 위해 일상을 멈추고 시간을 투자하는 건 매우 감사한 일이고 큰 축복이죠. 이같은 작가와 독자의 작은 멈춤들이 입자가 돼 파동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그는 “현재의 많은 정치인들이 단 한 가지의 가치만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문학이 굉장히 다양한 것들의 공존을 증명하고 있다”며 “그것만으로도 문학이나 예술이 현 세대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파동을 낼 수 있다”고 부연했다.“40개 이상 언어로 번역된 제 소설이나 시, 영화 등을 통해 각 언어로 어떻게 다르게 번역되는지, 이야기들이 얼마나 대중적으로 읽히는지, 변치 않는 코어가 어떻게 모두에게 똑같이 받아들여지를 보는 건 축복입니다. 작가인 동시에 많은 책과 영화를 읽고 보는 독자이자 시네필로서 같은 감정을 느끼기 때문에 더 특별하죠.”◇낯섦과 익숙함의 공존, 한국 콘텐츠의 견고함소설가이자 시인이며 영화 시나리오 작가, 연극과 오페라 극작가, 음악의 작사가 등으로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넘나드는 작가 숀(사진=허미선 기자)“다른 나라의 소설이나 영화를 볼 때 어떤 부분은 굉장히 친숙하다고 느껴지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다 낯설기도 해요. 작가이자 독자의 심정으로 낯섦과 익숙함을 동시에 보는 게 참 특별합니다.”그 낯섦과 익숙함은 한국 영화 마니아로서도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다. “한국 역시 친숙함과 낯섦이 공존하는 상태”라 표현한 그는 “한국이 처음이다 보니 매우 낯설지만 ‘기생충’ 등 스크린을 통해 익숙한 모습들도 있다”고 밝혔다.“한국 밖에서 온 사람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한국 문화는 굉장히 견고합니다. 모든 면에서요. 그래서 한국 문화를 해외에 알리고 있다는 자체가 기적이죠. 한국의 연극, 무대예술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면 사실은 잘 몰랐습니다. 특히 연극은 지극히 로컬적이고 이동성이 적은 콘텐츠거든요. 그럼에도 여전히 연극이 소비돼야하는 이유는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보다 직접적인 상호작용이 가능한 예술의 한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연극, 무대예술은 아이슬란드와 한국은 물론 어디서나 중요하다고 생각해요.”이어 “한국 콘텐츠들의 가장 큰 특징은 혁신적이고 용감한 영화적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최근의 가장 큰 발견은 한 영화에 굉장히 다양한 장르를 함축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한 영화에 코미디, 호러, 스릴러, 범죄, 비극 등 모든 요소들이 함축돼 녹아들어 완벽하게 완성되는 방식인데요. 그 명백한 예가 ‘기생충’입니다. 연기라든지 영화적 연출 등 굉장히 다양한 요소들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려 함축하고 있죠. 저 역시 소설에 쓰고 있는 기법이지만 이걸 스크린에서 본다는 자체가 굉장히 큰 발견이었습니다.”소설가이자 시인이며 영화 시나리오 작가, 연극과 오페라 극작가, 음악의 작사가 등으로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넘나드는 작가 숀(사진=허미선 기자)그는 다양한 나라의 영화를 소비하는 데 대해 “같은 문화적 개념을 가지고 다르게 생각하고 표현하는 자체가 재밌는 일”이라며 장례식을 예로 들었다. 그는 “한국이나 나이지리아, 유럽 등 다양한 나라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장례식이 치러지고 있다”며 “어떻게 다른지, 그 문화를 보는 게 너무 재밌다”고 털어놓았다.“다양한 나라에서 폭넓게 소비되는 콘텐츠들은 우리의 삶 혹은 누구나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것들을 다루고 있죠. 더불어 각 작업자들이 공들인, 장인정신이 돋보이는 콘텐츠이기도 해요. 춤을 잘 추는 댄서를 사랑하고 잘 쓰여진 글 읽기에 열광하는 것처럼요. 장인정신이 깃든 콘텐츠와 인류 보편적인 감성을 건드리는 작품들이 전세계적으로 사랑받지 않나 싶습니다.”◇큰 변화 속 경계 “넘어설 수 있다면 경계가 아니다”소설가이자 시인이며 영화 시나리오 작가, 연극과 오페라 극작가, 음악의 작사가 등으로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넘나드는 작가 숀(사진=허미선 기자)“지금 겪고 있는 변화는 전체 인류사를 놓고 봐도 굉장합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지금 왜 이런 상황을 겪고 있는지를 알아야 해요. 발전을 꾀하면서 인류는 굉장히 많은 종을 멸종시켰어요. 지금까지는 그 멸종하는 것이 인류가 아니니 괜찮을 줄 알았죠.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스스로를 위협하고 있어요.”숀은 “현재의 가장 큰 미스터리는 왜 우리는 파멸을 만드는 것을 멈출 수 없는가”라며 “많은 과학자들이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를 설명한다면 왜 이런 일이 벌이는지에 대해 탐구하는 건 작가와 아티스트들의 몫”이라고 털어놓았다.“급변하는 시대를 맞아 작가들은 좀 더 다양한 분야와의 콜라보레이션에 열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매체의 폼과 상관없이 언어를 다루는 직업이에요. 어디든 언어가 필요한 프로젝트라면 참여할 수 있죠. 매체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단어나 언어들을 보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이나 즐거움은 분명 다릅니다. 각종 매체들이 빠르게 탄생했다가 사라지곤 합니다. 책이 곧 사라질 거라고 하지만 스토리텔링이나 언어 자체는 사라지지 않아요. 다른 매체로 적용될 뿐이죠. 그래서 지금의 변화들은 작가들이 열려만 있다면 기회입니다.”그는 “지금의 변화에서 저나 작가들이 무언가를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이에 AI나 기술 혁명에서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갈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면서도 “오히려 AI가 어떻게 스토리텔링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AI 자체를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굉장히 큰 가능성을 가진 도구라고 보고 있거든요. AI는 위협이라기보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 하나의 필드죠. 그래서 두렵다기 보다는 새로운 대화의 툴이자 파트너로서 인류를 어떻게 탐구할 수 있을지 생각 중입니다. 디지털은 여타의 매체들이 그랬던 것처럼 금세 사라질 수도 있어요. AI가 종이에 적용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볼까 합니다.”이어 “매체에 얽매이기 보다는 스토리텔링과 언어를 중시해야 한다” 강조한 숀은 “다양한 매체와의 작업에서 작가는 매체별 특성을 살리면서도 자신만의 독보적인 색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했다.소설가이자 시인이며 영화 시나리오 작가, 연극과 오페라 극작가, 음악의 작사가 등으로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넘나드는 작가 숀(사진=허미선 기자)“다양한 미디어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이자 스토리텔러로서 예술을 생산하는 자체에 큰 책임을 느낍니다. 과거의 인류로부터 이야기를 받아서 지금의 인류에게 전하고 예술을 보존하는 자체도 굉장히 큰 책임이죠. 그 예술이 생존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과정에서 유연함을 빼놓을 수 없어요. 지금 우리가 굉장히 큰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똑바로 인지해야 합니다.”현재 “내년 출판될 1970년대 아이슬란드를 배경으로 한 자전적 소설을 쓰고 있다”고 귀띔한 숀은 “굉장히 다양한 미디어와 협업했지만 딱 하나 못해본 것이 게임”이라고 밝혔다.“저는 CD세대로 지금의 모바일 게임이나 플레이스테이션 등을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도 도전하고 싶어요. 매우 어려운 매체지만요. 게임이 전혀 다른 규칙과 가능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산업이기 때문에 더 관심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만약 누군가 게임 프로젝트에 참여해 보겠냐고 제안을 주신다면 바로 응할 정도죠. 저는 언제나, 어떤 콜라보레이션에나 열려있습니다. 넘어설 수 있다면 그건 경계가 아니죠.”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9-11 18:00 허미선 기자

[B그라운드] ‘귀신들의 방’ ‘67번째 천산갑’ 천쓰홍 “모두가 즐겁게 자신이 되기를, 맘껏 울 수 있기를!”

