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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볼 맛'나게 만드는 배우… 설경구가 말하는 '돌풍'

설경구는 “피부과도 다니지 않는다. 촬영 감독님들이 ‘단 한번도 부어서 현장에 오지 않는다’라는 말이 나에게 최고의 찬사”라며 운동으로 다져진 자신의 일상을 무심하게 내뱉었다. (사진제공=넷플릭스)연기 32년 차. 늘 “연기에 O.K가 어딨냐?”는 이창동 감독의 말을 좌우명으로 삼는 배우. 현장에 가기 전 줄넘기 1만번 이상을 하며 땀을 빼는 남자. 직업 상 밖으로 돌기에 쉬는 날이면 빨래를 개고 ‘집돌이’로 불리는 걸 즐기는 가장. 설경구가 말하는 ‘자신’은 간단하면서도 심오하다. 스크린에서 주로 활약해 온 그는 “약 30년 전 아침드라마를 하긴 했었다. 잘 모르시더라. ‘괴물 신인’이란 말은 부끄럽다”며 넷플릭스 ‘돌풍’에 출연한 부담을 덜어내는 모습이었다. 총 12부작으로 공개된 ‘돌풍’은 부패한 거대권력을 뿌리째 뽑아버리고 싶은 국무총리와 그에 맞서는 경제부총리가 대립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극과 극에서 주연으로 맞붙은 설경구와 김희애의 시너지로 공개와 더불어 넷플릭스 1위에 올랐다.‘추적자 더 체이서’ ‘황금의 제국’ ‘펀치’ 등 권력 3부작에 이어 정치판을 무대로 한 드라마를 내놓은 박경수 작가의 최신작인 ‘돌풍’의 설경구. (사진제공=넷플릭스)“사실 제가 맡은 박동호는 현실적이지 않은 인물이죠. 초심을 잃은 대통령에게 하야를 요구하는 국무총리로 부패한 세력을 쓸어버리기 위해 극단적인 결심을 합니다. 기본 대사가 한 페이지 반이 넘었어요.(웃음) 평소에 그런 말투를 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 익숙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더더욱 ‘말’에 매달린 작품입니다.”시대를 자각하게 만드는 서사와 문학 작품에 비견될 대사로 유명한 박경수 작가가 참여한 이 작품은 1부의 엔딩부터 정치적 대척점에 선 부총리 정수진(김희애)를 단번에 자르는(?) 박동호의 결단으로 휘몰아친다.자신이 속한 정당을 위해서라면 대통령 공약이었던 정경유착의 부도덕함을 묵인하고 정치적 동반자였던 남편의 약점을 덮는 동료를 단번에 손절하는 박동호의 모습은 익숙한 듯 거리감이 느껴진다. 박 작가는 앞서 진행된 제작보고회를 통해 “두 사람은 각자의 신념으로 맞선다. 정수진은 타락한 신념을 의미하며 박동호는 위험한 신념을 뜻한다”며 배우들의 연기를 극찬하는 모습이었다. ‘돌풍’은 공개 직후 넷플릭스 대한민국의 TOP 10 시리즈 부문 1위를 기록했다. (사진제공=넷플릭스)설경구는 “누가 뭐라해도 무모함이 매력적이었다”면서 “사실 김희애의 매니저를 통해 시나리오를 먼저 접했다. 캐릭터도 매력있었지만 이야기 자체가 너무 재미있어서 소속사를 통해 정식으로 제안하라고 했던 작품”이라고 숨겨진 뒷이야기를 들려줬다.“처음에 읽은 건 5부작 까지의 내용이었어요. 연기하면서도 캐릭터의 운명은 모른 채 덤빈거죠. ‘현실적으로 이 정도까지 할 정치인이 있을까’ 싶은 거예요. 연기적 쾌감이 컸던 작품입니다. 기존 정치인들의 제스처? 되려 손짓조차 참고하지 않았습니다.”극 중 박동호는 자신의 선배이자 정치적 아버지인 대통령을 시해하려다 실패한다. 초심을 잃은 그의 전철만큼은 밟으려 하지 않지만 ‘돌풍’은 그런 인간의 고뇌 위에 역사적으로 반복된 상황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극 초반 눈을 감는 장일준(김홍파)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이 응축돼 눈길을 끈다.(사진제공=넷플릭스)비서실장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한 달간 정치개혁의 시간을 벌었던 박동호는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은 뒤 호락호락하지 않은 상황을 마주한다. 각오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산 너머 산이다. 믿었던 친구는 적으로 등지고 함정의 늪은 점차 깊어진다. 모든 것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박동호는 뚝심 있는 검사였다가 정계에 입문해 대통령까지 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선택이 정치는 생물(生物)이라는 말에 부합되면서 ‘돌풍’을 본 국내 시청자들은 실존 정치인들을 언급하며 화제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대해 설경구는 “정치는 외피일 뿐이다. 어느 조직이든 일어나는 이야기가 아닐까”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지독한 캐릭터’에 끌리는 마음은 숨기지 않았다.“선호하지는 않지만 눈이 가긴합니다. 연기하는 데 여유가 없긴하죠. 어차피 재료는 ‘나’이다 보니 ‘똑같은 배우’라는 말을 듣기 무섭기도 하고요. 늘 ‘이건 어떻게 하지?’하면서도 하게 됩니다. 안해본 캐릭터를 우선으로 하지만 이제 그 선택지도 좁아졌어요.(웃음)”설경구는 2016년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을 통해 지천명(知天命) 아이돌의 호칭에 얻었다. 환갑일 때는 어떤 말을 듣고 싶냐는 말에 그는 평소 보이지 않았던 농담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아직 한참 남았으니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만 잘 나이먹고 편안하기를. 겨우 32년 차니까요.”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7-10 18:00 이희승 기자

[비바100] 지금 우리, 하수구 같은 욕망들의 질주, 황정민의 ‘맥베스’

일본 아티스트 요시다 유니가 작업한 연극 ‘맥베스’ 포스터(사진제공=샘컴퍼니)손진책 연출, 배삼식 작가, 이호재, 전무송, 박정자, 손숙, 김재건, 정동환, 김성녀, 길용우, 손봉숙, 남명렬, 박지일, 정경순, 길해연, 이항나 등 베테랑 배우들과 젊은 햄릿 강필석·이승주, 오필리어 에프엑스(fx) 루나, 호레이쇼 박윤희와 정환, 레이티즈 이충주·양승리 등 젊은 배우들이 함께 꾸리는 ‘햄릿’(9월 1일까지 홍익대학교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 그리고 7일 막을 내린 사이먼 스톤과 전도연, 박해수 등의 ‘벚꽃동산’에 이은 대극장 연극에 활력을 불어넣을 ‘맥베스’(Macbeth, 7월 13~8월 18일 국립극장 해오름)가 개막한다.‘파우스트’ ‘오이디푸스’ ‘리차드3세’ ‘로미오와 줄리엣’ ‘해롤드 앤 모드’에 이은 샘컴퍼니의 6번째 연극이자 ‘오이디푸스’ ‘리차드3세’에 이은 황정민의 무대 복귀작이다. 연극 ‘맥베스’ 연습실(사진제공=샘컴퍼니)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희곡을 바탕으로 ‘파우스트’ ‘코리올라누스’ ‘페리클래스’ ‘로미오와 줄리엣’ ‘해롤드 앤 모드’ 등의 양정웅 연출, ‘오셀로’ ‘레드’ ‘가족이라는 이름의 부족’ 등의 여신동 무대미술 및 조명디자이너가 의기투합했다.양정웅 연출은 “셰익스피어스러운 아름다운 대사와 압축된 완성도를 내는 이 마지막 비극을 전통에 가깝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하면서도 현대적인 미장센과 함께 멋있게 만들어 볼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스코틀랜드의 장군 맥베스(황정민)가 ‘왕이 될 것’이라는 마녀들의 예언에 현혹돼 권력을 좇다 파국에 이르는 여정에는 레이디 맥베스(김소진)의 부추김, 덩컨 왕(송영창)을 비롯해 위협이 되는 뱅코우(송일국), 맥더프(남윤호)와 그 가족들을 몰살하는 광기 그리고 그들에 대한 죄책감과 두려움들이 함께 한다.욕망의 끝으로 달려가는 인물들, 그 욕망의 끝을 통해 얻어지는 상실감과 죄책감 그리고 양심의 문제 등 인간의 원형을 건드리는 ‘맥베스’는 전쟁과 갈등이 팽배하고 저마다의 이권과 욕망만을 좇는 지금과 맞닿아 있다.맥베스만의 욕망을 가득 모아놓은 창고 같은, 폐허 속 하수구 같은 기괴한 공간 기괴한 공간, 마녀와 어마어마한 유령의 등장 등 현대적 변주를 통해 현대인들의 욕망들이 무대 위에 펼쳐질 예정이다.내면의 욕망에 현혹돼 탐욕의 끝으로 내달리다 결국 스스로의 무덤을 파고 마는 맥베스에 투영된 지금의 우리, 그들이 추구하는 하수구 같은 욕망들의 질주 등이 저마다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7-08 18:30 허미선 기자

[비바100] ‘1섬 1정원 1뮤지엄’ 문화예술 섬으로! 박우량 신안군수 “문화예술 이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박우량 신안군수(사진=허미선 기자)“저희의 전략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자(OneOnly)입니다. 문화예술 이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더라고요. 문화예술이 융성하면 (떠나지 않고) 오래 살 수 있고 경쟁력을 더하지 않을까 생각했죠.”이에 벌써 네 번째 신안군수직(2006~2014년, 2018년 7월~현재)을 수행 중인 박우량 군수 정책의 핵심 키워드는 ‘OneOnly’ ‘1섬 1정원’ ‘1섬 1뮤지엄’ ‘문화예술’이다.전라남도 신안군(사진=허미선 기자)“신안에 제일 흔한 것들이 햇빛, 바람, 바닷물입니다. 이런 것들을 지금 기후 변화에 따라 신재생 에너지로 활용해 그 수익을 햇빛연금·바람연금으로 나누고 문화예술로 사람들이 북적거리면 조금 더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불과 몇 년 전까지만도 전라남도 신안군은 “재정자립도 최하위( 226개 지역자치단체 중 224등), 인구 소멸 고위험 지역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달고 있었다.전남 신안군에 조성 중인 ‘그래피티 마을’의 덜크(Dulk) 작품(사진=허미선 기자)1025개의 섬(유인도 76개, 무인도 949개), 인구 3만8191명(2024년 4월 기준) 중 65세 이상 고령인구 40%, 인구의 92%가 농가와 어가다. 1년 중 여객선이 아예 운항할 수 없는 날만도 52일, 하루 1회 이상 운항이 통제되는 날은 115일에 이른다.무엇 하나 희망적인 조짐이라곤 없었다. 그런 신안에 ‘빛의 마술사’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섬이 있다. 그 뿐 아니라 세계적인 아티스트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올라푸르 엘리아손(Olafur Elliasson) 등이 작품 구상을 위해 다녀갔다.전남 신안군에 조성 중인 ‘그래피티 마을’의 존원(Jonone) 작품(사진 제공=어반브레이크)프랑스 최고 권위의 명예훈장 ‘레지옹 도뇌르’를 수상한 세계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 존원(Jonone), 내셔널 지오그래픽 엠버서더 덜크(Dulk)가 신안군 압해도에 ‘그래피티 마을’(Graffiti Town) 조성을 위해 벽화를 작업 중이고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벽화로 유명한 포르투갈의 빌스(Vhils)도 9월 방문 예정이다. 신안이 아우르는 섬 개수를 상징하는 ‘1004’(천사) 브랜드와 지난 한해만 39만여명이 다녀간 ‘퍼플섬’(반월·박지도)을 비롯해 ‘1인 1정원’ 정책으로 완성된 섬만도 11개다.전라남도 신안군의 브랜드인 ‘1004’(사진=허미선 기자)퍼플섬에는 5월 라벤다부터 75만 그루의 버들마편초, 보라색국화 등 보라색 꽃들이 군락을 이루고 방탄소년단(RM, 진, 슈가, 제이홉, 지민, 뷔, 정국) 뷔에서 비롯된 ‘사랑해’의 BTS식 표현 ‘아이 퍼플 유’(I Purple You) 구조물과 퍼플교, 산책길, 화해와 화합을 위한 어린왕자와 여우 조형물 등이 볼거리, 즐길거리를 선사한다.2015년까지도 아무도 찾지 않았지만 현재는 40만명 가까이가 다녀가는 퍼플섬을 비롯해 ‘수선화의 섬’(선도), ‘순례자의 섬’(기점·소악도), ‘맨드라미의 섬’(병풍도), ‘수국·팽나무의 섬’(도초도), 수석미술관과 세계조개박물관, 신안자생식물 뮤지엄, 피아노 해변 등이 자리잡은 ‘1004뮤지엄 파크’와 ‘목련의 섬’(자은도), ‘겨울꽃 분재정원’(압해도), ‘튤립정원, 홍매화의 섬’(임자도), ‘동백의 섬’(흑산도) 등 이 섬들은 이동의 어려움에도 최소 2만명, 최고 39만여명이 다녀가는 꽤 유명한 관광지들이다. 완성된 11개를 비롯해 25만 그루의 작약이 흐드러질 ‘작약의 섬’(옥도) 등 8개가 현재 추진 중이며 5개가 계획 중이다.전라남도 신안군 퍼플섬 풍경(사진=허미선 기자)이들은 퍼플을 비롯해 레드, 옐로, 코발트 블루 등 대표색을 내세우기도 한다. 계절별로 그 대표색에 해당하는 꽃들이 만발해 축제를 펼친다. 그렇게 신안에는 “한달에 한번, 2024년에만 16개의 꽃축제”가 열린다. 그 중 “국내 유일의 겨울 꽃 축제”가 열리는 압해도는 제주 애기동백 5만 그루가 피고 진다. “동백꽃은 꽃째로 떨어지지만 애기동백은 입이 하나씩 떨어져요. 하얗게 덮인 눈 위로 꽃잎이 하나씩 떨어져 있으면 정말 장관입니다. 영하 7도까지 떨어지는 이 정원에 연간 15만여명이 다녀가요. 그들이 와서 입장료를 내고 근방에서 식사를 하고 기름을 넣고 물건을 사죠. 이렇게 100년, 200년이 간다면 정말 전설적인,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 되지 않을까요. 더불어 겨울에 피는 꽃으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체감온도도 2, 3도는 올라가죠.”전라남도 신안군 피아노 섬(사진=허미선 기자)저마다의 색으로 무장한 섬들을 방문할 때면 “그에 맞는 색의 옷으로 갈아입는다”는 박 군수의 전언에 따르면 “그 섬에 어떤 이벤트가 있으면 저 뿐 아니라 도민 전체가 고유 색을 입는다.” 더불어 그 섬의 고유색 옷을 입은 방문객들의 입장료는 50% 안팎의 할인율이 적용되기도 한다. “앞으로 40개의 꽃 축제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꽃이 필 뿐 아니라 문화예술에 참여할 수 있는 섬을 만들고자 합니다. 문화예술은 도시에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자긍심이 생기질 않아요. 마음만 먹으면 15~30분 거리에 아름다운 꽃 축제와 산책길이 있고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다면 섬에 살지만 당당하고 행복한 마음이 차오르죠. 그래서 ‘1섬 1뮤지엄’ 정책을 통해 27개의 뮤지엄을 만들 생각입니다.”박우량 전라남도 신안군수(사진=허미선 기자)신안을 세계로 알리기 위해 2012년 2월 흑백사진의 대가 마이클 케나(Michael Kenna)를 초청해 사진을 찍고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책으로 꾸려 발간했는가 하면 2021년부터는 매그넘포토스 소속가작가 10명과 작업을 이어간다.6월 28일 덜크(압해읍사무소)를 시작으로 존원(펠리스파크) 그리고 빌스(농협본점)까지 올해 3명 작가가 벽화 작업 중인 한국 최초의 ‘그래피티 타운’ 프로젝트는 2026년까지 이어지며 젊은 예술애호가들에게 손짓할 예정이다.흑산도의 ‘새공예박물관’ ‘철새박물관’ ‘박득순미술관’, 암태도 ‘서용선미술관’, 압해도의 ‘저녁노을미술관’, 자은도 ‘1004섬수석미술관’ ‘세계조개박물관’, 비금도 ‘이세돌바둑박물관’ 등 이미 완료된 15개의 뮤지엄을 비롯해 향후 10여개의 뮤지엄도 조성이 한창이다.9점의 작품으로 꾸릴 제임스 터렐 섬(노대도), 그래피티 섬(압해도), 자연과의 조화로움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안토니오 곰리의 작품이 설치될 ‘바다의 뮤지엄’(비금도), 공동묘지 부지에 한창 작업 중인 야나기 유키노리의 플로팅 뮤지엄(안좌도), 올라퍼 엘리아슨의 ‘대지의 미술관’(도초도), 마리오 보타(Mario Botta)와 박은선 작가의 ‘인피니또 미술관’(자은도), 동아시아 인권과 평화 미술관(신의도) 등 월드클래스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신안의 섬들에서 만날 수 있다.군수부터 공무원들, 도민들까지 퍼플, 레드, 옐로, 코발트 블루 등의 옷을 입고 내달린 덕에 신안은 지난해 처음으로 인구(179명)도 증가했다. 방문자 수도 692만명(2022년 기준, 관광데이터랩)에 이르고 전년대비 방문자 수 6%, 관광소비 21%가 증가했다.박우량 전라남도 신안군수(사진=허미선 기자)사람들은 떠나가고 신생아의 울음소리가 끊기다시피했다. 그야 말로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은 비단 신안만이 겪고 있는 현상이 아니다.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전국의 지자체가 고민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다. 그럼에도 지역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들 강조하곤 한다. “남들이 가는 길을 가서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지역은 열악한 여건, 그 지역만의 특성을 가지고 있죠. 그 역경과 고민거리를 강점으로 전환시켜 당당함과 자긍심을 불어넣어야죠. 처음엔 저도, 외부에서도 잘 할 수 있을까 의문점이 많았지만 이제는 섬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방법이 문화예술의 차별화라고 확신합니다. 배우고 안배우고, 소득의 높고 낮음을 떠나 비전을 공유하고 공감대를 형성해 함께 하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죠. 그런 문화예술과 더불어 지역 특성자원을 활용해 자연환경을 보존하면서 만들어가는 것이 신안만이 가야할 방향이고 차별화 전략이죠.”전남 신안=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전라남도 신안군 풍경(사진=허미선 기자)전라남도 신안군 풍경(사진=허미선 기자)전라남도 신안군이 고향인 단색화가 김환기 고택(사진=허미선 기자)전라남도 신안군 풍경(사진=허미선 기자)전라남도 신안군 임태도의 서용선 미술관(사진=허미선 기자)전라남도 신안군 풍경(사진=허미선 기자)

2024-07-08 18:00 허미선 기자

[人더컬처] 처연함과 광기를 넘어… 이규형이라서 가능한 일!