‘귀신들의 땅’ ‘67번째 천산갑’의 천쓰홍 작가(사진제공=민음사)“성 소수자로서 많이 고통스럽고 슬펐고 죽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성장하면서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독자들을 만나면 이제는 큰소리로 ‘저는 대만에서 온 게이’라고 밝히죠. 사람들이 즐겁게 자기 자신이 되기를, 자신만의 모습으로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2019년 대만에서 출간돼 한국어를 비롯한 12개 언어로 번역된 ‘귀신들의 땅’(鬼地方) 그리고 한국에서 최근작 ‘67번째 천산갑’(第六十七隻穿山甲)을 출간한 천쓰홍(陳思宏) 작가는 이렇게 밝혔다. 지난 6일 개막한 서울국제작가축제(9월 11일까지 JCC아트센터) 초청으로 내한해 9일 한국기자들을 만난 그는 “소설은 충돌하는 예술”이라고 강조했다.천쓰홍 작가의 ‘귀신들의 땅’(사진제공=민음사)“소설을 통해 부딪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공격을 받을 수도 있죠. 하지만 이제는 괜찮습니다. 공격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알게 됐거든요. 무엇을 쓰든 그 속에 진짜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저 스스로에게 늘 각인시키죠.”누나 7명과 한명의 형을 가진 스스로를 대입시켜 7남매의 막내 천텐동이라는 주인공을 내세운 ‘귀신들의 땅’은 대가족을 통해 대만의 근대 역사를 아우른다면 지난해 10월 출간한 ‘67번째 천산갑’은 개인에 대한 이야기다.“사실 출판사에서는 ‘귀신들의 땅’ 흥행에 대해서는 비관적이었어요. 하지만 놀랍게도 잘 돼서 미국에도, 폴란드에도 갔고 한국에도 올 수 있었죠. SNS를 통해 한국 독자들, 성소수자들의 피드백을 볼 수 있었는데요. 대만 소설이고 대만의 농촌에서 벌어진 일임에도 그 속에 담겨 있는 고통이 사실 나의 고통이었음을 느꼈다는 평이 많았죠.”이어 그는 “이 소설은 실패자에 대한 이야기”라며 “한국과 비교해 동성혼이 법제화된 대만은 좀 나을 거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여전히 도시 외 지역에서 성소수자들의 생존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부연했다.“중국어로 ‘귀신들의 땅’은 환경이 열악한 지역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아주 작은 농촌에서 태어나 자랐어요. 대학을 타이베이로 가고 싶었는데 집에서, 부모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타이베이는 충분히 멀지 않았어요. 훨씬 더 먼 곳으로 도망을 가야만 자유를 얻을 수 있겠다 싶었고 베를린에 기자로 가게 됐죠.”그렇게 처음 발 디딘 베를린에서 그는 “정말 철저하게 혼자가 됐음을 느꼈고 자유로웠다”며 “그 외로움이 너무 좋다”고 고백했다.‘귀신들의 땅’ ‘67번째 천산갑’의 천쓰홍 작가(사진제공=민음사)“사실 저는 실패한 작가이고 실패한 소설을 썼어요. 기술이 발전하는 시대에 문과이고 대기업에 취직한 사람도 아니니까요. 그걸 실패한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었어요. 이 책을 통해 그들이 조금 더 자유롭게 지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67번째 천상갑’은 어린 시절의 인연으로 잠동무가 된 게이인 그와 헤테로인 그녀의 이야기다. 중국어 표현으로 그와 그녀는 표기(他, 她)만 다를 뿐 발음도, 성조도 같은, 어쩌면 최근 한국에서도 이슈가 되고 있는 성인지, 성평등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도 하다.연인을 잃고 파리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던 게이인 그와 유명 정치인의 아내로 편안한 삶을 영위 중이지만 어쩐지 잠을 잘 수 없는 그녀가 어린 시절 동반 출연한 영화가 4K로 복원돼 낭트 영화제에 초대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프랑스 낭트로 가는 과정은 실제로 작가가 프랑스 낭트로 여행 중 사고를 당했던 상황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이야기다.천쓰홍 작가의 신작 ‘67번째 천산갑’(사진제공=민음사)“천산갑이라는 존재로 남자 주인공인 그를 은유했는데요. 천산갑은 멸종위기의 동물로 부끄러움이 많아요. 대만에서 몇 번이나 천산갑을 봤는데 한 마리인 경우가 많았어요. 매우 고독하죠. 사실 천산갑이 처한 환경은 되게 힘듭니다. 중의학에서는 약재로 사용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이고 비늘을 벗기거든요. 심지어 고기를 먹기도 하죠. 떠돌이 유기견들에게 공격을 당하기도 합니다. 부끄러움이 정말 많아서 사실상 사람들이 키울 수 없는 동물이기도 해요. 그런 천산갑의 특징을 기반으로 소설 속 그를 이야기했죠.”천쓰홍은 “대만의 천산갑은 독일을 비롯한 유럽으로 많이 보내졌는데 나 역시 대만에서 도망가고 싶었다”며 “너무나 큰 욕망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그 역시 개들의 공격에 웅크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천산갑과도 같던 때가 있었다.“어려서는 자살충동을 느끼기도 했어요. 수학 책에 시를 쓴 적이 있는데 그걸 친구가 발견했어요. 그 친구가 다른 친구들에게 ‘천쓰홍은 게이’라고 공개하면서 공격을 많이 받았죠. 그 후로 생존을 위해 많은 에너지를 써서 제 모습이 부각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숨겨야 했습니다. 그게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저는 저만의 색도 많은 편이고 목소리도 높이는 편이거든요. 그걸 감추는 게 되게 어려웠죠.”그렇게 혼자 세계문학을 읽으면서 그는 “다른 세상의 존재”를 깨달았고 영화를 좋아하는 누나의 손을 잡고 자주 가던 영화관의 스크린을 보면서 “각양각색의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다른 세계로 가는 창문이라고 생각했다.”고등학교 시절 제43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거머쥔 이안 감독의 ‘결혼피로연’을 보며 베를린을 동경하던 그는 그렇게 대만을 떠나 독일의 베를린에 터를 잡고 지금까지 활동 중이다.‘귀신들의 땅’ ‘67번째 천산갑’의 천쓰홍 작가(사진제공=민음사)세월이 흘러 베를린영화제 통역을 하면서 그 영화 속에서 사이먼을 연기했던 배우 자오원쉬안(趙文瑄)을 만났던 그는 무작정 “사이먼 고마워요”라고 마음을 표현했다. 그는 “그렇게 제 청춘의 시기에 구원을 줬던 사이먼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할 수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고 당시의 기쁨을 전했다.“보수적인 사회일수록 영화나 문학은 확실히 청춘을 구원하죠. 사실 ‘67번째 천산갑’은 되게 슬픈, 슬픔에 대한 소설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기쁜 상황을 맞아 웃는 모습을 인터넷상에 많이 공유하죠. 울거나 슬퍼하는 모습은 올리지 않아요. 그런 모습이 너무 이상하다는 생각에 슬픔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눈물과 슬픔의 힘을 믿어요. 울고 싶으면 크게 울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울음은 되게 중요해요. 절대 창피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울고 싶으면 크게 울라’고 말하는 소설이죠.”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9-09 18:00 허미선 기자

[B그라운드] 키아프+프리즈 서울…판매호조, 북적거리는 파트너 부스, 동갑내기 김윤신·하종현의 조우, 매일밤 아트 나이트