이규형은 27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브릿지경제와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16부작 ‘삼식이 삼촌’종영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배우 송강호의 ‘드라마 데뷔작’이라는 화제성은 디즈니+ ‘삼식이 삼촌’에 출연한 배우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극중 야망의 아이콘으로 활약하는 강성민 국회의원 역의 이규형은 변요한, 주진모, 서현우, 진기주 등 출연 배우들중 가장 많이 그와 맞붙는다. 전쟁을 겪은 후 야만의 시대 속에서도 자기 식구들의 세 끼 밥은 챙겨먹었다고 해서 본명 보다 ‘삼식이’로 불렸던 그를 유일한 가족이자 궂은 일도 믿고 맡길 만큼 의지하는 강성민의 존재감은 ‘삼식이 삼촌’의 비극을 가장 두드러지게 만드는 존재다.자신의 욕망을 위해 삼촌을 이용하지만 강아지 같은 눈망울로 때론 동정을, 정치적 후계자가 되기 위해 기꺼이 살인을 지시할 만큼 냉철한 눈빛은 ‘삼식이 삼촌’의 중심을 잡는 든든한 닻이다. 단순히 미워할 수 없는 복합적인 악랄함이 이규형의 3단 변신 눈빛을 통해 투과되기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모두가 잘 먹고 잘 사는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혼돈의 시대를 배경으로 각자의 욕망을 촘촘히 교차시키는 내용을 보노라면 ‘영화계 시인’ 신연식 감독 특유의 섬세함 속에 녹아든 배우들의 연기에 눈을 뗄 수 없다.“유일하게 삼촌에게만 본심을 드러내는 인물이예요. 작품 속에 자세히 나오지 않았지만 강성민이 어린시절 병에 걸려 죽을 뻔했을때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 살린 인연이 있죠. 그런 의존적인 면이 서로 닮아있다고 봤습니다. 없으면 불안하고 엇나간 마음을 눈빛만 봐도 알게 되는 사이. 어떤 무리한 부탁을 해도 다 해결해주는 삼식이 삼촌을 보면 설명되잖아요?”16부작의 긴 여정을 마친 이규형은 “한마디로 성장 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현장 가는게 늘 즐거웠기도 했지만 20대면 결코 할 수 없었던 역할”이라고 자평했다.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400억 대작이 든 작품의 고증을 살리기 위해 이규형은 4kg정도 체중을 줄이고 시대에 맞는 의상을 완벽소화했다. 그는 “늘 포마드를 바른 헤어스타일을 고집하고 어두운 톤의 쓰리 피스 정장을 통해 범접할 수 없는 모습을 강조하고자 했다”면서 “카리스마 넘치고 센 느낌이 되려 내면의 유약함을 강조할거라고 봤다”며 자신만의 접근법을 내놨다. 드라마를 처음하는 송상호가 “거침없이 연기하더라. 주저하지 않고 쭉쭉 연기가 나오는걸 보고 많이 배웠다”고 했을 정도다.사전에 모든 신을 암기하고 현장에 가지만 ‘대선배’와의 호흡이 너무 긴장됐다는 이규형은 송강호를 디지털 세계에 입문시킨 장본인 이기도 하다. 뮤지컬 무대에 오를 때 동선을 맞추기 위해 악보와 대본을 양손에 들고 다니던 그는 수년 전 후배들이 아이 패드에 파일로 담아 연습하는걸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던 경험이 있던것.이규형은 “감사하게도 팬클럽에서 선물로 주셔서 늘 핸드폰과 연동해서 들고 다닌다. 선배님과의 촬영이 너무 떨려 외웠던 장면도 다시볼겸 핸드폰 속 대본을 보고 있더니 현장에서 ‘넌 뭐를 그렇게 열심히 보니?’하시더라. 현장에서 시나리오가 아닌 핸드폰만 보고 있으니 궁금했다고”라면서 “늘 인쇄된 책(시나리오)을 들고 다니시던 분이라 신세계라고 하셨다”고 웃어보였다.다리에 깁스를 한 채 등장한 그는 ”원래 아킬레스건이 약한 편이다. 열심히 재활훈련을 하고 있고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는 회복 할 것“이라고 굳은 의지를 보였다.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이규형은 2001년 영화 ‘신라의 달밤’으로 데뷔한 뒤 2017년 tvN ‘비밀의 숲’을 통해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이후 ‘슬기로운 감빵생활’,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는 물론 뮤지컬 ‘팬레터’,‘헤드윅’,‘스위니 토드’등 굵직한 작품의 주연으로 무대를 장악해 왔다.“여러모로 운이 좋은 배우인건 확실해요. OTT를 통해 ‘삼식이 삼촌’이 공개됐고, 지난 달 개봉한 핸섬가이즈’도 관객을 만났으니까요. 다리부상이 좀 아쉽지만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에서 네 번째 다이스퀴스 역할을 맡은것도 행복합니다. 1인 9역인데 무대에서 날아다닐거라 기대 많이 해주세요.”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7-07 14:21 이희승 기자

[B그라운드] 존원의 ‘레인보우’, 덜크 ‘호랑이의 귀환’ 그리고 빌스…세계적인 어반 아티스트가 신안으로 간 까닭은

전라남도 신안군에 그래피티 마을 조성에 참여하는 세계적인 어반 아티스트 존원(왼쪽)과 덜크(사진=허미선 기자)“여기에서의 작업은 매우 의미있는 경험이고 특별한 기회입니다. 두 건물 사이에 빈 공간이 있어서 첫 벽면과 뒤쪽 벽면에 이어지는, 주변 공간까지 활용해 거대한 하나의 작품을 만들고자 합니다.”‘그래피티 마을’(Graffiti Town)에 참여하기 위해 전라남도 신안군의 압해도를 찾은 세계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 존원(Jonone)은 6일부터 시작한 자신의 작품에 대해 “두 벽화가 하나의 작품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환경을 조성하는 작업”이라고 정의했다.“신안군의 첫 인상은 자연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1000개 이상의 섬이 모여 있는 점이 인상 깊었고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죠. 서로 많이 떨어져 있는 섬들에 살고 있는 군민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떤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지 너무 궁금합니다.”신안군과 올해로 5회째를 맞는 어반아트페스티벌 ‘어반 브레이크’(Urban Break, 7월 11~14일 코엑스 B홀)가 함께 하는 세계 최초의 그래피티 아일랜드 조성은 문화예술을 통한 인구소멸 대응 및 지역 활성화를 목표로 하는 ‘1섬 1 뮤지엄’ 아트 프로젝트의 일환이다.전라남도 신안군 그래피티 마을 조성 프로젝트의 첫 작업인 덜크 작품(사진=허미선 기자)존원과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엠버서더인 스페인의 덜크(Dulk)에 이어 9월에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벽화로 유명한 포르투갈의 빌스(Vhils)가 그래피티 작업을 위해 신안군을 찾는다. ‘그래피티 마을’ 조성 프로젝트에 대해 존원은 “왜 신안군인지 궁금할 것”이라며 “그래피티는 원래 도시적인 요소들과 연관이 많다. 하지만 여기는 사람들이 와서 자연을 느끼며 쉴 수 있는, 스트리트 아트가 있기에 적합한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도시에서는 스트리트 아트를 빨리 지나쳐 가버리곤 해요. 제대로 이해하거나 경험을 못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이런 공간에서는 사람들이 더 깊이 작품을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세계적인 그래피티 아티스트 존원(사진=허미선 기자)이어 이 프로젝트의 차별점에 대해서는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모여든다는 것”이라며 “아티스트 한명의 인생은 매우 복잡하다. 아티스트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살아가고 표현할 수 있는 것, 그러면서 살아남는다는 것 자체가 가치를 가진다”고 밝혔다.“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한곳에서 모여 자신들을 표현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차별점입니다. 여기 오는 아티스트들은 정말 열정적인 사람들이에요. 그 열정을 신안군과 함께 나누는 거죠. 전쟁과 갈등이 불거진 지금의 세상에서는 예술이 제일 중요해요. 예술을 통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파하는 게 정말 중요하거든요. 예술은 사람들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어요. 제 인생 역시 스트리트 아트를 접하면서 많이 바뀌었거든요.” 그는 “미국은 많은 돈을 벌어야만 공부를 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는 사회”라며 “그런 사회에서 저는 가난했고 교육도 제대로 받질 못했다. 그런 제 인생을 레인보우처럼 만들고 싶었다(I wanted to make my life into rainbow)”고 털어놓았다. 전라남도 신안군 그래피티 마을 조성 프로젝트에 함께 한 존원의 작품(사진제공=어반브레이크)“이번 벽화의 이미지는 매우 추상적일 거예요. 에너지와 생기, 삶, 색감 등으로 ‘나는 누구인가’(Who Am I?)를 표현할 겁니다. 뉴욕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죠. 저는 매우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고 가난했습니다. 미래도 없었죠. 그래서 저 스스로에게 ‘노랑, 오렌지, 빨강, 파랑 등 색이 충만한 삶을 살고 싶다’고 얘기하곤 했어요.”그렇게 쉽지 않은 환경에서도 다채로운 삶을 꿈꿨던 그는 프랑스 최고 권위의 명예훈장 ‘레지옹 도뇌르’를 수상한, 세계적인 어반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했다.“그건 마술이죠. 기적이기도 해요. 그런 마술을 이 벽화에 표현할 겁니다. 무지개와 같은 표현, 그게 제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죠. 다채로운 색깔들이 있는 무지개처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기적과도 같은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표현하고 싶습니다.”내셔널지오그래픽 엠버서더인 세계적인 아티스트 덜크(사진=허미선 기자)존원에 앞서 6월 28일부터 신안군에 머물며 벽화를 작업한 덜크는 “제 작품들은 항상 자연적인 것들과 연관돼 있다”며 “그래서 자연환경이 매우 잘 보존된 신안군이 매우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말을 보탰다.“저 역시 그래피티와 스트리트 아트를 이런 장소에서 보여주는 것이 매우 좋다고 생각합니다. 도시에서는 이미 많이 볼 수 있고 여러 형태의 아트가 있지만 이런 곳에서는 거의 발달되어 있지 않죠.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이런 곳에서 그래피티를 소비할 수 있도록 작업을 하는 것도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그는 “신안군을 대표하는 동물들과 한국을 대표하면서도 제가 좋아하는 동물 중 하나인 호랑이를 주제로 상상력을 추가한 작업”을 완성했다. 덜크와 아드리·마리아, 세 아티스트가 5일만에 완성한 이 벽화에는 호랑이를 비롯해 짱뚱어, 저어새, 쇠제비갈매기 등 신안군을 대표하는 어종 및 동물들 그리고 덜크 특유의 동물 수호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전남 신안군 그래피티 마을 첫 작품을 완성한 세 아티스트. 왼쪽부터 아드리, 덜크, 마리아(사진=허미선 기자)“이 작품의 주제는 ‘호랑이의 귀환’(The Resurrectiong of the Tiger)입니다. 늘 캔버스에만 호랑이를 그렸었는데 이번에 벽화를 그릴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즐거워요. 이 벽화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작품이 될 거예요. 벽화 속 캐릭터들을 알고 있는 그들이 실제 생활에서와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두 아티스트는 11일 개막하는 어반브레이크에서도 한국 관람객들을 만난다. 존원은 홍이삭과의 콜라보레이션에 대해 “이제 작업을 시작해 점차 발전 중”이라며 “더불어 다양한 K팝 그룹과의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고 싶다”고 털어놓았다.“개인적으로 뉴진스(민지, 하니, 다니엘, 혜린, 혜인), 에스파(카리나, 윈터, 지젤, 닝닝) 등을 좋아합니다. K팝의 인기가 높지만 그들 역시 스트리트 아트에서 영감받은 것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어반브레이크를 통해 한국 뮤지션과 콜라보레이션 무대를 선보일 수 있어서 기대가 돼요.”전라남도 신안군에 그래피티 마을 조성에 참여하는 세계적인 어반 아티스트 덜크(왼쪽)와 존원(사진=허미선 기자)이어 “한국 문화에는 한국만의 특색이 있다. 향후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발전할지 역시 기대가 된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능력과 매력의 한국 아티스트들이 참여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털어놓기도 했다. “전 세계 아티스트들이 한국 음악, 영화, 드라마 등에서 영감을 받고 있는 것처럼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모여드는 신안군의 그래피티 타운 프로젝트도 한국 작가들에게 큰 영감을 줬으면 좋겠습니다. 섬 전체가 열려 있는 박물관이 될 수 있거든요. 굳이 박물관에 가지 않더라도 거리에서 예술작품을 볼 수 있는 개방된 박물관 형태의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문화예술을 향유하기를 바랍니다.”덜크는 “올해 3명(존원, 덜크, 빌스)의 작가들이 이 지역에 와서 작품 활동을 하는 자체로도 매우 큰 동기 부여가 될 것”이라고 동의를 표했다.“작품을 보면서 사람들이 상상하고 자기만의 해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저희 작품들을 감상하고 영감을 받으면 좋겠습니다.”전남 신안=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7-06 18:55 허미선 기자

[비바100] 성찰 모르는 대한민국, 60년간 무얼 쌓았나

김진표 전 국회의장이 박정희 정권부터 윤석열 정권까지 10개 정권의 공과를 분석 평가한 책이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의 의혹 제기 내용이 담겨, 최근 큰 주목을 끌고 있다. 하지만 그 이슈에 묻혀 저자가 정작 강조하려 했던 ‘축적이 필요한 대한민국’, ‘팬덤보다 진정한 정치가 필요한 대한민국’에 관한 관심도가 많이 떨어져 보여 아쉽다. 저자는 “지금 이 나라는 무엇을 축적해 왔는지 깊이 성찰할 때”라고 말한다대한민국은 무엇을 축적해왔는가|김진표|사이드웨이 ◇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준 박정희1961년 군사 쿠테타가 없었더라도 지금 같은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을까? 저자는 3선 개헌, 인권 유린, 부정부패 같은 과(過)에도 불구하고, 척박했던 시기에 국민들에게 더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 준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이라고 말했다. ‘확인사살 행정’과 ‘군대식 신상필벌’ 조직관리도 높게 평가했다. 특히 해외에서 경제·과학 인재들을 조국으로 불러들여 경제를 재건한 것을 높이 샀다.실정(失政)으로는 교육과 주택문제를 들었다. 거의 완전히 시장에 맡긴 탓이라고 했다. 중학 입시를 없앴지만 고교·대학 입시를 그대로 둬 사교육비 수요만 늘렸다고 혹평했다. 공공임대주택을 포함해 수급 상황을 안 따지고 분양 위주로 부동산 정책을 추진해 ‘투기판’을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우국충정에 쿠테타를 일으켰으나, 어느 순간 스스로를 국가 자체로 일체화한 것이 몰락을 불렀다고 평가했다.1987년 민정당 대통령후보 지명대회에서 선출된 노태우 후보지명자와 전두환 당시 대통령. (사진=연합)◇ ‘테크노크라트 시대’를 연 전두환저자는 전두환 대통령이 뛰어난 경제관료들에게 전권을 맡겨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은 “Single is beautiful”이라며 물가와 금리를 한 자릿수로 잡았고, 금융실명제를 건의하고, 공정거래제도와 중소·벤처기업 육성 정책을 펼쳤다. 저자는 “현재 대한민국 경제정책의 밑바탕은 그의 손에서 다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 국민연금 도입도 사공일 경제수석의 진언이 받아들여져 노태우 정권부터 실시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이렇게 ‘일이 되게 만드는’ 관료나 정치인이 사라지고 있다”고 개탄했다. 통치자에도 진언하고 욕먹을 각오로 나라를 위해 일하는 이들은 어디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지금은 역사의식을 가진 유능한 테크노크라트가 필요한데, 사회에서는 이들에 대한 반감이 주류적 정서가 되어 있다”며 아쉬워했다.◇ 정치적으로 가장 저평가된 노태우저자가 역대 국회의장들에게 ‘최고의 의회주의자’를 물었다. 1위가 김대중, 2위가 노태우였다. 노 대통령의 최대 업적은 ‘국민통합’이었다. 실제로 그는 야당과 끊임없이 대화했다. 자신의 역할이 ‘민주사회로의 안정적인 이양’임을 잘 이해했다. 저자는 “‘전부’가 아니면 ‘전무’의 정치가 판치는 요즘 여의도에서, 정치인의 책무가 무엇인지를 알려준 대통령이었다”고 말했다.노 정권은 ‘가장 진보적인 경제정책을 추진한 보수정권’이라는 평도 듣는다. 토지공개념 3법(토지초과이득세, 택지소유상한제, 개발부담금제)과 함께 의료보험제도 전 국민 확대, 지역인재 의무채용에 최저임금제도 신설했다. 그래서 ‘가장 저평가된 대통령’이란 평가가 나온다. 저자는 “어쩌면 우리는 노태우를 거치면서 비로소 이해관계자들이 타협·양보하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야당 정치 지도자 시절의 김대중(왼쪽)·김영삼 전 대통령.◇ 개혁… 하지만 기득권을 못 깬 김영삼저자는 김영삼 대통령이 ‘단순하고 명쾌한, 큰 승부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취임 첫해부터 군대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척결하고, 고위공직자 재산공개와 금융실명제 단행 등 굵직한 개혁을 이끌었다. 금융실명제의 경우, 제도 도입 과정에서 저자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 철저한 보안이 요구되었던 탓에 안양 일대에서 큰 부자로 손꼽히던 장인도 실명제로 인해 큰 손해를 입었다고 했다.저자는 다만, 삼당 합당 과정에서 보여준 행보는 어딘가 미진하고 아쉬움 점이 있다고 토로했다. 금융실명제로 궁극적으로 달성하려고 했던 기업과 금융의 유착 단절, 부실 대기업 구조조정, 재벌과 경제의 개혁 등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것에도 많은 아쉬움을 내보였다. 기존의 기득권을 깨기에는 대통령의 의지와 역량, 비전이 여전히 미흡했었다고 총평했다. 그렇게 IMF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김대중… 가장 존경하는, 준비된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은 후보시절에 IMF와의 재협상을 요구했다. 멀쩡한 기업들이 고금리에 쓰러지고 서민들 고통이 극심할 것을 예견했다. 집권 후 재협상은 이뤄졌고, 이후 그는 4대 개혁을 밀어 부쳤다. 자유 경쟁과 책임 경영의 원칙 아래 금융과 기업에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금융권 회생을 위해 공적자금을 지원했고, 재벌의 지배구조 개혁을 다그쳤다. 가장 고통스러운 노동개혁도 이뤄냈다.그는 적재적소 실용인사로 이런 위기와 난제들을 극복해 갔다. 유·불리가 아니라 옳고 그름이 기준이었다.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으로 국민보다 반 보 앞서 간다’는 원칙을 실천했다. 저자는 김대중을 ‘멀리 크게 보면서도 세세한 것까지 챙기는’ 원모심려(遠謀深慮)의 리더십이라고 평가했다. “우리가 가져본 대통령 중 최고였다”며 가장 준비된, 가장 특별한 대통령이었다고 극찬했다.집권 당시 청와대 집무실에서 노무현 대통령(왼쪽)과 문재인 비서실장이 함께 기념촬영한 모습.◇ 반대편 생각도 수용한 ‘탈 권위’ 노무현저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장점을 ‘반대 생각까지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라고 말했다. 청와대 안에서도 수평적 소통이 주를 이뤘고, 상명하복 대신 토론과 논쟁이 활발했다고 전했다. 수평적 탈 권위의 리더십, 토론의 리더십을 제대로 실천한 사람은 우리 정치사에 노무현이 유일하다고 단언했다. ‘존경받는 김대중’의 리더십과 ‘사랑받는 노무현’의 리더십이 조화되는 대통령을 아쉬워했다. 저자는 ‘참여정부는 실패한 정부’라든가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했다’는 세간의 평가를 부정했다. 시장과 경제에 대한 무지한 시각이라고 꼬집었다. 다만, ‘기자실 대못’으로 대표되는 언론과의 전쟁, 수급을 통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던 부동산 정책은 아쉽다고 토로했다. 세금으로 단박에 부동산 문제를 풀려했던 당시 정부에 공급 위주 정책의 필요성을 더 강하게 주장하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말했다.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최고의 공무원’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전 국회의장 김진표. 최근 이 책의 극히 일부인 윤석열 대통령의 이태원 참사만 부각되는 느낌.◇ 정치인의 결단이 아쉬웠던 문재인저자는 문재인 정권의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을 맡아 ‘국민이 주인인 정부’, ‘더불어 잘사는 경제’ 등 5대 국정 목표를 제시했다. 이후 많은 정책이 로드맵대로 시행됐지만, 보육과 교육 분야에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방대학 경쟁력 이슈가 여전하고 어린이집 대란은 계속 되풀이되고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원전 폐기 정책도 “신재생 에너지 20% 달성을 전제로 한 것인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전했다.저자는 문 정부가 문화적 성취나 코로나 방역 등에서 성과를 냈지만, 피아를 구별하는 정치라는 ‘치명적 실수’를 했다고 비판했다. 조국 사태처럼 양보 없는 대결로 ‘통합의 정치’에 실패했다며 아쉬워했다. 부동산 정책 역시 너무 이념적으로 접근한데다 공급정책에서 실기(失期)해 집값을 폭등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법조인의 원칙이 아닌 정치인의 결단을 내렸다면 어땠을까”라고 물었다.(연합)◇ 사전 검증의 필요성을 일깨워준 이명박·박근혜 이명박 대통령이 정동영 후보를 압도하고 대통령이 된 것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도 작용했다. 하지만 시대는 이미 그 때와 한참 달라져 있었다. 정치적인 것에 매달리기 보다는 철저히 실용적, 실리적인 것에 몰입했던 이명박은 그래서 무리하게 정책을 강요하는 일도 잦았다고 저자는 회고했다. 다만, 그런 실리적인 정권 운영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한 것은, 그의 실리주의가 ‘공익’ 보다는 ‘사익’에 치중되었다는 협의가 짙었기 때문이라고 했다.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와 ‘탄핵’이라는 큰 화두를 남겼다. 저자는 심각한 부와 기회의 불평등 속에서 ‘경제민주화’는 매우 훌륭한 정책적 기획이었으나 “빚내서 집사라”는 ‘초이노믹스’는 가계부채 급증을 부른 실패한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여야 모두 당 대표 일극의 권력구도로, 오로지 ‘오너’의 의중과 심기에 맞춰 행동하는 우리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했다. 그러면서 “촛불민주주의 같은 직접민주주의의 효능감이 권력에 대한 올바른 감시가 아니라 ‘팬덤’으로 옮겨가고, 그 팬덤이 의회를 좌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연합)◇ “NO”하는 측근이 없는 윤석열저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를 ‘비토의 정치’로 규정했다. 초기에는 개헌과 중대선거구제로의 전환에 긍정적이라 기대가 컸으나 아직 진전이 없다며 의지와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 발생 직후 만난 자리에서 “특정 세력에 의해 유도되고 조작된 사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에 당혹했음을 술회했다. 그러면서 “주변에서 강력하게 ‘NO’라고 진언할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저자는 “의회주의의 본령은, 주어진 제약 조건 아래서 끌어낼 수 있는 최대의 합의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정치’가 사라진 것이 아닌가”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사태를 초래한 가장 큰 원인은 극렬한 진영 갈등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일관성 있는 저출생 대책을 추진하기 위한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출산·보육·주거는 나라가 책임지겠다고 헌법에 못을 박아야 한다고 했다.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2024-07-06 07:00 조진래 기자

[B그라운드] 청춘, 성장 그리고 저마다의 발버둥…뮤지컬 ‘4월은 너의 거짓말’

뮤지컬 ‘4월은 너의 거짓말’ 출연진(사진=허미선 기자)“이 극에서 말하고 싶은 주제가 ‘발버둥’이라고 (추정화) 연출님이 말씀을 해주셨어요. 누구에게나 발버둥을 쳤던 순간들이 있잖아요. 저희의 연습 기간 역시 순간순간이 발버둥이었던 것 같습니다.”뮤지컬 ‘4월은 너의 거짓말’(8월 25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축구에 열정적인 와타리 료타(김진욱·이재진·조환지 이하 료타, 가나다 순)를 연기 중인 조환지는 작품의 주제를 ‘저마다의 발버둥’이라고 밝혔다.뮤지컬 ‘4월은 너의 거짓말’ 아리마 코세이와 이야노조 카오리 배우들(사진제공=EMK컴퍼니)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4일 열린 프레스콜에서 조환지는 “더불어 청춘의 연속이었다”며 “연습 막판까지 발버둥을 쳤던 것처럼 무대 위에서도 발버둥을 칠 예정이니 수많은 저희 청춘들의 순간들을 지켜봐시면 좋겠다”고 덧붙였다.“저희가 드릴 수 있는 청춘의 에너지, 기운 등을 받고 극장을 나가시면서 ‘나도 저랬던 시절이 있었지’라고 회상하시길 바랍니다. 더불어 지금 청춘이신 분들이라면 저희의 큰 에너지를 받는 순간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최근 일본 공연계를 휩쓴 트렌드는 2.5차원 뮤지컬(2.5次元ミュ-ジカル)이다.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을 무대로 실사화하는 트렌드로 뮤지컬 ‘4월은 너의 거짓말’도 아라카와 나오시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2011년부터 2015년 고단샤의 ‘월간 소년 매거진’에서 연재됐던 작품으로 2015년 TV애니메이션, 이듬해 영화로 개봉해 사랑받았다. 토호가 제작한 ‘4월은 너의 거짓말’은 ‘지킬앤하이드’ ‘데스노트’ ‘드라큘라’ ‘웃는 남자’ ‘마타하리’ ‘엑스칼리버’ ‘몬테크리스토’ 등으로 한국에서 유독 사랑받는 프랭크 와일드혼(Frank Wildhorn)이 넘버를 꾸리고 ‘가구야 공주 이야기’ ‘메리와 마녀의 꽃’ 등의 일본작가 사카구치 리코가 대본을 집필해 지난해 5월 일본에서 초연됐다. ‘인터뷰’ ‘스모크’ ‘프리다’ 등의 추정화 연출이 합류해 6월 28일 개막한 한국과 더불어 웨스트엔드에서도 동시에 공연된다.불운을 겪는 피아노 신동 아리마 코세이(김희재·윤소호·이홍기, 이하 코세이, 가나다 순)와 천재 소녀 바이올리니스트 미야노조 카오리(이봄소리·정지소·케이, 이하 카오리)가 음악으로 교감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다. 코세이, 카오리와 더불어 코세이의 친구이자 카오리의 짝사랑 상대 료타, 코세이와 료타의 소꼽친구 사와베 츠바키(박시인·황우림) 등 저마다의 꿈을 향해 내달리며 발버둥치는 청춘들의 성장극이다.‘4월은 너의 거짓말’은 지난해 ‘모차르트!’에 이은 트로트 스타 김희재의 두 번째 뮤지컬이자 유재석의 ‘놀면 뭐하니?’ WSG워너비(윤은혜, 나비, 이보람, 코타, 박진주, 조현아, SOLE, 소연, 엄지윤, 권진아, 흰, 정지소) 멤버, ‘더 글로리’의 문동은(송혜교) 아역으로 이름을 알린 정지소의 뮤지컬 데뷔작이다.뮤지컬 ‘4월은 너의 거짓말’ 공연장면(사진=허미선 기자)김희재는 강압적인 엄마의 교육방식, 그런 엄마의 죽음으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피아노 신동 코세이를, 정지소는 피아노 연주를 꺼리는 코세이가 다시 음악을 할 수 있게 손을 잡아주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카오리를 연기한다.“데뷔하던 고등학교 때부터 뮤지컬을 꿈꿨다”는 정지소는 “상수, 하수, 1번, 2번, 3번, 4번 등 모든 게 헷갈리는 상황에서 짧은 시간 안에 무대에 올라야 했는데 선배님들 덕분에 빠르게 적응해 행복하게 공연 중”이라고 꿈을 이룬 소감을 전했다.김희재는 ‘4월은 너의 거짓말’에 대해 “공연이 끝나고 ‘힘들다’ 보다는 ‘되게 오늘 즐거웠다’는 느낌이 많이 드는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애니메이션도, 원작도, 영화도 두 번 정도씩 봤다”며 “여러 번 보면서 코세이가 가진 트라우마를 어떻게 나한테 대입해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털어놓았다.“저는 어려서 트로트 신동으로 사랑받았지만 코세이는 천재 피아니스트지만 사랑을 받기 보다는 질타와 채찍질을 당하면서 어두운 부분이 많았어요. 저는 좋아하는 트로트를 하면서 굉장히 박수를 많이 받고 신났던 경험이 많았죠. 그래서 코세이를 이해하기 위해 마냥 행복만 하지는 않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끄집어내면서 대입하려고 노력했습니다.”뮤지컬 ‘4월은 너의 거짓말’ 주요 출연진들이 프레스콜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허미선 기자)이른 나이에 뮤지컬 무대에 데뷔해 눈길을 끌었던 윤소호는 “같은 트라우마라도 10대가 느끼는 감정은 굉장히 다른 것 같다”며 “이 친구(코세이) 역시 피아노를 치는 아티스트지만 배우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과는 또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 다름과 트라우마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고 밝혔다.카오리 역의 이봄소리는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아픔들에 굉장히 밀접한 작품”이라며 “신체적·정신적 장애에 갇히지 않고 혹은 누가 더 안쓰럽다 느끼기 보다는 서로가 서로에게 구원의 존재가 돼 트라우마를 이겨낸다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서로가 서로를 성장시켜줄 수 있는 굉장히 좋은 친구가 되고 결국엔 받아들일 죽음과 그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을 주는, 굉장히 따뜻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무대도 벚꽃이 날리는 굉장히 예쁜 모습으로 기억되게끔 하지만 단지 예쁜 모습으로만 남는 것이 아닌, 결국 두 캐릭터가 같이 성장해 나아갔음을 전하고 싶은 작품이에요.”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7-05 18:00 허미선 기자