프리즈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동행 3년차를 맞은 키아프(Kiaf)와 프리즈(Frieze) 서울(9월 8일까지 코엑스)로 서울이 아트의 향연이다. 5일간 국내외 대표 미술장터가 선의의 경쟁에 나섰고 밤마다 갤러리들이 운집한 지역에서는 파티가 한창이다. 첫해 600억원을 훌쩍 넘기는 파블로 피카소의 ‘술이 달린 붉은 베레모를 쓴 여자’, 38억여원의 조지 콘도 유화를 비롯해 우고 론디노네, 마르크 샤갈, 데미안 허스트 등 거장들의 고가 작품들을 선보였던 프리즈는 3년차를 맞으면서 ‘시장 맞춤’에 나선 모양새다.프리즈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110여개 갤러리가 한국 거장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동시에 해외 갤러리 관계자들이 한 목소리로 강조하는 “젊은 컬렉터들이 많은 한국 미술 시장”에 맞춰 합리적인 가격대와 신진 작가들 작품들도 고루 포진했다. 판매 성과도 지난해 보다 호조세다. 프리즈에 따르면 구매력이 높은 VIP들이 방문하는 페어 첫날 세일즈 리포트를 공유한 28곳 갤러리의 판매액은 205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이 중 가나아트, 갤러리 현대, 국제갤러리, 조현 갤러리, PKM 갤러리(이상 가나다 순) 등 국내 갤러리 10곳의 판매액은 50여억원에 이른다.프리즈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조현갤러리는 7500만원 가량의 이배 작품 10점, 1억 6000만원 상당의 박서보 작품 두점, 8000만원대의 권대섭 달항아리, 김종학 작품 등을, PKM갤러리는 20억여원에 달하는 유영국 작품을 비롯해 정현의 조각작품을 판매했다.지난 5월 프리즈 뉴욕에서 이승택 작가의 솔로 부스를 꾸려 호황을 누린 갤러리 현대는 서울에서도 한 작가에 집중하는 전략을 이어갔다. 프리즈 서울에서는 전준호 솔로 부스를 꾸려 5000만~3억원대 작품 7점 이상이 판매됐다.프리즈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국제갤러리는 장-미셸 오토니엘, 양혜규, 문성식, 이희준, 줄리안 오피, 우고 론디로네 등 1억원 안팎의 작품을, 가나아트는 최종태 작가의 1960년대작을 1억원 그리고 이상국 작품을 7000만원에 판매했다.해외 갤러리인 타데우스 로팍은 14억원을 훌쩍 넘어서는 게오르그 바젤리츠 회화, 화이트큐브는 9억 7000여만원의 안토니 곰리 작품, 하우저워스는 에이버리 싱어 작품을 7억7000여만원, 니콜라스 파티의 2023년작을 4억 6000여만원에 판매한 것으로 알려진다.프리즈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에이버리 싱어와 니콜라스 파티를 비롯해 리타 애커만, 캐서린 굿맨, 앤젤 오테로, 플로라 유크노비치의 신작 판매에 성공한 하우저앤워스의 제임스 코흐(James Koch) 파트너는 “올해 프리즈 서울에 큰 기대를 했는데 그 기대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며 “올해는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 덕분에 아트페어, 서울 아트위크에 대한 관심과 에너지가 더욱 폭발적”이라고 밝혔다. 유독 눈에 띈 것은 LG OLED와 함께 서도호·서을호 형제가 아버지인 고 서세옥에 헌정하는 특별전시 등 협찬사와 작가가 콜라보레이션해 꾸린 부스들이었다. 프리즈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서세옥XLG올레드: 서도호가 그리고 서을호가 짓다’와 더불어 BMW가 줄리 머레투(Julkie Mehretu)와 함께 아시아 최초로 공개하는 아트카 #20, 하이 주얼리 브랜드 쇼메(Chaumet)와 협업한 김희천 작가의 신작, 조 말론과 이광호 작가의 협업, 일리와 이우환이 협업한 아트 컬렉션 등 부스들은 그 어느 때보다 호황이었다.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중동, 서북유럽, 오세아니아, 미주 등 7개 지역을 대표하는 44개 대륙 22개국에서 206개의 갤러리가 참여한 키아프는 지난해 보다 넓어진 공간(코엑스 1층 A·B홀, 그랜드볼룸, 2층 더 플라츠) 덕분에 쾌적했다. 키아프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넓어진 공간은 젊은 건축가 장유진과 협업해 동선, 부스 그리고 FB라운지 및 휴식공간 등을 배치해 하나의 도시를 연상시키도록 꾸렸다.  김환기·박서보·전광영·김창열 등 한국미술 거장과 해외에서 주목받는 중견작가들, 한 작가와 그의 작품세계를 집중조명하는 ‘솔로’(Solo), 10년 미만의 갤러리들이 선보이는 ‘플러스’(Plus) 그리고 주목할 만한 신진작가 발굴을 위한 ‘키아프 하이라이트 어워즈’(Kiaf Highlights Awards) 세미파이널 진출자 10명의 작품세계와 현대 사회 및 예술의 미래적 대안을 다각도로 전시하는 특별전시 ‘키아프 온사이트: 보이지 않는 전환점’(Kiaf onSITE: Invisible Transitions)도 선보였다.키아프 서울에서 조우한 하종현(왼쪽)과 김윤신 작가(사진=허미선 기자)페어 첫날 눈길을 끈 풍경은 국제갤러리에서 솔로 부스를 꾸린 조각가 김윤신과 추상화 거장 하종현의 조우였다. 나무로 작업해온 김윤신은 이번 키아프에서 남미 나무에 비해 무른 한국 나무의 한계점 보완을 위해 금속을 캐스팅한 새로운 도전작을 선보였다. 브론즈, 알루미늄 등에 아크릴을 칠한 신작을 선보인 부스에서 마주한 89세 동갑내기 두 작가는 근황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 받는 풍경을 연출해 주목 받았다.키아프+프리즈 서울 삼청 나이트 풍경(사진=허미선 기자)3일부터 이어진 한남, 삼청, 청담 등 갤러리 밀집지역에서의 ‘나이트’도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4일 삼청 나이트 중 전시장에 속한 레스토랑을 비롯해 분식, 핫도그 등 각종 푸드트럭이 늘어선 국제갤러리와 오픈·VIP라운지를 꾸려 칵테일파티 및 제시 천(Jesse Chun)의 ‘달 마당극: 탈언어의 악보’ 라이브 퍼포먼스를 선보인 갤러리 현대는 일찍부터 인산인해를 이뤘다. 저녁 8시부터는 국립현대미술관 마당에 ‘또 다른 달’이 떴는가 하면 양혜규, 제시 천, 백현진, 슈퍼주니어의 동해 등 작가 및 셀럽들의 등장도 눈길을 끌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프리즈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프리즈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프리즈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프리즈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프리즈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프리즈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프리즈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프리즈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프리즈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프리즈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프리즈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프리즈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프리즈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프리즈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프리즈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프리즈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프리즈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프리즈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프리즈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프리즈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프리즈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프리즈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프리즈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프리즈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프리즈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프리즈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프리즈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키아프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키아프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키아프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키아프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키아프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키아프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키아프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키아프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키아프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키아프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키아프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키아프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키아프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키아프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키아프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키아프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키아프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키아프 서울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키아프+프리즈 서울 삼청 나이트 풍경(사진=허미선 기자)키아프+프리즈 서울 삼청 나이트 풍경(사진=허미선 기자)키아프+프리즈 서울 삼청 나이트 풍경(사진=허미선 기자)키아프+프리즈 서울 삼청 나이트 풍경(사진=허미선 기자)키아프+프리즈 서울 삼청 나이트 풍경(사진=허미선 기자)