[B그라운드] 배우, 감독 합치면 무려 10번 째 내한, ‘데드풀과 울버린’ 1000만 가자!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데드풀을 연기한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가 선물 받은 한복을 입고 있다. (연합)“올해 최고의 로맨스 영화? 칭찬 감사합니다.” (휴 잭맨)무려 6번 째 내한하는 휴 잭맨과 3번째 한국 땅을 밟은 라이언 레이놀즈의 ‘입담’은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내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숀 레비 감독이 연출을 맡은 ‘데드풀과 울버린’은 히어로 생활에서 은퇴한 후, 평범한 중고차 딜러로 살아가던 데드풀이 예상치 못한 거대한 위기를 맞아 모든 면에서 상극인 울버린을 찾아가게 되며 펼쳐지는 도파민 폭발 액션 블록버스터.무려 25년간 울버린으로 살아온 휴 잭맨은 “하나의 캐릭터로 찍은 10번째 영화”라면서 “프로듀서이자 작가,주연으로 나온 라이언 레이놀즈를 보며 ‘나보다 더 이 캐릭터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구나’를 느꼈다”며 충만했던 촬영장 분위기를 전했다. 세 사람은 평소에도 가까운 곳에 살며 실제 가족보다 더 자주 만나며 가깝게 지내는 ‘할리우드 베프’로 알려져 있다. 숀 레비 감독의 전작 ‘리얼 스틸’, ‘프리 가이’등에 각각 출연하며 친분을 이어왔고, 배우 각자의 대표 캐릭터를 한 영화로 만드는데 힘을 보탠것.다정한 ‘데드풀과 울버린’.(연합)3일 전용기를 타고 김포공항에 도착한 이들은 영화 홍보 일정으로 LG 트윈스와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가 열린 고척돔을 찾아 본격적인 행보를 알린 바. 이에 라이언 레이놀즈는 “월드 프리미어 행사를 하기에 앞서 셋이 한 약속이 있다. 최대한 방문한 도시의 문화와 취향을 즐길 수 있고 셋 중 한 명이 가고 싶은 곳에는 절대 ‘No’를 하지 않는거였다”면서 “함성이 너무 높아서 시계에서 계속 경고음이 들렸다. 테일러 스위프트 콘서트 이후 처음이었지만 끄지 않았다”는 말로 좌중을 사로잡았다. 그는 평생 단 두 번의 야구 경기를 했으며, 뉴욕 양키즈 이후 처음으로 본 야구 경기였음을 연신 강조했다.특히 ‘데드풀과 울버린’은 울버린의 서사와 액션을 유지하면서도 R등급 특유의 말맛과 설정으로 일찌감치 전세계 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가족중심의 작품관을 강조하는 월트디즈니컴퍼니의 배급망을 타고 전세계에 공개되지만 숀 레비 감독은 “디즈니는 데드풀의 DNA를 유지하는걸 원했다. 기존의 디즈니와 다를거란걸 알고 시작한 일”이라며 색다른 매력을 기대하게 만들었다.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영화 ‘데드풀과 울버린’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숀 레비 감독(오른쪽부터), 데드풀을 연기한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 울버린을 연기한 휴 잭맨이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더불어 숀 레비 감독은 “이 영화는 ‘우정’에 관한 영화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성장해 간다. 감독으로서 이렇게 상징적인 히어로 두 명을 액션과 유머를 점철시켜 여름에 개봉하는건 큰 기쁨”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 말미에는 걸그룹 블랙핑크의 ‘코첼라’ 의상을 제작한 디자이너의 한복을 선물 받아 직접 입어보며 훈훈하게 마무리 됐다.직접 옷고름을 매며 함박웃음을 지은 라이언 레이놀즈는 “감독님은 왜 주는거냐?”며 눙친 뒤 “이 옷을 입으니 데드풀 수트를 입을때 처럼 힘이 난다. 심지어 주머니에 손을 넣을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디자인”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기자회견에는 아시아 취재진을 비롯한 해외 취재기자 50명이 서울을 찾으면서 흥행대세이자 글로벌 콘텐츠의 주역인 한국의 위상을 굳건히 했다. ‘데드풀과 울버린’ 은 오는 24일 국내 관객과 만난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7-04 11:35 이희승 기자

[비바100] “왜 가난하고 그래”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

뮤지컬 ‘젠틀맨스가이드: 사랑과 살인편’ 2021년 공연장면(사진=브릿지경제 DB, 쇼노트 제공)지독히도 가난하지만 사랑에도, 세상에도, 삶에도 순수했던 청년 몬티 나바로(김범·손우현·송원근, 이하 시즌합류·가나다 순)가 런던 최고의 귀족 다이스퀴스 가문의 8번째 백작 후계자였음을 알게 되면서 이야기는 좌충우돌 블랙코미디가 된다. 1900년대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몬티 나바로와 다이스퀴스 가문 사람들(이규형·정상훈·정문성·안세하), 연인 시벨라 홀워드(류인아·허혜진)와 결혼상대 피비 다이스퀴스(김아선·이지수) 등이 펼쳐가는 블랙코미디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7월 6~10월 20일 광림아트센터 BBCH홀)이 돌아온다.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사진제공=쇼노트)2018년 초연 후 2020, 2021년 재삼연에 이은 네 번째 시즌으로 지난 6월 16일(현지시간) 제77회 토니어워즈(Tony Awards)에서 뮤지컬 부문 의상 디자인상을 수상한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브로드웨이씨어터) 린다 조의 대표작이기도 하다.처음엔 그저 다이스퀴스 소유의 은행 취직이면 됐다. 하지만 마뜩찮게 지위와 권력, 부를 거머쥔 다이스퀴스가문 사람들이 조상들까지 단체로 등장해 ‘왜 가난하고 그래’를 돌림노래처럼 불러대며 조롱하는가 하면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연인 시벨라는 다이스퀴스 가문의 8번째 백작 후계자라는 말을 한껏 비웃으며 부잣집 남자와의 결혼에 열을 올린다.팔을 뻗기만 하면 구할 수 있었던 에제키알 다이스퀴스 목사를 해치우는 선택을 하면서 몬티의 다이스퀴스 백작 후계자 퇴치작전은 본격화된다. 이 퇴치작전은 몬티의 고군분투와 각종 다이스퀴스를 연기하는 배우의 노고로 완성된다. 혼자서 15~20초 안에 변신해 9명의 다이스퀴스를 연기하는 배우의 변화는 ‘젠틀맨스 가이드’의 백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스케이트장에 얼음구멍을 내거나 향수로 벌떼의 공격을 받게 하거나 운동기구 무게를 늘리고 소품 총에 실탄을 장전한다. 그렇게 바람둥이 애스퀴스, “남자가 더 좋아”를 외치며 몬티에게 호감을 보이는 헨리, 보디빌더 바톨로뮤, 발연기 배우 레이디 살로메가 죽음을 맞는 가운데 가장 큰 웃음을 자아내는 이는 단연 자선사업가 레이디 히아신스다. 자선사업 거리를 제안하며 이집트로, 인도로, 아프리카로 보내고 또 보내도 몇 번이고 살아 돌아오는 히아신스는 1인 9역을 소화하는 다이스퀴스 배우들의 매력이 응집된 캐릭터다.이후 벌어지는 현재 하이허스크 성의 주인인 애덜버트 백작과의 마지막 사투, 사랑하는 연인 시벨라와 결혼상대로 적합한 피비 다이스퀴스의 밀고 당기기도 흥미롭다. 그렇게 몬티가 “언젠가는 지렁이도 걷게 될지”라는 시벨라의 비아냥을 딛고 백작이라는 지위를 얻는 과정은 폭소를 자아내지만 마냥 웃어도 되나 질문하게 한다.뮤지컬 ‘젠틀맨스가이드: 사랑과 살인편’ 2021년 공연장면(사진=브릿지경제 DB, 쇼노트 제공)재기발랄함과 촌철살인과도 같은 통쾌함 그리고 둘 다 가질 수 있다는 욕심,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얻게 된 백작이라는 지위, 이를 지키기 위한 마뜩찮은 선택, 새로운 백작 몬티를 노리는 또 다른 다이스퀴스 후계자의 등장 등에 대한 씁쓸함이 공존하는 그야말로 ‘블랙 코미디’다. ‘젠틀맨스 가이드’는 ‘구미호뎐’ 시리즈, ‘고스트 닥터’ ‘로스쿨’ ‘꽃보다 남자’ 등의 김범, BL드라마 ‘나의 별에게’ 시리즈, ‘행복배틀’ ‘금수저’ 등과 연극 ‘테레랜드’ 등의 손우현의 뮤지컬 데뷔작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오페라의 유령’ ‘레드북’ ‘이프덴’ ‘서편제’ 등의 송원근과 몬티 나바로를 번갈아 연기한다.2024 ‘젠틀맨스 가이드: 사랑과 살인 편’ 출연진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몬티 나바로 역의 송원근·김범·손우현, 1인 9역을 소화할 다이스퀴스들의 안세하·정문성·정상훈·이규형(사진제공=쇼노트)9개의 역할을 소화하며 ‘젠틀맨스 가이드’의 백미를 책임질 다이스퀴스들로는 초연부터 함께 한 ‘삼식이 삼촌’ ‘카지노’ ‘해피니스’ ‘슬기로운 감빵생활’ ‘몬테크리스토’ ‘스위니토드’ ‘팬레터’ 등의 이규형과 2020년 재연 무대에 섰던 코믹 연기의 대가 정상훈이 다시 돌아온다. 더불어 2021년 3연의 ‘셰익스피어 인 러브’ ‘사의찬미’ ‘어쩌면 해피엔딩’ ‘헤드윅’ ‘감사합니다’ ‘신성한, 이혼’ ‘모범형사’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 등의 정문성이 다시 무대에 서며 드라마 ‘킹더랜드’ 등과 뮤지컬 ‘할란카운티’ ‘사랑의 불시착’ ‘올슉업’ 등의 안세하가 다이스퀴스들로 새로 합류한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7-03 18:30 허미선 기자

[비바100] ‘벚꽃동산’ 박해수 “내가 샀어요, 아물지 않은 상처의 공간, 순간을 이겨내는!”

‘벚꽃동산’ 박해수(사진제공=LG아트센터)“처음엔 ‘내가 샀어요’라는 대사가 좀 부담스럽고 긴장됐어요. ‘벚꽃동산’에서 남자배우가 할 수 있는 가장 잘 알려진,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와도 같은 대사거든요. 이 독백을 잘해야겠다는 부담이 컸는데 지금은 좀 많이 내려놨어요. 매회, 순간순간 달라지거든요.”박해수는 연극 ‘벚꽃동산’(Вишнёвый сад, 7월 7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시그니처홀) 출연을 처음 알리면서 설렘과 부담을 토로했던 대사 “내가 샀어요”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어떤 때는 울컥하기도 하고 또 다른 때는 울분이 되기도, 자극이 되기도 해요. 그 상대도 어느 날은 강현숙(최희서)이고 어느 날은 송도영(전도연)이 되고 또 어떤 때는 변동림(남윤호)이 되기도 합니다. 그 순간에, 대사 자체에 충실하려고 하죠.”‘벚꽃동산’ 박해수(사진제공=LG아트센터)그렇게 변화를 꾀한 ‘내가 샀어요’에 대해 박해수는 “사실 그건 제(황두식)가 과거에 얽매여 인정받고 증명해보이고 싶은 이 집안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제일 많이 드러나는 대사”라고 말을 보탰다. “(황두식이 ‘내가 샀어요’라고 한) 벚꽃동산은 제가 가장 사랑했던 공간이고 유년기의 내 모든 추억 속에 있던 곳이고 내 아버지가 그 사람들한테 두드려 맞는 걸 내 눈으로 본 공간이기도 해요. ‘지울 수 없는 상처, 지울 수 없는 그리움’이라는 대사가 잘 표현하고 있죠. 저는 그 공간에 매여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 공간, 순간을 이겨내는 의미의 대사가 ‘내가 샀어요’죠.”◇나와 맞닿은 황두식, 아버지를 떠올리는 순간들‘벚꽃동산’ 박해수(사진제공=LG아트센터)“황두식이라는 이름도 제가 지었어요. ‘식’자가 꼭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밥은 먹고 살아라’라는 바람이 담기기를 바랐거든요.”고전의 현대화에 탁월한 사이먼 스톤(Simon Stone)의 ‘벚꽃동산’은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의 동명 유작을 한국화한 작품이다.어린시절의 추억이 담긴 벚꽃동산까지 경매에 붙여야할 지경까지 몰락해 6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귀족 류보비 안드리예브나 라네프스카야(류바)는 거대기업의 송도영(전도연)으로, 이 재벌가의 재정위기를 타파할 방법을 끊임없이 제안하지만 누구도 들어주지 않아 미칠 지경에 이르는 농노의 자식이자 신흥사업가 로파힌 예르몰라이 알렉세예비치는 송씨 집안 운전수의 아들로 자수성가한 신흥사업가 황두식(박해수)으로 변주된다.2024년 한국을 배경으로 송도영과 황두식을 비롯해 기업대표이자만 ‘낭만’이 우선인 송재영(손상규), 집안사업을 지키고자 고군분투하며 두식과 미묘한 관계를 이어가는 입양한 딸 강현숙(최희서), 영화감독을 꿈꾸는 둘째 딸 강해나(이지혜)와 이상주의자 변동림(남윤호) 등이 급변하는 사회상과 그에 따른 갈등, 혼란 등을 풀어낸다.연습 초반 사이먼 스톤은 배우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들로 캐릭터의 면면을 구축했다. 황두식 또한 박해수의 개인사에서 비롯한 “갖춰진 틀 안에 제가 들어가는 게 아닌, 저와 맞닿은 캐릭터”다.“특히 아버지에 대한 부분이 와닿아요. 황두식의 아버지처럼 폭력적이거나 술주정뱅이는 아니었지만 어린시절의 아버지는 거대하고 무서웠고 목소리도 크고 되게 우람하셨거든요. 그런 모습 뒤에 숨겨진 아버지의 작은 모습을 봤을 때를 사이먼과 얘기한 적이 있어요. 그런 아버지에 대한 황두식의 인정욕구가 제가 가진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이먼이 생각하는 스스로의 아버지에 대한 인정욕구도 분명 있죠.”‘벚꽃동산’ 박해수(사진제공=LG아트센터)이어 “연기를 하면서 아버지 얼굴이 떠오를 때가 있다”며 “황두식 뿐 아니라 모든 캐릭터들이 가진 결핍들은 배우에게서 가지고 왔다. 그래서 배우들도 좀 더 외롭고 감정들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사이먼이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아요. ‘오징어게임’ ‘유령’ 등 저 뿐 아니라 ‘벚꽃동산’ 출연진들의 작품들을 거의 다 볼 정도죠. 사이먼이 사람을 잘 관찰하는데 저한테서는 피지컬과 아우라가 있는 동시에 되게 연약한 면이나 쉽게 흔들리는 듯한 모습을 본 것 같아요.”이어 “K콘텐츠 발전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한국은 독보적인 스타일의 영화, 드라마가 있다’ ‘한국 배우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연기를 잘한다’고 하더라”고 말을 보탰다.“제가 생각하는 K콘텐츠의 강점은 수준높은 시청자들과 관객들이죠. 그 잣대가 저희를 열심히 안할 수 없게 만들거든요. 배우인 저 역시 연기를 잘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죠.”◇두 여자, 복잡한 존재 송도영과 강현숙‘벚꽃동산’ 박해수(사진제공=LG아트센터)“둘 다 사랑에 대한 부재가 있어요. 어쩌면 가장 외로운 사람들일 수도, 송가네의 이방인일 수도 있는 사람들이죠. 둘 다 그 아픔이 존재하는 결핍이 있어요. 그 사이에 분명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을 거예요. 감정적인 연인 사이의 교류는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뭔가 모르게 ‘인테리어 디자인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다’ 같은 얘기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존재죠.” 연인이라고 할만큼 뜨겁진 않지만 그렇다고 차갑지만도 않은 강현숙에 대해 박해수는 “감정적 동질감”을 언급했다.“고독한 한 남자가 성공 후 모든 걸 다 정리한 상태에서 진짜 좋아하는 걸 알게 됐다고 고백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그렇게 고백하는 순간 내가 몰랐던, 오래된 사랑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되게 아프더라고요.”그렇게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얘기를 고백하는 사이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감정들의 복합체다. 현숙과 더불어 아버지에 의한 동시에 아버지를 향한 폭력이 난무하던 공간, 그 안에서 황두식이 느꼈을 모멸감 안에서 처음으로 다가온 따뜻한 송도영 또한 두식에겐 복잡한 존재다. 그 송도영은 “제가 접한 첫 여성성이고 엄마의 부재에서 오는 그리움을 사랑이라고 믿었던 존재”리며 “동경하고 흠모하는 대상”이다.“송도영이 ‘몸을 숙인다’라는 대사가 있어요. 처음엔 고개를 숙여 상처를 닦아 주는 건가 했는데 ‘몸을 숙인다’는 대사를 쓴 이유가 있을 것 같았어요. 어떤 체취로 다가오는 느낌 같아요.그 사람의 기억 속에서 엄마의 품 같기도 하고 사랑이었을 것도 같고…시간이 오래 지나면서 꿈을 이루는 동안 힘이 될 정도였으니까요. 엄마였다가 여자였다가 그 어떤 공간이었다가 향기였다가…하나로 규정짓기 어려운 존재죠.”‘벚꽃동산’ 박해수(사진제공=LG아트센터)송도영을 연기하는 전도연에 대해 “감히 설명할 수 없는, 너무 다채로운 매력들을 가진 분”이라며 “현장에서 순간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털어놓았다.“함께 무대에서 연기하고 있는 순간이 너무 행복하고 감사해요. 그 순간에는 전도연과 박해수가 아닌 송도영과 황두식으로 있지만요. 공연의 질이나 연기자로서 무대에 위 뿐 아니라 공연 전과 끝난 후의 과정들,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사랑하고 챙기는 모습들에서 많이 배우고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내년 ‘벚꽃동산’의 호주 공연을 위해 스케줄을 조율 중이라는 박해수는 이정효 연출의 ‘자백의 대가’ 출연을 고심 중이다. 이 작품에는 ‘벚꽃동산’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는 전도연도 안윤수 역 물망에 올라 다시 한번 두 사람의 재회를 기대하게 한다.◇송씨 일가를 향한 절실한 설득, 결국 ‘사랑’span style="font-weight: normal;"‘벚꽃동산’ 박해수(사진제공=LG아트센터)“송도영이 아이에 대한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그걸 듣는 황두식 장면이 좋아요. 그때의 그 공간이 되게 좋거든요. 도영이 자신의 깊은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을 제(두식)가 뒤에서 지켜보는 장면인데 정말 많은 생각들이 오가요.”이어 “이 순간 진짜 아픈 사람한테 내가 기업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는 죄책감이 들 때도 있고 조금만 빨리 만났으면 저 사람을 구원했을 수도 있겠다도 싶고 다른 세상이나 시대에서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싶고…복잡한 감정들을 담은 이 대사가 저한테는 제일 두식스러웠던 말 같다”고 덧붙였다.‘벚꽃동산’ 박해수(사진제공=LG아트센터)극 중 황두식은 파산 위기에 처한 송씨 일가를 살릴 방도를 끊임없이 설명하고 설득한다. 하지만 낭만만을 찾는 송재영과 “나는 잘 몰라요”로 일관하는 송도영, 이상만을 부르짖을 뿐 실천을 두려워 하는 변동림 등은 그의 물질적 욕구를 비웃을 뿐이다.“현실 감각이라곤 없고 뜬구름을 잡고 있는 이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 절실한 이유는 ‘사랑’이에요. 이 가족에 대한 그리고 유년 시절 내 고통이 섞여 있는 이 집안에 대한 사랑이죠. 언젠가 도연 선배님이 ‘이 중에서 이 집을 가장 사랑할 수 있는 건 두식이겠다’고 얘기하시는데 저한테도 확 와닿았죠.”‘벚꽃동산’ 박해수(사진제공=LG아트센터)이어 “물론 욕심도, 욕망도 조금은 있었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절실하게 그들을 설득한 이유는 진심으로 살리고 싶어서 같다”고 부연했다.“힘든 시기에 희망을 갖게 했고 구원했던 이 집을 구원할 수 있는 게 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아요.”◇두식과 동시에 느끼는 공허함, 발전의 원동력 “사이먼이 얘기하고자 하는 의도 자체가 어떤 약속이나 정보 전달보다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관찰에 있었던 것 같아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조금 실수를 하거나 계획하지 않더라도 그 순간들을 만들어내 내죠. 처음엔 사이먼의 방식에 긴장이 더 많이 됐는데 이제는 되게 자유로워졌어요.”그렇게 서로를 관찰하고 믿음을 키워가면서 박해수는 “모든 배우들을 정말 사랑하게 하게 됐다”며 “그들 하나하나와 함께 온전히 숨 쉬고 있을 때가 진짜 살아 있다고 느껴지고 소중해진다”고 털어놓았다.“처음엔 에너제틱했어요. 모두가 뾰족뾰족하게 부딪히곤 했죠. 하지만 지금은 여전히 실수를 하고 자연스럽지 않기도 한데 서로를 보듬어주는, 서로의 에어백이 돼주는 느낌이에요. 무대에 올라가 있는 순간은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는데 내려오면 또 그렇게 외롭고 공허할 때가 많아요.”어떤 캐릭터를 받아들인 자신의 몸을 통로 삼아 관객들에게 인물의 감정과 작품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행위의 끝은 늘 공허함과 박탈감이다.“온전히 이 작품을 위해 살아가지만 결국 어느 순간에는 끝나는 시점이 오거든요. 또 새로운 만남과 선택을 받아야 하는 배우로서 이별을 맞아야 한다는 데 박탈감이 없지 않아요. 그리고 이 감정들은 배우로서 늘 가져야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일상적이고 관성적으로 임하기 보다는 온 마음과 정성을 쏟아야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거든요. 계속 느낄 수밖에 없고 느껴야만 하는 것 같아요.”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7-03 18:00 허미선 기자

[B그라운드] 디즈니+에 레이니즘 '통할까', 정지훈, 경호원 역할로 OTT 눈도장!

배우 정지훈이 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콘래드서울호텔에서 열린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화인가 스캔들’제작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출연료 받았으니, 되도록 스턴트 안 쓰고 연기 하고 싶습니다.”재벌가 며느리와 그를 지키는 경호원. 김하늘과 정지훈(비)가 디즈니+ 새 오리지널 시리즈 ‘화인가 스캔들’로 3일 전세계 시청자들을 만난다. ‘화인가 스캔들’은 대한민국 상위 1% 화인가를 둘러싼 상속 전쟁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받는 나우재단 이사장 김하늘(완수)과 그녀의 경호원 정지훈(도윤)이 화인가의 비밀을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드라마 ‘뉴하트’ ‘선덕여왕’ ‘최고의 사랑’ 박홍균 감독과 ‘사랑만 할래’ ‘세자매’ 최정윤 작가가 만나 제작 단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정지훈은 2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제작발표회를 통해 대부분의 액션 장면을 직접 소화했음을 밝히면서 “출연료를 받았으면 그 정도는 해야 한다고 본다. 직접 하는게 편하다. 선이 살아있는 액션을 선보이기 위해 무술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에 김하늘은 “대역 없이 얼마나 잘 소화하는지 흥미로웠는데 정말 멋졌다.누군가 저를 위해서 싸워주니까, 촬영인데도 설레더라”며 남다른 호흡을 자랑했다.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화인가 스캔들’의 주역들. 왼쪽부터 서이숙, 비, 김하늘, 기은세, 정겨운. (연합)박홍균 감독은 정지훈의 액션 연기보다 감정연기를 칭찬하며 ”재벌가의 며느리가 된 오완수가 구호활동을 하던 중 의문의 테러를 당한다.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자신의 친구도 같은 테러범에게 당했다는 서도윤과 함께 테러의 비밀을 파헤치는 작품다“고 말문을 연 뒤 ”정지훈이 액션을 잘한다는건 익히 알았지만 감정 연기도 훌륭하더라. 이 부분을 집중해 봐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화인가의 후계자 김용국 역에는 정겨운, 화인가의 절대자 박미란 역의 서이숙, 그룹의 변호사 한상일 역의 윤제문, 화인가의 불청객 장태라 역의 기은세 등이 출연한다. 지난 해 메가히트작 ‘무빙’ 이후 뚜렷한 화제작을 내놓지 못하는 디즈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아서 일까. 정지훈은 “최선을 다했지만 이번 해에 디즈니+에서 가장 잘 된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는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화인가 스캔들’은 오늘(3일)부터 매주 수요일 2편씩 총 10개의 에피소드가 공개된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7-03 15:12 이희승 기자

[비바100] '핸섬가이즈' 이희준이 만들어내는 '진지한 웃음'

영화 ‘핸섬가이즈’에서 상구 역을 맡은 배우 이희준은 “사람들은 왜 싸울까, 평화로운 게 좋아를 외치는 순수한 인물”이라고 정의했다. (사진제공=BH엔터테인먼트)“다작이요? 일년에 한편만 하자는 주의라 평소대로 했을 뿐이죠.”올해만 넷플릭스‘황야’ ‘살인자ㅇ난감’, 디즈니+ ‘지배종’ , 쿠팡플레이 ‘SNL 코리아’ 시즌5 게스트까지 맹활약 중이다. 그저 “순서대로 해 왔던 일이 풀리기시작한 것 뿐”이라며 이희준은 웃어보였다. 코로나19와 OTT작업의 속도가 겹치면서 ‘졸지에’ 다작 배우가 됐지만 “일이 없을 때는 완벽하게 쉰다. 얼마 전에는 아내의 허락을 받고 8개월 이상 해외에 나가있었다. 많은 에너지를 비축했다”며 다시금 열일할 준비가 돼 있음을 강조했다.영화 ‘핸섬가이즈’에서 상구 역할을 맡은 배우 이희준. 평화로운 전원생활을 꿈꾸던 재필(이성민)과 상구(이희준)가 하필이면 귀신 들린 집으로 이사 오며 벌어지는 고자극 오싹 코미디다. 제57회 시체스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으로 현재 극장 상영 중이다.(사진제공=BH엔터테인먼트)지난달 26일 개봉한 ‘핸섬가이즈’에서 그가 맡은 상구는 성난 근육으로 무장한(?), 쉽사리 눈을 마주칠 수 없는 외모의 소유자다. 자신의 돌림자를 딴 반려견 봉구를 동생처럼 챙기고 늘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잘 생겼다”고 말해주는 형 재필(이성민)과 평생 모은 돈으로 한적한 마을에서 막 전원생활을 할 참이다. 목수일을 하는 그에게 나무와 톱, 칼과 망치 그리고 몰고 다니는 트럭이 필수지만 새로 이사온 곳의 주민들은 그들의 외모만 보고 연쇄살인마를 연상한다. 하필이면 그 집에 숨겨진 영혼이 나오면서 ‘핸섬가이즈’는 호러장르를 표방하는 코믹영화로 탈바꿈한다.“시나리오에는 자세히 나와있지 않지만 아마도 상구는 사람들의 그런 시선을 피해서 그 곳에 온 걸 거예요. 사실은 세상 심약하고 배려심 많고 툭하면 눈물을 흘리는 캐릭터인데 ‘나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기 싫다’는 그 마음이 읽는 내내 가슴에 와 닿았거든요. 무엇보다 이런 장르와 영화가 작금의 한국영화 시장에서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게 가슴이 벅차 출연했습니다.”평화로운 전원생활을 꿈꾸던 두 남자가 귀신 들린 집으로 이사 오며 벌어지는 고자극 오싹 코미디를 표방하는 작품에 무리없이 녹아든 이희준. (사진제공=BH엔터테인먼트)첫 촬영은 뺑소니로 누군가 치고 간 검은 염소를 치우는 장면이었다. 피가 흐르는 동물 사체를 묻어주기에 앞서 다른 차들이 사고를 당하지 않게 빠르게 도로 밖으로 빼려는 그 찰나 하필이면 동네를 순찰하던 경찰의 눈에 띈다. 그들에게 피가 흐르는 봉투 속 물체는 누가 봐도 사람이다.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찡그린 상구의 미간 주름은 ‘넌 졸지에 목격자가 됐고 다음은 바로 너!’라는 살기가 튀어 나온다.“그 장면을 위해 일부러 팔근육을 단련했습니다. 운동을 열심히 했어요. 직업이 목수기도 하지만 그런 물체를 들 때 드러나는 근육이 되려 공포와 웃음을 도드라져 보이게 할 테니까요. 사실 꽁지머리를 기르고 현장에 나온 이성민 형을 보고 ‘지지 말아야지’했는데 할 수 있는 게 운동뿐이더군요.(웃음)”느와르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했으나 그 마저도 ‘빵’터지는 포스터.(사진제공=NEW)그와 호흡을 맞춘 이성민은 20대 초반부터 이희준의 성장을 지켜본 장본인이기도 하다. 집안의 반대를 무릎쓰고 상경해 당시 난다긴다 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있다는 대학로 연극 무대에서 본 이성민은 흡사 신이었다. 동시에 그를 가르친 스승이었으며 자신을 지금까지 있게 한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고향이 같은 대구라 거기부터 시작했습니다다. 언젠가 동네에서 한번 봤을 착하고 어눌한 친구들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죠. 어릴 때부터 존경하던 선배와 연극도 하고 이제는 함께 영화 작업하는 게 뭉클해요. 고맙고 감사한 작업이었죠.”영화 ‘핸섬가이즈’에서 상구 역할을 맡은 배우 이희준.사실 그간 이희준에게 코미디는 ‘먼 곳에 있는 장르’였다. 공연에서는 익숙했지만 영화와는 도통 인연이 없었다. “제안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핸섬가이즈’를 찍고 나서 어떻게 봐주실지 긴장된다. 관객들이 제 부항자국을 보고 많이 웃어서 좋더라. 원래 설정에는 없던, 내 아이디어”라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털어놨다. 전작에서 냉정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마 노인과 숨겨진 욕망을 지닌 정치인, 엇나간 부정의 의사 등 강렬하면서도 ‘이희준이 아니면 대체할 배우가 없다’는 소감이 올라오는 작품을 한 데 대해서는 최근 찾아본 인상적인 댓글을 읽었던 순간을 들려주기도 했다.“사실 ‘은퇴를 준비 중인 거 아니냐’는 말에 웃음이 나왔어요. 실감나는 열연에 대한 칭찬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사실 이제 저의 놀이터이자 일상이라 당연한 건데 아직 나올 게 더 많으니 당분간 지금 하고 있는 연극에만 올인하려고 합니다.”배급사 NEW에 따르면 ‘핸섬가이즈’는 북미를 비롯해 호주,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대만,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베트남, 일본, 홍콩, 마카오, 인도, 몽골, 싱가포르, 필리핀, 태국에 선판매되며 ‘K호러코미디’의 시작을 알렸다. (사진제공=BH엔터테인먼트)그가 무대에서 펼치는 연극 ‘그때도 오늘’ ‘꽃, 별이 지나’ 등은 진선규, 김지현, 정연 등이 속한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20주년 기념 공연이다. 20대의 풋풋함을 지나 40대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마주한 감동과 기쁨은 그의 연기인생에서 가장 큰 윤활유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핸섬가이즈’는 연극처럼 리허설을 많이한 작품이에요. 실제로 부산의 한 숲속에 산장을 짓고 촬영했는데 몰입이 잘되기도 했지만 현장에서 아이디어가 많이 나와서 배우들끼리 즐거운 작업이었습니다다. 관객들이 많이 웃어주는 건 다 그 덕분이죠.”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7-01 18:30 이희승 기자

[비바100] 애플 TV '팜 로얄: 신분 상승의 사다리', 부자가 되기 위해 감수해야할 희생?