2024-09-06 23:55 허미선 기자

[B그라운드] 제15회 광주비엔날레! 72명의 작가, 31개 파빌리온이 울리는 '공공의 소리'

제15회 광주비엔날레 전경(사진=허미선 기자)“30주년을 맞은 광주비엔날레는 그 본질에 충실하며 동시대 담론을 이끌어 왔습니다. 재단은 앞으로도 아시아 최대이자 최고 비엔날레로서는 물론 세계 비엔날레사(史)와 미술사를 선도하고 동시대 문명사에 한획을 그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6일 개막을 하루 앞두고 광주비엔날레 거시기홀에서 기자들을 만난 박양우 대표이사는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제15회 광주비엔날레(9월 7~12월 1일)에 임하는 각오를 이렇게 밝혔다.올해 행사는 30개국 72명 작가가 판소리로 시대를 은유하는 본전시 ‘판소리, 모두의 울림’(Pansori, a Soundscape of the 21st Century)과 역대 최대 규모의 31개 파빌리온, 광주의 유서 깊은 역사와 공동체 정신을 지켜온 양림동에 꾸린 ‘양림-소리 숲’ 외부전시로 구성된다.개막을 하루 앞둔 6일 광주비엔날레 거시기홀에서는 제15회 광주비엔날레 기자간담회가 열렸다(사진=허미선 기자)판과 소리, ‘공공의 소리’가 울릴 본전시는 ‘부딪침 소리’(Feedback Effect, 제 1, 2 전시실), ‘겹침소리’(Polyphony, 제3 전시실), ‘처음소리’(Primordial Sound, 제4, 5전시실)로 구성된다. 본전시에 대해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 예술감독은 “일반적인 전시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며 “(판)공간과 소리가 존재하는 전시”라고 소개했다.“보통의 전시에서 큐레이터들은 여러 작가 작품의 소리가 중첩되는 걸 제한하려하고 컨테이너 박스를 두거나 하지만 우린 반대죠. 다른 작가 소리와 중첩되고 연결됩니다. 관람객들 역시 소리를 들어야 하죠. 걸어들어갈 수 있는 오페라랄까요. 이미지와 소리, 모든 진동을 받아들이는 공간이죠.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특별하고도 도시적인 소리를 느끼실 겁니다.”제15회 광주비엔날레 전경(사진=허미선 기자)니콜라 부리오 감독은 “입장과 동시에 매우 도시적이고 포화된 사운드 공간으로 전환된다”며 “도시 피드백 효과로 시작해 산업화로 인한 공간부족, 변형되는 자연, 비인간적인 삶을 다루는 예술가들의 방식 그리고 다른 세계 혹은 우주의 광대함과의 소통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가 간 시퀀스와 시퀀스가 연결되며 멈추지 않은 흐름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제15회 광주비엔날레 포스터의 모티프가 된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빗대며 “(그림 속 산세) 모양이 균일하지 않고 험악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삶과 꿈의 공간이 연결되는 걸 볼 수 있다”고 밝혔다.“이처럼 이번 본전시에서는 작가마다 같은 공간에서도 다르게 접근해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 이야기를 가지고 소리 뿐 아니라 공간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고 있죠. 공간과 삶에 대한 반영이라는 점에서 판소리와도 닮은 부분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제15회 광주비엔날레 니콜라 부리오 예술감독(사진=허미선 기자)나라별로 꾸리는 파빌리온은 31개(제14회 파빌리온 9개)로 크게 늘었다. 박영우 대표는 “파빌리온을 두는 건 다양한 동시대 문화예술, 여러 나라에서 보는 관점들을 향유하고 교류하기 위함”이라며 “퀄리티 유지를 위해 제한할 정도로 많은 나라에서 관심을 가지고 참여 의사를 밝히고 있다”고 전했다.“앞으로는 국가가 아닌 도시의 시대입니다. 이에 국가관 뿐 아니라 창의적인 단체들, 도시 등으로 파빌리온을 꾸리고자 합니다. 올해는 도시관으로 광주 파빌리온을 열어 실험할 예정입니다.”니콜라 부리오 감독은 “공공 공간이라는 주제가 플랫폼이 돼 자신의 뜻과 의지를 표현하는 공간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제15회 광주비엔날레 전경(사진=허미선 기자)“판이라는 것은 마당, 공공의 공간을 의미하죠. 어떤 이야기든 할 수 있는 포럼의 장이 디기도 하죠, 큰 주제인 판소리를 비롯해 의지와 정신, 시대의 적대감, 이주, 이동, 국경 그리고 완전히 자연을 낭비하고 폐기물을 만드는 인간 등 굉장히 많은 것을 다루고 있죠.”그렇게 공간은 물리적인 판과 더불어 정신적인 공간으로까지 확대된다. 이를 통해 박영우 대표는 “민주, 인권, 평화, 포용과 화합이라는 ‘광주정신’이 작품에 녹여진다”고 털어놓았다.“판소리는 계급이 존재했던 조선시대, 공공의 장소에서 피지배층민들도 지배계급, 사회현상에 대해 그리고 인간 본연의 여러 심성에 대해 마음놓고 노래할 수 있는 장르였습니다. 한국 전통 장르인 판소리가 다루는 주제들이 광주정신과 이어져 니콜라 부리오 감독으로 인해 미술로 전환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100만명이라도 오시길 바라지만 예정으로는 베니스 비엔날레(70만명) 이상인 70~80만명 정도로 중입니다.”광주=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9-06 14:22 허미선 기자

[비바100] 여름 끝자락, 벤야민 아플이 선사하는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벤야민 아플(사진제공=한세예스24문화재단)그 기세가 다소 꺾이긴 했지만 여전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 끝자락에 프란츠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의 연가곡 ‘겨울나그네’(Winterreise)가 무대에 오른다. ‘겨울나그네’는 슈베르트가 빌헬름 뮐러(Wilhelm Muller)의 시에 곡을 붙인 연가곡집으로 24개의 곡으로 구성돼 있다. 한겨울 실연한 주인공이 정처 없이 떠돌며 느끼는 감정들을 담은 작품들로 그 중 5번째 곡 ‘보리수’(Der Lindenbaum)는 교과서에도 실리는 등 잘 알려져 있다. ‘2024 여름에 만나는 겨울나그네’(Winterreise in Summer, 9월 5일 롯데콘서트홀)는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한세예스24문화재단 최초의 음악 프로젝트다. 한세예스24문화재단은 글로벌 의류 ODM 한세실업, 문화 콘텐츠 플랫폼 예스24, 패션기업 한세엠케이 등을 거느린 한세예스24홀딩스의 김동녕 회장이 2014년 사재를 출연해 창립해 10주년을 맞았다.벤야민 아플과 사이먼 레퍼가 꾸리느 ‘2024 여름에 만나는 겨울나그네’ 포스터(사진제공=한세예스24문화재단)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전역이 경제 협력을 넘어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아시아의 미술작품을 소개하는 ‘국제문화교류전’, 각국의 현대문학을 엮은 ‘동남아시아 문학 총서’ 발간 등과 학술연구, 장학제도, 해외봉사 등 다양한 활동을 지원해 왔다. ‘2024 여름에 만나는 겨울나그네’는 창립 10주년을 맞은 한세예스24문화재단의 첫 클래식 음악 공연으로 미술, 문학에 이어 클래식으로 문화예술사업을 확장하는 신호탄이다.‘2024 여름에 만나는 겨울나그네’는 전설적인 성악가이자 지휘자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Dietrich Fischer-Dieskau)의 마지막 제자인 바리톤 벤야민 아플(Benjamin Apple)이 처음으로 한국 관객들을 만난다. 백수미 한세예스24문화재단 이사장은 “피아노의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당대 위대했던 빌헬름 뮐러의 시를 들려 드리고자 본 공연을 기획했다”며 “국내에서 진행되는 성악공연이 오페라 또는 스타음악가의 리사이틀에 집중된 데 반해 저희는 당대의 위대한 시인과 작곡가의 작품을 통해 조금 더 깊이 있는 음악을 경험하시길 바랐다”고 전했다.