무슨 자신감인지 자신이 이곳의 여왕이 될 거라 강조하는 맥신. 허풍임을 알아채고 클럽에서 내쫓기는 ‘팜 로얄: 신분 상승의 사다리’의 한 장면. (사진제공=애플TV)딱 봐도 근성있다. 미국인 치고는 작은 체구지만 늘씬하고 게다가 금발이라 미인대회에서 가뿐히 1등 트로피를 품에 안은 여자. 대회 출신들이 당연하게도 부자와 결혼하지만 평범한 직장인(?) 파일럿 남편을 사랑해 속도위반을 감수하며 반대를 무릅쓰고 가정을 이뤘다. 그런 맥신(크리스틴 위그)은 타고난 사랑스러움으로 늘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인물이다. 하지만 일에 치여 바쁜 남편을 기다리는 것도 지쳤다. 최대한 빨리 집안의 유산을 상속받아 미국 최상류층만 모인다는 팜비치 최고 사교클럽인 팜로얄의 회원이 되는 것만이 자신의 길이라 여긴다.로라 던이 연기한 린다는 사회운동가다. 개명을 하고 자신의 과거를 묻고 싶어하지만 시즌 말미 아버지의 죽음으로 다시금 상류층에 복귀한다. (사진제공=애플TV)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남편은 그곳에 가는 걸 꺼려하며 “집안과 인연을 끊은 지 오래됐고 유일하게 고모만이 살아있다”는 말로 거리를 둔다. 하지만 맥신은 더 나이들기 전에 그 곳에서 여생을 마무리하고 싶다. 결혼과 동시에 유산한 상처를 딛고 부유한 시댁을 등지고 사는 세월이 고루했던 모양이다. 올 3월 방영을 시작해 최근 10개의 에피소드로 성공적인 시즌1을 마무리한 ‘팜 로얄: 신분 상승의 사다리’는 줄리엣 맥대니얼의 소설 ‘미스터미세스 아메리칸 파이’(Mr. Mrs. American Pie)를 원작으로 한다. 부자가 되기 위해 당신은 어떤 희생을 감수 할 것인가? 이 작품의 시작이 된 질문이다.배우들의 화려한 패션만큼이나 시대적 고증에 충실해 보는 맛을 더한 ‘팜 로얄: 신분 상승의 사다리’의 공식 포스터. (사진제공=애플TV)인간이 달에 막 첫발을 딛음과 동시에 베트남 전쟁으로 골치를 앓고 있던 1969년 미국의 플로리다는 한없이 풍요롭다. 돈만 많아서도 안된다. 그렇다고 집안이 좋은 것만으로도 안된다. 졸부는 여기서 최하위층에 속하는 동네다. 돈자랑을 하면 그와 동시에 영원한 따돌림을 겪다 이사를 해야하는 팜비치의 서열은 노마(캐롤 버넷)가 정한다.그곳에서 맥신은 타고난 적응력을 발휘한다. 가진 돈을 털어 네일샵에 가고 부자들이 식물상태로 누워있는 요양원에 들어가 그들이 숨긴 패물을 전당포에 맡기며 생활비를 번다. 누가 봐도 도둑에 가깝지만 그가 가진 특유의 발랄함과 사랑스러움에 다들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함정. 그렇게 팜비치 클럽에 들어가지만 정식 회원이 되려면 기존 회원 3명의 허가와 어마어마한 회원가입비가 요구된다. 에피소드 3까지는 맥신이 미국에서 가장 배타적이면서 세련된 팜비치 상류 사회의 무시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모습에 집중한다.하지만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는 의외의 반전으로 스릴러와 코믹을 오간다. 겉과 속이 다른 팜비치 역시 배신과 비밀이 난무하는 것. 팜로얄은 지상 낙원이지만 그곳의 여성들은 모두 여왕자리를 두고 온갖 계략과 험담 그리고 일종의 담합으로 전쟁 중이다.극 중 진정한 부자들은 보석과 패션으로 중무장한 맥신의 불안함과 결핍을 단번에 알아채고 곁을 주지 않는다. (사진제공=애플TV)매년 비치 볼 파티를 성대하게 열어 여왕의 자리를 유지하던 노마의 유일한 조카며느리인 맥신의 등장은 그들에게 기회이자 또다른 갈등의 시작이다. 평소 노마의 오른팔로 군림했던 친구들은 사실 모두 각자의 비밀로 평화를 유지해 왔다. ‘팜 로얄: 신분 상승의 사다리’는 바로 그 인물들에게 때론 친구처럼, 혹은 딸처럼 다가가던 맥신의 변화에 집중한다.전세계 시청자들은 주인공의 철부지 캔디같은 순수함을 응원하다가도 사실 누구보다 속물적인 그 이중성에 빠져든다. 코마 상태의 노마가 죽으면 전재산이 고양이 센터에 기부된다는 걸 알게 된 부부는 결국 대저택에 고모를 모셔 어떻게든 길게 생명을 유지하려 애쓴다. 그 상태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모든 고민을 나눴던 네일샵 직원 밋지(카이아 거버)가 모델 데뷔를 목전에 두고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 막장은 시작된다.늘 전화로 연락하던 애틋한 두 사람. 직업이 있는게 신기했던 남편이 결국 집안도 버린 개망나니 바람둥이 였다는 사실을 깨닫지만 그럼에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맥신의 모습이 아이러니하다. (사진제공=애플TV)예상했겠지만 늘 근면했던 파일럿 남편이 은퇴 후 고향에서 ‘개 버릇 남 못 준다’는 한국 속담에 걸맞게 왕년의 바람기를 숨기지 않았던 것이다. 정회원이 되도록 추천해준 사회운동가 린다(로라 던)가 사실은 남편의 전 약혼녀이자 엄청난 재벌의 딸이라는 반전이 묻혀질 정도. 시기상으로는 자신과 바람 피우는 중에 린다에게 파혼을 당한 거였다. ‘팜 로얄: 신분 상승의 사다리’는 그렇다고 머리를 쥐어 뜯고 우는 진부한 전개는 따르지 않는다.이들은 그런 비밀이 드러나기 까지 우정으로 충만했던 사이였기에 서로가 자신을 이용했다는 것을 쿨하게 인정하고 오해를 푼다. 극 중 남성들의 모습은 한없이 찌질하고 여자에 환장하지만 여성들은 그야말로 쿨하다. 그렇다고 마냥 우아하지만도 않아서 되려 재미를 선사한다.노마의 부재로 사실상 사교계를 접수한 에벌린 역할은 ‘미국 영화계의 대모’ 앨리슨 재니가 맡았다. (사진제공=애플TV)우아함의 극치였던 이들의 비밀은 하나같이 치졸하다. 연하에 유색인종인 테니스 코치와 바람을 피우다 “다 버리고 몸만 오라”는 진심어린 사랑고백에도 남편이 주는 부의 단맛을 끊어내지 못했던 맥신의 베프는 결국 또다른 돈많은 90대 할아버지와 재혼하면서까지 사랑과 돈을 모두 손에 쥐려고 한다. 알고 보니 그 테니스코치는 베프의 앙숙이자 나이가 훨씬 많은 린다의 양어머니인 에벌린과도 양다리 연애 중이었다. 되려 양어머니는 죽어가는 남편의 사망을 기다리며 육체는 즐겨도 결코 가정을 깨지 않겠다는 숭고한 약속을 지키고 있지만 결국 본처 딸에게 모든 재산이 상속되는 불운을 겪게된다.아마도 시즌 2에서 진정한 존재감을 발휘할 거라 예상하는 카이아 거버. 모델 엄마와 갑부인 랜디 거버의 딸로 할리우드의 신성으로 활동 중이다. (사진제공=애플TV)극 중 리키 마틴이 연기하는, 한국전쟁 참전 용사인 로버트의 활약은 기대 이상이다. 그가 1990년대 라틴팝으로 세계를 휘어잡고 일찌감치 커밍아웃해 동성 연인과 가정을 꾸린 사실을 미리 알고 보지 않더라도 배우로서 보여주는 성장은 반갑다. 로버트 캐릭터 자체가 남성과 여성 그 중간의 위치에서 한없이 외롭지만 또 양쪽 모두에게 늘 필요한 설정이란 점이 할리우드의 변화를 만끽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밋지 역할의 배우는 세계적인 모델 클라우디아 쉬퍼의 유전자를 한몸에 받아 연기로 꽃피운다. 이래저래 모르고봐도 알고봐도 철철 재미가 넘치는 작품이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7-01 18:00 이희승 기자

[비바100] '은둔형 인싸' 미국은 왜 한일 화해에 목매나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요즘 미국이 많이 흔들린다. 부동의 ‘원 탑’ 국가에서 중국과 러시아, 심지어는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에 흔들리는 모양새다. 이 책은 기자인 저자가 현실의 미국을 이해하기 위한 18가지 질문을 토대로, 미국의 실상을 파헤친 책이다. 저자는 “미국은 알면 알수록 신기한, 이상한 정상국가”라고 표현한다. 고립주의와 관여주의를 오가는 냉탕·온탕 외교 속에서도 강대국 패권을 늘 움켜쥐고 있는 미국의 숨겨진 힘과 치부를 들여다 보자.미국은 왜|이성대|부키◇ ‘정치적 관용’과 ‘표현의 자유’의 전통한국은 정치가 너무 첨예하고 날카롭기에 드라마 등에서 직접적인 묘사가 어렵다. 정당 이름조차 실명을 쓰지 못하니 서사의 현실성도 한참 뒤떨어진다. 하지만 미국은 현실 정치 드라마의 천국이다. 정당 이름은 물론 대놓고 비판하기 일쑤다. 워싱턴의 야구장에서는 역대 대통령의 가면을 씌워 달리기 이벤트까지 열린다. 1등은 늘 초대 대통령 워싱턴이다.워싱턴이 지금까지 추앙을 받는 것은 권력의 정점에서 스스로 물러난 덕분이다. 대통령제라는 최신 제도를 도입하고도 장기독재를 우려해 ‘4년씩 두 번, 최대 8년’이라는 대통령 임기의 전통을 만들어 냄으로써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졌다. 덕분에 미국에서는 민주당 혹은 공화당 지지자들이 상대의 정치 성향을 인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정치적 관용과 표현의 자유 전통이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미국의 특이한 선거 제도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투표에서 이기고도 정작 개표에서 지는 일이 흔하다. 일반 유권자가 뽑은 선거인단이 따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간선제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제 국가 중 유일하게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지 않는다. 개별 주에선 주지사부터 대법관, 검사장까지 모두 직접 뽑는 것과 대조적이다. 가장 민주적인 국가인 동시에 가장 비효율적·비민주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건국 초기엔 기술적 문제 탓도 있었지만, 지금은 제도를 바꿀 의지가 거의 없다. 간선제와 승자독식제가 결합된 복잡한 구조에서, 자칫 인구가 적은 주의 주권이 불이익을 당해선 안된다는 정신이 더 강하다. 때문에 대선 기간 중 50개 주 전체를 도는 게 아니라, 자당의 텃밭인 몇 주만 집중 공략하는 게 흔하다. 다만, 우편 투표에 관한 찬반 논란은 여전하다. ◇ 10달러 지폐 주인공이 ‘해밀턴’인 이유뮤지컬 ‘해밀턴’ 공연장면. (사진출처=해밀턴 홈페이지)미국에는 1달러부터 100달러까지 일곱 종류의 지폐가 있는데, 대통령이 아닌 사람이 딱 두 명 인쇄돼 있다. 100달러의 벤저민 프랭클린과 10달러의 알렉산더 해밀턴이다. 프랭클린은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사상가·정치인이자 피뢰침을 발명한 과학자로 ‘최초의 미국인’이라 추앙하는 인물이다. 해밀턴은 3대 대통령 제퍼슨의 재무장관일 뿐이지만, 미국 경제력을 키운 8할의 공로자라는 평가를 받는다.해밀턴은 농업국가가 될 뻔 했던 미국을 자본주의 나라로 돌린 장본인이다. 관세를 도입해 재정을 튼실하게 했고, 필라델피아에 중앙은행을 설립했으며, 달러 화폐 도입을 이끌어냈다. 이후 미국은 엄청난 압축성장 속에 ‘자급자족의 나라’가 되었다. 2015년 한 때 흑인 인권 운동가를 10달러 지폐에 넣는 계획이 추진되었지만, 뮤지컬 등에서 엄청난 그의 공적이 재 조명되면서 백지화되기도 했다.◇ ‘앤드루 잭슨’이 되고픈 트럼프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9일(현지시간)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선셋 파크에서 유세하고 있다.(EPA=연합)오바마가 만든 ‘부자 대 노동자’의 계급 구도를 트럼프는 ‘이민자 대 노동자’로 바꿔 집권에 성공했다. 트럼프는 엘리트 정치를 끝내고 서민 민주주의 시대를 연 인물로 평가받는 제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과 자신을 자주 비교한다. 잭슨은 좋은 집안과 귀족 계급, 학벌 등을 깨뜨린 새로운 전형의 정치인으로, 기득권 정치에 도전했던 최초의 포퓰리스트로 평가받는 인물이다.그는 고집스럽고 거침없는 언사로 ‘올드 히코리(불의를 못 참거나 굽힐 줄 모르는 사람)’라는 별명을 얻었다. 8년 내내 인기절정이었고, 20달러 지폐의 주인공까지 꿰찼다. 트럼프가 백악관 집무실에 그의 초상화를 건 이유다. 잭슨의 ‘인디언 추방법’처럼, 트럼프는 멕시칸의 이주를 막았다. 트럼프는 소수 극렬 지지층에 의존한 독특한 정치로 대통령이 됐고 이제 재선을 노리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배신할 줄 몰랐다?한 때 미국은 ‘차이메리카’라는 장밋빛 신세계를 꿈꾸었다. 중국을 포용해 자유주의 질서 안으로 편입시키려는 ‘팍스 아메리카나’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중국이 동화될 것이란 근거 없는 자신감에 미국이 부풀어 있을 때, 중국은 가열차게 미국을 따라잡는 ‘중국몽’을 꾸고 있었다. 중국 견제를 게을리 하고, 천안문 사태까지 눈 감아 준 결과가 지금의 ‘막강 중국’이고, 중국의 ‘도광양회’ 결과였다.저자는 “미국이 직면한 (중국에 대한) 모욕감은 자업자득”이라고 말한다. 오마바 정부 때 뒤늦게 아시아로의 유턴을 선언했지만 너무 늦었다. 중국에 요란하게 선전포고만 했지, 정작 실질적인 압박 조치도 없었다. 중국의 빗장을 열었던 닉슨 전 대통령이 말년에 “우리가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고 했고, 트럼프 때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결국 “우리가 중국이라는 크랑켄슈타인을 낳았다”고 개탄했다.◇ 툭하면 ‘고립’ 유혹에 빠지는 미국2차 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 외교는 ‘은둔형’에 가까왔다.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불가근 불가원’을 강조한 탓도 있지만, 1941년 진주만 습격 전까지 미국은 가능한 외부 개입을 삼갔다. 이후론 ‘고립’과 ‘관여’를 반복했다. 더 이상 세계가 안전하지 않다 싶을 때만 나섰다. 미국이 ‘반장’ 역할을 주저하는 사이에 세계는 힘의 진공 상태를 맞았다. 독일의 파시즘과 일본의 군국주의가 그렇게 탄생했다.고립주의의 한계를 깨달은 미국은 이후 적극적인 관여정책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언젠가 위험이 될 리스크를 미리 제거하는 데 주력했다. 저자는 “미국이 1차 대전 직후 고립주의를 포기했다면 2차 대전도 일어나지 않았고, 러시아가 아직 소련이 되기 전 미국이 관여 기조로 돌았다면 냉전은 탄생하지 않았을 지 모른다”고 말한다.◇ 중동에서 갈팡질팡한 미국의 결과중동의 앙숙,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가 2023년 3월 10일 중국의 중재로 관계 정상화에 전격 합의했다. (사진=연합)2023년 3월 10일, 이슬람 패권을 놓고 꾸준히 대립해 온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의 맹주 이란이 중국의 중재로 베이징에서 관계 정상화에 깜짝 합의했다. 이처럼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는 게 현실의 중동이다. 이 곳에서 ‘큰 형님’ 역할을 하던 미국이 떠나면서 생긴 일이다. 1979년 동맹이던 이란이 이슬람 혁명으로 하루아침에 반미 국가로 돌변한 게 그 시작이었다.미국은 이란 견제를 위해 후세인의 이라크를 지원했고 이후 걸프전, 9·11 테러, 아프가니스탄 전쟁, IS의 출현까지 복잡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전통의 친미국가 사우디도 홀로 서기로 미국과 멀어지고 있다. 심지어 중국과 석유대금을 위안화로 결제하기로 합의해 미국을 애태우고 있다. 위기감을 느낀 미국은 결국 중동으로 다시 러브 콜을 보내고 있지만 한번 틀어진 관계를 정성화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 때문에 파국 위기 ‘나토(NATO)’지난해 4월 베이징에서 회동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악수하고 있는 모습.(연합)나토는 북대서양조약기구라는 이름 때문에 지역적 한계가 분명했다. 그런데 미-소 냉전이 끝나자 러시아가 있는 동쪽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나토의 동진을 러시아 푸틴은 자신에 대한 직접적인 안보 위협이자 새로운 포위 전략으로 간주했다.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동유럽에서 영구적으로 영향력을 박탈하려는 시도로 해석한 것이다.나토는 내심 ‘북대서양’ 대신 ‘북태평양’을 꿈꾸었다. 2022년 6월 스페인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는 그 신호탄이었다. 중국을 러시아와 함께 분명한 도전세력으로 규정했다. 중국도 그런 기운을 간파하고 과거의 적, 러시아와 손을 잡았다. 여기에 미국은 계속 나토에 분담금 증액을 압박하고 있다. 저자는 “나토의 꿈은 러시아나 중국이 아니라 정작 미국 때문에 금이 갈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미국이 ‘한미일 매직’에 꽂힌 이유한미일 3가 공조의 주역들. 윤석열 한국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연합)미국은 중국을 저지할 마지노선 남중국해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한미일 3국 중심의 블록화는 필수다. 과거에는 한일, 한미 관계로 족했지만 이제는 역내 동맹국들의 군사력 통합이 절실하다. 그 솔루션이 ‘격자형’ 안보 틀이다. 일부 거점 동맹국 중심에서 탈피해 ‘쿼드’와 미국-영국-호주 안보동맹 ‘오커스’, 그리고 한·미·일, 미·일·필리핀 3국 회의 등 소그룹별로 중국을 더 촘촘히 견제하는 방식이다.하지만 저자는 한미일 3각 구도로 재편될 경우 미국과 일본의 이익은 분명한 반면 한국의 이익은 불분명하다고 지적한다. 기존의 한미동맹체제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3국 안보협력의 실익은 약한 반면 자칫 우리 의사와 무관하게 미중 갈등에 휘말려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반도에서 한미일은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과거사 문제에 우리 편을 들지 않는 이유지난해 7월 미국 글렌데일에서 열린 소녀상 건립 10주년 기념식. 글렌데일은 해외에서 일본군 위안부 역사를 상징하는 소녀상이 건립된 첫 도시이다.(연합)미국은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일 과거사 문제를 인권문제이자 미국식 자유주의 가치로 접근하면서 우리 입장을 지지했다. 일본과는 거리를 두려는 경향이 뚜렷했다. 그런데 2015년을 전후로 변하기 시작했다. 한일 과거 갈등을 제대로 해결하기 보다는 빠르게 해결하는 데 더 집중했다. 누구 잘못을 따지기 보다 서둘러 화해시키는 데 주력했다. 오바마-바이든 정권에서 한일 문제는 이제 안보 이슈의 하위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다. 중국 견제라는 큰 목표에 몰두한 나머지 이제는 한일을 어떻게든 빨리 화해시켜 아시아 안보의 틀을 서둘러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다. 미국이 오락가락 하는 사이에 가장 손해를 본 것은 바로 일본 옆에 있는 한국이다.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2024-06-29 07:00 조진래 기자

[B그라운드] ‘알바트로스’ 라티파 에샤크 “풍경을 통해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업”