“사망 1년 전 남긴 ‘겨울나그네’는 슈베르트의 삶과 가곡의 정수를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외롭지만 자유롭게 걸었던 방랑의 길, 실연의 상처를 간직한 남성이 차가운 겨울에 떠나는 추억 여행 등 그의 삶과 정서를 표현하고 있죠. 죽음을 앞둔 슈베르트의 삶을 대변하듯 전체적으로 음울하고 고독한 24개의 곡들은 순진무구하면서도 죽음을 절묘하게 반영하고 있습니다.“첫 음악 프로젝트 무대에 설 아티스트로 벤야민 아플을 선정한 데 대해서는 “그는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와 긴밀한 인연이 있는 성악가”라며 “2022년 영국 BBC 에서 ‘겨울 나그네’를 주제로 제작한 영화 ‘겨울기행’ 출연자이자 같은 해 런던에서 앨범을 발표했다”고 소개했다.전설적인 성악가이자 지휘자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의 마지막 제자인 바리톤 벤야민 아플(사진제공=벤야민 아플)은행원을 꿈꾸는 경영학도였지만 공부를 하던 중 문득 내면과의 깊은 대화, 자신의 감정을 밖으로 끌어내는 시간이 없다고 깨닫고 음악가로 전향한 벤야민 아플은 그와 오래 호흡을 맞춘 피아니스트이자 영국왕립음악원 교수 사이먼 레퍼(Simon Lepper)와 함께 첫 내한무대를 꾸린다. 그는 “가곡 무대에서 성악가와 피아니스트의 협업은 너무 중요하다. 동등한 파트너십을 이뤄야 하기 때문”이라며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신뢰”이라고 전했다.“가곡 리사이틀에서 피아니스트는 제 눈에는 보이지 않는 뒤편에 앉는데 마치 제게 날개를 달아주는 느낌이에요. 사이먼은 단순히 좋은 연주자가 아니라 저를 향한 지지와 친구로서의 우정을 보여주는 피아니스트죠.”‘여름에 만나는 겨울나그네’에서 벤아민 아플과 무대를 함께 꾸릴 피아니스트 사이먼 레퍼 영국왕립음악원 교수(사진제공=한세예스24문화재단)‘겨울나그네’에 대해 “200년전에 쓰여졌지만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시대를 초월하는 작품”이라며 “지금 독일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도 있지만 엄청난 깊이가 있는 작품”이라고 털어놓았다.“이 작품이 한세예스24문화재단의 첫 번째 음악 프로젝트로 선정된 건 아주 좋은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해요. 이 작품은 시와 음악이 결합된 거의 완벽한 작품이거든요. 독일을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예술의 형태죠. 이 작품의 주인공은 자신 영혼의 깊은 곳까지 내려가는, 내면의 여행을 떠나는 용기있는 젊은이죠. 대부분 사람들이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여행을 떠나지 못하잖아요. 24개의 작품을 통해 내면의 감정들을 들여다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9-04 18:16 허미선 기자

[비바100]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오스칼 김지우 “나, 타인 그리고 조국에 대한 사랑, 어디에나 있고 언제나 있었던 이야기”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오스칼 역의 김지우(사진=허미선 기자)“이 이야기는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이 있기에 일어나는 일들이라고 생각했어요. 나 자신이 나를 사랑하는 걸 수도 있고 연인, 사람, 조국을 사랑하는 걸 수도 있고…다양한 사랑이라고 저는 생각을 했어요. 그 사랑이 사람과 사람, 나라, 사물 하나하나에 대한 사랑으로까지 뻗어나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랑이 아니면 펼쳐나가실 수 없는 이야기죠.”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La Rose de Versailles, 10월 13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왕실 근위대장 오스칼 프랑소와 드 자르제(김지우·옥주현·정유지, 이하 가나다 순)로 분하고 있는 김지우는 작품의 핵심을 “사랑”이라고 강조했다.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는 이케다 리요코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프랑켄슈타인’ ‘벤허’ ‘삼총사’ ‘영웅본색’ ‘신데렐라’ ‘잭더리퍼’ ‘조로’ 등으로 호흡을 맞춘 왕용범 연출과 이성준 작곡·음악감독이 무대화한 작품이다.대대로 프랑스 왕실 근위대를 이끌어온 자르제 가문의 막내딸로 태어났지만 아들로 키워져 근위대장이 된 오스칼과 그의 애틋한 소꿉친구 앙드레 그랑디에(고은성·김성식·이해준), 반쪽짜리 귀족으로 부조리한 세상에 혁명을 부르짖는 신문기자 베르날 샤틀레(노윤·박민성·서영택), 마리 앙투아네트를 조정하는 폴리냑(리사·박해미·서지영)의 버려진 딸로 길러준 엄마의 복수를 꿈꾸는 로자리 라 모리엘(유소리·장혜린) 등이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이야기다. span style="font-weight: normal;"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공연장면 중 오스칼 역의 김지우(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어느 세계, 어느 시대나 존재했던!“사실 내용을 보면 우리네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사회랑 다르지가 않아요. 혁명이라는 건 어느 세계, 어느 시대나 존재했거든요. 지금도 모두가 알게 모르게 속에서 되게 많이 싸우고 있다고 생각해요. 언제 어디서나 보이지 않은 이 싸움은 존재했지만 사랑이 있어서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거잖아요. 배경이 프랑스여서 그렇지 대한민국을 빗대면 대한민국 이야기가 될 수 있죠.”김지우는 그 주제를 가장 잘 담은 장면으로 피날레를 장식하는 ‘나를 감싼 바람은 내게만 불었나’를 꼽았다.‘형편없이 작은 존재’라도 ‘자기 진실을 따라’ ‘나에게 주어진 삶’을 살 자유, 저마다의 ‘마음의 자유’를 위해, 살고 싶은 세상을 위해 스스로 ‘깃발’이 돼 ‘다 함께 가자’를 부르짖는 곡이다. “정말 살고 싶은 세상에서 살고 싶은 나. 제가 중점적으로 얘기하고 싶은 게 딱 이거였어요. 제가 살아가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거든요.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왜 살아야겠어요. 그 마지막 곡 가사 하나하나에 다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그 가사에 담겨 있는 메시지가 너무 좋아서 매번 부를 때마다 울컥울컥 해요.”귀족들의 부조리, 국민들의 고통 등에 오스칼을 필두로 모두가 떨쳐 일어나는 이 장면에 대해 김지우는 “원래 디렉션은 로자리를 보면서 ‘우리 함께 가자’고 하는데 저는 모든 배우들을 보면서 하고 싶었다”고 털어놓았다.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오스칼 역의 김지우(사진=허미선 기자)“누구 한 사람이 만들어낸 게 아니라 다 같이 만들어낸 건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모두를 보면서 노래하는데 그때 배우들의 눈빛이 진짜 어마어마해요. 한 마디 대사도 없이 눈빛을 보낼 뿐인데 정말 엄청난 에너지를 받아요.” 이를 “트럭 위에 올라간 느낌”이라고 표현한 김지우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 가져다 놔도 다르지 않은 이야기여서 마지막이 굉장히 웅장해진다”고 밝혔다. “마지막에 죽음을 맞아 베르날한테 안겨서 갈 때 전혀 외롭지가 않아요. 죽었으니 끝났다가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다’ ‘(썩어빠진 귀족들) 너희는 이제 죽었다’ 싶고 정말 든든하고 기분이 굉장히 묘해요. 진짜 무서울 게 없달까요. ‘나 후회 없이 살았어’가 절로 나와요. 프랑스 이야기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혼자가 아닌 함께 만들어가는 “엄청난 시너지가 너무 좋아요”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공연장면 중 오스칼 역의 김지우(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저는 여자로 태어나 여자로만 살았지 딸로 태어나서 아들로 살아본 적이 없어서 오스칼의 감정이 뭘까 이해하기가 너무 어려웠어요.다양한 인물들의 등장과 방대한 서사를 압축하고 생략하며 3시간 남짓의 무대극으로 꾸릴 수 있었다.