개인전 ‘알바트로스’를 개최한 라티파 에샤크(사진=허미선 기자)“오래된 버지니아 참나무들은 자랄수록 가지가 땅바닥을 향하지만 또 다시 땅바닥을 타고 자라나죠. 벽에 걸린 가로 8미터, 세로 3미터의 작품을 그릴 때 (버지니아 참나무의) 나뭇가지가 땅바닥으로 쳐지는 것처럼 아래쪽으로 오게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 자신이 마치 나무가 되는 느낌을 받기도 했죠. 결국 외부 풍경에서 소재를 얻었지만 결국 제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업이 된 것 같습니다.”라티파 에샤크(Latifa Echakhch)는 전시명과 동명의 신작 ‘알바트로스’(Les Albatros, 6월 28~8월 17일 페이스갤러리 1층)에 대해 “풍경에서 출발했지만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업”이라고 표현했다.라티파 에샤크 개인전 ‘알바트로스’ 전경(사진=허미선 기자)라피타 에샤크는 모로코 출신으로 스위스 브베를 기반으로 활동 중이다. 2007년 그레노블의 르 마가잔에서 첫 개인전을 연 후 취리히의 쿤스트하우스, 파리 퐁피두센터, 몬테카를로의 신국립미술관, 로마 메모재단, 헨트의 키오스크, 리옹의 맥리옹, 로스앤젤레스의 해머 미술관, 프랑크푸르트 포르티쿠스, 런던 테이트 모던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지난해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해 이스탄불·베니스·샤르자·예루살렘 포커스 비엔날레, 볼차노의 마니 페스타7 등에 참여하며 주목받는 작가다. 그의 신작 ‘알바트로스’ 5점은 버지니아 참나무의 나뭇가지처럼 직물형태로 아래로 늘어뜨려 전시된다. 검은 벽면에 자연 풍경을 그린 캔버스의 정면이 아닌 불규칙하게 덧칠해진 검은 뒷면이 더 많이 보이는 방식으로 걸려 있다.개인전 ‘알바트로스’를 개최한 라티파 에샤크(사진=허미선 기자)“이 나무를 그릴 때 샤를 보들레르(Charles Pierre Baudelaire)의 ‘알바트로스’라는 시를 참조했어요. 높은 하늘에 떠 있을 때는 무척 아름답고 거대하지만 땅으로 내려오면 날개가 너무 길어 제대로 걸을 수 없어 이상하게 보이는 새에 대한 시죠. 이 오래된 버지니아 참나무가 마치 알바트로스와, 그리고 저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는 “저는 여러 감각들에 너무 민감하고 예민한 사람이기 때문”이라며 “그러다 보니 모든 것들이 너무 과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가끔은 너무 감정적으로 비쳐지곤 한다”고 털어놓았다.“이 그림들은 평소와 같은 방식으로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작품들을 완성했을 때 검은색 벽면에 늘어뜨리는 방식으로 걸기로 했죠. 제가 그린 전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 작품들의 일부인, 제가 느끼는 감정들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그렇게 “전부를 제공하고 있지 않는 방식으로 작품을 전시함으로서 제가 느꼈던 점을 함께 느끼시기를, 더불어 이 뒤편에 무엇이 있을지 스스로를 투사해 보시기를 바랐다”고 전했다.“풍경회화 작품을 뒷면을 위주로, 검은색 벽면에 걸어놓음으로서 단순한 풍경화가 아닌 극장의 막처럼 보이는 효과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아름답고 거대한 나무를 보여주고 싶은 동시에 지금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찾기란 쉽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싶었죠.”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6-29 00:09 허미선 기자

[B그라운드] 겐지로 오카자키 “목표 보다는 과정, 다양한 감각으로 ‘우리’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들”

한국 첫 개인전 ‘Form at Now and Later 形而の而今而後’를 연 겐지로 오카자키(사진=허미선 기자)“미운오리새끼가 철새인 백조가 날아온 걸 보고 자기도 백조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또 다른 스토리가 발생되잖아요. 제 작품도 그런 연관성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서유기’에서는 삼장법사가 불전을 찾아 여행을 떠나죠. 하지만 사람들은 그 불전이 아니라 그들의 여정에 더 흥미를 가지고 재밌어 하잖아요.”한국에서는 처음 개인전 ‘프롬 앳 나우 앤 레이터’(Form at Now and Later 形而の而今而後, 6월 28~8월 17일 페이스갤러리 2, 3층)을 여는 겐지로 오카자키(Kenjiro Okazaki)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목표가 있지만 그 목표로 가는 과정에 집중하는 작업”이라고 털어놓았다.겐지로 오카자키의 한국 첫 개인전 ‘Form at Now and Later 形而の而今而後’ 전경(사진=허미선 기자)“상상을 바탕으로 작업을 하는 과정은 컴퓨터의 아이콘, 썸네일과도 같아요. 아이콘이나 썸네일을 클릭하면 여러 가지 정보가 나오잖아요. 그 정보를 어떻게, 얼만큼 압축할 것인가의 선택이죠. 그렇게 작지만 큰 그림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진 그림을 그리고 싶었습니다.”겐지로 오카자키는 건축, 문학이론, 조경, 로봇공학, 회화, 조각, 퍼포먼스 등 다양한 학문과 매체를 아우르며 추상적 언어를 바탕으로 시간, 공간, 인지를 탐구하는 예술가이자 비평가다.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2년 전 “행운스럽게도(?) 뇌경색에 걸려 오른 팔다리를 아예 못쓰게 되면서 ‘이대로 누워서 생활하게 되겠구나’ 싶은 상태”에서 그는 “논어를 생각하게 됐다.”겐지로 오카자키의 한국 첫 개인전 ‘Form at Now and Later 形而の而今而後’ 전경(사진=허미선 기자)“뇌의 일부가 죽어서 잃겠구나 생각했는데 뇌에도 조형성이라는 것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걸 다시 조형하면 다시 쓸 수 있게 된다는 걸 발견했죠.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고 편히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로 신기하게도 힘들고 어렵게 생각했던 일들도, 슬럼프라고 생각했던 것들마저 정말 쉽게 해결할 수 있게 됐죠. 너무도 쉽게 작품활동을 할 수 있게 됐어요. 속도도 지금까지보다 15배나 빨라졌죠.”그렇게 다시 뇌를 조형하고 이전보다 빠르고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과정을 그는 “조형예술과 같은 것”이라 정의했다. 그리곤 “시간과 공간이 존재함으로서 걱정이 생겨나지만 작품활동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재배치하면서 만들어진 작품들을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다”고 밝혔다.이번 전시에서는 여러 화폭에 담긴 회화들이 붓칠로, 거울 이미지 관계를 통해 연결된 회화작품들 16점과 릴리프 작업 ‘3:15’, 뒤틀리고 겹쳐진 형태의 합성 대리석 조각들 등 20여점을 만날 수 있다. 하나처럼 보이지만 각자가 겐지로 오카자키의 표현처럼 “하나하나 전혀 다른 스토리들을 가진 작품들이다.”“4개의 패널로 구성된 그림이라면 글도, 주제도 4개로 나누어져 있어요. 글의 길이도 패널의 넓이와 비례하죠. 문장의 의미 보다는 수학적 사고로 어떻게 배치할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 그림들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공간과 시간이 생겨나죠.”겐지로 오카자키의 한국 첫 개인전 ‘Form at Now and Later 形而の而今而後’ 전경(사진=허미선 기자)이어 “서양의 프레스코화를 생각하면 된다. 그때그때 한 구역을 정해 작업을 하는데 저마다가 하나의 섬”이라며 “시간이 흘러 굳어가면서 채색을 할 때와는 또 다른 색깔을 만들어 낸다”고 부연했다.“그렇게 시간의 차이가 생겨나고 공간이 만들어지죠. 한 아이가 수학시간이 너무 재미 없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리다 보니 그것과 수학문제의 연관성이 생겨나는 식이에요. 그렇게 연관성을 찾기 시작하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죠. 그렇게 만들어지는 이야기들은 네버엔딩이에요. 다른 시기에 작업했지만 같은 시기에 그린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결국 시간과 공간은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그렇게 이야기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그의 표현처럼 ‘네버엔딩’이 된다. 캔버스별로 다른 이야기들을 그는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수학적 공식”으로 구성한다. 그렇게 3, 4개를 조합한 그림들은 “운반 중 불운한 사고로 (파손되거나 분실되는) 상태가 되지 않은 한 변형되지 않은 완성작”이다. 겐지로 오카자키의 한국 첫 개인전 ‘Form at Now and Later 形而の而今而後’ 전경(사진=허미선 기자)“물론 아틀리에서는 정해두지 않고 여러 형태로 작업합니다. 하지만 조합을 통해 하나의 작품으로 내놓은 후에는 ‘이 작품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시그니처가 각인된 완성체입니다.”그는 자신의 작품을 “수학적으로 보이지만 지극히 심리적인 작업”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삼각형은 보통 누가 그렸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 삼각형을 가지고 작업을 해봤는데 실제로는 스피드나 누르는 힘, 압력 등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누가 그렸는지 사실은 알 수가 있다”고 예를 들었다. “신기하게도 동양 여학생들이 누가 그렸는지 알아차리는 능력이 뛰어나요. 트레이닝이 잘돼 있다고 할까요. 남자 분들 중에도 알아차리신 분들이 있는데 정신과 의사들이었어요. 그래서 수학적인 게 아니라 심리적인 작업이죠. 우리는 정말 다양한 필터를 가지고 있어요. ‘오감’이라고 표현하지만 더 많은 감각을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는, 시간과 공간은 우리 마음대로 만들어내는 거죠.”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6-28 23:15 허미선 기자

[B그라운드] 이슬기 작가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구멍들", 저마다의 ‘삼삼’을 찾아서

개인전 ‘삼삼’에서 ‘현판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 중인 이슬기 작가(사진=허미선 기자)“홍송 통나무를 잘라 만든 현판 위 글씨들을 보고 있으면 무늬들이 겹쳐 보이고 나뭇결이 달라져서 재밌는 것 같아요. 계속 보고 있으면 나뭇결이 움직이는 것도 같거든요. 그래서 되게 마음이 편해지죠.”개인전 ‘삼삼’(8월 4일까지 갤러리현대 신관) 기자간담회에서 이슬기 작가는 새로 선보이는 ‘현판 프로젝트’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현판 프로젝트는 홍송에 ‘부시시’ ‘스르륵’ ‘덕’ ‘쉬’ ‘쿵쿵’ 등의 글자를 하얀 단청으로 써 넣은 연작이다.이슬기 작가 개인전 ‘삼삼’ 전경(사진=허미선 기자)덕수궁 대한문 현판에서 영감 받아 태초의 단어가 무엇일지를 탐구하는 현판 프로젝트 작업을 하면서 이 작가는 “나이테가 넓을수록 나무가 좋은 환경에서 편안하게 자랐다는 걸 알게 됐다”며 “너무 추운 환경에서 자란 나무들은 나이테가 줄어든다”고 부연했다. “이 문살 같은 작품(‘홍송’)은 정면에서 보면 격자지만 조금이라도 시선을 움직이면 들쭉날쭉한 게 보여요. 앞에서 보면 정사각형이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 빛이 들고 그림자가 지면 또 달라지죠. 지금까지 남아 있지는 않지만 12세기 고려가요 가락을 ‘1 3 3 3 2 2 4 4’라고 상상했어요. 아래, 좌우로 문살이 겹치며 상상한 그 가락이 되거든요. 노래 안에 노래가 숨어 있는 콘셉트죠.”이슬기 작가 개인전 ‘삼삼’ 전경(사진=허미선 기자)시선에 따라 다른 풍경, 저마다의 해석과 이해를 만들어내는 이슬기 작가의 작품세계는 ‘라쇼몽 효과’(羅生門)에서 기인한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50년작 ‘라쇼몽’에서 기인한 것으로 같은 사건, 현상을 두고도 저마다의 입장, 경험, 이해관계 등 주관성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인식되며 사물, 사건 등의 본질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꿰뚫는다. 3개 층으로 구성된 전시장 벽면을 관통하는 ‘모시 단청’ 역시 그렇다. 단청장인과 협업해 전통 기법 중 하나인 ‘긋기 단청’으로 표현한 ‘모시 단청’은 단순한 그리드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작가에 따르면 “가까이서 보면 그 굵기와 긋기가 달라 누구 작품인지를 알아차릴 정도”다.이슬기 작가 개인전 ‘삼삼’ 전경(사진=허미선 기자)선사시대, 신석기시대 유물에서 발견한 여성 생식기 표현에서 영감받은 ‘쿤다리’ 연작도, 프랑스 플랑드르 지방에 여전히 남아 있는 나무 놀이기구로 미국의 핀볼게임, 일본의 ‘빠찡코’가 된 ‘바카텔’도 보기에 따라 다른 것들로 인식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현판 프로젝트와 ‘홍송’ ‘모시단청’ ‘쿤다리’ ‘바카텔’을 비롯해 누비 장인과 협업한 ‘이불 프로젝트: U’, 대규모 설치작을 재편성한 ‘느린 물’ 그리고 ‘K(계란코)’, 한강 물을 유리 볼에 직접 담은 ‘한 1, 2, 3’ 등 30여점을 만날 수 있다.이슬기 작가는 이번 전시에 대해 “구멍을 뚫어보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는 “결국 공간 얘기”라며 “문은 안팎을 연결하는 큰 구멍이고 단청을 벽에 그음으로서, 격자 문에도 구멍이 생긴다. 이는 그리드가 돼 누군가의 크고 작음 등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기도 하고 조명을 통한 그림자로 다른 풍경이 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이슬기 작가 개인전 ‘삼삼’ 전경(사진=허미선 기자)이 또한 라쇼몽 효과의 일환이다. 문은 안과 밖 그리고 지금 우리가 있는 곳, 세 공을 위한 존재다. 문을 넘어서는 행위는 밖으로 나가는 것이기도,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기도 하며 지금 서 있는 곳을 인지시키기도 한다. 그의 전시명이 ‘잊히지 않고 눈앞에 보이는 듯 또렷하다’ ‘음식 맛이 조금 싱거운 듯하면서 맛이 있다’ ‘나무가 빽빽이 우거져 무성하다’ ‘사물이나 사람의 생김새나 됨됨이가 마음이 끌리게 그럴듯하다’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는 형용사의 어근이자 ‘바둑판의 가로세로 각각 제3선이 만나는 네 귀의 점’을 일컫는 ‘삼삼’인 이유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개인전 ‘삼삼’에서 ‘K(계란코)에 대해 설명 중인 이슬기 작가(사진=허미선 기자)이슬기 작가 개인전 ‘삼삼’ 전경(사진=허미선 기자)이슬기 작가 개인전 ‘삼삼’ 전경(사진=허미선 기자)이슬기 작가 개인전 ‘삼삼’ 전경(사진=허미선 기자)이슬기 작가 개인전 ‘삼삼’ 전경(사진=허미선 기자)이슬기 작가 개인전 ‘삼삼’ 전경(사진=허미선 기자)이슬기 작가 개인전 ‘삼삼’ 전경(사진=허미선 기자)이슬기 작가 개인전 ‘삼삼’ 전경(사진=허미선 기자)이슬기 작가 개인전 ‘삼삼’ 전경(사진=허미선 기자)

2024-06-28 18:00 허미선 기자

[비바100] 팬心없이 봐도 재밌다… 팬이면? 더.할.나.위.없.고!