그 과정 중 신분 차이로 조심스러워지고 다소 늦게 깨달은 앙드레와의 사랑, 지금까지도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 마리 앙투아네트와의 연대, 왕비의 숨겨진 연인 페르젠에 대한 연심, 여자로 태어나 남자로 살아야하는 번뇌와 고통 등 생략되고 압축된 감정들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페르젠을 목격하고 피난시키는 계단 신은 지금도 너무 어려워요. 마리의 ‘같은 여자로서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라는 마리의 말을 어떻게 받아야할지부터 고민이었어요. 여자 입장에서 대꾸를 해야할지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할지…연습 과정에서는 제 안에 100만명의 김지우가 등장해 고민한, 순식간에 훅 지나가는 듯하지만 진짜 어려운 장면이죠.”생략과 압축 등으로 이해하기 어려워진 캐릭터의 감정들은 결국 함께 하는 사람들로 구체화됐다. 김지우는 “그 어렵던 감정들이 앙드레, 폴리냑, 베르날 등을 비롯한 시민 배우들과 맞닥뜨리면서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저 혼자 제 입장만을 생각하면서 대본을 보다 보니 이해가 안됐던 부분들이 많았어요. 그 부분들이 상대 배우들 저마다가 가진 감정들과 부딪히니 알겠더라고요. 연습 초반에는 1막 마지막 곡인 ‘어둠 끝에서’를 부르는 게 너무 억울했어요. 내가(오스칼) 시민들에게 무조건 혁명을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닌데 싶었거든요.”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오스칼 역의 김지우(사진=허미선 기자)타인이 극과 캐릭터를 이해하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자신만의 오스칼을 만들어간 김지우는 “그 과정에서 공연은 진짜 나 혼자 아는 게 아닌,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 고백했다.“처음에는 화만 났는데 시민들 그리고 그들의 감정과 부딪히다 보니 여러 입장들이 메꿔지면서 점점 복잡한 감정들이 생겨났죠. 그렇게 함께 하면서 생겨나는 엄청난 시너지가 너무 좋아요.”◇전혀 다른 이해준·고은성·김성식 앙드레 그리고 옥주현·정유지 오스칼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오스칼 역의 김지우(사진=허미선 기자)“군인으로서의 행동이 너무 어려웠어요. 앙드레 배우들을 붙들고 정말 많이 배웠죠. (고)은성씨는 처음부터 장난꾸러기 친구로 지내다 오스칼과 함께 성장하는 앙드레같아요. (이)해준 앙드레는 처음부터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 옆을 지키는, 안되는 건 안된다고 얘기해주는 보호자 같은 느낌이죠.”이어 이해준에 대해 김지우는 “혁명에 대한 각성을 하고서도 ‘조심해야 한다’고 얘기해주는 약간 큰 오빠 같은 앙드레”라고 덧붙였다.“(김)성식씨는 어떤 순간에는 굉장히 오빠 같다가 또 굉장히 동생 같아요. 상황에 따라 맞춰주는, 굉장히 유동성 있는 앙드레죠.”김지우와 오스칼로 분하고 있는 정유지에 대해서는 “(‘노트르담 드 파리’의) 에스메랄다나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예쁘거나 관능적인 역할을 주로 해서 스스로도 고민이 많았다”며 “그 친구가 가진 목소리 톤과 소년미가 오스칼과 너무 어울린다”고 전했다.“노래할 때 목소리와 평소 말할 때 목소리 그리고 다듬어지지 않은 소년스러움이 너무 귀여워요. 정제되지 않은 소년미가 너무 사랑스럽다 보니 후반부로 갈수록 안타까워지는 것 같아요. 너무 아이 같아서 마음 아파하는 걸 보면 안쓰럽고 보듬어주고 싶은 오스칼이죠.”옥주현의 오스칼에 대해서는 “처음 봤을 때는 굉장히 ‘딴딴한’, 누가 와도지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다 보니 어느 순간 연약한 부분을 드러났을 대 굉장히 이팩트가 크게 온다”고 밝혔다.“그 반향이 너무 커서 어떻게 감싸줘야하나, 치유가 될까 안쓰러움이 느껴지는 오스칼이에요. 엄마를 같달까요. 엄마를 보면 그렇잖아요. 되게 강하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엄마가 우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와장창 무너지는 느낌이요. 그래서 마지막이 너무 속상해요. 앙드레를 떠나보내고 혼자 울고 있는 모습이 너무 안쓰럽고 가슴이 무너져 내리죠.”◇‘빈틈’을 촘촘히 채우며 “후회하고 싶지 않아요!”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 오스칼 역의 김지우(사진=허미선 기자)“마지막 공연까지 느슨해지지 않고 잘 발전시키고 싶어요. 관객분들이 ‘빈틈’이라고 느끼시는 부분을 촘촘하게 메꾸는 건 저희들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그 작업들은 배우인 저희들에겐 기회가 아닌가 싶기도 해요. 오스칼이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빈틈을 느끼시지 않도록, 절대 어느 하나도 놓치거나 흘리지 않고 잘 챙겨서 성장시키고자 하는 욕심이 있어요.”이에 김지우는 차기작도 이미 정해졌지만 “우선은 이 공연을 잘 마무리하는 게 저의 목표”라며 “매번 같은 컨디션을 유지해야만 앙드레도 잘 떠나보내고 깃발을 들고 ‘함께 가자’ 부르짖으며 한회 공연을 제대로 마무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연습기간에는 극 후반 앙드레를 떠나보내고 절규하는 장면을 좀 살살 해볼까 생각도 해보긴 했어요. 하지만 살살 하는 거 자체가 더 힘들었어요. 살살 하자 하는 순간 와장창 다 깨져버리거든요. 목 상태도 오히려 안좋아졌죠. 끝나는 날까지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쓰고 쏟을 수 있는 만큼 다 쏟아내고 싶어요. 대충 하고 싶지 않아요. 후회하고 싶지도 않아요. 혼신을 다해 ‘베르사유의 장미’, 오스칼에 집중하는 게 제 목표죠.”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9-04 18:00 허미선 기자

[비바100] 과거와 현재를 잇다… 고고학은 시간 여행

서울 종로구 광화문 앞에서 월대 복원 및 주변부 정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연합)고고학(考古學)에 관한 입문서다. 고고학자인 저자가 고고학이라는 학문이 가진 매력과 숨은 의미를 함께 나누고 싶어 썼다. 저자는 고고학의 본질이 ‘시간 여행’이라고 말한다. 유물 속에 숨겨진 인간의 모습을 밝히고, 그들이 어떻게 기후와 환경에 적응해 치열하게 살아왔는지를 찾아보는 과정이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고고학은 언제나 그 끝을 모르는 여행과 같다고 말한다.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법|강인욱|김영사◇ 고고학, 익숙하지만 낯선 세계신라시대 생활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천마총 내부.(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저자는 고고학을 ‘유물을 발굴해 잃어버린 과거 사람들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한다. 유물의 화려함이나 값어치 보다는, 과거에 대한 인간의 ‘관심’이 고고학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역사학일 수도, 인류학 혹은 민족학이 될 수도 있다고 얘기한다. 중세 암흑기가 끝나기 즈음에,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품을 수집 품평하던 모임 ‘딜레탕티즘(Dilettantism)’이 근대 고고학의 시초였다.고고학의 시작은 ‘지표 조사’다. 유적이 있을 법한 지역을 다니며 땅 위에서 유적의 징후를 찾는 것이다. 주로 찾는 것은 토기 조각이다. 유물이나 유적 흔적이 없다고 해도 일단 시굴 해서 땅 속에 유물이 없음을 완벽히 확인해야 한다. 땅을 파고 살았던 곳은 색깔이나 토질에서 유기물질이 잘 자라, 주변보다 검고 습기가 풍부해 경험적으로 찾아낸다.저자는 “땅 속에 그대로 두는 것이 유물을 가장 잘 보존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대로 두었다간 곧 파괴되기에 빨리 발굴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북극권의 ‘영구동결대’가 그렇다. 얼음이 얼기 전에 지구물리탐사 등을 통해 그 속에서 태고의 흔적을 찾아내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가속화하는 지구온난화가 문제다. 시간과의 전쟁에서 고고학자들이 이길 가능성은 많지 않다.저자는 “고고학의 진정한 역할은 발굴 직후부터”라고 말한다. 최대한 손상 없이 보존해 다음 세대에 넘겨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 보존과학적 지식이 필수다. 현장에서 긴급하고 완벽하게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발굴된 것이 천마총의 ‘천마도’다. 덕분에 지금은 공적개발원조 사업을 통해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개도국에 발굴 및 보존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있다.연구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유물들은 실측 그림으로 증거를 남긴다. 최근에는 3D 스캔으로 간편하게 처리한다. 이후 보고서를 만들고, 유물을 국가에 귀속시켜 수장고에 넣는다. 모든 발굴 유물은 자동으로 국가에 귀속되어 국가가 지정한 국공립 박물관에서 관리된다. 요즘은 일제 때 철도 연결차 건설되었던 폐 터널을 활용한 ‘예담고’라는 수장고가 항온항습 효과 덕에 널리 활용되고 있다.◇ 깨진 유물로 맞추는 그림자 찾기폼페이 유적 발굴 현장 모습.원폭 개발 ‘맨하튼 프로젝트’의 일원이던 물리학자 윌러드 리비는 1960년대에 목탄과 사람 뼈로 과거 연대를 측정하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덕분에 ‘반감기’를 활용한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이 나오면서 “4대 문명에서 세계의 모든 문명이 확산되었다”는 주장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변방으로 치부됐던 지역들이 가치를 인정받게 된 것이다.1970년대 후반에 연천 전곡리에서 동아시아 최초로 출토된 주먹토기는 ‘동아시아는 발달된 석기를 만들 수 없다’던 서구의 주장을 뒤엎은 쾌거였다. 약 6000년 전에 등장한 청동기는 철기와 조화를 이루며 삼국시대 탄생의 배경이 되었다. 숭실대가 소장한 국보 ‘다뉴세문경’은 손바닥 만한 크기의 청동물이지만 표면에 0.2㎜의 미세 선이 1만 3000개나 있을 정도로 정밀해 ‘장인의 명품’으로 평가받는다.사람 뼈에는 나이와 성별, 키, 질병 및 영양상태, 사인, 시신 처리 방법 등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해골을 숭배했던 아즈텍 문명에서는 해골에 화려한 보석과 황금을 붙여 예술품으로 승화시켰다. 서양 중세 땐 교회마다 성인(聖人)의 유골을 훔치느라 소동을 빚기도 했다. 베네치아도 828년 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마르코 성인의 유골을 훔쳐 온 덕에 국제적 도시로 흥성했다는 얘기가 있다. 인골(人骨) 연구는 최근 DNA 기술과 결합되어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무덤은 뼈 뿐만 아니라 시신이 놓인 방향과 방법까지 모두 주요한 자료의 보물창고다. 어느 시대든 전통과 풍습에 따라 무덤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무덤을 썼다는 것은 죽음 이후 내세를 믿었음을 의미한다. 시신을 옆으로 눕힌 경우가 많은데, 이는 죽음이 다시 태어남을 의미해 자궁 속 태아의 모습을 갖춘 것으로 해석된다. ◇ 경제와 역설을 넘어 ‘발굴의 역설’장릉에서 바라본 김포지역 아파트 단지.(연합)197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천마총과 황남대총을 조사했을 때, 엄청난 국보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그 옆에는 더 많은 고분이 있었다. 하지만 고고학자들은 발굴을 포기했다. ‘가장 좋은 고고학자는 발굴을 하지 않는다’는 역설이다. 일본이 식민지 한반도 곳곳을 파헤쳐 금관총, 금령총 등 수많은 신라의 고분을 마구 도굴한 것도, 결국 일본 왕의 묘를 파헤치지 못했던 반대급부였다.최근에는 발굴을 아예 않는 조사기법도 다수 개발되고 있다. 소형 로봇을 무덤 안으로 넣어 확인하거나, 수 ㎞의 거대 고분을 드론이나 구글 맵으로 살피기도 한다. ‘탐침’으로 땅 속에 전류를 흘려 파악하는 방법도 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건설업계와 고고학자간 갈등은 첨예할 수 밖에 없다. 저자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치 사이에서 가장 합리적인 접점을 찾는 것이 솔로몬의 선택”이라고 말한다.조선 인조의 양친인 원종과 인헌왕후를 모신 김포의 장릉은 정작 아파트가 건설될 때부터 논란거리였다. 문화재청이 별도 관리하지 않았고, 관할 지자체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문화재 관리 주체가 전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해 사단이 난 것이다. 2022년 김해 구산동 고인돌 유적 발굴 때처럼, 고고학자의 참여 없이 지자체가 사업을 주도하면서 유적을 훼손하는 사건도 일어났다.신안 앞바다 보물선 인양 모습.(사진제공=신안군)물 속도 땅 속 다음으로 유물 조사가 많은 곳이다. 하지만 2022년까지 고작 29건의 수중문화재가 발굴 조사되어 한 해 1800건이 넘는 육상 문화재와 대조를 이룬다. 1976년 신안 앞바다 도자기가 그 시작이었다. 워낙 비용과 인력이 많이 들어 수중문화재 발굴은 강대국의 상징이 되었다. 스웨덴이 1962년에 ‘바사호’를 인양하는데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 부었으나 지금은 이 나라 대표 관광상품이다.◇ 가짜와 진짜, 고고학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고고학적 유적과 유물을 고대 외계인이 남겼다는 주장이 있다. UFO에 고도로 집착했던 1960~1980년대에 외계인설이 극심했다. 저자는 “신기하게도 모든 사람의 손에 고성능 카메라가 달린 스마트 폰이 들리면서 UFO 얘기가 사라졌다”며 일축했다. 아라라트산에서 발견되었다는 노아의 방주나 마야 문명의 팔렝케 유적에서 발견된 석관을 외계인의 흔적으로 보는데, 고고학적으로는 정식으로 조사된 바가 없다.미스터리와 저주, 음모론도 유적과 불가분의 관계다. 1993년 시베리아 알타이 초원의 여성 샤먼(사제) 무덤에서 발견된 미라 ‘알타이의 공주’가 대표적이다. MRI 조사를 통해 고고학은 그녀가 일반인이며 골수염을 앓았고 유방암 4기였음을 밝혀냈다. 그런데도 후손들은 조상인 얼음공주의 안식을 방해했으니 큰 화가 닥칠 것이라며 재매장을 촉구했다. 지금도 미라만 나오면 수많은 음모론과 저주가 등장한다.저자는 “상징적인 연대와 실제 역사를 구분 못하는 것은 고고학의 큰 걸림돌”이라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반 만년 역사’라고 하지만 그 근거는 매우 희박하다고 말한다. 삼국유사의 단군신화를 기원전 2333년으로 간주해 민족의 기원을 본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한번 잘못 형성된 과거에 대한 인식을 교정하려면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요구된다.저자는 또 “가짜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정교한 복제는 유물의 느낌을 모두에게 전하는 동시에 유물을 제대로 보전하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복제품이 진품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는 고구려 벽화들이 그렇다. 무작정 돌문을 열었다가 원형이 크게 훼손되었으나 화가들이 그린 복제 모사화가 대신한다. 저자는 “복제품은 부득이한 상황에서 진품을 대신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고고학, 미래를 꿈꾸다경주 한 유적 발굴현장 모습.(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인공지능이 고고학에 새 바람을 예고하고 있다. 유물의 기록, 분류, 실측, 보관 같은 1차적인 현장작업의 상당수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수 있다. 실측 과정을 통해 일일이 유물과 유적을 그리는 대신 3D 스캔이 해결책을 준다. 보존이 어려운 벽화나 오래된 유물은 3D프린터로 발굴 당시의 가장 정확한 정보를 기준으로 복제품을 쉽게 만들어낼 수도 있다.비슷한 유물을 같이 묶어서 배열하는 형식학도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고, 발굴 보고서 작성도 인공지능이 맡게 될 전망이다. 발굴 때 정밀 촬영 및 분석을 통해 그 유물의 시대와 용도를 추정해낼 수도 있을 전망이다. 기존 발굴 자료를 유추해 전체 유적의 정보를 추정해, 미 발굴 유적의 현황도 예측할 수 있다. 고고학이 인공지능을 비롯한 수많은 새 기술에 ‘열린 자세’여야 하는 이유다.미래 고고학자에게 또 다른 도전은 21세기 디지털 자산의 보존이다. 빠르게 쌓여가는 디지털 데이터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가 큰 현안이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 중인 백남준의 1988년 작품 다다익선은 이제 브라운관 수명이 다했다, 새 모니터로 바꿔야 할 지, 폐기해야 할 지 기로에 서 있다. 저자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디지털 시대에 쌓여가는 유물의 보존과 관리에 대한 예언”이라고 말했다.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2024-08-31 07:00 조진래 기자

[B그라운드] ‘운명의 조우’ 존 배 “음표 하나로 시작해 대화하듯 이어지는!”