카라.(사진제공=RBW)엉덩이 춤으로 일본 열도를 사로잡았던 카라(KARA)의 팬덤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티빙, 왓챠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조폭인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이하 조폭고)의 한 장면. 주인공의 친구가 정답이 ‘소녀시대’인 그룹을 설명할 때 10대인 친구들은 “그런 그룹이 있었어?”라며 되묻는 걸 간과하면 안된다. 한 유튜브에서 아저씨와 오빠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원빈이 나오자 이나영과 결혼한 꽃미남 배우를 떠올리면 당신은 아재다. 하지만 그룹 라이즈를 떠올린다면 후자랄까.걸그룹 카라는 최근 버닝썬 수사의 숨겨진 조력자로 다시금 회자되는 故구하라가 소속된 ‘왕년의 언니들’이다. 데뷔할 때 10대 중반과 20대 초반의 푸릇함을 장착했던 이들은 30대 중반이 돼서야 처음으로 함께 해외여행을 떠났다. 웨이브 ‘나만 없어, 카라’는 치솟는 인기와 더불어 멤버 각자의 활동으로 해외를 밥먹듯이 오갔지만 ‘완전체’로는 단 한번도 함께 하지 않았던 카라 멤버들의 첫 해외 여행기다.멤버들의 승부욕을 고스란히 드러냈던 수영장 신. (사진제공=웨이브)올해 3월 공개된 이들의 여행기는 데뷔 15주년을 기념하면서 코타키나발루로 떠난 다섯 멤버들의 이야기다. 리더 박규리를 빼고는 여행을 가는지 모르고 한 식당에 모인 이들은 익숙한듯 자신들이 원하는 메뉴를 시킨다. 니콜이 하이볼을 시킨다면 막내뻘인 강지영과 허영지는 안주가 될 만한 걸 고르는 식이다. ‘걱정인형’인 한승연은 데뷔 후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에 모기와 각종 액티비티의 위험함을 강조한다. 다이어트를 의식해 새모이 만큼의 음식, 거기다 이슬만 먹고 카메라 앞에서 세상 예쁜 것만 보여줄 것 같은 걸그룹의 이미지를 기대했다면 오산이다.각자의 휴가를 즐기는 방법도 다양했다. 진솔한 속내와 울음터지는 진부한 모습 대신 완전체 해외여행의 사랑스러움을 강조한 ‘나만 없어, 카라’. (사진제공=웨이브)첫 만남부터 거칠 것 없는 알콜 욕구를 발산하던 이들에게 느껴지는 건 연예계 ‘짬밥’이 아닌 인간 본연의 모습이다. 일본에서 식지 않은 인기를 구가 중인 막내 강지영이 하루 늦게 도착하는 것만 빼고는 모든 게 완벽하다. 각자가 배정받은 방에 자신의 이름을 환영인사로 올려놓은 대나무 장식을 멤버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도 가감없이 담긴다.소중하게 셀카로 남기는 멤버가 있는가 하면 자신이 쉬기 편하게 치우는 사람도 있다. ‘나만 없어, 카라’의 편집은 그 과정이 어떻든 카메라 앞에 익숙하고 또 가감없는 성격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쿠지에서 내일을 위해 몸을 담그는 사람, 자신의 메이크업 지우기 과정을 공개하는 사람, 기꺼이 내일 일정을 위해 꿀잠에 드는 사람까지 제각각의 모습을 고스란히 공개한다.단체카톡방에 올리는 미션은 그저 단체 일정을 위한 모임 시간 뿐이다. 그 사이에 멤버들은 어색했던 사람과 아침을 먹거나 평소 로망이었던 새벽 등산에 나선다. 사실 카라는 데뷔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데뷔 당시 같은 소속사였던 핑클의 후광을 이어나갈 거라 예상했지만 의외로 무명의 세월이 길었다. 과거 한 예능에서 한승연이 공식 스케줄로 인해 출석부 서류를 낼 때 받았던 설움은 지금도 회자될 정도다. 가수인지 몰랐던 학교에서 여러 번 확인하며 무시를 받았던 것. 메가히트곡 ‘미스터’ 이후 치솟은 팬덤은 교내 캠퍼스를 걸어 다닐 수 없을 정도 였다고 전해진다. 춤과 흥 모든 것이 빠지지 않았던 카라의 모습.민낯과 파자마 모습도 공개해 몰입도를 높였다. (사진제공=웨이브)‘나만 없어, 카라’에서 의외의 멤버는 니콜이다. 인형같은 외모의 박규리가 활동 내내 여러 이유로 혼자 활동했음을 이해하고 사전에 “이번 기회에 친해졌으면 좋겠다”고 손을 내민다. 시리즈 초반 조식을 나눠먹기 위해 만났으나 뭔가 어색한 기류는 연출이 아니다. 10년 넘게 활동했지만 곁을 내주지 않던 언니에 대한 서운함 그리고 쉽게 다가가지 못한 자신에 대한 반성이 교차하는 부분이다.다른 멤버들에게도 기꺼이 손을 내민다. 교포 출신에 영어가 능숙하고 깍쟁이 같던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다. 다들 스노쿨링에 빠질 때 바나나보트를 타고 싶은 멤버를 챙기고 다들 잠든 새벽에 일어나 기꺼이 산에 함께 올라주는 배려가 돋보인다.시리즈 말미에 게임으로 인해 빈익빈 부익부로 나뉜 선물찬스는 이 프로그램의 백미다. 각자가 받은 봉투에는 한화로 약 2000원부터 30000원 사이의 금액이 들어있다. 이 돈을 마니또로 뽑은 상대방에게 선물해야 하는 찰나 각자의 MBTI가 돋보이는 선택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각양각색 멤버들 중 숨겨진 매력 발산은 오롯이 니콜의 몫이다. (사진제공=웨이브)무엇보다 왕성한 이들의 활동은 ‘나만 없어, 카라’를 보게 만드는 치트키다. 2세대 K팝 걸그룹을 대표하는 그들은 내달 신곡을 발매할 예정이다. 다섯 멤버는 지난 2022년 11월 데뷔 15주년을 기념하는 스페셜 앨범 ‘무브 어게인’(MOVE AGAIN)으로 7년6개월 만에 다시 뭉쳐 활동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이로서 카라는 2000년대, 2010년대, 2020년대 음악방송에서 모두 1위에 오른 최초의 걸그룹이 됐다. 친근함과 귀여운 이미지로 큰 인기를 끌었던 카라는 2013년 1월에는 한국 여성 가수 중 처음으로 도쿄돔에서 콘서트를 열었고 오는 8월 도쿄와 오사카에서 콘서트 ‘카라시아’(KARASIA)로 무대에 선다. 그 끈끈함을 담은 ‘나만 없어, 카라’의 하이라이트는 각자가 가져온 보물상자다. 여기에는 활동초기 한 팬에게 받은 500원짜리 앨범도 있다. 배고플 때 뭐든 시켜먹으라는 뜻으로 소중히 담긴 동전의 빈 자리는 이들이 얼마나 알차게 팬들의 마음을 만끽했는지 느껴지는 대목이다. 지금은 하늘의 별이 된 구하라의 존재는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각인된다. 여전히 아름답고 장난 잘 치는 모습으로 구하라를 멤버들은 펑펑 흘리는 흐느낌 대신 즐거웠던 순간으로 추억한다. 한 두 방울의 눈물이 더욱 진하게 가슴에 박히는 건 그래서다. 털털한 멤버들의 성격을 고스란히 담은 연출력이 돋보이는 ‘나만없어, 카라’의 한 장면. (사진제공=웨이브)동시에 ‘나만 없어, 카라’는 그 어떤 걸그룹도 하지 못했고 가려졌던 K팝의 위대함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멤버들은 여전히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만의 길을 간다. 생활이 궁핍하고 관심이 아쉬워 완전체로 컴백한 모양새가 아니다. 작금의 트와이스, 뉴진스가 도쿄돔을 장악하기에 앞서 카라의 팬덤이 있었음을 보는 내내 감사하게 만든다. 그들은 빛나고 여전히 아름답다. 그 어떤 것도 대체 할 수 없는 오롯한 사랑스러움으로.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6-26 18:30 이희승 기자

[비바100] 아이랑 보러 갔다가 어른이 더 울고 온다는 화제의 영화!

극중 빌런의 몫을 제대로 톡톡히 하면서 동시에 전세계 관객들에게 가장 큰 공감을 얻은 불안이의 모습. (사진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아버지의 이직으로 인해 이사를 해야 했던 라일리. 날씨도 친구도 집도 모두가 낯설다.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다섯 감정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에피소드는 2015년 국내 개봉당시 490만명의 마음을 훔쳤다. 엄청난 기억들이 저장된 머릿속 세계를 누비는 감정들이 9년 만에 ‘사춘기’ 버튼을 달고 돌아왔다. 지난 12일 개봉하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2’는 낯선 감정인 불안, 당황, 따분, 부럽이가 본부에 등장하면서 시작한다.기본 자아인 “난 좋은 사람이야”를 구축한 라일리의 감정 본부는 기쁨이의 리드 아래 여전히 바쁘지만 평화롭다. 나쁜 기억들은 저 멀리 날려버리고 긍정과 도전, 영원한 우정을 만끽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 사실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감정들이 마냥 반가운 건 아니지만 늘 그렇듯 행복한 일상이 이어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지난 12일 개봉한 영화 ‘인사이드 아웃2’의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사진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이 감정들의 균열은 늘 안 좋은 상황을 대비하는 불안에서 시작한다. 당연히 같은 학교에 진학할 거라 믿었던 두 친구가 사실은 자신만 빼고 다른 곳에 지원한 사실을 라일리가 알아버린 것. 당황이가 감정 컨트롤을 만지면서 라일리는 볼이 빨개지고 따분이에 의해 또래 관계가 점점 시시해 진다. 그렇게 3일간의 하키캠프에서 만난 선배 벨을 향한 마음은 부럽이 담당이다.기쁨이는 늘 자신을 따르던 다른 감정들과 달리 제멋대로인 새로운 감정의 등장에 당황한다. 평소대로 자신이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려 하지만 그 틈을 타 불안이는 기본 감정들을 영원한 기억 저장소로 보내 버린다. 그곳에는 라일리가 절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상황들이 가득 차 있다. 현실의 라일리는 그렇게 또래 친구들과 멀어져 평소와 다른 감정을 느끼며 혼란을 느낀다. 까칠이가 이 와중에 자신을 도와준다면 좋겠지만 ‘이해심’으로 개명을 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인간의 기본 자아를 형성하는 데 바쁜 여러 감정들 중 슬픔이와 기쁨이의 궁합은 여전히 최고다. (사진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인사이드아웃2’는 주인공의 사춘기가 곧 감정본부의 리더인 기쁨이가 겪는 감정임을 대놓고 드러낸다. 늘 다른 감정들을 다독이고 배려해야 했던 그는 자신이 발명한 기계를 통해 좋지 않은 기억구슬들을 멀리 발사해 놓고 긍정적인 자아를 굳건히 했다. 하지만 그런 결정이 되려 라일리의 성장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때론 부정과 상처, 수치심과 걱정의 경험을 기억해야 탄력성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됨을 알게 되는 것이다. 감독이 갓 태어난 딸의 머리 속 감정들이 궁금해 만든 전편과는 달린 2편은 흐른 세월만큼 ‘성장’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1편을 본 어린 관객들이 극장으로 몰리는 한편 청소년을 둔 부모 관객들의 공감을 제대로 겨냥했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개봉 2주차에 극장 관객 400만명을 돌파하며 글로벌 흥행 수익은 5억8188만 달러(8093억원)를 넘기는데 한국 시장이 제 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스타를 내세운 더빙이나 눈을 사로잡는 캐릭터는 없지만 ‘인사이드 아웃2’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20년 후에나 나올 추억 할머니의 등장이 단 두 번 뿐이니 눈 크게 뜨고 봐야 한다. 이희승 기자 press512@viva100.com

2024-06-26 18:00 이희승 기자

[비바100] 2024서울국제도서전, ‘걸리버 여행기’ 속 완벽한 유토피아 후이늠을 꿈꾸며

2024 서울국제도서전 포스터(사진제공=서울국제도서전)“개최 장소가 지난해까지와 다르다 보니 규모가 줄었나 보다 하는데 물리적인 행사장 면적은 같은 규모입니다. 예산 문제로 저작권 펠로십 같은 프로그램 운영을 못하게 되고 저작권 거래 규모를 늘려잡지 못해 부스나 참가 수가 좀 줄기는 했지만 오히려 관람객들 숫자는 늘었습니다. 걱정이라면 3층에서는 처음이라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가는 적지 않은 관람객들 입장 줄을 어떻게 잘 관리할까죠.”주일우 서울국제도서전 대표의 전언처럼 제66회 서울국제도서전(6월 26~30일 코엑스 C D1 홀) 사전예매 관람객만도 4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현재는 줄어든 예산에 맞춰 줄일 수 있는 데서는 줄이되 관객들을 만나는 일이나 행사는 줄이지 않고 진행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올해는 긴축해 수입을 늘려 가능한 적자를 내지 않는 데 집중하고 있죠. 내년부터는 실제로 부스를 차리지 못하더라도 저작권 거래를 할 수 있는 것들을 훨씬 더 늘려보려고 합니다. 한국 콘텐츠가 가진 매력들을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외국에서 사람들이 올 수 있게 하는 등 대책을 강구 중이죠. ”2024 서울국제도서전 포스터(사진제공=서울국제도서전)다양한 축제를 비롯한 문화이벤트의 지속가능성은 늘 무언가에 발목이 잡히곤 하고 생존의 고민은 깊어진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주최하고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이 후원하는 서울국제도서전 역시 수익금 정산과 관련해 지난해부터 문화체육관광부와 갈등을 빚어오고 있다. 결국 문체부 지원이 일절 없는 도서전을 개최하게 된 데 대해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장도 “걱정한 것에 비해 아직은 순조롭다”고 밝혔다.국내외 출판인들과 작가, 독자 등이 한데 모여 드는 국내 최대 도서 축제에는 19개국 452개사(국내 330, 해외 122)가 참가하고 185명(국내 151, 해외 34)의 작가 및 연사가 참여해 450개 프로그램을 꾸린다.올해 도서전 주제는 ‘후이늠’(Houyhnhnm)이다. 영국작가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의 1726년작 ‘걸리버 여행기’ 제4편에 등장하는 말 종족이다. 걸리버가 네 번째 여행지에서 만난 후이늠은 “질서정연하고 합리적이고 현명하며 정확하게 말하고 공정하게 행동하는”, 거짓말, 불신, 전쟁, 침략, 약탈, 살인, 심술, 무지, 고집, 야비, 잔인, 사악, 교활 등 인간의 부정적인 측면이 전혀 없는 종족이다.주일우 대표는 “우크라이나에서도, 중동에서도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2, 3년씩 이어지고 있고 전쟁을 비롯해 이 사회에 존재하는 위기들을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는 의미에서 ‘걸리버 여행기’의 네 번째 나라를 끌고 왔다”고 밝혔다.“1700년대에 조너선 스위프트가 이성적인 어떤 생물들이 사는 네 번째 나라라면 좀 다른 해법을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하면서 고민했던 데서 착안했습니다. 후이늠의 세상을 만들면 전쟁을 그칠 수 있을까? 유능한 인공지능은 우리 미래에 후이늠이 되어 줄 것인가? 후이늠의 세계가 해법이 아니라면 우리는 어떤 미래를 그려야 할까? 등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고 싶었습니다.”김연수 작가가 새로 쓴 ‘걸리버 유람기’ 표지(사진제공=서울국제도서전)책을 통해 ‘세계의 비참’을 줄이고 ‘미래의 행복’을 찾는 여정을 떠나고자 하는 의지를 담은 주제에 따른 주제도서는 김연수 작가가 새로 쓰고 강혜숙 작가가 그린 ‘걸리버 유람기’다. 1909년 육당 최남선이 한국 현실에 맞게 쓴 1, 2부 소인국과 거인국 이야기에 3, 4부를 붙여 완성했다.김연수 작가는 “이번 도서전에서 소개하는 ‘걸리버 유람기’는 원작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기 보다는 2024년 한국의 시점에서 다시 쓴 여행기”라며 “걸리버와 홍길동이 만난다는 상상을 했다. 홍길동이 염원하던 이상사회가 ‘걸리버 여행기’의 마지막 부분을 새롭게 바꿀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2024 서울국제도서전 포스터(사진제공=서울국제도서전)“300년이 지난 시점이지만 ‘걸리버 여행기’에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인류의 문제를 보고 있으면 지금의 문제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굉장히 문제적으로 다가왔죠. 지금도 이대로라면 우리 시대에서 세상이 끝날 것이라고 말들을 합니다. 300년 전 조너선 스위프트도 그랬지만 그 절망을 이겨내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세상은 존재하고 있음을 보고 오히려 희망 같은 게 생겼습니다. 우리에게 절망을 이겨내는 힘이 있구나 깨달았죠. 책이라는 존재가 인간이 경험할 수 없는 긴 시간을 경험하게 해줌으로서 협소한 시공간에 갇힌 우리의 시간을 좀 넓게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후이늠’을 주제로 한 ‘걸리버 유람기’, 리미티드 에디션 ‘후이늠-검은 인화지에 남긴 흰 그림자’ 출간을 비롯해 주제 전시 및 강연, 세미나를 진행한다. 더불어 주빈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스포트라이트 컨트리 오만·노르웨이 문화 프로그램 및 강연, 모리 카오루 특별전 ‘신부이야기’, 일러스트레이터스 월 ‘여름의 드로잉’ 그리고 매년 진행하는 ‘BBK 한국에서 가장 좋은 책’과 출판사에서 직접 진행하는 프로그램들이 즐비하다 .그렇게 2024 서울국제도서전은 완벽한 절제와 조화 속에 살고 있는 ‘걸리버 여행기’ 속 유토피아 후이늠을 통해 전쟁과 불평등이 지속되고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는 지금에 질문과 고민할 거리를 던진다. 인간인 우리가 한계를 극복하고 좀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이런 존재인 인간의 모습으로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사회·나라·미래를 만들 수 있을까, 좀 덜 바꾸고 더 많이 이해하면서 긴 평화와 생존을 향해 갈 수 있을까…300년 전 조너선 스위프트가 그리고 걸리버가 괴로워하며 고민했던 물음들이 지금 우리 앞에 있다.허미선 기자 hurlkie@viva100.com

2024-06-24 18:30 허미선 기자