2013년 ‘In Memory’s Lair‘ 후 10여년만에 개인전 ’운명의 조우‘를 진행 중인 존 배 작가(사진=허미선 기자)“재미있을 같아서 해요. 시작 단계에서는 (재밌는 아이디어를 실현)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재밌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해 연구하며 끝낼 뿐이죠.”“작품을 하나의 음표에서 시작한다”는 존 배(John Pai)는 어쩌면 진정한 예술가의 현신일지도 모른다. 초안 스케치도, 청사진도, 대본도 없다. 마치 작곡을 하듯 음표와 음표를 연결하고 리듬이 만들어지고 밀도가 높아지면서 패턴이 자연스레 생겨난다.존 배 개인전 ‘운명의 조우’ 전경. 전시명과 동명의 작품.(사진=허미선 기자)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오래 걸리더라도 오롯이 혼자 자신만의 시간을 마주한다. 그 결과물이 어떨지 보다는 아주 얇은 철선을 한땀 한땀 붙이고 녹이며 구부리고 쌓아 올려 형상화하는 과정에는 그의 삶이 스몄는지도 모른다. 그 과정 속 ‘대화’를 중시하는 그의 작품들은 그 심오함 또한 남다르다. 2013년 ‘In Memory’s Lair‘ 후 10여년만에 개최한 개인전 ‘운명의 조우’(Shared Destinies, 10월 20일까지 갤러리현대 신관)에는 그렇게 음표 하나와도 같은 “재밌을 듯한” 아이디어로 시작해 작곡을 하듯 다음에 올 음, 또 그 다음에 올 음은 무얼까 대화하듯 만들어낸 70여년의 예술 여정이 스며들었다.2013년 ‘In Memory’s Lair‘ 후 10여년만에 개인전 ’운명의 조우‘를 진행 중인 존 배 작가(사진=허미선 기자)전시명과 같은 ‘운명의 조우’를 비롯해 속이 밖이 되는 밖이 속이 되는 아이디어가 재밌었다는 ‘인볼루션’(Involution)에는 그가 긴 작업 기간 동안 나눈 대화들이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속과 밖은 완전히 갈라져 있을까, 저 사람이 내 옆에 같이 있는데 완전히 딴 세상일 수 있을까, 리얼리티라는 건 뭔가 등 묻고 또 묻는 수년간의 대화록인 셈이다. 자동차나 기계의 부품, 선, 면, 부피, 질감 등의 상호작용에 집중했던 1960년대 초기작을 비롯해 뫼비우스의 띠처럼 구가 중첩되며 저마다 다른 공간, 세계를 만들어내는 ‘인볼루션’과 ‘스피어 위드 투 페이스’(Sphere with Two Face) 등 1970년대 작품도 만날 수 있다.존 배 개인전 ‘운명의 조우’ 중 ‘인볼루션’(사진=허미선 기자)구멍 뚫린 개방적 구조의 ‘아더 보이스’(Other Voices), 불규칙적인 큐브를 축적한 ‘패스트 임퍼펙트’(Past Imperfect)와 ‘큐브’(Cube), 비버 연못에서 시작한 ‘그레이트 배링턴’(Great Barrington), 이와 유사한 구성의 ‘여기 그리고 지금’(Here and Now), ‘잊혀진 규칙’(Forgotten Rule), 어려움을 겪던 동료를 지켜보던 느낌이 담긴 ‘라이즌, 폴른, 워큰’(Risen, Fallen, Walken), 도로 틈에서 자라난 풀에서 시작된 ‘기도’(Vigil) 등 1980년대 작품들은 자연 혹은 주변에서 영감받은 것들이다.“라디오를 듣다 ‘물이 어디에서 왔냐’는 질문을 들었어요. 다들 물은 지구에서 오지 않았을까 생각하지만 사실 물은 우주에서 왔어요. 그냥 물의 형태가 아니라 눈꽃 모양으로 우주를 떠돌죠. 그런 관계가 되게 흥미로웠어요. 버팔로의 대변은 아름답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지만 사실 초원을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하는 거름이잖아요. 그런 자연의 섭리가 되게 흥미로웠습니다. 아름답지 않은 것도 어딘가에는 다 쓰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존 배 개인전 ‘운명의 조우’ 중 ‘하늘과 대지’ 연작(사진=허미선 기자)얼핏 하늘로 향하는 존재들 혹은 아지랑이를 연상시키는 신작 ‘하늘과 대지’(Heaven and Earth)는 작업 중 모아뒀던 떨어진 조각들로 꾸린 연작이다. “작업실을 방문한 이들에게 ‘이걸로 어떻게든 다시 작업을 이어 가는 게 어떠냐’는 말을 듣고 습작처럼 시작해 최근에야 완성한” 작품이다. “어떤 작품에서 떨어진 작은 조각들로 예전부터 붙이기 시작했던 작업인데 최근에야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이런 모양들이 대지와 하늘을 연결시켜주는 것 같아서 ‘하늘과 대지’라고 제목을 지었죠.”  2013년 ‘In Memory’s Lair‘ 후 10여년만에 개인전 ’운명의 조우‘를 진행 중인 존 배 작가(사진=허미선 기자)작품 대부분의 재료가 철이다 보니 부식이 되거나 녹이 스는 등 관리 및 보존의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이에 대해 “잘 관리를 해야 하지만 그래도 녹이 슨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며 “자연적인 현상이니 작업의 한 요소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전한 바 있다. “칠을 하는 등 화학적으로 조치를 취할 수는 있지만 오래 가지는 못해요. 그저 신경 써서 잘 케어를 해줄 수밖에 없습니다. 가구나 옷감 등을 습기 안차게 잘 보존하는 것처럼, 사람과 살 듯 그렇게요.”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오롯히 혼자 작업하는 존 배 개인전 ‘운명의 조우’ 전경(사진=허미선 기자)존 배 개인전 ‘운명의 조우’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2024-08-30 19:31 허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